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오죽헌"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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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65호.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태어난 집으로 한국 주택중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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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가 태어난 몽룡실(夢龍室)이 있는 별당 건물로, 우리나라 주택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이다. 검은 대나무가 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서 ‘오죽헌(烏竹軒)’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오죽헌은 조선 중기 사대부 주택에 많이 나타나는 별당과 그 평면형식을 같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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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111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강릉 오죽헌(江陵烏竹軒))' , 2022.10.07 접속 </ref>
검은 대나무가 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서 '오죽헌(烏竹軒)'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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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1504∼1551)과 율곡 이이(1536∼1584)가 태어난 유서 깊은 집이다.
 
신사임당(1504∼1551)과 율곡 이이(1536∼1584)가 태어난 유서 깊은 집이다.

2022년 10월 7일 (금) 20:39 기준 최신판


Ojukheon House

Ojukheon House is where Sin Saimdang (1504-1551) lived and her son, Yi I (Yulgok, 1536-1584) was born. Sin Saimdang was an exemplary mother, wise wife, and an outstanding artist while her son was considered to be one of the greatest scholars of Joseon with Yi Hwang. Built during the early Joseon Dynasty, this house remains to be one of the oldest wooden residential building in Korea. It was designated as Treasure No. 165. Inside the house is Yulgok Memorial Hall (Mongryongsil) where Yi I was born.

정의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주택[2]


위치

내용

烏-검을오 竹-대나무죽 軒-집헌
검은 대나무가 있는 집이라는 뜻이다.

개요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가 태어난 몽룡실(夢龍室)이 있는 별당 건물로, 우리나라 주택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이다. 검은 대나무가 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서 ‘오죽헌(烏竹軒)’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오죽헌은 조선 중기 사대부 주택에 많이 나타나는 별당과 그 평면형식을 같이 한다. [3]

신사임당(1504∼1551)과 율곡 이이(1536∼1584)가 태어난 유서 깊은 집이다. 사임당 신씨는 뛰어난 여류 예술가였고 현모양처의 본보기가 되는 인물이며, 신씨의 아들 율곡 이이는 조선시대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훌륭한 학자였다. 오죽헌은 조선시대 문신이었던 최치운(1390∼1440)이 지었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앞면에서 보면 왼쪽 2칸은 대청마루로 사용했고, 오른쪽 1칸은 온돌방으로 만들었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부재들도 새부리 모양으로 빠져나오는 간결한 형태로 짜은 익공계 양식으로 꾸몄다. 우리나라 주택 건축물 중에서 비교적 오래된 건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며,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진 건물이다. [4]

인물

신사임당(1504∼1551)과 율곡 이이(1536∼1584)가 태어난 유서 깊은 집이다.

사임당 신씨는 뛰어난 여류 예술가였고 현모양처의 본보기가 되는 인물이다.

신씨의 아들 율곡 이이는 조선시대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훌륭한 학자였다.

오죽헌은 조선시대 문신이었던 최치운(1390~1440)이 지었다.

건물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앞면에서 보면 왼쪽 2칸은 대청마루로 사용했고, 오른쪽 1칸은 온돌방으로 만들었다.

의의

오죽헌은 조선 중기 사대부 주택의 별당 모습을 살필 수 있는 곳이다.

권씨 고택의 본래 배치는 본가 우측 대나무 숲의 가운데에 가묘가 있고 그 앞으로 오죽헌이 있는 것이다. 현재 문성사가 있는 자리는 어제각이 있던 자리이다. 그 뒤는 소나무숲이 둘러싸고 있었으며 본가는 ㅁ자형의 평면이었고 우측에 입구가 설치되어 있었다. 마당의 뒤쪽으로 안채가 자리하고 있었으며, 정면에 위치한 사랑채는 ‘호해정사(湖海精舍)’라 이름하였고, 5대 권진영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가와는 담장으로 구분되어 별도의 영역에 자리한 오죽헌은 권씨 집안으로 물려진 고택의 일부분이며 현재 보물로 지정된 곳도 여기이다.본가와는 다르게 동남향하고 있는 오죽헌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4칸 크기의 대청과 1칸 반 크기의 온돌방, 그리고 반칸 너비의 툇마루로 된 단순한 一자형 평면의 건물이다. 이곳의 온돌이 이이가 태어난 몽룡실이다. 온돌의 뒤쪽 반칸은 별도로 마루를 드렸는데, 당시 다른 사대부들의 별당과 마찬가지로 책을 보관하던 서실(書室)의 기능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커다란 장대석을 한 층으로 쌓은 기단(基壇)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워 기둥 윗몸을 창방으로 결구하고, 기둥 위에 주두(柱頭)를 놓고 익공(翼工)으로 처리한 이익공양식(二翼工樣式)의 집이다. 도리는 굴도리이고 그를 운두가 낮은 장여로 받치며, 다시 그것을 주간에서는 창방 위에 화반(花盤)으로, 기둥에서는 첨차 위에 소로[小累]를 놓아 받치고 있다. 겹처마에 양측 면에 합각(合閣)을 형성한 팔작지붕이다.정면에는 띠살창호를, 측면에는 골판문으로 된 덧문을 달았다. 온돌방은 벽과 천장을 모두 종이로 마감하였고, 대청의 바닥은 우물마루로 마감하였으며,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이다. 또, 오량(五樑)집의 가구(架構)들은 모두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데, 대들보를 앞뒤의 평주(平柱) 위에 얹고 그 위에 종보[宗樑]를 놓고, 다시 초각(草刻)한 판대공(板臺工)과 첨차로써 마루도리[宗道里]를 떠받게 하였다. 합각 밑부분에는 귀틀을 짠 뒤 우물천장을 만들어 서까래가 모여드는 것을 가리고 있다. [5]

관련된 사회제도

서류부가혼(壻留婦家婚) - 조선 전기의 결혼제도로 남자가 결혼을 하면 부인의 집이나 그 근처에 살고 처가의 재산을 물려받는 풍습이다.[6]

사진자료


참고문헌

주석

  1. '강릉 오죽헌', 문화재청, 2017년 4월 6일
  2. '강릉 오죽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17년 4월 6일
  3.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111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강릉 오죽헌(江陵烏竹軒))' , 2022.10.07 접속
  4. '강릉 오죽헌 (江陵 烏竹軒)', 국가문화유산포털, 2022.10.07 접속
  5.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111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강릉 오죽헌(江陵烏竹軒))' , 2022.10.07 접속
  6. '강릉 오죽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17년 4월 6일

수정:2022:구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