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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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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번호 =  
 
|지정번호 =  
 
|지정명칭 = 강화 전등사(江華 傳燈寺)
 
|지정명칭 = 강화 전등사(江華 傳燈寺)
|건립·제작 =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아도화상이 진종사眞宗寺 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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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제작 =
|영문명칭 = Gsa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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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Jeondeungsa Temple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관촉리 반야산(般若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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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635
|위도 = 36.1884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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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도 = 37.631989
|경도 = 127.1124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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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도 = 126.484580
|사진 = 관촉사.jpg | 15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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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1122301780000-021.jpg | 150px
|지도 = <googlemap width="400" height="300" lat="36.1884574" lon="127.1124062" zoom="15" icon="http://maps.google.com/mapfiles/marker.png"> 36.1884574, 127.1124062, [[전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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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google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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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jeondeungsa.org/index.ph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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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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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논산읍에서 남동쪽으로 난 643번 지방도로로 10분 남짓 가면 바로 관촉사 입구에 닿는다. 100m쯤의 나지막한 야산인 반야산 중턱에 있는 관촉사는 너른 연무벌을 향하고 있는데, 다알다시피 연무는 우리나라 장정이면 한번은 거쳐야 하는 상징처럼 되어있는 ‘논산훈련소’가 있는 곳이니 절에 늠름히 서 있는 관음보살상의 기상과도 맥이 닿아 있다고 함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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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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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는 고구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57597&cid=47306&categoryId=47306 소수림왕] 11년(381)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786587&cid=49221&categoryId=49221 아도화상]세웠다고 전하지만 고려 중기까지의 역사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조선 선조 38년(1605)과 광해군 6년(1614)에 큰 불이 일어나 절이 모두 타버려, 그 이듬해 다시 짓기 시작하여 광해군 13년(1621)에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고 한다.
  
이 절에는 ‘은진미륵’으로 유명한 부처가 있다. 도상 자체로는 관음보살상인데도 사람들은 흔히 그렇게 부른다. 미륵이 대개 상을 알아볼 수 있는 특징이 있기보다는 조성된 내력에따라, 또 사람들의 바람에 따라 불리게 마련이니 그 두 이름이 다 통용되어도 무방하겠다. 다만 미륵부처가 뜻하는 의미가 참으로 여러 가지임은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미륵상의 다양성에서 알 수 있는데, 이 관촉사의 미륵은 왕권과 밀접한 관련을 맺은 관제미륵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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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절에는 [https://ko.wikipedia.org/wiki/%EA%B0%95%ED%99%94_%EC%A0%84%EB%93%B1%EC%82%AC_%EB%AA%A9%EC%A1%B0%EC%84%9D%EA%B0%80%EC%97%AC%EB%9E%98%EC%82%BC%EB%B6%88%EC%A2%8C%EC%83%81 강화 전등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대웅전과 약사전 그리고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458382&cid=46659&categoryId=46659 강화 전등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대웅보전의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58844&cid=46648&categoryId=46648 수미단], 철종[http://dh.aks.ac.kr/Edu/wiki/index.php/%ED%8C%8C%EC%9D%BC:2016012217374702.JPG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83042&cid=42962&categoryId=44336 업경대][http://dh.aks.ac.kr/Edu/wiki/index.php/%ED%8C%8C%EC%9D%BC:2018101610011300.jpg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346042&cid=40942&categoryId=33605 청동수조] 등 10여건의 문화재가 지정되어 있다.  
  
부처 왼쪽에 있는 사적비에 따르면, 고려 4대 광종 19년(968)에 왕명을 받은 혜명대사가 조성하기 시작하여 37년 만인 7대 목종 9년(1006)에 완성되었는데 찬란한 서기가 삼칠일 동안 천지에 가득하여 찾아오는 사람으로 저잣거리를 이룰만큼 북적댔다고한다. 또 머리의 화불(化佛)이 내는 황금빛이 하도 밝아 송나라 지안대사가 빛을 따라 찾아와서 예배하면서 절 이름을 ‘관촉사’라고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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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절에는 관음보살상말고도 창건 당시에 같이 조성했을 것으로 보이는 석등과 석탑, 그리고 연화배례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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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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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emple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by the Buddhist monk Ado in 381 (the 11th year of the reign of King Sosurim of the Goguryeo Dynasty), though very little is known about its history prior to the mid-Goryeo Dynasty.
  
==='''Gwanchoksa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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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is said that the temple was burnt to the ground by two large fires in 1605 (the 38th year of the reign of King Seonjo of the Joseon Dynasty) and in 1614 (the 6th year of the reign of King Gwanghaegun), and that it was fully restored to its original appearance between 1615 and 1621 (the 13th year of the reign of King Gwanghaegun).
Gwanchoksa Temple located in Nonsan, South Chungcheong Province, is known for a host of cultural sites and intriguing legends. The most famous attraction of the temple is Seokjomireukbosalipsang Buddha (Treasure No. 218). The construction of the Buddha statue, widely known as “Eunjinmireuk Buddha,” started in 968 during the Goryeo period and lasted for 37 years. When the country’s largest stone Buddha statue was fully built (18.12m in height and 9.9m in girth) in 1006, the temple was said to have been crowded with people coming from across the country. The origin of the name of the temple has to do with the alleged “golden glow” emanating from the stone Buddha, but the original small sculpture placed in the head of the statue is now g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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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Гуанчугса хий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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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is temple, about 10 cultural Properties are designated, including "Wooden Seated Sakyamuni Buddha Triad of Jeondeungsa Temple, Ganghwa(Treasure 1785)", "Wooden Ksitigarbha Bodhisattva Triad and Ten Underworld Kings of Jeondeungsa Temple, Ganghwa(Treasure 1786)", "Daeungjeon Hall of Jeondeungsa Temple, Ganghwa(Treasure 178)", and "Yaksajeon Hall of Jeondeungsa Temple, Ganghwa(Treasure 179)".
Нунсан тосгонд зүүн өмнөд хэсгээр тавигдсан орон нутгийн 643-р замаар 10 минут орчим явбал шууд Гуанчугса хийдийн үүдэнд тулж очно. 100 метр орчим намхавтар толгод болох Банясан толгодын бэлд байрлах Гуанчугса хийд нь уудам хөндий тал болох Ёнмү руу харсан байдаг. Та бүхний мэдэж байгаачлан Ёнмү бол манай улсын эрийн цээнд хүрсэн залуу л бол заавал нэг удаа очиж үзэх ёстой бэлэг тэмдэг болсон “Нунсан цэргийн сургуулилалтын газар” байрладаг. Мөн энэхүү хийдэд  “Өнжинмирөг” гэдгээрээ алдартай Будда бурхны хөшөө дурсгал байдаг.  Гаднаас нь харахад Гуанөм энэрлийн бурханаас ялгарах зүйлгүй боловч хүмүүс ихэвчлэн “Өнжинмирөг” гэдэг нэрээр нь дууддаг. Энэхүү Будда бурхны хөшөөний зүүн талд буй түүхэн хөшөөний бичээсээс харвал, Гурёгийн 4 дэх их хаан Гуан Жун хаан ор суусны 19-р он(968)-д Хемён санваартанд тушаал өгөн энэхүү хийдийг барьж эхлүүлсэн гэдэг. Үүнээс хойш 37 жилийн дараа буюу Гурёгийн 7 дах их хаан Муг Жун хааны ор суусны 9-р он(1006)-д уг хийдийг бүрэн хийж дуусгасан байна. Гялтганан гялалзах сүр хүч нь 21 өдрийн турш тэнгэр газрыг дүүргэж байсан гэх ба хайж ирсэн хүмүүсээр хийд бүхэлдээ бараг дүүрч байсан гэдэг. Түүнчлэн Будда бурханы хөшөөний тэргүүн хэсэг дээр байрласан галын бурхнаас гарч буй шижир алтан туяа нь машид гэрэлтэж байсан тул Сун улсын Жианъ санваартан хүртэл тэрхүү гэрлийг хараад дагасаар хүрээд ирсэн гэдэг. Тэгээд тэрээр уг Будда бурханы хөшөөнд мөргөн энэхүү хийдийн нэрийг Гуанчугса гэж нэрлэсэн гэдэг. Энэхүү хийдэд Гуанөм энэрлийн бурхны хөшөө дурсгалаас гадна энэхүү хөшөөг бүтээх үед хамт бүтээсэн гэж үздэг чулуун дэнлүүн хөшөө ба чулуун цамхаг, мөн бадам лянхуа цэцгэн хээтэй мөргөлийн чулуун тавцан байда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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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미륵보살입상'''==
 
  
[[파일:Gwanchoksa_mireuk.jpg|thumb|left|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ref>출처: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2,02180000,34&flag=Y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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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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Дошедшая до наших времен неофициальная версия гласит, что буддийский храм Дёндынса был построен  буддийским священником Адохвасан, жившим в 381г н.э(времена Когурё при императоре Сосурим). Проверить подленность данной версии невозможно, так как история Корейского полуострова известна с более позднего периода(средний период государства Корё). Храм дважды подвергался масштабным пожарам во времена Чосон в 1605 г. и 1614 г. Свой первоначальный вид храм обрел в 1621 год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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В этом разделе обозначены десять видов культурных ценностей, такие как статуя Будды Мокдёсоккаёресам, храмы Тэунгунчжон и Яксачжон, статуя Кшитигарбха и Шива, буддийский алтарь Сумидан, зеркало Ёпгёнгдэ, резервуар Чондонгсучжо и др.
  
계단을 따라 올라가 돌로 된 해탈문을 들어서면 안쪽에 거대한 부처가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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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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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glemap width="800" height="400" lat="37.631972" lon="126.484569" type= "normal"  zoom="13" icon="http://maps.google.com/mapfiles/marker.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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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000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미륵불이라는 이 부처는 온몸의 길이가 19m, 둘레 9.2m, 귀길이 2.7m, 눈썹 사이 1.8m, 큰 갓의 가로 3.3m라는 말만으로도 그 엄청난 크기가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얼굴과 보관이 하나인 머리 부분이 한 돌, 가슴께가 한 돌, 허리 아래의 몸 해서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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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37.631989, 126.484580[[강화 전등사/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635]]
  
보물 제218호로 지정된 이 부처님은 언뜻 보기에도 온화하고 너그러운 미소를 머금은 예사 부처님과는 다름을 알 수 있다. 몸체에 비해서 거대한 머리, 팽팽하게 팽창한 두 볼이 주는 긴장감, 길게 옆으로 찢어진 부리부리한 눈, 두꺼운 입술이 그 앞에 서면 절로 머리를 조아리게 하는 위엄이 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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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glemap>
  
생김도 예사롭지 않거니와 부처의 현신에서도 예사롭지 않았음을 알려 주는 설화가 전한다. 광종 19년(968)에 반야산 앞마을 사제촌에 사는 한 여인이 산 서북쪽에서 나물을 뜯다가 아이 울음소리가 나서 찾아가 보니, 갑자기 큰 바위가 솟아나왔다. 이를 관에 알렸더니 조정에서는 “이것은 큰 부처를 조성하라는 길조”라고 하며 금강산에 있는 혜명대사를 불러 부처의 조성을 명하였다는 것이다.
 
  
석공 100명을 거느리고 불사를 하던 혜명은 그 솟아나온 바위로 허리 아랫 부분을 만들고, 가슴과 머리 부분은 그곳에서 12㎞ 떨어진 연산면 고정리의 우두촌에 있는 바위로 만들어 일꾼 1,000명을 동원하여 옮겨왔다. 그러나 이미 솟아 있는 바위가 하도 커서 머리를 올릴 재간이 없어서 근심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냇가에서 어린아이들이 놀면서 ‘부처를 모신다’고 하며 밑부분을 세운 뒤 모래를 쌓아올려 덮고, 그 위에 가운데 부분을 올려놓고, 다시 모래를 쌓은 후 맨 윗부분을 올려놓는 것을 보고 비로소 크게 깨달아 부처를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부처는 세워진 뒤에도 신이한 행적을 많이 전한다. 고려 중엽에 거란이 침입하여 압록강을 건너올 때에 어떤 중이 얕은 내를 건너듯이 강을 건너는 것을 보고 그곳으로 따라 건넜더니 대군이 거의 몰사하게 되었다. 이에 그 대장이 크게 노하여 중을 칼로 치니 갓 한쪽이 떨어져 나갔는데, 그와 동시에 이 부처의 갓 한쪽이 바위 위에 떨어져 나갔다. 그런데 그 떨어진 부분은 상하지도 않아 그대로 두었다가 조선 숙종 때에 다시 붙여 달았다고 한다. 외침에 관한 또 한 얘기는 일제강점기 무렵에 있었던 것이 전한다.
 
  
순종 3년(1909)에 일본 사람 셋이 불공을 드린다며 와서 절에서 여러 날을 묵었다. 이중으로 갓을 쓰고 있는 부처의 큰 갓 위에 금동화불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보관 끝에 놓여 있던 그 금부처를 모두 훔쳐가고, 이마에 있는 광명주마저 깨뜨려 놓았으니 이제 관촉사 은진미륵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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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이 신이한 이야기들은 죄다 신통력 넘쳐 보이는 미륵의 생김새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터이다. 그런데 우리는 오히려 이 부처의 조성 배경에서 그 괴력이 뜻하는 바를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부처가 모셔진 자리는 멸망한 백제의 최후의 보루였던 계백 장군과 5천 결사대가 그 뼈를 묻었으며 후백제의 근거지로서 강성했던 후백제군을 왕건이 고려를 세우면서 창과 칼로써 제압한 황산벌을 굽어보는 자리이다. 또 광종은 각처의 호족 세력을 연합하여 연계를 맺어 세운 고려의 정권에 법제를 정비하고 국가체제를 마련하여 왕권 강화를 확립한 왕이다. 그러므로 백제이자 후백제의 유민으로서의 의식이 아직 가시지 않은 이곳 사람들에게 고려의 강력한 왕권을 과시할 상징이 필요했고, 왕권의 화신으로서 그처럼 거대하고 강력한 힘을 소유한 듯이 보이는 상징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백호를 수리할 때 먹으로 쓴 글씨가 발견되었는데 거기에 “正德十六年辛巳四月十五日”이라하였으니 그해가 바로 광종 19년인 968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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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전등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    Wooden Seated Sakyamuni Buddha Triad of Jeondeungsa Temple, Ganghwa(Treasure 1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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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전등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보물 제1785호)은 17세기 전반에 전북, 충남 등지에서 활동하던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733882&cid=63765&categoryId=63765 수연(守衍)]수화승으로 참여하여 1623년에 조성한 불상으로 수연이 수화승(首畵僧)으로 조성한 작품들 가운데 지금까지 알려진 두 번째 불상이다. 삼불의 구성은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74669&cid=46648&categoryId=46648 석가불]을 본존으로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20976&cid=40942&categoryId=31545 아미타불]과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24048&cid=40942&categoryId=31545 약사불]이 좌우에 협시하는 형식으로서 조선 후기에 전국적으로 유행했던 삼세불의 도상을 보이고 있다. 불상들의 세부를 보면, 본존 석가불상은 단엄한 자세에 자비한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61403&cid=42635&categoryId=42635 상호(相好)]를 보이며, 좌우의 아미타불상과 약사 불상은 이목구비의 표현이나 비례 면에서 본존상 보다는 다소 조형감이 떨어지는 편이다. 본존상은 상호(相好)의 표현이 근엄하고 전체적인 신체비례 면에서도 안정감이 느껴져 시기적으로 앞서는 같은 수연 작의 서천 봉서사 목조 아미타여래삼존좌상(1619년)에 비해 조각적으로 세련된 감각을 보여준다.
  
얼굴 생김도 그러하거니와 이 부처의 강력함은 오히려 아래쪽에서 잘드러난다. 몸통 자체가 거의 큰 바윗덩어리처럼 뚝심 있게 서 있으니, 그 몸을 받치고 있는 발을 보면 어떤 강력한 힘이 밀어붙여도 끄덕도 않는다는 듯이 든든하게 땅을 거머쥔 발가락이 앞에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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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820789&cid=46659&categoryId=46659 삼세불상]의 얼굴은 각각 독특한 상호를 보이고 옷주름 표현기법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인다. 이것은 아마도 전등사 삼세불상 조성에 참여한 조각승들 가운데 수화승 수연과 함께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460337&cid=46659&categoryId=46659 서천 봉서사 극락전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1619년, 보물 제1751호) 조성에 참여했던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kdic&sm=tab_jum&query=%EC%84%B1%EC%98%A5(%E6%80%A7%E7%8E%89) 성옥(性玉)]의 조각적 개성이 표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세 번째 화원으로 참여한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hty.top&where=nexearch&query=%EC%98%81%EC%B2%A0%28%E9%9D%88%E5%93%B2%29&oquery=%EC%84%9C%EC%B2%9C+%EB%B4%89%EC%84%9C%EC%82%AC+%EA%B7%B9%EB%9D%BD%EC%A0%84+%EB%AA%A9%EC%A1%B0%EC%95%84%EB%AF%B8%ED%83%80%EC%97%AC%EB%9E%98%EC%82%BC%EC%A1%B4%EC%A2%8C%EC%83%81&tqi=UK6T5dp0JywsscfR0bVssssssTd-095456 영철(靈哲)]은 이후 옥구 보천사 목조지장보살좌상과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820786&cid=46659&categoryId=46659 시왕상](1634년, 익산 숭림사 봉안)과 남원 풍국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1639년, 예산 수덕사 봉안)의 조성에 수연을 따라 참여했으며 성옥에 비해 연배가 아래인 조각승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감을 나타내려 한 흔적이 전혀 없는 얼굴 생김에 견주어 가슴께에 얹은 두 손의 조각은 무척 섬세한 편으로 연꽃 가지를 들고 있고, 머리 위에 화불이 있었던 흔적 등으로써 이 부처가 관세음보살임을 알게 한다. 아래쪽의 몸 부분은 다시 음각으로 옷 주름 모양만 상징적으로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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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 대웅보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조성원문을 통하여 정확한 조성연대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조각적으로 우수하며, 조각승들과 나타난 발원시주자들의 명단이 잘 전하여 불상(佛像), [[면금(面金)]], [[체목금]], [[체목]], [[오금(烏金)]],[[좌대(座臺)]],[[보단(甫團)]], [[채안(彩安)]],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3706 복장(腹藏)][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591653&cid=50292&categoryId=50292 ] 등 세부적인 시주 항목이 기록된 점 등에서 조선시대 불교조각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해탈문을 들어섰을 때에 먼저 만나는 관음전에는 부처가 모셔져 있지 않다. 법당 안에 들어가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는데 법당의 뒤쪽 벽에 길게 유리창을 두어 미륵불이 보이도록 했다. 예불할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으면 부처의 얼굴 부분이 창을 채운다. 관음보살을 본존불로 모시는 배려이다.
 
  
=='''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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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oden Seated Sakyamuni Buddha Triad of Jeondeungsa Temple was made in 1623 by a team of artists led by Suyeon, a monk-artist who was active during the early 17th century in the provinces of Jeollabuk-do and Chungcheongnam-do. Known to be only the second work by Suyeon found so far, the triad consists of Sakyamuni, the principal Buddha, attended by Amitabha and Bhaisajyaguru, displaying the Buddhas of Three Kalpas, which enjoyed great popularity across Korea during the late Joseon Period. The principal Buddha features a benign look with a posture full of dignity, while his attendants appear somewhat inferior to it in terms of the depiction of their facial features and the proportions of their bodies. The Sakyamuni’s serene face and well-proportioned body conveying a sense of stability clearly shows that its maker, Suyeon, had achieved significant technical and aesthetic progress since his earlier work, the Wooden Seated Amitabha Triad of Bongseosa Temple in Seocheon, carved in 1619. The Sakyamuni Buddha Triad enshrined at Daeungbojeon Hall of Jeondeungsa Temple is highly regarded among art historians because there is a detailed record about its production date, the identity of its maker, and the names of those who funded its making. <ref>[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5_2_1_0&ccbaCpno=1122317850000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강화 전등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ref>
  
미륵보살 앞쪽에 석등이 한 기 있는데 부처 못지않게 힘이 좋아 보이는 것이 미륵보살과 같이 조성되었을 것이다. 높이 5.45m, 둘레 4m로 남한에서는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과 더불어 대표적인 큰 석등으로 꼽힌다. 흔히 미륵불의 위엄과 힘에 눈이 빼앗겨 부처만 보다 오는 수가 많은데 이 석등도 듬직하고 볼 만하다. 보물 제232호이다.
 
  
지대석 위에 단단한 복련으로 기둥을 받쳤는데 기둥 중간에는 띠를 둘러 대마디 모양을 새기고 네 잎 꽃 여덟 송이를 꽂은 듯이 조각해 놓아 이 무뚝뚝한 석등에 다소나마 부드러운 느낌을 돌게 했다. 그러나 네모진 판석을 받친 앙련 역시 힘차며, 네 귀퉁이에 기둥을 세우면서 동시에 뚫린 곳을 화창을 삼아 시원한 맛을 보이고 그 위에 덮은 지붕돌에는 귀꽃이 번쩍번쩍 솟아올라 고려 초기의 강성한 힘이 넘쳐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상륜을 바로 올리지 않고 거기에 2층 누각처럼 화사석을 형식적으로 하나 더 얹어 넘치는 힘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같은 사각 석등은 고려시대 석등의 특징이다. 우리나라 석등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은 팔각 간주에 팔각형 화사석이 얹혀, 팔각이 기본 형태이기 때문이다.
 
<gallery>
 
파일:관촉사석등.jpg|관촉사석등<ref>출처: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2,02320000,34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ref>
 
</gallery>
 
  
=='''오층석탑'''==
 
  
석등 앞쪽에 창건 때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 오층석탑이 있다. 다른 절에서라면 이만해도 우람한 축에 들겠지만 여기에서는 원체 듬직한 부처와, 부처를 밝히는 데 힘을 준 석등이 경내를 차지하고 있어 석탑이 오히려 왜소해 보일 지경이다. 그러나 석탑도 높이 4.5m, 둘레 3.6m의 꽤 다부진 몸매를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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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전등사 약사전 (江華 傳燈寺 藥師殿) / Yaksajeon Hall of Jeondeungsa Temple, Ganghwa(Treasure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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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 서쪽에 있는 아담한 약사전(보물 제179호)은 중생의 병을 고쳐준다는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는 법당이다.[[『대웅전약사전개와중수기(大雄殿藥師殿改瓦重修記)』]]에 조선 고종 13년(1876) 대웅보전과 함께 기와를 바꾸었다는 기록이 보일 뿐 언제 지었는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고 건축 수법이 대웅보전과 비슷하여 조선 중기 건물로 짐작하고 있다.
  
기단부는 비교적 넓게 차지하고 든든한 이중기단에 5층을 올렸다. 몸돌의 높이에 비해 지붕돌은 넓지 않은 편이어서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왜소해지는 느낌을 준다. 중원의 월악산 세계사 미륵대원에 있는 오층석탑과 비슷하게 생겼으며 고려 때에 지방마다 독특하게 정립해 가는 탑으로서 토속적인맛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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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895264&cid=42642&categoryId=42642 팔작지붕]이다. 건물 안쪽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이며 주위에는 화려한 연꽃무늬와 덩굴무늬를 그려 놓았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수법이 특이하여 당시의 건축수법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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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ksajeon Hall, which enshrines Bhaisajyaguru Buddha (the Buddha of healing and medicine), is situated to the west of Daeungjeon Hall, Jeondeungsa Temple. The temple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by the Buddhist monk Ado in 381 (the 11th year of the reign of King Sosurim of the Goguryeo Dynasty), though very little is known about its history prior to the mid-Goryeo Dynasty. It is said that the temple was burnt to the ground by two large fires in 1605 (the 38th year of the reign of King Seonjo of the Joseon Dynasty) and in 1614 (the 6th year of the reign of King Gwanghaegun), and that it was fully restored to its original appearance between 1615 and 1621 (the 13th year of the reign of King Gwanghaegun). Although the exact year of the hall’s construction is not clear, according to the Records on the Renovation of Daeungjeon Hall and Yaksajeon Hall, the roof tiles for both Daeungjeon and Yaksajeon Halls were replaced in 1876 (the 13th year of the reign of King Gojong of the Joseon Dynasty. Judging from the construction style of Yaksajeon Hall, which is similar to that of Daeungjeon Hall, it is assumed that former was built during the mid-Joseon Dynasty. The hall measures 3 kan (a unit of measurement referring to the distance between two columns) at the front and 2 kan on the sides, and has a hip-and-gable roof resembling the character 八 when viewed from the side. The building’s ceiling has the form of a sharp (#), and features magnificent painted designs of lotus flowers and vines in its background. As Yaksajeon Hall was built with an unusual type of bracket system to support the eaves, it is regarded as an important cultural asset for research on the construction style of the time.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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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5_2_1_0&ccbaCpno=1122301790000#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강화 전등사 약사전 (江華 傳燈寺 藥師殿 )]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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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전등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木造地藏菩薩三尊像 및 十王像 一括) / Wooden Ksitigarbha Bodhisattva Triad and Ten Underworld Kings of Jeondeungsa Temple, Ganghwa(Treasure 1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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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전등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보물 제1786호)은 조성원문을 통하여 숭정(崇禎) 9년(1636)이라는 뚜렷한 조성연대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이 조각승 수연(守衍)에 의해 조성된 지 13년이 지난 뒤에 역시 수연이 수화승이 되어 제작한 상들이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83040&cid=42962&categoryId=44336 지장보살상][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820787&cid=46659&categoryId=46659 ]과 그 좌우에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728414&cid=49296&categoryId=49296 무독귀왕],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728415&cid=49296&categoryId=49296 도명존자],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83041&cid=42962&categoryId=44336 시왕(十王)]와 귀왕, 판관, 사자상, 동자상,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36972&cid=46659&categoryId=46659 인왕상] 등 명부전의 권속이 많다보니 조각승도 12명이나 참여하여 수연의 지휘 아래 제작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상들의 조성을 위한 시주에 수많은 신도들이 참여한 것으로 보아 당시 전등사 일대의 대대적인 불사(佛事)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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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보살상은 방형의 얼굴에 엄중하면서도 자비로운 상호(相好)를 보이며 양 어깨에 걸쳐진 대의 옷자락은 유연한 주름을 이루며 하체로 연결된다. 양손으로는 지물을 들지 않고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설법인을 결하고 있는데, 전체적인 비례와 조형감이 우수하다. 지장보살상과 매우 유사한 특징을 보이는 도명존자상은 얼굴표현에서 사실성이 돋보이며, 장삼위에 가사를 입은 착의형식이 단정하다. 수연 조각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장보살상과 도명존자 외에도 시왕상과 기타 권속의 여러 상에서 보이는 인간적이면서도 차분한 분위기는 수연 조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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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기법상의 우수성, 조각가와 조성연대에 대한 분명한 기록, 원래부터 전등사 명부전 봉안을 위해 조성된 상이라는 여러 점에서 볼 때 그 가치가 큰 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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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se wooden statues of Buddhist deities, saints, and their dependents, all of which are enshrined in Jeondeungsa Temple in Ganghwa, were made in 1636 by a sculptor and Buddhist monk named Suyeon who also carved the Wooden Seated Buddha Triad enshrined in the temple’s Daeungjeon Hall thirteen years earlier. He formed a team of twelve monk to assist him with the carving of the Ksitigarbha, which is flanked by two acolytes, Ten Underworld Kings, Devil Kings, Judges, Lions, Children, Vajradhara, and other beings enshrined in Myeongbujeon Hall. Records say that the project of enshrining the statues required the participation of a large number of worshippers and alms givers, suggesting that it was a major festive event held in the area around Jeondeungsa Temple. The statue of Ksitigarbha Bodhisattva is characterized by a highly refined sense of proportion and balance. His attendant, Domyeong, also displays similar characteristics, including a realistic depiction of the face and the upper robe worn neatly over the monastic robe. Other statues, including the Ten Underworld Kings, also clearly show the characteristic features of a wooden sculpture carved by Suyeon. These Buddhist statues are regarded as valuable Korean Buddhist heritages not only because of their artistic excellence but also because there are clear records of when and by whom they were made and because they are still kept in their original location, Myeongbujeon Hall of Jeondeungsa Temple, performing their original function. <ref>[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5_2_1_0&ccbaCpno=1122317860000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강화 전등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木造地藏菩薩三尊像 및 十王像 一括)]</ref>
 
   
 
   
석탑 옆에는 폭 0.4m, 길이 1.5m의 긴 댓돌이 놓였는데, 그 위에 잎이 여덟인 연꽃 세 송이가 연가지에 달린 듯이 조각되어 있다. 이 연화대석은 부처에 제물을 바칠 때에 쓰는 배례석이다.
 
  
=='''미륵'''==
 
  
석가의 다음으로 부처가 된다고 약속받은 보살. 도솔천에 살며, 장래 인간의 수명이 8만세가 되고 이 세계가 정토화되면, 사바세상에 내려와 용화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어 3회의 설법을 한다고 믿어져 그 출현이 기대되는 미래의 부처님. 고로 미륵불이라고도 함. 인도에서는 처음 물병을 가진 보살형으로 만들어지고 과거 7불과 함께 배열한 예도 있다.
 
  
미륵신앙은 일찍 중국에 전해져 성행했고 북위시대(4~6세기)를 정점으로 그 조상도 매우 활발했다. 중국 신앙에는 도솔왕생(兜率往生)과 용화수하삼회설법(龍華樹下三會說法)의 기대(下生)에 있었으며, 조상으로 보살형이 전자, 여래형이 후자의 신앙에 기인한다고하나 예외도 있다. 보살형은 교각상이 많다. 남북조시대의 재명상(在銘像)에는 여래형이 많고 수∙당시대에는 의상(倚像)으로 좌수를 무릎에 올리는 모양이 보편적이었다. 또 당∙송에는 『미륵하생경』에의한 미륵정토변상도가 행해져 둔황에 오대(10세기)경의 벽화 등 수종이 현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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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법연화경 목판(妙法蓮華經 木板) / Printing Woodblocks of Saddharmapundarika Sutra (The Lotus Sutra)(Treasure 1908)'''===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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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에 소장된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794720&cid=46648&categoryId=46648 묘법연화경]』 목판(보물 제1908호 )’은 중종 38년(1543) 마니산(摩尼山)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83625&cid=58712&categoryId=58712 정수사(淨水寺)][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204928&cid=51267&categoryId=51267 ]에서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9250 성달생(成達生)] 서체 계열의 인본을 복각하여 1판 4장의 형태로 조성한 것이다.  이 목판은 조선초기부터 16세기까지 성행되었던 성달생 서체 계열의 『묘법연화경』 가운데 시대가 가장 앞서는 목판 자료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또한 각 권의 말미와 판면 광곽의 변란 밖에는 『중종실록』 등과 같은 관찬사서 등에서 확인되지 않은 수백 명의 시주질[https://blog.naver.com/kwhsa/40162567294 ]․[https://hanja.dict.naver.com/word?q=%E7%B7%A3%E5%8C%96%E7%A7%A9&cp_code=0&sound_id=0 연화질][http://blog.daum.net/waseog11/13745968 ][http://www.bulkwa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684 ] 및 [https://hanja.dict.naver.com/search?query=%E5%88%BB%E6%89%8B 각수] 등이 새겨져 있어 16세기 중엽 정수사의 경판 조성과 관련된 역사상, 수록된 승려 등을 통한 불교사적 사실 등 다양한 역사․문화적 실체를 살펴볼 수 있는 학술적 가치도 지니고 있다.
<googlemap width="800" height="400" lat="37.631972" lon="126.484569" type= "normal"  zoom="14.5" icon="http://maps.google.com/mapfiles/marker.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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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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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37.631989, 126.484580[[강화 전등사/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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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se printing blocks for the Saddharmapundarika Sutra (The Lotus Sutra) were made – and are still stored – at Jeongsusa Temple on Manisan Mountain in 1543 by copying an earlier set of blocks carved in the calligraphic style of Seong Dal-saeng (1376-1444), a noted military official and calligrapher between the late Goryeo and early Joseon periods. The blocks are in good condition overall, although they are missing one of the entire set of 105 blocks, including the Frontispiece and Preface, and show some traces of insect damage. The blocks are highly valued partly because they are the oldest extant Lotus Sutra woodblocks to feature the Seong Dal-saeng calligraphic style, which was widely favored in the fifteenth and sixteenth centuries. <ref>[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5_2_1_0&ccbaCpno=1122319080000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강화 전등사 묘법연화경 목판(妙法蓮華經 木板)]</ref>
  
</googlemap>
 
  
=='''관련 사이트'''==
 
  
*[http://www.jeondeungsa.org/index.php 전등사 홈페이지 : http://www.jeondeungsa.org/index.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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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heritage.go.kr/heri/unified/selectUnifiedList.do?home=total&subHome=0&sort=&searchField=&page=1&pageNo=5_1_0_0&query=%EC%A0%84%EB%93%B1%EC%82%AC&s_kdcd=00&s_gbn=00 문화재청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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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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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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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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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lery mode=packed-hover heights=23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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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615462.jpg|대웅보전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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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0000000001659584대웅전후불탱.jpg|대웅전후불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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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16012217374504.JPG|약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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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18약사전후불탱.jpg|약사전후불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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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284083.jpg|시왕상일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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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17122718274200묘법연화경목판.jpg|묘법연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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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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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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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5_2_1_0&ccbaCpno=1122301790000#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사진]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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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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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
  
 
=='''출처'''==
 
=='''출처'''==
  
 
<references/>
 
<references/>
 +
*[http://www.jeondeungsa.org/index.php 전등사 홈페이지 : http://www.jeondeungsa.org/index.php]
 +
*[http://heritage.go.kr/heri/unified/selectUnifiedList.do?home=total&subHome=0&sort=&searchField=&page=1&pageNo=5_1_0_0&query=%EC%A0%84%EB%93%B1%EC%82%AC&s_kdcd=00&s_gbn=00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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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dh.aks.ac.kr/~tutor/cgi-bin/msSql/cpGallery01.py?B00-0179-0000 Cultural Heritage 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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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ghtv.kr/index.php?mid=h5&document_srl=2198 강화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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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여'''==
 
=='''기여'''==

2019년 5월 23일 (목) 14:22 기준 최신판

Project Home


개관

한국어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 아도화상이 세웠다고 전하지만 고려 중기까지의 역사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조선 선조 38년(1605)과 광해군 6년(1614)에 큰 불이 일어나 절이 모두 타버려, 그 이듬해 다시 짓기 시작하여 광해군 13년(1621)에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고 한다.

이 절에는 강화 전등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대웅전과 약사전 그리고 강화 전등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대웅보전의 수미단, 철종[1], 업경대[2], 청동수조 등 10여건의 문화재가 지정되어 있다.


영어

The temple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by the Buddhist monk Ado in 381 (the 11th year of the reign of King Sosurim of the Goguryeo Dynasty), though very little is known about its history prior to the mid-Goryeo Dynasty.

It is said that the temple was burnt to the ground by two large fires in 1605 (the 38th year of the reign of King Seonjo of the Joseon Dynasty) and in 1614 (the 6th year of the reign of King Gwanghaegun), and that it was fully restored to its original appearance between 1615 and 1621 (the 13th year of the reign of King Gwanghaegun).

In this temple, about 10 cultural Properties are designated, including "Wooden Seated Sakyamuni Buddha Triad of Jeondeungsa Temple, Ganghwa(Treasure 1785)", "Wooden Ksitigarbha Bodhisattva Triad and Ten Underworld Kings of Jeondeungsa Temple, Ganghwa(Treasure 1786)", "Daeungjeon Hall of Jeondeungsa Temple, Ganghwa(Treasure 178)", and "Yaksajeon Hall of Jeondeungsa Temple, Ganghwa(Treasure 179)".


러시아어

Дошедшая до наших времен неофициальная версия гласит, что буддийский храм Дёндынса был построен буддийским священником Адохвасан, жившим в 381г н.э(времена Когурё при императоре Сосурим). Проверить подленность данной версии невозможно, так как история Корейского полуострова известна с более позднего периода(средний период государства Корё). Храм дважды подвергался масштабным пожарам во времена Чосон в 1605 г. и 1614 г. Свой первоначальный вид храм обрел в 1621 году. В этом разделе обозначены десять видов культурных ценностей, такие как статуя Будды Мокдёсоккаёресам, храмы Тэунгунчжон и Яксачжон, статуя Кшитигарбха и Шива, буддийский алтарь Сумидан, зеркало Ёпгёнгдэ, резервуар Чондонгсучжо и др.

지도



해설

강화 전등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 Wooden Seated Sakyamuni Buddha Triad of Jeondeungsa Temple, Ganghwa(Treasure 1785)

강화 전등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보물 제1785호)은 17세기 전반에 전북, 충남 등지에서 활동하던 수연(守衍)이 수화승으로 참여하여 1623년에 조성한 불상으로 수연이 수화승(首畵僧)으로 조성한 작품들 가운데 지금까지 알려진 두 번째 불상이다. 삼불의 구성은 석가불을 본존으로 아미타불약사불이 좌우에 협시하는 형식으로서 조선 후기에 전국적으로 유행했던 삼세불의 도상을 보이고 있다. 불상들의 세부를 보면, 본존 석가불상은 단엄한 자세에 자비한 상호(相好)를 보이며, 좌우의 아미타불상과 약사 불상은 이목구비의 표현이나 비례 면에서 본존상 보다는 다소 조형감이 떨어지는 편이다. 본존상은 상호(相好)의 표현이 근엄하고 전체적인 신체비례 면에서도 안정감이 느껴져 시기적으로 앞서는 같은 수연 작의 서천 봉서사 목조 아미타여래삼존좌상(1619년)에 비해 조각적으로 세련된 감각을 보여준다.

삼세불상의 얼굴은 각각 독특한 상호를 보이고 옷주름 표현기법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인다. 이것은 아마도 전등사 삼세불상 조성에 참여한 조각승들 가운데 수화승 수연과 함께 서천 봉서사 극락전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1619년, 보물 제1751호) 조성에 참여했던 성옥(性玉)의 조각적 개성이 표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세 번째 화원으로 참여한 영철(靈哲)은 이후 옥구 보천사 목조지장보살좌상과 시왕상(1634년, 익산 숭림사 봉안)과 남원 풍국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1639년, 예산 수덕사 봉안)의 조성에 수연을 따라 참여했으며 성옥에 비해 연배가 아래인 조각승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전등사 대웅보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조성원문을 통하여 정확한 조성연대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조각적으로 우수하며, 조각승들과 나타난 발원시주자들의 명단이 잘 전하여 불상(佛像), 면금(面金), 체목금, 체목, 오금(烏金),좌대(座臺),보단(甫團), 채안(彩安), 복장(腹藏)[3] 등 세부적인 시주 항목이 기록된 점 등에서 조선시대 불교조각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The Wooden Seated Sakyamuni Buddha Triad of Jeondeungsa Temple was made in 1623 by a team of artists led by Suyeon, a monk-artist who was active during the early 17th century in the provinces of Jeollabuk-do and Chungcheongnam-do. Known to be only the second work by Suyeon found so far, the triad consists of Sakyamuni, the principal Buddha, attended by Amitabha and Bhaisajyaguru, displaying the Buddhas of Three Kalpas, which enjoyed great popularity across Korea during the late Joseon Period. The principal Buddha features a benign look with a posture full of dignity, while his attendants appear somewhat inferior to it in terms of the depiction of their facial features and the proportions of their bodies. The Sakyamuni’s serene face and well-proportioned body conveying a sense of stability clearly shows that its maker, Suyeon, had achieved significant technical and aesthetic progress since his earlier work, the Wooden Seated Amitabha Triad of Bongseosa Temple in Seocheon, carved in 1619. The Sakyamuni Buddha Triad enshrined at Daeungbojeon Hall of Jeondeungsa Temple is highly regarded among art historians because there is a detailed record about its production date, the identity of its maker, and the names of those who funded its making. [1]



강화 전등사 약사전 (江華 傳燈寺 藥師殿) / Yaksajeon Hall of Jeondeungsa Temple, Ganghwa(Treasure 179)

대웅보전 서쪽에 있는 아담한 약사전(보물 제179호)은 중생의 병을 고쳐준다는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는 법당이다.『대웅전약사전개와중수기(大雄殿藥師殿改瓦重修記)』에 조선 고종 13년(1876) 대웅보전과 함께 기와를 바꾸었다는 기록이 보일 뿐 언제 지었는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고 건축 수법이 대웅보전과 비슷하여 조선 중기 건물로 짐작하고 있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건물 안쪽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이며 주위에는 화려한 연꽃무늬와 덩굴무늬를 그려 놓았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수법이 특이하여 당시의 건축수법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Yaksajeon Hall, which enshrines Bhaisajyaguru Buddha (the Buddha of healing and medicine), is situated to the west of Daeungjeon Hall, Jeondeungsa Temple. The temple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by the Buddhist monk Ado in 381 (the 11th year of the reign of King Sosurim of the Goguryeo Dynasty), though very little is known about its history prior to the mid-Goryeo Dynasty. It is said that the temple was burnt to the ground by two large fires in 1605 (the 38th year of the reign of King Seonjo of the Joseon Dynasty) and in 1614 (the 6th year of the reign of King Gwanghaegun), and that it was fully restored to its original appearance between 1615 and 1621 (the 13th year of the reign of King Gwanghaegun). Although the exact year of the hall’s construction is not clear, according to the Records on the Renovation of Daeungjeon Hall and Yaksajeon Hall, the roof tiles for both Daeungjeon and Yaksajeon Halls were replaced in 1876 (the 13th year of the reign of King Gojong of the Joseon Dynasty. Judging from the construction style of Yaksajeon Hall, which is similar to that of Daeungjeon Hall, it is assumed that former was built during the mid-Joseon Dynasty. The hall measures 3 kan (a unit of measurement referring to the distance between two columns) at the front and 2 kan on the sides, and has a hip-and-gable roof resembling the character 八 when viewed from the side. The building’s ceiling has the form of a sharp (#), and features magnificent painted designs of lotus flowers and vines in its background. As Yaksajeon Hall was built with an unusual type of bracket system to support the eaves, it is regarded as an important cultural asset for research on the construction style of the time. [2]



강화 전등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木造地藏菩薩三尊像 및 十王像 一括) / Wooden Ksitigarbha Bodhisattva Triad and Ten Underworld Kings of Jeondeungsa Temple, Ganghwa(Treasure 1786)

강화 전등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보물 제1786호)은 조성원문을 통하여 숭정(崇禎) 9년(1636)이라는 뚜렷한 조성연대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이 조각승 수연(守衍)에 의해 조성된 지 13년이 지난 뒤에 역시 수연이 수화승이 되어 제작한 상들이다. 지장보살상[4]과 그 좌우에 무독귀왕, 도명존자, 시왕(十王)와 귀왕, 판관, 사자상, 동자상, 인왕상 등 명부전의 권속이 많다보니 조각승도 12명이나 참여하여 수연의 지휘 아래 제작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상들의 조성을 위한 시주에 수많은 신도들이 참여한 것으로 보아 당시 전등사 일대의 대대적인 불사(佛事)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장보살상은 방형의 얼굴에 엄중하면서도 자비로운 상호(相好)를 보이며 양 어깨에 걸쳐진 대의 옷자락은 유연한 주름을 이루며 하체로 연결된다. 양손으로는 지물을 들지 않고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설법인을 결하고 있는데, 전체적인 비례와 조형감이 우수하다. 지장보살상과 매우 유사한 특징을 보이는 도명존자상은 얼굴표현에서 사실성이 돋보이며, 장삼위에 가사를 입은 착의형식이 단정하다. 수연 조각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장보살상과 도명존자 외에도 시왕상과 기타 권속의 여러 상에서 보이는 인간적이면서도 차분한 분위기는 수연 조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조각기법상의 우수성, 조각가와 조성연대에 대한 분명한 기록, 원래부터 전등사 명부전 봉안을 위해 조성된 상이라는 여러 점에서 볼 때 그 가치가 큰 상들이다.

These wooden statues of Buddhist deities, saints, and their dependents, all of which are enshrined in Jeondeungsa Temple in Ganghwa, were made in 1636 by a sculptor and Buddhist monk named Suyeon who also carved the Wooden Seated Buddha Triad enshrined in the temple’s Daeungjeon Hall thirteen years earlier. He formed a team of twelve monk to assist him with the carving of the Ksitigarbha, which is flanked by two acolytes, Ten Underworld Kings, Devil Kings, Judges, Lions, Children, Vajradhara, and other beings enshrined in Myeongbujeon Hall. Records say that the project of enshrining the statues required the participation of a large number of worshippers and alms givers, suggesting that it was a major festive event held in the area around Jeondeungsa Temple. The statue of Ksitigarbha Bodhisattva is characterized by a highly refined sense of proportion and balance. His attendant, Domyeong, also displays similar characteristics, including a realistic depiction of the face and the upper robe worn neatly over the monastic robe. Other statues, including the Ten Underworld Kings, also clearly show the characteristic features of a wooden sculpture carved by Suyeon. These Buddhist statues are regarded as valuable Korean Buddhist heritages not only because of their artistic excellence but also because there are clear records of when and by whom they were made and because they are still kept in their original location, Myeongbujeon Hall of Jeondeungsa Temple, performing their original function. [3]



묘법연화경 목판(妙法蓮華經 木板) / Printing Woodblocks of Saddharmapundarika Sutra (The Lotus Sutra)(Treasure 1908)

전등사에 소장된 ‘『묘법연화경』 목판(보물 제1908호 )’은 중종 38년(1543) 마니산(摩尼山) 정수사(淨水寺)[5]에서 성달생(成達生) 서체 계열의 인본을 복각하여 1판 4장의 형태로 조성한 것이다. 이 목판은 조선초기부터 16세기까지 성행되었던 성달생 서체 계열의 『묘법연화경』 가운데 시대가 가장 앞서는 목판 자료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또한 각 권의 말미와 판면 광곽의 변란 밖에는 『중종실록』 등과 같은 관찬사서 등에서 확인되지 않은 수백 명의 시주질[6]연화질[7][8]각수 등이 새겨져 있어 16세기 중엽 정수사의 경판 조성과 관련된 역사상, 수록된 승려 등을 통한 불교사적 사실 등 다양한 역사․문화적 실체를 살펴볼 수 있는 학술적 가치도 지니고 있다.

These printing blocks for the Saddharmapundarika Sutra (The Lotus Sutra) were made – and are still stored – at Jeongsusa Temple on Manisan Mountain in 1543 by copying an earlier set of blocks carved in the calligraphic style of Seong Dal-saeng (1376-1444), a noted military official and calligrapher between the late Goryeo and early Joseon periods. The blocks are in good condition overall, although they are missing one of the entire set of 105 blocks, including the Frontispiece and Preface, and show some traces of insect damage. The blocks are highly valued partly because they are the oldest extant Lotus Sutra woodblocks to feature the Seong Dal-saeng calligraphic style, which was widely favored in the fifteenth and sixteenth centuries. [4]



시각자료

사진


[5]

영상

가상현실

출처

  1.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강화 전등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2.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강화 전등사 약사전 (江華 傳燈寺 藥師殿 )
  3.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강화 전등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木造地藏菩薩三尊像 및 十王像 一括)
  4.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강화 전등사 묘법연화경 목판(妙法蓮華經 木板)
  5.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사진


기여

일자 역할 이름 전공
2019.4. 편집 김은숙 인문정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