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산성 연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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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는 암반을 굴토한 후 그 내부에 석축을 쌓아 만들었는데, 암반을 굴토한 규모는 폭 12m, 깊이는 5m 가량 된다. 연지의 바닥과 벽에는 뻘을 채워 방수처리를 하였으며, 그 외곽에는 다듬어진 돌을 쌓아올렸다. 제일 바닥 쪽은 7단의 석재를 쌓았으며, 다시 30cm 가량 밖으로 물려서 다음 단을 쌓아올렸다. 각 단의 높이는 1~1.3m이며, 연지 상부까지는 5개의 단을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연지 내부의 규모는 바닥면이 5.28m, 상부는 7.4m이다.<ref>출처: 최종택, 「아차산성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 성과와 과제」, 『사총』, 제 81집, 2014, 23쪽.</ref> | 연지는 암반을 굴토한 후 그 내부에 석축을 쌓아 만들었는데, 암반을 굴토한 규모는 폭 12m, 깊이는 5m 가량 된다. 연지의 바닥과 벽에는 뻘을 채워 방수처리를 하였으며, 그 외곽에는 다듬어진 돌을 쌓아올렸다. 제일 바닥 쪽은 7단의 석재를 쌓았으며, 다시 30cm 가량 밖으로 물려서 다음 단을 쌓아올렸다. 각 단의 높이는 1~1.3m이며, 연지 상부까지는 5개의 단을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연지 내부의 규모는 바닥면이 5.28m, 상부는 7.4m이다.<ref>출처: 최종택, 「아차산성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 성과와 과제」, 『사총』, 제 81집, 2014, 23쪽.</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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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14일 (화) 13:50 기준 최신판
아차산성 연지[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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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삼국시대 |
위치 | 아차산성 B지구 |
주소 |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동 산16-46 |
개관
아차산성 내부 시설물(아차산성 남문지 배수시설, 아차산성 대형초석건물지, 아차산성 온돌 건물지, 아차산성 원형수혈유구, 아차산성 장대지, 아차산성 우물지 등) 중 하나로, 성 내부 북서쪽 기단건물지가 조사된 평탄면의 남서쪽에서 조사되었다. 연지의 평면은 말각방형 또는 타원형으로 추정되는데, 시굴을 통해 일부만 조사되었다.
연지는 암반을 굴토한 후 그 내부에 석축을 쌓아 만들었는데, 암반을 굴토한 규모는 폭 12m, 깊이는 5m 가량 된다. 연지의 바닥과 벽에는 뻘을 채워 방수처리를 하였으며, 그 외곽에는 다듬어진 돌을 쌓아올렸다. 제일 바닥 쪽은 7단의 석재를 쌓았으며, 다시 30cm 가량 밖으로 물려서 다음 단을 쌓아올렸다. 각 단의 높이는 1~1.3m이며, 연지 상부까지는 5개의 단을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연지 내부의 규모는 바닥면이 5.28m, 상부는 7.4m이다.[2]
유물은 그리 많은 양은 아니지만 토기편과 기와편이 뻘흙층을 제외한 1-5 층에서 출토되고 있다. 연못 내부에서 목제품과 같은 유물이 남아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조사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다.[3]
지도
클래스
- 유적
관련 문서
이 문서 | 관계 | 관련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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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성 연지 | A는 B에 있다 | 아차산 |
아차산성 연지 | A는 B에 속한다 | 아차산성 |
아차산성 연지 | A는 B의 근처에 있다 | 아차산성 우물지 |
아차산성 연지 | A는 B의 근처에 있다 | 아차산성 서문지 |
아차산성 연지 | A는 B의 근처에 있다 | 아차산성 대형초석건물지 |
아차산성 연지 | A는 B에서 조사되었다 | 서울대학교 박물관 |
아차산성 연지 | A는 B에서 조사되었다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
아차산성 연지 | A는 B에서 조사되었다 | 명지대학교 부설 한국건축문화연구소 |
아차산성 연지 | A에서 B가 행해지다 | 아차산성 시발굴조사 |
갤러리
주석
- ↑ 아래 사진출처: 임효재 외, 『아차산성 시굴조사보고서』, 서울대학교박물관・광진구, 2000, 285쪽.
- ↑ 출처: 최종택, 「아차산성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 성과와 과제」, 『사총』, 제 81집, 2014, 23쪽.
- ↑ 출처: 임효재 외, 앞의 책 2000a, 78쪽.
- ↑ 그림출처: 최종택, 앞의 책, 2014a, 15쪽.
- ↑ 그림출처: 최종택, 앞의 책 2014a, 81쪽.
기여
- 김지선: 처음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