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우반동 간찰1"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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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과 박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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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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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7정축년 3월 26일 박태관이 김수종에게 보낸 편지(115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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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이 날마다 드세 짐에 형의 西行이 이미 출발했다고 했었는데, 홀연히 행차를 미룰 뜻이 있음을 들었으니, 이전의 생각이 호쾌하였는데 혹시 다른 일이 있어 그렇습니까? 기대하던 나머지 배나 아쉽고 놀랬습니다. 요즘 조금 추운 가운데 형의 지내시는 생활이 여러 면에서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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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가을에 병과 우환을 얻어 슬픈 중에 하나도 좋은 상황이 없이 슬프게도 意趣가 줄어드니, 절로 슬퍼짐을 어쩌겠습니까? 定之는 각각 쓸데없는 일에 이끌려 근래에 심히 얼굴보기 힘들다가, 지금 홀연히 돌아가길 고하니, 아쉬움을 무슨 말로 하겠습니까? 그 행차로 인해 급하게 편지를 쓰기에 하고 싶은 말들은 많으나, 백에 하나도 제대로 쓰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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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헤아려 주시기 바라며, 절하고 편지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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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년 9월 1일, 弟 泰觀이 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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病者가 공허함만 빌리고 있어 그리움이 심히 고통스럽습니다. 단지 서로 말날 기약만 기다리는데, 지금 행차하는 날짜가 미루어질 것 같다고 말함을 들었으니, 서운함을 이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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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仲秋에 맞추어 내려가고자 했으나, 쓸데없는 일이 많아 이에 이룰 수 없습니다. 이번 달 10일 사이에 마땅히 奴를 하나 보낼 것이니, 그 때에 편지를 쓰겠습니다. 日萬은 이미 重杖을 맞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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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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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風日高, 謂兄西行己駕矣, 忽聞有退行之意, 前料爽矣, 或有事否. 企待之餘, 倍用悵愕. 伏惟簿寒中, 兄起居凡百冲勝. 弟得秋病憂, 哀哀無一善狀, 悄然少意趣, 自憐奈何. 定之, 各牽冗故, 近甚罕面, 今忽告歸, 悵觖何言. 因其行, 卒諒修書, 所欲言者多, 而百不及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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只希諒照, 拜上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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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未九月初一 弟 泰觀 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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病者借空, 思想正苦, 只俟西笑之期. 今聞行程似退云, 不勝觖然, 此欲趂秋下下去, 冗故多端, 玆未果. 今旬間, 當送一奴, 其時作書耳, 自前己施重秋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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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3계미년 추정) 박태관이 김수종에게 보낸 태지(12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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典農에서 보낸 봉물과 서간은 심부름꾼을 즉시 보냈는데, ‘답장은 수일 내에 당연히 보낼 것이다.’라 말했으나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士古가 찾아옴에 다시 보내는 것을 독촉하니, 답할 때는 ‘네네’하면서 갔는데 끝내 또한 답장을 전하지 않으니, 참으로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습니다. 대개 듣건대, 육명의 어머니는 바야흐로 광주에 머무시고, 누이께서는 전농에 계시니, 피차가 모두 평안하십니다. 심씨 어른 집에는 지난 달 27일에 자식의 혼사를 잘 치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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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奴의 조카 有秋가 4~5번을 종종 와서 보았는데, 그가 이미 이판부사댁의 모시는 하인으로 들어갔다고 들었습니다. 그 사람됨을 보면, 앞으로 서리의 역을 충분히 감당할만합니다. 저 또한 그를 권하여 서울 집에 머물러 있게 하였으니, 형께서는 돌아오라고 재촉하지 마십시오. 비록 끝내 배반하여 떠나가는 것으로 걱정하더라도, 형께서 관 뚜껑을 덮기 전에는 이 무리가 배반할 수 없으니 근심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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耳掩에 들어가는 비용이 11냥에 준하므로, 이로서 庄奴에게 계산해 주십시오. 돈은 錦平의 魚箭에 대한 세금인데 이롭지 않아 버려두었으므로, 그래서 나가서 이엄을 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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福中에다가 집을 짓는 계획은 가히 큰 결정이라 그만두기 어렵다 할 만 합니다. 목재는 반드시 겨울 전에 베어두고 기다리심이 어떠하십니까. 초봄에 즉시 남쪽으로 내려갈 것이니 간다면 마땅히 수송할 것입니다. 저번에 겨우 台甫를 한번 만났는데, 부안 수령께서 간혹 좋지 않은 일이 있어서 형들의 일을 언급하지 않는다고 하니 매우 탄식스럽습니다. 우환이 조금 나아진 다음에 마땅히 다시 권학사에게 편지로 간청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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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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典農所送封物書簡, 專人卽送. 答簡數日內當送云, 而終不來. 其後士古來訪, 更督其送, 答則唯唯而去矣, 終亦不送答, 誠不知其故也. 盖聞六命慈闈方留廣州, 其妹氏獨在典農, 彼此俱平安. 沈丈家去卄七, 利過子婚云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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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奴姪子有秋, 四五次頻頻來謁, 聞其已入李判府事家陪下人, 觀其爲人, 前頭足當書吏之役. 弟亦勸使留住京家, 兄須毋促其還下也. 雖以畢境叛去爲慮, 而兄之未盖棺前, 此輩不能叛, 勿慮勿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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耳掩所入, 準費十一兩, 以此計給庄奴如何. 錢是錦平魚箭貰物, 而不利而去, 故出而貿耳掩耳. 福中構屋之計, 可謂大決難罷. 材木必須冬前伐置以待如何. 春初卽當南下, 下則卽當輸送耳. 頃者, 僅一面台甫, 扶安守許, 間有不好之端, 不言及兄輩事云, 可歎可歎. 憂患稍間之後, 當更權學士書懇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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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76||||정○년 7월 11일 저녁||眷弟 泰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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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7정축년 3월 26일 박태관이 김수종에게 보낸 편지(115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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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이 날마다 드세 짐에 형의 西行이 이미 출발했다고 했었는데, 홀연히 행차를 미룰 뜻이 있음을 들었으니, 이전의 생각이 호쾌하였는데 혹시 다른 일이 있어 그렇습니까? 기대하던 나머지 배나 아쉽고 놀랬습니다. 요즘 조금 추운 가운데 형의 지내시는 생활이 여러 면에서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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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가을에 병과 우환을 얻어 슬픈 중에 하나도 좋은 상황이 없이 슬프게도 意趣가 줄어드니, 절로 슬퍼짐을 어쩌겠습니까? 定之는 각각 쓸데없는 일에 이끌려 근래에 심히 얼굴보기 힘들다가, 지금 홀연히 돌아가길 고하니, 아쉬움을 무슨 말로 하겠습니까? 그 행차로 인해 급하게 편지를 쓰기에 하고 싶은 말들은 많으나, 백에 하나도 제대로 쓰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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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헤아려 주시기 바라며, 절하고 편지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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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년 9월 1일, 弟 泰觀이 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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病者가 공허함만 빌리고 있어 그리움이 심히 고통스럽습니다. 단지 서로 말날 기약만 기다리는데, 지금 행차하는 날짜가 미루어질 것 같다고 말함을 들었으니, 서운함을 이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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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仲秋에 맞추어 내려가고자 했으나, 쓸데없는 일이 많아 이에 이룰 수 없습니다. 이번 달 10일 사이에 마땅히 奴를 하나 보낼 것이니, 그 때에 편지를 쓰겠습니다. 日萬은 이미 重杖을 맞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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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風日高, 謂兄西行己駕矣, 忽聞有退行之意, 前料爽矣, 或有事否. 企待之餘, 倍用悵愕. 伏惟簿寒中, 兄起居凡百冲勝. 弟得秋病憂, 哀哀無一善狀, 悄然少意趣, 自憐奈何. 定之, 各牽冗故, 近甚罕面, 今忽告歸, 悵觖何言. 因其行, 卒諒修書, 所欲言者多, 而百不及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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只希諒照, 拜上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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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未九月初一 弟 泰觀 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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病者借空, 思想正苦, 只俟西笑之期. 今聞行程似退云, 不勝觖然, 此欲趂秋下下去, 冗故多端, 玆未果. 今旬間, 當送一奴, 其時作書耳, 自前己施重秋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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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3계미년 추정) 박태관이 김수종에게 보낸 태지(121번)==
 
典農에서 보낸 봉물과 서간은 심부름꾼을 즉시 보냈는데, ‘답장은 수일 내에 당연히 보낼 것이다.’라 말했으나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士古가 찾아옴에 다시 보내는 것을 독촉하니, 답할 때는 ‘네네’하면서 갔는데 끝내 또한 답장을 전하지 않으니, 참으로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습니다. 대개 듣건대, 육명의 어머니는 바야흐로 광주에 머무시고, 누이께서는 전농에 계시니, 피차가 모두 평안하십니다. 심씨 어른 집에는 지난 달 27일에 자식의 혼사를 잘 치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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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奴의 조카 有秋가 4~5번을 종종 와서 보았는데, 그가 이미 이판부사댁의 모시는 하인으로 들어갔다고 들었습니다. 그 사람됨을 보면, 앞으로 서리의 역을 충분히 감당할만합니다. 저 또한 그를 권하여 서울 집에 머물러 있게 하였으니, 형께서는 돌아오라고 재촉하지 마십시오. 비록 끝내 배반하여 떠나가는 것으로 걱정하더라도, 형께서 관 뚜껑을 덮기 전에는 이 무리가 배반할 수 없으니 근심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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耳掩에 들어가는 비용이 11냥에 준하므로, 이로서 庄奴에게 계산해 주십시오. 돈은 錦平의 魚箭에 대한 세금인데 이롭지 않아 버려두었으므로, 그래서 나가서 이엄을 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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福中에다가 집을 짓는 계획은 가히 큰 결정이라 그만두기 어렵다 할 만 합니다. 목재는 반드시 겨울 전에 베어두고 기다리심이 어떠하십니까. 초봄에 즉시 남쪽으로 내려갈 것이니 간다면 마땅히 수송할 것입니다. 저번에 겨우 台甫를 한번 만났는데, 부안 수령께서 간혹 좋지 않은 일이 있어서 형들의 일을 언급하지 않는다고 하니 매우 탄식스럽습니다. 우환이 조금 나아진 다음에 마땅히 다시 권학사에게 편지로 간청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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典農所送封物書簡, 專人卽送. 答簡數日內當送云, 而終不來. 其後士古來訪, 更督其送, 答則唯唯而去矣, 終亦不送答, 誠不知其故也. 盖聞六命慈闈方留廣州, 其妹氏獨在典農, 彼此俱平安. 沈丈家去卄七, 利過子婚云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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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奴姪子有秋, 四五次頻頻來謁, 聞其已入李判府事家陪下人, 觀其爲人, 前頭足當書吏之役. 弟亦勸使留住京家, 兄須毋促其還下也. 雖以畢境叛去爲慮, 而兄之未盖棺前, 此輩不能叛, 勿慮勿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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耳掩所入, 準費十一兩, 以此計給庄奴如何. 錢是錦平魚箭貰物, 而不利而去, 故出而貿耳掩耳. 福中構屋之計, 可謂大決難罷. 材木必須冬前伐置以待如何. 春初卽當南下, 下則卽當輸送耳. 頃者, 僅一面台甫, 扶安守許, 間有不好之端, 不言及兄輩事云, 可歎可歎. 憂患稍間之後, 當更權學士書懇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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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8일 (금) 03:53 판


김수종과 박태관

번역

1697정축년 3월 26일 박태관이 김수종에게 보낸 편지(115번)

가을바람이 날마다 드세 짐에 형의 西行이 이미 출발했다고 했었는데, 홀연히 행차를 미룰 뜻이 있음을 들었으니, 이전의 생각이 호쾌하였는데 혹시 다른 일이 있어 그렇습니까? 기대하던 나머지 배나 아쉽고 놀랬습니다. 요즘 조금 추운 가운데 형의 지내시는 생활이 여러 면에서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가을에 병과 우환을 얻어 슬픈 중에 하나도 좋은 상황이 없이 슬프게도 意趣가 줄어드니, 절로 슬퍼짐을 어쩌겠습니까? 定之는 각각 쓸데없는 일에 이끌려 근래에 심히 얼굴보기 힘들다가, 지금 홀연히 돌아가길 고하니, 아쉬움을 무슨 말로 하겠습니까? 그 행차로 인해 급하게 편지를 쓰기에 하고 싶은 말들은 많으나, 백에 하나도 제대로 쓰지 못합니다.

단지 헤아려 주시기 바라며, 절하고 편지를 올립니다.

계미년 9월 1일, 弟 泰觀이 頓.

病者가 공허함만 빌리고 있어 그리움이 심히 고통스럽습니다. 단지 서로 말날 기약만 기다리는데, 지금 행차하는 날짜가 미루어질 것 같다고 말함을 들었으니, 서운함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저는 仲秋에 맞추어 내려가고자 했으나, 쓸데없는 일이 많아 이에 이룰 수 없습니다. 이번 달 10일 사이에 마땅히 奴를 하나 보낼 것이니, 그 때에 편지를 쓰겠습니다. 日萬은 이미 重杖을 맞았다고 합니다.

원문

秋風日高, 謂兄西行己駕矣, 忽聞有退行之意, 前料爽矣, 或有事否. 企待之餘, 倍用悵愕. 伏惟簿寒中, 兄起居凡百冲勝. 弟得秋病憂, 哀哀無一善狀, 悄然少意趣, 自憐奈何. 定之, 各牽冗故, 近甚罕面, 今忽告歸, 悵觖何言. 因其行, 卒諒修書, 所欲言者多, 而百不及一,

只希諒照, 拜上狀.

癸未九月初一 弟 泰觀 頓

病者借空, 思想正苦, 只俟西笑之期. 今聞行程似退云, 不勝觖然, 此欲趂秋下下去, 冗故多端, 玆未果. 今旬間, 當送一奴, 其時作書耳, 自前己施重秋云.

(1703계미년 추정) 박태관이 김수종에게 보낸 태지(121번)

典農에서 보낸 봉물과 서간은 심부름꾼을 즉시 보냈는데, ‘답장은 수일 내에 당연히 보낼 것이다.’라 말했으나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士古가 찾아옴에 다시 보내는 것을 독촉하니, 답할 때는 ‘네네’하면서 갔는데 끝내 또한 답장을 전하지 않으니, 참으로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습니다. 대개 듣건대, 육명의 어머니는 바야흐로 광주에 머무시고, 누이께서는 전농에 계시니, 피차가 모두 평안하십니다. 심씨 어른 집에는 지난 달 27일에 자식의 혼사를 잘 치렀다고 합니다.

龍奴의 조카 有秋가 4~5번을 종종 와서 보았는데, 그가 이미 이판부사댁의 모시는 하인으로 들어갔다고 들었습니다. 그 사람됨을 보면, 앞으로 서리의 역을 충분히 감당할만합니다. 저 또한 그를 권하여 서울 집에 머물러 있게 하였으니, 형께서는 돌아오라고 재촉하지 마십시오. 비록 끝내 배반하여 떠나가는 것으로 걱정하더라도, 형께서 관 뚜껑을 덮기 전에는 이 무리가 배반할 수 없으니 근심하지 마십시오.

耳掩에 들어가는 비용이 11냥에 준하므로, 이로서 庄奴에게 계산해 주십시오. 돈은 錦平의 魚箭에 대한 세금인데 이롭지 않아 버려두었으므로, 그래서 나가서 이엄을 샀습니다.

福中에다가 집을 짓는 계획은 가히 큰 결정이라 그만두기 어렵다 할 만 합니다. 목재는 반드시 겨울 전에 베어두고 기다리심이 어떠하십니까. 초봄에 즉시 남쪽으로 내려갈 것이니 간다면 마땅히 수송할 것입니다. 저번에 겨우 台甫를 한번 만났는데, 부안 수령께서 간혹 좋지 않은 일이 있어서 형들의 일을 언급하지 않는다고 하니 매우 탄식스럽습니다. 우환이 조금 나아진 다음에 마땅히 다시 권학사에게 편지로 간청하겠습니다.

원문

典農所送封物書簡, 專人卽送. 答簡數日內當送云, 而終不來. 其後士古來訪, 更督其送, 答則唯唯而去矣, 終亦不送答, 誠不知其故也. 盖聞六命慈闈方留廣州, 其妹氏獨在典農, 彼此俱平安. 沈丈家去卄七, 利過子婚云耳.

龍奴姪子有秋, 四五次頻頻來謁, 聞其已入李判府事家陪下人, 觀其爲人, 前頭足當書吏之役. 弟亦勸使留住京家, 兄須毋促其還下也. 雖以畢境叛去爲慮, 而兄之未盖棺前, 此輩不能叛, 勿慮勿慮.

耳掩所入, 準費十一兩, 以此計給庄奴如何. 錢是錦平魚箭貰物, 而不利而去, 故出而貿耳掩耳. 福中構屋之計, 可謂大決難罷. 材木必須冬前伐置以待如何. 春初卽當南下, 下則卽當輸送耳. 頃者, 僅一面台甫, 扶安守許, 間有不好之端, 不言及兄輩事云, 可歎可歎. 憂患稍間之後, 當更權學士書懇耳.


편지 목록

순번 문서번호 서기년 간지 편지 발신자 박태관나이 김수종나이
1 158 1697 정축년 3월 26일 弟 泰觀 頓首 20 27
2 164 1700 경진년 10월 2일 朴泰觀 23 30
3 136 1701 신사년 上元日 아침 弟 泰觀 24 31
4 149 1701 신사년 2월 6일 弟 泰觀 24 31
5 131 1701 신사년 5월 7일 服弟 泰觀 24 31
6 129 1703 계미년 6월 19일 弟 泰觀 25 33
7 128 1703 계미년 7월 19일 弟 泰觀 25 33
8 115 1703 계미년 9월 1일 弟 泰觀 25 33
9 120 1703 계미년 9월 18일 弟 泰觀 25 33
10 133 1703 계미년 12월 5일 服弟 泰觀 25 33
11 117 1704 갑신년 11월 30일 朞服情弟 泰觀 26 34
12 139 1705 을유년 9월 28일 服弟 泰觀 26 35
13 148 1706 병술년 1월 17일 服人世弟 泰觀 27 36
14 150 1706 병술년 5월 7일 服弟 泰觀 27 36
15 175 1707 정해년 5월 30일 弟 泰觀 28 37
16 134 1708 무자년 8월 2일 眷弟 泰觀 29 38
17 172 1708 무자년 8월 3일 服弟 泰觀 29 38
18 145 1709 기축년 1월 3일 밤 服弟 泰觀 30 39
19 162 1709 기축년 1월 28일 服弟 泰觀 30 39
20 151 1709 기축년 踏靑日(3월 3일) 服制 泰觀 30 39
21 174 1709 기축년 9월 26일 服弟 泰觀 30 39
22 168 1709 기축년 11월 5일 服弟 泰觀 30 39
23 169 1710 경인년 1월 5일 服弟 泰觀 31 40
24 126 1710 경인년 12월 16일 弟 泰觀 31 40
25 116 1711 신묘년 4월 17일 服弟 泰觀 32 41
26 154 1711 신묘년 12월 17일 弟 泰觀 32 41
27 170 1712 임진년 8월 26일 弟 泰觀 頓 33 42
28 152 1713 계사년 4월 11일 弟 泰觀 34 43
29 167 1713 계사년 11월 7일 弟 泰觀 頓 34 43
30 147 1714 갑오년 1월 26일 服弟 泰觀 35 44
31 161 1714 갑오년 2월 28일 服弟 泰觀 35 44
32 146 1714 갑오년 4월 1일 服弟 泰觀 35 44
33 119 1715 을미년 3월 23일 弟 泰觀 36 45
34 130 1715 을미년 5월 10일 弟 泰觀 36 45
35 122 1715 을미년 7월 18일 弟 泰觀 36 45
36 138 1715 을미년 8월 24일 服弟 泰觀 63 45
37 157 1716 병신년 정월 아침 弟 泰觀 37 46
38 118 1716 병신년 단오일 弟 泰觀 37 46
39 140 1716 병신년 11월 23일 저녁 弟 泰觀 37 46
40 141 1717 정유년 5월 14일 弟 泰觀 38 47
41 166 1717 정유년 7월 5일 服弟 泰觀 38 47
42 121○ 미상(계미년 9)
43 123 미상(을미년 7)
44 124 신○년 11월 1일 弟 泰觀
45 127○ (경인년 12) 眷弟
46 132 병○년 6월 27일 眷弟 泰觀
47 135 갑○년 10월 9일 弟 泰觀
48 137 무○년 1월 23일 朞服弟 泰觀
49 142 병○년 9월 4일 眷弟 泰觀
50 143○ (병?년 9) 眷弟
51 144 을○년 30일 밤 服弟 泰觀
52 153 무○년 윤월 21일 弟 泰觀
53 155 병○년 12월 20일 服制 泰觀
54 156 무○년 11월 17일 弟朞服人 泰觀
55 159○ 26일 저녁(정축년 3) 眷弟
56 160○ 小紙(정축년 3)
57 163 병○년 10월 10일 밤 眷弟 泰觀
58 165 경○년 10월 1일 弟 泰觀
59 171 12월 15일 服弟 泰觀
60 173 편지 받은 아침 損弟 泰觀
61 176 정○년 7월 11일 저녁 眷弟 泰觀


부안김씨 간찰 관련 지리 정보



참고 사이트

부안 부령김씨 대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