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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nop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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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산더(Hermann Gustav Theodor Sander, 1868 - 1945)는 보병 중위 신분으로 1905년 12월 6일 주일본 독일대사관 무관으로 임명을 받았다. 1906년 2월부터는 일본 도쿄에서 1907년 4월까지 근무하였고 1907년 5월 시베리아 철도를 이용하여 베를린으로 귀국한다. 도쿄에서 러일전쟁의 주요 격전지에 대한 조사를 위해 관련 자료와 여행 정보를 수집하였고, 1906년 8월 사할린 여행을 시작으로, 9월에는 한국을, 11월에는 중국 여순·대련·목단 등을 방문한다. 이 여행에서 그는 한국문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게 되어 1907년 3월 다시 방문하게 된다. 2차례에 걸친 한국 방문은 서울, 북한산성, 수원, 원산, 성진, 길주 등을 여행하며 한국에 관한 많은 자료를 남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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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9년 효종(孝宗)의 죽음과 1674년 효종의 비인 인선왕후 장씨(仁宣王后 張氏)의 죽음을 두고 인조의 계비인 자의대비(慈懿大妃)의 상복 착용 기간을 두고 서인과 남인 사이에서 두 차례 예송 논쟁이 벌어졌다.
그는 일본인 사진가 나카노를 고용하여 사진을 촬영하였으며, 남긴 자료는 크게 촬영사진과 수집사진, 엽서와 편지, 보고서, 수집 유물 등이 있다. 특히 그 당시의 우리문화를 고스란히 담아낸 사진은 촬영된 시간과 장소, 그리고 설명까지 담고 있어 그 의미와 가치가 높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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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예송논쟁은 1659년(효종 10) 효종이 죽자 효종의 모후인 자의대비의 복상기간을 3년으로 할 것인가 기년(朞年)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며, 기해예송(己亥禮訟)이라 한다.  
그는 당시 볼얀(J. Bolljahn)이 설립한 덕어학교(德語學校)의 한국인 교관 최태경(崔泰卿)을 통해서 한국 자료를 수집하였으며, 서울 지역의 통역을 맡았던 고씨, 함경북도 성진에서 만난 남경세 등과의 인연으로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을 여행하면서 갓, 부채, 놋그릇, 화첩 등 92건의 유물을 수집했고, 독일로 돌아간 후 중부 독일 마이닝겐 지역에 소재한 한 주택을 구입하여, 이곳에 수집유물을 전시하려는 박물관 설립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로 이 건물의 소실과 함께 수집 유물 대부분도 사라지고 그 일부 유물만이 남아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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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가 문제된 것은 효종이 가통(家統)으로 보면 차자(次子)가 되고, 왕통으로 보면 적자(嫡子)가 되므로 어느 쪽으로 보는가에 따라 복을 입는 기간이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헤르만 산더는 한국에서 수집한 유물들에 대한 기록화 작업을 하여 1920년에 장부 형태로 남겼는데, 이를 통해 그의 한국 유물에 대한 이해를 엿볼 수 있다. 그는 한국 유물을 크게 생활용품과 회화와 소묘로 나누고, 다시 세분하여 유물의 명칭, 형태와 특징, 크기, 무게, 구입 가격 등 설명 내용을 남겨 놓았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수집 지역의 정보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룻배에 앉은 남자 인물상’을 그린 족자는 조선 황제가 주한 독일 영사 나이(Ney)에게 하사한 것이라는 수집경유도 보이고, 화첩의 경우는 1907년 50엔(독일화폐로 105마르크)를 한국인 화가에게 지불하고 주문해서 그렸다는 내용 등을 전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한국 수집유물에 대한 단상과 실재로 남아 있는 유물을 통해 100년 전 우리 생활문화의 한 단면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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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로 보는 남인 세력은 제왕(帝王)의 가례(家禮)에 대한 특수성을 강조하였으며 차자로 보는 서인 세력은 예의 보편적 원리를 강조하여 왕실과 사서인(士庶人)의 예가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였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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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1673년(현종 14) 효종비 인선왕후(仁宣王后)가 죽자 자의대비의 복상기간을 두고 서인은 1차예송 때의 주장과 같이 효종비를 차자부(次子婦)로 다루어 대공(大功;9개월)을 주장하고, 남인은 장자부로 다루어 기년을 주장하여 2차예송인 갑인예송(甲寅禮訟)이 일어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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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27일 (일) 22:3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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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17세기 효종과 효종비의 죽음으로 자의대비 상복 착용 기간을 두고 서인과 남인 간에 두 차례 예송논쟁이 벌어졌다.

Synopsis

1659년 효종(孝宗)의 죽음과 1674년 효종의 비인 인선왕후 장씨(仁宣王后 張氏)의 죽음을 두고 인조의 계비인 자의대비(慈懿大妃)의 상복 착용 기간을 두고 서인과 남인 사이에서 두 차례 예송 논쟁이 벌어졌다. 1차 예송논쟁은 1659년(효종 10) 효종이 죽자 효종의 모후인 자의대비의 복상기간을 3년으로 할 것인가 기년(朞年)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며, 기해예송(己亥禮訟)이라 한다. 복제가 문제된 것은 효종이 가통(家統)으로 보면 차자(次子)가 되고, 왕통으로 보면 적자(嫡子)가 되므로 어느 쪽으로 보는가에 따라 복을 입는 기간이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장자로 보는 남인 세력은 제왕(帝王)의 가례(家禮)에 대한 특수성을 강조하였으며 차자로 보는 서인 세력은 예의 보편적 원리를 강조하여 왕실과 사서인(士庶人)의 예가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그 뒤 1673년(현종 14) 효종비 인선왕후(仁宣王后)가 죽자 자의대비의 복상기간을 두고 서인은 1차예송 때의 주장과 같이 효종비를 차자부(次子婦)로 다루어 대공(大功;9개월)을 주장하고, 남인은 장자부로 다루어 기년을 주장하여 2차예송인 갑인예송(甲寅禮訟)이 일어나게 되었다.


테마 ① E10-001A
대한제국시대에 편찬된 19건의 의궤에 내입된 반차도에 등장하는 군인과 경찰의 복식을 시기별 관제와 복제를 규정과 함께 알아본다.
예) 의궤 19건에 내입된 반차도 34건, 관제별 계급의 변화, 계급별 복식과 규정, 의례별 행렬 양상 등
테마 ② E10-101A
사진과 그림으로 전하는 대한제국시대 군인과 경찰 모습을 규정과 비교해 본다.
예) 헤르만 산더(군인, 경찰, 생활사, 장인 등) 민족의 사진첩(계급별 군인과 경찰의 사진), 문양으로 하는
테마 ③ E10-201A
이 시기의 군복 유물은 소속 및 계급별로 구성 품목이 다양하게 전해지고 있다. 착장자가 확인되는 유물도 상당수 있으므로, 유물 주인의 인물관계, 관직 변화 및 군복의 형태를 살펴본다.
예) 육군 부장 민영환, 육군 부장 윤웅렬, 육군 부장 이도재, 육군 부위 황석, 헌병 부위 홍철유 외 착장자 미상의 유물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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