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산 4보루 등자"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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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마병이 말에 탈 때, 말을 걸어서 오르기 편하게 한 고안이며, 안장과 함께 균형감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도구이다. 특히 삭을 사용하는 갑주무사의 경우 이 등자는 필수적이며, 따라서 철기병의 등장과 마구의 등장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아차산 4보루 등자'''는 [[삼국시대]] 말기의 형태로 당나라와 [[통일신라]]시대에도 이런 형식이 기본적인 형태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 특징은 발이 닿는 부분이 [[삼국시대]] 중기의 것에 비하여 블록렌즈 모양으로 넓고 편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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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자는 기마병이 말에 탈 때, 말을 걸어서 오르기 편하게 한 고안이며, 안장과 함께 균형감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도구이다. 특히 삭을 사용하는 갑주무사의 경우 등자가 필수적이며, 따라서 철기병의 등장과 마구(馬具)의 등장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아차산 4보루 등자'''는 [[삼국시대]] 말기의 형태로 당나라와 [[통일신라]]시대에도 이런 형식이 기본적인 형태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 특징은 발이 닿는 부분이 [[삼국시대]] 중기의 것에 비하여 블록렌즈 모양으로 넓고 편평하다.<ref>[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9&cp_code=cp0229&index_id=cp02290640&content_id=cp022906400001&search_left_menu=3 아차산 4보루 등자, 문화콘텐츠닷컴]</ref>
  
아차산 4보루에서는 말 재갈과 경판 및 등자 등의 마구가 출토되어 고구려뿐만 아니라 삼국 시대 마구의 편년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마구류는 기승용구인 등자와 말을 제어하기 위한 재갈 및 경판이 있으며, 부속구로 교구가 포함되어 있다. 또한 수레부속구로 보이는 차축두가 1점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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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4보루 등자]]와 [[아차산 4보루 재갈]], [[아차산 4보루 철제 투구]]'''===
아차산 보루에도 기병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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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4보루]]에서는 말 재갈과 경판 및 등자 등의 마구가 출토되어 고구려뿐만 아니라 삼국 시대 마구의 편년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아차산 보루에도 기병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는 각 보루에 주둔하고 있는 고구려의 지휘관급들 정도는 말을 타고 산에 올랐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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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4보루 철제 투구'''는 [[아차산 4보루]] 온돌의 아궁이에서 거꾸로 뒤집힌 채 출토되었는데, 고고미술사학과 최종택은 고구려군이 이 보루에서 철수할 때 고장난 투구를 던져버린 것이라 추정했다. 또한 투구가 발견된 건물지는 [[아차산 4보루]]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아차산 3보루]]와 연결되는 통로 쪽에 축조되어 있는 점 등으로 보아 이 유적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기거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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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발견된 [[아차산 4보루 철제 투구]], [[아차산 4보루 등자]]와 [[아차산 4보루 재갈]], 그리고 발견지의 특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각 보루에 주둔하고 있는 고구려의 지휘관급들 정도는 말을 타고 산에 올랐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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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투구의 출토 사례가 많지 않고, 함께 발견된 [[아차산 4보루 등자]]와 [[아차산 4보루 재갈]], 그리고 투구 발견지의 특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아차산 4보루 철제 투구'''는 장수가 착용하던 것으로, 장수는 일반 병사와는 달리 투구와 갑옷을 착용하고 있었고, 말을 타고 산 정상부까지 올라갔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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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지도'''==

2016년 6월 24일 (금) 01:11 판

개관

등자는 기마병이 말에 탈 때, 말을 걸어서 오르기 편하게 한 고안이며, 안장과 함께 균형감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도구이다. 특히 삭을 사용하는 갑주무사의 경우 등자가 필수적이며, 따라서 철기병의 등장과 마구(馬具)의 등장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아차산 4보루 등자삼국시대 말기의 형태로 당나라와 통일신라시대에도 이런 형식이 기본적인 형태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 특징은 발이 닿는 부분이 삼국시대 중기의 것에 비하여 블록렌즈 모양으로 넓고 편평하다.[2]

아차산 4보루 등자아차산 4보루 재갈, 아차산 4보루 철제 투구

아차산 4보루에서는 말 재갈과 경판 및 등자 등의 마구가 출토되어 고구려뿐만 아니라 삼국 시대 마구의 편년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아차산 보루에도 기병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함께 발견된 아차산 4보루 철제 투구, 아차산 4보루 등자아차산 4보루 재갈, 그리고 그 발견지의 특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각 보루에 주둔하고 있는 고구려의 지휘관급들 정도는 말을 타고 산에 올랐음을 시사한다.

지도

클래스

  • 사물

관련 문서

이 문서 관계 관련 문서
아차산 4보루 철제 투구 A는 B에서 발견되었다 아차산
아차산 4보루 철제 투구 A는 B에서 발견되었다 아차산 4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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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4보루 철제 투구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서울대학교 박물관
아차산 4보루 철제 투구 A는 B시대에 만들어졌다 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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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4보루 철제 투구 A는 B와 관련된다 아차산 4보루 등자
아차산 4보루 철제 투구 A는 B와 관련된다 안악 3호분 벽화 투구

갤러리

주석

  1. 아래 사진출처: tistory nambaONE
  2. 아차산 4보루 등자, 문화콘텐츠닷컴
  3. 사진출처: 최종택, 「아차산 고구려 보루 발굴 10년, 성과와 의의」, 한국사 시민강좌, 44, 2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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