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남산동(南山洞 수록암)"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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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37.763184, 126.484513, [[67. 여제단(厲祭壇)]]?? 현 강화읍 대산리 1195 | (P) 37.763184, 126.484513, [[67. 여제단(厲祭壇)]]?? 현 강화읍 대산리 1195 | ||
(Q) 37.759656, 126.476231, [[68. 당주동(唐州洞)]] 현 강화군 송해면 당골길 | (Q) 37.759656, 126.476231, [[68. 당주동(唐州洞)]] 현 강화군 송해면 당골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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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5일 (일) 14:53 판
壽祿巖前壽祿增 (수록암전수록증) 수록암 앞에 살면 수명 복록이 늘어난다는데,
南宮世世卜居仍 (남궁세세복거잉) 남궁씨 가문이 대를 이어 살고 있네.
乃知壽祿由心德 (내지수록유심덕) 수명과 복록은 심덕(心德)에서 나옴을 알겠으니,
一鑑東天水月澄 (일감동천수월징) 동쪽 하늘 물에 비친 달을 거울삼고 살았네.
○ 함열 남궁씨 부제학 남궁찬(南宮璨)의 후손이 수록암 마을에서 대대로 세습하여 살았다. 손자 남궁제(南宮埞)는 진사로서 행실과 의리에 돈독하였다. 향리에서 장녕전(長寧殿) 참봉[1]에 제수된 것으로 인하여 형조좌랑 회덕 현감을 지냈다.
○ 그 아들 남궁헌(南宮𨯶)은 관직이 인동 부사에 이르렀는데 효행이 뛰어났었다. 영조 계유년(1753)에 정려문을 내려주었다. 그 아들 남궁철(南宮澈)은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그 후손 가선대부 남궁일(南宮鎰)과 남궁주(南宮澍) 부자는 향반(鄕班)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니 어찌 장수와 복록의 징험이 아니겠는가?
기행지도
인물
- 남궁찬[2](생몰년 미상)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함열(咸悅). 자는 여헌(汝獻), 호는 창랑(滄浪). 제주목사·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 남궁제(南宮埞)
- 남궁헌(南宮𨯶)
- 남궁철(南宮澈)
- 남궁일(南宮鎰)
- 남궁주(南宮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