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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영월 장릉 || [http://dh.aks.ac.kr/~tutor/cgi-bin/heritage2019/Story01.py?db=Heritage2019&project=terms2019&key=1-E-012660 영월 장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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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24일 (화) 21:35 기준 최신판

성주와 사천에 존재하는 단종 태실, 진위는 무엇일까?

전인혁,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인문학연구소

Digital Curation "성주 단종 태실, 사천 전(傳) 단종 태실, 알지 못했던 태실 속 역사"

  • 단종은 조선 최초로 원손(元孫) → 세자(世子) → 왕(王)에 이르기까지 종법제 질서 하에 완벽한 군주였다. 허나 숙부 수양대군에 의한 쿠데타로 인해 살해되고 그 이름은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당해 200여년의 세월 동안 신원되지 못했다.
  • 세월이 흘러 숙종 연간에 이르자, 강력한 왕권 확립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숙종의 주도하에 과거 왕실의 사적을 재정비하는 사업이 활발하게 일어났으며 그 가운데 단종은 다시 역사와 신화의 저편에서 소환됐다.
  • 다만 오랜 시간 의도적으로 잊혀져왔던 단종이었기에 그의 태실 역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지 않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영조 재위기에 들어서면서 돌연 단종의 태실은 경상도 곤양, 즉 지금의 사천 지역에 출몰하게 됐다.
  • 사천의 단종 태실은 이후 200여년 간 왕실의 관심 속에 수호돼왔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맞이하며 다시 단종 태실은 훼손의 위기에 직면하고 만다. 이왕직(李王職)에서 왕실 태실의 효율적 관리를 명목으로 전국 각지의 태실을 봉출해 서삼릉 지역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 사천 단종 태실 역시 이 풍파에서 온전할 수 없었다. 헌데 돌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봉출된 단종 태실 속에서 그 태실의 주인을 나타내는 ‘태지석(胎誌石)’에 ‘왕손 휘 분(王孫諱糞)’이라는 단종이 아닌 왕자의 태실임을 알리는 내용이 또렷히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 오랜 세월 동안 기억의 지층 속에 견고해진 ‘사실’은 현재를 계속해서 살아간다. 조선 후기 어느 한 사람에 의해 오해된 사천 단종 태실은 그렇게 단종의 신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서 기능해왔기에 지금도 사람들은 단종의 태실을 사천에 있다고 여전히 ‘오해’하고 있다.
  • 본 디지털 큐레이션에서는 이러한 ‘오해’를 바로잡고 사천의 단종 태실은 단종 태실이 아니라 예종의 왕자 인성대군 이분의 태실이었으며 원(元) 단종 태실은 경상북도 성주에 있었음을 설명하고자 한다. 더불어 태실과 연관된 인물 간의 관계와 그들이 언급된 문헌, 관련 유물 등을 함께 보여줌으로서 소개된 인물들에 대한 보다 많은 정보를 학습자가 열람할 수 있도록 함을 목표로 한다.

Small Data

No. 소주제 (문화유산) Small Data (문화유산 해설)
1 단종 원손 태실 단종 원손 태실
2 성주 단종 태실 성주 단종 태실
3 사천 단종 태실 사천 단종 태실
4 세종 태실 세종 태실
5 세조 태실 세조 태실
6 인성대군 태실 인성대군 태실
7 세종실록 세종실록
8 문종실록 문종실록
9 세조실록 세조실록
10 영조실록 영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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