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섭-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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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선은 당시 한창 기승을 부리던 왜구의 노략질을 대응하기 위해서는 화약과 총포만한 것이 없다며 화약 제조에 관심을 가졌고, 왜구를 무찌르는 데는 화약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에 일찍부터 화약 제조법 연구에 몰두하였다. 화약과 화포(火砲) 제조에서 유황, 숯과 함께 꼭 필요한 염초는 화약의 본고장인 중국에서 수입해 와야 했는데, 당시 원, 명 왕조에서는 화약의 제조 방법(재료의 배합 비율 등)을 비밀에 부쳤기 때문에 당시까지만 해도 한반도에는 이 기술을 아는 인물이 없었다. | 최무선은 당시 한창 기승을 부리던 왜구의 노략질을 대응하기 위해서는 화약과 총포만한 것이 없다며 화약 제조에 관심을 가졌고, 왜구를 무찌르는 데는 화약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에 일찍부터 화약 제조법 연구에 몰두하였다. 화약과 화포(火砲) 제조에서 유황, 숯과 함께 꼭 필요한 염초는 화약의 본고장인 중국에서 수입해 와야 했는데, 당시 원, 명 왕조에서는 화약의 제조 방법(재료의 배합 비율 등)을 비밀에 부쳤기 때문에 당시까지만 해도 한반도에는 이 기술을 아는 인물이 없었다. | ||
2023년 9월 20일 (수) 17:01 판
작품
작품 중앙에 위치한 최무선(崔茂宣, 1325~1395)을 중심으로 화약 제조과정이 그려져 있다.
최무선은 당시 한창 기승을 부리던 왜구의 노략질을 대응하기 위해서는 화약과 총포만한 것이 없다며 화약 제조에 관심을 가졌고, 왜구를 무찌르는 데는 화약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에 일찍부터 화약 제조법 연구에 몰두하였다. 화약과 화포(火砲) 제조에서 유황, 숯과 함께 꼭 필요한 염초는 화약의 본고장인 중국에서 수입해 와야 했는데, 당시 원, 명 왕조에서는 화약의 제조 방법(재료의 배합 비율 등)을 비밀에 부쳤기 때문에 당시까지만 해도 한반도에는 이 기술을 아는 인물이 없었다.
작가
최대섭(崔大燮)은 1927년 전북 남원에서 출생하여 1955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였다. 1950년 한국미술가협회 회원전 참여로 등단하여 다수의 국제전에 참여하였다. 1974년 한국미술협회원전 국회의장상, 75년 제7회 까뉴국제회화제 국가상을 수상하였다. 군산대학교 미술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경력
- 군산대학교 미술과 교수
-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감사
전시
- 1963 현대미술동인전, 국립중앙공보관
- 1964 현대작가연립전, 국립중앙공보관
- 1968 현대작가초대전, 경복궁 미술관
- 1974-78 앙데팡당전, 국립현대미술관
- 1975 까뉴 국제회화제, 까뉴
- 1975-80 에꼴드서울전, 국립현대미술관
- 1976 제12회 아시아 현대미술전, 동경 동경도미술관
- 1978 제4회 인도트리엔날레, 뉴델리
- 1979 한국미술 오늘의 방법전, 미술회관
- 1982 한국현대미술 위상전, 동경 교토 시립미술관
- 1984 한국현대미술전, 대만 대북 시립미술관
- 1987 한국현대미술에 있어서의 흑과 백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8 현대회화 `70년대의 흐름, 워커힐 미술관
- 1990 한국미술-오늘의 상황전, 예술의전당
수상
- 1974 제10회 한국미술협회원 전국회의장상
- 1975 제7회 까뉴국제회화제 국가상
관련 자료
신기전 실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