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xml-stylesheet type="text/css" href="https://dh.aks.ac.kr/Edu/wiki/skins/common/feed.css?303"?>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lang="ko">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Report_From_Underwood_To_Brown_%2819030904%29</id>
		<title>Report From Underwood To Brown (19030904) - 편집 역사</title>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s://dh.aks.ac.kr/Edu/wiki/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Report_From_Underwood_To_Brown_%2819030904%29"/>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h.aks.ac.kr/Edu/wiki/index.php?title=Report_From_Underwood_To_Brown_(19030904)&amp;action=history"/>
		<updated>2026-04-14T18:54:46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generator>MediaWiki 1.23.13</generator>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title=Report_From_Underwood_To_Brown_(19030904)&amp;diff=121913&amp;oldid=prev</id>
		<title>Hyunsook: 새 문서: {{버튼|편지 목록으로 돌아가기}}  {{선교사편지정보 |식별자=L1903...</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h.aks.ac.kr/Edu/wiki/index.php?title=Report_From_Underwood_To_Brown_(19030904)&amp;diff=121913&amp;oldid=prev"/>
				<updated>2020-09-11T06:46:2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새 문서: {{버튼|&lt;a href=&quot;/Edu/wiki/index.php/%EC%84%A0%EA%B5%90%EC%82%AC_%ED%8E%B8%EC%A7%80_%EB%8D%B0%EC%9D%B4%ED%84%B0%EB%B2%A0%EC%9D%B4%EC%8A%A4%EB%A5%BC_%ED%86%B5%ED%95%9C_%EC%84%A0%EA%B5%90%EC%82%AC_%EA%B8%B0%EB%A1%9D_%EC%97%B0%EA%B5%AC#.EA.B5.AC.EC.B6.95_.EB.8D.B0.EC.9D.B4.ED.84.B0_.EB.AA.A9.EB.A1.9D&quot; title=&quot;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선교사 기록 연구&quot;&gt;편지 목록으로 돌아가기&lt;/a&gt;}}  {{선교사편지정보 |식별자=L1903...&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버튼|[[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선교사 기록 연구#구축 데이터 목록|편지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선교사편지정보&lt;br /&gt;
|식별자=L19030904UTOB&lt;br /&gt;
|대표명칭=언더우드가 브라운에게 보낸 편지&amp;lt;br/&amp;gt;(1903년 9월 4일)&lt;br /&gt;
|한글명칭=언더우드가 브라운에게 보낸 편지 (1903년 9월 4일)&lt;br /&gt;
|영문명칭=Horace G. Underwood's Letter To Frank F. Ellinwood (Sep 4, 1903)&lt;br /&gt;
|발신자=[[Underwood, Horace G.(원두우)]]&lt;br /&gt;
|수신자=[[Brown,A.J]]&lt;br /&gt;
|작성연도=1903년&lt;br /&gt;
|작성월일=9월 4일&lt;br /&gt;
|작성공간=[[서울]]&lt;br /&gt;
|자료소장처=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lt;br /&gt;
|번역문출처=김인수, 『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2.&lt;br /&gt;
|필드수=&lt;br /&gt;
}}&lt;br /&gt;
&lt;br /&gt;
{{선교사편지레이아웃&lt;br /&gt;
|원문1=Underwood&amp;lt;br/&amp;gt;Seoul, Korea&lt;br /&gt;
|원문2=September 4, 1903&lt;br /&gt;
|원문3=Rev. A. J. Brown, D. D.,&amp;lt;br/&amp;gt; 156Fifth Avenue, New York, N. Y.&lt;br /&gt;
|원문4=Dear Dr. Brown :&lt;br /&gt;
|원문5=&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Your kind letter of July 16, in regard to the various and sensational, glaring reports in the newspaper concerning missionaries Brown's daughter being Empress of Korea was duly received. In regard to what ti refers to, it is an enigma as hard for us to solve as for you away so far. however, as it is a missionary Brown, a mistake might be made between Oregon and Ohio. Can it be that Dr. Brown of Oregon, when an audience was secured for him at the palace by a missionary named underwood, smuggled in his daughter so as to help on mission work? I had known noting of it at the time, but you request a solution of the riddle and you can readily see how easy it would be to make Oregon into Ohio. &amp;lt;/div&amp;gt;&lt;br /&gt;
|원문6=&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Joking aside, I think there are a number of various stories mixed up. in the first place it was a housekeeper at the Russian Legation who is now housekeeper at the palace. in the there. in the third place the chief favorite among the palace women is Lady Om, which is sometimes written Em. there was also here a missionary named Brown at Fusan and these thing have been woven together to make a story. as it appears here, there is not one item of truth in what the papers have. we are not surprised at such stories getting into the regular newspapers and being made a tit-bit of news, but it rather surprised us to see that Women's work for Women [Woman's Work for Women] of our church should attempt to correct it and give as a truth such a story as they concocted not so long ago.&amp;lt;/div&amp;gt;&lt;br /&gt;
|원문7=&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Many thanks for your kind remembrances for the people of Hai Ju and that region. I do not know whether I shall be going there again or not. our mission and station seem to feel very strongly the need of bible translating being done and done quickly. I agree that this is a great need. To accomplish this they feel that my work should be somewhere near the city of Seoul and as a result they have taken away from me the Whang Hai Do work. I have not yet seen my way clear to agree with the mission. During the past year one thing or another interrupted meetings so that for the whole year we were only able to secure about 170 meetings of the Board [Board of Translators]. [The] Board plans three and a half hours each day (working), that is to say, five days each week for from 40 to 42 weeks. It would make 200 or 210 days if they met for the time that they expect to meet. This, at three and a half hours a day makes 735 hours of actual work-or not quite 31 days of 24 hours each. Taking the working day at 10 hours each, it gives 73½days, or 8 hours each 92 days of the year. I certainly feel that I cannot consent for the sake of 92 days of 8 hours each to be kept here in the city for the whole year. If the Board would put in 7 hours a day instead of the 3½, then I would be willing to put in five days a week for seven or eight months, and this would then leave me plenty of time to do my evangelistic work in. Under these circumstances either the Board of Translators here must put in more time per day or I shall resign from the Board. Under these circumstances I will have time for country evangelistic work and I fail to see why the oldest work I have had should be taken away and turned over to another , especially when that one is not a fully equipped missionary and cannot give all the oversight that the work needs. The people up in that section are not satisfied. He is not quick enough to decide things, and up to the time of the last trip he had taken (after that I have not heard), he had not yet made a public address in Korean. Of course, the annual meeting has not yet been held but with the(하단 텍스트 누락)&amp;lt;/div&amp;gt;&lt;br /&gt;
&lt;br /&gt;
|번역문1={{선교사편지인물태그|[[Underwood, Horace G.(원두우)|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amp;lt;br/&amp;gt;한국, {{선교사편지공간태그|[[서울]]}}&lt;br /&gt;
|번역문2=1885년 1월 26일&lt;br /&gt;
|번역문3={{선교사편지인물태그|[[Brown, A. J.|브라운]]}}, 뉴욕 &lt;br /&gt;
|번역문4=존경하는 {{선교사편지인물태그|[[Brown, A. J.|브라운]]}} 박사님께,&lt;br /&gt;
|번역문5=&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선교사 브라운의 딸이 한국의 황후가 되었다는 다양하고 선정적이며 현란한 신문 기사와 관련한 7월 16일자 박사님의 친절한 편지를 잘 받았습니다. 그 신문기사의 내용에 관해 말씀드리면, 여기에서 멀리 떨어져 계시는 박사님 만큼이나 제희에게도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입니다. 그러나 그 기사가 선교사 브라운이라고 밝힌 것은 오레곤과 오하이오 사이에서 이루어진 실수일지도 모릅니다. 오레곤의 브라운 박사는 언더우드라는 이름을 가진 선교사의 안내로 왕궁의 한 분을 소개받았습니다. 그런 브라운 박사가 선교 사역에 도움이 되도록 자신의 딸을 몰래 데리고 들어갈 수 있었겠습니까? 저는 당시 그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박사님은 제게 그 수수께끼를 해결하도록 요청하십니다. 오레곤이 오하이오로 쉽게 돌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박사님께서 쉽게 아실 수 있습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6=&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농담이 아닙니다만, 저는 수많은 다양한 이야기들이 혼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로, 러시아 공사관의 가정부였던 한 여인이 지금은 왕궁의 가정부로 있습니다. 두 번째로,  브라운[맥리비 브라운]이라는 이름을 가진 세관 행정관이 거기에 매우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세 번째로, 왕궁 여인들 중 제일 총애받는 사람이 엄이라는 상궁인데, 엄이 때로는 엠으로 쓰여집니다. 거기에다가 또한 이곳에는 부산에서 사역하는 브라운이라는 이름의 선교사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서로 엮어져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이로 보아 알 수 있듯이, 그 신문기사가 가지고 있는 진실은 하나도 없습니다. 저희는 정규 신문에 실려 가십거리를 만드는 그런 이야기들에 놀라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저희를 놀라게 했던 것은 저희 교회의 여성을 위한 여성의 사역지가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 그런 이야기를 바로잡으려 시도하고 진실을 찾으려 한다는 점입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7=&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해주와 그 지역 사람들에 대해 박사님이 친절히 안부를 물어주시니 매우 감사합니다. 제가 거기에 다시 갈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저희의 선교부와 지부는 성경 번역을 빨리 진행할 필요를 매우 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이 일이 좋은 바람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이 일이 끝나면 저희 선교부와 지부는 제 사역지가 서울시에서 가까운 어떤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결국 그들은 저를 황해도 사역에서 떼어놓기를 원합니다. 제 길이 선교부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과거 이런 저런 일들이 회의들을 가로막았고, 그 결과 저희는 지금까지 통틀어 위원회[번역 위원회] 모임을 약 170회밖에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그] 위원회는 하루에 세 시간 반, 다시 말하면, 매주 4일씩 40~42주를 (일하기로) 계획합니다. 그들이 모이기로 예정된 시간동안 모인다면 200~210일을 일하게 될 것입니다. 하루에 세 시간 반 일한다면 실제 일하는 시간은 735시간이 된다는 것이지, 31일 동안 24시간씩 일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일하는 날에 각 10시간을 확보하면, 총 73일 반나절이 되고, 혹 8시간을 확보하면 연중 92일이 됩니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제가 이곳 도시에 일년 내내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하루 8시간씩 92일을 일하는 안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번역위원회에서 하루 3시간 반 대신에 하루 7시간을 잡는다면, 저는 7, 8개월 동안 매주 5일을 투자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성경 번역 일은 제가 복음사역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빼앗을 것입니다. 이런 환경 아래에서라면, 이곳 번역 위원회가 매일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든지 아니면 제가 위원회를 사임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환경 아래에서라면, 저는 지방의 복음 사역을 위해 시간을 가질 것이고, 제가 해 왔던 가장 오래된 사역을 그만 두고 다른 사람에게 돌려야할 이유를 찾지 못합니다. 특히 그 사람이 완전히 갖추어진 선교사가 아니고 그 사역이 요구하는 감독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때는 말입니다. 그 지역 사람들은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는 신속히 일들을 결정하지 못하고, 그가 마지막 여행을 끝낸 시점에 이르기까지(그후 저는 듣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한국에 공적인 주소를 갖지 않았습니다. 물론, 연례 회의가 아직 개최되지 않았으나 지부의 의견에 따라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는 것은 뭔가 변화가 있지 않고서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똑같은 할당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박사님은 사역이 끝나셨고, 박사님이 생각하시는 최상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말씀하실 수 있으십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8=&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연중 사역에 저희가 희망했던 것이 다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정동은 매우 지쳐 있습니다. 연중에 그리고 제가 부재 중이던 시기 절반 동안 회원들과 교회를 연합시킬 기회들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성찬식이 거행되었으나 한 번뿐이었고, 사역의 질서를 되돌린다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의 전체 조직체가 무질서에 빠졌고, 아직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이런 노선에 따라 일 해왔고, 사람들은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더욱 활동적이고, 저희의 모임들에 매우 잘 출석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동안 20 내지 30명 정도 늘어났습니다. 저희는 내년에 더 많은 진보가 있기를 기대합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9=&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저의 최근 고국 여행은 본부가 매우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켰습니다. 그것은 8년이나 9년 만에 휴가를 1년만 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사람에게 일년 반이나 그 이상 자신의 사역에서 떠나게 합니다. 반면에 만약 봉사 주기 5년에 6개월 휴가라면, 그의 휴가는 현장에 최소한의 영향을 미치도록 시간을 가지고 조정될 수 있을 것이며, 한 사람의 사역이 장기간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어떤 심각한 균열 없이 지속될 수 있습니다. 이것에 덧붙여, 선교사들의 건강이 더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그들의 사역의 능력도 더욱 커질 것입니다. 더 나아가, 고국 교회들과의 친교 역시 더 잘 유지될 것입니다. 제가 박사님에게 뉴욕을 떠나면서 드렸던 말씀처럼, 본부가 허락한다면, 5년 끝에 제 비용으로 고국을 방문하여 실제적 검증을 해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저는 그것이 고려해볼 가치가 있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10=&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저는 형제 선교사를 비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박사님은 다릅니다. 목사로서의 박사님의 이전 직책은 웰즈 의사와 똑같은 비중의 무게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amp;lt;오레곤 아침&amp;gt; 지 7월 13일자 기사를 박사님에게 동봉해 드립니다. 저는 두 병원을 비교한 내용이 현명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비교는 역겹고 이것에 덧붙여 거기에 제시된 비교는 옳지 않습니다. 박사님은 그가 자신의 병원을 위해 5,000 달러를 요청했고, 그가 언급한 다른 병원이 받은 2,000 달러는 20,000 엔 또는 금화 10,000 달러라는 사실을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가 그런 비교를 한다고 하면, 3 달러, 아마도 2 달러에 자신의 병원에 내려놓을 수 있다는 목재는 더 많은 양이 사용될 그 도시에서 25 달러나 30 달러의 비용이 들것이라는 기록은 하지 않았어야 할 것 아닌가요?&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11=&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정리해 볼 때, 두 병원 사이의 조정에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웰즈 의사가 세계의 의료 협동단체들 가운데 가장 최선의 단체가 추천하는 것과는 거의 반대로 병원을 꾸리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웰즈 의사가 자신의 방식으로 성공할 수는 있을 것이지만, 그가 그렇게 하는데는 위험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12=&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저는 연설에는 어떤 비판도 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만, 그가 스스로 평양 사역에 제한하는 것과 그가 비교할 필요가 없었던 것을 비교하려고 했던 것은 제외합니다. 만약 그가 여태 했던 일에 스스로 만족할 수 있다면, 다른 선교사들에 대한 명백한 비판들보다는 그 주장의 이익을 위해서는 더 나을 것입니다. 저는 박사님의 한 마디가 그 문제를 끝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13=안녕히 계십시오.&lt;br /&gt;
|번역문14={{선교사편지인물태그|[[Underwood, Horace G.(원두우)|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올림. &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 [[분류:선교사편지_편지]] [[분류:선교사편지_From_Underwood]] [[분류:선교사편지_To_Brown]] [[분류:선교사편지_1903년]] [[분류:선교사편지_서울]]&lt;/div&gt;</summary>
		<author><name>Hyunsook</name></author>	</entry>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