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화문석"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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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의 특산물, 화문석은 고려시대 교동도 화개사 스님들이 절 주변에 많이 자라는 왕골들로 만든 방석으로 4계절을 보낸 것이 지금의 화문석이 되었다는 설과 가내수공업이 발전해서 이루게 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강화천도 39년 동안 이주한 왕실과 관료를 위해 최상품의 화문석을 제작하게 되면서 강화도 화문석이 오늘날까지 최고의 자리로 전승되어 온 가장 큰 배경이 되었다고 합니다. <br/> | 강화도의 특산물, 화문석은 고려시대 교동도 화개사 스님들이 절 주변에 많이 자라는 왕골들로 만든 방석으로 4계절을 보낸 것이 지금의 화문석이 되었다는 설과 가내수공업이 발전해서 이루게 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강화천도 39년 동안 이주한 왕실과 관료를 위해 최상품의 화문석을 제작하게 되면서 강화도 화문석이 오늘날까지 최고의 자리로 전승되어 온 가장 큰 배경이 되었다고 합니다. <br/> | ||
− | 그러나 조사 중에 현재 강화 특산품인 왕골화문석 외에 지금은 사라진 재료와 기술로 만들어진 문화유산인 참골화문석(등메)가 있었으며, 역사적으로 또한 전국에서 인정받고 나라에 진상하던 강화 화문석은 | + | 그러나 조사 중에 현재 강화 특산품인 왕골화문석 외에 지금은 사라진 재료와 기술로 만들어진 문화유산인 참골화문석(등메)가 있었으며, 역사적으로 또한 전국에서 인정받고 나라에 진상하던 강화 화문석은 현재 자리틀로 짠 노경소직의 왕골 화문석이 아니라, 돗틀로 짠 은경밀직으로의 참골화문석(등메)였음을 알게 되었고, 이에 등메에 대한 기록을 빠짐없이 조사하려 하였습니다. <br/> |
− | 또한 | + | 또한 현재는 왕골만으로 화문석이 제작되지만 과거에는 왕골, 골, 용수석, 부들 등 지금과는 다른 재료들로 제작되고 있는데 이러한 재료들을 왕골과 동일시하는 오류가 곳곳에서 발견되어 새로 조사코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오류는 돗과 자리에서도 등장하는데, 현대와 달리 돗과 자리는 돗틀과 자리틀로, 노경소직과 은경밀직 등 만드는 도구와 방법이 다른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구분하여 작성하도록 하였습니다. 역사에 기록된 자료는 모든 지역의 화문석보다는 강화도 화문석에 맞추어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개인적으로 최고품으로 여겨지지만 지금은 완전히 사라진 안동의 화문석과 흔적만이 남은 보성의 용문석, 그리고 왕골 껍질을 일일이 손으로 다 벗겨서 돗틀에 은경밀직으로 수작업하는 함평 등지의 화문석 관련 자료가 더 조사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br/> |
− | + | 화문석에서 색색깔로 천연염색된 골들은 견뢰도가 약하여 자연환경 속에서 색이 바래어 현존하는 화문석도 19세기 후반의 유물만 있을 뿐입니다. 이에 정확한 문양의 확인은 초상화 속에 기록된 화문석에서 가능하다고 판단되어 관련된 그림들을 수집하여 화문석 디자인을 대략적으로 파악하고자 하였으며, 이후 다른 미술과 궁중 미술에서도 화문석 관련 그림들을 찾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여집니다.<br/> | |
− | 현재의 강화 | + | 우리나라는 자리의 사용처가 무척 많아 고려도경에 의하면 침상, 평상, 땅에 깔았으며, 그 중 화문석은 왕실과 양반의 침상, 평상, 방석 등 용도였으며 왕실에 진상하고, 중국과 일본 등에 수출하거나 공납으로, 또한 혼례품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조선 순조 때 창작된 향악정재의 하나인 춘앵무는 봄날 버드가지 위에서 지저귀는 꾀꼬리의 모습을 본 따 만든 춤입니다. 궁중 대잔치 때 화문석 하나만 깔고 한 사람의 무기가 그 위에서 주악에 맞춰 추는 독무입니다. |
+ | 마지막으로 현재의 강화 화문석의 현주소를 알아보고 부속 재료와 염료를 현대에 맞게 다소 변형하고 새로운 디자인과 아이템을 개발하면서 미래 시대에도 전승하고자 노력하는 강화도와 강화도민들을 보면서 이분들이 화문석에 대한 높은 애정과 자긍심, 안타까움을 알 수 있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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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유산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64617 화문석], [[등메]], [[초상화속_화문석]] | |
− | + | *개념 : [[노경소직(露經疎織)]], [[은경밀직(隱經密織)]] | |
− | *유산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64617 화문석] | + | *자재 : [[돗틀/자리틀/가마니틀]], [[왕골/참골/용수초/부들]], [[왕골_강화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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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강화화문석문화관]], [http://www.강화나들길.org/index.php?r=home&c=1/6/107 강화나들길 18코스_왕골공예마을 가는길] | *장소 : [[강화화문석문화관]], [http://www.강화나들길.org/index.php?r=home&c=1/6/107 강화나들길 18코스_왕골공예마을 가는길] | ||
+ | *인명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4758&cid=58840&categoryId=58855 국가무형문화재완초장_이상재],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804470 인천무형문화재완초장_한명자],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22,00160000,11&pageNo=5_2_1_0 서울무형문화재초고장_한순자],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22,00290000,11&pageNo=5_2_1_0 서울무형문화재등메장_최헌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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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 시대 || 조선_고종 | | 11 || 시대 || 조선_고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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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 유산 || 백색자리 | | 15 || 유산 || 백색자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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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 기록 || 화문대석(花文大席) | | 25 || 기록 || 화문대석(花文大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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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 자재 || 화문석날_칡껍질 | | 27 || 자재 || 화문석날_칡껍질 | ||
107번째 줄: | 109번째 줄: | ||
| 31 || 자재 || 남부감광성왕골_햇빛영향 | | 31 || 자재 || 남부감광성왕골_햇빛영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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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32 || 자재 || | + | | 32 || 자재 || 중부감온성왕골_온도영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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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 자재 || 조생종_일찍 성숙 | | 33 || 자재 || 조생종_일찍 성숙 | ||
147번째 줄: | 149번째 줄: | ||
| 51 || 기록,디자인 || 청자색단 | | 51 || 기록,디자인 || 청자색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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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52 || 기록,용도 || | + | | 52 || 기록,용도 || 침상에_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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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53 || 기록,용도 || | + | | 53 || 기록,용도 || 평상에_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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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54 || 기록,용도 || | + | | 54 || 기록,용도 || 땅에_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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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 기록 || 해동역사 | | 55 || 기록 || 해동역사 | ||
159번째 줄: | 161번째 줄: | ||
| 57 || 기록 || 통문관지 | | 57 || 기록 || 통문관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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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58 || 기록,용도 || | + | | 58 || 기록,용도 || 중국일본에_보내는_조정선사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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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 기록 || 임원경제지_1827 | | 59 || 기록 || 임원경제지_18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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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60 || 기록 || 금화경독기(金華耕讀記) | + | | 60 || 기록 || 금화경독기(金華耕讀記)_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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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61 || 기록 || 용수초(龍鬚草) | + | | 61 || 기록 || 용수초(龍鬚草)는_영남_안동예안산품이_으뜸_경기_교동것은_버금 |
|- | |- | ||
| 62 || 기록 || 오주연문장전산고_萬物篇/萬物雜類_1788 | | 62 || 기록 || 오주연문장전산고_萬物篇/萬物雜類_178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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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63 || 기록 || | + | | 63 || 기록 || 유명산지_강화교동_돗자리 |
|- | |- | ||
| 64 || 기록 || 규합총서_1815 | | 64 || 기록 || 규합총서_1815 | ||
|- | |- | ||
− | | 65 || 기록 || | + | | 65 || 기록 || 강화교동_화문석우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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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 || 기록 || 경도잡지 | | 66 || 기록 || 경도잡지 | ||
|- | |- | ||
− | | 67 || 기록,용도 || | + | | 67 || 기록,용도 || 조선후기_웬만한양반집 |
|- | |- | ||
| 68 || 기록 || 예용해전집 | | 68 || 기록 || 예용해전집 | ||
195번째 줄: | 197번째 줄: | ||
| 75 || 용도 || 진상석 | | 75 || 용도 || 진상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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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76 || | + | | 76 || 개념 || 은경밀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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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 || 자재 || 외올닥이바디 | | 77 || 자재 || 외올닥이바디 | ||
247번째 줄: | 249번째 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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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eveloped / develops / displays / gavetotheking / had / hadaskill / is / isamaterialof / isanohername / ischaracter / isfamousfor / isinchargeof / iskindof / islocatedin / ismade / ismadeof / ispeople / issimilarto / isused / iswrongname / make / orderedthedevelopmentof / used / was / wasoffered / wasrecord / wastheoldestwork / wasused / waswritten / workedon | ||
2019년 12월 10일 (화) 02:32 기준 최신판
목차
주제 : 강화도 화문석 (花紋席)
개요
강화도의 특산물, 화문석은 고려시대 교동도 화개사 스님들이 절 주변에 많이 자라는 왕골들로 만든 방석으로 4계절을 보낸 것이 지금의 화문석이 되었다는 설과 가내수공업이 발전해서 이루게 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강화천도 39년 동안 이주한 왕실과 관료를 위해 최상품의 화문석을 제작하게 되면서 강화도 화문석이 오늘날까지 최고의 자리로 전승되어 온 가장 큰 배경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사 중에 현재 강화 특산품인 왕골화문석 외에 지금은 사라진 재료와 기술로 만들어진 문화유산인 참골화문석(등메)가 있었으며, 역사적으로 또한 전국에서 인정받고 나라에 진상하던 강화 화문석은 현재 자리틀로 짠 노경소직의 왕골 화문석이 아니라, 돗틀로 짠 은경밀직으로의 참골화문석(등메)였음을 알게 되었고, 이에 등메에 대한 기록을 빠짐없이 조사하려 하였습니다.
또한 현재는 왕골만으로 화문석이 제작되지만 과거에는 왕골, 골, 용수석, 부들 등 지금과는 다른 재료들로 제작되고 있는데 이러한 재료들을 왕골과 동일시하는 오류가 곳곳에서 발견되어 새로 조사코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오류는 돗과 자리에서도 등장하는데, 현대와 달리 돗과 자리는 돗틀과 자리틀로, 노경소직과 은경밀직 등 만드는 도구와 방법이 다른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구분하여 작성하도록 하였습니다. 역사에 기록된 자료는 모든 지역의 화문석보다는 강화도 화문석에 맞추어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개인적으로 최고품으로 여겨지지만 지금은 완전히 사라진 안동의 화문석과 흔적만이 남은 보성의 용문석, 그리고 왕골 껍질을 일일이 손으로 다 벗겨서 돗틀에 은경밀직으로 수작업하는 함평 등지의 화문석 관련 자료가 더 조사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화문석에서 색색깔로 천연염색된 골들은 견뢰도가 약하여 자연환경 속에서 색이 바래어 현존하는 화문석도 19세기 후반의 유물만 있을 뿐입니다. 이에 정확한 문양의 확인은 초상화 속에 기록된 화문석에서 가능하다고 판단되어 관련된 그림들을 수집하여 화문석 디자인을 대략적으로 파악하고자 하였으며, 이후 다른 미술과 궁중 미술에서도 화문석 관련 그림들을 찾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여집니다.
우리나라는 자리의 사용처가 무척 많아 고려도경에 의하면 침상, 평상, 땅에 깔았으며, 그 중 화문석은 왕실과 양반의 침상, 평상, 방석 등 용도였으며 왕실에 진상하고, 중국과 일본 등에 수출하거나 공납으로, 또한 혼례품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조선 순조 때 창작된 향악정재의 하나인 춘앵무는 봄날 버드가지 위에서 지저귀는 꾀꼬리의 모습을 본 따 만든 춤입니다. 궁중 대잔치 때 화문석 하나만 깔고 한 사람의 무기가 그 위에서 주악에 맞춰 추는 독무입니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강화 화문석의 현주소를 알아보고 부속 재료와 염료를 현대에 맞게 다소 변형하고 새로운 디자인과 아이템을 개발하면서 미래 시대에도 전승하고자 노력하는 강화도와 강화도민들을 보면서 이분들이 화문석에 대한 높은 애정과 자긍심, 안타까움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자세한 정보는 주요노드에서 하이퍼링크를 통해 확인 가능합니다.
돗틀
자리틀
김홍도의 자리짜기
온톨로지 설계
범주 class
- 인명
- 기록
- 유산
- 자재
- 장소
- 시대
- 기관
- 개념
- 용도
주요 노드 : major nodes
- 기록 : 신라고려조선_화문석기록, 강화_왕골공예육성현황, 강화왕골화문석_문양/제작방법, 강화참골화문석(등메)_문양/제작방법
- 유산 : 화문석, 등메, 초상화속_화문석
- 개념 : 노경소직(露經疎織), 은경밀직(隱經密織)
- 자재 : 돗틀/자리틀/가마니틀, 왕골/참골/용수초/부들, 왕골_강화종
- 장소 : 강화화문석문화관, 강화나들길 18코스_왕골공예마을 가는길
- 인명 : 국가무형문화재완초장_이상재, 인천무형문화재완초장_한명자, 서울무형문화재초고장_한순자, 서울무형문화재등메장_최헌열
노드 리스트 nodes list
No. Class Node 1 장소 강화화문석문화관 2 장소 강화나들길 18길 3 장소 강화화문석마을 4 장소 송해면 양오리 5 장소 강화왕골재배지 6 인물 국가무형문화재완초장_이상재 7 인물 인천무형문화재완초장_한명자 8 인물 서울무형문화재초고장_한순자 9 인물 서울무형문화재등메장_최헌열 10 인물 한충교 11 시대 조선_고종 12 개념 완초장 13 개념 초고장 14 개념 등메장 15 유산 백색자리 16 유산 왕골화문석 17 유산 참골화문석(등메) 18 유산 용수초지석 19 기록 각색세화석(各色細花席) 20 기록 만화석(滿花席) 21 기록 채화석(彩花席) 22 기록 잡채화석(雜彩花席) 23 기록 황화석(黃花席) 24 기록 화석(花席) 25 기록 화문대석(花文大席) 26 개념 노경소직 27 자재 화문석날_칡껍질 28 자재 현대화문석날_나일론실 29 자재 현대화문석염색_화학염료 30 자재 왕골강화종 31 자재 남부감광성왕골_햇빛영향 32 자재 중부감온성왕골_온도영향 33 자재 조생종_일찍 성숙 34 기관 강화완초전통보존회 35 시대 강화천도39년 36 용도 고려진상품 37 장소 교동도화개사 38 용도 화개사방석 39 인물 일제강화군청_정혜채 40 기관 강화직물화연(花筵)조합 41 기관 조선_장흥고 42 기관 조선_상의원 43 기록 삼국사기_거기조車騎條 44 기록,용도 수레휘장 45 기록 삼국사기_직관조職官條 46 기록,기관 석전(席典) 47 기록 고려사 48 기록 원나라_공물 49 기록 고려도경 50 기록,디자인 흑백무늬 51 기록,디자인 청자색단 52 기록,용도 침상에_깜 53 기록,용도 평상에_깜 54 기록,용도 땅에_깜 55 기록 해동역사 56 기록 당인만화문석(唐人滿花紋席) 57 기록 통문관지 58 기록,용도 중국일본에_보내는_조정선사품 59 기록 임원경제지_1827 60 기록 금화경독기(金華耕讀記)_인용 61 기록 용수초(龍鬚草)는_영남_안동예안산품이_으뜸_경기_교동것은_버금 62 기록 오주연문장전산고_萬物篇/萬物雜類_1788 63 기록 유명산지_강화교동_돗자리 64 기록 규합총서_1815 65 기록 강화교동_화문석우수 66 기록 경도잡지 67 기록,용도 조선후기_웬만한양반집 68 기록 예용해전집 69 유산 등매 70 인물 교동도(喬桐島)등메장_이산룡 71 시대 1890년여년 72 자재 등메날_어저귀껍질 73 자재 참골(인초) 74 자재 용수초 75 용도 진상석 76 개념 은경밀직 77 자재 외올닥이바디 78 자재 돗자리틀 79 자재 자리틀 80 자재 가마니틀 81 개념,디자인 기본_일곱색 82 개념,디자인 십장생문(十長生紋) 83 개념,디자인 호문(虎紋) 84 개념,디자인 만화문(萬花紋) 85 개념,디자인 색칠자문석(色七字紋席) 86 개념 부들기직 87 기술 백석장 88 기술 화문장 89 개념 돗자리 90 용도 왕실사용 91 용도 양반사용 92 기록 수출품 93 개념 돗 94 개념 자리 95 용도 서민사용 96 기록 조선후기_아학편_정약용 97 기록 조선중기_훈몽자회 98 기록 김홍도_자리짜기 99 기록 심도기행_송정면(松亭面)솔정동(率亭洞)_부들짜는기계 100 기록 심도기행_삼해면(三海面)상도동(上道洞)_직석(織席) 관계 re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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