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사직단(社稷壇)"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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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교궁(校宮): 강화향교를 이르는 말이다. |
2019년 5월 1일 (수) 08:30 기준 최신판
一府城中社稷壇 (일부성중사직단) 강화부 성중에 사직단이 있으니,
萬千家戶賴而安 (만천가호뢰이안) 수많은 백성들이 힘을 입고 편안해지네.
蒸民乃粒無非極 (증민내립무비극) 백성은 곡식을 지극히 여기지 않음이 없으니,
厚德元來氣鬱盤 (후덕원래기울반) 후덕함이 원래부터 가득 서려 있었다오.
○ 사직사(社稷祠)는 부성(府城) 북문 안의 교궁(校宮)의 동쪽에 있다. 나라의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영조 갑자년(1744)에 유수 김시혁(金始爀)이 세웠다.
○ 부(府)의 사직사는 단의 남쪽 조금 낮은 곳에 있다.
○ 사직단(社稷壇)은 부성의 소서문(小西門) 안에 있다.
기행지도
인물
- 김시혁(金始爀)(1676∼1750) 본관은 강릉. 자는 회이(晦而), 호는 매곡(梅谷).
참고
- 교궁(校宮): 강화향교를 이르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