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산성 시발굴조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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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19일 (일) 14:54 기준 최신판
개요
아차산성은 1996년 서울시 광진구에서 종합 복원계획을 수립하고 보수공사를 실시 하기위해 기초조사 작업 중 석축으로 이루어진 성벽 노출되었고, 이로 인해 1997년 국립문화재연구소와 명지대부설 한국건축문화연구소에 의해 이 구간 수습발굴 진행하였다. 그러나 성벽의 축조방식과 복원방향 등에 대한 학계의 이견이 제기되어 성벽의 복원과 산성의 성격규명을 위해 아차산성에 대한 발굴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광진구에서는 서울대학교 측에 성벽과 성내부에 대한 시굴조사를 의뢰하여 1998~1999년 서울대, 건국대, 세종대, 명지대 등의 조사단이 구성되어 성벽과 성 내부에 대한 시굴조사 진행하게 되었다.[1]
조사결과
아차산성의 전체적 형태는 부정 육각형 포곡식 산성으로 성벽은 내외벽 및 체성 내부를 석재를 이용해 쌓고 바깥쪽으로 성벽의 무너짐을 방지하기 위한 보축을 쌓은 석축 산성이다. 아차산성 내부는 계단상의 지형을 하고 있으며, 연지, 초대형 건물지, 주거유구 등이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아차산성은 문헌상으로는 백제 책계왕 때 축성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번 발굴을 통해서 조사된 토기와 기와, 철기 등을 통해 볼 때, 현존하는 석축성벽은 축조 상한은 신라가 한강 유역에 진출한 6세기 중반 이후이며, 출토 유물로 보아 7세기 전반대인 것으로 파악되었다.[2]
아차산성 시발굴조사 지형도 및 위치도
[3]
관련 사항
이문서 | 관계 | 관련 내용 |
---|---|---|
아차산성 시발굴조사 | 관련 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소 명지대학교부설 한국건축문화연구소 세종대학교 건국대학교 |
아차산성 시발굴조사 | 관련 유적 | 아차산성 |
아차산성 시발굴조사 | 관련 유물 | 아차산성 인화문토기 철제 초두 철제 보습 연화문 와당 |
관련 사항
이문서 | 관계 | 관련 내용 |
---|---|---|
아차산성 시발굴조사 | ~에서 조사되었다 | 서울대학교 |
아차산성 시발굴조사 | ~에서 조사되었다 | 건국대학교 |
아차산성 시발굴조사 | ~에서 조사되었다 | 세종대학교 |
아차산성 시발굴조사 | ~에서 조사되었다 | 명지대학교부설 한국건축문화연구소 |
아차산성 시발굴조사 | ~에 관한 기록이다 | 아차산성 |
아차산성 시발굴조사 | ~가 발견되었다 | 아차산성 인화문토기 |
아차산성 시발굴조사 | ~가 발견되었다 | 아차산성 철제 초두 |
아차산성 시발굴조사 | ~가 발견되었다 | 아차산성 철제 보습 |
아차산성 시발굴조사 | ~가 발견되었다 | 아차산성 연화문 와당 |
클래스
- 사건
기여
- 이제현: 처음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