"VH2018 송광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DH 교육용 위키
이동: 둘러보기, 검색
 
4번째 줄: 4번째 줄:
 
}}
 
}}
 
=='''개요'''==
 
=='''개요'''==
한국의 삼보(三寶)사찰의 하나로 유서깊은 절이다. 신라 말기에 혜린(慧璘)이 마땅한 절을 찾던 중, 이곳에 이르러 산 이름을 송광이라 하고 절 이름을 길상(吉祥)이라 하였는데, 사찰의 규모는 작았다. 고려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정혜사(定慧社)를 이곳으로 옮겨와 수선사(修禪社)라 칭하고 대찰로 중건하였다.
+
한국의 삼보(三寶)사찰의 하나로 유서깊은 절이다. 신라 말기에 혜린(慧璘)선사가 이르러 산 이름을 송광이라 하고 절 이름을 길상(吉祥)이라 하였는데, 사찰의 규모는 작았다. 고려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정혜사(定慧社)를 이곳으로 옮겨와 수선사(修禪社)라 칭하고 대찰로 중건된 후 고려부터 조선 초까지 16명의 국사가 배출된 곳이다. 경내에는 16국사의 진영을 봉안한 국보 제56호 송광사 국사전 등 4점, 보물 27점 등 다수의 중요문화재를 보유하여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크다.
  
 
=='''지식관계망'''==
 
=='''지식관계망'''==

2018년 12월 20일 (목) 00:50 기준 최신판

Pencil.png 기여자: 양승진

개요

한국의 삼보(三寶)사찰의 하나로 유서깊은 절이다. 신라 말기에 혜린(慧璘)선사가 이르러 산 이름을 송광이라 하고 절 이름을 길상(吉祥)이라 하였는데, 사찰의 규모는 작았다. 고려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정혜사(定慧社)를 이곳으로 옮겨와 수선사(修禪社)라 칭하고 대찰로 중건된 후 고려부터 조선 초까지 16명의 국사가 배출된 곳이다. 경내에는 16국사의 진영을 봉안한 국보 제56호 송광사 국사전 등 4점, 보물 27점 등 다수의 중요문화재를 보유하여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크다.

지식관계망


참고자원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