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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45.넙성동(城洞)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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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09T19:18:20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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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은숙: 새 문서: 245. 넙성동(芿城洞523)) 具門世築芿城中구씨 가문 넙성리에 대를 이어 사는데, 現使今人想古風오늘날 우리에게 옛 풍모를 생각게 하네. 楣...</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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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4-15T00:09:1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새 문서: 245. 넙성동(芿城洞523)) 具門世築芿城中구씨 가문 넙성리에 대를 이어 사는데, 現使今人想古風오늘날 우리에게 옛 풍모를 생각게 하네. 楣...&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245. 넙성동(芿城洞523))&lt;br /&gt;
具門世築芿城中구씨 가문 넙성리에 대를 이어 사는데,&lt;br /&gt;
現使今人想古風오늘날 우리에게 옛 풍모를 생각게 하네.&lt;br /&gt;
楣上紅旌兵判字문 이마의 정려 글씨 병조판서 쓰였으니,&lt;br /&gt;
海天星日貫貞忠바다 하늘 해와 별에 충정으로 통했네.&lt;br /&gt;
○ 능성 구씨인 구원일(具元一)524)은 강암공(江菴公)의 7대손이다.&lt;br /&gt;
병조참의를 지낸 구신충(具信忠)525)의 6세손이다. 호조의 낭관을 지&lt;br /&gt;
낸 구유관(具有寬)의 고손이다. 병자년 난리에 순절한 일은 충렬사&lt;br /&gt;
주(註)에 보인다.&lt;br /&gt;
○ 그 자손들은 문학을 세습하여 이곳에 많이 살고 있다.&lt;br /&gt;
523) 불은면 넙성리이다.&lt;br /&gt;
524) 구원일(1582∼1637)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여선(汝先). 병자호란 때 강&lt;br /&gt;
화좌부천총(江華左部千摠)으로서 휘하 수십명을 거느리고 갑곶나루로 나아&lt;br /&gt;
갔으나, 강화유수 장신(張紳)이 싸울 뜻이 없음을 보고 항의하다 바다에&lt;br /&gt;
빠져 자결하였다. 충렬사(忠烈祠)에 배향되었으며, 병조참의에 증직되었다.&lt;br /&gt;
525) 구신충(생몰년 미상) 1444년 식년시(式年試) 정과(丁科) 15위로 합격하였다.&lt;br /&gt;
불은면(佛恩面) 257&lt;br /&gt;
246. 둔랑촌(芚浪村526)*)&lt;br /&gt;
芚浪村中朴列墻둔랑촌엔 박씨 담장이 열 지어 있는데,&lt;br /&gt;
勤耕餘暇對書床부지런히 밭을 갈고 시간 내어 책을 읽네.&lt;br /&gt;
指言銀杏峩峩樹높다란 은행나무 가리키며 하는 말,&lt;br /&gt;
傍植先公小舍廊작은 사랑방 옆에다가 선조가 심은 거라네.&lt;br /&gt;
○ 둔랑(芚浪)은 넙성(芿城)의 작은 지명이다. 주계 박씨(朱溪朴氏)&lt;br /&gt;
가 많이 살고 있으며 내가 일찍이 이곳을 지났는데 박씨 성을 가진&lt;br /&gt;
벗이 그 집 뒤에 있는 오래된 은행나무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8대&lt;br /&gt;
조 할아버지인 판서공이 집 앞에 심은 나무이다.”라고 했다.&lt;br /&gt;
247. 오두동(鰲頭洞527))&lt;br /&gt;
一村花樹列成庄꽃나무로 동산 이룬 오두리 마을에선,&lt;br /&gt;
於讀於耕日月長글 읽기와 농사일로 세월을 보내네.&lt;br /&gt;
最愛此中丹桂籍그중에서 소중한 일은 과거에 급제한 일이니,&lt;br /&gt;
永承雨露放餘光나라 은혜 길이 이어 큰 빛을 발하리.&lt;br /&gt;
○ 오두동(鰲頭洞)에는 제주 고씨(濟州高氏)가 많이 살고 있는데,&lt;br /&gt;
나와 같이 영곡공(靈谷公)과 관란재공(觀瀾齋公)의 후손이다. 문중의&lt;br /&gt;
조카 고영중(高永中)528)이 일찍이 과거에 합격하여 승문원(承文院)&lt;br /&gt;
526) 불은면 넙성리 북성 서쪽 마을이다. 일명 뒷낭.&lt;br /&gt;
527) 불은면 오두리 터진개 서북쪽 안산이 마을이다.&lt;br /&gt;
528) 고영중(1867년 출생) 본관은 제주(濟州), 1892년 별시(別試) 병과(丙科) 48&lt;br /&gt;
258 譯註 沁都紀行&lt;br /&gt;
정자(正字)가 되었으나 크게 쓰이지 못하였다고 한다.&lt;br /&gt;
○ 영곡공은 이름이 고득종(高得宗)529)인데 문학으로 이름을 날렸&lt;br /&gt;
으며 문과에 합격하여 대종백·대제학까지 이르렀고, 효로써 정려문&lt;br /&gt;
을 내려받았다.&lt;br /&gt;
○ 관란재공은 이름이 고회(高晦)인데 은일(隱逸)로 시직(侍直)했&lt;br /&gt;
고, 학행으로 우암 송시열(宋時烈)·동춘당 송준길(宋浚吉) 선생의 문&lt;br /&gt;
인이 되었다. 동춘당 선생의 무고함을 변론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유&lt;br /&gt;
배되었다. 유배에서 풀려난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노년을 보냈다.&lt;br /&gt;
248. 오두어화(鰲頭漁火)&lt;br /&gt;
碧鰲頭上白鷗翩오두리 푸른 하늘에 백구가 날아오르고,&lt;br /&gt;
漁火如星海色鮮고기잡이불 별처럼 빛나니 바다색이 선명하네.&lt;br /&gt;
認是權公開別墅권율 장군 세운 별장 있음을 알게 하니,&lt;br /&gt;
疎松晩翠舊堂前만취당 앞에는 큰 소나무가 서있네.&lt;br /&gt;
○ 도원수 권율(權慄)530)의 별장이 오두정(鰲頭亭)에 있었는데 그&lt;br /&gt;
당의 이름을 만취당(晩翠堂)이라고 하였다.&lt;br /&gt;
○ 오두의 고기잡이불도 강화부 10경(景)의 하나이다.&lt;br /&gt;
위로 합격하였다.&lt;br /&gt;
529) 고득종(생몰년 미상)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자부(子&lt;br /&gt;
傅), 호는 영곡(靈谷). 1413년 효행으로 천거받아 관직에 나간 후 예조참&lt;br /&gt;
의 동지중추원사·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했다. 문장과 서예에 뛰어났으며,&lt;br /&gt;
효성이 지극하여 사후에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lt;br /&gt;
530) 권율(1537∼1599) 조선 중기의 문신·명장. 본관은 안동. 자는 언신(彦愼),&lt;br /&gt;
호는 만취당(晚翠堂)·모악(暮嶽).&lt;br /&gt;
불은면(佛恩面) 259&lt;br /&gt;
249. 오두동 평양조씨(平壤趙氏)&lt;br /&gt;
馬峯東走更回頭마봉이 동쪽으로 흐르다 다시 머리를 돌린 곳에,&lt;br /&gt;
趙友居之起小樓조씨 친구 거기 살며 작은 누각 지었네.&lt;br /&gt;
松山檜谷承承業송산 회곡의 가업을 이어받아,&lt;br /&gt;
倚床531)先問野登秋상에 기대어 가을 수확 물어보네.&lt;br /&gt;
○ 송산(松山) 회곡(檜谷)의 후손인 평양조씨 조희봉(趙羲鳳) 형제&lt;br /&gt;
가 조카들과 함께 이곳에 살고 있다.&lt;br /&gt;
250. 사복포(司僕浦)&lt;br /&gt;
司僕浦中水漲橋사복포 가운데에 물넘이 다리가 있는데,&lt;br /&gt;
早移秧色漸抽苗일찍이 모를 내고 뽑아 심는 곳이라네.&lt;br /&gt;
靜聽農老勤勞語부지런히 일하는 농부 노인의 말 들어보니,&lt;br /&gt;
旱必懸橰澇守潮가물면 용두레 걸고 큰물 지면 조수 막아야 한&lt;br /&gt;
다네.&lt;br /&gt;
○ 사복포(司僕浦)에는 돌다리가 있다. 주민들이 항상&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숙</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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