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립 모반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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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악군수 이축, 재령군수 박충간 등이 연명하여 황해도 관찰사 한준에게 보고서를 올렸고 보고서를 받은 한준은 이를 즉시 왕에게 고변하였다. 정여립 일당이 한강이 얼 때를 틈타 한양으로 진격하여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관련자들이 차례로 의금부로 잡혀가기 시작하였다. 이에 정여립은 아들 옥남과 함께 죽도로 도망하였다가 관군에 포위되자 자살하였다. 정여립의 자살로 인해 역모고변이 사실로 굳어지게 되었다.

이 사건의 처리를 주도한 것은 정철 등의 서인이었다. 동인인 이발, 이호, 백유양 등이 정여립과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처형되는 등 동인의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이때 숙청된 인사는 약 1천 명에 육박했다. 이를 기축옥사라고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전라도는 반역향(叛逆鄕)이라 불리게 되었고, 이후 호남인들의 등용이 제한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정여립 모반사건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조선시대 유배문화), 2005, 한국콘텐츠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