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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5일 (일) 08:40 기준 최신판

요약

  • 넓은 의미로는 풍속이나 습관으로 형성된 행위 준칙, 도덕 규범, 등 각종 예절.

내용

  • 사회의 질서를 위해 만들어진 유교적 윤리규범을 지칭한다. 예(禮)는 본시 고대 사회에서 복을 받기 위해 귀신을 섬기는 일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며 ‘예(禮)’자의 ‘示’는 ‘神’자에서, ‘豊’은 그릇에 곡식을 담은 모양이라고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풀이한다. 유가에서 예를 매우 중요시하여 《시경(詩經)》에는 ‘사람이면서 예가 없다니 어찌하여 빨리 죽지 않는가(人而無禮胡不遄死)라고 하였고 심지어 예로써 짐승과 구분 기준을 삼았다. 예의 종류로 오례(五禮)라 하여 길례 ·흉례 ·군례 ·빈례 ·가례(吉禮 ·凶禮 ·軍禮 ·賓禮 ·嘉禮)를, 구례(九禮)라 하여 관례(冠禮) ·혼례(婚禮) ·조례(朝禮) ·빙례(聘禮) ·상례(喪禮) ·제례(祭禮) ·빈주례(賓主禮) ·향음례(鄕飮禮) ·군여례(軍旅禮)를 말하여 한국에도 전래되었지만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일상 생활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례(四禮), 곧 관례, 혼례, 상례, 제례이다. 이 사례를 일컬어 가례(家禮)라 하며 주자의 예설을 모아 편한 《주자가례(朱子家禮)》가 조선시대의 모든 가례의 표준이 되었다.
  • 지금까지도 항간에서 많이 쓰이는 《사례편람(四禮便覽)》을 비롯하여 《사례찬설》 《사례촬요》 《사례훈몽》 등 예절에 관한 많은 책들이 한결같이 《주자가례》를 모범으로 삼았을 정도로 주자의 예설이 한국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였다. 그런데 이런 예법은 주로 양반 계층에서 지켜졌으며 이른바 상민계급에게는 별로 통용되지 않았다. 중국은 양반계급에서조차 한국만큼 예가 철저하게 준용되지 않았다. 한국의 지나친 예의 준용은 당쟁이나 사화를 일으키는 요인이 되기도 하여 사회에 끼친 부정적 영향이 매우 컸다. 이는 공자가 강조한 예의 본질은 차츰 퇴색하고 예의 형식이 위세를 떨쳤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예(두산백과)

201310212 이지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