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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1일 (목) 23:0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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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산의 작가, 안가(安家)의 양악(洋樂)천재 - 안성현
가야금산조의 창시자 안기옥의 아들로 나주에서 태어난 안성현은 아버지가 주로 활동하던 함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집안의 예술혼을 이어받아 일본 도호음악학교(東邦音楽学校)에서 성악을 전공하였으며, 목포항도여중에서 음악교사로 재직하던 중 국어교사 박기동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 <부용산>이었다. 안성현과 박기동의 누이 동생이 모두 일찍 사망하고, 재직하던 항도여중의 어린 제자 또한 어린 나이로 사망하자 그리움과 애틋함을 담은 노래로 만들었지만, 후에 빨치산들이 애창했다는 이유로 탄압을 받았다. 안성현은 한국전쟁 중 아버지를 만나러 북으로 간 후 민족음악의 발전에 공헌한 공적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았다. 고향인 나주에서 안성현을 기리는 국제음악제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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