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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올해 이른 봄이 되서야 그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한문으로 된 마가복음과 누가복음<ref>존 로스 목사의 번역본으로 추정</ref>을 들고 저를 찾아 왔습니다. 그는 그 전날 시골에서 돌아 왔는데 자신의 ‘구도(求道)’를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그때 통역자로서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 의사와 함께 있었던 {{선교사편지인물태그|[[헤론 의사의 어학교사]]}}를 찾아갔었습니다. 그는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 의사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책 두 권<ref>앞서 언급한 '한문으로 된 마가복음과 누가복음'</ref>을 조용히 집으로 가지고 와서 밤새도록 그것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저를 찾아 와서 자신이 그 책에서 발견한 복된 사실이 무엇이었는지 제게 말했고, 그 두 권의 책 내용에 대해 더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던 것입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그가 매우 주의 깊게 성경을 읽었다는 것을 곧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그리스도께서 들려주신 이런 저런 말씀들에 대해 언급을 하면 그는 곧 바로 그의 중국어 성경<ref>1984년 이전에 번역된 중국어 성경은 만주지역에서 존 로스가 번역한 버전으로 추정된다.</ref>에서 그 말씀의 장,절을 찾아내어 그 말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어눌한 한국어 실력으로 무언가를 말하려 하는데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단어를 떠올리지 못하고 있을 때는 제가 전하려는 생각을 알아채고서 즉시 그에 해당하는 말씀을 찾아보았습니다.</div> | 그리고 올해 이른 봄이 되서야 그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한문으로 된 마가복음과 누가복음<ref>존 로스 목사의 번역본으로 추정</ref>을 들고 저를 찾아 왔습니다. 그는 그 전날 시골에서 돌아 왔는데 자신의 ‘구도(求道)’를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그때 통역자로서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 의사와 함께 있었던 {{선교사편지인물태그|[[헤론 의사의 어학교사]]}}를 찾아갔었습니다. 그는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 의사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책 두 권<ref>앞서 언급한 '한문으로 된 마가복음과 누가복음'</ref>을 조용히 집으로 가지고 와서 밤새도록 그것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저를 찾아 와서 자신이 그 책에서 발견한 복된 사실이 무엇이었는지 제게 말했고, 그 두 권의 책 내용에 대해 더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던 것입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그가 매우 주의 깊게 성경을 읽었다는 것을 곧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그리스도께서 들려주신 이런 저런 말씀들에 대해 언급을 하면 그는 곧 바로 그의 중국어 성경<ref>1984년 이전에 번역된 중국어 성경은 만주지역에서 존 로스가 번역한 버전으로 추정된다.</ref>에서 그 말씀의 장,절을 찾아내어 그 말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어눌한 한국어 실력으로 무언가를 말하려 하는데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단어를 떠올리지 못하고 있을 때는 제가 전하려는 생각을 알아채고서 즉시 그에 해당하는 말씀을 찾아보았습니다.</div> | ||
|번역문5=<div style="text-align:justify">저는 한문으로 된 복음서 전권을 그에게 주었고 그가 그것들을 다 읽은 후에는 한문 주석서 두 권과 『{{선교사편지문헌태그|[[묘축문답|성전의 수호자(Temple Keeper)]]}}』, 『{{선교사편지문헌태그|[[구령혼설|영혼의 구원(Salvation of the Soul)]]}}』같은 한문으로 된 소책자 몇 권, 『{{선교사편지문헌태그|[[진리이지|알기 쉬운 기독교 교리(Easy Christian Doctrine)]]}}』라는 제목의 작은 책을 빌려 주었습니다.<ref>[http://www.jangro.kr/Jmissions/detail.htm?aid=1252560039 한문 복음서와 한문 소책자로 전도한 언더우드, 한국장로신문, 2009년 7월 25일자 연재기사]</ref> 그는 우리 영어 예배에 여러 번 참석하였는데 얼마 후에 시골로 다시 내려가야 했습니다. 그는 병을 앓게 되어서 그곳에 머물러 있게 되었는데, 프랑스가 (한국정부에) 요구한 것들과 종교의 자유에 대해 토의한 것들을 듣고서 우리가 흥분하고 있던 바로 그 때, 그가 돌아 왔습니다. 이때에 그는 우리 모임<ref> 유니온 교회의 모임으로 추정</ref>에 오기를 주저했습니다. 그리고 2 주 전에는 그가 참석하지 않는 것을 양해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토요일에는 방문하여서 “주일 모임에 와도 되겠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저는 물론 “와도 좋다”고 했으며 내일은 정기 성만찬 주일이니 그에게 마태복음에 있는 성만찬 제정에 대한 말씀과 주석서에서 그에 대해 설명해 놓은 것을 읽어보라고 권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했고, 예배가 끝난 후에 저에게 설교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마태복음의 말씀을 읽고, 예배시간에 있었던 일을 보고 나니 이해할 수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저에게 세례를 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세례에 대해서는 그에게 아무 것도 말한 적이 없었는데 이것은 그가 자발적으로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저는 여러 가지 질문을 할 수 있는 한 분명하게 그에게 물었고, 그는 진솔하게 대답했습니다.</div> | |번역문5=<div style="text-align:justify">저는 한문으로 된 복음서 전권을 그에게 주었고 그가 그것들을 다 읽은 후에는 한문 주석서 두 권과 『{{선교사편지문헌태그|[[묘축문답|성전의 수호자(Temple Keeper)]]}}』, 『{{선교사편지문헌태그|[[구령혼설|영혼의 구원(Salvation of the Soul)]]}}』같은 한문으로 된 소책자 몇 권, 『{{선교사편지문헌태그|[[진리이지|알기 쉬운 기독교 교리(Easy Christian Doctrine)]]}}』라는 제목의 작은 책을 빌려 주었습니다.<ref>[http://www.jangro.kr/Jmissions/detail.htm?aid=1252560039 한문 복음서와 한문 소책자로 전도한 언더우드, 한국장로신문, 2009년 7월 25일자 연재기사]</ref> 그는 우리 영어 예배에 여러 번 참석하였는데 얼마 후에 시골로 다시 내려가야 했습니다. 그는 병을 앓게 되어서 그곳에 머물러 있게 되었는데, 프랑스가 (한국정부에) 요구한 것들과 종교의 자유에 대해 토의한 것들을 듣고서 우리가 흥분하고 있던 바로 그 때, 그가 돌아 왔습니다. 이때에 그는 우리 모임<ref> 유니온 교회의 모임으로 추정</ref>에 오기를 주저했습니다. 그리고 2 주 전에는 그가 참석하지 않는 것을 양해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토요일에는 방문하여서 “주일 모임에 와도 되겠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저는 물론 “와도 좋다”고 했으며 내일은 정기 성만찬 주일이니 그에게 마태복음에 있는 성만찬 제정에 대한 말씀과 주석서에서 그에 대해 설명해 놓은 것을 읽어보라고 권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했고, 예배가 끝난 후에 저에게 설교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마태복음의 말씀을 읽고, 예배시간에 있었던 일을 보고 나니 이해할 수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저에게 세례를 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세례에 대해서는 그에게 아무 것도 말한 적이 없었는데 이것은 그가 자발적으로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저는 여러 가지 질문을 할 수 있는 한 분명하게 그에게 물었고, 그는 진솔하게 대답했습니다.</div> | ||
− | |번역문6=<div style="text-align:justify">{{선교사편지문헌태그|[[ | + | |번역문6=<div style="text-align:justify">{{선교사편지문헌태그|[[진리이지|그 작은 책]]}}<ref>언더우드가 노춘경에게 빌려준 『알기 쉬운 기독교 교리(Easy Christian Doctrine)』</ref>은 기독교 교리에 대해 여러 가지 문제를 분명하게 정리해 놓은 것입니다. 저는 그에게, “세례를 받으면 이 나라 국법에 어긋나는 길을 가게 되는 것이며 이곳에 발걸음을 내딛으면 돌아 올 수 있는 길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는 이 모든 문제들에 대해 심사숙고(深思熟考)했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곳에서의 우리 사역의 첫 열매<ref>1885년 7월 15일 국내에서 최초로 조선인에게 세례를 준 일. 이날 노춘경은 세례교인이 됨. 이 날을 새문안 교회의 창립기념일이라고 말 할 수 있다.</ref>로 인하여 우리는 말할 수 없이 기뻐하고 있습니다. 한국어를 아직 몇 마디밖에는 할 수 없는 단계인데도, 이곳 사람들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우리 주님께서 우리 사역에 이렇게 힘을 주신 것에 대해 어떻게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고 이곳에서 계속 우리에게 은총을 내려 주시리라 믿습니다. 복음서를 부지런히 연구하고 있는 한 두 사람이 더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볼까봐 집에서는 공부하지 못하는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이 사람은 재산이 조금 있는 편인데 이곳에 매일 와서 지금은 잘 사용되지 않는, 하인들을 위해 지어졌던 방 안에 앉아 하루 종일 복음서를 연구합니다. 그리고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보아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으면 제게로 찾아옵니다. 그러면 저는 할 수 있는 한 그에게 잘 가르쳐 주려 합니다. 성령께서 이 땅을 미리 준비시켜 두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문이 열리자 마자 혹은 공식적으로 개방되기 전에라도, 제가 한국어를 능숙하게 말할 수 있게만 되면 제가 섬길 수 있는 사람들을 곧 모두 만나 보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br/>공부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웃 사람들에게도 전하였는데 그 사람들은 제게 이 나라에는 기독교에 대해 자세히 공부하고 배우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이번 주일을 지내고, 그 다음 주 중에 이 사람에게 세례를 주려 합니다.</div> |
|번역문7=<div style="text-align:justify">{{선교사편지공간태그|[[고아학당|고아원]]}} 일은 아주 잘 진행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10명이 등록되어 있는데 {{선교사편지인물태그|[[김규식|한 아이]]}}는 병을 앓아 삼촌댁에 가 있으며, 모친이 생존해 있는 다른 아이는 병환 중에 있는 어머니를 찾아뵈도록 집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병을 앓고 있는 그 아이를 처음에는 제 집으로 데려 왔었지만 아이의 병세는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고아원에서 아이가 죽으면 우리에게 매우 곤란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 아이 삼촌에게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우리가 이런 일을 하는 데에는 무언가 이기적인 동기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소년들을 어떻게 하려는 지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퍼뜨려 놓았습니다. 우리가 이 아이들을 미국에 노예로 보내 버리거나, 살을 찌워서 잡아먹을 거라는 말들을 합니다. 그렇지만 당분간은 이런 일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예상해면서, 사람들에게 이런 오해를 갖게 할 만한 그 어떤 경우도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div> | |번역문7=<div style="text-align:justify">{{선교사편지공간태그|[[고아학당|고아원]]}} 일은 아주 잘 진행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10명이 등록되어 있는데 {{선교사편지인물태그|[[김규식|한 아이]]}}는 병을 앓아 삼촌댁에 가 있으며, 모친이 생존해 있는 다른 아이는 병환 중에 있는 어머니를 찾아뵈도록 집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병을 앓고 있는 그 아이를 처음에는 제 집으로 데려 왔었지만 아이의 병세는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고아원에서 아이가 죽으면 우리에게 매우 곤란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 아이 삼촌에게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우리가 이런 일을 하는 데에는 무언가 이기적인 동기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소년들을 어떻게 하려는 지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퍼뜨려 놓았습니다. 우리가 이 아이들을 미국에 노예로 보내 버리거나, 살을 찌워서 잡아먹을 거라는 말들을 합니다. 그렇지만 당분간은 이런 일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예상해면서, 사람들에게 이런 오해를 갖게 할 만한 그 어떤 경우도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div> | ||
|번역문8=<div style="text-align:justify">교사들과 {{선교사편지인물태그|[[Ellers, Annie J.|엘러스]]}} 양<ref>1886년에 내한한 여의사.엘러스는 한국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은 인연으로 일찍부터 여성 교육 사업을 모색했다. 후에 감리교 선교사 벙커(D.A.Bunker)와 결혼하며 장로교를 떠났다. Lillias H. Underwood,『상투의 나라』.</ref>이 기선을 타고 이곳에 온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 참으로 미안하게 생각될 뿐이었습니다. 미리 알았더라면 마중 나갈 사람을 보냈었을 것이고 이곳에 오는 것을 위한 준비를 해두었을 겁니다.</div> | |번역문8=<div style="text-align:justify">교사들과 {{선교사편지인물태그|[[Ellers, Annie J.|엘러스]]}} 양<ref>1886년에 내한한 여의사.엘러스는 한국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은 인연으로 일찍부터 여성 교육 사업을 모색했다. 후에 감리교 선교사 벙커(D.A.Bunker)와 결혼하며 장로교를 떠났다. Lillias H. Underwood,『상투의 나라』.</ref>이 기선을 타고 이곳에 온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 참으로 미안하게 생각될 뿐이었습니다. 미리 알았더라면 마중 나갈 사람을 보냈었을 것이고 이곳에 오는 것을 위한 준비를 해두었을 겁니다.</div> |
2020년 9월 13일 (일) 00:45 판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86년 7월 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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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별자 | L18860709UTO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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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명칭 |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86년 7월 9일) |
영문명칭 | Horace G. Underwood's Letter To Frank F. Ellinwood (Jan 26, 1885) |
발신자 | Underwood, Horace G.(원두우) |
수신자 | Ellinwood, Frank F. |
작성연도 | 1886년 |
작성월일 | 3월 7일 |
작성공간 | 서울 |
자료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
번역문출처 | 김인수,『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2. |
Dr. Horace G. Underwood Seoul, Korea |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인물 박사 한국, 서울공간 |
July 9, 1886 | 1886년 7월 9일 |
Dear Dr. Ellinwood | 엘린우드인물 박사님께, |
I have been only wishing that there was a mail to go before the one in a few days so as to get to you the good news before this letter reaches you. I feel that the Steamer will not take it fast enough and I am sure that you will agree with me. On Sunday last we had our first application for Baptism. I am not sure as to whether I told you about him before and rather than not tell you his history I will risk a repetition. He is a Korean who first heard about Christianity from its enemies by reading what a Chinese book had said against Christians and the religion of Christ and he was led to try and look further into it. He simply knew of it as the Foreign religion and thought the simplist way to find out about it would be to make the acquaintance of some Foreigner. This however was not an easy matter as he did not know anyone that knew the Foreigners so he came up near our houses to see what could be done. By a little work he soon made the acquaintance of Dr. Heron's Teacher and professing to want to learn English was brought to me. He tells me now that his only object was to see whether he could find any books or see anything that would give him light upon the subject of the Foreign religion. As those who were studying did not come into my Study at all but had a room to themselves he did not see what he was after and soon left Seoul for the country where his family live and I saw nothing of him again till early this spring when he came to me with copies of Mark and Luke in Chinese. He had returned from the country the day before and not having given up his searching had called upon Dr. Heron's teacher who was at this time with Dr. Allen as interpreter and had seen on Dr. Allen's Desk these two books which he quietly took home and sat up all night to read them and came round to see me the next morning to tell me what good things he had found there and to ask me to teach him more about what those books spoke of. I commenced to talk with him and soon found that his reading had not been careless for as I would mention one thing and another that Christ had said or taught he would at once turn to the chapter and verse in his Chinese copy and comment upon it, and when in my broken Korean I was trying to tell him something and could not find the right words to explain it to him he would catch the idea and turn at once to some verse to explain it. |
몇 날이 걸려 박사님께 닿게 될 이 편지보다 더 빨리 박사님께 이 기쁜 소식을 알려드릴 방법이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기선으로 편지를 보내는 것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일인 것 같습니다. 박사님께서도 그렇게 여기시리라 생각됩니다. 지난 주일에는 처음으로 세례 받기를 원하는 사람인물[1]이 있었습니다. 전에 박사님께 이 사람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말씀드리지 않고 지나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반복해서라도 말씀드리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은 기독교에 대해 대적하는 내용의 중국 서적에서 기독교와 기독교인들에 대해 설명해 놓은 것을 읽으며 기독교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기독교에 대해 좀더 자세히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기독교는 외국의 종교라고만 생각하면서, 기독교에 대해 제대로 알려면 외국인과 친분을 갖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여겼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아는 사람들 중에 외국인을 알고 지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집공간 부근[2]으로 와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 했습니다. 조금 노력한 결과 그는 곧 헤론 의사의 어학교사인물와 친분을 맺게 되었고, 저는 영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제게 “이 외국 종교에 대해 깨우침을 줄 수 있는 책이라든지 혹은 어떤 것을 구할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여기 왔다”고 했습니다. 공부를 하고 있던 사람들은 제 서재로는 오지 않았고 자기들끼리 모이는 곳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얻으려는 것을 얻을 수 없었고 곧 그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시골로 가기 위해 서울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올해 이른 봄이 되서야 그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한문으로 된 마가복음과 누가복음[3]을 들고 저를 찾아 왔습니다. 그는 그 전날 시골에서 돌아 왔는데 자신의 ‘구도(求道)’를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그때 통역자로서 알렌인물 의사와 함께 있었던 헤론 의사의 어학교사인물를 찾아갔었습니다. 그는 알렌인물 의사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책 두 권[4]을 조용히 집으로 가지고 와서 밤새도록 그것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저를 찾아 와서 자신이 그 책에서 발견한 복된 사실이 무엇이었는지 제게 말했고, 그 두 권의 책 내용에 대해 더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던 것입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그가 매우 주의 깊게 성경을 읽었다는 것을 곧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그리스도께서 들려주신 이런 저런 말씀들에 대해 언급을 하면 그는 곧 바로 그의 중국어 성경[5]에서 그 말씀의 장,절을 찾아내어 그 말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어눌한 한국어 실력으로 무언가를 말하려 하는데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단어를 떠올리지 못하고 있을 때는 제가 전하려는 생각을 알아채고서 즉시 그에 해당하는 말씀을 찾아보았습니다. |
I supplied him with copies of all the Gospels in Chinese and when he had read them loaned him one or two Chines commentaries and also some tracts in Chinese as the "Temple Keeper," "Salvation of the Soul" and a small book called "Easy Christian Doctrine." He attended many of our English services and then had to go to the country again. Here he was taken sick and was not able to come back to the city till just when we were all excited over the demands of the French and the discussion of freedom of religion. At this time he was afraid to come to our meetings and only about two weeks ago excused his absence on this plea but on Saturday last he called and asked whether he could come to the meeting on Sunday. I of course said he could and as the next day was our regular communion Sabbath I advised him to read the institution of the Supper as given in Matthew and also what the commentary said about it. He did so and after the service was over told me that although he could not understand what was said, yet after reading from Matthew and seeing what was done he had been able to understand it. He then told me that he would like to be baptized. I had never said anything to him on this point and it is a conclusion that he has arrived at of his own accord. I asked him a number of questions that were as pointed as I could make them and he was straightforward in his answers. |
저는 한문으로 된 복음서 전권을 그에게 주었고 그가 그것들을 다 읽은 후에는 한문 주석서 두 권과 『성전의 수호자(Temple Keeper)문헌』, 『영혼의 구원(Salvation of the Soul)문헌』같은 한문으로 된 소책자 몇 권, 『알기 쉬운 기독교 교리(Easy Christian Doctrine)문헌』라는 제목의 작은 책을 빌려 주었습니다.[6] 그는 우리 영어 예배에 여러 번 참석하였는데 얼마 후에 시골로 다시 내려가야 했습니다. 그는 병을 앓게 되어서 그곳에 머물러 있게 되었는데, 프랑스가 (한국정부에) 요구한 것들과 종교의 자유에 대해 토의한 것들을 듣고서 우리가 흥분하고 있던 바로 그 때, 그가 돌아 왔습니다. 이때에 그는 우리 모임[7]에 오기를 주저했습니다. 그리고 2 주 전에는 그가 참석하지 않는 것을 양해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토요일에는 방문하여서 “주일 모임에 와도 되겠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저는 물론 “와도 좋다”고 했으며 내일은 정기 성만찬 주일이니 그에게 마태복음에 있는 성만찬 제정에 대한 말씀과 주석서에서 그에 대해 설명해 놓은 것을 읽어보라고 권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했고, 예배가 끝난 후에 저에게 설교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마태복음의 말씀을 읽고, 예배시간에 있었던 일을 보고 나니 이해할 수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저에게 세례를 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세례에 대해서는 그에게 아무 것도 말한 적이 없었는데 이것은 그가 자발적으로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저는 여러 가지 질문을 할 수 있는 한 분명하게 그에게 물었고, 그는 진솔하게 대답했습니다. |
(원문 누락) |
그 작은 책문헌[8]은 기독교 교리에 대해 여러 가지 문제를 분명하게 정리해 놓은 것입니다. 저는 그에게, “세례를 받으면 이 나라 국법에 어긋나는 길을 가게 되는 것이며 이곳에 발걸음을 내딛으면 돌아 올 수 있는 길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는 이 모든 문제들에 대해 심사숙고(深思熟考)했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곳에서의 우리 사역의 첫 열매[9]로 인하여 우리는 말할 수 없이 기뻐하고 있습니다. 한국어를 아직 몇 마디밖에는 할 수 없는 단계인데도, 이곳 사람들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우리 주님께서 우리 사역에 이렇게 힘을 주신 것에 대해 어떻게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고 이곳에서 계속 우리에게 은총을 내려 주시리라 믿습니다. 복음서를 부지런히 연구하고 있는 한 두 사람이 더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볼까봐 집에서는 공부하지 못하는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이 사람은 재산이 조금 있는 편인데 이곳에 매일 와서 지금은 잘 사용되지 않는, 하인들을 위해 지어졌던 방 안에 앉아 하루 종일 복음서를 연구합니다. 그리고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보아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으면 제게로 찾아옵니다. 그러면 저는 할 수 있는 한 그에게 잘 가르쳐 주려 합니다. 성령께서 이 땅을 미리 준비시켜 두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문이 열리자 마자 혹은 공식적으로 개방되기 전에라도, 제가 한국어를 능숙하게 말할 수 있게만 되면 제가 섬길 수 있는 사람들을 곧 모두 만나 보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웃 사람들에게도 전하였는데 그 사람들은 제게 이 나라에는 기독교에 대해 자세히 공부하고 배우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이번 주일을 지내고, 그 다음 주 중에 이 사람에게 세례를 주려 합니다. |
(원문 누락) |
고아원공간 일은 아주 잘 진행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10명이 등록되어 있는데 한 아이인물는 병을 앓아 삼촌댁에 가 있으며, 모친이 생존해 있는 다른 아이는 병환 중에 있는 어머니를 찾아뵈도록 집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병을 앓고 있는 그 아이를 처음에는 제 집으로 데려 왔었지만 아이의 병세는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고아원에서 아이가 죽으면 우리에게 매우 곤란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 아이 삼촌에게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우리가 이런 일을 하는 데에는 무언가 이기적인 동기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소년들을 어떻게 하려는 지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퍼뜨려 놓았습니다. 우리가 이 아이들을 미국에 노예로 보내 버리거나, 살을 찌워서 잡아먹을 거라는 말들을 합니다. 그렇지만 당분간은 이런 일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예상해면서, 사람들에게 이런 오해를 갖게 할 만한 그 어떤 경우도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
(원문 누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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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누락) |
한문으로 된 성경과 한문 주석서 몇 권 및 소책자, 그리고 위에서 말씀드렸던 『알기 쉬운 기독교 교리(Easy Christian Doctrine)문헌』라는 제목의 책 몇 권이 제게 필요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런 것들을 위해 비용이 마련된 적이 없으며 그것들을 구할 적당한 방법이 없는 형편입니다. 늘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필요성이 증대되어 가는 많은 것들에 대해 교회가 신속히 응답해 주리라 믿습니다. |
(원문 누락) |
안녕히 계십시오. |
(원문 누락) |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인물 올림. |
주석
- ↑ 알렌의 어학교사였던 노춘경.
- ↑ 현 정동의 예원학교 부근
- ↑ 존 로스 목사의 번역본으로 추정
- ↑ 앞서 언급한 '한문으로 된 마가복음과 누가복음'
- ↑ 1984년 이전에 번역된 중국어 성경은 만주지역에서 존 로스가 번역한 버전으로 추정된다.
- ↑ 한문 복음서와 한문 소책자로 전도한 언더우드, 한국장로신문, 2009년 7월 25일자 연재기사
- ↑ 유니온 교회의 모임으로 추정
- ↑ 언더우드가 노춘경에게 빌려준 『알기 쉬운 기독교 교리(Easy Christian Doctrine)』
- ↑ 1885년 7월 15일 국내에서 최초로 조선인에게 세례를 준 일. 이날 노춘경은 세례교인이 됨. 이 날을 새문안 교회의 창립기념일이라고 말 할 수 있다.
- ↑ 1886년에 내한한 여의사.엘러스는 한국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은 인연으로 일찍부터 여성 교육 사업을 모색했다. 후에 감리교 선교사 벙커(D.A.Bunker)와 결혼하며 장로교를 떠났다. Lillias H. Underwood,『상투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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