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식-8.15해방"의 두 판 사이의 차이

DH 교육용 위키
이동: 둘러보기, 검색
 
(같은 사용자에 의한 3개의 중간 편집이 숨겨짐)
1번째 줄: 1번째 줄:
 
[[파일:Back.png|right|thumb|[[민족기록화]]]]
 
[[파일:Back.png|right|thumb|[[민족기록화]]]]
 
[[파일:윤중식-팔일오해방-1967s.jpg|윤중식 「8.15해방」 1967]]
 
[[파일:윤중식-팔일오해방-1967s.jpg|윤중식 「8.15해방」 1967]]
 +
 +
==작가==
 +
윤중식(尹仲植): 1914∼2012. 서양화가.평양 출신. 일본 제국미술학교 서양화과 졸업. 국전 추천작가, 초대작가, 심사위원, 홍익대학교 교수, 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위원장을 역임. 제국미술학교 본과 서양화과에 입학하기 전인 1931년부터 수 차례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 입선하였고, 제국미술하교 재학 당시에는 일본의 중진 서양화가 우메하라 류자부로(梅原龍三郞)가 주도하던 국화회(國畵會) 전시회에 참여하였으며 1938년에 결성된 재동경미술협회전에 두 차례 출품하였다. 해방후에는 1953년 제2회 국전에서 특선을 수상한 이래 국전 추천작가, 초대작가, 심사위원을 역임하며 서양화단의 중진으로 자리잡아갔고 1970년에는 홍익대학교 교수에 부임하여 1977년까지 재직하였다.학습기 이후 일본 서양화단의 영향으로 야수파 경향이 강하여 단순한 형태에 강렬한 색채, 굵은 윤곽선 등이 특징이었으나 해방 후에는 분단상황으로 인한 실향민으로서의 향수를 표현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며 조형적인 순화과정을 보였다. 소재로는 비둘기와 같이 어린 시절의 기억과 연관된 예들과 저녁놀, 농촌풍경 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관련 자료==
 
==관련 자료==
 
<gallery>
 
<gallery>
청일전쟁1.jpg|청일전쟁
+
청일전쟁1.jpg|청일전쟁(1894~1895)
청일전쟁2.jpg|청일전쟁
+
청일전쟁2.jpg|청일전쟁(1894~1895)
명성왕후1.jpg|명성황후 시해 장면(상상도)
+
명성왕후1.jpg|일본의 명성황후 시해(1895. 10. 8)
 
명성왕후2.jpg|명성황후 영정
 
명성왕후2.jpg|명성황후 영정
 
러일전쟁1.jpg|일본과 중국이 조선을 유린하는 것을 경계하는 러시아
 
러일전쟁1.jpg|일본과 중국이 조선을 유린하는 것을 경계하는 러시아
 
러일전쟁2.jpg|발틱함대의 이동
 
러일전쟁2.jpg|발틱함대의 이동
러일전쟁3.jpg|러일전쟁
+
러일전쟁3.jpg|러일전쟁(1904~1905)
 +
오승윤-동학혁명(전봉준)-1976s.jpg|오승윤 「동학교주 전봉준」 1976
 +
장이석-홍주성수복(민종식)-1975s.jpg|장리석 「홍주성수복」 1975
 +
정창섭-태백산전투(신돌석)-1975s.jpg|정창섭 「태백산전투」 1975
 +
손수광-민충정공순국(민영환)-1976s.jpg|손수광 「충정공 민영환의 자결순국」(1905. 11.) 1976
 +
박기태-박성환순국(박성환)-1976s.jpg|박기태 「박승환의 자결순국」(1907. 8.) 1976
 +
박영선-이등박문총살(안중근)-1976s.jpg|박영선 「이등박문을 총살하는 안중근의사」(1909. 10.) 1976
 +
최대섭-독립선언-1976s.jpg|최대섭 「민족대표의 독립선언」(1919. 3.) 1976
 +
문학진-삼일운동-1976s.jpg|문학진 「파고다공원의 3.1독립만세시위」(1919. 3.) 1976
 +
손수광-청산리싸움(김좌진)-1975s.jpg|손수광 「청산리싸움」(靑山里戰鬪, 1920. 10.) 1975
 +
임직순-봉오동전투(홍범도)-1976s.jpg|임직순 「홍범도장군의 봉오동전투」(鳳梧洞戰鬪, 1920. 6.) 1976
 
</gallery>
 
</gallery>
  
 
[[분류:민족기록화]]
 
[[분류:민족기록화]]

2016년 6월 7일 (화) 07:50 기준 최신판

윤중식 「8.15해방」 1967

작가

윤중식(尹仲植): 1914∼2012. 서양화가.평양 출신. 일본 제국미술학교 서양화과 졸업. 국전 추천작가, 초대작가, 심사위원, 홍익대학교 교수, 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위원장을 역임. 제국미술학교 본과 서양화과에 입학하기 전인 1931년부터 수 차례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 입선하였고, 제국미술하교 재학 당시에는 일본의 중진 서양화가 우메하라 류자부로(梅原龍三郞)가 주도하던 국화회(國畵會) 전시회에 참여하였으며 1938년에 결성된 재동경미술협회전에 두 차례 출품하였다. 해방후에는 1953년 제2회 국전에서 특선을 수상한 이래 국전 추천작가, 초대작가, 심사위원을 역임하며 서양화단의 중진으로 자리잡아갔고 1970년에는 홍익대학교 교수에 부임하여 1977년까지 재직하였다.학습기 이후 일본 서양화단의 영향으로 야수파 경향이 강하여 단순한 형태에 강렬한 색채, 굵은 윤곽선 등이 특징이었으나 해방 후에는 분단상황으로 인한 실향민으로서의 향수를 표현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며 조형적인 순화과정을 보였다. 소재로는 비둘기와 같이 어린 시절의 기억과 연관된 예들과 저녁놀, 농촌풍경 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관련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