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과 K-푸드"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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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집밥백선생>, <수미네반찬> 등 대중매체의 영향으로 집밥 메뉴 레시피를 큐레이션한 애플리케이션이 대거 등장했고, 이를 이용자도 늘어...)
 
(빈대떡(부침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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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백선생>, <수미네반찬> 등 대중매체의 영향으로 집밥 메뉴 레시피를 큐레이션한 애플리케이션이 대거 등장했고, 이를 이용자도 늘어나고 있다.
 
이용자들이 '집밥'이라는 한식 문화의 원형은 어디부터 시작했고, 오늘날까지 무슨 이유에서 사랑받고 있는지 알려주고 싶다.
 
  
====집밥의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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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겟대상: K-푸드를 주도할 식품 기업
1. 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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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겟메시지: K-푸드를 활성화하기 위해 집밥 문화(양곡류 중심)를 분석하고 앞으로의 발전 방향 제시
2. 장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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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 양곡류를 중심으로
파일:만초장.jpg|만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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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은 2000년대 조어로 생긴 얼마 안 된 단어이다. 그래서인지 집밥의 의미가 전통성만을 강조하기보단 '현대적 한식'으로 보는 게 올바르다.
파일:된장.jpg|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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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전통성과 현대성이 아우러진 한식을, 우리는 '집밥'이라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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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의 기본: 한식의 주식과 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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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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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ref>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m/view.do?levelId=km_026_0050_0050_0010</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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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대부분 기간 동안 대다수 백성들에게 쌀은 주식이 아니었다. 주식으로 하기에 쌀은 너무 귀하였고, 너무 적은 양만 생산되었다. 쌀밥은 매우 특별한 음식이었다. 하지만 18세기를 지나면서 논 면적은 급격히 늘어났고 밭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이것은 사회 전체가 쌀 생산에 매달리기 시작하였음을 뜻한다. 사회 전체적으로 높아진 인구압이 이런 현상의 배경이었다. 제한된 땅에서 늘어나는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벼농사가 선택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역설적으로 백성들에게도 쌀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늘었다. 쌀이 주식으로 자리를 잡아 가는 모습은, 1833년(순조 33) 한양에서 일어났던 ‘쌀 폭동’을 통해서 도 확인된다.216) ‘쌀 폭동’은 적어도 한양에서는 중간층 이하 사람들조차 쌀을 주식화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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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생활에서 쌀 소비가 늘어났음은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의 저자 서유구(徐有榘, 1764∼1845)도 언급하였다. 그는 거의 100년 이래 쌀을 먹는 풍조가 만연하여, 옛날에 잡곡을 심었던 땅 중에 논으로 바뀐 곳이 무척 많다고 말하였다.217) 이 말이 19세기 전반에 나온 것임을 감안하면, 18세기 전반이나 중반 이후로 쌀을 먹는 풍조가 퍼져 나갔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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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이 대다수 사람들에게 언제나 충분한 양식은 아니었다. 그 때문에 그들에게 쌀밥을 먹는 동안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쌀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 대다수의 이런 집단적 경험과 기억은 쌀이야말로 이상적 먹을거리이며, 밥은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는 강력한 인식을 만들어 냈다. 그 결과 조선시대는 쌀의 중요성에 대한 많은 관습과 속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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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술이나 뜬다.”, “밥줄 떨어진다.”는 표현은 생계의 넉넉함이나 생계 수단을 잃는 것을 말한다. 밥은 그 자체가 생계와 동일시되었다. “밥숟갈 놓다.”는 표현은 죽었다는 것의 다른 말로, 밥을 생명 그 자체와 동일시하는 표현이다. 또 사람이 죽어갈 때 대나무 통에 쌀을 담아 귓가에 흔들면 목숨이 잠시 연장된다는 말도 있었다. 이 말은 쌀이나 쌀밥에 대한 바람이 얼마나 절실하였는지를 담고 있다. 평상시에 얼마나 원하였으면, 죽어 가는 순간에 죽음조차 잠시 미룰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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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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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과일은 당도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과일로 술을 만들기 보다는 대부분 곡물로 만들었다. 곡물을 익혀 누룩과 물을 더하면 곡물의 전분이 당으로 변하고, 이 당을 먹이로 하여 미생물이 증식을 하게 되는데, 이를 알코올 발효라 한다. 이 발효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 술이다. 이때 그냥 거르기만 하면 막걸리가 되고 막걸리가 다 된 술에 싸리 등으로 만든 긴 통을 박아 맑은 술을 떠내면 그것이 청주(淸酒)가 된다. 이 청주를 증류하면 소주(燒酒)가 된다. 이 소주는 요즘 흔한 희석식 소주가 아니라 증류식 소주이다.<ref>http://theme.archives.go.kr/next/koreaOfRecord/sojunMakgeolli.do</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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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에는 오덕(五德)이 있다. 허기를 다스려 주는 덕, 취기가 심하지 않은 덕, 추위를 덜어주는 덕, 일하기 좋게 기운을 돋궈주는 덕, 의사소통을 원활케 하는 덕이다. 막걸리에는 삼반(三反)도 있다. 근로지향의 반유한적(反有閑的)이며 서민지향의 반귀족적이고 평등지향의 반계급적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막걸리는 서민의 술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왔다.막걸리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막걸리는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막걸리를 미온주(美溫酒)로 소개한 기록이 있고, 고려 때의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왕이나 귀족들은 멥쌀로 만든 청주를 마시는 반면 백성들은 맛이 짙고 빛깔이 짙은 술을 마신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지방별·문중별로 다양하게 발전시킨 독특한 막걸리를 빚었다.막걸리는 쌀이나 밀에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키는데, 술이 완성되면 체에 내려 목으로 넘기기에 거북한 거친 것들만 걸러낸다. 그렇다 보니 곡물로 만들 수 있는 술 중에 가장 원초적인 단계의 술이라 할 수 있다. 막걸리는 다른 술에 비하여 6∼13%로 알코올 도수도 낮은 편이며, 단백질, 유산균 등이 풍부하면서도 열량은 낮은 것이 특징이다. 막걸리 성분 중에 물 다음으로 많은 것은 10% 내외를 차지하는 식이섬유이다.<ref>http://theme.archives.go.kr/next/koreaOfRecord/sojunMakgeolli.do</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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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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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lery mode=packed-hover heights=180px>
 
파일:간장.jpg|간장
 
파일:간장.jpg|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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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된장.jpg|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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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만초장.jpg|만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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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lery>
3. 김치
 
  
====조선시대 '주막'으로 살펴본 집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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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wikitable"
*주막 메뉴 <ref>출처: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콘텐츠닷컴</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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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정의||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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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콩을 발효시켜 만든 짜고 특유의 맛을 내는 액체 장||양조간장, 진간장, 국간장, 혼합간장, 산분해간장, 효소분해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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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만초장)||메줏가루에 질게 지은 밥이나 떡가루, 또는 되게 쑨 죽을 버무리고 고춧가루와 소금을 섞어서 만든 장||찹쌀고추장, 밀가루 고추장, 맵쌀 고추장, 보리고추장, 수수고추장, 팥고추장, 고구마고추장, 마늘고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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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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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메주로 장물을 떠내고 남은 건더기 또는 메주에 소금물을 알맞게 부어 익혀 장물을 떠내지 않고 먹는 장||막된장, 토장, 담북장, 막장, 집장, 생활장, 청태장, 팥장, 청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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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주막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음식을 판매하면서 동시에 술과 안주를 제공하는 곳으로, 밥집과 술집의 기능을 한다. 다른 하나는 마을과 마을 사이의 길목에 위치하여 숙박을 목적으로 하면서 음식과 술을 제공하는 곳으로, 숙소 기능까지 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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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주막'으로 살펴본 집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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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막은 엄연히 말하자면 집밥이 아닌 '외식'이다. 그러나 주막의 음식 자체가 2000년대 '집밥'의 개념이 생긴 이후 국밥은 집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메뉴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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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주막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ref>출처: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콘텐츠닷컴</ref> 하나는 음식을 판매하면서 동시에 술과 안주를 제공하는 곳으로, 밥집과 술집의 기능을 한다. 다른 하나는 마을과 마을 사이의 길목에 위치하여 숙박을 목적으로 하면서 음식과 술을 제공하는 곳으로, 숙소 기능까지 겸한다. 주막의 기능이 현대에 이르러서 밥집, 술집, 여관, 호텔 등으로 기능이 분화되면서, '주막'은 없어져 갔다.  
  
 
[[파일:주사거배.png|300px]] <ref>출처:간송미술문화재단</ref>
 
[[파일:주사거배.png|300px]] <ref>출처:간송미술문화재단</ref>
  
신윤복의 <주사거배>에서 보이는 조선시대 주막의 모습이다.
 
 
{|class="wikitable"
 
{|class="wikitable"
 
!종류||큰 카테고리||예
 
!종류||큰 카테고리||예
27번째 줄: 69번째 줄:
 
|안주||마른안주||육포, 어포
 
|안주||마른안주||육포, 어포
 
|-
 
|-
|||진안주||돼지고기, 너비아니, 빈대떡, 떡 산적, 생선구이
+
|||진안주||수육, 너비아니, 빈대떡, 떡 산적, 생선구이
 
|-
 
|-
|주류||약주, 방문주, 소주, 삼해주, 약소주, 국화주, 연엽주, 과하주, 두견주
+
|주류||약주, 방문주(청주), 삼해주, 소주||약용주, 막걸리, 감홍로, 이강고, 죽력고
 
|}
 
|}
  
====K-푸드의 발전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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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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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소스와 같이 삼위일체를 이루는 국물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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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에는 국물에 밥을 말아서 먹는 음식이 많다. 집밥의 가장 필수적인 밥상차림으로 밥과 국이 손꼽힌다. 과거부터 뜨겁고 끈적임 있는 밥을 먼저 먹으면 목이 메일까봐 국물로 목을 먼저 축이는 '습관화'와 식량이 부족했던 과거에 음식 양을 늘리고자 국에 밥을 넣고 끓인 '서민형 음식'이 맞물려 주막이나 시골 장터에서 국밥이 발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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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lery mode=packed-hover heights=160px>
 +
파일:장국밥.jpg|장국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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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양골국.jpg|양골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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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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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wiki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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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국밥||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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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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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 고추장||장국밥||장국밥이 발달했다. 그중 대표적인 음식으로, 탕반(湯飯)이라고 불리는 장국밥이 있다. 장국밥은 순전히 양지머리로만 그 국물을 뽑기 때문에 국물이 순하며, 간을 맞추기 위하여 간장을 타면 연한 국물 빛이 장국을 더욱 맛있게 했다 한다. 장국밥은 제사를 지낸 후 남은 음식을 쉽게 먹기 위해서 만들어진 음식이라는 유래가 있으며 탕, 나물, 적을 다 같이 고루 먹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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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양골국||술국, 해장국이라고 불리는 양골국(뼈다귓국) 또한 주막을 대표하는 국밥이었다. 지방마다 방식이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소의 뼈를 가지고 우려내는 국물을 이용한다. 살점을 발라낸 소 뼈다귀를 도끼로 토막을 지어 끓는 물에 집어 넣고 이 국물에 알맞게 된장을 풀어서 배추 우거지를 집어넣고 토막 친 뼈다귀가 흐무러지게 마냥 끓이면 소 뼈다귀에서 우러나온 허연 국물이 된장 맛과 어울려서 구수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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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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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떡(부침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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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디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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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법 거피한 녹두를 갈아 되직한 반죽을 만든다. 거피한 팥을 꿀과 반죽해 소를 만든다. 잠기지 않을 만큼 기름을 부어 끓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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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 간 것을 조금 떠놓고 거피 팥소를 얹고 다시 녹두 간 것으로 덮어 노릇하게 지져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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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푸드의 미래==
 +
 
 +
===쌀가루 사업===
 +
1. 막걸리(청주)와 부침류
 +
 
 +
2. 떡 식품 개발
 +
 
 +
===장류의 자극성 완화와 국밥 간소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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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 감성 마케팅===
  
====출처====
+
==[[집밥.lst]]==
 +
==출처==
 
<references/>
 
<references/>

2020년 5월 21일 (목) 06:20 기준 최신판

타겟대상: K-푸드를 주도할 식품 기업 
타겟메시지: K-푸드를 활성화하기 위해 집밥 문화(양곡류 중심)를 분석하고 앞으로의 발전 방향 제시
*집밥: 양곡류를 중심으로
집밥은 2000년대 조어로 생긴 얼마 안 된 단어이다. 그래서인지 집밥의 의미가 전통성만을 강조하기보단 '현대적 한식'으로 보는 게 올바르다.
근대의 전통성과 현대성이 아우러진 한식을, 우리는 '집밥'이라 부르는 것이다.

집밥의 기본: 한식의 주식과 소스

단립종과 장립종.png[1]

종류 특징 생산국가
자포니카 쌀 단립종 대한민국
인디카 쌀 장립종 베트남

[2]

조선시대 대부분 기간 동안 대다수 백성들에게 쌀은 주식이 아니었다. 주식으로 하기에 쌀은 너무 귀하였고, 너무 적은 양만 생산되었다. 쌀밥은 매우 특별한 음식이었다. 하지만 18세기를 지나면서 논 면적은 급격히 늘어났고 밭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이것은 사회 전체가 쌀 생산에 매달리기 시작하였음을 뜻한다. 사회 전체적으로 높아진 인구압이 이런 현상의 배경이었다. 제한된 땅에서 늘어나는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벼농사가 선택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역설적으로 백성들에게도 쌀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늘었다. 쌀이 주식으로 자리를 잡아 가는 모습은, 1833년(순조 33) 한양에서 일어났던 ‘쌀 폭동’을 통해서 도 확인된다.216) ‘쌀 폭동’은 적어도 한양에서는 중간층 이하 사람들조차 쌀을 주식화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식생활에서 쌀 소비가 늘어났음은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의 저자 서유구(徐有榘, 1764∼1845)도 언급하였다. 그는 거의 100년 이래 쌀을 먹는 풍조가 만연하여, 옛날에 잡곡을 심었던 땅 중에 논으로 바뀐 곳이 무척 많다고 말하였다.217) 이 말이 19세기 전반에 나온 것임을 감안하면, 18세기 전반이나 중반 이후로 쌀을 먹는 풍조가 퍼져 나갔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쌀이 대다수 사람들에게 언제나 충분한 양식은 아니었다. 그 때문에 그들에게 쌀밥을 먹는 동안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쌀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 대다수의 이런 집단적 경험과 기억은 쌀이야말로 이상적 먹을거리이며, 밥은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는 강력한 인식을 만들어 냈다. 그 결과 조선시대는 쌀의 중요성에 대한 많은 관습과 속담을 남겼다.

“밥술이나 뜬다.”, “밥줄 떨어진다.”는 표현은 생계의 넉넉함이나 생계 수단을 잃는 것을 말한다. 밥은 그 자체가 생계와 동일시되었다. “밥숟갈 놓다.”는 표현은 죽었다는 것의 다른 말로, 밥을 생명 그 자체와 동일시하는 표현이다. 또 사람이 죽어갈 때 대나무 통에 쌀을 담아 귓가에 흔들면 목숨이 잠시 연장된다는 말도 있었다. 이 말은 쌀이나 쌀밥에 대한 바람이 얼마나 절실하였는지를 담고 있다. 평상시에 얼마나 원하였으면, 죽어 가는 순간에 죽음조차 잠시 미룰 수 있었겠는가.


막걸리

우리나라의 과일은 당도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과일로 술을 만들기 보다는 대부분 곡물로 만들었다. 곡물을 익혀 누룩과 물을 더하면 곡물의 전분이 당으로 변하고, 이 당을 먹이로 하여 미생물이 증식을 하게 되는데, 이를 알코올 발효라 한다. 이 발효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 술이다. 이때 그냥 거르기만 하면 막걸리가 되고 막걸리가 다 된 술에 싸리 등으로 만든 긴 통을 박아 맑은 술을 떠내면 그것이 청주(淸酒)가 된다. 이 청주를 증류하면 소주(燒酒)가 된다. 이 소주는 요즘 흔한 희석식 소주가 아니라 증류식 소주이다.[3]

막걸리에는 오덕(五德)이 있다. 허기를 다스려 주는 덕, 취기가 심하지 않은 덕, 추위를 덜어주는 덕, 일하기 좋게 기운을 돋궈주는 덕, 의사소통을 원활케 하는 덕이다. 막걸리에는 삼반(三反)도 있다. 근로지향의 반유한적(反有閑的)이며 서민지향의 반귀족적이고 평등지향의 반계급적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막걸리는 서민의 술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왔다.막걸리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막걸리는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막걸리를 미온주(美溫酒)로 소개한 기록이 있고, 고려 때의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왕이나 귀족들은 멥쌀로 만든 청주를 마시는 반면 백성들은 맛이 짙고 빛깔이 짙은 술을 마신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지방별·문중별로 다양하게 발전시킨 독특한 막걸리를 빚었다.막걸리는 쌀이나 밀에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키는데, 술이 완성되면 체에 내려 목으로 넘기기에 거북한 거친 것들만 걸러낸다. 그렇다 보니 곡물로 만들 수 있는 술 중에 가장 원초적인 단계의 술이라 할 수 있다. 막걸리는 다른 술에 비하여 6∼13%로 알코올 도수도 낮은 편이며, 단백질, 유산균 등이 풍부하면서도 열량은 낮은 것이 특징이다. 막걸리 성분 중에 물 다음으로 많은 것은 10% 내외를 차지하는 식이섬유이다.[4]

장류

구분 정의 종류
간장 콩을 발효시켜 만든 짜고 특유의 맛을 내는 액체 장 양조간장, 진간장, 국간장, 혼합간장, 산분해간장, 효소분해간장
고추장(만초장) 메줏가루에 질게 지은 밥이나 떡가루, 또는 되게 쑨 죽을 버무리고 고춧가루와 소금을 섞어서 만든 장 찹쌀고추장, 밀가루 고추장, 맵쌀 고추장, 보리고추장, 수수고추장, 팥고추장, 고구마고추장, 마늘고추장
된장 메주로 장물을 떠내고 남은 건더기 또는 메주에 소금물을 알맞게 부어 익혀 장물을 떠내지 않고 먹는 장 막된장, 토장, 담북장, 막장, 집장, 생활장, 청태장, 팥장, 청국장

조선시대 '주막'으로 살펴본 집밥

주막은 엄연히 말하자면 집밥이 아닌 '외식'이다. 그러나 주막의 음식 자체가 2000년대 '집밥'의 개념이 생긴 이후 국밥은 집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메뉴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조선시대 주막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5] 하나는 음식을 판매하면서 동시에 술과 안주를 제공하는 곳으로, 밥집과 술집의 기능을 한다. 다른 하나는 마을과 마을 사이의 길목에 위치하여 숙박을 목적으로 하면서 음식과 술을 제공하는 곳으로, 숙소 기능까지 겸한다. 주막의 기능이 현대에 이르러서 밥집, 술집, 여관, 호텔 등으로 기능이 분화되면서, '주막'은 없어져 갔다.

주사거배.png [6]

종류 큰 카테고리
식사류 국밥 장국밥, 양골국
안주 마른안주 육포, 어포
진안주 수육, 너비아니, 빈대떡, 떡 산적, 생선구이
주류 약주, 방문주(청주), 삼해주, 소주 약용주, 막걸리, 감홍로, 이강고, 죽력고

국밥

밥, 소스와 같이 삼위일체를 이루는 국물 요리

집밥에는 국물에 밥을 말아서 먹는 음식이 많다. 집밥의 가장 필수적인 밥상차림으로 밥과 국이 손꼽힌다. 과거부터 뜨겁고 끈적임 있는 밥을 먼저 먹으면 목이 메일까봐 국물로 목을 먼저 축이는 '습관화'와 식량이 부족했던 과거에 음식 양을 늘리고자 국에 밥을 넣고 끓인 '서민형 음식'이 맞물려 주막이나 시골 장터에서 국밥이 발달했다.

소스 국밥 설명
간장, 고추장 장국밥 장국밥이 발달했다. 그중 대표적인 음식으로, 탕반(湯飯)이라고 불리는 장국밥이 있다. 장국밥은 순전히 양지머리로만 그 국물을 뽑기 때문에 국물이 순하며, 간을 맞추기 위하여 간장을 타면 연한 국물 빛이 장국을 더욱 맛있게 했다 한다. 장국밥은 제사를 지낸 후 남은 음식을 쉽게 먹기 위해서 만들어진 음식이라는 유래가 있으며 탕, 나물, 적을 다 같이 고루 먹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된장 양골국 술국, 해장국이라고 불리는 양골국(뼈다귓국) 또한 주막을 대표하는 국밥이었다. 지방마다 방식이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소의 뼈를 가지고 우려내는 국물을 이용한다. 살점을 발라낸 소 뼈다귀를 도끼로 토막을 지어 끓는 물에 집어 넣고 이 국물에 알맞게 된장을 풀어서 배추 우거지를 집어넣고 토막 친 뼈다귀가 흐무러지게 마냥 끓이면 소 뼈다귀에서 우러나온 허연 국물이 된장 맛과 어울려서 구수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한다.

빈대떡(부침개)

『음식디미방』 빈자법 거피한 녹두를 갈아 되직한 반죽을 만든다. 거피한 팥을 꿀과 반죽해 소를 만든다. 잠기지 않을 만큼 기름을 부어 끓인 후 녹두 간 것을 조금 떠놓고 거피 팥소를 얹고 다시 녹두 간 것으로 덮어 노릇하게 지져서 먹는다.

K-푸드의 미래

쌀가루 사업

1. 막걸리(청주)와 부침류

2. 떡 식품 개발

장류의 자극성 완화와 국밥 간소화

집밥 감성 마케팅

집밥.lst

출처

  1. https://post-phinf.pstatic.net/MjAxODAyMTJfMjg0/MDAxNTE4NDExNDgwNDI0.Jd1YJWFIqpxWvs1g1YzrwzYenfBfEB9SZbdTlIfHKSMg.j35TF2V9gAWoQmvgtiDW4QL19EZIkuVfKyQF-bS3ccMg.PNG/%EA%B7%B8%EB%A6%BC2.png?type=w1200
  2.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m/view.do?levelId=km_026_0050_0050_0010
  3. http://theme.archives.go.kr/next/koreaOfRecord/sojunMakgeolli.do
  4. http://theme.archives.go.kr/next/koreaOfRecord/sojunMakgeolli.do
  5. 출처: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콘텐츠닷컴
  6. 출처:간송미술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