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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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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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고종원 |
출생 | 1538년 |
성별 | 남 |
직업 | 선비 |
경력 |
정의
본관은 횡성(橫城), 자는 사근(士近), 호는 화수이다. 1538년(중종 33) 5월 출생하였다.[1]
내용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의병장 고경명(高敬命 1533~1592)의 창의격문(倡義檄文)을 보고 감격하여 아우 고종경을 도와 각 읍에 통문을 돌려 군량과 병기·쇠를 모으고 의병들을 모집하였다. 한편 고종경은 의병장으로 선출되었다가 관찰사가 지원해준 병사들의 탈영을 막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처형되었다.
고종원은 왜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일가를 이끌고 노리곡 안으로 피신하였는데 적이 동굴에 불을 지펴 생포하려 하자 부인 조씨가 남편의 행동을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동굴 속 연못에 뛰어들어 자살하였다. 그 후 아우 고종길과 함께 왜군에 잡혀 감금되었다가 폭우를 틈타 탈출에 성공하였다.
전란을 치르면서 부인과 두 아우를 잃은 고종원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직후인 1592년 4월 20일부터 9월 6일까지의 사건을 기록한 <기천록(祈天錄)>을 남겼다. 천연기념물 제219호로 지정된 영월 고씨굴(高氏窟, 천연기념물 제219호)은 고종원 일가가 임진왜란 때 피신하였던 동굴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