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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부는 곧 연릉군(延陵郡)이므로, 오나라 계자(季子)[8][9]252의 채읍(采邑) 253 으로서, 호수와 산의 아름다움과 정(亭)과 대(臺)의 설치는 예로부터 명성이 자자합니다.  
 
상주부는 곧 연릉군(延陵郡)이므로, 오나라 계자(季子)[8][9]252의 채읍(采邑) 253 으로서, 호수와 산의 아름다움과 정(亭)과 대(臺)의 설치는 예로부터 명성이 자자합니다.  
 
또 체운소(遞運所)254와 패하교(流河橋)를 지나 분우대파(奪牛大廟)에 이르러, 배를 당겨 매고 언덕으로 끌어올려 겨우 방죽의 끝을 지나니 날이 샜습니다.  
 
또 체운소(遞運所)254와 패하교(流河橋)를 지나 분우대파(奪牛大廟)에 이르러, 배를 당겨 매고 언덕으로 끌어올려 겨우 방죽의 끝을 지나니 날이 샜습니다.  
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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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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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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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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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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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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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th Day. Arrival at Ch’ang-chou Prefecture. This day was fair.  
 
19th Day. Arrival at Ch’ang-chou Prefecture. This day was fair.  
At dawn the County Magistrate of Wu-hsi County – I have forgotten his name - came and presented food to us. From the station we [continued on through Wu-hsi County and Ch’ang-chou Prefecture to Niu-pen Great Embank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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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dawn the County Magistrate of Wu-hsi County – I have forgotten his name - came and presented food to us. From the station we [continued on through Wu-hsi County and Ch’ang-chou Prefecture to Niu-pen Great Embank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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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당시 지현이던 榮華를 지칭하는 듯하다. 영화의 字는 實이고 進士 출신이며 藍田人이다. 成化23년(1487)에 부임했는데 후에 감찰어사로 승진하였다. 正德《常州府誌續集》권2, 職官. 245. 句吳는 太伯의 호이다. 周代 전설적인 賢者로, 주나라 대왕 古公賣父의 장자이다. 아버지가 셋째 아들인 季歷의 아들 文王이 吉祥을 받고 태어나 총민하고 유덕한 데에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을 알고서, 계력이 상속받게 하기 위해 동생은 虞仲과 함께 주나라를 도망쳤다. 동남의 蠻夷민족이 거주하는 蘇州지방에 정착하여 吳나라의 始祖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246. 少司寇는 刑部侍郞의 별칭이다. 247. 無錫縣治에서 서북으로 10리 거리에 있다. 洪武2년(1369)에 설치되었다. 康熙《常州府志》권12, 公署. 248. 원문에는 藩對鋪'로 되어 있으나, '潘對'의 誤記이다. 正德《常州府志續集》권4, 橋梁 無錫에 의하면 無錫縣 북 18里에 潘釣橋가 運河에 걸쳐 있고, 康熙《常州府志》 권12, 公署 無錫縣에는 鋪司名에 潘對이 있다. 이에 근거하여 바로잡는다. 249. 萬曆《重修常州府志》권2, 疆域 水에 의하면 淺鋪에 丁堰이 있는데, 이것이 혹시 僞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250. 상주부에는 東水關, 西水關, 北水關, 小西水關 등 4개의 水門이 있었다. 康熙《常州府志》 권5, 疆域. 251. 京門 밖 100 거리에 있다. 元代에는 水馬站을 두었으나, 洪武6년(1373)에 驛으로 바꾸었다. 康熙《常州府志》권12, 公署, 252. 春秋시대 吳나라의 현인으로, 吳王 壽夢의 넷째 아들인 季札을 가리킨다. 오왕은 계찰이 어진 것을 보고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였으나 받지 않았다. B.C.544년에 중원의 여러 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魯나라에서 周나라의 禮樂을 보고 德에 대해 말하였고, 徐君이 자신의 劍을 가지고 싶어하는 것을 알고서 귀국 도중에 그것을 주고자 하였으나, 서군은 이미 죽었기 때문에 검을 그 집의 나무에 매어 그 初志를 이루었다고 한다. 253. 卿大夫가 받는 封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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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 京門 밖의 1리 거리에 있다. 洪武初에 奔牛鎭에 두었다가 天順6년(1462)에 옮겨왔으니 곧 비릉역의 舊址이다. 康熙《常州府志》권12, 公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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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에 장쑤 우시(無錫) ‘수향 골목’ 다녀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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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특파원 장쑤성 우시(무석)로 떠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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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쑤성 우시 둥린수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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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시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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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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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겸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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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란섭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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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찰계검(季札繫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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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자성어로 교육읽기> 계찰괘검(季札掛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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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일===
 
===2월 20일===

2020년 4월 2일 (목) 16:37 판

개요

학력

  • 역사교육과 재학

관심사

음악

  • ost, 기타, 플룻 연주곡

유튜브

답사

환경

디지털 큐레이션 기획

역사 영상 콘텐츠를 통한 사료의 재창출

  • 역사 영상 콘텐츠
  • 한국사 교과서 수록 사료
  • 교과서에 수록된 사료를 중점적으로 탐색하여 그 사료가 바탕이 된 역사 영상 콘텐츠를 찾아 연관성을 확립하고, 역사 교육 자료의 소재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 타겟 대상:역사교사
  • 타겟 메시지:디지털 역사자료를 통해 역사 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 도입·실행

역사

  • 한국의 건국 신화
  1. 역사 영역에서의 신화
  2. 종류

교육

  • 역사교육
  • 현장 체험 학습
  • 탐구식 수업

환경

  • 환경오염
  • 재활용품

영상

  • 드라마
  • 예능
  • 유튜브

전시

최부의 표해록

2월 19일

十九日,至常州府,是日晴,請朝,無錫縣知縣,忘其姓名,來遺礙物,自驛過建渡橋,入無錫縣治之中,縣即古句吳太伯所都,過建虹橋、都憲門、少司寇弟、億豐橋、進士坊,至錫山之下,山縣西北間,又自錫山過十里鋪、高橋巡檢司、(藩)【潘]鋪、洛社鋪、石潭橋、横林鎮鋪、橫林橋、戚墅鋪、興明橋,至劍井,井在東岸,作屋以覆,即瑞氣升騰之地,日夕,過鷹鋪、大橋,至宋菱橋,橋之東西,皆作二層,閣以當路,即進士牌樓也,又過大虹橋三,至常州府,從東水關入城,府治及武(晉)進縣”之治,俱在城中,所過虹橋,亦至七八,行十餘里,至毗陵曝泊,又出自西水關,府即延陵郡吳季子采邑,湖山之美,亭臺之設,自古稱道,又過遞運所、沛河橋,至(牛)(牛)大壩,手牽舟上岸,繞度壩限,日曙矣, 상주부(常州府) 도착하였습니다. 이 날은 맑았습니다. 아침에 성명은 잊은 무석현(無錫縣)(无锡, Wúxī, 우시)[1][2][3][4][5][6][7]의 지현244이 와서 찬거리를 주었습니다. 석산역에서 건도교(建渡橋)를 지나 무석현치(無錫縣治)의 안으로 들어왔는데, 무석현은 곧 옛날 구오(句吳) 태백(太伯)245이 도읍했던 곳이었습니다. 건홍교(建虹橋)·도헌문(都憲門)·소사구제(少司寇第)246. 억풍교(億豊橋)·진사방(進士坊)을 지나 석산(錫山)의 아래에 이르렀는데, 석산은 무석현의 서쪽과 북쪽 사이에 있었습니다. 또 석산에서 십리포(十里鋪)·고교순검사(高橋巡檢司) 247. 반봉포(潘q鋪) 248. 낙사포(洛社鋪)·석독교(石潭橋)·횡림진포(橫林鎭鋪)·횡림교(橫林橋)·척서포(戚墅鋪)·흥명교(興明橋)를 지나 검정(劍井)에 이르렀습니다. 검정은 동쪽 언덕에 있었는데 지붕을 만들어 덮었으니, 곧 상서로운 기운이 올라오는 곳이었습니다. 해질 무렵 마안포(行爲鋪)249, 대교(大橋)를 지나 채릉교(采__橋)에 이르렀습니다. 채릉교의 동쪽, 서쪽에는 모두 2층 누각을 지어서 길을 막고 있으니 곧 진사패루(進士牌樓)였습니다. 또 큰 홍교(虹橋) 셋을 지나 상주부에 이르러서 동수관(東水關)250으로부터 성에 들어갔습니다. 상주부의 부치와 무진현(武進縣)의 현치는 모두 성안에 있었습니다. 지나온 홍교 또한 7-8개나 되었습니다. 10여 리를 가서 비릉역(此陵驛)에 이르러 조금 머물렀다가 다시 서수관(西水關)으로 나왔습니다. 상주부는 곧 연릉군(延陵郡)이므로, 오나라 계자(季子)[8][9]252의 채읍(采邑) 253 으로서, 호수와 산의 아름다움과 정(亭)과 대(臺)의 설치는 예로부터 명성이 자자합니다. 또 체운소(遞運所)254와 패하교(流河橋)를 지나 분우대파(奪牛大廟)에 이르러, 배를 당겨 매고 언덕으로 끌어올려 겨우 방죽의 끝을 지나니 날이 샜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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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도(관직)
  • 지명
  • 지리
  • 역사
  • 토목
  • 건축물
  • 풍경
  •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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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th Day. Arrival at Ch’ang-chou Prefecture. This day was fair. At dawn the County Magistrate of Wu-hsi County – I have forgotten his name - came and presented food to us. From the station we [continued on through Wu-hsi County and Ch’ang-chou Prefecture to Niu-pen Great Embank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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