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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5일 (일) 08:40 기준 최신판

메타데이터

  • 타입: 인물
  • 한글명: 백사 이항복
  • 한자명: 白沙 李恒福 1556∼1618
  • 영문명:
  • 시대: 조선
  • 시기: 1556∼1618
  • 편자: 이한나


내용

 ‎이항복


‎작자 미상, 「이항복 초상」17세기, 59.5×35.0cm,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 이항복은 누구인가?
    • 백사 이항복(白沙 李恒福, 1556~1618년)이 살아간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전반까지의 조선 사회는 위기 의식이 충만한 사회 변혁기였다. 창업보다 수성(守成)이 더 어렵다고 하듯이 성종대에 마무리지은 문물 제도가 1세기에 걸쳐 운용되면서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조선 왕조의 개창과 왕조 초기의 다난했던 정치적 격변기에 공훈을 세운 훈구파는 1세기가 경과하면서 기득권을 향유하는 정치적 구세력이 되었다. 이에 대한 비판 세력으로 등장한 사림파는 중종반정(1506년) 이후 그 입지를 강화하면서 성리학 이념의 구현에 박차를 가했다.
    • 이항복이 자라던 시기는 불교 중흥의 기치를 든 문정왕후와 성리학의 이념을 이 땅에 구현하려는 사림이 치열하게 부딪치고,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을 핵으로 하는 권력 핵심부의 비리와 부패가 만연하던 시대였다. 윤원형이 전리방축(田里放逐)1)된 1565년(명종 20년)은 이항복이 한참 민감한 나이인 10세 때였다. 아마도 그 실상을 친구들과 함께 목격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는 이 사건을 평생의 거울로 삼았을 수도 있었다. 외삼촌의 세도와 어머니 문정왕후의 그늘에서 기를 못 펴고 산 명종은 문정왕후가 별세하자마자 윤원형을 권좌에서 몰아내는 것으로 필생의 과업을 다했다는 듯이 1567년 6월 승하했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