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왕골화문석 문양/제작방법"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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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내용은 1961년 5월 3일, 언론인이자 문화재위원인 예용해 기자가 당시 마지막 남은 등메 장인 3명 중 1명인 이산룡(李山龍, 58세)씨와 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하고 그 외 찾은 자료를 추가하여 작성되었다.<br/> | 본 내용은 1961년 5월 3일, 언론인이자 문화재위원인 예용해 기자가 당시 마지막 남은 등메 장인 3명 중 1명인 이산룡(李山龍, 58세)씨와 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하고 그 외 찾은 자료를 추가하여 작성되었다.<br/> | ||
등메는 백석(白席)을 만든 후 무늬를 놓는데, 1961년 당시에 강화 교동도에는 백색을 만드는 사람은 2명, 무늬를 놓는 고로(古老)는 이씨 1명만 생존하였다고 한다. | 등메는 백석(白席)을 만든 후 무늬를 놓는데, 1961년 당시에 강화 교동도에는 백색을 만드는 사람은 2명, 무늬를 놓는 고로(古老)는 이씨 1명만 생존하였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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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왕골화문석 재료 손질'''=== | |
− | + | 왕골(완초)는 한국 특유의 작물로 4월 중순부터 5월 초순 경에 포기 사이를 15cm 정도로 옮겨 심었다가 8월 상순부터 9월 사이에 수확한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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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완초는 8월 중순 이전이면 채취되며 줄기뽑기가 끝나는 대로 분할 작업을 하여 건조시킨다. | |
− | + | *완초를 건조시킬 때는 삼각형으로 된 완초의 각(角)을 세 쪽으로 나누어 쪼개며 햇볕에 말리는 도중에 완초는 습기와 비에 약해서 날씨가 궂거나 비가 오면 습기가 스며들어 썩기가 쉬워 본래의 제 빛을 잃게 되기 때문에 볕에 오랫동안 바짝 말리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널어야 한다. | |
+ | *한편 말릴 때 찬이슬이 내리는 3∼4일간 말려야 되는데, 그것은 줄기 아랫부분은 희고, 윗부분은 푸르기 때문에 윗부분만 물에 담갔다가 햇볕에 말리는 과정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누런 색이 하얗게 바래져 윤기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주: 햇볕을 이용한 자연정련 및 표백 과정으로 볼 수 있다) | ||
+ | *이슬을 못 맞힐 때는 물이라도 축여서 완전히 바래게 한 뒤 다시 물에 넣어 골을 부드럽게 하고 또 똘똘 말린 것도 편다. | ||
+ | *이어서 다시 햇볕에 바짝 말리는데 보통 90∼100쪽씩 엮어서 널어 놓는다. 이 건조과정에서 미흡하면 변질하기 쉬운 어려운 점이 있다. | ||
+ | <ref>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저. 한국민속대관. 1980. 8. 15. http://www.krpia.co.kr/viewer/open?plctId=PLCT00004523&nodeId=NODE04001422&medaId=MEDA04107039#none</ref> | ||
− | * | + | ==='''왕골화문석 염색 작업'''=== |
− | * | + | *품질이 좋은 완초의 중간용의 대를 사용하여 문양을 내는 데 사용되는 완초에는 염색을 한다. |
− | + | *중간대 가장자리를 젖어 있는 상태에서 30∼50cm정도로 잘라 추려서 하루 종일 우물이나 날물에 담가서 그 이튿날 칼로 속을 훑어 낸 것을 분량에 따라 염색한다. 이 때 외피(外皮)만 남겨 놓아야 염료(染料)가 적게 들고 맑은 색깔을 얻을 수 있다. | |
− | * | + | *완초에 들이는 염법(染法)은 목적하는 색상(色相)의 염료를 적당한 농도로 용해하여 염색을 만든 다음 완초를 넣어 염색하는 침염법(浸染法)이다. |
− | * | + | *한번 염색물을 들일 중간대는 완초의 피와 피가 없는 깨끗하고 품질이 좋은 것이라야 색이 날지 않는다. |
− | * | + | *물들이는 색깔은 문양에 따라 색도를 정해 쓰기 좋게 한 단씩을 한 죽으로 엮어 습기가 차지않는 건조한 곳에 걸어 놓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쓴다. |
− | * | + | *시골에서는 다락이나 시렁 위에다 보관을 하고 염색을 할 때는 물감을 먼저 물에 풀어서 색의 농도를 맞춘 다음 온도조절을 하여 완초의 중간대를 담근 다음 골고루 뒤집어 제쳐서 솥뚜껑을 닫고 100℃로 완전히 끊인 후 완초를 건져 내고 찬물에 수세를 해서 말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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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화학염료(인공 염료)를 사용할 경우는 끊는 물에 물감을 먼저 넣고 왕골을 넣어 삶는다. 이때 물이 너무 뜨거우면 얼룩이 지기 쉬우므로 주의해야 한다. 왕골을 넣어 삶는 시간은 색깔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1분에서 2분 정도 걸리는 것에는 초록색, 노랑색 파랑색이 있으며, 5분 정도 걸리는 것에는 빨간색, 주황색이 있다. 적당히 삶아진 것은 건져내어 긴 줄에 걸치거나 바닥에 펼쳐 놓아 건조를 시킨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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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왕골화문석 색상'''=== |
− | + | 문양을 내는 데 사용되는 완초에는 염색을 해야 하는데, 주로 중간용의 대가 염색용으로 이용되며, 천연재료로 화문석의 문양 색깔을 내는 데 사용되는 염료는 다음과 같다. | |
− | * | + | *회색(灰色)과 흑색(黑色) : 떡갈나무 껍질을 벗겨 날물에 담가 두었다가 따뜻한 아랫목에다 놓고 하루이틀이 지나면 색깔이 우러나와 엷은 회색이 되며 더 오래 두면 흑색이 된다. |
− | * | + | *적색(赤色) : 다목나무를 쪼개 속의 붉은 부분을 날물에 담가 따뜻한 아랫목에 두고 5∼10일이 지나면 꺼내 사용하기도 하며, 완초에 물들이고자 할 때는 삶아서 붉은 색을 추출해 사용했다. |
− | * | + | *황색(黃色) : 소방목(蘇芳木)의 뿌리에서 황색의 염료를 추출하여 사용했다. 흰색만큼 이용도가 높았으며 고귀(高貴)의 상징으로서 왕실용(王室用)으로 애용되었다. |
− | + | *진황(眞黃) : 치자나무에 맺은 열매 속의 씨덩어리를 물에 담가서 으깨면 진한 황색이 우러나오는데, 색의 농도는 물에 담가 놓은 시간의 장단(長短)에 의하여 달라진다. | |
− | + | *자적(紫赤) : 일명 지초(芝草)라 불리우는 자초(紫草)를 꺽어 보면 색이 희고 매화반점이 박힌 것이 좋은 것인데, 살짝 겉가루와 속가루를 따로 받아 반죽하는 체로 쳐 시루떠 반죽만큼 물을 주어 많이 저어서 덩어리가 생기거든 단물에 풀어 담갔다가 하룻밤 재운 다음 좋은 불을 데워 밥소래에 지초를 담근 것을 국자로 하나씩 타 겉가루 물은 뜨게 해서 굵은 명주를 들이는 방법과 같으며, 노란 재의 첫물을 따로 받아 위를 덮을 때 쓰고 나중 물은 먼저 쓰되 돗자리를 펴고 멍석을 깔아 명개를 낱낱이 다 턴 후 잿물에 두어 번 골고루 주물러 짠다. 잿물에 타기 전 마지막 들인 물에 넣어 씻어 낸 후 다시 5번 물에 이긴 다음 또 재를 씌우고 씻기를 전과 같이 해서 완초(莞草)를 큰 가마솥에다 넣고 삶아 건져 내 응달로부터 서서히 햇볕에 말린다. 그래야만 염색이 날지 않으며 혼합색으로 완초에 물을 들일 수 있다. | |
+ | *남(藍) : 서늘한 날을 가리어 물들이되 쪽잎을 따서 물에 담그고 큰 바가지에 쪽을 돌로 세워 놓고 물을 쳐 가며 힘써 갈아 조빙하여 체에 다른 그릇을 받쳐 완초에 물들이되, 빛의 선도(鮮度)를 살리려면 물을 타지 말고 앞물을 받아 들여 냉수에 얼음을 넣어 여러 번 헹군 다음 다시 얼음에 담가 두면 된다. 말릴 때는 음지에서 통풍을 이용하여 되도록 빨리 건조시킨다. | ||
+ | *두록(豆綠) : 황백(黃栢)나무 껍질의 두꺼운 것을 잘게 뜯어 한 번 씻어 냉수에 담가 서늘한 데 달포 가량 두어 진이 많이 우러나 물이 미끄럽고 걸거든 완초에 염색을 한다. | ||
+ | *반물 : 쪽잎 성한 것을 가리어 물을 부처 쪽대를 씻어 위를 덮고 정한 돌로 눌러 두었다가 다음날 하루가 됐을 때 꺼내 물을 쏟으면 약간 푸른 빛을 띠는데, 이 때 명아주 잿물을 받아 두었다가 그 물에 섞고 쪽대를 왼손으로 저으면 푸른 꽃거품이 일게 될 때 완초를 곧바로 염색하면 된다. | ||
+ | (주:최근에는 화학염료로 염색한다) | ||
+ | <ref>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저. 한국민속대관. 1980. 8. 15. http://www.krpia.co.kr/viewer/open?plctId=PLCT00004523&nodeId=NODE04001422&medaId=MEDA04107039#none</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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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골화문석 제작'''=== | ||
+ | *날실로는 나일론실을 준비하여 고드렛돌에 감아 놓는다. 예전에는 칡넝쿨을 가공하여 사용하였으나 현재는 나일론실을 사용한다. | ||
+ | *고드랫돌에 감긴 날실 두개를 하나로 묶어 1.5cm 간격으로 자리틀을 매단다. | ||
+ | *왕골 겉감과 솔감을 한데 모아서 엮고 무늬는 도안에 따라 색 왕골을 덧대고 엮는다. | ||
+ | *휘갑(가장 자리가 풀리지 않도록 꿰매는 일)은 두쪽 왕골을 남겨두고 세번째 왕골을 엮어 안감 속으로 밀어 넣고 휘감아 엮는다. | ||
+ | *화문석이 다 짜여지면 나일론실로 매듭을 지어 끝을 맺은 후 완성시킨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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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골화문석 문양'''=== | ||
+ | * 용문양(龍紋樣) : 용문양(龍紋樣)은 왕실의 상징으로 진헌석(進獻席)이나 진상석(進上席)에 주로 시문되었다. 용의 몸체는 뱀과 비슷하며 비늘이 있고 네 개의 발ㆍ사슴 뿔ㆍ귀신의 눈ㆍ소의 귀 같은 형상을 하고 여의주(如意珠)를 가운데에 구름을 머리 위로 자유로이 율동하는 형상이 많이 표현되었고, 여기에 거북과 함께 시문되는 경우가 많다. | ||
+ | ② 호문양(虎紋樣) | ||
+ | 호문양(虎紋樣)은 학(鶴)이나 까치를 동반해서 잘 표현되며, 이 밖에도 대나무ㆍ소나무ㆍ바위 등이 어우려져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패턴은 민화(民畵)에서도 보이고 있다. | ||
+ | ③ 원앙과 봉황 | ||
+ | 바깥사슬과 안사슬을 지어 놓고 문자를 좌우사방에 배치, 원앙을 짝지어 부부애를 상징하는 무늬로 많이 사용되었다. 길상적(吉祥的) 의미를 지닌 봉황문은 아름다운 색채가 곁들여져 화문석에 즐겨 사용되었다. | ||
+ | ④ 학문양(鶴紋樣) | ||
+ | 장수길상(長壽吉祥)을 상징하는 학의 우아 청초한 형태감이 풍부한 표현으로 표현되었다. 대개 한쌍으로 화문석(花紋席)에 많이 사용되었고 배경은 구름무늬가 주류를 이룬다. 학의 형태는 조용히 허공을 스치는 형, 구름을 박차고 오르는 형, 짝지어 나르는 형 등 다양하다. 학무늬는 구름무늬와 더불어 소나무나 불로초(不老草) 혹은 수자(壽字)와 더불어 잘 나타난다. | ||
+ | 식물문양(植物紋樣)들은 좌우대칭으로 마주 보게 짝지어 표현하는 것이 상례이며 또한 이들 문양에는 항상 뇌문(雷紋)이나 만자문(卍字紋)이 곁들여진다. | ||
+ | ⑤ 매화문(梅花紋) | ||
+ | 매화문(梅花紋)은 1지(枝)의 단독무늬이며 화문석(花紋席)에 즐겨 사용되고, 근래에 와서는 형태가 매우 갸날프고 뜸을 놓은 게 특징이다. | ||
+ | ⑥ 모란문양(牡丹紋樣) | ||
+ | 고려(高麗)를 상징하는 모란문양(牡丹紋樣)은 일반적으로 수복(壽福)ㆍ부귀(富貴)ㆍ만자문(卍字紋)과 곁들여져 표현된다. | ||
+ | 이 밖에도 화문석에는 뇌문(雷紋)과 만자문(卍字紋) 그리고 쌍희자문(雙喜字紋) 등이 많이 시문된다. 이들 문양은 직선과 곡선의 평면도 구성에 의한 기하문(畿何紋)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 ||
+ | 뇌문(雷紋)은 아자문(亞字紋)과 같이 대상(帶狀)으로 연속되어 자리의 가장자리를 장식한다. 그래서 이 문양은 단독문양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별로 없으며 항상 주제(主題) 내용(內容)의 종적(從的) 장식으로 자리 주변에 돌려진다. | ||
+ | 또한 문자문양(文字紋樣)들이 있는데, 이것은 한자의 조형성과 거기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 때문에 도안화 된 것이다. | ||
+ | 근대에 와서 화문석에 주로 등장하는 문양은 거북ㆍ사슴ㆍ학(鶴) 등 3대 장생동물(長生動物)과 '수복강녕(壽福康寧)'ㆍ'만수무강(萬壽無疆)'ㆍ구름ㆍ소나무 등이며, 이 밖에도 명승지나 민속행사와 같은 소재가 희화성 높게 표현되기도 한다. | ||
(주:무늬를 제작하는 시간은 손이 무척 빠른 이씨에게 해당하며, 현재 기준으로 하면 안될 것으로 여겨진다) | (주:무늬를 제작하는 시간은 손이 무척 빠른 이씨에게 해당하며, 현재 기준으로 하면 안될 것으로 여겨진다) | ||
− | ===''' | + | ==='''왕골화문석 완성'''=== |
*백석에 위와 같은 방식으로 무늬를 놓은 다음에는 뒤에 부들기직을 댄다. | *백석에 위와 같은 방식으로 무늬를 놓은 다음에는 뒤에 부들기직을 댄다. | ||
*가장자리에 남색 모단(毛緞)으로 선둘러 꾸미면 완성된다. | *가장자리에 남색 모단(毛緞)으로 선둘러 꾸미면 완성된다. |
2019년 6월 25일 (화) 01:38 판
목차
개요
등메의 재료인 참골은 왕골과는 달리 대궁이가 똥글똥글하고 가늘며 ‘조리풀’로도 불리는 일년생풀로 논두렁에 덤불진 자연생골 즉 ‘돌골’을, 그 돌골을 물이 마르지 않는 무논에 떠다 옮겨 1년을 잘 가꾸어 부들부들한 참골이 되게 한 후에, 기본 7가지 색상으로 물을 들인 후 먼저 돗틀로 백석(白席)을 제작하고 물들인 참골로 무늬를 덧입힌 후에, 다음에는 뒤에 부들기직을 대고, 가장자리에 남색 모단(毛緞)으로 선둘러 꾸며 완성된다.
해설
본 내용은 1961년 5월 3일, 언론인이자 문화재위원인 예용해 기자가 당시 마지막 남은 등메 장인 3명 중 1명인 이산룡(李山龍, 58세)씨와 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하고 그 외 찾은 자료를 추가하여 작성되었다.
등메는 백석(白席)을 만든 후 무늬를 놓는데, 1961년 당시에 강화 교동도에는 백색을 만드는 사람은 2명, 무늬를 놓는 고로(古老)는 이씨 1명만 생존하였다고 한다.
왕골화문석 재료 손질
왕골(완초)는 한국 특유의 작물로 4월 중순부터 5월 초순 경에 포기 사이를 15cm 정도로 옮겨 심었다가 8월 상순부터 9월 사이에 수확한다.br/>
- 완초는 8월 중순 이전이면 채취되며 줄기뽑기가 끝나는 대로 분할 작업을 하여 건조시킨다.
- 완초를 건조시킬 때는 삼각형으로 된 완초의 각(角)을 세 쪽으로 나누어 쪼개며 햇볕에 말리는 도중에 완초는 습기와 비에 약해서 날씨가 궂거나 비가 오면 습기가 스며들어 썩기가 쉬워 본래의 제 빛을 잃게 되기 때문에 볕에 오랫동안 바짝 말리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널어야 한다.
- 한편 말릴 때 찬이슬이 내리는 3∼4일간 말려야 되는데, 그것은 줄기 아랫부분은 희고, 윗부분은 푸르기 때문에 윗부분만 물에 담갔다가 햇볕에 말리는 과정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누런 색이 하얗게 바래져 윤기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주: 햇볕을 이용한 자연정련 및 표백 과정으로 볼 수 있다)
- 이슬을 못 맞힐 때는 물이라도 축여서 완전히 바래게 한 뒤 다시 물에 넣어 골을 부드럽게 하고 또 똘똘 말린 것도 편다.
- 이어서 다시 햇볕에 바짝 말리는데 보통 90∼100쪽씩 엮어서 널어 놓는다. 이 건조과정에서 미흡하면 변질하기 쉬운 어려운 점이 있다.
왕골화문석 염색 작업
- 품질이 좋은 완초의 중간용의 대를 사용하여 문양을 내는 데 사용되는 완초에는 염색을 한다.
- 중간대 가장자리를 젖어 있는 상태에서 30∼50cm정도로 잘라 추려서 하루 종일 우물이나 날물에 담가서 그 이튿날 칼로 속을 훑어 낸 것을 분량에 따라 염색한다. 이 때 외피(外皮)만 남겨 놓아야 염료(染料)가 적게 들고 맑은 색깔을 얻을 수 있다.
- 완초에 들이는 염법(染法)은 목적하는 색상(色相)의 염료를 적당한 농도로 용해하여 염색을 만든 다음 완초를 넣어 염색하는 침염법(浸染法)이다.
- 한번 염색물을 들일 중간대는 완초의 피와 피가 없는 깨끗하고 품질이 좋은 것이라야 색이 날지 않는다.
- 물들이는 색깔은 문양에 따라 색도를 정해 쓰기 좋게 한 단씩을 한 죽으로 엮어 습기가 차지않는 건조한 곳에 걸어 놓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쓴다.
- 시골에서는 다락이나 시렁 위에다 보관을 하고 염색을 할 때는 물감을 먼저 물에 풀어서 색의 농도를 맞춘 다음 온도조절을 하여 완초의 중간대를 담근 다음 골고루 뒤집어 제쳐서 솥뚜껑을 닫고 100℃로 완전히 끊인 후 완초를 건져 내고 찬물에 수세를 해서 말린다.
- 화학염료(인공 염료)를 사용할 경우는 끊는 물에 물감을 먼저 넣고 왕골을 넣어 삶는다. 이때 물이 너무 뜨거우면 얼룩이 지기 쉬우므로 주의해야 한다. 왕골을 넣어 삶는 시간은 색깔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1분에서 2분 정도 걸리는 것에는 초록색, 노랑색 파랑색이 있으며, 5분 정도 걸리는 것에는 빨간색, 주황색이 있다. 적당히 삶아진 것은 건져내어 긴 줄에 걸치거나 바닥에 펼쳐 놓아 건조를 시킨다.
왕골화문석 색상
문양을 내는 데 사용되는 완초에는 염색을 해야 하는데, 주로 중간용의 대가 염색용으로 이용되며, 천연재료로 화문석의 문양 색깔을 내는 데 사용되는 염료는 다음과 같다.
- 회색(灰色)과 흑색(黑色) : 떡갈나무 껍질을 벗겨 날물에 담가 두었다가 따뜻한 아랫목에다 놓고 하루이틀이 지나면 색깔이 우러나와 엷은 회색이 되며 더 오래 두면 흑색이 된다.
- 적색(赤色) : 다목나무를 쪼개 속의 붉은 부분을 날물에 담가 따뜻한 아랫목에 두고 5∼10일이 지나면 꺼내 사용하기도 하며, 완초에 물들이고자 할 때는 삶아서 붉은 색을 추출해 사용했다.
- 황색(黃色) : 소방목(蘇芳木)의 뿌리에서 황색의 염료를 추출하여 사용했다. 흰색만큼 이용도가 높았으며 고귀(高貴)의 상징으로서 왕실용(王室用)으로 애용되었다.
- 진황(眞黃) : 치자나무에 맺은 열매 속의 씨덩어리를 물에 담가서 으깨면 진한 황색이 우러나오는데, 색의 농도는 물에 담가 놓은 시간의 장단(長短)에 의하여 달라진다.
- 자적(紫赤) : 일명 지초(芝草)라 불리우는 자초(紫草)를 꺽어 보면 색이 희고 매화반점이 박힌 것이 좋은 것인데, 살짝 겉가루와 속가루를 따로 받아 반죽하는 체로 쳐 시루떠 반죽만큼 물을 주어 많이 저어서 덩어리가 생기거든 단물에 풀어 담갔다가 하룻밤 재운 다음 좋은 불을 데워 밥소래에 지초를 담근 것을 국자로 하나씩 타 겉가루 물은 뜨게 해서 굵은 명주를 들이는 방법과 같으며, 노란 재의 첫물을 따로 받아 위를 덮을 때 쓰고 나중 물은 먼저 쓰되 돗자리를 펴고 멍석을 깔아 명개를 낱낱이 다 턴 후 잿물에 두어 번 골고루 주물러 짠다. 잿물에 타기 전 마지막 들인 물에 넣어 씻어 낸 후 다시 5번 물에 이긴 다음 또 재를 씌우고 씻기를 전과 같이 해서 완초(莞草)를 큰 가마솥에다 넣고 삶아 건져 내 응달로부터 서서히 햇볕에 말린다. 그래야만 염색이 날지 않으며 혼합색으로 완초에 물을 들일 수 있다.
- 남(藍) : 서늘한 날을 가리어 물들이되 쪽잎을 따서 물에 담그고 큰 바가지에 쪽을 돌로 세워 놓고 물을 쳐 가며 힘써 갈아 조빙하여 체에 다른 그릇을 받쳐 완초에 물들이되, 빛의 선도(鮮度)를 살리려면 물을 타지 말고 앞물을 받아 들여 냉수에 얼음을 넣어 여러 번 헹군 다음 다시 얼음에 담가 두면 된다. 말릴 때는 음지에서 통풍을 이용하여 되도록 빨리 건조시킨다.
- 두록(豆綠) : 황백(黃栢)나무 껍질의 두꺼운 것을 잘게 뜯어 한 번 씻어 냉수에 담가 서늘한 데 달포 가량 두어 진이 많이 우러나 물이 미끄럽고 걸거든 완초에 염색을 한다.
- 반물 : 쪽잎 성한 것을 가리어 물을 부처 쪽대를 씻어 위를 덮고 정한 돌로 눌러 두었다가 다음날 하루가 됐을 때 꺼내 물을 쏟으면 약간 푸른 빛을 띠는데, 이 때 명아주 잿물을 받아 두었다가 그 물에 섞고 쪽대를 왼손으로 저으면 푸른 꽃거품이 일게 될 때 완초를 곧바로 염색하면 된다.
(주:최근에는 화학염료로 염색한다) [2]
왕골화문석 제작
- 날실로는 나일론실을 준비하여 고드렛돌에 감아 놓는다. 예전에는 칡넝쿨을 가공하여 사용하였으나 현재는 나일론실을 사용한다.
- 고드랫돌에 감긴 날실 두개를 하나로 묶어 1.5cm 간격으로 자리틀을 매단다.
- 왕골 겉감과 솔감을 한데 모아서 엮고 무늬는 도안에 따라 색 왕골을 덧대고 엮는다.
- 휘갑(가장 자리가 풀리지 않도록 꿰매는 일)은 두쪽 왕골을 남겨두고 세번째 왕골을 엮어 안감 속으로 밀어 넣고 휘감아 엮는다.
- 화문석이 다 짜여지면 나일론실로 매듭을 지어 끝을 맺은 후 완성시킨다.
왕골화문석 문양
- 용문양(龍紋樣) : 용문양(龍紋樣)은 왕실의 상징으로 진헌석(進獻席)이나 진상석(進上席)에 주로 시문되었다. 용의 몸체는 뱀과 비슷하며 비늘이 있고 네 개의 발ㆍ사슴 뿔ㆍ귀신의 눈ㆍ소의 귀 같은 형상을 하고 여의주(如意珠)를 가운데에 구름을 머리 위로 자유로이 율동하는 형상이 많이 표현되었고, 여기에 거북과 함께 시문되는 경우가 많다.
② 호문양(虎紋樣) 호문양(虎紋樣)은 학(鶴)이나 까치를 동반해서 잘 표현되며, 이 밖에도 대나무ㆍ소나무ㆍ바위 등이 어우려져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패턴은 민화(民畵)에서도 보이고 있다. ③ 원앙과 봉황 바깥사슬과 안사슬을 지어 놓고 문자를 좌우사방에 배치, 원앙을 짝지어 부부애를 상징하는 무늬로 많이 사용되었다. 길상적(吉祥的) 의미를 지닌 봉황문은 아름다운 색채가 곁들여져 화문석에 즐겨 사용되었다. ④ 학문양(鶴紋樣) 장수길상(長壽吉祥)을 상징하는 학의 우아 청초한 형태감이 풍부한 표현으로 표현되었다. 대개 한쌍으로 화문석(花紋席)에 많이 사용되었고 배경은 구름무늬가 주류를 이룬다. 학의 형태는 조용히 허공을 스치는 형, 구름을 박차고 오르는 형, 짝지어 나르는 형 등 다양하다. 학무늬는 구름무늬와 더불어 소나무나 불로초(不老草) 혹은 수자(壽字)와 더불어 잘 나타난다. 식물문양(植物紋樣)들은 좌우대칭으로 마주 보게 짝지어 표현하는 것이 상례이며 또한 이들 문양에는 항상 뇌문(雷紋)이나 만자문(卍字紋)이 곁들여진다. ⑤ 매화문(梅花紋) 매화문(梅花紋)은 1지(枝)의 단독무늬이며 화문석(花紋席)에 즐겨 사용되고, 근래에 와서는 형태가 매우 갸날프고 뜸을 놓은 게 특징이다. ⑥ 모란문양(牡丹紋樣) 고려(高麗)를 상징하는 모란문양(牡丹紋樣)은 일반적으로 수복(壽福)ㆍ부귀(富貴)ㆍ만자문(卍字紋)과 곁들여져 표현된다. 이 밖에도 화문석에는 뇌문(雷紋)과 만자문(卍字紋) 그리고 쌍희자문(雙喜字紋) 등이 많이 시문된다. 이들 문양은 직선과 곡선의 평면도 구성에 의한 기하문(畿何紋)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뇌문(雷紋)은 아자문(亞字紋)과 같이 대상(帶狀)으로 연속되어 자리의 가장자리를 장식한다. 그래서 이 문양은 단독문양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별로 없으며 항상 주제(主題) 내용(內容)의 종적(從的) 장식으로 자리 주변에 돌려진다. 또한 문자문양(文字紋樣)들이 있는데, 이것은 한자의 조형성과 거기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 때문에 도안화 된 것이다. 근대에 와서 화문석에 주로 등장하는 문양은 거북ㆍ사슴ㆍ학(鶴) 등 3대 장생동물(長生動物)과 '수복강녕(壽福康寧)'ㆍ'만수무강(萬壽無疆)'ㆍ구름ㆍ소나무 등이며, 이 밖에도 명승지나 민속행사와 같은 소재가 희화성 높게 표현되기도 한다. (주:무늬를 제작하는 시간은 손이 무척 빠른 이씨에게 해당하며, 현재 기준으로 하면 안될 것으로 여겨진다)
왕골화문석 완성
- 백석에 위와 같은 방식으로 무늬를 놓은 다음에는 뒤에 부들기직을 댄다.
- 가장자리에 남색 모단(毛緞)으로 선둘러 꾸미면 완성된다.
시각자료
사진
등메_이산룡
돗틀
등메
영국 박물관 소장
체제공 초상화 속 등메(로 추정)
출처
-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저. 한국민속대관. 1980. 8. 15. http://www.krpia.co.kr/viewer/open?plctId=PLCT00004523&nodeId=NODE04001422&medaId=MEDA04107039#none
-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저. 한국민속대관. 1980. 8. 15. http://www.krpia.co.kr/viewer/open?plctId=PLCT00004523&nodeId=NODE04001422&medaId=MEDA04107039#none
기여
일자 역할 이름 전공 2019년 6월 정리 및 편집 손형남 인문정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