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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남송 장식(張栻) 『주자전서』 권13 「太極圖說解」 《後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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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남송 장식(張栻) 『朱子全書』 권13 「太極圖說解」 《後記》
 
:*某既爲此說, 嘗錄以寄廣漢張敬夫. 敬夫以書來曰: “二先生所與門人講論問答之言, 見於書者詳矣. 其於《西銘》, 蓋屢言之; 至此圖則未嘗一言及也. 謂其必有微意, 是則固然. 然所謂微意者, 果何謂耶?” (내[주희]가 이 해설을 쓰고서 일찍이 이를 적어 광한 장경부에게 보냈는데, 경부가 편지를 보내왔다: “[명도·이천] 두 선생께서 문인들과 강론하고 문답을 주고받으신 말씀들은 책에 보이는 것이 상세합니다. 두 선생께서 《서명》에 대해서는 누차 말씀하셨는데, 이 《태극도》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대는] ‘거기에 필시 숨겨진 의도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진실로 그렇겠지만, 이른바 ‘숨겨진 의도’라는 게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某既爲此說, 嘗錄以寄廣漢張敬夫. 敬夫以書來曰: “二先生所與門人講論問答之言, 見於書者詳矣. 其於《西銘》, 蓋屢言之; 至此圖則未嘗一言及也. 謂其必有微意, 是則固然. 然所謂微意者, 果何謂耶?” (내[주희]가 이 해설을 쓰고서 일찍이 이를 적어 광한 장경부에게 보냈는데, 경부가 편지를 보내왔다: “[명도·이천] 두 선생께서 문인들과 강론하고 문답을 주고받으신 말씀들은 책에 보이는 것이 상세합니다. 두 선생께서 《서명》에 대해서는 누차 말씀하셨는데, 이 《태극도》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대는] ‘거기에 필시 숨겨진 의도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진실로 그렇겠지만, 이른바 ‘숨겨진 의도’라는 게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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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7일 (수) 01:24 판

주돈이(周敦頤)

주돈이(1017~1073)의 字는 茂叔, 號는 濂溪이다. 원 이름은 敦實이었지만 송나라 英宗(재위 1063~1067)의 초명인 宗實을 피휘하여 敦頤로 이름을 바꾸었다. 대표 저작으로 태극도설통서가 있다. 기타 정보는 추가하거나 다음의 링크를 참고할 것. [1]


주정수수설(周程授受說)

발단

주자의 북송오자 선양 및 이를 계승한 『송사』 「도학전」. 쓰치다 겐지로(土田健次郎)의 『북송도학사』(성현창 역, 예문서원, 2006) 제2장 제2절 "주정수수설 재고"(164~199쪽) 파트에 잘 정리되어 있다.


이정의 태도

이정이 어렸을 때 주돈이에게 배운 것은 분명하지만, 사제관계가 성립한다고 해서 이정보다 앞선 도학의 종주로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단 『이정집』에서의 주돈이에 대한 평가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昔受學於周茂叔, 每令尋顏子・仲尼樂處, 所樂何事.
전에 주무숙에게 배울 때, 주무숙은 매번 안자와 공자께서 즐기신 경지와 즐기신 바가 어떤 일인지 찾아보게 하였다.
2. 詩可以興. 某自再見茂叔後, 吟風弄月以歸, 有吾與點也之意.
시는 사람을 흥기시킬 수 있다. 내가 주무숙을 두 번 본 뒤에 음풍농월하며 돌아가면서 공자께서 '나는 증점을 허여하노라'라고 말씀하셨던 뜻을 갖게 되었다.
3. 周茂叔窗前草不除去. 問之, 云: "與自家意思一般."
주무숙은 창 앞의 풀을 뽑지 못하게 하였다.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였다: "내 마음과 똑같기 때문이네."
4. 周茂叔窮禪客.
주무숙은 허접한(?) 선객이었다. (혹은 주무숙은 선객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5. 獵, 自謂今無此好. 周茂叔曰: "何言之易也? 但此心潛隱未發. 一日萌動, 復如前矣." 後十二年, 因見, 果知未.
내가 전에 사냥에 대해서 '요즘엔 이런 취미가 없습니다.'하고 스스로 말했는데, 주무숙이 말하길: "어찌 말을 쉽게 하는가? 그저 이 마음이 가라앉아 숨어 드러나지 않을 뿐이네. 어느 날 이 마음이 싹터 움직이게 되면 다시 전과 같아질걸세."라고 하였다. 12년 뒤에 이 말에 입각해 살펴보니, 과연 내 말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6. 先生爲學, 自十五六時, 聞汝南周茂叔論道, 遂厭科舉之業, 慨然有求道之志.
선생의 학문의 경우, 15-6세에 여남의 주무숙이 도를 논한다는 소문을 듣고 마침내 과거 공부에 염증내고 개연히 도를 추구하려는 뜻을 갖게 되었다.
7. 異時, 伊川同朱公掞訪先君. 先君留之飮酒, 因以論道. 伊川指面前食卓曰: "此卓安在地上? 不知天地安在甚處?" 先君爲之極論天地萬物之理、以及六合之外. 伊川歎曰: "平生唯見周茂叔論至此. 然不及先生之有條理也."
어느날 이천 선생께서 주공섬과 함께 先君을 방문하셨다. 先君께서 함께 자리하시고 술을 드셨는데, 인하여 도에 대해 논하였다. 이천 선생께서 앞의 식탁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이 식탁은 어떻게 땅 위에 서있는 것인가? 잘 모르겠지만, 천지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것인가?" 先君께서 답하기 위해 천지만물의 이치와 六合 바깥에 대해 지극히 논하셨다. 이천 선생께서 찬탄하시며 말씀하셨다: "평생 오직 주무숙의 논의만이 이정도의 수준에 이른 것을 보았네. 그러나 주무숙의 논의는 그대의 설에 조리가 있는 것만 못했네."


제기된 의문

역사적으로 주정수수설을 의심한 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남송 왕응신(汪應辰) 『文定集』 권15 「與朱元晦」 9, 10.
  • 伊川于濓溪, 若止云少年嘗從學, 則無害矣. (이천이 염계 선생에 대해 그저 '소년기에 일찍이 따라 배웠다'고만 말했다면 문제는 없겠습니다.)
  • 濓溪先生髙明純正. 然謂二程受學, 恐未能盡. 范文正公一見横渠竒之, 授以『中庸』, 謂横渠學文正, 則不可也. (염계 선생께서는 髙明하고 純正하셨지만, 만약 '이정이 염계 선생께 수학했다'고 한다면 아마 실정을 온전히 표현한 것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범문정공[범중엄]이 횡거 선생을 한 번 보고 기특하게 여겨 『중용』을 주긴 했지만, '횡거 선생이 범문정공에게 배웠다'고 하면 안 됩니다.)


2. 남송 육구연(陸九淵) 『象山集』 권12 「與朱元晦」 1.
  • 梭山兄謂: "『太極圖説』與『通書』不類, 疑非周子所為. 不然則或是其學未成時所作; 不然則或傳他人之文, 後人不辨也. 葢『通書』「理性命」章言: "中焉止矣", "二氣五行, 化生萬物, 五殊二實, 二本則一." 曰一曰中, 即太極也, 未甞於其上加無極字; 「動静」章言: "五行隂陽, 隂陽太極", 亦無無極之文. 假令『太極圖説』是其所傳, 或其少時所作, 則作『通書』時不言無極, 葢已知其説之非矣." 此言殆未可忽也. (梭山형[육구소]이 말씀하시길: "『태극도설』 과 『통서』가 비슷하지 않으니, 아마 周子가 지은 게 아닌 듯하다. 그렇지 않다면 혹 그의 학문이 아직 성숙하지 않았을 때 지은 것이거나, 아니면 혹 다른 사람의 글을 옮긴 건데 후인이 변별하지 못한 것일 것이다. 대개 『통서』의 「리성명」장에서 '中焉止矣', '二氣五行, 化生萬物, 五殊二實, 二本則一.'라고 하는데, 一·中이라고 한 것은 곧 태극이니 그 위에 '무극'을 덧붙인 적이 없고, 「動静」장에서는 '五行隂陽, 隂陽太極'이라고 하는데 역시 '무극'이라는 말이 없다. 가령 『태극도설』이 남의 말을 옮긴 것이거나 혹 그가 어렸을 때 지은 것이라면, 『通書』를 쓸 때 '무극'을 말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태극도설』이 틀렸음을 이미 알고서 그렇게 한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이 말을 결코 소홀히해서는 안 됩니다.)
  • 無極二字, 出於『老子』 「知此雄」章, 吾聖人之書所無有也. 『老子』首章言: "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而卒同之, 此老氏之宗㫖也, "無極而太極"即是此㫖. 老氏學之不正, 見理不明, 所蔽在此. 兄於此學用力之深, 為日之乆, 曽此之不能辨, 何也? 『通書』"中焉止矣"之言, 與此之昭然不類, 而兄曾不之察, 何也? 『太極圖説』以無極二字冠首, 而『通書』終篇未甞一及無極字. 二程言論文字至多, 亦未甞一及無極字. 假令其初實有是圖, 觀其後來未甞一及無極字, 可見其道之進而不自以為是也. ('무극' 두 글자는 『노자』 「知其雄」 장에서 나오지 우리 유가 성인의 책에 있는 말이 아닙니다. 『노자』 수장에서 "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라 하고 끝내 같게 여기는데, 이것이 노자의 종지이고 "무극이태극"이 곧 이 뜻입니다. 노자는 배운 것이 바르지 않고 이치를 보는 것이 분명하지 않으니, 그의 병폐가 여기에 있는데, 존형께서는 이 학문에 대해 깊이 힘쓰시고 오래 시간을 보내셨으면서 일찍이 이를 변별해내지 못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 『통서』 「리성명」장의 "中焉止矣"라는 말은 이것이 분명한 것과 같지 않은데, 존형께서 일찍이 이를 살피지 못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 『태극도설』은 '무극' 두 글자를 첫머리에 두고 있지만 『통서』는 마지막 편까지 한 번도 '무극'을 언급하지 않고, 이정이 논의한 글이 지극히 많은데도 '무극'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가령 주돈이가 처음에 실제로 『태극도설』을 썼다 하더라도, 그가 나중에 한 번도 '무극'을 언급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의 학문이 발전하여 스스로 이를 옳게 여기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남송 장식(張栻) 『朱子全書』 권13 「太極圖說解」 《後記》
  • 某既爲此說, 嘗錄以寄廣漢張敬夫. 敬夫以書來曰: “二先生所與門人講論問答之言, 見於書者詳矣. 其於《西銘》, 蓋屢言之; 至此圖則未嘗一言及也. 謂其必有微意, 是則固然. 然所謂微意者, 果何謂耶?” (내[주희]가 이 해설을 쓰고서 일찍이 이를 적어 광한 장경부에게 보냈는데, 경부가 편지를 보내왔다: “[명도·이천] 두 선생께서 문인들과 강론하고 문답을 주고받으신 말씀들은 책에 보이는 것이 상세합니다. 두 선생께서 《서명》에 대해서는 누차 말씀하셨는데, 이 《태극도》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대는] ‘거기에 필시 숨겨진 의도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진실로 그렇겠지만, 이른바 ‘숨겨진 의도’라는 게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4. 청 주이존(朱彝尊)

잠정적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