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같은 사용자에 의한 8개의 중간 편집이 숨겨짐) |
2번째 줄: |
2번째 줄: |
| 이 페이지는 고려대 철학과 대학원 동양철학전공 원전 강독 세미나([[의적단]])의 일환으로 작성되었다. <br/> | | 이 페이지는 고려대 철학과 대학원 동양철학전공 원전 강독 세미나([[의적단]])의 일환으로 작성되었다. <br/> |
| 전습록은 명대 유학자인 [[왕양명]]의 어록과 서간을 모은 책이다. 원전 인용은 다음의 사이트를 이용할 것: [https://zh.wikisource.org/wiki/%E5%82%B3%E7%BF%92%E9%8C%84], [https://ctext.org/wiki.pl?if=gb&res=873181] | | 전습록은 명대 유학자인 [[왕양명]]의 어록과 서간을 모은 책이다. 원전 인용은 다음의 사이트를 이용할 것: [https://zh.wikisource.org/wiki/%E5%82%B3%E7%BF%92%E9%8C%84], [https://ctext.org/wiki.pl?if=gb&res=873181] |
| + | 전습록의 양이 많아 크게 상/중/하 세 파트로 나눈다. |
| | | |
− | ==전습록 상편== | + | ==[[전습록 상편]]== |
− | ===傳習錄序===
| + | |
− | :門人有私錄陽明先生之言者。先生聞之,謂之曰:「聖賢教人,如醫用藥,皆因病立方,酌其虛、實、溫、涼、陰、陽、內、外而時時加減之。要在去病,初無定說。若拘執一方,鮮不殺人矣。今某與諸君不過各就偏蔽,箴切砥礪,但能改化,即吾言已為贅疣。若遂守為成訓,他日誤己誤人,某之罪過可復追贖乎?」 愛既備錄先生之教,同門之友有以是相規者。愛因謂之曰:「如子之言,即又『拘執一方』,復失先生之意矣。孔子謂子貢嘗曰:『予欲無言。』他日則曰:『吾與回言終日。』又何言之不一邪?蓋子貢專求聖人於言語之間,故孔子以無言警之,使之實體諸心以求自得;顏子於孔子之言,默識心通,無不在己,故與之言終日,若決江河而之海也。故孔子於子貢之無言不為少,於顏子之終日言不為多,各當其可而已。今備錄先生之語,固非先生之所欲。使吾儕常在先生之門,亦何事於此。惟或有時而去側,同門之友又皆離群索居,當是之時,儀刑既遠而規切無聞。如愛之駑劣,非得先生之言時時對越警發之,其不摧墮靡廢者幾希矣。吾儕於先生之言,苟徒入耳出口,不體諸身,則愛之錄此,實先生之罪人矣;使能得之言意之表,而誠諸踐履之實,則斯錄也,固先生終日言之之心也,可少乎哉?」錄成,因復識此於首篇以告同志。門人徐愛序。
| + | |
− | :*문인 중에 양명선생의 말씀을 개인적으로 기록한 자가 있었다. 선생께서 이를 들으시고는 말씀하셨다: “성현께서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마치 의사가 약을 쓰는 것과 같아, 늘 병에 따라 처방을 만들어 그 허실, 온량, 음양, 내외를 참작해 상황에 따라 더하기고 덜기도 하니, 핵심은 병을 제거하는 데 있지 애당초 정해진 설은 없다. 만약 하나의 처방에 집착한다면 환자를 죽이지 않는 경우가 드물 것이다. 지금 나와 제군은 각각 편폐한 부분에 대해 경계하고 연마하는 것에 불과하니, 편폐를 고쳐 변화할 수 있으면 곧 내 말은 이미 군더더기가 되어있을 것이다.<ref>장자 외물 荃者所以在魚,得魚而忘荃;蹄者所以在兔,得兔而忘蹄;言者所以在意,得意而忘言。吾安得忘言之人而與之言哉?</ref> 만일 그런데도 내 말을 굳게 지켜 완성된 가르침으로 삼는다면, 훗날에는 나를 오도하고 남도 오도할 것이니, 내 잘못을 다시 속죄할 수 있겠는가?” 내가 선생의 가르침을 잘 기록해두었고 같은 문하의 벗이 이를 살펴보았기에, 내가 이를 가지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의 말씀은 곧 또 하나의 처방에 집착하는 것이니 다시 선생님의 뜻을 어긴 것입니다. 공자께서 일찍이 자공에게 ‘나는 말하지 않으련다!’라고 하시고는,<ref>논어 양화 子曰:「予欲無言。」子貢曰:「子如不言,則小子何述焉?」子曰:「天何言哉?四時行焉,百物生焉,天何言哉?」</ref> 나중에 ‘나는 안회와 종일토록 말하였다’고 하셨으니,<ref>논어 위정 子曰:「吾與回言終日,不違如愚。退而省其私,亦足以發。回也,不愚。」</ref> 또 어째서 말이 한결같지 않은 것입니까? 대개 자공은 오직 말에서 성인을 구하고자 했기 때문에 공자께서 ‘말하지 않겠다’는 말로 경계하셔서 자공으로 하여금 마음에 실질적으로 체득하여 자득하기를 구하게 하셨고, 안자는 공자의 말씀에 대해 묵묵히 이해하고 마음으로 통달하여 자기에게 있지 않은 것이 없었으므로 공자께서 그와 종일토록 말씀하신 것이 마치 장강과 황하를 터서 바다로 가게 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자공에게 말씀하시지 않은 것은 적은 게 아니고, 안자와 종일토록 말씀하신 것은 많은 게 아니니, 각각 옳음에 맞았을 따름입니다. 지금 선생님의 말씀을 잘 기록한 것은 진실로 선생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닌데, 저희가 늘 선생님의 문하에 있다면 어찌 이를 일삼겠습니까? 혹시 때에 따라 선생님 곁을 떠나거나, 같은 문하의 벗들이 모두 문하를 떠나 독립하면<ref>《禮記‧檀弓上》 吾離群而索居,亦已久矣。</ref> 이때 본보기(선생님)<ref> 《詩‧大雅‧文王》: “儀刑文王, 萬邦作孚。” </ref>는 멀고 훈계는 들을 수 없을 것이니, 노둔한 제가 선생님의 말씀을 얻어 때때로 대하여 경계하지 않는다면 꺾이고 쓰러지지 않는 경우가 드물 것입니다. 저희들이 선생님의 말씀에 대해 만약 그저 귀에 들어와 입으로 나갈 뿐 몸에 체득하지 않는다면, 제가 이를 기록한 것은 진실로 선생님의 죄인이 되는 짓이겠지만, 말의 표면에서 터득하여 실천의 결과에 충실하다면, 이 기록은 진실로 선생님께서 종일토록 말씀하신 마음일 것이니 적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전습록을 완성하고서 다시 이를 책의 첫머리에 기록하여 동지들에게 고한다. 문인 서애가 서문을 쓰노라.
| + | |
| | | |
− | ===徐愛引言=== | + | ==[[전습록 중편]]== |
− | :先生於《大學》「格物」諸說,悉以舊本為正,蓋先儒所謂「誤本」者也。愛始聞而駭,既而疑,已而殫精竭思,參互錯綜以質於先生。然後知先生之說若水之寒,若火之熱,斷斷乎「百世以俟聖人而不惑」者也。先生明睿天授,然和樂坦易,不事邊幅。人見其少時豪邁不羈,又嘗泛濫於詞章,出入二氏之學,驟聞是說,皆目以為立異好奇,漫不省究。不知先生居夷三載,處困養靜,精一之功,固已超入聖域,粹然大中至正之歸矣。
| + | |
− | :*양명 선생께서는 《대학》「격물」에 대한 여러 설 가운데 전적으로 구본을 정본으로 여기셨으니, 대개 선유(朱子)가 말했던 誤本이었다.<ref> 대학혹문 曰、程子之改親爲新也何所據、子之從之又何所考、而必其然耶。且以己意輕改經文。恐非傳疑之義。奈何。曰、若無所考而輒改之、則誠若吾子之譏矣。今親民云者、以文義推之則無理。新民云者、以傳文考之則有據。程子於此其所以處之者亦已審矣。矧未嘗去其本文、而但曰某當作某、是乃漢儒釋經不得已之變例、而亦何害於傳疑耶。若必以不改爲是、則世蓋有承誤踵訛、心知非是、而故爲穿鑿附會、以求其說之必通者矣。其侮聖言而誤後學也益甚。亦何足取以爲法耶。</ref> 내가 이를 처음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가 잠시후 의심이 들어, 이윽고 사려를 다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ref>계사상
| + | |
− | 參伍以變,錯綜其數</ref> 선생에게 질정하였는데, 그런 연후에야 선생의 설이 마치 물이 찬 것처럼 혹은 불이 뜨거운 것처럼 틀림없이 '백 세 이후의 성인을 기다리더라도 의심할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선생의 총명은 타고나셨으나 화락하고 평이하셔서 극단적인 것을 일삼지 않으셨다. 사람들은 선생이 어렸을 때 호탕하고 [규범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또 일찍이 사장학에 빠지고 도불의 학문에 출입한 것은 보았기 때문에 선생의 설을 듣자마자 모두 손가락질하며 기이한 설을 세우길 좋아하여 제멋대로일 뿐 반성할 줄 모른다고 여겼지만, 선생께서 오랑캐 땅에 3년간 사시며 곤궁함에 처해 고요함을 기르실 때 精一한 공부<ref>상서 대우모 人心惟危,道心惟微,惟精惟一,允執厥中。</ref>가 진실로 이미 성인의 경지, 순수하고 지극히 중정한 귀결로 超入하셨음을 알지 못하였다.
| + | |
− | :愛朝夕炙門下,但見先生之道,即之若易而仰之愈高,見之若粗而探之愈精,就之若近而造之愈益無窮,十餘年來,竟未能窺其藩籬。世之君子,或與先生僅交一面,或猶未聞其謦欬<ref>장자 서무귀 夫逃虛空者,藜、藋柱乎鼪、鼬之逕,踉位其空,聞人足音跫然而喜矣,而況乎兄弟親戚之謦欬其側者乎!久矣夫!莫以真人之言謦欬吾君之側乎!</ref>,或先懷忽易憤激之心,而遽欲於立談之間,傳聞之說,臆斷懸度,如之何其可得也!從遊之士,聞先生之教,往往得一而遺二,見其牝牡驪黃而棄其所謂千里者。故愛備錄平日之所聞,私以示夫同志,相與考而正之,庶無負先生之教云。門人徐愛書。
| + | |
− | :*내가 아침저녁으로 선생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았지만, 선생의 도를 보건대, 다가가면 쉬운 것 같은데 우러르면 더욱 높아지고, 볼 때는 거친 것 같은데 더듬어보면 더욱 정밀하며, 향해보면 가까운 것 같은데 나아가보면 더욱 끝이 없으니, 십여 년 동안 끝내 그 끝을 알 수 없었다. 세상의 군자들이 혹 선생과 겨우 일면식만 있거나, 혹 여전히 선생의 말씀을 듣지 못했거나, 혹 앞서 선생을 얕잡아 보거나 선생에 대해 분노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더라도 바로 잠깐 사이에 전해들은 설에 대해 근거없이 억측하려고 하더라도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종유하는 선비들은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 종종 하나만 얻고 둘은 빠뜨리며, 그것의 성별이나 색깔은 보면서 이른바 '천리'라는 건 빠뜨렸다.<ref>회남자 도응훈 秦穆公謂伯樂曰:「子之年長矣。子姓有可使求馬者乎?」對曰:「良馬者,可以形容筋骨相也。相天下之馬者,若滅若失,若亡其一。若此馬者,絕塵弭轍。臣之子皆下材也,可告以良馬,而不可告以天下之馬。臣有所與供儋纏采薪者方九堙,此其于馬,非臣之下也。請見之。」穆公見之,使之求馬。三月而反報曰:「已得馬矣。在於沙丘。」穆公曰:「何馬也?」對曰:「牡而黃。」使人往取之,牝而驪。穆公不說。召伯樂而問之曰:「敗矣。子之所使求者。毛物、牝牡弗能知,又何馬之能知?」伯樂喟然大息曰:「一至此乎!是乃其所以千萬臣而無數者也。若堙之所觀者,天機也。得其精而忘其粗,在內而忘其外,見其所見而不見其所不見,視其所視而遺其所不視。若彼之所相者,乃有貴乎馬者!」馬至,而果千里之馬。故老子曰:「大直若屈,大巧若拙。」 </ref> 그러므로 내가 평소에 들었던 바를 갖추어 기록하여 개인적으로 동지들에게 보이니, 함께 상고하여 바로잡는다면 아마도 선생의 가르침을 져버리지 않을 것이다. 문인 서애가 쓰노라.
| + | |
| | | |
− | ===以下門人徐愛錄=== | + | ==[[전습록 하편]]== |
− | :1. 愛問:「『在親民』,朱子謂當作新民。後章『作新民』之文似亦有據。先生以為宜從舊本『作親民』,亦有所據否」?
| + | |
− | :*서애가 물었다: "'在親民'에서 주자는 新民으로 고쳐야 한다고 하였는데, 뒷 장의 '作新民'이라는 글에 아마 근거가 있는 것 같습니다.<ref>대학장구 湯之盤銘曰:「苟日新,日日新,又日新。」 康誥曰:「作新民。」</ref> 선생께서는 의당 옛 판본의 '作親民'을 따라야한다고 여기시니, 역시 근거하시는 바가 있으시겠죠?" <br/>
| + | |
− | : 先生曰:「『作新民』之『新』,是自新之民,與『在新民』之『新』不同。此豈足為據?『作』字卻與『親』字相對,然非『親』字義。下面治國平天下處,皆於『新』字無發明。如云『君子賢其賢而親其親。小人樂其樂而利其利』。『如保赤子』。『民之所好好之。民之所惡惡之。此之謂民之父母之類』。皆是『親』字意。『親民』猶孟子『親親仁民』之謂。親之即仁之也。百姓不親,舜使契為司徒,敬敷五教,所以親之也。堯典『克明峻德』便是『明明德』。『以親九族』,至『平章協和』,便是『親民』,便是『明明德於天下』。又如孔子言『修己以安百姓』。『修己』便是『明明德』。『安百姓』便是『親民』。說親民便是兼教養意。說新民便覺偏了」。
| + | |
−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作新民'의 '新'은 스스로 새로워진 백성이니,<ref>대학장구 鼓之舞之之謂作,言振起其自新之民也。</ref> '在新民'의 '新'과는 같지 않다. 이것이 어찌 근거가 될 수 있겠는가? '作'자는 '親'자와 상대되지만 '親'자의 뜻은 아니다. 아래의 治國平天下 부분은 모두 '新'자를 발명하는 점이 없다. 예를 들어, '군자는 어진 이를 어질게 대접하고 친한 이를 친애하지만, 소인은 즐거움을 즐기고 이익을 이롭게 여긴다'<ref>대학장구 君子賢其賢而親其親,小人樂其樂而利其利</ref>, '핏덩이를 보호하듯이 한다'<ref>대학장구 康誥曰「如保赤子」</ref>, '백성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백성들이 싫어하는 것을 싫어한다'<ref>대학장구 詩云:「樂只君子,民之父母。」民之所好好之,民之所惡惡之,此之謂民之父母。</ref>는 말들은 모두 '親'자의 의미이다. '親民'은 맹자의 '어버이를 친애하고 백성을 어질게 대한다'<ref>맹자 진심상 孟子曰:「君子之於物也,愛之而弗仁;於民也,仁之而弗親。親親而仁民,仁民而愛物。」</ref>는 뜻과 같으니, 친애함은 곧 어질게 대함이다. 백성이 친애하지 않아 순이 설을 사도로 삼아 五教를 공순히 펴게 하시니,<ref>상서 우서 순전 帝曰:「契,百姓不親,五品不遜。汝作司徒,敬敷五教,在寬。」</ref> 그래서 백성이 친애하게 된 것이다. 요전의 '능히 높은 덕을 밝힌다'는 것이 곧 '明明德'이고, '이로써 구족을 친애한다'에서 '[백성을] 고르게 밝혀서 [만방을] 조화롭게 한다'는 것이 '親民'이며 '明明德於天下'다.<ref>상서 요전 曰若稽古帝堯,曰放勳,欽、明、文、思、安安,允恭克讓,光被四表,格于上下。克明俊德,以親九族。九族既睦,平章百姓。百姓昭明,協和萬邦。黎民於變時雍。</ref> 또 공자께서 '자신을 수양해 백성을 편안케 한다'<ref>논어 헌문 子路問君子。子曰:「脩己以敬。」曰:「如斯而已乎?」曰:「脩己以安人。」曰:「如斯而已乎?」曰:「脩己以安百姓。脩己以安百姓,堯舜其猶病諸!」</ref>고 말씀하신 것의 경우, '자신을 수양함'은 '明明德'이고 '백성을 편안케 함'은 '親民'이다. 親民을 말하면 곧 가르치고 기르는 뜻을 겸하지만, 新民을 말하면 치우침을 알 수 있다."
| + | |
− | <br/>
| + | |
− | :2. 愛問:「『知止而後有定』,朱子以為『事事物物皆有定理』,似與先生之說相戾」。
| + | |
− | :*서애가 물었다: "'知止而後有定'에 대해 주자는 '각각의 사물에 모두 정해진 이치가 있다'<ref>대학혹문 知止云者、物格知至而於天下之事皆有以知其至善之所在。是則吾所當止之地也。能知所止、則方寸之閒、事事物物、皆有定理矣。</ref>고 하였는데, 선생님의 설과 어긋나는 것 같습니다."
| + | |
− | :先生曰:「於事事物物上求至善,卻是義外也。至善是心之本體。只是明明德到至精至一處便是。然亦未嘗離卻事物。本注所謂『盡夫天理之極,而無一毫人欲之私』者,得之」。
| + | |
−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각 사물에서 至善을 구하는 것은 義를 외부에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ref>맹자 고자상 告子曰:「食色,性也。仁,內也,非外也;義,外也,非內也。」</ref> 至善은 마음의 본체이다. 그저 明德을 밝혀 지극히 精一한 경지에 이르면 된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사물을 떠난 적은 없다. 대학장구의 '천지의 표준을 다하고 한 터럭만큼의 자기중심적 인욕을 없게 한다'<ref>대학장구 蓋必其有以盡夫天理之極,而無一毫人欲之私也。</ref> 라는 것이 맞다."
| + | |
− | <br/>
| + | |
− | :3. 愛問:「至善只求諸心。恐於天下事理,有不能盡」。
| + | |
− | :*서애가 물었다: "至善은 그저 마음에서 구할 뿐이니, 아마 천하의 事理에 대해서는 모두 파악하지 못하는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 + | |
− | :先生曰:「'''心即理也。天下又有心外之事,心外之理乎?'''」
| + | |
−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마음이 곧 理이다. 천하에 달리 마음 밖의 일, 마음 밖의 理가 있는가?'''"
| + | |
− | :愛曰:「如事父之孝,事君之忠,交友之信,治民之仁,其間有許多理在。恐亦不可不察」。
| + | |
− | :*서애가 물었다: "부모를 섬기는 효, 임금을 섬기는 충, 벗과 사귀는 신, 백성을 다스리는 인의 경우 그 사이에 수많은 도리가 있으니, 역시 살피지 않아선 안 될 것 같습니다."
| + | |
− | :先生嘆曰:「此說之蔽久矣。豈一語所能悟?今姑就所問者言之。且如事父,不成去父上求個孝的理。事君,不成去君上求個忠的理。交友治民,不成去友上民上求個信與仁的理。都只在此心。心即理也。此心無私欲之蔽,即是天理。不須外面添一分。以此純乎天理之心,發之事父便是孝。發之事君便是忠。發之交友治民便是信與仁。只在此心去人欲存天理上用功便是」。
| + | |
− | :*선생께서 한탄하셨다: "이런 설의 폐단이 오래되었다. 어찌 말 한 마디로 깨우칠 수 있는 것이겠는가! 지금은 우선 질문에 따라 대답해주겠다. 부모를 섬기는 경우 부모에게서 효라는 도리를 구할 수 없고, 임금을 섬기는 경우 임금에게서 충이라는 도리를 구할 수 없으며, 벗을 사귀거나 백성을 다스리는 경우 벗이나 백성에게서 신과 인의 도리를 구할 수 없으니, 모두 마음에 달려있을 뿐이다. 마음이 곧 理이니, 이 마음에 사욕의 가림이 없다면 곧 천리이니, 밖에서 조금이라도 더해서는 안 된다. 이 순수한 천리의 마음을 부모 섬기는 데 발현시키면 효이고, 임금을 섬기는 데 발현시키면 충이며, 벗을 사귀거나 백성을 다스리는 데 발현시키면 신과 인이다. 그저 이 마음에서 인욕을 제거하고 천리를 보존하는 공부에 힘을 쓰면 된다."
| + | |
− | :愛曰:「聞先生如此說,愛已覺有省悟處。但舊說纏於胸中,尚有未脫然者。如事父一事,其間溫凊定省之類,有許多節目。不知亦須講求否」?
| + | |
− | :*서애가 물었다: "선생님의 이와 같은 설명을 들으니 저는 벌써 깨우친 바가 있는 것 같습니다만, 옛 설이 마음속을 얽매어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점이 있습니다. 부모를 섬기는 일에서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드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드리며, 저녁에는 이부자리를 펴드리고 아침에는 문안은 여쭙는 것'<ref>예기 곡례상 凡為人子之禮:冬溫而夏凊,昏定而晨省,在醜夷不爭。</ref> 등 수많은 절목이 있으니,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배워서 알아야하는 것이겠지요?"
| + | |
− | :先生曰:「如何不講求?只是有個頭腦。只是就此心去人欲存天理上講求。就如講求冬溫,也只是要盡此心之孝,恐怕有一毫人欲間雜。講求夏凊,也只是要盡此心之孝,恐怕有一毫人欲間雜。只是講求得此心。此心若無人欲,純是天理,是個誠於孝親的心,冬時自然思量父母的寒,便自要求個溫的道理。夏時自然思量父母的熱,便自要求個凊的道理。這都是那誠孝的心發出來的條件。卻是須有這誠孝的心,然後有這條件發出來。譬之樹木,這誠孝的心便便是根。許多條件便枝葉。須先有根,然後有枝葉。不是先尋了枝葉,然後去種根。禮記言『孝子之有深愛者,必有和氣。有和氣者,必有愉色。有愉色者,必有婉容』。須是有個深愛做根,便自然如此」。
| + | |
−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배워서 알지 않겠는가? 다만 핵심이 있으니, 그저 이 마음에서 인욕을 제거하고 천리를 보존한 상태에서 배워 알아야 한다. 가령 겨울에 따뜻하게 만드는 법을 배워 알더라도 그저 이 마음의 효를 다하여 한 터럭의 인욕도 뒤섞이지 않을까 걱정해야하고, 여름에 시원하게 하는 법을 배워 알더라도 그저 이 마음의 효를 다하여 한 터럭의 인욕도 뒤섞이지 않을까 걱정해야하니, 그저 이 마음을 배워 알아야한다. 이 마음에 인욕이 없어 순수하게 천리라서 진실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음이라면, 겨울에는 저절로 부모의 추위를 헤아려 곧 스스로 따뜻하게 해드릴 방도를 찾으려 할 것이고, 여름에는 저절로 부모의 더위를 헤아려 곧 스스로 시원하게 해드릴 방도를 찾으려 할 것이다. 이 모두는 저 효성스런 마음이 발현된 조목이니, 반드시 이 효성스런 마음이 있은 연후에 이 조목이 발현된다. 나무에 비유한다면, 효성스런 마음은 뿌리이고 수많은 조목은 지엽이다. 반드시 뿌리가 있은 연후에 지엽이 있는 것이지, 먼저 지엽을 찾은 연후에 뿌리로 가는 것이 아니다. 예기에서 '효자 가운데 깊은 애정이 있는 자는 반드시 온화한 기가 있고, 온화한 기가 있는 자는 반드시 즐거운 낯빛이 있으며, 즐거운 낯빛이 있는 자는 반드시 곡진한 태도가 있다.'<ref>예기 제의 孝子之有深愛者,必有和氣;有和氣者,必有愉色;有愉色者,必有婉容。孝子如執玉,如奉盈,洞洞屬屬然,如弗勝,如將失之。嚴威儼恪,非所以事親也,成人之道也。</ref>고 하니, 깊이 사랑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음이 있으면 틀림없이 저절로 이와 같이 된다."
| + | |
− | <br/>
| + | |
− | | + | |
− | ==전습록 중편==
| + | |
− | | + | |
− | ==전습록 하편==
| + | |
− | | + | |
− | ==주석==
| + | |
− | <references/>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