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마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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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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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urumaki.jpg]]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포(袍)의 일종으로 조선 말 의복의 간소화에 따라 일반인들이 입기 시작하여 오늘날 남녀 모두 착용하는 외출용 겉옷이다. 형태를 보면 소매는 좁고 직령교임식(直領交袵式)이며, 양옆에 무를 달고 길이는 발목에서 20~25cm 정도 올라온다. 주의(周衣)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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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이미지</h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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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ref>[http://museum.dankook.ac.kr/relic-custom1-09.html 석주선기념박물관]</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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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두루마기.jpg|<두루마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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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두루마기1.jpg|<두루마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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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두루마기2.jpg|<두루마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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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두루마기3.jpg|<두루마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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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래 ==
 
좁은 의미로는 조선 말기에 도포(道袍)·창의(氅衣) 등의 제도가 없어지고 일반 사서인(士庶人)이 착용하기 시작하여 오늘날 입혀지고 있는 포제(袍制)를 말한다. 소매는 좁고 직령교임식(直領交衽式)이며 양 옆에 무를 달아 옆을 막고, 길이는 발목에서 20∼25cm 정도 올라오게 한다. 이것은 우리 민속의 후리매·쿠리매 등의 계통을 이은 하서인(下庶人)의 포제였으나, 그 간편함 때문에 일반화된 것이다.
 
두루마기란 ‘두루 막혔다’는 뜻이고, 한자어로는 ‘주의(周衣)’라고 한다. 일부에서는 그 어원이 몽고어의 쿠루막치(xurumak○i)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다.
 
몽고복과 비슷한 점이 있다 하여도 그 원류에서 볼 때 고구려 이래의 우리 전통의 포제에서 나온 것이다. 고구려 포제에는 당시의 양식으로 선(襈)이 있고 띠를 둘렀는데, 오늘의 두루마기에는 선이 없고 고름으로 되었을 뿐 별 차이가 없다.
 
백제·신라의 포도 두루마기와 비슷하였을 것으로 보는데 양나라의 <직공도 職工圖>에 나오는 백제 사신도(使臣圖), 당나라 이현묘(李賢墓)의 외국사신도에 나오는 신라 사신도에는, 저고리보다 약간 길며 소매가 넓은 포를 입고 있어 삼국이 같았음을 알 수 있다.
 
고려에 내려오면 전기에는 백저포(白紵袍)가 일반적인 포로 입혀졌다. 여기에도 띠를 두르고 있어 옛 흔적을 지니고 있는데, 중기 이후 몽고의 질손(質孫)이 일반 국민에게 강요되자 전기의 백저포는 약간 변용된 것 같다.
 
당시의 유물인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서산 문수사 불상복장포(瑞山文殊寺佛像腹藏袍)를 보면 애초의 포형은 몽고계통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그 전체적인 형태는 우리 두루마기에서 많이 벗어나는 것은 아니며, 여기 무가 생성되어 활동에 편리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과 비슷한 포형이 조선 초기에는 직령포(直領袍)의 형태로 발전하는데, 이 직령포가 후기의 두루마기의 원형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많은 직령포가 개량 발전되고 있는데 그 중 1530년(중종 25)대의 광주 이씨(廣州李氏)의 겹주름포[裌注音袍]는 그 형태에서는 문수사 불상복장포의 계통이고, 옆 겨드랑 밑 무가 두루마기보다는 여유가 있다.
 
이 뒤를 이어 옆주름이 없어지고 오늘의 두루마기와 같이 된 것이 1583년(선조 16)을 하한대로 보는 고림군종가(高林君宗家)에 전하여오는 직령포와 장군 김덕령(金德齡)의 질부 장흥 임씨(長興林氏)의 겹직령포이다.
 
이는 김덕령의 두루마기와 같은 시기의 것으로 오늘의 두루마기와 포폭(布幅)의 처리 문제 등 조금 다른 점은 있어도 별차이가 없다. 전라남도 광주 충장사(忠壯祠) 소장 김덕령의 두루마기는 소매가 좁고 옆에 무가 있으며 다시 겨드랑 밑에 작은 무가 달려 있다.
 
이것이 누비인 것을 보면 방한복을 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두루마기와 결정적으로 같은 것은 숙종 때의 김덕원(金德遠)의 두루마기 직령포이다.
 
이와 같은 경로를 겪은 오늘날의 두루마기는 1884년(고종 21) 갑신의제개혁 때 사복(私服)은 귀천을 막론하고 넓은 소매의 옷 대신 좁은 소매의 옷을 입게 하였다. 또 관직에 있는 사람은 전복(戰服)을 덧입게 한 데서 일반화되었는데, 갑자기 시행된 이 의복개혁은 국민으로부터 맹렬한 반대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10년 뒤에는 사람들이 통상 예복에 착용하게 되었다. 1895년 을미개혁에서는 관과 민이 동일한 흑색두루마기를 착용하게 하여 두루마기 일색이 되었다.
 
조선 말기 왕비평상복 발기[件記]에도 두루마기가 나오고, 양반부인·기생의 사진 등에도 이를 입고 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는 우리 나라 전통포가 마지막 포제인 두루마기로 이어져 완성되었음을 밝혀주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일제강점기에도 예복의 개념에 두루마기가 들어가고 준용되어왔음을 본다. 요즈음은 차츰 이 두루마기를 벗고 마고자를 입는 경향이 있기는 하나 다시 복고풍이 일어 우리 한복에 두루마기를 갖추려는 흐름이 엿보인다.
 
  
===참고 사이트===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05d1857a 다음 지식백과]
 
  
[[분류:숙명여자대학교]] [[분류:허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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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한복에서 두루마기는 조선말기 쯤부터 입혀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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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루 주(周)'를 사용하여 주의(周衣)라고도 하며, 주로 외출할 때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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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자락이 무릎 아래까지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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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이 따뜻할 때는 홑으로도 만들어 입고, 추울때에는 난방용으로 솜을 넣어 만들어 입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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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김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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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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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복식콘텐츠]]

2014년 11월 27일 (목) 03:17 판

Durumaki.jpg

<사진 1>[1]


  • 여성한복에서 두루마기는 조선말기 쯤부터 입혀진 것으로 보인다.
  • '두루 주(周)'를 사용하여 주의(周衣)라고도 하며, 주로 외출할 때 입는다.
  • 옷자락이 무릎 아래까지 내려온다.
  • 날이 따뜻할 때는 홑으로도 만들어 입고, 추울때에는 난방용으로 솜을 넣어 만들어 입기도 한다.


관련 지식

관계 대상 문서 설명
기본구성 여자 한복 여자 한복의 기본 구성
포함 겨울 여자 한복 겨울 여자 한복의 구성 요소


연관 복식

남바위, 토시


Writer : 김현승



  1. 석주선기념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