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설화"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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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기재의 청주인=== |
− | === | + | ○ 옛날에 청주인(靑州人)ㆍ죽림호(竹林胡)ㆍ동경귀(東京鬼) 등 3명이 아울러 말 한 마리를 샀었는데, 청주인은 천성이 민첩하여 먼저 허리를 사고, 죽림호는 그 머리를, 동경귀는 꼬리를 샀었다. 청주인이 의논하기를, “허리를 산 사람이 마땅히 타야 한다.” 하고, 말을 달려서 마음대로 가는데, 죽림호는 먹일 풀을 가지고 말의 머리를 끌고, 동경귀는 진(蜄)을 가지고 말똥을 쓸면서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이 괴로움을 참지 못하여 서로 말하기를, “이제부터는 높고 먼 곳에서 놀았던 사람이 말을 타기로 하자.” 하였다. 죽림호는, “내가 전에 하늘 위에 이른 일이 있다.” 하니, 동경귀가, “나는 네가 갔던 하늘 위의 그 위에 갔던 일이 있다.” 하자, 청주인은, “네 손이 닿는 곳에 무슨 물건이 없더냐. 긴 허리뼈가 없던가.” 하였다. 동경귀가, “있었다.” 하니, 청주인이 “그 긴 허리뼈는 바로 내 다리였네. 내 다리를 만지고 왔으니 반드시 내 아래에 있었을 것이다.” 하여, 두 사람이 다시는 상대하지 못하고 오래도록 청주인의 종이 되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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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비둘기를 물리친 장님=== |
− | === | + | ○ 옛날에 어떤 사람이 집에서 기르는 비둘기를 남몰래 가지고 시골로 내려가다가 어떤 집에서 유숙하고 새벽에 나왔는데, 그 집에서는 손님이 가지고 온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시골에 이르러서 집비둘기는 다시 서울로 날아갔는데, 가다가는 반드시 전에 묵었던 집에 들려서 빙빙 돌고 나왔다. 그 집에서는 비둘기를 보고 모두 놀라 장님[經師]에게 묻기를, “비둘기도 참새도 아닌 것이 방울 소리처럼 울고, 집을 세 번 돌다가 가는데 이 무슨 상서로운 징조입니까.” 하니, 장님이 말하기를, “반드시 큰 화(禍)가 있을 것이니 내가 가서 빌어서 물리치리다.” 하였다. 이튿날 장님을 집으로 맞아왔는데, 그가 말하기를, “반드시 내가 하는 대로 따라 하라. 만약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화가 도리어 중해지리라. 내가 말해 볼 터이니 당신들은 그 말에 따르라.” 하고 부르기를, “명미(命米 송경(誦經)하는 데 놓는 쌀)를 내놔라.” 하니, 모두, “명미를 내놔라.” 하고, 또 장님이, “명포(命布)를 내놔라.” 하니 모두들, “명포를 내놔라.” 하였다. 장님이 또, “아니 어째서 내가 말하는 대로만 하는가.” 하니, 모두들, “아니 어째서 내가 말하는 대로만 하는가.” 하였다. 장님이 그만 성이 나서 나가다가 머리가 문설주에 부딪치니 여러 사람들이 모두 좇아 나오며 다투어 머리를 문설주에 부딪치고, 사다리를 놓고 부딪치는 어린이들도 있었다. 또 장님이 문 밖으로 나오다가 마침 진흙처럼 미끄러운 쇠똥이 있어서 발이 미끄러져 넘어지니, 사람들이 모두 미끌어 넘어지고, 쇠똥이 없어지니 혹은 그 위에 더 얹어 놓고서 미끌어져 넘어지기도 하였다. 장님이 급해서 동과(冬瓜) 덩굴 밑으로 도망쳐 들어가니, 사람들이 또 따라 들어가서 산처럼 겹겹이 되었다. 어린이들은 미처 들어가지 못하고 울부짖으며, “아빠, 엄마 나는 어디로 들어가요.” 하니, 부모들이 대답하기를, “동과 덩굴로 들어올 수 없거든 남쪽 기슭에 있는 칡잎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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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어리석은 형과 슬기로운 동생=== |
− | === | + | ○ 옛날에 두 형제가 있었는데 형은 어리석고 동생은 민첩하였다. 아버지 제삿날이 되어 제사를 올리려 하였으나 집이 가난하여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형제가 밤중에 몰래 이웃집 벽을 뚫고 들어갔다. 마침 주인 늙은이가 나와서 두리번거리니 형제가 숨을 죽이고 섬돌 밑에 엎드려 있는데 늙은이가 마침 섬돌에다 오줌을 누니, 형이 동생에게, “따뜻한 비가 내 등을 적시니 웬일이냐.” 하다가, 결국 늙은이에게 잡히게 되었다. 늙은이가 말하기를, “너희들에게 무슨 벌을 줄까.” 하고 물으니, 동생은, “썩은 새끼로 묶으시고 겨릅대로 치시기를 원합니다.” 하고, 형은, “칡끈으로 묶으시고 수정목(水精木)으로 치십시오.” 하였다. 늙은이가 그들의 말대로 벌을 주고 난 뒤에, “어디에 쓰려고 도둑질하려 했느냐.” 하고 물으니, 동생이, “제삿날에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려고 그랬습니다.” 하였다. 늙은이가 불쌍히 여겨 곡식을 주면서 마음대로 가져 가게 하니, 동생은 팥 한 섬을 얻어 힘을 다하여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형은 팥 몇 알을 얻어서 새끼줄에 끼어 끌면서, “야허, 야허.” 하면서 돌아왔다. 이튿날에 동생이 팥죽을 쑤고 형을 시켜 중을 청하여 재(齋)를 올리게 하였더니, 형이 말하기를, “중이란 어떻게 생긴 물건이냐.” 하므로, 동생이, “산중에 들어가서 검은 옷을 입은 것이 있으면 청해 오시오.” 하였다. 형이 가다가 나무 끝에 까마귀가 있는 것을 보고, “선사(禪師)님, 저희 집에 오셔서 재를 올려 주소서.” 하니, 까마귀는 울면서 날아갔다. 형이 돌아와서, “중을 청했더니 울면서 가버리더라.” 하였다. 동생이, “그것은 까마귀요 중이 아니니, 다시 가서 누런 옷을 입었거든 청해 오시오.” 하였다. 형이 다시 산중에 들어가서 나무 끝에 꾀꼬리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선사님, 저희 집에 오셔서 재를 올려 주소서.” 하니 꾀꼬리도 울면서 날아가 버렸다. 형이 돌아와서, “중을 청했더니 예쁜 모습으로 물끄러미 보면서 가더라.” 했다. 동생이, “그것은 꾀꼬리요 중이 아니니, 내가 가서 중을 청해 오리다. 형님은 여기 계시다가 만약 솥 안의 죽이 넘치거든 구기로 떠서 오목한 그릇에 담아 놓으시오.” 하였더니, 형은, 처마물이 떨어져서 움푹 패인 섬돌을 보고 죽을 그 속에 모두 부었으므로 동생이 중을 청하여 돌아오니 한 솥의 죽이 모두 없어졌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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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상좌승이 사승을 속인 사건=== |
− | === | + | ○ 상좌(上座)가 사승(師僧)을 속이는 것은 옛날부터 흔히 있는 일이었다. 옛날에 어떤 상좌가 있었는데 그의 사승에게 말하기를, “까치가 은수저를 입에 물고 문 앞에 있는 가시나무에 올라 앉아 있습니다.” 하니, 중이 이를 믿고 나무를 타고 올라가니 상좌가 크게 소리질러 말하기를, “우리 스승이 까치새끼를 잡아 구워 먹으려 한다.” 하였다. 중이 어쩔 줄을 몰라 내려 오다가 가시에 찔려 온몸에 상처를 입고 노하여 상좌의 종아리를 때렸더니, 상좌가 밤중에 중이 드나드는 문 위에 큰 솥을 매달아 놓고, 큰 소리로, “불이야.” 하였다. 중이 놀라서 급히 일어나 뛰어나오다가 솥에 머리를 부딪혀서 까무러쳐 땅에 엎어졌다가 오래된 뒤에 나와보니 불은 없었다. 중이 노하여 꾸짖으니 상좌는, “먼 산에 불이 났기에 알린 것뿐입니다.” 하였다. 중이 말하기를, “이제부터는 다만 가까운 데 불만 알리고 반드시 먼데서 난 불은 알리지 말라.”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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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 건넌 중=== | ||
+ | ○ 어떤 중이 과부를 꾀어 장가들러 가는 날 저녁에 상좌가 속여 말하기를, “가루 양념과 생콩을 물에 타서 마시면 매우 양기(陽氣)가 좋아집니다.” 하니, 중이 그 말을 믿고 그대로 하였다. 그런데 과부집에 갔더니, 배가 불러 간신히 기어서 들어가 휘장을 내리고 앉아 발로 항문을 괴고 꼼짝하지 못하였다. 조금 있다가 과부가 들어왔으나 중이 꿇어앉아서 움직이지 못하였다. 과부가 말하기를, “어찌 이처럼 목우(木偶 나무로 만든 인형) 모양을 하고 있습니까.” 하며 손으로 잡아 끄니, 중이 땅에 엎어지면서 설사를 하여 구린내가 가득 찼으므로 과부는 매를 때려 내쫓았다. 밤중에 혼자 가다가 길을 잃었는데 흰 기운이 길을 가로질러 있었다. 중이 시냇물로 생각하고 옷을 걷어올리고 들어가니 가을 보리꽃이었으므로 중은 성이 났다. 또 흰 기운이 길을 가로질러 있는 것을 보고, “보리밭이 나를 속이더니 또 보리밭이 있구나.” 하고, 옷을 걷어올리지 않고 들어가니 그것은 물이었다. 중은 옷이 모두 젖은 채 다리 하나를 지나가는데 아낙네 두어 명이 시냇가에서 쌀을 일고 있었다. 중이, “시큼시큼하구나.” 하였는데, 대개 이 말은 오는 길에 낭패하고 수고함을 형용함이다. 아낙네들은 그 까닭을 모르고 모두 와서 길을 막으며, “술 담글 쌀을 이는데 어찌 시큼시큼하다는 말을 해요.” 하고, 옷을 다 찢고 중을 때려 주었다. 해가 높이 뜨도록 얻어 먹지 못하고 중은 배가 고파 참을 수 없어서 마를 캐어 씹고 있으니, 갑작스레 웃고 외치는 소리가 났는데 그것은 수령의 행차였다. 중은 다리 밑에 엎드려 피하고 있으면서 가만히 생각하기를, “이 마가 매우 맛이 있으니 이것을 수령에게 바치면 밥을 얻을 수 있겠는데.” 하고, 수령이 다리에 이르자 중이 갑자기 나타나니 말이 놀라 수령이 땅에 떨어졌으므로 크게 노하여 매를 때리고 가버렸다. 중이 다리 옆에 누워 있었더니, 순찰관 두어 명이 다리를 지나가다가 보고, “다리 옆에 죽은 중이 있으니 몽둥이질하는 연습을 하자.” 하고, 다투어 몽둥이를 가지고 연달아 매질하였다. 중은 무서워서 숨도 쉬지 못하다가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들고 다가오며 말하기를, “죽은 중의 양근(陽根)이 약에 쓰일 것이니 잘라서 쓰자.” 하므로 크게 소리 지르며 달아나서 저물녘에야 절에 도착하니 문이 잠겨 들어갈 수가 없었다. 소리를 높여 상좌를 불러, “문 열어라.” 하니 상좌가, “우리 스승은 과부집에 갔는데 너는 누구이기에 밤중에 왔느냐.” 하고, 나와 보지 않았다. 중이 개구멍으로 들어가니 상좌가, “뉘 집 개냐. 간밤에 공양할 기름을 다 핥아 먹더니 이제 또 왔느냐.” 하고, 몽둥이로 때렸다. 지금도 낭패하여 고생한 사람을, “물 건넌 중”[渡水僧]이라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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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보 사위=== | ||
+ | ○ 옛날에 어떤 선비가 사위를 맞이하였는데, 그 사위는 매우 어리석은 숙맥이었다. 사흘 동안 신부와 함께 앉았더니 소반 위에 있는 송편을 가리키며, “이것이 무엇인고.” 하므로 신부가, “쉬쉬[休休]” 하였다. 또 사위가 떡을 쪼개니 그 속에 잣이 들어 있었다. “이것은 또 무엇인고.” 하고 물으니, 신부가 또, “말 말아요[莫說].” 하였다. 사위가 그의 집에 돌아가니 부모가, “무엇을 먹었느냐.” 물었더니, 그는, “한 ‘쉬쉬’ 속에 세 개의 ‘말 말아요’가 있었습니다.” 하였다. 신부집에서는 근심과 후회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느 날 처가에서 50휘[斛]들이나 되는 노목(盧木) 궤짝을 사서 서로 약속하기를, “사위가 만약 이것을 알면 내쫓지 않으리라.” 하였다. 그래서 신부가 밤새도록 가르쳐 주었더니, 이튿날 장인이 사위를 불러내 보이자 사위가 몽둥이로 그것을 두드리며 말하기를, “노목 궤짝이 50휘들이나 되겠습니다.” 하니, 장인이 매우 기뻐하였다. 또 나무통을 사서 보이니 그는 몽둥이로 두드리며, “노목통이 50휘들이나 되겠습니다.” 하였으며, 또 장인이 방광염[腎膀]을 앓으므로 사위가 병문안을 갔다. 장인이 나와서 보니 역시 몽둥이로 장인을 두드리며, “노목 방광이 50휘들이나 되겠습니다.” 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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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괴한 것을 믿는 장님=== | ||
+ | ○ 옛날에 개성(開城)에 한 장님이 살았었는데, 성품이 어리석고 비뚤어져서 기괴한 것을 잘 믿었다. 매양 소년을 만나면 갑자기, “무슨 기이한 일이 없느냐.” 하였다. 하루는 소년이 말하기를, “요즈음 매우 기이한 일이 있습니다. 동쪽 거리에 땅이 천 길이나 벌어져서 땅 밑으로 오가는 사람을 훤히 볼 수 있고, 닭의 울음소리와 다듬이질하는 소리도 똑똑히 들을 수 있는데, 내가 방금 그곳에서 오는 길입니다.” 하니, 장님은, “과연 네 말과 같다면 그야말로 매우 기이한 일이다. 내가 두 눈이 어두워서 마음대로 보지는 못하지만 그 곁에 쫓아가서 한 번 그 소리라도 들으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 하고, 소년을 따라갔다. 온종일 도성 안을 두루 어정거리며 돌아다니다가 그의 집 뒤 언덕에 와서 소년이, “여기가 그곳입니다.” 하니, 장님은 자기 집 닭 울음소리와 다듬이질하는 소리를 듣고 손뼉을 치고 웃으며 말하기를, “참으로 즐겁도다.” 하니, 소년이 장님을 밀어 땅에 떨어뜨렸다. 아이종이 와서 그 까닭을 물으니 장님은 머리를 조아리고 합장을 하며 말하기를, “나는 천상(天上)의 장님이로다.” 하였다. 또 그의 아내의 웃는 소리를 듣고, “당신은 또 언제 여기 왔소.” 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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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리석은 풍산 군수=== | ||
+ | ○ 종실(宗室) 풍산수(豐山守)는 매우 어리석은 숙맥이었다. 집에서 오리를 길렀는데 계산을 할 줄 몰라 오직 쌍쌍으로만 세었다. 하루는 집의 아이 종이 오리 한 마리를 삶아 먹었더니 그는 쌍쌍으로 세다가 한 마리만 남으므로 크게 노하여 종을 때리며, “네가 내 오리를 훔쳤으니 반드시 다른 오리로 변상하여라.” 하였다. 이튿날 종이 또 한 마리를 삶아 먹었더니, 그는 쌍쌍으로 세어 보아도 남는 짝이 없으므로 매우 기뻐하며 하는 말이, “형벌이 없지 않을 수 없도다. 어제 저녁에 종을 때렸더니 변상해 바쳤구나.” 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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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전을 혼내준 상전=== | ||
+ | ○ 사문(斯文) 윤통(尹統)은 익살맞고 농담을 좋아하여 항상 사람을 속이기를 일삼았다. 그의 집이 영남에 있어 매양 고을을 돌아다니다가 한 읍(邑)에 이르러 기생과 함께 방에 앉아 있었는데, 한 아전이 왕래하면서 여러 번 기생을 쳐다보기를 그치지 않았다. 선생은 다른 뜻이 있음을 알고 밤중에 자는 척하고 코를 고니, 기생은 그가 깊이 잠든 줄 알고 몸을 빼어 나갔다. 선생이 몰래 그 뒤를 따라가니 아전이 마침 창 밖에 와 있다가 기생의 손을 잡고 가는데, 기생이, “달빛이 물빛처럼 밝고 방에 사람도 없으니, 우리 춤이나 춥시다.” 하고 맞서서 너풀거리며 춤을 추었다. 선생은 다른 아전이 처마 밑에서 누워 자는 것을 보고 옆에 놓인 밀짚모자를 집어쓰고 가서 그들이 춤추는 옆에서 춤을 추니, 아전이, “두 사람이 즐기는데 너는 도대체 누구인가.” 하였다. 선생은, “나는 동쪽 윗방에 있는 손인데 양공(兩公)이 춤추는 것을 보고 부러워서 이처럼 두 분의 즐거움을 도울 뿐이다.” 하니, 아전이 황공하여 사죄하였다. 선생이, “너는 관중(官中)에서 무슨 물건을 관장하는고.” 하니, 아전은, “공방(工房)으로서 피물(皮物)을 주관하나이다.” 하였다. 선생이, “피물이 몇 장이나 있는고.” 하니 아전은, “사슴 가죽 일곱 장과 여우 가죽 수십 장이 있습니다.” 하였다. 선생이, “내가 관사(官司)를 만나보고 피물을 구할 테니, 너는 그 숫자를 숨기지 말고 모두 내놓아라. 그렇지 아니하면 지금의 이 일을 모두 말하겠다.” 하니 아전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물러갔다. 이튿날 주관(主官)과 더불어 청(廳)에 앉아 말하기를, “신을 만들려 해도 사슴 가죽이 없고 갖옷을 만들려 해도 여우 가죽이 없으니 좀 찾아 보시요.” 하니 주관이, “그대는 어디에서 들었는고. 있기는 하나 그 수가 적을 것이외다.” 하고 아전에게 명하여 내오게 하니, 모두 내다놓기에 선생은 다 가지고 돌아가 버렸다. 또한 고을에 이르러 객사에 있었는데, 어떤 기생이 흰 옷을 입고 배회하며 왕래하였는데, 얼굴이 자못 예뻤다. 물어보았더니 그 어미의 상을 당한 기생이라 하기에, 선생은 종이 한 권을 얻어 가지고 의롱(衣籠)에다 끼어 창 밖에 두고는 창을 닫고 앉았다가, 기생이 오는 것을 보고, “주(州)ㆍ군(郡)을 순력(巡歷)하여도 좋은 물건이라곤 구하지 못하고 겨우 종이 한 궤짝을 구했으나, 말이 약해서 짐이 무거우니 어떻게 가져 갔으면 좋을까.” 하니, 종이 그 뜻을 넌지시 동료에게 말하기를, “우리 상전은 기생을 사랑하면 물건을 구하여 반드시 내어 주시는데, 또 이 종이를 누구에게 주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였다. 기생은 당장 초상을 치르기는 해야겠는데 종이는 없고, 이 말을 듣고 보니 매우 마음이 당겨 밤중에 선생의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온 기생이 오래 머물러 가지 아니하자 선생은 애초에 거짓말로써 꾀었으니 사실은 줄 물건이 없으므로, 큰 소리를 질러, “상을 당한 여자가 내 방에 들어왔다.” 하니 기생은 부끄러워 도망쳐 버렸다. 선생은 또 아저씨와 함께 서울에 내왕하였는데, 아저씨의 말은 검은 빛에 이마가 희고 선생의 말은 온통 검은 빛이었다. 아저씨는 매일 밤, 선생의 말은 기둥에 매어두고 자기 말만 먹이므로 선생은 그 까닭을 알고 백지를 검은 말 이마에 붙이고 검은 종이를 이마가 흰 말에 붙여두니, 어두운 밤에 그 진위를 분별하지 못하여 아저씨는 반대로 자기 말을 기둥에 매어놓고 선생의 말만 먹여서 아저씨의 말은 비루먹고 피어나지 않았다. 그런 뒤에 비로소 속은 줄을 알았다. 또 선생은 집이 없음을 걱정하던 끝에, 연화(緣化)를 좋아하는 중과 서로 사귀어 친하게 되었는데 하루는 선생이 중에게, “내가 절을 한 채 지어 세상에서 지은 악업을 씻어볼까 하오.” 하니, 중은 흔연히 이 말을 좇아, “그대가 전세(前世)에 보살이었던 까닭으로 이러한 맹세와 소원을 발할 따름이로다.” 하므로, 선생은, “계림(鷄林 경주)에 옛 절터가 있는데, 산에 의지하고 물을 베개 삼아 참으로 경치 좋은 곳이라 절을 지을 만하오.” 하고 권문(勸文)을 써서 주니, 중은 성심껏 물건을 장만하고 선생도 역시 힘을 도와 재목을 갖추어 터를 닦고 집을 세웠다. 그 규모는 절의 제도와 조금 달라서 온돌이 많고 또 문 앞 황무지를 개간하여 채소 심을 밭을 만들었다. 단청을 칠하고 불상을 모신 뒤에 중이 경사스러운 일을 찬양하기 위하여 법연(法筵)을 열어 마침내 낙성하였는데, 선생이, “내 아내가 와서 부처를 참배하려 하오.” 하니 중이 이를 허락하였다. 선생이 그의 아내와 함께 가족과 종들을 거느리고 절에 와 있다가, 병을 핑계하고 수일을 머무른 후 세간을 모두 옮기어 거주하니, 중의 무리가 들어올 수 없어서 관(官)에 소송했으나 관에서 역시 오래 끌면서 듣지 않자 결국 선생의 집이 되었는데, 집안에 아무런 병도 없이 80세가 되도록 살다가 죽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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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서방거안=== | ||
+ | ○ 대개 연품(宴品 연회하고 활쏠 때 쓰는 물건)의 차림차림은 처음 거안(擧案 밥상을 드는 것)할 때가 볼 만하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있어서의 차림차림을 거안이라 한다. 목생(睦生)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처음으로 충순위(忠順衛 오위(五衛)의 하나)에 들어와서 하루는 그 무리가 모여서 활을 쏘았는데, 그가 늦게 도착하였다. 그는 차림새가 깨끗하고 갖고 있는 활과 살은 모두 정묘하므로, 주위 사람들이 모두, “목생은 우리 편에 들어라.” 하며 다투어 마지않았다. 그러다가 활터에 나아가자 시위를 당기기도 전에 화살이 앞에 떨어지곤 하였다. 종일 쏘아도 목생의 살이 과녁에 미치지 못하니 사람들은 모두 실망하여, “목 서방 거안(睦書房擧案)”이라 하였다. 지금까지도, 허황하고 과장스러워 실속이 없는 사람을, “목 서방 거안”이라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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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닭 흉내를 내는 중=== | ||
+ | ○ 어떤 중이 있었는데 몸이 작고 한쪽 발을 좀 절었다. 항상 장안에 살면서 날마다 성중을 두루 돌아다니며, 부잣집과 지체 높은 댁을 찾아다니지 않는 곳이 없었다. 항상 손뼉을 쳐서 닭의 날개치는 시늉을 하며 입을 움츠리고 소리를 내어 혹 수탉이 우는 소리를 하고, 혹 두 닭이 서로 싸우는 소리를 내며, 혹은 닭이 알을 낳는 소리를 내어 그 흉내내는 소리와 모양이 그럴듯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혹 촌닭이 응하여 우는 것이 있으면 또 노래를 지어 몸을 흔들며 부르기를, “인생이여. 인생이여. 한 칸 초가라도 마음에 즐겁도다. 인생이여. 인생이여. 옷이 헤져 백번을 기워 입어도 또한 싫지 않도다. 염라대왕의 사자(使者)가 잡으러 오면 아무리 세상에 살고자 한들 어찌 그리 되겠는가.”하고 또 부르기를, “관음제석(觀音帝釋)이여, 제석관음(帝釋觀音)이여, 이 몸이 만약 죽으면 완전히 지옥에 떨어지리라.” 하니, 그 노래가 대부분 이런 것이었다. 곡조가 농가(農歌)와 비슷하여 수많은 어린이들이 떼를 지어 따라다니니 중이 항상 말하기를, “내 하인배가 많은 것은 삼공(三公)이라 할지라도 미치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루에 얻는 것이 많게는 섬 곡식에 이르러 이것으로 먹고 입었는데, 당시 사람들이 닭중[鷄僧]이라 불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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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자임을 자랑하는 신(辛)=== | ||
+ | ○ 조사(朝士) 가운데 신(辛)이란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성품이 허황되어 항상 부자(富者)임을 자랑하고자 하였다. 하루는 쌀 한 주먹을 가지고 문 밖에 뿌린 뒤, 손님을 맞아들이면서 땅을 내려다보고 종을 꾸짖기를, “어찌해서 하늘에서 내린 물건을 함부로 하느냐. 그저께 충청도 사람이 쌀 2백 곡(斛)을 보내왔고, 어제 전라도 사람이 쌀 3백 곡을 보내왔다고 이와 같이 어지럽혔단 말이냐.” 하였다. 또 희첩(姬妾)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자 하여 항상 지분(脂粉)을 뿌려 방 벽에 바르고, 손님을 맞아들일 때 종을 꾸짖기를, “어째서 창 벽을 더럽혔느냐. 어제 아무 기생이 이 방에 와서 자더니, 새벽에 화장할 때 낯을 씻으며 이렇게 해놓았구나.” 하였다. 또 헝겊 조각을 종에게 주었다가 손님이 와서 당에 앉았을 때, 종이 뜰 아래 꿇어앉아 말하기를, “아무 아가씨가 비단신에 수놓은 것을 화아(花兒)에게 쓸까요, 운아(雲兒)에게 쓸까요?”하면, 선비는 말하기를, “대운아(大雲兒)에게 쓰는 것이 좋겠다.”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한때의 명기(名妓)였다. |
2020년 6월 21일 (일) 01:30 기준 최신판
목차
기재의 청주인
○ 옛날에 청주인(靑州人)ㆍ죽림호(竹林胡)ㆍ동경귀(東京鬼) 등 3명이 아울러 말 한 마리를 샀었는데, 청주인은 천성이 민첩하여 먼저 허리를 사고, 죽림호는 그 머리를, 동경귀는 꼬리를 샀었다. 청주인이 의논하기를, “허리를 산 사람이 마땅히 타야 한다.” 하고, 말을 달려서 마음대로 가는데, 죽림호는 먹일 풀을 가지고 말의 머리를 끌고, 동경귀는 진(蜄)을 가지고 말똥을 쓸면서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이 괴로움을 참지 못하여 서로 말하기를, “이제부터는 높고 먼 곳에서 놀았던 사람이 말을 타기로 하자.” 하였다. 죽림호는, “내가 전에 하늘 위에 이른 일이 있다.” 하니, 동경귀가, “나는 네가 갔던 하늘 위의 그 위에 갔던 일이 있다.” 하자, 청주인은, “네 손이 닿는 곳에 무슨 물건이 없더냐. 긴 허리뼈가 없던가.” 하였다. 동경귀가, “있었다.” 하니, 청주인이 “그 긴 허리뼈는 바로 내 다리였네. 내 다리를 만지고 왔으니 반드시 내 아래에 있었을 것이다.” 하여, 두 사람이 다시는 상대하지 못하고 오래도록 청주인의 종이 되었었다.
비둘기를 물리친 장님
○ 옛날에 어떤 사람이 집에서 기르는 비둘기를 남몰래 가지고 시골로 내려가다가 어떤 집에서 유숙하고 새벽에 나왔는데, 그 집에서는 손님이 가지고 온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시골에 이르러서 집비둘기는 다시 서울로 날아갔는데, 가다가는 반드시 전에 묵었던 집에 들려서 빙빙 돌고 나왔다. 그 집에서는 비둘기를 보고 모두 놀라 장님[經師]에게 묻기를, “비둘기도 참새도 아닌 것이 방울 소리처럼 울고, 집을 세 번 돌다가 가는데 이 무슨 상서로운 징조입니까.” 하니, 장님이 말하기를, “반드시 큰 화(禍)가 있을 것이니 내가 가서 빌어서 물리치리다.” 하였다. 이튿날 장님을 집으로 맞아왔는데, 그가 말하기를, “반드시 내가 하는 대로 따라 하라. 만약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화가 도리어 중해지리라. 내가 말해 볼 터이니 당신들은 그 말에 따르라.” 하고 부르기를, “명미(命米 송경(誦經)하는 데 놓는 쌀)를 내놔라.” 하니, 모두, “명미를 내놔라.” 하고, 또 장님이, “명포(命布)를 내놔라.” 하니 모두들, “명포를 내놔라.” 하였다. 장님이 또, “아니 어째서 내가 말하는 대로만 하는가.” 하니, 모두들, “아니 어째서 내가 말하는 대로만 하는가.” 하였다. 장님이 그만 성이 나서 나가다가 머리가 문설주에 부딪치니 여러 사람들이 모두 좇아 나오며 다투어 머리를 문설주에 부딪치고, 사다리를 놓고 부딪치는 어린이들도 있었다. 또 장님이 문 밖으로 나오다가 마침 진흙처럼 미끄러운 쇠똥이 있어서 발이 미끄러져 넘어지니, 사람들이 모두 미끌어 넘어지고, 쇠똥이 없어지니 혹은 그 위에 더 얹어 놓고서 미끌어져 넘어지기도 하였다. 장님이 급해서 동과(冬瓜) 덩굴 밑으로 도망쳐 들어가니, 사람들이 또 따라 들어가서 산처럼 겹겹이 되었다. 어린이들은 미처 들어가지 못하고 울부짖으며, “아빠, 엄마 나는 어디로 들어가요.” 하니, 부모들이 대답하기를, “동과 덩굴로 들어올 수 없거든 남쪽 기슭에 있는 칡잎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였다.
어리석은 형과 슬기로운 동생
○ 옛날에 두 형제가 있었는데 형은 어리석고 동생은 민첩하였다. 아버지 제삿날이 되어 제사를 올리려 하였으나 집이 가난하여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형제가 밤중에 몰래 이웃집 벽을 뚫고 들어갔다. 마침 주인 늙은이가 나와서 두리번거리니 형제가 숨을 죽이고 섬돌 밑에 엎드려 있는데 늙은이가 마침 섬돌에다 오줌을 누니, 형이 동생에게, “따뜻한 비가 내 등을 적시니 웬일이냐.” 하다가, 결국 늙은이에게 잡히게 되었다. 늙은이가 말하기를, “너희들에게 무슨 벌을 줄까.” 하고 물으니, 동생은, “썩은 새끼로 묶으시고 겨릅대로 치시기를 원합니다.” 하고, 형은, “칡끈으로 묶으시고 수정목(水精木)으로 치십시오.” 하였다. 늙은이가 그들의 말대로 벌을 주고 난 뒤에, “어디에 쓰려고 도둑질하려 했느냐.” 하고 물으니, 동생이, “제삿날에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려고 그랬습니다.” 하였다. 늙은이가 불쌍히 여겨 곡식을 주면서 마음대로 가져 가게 하니, 동생은 팥 한 섬을 얻어 힘을 다하여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형은 팥 몇 알을 얻어서 새끼줄에 끼어 끌면서, “야허, 야허.” 하면서 돌아왔다. 이튿날에 동생이 팥죽을 쑤고 형을 시켜 중을 청하여 재(齋)를 올리게 하였더니, 형이 말하기를, “중이란 어떻게 생긴 물건이냐.” 하므로, 동생이, “산중에 들어가서 검은 옷을 입은 것이 있으면 청해 오시오.” 하였다. 형이 가다가 나무 끝에 까마귀가 있는 것을 보고, “선사(禪師)님, 저희 집에 오셔서 재를 올려 주소서.” 하니, 까마귀는 울면서 날아갔다. 형이 돌아와서, “중을 청했더니 울면서 가버리더라.” 하였다. 동생이, “그것은 까마귀요 중이 아니니, 다시 가서 누런 옷을 입었거든 청해 오시오.” 하였다. 형이 다시 산중에 들어가서 나무 끝에 꾀꼬리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선사님, 저희 집에 오셔서 재를 올려 주소서.” 하니 꾀꼬리도 울면서 날아가 버렸다. 형이 돌아와서, “중을 청했더니 예쁜 모습으로 물끄러미 보면서 가더라.” 했다. 동생이, “그것은 꾀꼬리요 중이 아니니, 내가 가서 중을 청해 오리다. 형님은 여기 계시다가 만약 솥 안의 죽이 넘치거든 구기로 떠서 오목한 그릇에 담아 놓으시오.” 하였더니, 형은, 처마물이 떨어져서 움푹 패인 섬돌을 보고 죽을 그 속에 모두 부었으므로 동생이 중을 청하여 돌아오니 한 솥의 죽이 모두 없어졌었다.
상좌승이 사승을 속인 사건
○ 상좌(上座)가 사승(師僧)을 속이는 것은 옛날부터 흔히 있는 일이었다. 옛날에 어떤 상좌가 있었는데 그의 사승에게 말하기를, “까치가 은수저를 입에 물고 문 앞에 있는 가시나무에 올라 앉아 있습니다.” 하니, 중이 이를 믿고 나무를 타고 올라가니 상좌가 크게 소리질러 말하기를, “우리 스승이 까치새끼를 잡아 구워 먹으려 한다.” 하였다. 중이 어쩔 줄을 몰라 내려 오다가 가시에 찔려 온몸에 상처를 입고 노하여 상좌의 종아리를 때렸더니, 상좌가 밤중에 중이 드나드는 문 위에 큰 솥을 매달아 놓고, 큰 소리로, “불이야.” 하였다. 중이 놀라서 급히 일어나 뛰어나오다가 솥에 머리를 부딪혀서 까무러쳐 땅에 엎어졌다가 오래된 뒤에 나와보니 불은 없었다. 중이 노하여 꾸짖으니 상좌는, “먼 산에 불이 났기에 알린 것뿐입니다.” 하였다. 중이 말하기를, “이제부터는 다만 가까운 데 불만 알리고 반드시 먼데서 난 불은 알리지 말라.” 하였다.
물 건넌 중
○ 어떤 중이 과부를 꾀어 장가들러 가는 날 저녁에 상좌가 속여 말하기를, “가루 양념과 생콩을 물에 타서 마시면 매우 양기(陽氣)가 좋아집니다.” 하니, 중이 그 말을 믿고 그대로 하였다. 그런데 과부집에 갔더니, 배가 불러 간신히 기어서 들어가 휘장을 내리고 앉아 발로 항문을 괴고 꼼짝하지 못하였다. 조금 있다가 과부가 들어왔으나 중이 꿇어앉아서 움직이지 못하였다. 과부가 말하기를, “어찌 이처럼 목우(木偶 나무로 만든 인형) 모양을 하고 있습니까.” 하며 손으로 잡아 끄니, 중이 땅에 엎어지면서 설사를 하여 구린내가 가득 찼으므로 과부는 매를 때려 내쫓았다. 밤중에 혼자 가다가 길을 잃었는데 흰 기운이 길을 가로질러 있었다. 중이 시냇물로 생각하고 옷을 걷어올리고 들어가니 가을 보리꽃이었으므로 중은 성이 났다. 또 흰 기운이 길을 가로질러 있는 것을 보고, “보리밭이 나를 속이더니 또 보리밭이 있구나.” 하고, 옷을 걷어올리지 않고 들어가니 그것은 물이었다. 중은 옷이 모두 젖은 채 다리 하나를 지나가는데 아낙네 두어 명이 시냇가에서 쌀을 일고 있었다. 중이, “시큼시큼하구나.” 하였는데, 대개 이 말은 오는 길에 낭패하고 수고함을 형용함이다. 아낙네들은 그 까닭을 모르고 모두 와서 길을 막으며, “술 담글 쌀을 이는데 어찌 시큼시큼하다는 말을 해요.” 하고, 옷을 다 찢고 중을 때려 주었다. 해가 높이 뜨도록 얻어 먹지 못하고 중은 배가 고파 참을 수 없어서 마를 캐어 씹고 있으니, 갑작스레 웃고 외치는 소리가 났는데 그것은 수령의 행차였다. 중은 다리 밑에 엎드려 피하고 있으면서 가만히 생각하기를, “이 마가 매우 맛이 있으니 이것을 수령에게 바치면 밥을 얻을 수 있겠는데.” 하고, 수령이 다리에 이르자 중이 갑자기 나타나니 말이 놀라 수령이 땅에 떨어졌으므로 크게 노하여 매를 때리고 가버렸다. 중이 다리 옆에 누워 있었더니, 순찰관 두어 명이 다리를 지나가다가 보고, “다리 옆에 죽은 중이 있으니 몽둥이질하는 연습을 하자.” 하고, 다투어 몽둥이를 가지고 연달아 매질하였다. 중은 무서워서 숨도 쉬지 못하다가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들고 다가오며 말하기를, “죽은 중의 양근(陽根)이 약에 쓰일 것이니 잘라서 쓰자.” 하므로 크게 소리 지르며 달아나서 저물녘에야 절에 도착하니 문이 잠겨 들어갈 수가 없었다. 소리를 높여 상좌를 불러, “문 열어라.” 하니 상좌가, “우리 스승은 과부집에 갔는데 너는 누구이기에 밤중에 왔느냐.” 하고, 나와 보지 않았다. 중이 개구멍으로 들어가니 상좌가, “뉘 집 개냐. 간밤에 공양할 기름을 다 핥아 먹더니 이제 또 왔느냐.” 하고, 몽둥이로 때렸다. 지금도 낭패하여 고생한 사람을, “물 건넌 중”[渡水僧]이라고 한다.
바보 사위
○ 옛날에 어떤 선비가 사위를 맞이하였는데, 그 사위는 매우 어리석은 숙맥이었다. 사흘 동안 신부와 함께 앉았더니 소반 위에 있는 송편을 가리키며, “이것이 무엇인고.” 하므로 신부가, “쉬쉬[休休]” 하였다. 또 사위가 떡을 쪼개니 그 속에 잣이 들어 있었다. “이것은 또 무엇인고.” 하고 물으니, 신부가 또, “말 말아요[莫說].” 하였다. 사위가 그의 집에 돌아가니 부모가, “무엇을 먹었느냐.” 물었더니, 그는, “한 ‘쉬쉬’ 속에 세 개의 ‘말 말아요’가 있었습니다.” 하였다. 신부집에서는 근심과 후회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느 날 처가에서 50휘[斛]들이나 되는 노목(盧木) 궤짝을 사서 서로 약속하기를, “사위가 만약 이것을 알면 내쫓지 않으리라.” 하였다. 그래서 신부가 밤새도록 가르쳐 주었더니, 이튿날 장인이 사위를 불러내 보이자 사위가 몽둥이로 그것을 두드리며 말하기를, “노목 궤짝이 50휘들이나 되겠습니다.” 하니, 장인이 매우 기뻐하였다. 또 나무통을 사서 보이니 그는 몽둥이로 두드리며, “노목통이 50휘들이나 되겠습니다.” 하였으며, 또 장인이 방광염[腎膀]을 앓으므로 사위가 병문안을 갔다. 장인이 나와서 보니 역시 몽둥이로 장인을 두드리며, “노목 방광이 50휘들이나 되겠습니다.” 하였다.
기괴한 것을 믿는 장님
○ 옛날에 개성(開城)에 한 장님이 살았었는데, 성품이 어리석고 비뚤어져서 기괴한 것을 잘 믿었다. 매양 소년을 만나면 갑자기, “무슨 기이한 일이 없느냐.” 하였다. 하루는 소년이 말하기를, “요즈음 매우 기이한 일이 있습니다. 동쪽 거리에 땅이 천 길이나 벌어져서 땅 밑으로 오가는 사람을 훤히 볼 수 있고, 닭의 울음소리와 다듬이질하는 소리도 똑똑히 들을 수 있는데, 내가 방금 그곳에서 오는 길입니다.” 하니, 장님은, “과연 네 말과 같다면 그야말로 매우 기이한 일이다. 내가 두 눈이 어두워서 마음대로 보지는 못하지만 그 곁에 쫓아가서 한 번 그 소리라도 들으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 하고, 소년을 따라갔다. 온종일 도성 안을 두루 어정거리며 돌아다니다가 그의 집 뒤 언덕에 와서 소년이, “여기가 그곳입니다.” 하니, 장님은 자기 집 닭 울음소리와 다듬이질하는 소리를 듣고 손뼉을 치고 웃으며 말하기를, “참으로 즐겁도다.” 하니, 소년이 장님을 밀어 땅에 떨어뜨렸다. 아이종이 와서 그 까닭을 물으니 장님은 머리를 조아리고 합장을 하며 말하기를, “나는 천상(天上)의 장님이로다.” 하였다. 또 그의 아내의 웃는 소리를 듣고, “당신은 또 언제 여기 왔소.” 하였다.
어리석은 풍산 군수
○ 종실(宗室) 풍산수(豐山守)는 매우 어리석은 숙맥이었다. 집에서 오리를 길렀는데 계산을 할 줄 몰라 오직 쌍쌍으로만 세었다. 하루는 집의 아이 종이 오리 한 마리를 삶아 먹었더니 그는 쌍쌍으로 세다가 한 마리만 남으므로 크게 노하여 종을 때리며, “네가 내 오리를 훔쳤으니 반드시 다른 오리로 변상하여라.” 하였다. 이튿날 종이 또 한 마리를 삶아 먹었더니, 그는 쌍쌍으로 세어 보아도 남는 짝이 없으므로 매우 기뻐하며 하는 말이, “형벌이 없지 않을 수 없도다. 어제 저녁에 종을 때렸더니 변상해 바쳤구나.” 하였다.
아전을 혼내준 상전
○ 사문(斯文) 윤통(尹統)은 익살맞고 농담을 좋아하여 항상 사람을 속이기를 일삼았다. 그의 집이 영남에 있어 매양 고을을 돌아다니다가 한 읍(邑)에 이르러 기생과 함께 방에 앉아 있었는데, 한 아전이 왕래하면서 여러 번 기생을 쳐다보기를 그치지 않았다. 선생은 다른 뜻이 있음을 알고 밤중에 자는 척하고 코를 고니, 기생은 그가 깊이 잠든 줄 알고 몸을 빼어 나갔다. 선생이 몰래 그 뒤를 따라가니 아전이 마침 창 밖에 와 있다가 기생의 손을 잡고 가는데, 기생이, “달빛이 물빛처럼 밝고 방에 사람도 없으니, 우리 춤이나 춥시다.” 하고 맞서서 너풀거리며 춤을 추었다. 선생은 다른 아전이 처마 밑에서 누워 자는 것을 보고 옆에 놓인 밀짚모자를 집어쓰고 가서 그들이 춤추는 옆에서 춤을 추니, 아전이, “두 사람이 즐기는데 너는 도대체 누구인가.” 하였다. 선생은, “나는 동쪽 윗방에 있는 손인데 양공(兩公)이 춤추는 것을 보고 부러워서 이처럼 두 분의 즐거움을 도울 뿐이다.” 하니, 아전이 황공하여 사죄하였다. 선생이, “너는 관중(官中)에서 무슨 물건을 관장하는고.” 하니, 아전은, “공방(工房)으로서 피물(皮物)을 주관하나이다.” 하였다. 선생이, “피물이 몇 장이나 있는고.” 하니 아전은, “사슴 가죽 일곱 장과 여우 가죽 수십 장이 있습니다.” 하였다. 선생이, “내가 관사(官司)를 만나보고 피물을 구할 테니, 너는 그 숫자를 숨기지 말고 모두 내놓아라. 그렇지 아니하면 지금의 이 일을 모두 말하겠다.” 하니 아전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물러갔다. 이튿날 주관(主官)과 더불어 청(廳)에 앉아 말하기를, “신을 만들려 해도 사슴 가죽이 없고 갖옷을 만들려 해도 여우 가죽이 없으니 좀 찾아 보시요.” 하니 주관이, “그대는 어디에서 들었는고. 있기는 하나 그 수가 적을 것이외다.” 하고 아전에게 명하여 내오게 하니, 모두 내다놓기에 선생은 다 가지고 돌아가 버렸다. 또한 고을에 이르러 객사에 있었는데, 어떤 기생이 흰 옷을 입고 배회하며 왕래하였는데, 얼굴이 자못 예뻤다. 물어보았더니 그 어미의 상을 당한 기생이라 하기에, 선생은 종이 한 권을 얻어 가지고 의롱(衣籠)에다 끼어 창 밖에 두고는 창을 닫고 앉았다가, 기생이 오는 것을 보고, “주(州)ㆍ군(郡)을 순력(巡歷)하여도 좋은 물건이라곤 구하지 못하고 겨우 종이 한 궤짝을 구했으나, 말이 약해서 짐이 무거우니 어떻게 가져 갔으면 좋을까.” 하니, 종이 그 뜻을 넌지시 동료에게 말하기를, “우리 상전은 기생을 사랑하면 물건을 구하여 반드시 내어 주시는데, 또 이 종이를 누구에게 주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였다. 기생은 당장 초상을 치르기는 해야겠는데 종이는 없고, 이 말을 듣고 보니 매우 마음이 당겨 밤중에 선생의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온 기생이 오래 머물러 가지 아니하자 선생은 애초에 거짓말로써 꾀었으니 사실은 줄 물건이 없으므로, 큰 소리를 질러, “상을 당한 여자가 내 방에 들어왔다.” 하니 기생은 부끄러워 도망쳐 버렸다. 선생은 또 아저씨와 함께 서울에 내왕하였는데, 아저씨의 말은 검은 빛에 이마가 희고 선생의 말은 온통 검은 빛이었다. 아저씨는 매일 밤, 선생의 말은 기둥에 매어두고 자기 말만 먹이므로 선생은 그 까닭을 알고 백지를 검은 말 이마에 붙이고 검은 종이를 이마가 흰 말에 붙여두니, 어두운 밤에 그 진위를 분별하지 못하여 아저씨는 반대로 자기 말을 기둥에 매어놓고 선생의 말만 먹여서 아저씨의 말은 비루먹고 피어나지 않았다. 그런 뒤에 비로소 속은 줄을 알았다. 또 선생은 집이 없음을 걱정하던 끝에, 연화(緣化)를 좋아하는 중과 서로 사귀어 친하게 되었는데 하루는 선생이 중에게, “내가 절을 한 채 지어 세상에서 지은 악업을 씻어볼까 하오.” 하니, 중은 흔연히 이 말을 좇아, “그대가 전세(前世)에 보살이었던 까닭으로 이러한 맹세와 소원을 발할 따름이로다.” 하므로, 선생은, “계림(鷄林 경주)에 옛 절터가 있는데, 산에 의지하고 물을 베개 삼아 참으로 경치 좋은 곳이라 절을 지을 만하오.” 하고 권문(勸文)을 써서 주니, 중은 성심껏 물건을 장만하고 선생도 역시 힘을 도와 재목을 갖추어 터를 닦고 집을 세웠다. 그 규모는 절의 제도와 조금 달라서 온돌이 많고 또 문 앞 황무지를 개간하여 채소 심을 밭을 만들었다. 단청을 칠하고 불상을 모신 뒤에 중이 경사스러운 일을 찬양하기 위하여 법연(法筵)을 열어 마침내 낙성하였는데, 선생이, “내 아내가 와서 부처를 참배하려 하오.” 하니 중이 이를 허락하였다. 선생이 그의 아내와 함께 가족과 종들을 거느리고 절에 와 있다가, 병을 핑계하고 수일을 머무른 후 세간을 모두 옮기어 거주하니, 중의 무리가 들어올 수 없어서 관(官)에 소송했으나 관에서 역시 오래 끌면서 듣지 않자 결국 선생의 집이 되었는데, 집안에 아무런 병도 없이 80세가 되도록 살다가 죽었다.
목서방거안
○ 대개 연품(宴品 연회하고 활쏠 때 쓰는 물건)의 차림차림은 처음 거안(擧案 밥상을 드는 것)할 때가 볼 만하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있어서의 차림차림을 거안이라 한다. 목생(睦生)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처음으로 충순위(忠順衛 오위(五衛)의 하나)에 들어와서 하루는 그 무리가 모여서 활을 쏘았는데, 그가 늦게 도착하였다. 그는 차림새가 깨끗하고 갖고 있는 활과 살은 모두 정묘하므로, 주위 사람들이 모두, “목생은 우리 편에 들어라.” 하며 다투어 마지않았다. 그러다가 활터에 나아가자 시위를 당기기도 전에 화살이 앞에 떨어지곤 하였다. 종일 쏘아도 목생의 살이 과녁에 미치지 못하니 사람들은 모두 실망하여, “목 서방 거안(睦書房擧案)”이라 하였다. 지금까지도, 허황하고 과장스러워 실속이 없는 사람을, “목 서방 거안”이라 한다.
닭 흉내를 내는 중
○ 어떤 중이 있었는데 몸이 작고 한쪽 발을 좀 절었다. 항상 장안에 살면서 날마다 성중을 두루 돌아다니며, 부잣집과 지체 높은 댁을 찾아다니지 않는 곳이 없었다. 항상 손뼉을 쳐서 닭의 날개치는 시늉을 하며 입을 움츠리고 소리를 내어 혹 수탉이 우는 소리를 하고, 혹 두 닭이 서로 싸우는 소리를 내며, 혹은 닭이 알을 낳는 소리를 내어 그 흉내내는 소리와 모양이 그럴듯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혹 촌닭이 응하여 우는 것이 있으면 또 노래를 지어 몸을 흔들며 부르기를, “인생이여. 인생이여. 한 칸 초가라도 마음에 즐겁도다. 인생이여. 인생이여. 옷이 헤져 백번을 기워 입어도 또한 싫지 않도다. 염라대왕의 사자(使者)가 잡으러 오면 아무리 세상에 살고자 한들 어찌 그리 되겠는가.”하고 또 부르기를, “관음제석(觀音帝釋)이여, 제석관음(帝釋觀音)이여, 이 몸이 만약 죽으면 완전히 지옥에 떨어지리라.” 하니, 그 노래가 대부분 이런 것이었다. 곡조가 농가(農歌)와 비슷하여 수많은 어린이들이 떼를 지어 따라다니니 중이 항상 말하기를, “내 하인배가 많은 것은 삼공(三公)이라 할지라도 미치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루에 얻는 것이 많게는 섬 곡식에 이르러 이것으로 먹고 입었는데, 당시 사람들이 닭중[鷄僧]이라 불렀다.
부자임을 자랑하는 신(辛)
○ 조사(朝士) 가운데 신(辛)이란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성품이 허황되어 항상 부자(富者)임을 자랑하고자 하였다. 하루는 쌀 한 주먹을 가지고 문 밖에 뿌린 뒤, 손님을 맞아들이면서 땅을 내려다보고 종을 꾸짖기를, “어찌해서 하늘에서 내린 물건을 함부로 하느냐. 그저께 충청도 사람이 쌀 2백 곡(斛)을 보내왔고, 어제 전라도 사람이 쌀 3백 곡을 보내왔다고 이와 같이 어지럽혔단 말이냐.” 하였다. 또 희첩(姬妾)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자 하여 항상 지분(脂粉)을 뿌려 방 벽에 바르고, 손님을 맞아들일 때 종을 꾸짖기를, “어째서 창 벽을 더럽혔느냐. 어제 아무 기생이 이 방에 와서 자더니, 새벽에 화장할 때 낯을 씻으며 이렇게 해놓았구나.” 하였다. 또 헝겊 조각을 종에게 주었다가 손님이 와서 당에 앉았을 때, 종이 뜰 아래 꿇어앉아 말하기를, “아무 아가씨가 비단신에 수놓은 것을 화아(花兒)에게 쓸까요, 운아(雲兒)에게 쓸까요?”하면, 선비는 말하기를, “대운아(大雲兒)에게 쓰는 것이 좋겠다.”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한때의 명기(名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