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오죽헌"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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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칭 = 江陵 烏竹軒
 
|한자명칭 = 江陵 烏竹軒
 
|분류 =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인물기념/ 탄생지
 
|분류 =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인물기념/ 탄생지
|건립·제작 =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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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제작 = 조선시대 15세기
 
|주소 = 강원 강릉시 율곡로3139번길 24 (죽헌동)
 
|주소 = 강원 강릉시 율곡로3139번길 24 (죽헌동)
 
|위도 = 37.779391
 
|위도 = 37.779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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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개요==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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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65호.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태어난 집으로 한국 주택중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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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대나무가 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서 '오죽헌(烏竹軒)'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위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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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내용==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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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붕 처마를 받치는 부재들도 새부리 모양으로 빠져나오는 간결한 형태로 짜은 익공계 양식으로 꾸몄다.
신사임당(1504∼1551)과 율곡 이이(1536∼1584)가 태어난 유서 깊은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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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 신씨는 뛰어난 여류 예술가였고 현모양처의 본보기가 되는 인물이며, 신씨의 아들 율곡 이이는 조선시대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훌륭한 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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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은 조선시대 문신이었던 최치운(1390∼1440)이 지었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앞면에서 보면 왼쪽 2칸은 대청마루로 사용했고, 오른쪽 1칸은 온돌방으로 만들었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부재들도 새부리 모양으로 빠져나오는 간결한 형태로 짜은 익공계 양식으로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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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주택 건축물 중에서 비교적 오래된 건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며,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진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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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백과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65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 양식이다.
 
신사임당과 율곡(栗谷) 이이(李珥)가 태어난 집으로 조선 중종 때 건축되었다. 한국 주택건축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에 속한다. 4면을 굵은 댓돌로 한 층 높이고 그 위에 자연석의 초석을 배치하여 네모기둥을 세웠다.
 
건물을 향하여 왼쪽 2칸은 대청이며 오른쪽 1칸에 온돌방을 들였으며, 대청 앞면에는 각각 띠살문의 분합(分閤)을, 옆면과 뒷면에는 2짝 씩의 판문(板門)을 달고, 그 아래 벽면에 머름을 댔다. 온돌방은 뒤쪽 반 칸을 줄여 툇마루를 만들고, 앞벽과 뒷벽에 두짝열개의 띠살문을 단 것 이외는 모두 외짝문이다. 천장은 온돌방이 종이천장이고 대청은 연등천장으로 꾸몄다. 대들보는 앞뒤 기둥에 걸쳤으나, 온돌방과의 경계에 있는 대량(大樑)은 그 아래 중앙에 세운 기둥으로 받쳤다.
 
대량에서 좌우 측면의 가운데 기둥에 걸쳐서는 충량(衝樑)을 배치하였으며, 그 상부에는 지붕 합각(合閣) 밑을 가리기 위하여 우물천장을 만들었다. 대량 위로 종량(宗樑)과의 사이에는 대공을 받쳤는데 그 형식은 오래된 수법을 따르고 있으며, 조선 초기의 주심포(柱心包)집에서 볼 수 있는 대공의 계통을 이은 것이다.
 
기둥머리에 배치된 공포(栱包)는 주택건축에서 보기 드문 이익공형식(二翼工形式)이며 그 세부 수법으로 보아 가장 오래된 익공집 건축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쇠서의 곡선에는 굴곡이 남아 있고, 첨차(檐遮)의 형태는 말기적인 주심포집과 공통되는 특징을 지녀 주심포집에서 익공집으로의 변천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구조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강릉 오죽헌 [江陵 烏竹軒] (두산백과)
 
  
===창건연대와 이름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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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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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1504∼1551)과 율곡 이이(1536∼1584)가 태어난 유서 깊은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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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 신씨는 뛰어난 여류 예술가였고 현모양처의 본보기가 되는 인물이다.
===형태와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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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의 아들 율곡 이이는 조선시대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훌륭한 학자였다.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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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은 조선시대 문신이었던 최치운(1390~1440)이 지었다.
===죽서루 내의 시문(詩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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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서루 팔영(八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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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龍門)과 성혈(性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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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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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앞면에서 보면 왼쪽 2칸은 대청마루로 사용했고, 오른쪽 1칸은 온돌방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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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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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은 조선 중기 사대부 주택의 별당 모습을 살필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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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주택 건축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며,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진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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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된 사회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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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부가혼(壻留婦家婚) - 조선 전기의 결혼제도로 남자가 결혼을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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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의 집이나 그 근처에 살고 처가의 재산을 물려받는 풍습이다.
  
 
==참고문헌==
 
==참고문헌==

2017년 4월 6일 (목) 03:22 판


정의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주택[2]

개요

보물 제165호.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태어난 집으로 한국 주택중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이다. 검은 대나무가 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서 '오죽헌(烏竹軒)'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위치

내용

 지붕 처마를 받치는 부재들도 새부리 모양으로 빠져나오는 간결한 형태로 짜은 익공계 양식으로 꾸몄다.


인물

신사임당(1504∼1551)과 율곡 이이(1536∼1584)가 태어난 유서 깊은 집이다. 사임당 신씨는 뛰어난 여류 예술가였고 현모양처의 본보기가 되는 인물이다. 신씨의 아들 율곡 이이는 조선시대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훌륭한 학자였다. 오죽헌은 조선시대 문신이었던 최치운(1390~1440)이 지었다.

건물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앞면에서 보면 왼쪽 2칸은 대청마루로 사용했고, 오른쪽 1칸은 온돌방으로 만들었다.

의의

오죽헌은 조선 중기 사대부 주택의 별당 모습을 살필 수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 주택 건축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며,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진 건물이다.

관련된 사회제도

서류부가혼(壻留婦家婚) - 조선 전기의 결혼제도로 남자가 결혼을 하면 부인의 집이나 그 근처에 살고 처가의 재산을 물려받는 풍습이다.

참고문헌

주석

  1. '강릉 오죽헌', 문화재청, 2017년 4월 6일
  2. '강릉 오죽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17년 4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