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월정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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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의 창건 유래는《삼국유사》에 나타나 있다. [[자장]]은 643년(신라 선덕여왕 12), 당나라에서 돌아와 지금의 절터에 초암을 짓고 머물면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자 하였다. 오대산이 문수보살이 머무는 성지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때 그가 머물던 곳이 바로 현재의 월정사 터이며, 자장은 훗날 다시 방을 짓고 7일 동안 머물렀다고도 전하고 있어 월정사는 643년 자장이 건립했다고 볼 수 있다. <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31545&cid=40942&categoryId=31548 월정사]"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인용. 2017년 3월 31일 확인</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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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는 643년(선덕여왕 12) 당나라 유학을 마친 자장율사가 오대산에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당시 자장은 절을 세운 것은 아니었고, 문수보살을 만나기 위해 허름한 움막을 지었던 것이다. 따라서 절이 시작된 것은 이후 범일의 제자였던 [[신의]]가 이곳에 암자를 짓고 살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려말 민지가 지은 《봉암사리개건사암제일조사전기》라는 문헌에는 자장을 월정사의 최초 창건자로 보는 인식이 뚜렷히 나타나있고, 오늘날에도 월정사의 시초는 자장율사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ref>"[http://www.whlee.kr/bbs/board.php?bo_table=05_1&wr_id=43&page=6 [월정사 역사와문화-1]" 『원행스님』,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문수성지 오대산 월정사, 2014년 2월 3일 작성, 2017년 4월 2일 확인</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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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의 영향으로 인해 오대산은 문수보살을 모시는 문수신앙의 성지로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면 오대산은 문수보살 뿐만아니라 다양한 불보살이 상주한다는 5만보살신앙으로 발전한다. 오대산의 다섯 봉우리는 중앙의 문수보살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는 각각 관음보살(동), 지장보살(서), 대세지보살(남), 미륵보살(북) 1만 분씩 상주하는 성지로 거듭난 것이다. <ref>"http://woljeongsa.org/bbs/content.php?co_id=101010&tabs=2#tab 월정사소개] 『오대산 월정사 홈페이지』, 2017년 4월 2일 확인.</ref> 하지만 이때까지도 움막으로 기록되고 있던 월정사가 어엿한 사찰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신의]]가 이곳에 법당을 세우면서부터다. 이 시기를 전후로 월정사는 오대산 신앙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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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전기, 월정사는 창건 이래 최대 흥성기를 맞이했다. 사실 그 이전까지도 사찰로서 월정사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고려 초, [[선종]]의 아홉 갈래 승려집단을 일컫는 [[구산선문]] 중 강릉의 사굴산문이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월정사 또한 그 세력권에 포함되어 함께 발전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흥한 것도 잠시, 몽고의 침입 이후 다시 사세가 심하게 기울었다.<ref>"[http://www.whlee.kr/bbs/board.php?bo_table=05_1&wr_id=43&page=6 [월정사 역사와문화-5]" 『원행스님』,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문수성지 오대산 월정사, 2014년 2월 5일 작성, 2017년 4월 2일 확인</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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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2일 (일) 15:11 판


개요

오대산에 있는 월정사는 60여개의 사찰과 8여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있는 매우 큰 규모의 사찰로,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이후 월정사는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며 여러번 화재로 건물이 전소되고 다시 중건되기를 반복했다. 한국전쟁 때도 모든 건물이 다 타버렸을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는데 현재 남은 건물은 모두 그 이후에 재건된 것이다.[1] 월정사는 과거 한암, 탄허 스님 등 이름난 고승들이 머물렀던 절로도 유명하며, 오늘날에는 전나무 숲길이 아름다워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전나무 숲은 tvn의 드라마 <도깨비>의(2016년 12월 30일 촬영분) 촬영지가 되기도 했다.[2] 아울러 월정사는 우리나라 고찰 가운데 보물급 문화재가 가장 많은 절이다. 1999년에는 경내에 월정사 성보박물관을 개관하여 월정사 본사를 포함해 강원 남부 60여개의 말사에서 모은 불교 문화재들을 전시하고 연구하고 있다. 월정사에서 8km쯤 산길을 오르면 월정사의 말사이자 이웃한 절이라고 할 수 있는 상원사가 나온다.

위치

역사

월정사는 643년(선덕여왕 12) 당나라 유학을 마친 자장율사가 오대산에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당시 자장은 절을 세운 것은 아니었고, 문수보살을 만나기 위해 허름한 움막을 지었던 것이다. 따라서 절이 시작된 것은 이후 범일의 제자였던 신의가 이곳에 암자를 짓고 살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려말 민지가 지은 《봉암사리개건사암제일조사전기》라는 문헌에는 자장을 월정사의 최초 창건자로 보는 인식이 뚜렷히 나타나있고, 오늘날에도 월정사의 시초는 자장율사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3]

자장의 영향으로 인해 오대산은 문수보살을 모시는 문수신앙의 성지로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면 오대산은 문수보살 뿐만아니라 다양한 불보살이 상주한다는 5만보살신앙으로 발전한다. 오대산의 다섯 봉우리는 중앙의 문수보살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는 각각 관음보살(동), 지장보살(서), 대세지보살(남), 미륵보살(북) 1만 분씩 상주하는 성지로 거듭난 것이다. [4] 하지만 이때까지도 움막으로 기록되고 있던 월정사가 어엿한 사찰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신의가 이곳에 법당을 세우면서부터다. 이 시기를 전후로 월정사는 오대산 신앙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오르게 된다.

고려전기, 월정사는 창건 이래 최대 흥성기를 맞이했다. 사실 그 이전까지도 사찰로서 월정사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고려 초, 선종의 아홉 갈래 승려집단을 일컫는 구산선문 중 강릉의 사굴산문이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월정사 또한 그 세력권에 포함되어 함께 발전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흥한 것도 잠시, 몽고의 침입 이후 다시 사세가 심하게 기울었다.[5]


설화

가상현실


주석

  1. "월정사" 한국문화유산답사회,『답사여행의 길잡이3 - 동해·설악』, 돌배게, 2011,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인용. 2017년 4월 2일 확인
  2. "드라마 <도깨비> 월정사 전나무숲길 촬영 『오대산 월정사 홈페이지』, 2017년 4월 2일 확인.
  3. "[월정사 역사와문화-1" 『원행스님』,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문수성지 오대산 월정사, 2014년 2월 3일 작성, 2017년 4월 2일 확인
  4. "http://woljeongsa.org/bbs/content.php?co_id=101010&tabs=2#tab 월정사소개] 『오대산 월정사 홈페이지』, 2017년 4월 2일 확인.
  5. "[월정사 역사와문화-5" 『원행스님』,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문수성지 오대산 월정사, 2014년 2월 5일 작성, 2017년 4월 2일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