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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암산 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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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암산 봉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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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지는 이야기==
 
==전해지는 이야기==

2016년 4월 14일 (목) 03:22 판


개요

불암산은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동, 중계동, 하계동, 공릉동에 걸쳐 있는 표고 509.6m[1], 면적 5,355,396m²(1,620,000평)의 화강암을 기반으로 한 바위산이다.[2] 한강 지류인 한천(漢川)을 끼고 이루어진 한천평야의 동쪽에 있으며, 평야를 사이에 두고 서쪽으로는 북한산(北漢山)을 마주보고, 북쪽으로는 덕릉고개를 사이에 두고 수락산(水落山)과 이웃하여 있다. 산의 남쪽 아래에는 태릉강릉이, 그리고 주변에는 동구릉광릉이 있다.[3]
불암산은 주봉과 주봉 남쪽으로 높이 420m의 제2봉을 거느리고 있으며, 음바위·사랑바위·말바위·용바위·눈바위 등 이름난 바위들이 많다.[4]
주봉과 제2봉 사이에는 불암사(佛巖寺)가 있다. 산 남쪽에는 불암산 폭포·석천암(石泉庵)·불암굴·학도암(鶴到庵)·강릉(康陵)·태릉(泰陵) 등이, 서쪽 기슭에는 정암사(淨巖寺)·약소암(藥昭庵)이 있으며, 제2봉 산정에는 불암산성지가 남아 있다.[5]

  • 경상계 불국사 통에 속하는 불암산 지역

불암산지질도.JPG

지명의 유래

떡갈나무·상수리나무·소나무가 주종을 이루는 불암산은 주봉인 큰바위가 마치 송낙을 쓴 부처의 형상이라 해서 붙여졌으며, 하늘에서 내린 보배로운 산이라는 뜻인 "천보산(天寶山)"[6]·필암산(筆巖山)[7]·붓바위산이라고도 한다.

  • 송낙

송낙.jpg

  • 불암산 봉우리

불암산정상.JPG

전해지는 이야기

불암산은 원래 금강산에 있었던 산이라고 한다. 어느날 불암산은 조선왕조가 도읍을 정하는데 한양에 남산이 없어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그래서 자기가 남산이 되고싶어 금강산을 떠나 한양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지금의 불암산 자리에 도착하여 보니 한양에는 이미 남산이 들어서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불암산은 한양의 남산이 될 수 없었기에 금강산으로 되돌아 갈 돌아갈 작정으로 뒤돌아서서 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한번 떠난 금강산에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돌아선 채로 그 자리에 머물고 말았다. 이 때문에 불암산은 현재 보는것과 같이 서울을 등지고 있는 형세이다.[8]

문헌 기록(추후 원문 확인)

  • 『신증동국여지승람』「양주목」: 주 남쪽 40리 지점에 있다.
  • 『산경표』: 한북정맥에 속하는 산.
  • 『조선왕조실록』: 단종 1년(1453)에 건원릉(健元陵)의 내맥인 도로도 사람이 통행하는 것을 허용하고, 불암산 밑의 옛길에 구덩이가 된 곳도 또한, 흙을 메우고 박석을 깔게 하소서.
  • 고지도 속 불암산

해동지도 경기도 불암산일대(1750초).jpg 대동여지도 불암산(61 64).JPG

주변 문화재

  • 태릉·강릉 - 사적 제201호
  • 아차산일대 보루군(수락산 보루) - 사적 제 455호

불암산 둘레길

①넓은마당→②[불암산허브공원→③좆바위→④음바위→⑤학도암→⑥백사마을→⑦산들메수목원→⑧불암사→ ⑨덕릉고개→⑩넓은마당
불암산하루길은 연인과 가족이 걷기에는 최적의 코스로 이 길은 휴식과 치유의 공간이다. 다만 마지막으로 갈수록 힘들어 가족단위 등산객은 넓은마당에서 백사마을코스까지만 권한다. 경기도 방향과 나머지 덕릉고개 코스는 조금 험하다. 이 불암산 하루길은 한 때 명성황후가 피신했다는 학도암, 6.25전쟁시 육사생도들이 유격전을 벌였던 불암산 동굴, 60~70년대 서민들의 대표적인 주거지로 남아있는 백사마을, 신라시대부터 호국불교의 산지인 불암사 등 다양한 유적지가 남아있는 곳으로 이 길은 성인이 걸으면 8시간 걸리는 둘레길 코스다.

  • 볼거리
    • 불암허브공원 : 다양한 허브와 주민들이 직접 고추, 토마토, 상추, 쑥갓 등 농산물을 키울 수 있는 텃밭다.
    • 학도암 : 학이 날아와 놀았다는 사찰인 학도암은 주변의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다우며, 암자 뒤쪽 커다란 바위 면에 새겨진 높이 13.4m에 이르는 거대한 마애관음보살좌상은 1870년(고종 7) 명성황후가 발원하여 조성했다고 하며 학도암은 1624년(인조 2) 무공화상(無空和尙)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 백사마을 : 1960~70년대 서울의 서민들의 대표적인 주거지인 백사마을로서 그 당시 서민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주택과 골목이 현재에도 남아 있다.
    • 불암사 :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며, 서울근교 사대명찰 중의 하나로 세조 때 왕성 사방에 왕실의 원찰(願刹)을 하나씩 정할 때 동불암(東佛巖)으로 꼽혔던 곳이다. 절 입구 제월루(霽月樓) 앞에 세워져 있는 천보산불암사사적비(天寶山佛巖寺事蹟碑)에 의하면, 824년(헌덕왕 16) 지증대사(智證大師)가 창건하였고, 도선(道詵)이 중창하였으며, 무학(無學)이 삼창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금당(金堂)인 대웅전을 비롯하여 제월루·관음전·칠성각·경판고(經板庫)·일주문·요사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보물 제591호로 지정된 석씨원류응화사적책판(釋氏源流應化事蹟冊板) 212매의 목판이 있다.
    • 좆바위, 음바위 : 불암산에는 기암괴석이 많이 있는데 특히 재현중학교 뒤편 등산로에 위치한 좆바위와 영신여고 뒤편에 음바위가 유명하다.


①강릉→②태릉선수촌→③조선왕릉전시관,태릉→④육군발물관→⑤서울여대박물관→⑥화랑대역사→⑦공릉동백세문 → ⑧백사마을 → ⑨노원고개 → ⑩제명호→ ⑪삼육대박물관
불암산 나절길은 4시간코스이나 볼거리가 많아 하루코스로 늘려 둘러보길 권하고 싶다. 기독교신자들에겐 이스라엘과 성경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삼육대박물관과 명종과 왕비 인순왕후가 묻힌 강릉, 수많은 국가대표를 길러낸 태릉선수촌, 명종의 어머니가 묻힌 태릉과 조선왕릉전시관, 우리나라 육군의 간성을 키우는 육사와 박정희대통령 탔던 캐딜락, 병인양요때 홍이포, 소련제 탱크인 T-34전차 등 수많은 유물이 있는 육군박물관과 오위도총부를 지낸 숙종의 여섯째 아들인 이훤신도비, 삼군부청헌당 등의 문화재가 있는 육사가 있다. 또한 여성복식사를 전시하는 서울여대박물관과 우리나라 철도문화재이며 근대문화재인 화랑대역사 등이 있다. 서어나무 군락지로 유명한 천연림과 인공으로 조성한 제명호라는 호수가 있는 삼육대천연림은 아주 잘 보존된 자연의 보고이다.

  • 볼거리
    • 박물관 : 육군박물관, 서울여대박물관, 삼육대박물관, 체육박물관
    • 왕릉 : 태릉, 강릉, 왕릉전시관
    • 육사관련 : 삼군부청헌당, 이훤신도비, 박정희대통령 탔던 캐딜락, 병인양요때 홍이포, 소련제 탱크인 T-34전차 등
    • 기타 : 화랑대역사. 삼육대 제명호수와 천연자연림, 태릉선수촌, 구서울공과대학, 대륙관


  • 불암산 둘레길 안내

불암산둘레길.jpg

  • 불암산 등산로 안내

불암산등산로.jpg

관련 인물

  • 서거정

32년간 불암산 밑에 살다가 50세가 넘어 몽촌토성 근방(현재의 서울 송파구 방이동 지역)으로 이사가 살았다.

우리 집 서쪽 재 너머에 절이 있는데, 여러 벗들과 함께 손잡고 놀았다. 달밤의 솔바람 소리에 두견이 자고, 늙은 나무 굽은 바위에 이태백이 시를 썼다. 손님이 아니오니 원숭이 서럽고, 노승이 잠들려니 산새가 우네. 아득한 티끌 세상이 어딘가. 흰 구름 땅에 가득 서려 길을 분간하지 못하더라. → 불암사가 노원고개를 넘어 아늑한 자연 속에 자리하여, 티끌 세상과 떨어진 불법 도량의 별천지임을 말해 주고 있다.[9]

佛巖辭[불암사] 爲專上人作(專上人을 위하여 짓다) - 徐居正(서거정) -[10]
佛之山深且逶迤兮[불지산심차위이혜] 불암산 깊고 또 멀리에 구불구불
佛之水淸且漣漪[불지수청차련의] 불암산 물은 맑고도 잔잔한 물결이네
雲幽幽兮石鑿鑿[운유유혜석착착] 구름은 자욱하고 바위는 삐쭉삐쭉 착착하네
盟有白鷗兮招有黃鶴[맹유백구혜초유황학] 백구와 맹약을 하고 황학을 불러오네
我嬰塵網兮我日思歸[아영진망혜아일사귀] 내 속세에 매였을 때에도 날마다 돌아갈 생각하였는데
我旣無簪紱之累兮[아기무잠불지루혜]내 이미 벼슬의 얽매임 없어졌으니
亦何事於依違也[역하사어의위야] 또한 어찌 망설일 것이 있으리요
登山有車兮[등산유차혜] 산에 오를 수레도 있고
涉水有航[섭수유항] 물을 건널 배도 있거니
我將從白蓮之遺則兮[아장종백련지유칙혜] 내 장차 백련사의 유칙을 따르리니
奚怊悵而悲傷[해초창이비상] 어찌 실의하여 마음 아파하겠나


  • 최불암

불암산을 자신의 예명으로 쓴 최불암은 이런 글을 남겼다.
"불암산이여 이름이 너무 커서 어머니도 한 번 불러보지 못한 채 내가 광대의 길을 들어서서 염치없이 사용한 죄스러움의 세월, 영옥의 세월 그 웅장함과 은둔을 감히 모른채 그 그늘에 몸을 붙여 살아왔습니다 수천만대를 거쳐 노원을 안고 지켜온 큰 웅지의 품을 넘보아가며 터무니없이 불암산을 빌려 살았습니다 용서하십시요"

최불암의 불암과 불암산의 한자가 같은 것이 계기가 되어 노원구청이 2009년 최불암씨를 명예산주로 위촉했다. 불암산 제 6등산로에 '불암산이여' 라는 제목의 '불암산 명예산주 시비'가 세워져 있다. [11]


주변 볼거리


참고사이트

주석

  1. 507~510m로 제각각 표시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네이버 지도를 따랐다.
  2. 판상절리가 발달함.(김주환, 불암산 지역에 발달한 제미지형, 한국사진지리학회 제16권 제2호, 2006)
  3. 북한산이 살아계신 임금을 지키는 산이라면 불암산은 돌아가신 임금을 지키는 산이라 한다. 출처:남양주문화원 http://www.nyj.or.kr/main/sub04_03_04.php
  4. 눈바위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면 비가 오고, 사랑바위에서 남녀가 사랑을 속삭이면 그해에 풍년이 들고 길운(吉運)이 뒤따르며, 음바위에 돌이 끼어 있으면 마을남자들이 외도를 하거나 일찍 죽는 사람이 늘어나 과부가 생긴다는 전설이 있다고 함. http://www.hans21.co.kr/han1/text%208.htm
  5. 불암산성지는 『대동여지도』에도 산성지로 표기되어 있는데 보다 자세한 조사 기록은 1916년에 발행된 조선고적조사보고(朝鮮古蹟調査報告)』에 있다. 출처:http://www.hans21.co.kr/han1/text%208.htm
  6. 조선 세조가 명명하였다고 한다.
  7. 먹골墨洞·벼루말硯村과 함께 필(筆)·묵(墨)·현(硯)으로 지기(地氣)를 꺾는다는 풍수지명(風水地名)
  8. 출처:http://m.blog.daum.net/bumyee/4855
  9. 오홍석, 땅 이름 점의 미학,부연사, 2008.
  10. 고전번역원
  11. 나무위키 불암산
  12. 조선말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여주로 달아나던 명성황후가 하루를 머물면서 치성을 올렸다는 수령 650년의 은행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