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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백관의 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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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8일 (일) 22:14 판

백관의 상복
(百官의 常服)
대표명칭 백관의 상복
한자표기 百官의 常服
이칭별칭 時服(성종 대까지 명칭 통용)
분류 官服
착용신분 문무백관
착용성별 남자



정의

상복(常服)은 조선시대 백관이 착용하였던 관복(官服)으로, 사모·단령·품대·화로 구성된다.

내용

사모·단령의 유입과 정착

  • 공민왕 19년(1370), 왕의 면복(冕服)과 조복(朝服), 백관의 제복(祭服)은 명으로부터 사여받았으나 편복(便服)은 받지 못하였다.[1]
  • 1386년 2월, 정몽주(鄭夢周)를 파견하여 임금의 편복 및 백관의 조복·편복을 표문으로 요청하였으나 받지 못하였다.[2]
  • 1386년 8월, 이전(李竱)으로 하여금 재차 의관(衣冠)을 요청하도록 하였으나 받지 못하였다.[3]
  • 1387년 5월, 설장수(偰長壽)를 파견하여 다시 편복을 요청하였고, 명 황제는 설장수에게 사모와 단령을 내려주었다. 『高麗史』에는 “설장수가 사모와 단령을 착용하고 돌아오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비로소 중국의 의관제도를 알게 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4]
  • 1387년 6월, 정몽주(鄭夢周) 등이 백관의 관복제도를 정하였는데, 1품부터 9품까지 모두 사모(紗帽)와 단령(團領)을 입도록 하였고, 그 품대(品帶)에 차등을 두었다.[5] 이때 정한 백관의 관복제도는 『高麗史』「輿服志」에 수록되었다.[6]
  • 『朝鮮王朝實錄』에는 '고려 정몽주(鄭夢周)가 중국에서 돌아온 뒤에 비로소 사모와 단령의 제도가 전하여졌다.'라고 기록하고 있다.[7]
  • 1387년 전해진 사모와 단령은 조선전기·중기·후기를 거치며 형태와 명칭에 있어 많은 변화를 겪으며 관복(官服)으로서의 자리를 유지하다가, 대한제국시대에 이르러 서구식 관복을 채택하면서 점차 사라진다.

조선초기 상복의 특징

  • 태조~세종 28년(1446): 백관은 상복으로 잡색 단령을 입었다. 『朝鮮王朝實錄』과 『國朝五禮儀』에 상복과 시복(時服)이라는 명칭이 혼용되나 동일한 의복을 말하며, 의례용과 집무용의 구별은 없다. 상복으로 잡색 단령을 착용한 것은 『大明會典』 홍무 26년(1393) 법령 내용 중 ‘품관 상복은 잡색의 저·사·능·라를 쓴다.(品官常服用雜色紵·絲·綾·羅.)’[8]라는 조항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 세종 28년(1446)~단종 2년(1454): 세종 28년(1446), 조참, 상참 때 ‘흑염조의(黑染朝衣)’를 입도록 하였다. 하연 등이 흉배제도를 건의했으나 황희의 반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9] 세종 28년부터 상복은 의례용인 흑단령과 집무용인 잡색 단령으로 분화되기 시작한다. 의례용과 집무용 모두 흉배는 없다.
  • 단종 2년(1454): 문무당상관의 흉배제도를 제정하였다.[10]
  • 단종 2년(1454)~성종 말: 당상관은 집무용으로 흉배 있는 잡색 단령을 상복으로 입고, 의례용으로 흉배 있는 흑단령을 상복으로 입었다. 신숙주(申叔舟, 1417~1475)의 초상화를 통해 흉배 있는 집무용 잡색 단령을 볼 수 있으며, 오자치(吳自治), 손소(孫昭, 1433~1484), 장말손(張末孫, 1431~1486)의 초상화를 통해 흉배 있는 의례용 흑단령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흉배는 주로 의례용 흑단령에 갖추는 것으로 정착된다.
  • 성종 대 편찬된 『經國大典』 「禮典」 '儀章'에 백관의 상복에 관한 규정이 실려있다.
  • 『樂學軌範』 권9 「冠服圖說」의 ‘흑단령(黑團領)’ 도설을 통해 당시 흑단령의 형태를 짐작해볼 수 있다.

『經國大典』 상복 제도

  • 『經國大典』 권3 「禮典」 '儀章' 첫머리에는 '조참(朝參), 상참(常參)·조계(朝啓) 때에는 모두 흑의(黑衣)를 입는다.(朝參, 常參·朝啓並着黑衣.)'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의례용 흑단령을 말하는 것으로, 세종 28년(1446) 논의된 내용이 반영된 것이다.
<표 1> 『經國大典』 상복(常服) 제도
품계(品階) 관(冠) 복(服) 흉배(胷背) 대(帶) 화혜(靴鞋)
1품 사모 사·라·능·단 문관: 공작(孔雀), 무관: 호표(虎豹) 서대(犀帶) 협금화(挾金靴)
2품 사모 사·라·능·단 문관: 운학(雲鴈), 무관: 호표(虎豹) 正: 삽금대(鈒金帶), 從: 소금대(素金帶) 협금화(挾金靴)
3품 당상관 이상 사모 사·라·능·단 문관: 백한(白鷳), 무관: 웅비(熊羆) 正: 삽은대(鈒銀帶), 從:소은대(素銀帶) 협금화(挾金靴)
3품 당하관 이하 사모 - - 正: 삽은대(鈒銀帶), 從:소은대(素銀帶) -
4품 사모 - - 소은대(素銀帶) -
5·6품 사모 - - 흑각대(黑角帶) -
7·8·9품 사모 - - 흑각대(黑角帶) -

지식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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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cord-그림 : 장말손 초상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우왕 정몽주 A의 신하는 B이다 A ekc:hasSubject B
정몽주 하연 A의 제자는 B이다 A ekc:hasDisciple B
세종 황희 A의 신하는 B이다 A ekc:hasSubject B
세종 하연 A의 신하는 B이다 A ekc:hasSubject B
세종 단종 A의 손자는 B이다 A ekcx:hasGrandSon B
세조 신숙주 A의 신하는 B이다 A ekc:hasSubject B
세조 오자치 A의 신하는 B이다 A ekc:hasSubject B
세조 손소 A의 신하는 B이다 A ekc:hasSubject B
세조 장말손 A의 신하는 B이다 A ekc:hasSubject B
세조 성종 A의 손자는 B이다 A ekcx:hasGrandSon B
백관 상복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백관의 상복 사모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A dcterms:hasPart B
백관의 상복 단령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A dcterms:hasPart B
백관의 상복 품대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A dcterms:hasPart B
백관의 상복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A dcterms:hasPart B
『고려사』 백관의 관복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고려사절요』 백관의 관복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조선왕조실록』 백관의 상복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국조오례의』 백관의 상복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경국대전』 백관의 상복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대명회전』 상복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악학궤범』 흑단령 A는 B를 묘사하였다 A ekc:depicts B
신숙주 초상 잡색 단령 A는 B를 묘사하였다 A ekc:depicts B
오자치 초상 흑단령 A는 B를 묘사하였다 A ekc:depicts B
손소 초상 흑단령 A는 B를 묘사하였다 A ekc:depicts B
장말손 초상 흑단령 A는 B를 묘사하였다 A ekc:depicts B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1. 『高麗史』 권72 志 권26 輿服1 '冠服'.
  2. 『高麗史』 권136 列傳 권49 우왕 12년 2월.
  3. 『高麗史』 권136 列傳 권49 우왕 12년 8월.
  4. 『高麗史』 권136 列傳 권49 우왕 13년 5월.
  5. 『高麗史節要』 卷32 辛禑3 우왕 13년 6월.
  6. 『高麗史』 권72 志 권26 輿服1 '冠服'.
  7. 『孝宗實錄』 18권, 효종 8년 1월 10일 계축 2번째기사 1657년 청 순치(順治) 14년.
  8. 『大明會典』 冠服2 ‘文武官冠服’.
  9. 『世宗實錄』 111권, 세종 28년 1월 23일 辛卯 2번째기사 1446년 명 정통(正統) 11년.
  10. 『端宗實錄』 12권, 단종 2년 12월 10일 병술 2번째기사 1454년 명 경태(景泰) 5년.
  11. 국립국악원, 『樂學軌範』, 호사문고 소장본, 2011, 419쪽.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