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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126. 뇌곶동(雷串洞305)) 御來峴上渚雲垂어래현 위쪽의 물안개가 드리운 곳은, 三百年前殿坐基삼백 년 이전에 임금 머문 터였네. 雷串洞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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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뇌곶동(雷串洞305))
 
御來峴上渚雲垂어래현 위쪽의 물안개가 드리운 곳은,
 
三百年前殿坐基삼백 년 이전에 임금 머문 터였네.
 
雷串洞人猶仰慕뇌곶동 사람들이 아직도 우러러보기에,
 
至今不敢起耕菑지금껏 묵힌 밭을 일굴 생각 못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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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御來峴上渚雲'''垂''' (<small>어래현상저운'''수'''</small>)    어래현 위쪽의 물안개가 드리운 곳은, <br />三百年前殿坐'''基''' (<small>삼백년전전좌'''기'''</small>)    삼백 년 이전에 임금 머문 터였네.<br />雷串洞人猶仰慕 (<small>뇌곶동인유앙모</small>)    뇌곶동 사람들이 아직도 우러러보기에,<br />至今不敢起耕'''菑''' (<small>지금부감기경'''치'''</small>)    지금껏 묵힌 밭을 일굴 생각 못한다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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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곶(雷串)은 돈대 뒤에 있다. 인조 정묘년(1627)에 임금이 행차하였을 때 임금의 가마가 임시로 자리했던 터가 있고, 그 남쪽에 임금이 오신 고개인 어래현(御來峴)이 있다. 주민들이 지금도 전좌기(殿座基)라 부르며 감히 개간하거나 경작하지 못한다.
 
○ 뇌곶(雷串)은 돈대 뒤에 있다. 인조 정묘년(1627)에 임금이 행차하였을 때 임금의 가마가 임시로 자리했던 터가 있고, 그 남쪽에 임금이 오신 고개인 어래현(御來峴)이 있다. 주민들이 지금도 전좌기(殿座基)라 부르며 감히 개간하거나 경작하지 못한다.
  
305) 송해면 숭뢰리 우뢰(雨雷)마을이다. 어래현은 돌기와집 뒤의 낮은 고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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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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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곶동(雷串洞) 송해면 숭뢰리 우뢰(雨雷)마을이다. 어래현은 돌기와집 뒤의 낮은 고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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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上平 支韻 : 垂 基 淄

2019년 5월 24일 (금) 12:13 기준 최신판

御來峴上渚雲 (어래현상저운)     어래현 위쪽의 물안개가 드리운 곳은, 
三百年前殿坐 (삼백년전전좌) 삼백 년 이전에 임금 머문 터였네.
雷串洞人猶仰慕 (뇌곶동인유앙모) 뇌곶동 사람들이 아직도 우러러보기에,
至今不敢起耕 (지금부감기경) 지금껏 묵힌 밭을 일굴 생각 못한다네.

○ 뇌곶(雷串)은 돈대 뒤에 있다. 인조 정묘년(1627)에 임금이 행차하였을 때 임금의 가마가 임시로 자리했던 터가 있고, 그 남쪽에 임금이 오신 고개인 어래현(御來峴)이 있다. 주민들이 지금도 전좌기(殿座基)라 부르며 감히 개간하거나 경작하지 못한다.


참고

  • 뇌곶동(雷串洞) 송해면 숭뢰리 우뢰(雨雷)마을이다. 어래현은 돌기와집 뒤의 낮은 고개이다.
  • 上平 支韻 : 垂 基 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