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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강화부내 최판서(崔判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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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강화부내 심부윤(沈府尹*)
崔判書曾此土生최판서는 일찍이 이곳에서 태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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沈府尹來按此城 ()    심 부윤이 부임해와 강화성을 다스리며,
海東夫子特垂名ʻ해동부자ʼ 칭호를 특별히 받았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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迎儒昔日大開黌 ()    선비를 모셔다가 학교를 열었었네.
天朝亦是稱楊震ʻ동방의 양진ʼ이라 중국서도 불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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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秋尙有文翁化 ()    오랜 세월 지났어도 선생 교화 남았으니,
兩國江山共著明두 나라 강산에서 다함께 저명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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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處相聞講讀聲 ()    책 읽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네.
형조판서 최용소(崔龍蘇)212)는 본래 강화 사람이었다. 세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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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을 섬겼는데 죽어서는 제정(齊貞)이라는 시호를 받았고 일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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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부의 옛날 습속은 궁벽하고 누추하여 일찍이 강학(講學)할 줄을 몰랐다. 고려 때에 심덕부(沈德符)가 강화부의 부윤이 되면서 크게 횡당(黌堂) , 학교를 크게 열고 스승을 모셨으며, 마을의 자제들을 모아 시·서·예·의를 가르쳐서 울연(蔚然)하게도 문옹(文翁)이 촉나라를 교화시킨 풍속이 있었으니, 한 고을의 학문이 지금까지 빛이 난다.
212) 최용소(?∼1422)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강화. 조선 태종 때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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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판서를 지냈으며, 성품이 청백하였다. 시호는 제정(齊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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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譯註 沁都紀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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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부자(海東夫子)라는 호칭을 부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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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에서도 동방의 양진(楊震)213)이라고 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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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지도==
 
==기행지도==

2019년 5월 3일 (금) 07:28 판

90. 강화부내 심부윤(沈府尹*) 沈府尹來按此城 () 심 부윤이 부임해와 강화성을 다스리며, 迎儒昔日大開黌 () 선비를 모셔다가 학교를 열었었네. 千秋尙有文翁化 () 오랜 세월 지났어도 선생 교화 남았으니, 處處相聞講讀聲 () 책 읽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네.

○ 강화부의 옛날 습속은 궁벽하고 누추하여 일찍이 강학(講學)할 줄을 몰랐다. 고려 때에 심덕부(沈德符)가 강화부의 부윤이 되면서 크게 횡당(黌堂) 즉, 학교를 크게 열고 스승을 모셨으며, 마을의 자제들을 모아 시·서·예·의를 가르쳐서 울연(蔚然)하게도 문옹(文翁)이 촉나라를 교화시킨 풍속이 있었으니, 한 고을의 학문이 지금까지 빛이 난다.



기행지도



인물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