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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 용두동에 있으며,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8호로 지정되었다. |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에 있으며,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8호로 지정되었다. |
2019년 6월 22일 (토) 16:47 판
정의
조선후기 제19대 숙종의 왕비
내용
생애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성은 김씨(金氏)이다.
예학의 대가 김장생의 4대손인 광성부원군 김만기의 딸이다.
1670년(현종 11) 10세 때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의동(義洞) 별궁(別宮)에 들어갔고, 다음해 3월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
1674년 현종이 죽고 숙종이 즉위하면서 왕비가 되었고, 1676년 정식으로 왕비의 책명을 받았다.
소생으로 두 공주가 있었으나 일찍 죽었다.
인경왕후는 1680년 10월에 천연두의 증세가 보였는데, 이 때 숙종도 천연두를 겪지 않아서 약방도제조 영의정 김수항의 건의에 의하여 왕은 창덕궁으로 이어하였다.
왕비는 발병 8일 만에 경덕궁에서 20세의 젊은 나이로 숨졌다.
경덕궁 영소전에 위패가 모셔졌고,
1713년(숙종 39) 존호 광렬(光烈)을 추상(追上), 1722년(경종 2) 휘호(號) 효장명현(孝莊明顯)을 추상, 1753년(영조 29) 존호(尊號) 선목(宣穆)을, 1776년 혜성(惠聖)을 각각 추상하였다.
시호는 광렬효장명현선목혜성인경왕후(光烈孝莊明顯宣穆惠聖仁敬王后)이다.
능묘
무덤은 서오릉 중 하나인 익릉(翼陵)이다.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에 있으며,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8호로 지정되었다.
숙종 연간에는 왕릉의 능제를 단순화하고 석물을 간소하게 제작하도록 명하였으나, 그 이전에 만들어진 능묘이므로, 《국조오례의》의 제도를 따르고 임진왜란 이후의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