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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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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곡공(靈谷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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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곡공(靈谷公) :  고득종(생몰년 미상)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자부(子傅), 호는 영곡(靈谷). 1413년 효행으로 천거받아 관직에 나간 후 예조참의 동지중추원사·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했다. 문장과 서예에 뛰어났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사후에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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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란재공(觀瀾齋公)  
 
* 관란재공(觀瀾齋公)  
 
* 고영중(高永中)
 
* 고영중(高永中)

2019년 4월 16일 (화) 11:47 판

一村花樹列成 (일촌화수열성)     꽃나무로 동산 이룬 오두리 마을에선, 
於讀於耕日月 (어독어경일월) 글 읽기와 농사일로 세월을 보내네.
最愛此中丹桂籍 (최애차중단계적) 그중에서 소중한 일은 과거에 급제한 일이니,
永承雨露放餘 (영승우로방여) 나라 은혜 길이 이어 큰 빛을 발하리.


○ 오두동(鰲頭洞)에는 제주 고씨(濟州高氏)가 많이 살고 있는데, 나와 같이 영곡공(靈谷公)과 관란재공(觀瀾齋公)의 후손이다. 문중의 조카 고영중(高永中)이 일찍이 과거에 합격하여 승문원(承文院)

인물

  • 영곡공(靈谷公) : 고득종(생몰년 미상)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자부(子傅), 호는 영곡(靈谷). 1413년 효행으로 천거받아 관직에 나간 후 예조참의 동지중추원사·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했다. 문장과 서예에 뛰어났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사후에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 관란재공(觀瀾齋公)
  • 고영중(高永中)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