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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한 중국이 통일되기 이전에는 지역적으로 몇 군데 선진문화의 지대가 있으며, 신화도 그 지역에서 탄생했다. 서욱생(徐旭生)은 그것을 화하(華夏)ㆍ동이(東夷)ㆍ묘만(苗蠻)의 세 집단으로 나누고, 각 신화를 이 세 집단에 귀속시키고자 하였는데 고고학적으로 말하면 화하(華夏)는 채도(彩陶)문화, 동이(東夷)는 용산(龍山)문화, 대문구(大汶口)문화, 묘만(苗蠻)은 굴가령(屈家嶺)이나 강남의 여러 문화에 해당하며, 각각 대립하는 관계에 있었다. 또한 각 지역에서도 그 내외에 각종 갈등이 있으며, 신화는 대립과 투쟁을 통해서 형성되었다. 가령 화하와 묘만, 즉 채도문화와 굴가령 문화의 사이에는 강계(羌系)의 세력이 있으며, 그 하한의 땅에는 은, 후에는 초가 진출해서 그 지역의 홍수설화는 다양한 양상을 나타내고 있는데 우(禹)는 하계(夏系)의 홍수신이다. 그 계열은 전욱에서 시작해서, 곤(鯤)과 그 아들 우(禹)에 이어지는데, 이 3신의 신상은 물고기, 또는 인면어신의 신이다. 서안반파 유적의 채도토기는 그 문화의 매우 초기의 것인데, 그 화문(畵文)에 물고기나 인면어신(人面魚身)의 상이 보이며, 곤ㆍ우의 홍수 설화가 하계의 오래된 전승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 광대한 중국이 통일되기 이전에는 지역적으로 몇 군데 선진문화의 지대가 있으며, 신화도 그 지역에서 탄생했다. 서욱생(徐旭生)은 그것을 화하(華夏)ㆍ동이(東夷)ㆍ묘만(苗蠻)의 세 집단으로 나누고, 각 신화를 이 세 집단에 귀속시키고자 하였는데 고고학적으로 말하면 화하(華夏)는 채도(彩陶)문화, 동이(東夷)는 용산(龍山)문화, 대문구(大汶口)문화, 묘만(苗蠻)은 굴가령(屈家嶺)이나 강남의 여러 문화에 해당하며, 각각 대립하는 관계에 있었다. 또한 각 지역에서도 그 내외에 각종 갈등이 있으며, 신화는 대립과 투쟁을 통해서 형성되었다. 가령 화하와 묘만, 즉 채도문화와 굴가령 문화의 사이에는 강계(羌系)의 세력이 있으며, 그 하한의 땅에는 은, 후에는 초가 진출해서 그 지역의 홍수설화는 다양한 양상을 나타내고 있는데 우(禹)는 하계(夏系)의 홍수신이다. 그 계열은 전욱에서 시작해서, 곤(鯤)과 그 아들 우(禹)에 이어지는데, 이 3신의 신상은 물고기, 또는 인면어신의 신이다. 서안반파 유적의 채도토기는 그 문화의 매우 초기의 것인데, 그 화문(畵文)에 물고기나 인면어신(人面魚身)의 상이 보이며, 곤ㆍ우의 홍수 설화가 하계의 오래된 전승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
2017년 6월 13일 (화) 19:33 판
목차
지역==[1]
광대한 중국이 통일되기 이전에는 지역적으로 몇 군데 선진문화의 지대가 있으며, 신화도 그 지역에서 탄생했다. 서욱생(徐旭生)은 그것을 화하(華夏)ㆍ동이(東夷)ㆍ묘만(苗蠻)의 세 집단으로 나누고, 각 신화를 이 세 집단에 귀속시키고자 하였는데 고고학적으로 말하면 화하(華夏)는 채도(彩陶)문화, 동이(東夷)는 용산(龍山)문화, 대문구(大汶口)문화, 묘만(苗蠻)은 굴가령(屈家嶺)이나 강남의 여러 문화에 해당하며, 각각 대립하는 관계에 있었다. 또한 각 지역에서도 그 내외에 각종 갈등이 있으며, 신화는 대립과 투쟁을 통해서 형성되었다. 가령 화하와 묘만, 즉 채도문화와 굴가령 문화의 사이에는 강계(羌系)의 세력이 있으며, 그 하한의 땅에는 은, 후에는 초가 진출해서 그 지역의 홍수설화는 다양한 양상을 나타내고 있는데 우(禹)는 하계(夏系)의 홍수신이다. 그 계열은 전욱에서 시작해서, 곤(鯤)과 그 아들 우(禹)에 이어지는데, 이 3신의 신상은 물고기, 또는 인면어신의 신이다. 서안반파 유적의 채도토기는 그 문화의 매우 초기의 것인데, 그 화문(畵文)에 물고기나 인면어신(人面魚身)의 상이 보이며, 곤ㆍ우의 홍수 설화가 하계의 오래된 전승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중국적 세계관[2]
중국 신화의 입장에서 보면, 공공(共工)만이 천지를 기울인 대악신이었다. 하늘이 북서로 기울고, 결누가 생긴 것을 여과가 오색의 흙으로 보수하고, 그것이 빛나는 별이 되었다. 여과만이 구세주인데, 이 용형의 신에는 또한 인류 초생의 설화가 있으며, 복희와 얽힌 용형의 신이다. 또한 복희, 여과에는 홍수설화가 있다. 천지를 담구는 대홍수 때, 이 두 신만이 배를 타고 도망가서 인류의 시조가 되었다는 상주(箱舟)형식의 설화이다. 세 가지의 홍수설화는 하ㆍ강ㆍ묘의 3계로 나누어서 이야기되는데, 그것은 또한 각 지역문화를 대표하고 있다. 은이 통일을 성취했을 때, 하계의 수신인 하(河)를 받들고, 강족(羌族)의 조신 백이의 본체인 옥(獄)을 받들었으며 강남에는 대도나 호남 영향(寧鄕)에서 출토된 사양희존과 같은 거대한 이기(彛器)를 보내서 그 종교적 지배를 행하였는데, 그들의 신화를 국가신화에 수용하지는 않았다.
은을 대신한 주나라에게 신화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귀족정치의 체제가 이미 확립되고, 조제(祖祭)는 친족법적 질서의 기본으로서만 기능한다. 주나라의 신화는 그 시조 강원(姜嫄)의 감생제(感生帝)설화가 시편에 노래되어 있을 뿐으로 은의 자손인 송에서도 현조(玄鳥)설화를 송시(頌詩)에 노래했는데, 그것은 연해계의 난생설화에 속하며, 은의 본래적인 것이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단, 은의 선공 왕해는 『산해경』 대황동경에 <양손에 새를 조정한다>라고 되어 있으며, 복사(卜辭)에서는 조(鳥)형의 밑에 해(亥)를 쓰는 글자형으로, 어떤 토템적 신앙이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각지에 전해진 홍수신이나 천지조성신, 자연신, 여러 족의 영웅신, 문화신 등을 계보화하는 시도는 열국기에 이르러서 일어났으며, 특히 세성설(歲星說)이나 음양오행설 등에 의해서, 최종적으로는 황제(黃帝)를 중심으로 하는 제성의 계보적 통합이 시도되었다. 그것은 대통일을 지향하는 역사의 방향과 일치하는데, 그런 작위적인 정합 중에 경전도 포함할 수 있다.
세계의 기원
태고시대에 하늘과 땅은 구분이 되지 않는 커다란 별이었다고 한다. 빛도 없고 소리도 없었는데 그 속에서 반고(盤古)가 나타나 엄청나게 큰 도끼로 그 어두운 별을 찍어서 둘로 쪼갰다고 한다. 그러자 가벼운 반쪽은 위로 올라가 하늘이 되었고 무거운 반쪽은 아래로 가라앉아 땅이 되었다. 반고는 매일 3미터씩 키가 자랐다. 이에 따라 하늘도 매일 3미터씩 높아졌다. 이렇게 1만 8천 년이 지나자 하늘은 엄청나게 높아지고 땅은 엄청나게 두터워졌다. 반고는 하늘을 이고 서 있는 거인이 되었다. 반고가 죽자 몸의 각 부분이 해, 달, 별, 산, 강, 초목 등으로 변했다.
아주 오랜 옛날, 우주가 크게 파괴되어 하늘의 네 모퉁이가 무너져 내리고 땅도 갈라졌다. 하늘에서는 천화(天火)가 흘러내려 활활 타올랐고, 땅에서는 물이 솟아올라 거대한 물길이 용솟음쳤다. 이때, 여왜는 오색 돌을 다듬어 뚫어진 하늘을 막고, 자라의 다리를 잘라 네 귀퉁이에 세웠으며, 흑룡(黑龍)을 죽여 기주(冀州) 지역을 구제했고, 갈대를 태운 재로 홍수를 막음으로써 천지를 다시 창조했다. 나중에 복희와 여왜가 결혼해 수많은 한족을 낳아 번성시킴으로써 한족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신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
신화에 등장하는 사물
신화에 등장하는 장소
영화
참고 사이트
[종교대사전]
[중국상하오천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