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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돈이(周敦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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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돈이(周敦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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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돈이(1017~1073)의 字는 茂叔, 號는 濂溪이다. 원 이름은 敦實이었지만 송나라 英宗(재위 1063~1067)의 초명인 宗實을 피휘하여 敦頤로 이름을 바꾸었다. 대표 저작으로 [[태극도설]]과 [[통서]]가 있다.
 
주돈이(1017~1073)의 字는 茂叔, 號는 濂溪이다. 원 이름은 敦實이었지만 송나라 英宗(재위 1063~1067)의 초명인 宗實을 피휘하여 敦頤로 이름을 바꾸었다. 대표 저작으로 [[태극도설]]과 [[통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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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정보는 추가하거나 다음의 링크를 참고할 것. [https://baike.baidu.com/item/%E5%91%A8%E6%95%A6%E9%A2%90/327717?fr=aladdin]
  
  
 
==주정수수설(周程授受說)==
 
==주정수수설(周程授受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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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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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의 북송오자 선양 및 이를 계승한 『송사』 「도학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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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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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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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치다 겐지로(土田健次郎)의 『북송도학사』(성현창 역, 예문서원, 2006) 제2장 제2절 "주정수수설 재고"(164~199쪽) 파트에 잘 정리되어 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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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이 어렸을 때 주돈이에게 배운 것은 분명하지만, (『이정집』 권上 「하남정씨문집」 638쪽. 先生爲學, 自十五六時, 聞汝南周茂叔論道, 遂厭科舉之業, 慨然有求道之志.) 사제관계가 성립한다고 해서 이정보다 앞선 도학의 종주로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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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汪應辰 『文定集』 「與朱元晦」 9. 伊川于濓溪若止云少年嘗從學則無害矣. ;  「與朱元晦」 10. 濓溪先生髙明純正然謂二程受學恐未能盡范文正公一見横渠竒之授以中庸謂横渠學文正則不可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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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정적 결론===

2019년 4월 16일 (화) 23:50 판

주돈이(周敦頤)

주돈이(1017~1073)의 字는 茂叔, 號는 濂溪이다. 원 이름은 敦實이었지만 송나라 英宗(재위 1063~1067)의 초명인 宗實을 피휘하여 敦頤로 이름을 바꾸었다. 대표 저작으로 태극도설통서가 있다. 기타 정보는 추가하거나 다음의 링크를 참고할 것. [1]


주정수수설(周程授受說)

발단

주자의 북송오자 선양 및 이를 계승한 『송사』 「도학전」

의심 사례

이정의 태도

쓰치다 겐지로(土田健次郎)의 『북송도학사』(성현창 역, 예문서원, 2006) 제2장 제2절 "주정수수설 재고"(164~199쪽) 파트에 잘 정리되어 있다.
이정이 어렸을 때 주돈이에게 배운 것은 분명하지만, (『이정집』 권上 「하남정씨문집」 638쪽. 先生爲學, 自十五六時, 聞汝南周茂叔論道, 遂厭科舉之業, 慨然有求道之志.) 사제관계가 성립한다고 해서 이정보다 앞선 도학의 종주로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장

  • 汪應辰 『文定集』 「與朱元晦」 9. 伊川于濓溪若止云少年嘗從學則無害矣. ; 「與朱元晦」 10. 濓溪先生髙明純正然謂二程受學恐未能盡范文正公一見横渠竒之授以中庸謂横渠學文正則不可也

잠정적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