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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16일 (화) 11:04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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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518-101.story

Theme

들불야학 이야기


Synopsis

1978년, 박기순 열사가 중심이 되어 만든 광주 최초의 노동 야학이다. 1970년 11월 전태일 열사의 분신을 계기로 많은 대학생들이 노동 야학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전태일이 생전에 누군가 함께 노동법을 공부하고 함께 투쟁할 친구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이에 공감한 대학생들이 하나둘 야학을 만들어갔다. 박기순은 우리의 교육지표 사건(1978년 6월) 때 시위를 주도하다가 전남대에서 강제 제적을 당하였는데, 그 후 서울에 있는 겨레터야학을 알게 되면서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서울에서 직장을 그만두고 광주에 내려온 윤상원을 설득하여 합류시키게 되고, 신영일, 나상진, 전용호, 박관현, 박효선 등도 차차 동참하였다. 야학의 창시자 박기순은 1978년 12월에 연탄가스로 갑자기 사망하였고, 이후 야학의 리더는 윤상원이 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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