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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스리그 예선: 2경기 1골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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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롱도르 1차 후보, UEFA 올해의 팀 왼쪽 미드필더 3위, UEFA 클럽 풋볼 어워드 최우수 공격수 후보에 선정되었을 만큼 박지성 축구 인생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잦은 부상으로 인한 부진한 플레이로 홈팬들에게 야유를 맏을 만큼 팀에 적응을 잘 하지 모사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히딩크 감독의 신뢰를 바탕으로 차차 신뢰를 끌어올려 팀의 핵심 플레이어로 성장하였다.

2019년 6월 11일 (화) 06:50 판


정의

아시아 선수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출전한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내용

인물정보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출신 축구행정가. 수원 세류초등학교에서 처음 축구를 시작했으며,안용중학교, 수원공업고등학교, 명지대학교를 거친 후 2000년 일본 교토 퍼플 상가에서 프로로 데뷔하였다. 이후,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에서 활약하였다. 이후 2014년 PSV 아인트호벤으로 돌아와 1년을 뛰고, 이른 나이에 은퇴하였다. 국가대표로서는 2010 남아공 월드컵 주장 등으로 활약했다. 은퇴 이후엔 JS파운데이션 이사장,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앰버서더로 활동 중이다.

선수 경력

  • 교토 퍼플 상가

2000-2002시즌을 함께한 팀.
2000년: 13경기 1골
2001년: 38경기 3골
2002년: 13경기 4골
을 기록했으며 2002년 12월 31일 계약이 만료되었으나 2003년 1월 1일 천황배 전일본 축구 선수권대회 결승에 진출한 팀을 위해 팀을 위해 무보수 출전을 단행했다. 0:1로 뒤지던 팀은 후반 7분에 터진 박지성의 헤딩 골과 1도움 덕분에 결국 2:1 역전승을 거두게 된다. 구단측은 박지성에게 "어딜 가든 응원하겠지만 언젠가 반드시 돌아와 달라. 절름발이가 되어 돌아와도 받아주겠다"는 명언을 남겼다. 이후 2003시즌에 PSV 아인트호벤으로 이적하였다.

  • PSV 아인트호벤

2002/03시즌: 8경기 0골 0도움
에레디비시: 8경기 0골 0도움

2003/04시즌: 40경기 6골 2도움
에레디비시: 28경기 6골 2도움
챔피언스리그: 5경기 0골 0도움
유로파리그: 5경기 0골 0도움
KNVB: 1경기 0골 0도움
슈퍼컵: 1경기 0골 0도움

2004/05시즌: 44경기 11골 6도움
에레디비시: 28경기 7골 5도움
챔피언스리그: 11경기 1골 1도움
챔피언스리그 예선: 2경기 1골
KNVB: 3경기 2골
발롱도르 1차 후보, UEFA 올해의 팀 왼쪽 미드필더 3위, UEFA 클럽 풋볼 어워드 최우수 공격수 후보에 선정되었을 만큼 박지성 축구 인생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잦은 부상으로 인한 부진한 플레이로 홈팬들에게 야유를 맏을 만큼 팀에 적응을 잘 하지 모사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히딩크 감독의 신뢰를 바탕으로 차차 신뢰를 끌어올려 팀의 핵심 플레이어로 성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