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0-502B.episode"의 두 판 사이의 차이

DH 교육용 위키
이동: 둘러보기, 검색
(새 문서: <pre> #Links E0-502B 부묘의 hasContextualElement E0-502B 부묘의_거가환궁 hasContextualElement E0-502B 세종실록_권135-오례_흉례_의식_부묘의_거가환궁 hasCon...)
 
9번째 줄: 9번째 줄:
 
E0-502B 산대극 hasContextualElement
 
E0-502B 산대극 hasContextualElement
 
E0-502B 산대 hasContextualElement
 
E0-502B 산대 hasContextualElement
E0-502B hasContextualElement
 
E0-502B hasContextualElement
 
E0-502B hasContextualElement
 
  
 
#End
 
#End

2022년 6월 2일 (목) 21:27 판

#Links
E0-502B	부묘의	hasContextualElement
E0-502B	부묘의_거가환궁	hasContextualElement
E0-502B	세종실록_권135-오례_흉례_의식_부묘의_거가환궁	hasContextualElement
E0-502B	종묘	hasContextualElement
E0-502B	교방가요(정재)	hasContextualElement
E0-502B	산대극	hasContextualElement
E0-502B	산대	hasContextualElement

#End

KSVC-2215.story

Theme

Episode 2: 환궁행사와 전통 연희


Synopsis

궁중 연향의 공연 공간은 무대를 중심으로 객석이 둘러싼 구조를 이루며 무대와 객석이 고정된 단일 공간의 성격인 반면, 행렬 의식에서의 공연공간은 무대가 고정되고 객석이 이동하거나, 객석이 고정되고 무대가 이동하는 복합공간의 성격을 가진다. 궁중 연향에서는 술과 음식을 올리는 의례 절차에 따라 7~9개의 정재가 공연된 반면, 행렬 의식에서는 복잡한 공간의 성격에 따라 정재의 공연 방식과 무대 장치에 변화를 주었다. 즉 공연 종목을 축소하되 출연자의 수를 늘리고 크고 화려한 무대장치를 사용해 거리 공연의 효과를 높인 것이다. 반주에 있어서도 연향에서는 등가악을 사용한 반면 행렬 의식에서는 고취악을 사용했다. 행렬 의식은 특별한 계기를 맞이해 궁궐 밖에서 거행하는 일련의 의전 행사를 이른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부묘의, 친경의, 배릉례 등을 거행하고 궁궐로 돌아올 때에 여러 행사를 베풀었다.

 어가(御駕)가 움직이면 고취(鼓吹)가 진작(振作)하고 종친(宗親) 및 백관(百官)들이 몸을 굽힌[鞠躬]다. 
〈어가가〉 지나가면 몸을 바로 하[平身]여 차례로 시위(侍衛)하고 도종(導從)하기를 상시(常時)의 의식과 같이 한다.
의금부(義禁府)의 군기감(軍器監)이 종묘(宗廟)의 동구(洞口)에서 나례(儺禮)를 올리고, 성균관(成均館)의 학생(學生)들이 종루(鍾樓)의 서가(西街)에서 가요(歌謠)를 올리고,
교방(敎坊)에서 혜정교(惠政橋) 동쪽에서 가요(歌謠)를 올리고, 이어 정재(呈才)한다.
그리고 또 광화문(光化門) 밖의 좌우(左右)에다 채붕(綵棚)을 맺는다.
어가(御駕)가 광화문(光化門) 밖의 시신 하마소(侍臣下馬所)에 이르러 잠시 멈추면,
시신(侍臣)이 모두 말에서 내려 나누어 서서 몸을 굽힌[鞠躬]다.
지나가면 몸을 바로 한[平身]다. 어가(御駕)가 근정문(勤政門)에 이르면, 악(樂)이 그친다.
판통례(判通禮)가 연(輦) 앞에 나아가서 부복하고 꿇어앉아 "연(輦)에서 내려 여(輿)를 타라."고 계청하고, 부복하였다 일어나서 돌아와 시립(侍立)한다.
전하께서 연(輦)에서 내려 여(輿)를 타고 들어가는데, 산선(繖扇)과 시위(侍衛)는 상시(常時)의 의식과 같고, 시신(侍臣)이 뒤를 따라 전정(殿庭)에 이른다.
액정서(掖庭署)에서 어좌(御座)를 설치하고, 전의(典儀)가 종친 및 백관들의 자리를 설치하고, 병조(兵曹)에서 여러 위(衛)를 거느리고 대장(大仗)을 진열(陳列)하고 군사(軍士)들을 늘어 세운다.
판통례(判通禮)가 외판(外辦)을 아뢰면, 전하께서 여(輿)를 타고 나와 어좌(御座)에 올라가서 하례(賀禮)를 받고, 이내 유서(宥書)를 반포하기를 상시(常時)의 의식과 같이 한다.
【다만 여러 도(道)에서 하례(賀禮)하여 올리는 전(箋)을 받는 것이 다르다. 】
또 유사(攸司)에 명하여 향관(享官)과 여러 집사(執事)들에게 잔치를 내린다.
세종실록 권135 오례 흉례 의식 부묘의

임금의 행차가 지나는 좌우 양쪽에 나례를 별였고, 광화문 밖에 산대나 채붕을 좌우에 하나씩 설치했다. 연(가마)이 광화문 밖에 이르고, 채붕에서 공연이 이어졌다고 한다. 인조는 반정 이후에 왕실의 유연(遊宴)에 관한 기물들을 대로에서 불태우는 상징적 행사를 단행하고, 왕실 의식과 행사를 간소화하며, 환궁 행사로서의 나례는 폐지했다.


Storytelling 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