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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활동'''==
 
=='''음악활동'''==
그의 아들 김용만의 회고록에 의하면 '아버지를 생각할 때, 늘 가장 먼저 떠로르는 것은 언제나 일에 열중히 계시던 모습이다'<ref> 국립국악원, 『이왕직아악부와 음악인들』, 국립국악원, 1991, 79쪽</ref>라며 아버지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그는 먹고 잘때를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일에 열중하면서 지냈다고 한다. 일에 대한 그의 열정은 국악계에 많은 업적을 남기는데에 기여하였다. 여러가지 업적 중 가장 눈에 띈 것은 <font color="Green"><b>창작국악</b></font>의 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 <황화만년지곡(皇化萬年之曲)>은 국악창작곡의 효시가 되는 작품이다.<ref> 이능화의 한시에 김기수가 곡을 붙인 곡으로 1939년에 작곡하였다. 이 곡은 이왕직에서 일본기원 2600년이 되는 1900년 행사에 사용할 창작곡을 공모전에서 당선된 작품이다. 이러한 이유로 김기수의 다른 작품인 <세우영> 혹은 <고향소>를 창작국악곡의 효시로 보자는 의견도 있다. 이수정, 황화만년지곡 연구, 『온지논총』제45집, 2006, 235쪽</ref> 그리고 그가 작곡한 <정백혼>이라는 작품은 국악관현악곡으로 이 곡을 통해서 국악관현악에 지휘봉이 처음 도입되었고,<ref>김우진, 근현대 한국음악가의 음악사적 업적 조명,『한국음악사학보』제47집, 2011, 62쪽</ref> 현재까지도 국악관현악에 지휘를 한다. 그 외에 그가 작곡한 곡수는 약 510곡<ref>서한범, 죽헌 김기수론,『한국음악사학보』제17집, 1996, 56쪽</ref>정도이다. 또 다른 업적으로는 <font color="Green"><b>악보편찬</b></font>이다. 당시 연주되던 정악, 민속악을 오선보 혹은 정간보로 채보하였다. 그가 편찬한 국악교재들은 가야금, 거문고, 대금, 피리, 해금 등으로 국악사양성소의 정규교재로 사용되었다,<ref>김우진, 근현대 한국음악가의 음악사적 업적 조명,『한국음악사학보』제47집, 2011, 56쪽</ref> 그가 작업한 악보에는 시김해 부호 통일 등 실제음악에 더 가까워졌는데, 이전에 구전심수(口傳心授)로 배웠던 국악교육이 악보를 통한 국악교육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하였다. 현재 <font color="Green"><b>교육현장에서 단소연주</b></font>가 필수로 음악교과서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렇게 단소가 교육현장에서 많이 불릴 수 있도록 한 사람도 그였다. 그는 합성수지재를 이용한 교육용 단소 등을 제작하여 규격과 음악을 통일하였고, 저렴한 생산비로 대량생산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였다. 국립국악원에 그의 동상이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친일파 동상 논란에 휩싸였다. 그가 미쓰야마 테쓰조(光山哲三)로 창씨개명을 하였고, 일본 천황 탄신을 기념하는 곡인 <황화만년지곡>을 지었다는 이유때문인데, 결국 국립국악원에서는 김기수의 친일행적을 동상에 기록하는 것<ref>[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372958&section=sc2 박주선 '국립국악원, 친일파 동상에 친일 행적 추가기재키로']박주선 '국립국악원, 친일파 동상에 친일 행적 추가기재키로', 브레이크뉴스, 2015년 6월 6일</ref>으로 이 논란의 결론을 지었다. 친일파 논란이 있지만, "새것을 찾으려거든 전통을 더 깊이 파라"는 말처럼 국악을 깊게 팠던 그의 행적은 국악명맥을 이어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현재까지도 그가 만들었던 악보를 통해 국악을 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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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들 김용만의 회고록에 의하면 '아버지를 생각할 때, 늘 가장 먼저 떠로르는 것은 언제나 일에 열중히 계시던 모습이다'<ref> 국립국악원, 『이왕직아악부와 음악인들』, 국립국악원, 1991, 79쪽</ref>라며 아버지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그는 먹고 잘때를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일에 열중하면서 지냈다고 한다. 일에 대한 그의 열정은 국악계에 많은 업적을 남기는데에 기여하였다. 여러가지 업적 중 가장 눈에 띈 것은 <font color="Green"><b>창작국악</b></font>의 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 '황화만년지곡(皇化萬年之曲)'은 국악창작곡의 효시가 되는 작품이다.<ref> 이능화의 한시에 김기수가 곡을 붙인 곡으로 1939년에 작곡하였다. 이 곡은 이왕직에서 일본기원 2600년이 되는 1900년 행사에 사용할 창작곡을 공모전에서 당선된 작품이다. 이러한 이유로 김기수의 다른 작품인 '세우영' 혹은 '고향소'를 창작국악곡의 효시로 보자는 의견도 있다. 이수정, 황화만년지곡 연구, 『온지논총』제45집, 2006, 235쪽</ref> 그리고 그가 작곡한 '정백혼'이라는 작품은 국악관현악곡으로 이 곡을 통해서 국악관현악에 지휘봉이 처음 도입되었고,<ref>김우진, 근현대 한국음악가의 음악사적 업적 조명,『한국음악사학보』제47집, 2011, 62쪽</ref> 현재까지도 국악관현악에 지휘를 한다. 그 외에 그가 작곡한 곡수는 약 510곡<ref>서한범, 죽헌 김기수론,『한국음악사학보』제17집, 1996, 56쪽</ref>정도이다. 또 다른 업적으로는 <font color="Green"><b>악보편찬</b></font>이다. 당시 연주되던 정악, 민속악을 오선보 혹은 정간보로 채보하였다. 그가 편찬한 국악교재들은 가야금, 거문고, 대금, 피리, 해금 등으로 국악사양성소의 정규교재로 사용되었다,<ref>김우진, 근현대 한국음악가의 음악사적 업적 조명,『한국음악사학보』제47집, 2011, 56쪽</ref> 그가 작업한 악보에는 시김해 부호 통일 등 실제음악에 더 가까워졌는데, 이전에 구전심수(口傳心授)로 배웠던 국악교육이 악보를 통한 국악교육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하였다. 현재 <font color="Green"><b>교육현장에서 단소연주</b></font>가 필수로 음악교과서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렇게 단소가 교육현장에서 많이 불릴 수 있도록 한 사람도 그였다. 그는 합성수지재를 이용한 교육용 단소 등을 제작하여 규격과 음악을 통일하였고, 저렴한 생산비로 대량생산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였다. 국립국악원에 그의 동상이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친일파 동상 논란에 휩싸였다. 그가 미쓰야마 테쓰조(光山哲三)로 창씨개명을 하였고, 일본 천황 탄신을 기념하는 곡인 <황화만년지곡>을 지었다는 이유때문인데, 결국 국립국악원에서는 김기수의 친일행적을 동상에 기록하는 것<ref>[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372958&section=sc2 박주선 '국립국악원, 친일파 동상에 친일 행적 추가기재키로']박주선 '국립국악원, 친일파 동상에 친일 행적 추가기재키로', 브레이크뉴스, 2015년 6월 6일</ref>으로 이 논란의 결론을 지었다. 친일파 논란이 있지만, "새것을 찾으려거든 전통을 더 깊이 파라"는 말처럼 국악을 깊게 팠던 그의 행적은 국악명맥을 이어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현재까지도 그가 만들었던 악보를 통해 국악을 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주요경력'''==
 
=='''주요경력'''==

2017년 6월 26일 (월) 22:46 판

김기수

개요

김기수(金琪洙, 죽헌(竹軒), 光山哲三, 1917.11.22~1986.10.21)는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 출신으로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에서 활동한 국악인이다.

기본 정보

  • 이름 = 김기수(金琪洙)
  • 아호 = 죽헌(竹軒)
  • 전공 = 대금
  • 출생지 = 서울시
  • 출생-사망 = 1917-1986

음악활동

그의 아들 김용만의 회고록에 의하면 '아버지를 생각할 때, 늘 가장 먼저 떠로르는 것은 언제나 일에 열중히 계시던 모습이다'[1]라며 아버지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그는 먹고 잘때를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일에 열중하면서 지냈다고 한다. 일에 대한 그의 열정은 국악계에 많은 업적을 남기는데에 기여하였다. 여러가지 업적 중 가장 눈에 띈 것은 창작국악의 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 '황화만년지곡(皇化萬年之曲)'은 국악창작곡의 효시가 되는 작품이다.[2] 그리고 그가 작곡한 '정백혼'이라는 작품은 국악관현악곡으로 이 곡을 통해서 국악관현악에 지휘봉이 처음 도입되었고,[3] 현재까지도 국악관현악에 지휘를 한다. 그 외에 그가 작곡한 곡수는 약 510곡[4]정도이다. 또 다른 업적으로는 악보편찬이다. 당시 연주되던 정악, 민속악을 오선보 혹은 정간보로 채보하였다. 그가 편찬한 국악교재들은 가야금, 거문고, 대금, 피리, 해금 등으로 국악사양성소의 정규교재로 사용되었다,[5] 그가 작업한 악보에는 시김해 부호 통일 등 실제음악에 더 가까워졌는데, 이전에 구전심수(口傳心授)로 배웠던 국악교육이 악보를 통한 국악교육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하였다. 현재 교육현장에서 단소연주가 필수로 음악교과서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렇게 단소가 교육현장에서 많이 불릴 수 있도록 한 사람도 그였다. 그는 합성수지재를 이용한 교육용 단소 등을 제작하여 규격과 음악을 통일하였고, 저렴한 생산비로 대량생산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였다. 국립국악원에 그의 동상이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친일파 동상 논란에 휩싸였다. 그가 미쓰야마 테쓰조(光山哲三)로 창씨개명을 하였고, 일본 천황 탄신을 기념하는 곡인 <황화만년지곡>을 지었다는 이유때문인데, 결국 국립국악원에서는 김기수의 친일행적을 동상에 기록하는 것[6]으로 이 논란의 결론을 지었다. 친일파 논란이 있지만, "새것을 찾으려거든 전통을 더 깊이 파라"는 말처럼 국악을 깊게 팠던 그의 행적은 국악명맥을 이어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현재까지도 그가 만들었던 악보를 통해 국악을 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주요경력

  • 1941년 이왕직아아부원 양성소 제4기 입학
  • 1936년 이왕직아악부 아악수
  • 1951년 국립국악원 예술사
  • 1953년 국립국악원 장악과장
  • 1962년 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
  •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보유자
  • 197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 처용무 보유자
  • 1973년 국립국악원 원장
  • 1977년 국립국악고등학교 교장
  • 1981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주요작품 및 저서

  • 작품 1939년 황화만년지곡
  • 작품 1941년 세우영
  • 작품 1944년 고향소
  • 작품 1953년 회서양
  • 작품 1962년 새나라
  • 작품 1983년 초롱
  • 저서 1958년 《악전첫걸음》
  • 저서 1958년 《한국민요오십곡집》
  • 저서 1961년 《대금교본》
  • 저서 1963년 《단소교본》
  • 저서 1967년 《고가신조》
  • 저서 1958년 《한국음악》
  • 저서 1971년 《월하정가선》
  • 저서 1972년 《국악입문》
  • 저서 1973년 《국악전집》
  • 저서 1976년 《속고가신조》
  • 저서 1991년 《단소율보》
  • 저서 1994년 《가야금정악》

참고문헌

  • 김우진, 근현대 한국음악가의 음악사적 업적 조명,『한국음악사학보』제47집, 2011.
  • 국립국악원, 『이왕직아악부와 음악인들』, 국립국악원, 1991.
  • 서한범, 죽헌 김기수론,『한국음악사학보』제17집, 1996.
  • 이수정, 황화만년지곡 연구, 『온지논총』제45집, 2006.
  • 박주선 '국립국악원, 친일파 동상에 친일 행적 추가기재키로', 브레이크뉴스, 2015년 6월 6일

주석

  1. 국립국악원, 『이왕직아악부와 음악인들』, 국립국악원, 1991, 79쪽
  2. 이능화의 한시에 김기수가 곡을 붙인 곡으로 1939년에 작곡하였다. 이 곡은 이왕직에서 일본기원 2600년이 되는 1900년 행사에 사용할 창작곡을 공모전에서 당선된 작품이다. 이러한 이유로 김기수의 다른 작품인 '세우영' 혹은 '고향소'를 창작국악곡의 효시로 보자는 의견도 있다. 이수정, 황화만년지곡 연구, 『온지논총』제45집, 2006, 235쪽
  3. 김우진, 근현대 한국음악가의 음악사적 업적 조명,『한국음악사학보』제47집, 2011, 62쪽
  4. 서한범, 죽헌 김기수론,『한국음악사학보』제17집, 1996, 56쪽
  5. 김우진, 근현대 한국음악가의 음악사적 업적 조명,『한국음악사학보』제47집, 2011, 56쪽
  6. 박주선 '국립국악원, 친일파 동상에 친일 행적 추가기재키로'박주선 '국립국악원, 친일파 동상에 친일 행적 추가기재키로', 브레이크뉴스, 2015년 6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