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 낙인동(樂仁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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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賜峯前王訪 (국사봉전왕방)     국사봉 앞쪽에 왕방촌이 있는데, 
世居全氏向陽 (세거전씨향양) 전씨들이 양지쪽에 대대로 살고 있네.
丹花仙籍黃金印 (단화선적황김인)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관직 올라가니,
觀海眞工自有 (관해진공자유) 관해공의 참된 공부 스스로 근원이 있었네.

○ 낙인동(樂仁洞)은 항주에서 갈라진 동네이다. 성주 전씨 전신(全信)은 고려조의 병부상서로서 공왕(恭王)을 수행하여 이곳에 들어와 살았다. 우리 태종이 공을 방문하였는데 왕방리(王訪里)에서 물어보았기 때문에 그 마을 이름을 왕방리라고 하였다. 권농사(勸農使)를 제수하였고 큰 산 하나를 하사하였기 때문에 그 산을 이름하여 국사봉(國賜峯)이라고 한다. 그 후손은 무과에 급제하여 연일·초계·경주의 영장(營將)과 백령 첨사를 역임하였으며 영사원종일등공신(寧社原從一等功臣)에 등록되었다. 성품이 매우 강직해서 청백리로 이름을 날렸는데 일찍이 강화부 중군(中軍) 때에 공용 면포 한 필을 마상(馬裳)으로 하도록 하였는데 체임될 때를 미쳐 그 마상을 중군청에 도로 갖다 주었다. 그 아들 전기업(全起業)은 정축년(1637) 난리에 순절하였으니 일이 충렬사 주(註)에 보인다. 그 후손 관해공(觀海公) 전재봉(全在鳳)은 일찍이 문과에 합격하여 대간의 청직을 거쳐서 제주 목사로 나갔다. 물러나서는 그 친척과 자손들이 이곳에 많이 살고 있다.


인물

  • 전신(생몰년 미상) 고려말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호는 사와(謝臥)
  • 전재봉(1834년 출생) 본관은 성주(星州)이며, 1861년 식년시 병과(丙科) 24위로 합격하였다.

참고

  • 낙인동(樂仁洞) : 양도면 인산1리 왕방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