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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5일 (일) 08:19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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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조선시대 왕으로부터 편액(扁額)·서적·토지·노비 등을 하사받아 그 권위를 인정받은 서원을 사액서원이라고 한다.

변천

서원의 건립은 본래 향촌 유림들에 의하여 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국가가 관여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서원이 지닌 교육 및 향사적(享祀的:제사적) 기능이 국가의 인재양성과 교화정책(敎化政策)에 깊이 연관되어, 조정에서 특별히 서원의 명칭을 부여한 현판과 그에 따른 서적·노비 등을 내린 경우가 있었다. 이러한 특전을 부여받은 국가공인의 서원을 사액서원이라 하며 비사액서원과는 격을 달리하였다. 사액서원은 면세, 면역의 특권이 주어졌으므로 많은 토지와 노비를 소유한 사액서원의 증가는 국가 재정을 어렵게 하였다. 그래서 이후에 1868년 고종 5년 흥선대원군의 사액서원 철폐령이 내려지게 된다.

최초의 사액서원

1543년(중종 38) 경상도 풍기(豊基)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세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에, 풍기군수로 부임한 이황(李滉)의 건의에 따라 50년(명종 5) 명종이 이를 권장하는 의미에서 소수서원(紹修書院)이란 현판과 서적을 하사하고, 서원 소속의 토지 및 노비에 대한 면세·면역(免役)의 특권을 내림으로써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