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이이 KU"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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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인물 정보 | |
− | + | |이름=이이 <br /> 李珥 | |
− | + | |출생일= 1536년 음력 12월 26일<br />양력 1537년 1월 7일 | |
− | + | |출생지= 조선 강원도 강릉부 죽헌동 오죽헌 몽룡실 | |
− | + | |사망지= 조선 한성부 대사동 자택 | |
− | + | |사망일= 1584년 2월 27일 (음력 1월 16일) (47세) | |
− | + | |사망원인= 병사 | |
− | == | + | |거주지= |
− | * 이이(李珥, 1537년 1월 7일(1536년 음력 12월 26일) ~ 1584년 2월 27일(음력 1월 16일))는 조선시대의 문신, 성리학자이며 정치가, 사상가, 교육자, 작가, 시인이다. 관직은 숭정대부 | + | |국적= 조선 |
− | + | |별명= 호는 율곡, 자는 숙헌 | |
+ | |학력= 한성시 장원급제 | ||
+ | |직업= 문인, 시인, 사상가, 정치가, 교육자 | ||
+ | |종교= 유교 성리학 | ||
+ | |배우자= 곡산 노씨, 부실 김씨,이씨 | ||
+ | |자녀= 이씨(서녀) | ||
+ | |부모= 부 이원수, 모 신사임당, 서모 권씨 | ||
+ | |친척= 할아버지 이천, 재종조부 이기 (1476년), 이행, 누이 이매창, 형 이번, 형 이선,<br />동생 이우 (문신), 종증조부 이의무, 친족 이순신, 사돈 김장생, 서녀사위 김집 (1574년)] | ||
+ | |서명= | ||
+ | |웹사이트= [http://www.yulgok.or.kr/ 율곡학회 홈페이지]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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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용=== | ||
+ | *이이(李珥, 1537년 1월 7일(1536년 음력 12월 26일) ~ 1584년 2월 27일(음력 1월 16일))는 조선시대의 문신, 성리학자이며 정치가, 사상가, 교육자, 작가, 시인이다. 관직은 숭정대부 병조판서에 이르렀다. 성혼, 송익필, 김장생 등과 함께 기호 지역이 기반인 서인(西人)의 종주로 추앙된다. 아홉 차례의 과거에 급제해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16세 때 어머니 신사임당이 죽자 3년간 여묘살이를 한 후, 아버지가 계모 권씨를 들인 뒤 금강산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는데, 이 때문에 훗날 그가 죽은 후에까지도 머리 깎고 중이 되려다가 환속한 자 라고 동인과 남인이 공격하는 빌미가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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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준경이 죽기 직전 붕당의 폐에 관한 유차를 올리자 '죽음에 이르러 말이 악하다'고 공격하였으며 이후 이준경의 처벌까지 가기도 했다. 그러나 후일 당쟁이 현실화하자 스스로 크게 뉘우치고 동인, 서인 사이의 당쟁 조정을 평생 정치 이념으로 삼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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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고 자료=== | ||
+ | [http://ko.wikipedia.org/wiki/%EC%9C%A8%EA%B3%A1_%EC%9D%B4%EC%9D%B4 위키피디아 이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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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212 이지형 | 201310212 이지형]] | ||
[[분류:서원 KU]] | [[분류:서원 KU]] |
2014년 6월 9일 (월) 21:18 판
인물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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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300px]] | |
이름 | 이이 李珥 |
출생 | |
사망 | |
성별 | |
국적 | 조선 |
직업 | 문인, 시인, 사상가, 정치가, 교육자 |
경력 |
내용
- 이이(李珥, 1537년 1월 7일(1536년 음력 12월 26일) ~ 1584년 2월 27일(음력 1월 16일))는 조선시대의 문신, 성리학자이며 정치가, 사상가, 교육자, 작가, 시인이다. 관직은 숭정대부 병조판서에 이르렀다. 성혼, 송익필, 김장생 등과 함께 기호 지역이 기반인 서인(西人)의 종주로 추앙된다. 아홉 차례의 과거에 급제해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16세 때 어머니 신사임당이 죽자 3년간 여묘살이를 한 후, 아버지가 계모 권씨를 들인 뒤 금강산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는데, 이 때문에 훗날 그가 죽은 후에까지도 머리 깎고 중이 되려다가 환속한 자 라고 동인과 남인이 공격하는 빌미가 되었다.
이준경이 죽기 직전 붕당의 폐에 관한 유차를 올리자 '죽음에 이르러 말이 악하다'고 공격하였으며 이후 이준경의 처벌까지 가기도 했다. 그러나 후일 당쟁이 현실화하자 스스로 크게 뉘우치고 동인, 서인 사이의 당쟁 조정을 평생 정치 이념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