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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DH 교육용 위키 - 사용자 기여 [ko]</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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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22T15:53:05Z</updated>
		<subtitle>사용자 기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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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C%9D%98%EC%A0%81%EB%8B%A8</id>
		<title>의적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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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5-05T08:57:5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Wooya0902: &lt;/p&gt;
&lt;hr /&gt;
&lt;div&gt;=어원=&lt;br /&gt;
의적단(儀狄團)은 고려대학교 철학과 대학원 동양철학전공 원전 강독 모임을 일컫는다. 그 어원은 『孟子』 「離婁下」 의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孟子曰: &amp;quot;禹惡旨酒而好善言.&amp;quot;'&lt;br /&gt;
:맹자가 말했다: &amp;quot;우임금께서는 맛있는 술을 미워하시고 선한 말을 좋아하셨다.&amp;quot;&lt;br /&gt;
::【集注】 戰國策曰: &amp;quot;儀狄作酒, 禹飲而甘之, 曰: '後世必有以酒亡其國者', 遂疏儀狄而絕旨酒.&amp;quot;&lt;br /&gt;
::『전국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amp;quot;의적이라는 자가 술을 만들었는데, 우임금이 마시고 맛있어하며 '후세에 필시 술 때문에 자기 나라를 망치는 자가 있을 것이다.'라 하고, 마침내 의적을 멀리하고 맛난 술을 끊으셨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의적'이라는 사람의 이름으로 모임 이름을 정했을 때, '''경계'''의 의미로 취한 것인지 '''존숭'''의 의미로 취한 것인지는 각자의 해석과 주량[https://namu.wiki/w/아시안%20플러시%20신드롬]에 맡긴다.&lt;br /&gt;
&lt;br /&gt;
=원전 강독과 위키(Wiki)=&lt;br /&gt;
고대 철학과 대학원 동양철학 전공자들이 원전 강독을 한 역사는 긴데, 위키라는 플랫폼을 이용하게 된 계기는 &amp;quot;고려대학교 《문명전환과 한국철학 연구팀》 초청 토론회&amp;quot;(2019. 4. 12.)이다.[http://dh.aks.ac.kr/Edu/wiki/index.php/고대_민연_2019]&lt;br /&gt;
이 토론회에서 인문정보학/디지털인문학에 대한 귀한 정보를 얻고서, 원전 강독에 위키 플랫폼을 활용하는 것이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 모두 유용할 것이라고 판단했다.&lt;br /&gt;
거칠게 그 의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1. 강독 자료의 온라인 DB화''' &lt;br /&gt;
:*이전에는 각자 맡은 강독 분량 자료를 하나의 파일(보통은 *.hwp)로 저장해 하나의 저장 공간에 모아두었는데, 이 방식은 강독 자료를 각자 보관하는 것보다는 유의미하지만 나중에 활용하기 귀찮았다. 보통 하나의 경전을 강독하면 수십~수백 개의 파일이 생산되는데, 그 내용을 확인하려면 모든 파일을 다운로드 받아서 각각 열어보아야 했다. 만약 이 자료들을 위키라는 온라인 공간에 저장해두면, 마치 인터넷에서 자료를 '''&amp;quot;긁는&amp;quot;''' 것처럼 쉽게 강독 자료에 접근,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당장 확인할 수 있는 단기적 효과라 할 수 있다.&amp;lt;br/&amp;gt;&lt;br /&gt;
:'''2. 연구 자료의 조직화'''&lt;br /&gt;
:*기존의 연구방식은 연구자가 여러 자료를 조사하여 자신이 필요한 정보를 수집, 조직화, 이론화하여 논문이라는 하나의 &amp;quot;자기완결적&amp;quot; 결과물을 생산하는 것이었는데, 이것도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방식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다년 간의 지난한 훈련이 필요하고, 설령 하나의 논문을 생산했더라도 그 논문과 관련된 사항은 논문을 쓴 당사자만 알 수 있고 제3자는 다시 스스로 노력해서 찾아야 한다. 만약 예를 들어 어떤 주제와 관련된 정보를 링크 등으로 연결시켜 놓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 주제에 대해 이해하는 기간이 대폭 줄어들고 이해의 정도는 깊어질 것이다. 그리고 제3자의 이해가 빨라지고 깊어질수록 상호협력이 가속화돼, 전체의 연구수준은 시간이 갈수록 향상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미래는 위키에 참여하는 연구자들의 우호적인 접근을 전제로 할 때 가능하다. 만일 참여자 간의 경쟁이 촉발될 경우 이른바 &amp;quot;편집 전쟁&amp;quot;이 벌어질 수도 있다.)&amp;lt;br/&amp;gt;&lt;br /&gt;
:'''3. 학계에서의 수직적 한계 극복'''&lt;br /&gt;
:*위키피디아의 근본 정신 중 대표적인 것이 &amp;quot;검증 가능성(verifiability)&amp;quot;과 &amp;quot;反전문가주의(anti-credentialism)&amp;quot;으로, 어떤 사람이 '충분히 신뢰할 만한 근거에 입각해 주장을 편다면' '그 저자의 학위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라는 뜻이다. 기성 학계에서는 아무래도 &amp;quot;'''쯩(證)'''&amp;quot;의 유무가 권위나 신뢰도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고, 따라서 학위가 없거나 혹은 낮은 학위를 가진 사람은 일방적으로 수동적인 연구자 역할에 국한되기 쉽다. 위키피디아에서 이른바 전문가들의 &amp;quot;꼰대질&amp;quot;을 극복하고 대중이 원하는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처럼, 연구자 간에서도 위키 플랫폼을 통해 보다 평등한 소통을 이룩해 기존의 위계 질서에서 비롯된 병폐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쉽게 말해, 위키에 참여하는 연구자는 석사든 박사든 학생이든 교수든 상관없이 오로지 신뢰할 만한 근거를 바탕으로 토론하고 그리고 이를 위키에 반영하자는 것이다.&amp;lt;ref&amp;gt;이항우(2009), &amp;quot;네트워크 사회의 집단지성과 권위 - 위키피디아(Wikipedia)의 반전문가주의&amp;quot;, 비판사회학회, 《경제와 사회》 2009년 겨울호.&amp;lt;/ref&amp;gt;&lt;br /&gt;
:*주형일의 주장에 따르면,&amp;lt;ref&amp;gt;주형일(2012), &amp;quot;집단지성과 지적 해방에 대한 고찰 - 디지털 미디어는 집단지성을 만드는가?&amp;quot;, 원광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열린정신 인문학연구》 13(2).&amp;lt;/ref&amp;gt; 사람들은 보통 위키피디아 같은 디지털 미디어의 발전으로 전문가 집단의 한계를 극복할 집단지성이 발현되었다고 보지만, 사실 집단지성의 발현은 &amp;quot;사람들이 얼마나 동등한 권력을 갖고 토론에 참여할 수 있는가 하는 것&amp;quot;에 달려있다. 즉 &amp;quot;디지털 미디어는 권력의 동등한 분배를 원활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반드시 디지털 미디어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amp;quot; 따라서 '''학계의 수직적 경직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위키 플랫폼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여기에 참여하는 연구자들의 수평적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 &lt;br /&gt;
:*따라서 전문가는 자신이 아무리 잘났더라도 익명의 상대를 존중하여 자신과 대등한 토론자로 여기고 신뢰할 만한 근거를 가지고 토론에 임해야 하고, 학계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연구자는 오히려 자신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필요가 있다. 초심자가 적극적으로 의문을 제기할 수록 위키의 내용은 치밀·풍부해질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lt;br /&gt;
:'''4. 미래의 &amp;quot;디지털 인문학&amp;quot;을 위한 기초 자료 제공'''&lt;br /&gt;
:*앞서 언급한 토론회에서 배운 디지털 인문학 정보에 입각해 설명하면, 결국 미래의 연구 방향은 컴퓨터(혹은 인공지능)와의 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연구에 컴퓨터가 도구 정도로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가 하나의 연구자로서 사람의 부족한 면을 채우고 오히려 긍정적인 영감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람의 언어로 된 자료를 컴퓨터가 알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이 필수적인데, 이 강독 모임에서 위키를 활용하는 것 역시 (매우 우호적으로 평가하면) 그 과정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관 페이지=&lt;br /&gt;
이 페이지를 메인 페이지로 삼고 강독, 수업, 개인 연구를 통해 얻은 정보로 점차 살을 붙여나갈 예정이다. 현재 진행 중인 강독은 다음과 같다: &amp;lt;br/&amp;gt;&lt;br /&gt;
:1. 성리서 강독 (2019.01. ~ 2019.09)&lt;br /&gt;
:*[[주돈이]], 『[[태극도설]]』 , 『[[통서]]』&lt;br /&gt;
:*[[장재]], 『[[서명]]』&lt;br /&gt;
:*[[소옹]], 『[[황극경세서]]』&lt;br /&gt;
:2. 『논어』  강독 &lt;br /&gt;
:3. 『[[대학]]』 &lt;br /&gt;
:4. [[주자 연보]]&lt;br /&gt;
:5. [[연평답문]]&lt;br /&gt;
:6. [[잡학변]]&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그리고 다음의 페이지도 있다:&lt;br /&gt;
:3. 『[[전습록]]』 &lt;br /&gt;
:4. [[정도전]] 관련 자료 ( ~ ) : [[불씨잡변]], [[心問天答]]&lt;br /&gt;
:5. 『[[이정집]]』: 『[[이정유서]]』,  『[[이정외서]]』,  『[[이정수언]]』, 『[[이정문집]]』, 『[[정씨경설]]』, 『[[이천역전]]』&lt;br /&gt;
:6. 『[[장재집]]』: 『[[정몽]]』, 『[[횡거역설]]』, 『[[경학리굴]]』, 『[[장자어록]]』&lt;br /&gt;
:7. [[도학비사]]&lt;br /&gt;
:8. 진건陳建(1497-1567), 『[[학부통변]]』&lt;br /&gt;
&lt;br /&gt;
=유용한 사이트=&lt;br /&gt;
연구에 필요한 자료 검색에 유용한 사이트 링크를 모아둔다. &lt;br /&gt;
:1. [http://ctext.org/ Chinese Text Project(영문)] 혹은 [http://ctext.org/zh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중문)] &lt;br /&gt;
:* 선진시대 제자백가부터 청대 자료까지 확인할 수 있다. 전산화된 자료 외에 字典이나 图書館도 매우 유용하다. 영문/중문 편한대로 활용.&lt;br /&gt;
:2. [https://zh.wikisource.org/wiki/Wikisource:首页 중국 위키문고(维基文库)]&lt;br /&gt;
:* 가끔 뜬금없이 괜찮은 자료들이 있다. &lt;br /&gt;
:3. [http://db.itkc.or.kr 한국고전종합DB]&lt;br /&gt;
:*한국고전번역원의 DB로 한국문집총간 자료가 모두 들어있다. (유학자들의 철학 관련 저작은 별로 없다는 게 함정) 조선시대 학자의 글을 읽다가 낯선 표현이 나오면 여기에 한 번 검색해 볼 만하다.&lt;br /&gt;
:4. [https://www.cbeta.org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lt;br /&gt;
:* 동양철학 전공자면서도 불교전공 아니면 잘 안 들어가는 사이트. 하지만 모르면 바보.&lt;br /&gt;
:5. [https://www.kanripo.org Kanseki Repository(漢リポ)]&lt;br /&gt;
:* 사고전서를 검색할 수 있는 일본 사이트. 전자판 사고전서를 그대로 업로드했는지, 전자판의 문제인 벽자/탈자 문제가 그대로 있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검색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성은이 망극.&lt;br /&gt;
:6. [https://projects.iq.harvard.edu/cbdb China Biographical Database Project(CBDB)]&lt;br /&gt;
:*이 사이트의 가치에 대해 알고 싶다면, [[디지털 인문학의 사례]]의 5번 항목 참조할 것.&lt;br /&gt;
:7. [http://ssp21.or.kr/webzigi/?filetype=shop/content.php&amp;amp;pdc_id=w62 인문예술연구소]&lt;br /&gt;
:* 『사고전서총목제요』 번역 있음. 가입 필요.&lt;br /&gt;
:8. [http://sangle.web.wesleyan.edu/etext/index.html Chinese Philosophical Etext Archive]&lt;br /&gt;
:* 미국 Wesleyan University에서 운영하는 사이트.  『주돈이집』, 『정몽』 등 자료 있음.&lt;br /&gt;
:9. [http://warpweftandway.com Warp, Weft and Way Chinese and Comparative Philosophy 中國哲學與比較哲學]&lt;br /&gt;
:*미국의 동서비교철학 학자들 커뮤니티. 동양철학 관련 대학원 정보 개꿀.&lt;br /&gt;
----&lt;br /&gt;
:10. [http://mokusai-web.com/shushigakukihonsho/shushigakukihonsho.html mokusai-web] (폐쇄)&lt;br /&gt;
:* 송대 도학자 관련 자료를 확인할 수 '''있었다'''.(예를 들면 『통서』, 『정몽』, 『이정집』 등) 이 링크의 앞 페이지로 가면 일본 에도시대 도학자들의 자료도 찾을 수 '''있었으나''' 현재 폐쇄됨.&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Wooya0902</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C%84%9C%EB%AA%85</id>
		<title>서명</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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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6-16T17:47:5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Wooya0902: &lt;/p&gt;
&lt;hr /&gt;
&lt;div&gt;=해제=&lt;br /&gt;
이 페이지는 고려대 철학과 대학원 동양철학전공 원전 강독 세미나([[의적단]])의 일환으로 작성되었다.&lt;br /&gt;
&lt;br /&gt;
=원문 및 주석=&lt;br /&gt;
&lt;br /&gt;
乾稱父, 坤稱母, &amp;lt;ref&amp;gt;『周易』 「說卦」 乾，天也，故稱乎父。坤，地也，故稱乎母。&amp;lt;/ref&amp;gt; 予茲藐焉, 乃混然中處.&amp;lt;br/&amp;gt;&lt;br /&gt;
건(하늘)은 아버지라 하고 곤(땅)은 어머니라고 하니, 나는 이처럼 작지만 혼연히 그 가운데에 있도다. &lt;br /&gt;
:天, 陽也, 以至徤而位乎上, 父道也; 地, 隂也, 以至順而位乎下, 母道也. 人禀氣於天, 賦形於地, 以藐然之身, 混合無間而位乎中, 子道也. 然不曰天地而曰乾坤者, 天地其形體也, 乾坤其性情也. 乾者, 徤而無息之謂, 萬物之所資以始者也. 坤者, 順而有常之謂, 萬物之所資以生者也. 是乃天地之所以為天地, 而父母乎萬物者, 故指而言之. &lt;br /&gt;
:하늘은 양이니 지극히 굳세어 위에 위치하기 때문에 아비의 도이다. 땅은 음이니 지극히 순하여 아래에 위치하기 때문에 어미의 도이다. 사람이 하늘에서 기를 품부받고, 땅에서 형체(몸)를 품부받아 작은 몸으로써 (천지와) 혼합하여 틈이 없어서 (천지의) 가운데에 위치하니, 자식의 도이다. 그러나 천지라고 말하지 않고 건곤이라고 말한 것은, 천지는 그 형체이고, 건곤은 그 성정이기 때문이다. 건이라는 것은 굳세고 쉬지 않음을 이르는 것이니, 만물이 의지하여 시작되는 바의 것이다. 곤이라는 것은 순하고 항상됨이 있음을 이르는 것이니, 만물이 의지하여 생겨나는 바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천지가 천지가 되고, 만물에게 부모가 되는 까닭이기 때문에 그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하늘은 기를 부여하고 땅은 형체를 부여한다.-만물의 근원으로서의 의미를 강조)&lt;br /&gt;
&lt;br /&gt;
故天地之塞, 吾其&amp;lt;ref&amp;gt;목적어이거나 지시사&amp;lt;/ref&amp;gt;體; 天地之帥, 吾其性.&amp;lt;br/&amp;gt;&lt;br /&gt;
그러므로 천지간을 채우고 있는 것, 나는 그것을 내 육체로 삼고, 천지를 이끌어가는 것, 나는 그것을 내 본성으로 삼도다. &lt;br /&gt;
:乾陽坤隂, 此天地之氣, 塞乎兩間, 而人物之所資以為體者也. 故曰‘天地之塞, 吾其體’. 乾健坤順, 此天地之志, 為氣之帥, 而人物之所得以為性者也. 故曰‘天地之帥, 吾其性’. 深察乎此, 則父乾母坤, 混然中䖏之實可見矣. &lt;br /&gt;
:건은 양이고 곤은 음이니, 이는 천지의 기가 둘 사이에 가득하여, 사람과 만물이 자뢰하여 몸으로 삼는 바의 것이다. 그러므로 ‘천지간을 채우고 있는 것을 나는 내 육체로 삼는다.’고 하였다. 건은 건하고 곤은 순하니, 이는 천지의 뜻이 기의 장수가 되어, 사람과 만물이 얻어서 성으로 삼는 바의 것이다. 그러므로 ‘천지를 이끌어가는 것을 나는 내 본성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깊이 살핀다면 부건모곤과 혼연중처의 실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lt;br /&gt;
&lt;br /&gt;
民吾同胞, 物吾與也. &amp;lt;br/&amp;gt;&lt;br /&gt;
백성은 나의 형제요, 만물은 나의 벗이로다. &lt;br /&gt;
:人、物竝生於天地之間, 其所資以為體者, 皆天地之塞; 其所得以為性者, 皆天地之帥也. 然體有偏正之殊, 故其於性也, 不無明暗之異. 惟人也, 得其形氣之正, 是以其心最靈, 而有以通乎性命之全, 體於竝生之中, 又為同類而最貴焉, 故曰‘同胞’. 則其視之也, 皆如己之兄弟矣. 物則得夫形氣之偏, 而不能通乎性命之全, 故與我不同類, 而不若人之貴. 然原其體性之所自, 是亦本之天地而未嘗不同也. 故曰‘吾與’. 則其視之也, 亦如己之儕軰矣. 惟同胞也, 故以天下為一家, 中國為一人, 如下文所云. 惟吾與也, 故凡有形於天地之間者, 若動若植, 有情無情, 莫不有以若&amp;lt;ref&amp;gt; 1. 順；順從。&amp;lt;/ref&amp;gt;其性、遂其宜焉. 此儒者之道, 所以必至於参天地 &amp;lt;ref&amp;gt;『中庸章句』 22 唯天下至誠，為能盡其性；能盡其性，則能盡人之性；能盡人之性，則能盡物之性；能盡物之性，則可以贊天地之化育；可以贊天地之化育，則可以與天地參矣。&amp;lt;/ref&amp;gt;、贊化育, 然後為功用之全, 而非有所强於外也.&lt;br /&gt;
:사람과 만물이 함께 천지간에 태어나 그 자뢰하여 몸으로 삼는 것이 모두 천지에 가득 찬 것이요, 그 얻어서 성으로 삼는 것이 모두 천지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몸에는 치우치고 올바름의 다름이 있기 때문에 그 성에 대하여 명암의 다름이 없을 수 없다. 오직 사람만이 그 형기의 올바름을 얻었는지라 이 때문에 그 마음이 가장 신령하여 성명의 완전함을 통달할 수 있고 함께 태어난 것들 중에서 체현할 수 있다, 또 나와 동류이면서 가장 귀하다. 그러므로 동포라고 말하였다. 그러한 즉 사람들을 보는 것을 모두 마치 자신의 형제처럼 여기는 것이다. 물건은 형기의 편벽된 것을 얻어서 성명의 완전함을 통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와 동류가 되지 못하여 사람처럼 귀하지는 않으나 그 형체와 성이 말미암은 바를 근원해 보면 또한 천지에 근본하여 일찍이 같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나의 벗이라고 말하였다. 그러한 즉 이들을 보기를 또한 자신의 동아리처럼 여기는 것이다. 동포이기 때문에 천하를 한 집안으로 여기고 중국을 한 사람으로 여기기를 아래 글에 말한 바와 같이 하는 것이다. 나와 함께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천지 사이에 형체가 있는 것은 동물이거나 식물이거나 정이 있거나 정이 없거나 모두 그 성을 순히 하고 그 마땅함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이는 유자의 도가 반드시 천지와 삼재를 이루어 화육을 돕는 데에 이른 뒤에야 공용의 온전함이 되는 것이요, 밖에서 억지로 하는 바가 있는 것이 아니다. &lt;br /&gt;
&lt;br /&gt;
大君者, 吾父母宗子; 其大臣, 宗子之家相也. 尊髙年, 所以‘長其長’; 慈孤弱, 所以‘幼其幼.’&amp;lt;ref&amp;gt;『孟子』 「梁惠王上」 老吾老，以及人之老；幼吾幼，以及人之幼。&amp;lt;/ref&amp;gt;聖其合徳 &amp;lt;ref&amp;gt;『周易』 「乾卦」 &amp;lt;文言&amp;gt; 夫「大人」者、與天地合其德，與日月合其明，與四時合其序，與鬼神合其吉凶，先天而天弗違，後天而奉天時。天且弗違，而況於人乎？況於鬼神乎？&amp;lt;/ref&amp;gt;, 賢其秀也. 凡天下疲癃殘疾、惸獨鰥寡, &amp;lt;ref&amp;gt;『孟子』 「梁惠王下」 老而無妻曰鰥。老而無夫曰寡。老而無子曰獨。幼而無父曰孤。此四者，天下之窮民而無告者。文王發政施仁，必先斯四者。&amp;lt;/ref&amp;gt; 皆吾兄弟之顚連&amp;lt;ref&amp;gt; 1. 困頓不堪；困苦。&amp;lt;/ref&amp;gt;而無告者也.&amp;lt;br/&amp;gt;&lt;br /&gt;
임금은 내 부모의 장자요, 대신은 장자의 가상이로다.어른을 높이는 것이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하는 것’이요, 고아와 약자는 아껴주는 것이 ‘아이를 아이로 대접하는 것’이로다. 성인은 [부모 즉 천지의] 덕에 합치하는 자요, 현인은 [형제 즉 사람 가운데] 뛰어난 자이며,천하의 피곤한 자·병든 자·고아·외로운 자·홀아비·과부는 모두 내 형제 중에 고통에 빠졌지만 하소연할 데 없는 자이다.&lt;br /&gt;
:乾父坤母而人生其中, 則凡天下之人, 皆天地之子矣. 然繼承天地, 統理人物, 則大君而已, 故為父母宗子; 輔佐大君, 綱紀&amp;lt;ref&amp;gt; 3. 治理；管理。&amp;lt;/ref&amp;gt;衆事, 則大臣而已, 故為宗子之家相. 天下之老一也, 故凡尊天下之髙年者, 乃所以長吾之長; 天下之幼一也, 故凡慈天下之孤弱者, 乃所以幼吾之幼. 聖人與天地合其徳, 是兄弟之合徳乎父母者也; 賢者才德過於常人, 是兄弟之秀出乎等夷&amp;lt;ref&amp;gt; 1. 同等；同輩；同等的人。&amp;lt;/ref&amp;gt;者也. 是皆以天地之子言之, 則凡天下之疲癃殘疾, 惸獨鰥寡, 非吾兄弟無告者而何哉!&lt;br /&gt;
:건이 아비가 되고 곤이 어미가 되어 사람이 그 가운데에 태어났으니, 모든 천하 사람이 다 천지의 자식인 것이다. 그러나 천지를 계승하여 사람과 만물을 통치하는 것은 군주일 뿐이다. 그러므로 부모의 장자가 되는 것이요, 군주를 보좌하여 여러 일을 관리하는 것은 대신일 뿐이다. 그러므로 장자의 가상이 되는 것이다. 천하의 노인들은 천지의 자식이라는 점에서 동일하기 때문에 모든 천하의 나이가 많은 사람을 높임은 바로 나의 어른을 어른으로 대하는 것이요, 천하의 어린이들도 천지의 자식이라는 점에서 동일하기 때문에 모든 천하의 고아와 약한 자를 사랑함은 바로 나의 어린이를 어린이로 대하는 것이다. 성인은 천지와 덕이 합치하니 이는 형제 중에 부모와 덕이 합치한 자요, 현자는 재주와 덕이 보통사람보다 뛰어나니 이는 형제 중에 동배보다 빼어난 자이다. 이것은 모두 천지의 자식이란 입장으로 말한 것이니 모든 천하의 피곤한 자·병든 자·고아·외로운 자·홀아비·과부는 나의 형제 중에 하소연 할 데가 없는 자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lt;br /&gt;
&lt;br /&gt;
于時保之,&amp;lt;ref&amp;gt; 『詩』 「周頌」 《我將》 我其夙夜、畏天之威、于時保之。(내 밤낮으로 하늘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이에 보전할 지어다.) &amp;lt;/ref&amp;gt; 子之翼 &amp;lt;ref&amp;gt;16. 恭敬, 謹肅.&amp;lt;/ref&amp;gt; 也; 樂且不憂, &amp;lt;ref&amp;gt;『周易』 「繫辭上」 樂天知命，故不懮。&amp;lt;/ref&amp;gt; 純乎孝者也.&amp;lt;br/&amp;gt;&lt;br /&gt;
이에 [천명을] 보존하는 것은 자식의 공경함이요, [천명을] 즐겨 근심하지 않는 것은 효에 독실한 것이다.&lt;br /&gt;
:畏天以自保者, 猶其敬親之至也; 樂天而不憂者, 猶其愛親之純也. &lt;br /&gt;
:천명을 두려워하여 스스로 보전하는 것은 부모를 공경함이 지극함과 같고, 천명을 즐거워하여 근심하지 않는 것은 부모를 사랑함이 독실함과 같은 것이다.&lt;br /&gt;
&lt;br /&gt;
違曰悖德, 害仁曰賊 &amp;lt;ref&amp;gt;『孟子』 「梁惠王下」 曰：「賊仁者謂之賊，賊義者謂之殘，殘賊之人謂之一夫。聞誅一夫紂矣，未聞弒君也。」&amp;lt;/ref&amp;gt;, 濟惡者不才 &amp;lt;Ref&amp;gt;【案】 좌전에 전거가 있다는데 찾지 못함&amp;lt;/ref&amp;gt;, 其踐形 &amp;lt;ref&amp;gt;『孟子』 「盡心上」 孟子曰：「形色，天性也；惟聖人，然後可以踐形。」 ; 『孟子集註』 人之有形有色，無不各有自然之理，所謂天性也。踐，如踐言之踐。蓋眾人有是形，而不能盡其理，故無以踐其形；惟聖人有是形，而又能盡其理，然後可以踐其形而無歉也。(사람이 지닌 형체와 색은 각각 자연의 이치를 갖고 있지 않음이 없으니, 이른바 천성이다. 踐은 ‘말을 實踐한다’의 踐이다. 뭇 사람들은 형체를 가지고 있지만 그 이치를 다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형체를 실천할 수 없다. 오직 성인만이 형체를 가지면서 그 이치를 다할 수 있으니, 그런 연후에야 형체를 실천하여 부족함이 없을 수 있다.) &amp;lt;/ref&amp;gt;惟肖者也. &amp;lt;br/&amp;gt;&lt;br /&gt;
[천리를] 어기는 자를 ‘悖德(덕을 해친다)’이라고 하고, 인을 해치는 자는 ‘賊(도적)’이라고 하며, 악을 이루는 자는 ‘不才(못났다)’라 하고, 타고난 것을 실천하는 자는 ‘肖(닮았다)’라고 한다.&lt;br /&gt;
:不循天理而徇人欲者, 不愛其親而愛他人也 &amp;lt;ref&amp;gt;『孝經』 「聖治」 故不愛其親而愛他人者，謂之悖德；不敬其親而敬他人者，謂之悖禮。&amp;lt;/ref&amp;gt;, 故謂之悖徳.; 戕滅天理、自絶本根者, 賊殺其親, 大逆無道也, 故謂之賊; 長惡不悛、不可敎訓者, 世濟其凶, 增其惡名也, 故謂之不才. 若夫盡人之性, 而有以充人之形, 則與天地相似而不違矣, 故謂之肖.&lt;br /&gt;
:천리를 따르지 않고 인욕을 따르는 자는 자기 부모를 사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므로 悖徳이라 이르고, 천리를 해치고 멸하여 스스로 근본을 끊는 자는 그 부모를 해치고 죽여 대역무도하므로 賊이라 이르고, 악을 조장하고 고치지 않아 가르칠 수 없는 자는 대대로 흉함을 이루어 악명을 더하므로 不才(부모의 재주를 타고나지 못함)라 이르며, 만약 사람의 性을 다하여 사람의 형체를 채울 수 있다면 천지와 서로 같아져서 어기지 않을 것이므로 肖라 이른 것이다. &lt;br /&gt;
&lt;br /&gt;
知化則善述其事; 窮神則善繼其志. &amp;lt;ref&amp;gt;『周易』 「繫辭下」 窮神知化，德之盛也。; 『禮記』 「中庸」 19 夫孝者：善繼人之志，善述人之事者也。;  (효자는 선조의 뜻과 일을 잘 계승하는 자이다. 성인은 변화의 도를 알아서 행하는 것이 천지의 일이 아님이 없고, [성인은] 신명의 덕에 통달해서 보존하는 것이 천지의 마음이 아닌 것이 없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천리를 즐기고 형체를 실천하는 일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변화를 안다면 부모의 일을 잘 이을 것이요, 신명한 덕을 궁구한다면 부모의 뜻을 잘 계승할 것이다. &lt;br /&gt;
:孝子, 善繼人之志, 善述人之事者也. 聖人知變化之道, 則所行者無非天地之事矣; 通神明之徳, 則所存者無非天地之心矣. 此二者, 皆樂天踐形之事也.&lt;br /&gt;
:효자는 사람(부모)의 뜻을 잘 계승하고 사람의 일을 잘 잇는 자이다. 성인이 변화의 도를 아니, 곧 행하는 것이 천지의 일이 아님이 없고, 신명의 덕에 통달하니 곧 마음에 보존한 것이 천지의 마음이 아님이 없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천명을 즐거워하고 타고난 것을 실천하는 일이다.&lt;br /&gt;
&lt;br /&gt;
不愧屋漏, &amp;lt;ref&amp;gt;『詩』 「大雅」 《抑》 相在爾室, 尚不媿于屋漏。(네가 방에 있음을 보건데, 거의 옥루에 부끄럽지 않다.)&amp;lt;/ref&amp;gt; 爲無忝; &amp;lt;ref&amp;gt;『詩』 「小雅」 《小宛》 夙興夜寐、無忝爾所生。(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자서, 너를 낳아준 분 욕되게 하지 말라.)&amp;lt;/ref&amp;gt; 存心養性, &amp;lt;ref&amp;gt;『孟子』 「盡心上」 孟子曰：「盡其心者，知其性也。知其性，則知天矣。存其心，養其性，所以事天也。殀壽不貳，修身以俟之，所以立命也。」&amp;lt;/ref&amp;gt; 爲匪懈. &amp;lt;ref&amp;gt;『詩』 「大雅」 《烝民》 夙夜匪解、以事一人。(밤낮으로 게을리하지 않아 한 사람[천자]를 섬기도다)&amp;lt;/ref&amp;gt; &amp;lt;br/&amp;gt;&lt;br /&gt;
으슥한 곳에서도 부끄럽지 않은 것은 [부모를] 욕보이지 않는 것이요, 마음을 보존하고 성을 기르는 것은 게으르지 않은 것이다.&lt;br /&gt;
:『孝經』引詩曰‘無忝爾所生’&amp;lt;ref&amp;gt; 『孝經注疏』 「士」 資於事父以事母，而愛同；資於事父以事君，而敬同。故母取其愛，而君取其敬，兼之者父也。故以孝事君則忠，以敬事長則順。忠順不失，以事其上，然後能保其祿位，而守其祭祀。蓋士之孝也。《詩》云：「夙興夜寐，無忝爾所生」。아버지를 섬기는 것에 자뢰하여 어머니를 섬기니, 사랑함이 동일한 것이요, 아버지를 섬기는 것에 자뢰하여 임금을 섬기니, 공경함이 동일한 것이다. 그러므로 어머니는 그 사랑을 취하고, 임금은 그 공경을 취하는데, 이 둘을 겸한 자는 아버지이다. 그러므로 효로써 임금을 섬기는 것은 忠이요, 敬으로서 어른을 섬기는 것은 順이다. 忠順함을 잃지 않고서 그 윗사람을 섬긴 연후에야 능히 그 녹봉과 지위를 보전할 수 있고, 그 제사를 지킬 수 있다. 이것이 士의 효이다. 『시경』에서 말하길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자서, 너를 낳아준 분을 욕되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amp;lt;/ref&amp;gt;, 故事天者仰不愧、俯不怍 &amp;lt;ref&amp;gt;『孟子』 「盡心上」 孟子曰：「君子有三樂，而王天下不與存焉。父母俱存，兄弟無故，一樂也。仰不愧於天，俯不怍於人，二樂也。得天下英才而教育之，三樂也。君子有三樂，而王天下不與存焉。」&amp;lt;/ref&amp;gt;, 則不忝乎天地矣. 又曰‘夙夜匪懈’&amp;lt;ref&amp;gt;『孝經』 「卿大夫」 非先王之法服不敢服，非先王之法言不敢道，非先王之德行不敢行。是故非法不言，非道不行；口無擇言，身無擇行。言滿天下無口過，行滿天下無怨惡。三者備矣，然後能守其宗廟。蓋卿、大夫之孝也。《詩》云：「夙夜匪懈，以事一人。」 선왕의 법복이 아니면 감히 입지 않으며, 선왕의 법언이 아니면 감히 말하지 않으며, 선왕의 덕행이 아니면 감히 행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법이 아니면 말하지 않고, 도가 아니면 행하지 않아서 입에는 법도에 맞지 않는 말이 없고 몸에는 법도에 맞지 않는 행동이 없어서 말이 천하에 가득해도 실언이 없고 행동이 천하에 가득해도 원망과 증오가 없다. 세 가지가 갖추어진 연후에야 그 종묘를 지킬 수 있다. 이것이 경과 대부의 효이다. 『시경』에서 말하길 ‘밤낮으로 게을리하지 않아 한 사람을 섬긴다.’고 하였다. &amp;lt;/ref&amp;gt;, 故事天者存其心、養其性, 則不懈乎事天矣. 此二者, 畏天之事, 而君子所以求踐夫形者也.&amp;lt;br/&amp;gt;&lt;br /&gt;
:『효경』에 『시경』의 ‘너를 낳아주신 분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구절을 인용하였으니, 그러므로 하늘을 섬기는 자가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 (사람에) 부끄럽지 않으면 천지에게 욕되지 않은 것이요, 또 ‘일찍 일어나 밤늦도록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구절을 인용하였으니, 그러므로 하늘을 섬기는 자가 그 마음을 보존하여 성을 기르면 하늘을 섬김에 게으르지 않은 것이다. 이 두 가지는 하늘을 두려워하는 일이니, 군자가 타고난 것을 실천하기를 구하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惡旨酒, 崇伯子之顧養; &amp;lt;ref&amp;gt;『孟子』 「離婁下」 孟子曰：「禹惡旨酒而好善言。」&amp;lt;/ref&amp;gt; 育英材, 穎封人之錫類. &amp;lt;ref&amp;gt;『左傳』 「隱公元年」  鄭武公娶于申，曰武姜。生莊公及共叔段。莊公寤生，驚姜氏，故名曰寤生，遂惡之。愛共叔段，欲立之。…… 大叔完聚，繕甲兵，具卒乘，將襲鄭。夫人將啟之。公聞其期，曰：「可矣。」 …… 遂寘姜氏于城潁，而誓之曰：「不及黃泉，無相見也！」既而悔之。潁考叔為潁谷封人，聞之。有獻於公，公賜之食。食舍肉，公問之，對曰：「小人有母，皆嘗小人之食矣，未嘗君之羹。請以遺之。」公曰：「爾有母遺，繄我獨無！」潁考叔曰：「敢問何謂也？」公語之故，且告之悔，對曰：「君何患焉？若闕地及泉，隧而相見，其誰曰不然？」公從之。…… 君子曰：「潁考叔純孝也，愛其母，施及莊公。《詩》曰：『孝子不匱，永錫爾類。』其是之謂乎！」 (정 무공이 신나라에 장가갔는데, 그 아내의 이름은 무강이다. 무강은 장공과 공숙단을 낳았다. 장공이 寤生해 무강을 놀래켰으므로 ‘寤生’이라 이름 짓고 미워하고서, 공숙단을 아껴 그를 옹립하려고 했다. …… 태숙[공숙단]이 성을 수리하고 군량을 모으며 병장기를 수선하고 보병·전차를 갖춰 정나라 도성을 습격하려 했는데, 무강이 성문을 열어주기로 했다. 장공이 그 시기를 듣고서 “태숙을 공격하라!”고 하였다. …… 마침내 장공이 무강을 성영에 위폐하고 맹세하길 “黃泉에 이르기 전에는 다시 만나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윽고 후회하였다. 영고숙이 영곡봉인이 되어 이 이야기를 들었다. 장공에게 예물을 바치니 장공이 음식을 내려주었는데 영고숙이 고기는 제쳐두고 먹지 않았다. 공이 그 까닭을 물으니, 영고숙이 대답했다: “소인의 모친은 항상 제 음식을 맛보았습니다만 아직 임금님의 고깃국은 맛보지 못해 남겨가려고 합니다.” 장공이 말했다: “그대에게는 음식 남겨갈 모친이 있는데, 유독 나만 없구나!” 영고숙이 말했다: “감히 여쭈건대 무슨 말씀이십니까?” 장공이 그 까닭과 후회하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영고숙이 대답했다: “임금님께서는 무얼 걱정하십니까? 물길에 닿을 때까지 땅을 파고서 땅굴을 뚫어 만나신다면 누가 옳지 않다 하겠습니까?” 장공이 이 말을 따랐다. ……  군자가 평한다: “영고숙은 독실한 효자로다! 제 모친을 사랑함이 장공에게까지 미쳤구나! 『시』에 이르길: ‘효자가 끊이지 않으니, 길이 네게 善을 주리라’라고 하니, 이것을 말한 것일 것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맛난 술을 싫어하는 것은 곤의 아들(즉 禹)이 부모 봉양을 돌본 것이요, 영재를 기르는 것은 영봉인이 선을 베푸는 것이다.&lt;br /&gt;
:好飲酒而不顧父母之養者, 不孝也. 故遏人欲如禹之惡旨酒, 則所以‘顧天之養’&amp;lt;ref&amp;gt; 【案】 전거를 찾지 못함.&amp;lt;/ref&amp;gt;者至矣. 性者, 萬物之一源, 非有我之得私也. 故育英才如頴考叔之及莊公, 則所以‘永錫爾類’&amp;lt;ref&amp;gt; 『詩』 「大雅」 《既醉》 威儀孔時、君子有孝子。 孝子不匱、永錫爾類。(위의가 심히 제때에 맞:거늘 군자가 효자를 두었도다  효자가 다하지 아니하니 길이 너에게 좋음을 주리로다.)&amp;lt;/ref&amp;gt;者廣矣.&lt;br /&gt;
:술 마시기를 좋아하여 부모의 봉양을 돌보지 않는 것은 불효이다. 그러므로 인욕을 막는 것이 우임금이 맛있는 술을 싫어한 것과 같으면 ‘하늘의 봉양을 돌아봄’이 지극한 것이요, 性은 만물의 한 근원이니 내가 사사로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영재를 기르기를 영고숙이 장공에게 미치듯이 한다면 ‘길이 너에게 좋음을 줌’이 넓은 것이다. &lt;br /&gt;
&lt;br /&gt;
不弛勞而底豫, 舜其功也. &amp;lt;ref&amp;gt;『孟子』 「離婁上」 舜盡事親之道而瞽瞍厎豫，瞽瞍厎豫而天下化，瞽瞍厎豫而天下之為父子者定，此之謂大孝。&amp;lt;/ref&amp;gt; 無所逃而待烹, 申生其恭也. &amp;lt;br/&amp;gt;&lt;br /&gt;
수고를 게을리하지 않고 부모가 기뻐하는데 이르게 한 것은 순의 공적이요, 도망가지 않고 죽기를 기다린 것은 신생의 공손함이다.&lt;br /&gt;
:舜盡事親之道而瞽瞍底豫, 其功大矣. 故事天者盡事天 &amp;lt;ref&amp;gt;『孟子』 「盡心上」 孟子曰：「盡其心者，知其性也。知其性，則知天矣。存其心，養其性，所以事天也。殀壽不貳，修身以俟之，所以立命也。」&amp;lt;/ref&amp;gt;之道, 而天心豫焉, 則亦天之舜也. 申生無所逃而待烹, 其恭至矣. 故事天者夭夀不貳 &amp;lt;ref&amp;gt;『漢語大詞典』 9. 不信任；懷疑。&amp;lt;/ref&amp;gt;, 而修身以俟之 &amp;lt;ref&amp;gt; 『孟子』 「盡心上」 각주 30 참고.&amp;lt;/ref&amp;gt;, 則亦天之申生也.&lt;br /&gt;
:순임금이 부모 섬기는 도리를 다하자 고수가 기뻐함에 이르렀으니 그 공이 크다. 그러므로 하늘을 섬기는 자가 하늘을 섬기는 도리를 다하여 천심이 기뻐하면 또한 하늘의 순임금인 것이다. 신생이 도망가지 않고 팽형을 기다렸으니 공손함이 지극하다. 그러므로 하늘을 섬기는 자가 요절하든 장수하든 의심하지 않고 몸을 닦아 (천명을) 기다린다면 또한 하늘의 신생인 것이다. &lt;br /&gt;
&lt;br /&gt;
體其受而歸全者, 參乎! &amp;lt;ref&amp;gt;『論語』 『泰伯』 曾子有疾，召門弟子曰：「啓予足！啓予手！《詩》云: 『戰戰兢兢，如臨深淵，如履薄冰。』而今而後，吾知免夫！小子！」&amp;lt;/ref&amp;gt; 勇於從而順令者, 伯奇也. &amp;lt;ref&amp;gt;『漢語大詞典』 1. 古代孝子. 相傳為周宣王時重臣尹吉甫之長子. 母死, 后母欲立其子伯封為太子, 乃譖伯奇, 吉甫怒, 放伯奇於野. ; 『說苑』 「佚文」 王國子前母子伯奇，後母子伯封。後母欲其子立為太子，說王曰：「伯奇好妾。」王不信，其母曰：「令伯奇於後園，妾過其旁，王上臺視之，即可知。」王如其言。伯奇入園，後母陰取蜂十數置單衣中，過伯奇邊曰：「蜂螫我。」伯奇就衣中取蜂殺之。王遙見之，乃逐伯奇也。(왕의 자제로 전처 소생 백기와 후처 소생 백봉이 있었다. 후처가 제 아들을 태자로 세우려고 해서 왕에게 말했다: “백기가 신첩을 좋아합니다.” 왕이 믿지 않자 후처가 말했다: “백기를 후원에 있게 해주시면 제가 그 옆을 지나가보겠습니다. 왕께서 누대에 올라 보시면 곧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왕이 그 말대로 했다. 백기가 후원에 오자 후처가 몰래 벌 십여 마리를 잡아 홑옷 속에 넣고서 백기 옆을 지나가며 말했다: “벌이 나를 쏘는구나!” 백기가 옷 속의 벌을 잡아 죽이려고 했다. 왕이 멀리서 이를 바라보고서 이에 백기를 쫓아버렸다.)&amp;lt;/ref&amp;gt;&lt;br /&gt;
받은 것을 지켜 온전히 돌아간 분은 증자로다! 따르는데 용감해 명령에 순종한 자는 백기이다.&lt;br /&gt;
:父母全而生之, 子全而歸之 &amp;lt;ref&amp;gt;『禮記』 「祭義」 樂正子春下堂而傷其足，數月不出，猶有憂色。門弟子曰：「夫子之足瘳矣，數月不出，猶有憂色，何也？」樂正子春曰：「善如爾之問也！善如爾之問也！吾聞諸曾子，曾子聞諸夫子曰：『天之所生，地之所養，無人為大。』父母全而生之，子全而歸之，可謂孝矣。不虧其體，不辱其身，可謂全矣。故君子頃步而弗敢忘孝也。&amp;lt;/ref&amp;gt;, 若曾參之啓手啓足, 則體其所受乎親者而歸其全也. 况天之所以與我者, 無一善之不備, 亦全而生之也. 故事天者能體其所受於天者而全歸之, 則亦天之曾子矣. 子於父母, 東西南北, 唯令之從 &amp;lt;ref&amp;gt;『莊子』 「大宗師」 子來曰：「父母於子，東西南北，唯命之從。陰陽於人，不翅於父母，彼近吾死而我不聽，我則悍矣，彼何罪焉！夫大塊載我以形，勞我以生，佚我以老，息我以死。故善吾生者，乃所以善吾死也。今之大冶鑄金，金踊躍曰『我且必為鏌鋣』，大冶必以為不祥之金。今一犯人之形，而曰『人耳人耳』，夫造化者必以為不祥之人。今一以天地為大鑪，以造化為大冶，惡乎往而不可哉！成然寐，蘧然覺。」&amp;lt;/ref&amp;gt;, 若伯竒之履霜中野 &amp;lt;ref&amp;gt;https://baike.baidu.com/item/履霜操&amp;lt;/ref&amp;gt;, 則勇於從而順令也. 况天之所以命我者, 吉凶禍福, 非有人欲之私. 故事天者能勇於從而順受其正 &amp;lt;ref&amp;gt;『孟子』 「盡心上」 孟子曰：「莫非命也，順受其正。是故知命者，不立乎巖牆之下。盡其道而死者，正命也。桎梏死者，非正命也。」&amp;lt;/ref&amp;gt;, 則亦天之伯竒矣.&lt;br /&gt;
:부모가 온전히 하여 낳아주셨으니 자식이 온전히 하여 돌려드림이 마치 증자가 임종할 적에 이불을 걷어 수족을 보여 준 것처럼 한다면 부모에게서 받은 것을 지켜 온전한 상태로 돌려드리는 것이다. 더구나 하늘이 나에게 주신 것은 한 가지 선도 구비하지 않음이 없으니, 또한 온전히 하여 낳아준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을 섬기는 자가 하늘에게서 받은 것을 지켜 온전히 돌려준다면 또한 하늘의 증자인 것이다. 자식이 부모에 있어 동서남북(으로 가라는 것)을 오직 명령하시는 대로 따르기를 백기가 들 가운데에서 리상조를 연주했던 것처럼 한다면 따름에 용감하여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 더구나 하늘이 나에게 명하는 것은 길흉화복이니 인욕의 사사로움이 있지 않다. 그러므로 하늘을 섬기는 자가 따름에 용감하여 그 바름을 순순히 받는다면 또한 하늘의 백기인 것이다. &lt;br /&gt;
&lt;br /&gt;
富貴福澤, 將厚吾之生也; 貧賤憂戚, 庸&amp;lt;ref&amp;gt; 用&amp;lt;/ref&amp;gt;玉汝 &amp;lt;ref&amp;gt;『詩經』 「大雅」 &amp;lt;民勞&amp;gt; 民亦勞止、汔可小安。 惠此中國、國無有殘 。 無縱詭隨、以謹繾綣。 式遏寇虐、無俾正反 。 王欲玉女、是用大諫。&amp;lt;/ref&amp;gt;於 &amp;lt;ref&amp;gt;『漢語大詞典』 22. 助詞。用於句首或句中, 無義。&amp;lt;/ref&amp;gt;成也.&amp;lt;br/&amp;gt;&lt;br /&gt;
부귀와 복택은 내 삶을 두텁게 할 것이고, 빈천과 근심은 너를 옥처럼 만들어 줄 것이다. &lt;br /&gt;
:富貴福澤, 所以大奉於我, 而使吾之為善也輕; 貧賤憂戚, 所以拂亂 &amp;lt;ref&amp;gt;『漢語大詞典』 違反其意願以亂之。&amp;lt;/ref&amp;gt;於我, 而使吾之為志也篤. 天地之於人, 父母之於子, 其設心 &amp;lt;ref&amp;gt;『漢語大詞典』 1. 用心；居心。&amp;lt;/ref&amp;gt;豈有異哉! 故君子之事天也, 以周公之富而不至於驕, 以顔子之貧而不改其樂; 其事親也, 愛之則喜而不忘, 惡之則懼而無怨. 其心亦一而已矣.&lt;br /&gt;
:부귀에 복택은 나를 크게 봉양하여 내가 선을 행함을 쉽게 하는 것이요, 빈천과 근심은 나를 불란하게 하여 내가 뜻을 세움을 독실하게 하는 것이니, 천지가 사람에게 있어서와 부모가 자식에게 있어서 그 마음을 씀이 어찌 차이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군자가 하늘을 섬길 적에 주공의 부유함으로도 교만함에 이르지 않고, 안자의 가난함으로도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은 것이요, 부모를 섬길 적에 사랑해 주시면 기뻐하여 잊지 않고, 미워하시면 두려워하고 원망함이 없는 것이니, 그 마음이 또한 동일할 뿐이다. &lt;br /&gt;
&lt;br /&gt;
存, 吾順事; 沒, 吾寧也.&amp;lt;br/&amp;gt;&lt;br /&gt;
살아있을 때는 나 [부모의 뜻을] 순히 섬길 것이요, 죽게 되어서는 나 편안하리라.&lt;br /&gt;
:孝子之身存, 則其事親者, 不違其志而已; 沒, 則安而無所愧於親也. 仁人之身存, 則其事天者不逆其理而已; 没, 則安而無愧於天也. 盖所謂朝聞夕死 &amp;lt;ref&amp;gt;『論語』 「里仁」 子曰：「朝聞道，夕死可矣。」&amp;lt;/ref&amp;gt;, 吾得正而斃焉 &amp;lt;ref&amp;gt;『禮記』 「檀弓上」 曾子寢疾，病。樂正子春坐於床下，曾元、曾申坐於足，童子隅坐而執燭。童子曰：「華而睆，大夫之簀與？」子春曰：「止！」曾子聞之，瞿然曰：「呼！」曰：「華而睆，大夫之簀與？」曾子曰：「然，斯季孫之賜也，我未之能易也。元，起易簀。」曾元曰：「夫子之病帮矣，不可以變，幸而至於旦，請敬易之。」曾子曰：「爾之愛我也不如彼。君子之愛人也以德，細人之愛人也以姑息。吾何求哉？吾得正而斃焉斯已矣。」舉扶而易之。反席未安而沒。증자가 병이 심해져서 침상에 누워 있었다. 증자의 제자인 악정자춘은 침상 아래에 앉아있고 아들인 증원과 증신은 발 끝에 앉아 있었으며, 동자는 침상 모퉁이에 않아 촛불을 들고 있었다. 동자가 말했다. “선생님이 누우신 대자리의 무늬가 아름다우며 결이 매끄럽고 윤택이 나니 대부들이 사용하는 것 아닙니까?” 자춘이 말하였다. “닥쳐라!” 증자가 들으시고는 놀라서 “하!”하고 탄식하셨다. 동자가 다시 말하엿다. “무늬가 아름다우며 결에는 윤택이 나니 대부들이 사용하는 대자리가 아닙니까?” 증자가 대답했다. “그렇다. 이것은 계손씨가 하사해 준 것인데 내가 아직 바꾸지 못했다. 원은 일어나서 이 대자리를 바꿔라.” 증원이 대답했다. “아버님은 병이 위급하여 움직일 수 없으시니 다행히 내일 아침까지 병세가 좋아지시면 그 때 바꾸어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증자가 말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저 아이만도 못하구나. 군자는 사람을 사랑함에 덕으로써 하고 소인은 사람을 사랑함에 고식지계로써 하니, 내가 어떤 것을 구하겠느냐? 내가 올바름을 얻고 죽는다면 이것만으로 족하다.” 이에 모두가 그를 부축하여 들어서 대자리를 바꾸었더니, 다시 자리에 편안히 눕기 전에 돌아가셨다.&amp;lt;/ref&amp;gt;者. 故張子之銘以是終焉.&lt;br /&gt;
:효자의 몸이 살아 있으면 부모를 섬김에 그 뜻을 어기지 않을 뿐이요, 죽으면 편안하여 부모에게 부끄러운 바가 없으며, 인한 사람의 몸이 살아 있으면 하늘을 섬김에 그 이치를 어기지 않을 뿐이요, 죽으면 편안하여 하늘에 부끄러운 바가 없다. 이것은 이른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것과 ‘내 바름을 얻고 죽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자의 銘이 이것으로 끝마친 것이다.&lt;br /&gt;
&lt;br /&gt;
論曰: 天地之間, 理一而已. 然“乾道成男, 坤道成女, 二氣交感, 化生萬物”, 則其大小之分, 親疎之等, 至於十百千萬而不能齊也. 不有聖賢者出, 孰能合其異而會其同哉! 「西銘」之作, 意盖如此. &amp;lt;br/&amp;gt;&lt;br /&gt;
논: 천지의 사이는 오직 리일(理一)일 뿐이다. 그러나 “건(乾)의 도리는 남자를 이루고, 곤(坤)의 도리는 여자를 이루어 &amp;lt;ref&amp;gt;『周易』 「繫辭上」1章, “是故, 剛柔相摩, 八卦相盪. 鼓之以雷霆, 潤之以風雨, 日月運行, 一寒一暑, 乾道成男, 坤道成女. 乾知大始, 坤作成物. 乾以易知, 坤以簡能.”&amp;lt;/ref&amp;gt; 음양이라는 두 기가 교감해 만물을 화생시킨다.”&amp;lt;ref&amp;gt; 『太極圖說』, “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 “乾道成男, 坤道成女”, 二氣交感, 化生萬物. 萬物生生, 而變化無窮焉.“&amp;lt;/ref&amp;gt; 그렇다면 대소의 구별과 친소의 등급은 수 천만가지의 경우에 이르러 똑같을 수 없다. 만약 성현께서 세상에 나오지 않으셨다면 누가 차이점과 공통점을 회합시킬 수 있었겠는가? 「서명西銘」이라는 작품은 의미가 대개 이와 같다. &lt;br /&gt;
&lt;br /&gt;
程子以為明理一而分殊, 可謂一言以蔽之矣. 盖以乾為父, 以坤為母, 有生之類, 無物不然, 所謂‘理一’也. 而人物之生, 血脈之屬, 各親其親, 各子其子, 則其分亦安得而不殊哉! 一統而萬殊, 則雖天下一家ㆍ中國一人, 而不流於兼愛之弊; 萬殊而一貫, 則雖親疎異情ㆍ貴賤異等, 而不梏於為我之私. 此「西銘」之大指也. 觀其推親親之厚, 以大無我之公, 因事親之誠, 以明事天之道, 盖無適而非所謂分立而推理一者 &amp;lt;ref&amp;gt;【교감기5】‘立’이 대전본에는 ‘殊’로 되어 있다. ‘者’는 대전본, 서본, 만력본에는 ‘也’로 되어 있다.&amp;lt;/ref&amp;gt;. 夫豈專以民吾同胞ㆍ長長幼幼為理一, 而必黙識於言意之表, 然後知其分之殊哉! &amp;lt;br&amp;gt;&lt;br /&gt;
정자程子께서는 「서명」이 '리일분수理一分殊'를 설명하고 있다고 보았으니, 전체내용을 한마디 말로 다 정리했다고 일컬을 수 있다. 건乾을 아버지로 삼고 곤坤을 어머니로 삼는 것은 생명이 있는 부류라면 어떠한 것이든 다 그러하니 이른바 ‘리일理一’이다. 그러나 인간과 만물이라는 생명은 혈맥의 등속에 따라 각각 가까운 이를 더 가깝게 여기며 자기의 자식을 자식으로 대우하니 그 분수가 역시 어찌 다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나의 이치로 관통되지만 부류에 따라 온갖 경우로 나뉘니 비록 천하가 하나의 가족이며 중국이 하나의 사람일지라도 겸애兼愛의 폐단에 흘러가지 않으며, 온갖 경우로 나뉘지만 하나로 관통되어 있으니 비록 친소에 따라 감정을 달리하고 귀천에 따라 등급을 나누지만 ‘위아爲我’의 사사로움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서명」의 대략적인 요지다. 친속을 친애하는 두터움을 미루어서 공적인 ‘무아無我’ &amp;lt;ref&amp;gt;여기서 ‘無我’의 의미는 자기중심적인 자아(私我)의 탈각을 의미하는 것 같다. &amp;lt;/ref&amp;gt;를 확대시키고, 부모님을 정성스럽게 섬기는 것에 기인해서 하늘을 섬기는 도를 밝힌다면 어디를 가더라도 이른바 분수가 확립되면서 동시에 이치가 하나로 관통되지 않는 경우 &amp;lt;ref&amp;gt;『二程文集』卷10, 「答楊時論西銘書」, “《西銘》之論則未然. 横渠立言誠有過者, 乃在《正夢》, 《西銘》之為書, 推理以存義, 擴前聖所未發, 與孟子性善養氣之論同功, (二者亦前聖所未發.) 豈墨氏之比哉? 《西銘》明理一而分殊, 墨氏則二本 而無分. (老幼及人, 理一也; 愛無差等. 本二也.) 分殊之蔽, 私勝而失仁; 無分之罪. 兼愛而無義. 分立而推理一以止私勝之流, 仁之方也; 無别而迷兼愛, 至於無父之極, 義之賊也. 子比而同之, 過矣. 且謂言體而不及用, 彼則使人推而行之, 本為用也, 反謂不及, 不亦異乎?“《서명》에 대한 이야기는 틀렸네. 횡거 선생이 입언한 것 가운데 진실로 지나친 것이 『정몽』에 있지만, 《서명》의 글은 理를 미루어 義를 보존하였고 이전 성인께서 드러내지 않으신 것을 넓히셨으니, 맹자의 性善·養氣의 말씀과 공이 같은데, (두 경우 또한 이전 성인께서 드러내지 않으신 것이다.) 어찌 [횡거 선생을] 묵자에 견주겠는가? 《서명》은 “리일분수”를 밝힌 것이고, 묵자는 근본을 둘로 하고 구분이 없는 것이네. (노인을 노인 대접하고 아이를 아이 대접하기를 남에게까지 미치는 것은 “리일”이고, 사랑에 차등이 없는 것은 근본을 둘로 한 것이다.) 분수의 폐단은 사욕[자기중심성]이 이겨 인을 잃는 것이고, 구분이 없는 것의 문제는 겸애하여 의가 없는 것이네. 구분이 세워지고서 “리일”을 미루어 사욕이 이기는 것을 막는 것이 仁의 방법이고, 분별이 없어 겸애에 미혹돼 無父의 극단에 이르는 것이 義를 해치는 것이네. 그대는 [횡거 선생을 묵자에] 비겨 같다고 여기는데, 지나친 것일세. [그대가] 또 말하길: “體만 말하고 用을 말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서명》은 사람으로 하여금 미루어 실천하게 한 것이니 본래부터 用이거늘 도리어 “말하지 않았다”고 하니 이상하지 않은가?&amp;lt;/ref&amp;gt;가 없을 것이다. 어찌 오직 ‘백성은 나의 동포이며 어른을 어른대접하며 아이를 아이답게 대하는 것’을 ‘리일(理一)’로 여기고 반드시 언어로 드러난 의미에 대하여 묵묵하게 기억한 연후에야 분수가 나뉘어짐을 알겠는가? &lt;br /&gt;
&lt;br /&gt;
且所謂“稱物平施”者, 正謂稱物之宜, 以平吾之施云爾. 若無稱物之義, 則亦何以知夫所施之平哉? 龜山第二書盖欲發明此意, 然言不盡而理有餘也, 故愚得因其說而遂言之如此. 同志之士, 幸相與折衷哉 &amp;lt;ref&amp;gt;【교감기6】‘哉’가 대전본, 서본, 만력본에는 ‘焉’로 되어 있다.&amp;lt;/ref&amp;gt; &amp;lt;br/&amp;gt;&lt;br /&gt;
또 이른바 ‘칭물평시(稱物平施)’&amp;lt;ref&amp;gt; 『周易』 「謙」, “《象》曰: 地中有山, 謙, 君子以裒多益寡, 稱物平施.” 【易傳】 地體卑下, 山之高大而在地中, 外卑下而內蘊高大之象, 故為謙也. 不云山在地中, 而曰地中有山, 言卑下之中蘊其崇高也. 若言崇高蘊於卑下之中, 則文理不順. 諸象皆然, 觀文可見. 君子以裒多益寡, 稱物平施, 君子觀謙之象. 山而在地下, 是高者下之, 卑者上之, 見抑高舉下ㆍ損過益不及之義; 以施於事, 則裒取多者, 增益寡者, 稱物之多寡以均其施與, 使得其平也.&amp;lt;/ref&amp;gt;라는 것은 바로 [각] 사물의 마땅함을 헤아려서 나의 베풀어줌을 공평히 한다는 말일 뿐이다. &amp;lt;ref&amp;gt;『龜山集』卷16, 「答伊川先生」, “‘古之人所以大過人者, 無他, 善推其所為而已.’, ‘老吾老以及人之老, 幼吾幼以及人之幼’, 所謂推之也. 孔子曰: ‘老者安之, 少者懐之’, 則無事乎推矣. 無事乎推者, 理一故也. 理一而分殊, 故聖人稱物而平施之, 兹所以為仁之至、義之盡也. 何謂稱物? 親疎逺近各當其分, 所謂稱也; 何謂平施? 所以施之, 其心一焉, 所謂平也. 某昔者竊意『西銘』之書有平施之方, 無稱物之義, 故曰: “言體而不及用”, 蓋指仁義為說也. 故仁之過, 其蔽無分, 無分則妨義; 義之過, 其流自私, 自私則害仁. 害仁則楊氏之為我也; 妨義則墨氏之兼愛也. 二者其失雖殊, 其所以得罪於聖人則均矣.““옛 사람들이 보통사람보다 뛰어났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자신이 해야 하는 바를 남에게 잘 미루어봤을 뿐이다.”와 “우리 집의 어르신들을 공경하여 남의 어르신을 공경하는데 미치고, 우리 집 어린 자식들을 보살펴서 남의 어린 자식들을 보살피는 데 미친다.”는 것이 이른바 ‘미루어보는’ 것입니다. 공자께서 “늙은이를 편안하게 해주고 젊은이를 감싸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미루어봄에 일삼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미루어 봄에 일삼을 것이 없는 이유는 이치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치는 하나지만 나뉨은 다르기 때문에 성인이 사물을 저울질하여 고르게 베푸시니 이에 인(仁)의 지극함과 의(義)의 극진함이 되는 것입니다. 稱物(사물을 저울질함)이 무엇입니까? 친하고 소원하며 멀고 가까움이 각각 그 분수에 마땅한 것이 이른바 稱(저울질)입니다. 平施(고르게 베품)가 무엇입니까? 베푸는 것에 그 마음이 그것에 한결같은 것이 이른바 平(고르다)입니다. 제가 예전에 마음속으로 『서명』이라는 책은 고르게 베푸는 방법은 있고 사물을 저울질하는 뜻은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체(體)는 말하였으나 용(用)은 말하지 않았다.”고 말했던 것이니, 대개 인의를 가리켜 설명한 것입니다. 인이 지나치면 그 폐단은 구분이 없는 것이니, 구분이 없으면 의를 방해합니다. 의가 지나치면 그 폐단은 자신의 이익만을 따지는 것이니, 자신의 이익만 따진다면 인을 해치게 됩니다. 인을 해치는 것은 양주의 위아설이요, 의를 방해하는 것은 묵자의 겸애설입니다. 이 둘은 그 잘못이 비록 다르더라도 성인에게 죄를 얻은 까닭은 같습니다.&amp;lt;/ref&amp;gt; 만약 [각] 사물의 마땅함을 헤아리는 과정이 없다면 또한 어떻게 베풀어주는 것의 공평함을 알겠는가? 양시의 두 번째 편지에서는 이러한 의미를 분명히 드러내려고 했지만 말이 미진할 뿐 아니라 논리에 있어서도 결여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의 설명을 바탕으로 마침내 이렇게 말하게 되었다. 사인(士) 동지들이 서로 절충해주기를 바라노라. &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Wooya0902</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B%8C%80%ED%95%99</id>
		<title>대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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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09-05T02:19:0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Wooya0902: &lt;/p&gt;
&lt;hr /&gt;
&lt;div&gt;=해제=&lt;br /&gt;
[[의적단]]의 강독 작업 일환으로 개설한 페이지이다.&amp;lt;br/&amp;gt;&lt;br /&gt;
저본은 &amp;lt;사서장구집주대전&amp;gt;, &amp;lt;대학혹문&amp;gt;이다.&lt;br /&gt;
&lt;br /&gt;
=원문=&lt;br /&gt;
==讀大學法==&lt;br /&gt;
1.&amp;lt;br/&amp;gt;&lt;br /&gt;
朱子曰。語孟。隨事問答。難見要領。惟大學。是曾子述孔子說古人為學之大方。而門人又傳述&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轉述; 傳授; 傳說.&amp;lt;/ref&amp;gt;以明其旨。前後相因。體統都具。翫味此書。知得古人為學所向。却讀語孟。便易&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入。後面工夫雖多。而大體已立矣。&amp;lt;br/&amp;g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amp;lt;논어&amp;gt;와 &amp;lt;맹자&amp;gt;는 일에 따라 문답한 것이므로 핵심을 이해하기 어렵다. 오직 &amp;lt;대학&amp;gt;만은 증자가 공자께서 옛 분들이 학문한 큰 방법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조술하고 [증자의] 문인들이 다시 전술하여 그 뜻을 밝힌 것이어서, 앞뒤로 [맥락이] 서로 연결되고 체계가 모두 갖춰져 있으니, 이 책을 완미한다면 옛 분들의 학문적 지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amp;lt;논어&amp;gt;와 &amp;lt;맹자&amp;gt;를 읽는다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뒤에 공부가 비록 많지만, 큰 얼개는 이미 세워진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看這一書又自與看語孟不同。語孟中。只一項事。是一箇道理。如孟子說仁義處。只就仁義上說道理。孔子答顔淵以克己復禮。只就克己復禮上說道理。若大學。却只統說。論其功用之極。至於平天下。然天下所以平。却先須治國。國之所以治。却先須齊家。家之所以齊。却先須修身。身之所以修。却先須正心。心之所以正。却先須誠意。意之所以誠。却先須致知。知之所以至。却先須格物。&amp;lt;br/&amp;gt;&lt;br /&gt;
이 책을 읽는 것은 &amp;lt;논어&amp;gt;나 &amp;lt;맹자&amp;gt;를 읽는 것과는 또 절로 다르다. &amp;lt;논어&amp;gt;와 &amp;lt;맹자&amp;gt;에서는 한 가지 사건이 하나의 도리일 뿐이다. 예를 들어 맹자께서 인의에 대해 말씀하신 부분은 그저 인의의 차원에서 도리를 말한 것이고, 공자께서 안연에게 '극기복례'라고 대답해주신 부분은 그저 '극기복례'의 차원에서 도리를 말씀하신 것일 뿐이다. [그러나] &amp;lt;대학&amp;gt;은 統說(한 텍스트가 하나의 체계를 설명)일 뿐이다. 최종적 공효를 말한다면 '평천하'에 이르지만, 천하가 평안하기 위해서는 먼저 '치국'해야 하고, 나라가 다스려지기 위해서는 먼저 '제가'해야 하며, 집안이 가지런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수신'해야 하고, 자신이 수양되기 위해서는 먼저 '정심'해야 하며, 마음을 바루기 위해서는 먼저 '성의'해야 하고, 뜻을 진실되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치지'해야 하며, 앎을 지극하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격물'해야 한다. &lt;br /&gt;
&lt;br /&gt;
○大學。是為學綱目。先讀大學。立定綱領。他書皆雜說在裏許。通得大學了。去看他經。方見得此是格物致知事。此是誠意正心事。此是修身事。此是齊家治國平天下事。&amp;lt;br/&amp;gt;&lt;br /&gt;
&amp;lt;대학&amp;gt;은 학문의 綱目(큰 줄기와 세목)이다. 먼저 &amp;lt;대학&amp;gt;을 읽어 강령을 강령(큰 줄기)를 굳게 세우고 나면, 다른 책들은 모두 그 안의 여러 설일 뿐이다. &amp;lt;대학&amp;gt;에 통달하고 나서 다른 경전을 보아야 비로소 '이건 격물치지의 일이고, 이건 성의정심의 일이며, 이건 수신의 일이고, 이건 제가치국평천하의 일'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今且熟讀大學作間架。却以他書。塡補去。&amp;lt;br/&amp;gt;&lt;br /&gt;
지금 우선 &amp;lt;대학&amp;gt;을 숙독하여 얼개를 세우고, 다른 책으로 [세목을] 채워나가라.&lt;br /&gt;
&lt;br /&gt;
○大學。是通言學之初終。中庸是指本原極致處。&amp;lt;br/&amp;gt;&lt;br /&gt;
&amp;lt;대학&amp;gt;은 학문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전체적으로 말하고, &amp;lt;중용&amp;gt;은 궁극적인 본원을 가리킨다.&lt;br /&gt;
&lt;br /&gt;
○問欲專看一書。以何為先。曰先讀大學。可見古人為學首末次第。不比他書。他書非一時所言。非一人所記。&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한 책만 집중해서 보고자 한다면, 무슨 책을 먼저 봐야합니까?&amp;quot; 말씀하셨다: &amp;quot;먼저 &amp;lt;대학&amp;gt;을 읽으면 옛 분들이 학문하신 단계를 알 수 있으니, 다른 책이 비길 바가 아니다. 다른 책은 어느 한 시점에 말한 것도 아니고, 한 사람의 기록도 아니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2.&amp;lt;br/&amp;gt;&lt;br /&gt;
又曰。看大學。固是着逐句看去。也須先統讀傳文敎熟。方好&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0. 可以; 便於.&amp;lt;/ref&amp;gt;從頭仔細看。若專不識傳文大意。便看前頭亦難。&amp;lt;br/&amp;gt;&lt;br /&gt;
또 말씀하셨다: &amp;quot;&amp;lt;대학&amp;gt;을 읽을 때에는 진실로 구절마다 읽어나가야 하지만, 그래도 먼저 傳文을 통독해 익숙하게 해야 비로소 처음부터 자세하게 읽을 수 있다. 만일 傳文의 대의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면, 앞부분 읽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3.&amp;lt;br/&amp;gt;&lt;br /&gt;
又曰。嘗欲作一說。敎人只將大學一日去讀一遍。看他如何是大人之學。如何是小學。如何是明明德。如何是新民。如何是止於至善。日日如是讀。月來日去。自見所謂溫故而知新。須是知新。日日看得新。方得。却不是道理解&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8. 能够; 會.&amp;lt;/ref&amp;gt;新。但自家這箇意思。長長地新。&amp;lt;br/&amp;gt;&lt;br /&gt;
또 말씀하셨다: &amp;quot;전에 한 마디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저 &amp;lt;대학&amp;gt;을 하루에 한 번 읽게 해, 그들에게 무엇이 '大人의 학문'이며, 무엇이 '소학'이며, 무엇이 '명명덕'이며, 무엇이 '신민'이며, 무엇이 '지어지선'인지 살펴보게 하고자 하였다. 날마다 이처럼 읽어 시간이 흐르면, 절로 이른바 '온고이지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반드시 새로운 것을 알아야 하니, 날마다 새로운 것을 읽어야 옳다. 도리가 새로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자신의 이 생각이 길이길이 새로워지는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讀大學。初間也只如此讀。後來也只如此讀。只是初間讀得。似不與自家相關。後來看熟。見許多說話。須著如此做。不如此做自不得。&amp;lt;br/&amp;gt;&lt;br /&gt;
&amp;lt;대학&amp;gt;을 읽을 때 처음에도 이렇게 읽고 나중에도 이렇게 읽으라. 처음 읽었을 때에는 나와 상관이 없는 것 같겠지만, 나중에 읽는 것이 익숙해지고 나면 여러 말이 이렇게 해야 하거나 절로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음을(여러 말대로 해야 하거나 절로 여러 말대로 하지 않을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lt;br /&gt;
&lt;br /&gt;
○讀書。不可貪多。當且以大學為先逐段熟讀精思。須令了了分明。方可改讀後段。看第二段。却思量前段。令文意連屬&amp;lt;sub&amp;gt;音燭。&amp;lt;/sub&amp;gt;却不妨。&amp;lt;br/&amp;gt;&lt;br /&gt;
책을 읽을 때 많이 읽기를 탐해서는 안 된다. 마땅히 우선 &amp;lt;대학&amp;gt;을 우선으로 해서 단락마다 자세히 읽으며 정밀히 생각해보아야 한다. 명명백백하게 이해하고서야 다음 단락을 읽어야 하고, 두 번째 단락을 읽을 때 앞 단락을 생각해 문의가 연결되게 해야 문제가 없을 것이다.&lt;br /&gt;
&lt;br /&gt;
○問大學稍通。方要讀論語。曰且未可。大學稍通。正好着&amp;lt;sub&amp;gt;陟略反。下同&amp;lt;/sub&amp;gt;心精讀。前日讀時。見得前未見得後面。見得後未見得前面。今識得大綱體統。正好熟看。讀此書。功深則用博。昔尹和靖見伊川半年。方得大學西銘看。今人半年。要讀多少書。某且要人讀此是如何。緣此書却不多。而規模周備。凡讀書。初一項。須著十分工夫了。第二項。只費得八九分工夫。第三項。便只費得六七分工夫。少間&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3. 一會兒; 不多久.(잠깐 사이에, 오래지 않아)&amp;lt;/ref&amp;gt;讀漸多。自通貫。他書自著不得多工夫。&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amp;lt;대학&amp;gt;은 조금 알겠으니, 이제 &amp;lt;논어&amp;gt;를 읽으려고 합니다.&amp;quot; 말씀하셨다: &amp;quot;아직 안 된다. &amp;lt;대학&amp;gt;을 조금 알게 되었다면, 이제는 집중해서 정독할 때다. 전에 읽었을 때에는 앞부분만 이해하고 뒷부분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뒷부분만 이해하고 앞부분을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지금 [&amp;lt;대학&amp;gt;을 조금 알게 되어] 큰 얼개와 체계를 이해했다면, 이제는 숙독할 때다. 이 책을 읽는 공부가 깊어진다면 공효가 넓어질 것이다. 전에 윤화정은 이천 선생을 뵌 지 반 년이 돼서야 &amp;lt;대학&amp;gt;과 &amp;lt;서명&amp;gt;을 볼 수 있었는데, 요즘 사람들은 반 년만에 많은 책을 읽으려고 한다. 나는 우선 사람들로 하여금 이 책만 읽게 하는데, 어째서일까? 이 책이 분량은 많지 않지만 체계를 빠짐없이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무릇 책을 읽을 때, 처음에는 100%로 노력해야 하지만, 두 번째에는 8-90% 노력만 필요로 하고, 세 번째에는 6-70%의 노력만 필요로 하니, [그렇게 되면] 오래지 않아 읽는 것이 점차 많게 되고 절로 이해하게 되어, 다른 책에 절로 많은 노력을 들이지 않게 될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看大學。俟見大指。乃及他書。但看時。須是更將大段分作小段。字字句句。不可容易放過。常時暗誦黙思反覆硏究。未上口時。須敎上口。未通透時。須敎通透。已通透後。便要純熟。直待&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直要.&amp;lt;/ref&amp;gt;不思索時。此意。常在心胸之間。驅遣不去&amp;lt;ref&amp;gt;1. 접미사. 동작의 결과가 화자로부터 떨어질 수 없는 뜻을 나타냄.&amp;lt;/ref&amp;gt;。方是。此一段了。又換一段看。令如此數段之後。心安理熟。覺工夫省力時。便漸得力也。&amp;lt;br/&amp;gt;&lt;br /&gt;
&amp;lt;대학&amp;gt;을 읽을 때 요지를 이해하고서 다른 책을 읽어야 한다. 다만 [&amp;lt;대학&amp;gt;을] 읽을 때 큰 단락을 다시 작은 단락으로 나눠야 하고, 글자마다 구절마다 쉽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 평소에 암송하기도 하고 묵묵히 생각하기도 하며 반복해서 탐구해, 입에 붙지 않았을 때에는 입에 붙게 해야 하고, 완전히 이해되지 않았을 때에는 완전히 이해되기 해야 하며, 완전히 이해된 이후에는 숙달되게 해서, 사색하지 않을 때에도 이 뜻이 늘 마음에 있어 쫓아버릴 수 없어야 한다. 이 단락이 끝나고서 다음 단락을 읽어 이와 같이 여러 단락을 하고 나면 마음은 안정되고 이해가 무르익어, 공부에 힘이 덜 든다고 느낄 때 점차 힘을 얻게 될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4.&amp;lt;br/&amp;gt;&lt;br /&gt;
又曰。大學是一箇腔子。而今却要塡敎&amp;lt;sub&amp;gt;平聲&amp;lt;/sub&amp;gt;他實。如他說格物。自家須是去格物後塡敎他實著。誠意亦然。若只讀得空殼子。亦無益也。&amp;lt;br/&amp;gt;&lt;br /&gt;
또 말씀하셨다: &amp;quot;&amp;lt;대학&amp;gt;은 腔子이니, 지금 메워 그것을 채워야 한다. 예를 들어, &amp;lt;대학&amp;gt;에서 '격물'을 말하면, 스스로 '격물'한 뒤에 메워 그것을 채워야 한다. '성의'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그저 빈 껍데기만 읽는다면 무익할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讀大學。豈在看他言語。正欲驗之於心如何。如好好色惡惡臭。試驗之吾心。果能好善惡惡如此乎。閒居為不善。是果有此乎。一有不至。則勇猛奮躍不已。必有長&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進。今不知如此。則書自書我自我。何益之有。&amp;lt;br/&amp;gt;&lt;br /&gt;
&amp;lt;대학&amp;gt;을 읽는 [목적이] 어찌 그 문장을 읽는 데 달려있겠는가? 다만 내 마음이 어떠한지를 살펴보려는 것이다. [&amp;lt;대학&amp;gt;에서] '아름다운 여색을 좋아하듯, 악취를 싫어하듯이 한다'&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傳6章. 所謂誠其意者：毋自欺也，如惡惡臭，如好好色，此之謂自謙，故君子必慎其獨也！&amp;lt;/ref&amp;gt;고 하는데, [이것을] 한 번 자기 마음에 비춰보면, 과연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기를' 이처럼 할 수 있는가? [&amp;lt;대학&amp;gt;에서 '소인은] 혼자 있을 때 불선한 짓을 한다'&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傳6章. 小人閒居為不善，無所不至。&amp;lt;/ref&amp;gt;고 하는데, 과연 [나에게] 이런 점이 있는가? 하나라도 지극하지 못한 점이 있으면, 용맹하게 분발하기를 그치지 않아야 반드시 발전이 있을 것이다. 만일 이와 같음을 알지 못한다면, 책은 책이고 나는 나일 것이니, 무슨 보탬이 있겠는가?&lt;br /&gt;
&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凡讀書之法, 皆當如此, 非但&amp;lt;大學&amp;gt;也.&amp;quo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무릇 독서법은 모두 이와 같아야 하니, &amp;lt;대학&amp;gt;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5.&amp;lt;br/&amp;gt;&lt;br /&gt;
又曰。某一生。只看得這文字透。見得前賢所未到&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8. 知; 覺.&amp;lt;/ref&amp;gt;處。溫公作通鑑。言平生精力。盡在此書。某於大學亦然。先須通此。方可讀他書。&amp;lt;br/&amp;gt;&lt;br /&gt;
또 말씀하셨다: &amp;quot;나는 일생토록 이 글을 철저하게 읽어 이전 현인들이 알지 못했던 바를 알게 되었다. 사마온공은 &amp;lt;자치통감&amp;gt;을 짓고서 '평생의 정력이 모두 이 책에 있다'고 말했는데, 내가 &amp;lt;대학&amp;gt;에 있어서 역시 그러하다. 먼저 이 책에 통달하고서 다른 책을 봐야 한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6.&amp;lt;br/&amp;gt;&lt;br /&gt;
又曰。伊川舊日。敎人先看大學。那時。未解說。而今有註解。覺大段分曉了。只在仔細看。&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4 &amp;lt;대학1&amp;gt; 伊川舊日教人先看大學，那時未有解說，想也看得鶻突。而今看注解，覺大段分曉了，只在子細看。&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또 말씀하셨다: &amp;quot;이천 선생께서 전에 사람들로 하여금 먼저 &amp;lt;대학&amp;gt;을 읽게 하셨지만 그때에는 [&amp;lt;대학&amp;gt;을] 풀이하지 않으셨다. 지금은 주해가 있어 [의미가] 대단히 분명하다고 생각하니, 그저 자세하게 읽는 데 달렸을 뿐이다.&amp;quot;&lt;br /&gt;
&lt;br /&gt;
:陳氏曰: &amp;quot;&amp;lt;大學章句&amp;gt;巳示學者一定之凖, 只直按他見成底熟, 就裏面看意思滋味, 便見得無窮義理出焉.&amp;quot;&lt;br /&gt;
:진씨가 말했다: &amp;quot;&amp;lt;대학장구&amp;gt;에서 이미 배우는 자들에게 일정한 기준을 보여주었으니, 그저 그 완성된 것을 익숙히 살펴 그 안의 의미나 맛을 보게 된다면, 무궁한 의리가 거기서 나옴을 알게 될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7.&amp;lt;br/&amp;gt;&lt;br /&gt;
又曰。看大學。且逐章理會。先將本文念得。次將章句來解本文。又將或問來參章句。須逐一令&amp;lt;sub&amp;gt;平聲。下同&amp;lt;/sub&amp;gt;記得。反覆尋究。待他浹洽。旣逐段曉得。却統看溫尋過。&amp;lt;br/&amp;gt;&lt;br /&gt;
또 말씀하셨다: &amp;quot;&amp;lt;대학&amp;gt;을 볼 때 우선 장마다 이해해야 한다. 먼저 본문을 생각해보고서 다음으로 &amp;lt;장구&amp;gt;로 본문을 해석해보고, 다시 &amp;lt;혹문&amp;gt;으로 &amp;lt;장구&amp;gt;에 참조해보라. [그리고 나서] 하나하나 기억나게 하고 반복 탐구해 그것이 [마음에] 젖어들게 하라. 단락마다 이해되고 나면, 전체적으로 읽으며 복습해보라.&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8.&amp;lt;br/&amp;gt;&lt;br /&gt;
又曰。大學一書有正經有章句有或問。看來看去。不用或問。只看章句便了。久之又只看正經便了。又久之自有一部大學在我胸中。而正經亦不用矣。然不用某許多工夫。亦看某底不出。不用聖賢許多工夫。亦看聖賢底不出。&amp;lt;br/&amp;gt;&lt;br /&gt;
또 말씀하셨다: &amp;quot;&amp;lt;대학&amp;gt; 한 텍스트에는 正經(경전 원문), &amp;lt;章句&amp;gt;, &amp;lt;或問&amp;gt;이 있다. 여러 번 읽다보면 &amp;lt;혹문&amp;gt;은 필요하지 않고 &amp;lt;장구&amp;gt;만 읽어도 될 것이며, [읽기가] 오래되면 다시 경전 원문만 읽어도 될 것이다. [읽기가] 더 오래되어 저절로 &amp;lt;대학&amp;gt; 한 부가 마음속에 있게 되면, 경전 원문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주자)의 많은 공부를 하지 않으면 내 것을 알 수 없고, 성현의 많은 공부를 하지 않으면 성현의 것을 알 수 없을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9.&amp;lt;br/&amp;gt;&lt;br /&gt;
又曰。大學解本文未詳者。於或問中詳之。且從頭逐句理會。到不通處却看。或問乃註脚之註脚。&amp;lt;br/&amp;gt;&lt;br /&gt;
또 말씀하셨다: &amp;quot;&amp;lt;대학&amp;gt;에서 본문을 해석하다가 자세하지 않은 것은 &amp;lt;혹문&amp;gt; 가운데 상세히 설명하였으니, 처음부터 구절마다 이해하다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만나면 읽어보라. &amp;lt;혹문&amp;gt;은 바로 '주석의 주석'이다.&amp;quot;&lt;br /&gt;
&lt;br /&gt;
○某解書不合太多。又先準備學者為&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他設疑說了。所以致得學者看得容易&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了。&amp;lt;br/&amp;gt;&lt;br /&gt;
내가 책을 너무 상세하게 해설해서는 안 됐지만, 그래도 배우는 자들을 미리 대비해 그들을 위해 의문을 가설해 설명해서 배우는 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게 했다.&lt;br /&gt;
&lt;br /&gt;
○人只說某說大學等不略說使人自致思。此事大不然。人之為學。只爭箇肯與不肯耳。他若不肯向&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9. 介詞. 對; 與. 表示動作的對象.&amp;lt;/ref&amp;gt;這裏。略亦不解致思。他若肯向此一邊。自然有味。愈詳愈有味。&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18 &amp;lt;주자13/훈문인4&amp;gt;又言：「大學等書，向來人只說某說得詳，如何不略說，使人自致思？此事大不然。人之為學，只是爭箇肯不肯耳。他若無得，不肯向這邊，略亦不解致思；他若肯向此一邊，自然有味，愈詳愈有意味。」&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사람들은 그저 내가 '&amp;lt;대학&amp;gt; 등에 대해 설명할 때, 간략하게 설명하지 않아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을 다하지 못하게 한다(상세하게 설명해 해석의 여지를 좁힌다)'고만 말하는데, 이는 전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학문함은 그저 긍정하냐 긍정하지 않냐를 따질 뿐이다. 그가 만약 이쪽에 대해 긍정하지 않는다면, [내가] 간략하게 설명하더라도 생각을 다하지 못하겠지만, 그가 만일 이쪽에 대해 긍정한다면 절로 재미가 있어, 설명이 상세할수록 재미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陳氏曰: &amp;quot;&amp;lt;大學&amp;gt;約其旨於&amp;lt;章句&amp;gt;, 已的確眞切; 而詳其義於&amp;lt;或問&amp;gt;, 又明實敷暢. &amp;lt;章句&amp;gt;中太簡而或未喻則易枯, 必於&amp;lt;或問&amp;gt;詳之; &amp;lt;或問&amp;gt;中太博而或未貫則易泛, 必於&amp;lt;章句&amp;gt;約之.&amp;quot;&lt;br /&gt;
:진씨가 말했다: &amp;quot;&amp;lt;대학&amp;gt;에서 그 뜻을 &amp;lt;장구&amp;gt;에 요약시켜 놓았으니 이미 적확하고 진실한 데다가, &amp;lt;대학&amp;gt;에서 그 뜻을 &amp;lt;혹문&amp;gt;에 상세히 설명하였으니 명확하고 막힘이 없기까지 하다. &amp;lt;장구&amp;gt;의 내용이 너무 간략해 혹 이해가 안 되면 지치기 쉬우니 반드시 &amp;lt;혹문&amp;gt;을 상세히 살펴보고, &amp;lt;혹문&amp;gt;의 내용이 너무 자세해서 혹 맥락이 잡히지 않으면 길을 잃기 쉬우니 반드시 &amp;lt;장구&amp;gt;로 핵심을 잡으라.&amp;quot;&lt;br /&gt;
&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右二條之説不同, 而可互相發明.&amp;quo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위의 두 조목(○某解書, ○人只說)의 말이 같지 않지만, 서로 밝혀줄 수 있다.&amp;quot;&lt;br /&gt;
&lt;br /&gt;
==大學章句序==&lt;br /&gt;
1.&amp;lt;br/&amp;gt;&lt;br /&gt;
大學之書。古之大學所以敎人之法&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6. 標准; 模式.&amp;lt;/ref&amp;gt;也。蓋自天降生民。則旣莫不與之以仁義禮智之性矣。&amp;lt;br/&amp;gt;&lt;br /&gt;
&amp;lt;대학&amp;gt;은 옛적 태학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던 교법(표준 텍스트)이다. 대개 하늘이 백성을 내리고 나서 이미 인의예지의 성을 주지 않은 경우는 없다.&lt;br /&gt;
:朱子曰。天之生民。各與以性。性非有物。只是一箇道理之在我者耳。仁則是箇溫和慈愛底道理。義則是箇斷制裁割底道理。禮則是箇恭敬撙節底道理。智則是箇分別是非底道理。凡此四者。具於人心。乃是性之本體。&amp;lt;br/&amp;g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하늘이 백성을 낳을 때 각각 性을 부여했다. 性은 물건이 아니라 그저 나에게 있는 도리일 뿐이다. 인은 온화하고 자애로운 도리이고, 의는 판단하고 제재하는 도리이며, 예는 공경하고 절약하는 도리이고, 지는 시비를 분별하는 도리이다. 무릇 이 네 가지는 사람의 마음에 갖춰져 있으니, 바로 성의 본모습(本體)이다.&amp;quot;&lt;br /&gt;
:○雲峯胡氏曰。朱子四書。釋仁曰心之德。愛之理。義曰心之制。事之宜。禮曰天理之節文。人事之儀則。皆兼體用。獨智字未有明釋。嘗欲竊取朱子之意以補之。曰智則心之神明。所以妙衆理而宰萬物者也。番易沈氏云。智者。涵天理動靜之機。具人事是非之鑑。&amp;lt;br/&amp;gt;&lt;br /&gt;
:운봉 호씨가 말했다: &amp;quot;주자의 &amp;lt;사서&amp;gt;에서 인은 '마음의 덕이자 사랑의 이치'라고 하고, 의는 '마음의 제재이자 일의 마땅함'이라 하며, 예는 '천리의 절문이며 인사의 의칙'이라고 하니, 모두 體用을 겸한다. [그런데] 유독 智자에만 분명한 해석이 없다. 전에 주자의 생각을 삼가 취해 보충하려고 했다: '智는 마음의 신명이니, 뭇 이치를 신묘하게 [갖추고서]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 파양 심씨가 말하길: '智라는 것은 天理動靜의 기틀을 포함하고, 인사의 시비를 [비추는] 거울을 갖추고 있다.'라고 하였다.&amp;quot;&lt;br /&gt;
:○新安陳氏曰。書云。惟皇上帝。降衷于下民。若有恒性。六經言性自此始。謂天降生民而與之以性。亦本書之意而言。&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amp;lt;서경&amp;gt;에서 말하길: '위대한 상제께서 백성들에게 속마음(衷)을 내려주셔서 순히 변치 않는 性을 두셨다'&amp;lt;ref&amp;gt;&amp;lt;서경&amp;gt; 탕고&amp;lt;/ref&amp;gt;고 하니, 육경에서 性을 말하는 것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amp;lt;대학장구서&amp;gt;에서] '하늘이 백성을 내리고 나서 性을 주었다'고 말한 것 역시 &amp;lt;서경&amp;gt;의 뜻에 근거해 말한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然其氣質之稟。或不能齊。是以不能皆有以知其性之所有而全之也。&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품수받은 기질이 혹 일정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性에 있는 [인의예지를] 알고서 이를 온전히 할 수는 없다.&lt;br /&gt;
:新安陳氏曰。性之所有。卽仁義禮智是也。性無智愚賢不肖之殊。惟氣有淸濁。淸者能知。而濁者不能知。故不能皆知。質有粹駁。粹者能全。而駁者不能全。故不能皆全。知性之所有屬知。全性之所有屬行。知行二者。該盡一部大學。意已寓於此矣。&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지닌 性'은 곧 인의예지가 이것이다. 性에는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현명한 자와 못난 자의 차이가 없고, 오직 氣에 맑고 탁함의 차이가 있어서, 기가 맑은 자는 지닌 성을 알 수 있지만, 기가 탁한 자는 알 수 없다. 質에는 순수하고 잡박함의 차이가 있어, 質이 순수한 자는 [자신의 성을] 온전히 할 수 있지만, 잡박한 자는 온전히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온전히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닌 성을 아는 것은 앎(知)에 속하고, 지닌 성을 온전히 하는 것은 실천(行)에 속한다. 앎과 실천(知行) 두 가지는 &amp;lt;대학&amp;gt; 한 부에 완비되어 있으니, 그 의미가 이미 여기에 깃들여져 있다.&amp;quot;&lt;br /&gt;
&lt;br /&gt;
一有聰明睿智。能盡其性者。出於其間。則天必命之。以為億兆之君師。使之治&amp;lt;sub&amp;gt;平聲下治人同&amp;lt;/sub&amp;gt;而敎之。以復其性。&amp;lt;br/&amp;gt;&lt;br /&gt;
총명예지를 갖추고서 자신의 성을 다할 수 있는 자가 혹 한 명이라도 그 사이에서 나오면, 하늘은 반드시 그에게 명하여 뭇 백성의 임금이자 스승(君師)으로 삼아 그로 하여금 백성들을 다스리고 가르쳐 자신의 성을 회복하게(자신의 본성으로 돌아가게) 하였다.&lt;br /&gt;
:問何處見得天命處。朱子曰。此也如何知得。只是才生得一箇恁地底人。定是為億兆之君師。便是天命之也。他旣有許多氣魄才德。決不但已&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僅此而已. 謂不復深究或就此了事.&amp;lt;/ref&amp;gt;。必統御億兆之衆。人亦自是歸他。如三代已前。聖人都是如此。至孔子方不然。雖不為帝王。然也閑他不得。也做出許多事來。以敎天下後世。是亦天命也。&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어디에서 천명을 볼 수 있습니까?&amp;quo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이것을 또 어찌 알겠느냐? 그저 이런 사람을 낳자마자 반드시 뭇 백성의 임금이자 스승으로 삼는 것, 이것이 '하늘이 명한 것'이다. 그는 많은 기백과 재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반드시 뭇 백성을 통솔할 것이요, 사람들 또한 스스로 그에게 귀의할 것이니, 삼대 이전의 성인들은 모두 이와 같았다. 공자에 이르러 비로소 그러하지 못했다. 공자의 경우 비록 제왕으로 삼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를 내버려 둘 수 없었고, 그래도 수많은 일을 해내 천하 후세를 가르치게 하셨으니, 이 또한 천명이다.&amp;quot;&lt;br /&gt;
:○新安陳氏曰。聰明睿智。能盡其性者。是就淸濁粹駁不齊中。指出極淸極粹者言之。聰明睿智。生知之聖也。與知其性相應。能盡其性。安行之聖也。與全之相應。常人必先知其性。方可望以全其性。故於中下一而字。聖人合下生知安行。不待知而方全。故只平說。天必命之以為億兆君師。君以治之。師以敎之。變化其氣質。而復還其本性。以上四箇性字。須融貫看透。三代以前。聖賢之君。君師之責兼盡。三代以後。君道有略得之者。而師道則絶無矣。&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총명예지를 갖추고서 자신의 성을 다할 수 있는 자'는 기질의 청탁/수박이 고르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 지극히 맑고 지극히 순수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총명예지를 갖춘 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는(生知) 성인이니, '자신의 성을 안다'와 호응한다. '자신의 성을 다할 수 있는 자'는 편안히 여겨 행하는(安行) 성인이니, '온전히 한다'와 상응한다. 보통 사람들은 반드시 자신의 성을 알아야 비로소 자신의 성을 온전히 하기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운데에 '而'자를 두었다. 성인은 원래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편안히 여겨 행하니, 보통 사람들처럼 자신의 성을 알고서 비로소 온전히 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다만 평이하게 말했다. 하늘은 반드시 그에게 명하여 뭇 백성의 임금이자 스승이 되게 하여, 임금의 자격으로 그들을 다스리고, 스승의 자격으로 그들을 가르쳐 기질을 변화시켜 자신의 본성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이상 네 번의 性자(仁義禮智之性, 知其性之所有, 能盡其性, 復其性)를 반드시 일관하여 철저히 읽어야 한다. 삼대 이전의 성현이었던 임금들은 임금과 스승의 책임을 모두 지극히 하셨지만, 삼대 이후에는 임금의 도(君道)의 경우에는 이를 대략 얻은 자는 있었지만 스승의 도(師道)의 경우에는 [이를 대략이라도 얻은 자가] 전혀 없었다.&amp;quot;&lt;br /&gt;
&lt;br /&gt;
此伏羲神農黃帝堯舜。所以繼天立極。而司徒之職。典樂之官。所由設也。&amp;lt;br/&amp;gt;&lt;br /&gt;
이것이 복희·신농·황제·요·순이 하늘의 뜻을 잇고 법도를 세운 까닭이며, 사도의 직책과 전악의 관직이 설치된 이유이다.&lt;br /&gt;
:書舜典。帝曰。契。汝作司徒。敬敷五敎在寬。又曰。夔。命汝典樂。敎冑子。&amp;lt;br/&amp;gt;&lt;br /&gt;
:&amp;lt;서경&amp;gt; &amp;lt;순전&amp;gt;에 &amp;quot;요임금께서 말씀하셨다: '설아! 너는 사도가 되어 공경히 五敎를 펴되, 너그럽게 하라.&amp;quot;고 하였고, 또 &amp;quot;기야! 너를 전악으로 임명하니, 冑子&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 古代稱帝王或貴族的長子.&amp;lt;/ref&amp;gt;를 가르쳐라.&amp;quot;라고도 하였다.&lt;br /&gt;
:○朱子曰。天只生得許多人物。與你&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4. 代詞. 泛指任何人.&amp;lt;/ref&amp;gt;許多道理。然天却自做不得。所以必得聖人為之脩道立敎。以敎化百姓。所謂裁成天地之道。輔相天地之宜是也。&amp;lt;br/&amp;g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하늘은 그저 수많은 인물을 낳고 모든 사람에게 많은 도리를 부여한다. 그러나 하늘은 스스로 작용할 수 없으므로, 반드시 성인을 얻어 그로 하여금 도를 닦고 가르침을 세워 백성을 교화하게 했으니, 이른바 '천지의 도를 재단하고 이루며, 천지의 마땅함을 돕는다'&amp;lt;ref&amp;gt;&amp;lt;주역&amp;gt; 태괘 대상전. 天地交泰，后以財成天地之道，輔相天地之宜，以左右民。&amp;lt;/ref&amp;gt;는 것이 이것이다.&amp;quot;&lt;br /&gt;
:○古者敎法。禮樂射御書數。不可闕一。就中樂之敎尤親切。夔敎冑子。只用樂。大司徒之職。也是用樂。蓋是敎人朝夕從事於此物。束得心長在這上面。蓋為樂有節奏。學他底。急也不得。慢也不得。久之都換了他情性。&amp;lt;br/&amp;gt;&lt;br /&gt;
:과거의 교법(교과 과정)인 육예(禮樂射御書數)는 하나라도 빠뜨려서는 안 되는데, 그 가운데 음악의 가르침은 더욱 친절하다. 夔가 冑子를 가르칠 때 단지 음악을 사용했고, 대사도의 직임도 음악을 사용했으니, 대개 사람들로 하여금 하루 종일 이것에 종사하게 해서 마음을 단속해 오래토록 여기에 있게 한 것이다. 대개 음악을 연주하는 데에는 리듬(節奏)이 있으니, 그것을 배울 때에는 급해도 안 되고 느슨해서도 안 된다. [음악을 배우는 것이] 오래되면 그들의 情性을 모두 바꿀 것이다.&lt;br /&gt;
:○雲峯胡氏曰。司徒之職。統敎百姓。典樂之官。專敎冑子。&amp;lt;br/&amp;gt;&lt;br /&gt;
:운봉 호씨가 말했다: &amp;quot;사도의 직책은 백성을 통솔하고 가르치는 것이며, 전악의 관리는 오로지 冑子만 가르친다.&amp;quot;&lt;br /&gt;
:○新安陳氏曰。上文說其理。此實之以其事。天生民而賦與之。不能敎之。聖君代天立標準。以主敎於上。而設司徒及典樂之官。以掌敎於下。此時敎已立。而敎之法未備。學之名未聞也。&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앞의 글에서 이치를 말했다면, 여기서는 일로 실증한다. 하늘은 백성을 낳고 [성을] 부여하지만, [직접] 가르치지는 못한다. 성군이 하늘을 대신해 표준을 세워 위에서 가르침을 주관하고, 사도와 전악의 관직을 설치해 아래에서 가르침을 관장하게 했다. 이때에는 가르침이 이미 세워졌지만 교법(교육 제도)가 미비했고, '학교'라는 명칭이 아직 들리지 않았다.&amp;quot;&lt;br /&gt;
&lt;br /&gt;
2.&amp;lt;br/&amp;gt;&lt;br /&gt;
三代之隆。其法寖備。然後王宮國都。以及閭巷。莫不有學。人生八歲。則自王公以下。至於庶人之子弟。皆入小學。而敎之以灑&amp;lt;sub&amp;gt;上聲又去聲&amp;lt;/sub&amp;gt;掃&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應對進退之節。禮樂射御書數之文。&amp;lt;br/&amp;gt;&lt;br /&gt;
융성한 삼대에 그 법도가 차츰 갖춰진 연후에, 왕궁(천자의 도성)·국도(제후의 도성)에서 여항(그 외 지방)에 이르기까지 학교가 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사람이 태어나 8세가 되면 왕·공 이하로 서인의 자제에 이르기까지 모두 소학에 들어가게 해서 쇄소·응대·진퇴의 예절과 육예의 이름을 가르쳤다.&lt;br /&gt;
:朱子曰。古者小學。已自是聖賢坯樸&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坯墣] 亦作“坯璞”。 謂初具規模的事物；半成品。 &amp;lt;/ref&amp;gt;了。但未有聖賢許多知見。及其長也。令入大學。使之格物致知。長許多知見。&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7 &amp;lt;학1&amp;gt; 古者小學已自養得小兒子這裏定，已自是聖賢坯璞了，但未有聖賢許多知見。及其長也，令入大學，使之格物、致知，長許多知見。&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옛날에 소학을 [다니면] 이미 성현의 그릇(坯璞)이지만, 성현의 많은 지식(내용물)은 없다. 자라서 태학에 들어가게 해 격물치지하게 해 많은 지식을 기르는 것이다.&amp;quot;&lt;br /&gt;
:○番易齊氏曰。灑掃。內則所謂雞初鳴。灑掃室堂及庭。曲禮所謂。為長者糞。加帚箕上以袂拘而退。以箕自向而扱之之類是也。應對。內則所謂。在父母之所。有命之。應唯敬對。曲禮所謂。長者負劍辟咡詔之。&amp;lt;sub&amp;gt;負。置之於背。劍。挾之於旁。口耳之間曰咡。辟咡詔之。傾頭與語。&amp;lt;/sub&amp;gt;則揜口而對之類是也。進退。內則所謂。在父母之所。進退周旋愼齊。曲禮所謂。凡與客入者。每門讓於客之類是也。禮。習於度數之節文。所以敎之中也。樂。明於聲音之高下。所以敎之和也。射法。一弓挾四矢。驗其中否。以觀德行。御法。一車乘四馬。御者執轡。立於車上。欲調習不失驅馳之正也。書。書字之體。可以見心畫。數。算數之法。可以盡物變。周禮大司徒。所以敎萬民而賓興之者。始以六德。繼以六行。後及於六藝。非八歲以上者。所能盡究其事。不過使曉其名物而已。故上三者言節。有品節存焉。下六者言文。文者。名物之謂也。非其事也。&amp;lt;br/&amp;gt;&lt;br /&gt;
:파양 제씨가 말했다: &amp;quot;'쇄소'는 &amp;lt;내칙&amp;gt;의 이른바 '닭이 막 울거든 집과 뜰에 물을 뿌리고 쓴다'&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내칙&amp;gt; 凡內外，雞初鳴，咸盥漱，衣服，斂枕簟，灑掃室堂及庭，布席，各從其事。&amp;lt;/ref&amp;gt;, &amp;lt;곡례&amp;gt;의 이른바 '어른을 위해 청소하는 [예절은 반드시] 빗자루를 쓰레받기 위에 두고서 소매로 빗자루 앞을 막고 [쓸면서] 물러나 [먼지가 어른에게 이르지 않게 하며] 쓰레받기를 자신을 향하게 하여 쓸어담든다'&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곡례상&amp;gt; 凡為長者糞之禮，必加帚於箕上，以袂拘而退；其塵不及長者，以箕自鄉而扱之。&amp;lt;/ref&amp;gt;는 것 따위가 이것이다. '응대'는 &amp;lt;내칙&amp;gt;의 이른바 '부모·[시부모가 계신] 곳에서 명하시거든 길고 짧게(應·唯) 공경스럽게 대답한다'&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내칙&amp;gt; 在父母舅姑之所，有命之，應唯敬對。&amp;lt;/ref&amp;gt;, &amp;lt;곡례&amp;gt;의 이른바 '장자가 칼은 등에 진 듯, 칼을 찬 듯 입가에 대고 말씀하시거든, 입을 가리고 대답한다'&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곡례상&amp;gt; 長者與之提攜，則兩手奉長者之手。負劍辟咡詔之，則掩口而對。&amp;lt;/ref&amp;gt;&amp;lt;sub&amp;gt;'負'는 등에 지는 것이고, '劍'은 옆에 차는 것이다. 입과 귀 사이를 '咡'라고 하니, '辟咡詔之'는 머리를 숙여 그에게 말하는 것이다.&amp;lt;/sub&amp;gt;따위가 이것이다. '진퇴'는 &amp;lt;내칙&amp;gt;의 이른바 '부모·[시부모가 계신] 곳에서는 진퇴와 행동을 삼간다'&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내칙&amp;gt; 進退周旋慎齊。&amp;lt;/ref&amp;gt;, &amp;lt;곡례&amp;gt;의 이른바 '무릇 손님과 들어갈 때에는 문마다 손님에게 양보한다'&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곡례상&amp;gt; 凡與客入者，每門讓於客。&amp;lt;/ref&amp;gt;는 것 따위가 이것이다. '예'는 도수의 절차를 익히는 것이니, '中'을 가르치는 과정이고, '악'은 음악의 고하를 밝히는 것이니, '和'를 가르치는 과정이다. 활쏘는 법은 활 하나에 화살 네 개를 가지고서 적중 여부를 시험해 그의 덕행을 살피는 것이다. 수레 모는 법은 한 수레에 말 네 마리를 매고, 모는 사람이 고삐를 쥐고 수레 위에 서서 바른 운전법을 잃지 않기를 연습하려는 것이다. '서'는 글자 쓰는 체계이니, '心畫'&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指書面文字。  ▶ 漢 揚雄 《法言‧問神》： “言， 心聲也；書， 心畫也。 聲畫形， 君子小人見矣。” &amp;lt;/ref&amp;gt;를 볼 수 있고, '수'는 계산법이니, 사물의 변화를 다할 수 있다. &amp;lt;주례&amp;gt; &amp;lt;대사도&amp;gt;에 따르면, 만민을 가르치고 우대하는 것 방법은 육덕으로 시작하고 육행으로 이으며 육예에 미치는데,&amp;lt;ref&amp;gt;&amp;lt;주례&amp;gt; &amp;lt;지관사도&amp;gt; 以鄉三物教萬民而賓興之：一曰六德，知、仁、聖、義、忠、和；二曰六行，孝、友、睦、姻、任、恤；三曰六藝，禮、樂、射、御、書、數。&amp;lt;/ref&amp;gt; [육예는] 8세 이상인 [아이가] 능히 그(육예) 구체적 일을 모두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들로 하여금 그저 사물의 이름을 알게 할 뿐이다. 그러므로 앞의 세 가지(쇄소·응대·진퇴)에서는 '예절(灑掃應對進退之節)'이라고 말했으니 구체적 절차(品節)가 있는 것이요, 뒤의 여섯 가지에서는 '이름(禮樂射御書數之文)'이라고 말했으니, 文이라는 것은 사물의 이름을 말하니, 그 일이 아니다.&amp;quot;&lt;br /&gt;
:○勿軒熊氏曰。按大戴記保傅篇。古者年八歲。出就外舍。學小藝焉。履小節焉。束髮就大學。學大藝焉。履大節焉。註曰小學為庠門。一作虎闈。大學在王宮之東。束髮謂成童。尙書大傳曰。公卿之太子。元士之嫡子。年十三入小學。二十入大學。白虎通曰。八歲入小學。十五入大學。此太子之禮也。按年數互有不同。而朱子獨以白虎通為斷。&amp;lt;br/&amp;gt;&lt;br /&gt;
:물헌 웅씨가 말했다: &amp;quot;&amp;lt;대대례기&amp;gt; &amp;lt;보부&amp;gt;편에 '옛적에 8세가 되면 소학(外舍)에 가서 小藝를 배우고 小節을 실천한다. [成童이 되어] 상투를 묶으면(束髮) 태학에 가서 大藝를 배우고 大節을 실천한다'&amp;lt;ref&amp;gt;&amp;lt;대대례기&amp;gt; &amp;lt;보부&amp;gt; 古者年八歲而出就外舍，學小藝焉，履小節焉。束髮而就大學。學大藝焉，履大節焉。&amp;lt;/ref&amp;gt;고 하고, 그 주석에 '소학은 庠門&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 指學校。 &amp;lt;/ref&amp;gt;이니, 虎闈&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 古時國子學的代稱。 因其地在虎門之左， 故有是稱。 &amp;lt;/ref&amp;gt;라고도 한다. 태학은 왕궁의 동쪽에 있었다. 송발은 성동이다.'라고 하였으며, &amp;lt;상서&amp;gt; 대전에 이르길: '公卿의 태자와 元士의 적자가 13세가 되면 소학에 들어가고, 20세가 되면 태학에 들어간다'고 하고, &amp;lt;백호통&amp;gt;에 이르길: '8세에 소학에 들어가고, 15세에 태학에 들어가니, 이는 태자의 예이다'라고 했다. 살펴보건대, 입학연령이 서로 같지 않은데, 주자께서는 유독 &amp;lt;백호통&amp;gt;을 기준으로 판단하셨다.&amp;quot;&lt;br /&gt;
&lt;br /&gt;
及其十有五年。則自天子之元子衆子。以至公卿大夫元士之適&amp;lt;sub&amp;gt;音的&amp;lt;/sub&amp;gt;子。與凡民之俊秀。皆入大學。&amp;lt;br/&amp;gt;&lt;br /&gt;
15세가 되면 천자의 元子와 衆子로부터 공·경·대부·원사의 적자 및 뭇 백성 가운데 준수한 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태학에 들어가게 해서,&lt;br /&gt;
:新安陳氏曰。凡民惟賢者得入大學。不比&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3. 不可相比；不同於。 &amp;lt;/ref&amp;gt;小學。則無貴賤賢愚皆得入也。&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뭇 백성의 경우 오직 현명한 자만 태학에 들어갈 수 있었으니, 소학은 貴賤·賢愚와 관계없이 모두 들어갈 수 있었던 것과는 다르다.&amp;quot;&lt;br /&gt;
&lt;br /&gt;
而敎之以窮理正心修己治人之道。此又學校之敎。大小之節。所以分也。&amp;lt;br/&amp;gt;&lt;br /&gt;
窮理·正心·修己·治人의 도를 가르쳤다. 이것은 또한 학교의 가르침과 대학·소학의 제도가 구분되는 방식이다.&lt;br /&gt;
:新安陳氏曰。三代有小學大學之敎法。未有書也。天子元子。繼世有天下。衆子建為諸侯。公卿大夫元士適子。將有國家之責。皆在所敎。民之俊秀。他日亦將用之。以佐理天下國家者也。窮理。知之事。正心以下。行之事。&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삼대에는 소학·태학의 교법이 있었지만 이 텍스트는 없었다. 천자의 원자는 대를 이어 천하를 소유하고, 중자는 제후로 세워진다. 공·경·대부·원사의 적자는 장자 국가를 다스릴 책무를 갖게 되니, 모두 가르침을 받아야 할 대상에 속한다. 준수한 백성 역시 훗날 등용되어 천하·국가를 다스리는 데 보좌하는 자이다. 궁리는 앎의 일이고, 정심 이하는 실천의 일이다.&amp;quot;&lt;br /&gt;
&lt;br /&gt;
3.&amp;lt;br/&amp;gt;&lt;br /&gt;
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以學校之設。其廣如此。敎之之術。&amp;lt;sub&amp;gt;術卽法也。&amp;lt;/sub&amp;gt;其次第節目之詳又如此。而其所以為敎。則又皆本之人君躬行心得之餘。不待求之民生日用彝倫之外。&amp;lt;br/&amp;gt;&lt;br /&gt;
저 학교를 설치함에 그 범위가 넓음이 이와 같고, 가르치는 법제의 순서나 절목이 상세함이 또 이와 같았는데, 가르침으로 삼았던 것은 또한 모두 임금이 몸소 실천하고 마음으로 깨닫는 것들에 근본하고, 백성들이 날마다 쓰는 도리 밖에 것은 필요로 하지 않았다.&lt;br /&gt;
:新安陳氏曰。上言學校施敎之法。此言君身為立敎之本。卽所謂為億兆君師繼天立極者也。躬行心得。謂躬行仁義禮智之道。心得仁義禮智之德。卽行道而有得於心也。彛倫。常理也。&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앞에서는 학교에서 교육하는 방식에 대해 말했고, 여기서는 임금 자신이 가르침을 세우는(즉 교육제도를 만듦과 동시에 교육의 본보기가 되는) 근본이 됨을 말했으니, 곧 이른바 '뭇 백성의 임금이자 스승이 되어 하늘을 잇고 법도를 세운다'는 것이다. '躬行心得'은 몸소 인의예지의 도리를 실천하고, 인의예지라는 덕을 마음으로 터득하는 것이니, 즉 도를 실천해 마음으로 터득하는 것이다. '彛倫'은 일상적인 도리이다.&amp;quot;&lt;br /&gt;
&lt;br /&gt;
是以當世之人無不學。其學焉者。無不有以知其性分&amp;lt;sub&amp;gt;去聲下同&amp;lt;/sub&amp;gt;之所固有。職分之所當為。而各俛&amp;lt;sub&amp;gt;音免&amp;lt;/sub&amp;gt;焉以盡其力。&amp;lt;br/&amp;gt;&lt;br /&gt;
이 때문에 당시 사람들 가운데 배우지 않았던 자가 없었고, [태학에서] 배웠던 자들 가운데 자신의 성에 본래부터 있었던 것과 직분상 마땅히 해야할 것을 알아서 각자 노력해 자신의 힘을 다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lt;br /&gt;
:雲峯胡氏曰。前說上之所以為敎。此說下之所以為學。&amp;lt;br/&amp;gt;&lt;br /&gt;
:운봉 호씨가 말했다: &amp;quot;앞에서는 윗사람이 가르치는 방식을 말했고, 여기서는 아랫사람이 배우는 방식을 말한다.&amp;quot;&lt;br /&gt;
:○新安陳氏曰。性分固有。卽仁義禮智。是理是體。職分當為。如子職分當孝。臣職分當忠之類。是事是用。知性分職分。是知之事。俛焉盡力。是行之事。與前知性之所有而全之相照應。&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性分固有'는 곧 인의예지이니, 理이자 體이다. '職分當為'는 자식의 직분은 마땅히 효도해야 하고, 신하의 직분은 마땅히 충성해야 하는 것 등이니, 事이자 用이다. '知性分職分'은 앎의 일이고, '俛焉盡力'은 실천의 일이니, 앞의 '知性之所有而全之'와 호응된다.&amp;quot;&lt;br /&gt;
&lt;br /&gt;
此古昔盛時所以治&amp;lt;sub&amp;gt;去聲下同&amp;lt;/sub&amp;gt;隆於上。俗美於下。而非後世之所能及也。&amp;lt;br/&amp;gt;&lt;br /&gt;
이것이 과거 성대했던 때에 위에서는 통치가 훌륭하고 아래에서는 풍속이 아름다웠던 까닭이니, 후세가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lt;br /&gt;
&lt;br /&gt;
4.&amp;lt;br/&amp;gt;&lt;br /&gt;
及周之衰。賢聖之君不作。學校之政不修。敎化陵夷。風俗頹&amp;lt;sub&amp;gt;徒回反&amp;lt;/sub&amp;gt;敗。時則有若孔子之聖。而不得君師之位以行其政敎。於是獨取先王之法。誦而傳之。以詔後世。&amp;lt;br/&amp;gt;&lt;br /&gt;
주 왕조가 쇠퇴하자 성현다운 임금이 흥기하지 않고 교육 정책이 닦이지 않아, 교화는 쇠퇴했고 풍속은 타락했다. 이 때 공자 같은 성인이 계셨지만 임금이자 스승으로서의 지위를 얻어 정치와 가르침을 행할 수 없으셨다. 이에 공자께서는 오직 선왕의 법도를 취해 이를 외고 전달해 후세에게 알려주셨다.&lt;br /&gt;
:新安陳氏曰。皇帝生當天地氣運盛時。所以達而在上。以身為敎。而道行於當世。孔子當天地氣運衰時。不免窮而在下。以言為敎。傳諸其徒。而道明於後世而已。&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황제가 살아있을 때에는 천지의 기운이 성대한 때를 만나 현달하여 임금의 자리에 있게 되었으므로, 몸소 가르침을 행해 도가 당시에 행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공자께서는 천지의 기운이 쇠한 때를 만나 곤궁하여 아랫자리에 있음을 면하지 못했으므로,  말로 가르침을 행해 제자들에게 전했고 도가 후세에나 밝혀질 수 있었을 뿐이다.&amp;quot; &lt;br /&gt;
&lt;br /&gt;
若曲禮少&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儀內則弟子職諸篇。固小學之支流餘裔&amp;lt;sub&amp;gt;餘制反&amp;lt;/sub&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곡례&amp;gt;·&amp;lt;소의&amp;gt;·&amp;lt;내칙&amp;gt;·&amp;lt;제자직&amp;gt; 등의 여러 편은 본래 소학의 지류이자 말단이지만,&lt;br /&gt;
:○番易齊氏曰。曲禮少儀內則。見禮記。弟子職。見管子。此四篇作於春秋時。三代小學之全法。僅存其一二。故曰支流餘裔。支流。水之旁出而非正流者。餘裔。衣裾之末也。&amp;lt;br/&amp;gt;&lt;br /&gt;
:파양 제씨가 말했다: &amp;quot;&amp;lt;곡례&amp;gt;·&amp;lt;소의&amp;gt;·&amp;lt;내칙&amp;gt;은 &amp;lt;예기&amp;gt;에 보이고, &amp;lt;제자직&amp;gt;은 &amp;lt;관자&amp;gt;에 보인다. 이 네 편은 춘추 시대에 지어졌다. 삼대 소학의 전체 교법 가운데 겨우 한두 가지만 보존되었으므로 '支流·餘裔'라고 한 것이다. '지류'는 물이 옆으로 흘러나와 바른 줄기가 아닌 것이고, '餘裔'는 옷자락 끝이다.&amp;quot;&lt;br /&gt;
&lt;br /&gt;
而此篇者。則因小學之成功。以著大學之明法。外有以極其規模之大。而內有以盡其節目之詳者也。&amp;lt;br/&amp;gt;&lt;br /&gt;
이 편(&amp;lt;대학&amp;gt;)은 소학에서 이룬 공부를 기반으로 태학의 밝은 교법을 드러내는 것이니, 밖으로는 規模의 큼을 지극히 하고, 안으로는 節目의 상세함을 다한다.&amp;quot;&lt;br /&gt;
:問外有以極其規模之大。內有以盡其節目之詳。朱子曰。這箇須先識得外面一箇規模如此大了。而內做工夫以實之。凡人為學。便當以[明]&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4 &amp;lt;대학1&amp;gt; 問：「外有以極其規模之大，內有以盡其節目之詳。」曰：「這丢須先識得外面一丢規模如此大了，而內做工夫以實之。所謂規模之大，凡人為學，便當以『明明德，新民，止於至善』，及『明明德於天下』為事，不成只要獨善其身便了。須是志於天下，所謂『志伊尹之所志，學顏子之所學也』。所以大學第二句便說『在新民』。」&amp;lt;/ref&amp;gt;明德新民止於至善。及明明德於天下為事。不成只要獨善其身便了。須是志於天下。所謂志伊尹之所志。學顔子之所學也。所以大學第二句。便說在新民。&amp;lt;br/&amp;gt;&lt;br /&gt;
:&amp;quot;外有以極其規模之大。內有以盡其節目之詳。&amp;quot;에 대해 물었다.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이는 반드시 밖의 규모가 이처럼 큼을 먼저 알고서 안으로 공부를 해 채워야 한다. 무릇 사람이 학문한다면 마땅히 '明明德'·'新民'·'止於至善'해서 '明明德於天下'함을 일삼아야지, 그저 자신만 선하게 해서는 안 된다.&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진심상&amp;gt; 9. 古之人，得志，澤加於民；不得志，脩身見於世。窮則獨善其身，達則兼善天下。&amp;lt;/ref&amp;gt; 반드시 천하에 뜻을 두어야 하니, 이른바 '이윤이 지향한 것을 지향하고, 안연이 배운 것을 배우라'&amp;lt;ref&amp;gt;&amp;lt;通書&amp;gt; &amp;lt;志學第十&amp;gt; 志伊尹之所志。學顔子之所學也。&amp;lt;/ref&amp;gt;는 것이다. 그러므로 &amp;lt;대학&amp;gt;의 두 번째 구절에서 '新民'을 설하고 있는 것이다.&amp;quot; (1. 공부 과정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공부의 공효는 사회/국가/천하에 미친다. 즉 전자가 節目之詳이고 후자가 規模之大이다.)&lt;br /&gt;
:○新安陳氏曰。規模之大。指三綱領。節目之詳。指八條目。孔子時。方有大學一章之經。&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規模之大'는 삼강령을 가리키고, '節目之詳'은 팔조목을 가리킨다. 공자 때가 돼서야 비로소 &amp;lt;대학&amp;gt; 1장의 경문이 있게 되었다.&amp;quot; (2. 삼강령이 대원칙이고, 팔조목이 그에 대한 구체적 실천 방법이다.  즉 전자가 規模之大이고 후자가  節目之詳이다.)&lt;br /&gt;
:○東陽許氏曰。規模節目。以三綱八條對言。則三綱為規模。八條為節目。謂八條卽三綱中事也。獨以八條言之。則平天下為規模。上七條為節目。平天下是大學之極功。然須是有上七條。節節做工夫。行至于極。然後可以天下平。&amp;lt;br/&amp;gt;&lt;br /&gt;
:동양 허씨가 말했다: &amp;quot;'規模'와 '節目'을 삼강령과 팔조목으로 대대해서 말하면, 삼강령이 '規模'이고 팔조목이 '節目'이니, 팔조목은 곧 삼강령 안의 일이다. 오직 팔조목만 말한다면 '平天下'가 '規模'가 되고, 앞의 일곱 조목은 '節目'이 된다. '平天下'는 &amp;lt;대학&amp;gt;의 궁극적 공효지만, 앞의 일곱 조목마다 공부해서 그 실천이 지극한 경지에 이른 연후에야 천하가 평안해질 수 있다.&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4 &amp;lt;대학1&amp;gt; 明德，新民，便是節目；止於至善，便是規模之大。(3. 止於至善이 궁극적 목표이고,  明德，新民은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두 단계의 세부 과정이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三千之徒。蓋莫不聞其說。而曾氏之傳獨得其宗。於是作為傳&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義。以發其意。&amp;lt;br/&amp;gt;&lt;br /&gt;
[공자의] 삼천 제자 가운에 이러한 설을 듣지 못한 자가 없었지만, 증자가 전수받은 것만이 그 종지를 얻었다. 이에 [&amp;lt;대학&amp;gt;의] 傳義(文義에 대한 해설)를 지어 공자의 뜻을 드러냈다.&amp;lt;ref&amp;gt;義와 意의 차이: &amp;lt;논어집주&amp;gt; &amp;lt;讀論語孟子法&amp;gt; 程子曰：「凡看文字，須先曉其文義，然後可以求其意。未有不曉文義而見意者也。」&amp;lt;/ref&amp;gt;&lt;br /&gt;
:曾子方有今大學之傳。以發明孔子之意。&amp;lt;br/&amp;gt;&lt;br /&gt;
:증자가 비로소 오늘날의 &amp;lt;대학&amp;gt;의 傳을 두어 공자의 뜻을 발명했다.&lt;br /&gt;
&lt;br /&gt;
及孟子沒而其傳泯&amp;lt;sub&amp;gt;音閔&amp;lt;/sub&amp;gt;焉。則其書雖存。而知者鮮&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矣。&amp;lt;br/&amp;gt;&lt;br /&gt;
맹자가 돌아가시고 나서 전수가 민멸되어, &amp;lt;대학&amp;gt; 텍스트는 비록 남아있었지만 [그 의미를] 아는 자는 드물었다.&lt;br /&gt;
&lt;br /&gt;
5.&amp;lt;br/&amp;gt;&lt;br /&gt;
自是以來。俗儒記誦詞章之習。其功倍於小學而無用。&amp;lt;br/&amp;gt;&lt;br /&gt;
이때부터 속유들이 記誦·詞章을 익히는 공력이 소학에 배가 되었으나 쓸모가 없었다.&lt;br /&gt;
:朱子曰。自聖學不傳。為士者不知學之有本。而所以求於書。不越乎記誦訓詁文詞之間。是以天下之書愈多而理愈昧。學者之事愈勤而心愈放。詞章愈麗。議論愈高。而其德業事功之實。愈無以逮乎古人。&amp;lt;br/&amp;g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聖學이 전해지지 않은 뒤로 선비들이 학문에 근본이 있음을 알지 못해, 책에서 찾는 것이라곤 記誦·訓詁·文詞 사이를 넘지 못했다. 그러므로 천하에 책이 더 많아질수록 이치는 더욱 어두워졌고, 배우는 자들이 더 열심히 노력할수록 그들의 마음은 더욱 방탕해졌으며, 詞章은 더욱 아름다워지고 議論은 더욱 고원해졌지만 德業·事功의 성과는 더욱 고인에 미치지 못했다.&amp;quot;&lt;br /&gt;
:○新安陳氏曰。記誦。口耳之學。詞章。枝葉之文。&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記誦'은 단순 암기의 학문(口耳之學)이요, '詞章'은 지엽적인(하찮은) 글쓰기(枝葉之文)이다.&amp;quot;&lt;br /&gt;
&lt;br /&gt;
異端虛無寂滅之敎。其高過於大學而無實。&amp;lt;br/&amp;gt;&lt;br /&gt;
이단의 虛無(도가)·寂滅(불교)한 가르침은 고원하기가 &amp;lt;대학&amp;gt;을 넘어섰으나 실질이 없었고,&lt;br /&gt;
:問異端何以高而無實。朱子曰。吾儒便著讀書。逐一就事物上理會道理。異端便都掃了。只恁地空空寂寂。便道事都了。若將些子事付之。便都沒奈何。&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이단은 어째서 고원하지만 실질이 없습니까?&amp;quo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우리 유가는 책을 읽어 하나하나 사물에서 도리를 이해하지만, 이단은 [그런 것들을] 모두 쓸어버리고는 그저 이처럼 거듭 비우고 거듭 고요하게만 하고서 '일이 모두 끝났다'고 말하는데, 만약 약간의 일이라도 맡기면 전혀 어찌하지 못한다.&amp;quot;&lt;br /&gt;
:○雲峯胡氏曰。此之虛。虛而有。彼之虛。虛而無。此之寂。寂而感。彼之寂。寂而滅。所以高而無實。&amp;lt;br/&amp;gt;&lt;br /&gt;
:운봉 호씨가 말했다: &amp;quot;여기(유가)의 '虛'는 虛하면서도 有하지만, 저기(도가)의 '虛'는 虛하면서 無이다. 여기(유가)의 '寂'는 寂하면서도 感하지만,&amp;lt;ref&amp;gt;&amp;lt;주역&amp;gt; &amp;lt;계사전상&amp;gt; 寂然不動，感而遂通天下之故。&amp;lt;/ref&amp;gt; 저기(도가)의 '寂'는 寂하면서 滅이다. 그래서 [저들은] 고원하면서도 실질이 없는 것이다.&amp;quot;&lt;br /&gt;
:○新安陳氏曰。老氏虛無。佛氏寂滅。&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老氏(도가)가 '虛無'이고, 佛氏(불교)가' 寂滅'이다.&amp;quot;&lt;br /&gt;
&lt;br /&gt;
其他權謀術數。一切以就功名之說。與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百家衆技之流。所以惑世誣民。充塞&amp;lt;sub&amp;gt;先則反下同&amp;lt;/sub&amp;gt;仁義者&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등문공하&amp;gt; 楊墨之道不息，孔子之道不著，是邪說誣民，充塞仁義也。&amp;lt;/ref&amp;gt;。又紛然雜出乎其間。&amp;lt;br/&amp;gt;&lt;br /&gt;
나머지 권모술수를 [부려] 공명을 추구하는 일체의 설과 저 각종 재주를 [부리는] 제자백가 부류들이 혹세무민하여 인의(유가)를 막는 경우가 또 어지럽게 그 사이에서 뒤섞여 나와,&lt;br /&gt;
:朱子曰。秦漢以來。隨世以就功名者。未必自其本而推之。是以天理不明而人欲熾。道學不傳而異端起。人挾其私智。以馳騖於一世。&amp;lt;br/&amp;g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秦漢이래로 시대에 따라 功名을 좇는 자들이 반드시 근본으로부터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천리는 밝혀지지 않고 인욕은 타올랐으며, 도학은 전해지지 않고 이단은 흥기해, 사람들은 자신의 꾀(私智)에 의지해 한 시대를 풍미했다.&amp;quot;&lt;br /&gt;
:○新安陳氏曰。權謀術數。謂管仲商鞅等。百家衆技。如九流等是也。&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權謀術數'는 관중·상앙 등을 말하고, '百家衆技'는 예를 들면 '九流'&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先秦的九個學術流派。▶ 《漢書‧敘傳下》： “ 劉向 司籍， 九流以別。” ▶ 顏師古 注引 應劭 曰： “儒、道、陰、陽、法、名、墨、從橫、雜、農， 凡九家。”&amp;lt;/ref&amp;gt; 등이 이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使其君子。不幸而不得聞大道之要。其小人。不幸而不得蒙至治之澤。晦盲&amp;lt;sub&amp;gt;眉庚反&amp;lt;/sub&amp;gt;否塞。&amp;lt;br/&amp;gt;&lt;br /&gt;
군자(치자)들로 하여금 불행히 위대한 도의 핵심을 듣지 못하게 하였고, 소인(피치자)들로 하여금 불행히 이상적 통치의 은택을 입지 못하게 해, [그들로 하여금] 어둡고 막히며,&lt;br /&gt;
:東陽許氏曰。如月之晦。如目之盲。如氣之否。如川之塞。晦盲。言不明。否塞。言不行。&amp;lt;br/&amp;gt;&lt;br /&gt;
:동양 허씨가 말했다: &amp;quot;달이 그믐인 것 같고, 눈이 먼 것 같으며, 기가 막힌 것 같고, 개울이 막힌 것 같은 것이다. '晦盲'은 밝지 않은 것(不明, 밝혀지지 않은 것)이고, '否塞'은 흐르지 않는 것(不行, 실천되지 않는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反覆沈&amp;lt;sub&amp;gt;俗作沉非&amp;lt;/sub&amp;gt;痼&amp;lt;sub&amp;gt;音固&amp;lt;/sub&amp;gt;。&amp;lt;br/&amp;gt;&lt;br /&gt;
엎어지고(反覆) 잠기고(沈) 병들게 되었는데(痼), &lt;br /&gt;
:○東陽許氏曰。反覆。是展轉愈深而不可去底意。沈。如物沒於水而不可浮。痼。如病著於身而不可愈。&amp;lt;br/&amp;gt;&lt;br /&gt;
:동양 허씨가 말했다: &amp;quot;'反覆'은 더욱 깊은 곳으로 굴러 떨어져 떠나지 못한다는 뜻이다. '沈'은 사물이 물에 잠겨 떠오르지 못하는 것과 같다. '痼'는 몸에 병이 나 나을 수 없는 것과 같다.&amp;quot;&lt;br /&gt;
&lt;br /&gt;
以及五季&amp;lt;sub&amp;gt;謂梁唐晉漢周。五代季世。&amp;lt;/sub&amp;gt;之衰。而壞亂極矣。&amp;lt;br/&amp;gt;&lt;br /&gt;
[당나라 이후] 五季의 쇠퇴한 시절에 이르러 혼란이 극에 달했다. &lt;br /&gt;
:雲峯胡氏曰。惑世誣民。使斯民昏而不能知。充塞仁義。使斯道壅而不能行。晦盲。全無能知者。否塞。全無能行者。所以為壞亂之極也。大道之要。是大學書中所載者。至治之澤。是自大學中流出者。上之人無能知此大學。故君子不得聞大道之要。上之人無能行此大學。故小人不得蒙至治之澤。&amp;lt;br/&amp;gt;&lt;br /&gt;
:운봉 호씨가 말했다: &amp;quot;'혹세무민'해서 이 백성들로 하여금 어리석어 알지 못하게 하고, '인의를 막아(充塞仁義)' 이 도로 하여금 막혀 행해지지 못하게 했다. '晦盲'은 전혀 알 수 없는 것이고, '否塞'은 전혀 실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혼란의 극이 된 것이다. '大道之要'는 &amp;lt;대학&amp;gt;에 기록된 것이고, '至治之澤'은 &amp;lt;대학&amp;gt;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윗사람이 이 &amp;lt;대학&amp;gt;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군자가 위대한 도의 핵심을 듣지 못했고', 윗사람이 이 &amp;lt;대학&amp;gt;을 실천하지 못했으므로 '소인이 완벽한 통치의 은택을 입지 못했다'.&amp;quot;&lt;br /&gt;
&lt;br /&gt;
6.&amp;lt;br/&amp;gt;&lt;br /&gt;
天運循環。無往不復。宋德隆盛。治敎休明。於是河南程氏兩夫子出。&amp;lt;br/&amp;gt;&lt;br /&gt;
하늘의 운수는 순환하기 때문에 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은 없으니, 송나라의 덕이 융성하여 통치와 교화가 아름답게 빛났다. 이때 하남 정씨 두 부자께서 나오셔서,&lt;br /&gt;
:伯子諱顥。字伯淳。號明道先生。叔子諱頤。字正叔。號伊川先生。&amp;lt;br/&amp;gt;&lt;br /&gt;
:첫째의 성함은 '호(顥)'이고 字는 '백순(伯淳)'이며, 號는 '명도선생(明道先生)'이다. 셋째의 성함은 '이(頤)'이고 字는 '정숙(正叔)'이며 號는 '이천선생(伊川先生)'이다.&lt;br /&gt;
&lt;br /&gt;
而有以接乎孟氏之傳。實始尊信此篇而表章之。旣又為&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之次其簡編。發其歸趣&amp;lt;sub&amp;gt;音娶&amp;lt;/sub&amp;gt;。&amp;lt;br/&amp;gt;&lt;br /&gt;
맹자의 전수를 이으셨으니, 실질적으로 처음 이 편(&amp;lt;대학&amp;gt;)을 존신하시고 표창하신 것이다. 이어서 또 &amp;lt;대학&amp;gt;에 대해서 텍스트의 차례를 손보고 그 의미를 드러내셨는데, &lt;br /&gt;
:○新安陳氏曰。孟子沒而其傳泯焉。至二程夫子出。而絶學復傳。於是始拔大學篇於戴記之中而尊信之。又整頓其錯亂之簡而發揮之。但未成書耳。&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맹자께서 돌아가시자 전수되던 것이 민멸됐었는데, 이정 선생이 나오시고 나서 끊어졌던 학문이 다시 전해졌다. 이때 [이정 선생께서] 처음 &amp;lt;소대례기&amp;gt; 안에서 &amp;lt;대학&amp;gt;편을 독립시켜 존신하셨고, 또 뒤섞인 죽간을 정돈해 [그 의미를] 드러내셨다. 그러나 책을 완성하시지는 않았다.&amp;quot;&lt;br /&gt;
&lt;br /&gt;
然後古者大學敎人之法。&amp;lt;br/&amp;gt;&lt;br /&gt;
그런 연후에야 옛 태학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던 교법과 &lt;br /&gt;
:此八字收拾序文起句。&amp;lt;br/&amp;gt;&lt;br /&gt;
:이 여덟 글자(古者大學敎人之法)는 &amp;lt;대학장구서&amp;gt; 앞쪽 구절을 모은 것이다.&lt;br /&gt;
&lt;br /&gt;
聖經賢傳&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之指。粲然復&amp;lt;sub&amp;gt;扶又反&amp;lt;/sub&amp;gt;明於世。雖以熹之不敏。亦幸私淑而與&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有聞焉。&amp;lt;br/&amp;gt;&lt;br /&gt;
聖經賢傳(성인이 지은 經에 현인이 傳을 달아 해석함)의 뜻이 찬연하게 다시 세상에 밝혀졌으니, 비록 불민한 나도 다행히 사숙해서&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이루하&amp;gt; 22. 予未得為孔子徒也，予私淑諸人也。&amp;lt;/ref&amp;gt; 그것을 들을 수 있었다&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자로&amp;gt; 14. 雖不吾以，吾其與聞之。&amp;lt;/ref&amp;gt;. &lt;br /&gt;
:新安陳氏曰。孟子云。予未得為孔子徒也。予私淑諸人也。此用其語。謂聞程子之敎於延平李先生諸公。&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맹자께서 '나는 공자의 제자가 될 수는 없었지만, [자사의 제자에게]&amp;lt;ref&amp;gt;&amp;lt;맹자집주&amp;gt; &amp;lt;이루하&amp;gt; 22. 人，謂子思之徒也。&amp;lt;/ref&amp;gt; 사숙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을 인용한 것이다. 정자의 가르침을 연평 선생 등 여러 공께 들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amp;quot;&lt;br /&gt;
:○東陽許氏曰。私淑者。私善於人。孟子不得為孔子之徒。而私善於再傳之子思。朱子不得為程子之徒。而私善於三傳之李氏。此私淑字最切。&amp;lt;br/&amp;gt;&lt;br /&gt;
:동양 허씨가 말했다: &amp;quot;'私淑'이라는 것은 남을 통해 스스로를 선하게 하는 것이다. 맹자께서는 공자의 제자가 될 수 없어서 [공자의] 재전제자인 자사를 통해 스스로를 선하게 하셨고, 주자께서는 정자의 제자가 될 수 없어서 [정자의] 삼전제자인 연평 선생(李氏)을 통해 스스로를 선하게 하셨다. 여기의 '私淑'이라는 단어가 가장 절실하다.&amp;quot;&lt;br /&gt;
&lt;br /&gt;
顧其為書猶頗放失。是以忘其固陋。采而輯&amp;lt;sub&amp;gt;音集&amp;lt;/sub&amp;gt;之。間亦竊附己意。補其闕略。&amp;lt;br/&amp;gt;&lt;br /&gt;
그런데 &amp;lt;대학&amp;gt; 텍스트가 여전히 상당히 방실되었기 때문에, 내 고루함을 [잠시] 잊고서 [주제넘게 방실된 부분을 다른 곳에서] 찾아 모으고 그 사이에 다시 삼가 내 생각을 덧붙여 빠진 부분을 보충하고서,&lt;br /&gt;
:謂補傳之第五章。&amp;lt;br/&amp;gt;&lt;br /&gt;
:傳의 제5장을 보충한 것을 말한다.&lt;br /&gt;
&lt;br /&gt;
以俟後之君子。極知僭踰。無所逃罪。然於國家化民成俗之意。學者修己治人之方。則未必無小補云。&amp;lt;br/&amp;gt;&lt;br /&gt;
훗날의 군자를 기다린다. 주제 넘는 짓이라 죄를 피할 길이 없음을 너무나 잘 알지만, 국가가 백성을 교화시키고 풍속을 이루는 뜻과 배우는 자가 수기치인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조그만 보탬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lt;br /&gt;
:脩己治人四字。包盡大學體用綱目。&amp;lt;br/&amp;gt;&lt;br /&gt;
:'脩己治人' 네 자는 &amp;lt;대학&amp;gt;의 體用·綱目을 모두 포괄한다.&lt;br /&gt;
&lt;br /&gt;
7.&amp;lt;br/&amp;gt;&lt;br /&gt;
淳熙己酉二月甲子新安朱熹序。&amp;lt;br/&amp;gt;&lt;br /&gt;
순희 기유년(1189) 2월 갑자일에 신안 주희가 서문을 쓴다.&lt;br /&gt;
:新安陳氏曰。此序分六節。精義尤在第二節。曰知其性之所有而全之。曰敎之以復其初是也。朱子論學。必以復性初為綱領要歸。論語首註學字。曰人性皆善。曰明善而復其初。小學題辭曰。仁義禮智。人性之綱。曰德崇業廣。乃復其初。此書首釋明明德。亦曰遂明之以復其初。與此序凡四致意焉。聖人盡性。盡其本全者也。學者復其性。復而後能全也。欲知性之所有。在格物致知。欲復全其性之所有。在誠意正心脩身。以力於行而已。讀此序此書者。其以知性之所有。與復其性初為要領。以知行為工夫而融貫其旨云。&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이 &amp;lt;대학장구서&amp;gt;는 여섯 단락으로 나눠지는데,&amp;lt;ref&amp;gt;신안 진씨는 &amp;quot;大學之書，古之大學所以教人之法也。&amp;quot;을 한 단락으로, 다음 &amp;quot;蓋自天降生民，則既莫不與之以仁義禮智之性矣。然其氣質之稟或不能齊，是以不能皆有以知其性之所有而全之也。一有聰明睿智能盡其性者出於其閒，則天必命之以為億兆之君師，使之治而教之，以復其性。此伏羲、神農、黃帝、堯、舜，所以繼天立極，而司徒之職、典樂之官所由設也。&amp;quot;을 또 한 단락으로 본 듯 하다.&amp;lt;/ref&amp;gt; 핵심적 의미(精義)는 두 번째 단락에 있으니, '모든 사람이 性에 있는 [인의예지를] 알고서 이를 온전히 한다', '가르쳐 자신의 처음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것이 이것이다. 주자께서 학문을 말씀하실 때에는 반드시 '본성을 회복하는 것(復性)'을 강령·핵심으로 삼으셨다. &amp;lt;논어&amp;gt;에서 '學'자에 주석을 다시길: '사람의 본성은 모두 선하다', '선을 밝혀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amp;lt;ref&amp;gt;&amp;lt;논어집주&amp;gt; &amp;lt;학이&amp;gt; 學之為言效也。人性皆善，而覺有先後，後覺者必效先覺之所為，乃可以明善而復其初也。&amp;lt;/ref&amp;gt;고 하셨고, &amp;lt;소학제사&amp;gt;에서 말씀하시길: '인의예지는 사람 본성의 벼리이다', '덕이 높고 업이 넓어야 처음으로 돌아간다'고 하셨으며, 이 책(&amp;lt;대학장구&amp;gt;)의 처음에 '명명덕'을 풀이하시며 또한 '마침내 밝혀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故學者當因其所發而遂明之，以復其初也。&amp;lt;/ref&amp;gt;고 하셨으니, 이 &amp;lt;대학장구서&amp;gt;까지 총 네 곳에서 자신의 뜻을 드러내셨다. '聖人盡性'은 본래 온전한 것을 지극히 하는 것이요, '學者復其性'은 돌아간 이후에야 온전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성에 있는 것을 알고자 하는 것은 格物·致知에 달렸고, 성에 있는 것을 다시 온전히 하고자 하는 것은 誠意·正心·脩身해 실천에 힘을 다하는 것에 달려있을 뿐이다. 이 &amp;lt;대학장구서&amp;gt;와 이 &amp;lt;대학&amp;gt;을 읽는 자는 '성에 있는 것을 아는 것'과 '본성(性初)으로 돌아가는 것'을 핵심으로 삼고 知行을 공부 방법으로 삼아서 그 종지를 완전히 깨달을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대학 경문/전문/혹문==&lt;br /&gt;
&lt;br /&gt;
원전 [https://www.kanripo.org/text/KR1h0043/000#15a 링크]&lt;br /&gt;
&lt;br /&gt;
일단 &amp;lt;대학장구대전&amp;gt;는 세주 가운데 주자와 주자 이전 학자의 것만 번역하고, &amp;lt;대학혹문&amp;gt;은 모든 세주를 번역하겠다.&amp;lt;br/&amp;gt;&lt;br /&gt;
번역이 되지 않는 구절에는 '''물음표 두 개(&amp;quot;??&amp;quot;)'''를 달아놓아 추후에 Ctrl+F로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한다.&lt;br /&gt;
&lt;br /&gt;
&amp;lt;big&amp;gt;'''大學章句大全'''&amp;lt;/big&amp;gt;&lt;br /&gt;
::大，舊音泰，今讀如字。&lt;br /&gt;
:子程子曰：「大學，孔氏之遺書，而初學入德之門也。」於今可見古人為學次第者，獨賴此篇之存，而論、孟次之。學者必由是而學焉，則庶乎其不差矣。&lt;br /&gt;
:정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amp;lt;대학&amp;gt;은 공자께서 남기신 책으로 초학자들이 [성인의] 마음 공부로 들어가는 문이다.&amp;quot;&amp;lt;ref&amp;gt;『수언』3-31 子曰: 大學孔子之遺言也. 學者由是而學則不迷於入德之門也.&amp;lt;/ref&amp;gt; 옛 분들이 학문 체계 가운데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은 오직 남아있는 이 책에 기대고 있고, &amp;lt;논어&amp;gt;와 &amp;lt;맹자&amp;gt;는 [&amp;lt;대학&amp;gt;보다는] 부차적이다. 배우는 자들은 반드시 &amp;lt;대학&amp;gt;을 통해 배워야 하니, 그렇게 한다면 어긋남이 없을 것이다.&lt;br /&gt;
::龜山楊氏曰: &amp;quot;大學一篇, 聖學之門戸, 其取道&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 選取經由的道路。&amp;lt;/ref&amp;gt;至徑. 故二程多命'初學者讀之'.&amp;quot;&lt;br /&gt;
::귀산 양씨가 말했다: &amp;quot;&amp;lt;대학&amp;gt; 한 편은 성학의 문이니, [성학으로의] 길을 보여줌이 매우 직접적이다. 그러므로 이정 선생께서 여러 번 '초학자는 &amp;lt;대학&amp;gt;을 읽으라'고 하셨다.&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大學首尾貫通, 都無所疑, 然後可及語孟. 又無所疑然後可及中庸.&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amp;lt;대학&amp;gt;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하여 전혀 의심나는 바가 없게 된 연후에 &amp;lt;논어&amp;gt;와 &amp;lt;맹자&amp;gt;를 읽어야 하고, 또 &amp;lt;논어&amp;gt;와 &amp;lt;맹자&amp;gt;에 의심나는 바가 없게 된 연후에 &amp;lt;중용&amp;gt;을 읽어야 한다.&amp;quot;&lt;br /&gt;
::○某要人先讀大學以定其規模; 次讀論語以及其根本; 次讀孟子以觀其發越&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7. 闡述；闡發。&amp;lt;/ref&amp;gt;; 次讀中庸以求古人之微妙.&lt;br /&gt;
::나는 사람들에게 먼저 &amp;lt;대학&amp;gt;을 읽어 [성학의] 체계를 갖추도록 하고, 이어서 &amp;lt;논어&amp;gt;를 읽어 [성학의] 근본을 접하게 하며, 이어서 &amp;lt;맹자&amp;gt;를 읽어 맹자께서 천명하신 바를 살펴보게 하고, 이어서 &amp;lt;중용&amp;gt;을 읽어 옛 분들이 은미하고 영묘한 것에 대해 [말씀하신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經一章===&lt;br /&gt;
&lt;br /&gt;
大學之道，在明明德，在親民，在止於至善。&amp;lt;br/&amp;gt;&lt;br /&gt;
대학의 도는 명덕을 밝히는 데 달려있으며, 백성들을 새롭게 만드는 데 달려있으며, 지극한 선에 머무르는 데 달려있다.&lt;br /&gt;
:程子曰：「親，當作新。」大學者，大人之學也。明，明之也。明德者，人之所得乎天，而虛靈不昧，以具眾理而應萬事者也。&lt;br /&gt;
:정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親'은 '新'으로 써야 한다.&amp;quot;&amp;lt;ref&amp;gt;&amp;lt;정씨경설&amp;gt; &amp;lt;伊川先生改正大學&amp;gt;&amp;lt;/ref&amp;gt; '대학'이라는 것은 대인(아이가 아니라 어른)의 학문이다. '명'은 밝힘이다. '명덕'이라는 것은 인간이 하늘에서 얻은 것으로, 허령불매하면서 뭇 이치를 갖추고 만사에 대응하는 것이다. &lt;br /&gt;
::朱子曰: &amp;quot;天之賦於人物者謂之命; 人與物受之者謂之性; 主於一身者謂之心; 有得於天而光明正大者謂之明徳.&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하늘이 사람과 사물에 부여한 것을 '명'이라 하고, 사람과 사물이 받은 것을 '성'이라 하며, 일신을 주재하는 것을 '심'이라 하고, 하늘에서 얻어 빛나고 정대한 것을 '명덕'이라고 한다.&amp;quot;&lt;br /&gt;
::○問: &amp;quot;明徳是心是性?&amp;quot; 曰: &amp;quot;心與性自有分别. 靈底是心, 實底是性; 性便是那理, 心便是盛貯該載敷施發用底. 心屬火, 縁他是箇光明發動底物. 所以具得許多道理. 如向父母則有那孝出來, 向君則有那忠出來, 這便是性. 如知道事親要孝, 事君要忠, 這便是心. 張子曰: '心統性情', 此說最精密.&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명덕'은 心입니까, 性입니까?&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心과 性은 절로 구별된다. 영명한 것이 心이고, 실제적인 것이 性이며, 性은 저 理이고 心은 [理를] 싣고서 사용·발현시키는 것이다. 心은 [오행 가운데] 火에 속하니, 그것이 빛나고 발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많은 도리를 갖추고 있을 수 있다. 가령 부모를 향해서는 효성스런 마음이 생기고, 임금을 향해서는 충성스런 마음이 생기는 것은 性이고, 부모를 섬길 때 효성스러워야 하고 임금을 섬길 때 충성스러워야 함을 아는 것은 心이다. 장자께서 '心統性情'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가장 정밀하다.&amp;quot;&lt;br /&gt;
::○虚靈不昧, 便是心; 此理具足於中, 無少欠闕, 便是性; 隨感而動, 便是情.&lt;br /&gt;
::허령불매한 것이 心이고, 이 理가 내면에 온전히 갖춰져 어떠한 흠결도 없는 것이 性이며, 감각한 바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情이다.&lt;br /&gt;
::○虚靈自是心之本體, 非我所能虚靈. 耳目之視聽, 所以視聽者, 即其心也, 豈有形象? 然有耳目以視聽之, 則猶有形象也. 若心之虚靈, 何嘗有物?&lt;br /&gt;
::'허령함'은 心의 본래적 특징이니 내가 허령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눈이 보고 귀가 들음에, 보고 듣는 근거는 바로 心이니, [心의 작용에] 어찌 감각할 수 있는 점(형상)이 있겠는가? 그러나 눈과 귀가 있어 보고 듣는다는 점에서 보면 그래도 감각할 수 있는 점(형상)이 있는 것이다. 心의 허령함에 언제 감각할 수 있는 점(형상)이 있었겠는가?&lt;br /&gt;
::○只虚靈不昧四字, 説明徳意已足矣; 更說具衆理應萬事, 包體用在其中, 又却實而不為虚, 其言的確渾圎, 無可破綻&amp;lt;ref&amp;gt;2. 亦作“ 破賺 ”。 漏洞；毛病。&amp;lt;/ref&amp;gt;處.&lt;br /&gt;
::단지 '허령불매' 네 글자만으로도 '명덕'의 뜻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데, 다시 '뭇 이치를 갖추고 만사에 응한다'고 말해 그 안에 체용을 포괄해 다시 實하여 虚가 되지 않아, 말이 적확하고 온전해져 흠잡을 수 있는 곳이 없게 되었다.&lt;br /&gt;
:但為氣稟所拘，人欲所蔽，則有時而昏；然其本體之明，則有未嘗息者。故學者當因其所發而遂&amp;lt;ref&amp;gt;21. 全部；完全；盡。&amp;lt;/ref&amp;gt;明之，以復其初也。&lt;br /&gt;
:다만 기품에 구속되고 인욕에 가려져 때에 따라 어두워진다. 그러나 명덕 본래 상태의 밝음은 그친 적이 없다. 그러므로 배우는 자는 명덕이 드러난 바에 따라 온전히 밝혀 그 처음 상태를 회복해야 한다.&lt;br /&gt;
::朱子曰: &amp;quot;明徳未嘗息, 時時發見於日用之間. 如見孺子入井而怵惕, 見非義而羞惡, 見賢人而恭敬, 見善事而歎慕, 皆明徳之發見也. 雖至惡之人, 亦時有善念之發. 但當因其所發之端, 接續光明之.&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명덕은 그친 적이 없으니, 때로 일상에서 발현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우물에 기어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는 마음이 들거나,&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공손추상&amp;gt; 6. 今人乍見孺子將入於井，皆有怵惕惻隱之心。非所以內交於孺子之父母也，非所以要譽於鄉黨朋友也，非惡其聲而然也。由是觀之，無惻隱之心，非人也；&amp;lt;/ref&amp;gt; 불의를 보고 부끄럽고 미워하는 마음이 들거나, 현인을 보고 공경하는 마음이 들거나, 선한 일을 보고 찬탄하는 마음이 드는 것 모두 명덕이 발현한 것이다. 비록 매우 악한 사람이라도 때로 선한 마음이 발현한다. 다만 명덕이 발현한 단서를 따라 계속 밝혀나가야 한다.&amp;quot;&lt;br /&gt;
::○明徳謂本有此明徳也. 孩提之童無不知愛其親, 及其長也, 無不知敬其兄. 其良知良能, 本自有之, 只為私欲所蔽, 故暗而不明. 所謂明明徳者, 求所以明之也. 譬如鏡焉: 本是箇明底物, 縁為塵昏, 故不能照. 須是磨去塵垢, 然後鏡復明也.&lt;br /&gt;
::'명덕'은 본래 이러한 밝은 덕이 있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도 제 부모를 사랑할 줄 모르는 자가 없고, 그가 좀 자라서는 제 형을 공경할 줄 모르는 자가 없다. 그러한 양지·양능&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진심상&amp;gt; 15. 孟子曰：「人之所不學而能者，其良能也；所不慮而知者，其良知也。孩提之童，無不知愛其親者；及其長也，無不知敬其兄也。&amp;lt;/ref&amp;gt;은 본래부터 가지고 있지만 사욕에 가려졌기 때문에 어두워 밝지 못한 것이다. 이른바 '명명덕'이라는 것은  명덕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거울에 비유해보자면, 거울은 본래 밝은 사물이지만 먼지에 의해 어두워지므로 비출 수 없게 된다. 반드시 먼지를 닦아없앤 연후에야 거울이 다시 밝아질 수 있다.&lt;br /&gt;
::○明徳是一箇光明底物事. 如一把火將去照物, 則無不燭&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4. 照亮；照見。(밝게 비추다); 5. 指顯露， 呈現。(드러나다)&amp;lt;/ref&amp;gt;, 便是明徳. 若漸隠微便暗了, 吹得這火著, 便是明其明徳.&lt;br /&gt;
::명덕은 빛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불로 사물을 비추면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으니, 이것이 명덕이다. 만일 점차 은미해다보면 어두워져버리지만, [꺼지지 않도록] 이 불에 공기를 불어넣는 것이 바로 명덕을 밝히는 것이다.&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4 &amp;lt;대학1&amp;gt; 蓋所謂明德者，只是一個光明底物事。如人與我一把火，將此火照物，則無不燭。自家若滅息著，便是暗了明德；能吹得著時，又是明其明德。&amp;lt;/ref&amp;gt;&lt;br /&gt;
:新者，革其舊之謂也，言既自明其明德，又當推以及人，使之亦有以去&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其舊染之污&amp;lt;sub&amp;gt;音烏又去聲&amp;lt;/sub&amp;gt;也。&lt;br /&gt;
:'신'이라는 것은 옛 것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명덕을 스스로 밝히고 나서 다시 그것을 남에게 미뤄 그들 역시 과거에 물든 오염을 없애도록 해야함을 말한다.&lt;br /&gt;
::朱子曰: &amp;quot;此理人所均有, 非我所得私. 既自明其徳, 須當推以及人, 見人為氣與欲所昏, 豈不惻然欲有以新之?&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이 理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똑같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내가 개인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덕을 스스로 밝혔다면 모름지기 이를 남에게 미루어야 하니, 남들이 氣와 사욕에 의해 어두워진 것을 봤다면 어찌 측은해서 그들을 새롭게 만들고자 하지 않겠는가?&amp;quot;&lt;br /&gt;
::○問: &amp;quot;'明徳新民'在我, 有以新之; 至民之明其明徳, 却又在他.&amp;quot; 曰: &amp;quot;雖說是明己徳新民徳, 然其意自可參見. '明明徳於天下', 自新以新其民可知.&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명덕·신민'은 나에게 다려있으니 새롭게 할 수 있지만, '백성들이 자신의 덕을 밝히는 것'의 경우는 그들에게 달려 있습니다.&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비록 '자신의 덕을 밝히고 백성의 덕을 새롭게 하라'고 [나눠] 말하지만, 그 의미는 절로 함께 이해(參見)할 수 있다. [뒤에서] '明明徳於天下'라고 말하는 것에서 자신을 새롭게 하고서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amp;quot;&lt;br /&gt;
:止者，必至於是而不遷之意。至善，則事理當然之極也。&lt;br /&gt;
:'지'라는 것은 반드시 여기에 이르러 옮겨가지 말하는 뜻이다. '지선'은 지극히 당연한 사리이다.&lt;br /&gt;
::朱子曰: &amp;quot;說一箇止字, 又說一箇至字, 直是要到那極至處而後止. 故曰: '君子無所不用其極也.'&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止'자를 써놓고 다시 '至'자를 쓴 것은 다만 저 지극한 곳(至)에 이른 뒤에 머물라는 것(止)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지극함을 쓰지 않는 바가 없다.'&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전2장.&amp;lt;/ref&amp;gt;&amp;quot; &lt;br /&gt;
::○未至其地, 則必求其至; 既至其地, 則不當遷動而之他也. 未至此便住不可謂止; 至此不能守亦不可謂止.&lt;br /&gt;
::그러한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면 반드시 거기에 이르도록 해댜 하고, 이미 그러한 경지에 이르렀다면 움직여 다른 곳으로 가서는 안 된다. 아직 이 경지에 이르지 못했는데 머무는 것도 '止'라고 불러선 안 되고, 이 경지에 이르렀는데 지키지 못하는 것도 '止'라고 불러선 안 된다.&lt;br /&gt;
::○至善如言極好道理. 十分盡頭善在那裏, 自家須去止他. 止則善與我一; 未能止, 善自善, 我自我.&lt;br /&gt;
::'지선'은 '매우 훌륭한 도리'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십분 완전한 선이 거기에 있으면, 스스로 가서 거기에 머물러야 한다. 머무른다면 선와 내가 하나가 되겠지만, 머무르지 못한다면 '선은 선이고 나는 나'일 것이다.&lt;br /&gt;
:言明明德、新民，皆當至於至善之地而不遷。蓋必其有以盡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天理之極，而無一毫人欲之私也。此三者，大學之綱領也。&lt;br /&gt;
:'명명덕'과 '신민' 모두 지극히 선한 경지에 이르러 옮겨가지 말아야 함을 말한 것이다. 대개 반드시 지극한 천리를 온전히 밝혀 한 터럭의 자기중심적 사욕이 없게 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amp;lt;대학&amp;gt;의 강령이다.&lt;br /&gt;
::朱子曰: &amp;quot;明徳新民, 非人力私意所為. 本有一箇當然之則, 過之不可, 不及亦不可. 如孝是明徳, 然自有當然之則, 不及固不是; 若過其則必有刲股之事. 須是到當然之則, 處而不遷, 方是止於至善. '止至善'包明徳新民, 己也要止於至善, 民也要止於至善. 在他雖未能, 在我所以望他則不可不如是也.&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명덕·신민은 인력이나 혼자의 생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본래 마땅히 그래야 하는 법칙(當然之則)이 있어, 지나쳐도 안 되고 미치지 못해도 안 된다. 예를 들어 효는 명덕이지만, 본래 當然之則이 있어 미치지 못해서는 진실로 안 되지만, 지나치면 필시 '자기 허벅지 살을 베어내는 일'&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割大腿肉。 割股療親， 古以為孝行；割股祭祀， 則表示崇敬之至。 ▶ 《新唐書‧孝友傳序》： “ 唐 時 陳藏器 著《本草拾遺》， 謂人肉治羸疾， 自是民間以父母疾， 多刲股肉而進。” &amp;lt;/ref&amp;gt;이 있을 것이다. 모름지기 當然之則에 이르면 거기에 머물러 옮겨가지 않아야 비로소 '지어지선'이다. '지어지선'은 명덕·신민을 포함하니, 자신도 지선에 머물러야 하고, 백성도 지선에 머물러야 한다. 남에게 있는 것은 비록 어떻게 할 수 없더라도, 내가 남에 대해 바라는 것은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amp;quot;&lt;br /&gt;
::○問: &amp;quot;明明徳是自己事, 可以做得到極好處; 若新民則在人, 如何得他到極好處?&amp;quot; 曰: &amp;quot;且教自家先明得盡, 然後漸民以仁, 摩民以義. 如孟子所謂: '勞之來之, 匡之直之, 輔之翼之, 又從而振徳之.' 如此變化, 他自解到極好處.&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명명덕'은 자기 일이니 지극히 훌륭한 경지에 이르도록 할 수 있습니다만, '신민'의 경우는 남에게 달려있는데 어떻게 지극히 훌륭한 경지에 이르도록 할 수 있습니까?&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우선 스스로 다 밝힌 연후에 仁으로 백성들을 적시고 義로 백성들을 어루만지는 것이니, 맹자께서 '위로해주고 오게 하며, 바로잡아주고 곧게 하며, 부축하고 도와주며, 또 따라 은덕을 베풀어주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등문공상&amp;gt; 4. &amp;lt;/ref&amp;gt; 이렇게 변화한다면, 저들이 스스로 지극히 훌륭한 경지를 깨우칠 것이다.&amp;quot;&lt;br /&gt;
::○問: &amp;quot;至善不是明徳外别有所謂善, 只就明徳中到極處便是否?&amp;quot; 曰: &amp;quot;是. 明徳中也有至善, 新民中也有至善, 皆要到那極處. 至善只是以其極言. 不特是理會到極處, 亦要做到極處. 如為人君止於仁, 固是一箇仁, 然亦多般須是隨處看如這一事合當如此是仁; 那一事又合當如彼亦是仁. 若不理會, 只管執一, 便成一邉去. 安得謂之至善? 至善只是恰好處.&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지선'은 명덕 밖에 따로 선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는 게 아니라, 단지 명덕 가운데 지극한 경지에 이른 것이 이것 아닙니까?&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그렇다. 명덕 가운데에도 '지선'이 있고 신민 가운데에도 '지선'이 있으니, 모두 지극한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다. '지선'은 단지 '정도의 지극함'을 말한 것이다. 지극한 것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지극한 것을 실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임금이 仁에 머무는 것은 진실로 仁이지만, 역시 다양하게 상황에 따라 '이 일은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 仁이고, 저 일은 저렇게 하는 것이 또한 仁이다'라고 생각해야 한다. 만일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하나만 고집한다면 하나만 해낼 것이다. 어찌 '지선'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지선'이란 단지 적절한 것일 뿐이다.&amp;quot;&lt;br /&gt;
&lt;br /&gt;
知止而后有定，定而后能靜，靜而后能安，安而后能慮，慮而后能得。&amp;lt;br/&amp;gt;&lt;br /&gt;
머물 곳을 안 이후에 [뜻에] 일정한 [방향이] 있게 되고, [뜻에] 일정한 [방향이 있게 된] 연후에 [마음이] 고요해질 수 있으며, [마음이] 고요해진 이후에 [몸이] 편안해질 수 있고, [몸이] 편안해진 이후에 [정밀히] 사려할 수 있으며, [정밀히] 사려할 수 있은 이후에 [머물러야 할 곳을] 얻는다.&lt;br /&gt;
:后，與後同，後放此。止者，所當止之地，即至善之所在也。&amp;lt;sub&amp;gt;此止字即接上文在止於至善之止字說下來。&amp;lt;/sub&amp;gt;知之，則志有定向。靜，謂心不妄動。安，謂所處&amp;lt;sub&amp;gt;上聲下同&amp;lt;/sub&amp;gt;而安。慮，謂處事精詳。得，謂得其所止。&lt;br /&gt;
:'止'라는 것은 마땅히 머물러야 할 곳이니, 바로 至善의 소재이다.&amp;lt;sub&amp;gt;이 '止'자는 바로 앞 글의 '在止於至善'의 '止'자를 이어 말한 것이다.&amp;lt;/sub&amp;gt; [마땅히 머물러야 할 곳을] 안다면 뜻에 일정한('定') 방향이 있게 된다. '靜'은 마음이 망동하지 않음을 말한다. '安'은 처한 바에 따라 편안함을 말한다. '慮'는 정밀히 일에 대처함을 말한다. '得'은 머물러야 할 곳을 얻음을 말한다.&lt;br /&gt;
::朱子曰: &amp;quot;'知止'是識得去處. 既識得, 心中便定, 更不他求. 如行路, 知得從這一路去, 心中自是定; 如求之此, 又求之彼, 即是未定. 定、静、安、慮、得五字是功效次第, 不是工夫節目. 纔知止, 自然相因而見.&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知止'란 갈 곳을 아는 것이다. [갈 곳을] 알고 나면 마음이 정해져 다른 데서 찾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길을 갈 때 '이 길로 가면 된다'고 알면 마음이 절로 정해질 것이지만, 여기저기서 [길을] 찾는다면 [마음이] 아직 정해지지 못한 것이다. 定·静·安·慮·得 다섯 자는 공효의 단계이지 공부 절목이 아니다. '머물 곳을 알자마자'(知止) 저절로 [이러한 공효가] 잇달아 드러난다.&amp;quot;&lt;br /&gt;
::○定静安相去不逺, 但有淺深耳. 與&amp;lt;中庸&amp;gt;動變化相類, 皆不甚相逺. 定以理言, 故曰有; 静以心言, 故曰能. 静是就心上說, 安是就身上說.&lt;br /&gt;
::定·静·安은 큰 차이가 없고 다만 정도 차이만 있을 뿐이다. &amp;lt;중용&amp;gt;의 動·變·化&amp;lt;ref&amp;gt;&amp;lt;중용장구&amp;gt; 23장. 其次致曲，曲能有誠，誠則形，形則著，著則明，明則動，動則變，變則化，唯天下至誠為能化。&amp;lt;/ref&amp;gt;와 마찬가지로 모두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定'은 理로 말한 것이므로 '有'(有定)라고 했고, '静'은 마음(心)으로 말했으므로 '能'(能靜)이라고 했다. '静'은 마음(心)에 대해 말한 것이고, '安'은 몸(身)에 대해 말한 것이다.&lt;br /&gt;
::○既見得事物有定理, 而此心恁地寧静了. 看處在那裏: 在這裏也安, 在那裏也安. '安而后能慮', 慮是思之精審. 今人心中摇漾不定疊&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定當；安定。&amp;lt;/ref&amp;gt;, 還能處得事否? 人處事於叢冗&amp;lt;ref&amp;gt;猶繁雜。&amp;lt;/ref&amp;gt;急遽之際而不錯亂, 非安不能也. '知止'是知事物所當止之理. 到臨事, 又須研㡬審處, 方能得所止.&lt;br /&gt;
::사물에 일정한 이치(定理)가 있음을 알면 이 마음은 이처럼 고요해진다. 어디에 처했는지 보면?? 여기에서도 편안하고, 저기에서도 편안하다. '安而后能慮'의 '慮'는 정밀히 사려하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마음속이 요동쳐 안정되지 못하니, 그런데도 제대로 일에 대처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 번잡하거나 급박한 상황에서 일에 대처할 때 잘못하지 않는 건, 편안하지 않으면 불가능할 것이다. '知止'는 사물이 마땅히 머물러야 할 이치를 아는 것이다. 일을 대했을 때 다시 정밀한 부분까지 연구해야 비로소 머물 곳을 얻을 수 있다.&lt;br /&gt;
::○'知止'只是知有這箇道理, 也須是得其所止, 方是. 若要得其所止, 直是'能慮', 方是. '能慮'却是要緊'知止', 如知為子而必孝, 知為臣而必忠. '能得'是身親為忠孝之事. 若徒知這箇道理, 至於事親之際, 為私欲所汨, 不能盡其孝; 事君之際, 為利祿所汨, 不能盡其忠, 這便不是'能得'矣. '能慮'是見得此事合當如此, 便如此做.&lt;br /&gt;
::'知止'란 다만 이 도리가 있음을 아는 것이니, 머물 곳을 얻어야 옳다. 만일 머물 곳을 얻고자 한다면, 그저 '能慮'하기만 하면 된다. '能慮'는 도리어 긴밀히 '知止'하려고 해야 하니, 예를 들어 자식이 되어서는 반드시 효성스러워야 하고, 신하게 되어서는 반드시 충성스러워야 함을 아는 것과 같다. '能得'은 자신이 직접 忠孝의 일을 행하는 것이다. 만약 단지 이 도리를 알기만 하고, 부모를 섬길 때 사욕에 빠져 효를 다하지 못하거나, 임금을 섬길 때 利祿에 빠져 충을 다하지 못한다면, 이는 '能得'이 아니다. '能慮'란 '이 일이 마땅히 이렇게 해야함'을 아는 것이니, [알면] 이렇게 행하게 된다. &lt;br /&gt;
::○'知止', 如射者之於的; '得止'是已中其的.&lt;br /&gt;
::'知止'는 활 쏘는 사람과 과녁 간의 관계와 같으니, '得止'는 이미 과녁을 맞춘 것이다.&lt;br /&gt;
::○定、静、安三字雖分節次, 其實'知止'後皆容易進.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 此最是難進處, 多是至安處住了. '安而后能慮', 非顔子不能之. 去'得'字地位雖甚近, 然只是難進. 挽弓到臨滿時, 分外難開.&amp;lt;ref&amp;gt;&amp;lt;주자대전&amp;gt; 권32 &amp;lt;答張敬夫問目&amp;gt;&amp;lt;/ref&amp;gt;&lt;br /&gt;
::定·静·安 세 글자는 비록 단계를 나눴지만, 사실 '知止' 이후에 모두 쉽게 나아갈 수 있는 것들이다.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 이것이 가장 나아가기 어려운 부분이니, 대부분 '편안해진 경지(安)'에서 눌러앉아버린다. '安而后能慮'는 안자가 아니면 해낼 수 없다. ['能慮'의 지위가] '得'자 지위와 비록 매우 가깝지만, 나아가기 힘들 따름이다. 활을 최대한 당겼을 때, 분수 이상은 당기기 어려운 법이다.&lt;br /&gt;
&lt;br /&gt;
物有本末，事有終始，知所先後，則近道矣。&amp;lt;br/&amp;gt;&lt;br /&gt;
物에는 본말이 있고 事에는 시종이 있으니, 우선할 것과 나중에 할 것을 안다면 도에 가까워질 것이다.&lt;br /&gt;
:明德為本，新民為末。知止為始，能得為終。本始所先，末終所後。此結上文兩節之意。&lt;br /&gt;
:'명명덕'이 근본이고 '신민'이 말단이며, '知止'가 시작이고 '能得'이 끝이다. 근본·시작이 우선할 것이고, 말단·끝이 나중에 할 것이다. 이 구절은 앞의 두 절의 뜻을 마무리한 것이다.&lt;br /&gt;
::問: &amp;quot;事、物何分別?&amp;quot; 朱子曰: &amp;quot;對言則事是事, 物是物; 獨言物, 則兼事在其中. 知止、能得如耕而種而耘而斂, 是事有箇首尾如此. 明徳是理㑹己之一物; 新民是理㑹天下之萬物. 以己之一物對天下之萬物, 便有箇内外本末. '知所先後, 自然近道', 不知先後, 便倒了, 如何能近道?&lt;br /&gt;
::물었다: &amp;quot;事와 物은 어떻게 구별됩니까?&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대비해서 말하면 事는 事이고 物은 物이지만, 物만 말하면 그 안에 事를 겸하는 것이다. '知止'와 '能得'은 마치 밭 갈고 씨뿌리며 김매고 수확하는 것과 같으니, 일에 처음과 끝이 있는 것이 이와 같은 것이다. '명덕'은 자기 하나를 이해하는 것이고, '신민'은 천하의 만물을 이해하는 것이다. 자기 하나로 천하 만물에 대비하면 내외·본말의 [구별이] 있게 된다. '知所先後, 自然近道'란, 선후를 알지 못하면 거꾸로 하게 되니, 어떻게 도에 가까워질 수 있겠는가?&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先治其國；欲治其國者，先齊其家；欲齊其家者，先脩其身；欲脩其身者，先正其心；欲正其心者，先誠其意；欲誠其意者，先致其知；致知在格物。&amp;lt;sub&amp;gt;治平聲。後倣此&amp;lt;/sub&amp;gt;&amp;lt;br/&amp;gt;&lt;br /&gt;
옛적 천하에 명덕을 밝히고자 한 자는 먼저 자신의 國을 다스렸고, 자신의 國을 다스리고자 한 자는 먼저 자신의 家를 단속했으며, 자신의 家를 단속하고자 한 자는 먼저 자기 자신을 수양했고, 자기 자신을 수양하고자 한 자는 먼저 자신의 &lt;br /&gt;
心을 바르게 했으며, 자신의 心을 바르게 하고자 한 자는 먼저 자신의 意를 진실하게 했고, 자신의 意를 진실하게 하고자 한 자는 먼저 자신의 知를 지극해 했으며, 知를 지극히 하는 것은 格物에 달려있다.&lt;br /&gt;
:明明德於天下者，使天下之人皆有以明其明德也。心者，身之所主也。誠，實也。意者，心之所發也。實其心之所發，欲其一於善而無自欺也。致，推極也。&amp;lt;sub&amp;gt;推之以至極處&amp;lt;/sub&amp;gt;知，猶識也。推極吾之知識，欲其所知無不盡也。格，至也。物，猶事也。窮至事物之理，欲其極處無不到也。此八者，大學之條目也。&lt;br /&gt;
:'明明德於天下'라는 것은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자신의 명덕을 밝힐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心'이라는 것은 일신의 주재이다. '誠'은 진실함이다. '意'라는 것은 心이 발한 것이다. 心이 발한 것을 진실하게 함이란 心이 선에 전일하여 스스로를 속임이 없는 것이다. '致'란 지극한 데까지 미루어나가는 것이다. '知'는 '알다(識)'과 같다. 내 지식을 지극한 데까지 미루어 나감이란 아는 바가 지극하지 않음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lt;br /&gt;
::朱子曰: &amp;quot;六箇欲與先字, 謂欲如此必先如此, 是言工夫節次. 若致知則便在格物上. 欲與先字差慢, 在字又緊得些子.&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5. 「欲明明德於天下者先治其國，至致知在格物。」「欲」與「先」字，謂如欲如此，必先如此，是言工夫節次。若「致知在格物」，則致知便在格物上。看來「欲」與「先」字，差慢得些子，「在」字又緊得些子。&amp;lt;/ref&amp;g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여섯 번의 '欲'과 '先'자는 '이렇게 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이렇게 해야함'을 말하니, 공부의 절차를 말한 것이다. '치지'의 경우는 '격물'에 달려있다. '欲'과 '先'자는 조금 느슨하고, '在'자가 더욱 긴밀하다.&amp;quot;&lt;br /&gt;
::○致知、誠意是學者兩箇關. 致知乃夢與覺之關; 誠意乃善與惡之關. 透得致知之關則覺; 不然則夢. 透得誠意之關則善; 不然則惡.&lt;br /&gt;
::'致知'·'誠意'는 배우는 자의 두 가지 관문이다. '致知'는 바로 꿈과 깸을 [가르는] 관문이고, '誠意'는 선과 악을 [가르는] 관문이다. '致知'의 관문을 뚫으면 깸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꿈이고, '誠意'의 관문을 뚫으면 선이지만 아니면 악이다.&lt;br /&gt;
::○格物是夢覺關; 誠意是人鬼關. 過得此二關, 上面工夫一節易如一節了. 至治國平天下, 地步愈濶, 但須照顧得到.&lt;br /&gt;
:: '격물'은 꿈과 깸을 [가르는] 관문이고, '성의'는 사람과 귀신을 [가르는] 관문이다. 이 두 관문을 지날 수 있으면, 윗 단계의 공부는 일절이 일절보다 쉬워진다?? '치국'·'평천하'에 이르면 경지가 더욱 크지만, 반드시 제대로 살펴야 한다.&lt;br /&gt;
::○格物是零細說; 致知是全體說.&lt;br /&gt;
::'격물'은 세세하게 말한 것이고, '치지'는 전체적으로 말한 것이다.&lt;br /&gt;
::○格物致知, 於物上窮得一分之理, 則我之知亦知得一分; 物理窮得愈多, 則我之知愈廣. 其實只是一理, 纔明彼, 即曉此.&lt;br /&gt;
::'격물'·'치지'란 사물에서 한 푼의 理를 궁구하면 내 知 또한 한 푼만큼 알게 되고, 사물의 理를 더욱 많이 궁구하면 내 知도 더욱 넓어진다. 사실 하나의 理일 뿐이니, 저것을 밝히면 이것을 알게 된다.&lt;br /&gt;
::○格物, 十事格得九事通透, 一事未通透, 不妨; 一事只格得九分, 一分不通透, 最不可. 須窮盡到十分處.&lt;br /&gt;
::'격물'에 있어서, 열 가지 일 가운데 아홉 가지 일에 통달하고 한 가지 일에 통달하지 못하는 것은 무방하지만, 한 가지 일 가운데 9할 정도만 궁구하고 1할만큼 통달하지 못한 것은 가장 안 될 짓이다. 반드시 십분 궁구해야 한다.&lt;br /&gt;
::○因其所已知, 推之至於無所不知.&lt;br /&gt;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통해 모르는 것이 없는 데까지 미루어 나간다.&lt;br /&gt;
::○人多把這道理作一箇懸空底物. &amp;lt;大學&amp;gt;不説窮理, 只說格物, 便是要人就事物上理㑹. 如此, 方見得實體. 如作舟行水, 作車行陸, 今試以衆力共推一舟於陸, 必不能行, 方見得舟不可以行陸也. 此之謂實體.&lt;br /&gt;
::사람들은 대부분 이 도리를 허공에 매달린 무언가로 간주한다. &amp;lt;대학&amp;gt;에서 '이치를 궁구한다(窮理)'고 말하지 않고 단지 '격물'을 말한 것은, 사람들이 [구체적] 사물에서 이해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실체'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배를 만들어 물 위에 띄우고 수레를 만들어 육지 위를 가는데, 시험삼아 인력으로 함께 배를 육지에서 밀어보면 분명 갈 수 없을 것이니, 비로소 '배는 육지 위를 갈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이것을 '실체'라고 한다.&lt;br /&gt;
::○格物窮理, 有一物便有一理, 窮得到後遇事觸物, 皆撞着這道理: 事君便遇忠, 事親便遇孝, 居處便恭, 執事便敬, 與人便忠. 以致參前倚衡, 無往而不見這箇道理. 若窮不至, 則所見不真, 外面雖為善而内實為惡.&lt;br /&gt;
::'격물'·'궁리'란 한 사물이 있으면 한 이치가 있어서, 모두 궁구한 뒤에는 마주치는 사물이 모두 이 도리를 만나는 것이다. 임금을 섬기면 忠을 만나고, 부모를 섬기면 孝를 만나며, 거처할 때에는 恭을, 일을 처리할 때는 敬을, 다른 사람과 함께일 때는 忠을 [만난다.] 이로부터 '[忠信篤敬이] 눈앞에 참여해있고 멍에에 기대어있음을 [보는]'&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위령공&amp;gt; 5. 立，則見其參於前也；在輿，則見其倚於衡也。&amp;lt;/ref&amp;gt; 데까지 이르면, 어디를 가더라도 이 도리를 보지 않음이 없게 된다. 궁구함이 지극하지 않으면, 소견이 진실하지 못해 겉으로 선을 행하더라도 내면은 실로 악할 것이다.&lt;br /&gt;
::○問: &amp;quot;物者, 理之所在, 人所必有而不能無者, 何者為切?&amp;quot; 曰: &amp;quot;君臣、父子、兄弟、夫婦、朋友, 皆人所不能無者, 但學者須要窮格得盡. 事父母, 則當盡其孝; 處兄弟, 則當盡其友. 如此之類, 須是要見得盡. 若有一毫不盡, 便是窮格不至也.&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物이라는 것은 理가 있는 곳이니, 사람이 반드시 가지고 있어서 없을 수 없는 것 가운데 무엇이 가장 절실합니까?&amp;quot; 대답하셨다: &amp;quot;군신관계·부자관계·형제관계·부부관계·붕우관계 모두 사람에게 없을 수 없는 것이지만, 배우는 자는 완전히 궁구(窮格)해야 한다. 부모를 섬길 때에는 孝를 다해야 하고, 兄弟와 있을 때에는 우애를 다해야 한다. 이와 같은 것들에 대해 반드시 완전히 알아야 한다. 만약 터럭만큼이라도 다하지 못함이 있으면, 바로 궁구함(窮格)이 지극하지 못한 것이다.&amp;quot;&lt;br /&gt;
::○物謂事物也. 須窮極事物之理到盡處, 便有一箇是、一箇非. 凡自家身心上皆須體驗得一箇是非. 若講論文字, 應接事物, 各各體驗, 漸漸推廣, 地步自然寬闊. 如曾子三省, 只管如此體驗去.&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5. 「格物」二字最好。物，謂事物也。須窮極事物之理到盡處，便有一箇是，一箇非，是底便行，非底便不行。凡自家身心上，皆須體驗得一箇是非。若講論文字，應接事物，各各體驗，漸漸推廣，地步自然寬闊。如曾子三省，只管如此體驗去。&amp;lt;/ref&amp;gt;&lt;br /&gt;
::'物'이란 사물을 말한다. 모름지기 사물의 이치를 궁구해 지극한 경지에 이르러 옳은 것과 그른 것이 있거든 [옳은 것은 실천하고 그른 것은 실천하지] 말아야 한다. 글을 강론하고 일에 대처하는 경우, 각각 체험하여 점진적으로 넓혀나가면, 수준이 저절로 광대해질 것이다. 예를 들어, 증자의  '三省'&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학이&amp;gt; 4. 曾子曰：「吾日三省吾身：為人謀而不忠乎？與朋友交而不信乎？傳不習乎？」&amp;lt;/ref&amp;gt;은 그저 이렇게 체험하신 것이다.&lt;br /&gt;
::○致知格物只是一事, 非是今日格物, 明日又致知. 格物以理言也; 致知以心言也.&lt;br /&gt;
::'치지'·'격물'은 하나의 일일 뿐이니, 오늘 '격물'하고 내일 다시 '치지'하는 것이 아니다. '격물'은 理로 말한 것이고, '치지'는 心으로 말한 것이다.&lt;br /&gt;
::○致知格物是窮此理; 誠意正心脩身是體此理; 齊家治國平天下是推此理. 要做三節看.&lt;br /&gt;
::'치지'·'격물'은 이 理를 궁구하는 것이고, '성의'·'정심'·'수신'은 이 理를 체득하는 것이며, '제가'·'치국'·'평천하'는 이 理를 [현실에] 미루어나가는 것이다. 세 절목으로 봐야 한다.&lt;br /&gt;
::○於格物致知誠意正心脩身之際, 要常見一箇明徳隠然流行於五者之間, 方分明.&lt;br /&gt;
::'격물'·'치지'·'성의'·'정심'·'수신'할 때에 명덕이 은연중에 다섯 단계에 유행하는 것을 늘 봐야 분명할 것이다.&lt;br /&gt;
::○自格物至平天下, 聖人亦是略分箇先後與人看, 不成做一件浄盡無餘, 方做一件. 如此, 何時做得成!&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5. 聖人亦是略分箇先後與人知，不是做一件淨盡無餘，方做一件。若如此做，何時得成！&amp;lt;/ref&amp;gt;&lt;br /&gt;
::'격물'에서 '평천하'까지는 성인께서 다만 대략적으로 선후를 나눠 사람들에게 보이신 것이지, 하나를 깨끗하게 남김없이 처리하고나서 [다른] 하나를 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한다면 언제 해낼 수 있겠는가!&lt;br /&gt;
::○'明明徳於天下'以上, 皆有等級. 到致知格物處, 便親切. 故不曰: '致知者先格其物', 只曰: '致知在格物'也.&lt;br /&gt;
::'明明徳於天下' 이상에는 모두 등급이 있다. '치지'·'격물'은 비근하므로 [&amp;lt;대학&amp;gt; 경문에서] '致知者先格其物'이라고 하지 않고 '致知在格物'이라고만 말했다.&lt;br /&gt;
&lt;br /&gt;
物格而后知至，知至而后意誠，意誠而后心正，心正而后身脩，身脩而后家齊，家齊而后國治，國治而后天下平。&amp;lt;sub&amp;gt;治去聲。後倣此&amp;lt;/sub&amp;gt;&amp;lt;br/&amp;gt;&lt;br /&gt;
物의 [이치에] 이른 이후에 知가 지극해지고, 知가 지극해진 이후에 意가 진실해지며, 意가 진실해진 이후에 心이 바르게 되고, 心이 바르게 된 이후에 身이 수양되며, 身이 수양된 이후에 家가 단속되고, 家가 단속된 이후에 國이 다스려지며, 國이 다스려진 이후에 천하가 평안해진다.&lt;br /&gt;
:物格者，物理之極處無不到也。知至者，吾心之所知無不盡也。知既盡，則意可得而實矣，意既實，則心可得而正矣。脩身以上，明明德之事也。齊家以下，新民之事也。&amp;lt;sub&amp;gt;此四句包括上一節&amp;lt;/sub&amp;gt;物格知至，則知所止矣。意誠以下，則皆得所止之序也。&lt;br /&gt;
:'物格'이라는 것은 物理의 지극한 곳에 周到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이다. '知至'라는 것은 내 心의 앎(所知)이 다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이다. 知가 지극한 이상 意는 진실할 수 있고, 意가 진실한 이상 心은 바르게 될 수 있다. '수신' 이상(격물·치지·성의·정심·수신)은 '명명덕'의 일이고, '제가' 이하(제가·치국·평천하)는 '신민'의 일이다.&amp;lt;sub&amp;gt;이 네 구절이 앞의 한 구절을 포괄한다&amp;lt;/sub&amp;gt; '物格'·'知至'하면 머물 곳을 알게 된다. '意誠' 이하(의성·심정·신수·가제·국치·천하평)는 모두 머물 곳의 차례를 얻은 것이다.&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意誠、心正、身脩, 明明徳所以得止至善之次序; 家齊、國治、天下平, 新民所以得止至善之次序也. '皆'之一字包明明徳新民而言. 此四句包括此一節也. 是二節可見三綱之統八目, 而八目之𨽻三綱矣.&amp;quo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意誠'·'心正'·'身脩'은 '명명덕'이 '止至善'의 차례를 얻은 것이고, '家齊'·'國治'·'天下平'은 '신민'이 '止至善'의 차례를 얻은 것이다. ['皆得所止之序也'의] ]'皆'자는 '명명덕'과 '신민'을 포괄하여 말한 것이다. 이 네 구절은 이 한 절목을 포괄한 것이다. 이 두 절목에서 삼강령이 팔조목을 거느리고, 팔조목이 삼강령에 종속됨을 알 수 있다.&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致知者, 理在物而推吾之知以知之也; 知至者, 理雖在物而吾心之知已得其極也.&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치지'라는 것은 理가 외물에 있어서 내 知를 미루어 아는 것이고, '知至'라는 것은 理가 비록 외물에 있지만 내 마음의 知가 이미 그 지극한 것까지 아는 것이다.&amp;quot;&lt;br /&gt;
::○問: &amp;quot;物未格時, 意亦當誠?&amp;quot; 曰: &amp;quot;固然. 豈可說'物未格, 意便不用誠?' 但知未至時, 雖欲誠意, 其道無由. 如人夜行, 雖知路從此去, 但黒暗行不得. 所以要致知. 知至則道理明白, 坦然行之. 今人知未至者也. 知道善當好, 惡當惡, 然臨事不能如此者, 只是實未曾見得. 若實見得則行處無差.&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物[의 이치에] 아직 이르지 않았을 때에도 意는 진실해야 하겠지요?&amp;quot; 대답하셨다: &amp;quot;진실로 그렇다. 어찌 '物[의 이치에] 아직 이르지 않았을 때 意는 진실하지 않다'고 말해서야 되겠는가? 다만 知가 지극하지 않을 때에는 비록 意를 진실하게 하고자 하더라도 말미암을 방도가 없으니, 마치 사람이 밤에 길을 갈 때 비록 길을 이쪽으로 가면 된다고 알더라도 어두워 갈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치지'해야 한다. ['치지'의 결과로] '知至'하게 되면 도리가 분명해져 평탄하게 행하게 된다.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해야 함을 알지만, 일을 접하면 이렇게 못하는 것은 다만 제대로 안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제대로 알았다면 실천에 어긋남이 없을 것이다.&amp;quot;&lt;br /&gt;
::○問物格、知至. 曰: &amp;quot;格物時, 方是區處&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處理；籌劃安排。 &amp;lt;/ref&amp;gt;理會; 到得知至時, 却已自有箇主宰, 會去分別取舍. 初間或只見得表, 不見得裏, 只見得粗, 不見得精. 到知至時, 方知得到; 能知得到, 方㑹意誠, 可者必為, 不可者決不肯為. 到心正, 則胸中無些子私蔽, 洞然光明正大, 截然有主而不亂, 此身便脩, 家便齊, 國便治, 而天下可平.&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5. 或問：「格物、致知，到貫通處，方能分別取舍。初間亦未嘗不如此，但較生澀勉強否？」曰：「格物時是窮盡事物之理，這方是區處理會。到得知至時，卻已自有箇主宰，會去分別取舍。初間或只見得表，不見得裏；只見得粗，不見得精。到知至時，方知得到；能知得到，方會意誠，可者必為，不可者決不肯為。到心正，則胸中無些子私蔽。洞然光明正大，截然有主而不亂，此身便修，家便齊，國便治，而天下可平。」&amp;lt;/ref&amp;gt;&lt;br /&gt;
::'物格'·'知至'에 대해 물었다. 대답하셨다: &amp;quot;'격물'하는 때에는 한창 일을 처리하고 이해하지만, '知至'에 도달한 때에는 이미 자신에게 주재가 있어 분별해 취사선택할 수 있다. 처음에는 혹 겉만 알고 속은 모르며, 거친 것만 알고 정밀한 것은 모르겠지만, '知至'에 도달한 때에는 비로소 완전히 알고, 완전히 알 수 있으면 비로소 意가 진실해질 수 있어서, 옳은 것은 반드시 실천하고 옳지 않은 것은 결코 하려고 하지 않는다. 心이 바르게 되면 가슴속에 조금의 이기적인 가림이 없어 훤하게 빛나고 정대하며 분명하게 주재가 있어 어지럽지 않으니, 이 身은 곧 수양되고 家는 단속되며 國은 다스려지고 天下는 평안해질 수 있다.&amp;quot;&lt;br /&gt;
::○知至謂天下事物之理知無不到之謂. 若知一而不知二, 知大而不知細, 知髙逺而不知幽深, 皆非知之至也. 須要無所不知, 乃為至耳.&lt;br /&gt;
::'知至'란 천하 사물의 이치에 周到하지 않음을 말한다. 만약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거나, 큰 것만 알고 세세한 것을 모르거나, 고원한 것만 알고 심오한 것을 알지 못한다면, '知가 지극'(知至)한 것이 아니다. 알지 못하는 것이 없어야 '지극'(知至)한 것이다.&lt;br /&gt;
::○物格、知至是一截事; 意誠、心正、身脩是一截事; 家齊、國治、天下平又是一截事. 自知至交誠意又是一箇過接&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過渡連接。 &amp;lt;/ref&amp;gt;關子; 自脩身交齊家又是一箇過接關子.&lt;br /&gt;
::'物格'·'知至'가 하나의 일이고,  '意誠'·'心正'·'身脩'가 하나의 일이며, '家齊'·'國治'·'天下平'이 또 하나의 일이다. '知至'가 '意誠'과 만나는 곳이 분기점이고, '身脩'가 '家齊'와 만나는 곳도 분기점이다.&lt;br /&gt;
::○知至、意誠是凡聖界分, 未過此關, 雖有小善, 猶是黑中之白; 已過此關, 雖有小過, 亦是白中之黑.&lt;br /&gt;
::'知至'와 '意誠'은 범부와 성인의 경계이니, 이 관문을 넘지 못한다면 비록 작은 선이 있더라도 검은 색 가운데의 흰색과 같고, 이미 이 관문을 통과했다면 비록 작은 허물이 있더라도 흰색 가운데의 검은 색이다.&lt;br /&gt;
::○意誠後, 推盪&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 推動搖蕩；振蕩。&amp;lt;/ref&amp;gt;得查滓伶俐, 心盡是義理.&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5. 意誠後，推盪得渣滓靈利，心盡是義理。&amp;lt;/ref&amp;gt; 意是指發處; 心是指體言. 意是動, 心該動静. 身對心言, 則心正是内能如此; 身脩是外若不各自做一節工夫, 不成說我意已誠矣; 心將自正, 恐懼哀樂引將去, 又却邪了, 不成說心正矣. 身不用管外面更不顧而心與迹有異矣. 須是無所不用其功.&lt;br /&gt;
::'意誠' 이후에는 찌꺼끼·약삭빠름 같은 것으로 어지럽히더라도 心은 완전히 의리이다. 意란 [心이] 발한 것을 가리키고, 心은 [意의] 體를 말한다. 意는 動이고, 心은 動静을 갖추고 있다. 身을 心에 대비해 말하면, '心正'은 내면으로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고, '身脩'는 외면이 ?? 반드시 공부를 하지 않음이 없어야 한다.&lt;br /&gt;
::○到正心時節已好了, 只是就好裏面又有許多偏, 如水已淘去濁十分清了, 又怕於清裏面有波浪動盪處.&lt;br /&gt;
::'正心'에 이르렀을 때 이미 좋지만, 좋은 것 이면에는 또 수많은 치우침이 있으니, 마치 물에서 이미 탁한 것을 걸러내 십분 맑더라도, 맑은 것 이면에 파랑·물결이 있는지 걱정해야 한다.&lt;br /&gt;
::○意未誠時, 如人犯私罪; 意既誠而心猶動, 如人犯公罪, 亦有間矣.&lt;br /&gt;
::意가 아직 진실하지 않은 때는 마치 사람이 개인적인 죄를 지은 것 같고, 意가 이미 진실한데 心이 여전히 동요하는 것은 마치 사람이 공적인 죄를 지은 것 같으니, 역시 차이가 있다.&lt;br /&gt;
::○'物格而後知至', 至'心正而後身脩', 著'而'字則是先為此而後能為彼也. 盖即物而極致其理矣, 而後吾之所知無不至; 吾知無不至矣而後見善明, 察惡盡, 不容有所自欺而意誠; 意無不誠矣而後念慮隠微, 慊快充足&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전6장. 所謂誠其意者：毋自欺也，如惡惡臭，如好好色，此之謂自謙，故君子必慎其獨也！【朱注】謙，快也，足也。&amp;lt;/ref&amp;gt;而心正; 心得其本然之正矣而後身有所主而可得而脩.&lt;br /&gt;
::'物格而後知至'에서 '心正而後身脩'까지 '而'자를 쓴 것은 '먼저 이것을 한 이후에 저것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대개 物에 나아가 그 이치에 이른 이후에 내 앎(所知)이 지극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 내 知가 지극하지 않음이 없게 된 이후에 선을 분명히 보고 악을 온전히 살펴 스스로 속이는 바가 있을 수 없으므로 意가 진실해진다. 意가 진실하지 않음이 없게 된 이후에 은미한 것을 헤아리고 만족스러워져 心이 바르게 된다. 心이 본래의 바름을 얻은 이후에 身에 주재가 있어 수양될 수 있게 된다.&lt;br /&gt;
&lt;br /&gt;
自天子以至於庶人，壹是皆以脩身為本。&amp;lt;br/&amp;gt;&lt;br /&gt;
천자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脩身을 근본으로 삼는다.&lt;br /&gt;
:壹是，一切也。&amp;lt;sub&amp;gt;&amp;lt;漢書&amp;gt; &amp;lt;平帝紀&amp;gt; '一切', 顔師古註云: &amp;quot;猶以刀切物, 取其齊整.&amp;quot;&amp;lt;/sub&amp;gt;正心以上，皆所以脩身也。齊家以下，則舉此而措之耳。&lt;br /&gt;
:'壹是'는 '일체'이다.&amp;lt;sub&amp;gt;&amp;lt;한서&amp;gt; &amp;lt;평제기&amp;gt;의 '一切'를 안사고의 주석에 &amp;quot;칼로 사물을 잘라 깨끗하게 [잘린] 것을 취하는 것과 같다&amp;quot;고 하였다.&amp;lt;/sub&amp;gt; '正心' 이상은 모두 '脩身'하는 방법이다. '齊家' 이하는 이것을 들어 놓는 것일 뿐이다.&lt;br /&gt;
&lt;br /&gt;
其本亂而末治者否矣，其所厚者薄，而其所薄者厚，未之有也！&amp;lt;br/&amp;gt;&lt;br /&gt;
근본이 어지러운데 말단이 다스려진 경우는 없고, 두텁게 할 것을 박하게 하면서 박하게 할 것을 두텁게 하는 경우는 있지 않았다.&lt;br /&gt;
:本，謂身也。&amp;lt;sub&amp;gt;接上文本字. 末謂天下國家&amp;lt;/sub&amp;gt;所厚，謂家也。此兩節結上文兩節之意。&lt;br /&gt;
:'本'은 ['脩身'의] '身'이다.&amp;lt;sub&amp;gt;앞 글의 '本'자에 이어지는 것이다. '末'은 '天下'·'國'·'家'이다.&amp;lt;/sub&amp;gt; '두텁게 할 것'(所厚)은 '家'이다. 이 두 구절은 앞 글의 두 구절의 뜻을 마무리한 것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右經一章，蓋孔子之言，而曾子述之。&amp;lt;sub&amp;gt;凡二百五字。&amp;lt;/sub&amp;gt;其傳&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十章，則曾子之意而門人記之也。&amp;lt;sub&amp;gt;蓋字疑辭, 則字決辭&amp;lt;/sub&amp;gt;舊本頗有錯簡，今因程子所定，而更考經文，別&amp;lt;sub&amp;gt;必列反&amp;lt;/sub&amp;gt;為序次如左。&amp;lt;sub&amp;gt;凡千五百四十六字。&amp;lt;/sub&amp;gt;&lt;br /&gt;
::이상은 경1장이니, 아마 공자의 말씀을 증자께서 조술하신 것이다.&amp;lt;sub&amp;gt;모두 205자이다.&amp;lt;/sub&amp;gt; 전10장은 증자의 뜻을 문인들이 기록한 것이다.&amp;lt;sub&amp;gt;'蓋'자는 불확실하다는 말이고, '則'자는 확실하다는 말이다.&amp;lt;/sub&amp;gt; 옛 판본에 착간이 꽤 있기 때문에, 이제 정자께서 산정하신 것에 기인해 경문을 다시 고찰해 따로 다음과 같이 차례짓는다. &lt;br /&gt;
:::凡傳文，雜引經傳，若無統紀，然文理接續，血脈貫通，深淺始終，至為精密。熟讀詳味，久當見之，今不盡釋也。&lt;br /&gt;
:::무릇 傳文은 경전을 잡다하게 인용해 맥락이 없는 것 같지만, 글의 조리가 이어지고 혈맥이 일관되니, 깊이와 논리가 지극히 정밀하다. 자세히 읽고 음미하여 오래되면 응당 알 것이므로, 지금은 다 해설하지 않는다.&lt;br /&gt;
&lt;br /&gt;
&lt;br /&gt;
====『혹문』 경1장====&lt;br /&gt;
1. &amp;lt;대학&amp;gt;과 &amp;lt;소학&amp;gt;의 구분&lt;br /&gt;
&lt;br /&gt;
或問: “大學之道, 吾子以爲大人之學, 何也?”&amp;lt;br/&amp;gt;&lt;br /&gt;
혹자가 물었다: &amp;quot;'大學之道'를 그대가 '대인의 학문(大人之學)'이라고 한 것은 어째서인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lt;br /&gt;
曰: “此對小子之學言之也.”&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이는 '아이의 학문(小子之學)'에 대비해 말한 것이다.&amp;quot;&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2. &amp;lt;소학&amp;gt;이란?&lt;br /&gt;
&lt;br /&gt;
曰: “敢問其爲小子之學, 何也?”&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감히 묻건대, '아이의 학문'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lt;br /&gt;
曰: “愚於序文已畧陳之. 而古法之宜於今者, 亦旣輯而爲書矣,&amp;lt;sub&amp;gt;即今之小學書&amp;lt;/sub&amp;gt; 學者不可以不之考也.”&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내가 서문(&amp;lt;대학장구서&amp;gt;)에서 이미 간략하게 말했고, 옛 법도 가운데 오늘날에 적합한 것을 역시 이미 모아 책을 만들었으니,&amp;lt;sub&amp;gt;즉 오늘날의 &amp;lt;소학&amp;gt;이다.&amp;lt;/sub&amp;gt; 배우는 자들이 이를 고찰하지 않아선 안 될 것이다.&amp;quot;&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3. &amp;lt;대학&amp;gt;과 &amp;lt;소학&amp;gt; 간의 관계&lt;br /&gt;
&lt;br /&gt;
曰: “吾聞君子務其遠者大者, 小人務其近者小者. 今子方將語&amp;lt;sub&amp;gt;音御&amp;lt;/sub&amp;gt;人以大學之道, 而又欲其考乎『小學』之書, 何也?”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내가 듣기에 군자는 고원한 것·거대한 것에 힘쓰고, 소인은 비근한 것·사소한 것에 힘쓴다고 하는데, 지금 그대는 사람들에게 '大學之道'를 말하면서 다시 그들로 하여금 &amp;lt;소학&amp;gt;을 고찰하게 하려는 것은 어째서인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朱子曰: &amp;quot;&amp;lt;小學&amp;gt;書是做人底樣子.&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amp;lt;소학&amp;gt;은 사람을 만드는 틀이다.&amp;quot;&lt;br /&gt;
:○問小學大學之别. 曰: &amp;quot;小學大學只是一箇事. 小學是學事親事長; 大學便就上面講究委曲其所以事親事長是如何.&amp;quot;&lt;br /&gt;
:小學과 大學의 차이에 대해 물었다. 대답하셨다: &amp;quot;小學과 大學은 하나의 일일 뿐이다. 소학은 부모를 섬기고 어른을 섬기는 것을 배우는 것이고, 대학은 그 위에서 부모를 섬기고 어른을 섬기는 까닭이 무엇인지 강구하고 상세히 살피는 것이다.&amp;quot;&lt;br /&gt;
:○古人由小學而進於大學, 其於洒掃應對進退之間, 持守堅定, 涵養純熟, 固已久矣. 大學之序, 特因小學已成之功.&lt;br /&gt;
:옛 분들은 소학을 거쳐 대학으로 나아가셨기 때문에, 쇄소응대·진퇴하는 때에 단속이 堅定하고 함양이 純熟했던 것이 진실로 매우 오래됐었다. [그러므로 삼강령·팔조목 같은] &amp;lt;대학&amp;gt;의 순서는 그저 소학에서 이미 이룬 결과에 기인할 뿐이다. &lt;br /&gt;
:○陳氏曰: &amp;quot;小學書綱領甚好, 最切於日用. 雖至大學之成, 亦不外是.&amp;quot;&lt;br /&gt;
:진씨가 말했다: &amp;quot;&amp;lt;소학&amp;gt;의 강령이 매우 좋으니, 일상 생활에 매우 비근하다. 비록 대학 [공부가 완성되더라도] 이를 벗어나지 않는다.&amp;quot; &lt;br /&gt;
&lt;br /&gt;
曰: “學之大小, 固有不同, 然其爲道則一而已. 是以方其幼也, 不習之於小學, 則無以收其放心, 養其德性, 而爲大學之基本.&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학문의 큰 것(대학)과 작은 것(소학)에는 진실로 차이가 있지만, 도를 추구한다는 점은 같을 뿐이다. 그러므로 어렸을 때 소학에서 익히지 않는다면 놓아버린 마음을 수습하고 덕성을 길러 대학의 기반으로 삼을 수 없고, &amp;lt;br/&amp;gt;&lt;br /&gt;
:或曰: &amp;quot;放心者, 或心起邪思妄念, 耳聽邪言, 目觀亂色, 口談不道之言, 以至手足動之不以禮, 皆是放也; 收者, 便於邪思妄念處, 截斷不續, 耳目言動皆然, 此謂之收. 既能收其放心, 徳性自然養得, 不是收放心外, 又養箇徳性也.&amp;quot; 朱子曰: &amp;quot;然.&amp;quot;&lt;br /&gt;
:혹자가 말했다. &amp;quot;방심이라는 것은 간혹 마음에 삿된 생각이나 망념이 일어나서 귀로는 거짓된 말을 듣고, 눈으로는 난색을 보며, 입으로는 도가 아닌 말을 하여 손과 발이 움직임에 예로 하지 않는데 이르게 되니, 모두 '放'인 것입니다. 거둔다는 것은 바로 삿된 생각이나 망념이 일어난 곳을 절단해서 이어지지 않게하는 것이니 귀, 눈, 말과 행동이 모두 그렇게 (잘못하지 않게) 되니 이것이 '收'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미 그 놓아버린 마음을 거둘 수 있다면 덕성은 자연히 길러질 수 있으니 놓아버린 마음을 거두는 것 이외에 또 덕성을 기르는 것이 아닙니다.&amp;quot; 주자가 말했다. &amp;quot;그렇다.&amp;quot;&lt;br /&gt;
:○西山真氏曰: &amp;quot;徳性謂得之於天者, 仁義禮智信, 是也; 徳性在心, 本皆全備, 縁放縱其心, 不知操存, 是致賊害其性. 若能收其放心, 即是養其徳性, 非二事也.&amp;quot;&lt;br /&gt;
:진덕수가 말하였다. &amp;quot;덕성이란 하늘에서 얻어진 것이니 인의예지신이 이것이요, 덕성은 마음 안에 있으니 본애 완전히 갖춰진 것이지만 그 마음을 방종하게 하면서도 잡아서 지킬 줄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 성을 해치는데 이른 것이다. 만약 그 놓아버린 마음을 거두어 들일 수 있다면 곧바로 덕성을 기르게 되는 것이지, 두 가지 일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amp;quot;&lt;br /&gt;
&lt;br /&gt;
及其長&amp;lt;sub&amp;gt;上聲下同&amp;lt;/sub&amp;gt;也, 不進之於大學, 則無以察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義理, 措諸事業, 而收小學之成功. &amp;lt;br/&amp;gt;&lt;br /&gt;
장성해서 태학에 진학하지 않으면 의리를 살피고 여러 사업을 주관해 소학에서의 성과를 거둘 수 없다. &amp;lt;br/&amp;g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察夫義理, 大學始事, 格致是也; 措諸事業, 大學終事, 齊治平是也.&amp;quot;&lt;br /&gt;
:옥계노씨가 말했다. &amp;quot;'察夫義理'란 대학의 시작이 되는 일이니 격물치지가 이것이고, '措諸事業'은 대학의 마지막이 되는 일이니, 제가·치국·평천하가 이것이다.&amp;quot;&lt;br /&gt;
是則學之大小所以不同, 特以少&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長所習之異宜, 而有高下淺深先後緩急之殊, 非若古今之辨, 義利之分, 判然如薰蕕&amp;lt;sub&amp;gt;音猶&amp;lt;/sub&amp;gt;冰炭之相反而不可以相入也.&amp;lt;sub&amp;gt;薰香草蕕臭草&amp;lt;/sub&amp;gt; 今使幼學之士, 必先有以自盡乎洒&amp;lt;sub&amp;gt;上去二聲&amp;lt;/sub&amp;gt;掃&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應對進退之間, 禮樂射御書數之習, 俟其旣長, 而後進乎明德·新民, 以止於至善, 是乃次第之當然, 又何爲而不可哉?”&amp;lt;br/&amp;gt;&lt;br /&gt;
이렇다면 학문의 큰 것과 작은 것의 차이는 그저 나이에 따라 익혀야 하는 것의 차이에 따라 高下·淺深·先後·緩急의 차이가 있는 것일 뿐이니, 고금의 차이·義利의 차이가 마치 薰蕕·冰炭이 상반되어 판연히 서로 섞일 수 없는 것과는 같지 않다. 이제 어린 선비로 하여금 반드시 우선 洒掃應對進退之間과 禮樂射御書數之習에 스스로 다하도록 하고, 그가 장성하기를 기다린 이후에 明德·新民·止於至善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야말로 당연한 순서이니, 또 무엇 때문에 불가하겠는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4. &amp;lt;소학&amp;gt;을 배우지 않고 장성한 사람의 학문 순서 문제(경공부)&lt;br /&gt;
&lt;br /&gt;
曰: “幼學之士, 以子之言而得循序漸進, 以免於躐等陵節之病, 則誠幸矣. 若其年之旣長, 而不及乎此者, 欲反從事於小學, 則恐其不免於扞格不勝、勤苦難成之患;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어린 선비가 그대의 말에 따라 순서를 얻어 점차 나아가 躐等·陵節&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超越制度規定之範圍。 &amp;lt;/ref&amp;gt;의 병폐를 면한다면 진실로 다행일 것이다. [그러나] 만일 장성했는대도 이에 미치지 못한 자가 반대로 [거슬러 올라가] 소학에 종사하고자 한다면  '[인욕에] 부딪혀 이기지 못하고 고생하더라도 이루기 힘든' 근심을 면하지 못할까 걱정스러우며, &amp;lt;br/&amp;gt;&lt;br /&gt;
:&amp;lt;記&amp;gt;&amp;lt;學記&amp;gt;&amp;quot;發然後禁, 則扞格而不勝; 時過然後學, 則勤苦而難成.&amp;quot;&amp;lt;sub&amp;gt;扞, 胡半反; 格, 胡客反. 勝, 平聲. 人欲既發而後禁之, 則扞拒堅强而不勝也.&amp;lt;/sub&amp;gt;&lt;br /&gt;
:『예기』, 「학기」편에서 &amp;quot;일어난 다음에 금지한다면 인욕에 부딪혀 이겨내지 못할 것이고, 때가 지난 다음에 배운다면 노력하고 고생하면서도 이루기가 어려울 것이다.&amp;quot; &amp;lt;sub&amp;gt;인욕이 이미 일어난 후에 금지하면 [인욕의] 저항이 견고하고 강해 이길 수 없다.&amp;lt;/sub&amp;gt;&lt;br /&gt;
&lt;br /&gt;
欲直從事於大學, 則又恐其失序無本, 而不能以自達也, 則如之何?”&amp;lt;br/&amp;gt;&lt;br /&gt;
[그렇다고] 바로 대학에 종사하고자 한다면 또한 순서를 어겨 근본이 없기에 스스로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까 걱정스러우니, 어떻게 해야 하나?&amp;quot;&amp;lt;br/&amp;gt;&lt;br /&gt;
&lt;br /&gt;
曰: “是其歲月之已逝者, 則固不可得而復&amp;lt;sub&amp;gt;扶又反下同&amp;lt;/sub&amp;gt;追矣. 若其工夫之次第條目, 則豈遂不可得而復補耶? &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이미 지나가버린 세월은 진실로 다시 나아갈 순 없지만, 공부의 순서나 조목은 어찌 끝내 다시 보완할 수 없겠는가?&amp;lt;br/&amp;gt;&lt;br /&gt;
:朱子曰: &amp;quot;古人於小學, 自能言便有教, 一嵗有一嵗工夫, 到二十來嵗, 聖賢資質已自有二三分, 大學只出治光采. 而今都蹉過了, 不能更轉去做得, 只據而今地頭, 便劄住立定脚跟&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 比喻立足點或立場。▶ 宋 朱熹 《答陳膚仲》四： “凡事從今更宜審細， 見得是， 當便立定腳根， 斷不移易。”&amp;lt;/ref&amp;gt;做去, 栽種後來根株, 塡補前日欠缺. 如二十嵗覺悟, 便從二十嵗立定脚跟做去; 如三十嵗覺悟, 亦然; 便年八九十嵗覺悟, 亦只據現定劄住硬寨&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 比喻堅定的立場與意志。&amp;lt;/ref&amp;gt;做去.&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옛날에 소학에서는 말할 수 있을 때부터 교육을 두었고, 1년에 (그에 해당하는) 1년 과정의 공부를 두었으니, 20세가 되면 성현의 자질이 이미 2-30%정도 있게 된다. &amp;lt;대학&amp;gt;은 다만 [거기에] 광채를 내는 것이다. 지금 [이미] 다 지나가버려서 다시 뒤돌아 갈 수 없다면, 다만 현위치에 의거하여 입장을 확고히 해, 훗날의 기반을 북돋고 과거의 흠결을 보완하여야 한다. 만약 스무살에 깨우쳤다면 스무살 때 부터 그 입장을 확고히 하고, 서른에 깨우쳤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8-90세에 깨우쳤더라도 역시 그저 현재에 의거해서 견고한 입장을 확고하게 세워야 한다.&amp;quot;&lt;br /&gt;
&lt;br /&gt;
蓋吾聞之, 敬之一字, 聖學之所以成始而成終者也. 爲小學者, 不由乎此, 固無以涵養本原,&amp;lt;sub&amp;gt;即前所謂收放心養徳性&amp;lt;/sub&amp;gt;而謹夫&amp;lt;sub&amp;gt;音扶下同&amp;lt;/sub&amp;gt;洒掃應對進退之節, 與夫六藝之敎. 爲大學者, 不由乎此, 亦無以開發聰明,&amp;lt;sub&amp;gt;格致之事&amp;lt;/sub&amp;gt; 進德&amp;lt;sub&amp;gt;誠正修&amp;lt;/sub&amp;gt;修業,&amp;lt;sub&amp;gt;齊治平&amp;lt;/sub&amp;gt; 而致夫明德新民之功也. 是以程子發明格物之道, 而必以是爲說焉. &amp;lt;br/&amp;gt;&lt;br /&gt;
내가 들으니, '敬' 한 자는 성인되는 학문(聖學)의 처음과 끝을 이루는 것이라고 한다. 소학이라는 것도 이를 말미암지 않으면 진실로 본원을 함양해 저 洒掃應對進退之節과 저 六藝之敎를 삼가 실천할 수 없고, 대학이라는 것도 이를 말미암지 않으면 또한 開發聰明하고 進德修業&amp;lt;ref&amp;gt;&amp;lt;주역&amp;gt; 건괘 &amp;lt;문언&amp;gt; 子曰：「君子進德脩業，忠信，所以進德也，脩辭立其誠，所以居業也。」&amp;lt;/ref&amp;gt;해 저 明德·新民의 공효를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정자께서 격물의 도를 발명하실 때 반드시 이것(敬)을 말씀하셨던 것이다.&amp;lt;br/&amp;gt;&lt;br /&gt;
:問: &amp;quot;敬字當不得小學.&amp;quot; 朱子曰: &amp;quot;看來小學却未當得敬, 敬巳自包得小學. 敬是徹上徹下工夫, 雖做到聖人田地, 也只放下這敬不得.&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敬'이라는 글자는 소학에 대적할 수 없습니다.&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내 생각에는 소학이 도리어 '敬'에 대적할 수 없으니, 敬은 이미 그 자체로 소학을 포함한다. 敬은 위 아래를 관통하는 공부이니, 비록 성인의 경지에 이르더라도 이 敬을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amp;quot;&lt;br /&gt;
:○問: &amp;quot;大學首云明徳, 却不曾說主敬, 莫是已見於小學否?&amp;quot; 曰: &amp;quot;然. 自小學不傳, 伊川却是帶補一敬字.&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대학』 첫 머리에서는 '명덕'만 말하고 도리어 '主敬'을 말한 적이 없으니, [경이] 이미 『소학』에 드러나 있었기 때문 아닐까요?&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그렇다 『소학』이 후세에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천선생께서 오히려 '敬'자를 보완하신 것이다.&lt;br /&gt;
:○北溪陳氏曰: &amp;quot;程子只說一箇主敬工夫, 可以補小學之缺. 盖主敬工夫可以收放心而立大本; 大本既立, 然後工夫循序而進, 無往不通. 大抵主敬之功, 貫始終, 一動靜, 合内外, 小學大學皆不可無也.&amp;quot;&lt;br /&gt;
:북계 진씨가 말했다: &amp;quot;정자께서는 오직 주경공부를 말씀하셨으니, 소학의 흠결을 보완할 수 있다. 대개 주경공부를 [통해] 놓아버린 마음을 거두어들이고 큰 근본을 세울 수 있으니, 큰 근본이 세워지고 난 연후에야 공부가 순서대로 나아가 가는 곳마다 통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 대저 주경공부라고 하는 것은 시작과 끝을 관통하고  動과 靜에 동일하며 内와 外에 일치하니, 소학과 대학에 모두 없어선 안 된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敬者, 定志慮, 攝精神, 而存養本心之道, 故為聖學之始終. 百倍其功, 只在主敬. 篇首三言為大學一書之綱領; 明明徳一句為篇首三言之綱領; 朱子敬之一字, 則又明明徳之綱領也.&amp;quot;&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경이라는 것은 사려를 안정시키고 정신을 거두어들여 본심을 존양하는 방법이므로 성인의 학문의 시작과 끝이 된다. [남들보다] 백 배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amp;lt;ref&amp;gt;&amp;lt;중용&amp;gt; 人一能之己百之，人十能之己千之。【章句】 君子之學，不為則已，為則必要其成，故常百倍其功。&amp;lt;/ref&amp;gt; 다만 주경공부에 달려있을 뿐이다. [『대학』] 첫머리의 세 마디(명명덕, 신민, 지어지선)는 『대학』의 강령이 되며, '명명덕' 한 구절은 첫머리 세 마디의 강령이 되며, 주자의 '敬' 한 글자는 다시 '명명덕'의 강령이 된다.&amp;quot;&lt;br /&gt;
&lt;br /&gt;
不幸過時而後學者, 誠能用力於此, 以進乎大, 而不害兼補乎其小, 則其所以進者, 將不患於無本而不能以自達矣. 其或摧頹已甚, 而不足以有所兼, 則其所以固其肌膚之會·筋骸之束, 而養其良知良能之本者, 亦可以得之於此, 而不患其失之於前也. &amp;lt;br/&amp;gt;&lt;br /&gt;
불행이 때를 놓쳐 뒤늦게 배우는 자가 진실로 이에 힘쓸 수 있다면, 큰 것(대학)에 나아가면서도 작은 것(소학)을 아울러 보완하는 데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니, 그렇다면 그가 진전된 바가 장차 근본이 없어 스스로 [목표에] 도달하지 못함을 근심하지 않을 것이다. 혹 摧頹함이 너무 심해 [소학까지] 아우를 수 없다면, 肌膚와 筋骸의 결속을 굳게 해&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예운&amp;gt; 故禮義也者，人之大端也，所以講信修睦而固人之肌膚之會、筋骸之束也。&amp;lt;/ref&amp;gt;良知·良能의 근본을 기르는 것 또한 이것(경)에서 얻을 수 있으니 과거에 잘못했던 것을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amp;lt;br/&amp;gt;&lt;br /&gt;
:&amp;lt;記&amp;gt;&amp;lt;禮運&amp;gt;&amp;quot;故禮義也者, 人之大端也, 所以講信脩睦, 而固人之肌膚之㑹、筋骸之束也.&amp;quot; 㑹, 合也, 物合其則也, 如頭容宜合於直之類; 束, 收歛也, 如手容宜恭之類.&lt;br /&gt;
:『예기』, 「예운」편에서 &amp;quot;그러므로 예의라는 것은 사람에게 중요한 것(大端)이니, 신의를 익히고 화목함을 닦아 肌膚와 筋骸의 결속을 굳게 하는 것이다.&amp;quot;&amp;lt;ref&amp;gt;&amp;lt;예기집설&amp;gt; 肌膚之總會, 筋骨之聨束, 非不固也。 然無禮以維飭之, 則惰慢傾側之容見矣。 &amp;lt;/ref&amp;gt;라고 하였는데, '㑹'는 '맞다'로 사물이 그 법도에 맞는 것이니, 마치 머리모양이 마땅히 '直'에 맞아야 하는 부류와 같다. '束'은 '거두어들인다'로 손모양이 마땅히 공손해야 하는 부류와 같다.&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옥조&amp;gt; 足容重，手容恭，目容端，口容止，聲容靜，頭容直，氣容肅，立容德，色容莊，坐如尸，燕居告溫溫。&amp;lt;/ref&amp;gt;&lt;br /&gt;
&lt;br /&gt;
顧以七年之病, 而求三年之艾, 非百倍其功, 不足以致之. 若徒歸咎於旣往, 而所以補之於後者, 又不能以自力, 則吾見其扞格勤苦日有甚焉, 而身心顚倒, 眩瞀&amp;lt;sub&amp;gt;務茂二音&amp;lt;/sub&amp;gt;迷惑, 終無以爲致知力行之地矣. 况欲有以及乎天下國家也哉!” &amp;lt;br/&amp;gt;&lt;br /&gt;
생각건대 7년의 병치레에 3년 묵은 쑥을 구하는 경우,&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이루상&amp;gt; 9. 今之欲王者，猶七年之病求三年之艾也。苟為不畜，終身不得。&amp;lt;/ref&amp;gt; 백 배로 노력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으니, 만일 그저 과거에 허물을 돌리고 나중에 보완하려는 자도 스스로 힘쓰지 않는다면, 그가 [인욕에] 부딪히고 고생하는 것이 날로 심해져 몸과 마음이 엎어지고 어지럽고 미혹돼 끝내 致知力行의 경지가 되지 못할 것이다. 하물며 천하·국가에 미칠 수 있기를 바라는 자에 있어서랴!&amp;quot;&amp;lt;br/&amp;gt;&lt;br /&gt;
:問: &amp;quot;人於已失學後, 須如此勉强奮勵, 方得.&amp;quot; 朱子曰: &amp;quot;失時而後學, 必著如此䟎補得前許多欠缺處. '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若不如是, 悠悠度日, 一日不做得一日工夫, 只見没長進, 如何要補前面?&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사람이라면 배움을 놓치고 나서는 모름지기 이처럼 열심히 힘써야 합니다.&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때를 놓친 이후에 배우게 됐다면 반드시 많은 흠결을 서둘러 이처럼 보완해야 하니, '다른 사람이 한 번에 할 수 있으면 나는 백 번하고, 다른 사람이 열번에 할 수 있으면 나는 천 번한다.'고 하였다. 만약 이와같이 하지 않고 덧없이 시간만 보내고 하루에 하루치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발전이 없을 것이니, 어찌 과거를 보완하려고 하겠는가?&amp;quot;&lt;br /&gt;
:○今人不曽做得小學工夫, 一旦學大學, 是以無下手處. 今且當自持敬始, 使端的純一静専, 然後能致知格物. 敬字是徹頭徹尾工夫, 自格物以至平天下, 皆不外此.&lt;br /&gt;
:요즘 사람들은 일찍이 소학공부를 하지 않고 단지 대학만 배웠기 때문에 실천할 길이 없다. 지금은 우선 마땅히 持敬부터 시작해서 확실하게 순일하고 오롯하게 해야 하니, 그런 연후에야 격물치지할 수 있을 것이다. '敬'이라는 글자는 철두철미한 공부이니, 격물에서부터 평천하까지 모두 이것(경)을 벗어나지 않는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5. 경공부의 방법&lt;br /&gt;
&lt;br /&gt;
曰: “然則所謂敬者, 又若何而用力耶?”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그렇다면 이른바 '敬'이라는 것에 또 어떻게 힘쓰는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lt;br /&gt;
曰: “程子於此, 嘗以主一無適言之矣, &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정자께서는 이에 대해 '主一無適'으로 설명하시기도 했고,&lt;br /&gt;
:程子曰: &amp;quot;主一之謂敬, 無適之謂一.&amp;quot;&lt;br /&gt;
:정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主一'은 '敬'을 말하고 '無適'은 '一'을 말한다.&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主一只是心專一, 不以他念雜之; 無適只是不走作&amp;lt;ref&amp;gt;2.越規；放逸。&amp;lt;/ref&amp;gt;, 如讀書時只讀書; 著衣時只著衣. 了此一件, 又做一件, 身在這裏, 心亦在這裏.&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主一'은 다만 마음을 전일하게 하여 다른 생각이 섞이지 않게 하는 것이고, '無適'은 다만 [마음이] 방일하지 않게 하는 것이니, 독서할 때는 단지 독서만하고 옷 입을 때에는 단지 옷만 입는 것처럼 한 가지 일을 끝내고 나서 또 한 가지 일을 하고, 몸이 여기에 있으면 마음 또한 여기에 있는 것이다.&amp;quot;&lt;br /&gt;
:○今講學, 更須於主一上做工夫. 若無主一工夫, 則講底義理無安著處, 都不是自家物事. 若有主一底工夫, 則外面許多義理, 方始為我有, 都是自家物事. 工夫到時, 纔主一, 便覺意思好, 卓然精明.&lt;br /&gt;
:지금 강학함에 더욱 '主一'에 대해 공부(노력)해야 한다. 만약 '主一'공부가 없다면 강학한 의리가 안착할 곳이 없어서 모두 나의 일이 아니게 된다. 만약 '主一'공부가 있다면 외면의 많은 의리가 비로소 나에게 있게 되어 모두 나의 일이 된다. 공부가 완성된 때에는 '主一'하자마자 바로 생각이 좋고 매우 정밀하고 밝게 됨을 알게 될 것이다.&lt;br /&gt;
:○北溪陳氏曰: &amp;quot;主一, 是心只在此, 不二不三; 無適, 是心只在此, 不東不西. 主一無適, 只展轉相解, 釋要分明, 非主一外, 又别有無適之功也.&amp;quot;&lt;br /&gt;
:북계 진씨가 말했다: &amp;quot;'主一'이라는 것은 마음이 단지 여기에 있어서 두 갈래 세 갈래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이고, '無適'은 마음이 다만 여기에 있어서 동쪽으로 가거나 서쪽으로 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주일'과 '무적'은 상보적으로 풀어야 해석이 분명하게 되니, '主一' 이외에 또 따로 '無適'공부가 있는 것이 아니다.&amp;quot;&lt;br /&gt;
&lt;br /&gt;
嘗以整齊嚴肅言之矣. &amp;lt;br/&amp;gt;&lt;br /&gt;
'整齊嚴肅'으로 설명하시기도 했다. &lt;br /&gt;
:程子曰: &amp;quot;只整齊嚴肅, 則心便一; 一則無非僻之干矣.&amp;quot;&lt;br /&gt;
:정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다만 整齊嚴肅 한다면 마음이 전일해지고, [마음이] 전일해지면 사악함&amp;lt;ref&amp;gt;非僻 : 邪惡。《禮記‧玉藻》：“非辟之心，無自入也。”&amp;lt;/ref&amp;gt;의 간섭이 없을 것이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主一無適, 未易曉. 故又就事實上教人, 使只就眼前做工夫, 如正衣冠, 尊瞻視, 足容重, 手容恭之類, 皆是内外一致. 外面整齊嚴肅, 則内面便一; 内面便一, 則外面便無非僻之干.&amp;quot;&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主一無適'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다시 구체적인 일로 사람들을 가르쳐서, 그들로 하여금 단지 눈앞에서 공부하게 하셨으니, 예를 들어 '의관을 바르게 하고 보기를 높게 하며'&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요왈&amp;gt; 2. 君子正其衣冠，尊其瞻視，儼然人望而畏之，斯不亦威而不猛乎？&amp;lt;/ref&amp;gt; '발모양은 무겁게 하고 손모양은 공경스럽게 하는'&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옥조&amp;gt; 足容重，手容恭，目容端，口容止，聲容靜，頭容直，氣容肅，立容德，色容莊，坐如尸，燕居告溫溫。&amp;lt;/ref&amp;gt; 것들은 모두 내외가 일치되는 것이다. 외면을 整齊嚴肅하면 내면이 전일해지고, 내면이 전일하다면 외에 사악함의 간섭이 없을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至其門人謝氏之說, 則又有所謂常惺惺法者焉.&amp;lt;br/&amp;gt;&lt;br /&gt;
정자의 문인 사량좌의 설의 경우에는 이른바 '常惺惺法'이라는 것이 있기도 하고,&lt;br /&gt;
:上蔡謝氏曰: &amp;quot;敬是常惺惺法.&amp;quot;&lt;br /&gt;
:상채 사씨가 말했다: &amp;quot;敬은 늘 깨어있는 수양법(常惺惺法)이다.&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惺惺乃心不昏昧之謂, 只此便是敬. 整齊嚴肅固是敬, 然心若昏昧, 燭理不明, 雖强把捉, 豈得為敬?&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惺惺은 바로 마음이 혼매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니, 이렇게만 해도 敬이다. 整齊嚴肅은 진실로 경공부지만, 마음이 만약 혼매해서 이치를 밝게 밝히지 못한다면, 비록 [정제엄숙에 집착해 마음을] 애써 붙들더라도 어찌 敬이라 할 수 있겠는가?&amp;quot;&lt;br /&gt;
:○學問須是警省, 且如瑞巖和尚每日常自問: &amp;quot;主人翁惺惺否?&amp;quot; 又自答曰: &amp;quot;惺惺.&amp;quot; 今時學者却不能如此.&lt;br /&gt;
:학문할 때는 모름지기 경계하고 성찰해야하니, 예를 들어 서암화상이 매일 항상 스스로 '주인장은 깨어있는가?'하고 묻고는 다시 스스로 '깨어있네'라고 대답하는 것과 같다. 오늘날의 학자들은 이렇게도 하지 못한다.&lt;br /&gt;
:○或問: &amp;quot;佛氏亦有此語.&amp;quot; 曰: &amp;quot;其喚醒此心則同; 其為道則異. 吾儒喚醒此心, 欲他照管許多道理; 佛氏則空喚醒此心, 無所作為, 異處在此.&amp;quot;&lt;br /&gt;
:혹자가 물었다: &amp;quot;불교에도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이 마음을 일깨우는 것&amp;lt;ref&amp;gt; 喚醒 : 叫醒。常用作比喻，有使之覺醒意。&amp;lt;/ref&amp;gt;은 동일하지만 도를 행하는 것은 다르다. 우리 유가는 이 마음을 일깨워 그것으로 하여금 수많은 도리를 비추고자 하지만, 불교는 헛되이 마음을 일깨우기만 하고 하는 바가 없으니,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amp;quot;&lt;br /&gt;
:○心既常惺惺, 又以規矩䋲檢之, 此内外交相養之道也.&lt;br /&gt;
:마음이 이미 항상 깨어있는 상태에서 다시 規矩로 마음을 검속하는 것, 이것이 안과 밖을 같이 기르는 방법이다.&lt;br /&gt;
:○今人心聳然在此, 尚無惰慢之氣, 况曰心常能惺惺者乎! 故心常惺惺, 自無客慮.&lt;br /&gt;
:요즘 사람들의 마음도 조심히 여기에 있으면 오히려 태만한 기운이 없는데, 하물며 '마음이 늘 깨어있을 수 있다'고 하는 경우에 있어서랴! 그러므로 마음이 늘 깨어있으면 저절로 사념이 없게 된다. &lt;br /&gt;
:○陳氏曰: &amp;quot;是就心地上做工夫處. 盖心常惺惺在這裏, 便常惺惺恁地活; 若不在, 便死了. 心纔在這裏, 則萬理便森然於其中矣.&amp;quot;&lt;br /&gt;
:진씨가 말했다: &amp;quot;이것(경)은 마음에서 공부하는 것이다. 대개 마음이 늘 깨어있어서 여기에 있으면 늘 깨어있는 것이 이처럼 활발하지만, 만약 여기에 있지 않으면 곧 바로 죽어버린다. 마음은 여기에 있자마자 만리가 마음속에 가득하다.&amp;quot;&lt;br /&gt;
&lt;br /&gt;
尹氏之說, 則又有所謂其心收斂不容一物者焉. &amp;lt;br/&amp;gt;&lt;br /&gt;
윤돈의 설의 경우에는 또 이른바 '其心收斂, 不容一物'이라는 것이 있기도 하다.&lt;br /&gt;
:祈寛問: &amp;quot;如何是主一?&amp;quot; 和靖尹氏曰: &amp;quot;只收歛身心, 便是主一. 且如人到神祠致敬時, 其心收歛, 便著不得毫髮事, 非主一而何?&amp;quot;&lt;br /&gt;
:기관이 물었다: &amp;quot;무엇이 '主一'입니까?&amp;quot; 화정 윤씨가 말했다: &amp;quot;다만 몸과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바로 '主一'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신사에 이르러 공경을 다할 때 그 마음을 거둬들여 털끝 만큼의 일도 [마음속에] 두지 못하는 것, 이것이 '主一'아니고 무엇이겠는가?&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心主這一事, 不為他事攙亂, 便是不容一物.&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마음이 이 한 가지 일을 주로하고 다른 일로 어지럽히지 않는 것이 바로 이것이 '不容一物'이다.&amp;quot;&lt;br /&gt;
:○問'心收歛, 不容一物.' 曰: &amp;quot;這心都不著一物, 便收歛. 他上文云: '今人入神祠, 當那時, 直是更著不得些子事, 只有箇恭敬.' 此最親切. 今人若能專一此心, 便收歛緊宻, 都無些子空罅; 若這事思量未了, 又走做那邊去, 心便成兩路.&amp;quot;&lt;br /&gt;
:'心收歛, 不容一物.'에 대해 물었다.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이 마음이 어떤 일에도 마음두지 않는 것이 곧 '收歛'이다. 윤돈의 윗 글에서 '사람이 신사에 들어가면 그때에는 단지 어떤 일에도 마음두지 않고 다만 공경함만 지니고 있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가장 비근하다. 사람들이 만약 이 마음을 전일하게 할 수 있다면, [마음이] 수렴되고 긴밀해져 약간의 틈도 없겠지만, 만약 이 일에 대한 생각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또 다른 것으로 가버린다면 마음이 두 갈래가 되는 것이다.&amp;quot; &lt;br /&gt;
&lt;br /&gt;
觀是數說, 足以見其用力之方矣.” &amp;lt;br/&amp;gt;&lt;br /&gt;
이 여러 설을 보면 힘쓸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이다.&amp;quot;&amp;lt;br/&amp;gt;&lt;br /&gt;
:問程子、謝氏、尹氏所說敬處. 朱子曰: &amp;quot;譬如此屋四方皆入得, 若從一方入到這裏, 則那三方入處都在這裏了.&amp;quot;&lt;br /&gt;
:정자와 사량좌와 윤돈이 敬을 설명한 것에 대해 물었다.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비유하자면, 이 방은 사방으로 모두 들어올 수 있는데, 만일 한 쪽으로 들어온다면 나머지 세 쪽도 모두 여기에 있는 것과 같다.&amp;quot;&lt;br /&gt;
:○問: &amp;quot;敬, 諸先生之說, 各不同. 然總而言之, 常令此心常存, 是否?&amp;quot; 曰: &amp;quot;其實只一般. 若是敬時, 自然主一無適, 自然整齊嚴肅, 自然常惺惺, 其心收歛不容一物. 但程子'整齊嚴肅', 與謝氏、尹氏之說又更分曉.&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敬에 대한 여러 선생들의 설명이 각각 같지 않는데, 총괄해 말한다면 항상 이 마음을 보존하는 것이지요?&amp;quot; 말했다. &amp;quot;사실 한 가지일 뿐이다. 만약 敬하는 때라면 자연히 主一無適하고 자연히 整齊嚴肅하며 자연히 常惺惺하고 그 마음이 수렴되어 어떤 외물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정자께서 말씀하신 '整齊嚴肅'이 사량좌나 윤돈의 설명과 비교했을 때 [의미가] 더욱 분명하다.&amp;quot;&lt;br /&gt;
:○問: &amp;quot;程子、謝氏之説, 謝氏尤切當&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貼切恰當。 &amp;lt;/ref&amp;gt;.&amp;quot; 曰: &amp;quot;如某所見, 程子說得切當. 整齊嚴肅, 此心便存, 便能惺惺, 未有外面整齊嚴肅而内不惺惺者. 人一時間外面整肅, 便一時惺惺; 一時放寛了, 便昏怠也.&amp;quot; 新安陳氏曰: &amp;quot;朱子深取整齊嚴肅之説者, 盖以有著實下手處耳.&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정자와 사량좌의 설명 가운데 사량좌이 설명이 더욱 적절한 것 같습니다.&amp;quo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내가 보건대, 정자께서 적절하게 말씀하셨다. 整齊嚴肅하면 마음이 보존되고 惺惺해질 수 있으니 외면을 整齊嚴肅하는데 내면이 惺惺하지 않은 자는 있지 않았다. 사람이 한 번 외면을 바르게 하면 일시에 惺惺해지며, 한 번 방관하게 되면 곧바로 혼매하고 나태해진다.&amp;quo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주자께서 整齊嚴肅의 설명을 깊히 취하신 것은 아마도 착실히 실천하는 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amp;quot;&lt;br /&gt;
:○勿齋程氏曰: &amp;quot;整齊嚴肅、及收歛不容一物, 皆敬之始也; 主一無適、及常惺惺者, 皆敬之成也. 主一無適者, 敬之純; 常惺惺者, 敬而明也. 然主一亦有淺深, 以初學言之, 則欲主乎一; 以成徳言之, 則所主者一.&amp;quot;&lt;br /&gt;
:물재 정씨가 말했다. &amp;quot;'整齊嚴肅'과 '收歛不容一物'은 모두 敬의 시작이고, '主一無適'과 '常惺惺'은 모두 경의 완성이다. '主一無適'은 敬 중에 순수한 것이고 '常惺惺'은 敬 중에 밝은 것이다. 그러나 '主一'함에는 깊이가 있으니, 초학자로 말한다면 한 가지를 주로 하고자 해야하고, 덕을 이룬 사람으로 말한다면 주로하는 한 가지일 것이다.&amp;quot;&lt;br /&gt;
:○黄氏曰: &amp;quot;且將自家身心去體察見得如何是主一無適, 如何是整齊嚴肅, 如何是常惺惺, 如何是其心收歛不容一物. 是四者皆以有所畏而然. 朱子晚年言敬字之義, 惟畏字近之, 其意精矣.&amp;quot;&lt;br /&gt;
:황씨가 말했다: &amp;quot;우선 나의 몸과 마음을 가지고 무엇이 主一無適이고 무엇이 整齊嚴肅이며 무엇이 常惺惺이고 무엇이 心收歛不容一物인지 살펴보라(體察見得). 이 네 가지는 모두 두려워하는 바가 있어서 그러한 것이다. 주자께서 만년에 말씀하신 敬자의 의미는 오직 畏자에 가까우니, 그 의미가 정밀하다. &amp;quot; &lt;br /&gt;
:○西山眞氏曰: &amp;quot;持敬之道, 合三先生之言而用力焉, 然後内外交相養之功始備.&amp;quot;&lt;br /&gt;
:서산 진씨가 말했다: &amp;quot;敬을 유지하는 방법은, 세 선생의 말을 합쳐서 그것에 힘쓰는 것이니, 그런 연후에야 내외를 서로 길러주는 공효가 비로소 갖추어질 것이다.&amp;quot;&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6. 경공부가 학문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되는 이유&lt;br /&gt;
&lt;br /&gt;
曰: “敬之所以爲學之始者然矣, 其所以爲學之終也, 奈何?”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敬이 학문의 시작이 되는 것은 맞지만, 학문의 끝이 되는 것은 어째서인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敬者, 一心之主宰, 而萬事之本根也. 知其所以用力之方, 則知小學之不能無賴於此以爲始; 知小學之賴此以始, 則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大學之不能無賴乎此以爲終者, 可以一以貫之而無疑矣. 蓋此心旣立, 由是格物致知以盡事物之理, 則所謂尊德性而道問學; &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敬이라는 것은 一心의 주재이자 모든 일의 근본이니, [이에] 힘쓸 방법을 안다면 소학은 이것에 의지하지 않고는 시작이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고, 소학이 이를 의지해 시작이 됨을 안다면, 저 대학이 이것에 의지하지 않고는 끝이 될 수 없다는 것도 '一以貫之'&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리인&amp;gt; 15. 子曰：「參乎！吾道一以貫之。」&amp;lt;/ref&amp;gt;해 의심이 없을 수 있을 것이다. 대개 이 마음이 확립되고서 이것(敬)을 통해 格物致知해 사물의 이치를 다하는 것이 이른바 '尊德性而道問學'&amp;lt;ref&amp;gt;&amp;lt;중용장구&amp;gt; 27장. 故君子尊德性而道問學，致廣大而盡精微，極高明而道中庸。溫故而知新，敦厚以崇禮。&amp;lt;/ref&amp;gt;이요, &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尊徳性, 持敬以涵養本原也; 道問學, 窮格以開發聰明也.&amp;quo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尊徳性은 敬의 상태를 유지해서 본원을 함양하는 것이고 道問學은 궁리·격물해서 총명함을 개발하는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由是誠意正心以修其身, 則所謂先立其大者而小者不能奪; &amp;lt;br/&amp;gt;&lt;br /&gt;
이것(敬)을 통해 誠意正心해 자신을 닦는 것이 이른바 '先立其大者而小者不能奪'&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고자상&amp;gt; 15. 先立乎其大者，則其小者弗能奪也。&amp;lt;/ref&amp;gt;이요,&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先立其大者, 持敬以誠其意、正其心也; 小者不能奪, 百體從心君所令而身脩也.&amp;quo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先立其大'라는 것은 경의 상태를 유지하여 그 뜻을 진실하게 하고 그 마음을 바로하는 것이며, '小者不能奪'이라는 것은 온 몸이 心이라는 군주가 명령한 바를 따라서 몸이 닦이는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由是齊家治國以及乎天下, 則所謂修已以安百姓, 篤恭而天下平. 是皆未始一日而離&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乎敬也. 然則敬之一字, 豈非聖學始終之要也哉!” &amp;lt;br/&amp;gt;&lt;br /&gt;
이것(敬)을 통해 齊家治國해 천하에 이르는 것이 이른바 '修已以安百姓'&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헌문&amp;gt; 45. 脩己以安百姓，堯舜其猶病諸！&amp;lt;/ref&amp;gt;, '篤恭而天下平'&amp;lt;ref&amp;gt;&amp;lt;중용장구&amp;gt; 33장. 是故君子篤恭而天下平。&amp;lt;/ref&amp;gt;이니, 이 모두는 하루도 敬에서 떨어진 적이 없다. 그렇다면 敬 한 자가 어찌 성인되는 학문(聖學)의 처음부터 끝까지 [적용되는] 키워드가 아니겠는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朱子曰: &amp;quot;敬者, 始終之要, 未知則敬以知之; 巳知則敬以守之. 若不敬則其心顛倒昏昧, 而不自知, 未知者, 非敬無以知; 巳知者, 非敬無所守.&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敬이라는 것은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핵심이니, 아직 알지 못한 것이 있다면 敬해서 그것을 알아가고, 이미 알았다면 敬해서 그것을 지켜야 한다. 만약 敬하지 않은다면 마음이 전도되고 어두워져도 스스로 알아채지 못하게 되니,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은 敬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이미 안 것은 敬하지 않으면 지킬 수 없다.&amp;quot;&lt;br /&gt;
:○陳氏曰: &amp;quot;心之為物, 虚靈知覺, 所以為一身之主宰也. 身無此以為之主宰, 則四肢百體皆無所管攝矣. 然所以為心者, 又當由我有以主宰之, 我若何而主宰之乎? 所謂敬者, 是又一心之主宰也.&amp;quot;&lt;br /&gt;
:진씨가 말했다: &amp;quot;마음이라는 것은 허령한 지각이라서 한 몸의 주재가 된다. 몸이 이것을 주재로 삼지 않으면 온몸의 기관 모두를 관장하는 것이 없게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또한 마땅히 나를 통해 주재돼야 하니, 나는 어떻게 그것을 주재하나? 이른바 敬이라는 것이 다시 마음의 주재가 된다.&amp;quot;&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7. 삼강령·팔조목&lt;br /&gt;
&lt;br /&gt;
曰: “然則此篇所謂‘在明明德, 在新民, 在止於至善’者, 亦可得而聞其說之詳乎?”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그렇다면 이 편에서 말한 '在明明德, 在新民, 在止於至善'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겠는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lt;br /&gt;
曰: “天道流行, 發育萬物, 其所以爲造化者, 陰陽五行而已.&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천도가 유행해 만물을 발육함에 조화를 이루는 것은 음양오행일 뿐인데,&lt;br /&gt;
:黄氏曰:&amp;quot;天道是理; 隂陽五行是氣. 合而言之, 氣即是理, 一隂一陽之謂道, 是也; 分而言之, 理自為理, 氣自為氣, 形而上下, 是也. &amp;lt;br/&amp;gt;&lt;br /&gt;
:황씨가 말했다: &amp;quot;'천도'는 理이고 '음양오행'은 氣이다. 합해서 말하면 氣는 곧 理이니 '一隂一陽之謂道'&amp;lt;ref&amp;gt;&amp;lt;주역&amp;gt; &amp;lt;계사상&amp;gt; 5. 一陰一陽之謂道，繼之者善也，成之者性也。&amp;lt;/ref&amp;gt;가 이것이다. 나눠 말하면 理는 그 자체로 理이고, 氣는 그 자체로 氣이니 '形而上下'&amp;lt;ref&amp;gt;&amp;lt;주역&amp;gt; &amp;lt;계사상&amp;gt; 12. 形而上者謂之道，形而下者謂之器。&amp;lt;/ref&amp;gt;가 이것이다.&amp;quot;&lt;br /&gt;
:○未有五行, 只得喚做隂陽; 既有五行, 則隂陽在五行之中矣.&amp;lt;br/&amp;gt;&lt;br /&gt;
:아직 오행이 있지 않을 때에는 단지 음양이라고 부를 수 있을 뿐이다. 오행이 있고 나면 음양은 오행 가운데 있다.&lt;br /&gt;
&lt;br /&gt;
而所謂陰陽五行者, 又必有是理而後有是氣; 及其生物, 則又必因是氣之聚而後有是形. 故人物之生必得是理, 然後有以爲健順仁義禮智之性; 必得是氣, 然後有以爲魂魄五臟百骸之身. 周子所謂‘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者, 正謂是也.&amp;lt;br/&amp;gt;&lt;br /&gt;
이른바 '음양오행'이라는 것은 다시 반드시 理가 있은 뒤에 氣가 있고, 만물을 낳음에 이르러서는 다시 반드시 氣의 응취에 기인해 形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과 만물이 태어남에 반드시 理를 얻은 연후에 健順·仁義禮智와 같은 性이 될 수 있고, 반드시 氣를 얻은 연후에 魂魄·五臟·百骸와 같은 身이 될 수 있다. 周子께서 ‘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amp;lt;ref&amp;gt;&amp;lt;[[태극도설]]&amp;gt;&amp;lt;/ref&amp;gt;라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이것이다. &lt;br /&gt;
:問: &amp;quot;必有是理然後有是氣, 是如何?&amp;quot; 朱子曰: &amp;quot;此本無先後之可言. 然必欲推其氣之所從來, 則須說先有是理. 然理又非别為一物, 即存乎是氣之中. 無是氣, 則是理亦無掛搭&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 比喻着落、依據。&amp;lt;/ref&amp;gt;處. 氣則為金木水火, 理則為仁義禮智.&lt;br /&gt;
:물었다. &amp;quot;'반드시 이 理가 있은 이후에 氣가 있다'고 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amp;quo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이는 본래 말할 만한 선후가 없다. 그러나 굳이 氣의 유래를 추론하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理가 먼저 있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理가 다시 별도로 하나의 사물인 것이 아니니, 氣 가운데에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氣가 없다면 理 또한 안착할 곳이 없다. 氣는 金·木·水·火가 되고  理는 인·의·예·지가 된다.&amp;quot;&lt;br /&gt;
:○理未嘗離乎氣, 然豈無先後? 理無形, 氣便粗有查滓.&lt;br /&gt;
:理는 일찍이 氣와 떨어진 적이 없지만, 어찌 선후가 없겠는가? 理에는 형체가 없지만 氣는 거칠게 찌꺼기 [같은 것이] 있다. &lt;br /&gt;
:○就原頭定體上說, 則未分五行時, 只謂之隂陽; 未分五性時, 只謂之健順. 及分而言之, 則陽為木火, 隂為金水, 健為仁禮, 順為智義.&lt;br /&gt;
:근원적 상태(原頭定體)에 대해 말한다면, 아직 오행으로 나눠지지 않은 때에는 다만 隂·陽이라 말하고, 아직 오성으로 나눠지지 않은 때에는 다만 健·順이라고 말한다. [오행과 오성으로] 나눠지는 경우에 대해 말하면, 陽은 木·火가 되고 隂은 金·水가 되며, 健은 仁·禮가 되고 順은 智·義가 된다.&lt;br /&gt;
:○問隂陽五行健順五常之性. 曰: &amp;quot;健是稟得那陽之氣; 順是稟得那隂之氣; 五常是稟得五行之理. 人物皆稟得健順五常之性.&lt;br /&gt;
:隂陽·五行·健順·五常의 性에 대해 물었다. 말씀하셨다: &amp;quot;健은 저 陽의 氣를 품수받은 것이고, 順은 저 隂의 氣를 품수받은 것이며, 五常은 五行의 理를 품수받은 것이다. 사람과 만물은 모두 健順·五常의 性을 품수받는다.&amp;quot;&lt;br /&gt;
:○天地之間有理有氣. 理也者, 形而上之道也, 生物之本也; 氣也者, 形而下之器也, 生物之具也. 故人物之生, 必稟此理, 然後有性; 必稟此氣, 然後有形. 其性其形, 雖不外乎一身, 然道器之間, 分際甚明, 不可亂也.&lt;br /&gt;
:천지 사이에 理와 氣가 있으니, 理라는 것은 형이상의 도이니 만물을 낳는 근본이고, 氣라는 것은 형이하의 기물(器)이니 만물을 낳는 도구(具)이다. 그러므로 사람과 만물이 생겨남에 반드시 理를 품수받은 이후에 性이 있게 되고, 반드시 이 氣를 품수받은 이후에 형체가 있게 된다. 이 性과 형체는 비록 한 몸을 벗어나지 않지만, 道와 器 사이에는 구분이 매우 명확하여 [서로] 어지럽힐 수 없다.&lt;br /&gt;
:○北溪陳氏曰: &amp;quot;人始於氣感則得魂為先, 既而體凝焉則魄次之. 魂主乎動, 所以行乎此身之中, 隨所貫而無不生者也; 魄主乎静, 所以實乎此身之中, 隨所注&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貫注】 1. 貫穿；貫通。▶ 《參同契》卷上“須以造化， 精氣乃舒” 宋 朱熹 考异： “此時陰陽對待， 分為二物， 莫不含情互結， 兩相貪戀， 交通貫注， 而後化生萬物， 以舒展向來自具之精氣。” &amp;lt;/ref&amp;gt;而無不定者也.&lt;br /&gt;
:북계 진씨가 말했다: &amp;quot;사람이 처음 기를 感하면 魂을 먼저 얻고, 이어서 육체가 응결되면 魄을 그 다음으로 [얻는다]. 魂은 動을 주로하기 때문에 몸 안에서 행함에 관통함(貫)에 따라 낳지 않는 것이 없고, 魄은 静을 주로하기 때문에 몸 안을 채움에 관통함(注)에 따라 안정시키기 않음이 없다.&amp;quot;&lt;br /&gt;
:○節齋蔡氏曰: &amp;quot;先有理後有氣者, 形而上為道, 形而下為器之謂也; 有則俱有者, 道即器之謂也. 盖不分先後, 則理氣不明; 不合理氣, 則判為二物, 如性之與情未發已發, 自有先後, 固不可道性情同時也. 然情之本實具於性, 非先有此性而後别生一情, 是有此性即有此情也.&lt;br /&gt;
:절제 채씨가 말했다: &amp;quot;'먼저 理가 있은 후에 氣가 있다'는 것은 형이상자가 道가 되고 형이하자가 器가 된다는 말이고, '[理가] 있으면 [氣를] 갖춘다'는 것은 '道가 器에 즉한다'는 말이다. 대개 선후를 나누지 않으면 理와 氣[의 차이가] 밝혀지지 않고, 理와 氣를 합하지 않으면 [理와 氣가] 별개의 것이 되니, 마치 性과 情은 未發과 已發의 상태로 자연히 선후가 있어서 진실로 性과 情이 동시에 있다고 말할 수 없지만, 情은 본래 性에 실로 갖추어져 있어서 性이 먼저 존재한 연후에 따로 情이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性이 있으면 곧 이 情이 있게 되는 것과 같다.&amp;quot;&lt;br /&gt;
:○東窻李氏曰: &amp;quot;天之運五行, 其實隂陽而已; 人之性五常, 其實健順而已. 仁之油然生意不可遏, 禮之粲然明盛不可亂, 健之為也; 義不拂乎可否之宜, 智不外乎是非之别, 順之為也. 若夫信, 則體是理而不易者, 健也; 循是理而不違者, 順也.&lt;br /&gt;
:동창 이씨가 말했다: &amp;quot;하늘이 五行을 운행함에 그 실질은 隂·陽일 뿐이고, 사람이 五常을 性으로 함에 그 실질은 健·順일 뿐이다. 仁의 유연한 生意를 막을 수 없고 禮의 찬연하고 성대함을 어지럽힐 수 없는 것은 健이 행한 것이고, 義가 可·否의 마땅함에서 벗어나지 않음과 智가 是·非의 구별에서 벗어나지 않음은 順이 행한 것이다. 信의 경우는, 理를 체득하여 바뀌지 않는 것이 健이고 理를 따라서 거스르지 않는 것이 順이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魂, 陽之靈; 魄, 隂之靈; 五臟, 五行之質&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4. 形體；外貌。 &amp;lt;/ref&amp;gt;; 百骸, 萬物之象也; 眞, 以理言而理不雜氣; 精, 以氣言而氣不離理. 妙者, 理氣之莫測; 合者, 理氣之無間; 凝則有是形而各一其性矣.&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魂은 陽의 영이고 魄은 隂의 영이며, 오장은 오행의 형체이고 百骸은 만물의 형체이다. 眞은 理로 말하여 理가 氣와 섞이지 않는 것이고 精은 氣로 말하여 氣가 理와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妙라는 것은 理와 氣를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다. 合이라는 것은 理·氣에 간극이 없어서, 응결되면 형체가 있고 각각 하나의 性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amp;quot;&lt;br /&gt;
:○周子之言見&amp;lt;太極圖說&amp;gt;&lt;br /&gt;
:주돈이의 말은 &amp;lt;[[태극도설]]&amp;gt;에 보인다.&lt;br /&gt;
&lt;br /&gt;
然以其理而言之, 則萬物一原, 固無人物貴賤之殊; 以其氣而言之, 則得其正且通者爲人, 得其偏且塞&amp;lt;sub&amp;gt;先則反&amp;lt;/sub&amp;gt;者爲物, 是以或貴或賤而不能齊也.&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理로 말한다면 만물은 같은 근원이니 진실로 사람과 사물·귀함과 천함의 다름이 없고, 氣로 말한다면 그 바르고 통한 것을 얻은 것이 사람이 되고 치우치고 막힌 것을 얻은 것은 사물이 되기  때문에 어떤 것은 귀하고 어떤 것은 천하여 같을 수가 없다.&lt;br /&gt;
:朱子曰: &amp;quot;以理言之, 則無不全; 以氣言之, 則不能無偏.&amp;quot;&lt;br /&gt;
:주자가 말했다. &amp;quot;理로 말한다면 온전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氣로 말한다면 치우침이 없을 수 없다.&amp;quot;&lt;br /&gt;
:○人得其氣之正, 故是理通而無所塞; 物得其氣之偏, 故是理塞而無所通. 且如人頭圓象天, 足方象地, 平正端直, 以其受天地之正氣, 所以識道理有知識; 物受天地之偏氣, 所以禽獸横生, 草木頭生向下, 尾反向上, 物之間有知者, 不過只通得一路, 如烏之知孝, 獺之知祭, 犬但能守禦, 牛但能耕而已. 人則無不知、無不能, 人所以與物異, 所争者此耳.&lt;br /&gt;
:사람은 그 氣 중에 바른 것을 얻었기 때문에 理가 통해 막힘이 없지만, 사물은 氣 중에 치우친 것을 얻었기 때문에 理가 막혀 통하는 바가 없다. 예를 들어 사람의 머리 모양이 둥근 것은 하늘은 본뜬 것이고, 발이 네모난 것은 땅을 본 뜬 것이며, 평평하고 바르고 단정하고 곧으며, 천지의 바른 기를 얻었기 때문에 도리를 인식하고 지식이 있는 것이다. 사물은 천지의 치우친 기를 받았기 때문에 금수는 横生하고, 초목은 머리가 날 때 아래를 향하고 꼬리는 도리어 위를 향한다. [또] 사물들 중에 지각이 있는 것은 다만 한 갈래만 통하는 데 불과하니, 예를 들어 까마귀는 孝를 알고 수달이 제사 지낼 줄 알며, 개는 지킬 수만 있고 소는 밭갈 수만 있을 뿐이다. 사람이라면 알지 못하는 것이 없고 할 수 없는 것이 없으니, 사람이 사물과 다른 점은 그 차이가 이것일 뿐이다.&lt;br /&gt;
:○論萬物之一原, 則理同而氣異; 觀萬物之異體, 則氣猶相近而理絶不同. 方賦與萬物之初, 天命流行只是一般, 故理同; 二五之氣有清濁純駁, 故氣異. 萬物已得之後, 雖有清濁純駁之不同, 而同此二五之氣, 故氣相近; 以其昏明開塞之甚逺, 故理絶不同. 氣相近, 如知寒暖、識飢飽、好生惡死、趨利避害, 人與物都一般; 理不同, 如蜂蟻之君臣, 只是他義上有一㸃子明; 虎狼之父子, 只是他仁上有一㸃子明, 其他更推不去.&lt;br /&gt;
:만물의 근원이 같음을 논한다면 理는 같고 氣는 다르며, 만물의 형체가 다름을 본다면 氣는 오히려 서로 가깝지만 理는 절대로 같지 않다. 만물에게 부여한 처음에는 천명의 유행은 단지 똑같기 때문에 理는 같지만, 음양오행의 氣에는 清濁純駁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氣는 다르다. 만물이 이미 얻고 난 후에는 비록 清濁純駁의 차이가 있지만 이 음양오행의 기는 같기 때문에 氣는 서로 가깝고, 그 어둡거나 밝고 열리거나 막힘의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理는 전혀 다른 것이다. '氣가 서로 가까운 것'은 마치 춥고 따뜻함을 알고 배고프고 배부름을 인지하며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며 이익을 쫓고 해악을 피하는 것과 같으니 사람과 만물이 모두 같은 것이고, '理가 같지 않은 것'은 마치 벌과 개미의 군신관계가 다만 '義'에 대해서 약간 밝은 부분이 있고, 호랑이와 이리의 부자관계가 다만 '仁'에 대해서 약간 밝은 것과 같은 것이니, 이밖으로는 더 미룰 수 없다.(벌과 개미는 義에만 밝고, 호랑이와 이리는 仁에만 밝다.)&lt;br /&gt;
:○新安倪氏曰: &amp;quot;理雖不雜乎氣, 而亦不離乎氣. 以不雜者言之, 則理同而氣異; 以不離者言之, 則得氣之正者理亦全, 得氣之偏者理亦不全矣. 朱子後一條, 與或問之說略有不同者, 而亦未嘗不互相發也.&lt;br /&gt;
:신안 예씨가 말했다: &amp;quot;理는 비록 氣와 섞이지 못하지만 氣와 떨어지지도 못한다. 섞이지 못하는 점으로 말하면 理는 동일하고 氣는 다르며, 서로 떨어지지 못하는 점으로 말하면 氣 중에 치우친 것을 얻으면 리 또한 온전하지 못하다. 주자의 이후 한 조목이 [여기] &amp;lt;혹문&amp;gt;의 설명과 약간 같지 않은 것이 있지만, 그래도 서로 발명하지 않은 적이 없다.&amp;quot;&lt;br /&gt;
&lt;br /&gt;
彼賤而爲物者, 旣梏於形氣之偏塞, 而無以充其本體之全矣. 唯人之生乃得其氣之正且通者, 而其性爲最貴, 故其方寸之間, 虛靈洞徹, 萬理咸備,&amp;lt;br/&amp;gt;&lt;br /&gt;
저 천하여 사물이 된 것은 이미 치우치고 막힌 형기에 구속되어 그 본체의 온전함을 확충할 수 없다. 오직 사람만이 태어남에 곧 바르고 통한 기를 얻어 性이 가장 귀중하게 되었으므로 마음이 허령하고 막힘없이 훤해 만리를 모두 갖추고 있다.&lt;br /&gt;
:北溪陳氏曰: &amp;quot;此八字, 只是再詳'虛靈不昧, 以具衆理'之意. 虛靈洞徹, 盖理與氣合而有此妙用耳, 非可專指氣. 如心恙底人亦有氣存, 何故昏迷顛錯, 無此虚靈洞徹耶?&amp;quot;&lt;br /&gt;
:북계 진씨가 말했다: &amp;quot;이 여덟 자(虛靈洞徹, 萬理咸備)는 다만 '虛靈不昧, 以具衆理'&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경1장 주석. 明德者，人之所得乎天，而虛靈不昧，以具眾理而應萬事者也。&amp;lt;/ref&amp;gt;의 의미를 다시 상세히 밝힌 것이다. '虛靈洞徹'은 대개 理와 氣를 합해 이러한 묘용이 있는 것이지 오직 氣만 가리킬 수는 없다. 만약 마음이 병든 사람에게도 [좋은] 氣가 보존되어 있다면, 무엇 때문에 혼미하고 전도되어 이러한 虚靈洞徹이 없겠는가?&amp;quot;&lt;br /&gt;
&lt;br /&gt;
蓋其所以異於禽獸者正在於此, 而其所以可爲堯舜而能參天地以贊化育者, 亦不外焉, 是則所謂明德者也. 然其通也或不能無淸濁之異, 其正也或不能無美惡之殊, 故其所賦之質, 淸者智而濁者愚, 美者賢而惡者不肖, 又有不能同者. &amp;lt;br/&amp;gt;&lt;br /&gt;
대개 사람이 금수와 다른 점이 바로 여기에 있고, 사람이 요순이 될 수 있고 천지에 참여하여 화육함을 도울 수 있는 까닭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이것이 바로 이른바 明德이다. 그러나 사람의 통한 [기]에도 간혹 맑고 탁한 차이가 없을 수 없고, 바른 [기에도] 간혹 아름답거나 추악한 차이가 없을 수 없기 때문에, 그 부여받은 기질이 맑은 사람은 지혜롭고 탁한 사람은 어리석으며 아름다운 사람은 어질고 나쁜사람은 불초하니, [사람과 사물 사이 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도] 다시 같을 수 없는 점이 있다.&lt;br /&gt;
:朱子曰: &amp;quot;人雖皆是天地之正氣, 但衮來衮去, 便有昏明厚薄之異. 盖氣是有形之物, 纔是有形之物, 便自有美惡也.&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사람이라면 누구나 비록 천지의 바른 기를 가지고 있지만, 다만 이리저리 뒤섞여 昏明厚薄의 차이가 있다. 대개 氣는 형체가 있는 것이니, 형체가 있는 것인 이상 절로 아름답거나 추악한 [차이가] 있다.&amp;quot;&lt;br /&gt;
:○問: &amp;quot;智愚賢不肖是所稟之氣有清濁美惡之不同, 不歸於所稟, 而歸於所賦, 何邪?&amp;quot; 曰: &amp;quot;賦如俗語云分俵均敷之意.&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智·愚·賢·不肖함은 품부받은 氣에 清濁美惡의 차이가 있기 때문인데, [그 원인을] '품수받은 것(所稟)'으로 환원하지 않고 '부여받은 것(所賦)'으로 환원하신 것은 어째서 입니까?&amp;quot; 말씀하셨다: &amp;quot;'賦'는 세간에서 ''''고르게''' 나눠준다(分俵均敷)'고 말하는 뜻과 같다.&amp;quot;&lt;br /&gt;
:○問: &amp;quot;有人聰明通曉, 是稟氣之清矣. 然却所為過差, 或流於小人之歸; 又有為人賢而不甚聰明通曉, 何也?&amp;quot; 曰: &amp;quot;&amp;lt;或問&amp;gt;中所謂知愚賢不肖之殊, 是也. 盖其所賦之質, 便有此四樣, 聰明曉了者, 智也; 而或不賢, 便是稟賦中欠了清和温恭之徳; 又有人極温和, 而不甚曉事, 便是賢而不智. 為學, 便是要克化教此等氣質, 令恰好耳.&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어떤 사람이 총명하고 훤히 다 아는 것은 품부받은 氣가 맑기 때문인데, 도리어 잘못을 저질러 혹 소인이라는 귀결지로 흘러가 버리기도 하고, 또 사람됨이 어진데 썩 총명하거나 훤히 알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 입니까?&amp;quot; 말씀하셨다: &amp;quot;&amp;lt;或問&amp;gt;에서 知·愚·賢·不肖의 차이를 말한 것이 이것이다. 대개 부여받은 자질에는 이 네 가지 양상이 있는데, 총명하고 훤히 아는 사람은 지혜롭지만(智) 간혹 어질지 못한 것(不賢)은 품부받은 것 중에 온화(清和·温恭)한 덕에 흠결이 있는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이 매우 온화한데 썩 총명하지 못한 것은 어질면서도 지혜롭지 못한 것(賢而不智)이다. 학문함이란 바로 이러한 기질을 교화시켜서 적절하게 만드려고 하는 것이다.&amp;quot;&lt;br /&gt;
:○有是理, 而後有是氣; 有是氣, 必有是理. 但稟氣之清者為聖為賢, 此如寶珠在清冷水中; 稟氣之濁者為愚不肖, 此如寶珠在濁水中. 所謂明明徳者, 是就濁水中揩拭此珠也. 物亦有是理, 又如寶珠在至汚處. 然其所稟有些明處, 就上面便自不昩, 如虎狼之父子, 蜂蟻之君臣, 是也.&amp;quot;&lt;br /&gt;
:理가 있은 이후에 氣가 있으니, 氣가 있으면 반드시 理가 있기 마련이다. 다만 품부받은 기질이 맑은 사람이 성현이 되는 것은 마치 보주가 맑은 물 안에 있는 것과 같고, 품부받은 기질이 탁한 사람이 어리석고 불초하게 되는 것은 마치 보주가 탁한 물 안에 있는 것과 같다. 이른바 '明明徳'이라는 것은 바로 탁한 물에서 이 보주를 씻는 것이다. 사물에도 理가 있지만, 또 마치 보주가 매우 더러운 곳에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품부받은 바에 조금이나마 밝은 부분이 있어서 그 위는 어둡지  없으니, 마치 호랑이나 이리의 부자관계나 벌과 개미의 군신관계 같은 것이 이것이다.&lt;br /&gt;
:○黄氏曰: &amp;quot;美惡是有生之初便分了, 非以性言, 是以氣言. 譬如玉之與石, 則美惡固分; 而玉之中, 又有美惡分焉.&amp;quot;&lt;br /&gt;
:황씨가 말했다: &amp;quot;아름답거나 추악한 차이(美惡)는 생겨난 처음에 나눠지는데, 性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氣로 말한 것이다. 비유하자면 마치 옥과 돌은 美惡이 진실로 구분되지만, 옥 가운데에서도 美惡이 나눠지는 경우와 같다.&amp;quot;&lt;br /&gt;
:○格庵趙氏曰: &amp;quot;通塞偏正, 判人物之大分而言; 其清濁美惡, 又就人中分别.&amp;quot;&lt;br /&gt;
:격암 조씨가 말했다: &amp;quot;'通塞偏正'은 사람과 사물을 나누는 큰 분류(大分)를 말한 것이고, '清濁美惡은' 사람 내에서 분별한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必其上智大賢之資乃能全其本體, 而無少不明, 其有不及乎此, 則其所謂明德者已不能無蔽而失其全矣. 况乎又以氣質有蔽之心, 接乎事物無窮之變, 則其目之欲色, 耳. 之欲聲, 口之欲味, 鼻之欲臭, 四肢之欲安佚, 所以害乎其德者, 又豈可勝&amp;lt;sub&amp;gt;平聲&amp;lt;/sub&amp;gt;言也哉! 二者相因, 反覆深固, 是以此德之明, 日益昏昧, 而此心之靈, 其所知者不過情欲利害之私而已. 是則雖曰: 有人之形, 而實何以遠於禽獸, 雖曰: 可以爲堯舜而參天地, 而亦不能有以自充矣. 然而本明之體, 得之於天, 終有不可得而昧者, 是以雖其昏蔽之極, 而介然之頃&amp;lt;sub&amp;gt;介音甲倐然之頃也&amp;lt;/sub&amp;gt;一有覺焉, 則卽此空隙之中, 而其本體已洞然矣.&amp;lt;br/&amp;gt;&lt;br /&gt;
반드시 上智·大賢의 자질이라야 그 본체를 온전히 할 수 있고 조금의 밝지 못함도 없을 수 있으니, 여기에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다면 이른바 明德이라는 것이 이미 가려지지 않을 수 없어서 그 온전함을 잃어버리게 된다. 게다가 더욱이 기질이 가린 마음으로 사물의 무궁한 변화를 만난다면, 여색을 바라는 눈과 아름다운 소리를 바라는 귀와 맛있는 것을 바라는 입과  향기를 바라는 코와 편안함을 바라는 몸이 그 덕(明德)을 해침을 또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이 두 가지가 서로 말미암아서 반복되어 더욱 견고해지니, 이 때문에 밝은 덕은 날마다 더욱 어두워지고 신령한 마음은 정욕·이해와 같은 사욕만 알 것이다. 이렇다면 비록 '사람의 형체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진실로 금수와 무엇이 다르겠으며, 비록' 요순이 될 수 있고 천지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또 스스로 확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본래 밝은 것(明德)은 하늘로부터 얻은 것이라서 끝내 어두워질 수 없으니, 이 때문에 비록 지극히 가려지더라도 잠깐 사이에 하나라도 깨우친다면, 그 틈 사이로 본체가 이미 훤히 드러나 있을 것이다.&lt;br /&gt;
:問: &amp;quot;'介然之頃, 一有覺焉, 則其本體已洞然矣', 須是就這些覺處, 便致知充廣將去.&amp;quot; 朱子曰: &amp;quot;然. 如擊石之火只是些子, 纔引著, 便可以燎原. 若必欲等大覺了, 方去格物致知, 如何等得這般時節? 那箇覺是物格知至了, 大徹悟, 到恁地時, 事都了. 若是介然之覺, 一日之間, 其發也無時無數, 只要人識認得操持充養將去.&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잠깐 사이에 하나라도 깨우침이 있다면, 그 틈 사이로 본체가 이미 훤히 드러나 있을 것이다'라는 것은 반드시 조금 깨우친 곳에서 앎을 지극히 하고 확충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amp;quo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그렇다. 부싯돌로 낸 불은 미미할 뿐이지만, 끌어다 붙이자마자 들판을 태워버릴 수도 있는 것과 같다. 만약 반드시 크게 깨우치고 나서(大覺) 격물치지 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이러한(大覺) 때를 기다리겠는가? 저 깨우침(大覺)은 [격물치지의 결과로] 物格知至해서 크게 깨우친 것이니, 이런 때에 이르면 일은 [이미] 다 이뤄진 것이다. 잠깐 사이의 깨우침이 드러나는 건 하루[같이 짧은 기간]에도 정해진 때나 횟수가 없으니, 다만 사람이 [이를] 인식하고 지켜서 확충해 나가야 할 뿐이다.&amp;quot;&lt;br /&gt;
&lt;br /&gt;
是以聖人施敎, 旣已養之於小學之中, 而復&amp;lt;sub&amp;gt;扶又反&amp;lt;/sub&amp;gt;開之以大學之道. 其必先之以格物致知之說者, 所以使之卽其所養之中, 而因其所發, 以啓其明之之端也; 繼之以誠意·正心·修身之目者, 則又所以使之因其已明之端, 而反之於身, 以致其明之之實也. 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旣有以啓其明之之端, 而又有以致其明之之實, 則吾之所得於天而未嘗不明者, 豈不超然無有氣質物欲之累, 而復得其本體之全哉! 是則所謂明明德者, 而非有所作爲於性分&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之外也. 然其所謂明德者, 又人人之所同得, 而非有我之得私也. 向也俱爲物欲之所蔽, 則其賢愚之分, 固無以大相遠者. 今吾旣幸有以自明矣, 則視彼衆人之同得乎此而不能自明者, 方且甘心迷惑沒溺於卑汚&amp;lt;sub&amp;gt;音烏&amp;lt;/sub&amp;gt;苟賤之中而不自知也, 豈不爲&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之惻然而思有以救之哉! 故必推吾之所自明者以及之, 始於齊家, 中於治國, 而終及於平天下, 使彼有是明德而不能自明者, 亦皆有以自明, 而去&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其舊染之汚焉, 是則所謂新民者, 而亦非有所付畀&amp;lt;sub&amp;gt;必至反&amp;lt;/sub&amp;gt;增益之也. &lt;br /&gt;
이 때문에 성인께서 베푸신 가르침이란 소학에서 그들을 기르고 다시 대학의 道로 그들을 열어주는 것이다. 성인께서 반드시 격물치지의 설명을 우선하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소학에서] 기르는 것에 나아가 [거기에서] 드러난 것을 통해 [명덕을] 밝히는 단서를 열게 하신 것이고, 誠意·正心·修身의 조목으로 격물치지를 이으신 것은 또한 그들로 하여금 이미 밝혀진 단서를 통해 자신에게 돌이켜 [명덕을] 밝히는 실질에 이루게 하신 것이다. 대저 이미 [명덕]을 밝히는 단서를 연 데다가 [명덕을] 밝히는 실질도 이뤘다면, 내가 하늘로부터 얻어 밝지 않은 적이 없던 것(명덕)이 어찌 초연히 기질과 물욕의 얽매임이 없이 다시 그 본체의 온전함을 회복하지 못하겠는가! 이것이 바로 '明明德'이라는 것이니, [명명덕은] 이렇다면 이른바 명명덕이라는 것은 성분 밖에서 작위하는 것이 아니다.&amp;lt;ref&amp;gt;혹은 '이것이 바로 이른바 명명덕이라는 것이니, 性分 밖에서 작위하는 바가 있는 것이 아니다'&amp;lt;/ref&amp;gt; 그러나 이른바 '명덕'이라는 것은 또한 사람마다 동일하게 얻은 것이지 내가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전에 모두 물욕에 의해 가려졌다면 어진 자와 어리석은 자(賢愚)의 차이가 진실로 클 수 없을 것이지만, 지금 내가 다행히 스스로 [명덕을] 밝힌 이상, 이것(명덕)을 똑같이 얻고도 스스로 밝히지 못하는 저 사람들이 막 기꺼이 미혹되어 더럽고 구차한 곳에 빠지면서도 스스로 알지 못함을 본다면, 어찌 그들을 측은해 하며 그들을 구제하려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반드시 내가 스스로 밝힌 바를 미루어 다른 사람에게 미쳐, 齊家에서 시작해서 治國을 거쳐 마침내 平天下에 이르러, 이 명덕을 가지고도 스스로 밝힐 수 없는 저 사람들로 하여금 역시 모두 스스로 밝혀서 구습의 오염된 더러움을 제거하게 해야 하니, 이렇다면 이른바 '新民'이라는 것 역시 주거나 더하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非彼本無而我付畀之, 非彼本少而我増益之, 以其本體之明無不全也.&amp;quot;&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저들에게 본래부터 없기 때문에 내가 준 것도 아니고, 저들이 본래 조금만 가지고 있어서 내가 더해준 것이 아니니, 그 밝은 본체는 완전하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amp;quot;&lt;br /&gt;
&lt;br /&gt;
然德之在己而當明, 與其在民而當新者, 則又皆非人力之所爲; 而吾之所以明而新之者, 又非可以私意苟且而爲也. 是其所以得之於天而見&amp;lt;sub&amp;gt;形甸反&amp;lt;/sub&amp;gt;於日用之間者, 固已莫不各有本然一定之則, &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자신에게 있어서 마땅히 밝혀야 하는 德과 백성들에게 있어 마땅히 새롭게 해야할 것은 또한 모두 사람의 힘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내가 밝히고 새롭게 하는 까닭 또한 사의로 구차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하늘로부터 얻어 일상생활에 드러나는 것에는 진실로 이미 각각 본연의 일정한 법칙이 있지 않음이 없다.&lt;br /&gt;
:西山眞氏曰: &amp;quot;則者, 法也. 天下之理, 皆天實為之, 莫不有一定之法, 非人力所可増損, 故曰則.&amp;quot;&lt;br /&gt;
:서산 진씨가 말했다: &amp;quot;'則'이라는 것은 법칙이다. 천하의 이치는 모두 하늘이 실로 행하는 것이니 일정한 법칙이 있지 않음이 없고, 사람의 힘으로 더하고 뺄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則'이라고 말한 것이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至善, 乃太極之異名而明徳之本體. 得之於天而有本然一定之則者, 至善之體, 乃吾心體統之太極; 見於日用之間而各有本然一定之則者, 至善之用, 乃事事物物各具之太極也.&amp;quot;&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至善'이란 바로 태극의 다른 이름이며 명덕이라는 본체이다. '하늘로부터 얻어서 본연의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것'은 至善의 體이니 바로 내 마음의 體統이 되는 태극이요, '일상생활에 드러나는 것에는 각각 본연의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것은 至善의 用이니, 이것이 바로 '사물마다 각각 갖추고 있는 태극'&amp;lt;ref&amp;gt; 『太極圖說』 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 “乾道成男, 坤道成女”, 二氣交感, 化生萬物. 萬物生生, 而變化無窮焉. &amp;lt;注&amp;gt; 蓋合而言之, 萬物統體一太極也; 分而言之, 一物各具一太極也.&amp;lt;/ref&amp;gt;이다.&amp;quot;&lt;br /&gt;
&lt;br /&gt;
程子所謂‘以其義理精微之極, 有不可得而名者, 故姑以至善目之', 而『傳』&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所謂君之仁·臣之敬·子之孝·父之慈·與人交之信, 乃其目之大者也. 衆人之心, 固莫不有是, 而或不能知, 學者雖或知之, 而亦鮮&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能必至於是而不去, 此爲大學之敎者, 所以慮其理雖粗&amp;lt;sub&amp;gt;上聲略也&amp;lt;/sub&amp;gt;復而有不純, 已雖粗克而有不盡, 且將無以盡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修己治人之道, 故必指是而言, 以爲明德·新民之標的也. 欲明德而新民者, 誠能求必至是而不容其少有過不及之差焉, 則其所以去&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人欲而復天理者, 無毫髮之遺恨矣. &lt;br /&gt;
정자께서 '지극히 정미한 의리에는 이름할 수 없는 점이 있기 때문에 우선 至善으로 지목한다'&amp;lt;ref&amp;gt;&amp;lt;이정수언&amp;gt; 3-67. 子曰: &amp;quot;理義精微, 不可得而名言也,  姑以至善目之, 黙識, 可也.&amp;quot;&amp;lt;/ref&amp;gt; 고 하셨는데, &amp;lt;전&amp;gt;의 이른바 '君之仁·臣之敬·子之孝·父之慈·與人交之信'&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전3장. 為人君，止於仁；為人臣，止於敬；為人子，止於孝；為人父，止於慈；與國人交，止於信。&amp;lt;/ref&amp;gt;이라고 한 것이 바로 그(지선의) 조목 가운데 큰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은 진실로 이렇지 않음이 없으나 간혹 알지 못하기도 하고, 배우는 자가 비록 혹 이를 알더라도 [그 가운데] 반드시 이에 이르러 떠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드무니, 이것이 &amp;lt;대학&amp;gt;의 가르침을 세운 자가 그 理가 비록 약간 회복되더라도 순수하지 않음이 있고 이미 비록 약간 극복했다하더라도 다하지 않음이 있어 장차 修己治人의 도를 다할 수 없음을 염려한 까닭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것(至善)을 가리켜서 말해 至善을 明德·新民의 표적으로 삼은 것이다. 明德·新民하고 싶은 사람이 진실로 반드시 여기(至善)에 이르기를 바라 약간의 과불급의 어긋남도 용납하지 않을 수 있다면, 인욕을 없애고 천리를 회복하는 것에 조금의 여한도 없을 것이다.&lt;br /&gt;
:朱子曰: &amp;quot;至善只是極好處, 十分端正恰好, 無一毫不是處, 無一毫不到處. 且如事君, 必當如舜之所以事堯, 而後喚做敬; 治民, 必當如堯之所以治民, 而後喚做仁. 不獨如此, 凡理皆有箇極好處.&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至善'은 그저 아주 좋은 것이니, 십분 단정하고 적절해 조금의 옳지 않음도 없고 조금의 주도하지 않음도 없는 것이다. 예를들어 군주를 섬기는 경우 반드시 舜이 군주를 섬겼던 것과 같이 한 이후에야 敬이라고 불러야 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경우 반드시 堯가 백성을 다스린 것과 같이 한 이후에야 仁이라고 불러야 한다. [지선은] 이와 같은 경우 뿐만 아니라 모든 이치에 모두 각각 지극히 좋은 것이 있는 것이다.&lt;br /&gt;
:○陳氏曰: &amp;quot;所謂'姑以至善目之'者, 所以極形容其精微爾, 非謂精微之不為善而借此以形容之也.&amp;quot;&lt;br /&gt;
:진씨가 말했다: &amp;quot;이른바 '姑以至善目之'라는 것은 그 정미함을 지극히 형용한 것일 뿐이지, 정미함이 선하지 못해 이 말(지선)을 빌려 형용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amp;quot;&lt;br /&gt;
:○又曰: &amp;quot;自其大者言之, 如仁敬慈孝即君臣父子所當止之處; 自其小者言之, 如足容重, 手容恭, 重與恭, 即手足所當止之處; 視思明, 聽思聰, 聰與明, 亦視聽所當止之處.&amp;quot;&lt;br /&gt;
:또 말했다: &amp;quot;큰 것으로부터 말하면 仁·敬·慈·孝가 곧 군신·부자관계에서 마땅히 멈춰야 할 곳임과 같고, 작은 것으로부터 말하면 마치 '발 모양은 무겁게 하고 손 모양은 공손하게 한다'&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옥조&amp;gt; 足容重，手容恭，目容端，口容止，聲容靜，頭容直，氣容肅，立容德，色容莊，坐如尸，燕居告溫溫。&amp;lt;/ref&amp;gt;에서 무겁게 하고 공경하게 함이 곧 손과 발이 마땅히 그쳐야하는 곳이며, '볼 때는 밝음을 생각하고 들을 때는 귀밝기를 생각한다'&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계씨&amp;gt; 10. 孔子曰：「君子有九思：視思明，聽思聰，色思溫，貌思恭，言思忠，事思敬，疑思問，忿思難，見得思義。」&amp;lt;/ref&amp;gt;에서 귀밝음과 밝음은 또한 보고 들음이 마땅히 그쳐야 하는 곳인 것과 같다.&amp;quot;&lt;br /&gt;
&lt;br /&gt;
大抵『大學』一篇之指, 總而言之, 不出乎八事, 而八事之要, 總而言之, 又不出乎此三者, 此愚所以斷&amp;lt;sub&amp;gt;都玩反&amp;lt;/sub&amp;gt;然以爲『大學』之綱領而無疑也. 然自孟子沒而道學不得其傳, 世之君子各以其意之所便者爲學. 於是乃有不務明其明德, 而徒以政敎法度爲足以新民者; 又有愛身獨善, 自謂足以明其明德, 而不屑乎新民者; 又有畧知二者之當務, 顧乃安於小成, 狃&amp;lt;sub&amp;gt;女九反&amp;lt;/sub&amp;gt;於近利, 而不求止於至善之所在者. 是皆不考乎此篇之過, 其能成己成物而不謬者鮮&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矣.&amp;lt;br/&amp;gt;&lt;br /&gt;
대저 『대학』 한 편의 요지를 통틀어 말한다면 이 팔조목을 벗어나지 않으며, 이 팔조목의 요체를 통틀어 말한다면 또한 이 삼강령을 벗어나지 않으니, 이것이 내가 단호하게 [삼강령과 팔조목을] 『대학』의 강령이라고 여기고 의심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러나 맹자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도학이 전해지지 못해 세상의 군자들이 각각 자기 뜻이 편한 바를 학문으로 삼았다. 이에 곧 자신의 明德을 밝히는 데 힘쓰지 않고 그저 정교와 법도가 新民하기 충분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었고, 또 자신을 아끼고 홀로 선하게 해서 스스로 '내 明德을 밝힐 수 있다'고 여기면서 '新民'하려고 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으며, 또 대략 이 두 가지(明德·新民)에 마땅히 힘써야 함을 알지만 도리어 이내 작은 성공에 안주하고 가까운 이익만 탐내서 '止於至善'의 소재를 구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이 모두는 이 편(&amp;lt;대학&amp;gt;)을 상고하지 않은 잘못이니, 자신을 이루고 사물을 이루며 잘못하지 않을 수 있는 자가 드물다.&lt;br /&gt;
:朱子曰: &amp;quot;不務明其明徳而以政教法度為足以新民, 如管仲之徒便是; 自謂能明其明徳而不屑於新民, 如佛老便是; 略知明徳新民而不求止於至善, 如王通便是. 看他於己分上亦甚脩飾, 其論為治, 本末亦有條理, 甚有志於斯世, 只是規模淺窄, 不曽就本原上着工, 便做不徹. 須是無所不用其極, 方是. 古之聖賢明明徳, 便欲無一毫私欲; 新民, 便欲人於事事物物上皆是當也.&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자신의 明徳을 밝히는데 힘쓰지 않고 정교와 법도가 新民하기 충분하다고 여기는 것'은 관중과 같은 무리가 이에 해당하고, '스스로 明徳을 할 수 있다고 여기면서 新民하려고 하지 않은 것'은 불교·도가와 같은 자들이 이에 해당하며, '대략 明徳·新民해야 함을 알지만 止於至善을 구하지 않는 것'은 왕통과 같은 자가 이에 해당한다. 그(왕통)를 보면, 자기 본분상에서 매우 잘 닦았고, 그가 다스림에 대해서 논한 것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역시 조리가 있었으며, 이 세상에 심히 뜻을 두긴 했지만, 다만 규모가 너무 작아 일찍이 본원상에서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철저하지 못하였다. 모름지기 그 지극함을 쓰지 않음이 없어야 비로소 옳다. 옛날의 성현들의 明明徳은 터럭만큼의 작은 사욕도 없고자 하셨고, 新民은 사람들이 사사물물마다 모두 옳게 하고자 하셨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成己謂明徳; 成物謂新民; 不止至善, 故'不謬者鮮.'&amp;quot;&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자신을 이루는 것을 明徳이라하고, 사물을 이뤄주는 것을 新民이라 한다. 至善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잘못하지 않는 자가 드물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8. '親民'을 '新民'으로 고친 이유&lt;br /&gt;
&lt;br /&gt;
曰: “程子之改親爲新也, 何所據? 子之從之, 又何所考而必其然耶? 且以已意輕改經文, 恐非傳疑之義&amp;lt;ref&amp;gt; 義 : 4.理應。&amp;lt;/ref&amp;gt;, 奈何?”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정자께서 '親'을 '新'으로 고치셨는데, 어디에 근거하신 것인가? 그대가 이를 따랐는데, 또 무엇을 살피고서 그렇다고 확신했는가? 또 자기 생각으로 함부로 경문을 고치는 것은 傳疑&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謂將自己認為有疑義的問題如實告人。 亦謂傳授有疑義的問題。 ▶ 《穀梁傳‧莊公七年》： “《春秋》著以傳著， 疑以傳疑。” &amp;lt;/ref&amp;gt;의 원칙(의심스러운 대로 전하는 원칙) 이 아닌 것 같은데, 어떤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新安倪氏曰: &amp;quot;&amp;lt;春秋穀梁傳&amp;gt;云: '信以傳信, 疑以傳疑.' 此傳疑二字所本也.&amp;quot;&lt;br /&gt;
:신안예씨가 말했다: &amp;quot;&amp;lt;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amp;gt;에서 '미더운 것은 미더운 대로 전하고, 의심스러운 것은 의심스러운 대로 전한다'&amp;lt;ref&amp;gt;&amp;lt;춘추곡량전&amp;gt; 환공5년. 五年春，正月甲戌、己丑，陳侯鮑卒。鮑卒，何為以二日卒之？《春秋》之義，信以傳信，疑以傳疑。陳侯以甲戌之日出，己丑之日得。不知死之日，故舉二日以包也。&amp;lt;/ref&amp;gt;고 하니, 이것이 '傳疑' 두 글자의 유래이다.&amp;quot;&lt;br /&gt;
曰: “若無所考而輒改之, 則誠若吾子之譏矣. 今親民云者, 以文義推之則無理, 新民云者以傳&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文考之則有據. 程子於此, 其所以處&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之者亦已審矣. 矧未嘗去&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其本文, 而但曰: '某當作某', 是乃漢儒釋經不得已之變例, 而亦何害於傳疑耶? 若必以不改爲是, 則世蓋有承誤踵&amp;lt;sub&amp;gt;之隴反&amp;lt;/sub&amp;gt;訛&amp;lt;sub&amp;gt;吾禾反&amp;lt;/sub&amp;gt;, 心知非是, 而故爲穿鑿附會, 以求其說之必通者矣. 其侮聖言而誤後學也益甚, 亦何足取以爲法耶?”&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만약 살핀 바가 없이 바로 그것을 고쳤다면, 진실로 그대의 비판과 같을 것이다. 지금 '親民'이라고 말한 것은 글의 뜻으로 미루어보면 근거가 없고, '新民'이라고 말한 것은 (&amp;lt;대학&amp;gt;의) 傳文을 가지고 살펴보면 근거가 있다. 정자께서 이를 처리하신 것은 또한 매우 분명하다. 하물며 [정자께서] 일찍이 그 본문을 제거하지 않고 단지 '무엇은 마땅히 무엇으로 써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한나라 유자들이 경전을 해석하며 부득이했던 變例니, 또한 어찌 '의심스러운 대로 전하는 원칙'(傳疑)에 해가 되겠는가? 만약 애써 고치지 않는 것을 옳다고 여긴다면, 세상은 아마도 잘못된 것을 답습해서, 마음으로는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천착하고 억지로 가져다 붙이면서 그 설명이 반드시 통하게 하고자 할 것이다. 이러한 짓이 성현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후학들을 그르침이 매우 심한데, 또 어떻게 본보기로 삼을 만 하겠는가?&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9. '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에 대한 설명&lt;br /&gt;
&lt;br /&gt;
曰: “‘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 何也?”&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amp;lt;대학&amp;gt;에서] '머무를 곳을 안 이후에 일정함이 있고 일정한 이후에 고요해질 수 있고 고요해진 이후에 안정될 수 있고 안정된 이후에 사려할 수 있고 사려한 이후에 얻을 수 있다'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此推本&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探究&amp;lt;/ref&amp;gt;上文之意, 言明德新民所以止於至善之由也. 蓋明德新民, 固皆欲其止於至善, 然非先有以知夫&amp;lt;sub&amp;gt;音扶下同&amp;lt;/sub&amp;gt;至善之所在, 則不能有以得其所當止者而止之. 如射者固欲其中&amp;lt;sub&amp;gt;去聲下同&amp;lt;/sub&amp;gt;夫正鵠&amp;lt;sub&amp;gt;正音征鵠音谷&amp;lt;/sub&amp;gt;, 然不先有以知其正鵠之所在, 則不能有以得其所當中者而中之也. 知止云者, 物格知至而於天下之事皆有以知其至善之所在, 是則吾所當止之地也. 能知所止, 則方寸之間, 事事物物, 皆有定理矣;&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이것은 앞 글의 의미를 탐구한 것이니, '明德'과 '新民'이 '止於至善'하는 방법임을 말한 것이다. 대개 明德과 新民은 진실로 모두 止於至善하고자 하지만, 먼저 至善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한다면 마땅히 머물러야할 곳을 얻어서 머무를 수 없다. 이는 마치 사수가 진실로 정곡을 맞추고자 하는데, 먼저 정곡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없다면 마땅히 맞춰야 할 바를 얻어서 맞출 수 없는 경우와 같다. '知止'라고 말한 것은 物格知至해서 천하의 일에 대해 모두 至善이 있는 곳을 알 수 있는 것이니, 이곳이 바로 내가 마땅히 멈춰야 할 곳이다. 머무를 곳을 알 수 있다면 마음속과 모든 일에 모두 일정한 이치가 있게 될 것이다.&amp;quot;&amp;lt;br/&amp;gt;&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amp;lt;章句&amp;gt;云: '知之則志有定向', 此云: '事物皆有定理', 合二說, 其義方備. 能知所止, 則此心光明, 見得事物皆有定理, 而志方有定向.&amp;quot;&lt;br /&gt;
:신안진씨가 말했다: &amp;quot;&amp;lt;대학장구&amp;gt;에서 '알고 나면 뜻에 일정한 방향이 있게 된다'고 하고, 여기에서는 '만물에 모두 일정한 이치가 있게 된다'고 하니, 이 두 설명을 합쳐야 그 의미가 비로소 완전히 갖추어진다. 머무를 곳을 알 수 있다면 이 마음이 훤히 밝아져서 모든 일에 일정한 이치가 있음을 알게 되어, 뜻에 비로소 일정한 방향이 있게 될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理既有定, 則無以動其心而能靜矣; 心既能靜, 則無所擇於地而能安矣; 能安, 則日用之間, 從&amp;lt;sub&amp;gt;七恭反&amp;lt;/sub&amp;gt;容閒&amp;lt;sub&amp;gt;音閑&amp;lt;/sub&amp;gt;暇, 事至物來, 有以揆之而能慮矣; 能慮, 則隨事觀理, 極深研幾&amp;lt;sub&amp;gt;平聲&amp;lt;/sub&amp;gt;,&amp;lt;ref&amp;gt;&amp;lt;주역&amp;gt; &amp;lt;계사상&amp;gt; 夫易，聖人之所以極深而研幾也。&amp;lt;/ref&amp;gt;無不各得其所止之地而止之矣.&amp;lt;br/&amp;gt;&lt;br /&gt;
이치가 정해지고 나면 그 마음을 동요시킬 수 없어서 [마음이] 고요할 수 있고, 마음이 고요해지고 나면 어느 곳에서든 안정될 수 있으며, 안정될 수 있으면 평소에 느긋하고 한가해서 외물이 다가올 때 그것을 헤아려 사려할 수 있고, 사려할 수 있으면 일에 따라 이치를 관찰함에 매우 깊이 그 기미를 연구해서 각각 그 머물러야 할 곳을 얻어 머무르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lt;br /&gt;
:問: &amp;quot;'知止'與'能慮', 先生昨以比&amp;lt;易&amp;gt;中'深'與'幾', &amp;lt;或問&amp;gt;中却兼下'極深研幾'字, 覺未穩.&amp;quot; 朱子曰: &amp;quot;極深研幾, 是更審一審. 當時下得未仔細. 要之只著得研幾字.&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知止'와 '能慮'를 선생님께서 이전에 &amp;lt;주역&amp;gt;의 '深'과 '幾'에 비교하셨는데, &amp;lt;대학혹문&amp;gt;에서 도리어 '極深研幾'를 ['能慮'에] 함께 쓰셨으니, 온당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極深研幾'는 다시 한 번 살펴보면, 당시에는 엄밀하게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이전처럼 '能慮'에는] '研幾'를 써야 한다.&amp;quot;&lt;br /&gt;
:○陳氏曰: &amp;quot;物果格而無一理之不窮, 無一見之不盡, 則於天下之事, 所謂至善所當止者, 皆灼然有以知之矣.&amp;quot;&lt;br /&gt;
:진씨가 말했다: &amp;quot;사물에게 과연 格했을 때 하나의 이치라도 궁구하지 않음이 없고 하나를 보더라도 다하지 않음이 없다면, 이른바 '至善'과 '마땅히 머물러야 할 곳(所當止)'을 모두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amp;quot;&lt;br /&gt;
:○'理既有定', 則心之所主, 更無外慕, 凡外物皆無以動之, 而能静矣. 身既能安, 則向者知所當止之事物, 或接乎吾前, 而吾從容以應之, 自能精於慮, 而不錯亂矣.&lt;br /&gt;
:'이치가 정해지고 나면' 마음이 주로하는 바에 달리 밖으로 사모하는 것이 없어, 모든 외물이 [내 마음을] 동요시킬 수 없으므로 고요할 수 있다. '몸이 편안할 수 있고 나면' 앞서 마땅히 머물러야 할 사물을 알기 때문에?? [그것이] 혹 내 눈앞에 다가오더라도 내가 순조롭게 그것에 응하여 절로 사려를 정밀하게 하고 착란하지 않을 수 있다.&lt;br /&gt;
&lt;br /&gt;
然旣眞知所止, 則其必得所止, 固已不甚相遠. 其間四節, 蓋亦推言其所以然之故, 有此四者, 非如孔子之志學以至從心, 孟子之善信以至聖神, 實有等級之相懸, 爲終身經歷之次序也.”&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진실로 머물 곳을 안 이상, 반드시 그 머물 곳을 얻는 것은 진실로 멀지 않다. 그 사이에 네 단계는 아마도 다만 그 소이연의 까닭에 이 네 단계가 있음을 미루어 말한 것이니, 공자의 '志于學'부터 '從心所欲不踰矩'까지와&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위정&amp;gt; 4. 子曰：「吾十有五而志于學，三十而立，四十而不惑，五十而知天命，六十而耳順，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amp;lt;/ref&amp;gt;과 맹자의 '善人'·'信人'으로부터 '聖人'·'神人'까지가&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진심하&amp;gt; 25. 浩生不害問曰：「樂正子，何人也？」孟子曰：「善人也，信人也。」	「何謂善？何謂信？」 曰：「可欲之謂善，有諸己之謂信。充實之謂美，充實而有光輝之謂大，大而化之之謂聖，聖而不可知之之謂神。樂正子，二之中，四之下也。」&amp;lt;/ref&amp;gt; 진실로 단계 사이에 서로 현격한 차이가 있어서 종신토록 거쳐야할 순서가 되는 것과는 같지 않다.&lt;br /&gt;
:朱子曰: &amp;quot;如'志學'至'從心', 中間許多, 便是大階級, 歩却闊. '知止'至'能得'只如'志學'至'立'、'立'至'不惑'相似, '定静安'大抵皆相類, 只是就一級中間細分耳.&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예를 들어, '志學'부터 '從心'까지 그 중간의 많은 단계들은 큰 단계이니 보폭이 넓다. '知止'부터 '能得'까지는 다만 '志學'부터 '立'까지, '立'부터 '不惑'까지와 서로 비슷하고, '定静安'도 대체로 이러한 부류인데 다만 한 단계 내에서 세분화한 것일 뿐이다.&amp;quot; &lt;br /&gt;
:○某事當如此, 某事當如彼, 如'君當仁', 此是知止; 事至物來, 對著胷中恰好底道理, 將這箇去應他, 此是得其所止.&lt;br /&gt;
:어떤 일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고, 어떤 일은 마땅히 저와 같아야 하니, 예를 들어 '군주는 마땅히 仁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知止'이다.(앎의 문제) 사물이 다가옴에 마음속의 적절한 도리를 비춰 이것으로 [다가온] 사물에 응하는 것이 바로 '得其所止'이다.(실천의 문제)&lt;br /&gt;
&lt;br /&gt;
&lt;br /&gt;
10.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에 대한 설명&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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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何也?”&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사물에는 本末이 있고 사건에는 終始가 있으니 선후를 알면 바로 도에 가까울 것이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此結上文兩節之意也. 明德·新民, 兩物而內外相對, 故曰本末; 知止、能得, 一事而首尾相因, 故曰終始. 誠知先其本而後其末, 先其始而後其終也, 則其進爲有序而至於道也不遠矣.”&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이는 윗 글의 두 구절의 의미를 마무리한 것이다. 明德과 新民은 두 가지지만 안팎으로 서로 짝이 되므로 '本末'이라고 말한 것이고, 知止와 能得은 한 가지 일인데 머리와 꼬리로 서로를 말미암기 때문에 '終始'이라고 말한 것이다. 진실로 그 근본을 먼저하고 그 말단을 나중에 하며, 그 처음을 먼저하고 그 마지막을 나중에 할 줄 안다면, 그 나아감에 순서가 있게 되어 도에 이르는 것이 멀지 않을 것이다.&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知工夫先後、次第, 則進為有序, 不忽近務逺, 處下窺髙, 而其入道為不逺矣, 謂至道之近也.&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공부의 선후와 순서를 안다면, 나아감에 순서가 있게 되어, 가까운 것을 소홀히하고 고원한 것에 힘쓰거나 낮은 곳에 있으면서 높은 것을 헤아리는 짓을 하지 않아, 도에 들어감이 멀지 않게 되니, '도의 이름이 가까울 것이다'라고 하였다.&amp;quot;&lt;br /&gt;
:○黄氏曰: &amp;quot;知所先後, 方是曉得為學之道, 未能遂得夫道也. 然既知其進為之序, 則有至之階矣, 故云去道不遠.&amp;quot;&lt;br /&gt;
:황씨가 말했다: &amp;quot;선후를 알아야 학문하는 방법을 알 수 있지만, 그 도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아가는 순서를 안 이상, [도에] 이르는 단계가 있기 때문에 '도까지 멀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11.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 致知在格物’에 대한 설명&lt;br /&gt;
&lt;br /&gt;
曰: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何也?”&amp;lt;br/&amp;gt; &lt;br /&gt;
물었다: &amp;quot;'옛날에 천하에 明德을 밝히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나라를 다스리고, 그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집안을 다스리며, 그 집안을 다스리고 싶은 사람은 먼저 그 몸을 다스리고, 그 몸을 다스리고 싶은 사람은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며,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 싶은 사람은 먼저 그 뜻을 진실되게 하고, 그 뜻을 진실되게 하고 싶은 사람은 먼저 그 앎을 지극히 하며, 앎을 지극히 하는 것은 격물에 달려있다'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amp;quot;&amp;lt;br/&amp;gt; &lt;br /&gt;
曰: “此言大學之序, 其詳如此, 蓋綱領之條目也. 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者, 明明德之事也; 齊家·治國·平天下者, 新民之事也. 格物致知, 所以求知至善之所在; 自誠意以至於平天下, 所以求得夫至善而止之也. &amp;lt;br/&amp;gt; &lt;br /&gt;
대답했다: &amp;quot;이는 &amp;lt;대학&amp;gt;의 순서가 이와 같이 상세함을 말한 것이니, 대개 삼강령의 조목이다. 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이라는 것은 明明德의 일이고, 齊家·治國·平天下는 新民의 일이다. 格物致知는 至善이 있는 곳을 알고자 하는 것이고, 誠意부터 平天下에 이르기까지는 저 至善을 얻어서 그곳에 머무르려고 하는 것이다.&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格物、致知, 是求知其所止; 誠意、正心、脩身、至平天下, 是求得其所止. 物格、知至, 是知所止; 意誠、心正、身脩、家齊、國治、天下平, 是得其所止.&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格物과 致知는 그 머무를 곳을 알고자 하는 것이고, 誠意·正心·脩身부터 平天下까지는 그 머무를 곳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物格·知至는 그 머무를 곳을 안 것이고, 意誠·心正·身脩·家齊·國治·天下平는 그 머무를 곳을 얻은 것이다.&amp;quot; &lt;br /&gt;
&lt;br /&gt;
所謂明明德於天下者, 自明其明德而推以新民, 使天下之人皆有以明其明德也. 人皆有以明其明德, 則各誠其意, 各正其心, 各修其身, 各親其親, 各長&amp;lt;sub&amp;gt;上聲下同&amp;lt;/sub&amp;gt;其長, 而天下無不平矣. &amp;lt;br/&amp;gt; &lt;br /&gt;
이른바 '明明德於天下'라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明德을 밝혀서 이를 新民으로 미루어나가, 천하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明德을 밝힐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자신들의 명덕을 밝힐 수 있다면 각자 자신의 뜻을 진실하게 할 수 있고, 각자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하며, 각자 자신을 닦아서, 각자 자신의 부모를 친히하고 각자 자신의 어른을 어른대접할 것이니,&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이루상&amp;gt; 11. 孟子曰：「道在爾而求諸遠，事在易而求之難。人人親其親、長其長而天下平。」&amp;lt;/ref&amp;gt; 천하가 평안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lt;br /&gt;
:問: &amp;quot;明徳之功, 果能若是, 不亦善乎? 然以堯舜之聖, 閨門之内, 或未盡化, 况謂天下之大, 能服堯舜之化而各明其徳乎?&amp;quot; 朱子曰: &amp;quot;&amp;lt;大學&amp;gt;'明明徳於天下', 只是且說箇規模如此. 學者須有如此規模, 不如此, 便是欠了. 且如伊尹'思匹夫不被其澤, 如已推而納之溝中', 伊尹也只大槩要恁地, 又如何使得無一人不被其澤! 又如説'比屋可封',也須有一家半家不恁地者, 只是見得自家規模自當如此, 到做不去處, 却無可奈何. 規模自是著恁地, 工夫便却用寸寸進. 若無規模次第, 只管去細碎處走, 便入世之計功謀利處去; 若有規模而又無細密工夫, 又只是一箇空規模. 外極規模之大, 内推至於事事物物處, 莫不盡其工夫, 此所以為聖賢之學.&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명덕의 공효가 과연 이와 같다면 물론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요순과 같은 성인도 규문 안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간혹 다 교화시키지 못하셨으니, 하물며 거대한 천하의 사람들이 능히 요순의 교화에 복종해 각자 자신의 덕을 밝힐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amp;quo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amp;lt;대학&amp;gt;의 '明明徳於天下'라는 것은 다만 그 규모가 이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학자는 모름지기 이와 같은 규모를 가져야 하니, 이와 같지 않으면 부족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이윤은 '필부라도 요순의 은택을 입지 못하는 것을 마치 자신이 그들을 밀어 구덩이에 넣는 것처럼 여겼'는데,&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만장상&amp;gt; 7. 萬章問曰：「人有言『伊尹以割烹要湯』有諸？」 孟子曰：「否，不然。伊尹耕於有莘之野，而樂堯舜之道焉。…… 思天下之民匹夫匹婦有不被堯舜之澤者，若己推而內之溝中。」&amp;lt;/ref&amp;gt; 이윤도 다만 대체적으로 이처럼 하고자 한 것이니, 또 어떻게 한 사람이라도 그 은택을 입지 못함이 없게끔 할 수 있겠는가? 또 예를 들어 '주나라 사람들은 집집마다 봉할 만 했다(比屋可封)'&amp;lt;ref&amp;gt;&amp;lt;상서대전&amp;gt; &amp;lt;略說&amp;gt; 周人可比屋而封。; &amp;lt;한어대사전&amp;gt; 【比屋可封】 1. 謂上古之世教化遍及四海， 家家都有德行， 堪受旌表。&amp;lt;/ref&amp;gt; 로 말하더라도 틀림이나 이와 같지 않은 한 집이나 반 집은 있었을 것이니, 다만 자신의 규모가 응당 이와 같아야 함을 알아야 하는 것이고,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규모는 본래 이와 같이 두고 공부는 하나하나 나아가는 것이다. 만약 규모나 순서가 없고 그저 세세한 것에만 집착한다면 세간 사람들이 공리나 꾀하는 수준에 들어가버리게 되고, 만약 규모는 있는데 세밀한 공부가 없다면 이는 또 그저 헛된 규모일 뿐이다. 밖으로는 거대한 규모를 다하고 안으로는 모든 일에 미루어나가 그 공부를 다하지 않음이 없는 것, 이것이 성현의 학문이 되는 것이다.&amp;quot;&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不言各格物致知者, '民可使由, 不可使知'之意也. 親親、長長, 即齊家之大者.&amp;quo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각각 성의·정심한다'고만 하고] '각각 격물치지한다'고 말하지 않은 것은 '백성들은 말미암게 할 수 있지만 알게 할 수 없다'&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태백&amp;gt; 9. 子曰：「民可使由之，不可使知之。」&amp;lt;/ref&amp;gt;는 뜻이다. '親親', '長長'은 齊家 가운데 중요한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然天下之本在國, 故欲平天下者, 必先有以治其國. 國之本在家, 故欲治國者, 必先有以齊其家. 家之本在身, 故欲齊家者, 必先有以修其身. 至於身之主則心也. 一有不得其本然之正, 則身無所主, 雖欲勉强&amp;lt;sub&amp;gt;上聲下同&amp;lt;/sub&amp;gt;以修之, 亦不可得而修矣, 故欲修身者, 必先有以正其心. 而心之發則意也, 一有私欲雜乎其中, 而爲善去&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惡或有未實, 則心爲所累, 雖欲勉强以正之, 亦不可得而正矣. 故欲正心者, 必先有以誠其意, 若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知則心之神明, 妙衆理而宰萬物者也. 人莫不有, 而或不能使其表裏洞然, 無所不盡, 則隱微之間, 眞妄錯雜, 雖欲勉强以誠之, 亦不可得而誠矣. 故欲誠意者, 必先有以致其知. 致者, 推致之謂, 如‘喪致乎哀’之致, 言推之而至於盡也. &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천하는 본래 나라에 달려있으니 平天下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그 나라를 다스려야하고, 나라는 본래 집안에 달려있으니 治國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지 먼저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해야 하며, 집안은 본래 자신에게 달려있으니 齊家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그 몸을 닦아야 한다. 몸의 주인은 마음이니, [마음에] 하나라도 본래의 바름을 얻을 수 없다면 몸에 주재하는 것이 없어, 비록 억지로 힘써 몸을 닦고자 하더라도 닦을 수 없다. 그러므로 修身하고하 하는 자는 반드시 먼저 자신의 마음을 바로해야 한다. 마음이 발현된 것이 意이니, 하나라도 사욕이 그 속에 뒤섞여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함에 혹시라도 충실하지 않은 것이 있으면, 마음이 [사욕에] 얽매여 비록 억지로 힘써 바로 잡고자 하더라도 바로 잡을 수 없다. 그러므로 正心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그 뜻을 진실되게 해야 한다. 대저 知(지각)는 마음의 신명이니 뭇 이치를 묘하게 운용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이 知가] 없는 자가 없지만 혹 [마음의] 표리가 훤하여 다하지 않음이 없게 할 수 없다면, 은미한 가운데 眞妄이 뒤섞여 비록 억지로 힘써 뜻을 진실되게 하고자 하더라도 또한 진실되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誠意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그 앎을 지극히 해야한다. 致라는 것은 '推致(推求極致)'를 말하니 '상을 당하면 슬픔을 지극하게 한다(喪致乎哀)'&amp;lt;ref&amp;gt; 『논어』 &amp;lt;자장&amp;gt; 14. 子游曰：「喪致乎哀而止。&amp;lt;/ref&amp;gt; 의 致와 같으니, 미루어서 지극한 데 이름을 말한다.&lt;br /&gt;
:朱子曰: &amp;quot;神是恁地精彩; 明是恁地光明.&amp;quot;'&lt;br /&gt;
:주자가 말했다. &amp;quot;['神明'의] 神은 이러한 빛깔이고 明은 이러한 밝음이다.&amp;quot;&lt;br /&gt;
:○道理固本有, 用知方發得出來. 所以謂之妙衆理. 妙猶言能運用衆理也. '運用'字有病, 故只下得'妙'字.&amp;quot;&lt;br /&gt;
:道理는 진실로 본래 가지고 있지만 知를 써야 비로소 드러낼 수 있으므로 '妙衆理'라고 하였다. '妙'는 뭇 이치를 운용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運用'에는 병통이 있기 때문에 다만 '妙'만 썼다.&lt;br /&gt;
:○問: &amp;quot;宰是主宰之宰, 宰制之宰?&amp;quot; 曰: &amp;quot;主便是宰, 宰便是制.&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宰萬物'의] 宰는 '主宰'의 宰입니까, '宰制'의 宰입니까?&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主(주인노릇)는 宰(주관함)이고, 宰(관리함)는 制(통제함)이다.&amp;quot;&lt;br /&gt;
:○問: &amp;quot;知如何宰物?&amp;quot; 曰: &amp;quot;無所知覺, 則不足以宰制萬物. 要宰制他, 也須要知覺.&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知(지각)가 어떻게 사물을 제재합니까?&amp;quot; 말했다: &amp;quot;지각하는 바가 없으면 만물을 제재할 수 없다. 만물을 제재하려면 역시 지각해야한다.&amp;quot;&lt;br /&gt;
:○心之為物, 至虛至靈, 神妙不測, 常為一身之主, 以提萬事之綱, 而不可有頃刻之不存者也. 一不自覺而馳騖飛揚, 以徇物欲於軀殻之外, 則一身無主, 萬事無綱, 雖其俯仰&amp;lt;ref&amp;gt; 俯仰 : 7.比喻時間短暫。&amp;lt;/ref&amp;gt;顧盻之間, 盖巳不自覺其身之所在.&amp;quot;&lt;br /&gt;
:'心'이라는 것은 매우 虛靈하고 신묘해 예측할 수 없고, 항상 일신의 주재가 되어 만사의 기강을 잡으니, 잠시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心'이] 한 번이라도 자각하지 못하고서 치달려 몸뚱이 밖으로 물욕을 좇는다면, 일신에 주재가 없고 만사에 기강이 없어 비록 잠깐 사이라도(짧은 시간만에) 대개 이미 몸이 있는 곳을 자각하지 못할 것이다.&lt;br /&gt;
:○黄氏曰: &amp;quot;理是不動底物, 不著妙字, 如何發得許多理出來?&amp;quot;&lt;br /&gt;
:황씨가 말했다: &amp;quot;理는 움직이지 않는 물건이니, '妙'자를 쓰지 않으면 어떻게 허다한 理를 드러낼 수 있겠는가?&amp;quot;&lt;br /&gt;
:○陳氏曰: &amp;quot;致知言表裏洞然, 以心之内外而言. 知不致, 則無以識是非善惡之眞, 將從何而趨, 從何而捨? 必有錯認人欲作天理而不自覺者.&amp;quot;&lt;br /&gt;
:진씨가 말했다: &amp;quot;'致知'를 '表裏洞然'이라고 말한 것은 마음의 안팎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知가 지극하지 않으면 참된 시비·선악을 알지 못하니, 장차 무엇을 통해 취하고 버릴 것인가? 필시 인욕을 천리라고 잘못 인식하고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amp;quot;&lt;br /&gt;
:○三山陳氏曰: &amp;quot;欲意之誠而不始於致知, 則有善否未明而誤於所向者, 多矣. '推之而至於盡', 有所用力之辭.&amp;quot;&lt;br /&gt;
:삼산 진씨가 말했다. &amp;quot;뜻이 진실해지기를 바라면서 致知에서 시작하지 않는다면, 선한지 아닌지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점이 있게 되어 향할 바를 오인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推之而至於盡'라고 한 것은 힘쓸 바가 있다는 말이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心之神明, 即所得於天而虚靈不昩者也. 心固具衆理而應事物, 所以'妙衆理而宰事物'者, 非心之神明乎? 其'表與裏洞然無不盡', 則心之用與體無不明矣. 神明字與虚靈字, 相為表裏: 虚主理言, 靈兼氣言, 先言虚, 後言靈, 見心之體不離用; 神兼氣言, 明主理言, 先言神, 後言明, 見心之用不離體.&amp;quot;&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心의 신명은 바로 하늘에서 얻어서 허령불매한 것이다. 心은 진실로 뭇 이치를 갖추고서 외물에 응하니, '妙衆理하고 宰事物한다'는 것이 心의 신명 아니겠는가? '그 안과 밖이 훤하여 다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心의 용과 체가 밝혀지지 않음이 없다는 것이다. '신명'이라는 글자와 '허령'이라는 글자는 서로 표리가 되니, '허'는 리를 주로하여 말하였고 '령'은 기를 겸하여 말한 것인데, 먼저 '허'를 말하고 나중에 '령'이라고 말한 것은 心의 체가 용과 떨어지지 않음을 드러낸 것이고, '신'은 기를 겸하여 말한 것이고 '명'은 리를 주로 말한 것이니, 먼저 '신'을 말하고 나중에 '명'을 말한 것은 心의 용이 체와 떨어지지 않음을 드러낸 것이다.&amp;quot;&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心本神明之物; 知又心之所以神明者. 惟神明所以'妙'也.&amp;quo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心은 본래 신명한 것이고, 知는 또한 心이 신명한 까닭이다. 오직 신명하기 때문에 '묘한'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至於天下之物, 則必各有所以然之故, 與其所當然之則, 所謂理也. 人莫不知, 而或不能使其精粗、隱顯, 究極無餘, 則理所未窮, 知必有蔽, 雖欲勉强以致之, 亦不可得而致矣. &amp;lt;br/&amp;gt;&lt;br /&gt;
천하 사물의 경우에는 반드시 각각 소이연의 까닭(所以然之故)이 있고 마땅히 그러한 법칙(所當然之則)이 있으니 이른바 理이다. 사람 중에 [理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자가 없지만, 혹 [천하 만물의] 精粗·隱顯을 궁구하여 남음이 없게 할 수 없으면, 理에는 미처 궁구되지 못한 부분이 있고 知에는 필시 가리워진 바가 있어, 비록 억지로 힘써 그것을 다하고자 해도 다할 수 없을 것이다.&lt;br /&gt;
:朱子曰: &amp;quot;所當然之則, 如君之仁、臣之敬; 所以然之故, 如君何故用仁、臣何故用敬. 如君之所以仁, 盖君是箇主腦, 百姓人民皆屬他管, 他自是用仁愛, 非說是為君了, 不得巳以仁愛行之. 自是合如此, 若天使之然. 又如父之所以慈, 子之所以孝, 盖父子本同一氣, 只是一人之身分成兩箇, 其恩愛相屬, 自有不期然而然者. 其他大倫皆然, 皆天理使之如此, 豈容强為哉?&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所當然之則'이라는 것은 '군주는 인해야 하고 신하는 공경해야 하는 것'과 같은 것이고, '所以然之故'라는 것은 '임금이 어째서 인해야 하고, 신하는 어째서 공경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과 같다. 예를 들어, 임금이 인해야 하는 까닭은, 대개 임금은 우두머리이고 백성·인민은 모두 그의 관할에 속하기 때문에 그가 저절로 仁愛를 실천하는 것이지, '군주가 되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仁愛를 실천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절로 이처럼 하기 마련인 것은 마치 하늘이 그렇게 하도록 시킨 것과 같다. 또 '아버지는 자애로워야 하고 자식은 효성스러워야 하는' 까닭은, 대개 부자는 본래 한 기를 공유해서 한 사람의 몸이 둘로 나뉜 것이니, 그 은혜와 사랑이 서로 이어져 절로 그렇게 하기를 기약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되는 것이다. 다른 큰 인륜도 모두 이와 같이 모두 천리가 그와 같이 하게 한 것이니, 어찌 억지로 할 수 있겠는가?&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粗也顯也, 即事物當然之則也; 精也隱也, 即事物所以然之故也.&amp;quot;&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粗'와 '顯'은 바로 事物의 '當然之則'이고, '精'과 '隱'은 事物의 '所以然之故'이다.&amp;quot;&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所當然之則, 理之實處; 所以然之故, 乃其上一層理之源頭也.&amp;quo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所當然之則'는 理의 實處(실제적 측면)이고 '所以然之故' 바로 그 한 층 위의 근원으로서의 理이다.&amp;quot;&lt;br /&gt;
&lt;br /&gt;
故致知之道, 在乎卽事觀理, 以格夫物. 格者, 極至之謂, 如‘格於文祖’之格,&amp;lt;sub&amp;gt;見書舜典&amp;lt;/sub&amp;gt; 言窮之而至其極也. &amp;lt;br/&amp;gt;&lt;br /&gt;
그러므로 致知하는 방법은 일에 나아가 이치를 관찰하여 저 사물에 이르는 것에 달려 있다. 格이라는 것은 '이른다'는 것을 말하니, '문조에 이른다(格於文祖)'&amp;lt;sub&amp;gt;&amp;lt;서경&amp;gt; &amp;lt;순전&amp;gt;에 보인다.&amp;lt;/sub&amp;gt;&amp;lt;ref&amp;gt;&amp;lt;상서&amp;gt; &amp;lt;순전&amp;gt; 月正元日，舜格于文祖&amp;lt;/ref&amp;gt;의 格과 같으니, 궁구하여 지극한 곳에 이른다는 말이다.&lt;br /&gt;
:括蒼葉氏曰: &amp;quot;但能隨事觀理, 盡與理㑹, 卒之天下事物之理, 不惟知得一件兩件, 若隱若顯, 盖將無所不知矣; 一事一物之間, 不唯知得一分兩分, 若精若粗, 盖將無所不知矣.&amp;quot;&lt;br /&gt;
:괄창 엽씨(葉味道/賀孫)가 말했다: &amp;quot;그저 일을 따라서 理를 관찰하여 모두 이해할 수 있기만 한다면, 끝내 천하 사물의 이치에 대해 한두 가지만 알 수 있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은미한 것이든 드러난 것이든 알지 못하는 것이 없을 것이며, 한 사물간에 10% 20%만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밀한 것이든 거친 것이든 간에 알지 못하는 것이 없을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此『大學』之條目, 聖賢相傳, 所以敎人爲學之次第, 至爲纖悉. 然漢、魏以來, 諸儒之論, 未聞有及之者. 至唐韓子&amp;lt;sub&amp;gt;名愈字退之&amp;lt;/sub&amp;gt;, 乃能援&amp;lt;sub&amp;gt;音袁&amp;lt;/sub&amp;gt;以爲說, 而見&amp;lt;sub&amp;gt;形甸反&amp;lt;/sub&amp;gt;於「原道」之篇, 則庶幾其有聞矣. 然其言極於正心誠意, 而無曰致知格物云者, 則是不探&amp;lt;sub&amp;gt;音貪&amp;lt;/sub&amp;gt;其端, 而驟語其次, 亦未免於'擇焉不精, 語焉不詳'之病矣. 何乃&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 怎能; 何能.&amp;lt;/ref&amp;gt;以是而議荀、揚哉?”&amp;lt;br/&amp;gt;&lt;br /&gt;
이것이 『大學』의 조목이요, 성현께서 서로 전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학문하게 한 순서이니, 지극히 치밀하다. 그러나 漢·魏이래로 여러 유자들의 논의 가운에 이를 언급한 것을 들어보지 못했다. 당나라 韓子&amp;lt;sub&amp;gt;이름은 愈이고, 자는 退之이다.&amp;lt;/sub&amp;gt;에 이르러서야 이를 가져다가 설을 만들어 그것을 「原道」라는 글에서 보일 수 있었으니, 아마도 전해 들은 바가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그의 말은 '정심성의'까지에만 이르고 '치지격물'을 말한 적이 없었으니, 이는 그 시작점을 탐구하지 않고 곧장 그 다음부터 말한 것이니, 그 역시 '택함에 정미하지 못하고 말함이 상세하지 못한' 병폐를 면하지 못한 것 같다. 어찌 이 표현을 가지고 순자와 양웅을 비판할 수 있겠는가!&lt;br /&gt;
:&amp;lt;韓文集&amp;gt;&amp;quot;荀與揚也, 擇焉而不精, 語焉而不詳.&amp;quot;&lt;br /&gt;
:&amp;lt;韓文集&amp;gt;에서 &amp;quot;순자와 양웅은 택함이 정밀하지 못하고 말함이 상세하지 못하다&amp;quot;&amp;lt;ref&amp;gt;「原道」 曰：「斯道也，何道也？」曰：「斯吾所謂道也，非向所謂老與佛之道也。」堯以是傳之舜，舜以是傳之禹，禹以是傳之湯，湯以是傳之文武周公，文武周公傳之孔子，孔子傳之孟軻。軻之死，不得其傳焉。荀與揚也，擇焉而不精，語焉而不詳。&amp;lt;/ref&amp;gt;고 하였다.&lt;br /&gt;
:○荀子, 名况, 字卿, 戰國時趙人也. 揚子, 名雄, 字子雲, 西漢成都人也. 各有所著之書, 今傳於世.&lt;br /&gt;
:순자는 이름이 황이고 자는 경이니 전국시대 조나라 사람이고, 양자는 이름이 웅이고 자가 자운이니 서한 성도 사람이다. 각자 저술한 책이 있어서 오늘날 세상에 전해진다.&lt;br /&gt;
:○朱子曰: &amp;quot;「原道」舉&amp;lt;大學&amp;gt;, 却不說'格物致知'; &amp;lt;蘇氏古史&amp;gt;舉&amp;lt;中庸&amp;gt;'不獲乎上', 却不說'明善誠身',這様都是無頭學問.&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原道」에서 &amp;lt;大學&amp;gt;을 거론하지만 오히려 '格物致知'를 말하지 않았고, &amp;lt;蘇氏古史&amp;gt;에서는 &amp;lt;中庸&amp;gt;의 '不獲乎上'을 서론하지만 '明善誠身'&amp;lt;ref&amp;gt;&amp;lt;중용장구&amp;gt; 20장. 在下位不獲乎上，民不可得而治矣；獲乎上有道：不信乎朋友，不獲乎上矣；信乎朋友有道：不順乎親，不信乎朋友矣；順乎親有道：反諸身不誠，不順乎親矣；誠身有道：不明乎善，不誠乎身矣。&amp;lt;/ref&amp;gt;을 말하지 않았으니, 이런 것들은 모두 머리가 없는 학문이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12. ‘物格而后知至, …… 國治而后天下平’에 대한 설명&lt;br /&gt;
&lt;br /&gt;
曰: “‘物格而后知至, 知至而后意誠, 意誠而后心正, 心正而后身修, 身修而后家齊, 家齊而后國治, 國治而后天下平’, 何也?”&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物格이후에 知至하고, 知至한 이후에 意誠하며, 意誠한 이후에 心正하고, 心正한 이후에 身修하며, 身修한 이후에 家齊하고, 家齊한 이후에 國治하며, 國治한 이후에 天下平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amp;quot;&lt;br /&gt;
&lt;br /&gt;
曰: “此覆&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 翻倒；翻轉。; 15. 重複。&amp;lt;/ref&amp;gt;說上文之意也. 物格者, 事物之理, 各有以詣其極&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而無餘之謂也. 理之在物者, 旣詣其極而無餘, 則知之在我者, 亦隨所詣而無不盡矣. 知無不盡, 則心之所發能一於理而無自欺矣. 意不自欺, 則心之本體物不能動而無不正矣. 心得其正, 則身之所處不至陷於所偏而無不修矣. 身無不修, 則推之天下、國、家, 亦擧而措之耳, 豈外此而求之智謀、功利之末哉!”&amp;lt;br/&amp;gt;&lt;br /&gt;
답했다: &amp;quot;이것은 윗 글의 뜻을 거꾸로 [올라가며](格物-&amp;gt;物格) 설명한 것이다. 物格이라는 것은 사물의 이치에 각각 그 지극한 곳에 이르러 [더 이상] 남은 것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사물에 있는 理가 이미 그 지극한 곳에 이르러 남은 것이 없다면, 나에게 있는 知 또한 이른 바에 따라 다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 知에 다하지 않은 것이 없다면, 心이 발현된 것(즉 意)이 理에 전일하여 자신을 속이지 않을 수 있다. 意가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면 心의 본체를 외물이 동요시킬 수 없어서 바르지 않음이 없게 된다. 心이 바르게 되었다면, 身이 편벽된 곳에 빠지지 않아 닦이지 않음이 없게 된다. 身이 닦여지지 않음이 없다면, 이를 천하·나라·집안에까지 미룸에 그저 들어서 두면 될 뿐이니, 어찌 이를 벗어나 말단적인 지모나 공리를 구하겠는가!&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曰: “篇首之言明明德, 以新民爲對, 則固專以自明爲言矣; 後段於平天下者, 復&amp;lt;sub&amp;gt;扶又反&amp;lt;/sub&amp;gt;以明明德言之, 則似新民之事亦在其中, 何其言之不一, 而辨之不明耶?”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편 머리에서는 '명명덕'을 말함에 '신민'으로 대대했으니(大學之道，在明明德，在親民，在止於至善。) ['명명덕'은] 진실로 오직 스스로 밝히는 것만 말한 것인데, 뒤의 '평천하'에 대해 다시 '명명덕'으로 말했으니(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신민'의 일이 또한 그('명명덕') 안에 있는 것 같다. 어째서 말이 한결같지 않고 분별이 명확하지 않은가?&amp;quot;&lt;br /&gt;
&lt;br /&gt;
曰: “篇首三言者, 『大學』之綱領也; 而以其賓主對待、先後次第言之, 則明明德者, 又三言之綱領也. 至此後段, 然後極其體用之全而一言以擧之, 以見&amp;lt;sub&amp;gt;形甸反&amp;lt;/sub&amp;gt;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天下雖大, 而吾心之體無不該; 事物雖多, 而吾心之用無不貫. 蓋必析之有以極其精而不亂, 然後合之有以盡其大而無餘, 此又言之序也.”&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편 머리의 세마디 말은 『대학』의 강령이지만, 이것을 손님과 주인이 서로 대하는 관계로나 선후의 순서로 말한다면, '명명덕'이 다시 세 마디 말의 강령이 된다. 이 뒷 단락(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에 이르고 난 연후에야 온전한 體用을 완전히 드러내 한 마디로 제시한 것이니, 이것으로 '천하가 비록 크더라도 내 마음의 體가 갖추고있지 않은 것이 없고, 사물이 비록 많더라도 내 마음의 用이 관통하지 못하는 것이 없음'을 보인 것이다. 대개 [&amp;lt;대학&amp;gt; 경문이 이렇게 구성된 것은] 반드시 정밀하게 분석해 혼란이 없게 된(大學之道，在明明德，在親民，在止於至善。) 연후에 [분석한 것을] 합쳐 [&amp;lt;대학&amp;gt;의] 큰 규모를 남김없이 드러낸 것이니(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이 또한 말하는 순서이다.&amp;quot;&lt;br /&gt;
:○陳氏曰: &amp;quot;天下事物, 無一之不格; 幽明巨細, 有以洞灼其表裏, 其知之至也. 瑩萬理於胷中, 是極其所眞是而不可移; 非極其所眞非而不容易; 善極其本之所由來而無不徹; 惡極其幾之所從起而無少遁&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8. 失。&amp;lt;/ref&amp;gt;, 物果格, 知果至. 由是而往, 則意極其誠而無一念之或欺, 心極其正而無一息之不存, 身極其脩而無一動之或偏矣. 此書首三言固當無所不盡, 而所謂明明徳者, 又通為一篇之統體.&amp;quot; 又曰: &amp;quot;體具於方寸之間, 萬理無所不備, 而無一物能出乎是理之外; 用發於方寸之間, 萬事無所不貫而無一理不行乎其事之中, 此心之所以為妙.&amp;quot;&amp;lt;br/&amp;gt;&lt;br /&gt;
:진씨가 말했다: &amp;quot;천하의 사물에 하나라도 이르지 못함이 없고, 어둡고 밝은 것 크고 세세한 모든 것에 그 안과 밖을 훤히 밝힐 수 있는 것이 知의 지극함이다. 마음속으로 온갖 이치를 밝혀, 옳은 것에 대해서는 진실로 옳은 바를 지극히 하여 옮겨가지 못하고, 그른 것에 대해서는 진실로 그른 바를 지극히 하여 바꿀 수 없으며, 선한 것에 대해서는 그 말미암은 근본을 지극히 하여 통하지 않음이 없고, 악한 것에 대해서는 말미암아서 일어난 기미를 지극히 하여 조금의 잘못도 없어, 사물의 [이치에] 과연 이르고 知가 과연 지극해질 것이다. 이것을 말미암아 나아간다면, 意는 誠을 다하여 하나의 생각이라도 혹 거짓됨이 없을 것이고, 心은 正을 지극히 하여 잠깐의 보존되지 않음이 없을 것이며, 身은 그 脩을 지극히 하여 한 번 움직이더라도 혹 치우침이 없을 것이다. 이 책 서두의 세 마디는 진실로 다하지 못하는 바가 없고, 이른바 '명명덕'이라고 말한 것은 또한 &amp;lt;대학&amp;gt; 한 텍스트의 統體가 된다.&amp;quot; 또 말했다: &amp;quot;體는 마음 안에 있으면서 온갖 이치를 갖추고 있지 않음이 없어서 어떤 사물도 이 이치를 벗어날 수 없고, 用은 마음 안에서부터 발현되어 모든 일을 관통되지 않음이 없어서 어떤 이치도 그 일에서 행해지지 못함이 없으니, 이것이 마음이 신묘하게 되는 까닭이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言明明徳與新民對, 則&amp;lt;大學&amp;gt;之體用猶二; 言明明徳於天下, 則&amp;lt;大學&amp;gt;之體用非二矣. 吾心之體, 即明徳之虚而具衆理者也; 吾心之用, 即明徳之靈而應萬事者也. 能析之極其精而不亂, 則知吾心之用無不貫矣; 能合之盡其大而無餘, 則知吾心之體無不該矣. 不析之而遽欲合之, 則有虚空恍惚之病; 徒析之而不能合之, 則有支離破碎之病. '必析之極其精, 然後合之盡其大', 此二句其義無窮. 眞西山嘗誦此而繼之曰: '小徳川流, 大徳敦化.' 又繼之曰: '吾道一以貫之.' 其旨深矣.&amp;quot;&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명명덕'과 '신민'을 대대하여 말한다면, &amp;lt;大學&amp;gt;의 體用이 구별되는 것 같고, '明明徳於天下'라고 말하면 &amp;lt;大學&amp;gt;의 體用이 구별되지 않는 것 같다. 내 마음의 體는 곧 '明徳의 虚'로 '뭇 이치를 갖추고 있는 것(具衆理)'고, 내 마음의 用은 곧 '明徳의 靈'으로 '온갖 일에 대응하는 것(應萬事)'이다. 지극히 정밀하게 분석해 어지럽지 않을 수 있다면, 내 마음의 用이 관통하지 못하는 것이 없음을 알 것이고, [분석한 것을] 합쳐 남김 없이 [&amp;lt;대학&amp;gt;의] 큰 규모를 드러낼 수 있다면, 내 마음의 體가 갖추고 있지 않은 것이 없음을 알 것이다. [그러나] 분석하지 않고서 갑자기 합치고자 한다면 허무맹랑해지는 병폐가 있을 것이고, 그저 분석하기만 하고 그것을 합칠 수 없다면 지리하고 자잘하게 되는 병폐가 있을 것이다. '必析之極其精, 然後合之盡其大' 이 두 구절의 의미가 무궁하다. 진서산이 일찍이 이것을 외며 다음과 같은 구절을 덧붙였다: '작은 덕은 냇물처럼 흐르고, 큰 덕은 두터이 변화시킨다.'&amp;lt;ref&amp;gt;&amp;lt;중용장구&amp;gt; 30장. 萬物並育而不相害，道並行而不相悖，小德川流，大德敦化，此天地之所以為大也。&amp;lt;/ref&amp;gt;(즉, 작은 덕과 큰 덕을 분석·구별) 또 다음과 같은 구절을 덧붙였다: '내 도는 하나로 관통한다.'&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리인&amp;gt; 15. 子曰：「參乎！吾道一以貫之。」曾子曰：「唯。」&amp;lt;/ref&amp;gt;(즉, 분석·구별한 것을 종합) 그 뜻이 심오하다.&amp;quo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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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自天子以至於庶人, …… ,  未之有也’에 대한 설명&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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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 “‘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爲本, 其本亂而末治者否矣; 其所厚者薄而其所薄者厚, 未之有也’, 何也?”&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修身을 근본으로 삼으니, 그 근본이 어지러운데 말단이 다스려진 경우는 없었고, 그 후하게 해야할 것을 박하게 하면서 박하게 해야할 것을 후하게 하는 경우는 있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amp;quo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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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 “此結上文兩節之意也. 以身對天下國家而言, 則身爲本而天下國家爲末; 以家對國與天下而言, 則其理雖未嘗不一, 然其厚薄之分亦不容無等差&amp;lt;sub&amp;gt;楚宜反&amp;lt;/sub&amp;gt;矣. 故不能格物致知, 以誠意正心而修其身, 則本必亂而末不可治. 不親其親, 不長&amp;lt;sub&amp;gt;上聲下同&amp;lt;/sub&amp;gt;其長, 則所厚者薄而無以及人之親長, 此皆必然之理也. 孟子所謂‘於所厚者薄, 無所不薄’, 其言蓋亦本於此云.”&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이것은 윗 글의 두 구절의 의미를 끝맺은 것이다. 자신을 天下·國·家와 대대하여 말한다면 자신이 근본이 되고 天下·國·家는 말단이 되며, 家를 天下·國과 대대하여 말한다면 그 이치는 일찍이 같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후하게 하거나 박하게 하는 구분은 그래도 차이가 없을 수 없다. 그러므로 격물치지를 할 수 없으면서 성의정심해 그 몸을 닦는다면, 근본은 반드시 혼란해지고 말단도 다스려질 수 없다. 제 어버이를 친애하지 않고 제 어른을 어른대접하지 않는다면, 후하게 해야하는 것을 박하게 하는 것이라서 다른 사람의 부모나 어른에게까지 미칠 수 없을 것이니, 이것은 모두 필연적 이치이다. 맹자께서 말씀하신 '마땅히 후하게 해야할 것을 박하게 하면 박하게 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다'&amp;lt;ref&amp;gt;『맹자』 「진심상」 45. &amp;quot;孟子曰：「於不可已而已者，無所不已；於所厚者薄，無所不薄也。&amp;quot;&amp;lt;/ref&amp;gt; 는 말도 아마 여기에 근거한다.&amp;quot;&lt;br /&gt;
:○三山陳氏曰: &amp;quot;脩身者, 自格物致知誠意正心而積也. 不如是, 則身不可脩; 身之不脩, 則其本亂矣; 本之既亂, 如國家何? 事父母而不能孝, 事兄長而不能弟, 則是'於其所厚者薄'矣. 所厚者猶薄, 奚望其親天下之親、長天下之長哉?&amp;quot;&lt;br /&gt;
:삼산 진씨가 말했다: &amp;quot;脩身이라는 것은 격물·치지·성의·정심을 통해 쌓아가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지 않는다면 몸은 닦여질 수 없고, 몸이 닦여지지 않으면 그 근본이 혼란해지니, 근본이 혼란한 이상 국·가를 어떻게 하겠는가? 부모를 섬기면서 효도를 할 수 없고 형이나 어른을 섬기면서 공경할 수 없다면, 이것은 '그 후하게 해야할 것을 박하게 하는 것'이다. 후하게 해야할 것도 오히려 박하게 하고서 어떻게 그가 천하의 부모를 친히 여기고 천하 어른을 어른대접하기를 바라겠는가?&amp;quot;&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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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amp;lt;대학&amp;gt;의 내용에 비춰봤을 때 상정된 독자가 적절한가?&lt;br /&gt;
&lt;br /&gt;
曰: “治國平天下者, 天子諸侯之事也. 卿大夫以下, 皆無與&amp;lt;sub&amp;gt;音預&amp;lt;/sub&amp;gt;焉. 今大學之敎, 乃例以明明德於天下爲言, 豈不爲思出其位, 犯非其分&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 而何以得爲&amp;lt;sub&amp;gt;如字&amp;lt;/sub&amp;gt;爲&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己之學哉?”&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하게 하는 것은 천자와 제후의 일이니 경대부 이하는 모두 여기에 간여하지 않는다. 지금 &amp;lt;대학&amp;gt;의 가르침은 바로 '明明德於天下'를 예로 들어 말하니, 어찌 '자신의 지위를 벗어나서 생각함'&amp;lt;ref&amp;gt;『논어』, 「헌문」. 28장 &amp;quot;曾子曰：「君子思不出其位。」&amp;quot;&amp;lt;/ref&amp;gt;이 아니겠는가? 제 직분이 아닌 것을 범하는데 어떻게 '자기를 위한 학문'&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헌문&amp;gt; 25. 子曰：「古之學者為己，今之學者為人。」&amp;lt;/ref&amp;gt;이 될 수 있겠는가?&amp;quot;&lt;br /&gt;
&lt;br /&gt;
曰: “天之明命, 有生之所同得, 非有我之得私也. 是以君子之心, 豁&amp;lt;sub&amp;gt;呼括反&amp;lt;/sub&amp;gt;然大公, 其視天下, 無一物而非吾心之所當愛, 無一事而非吾職之所當爲, 雖或勢在匹夫之賤, 而所以堯舜其君, 堯舜其民者, 亦未嘗不在其分&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內也. 又况&amp;lt;大學&amp;gt;之敎, 乃爲&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天子之元子·衆子, 公侯·卿大夫·士之適&amp;lt;sub&amp;gt;音的&amp;lt;/sub&amp;gt;子, 與國之俊選&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俊士和選士。 古代指可以教育深造的優秀人材。 &amp;lt;/ref&amp;gt;而設, 是皆將有天下國家之責而不可辭者, 則其所以素敎而預養之者, 安得不以天下國家爲己事之當然, 而預求有以正其本、淸其源哉! 後世敎學不明, 爲人君父者, 慮不足以及此, 而苟徇於目前. 是以天下之治&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日常少, 亂日常多, 而敗國之君, 亡家之主, 常接迹於當世, 亦可悲矣! 論者不此之監, 而反以聖法爲疑, 亦獨何哉? 大抵以學者而視天下之事, 以爲己事之所當然而爲之, 則雖甲兵·錢穀·籩豆·有司之事, 皆爲&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己也; 以其可以求知於世而爲之, 則雖割股廬墓、敝車羸&amp;lt;sub&amp;gt;力為反&amp;lt;/sub&amp;gt;馬, 亦爲&amp;lt;sub&amp;gt;去聲下同&amp;lt;/sub&amp;gt;人耳. 善乎張子敬夫之言曰&amp;lt;sub&amp;gt;張子名栻, 字敬夫, 號南軒, 廣漢人. 乃朱子同志之友也.&amp;lt;/sub&amp;gt;: ‘爲己者, 無所爲而然者也.’ 此其語意之深切, 蓋有前賢所未發者, 學者以是而日自省&amp;lt;sub&amp;gt;悉井反&amp;lt;/sub&amp;gt;焉, 則有以察乎善利之間&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진심상&amp;gt; 25. 欲知舜與蹠之分，無他，利與善之閒也。 &amp;lt;/ref&amp;gt;而無毫釐之差矣.”&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하늘의 밝은 명령은 태어날 때 똑같이 받은 것이지 자신이 개인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의 마음은 豁然大公해서 천하의 어떤 사물도 자신의 마음이 마땅히 아껴할 바라고 여기지 않음이 없고, 어떤 일도 자신의 직분상 마땅히 해야할 바라고 여기지 않음이 없어서, 비록 혹 천한 필부의 처지에 있더라도 자기 임금을 요순으로 만들고 자기 백성을 요순의 백성으로 만드는 것 또한 일찍이 그 직분 안에 있지 않음이 없다. 또한 하물며 &amp;lt;대학&amp;gt;의 가르침은 바로 천자의 적장자와 다른 적자들, 공·후·대부·사의 적장자와 나라의 뛰어난 인재들을 위하여 설치된 것으로, 이들은 모두 장차 사양할 수 없는 천하와 국가의 책무를 지닌 자들이다. &amp;lt;대학&amp;gt;에서 이들을 평소부터 미리 가르치고 기르는 것이 어찌 [그들로 하여금] 천하 국가의 일을 당연한 제 일로 여기게 해 미리 '뿌리를 바로잡고 그 근원을 맑게 하기를' 구하는 것이 아닐 수 있겠는가? [그러나] 후세의 교육이 밝혀지지 못해 임금이나 부모된 자들은 생각이 여기에 미치지 못하고 구차하게 눈앞의 것만 따랐다. 이 때문에 천하가 잘 다스려진 날은 늘 적고 어지러운 날은 늘 많았으며, 나라를 망치는 군주들과 집안을 망치는 주인들이 당시에 항상 연이어 나타났으니 역시 슬퍼할 만하다! 그대가 이러한 것을 살피지 않고 도리어 성인의 가르침을 의심하는 것은 유독 어째서 인가? 대개 학자의 신분으로 천하의 일을 볼 때, 자기가 마땅히 해야할 바로 여겨서 그것을 행한다면, 비록 군사일·창고일·제사일·유사의 일이라도 모두 자기를 위한 것(위기지학)이 되지만,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한다면 비록 허벅지 안쪽살을 베고&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舊有自割股肉以供君親食用之說， 古人認為是大忠大孝的表現。 &amp;lt;/ref&amp;gt; 무덤 옆에 여막을 지어 살아 [효를 다하고], 망가진 수레나 파리한 말을 타 [청렴함을 다하더라도]&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破車瘦馬。▶ 《三國志‧吳志‧劉繇傳》“ 繇 伯父 寵 為 漢 太尉” 裴松之注引晉司馬彪 《續漢書》： “ 寵 前後歷二郡， 八居九列， 四登三事。 家不藏賄， 無重寶器， 恆菲飲食， 薄衣服， 弊車羸馬， 號為窶陋。”&amp;lt;/ref&amp;gt;  다른 사람을 위한 것(위인지학)일 뿐이다. 훌륭하구나, 장경부의 말이여!&amp;lt;sub&amp;gt;張子의 이름은 식(栻)이고 자는 경부(敬夫)이며 호는 남헌(南軒)이니 광한 사람이다. 주자와 뜻을 같이한 벗이다.&amp;lt;/sub&amp;gt; '나를 위한 것은 위하는 바 없이(의도 없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amp;lt;ref&amp;gt;&amp;lt;남헌집&amp;gt; 권14. &amp;lt;孟子講義序&amp;gt; 學者潜心孔孟, 必得其門而入, 愚以為莫先於義利之辯. 蓋聖學無所為而然也. 無所為而然者, 命之所以不已, 性之所以不偏, 而教之所以無窮也. 凡有所為而然者, 皆人欲之私而非天理之所存, 此義利之分也.&amp;lt;/ref&amp;gt; 이 말의 의미가 심오하면서 절실하다. 아마도 [이 말에는] 이전 성현들께서 밝히지 않으셨던 점이 있으니, 배우는 자들이 이 말을 가지고 날마다 스스로 성찰한다면, '善'과 '利'의 차이를 알게 돼 털끝만큼의 착오도 없을 것이다.&amp;quot;&lt;br /&gt;
:○問為己為人一條. 朱子曰: &amp;quot;這須要自看. 如一日之間, 小事大事, 只道'我合當做'便如此做, 這便是'無所為', 如讀書, 只道'自家合當如此讀', '合當如此理會身己'. 纔說要人知, 便是'有所為', 如世上人纔讀書, 便安排這箇好做時文. 此又為人之甚者.&amp;quot;&lt;br /&gt;
:'나를 위한다'와 '남을 위한다'는 한 조목에 대해 물었다.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이것은 모름지기 스스로 살펴보아야 한다. 평소 모든 일에 대해 '나는 이렇게 해야한다'고 말하고 곧 그렇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위하는 바가 없는 것(無所爲)'이이니, 마치 책을 읽는 경우 그저 '나는 이렇게 책을 읽어야 해',  '이렇게 이해해야 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기를 바란다고 말하자마자 곧 '위하는 바가 있는 것(有所為)'이니, 세상 사람들이 책을 읽기만 하면 이 점을 감안해 과거 답안지(時文)&amp;lt;ref&amp;gt; &amp;lt;한어대사전&amp;gt; 3. 時下流行的文體。 舊時對科舉應試文體的通稱。&amp;lt;/ref&amp;gt;나 잘 짓는 것과 같다. 이것 역시 남을 위하는 것이 심한 것이다.&amp;quot; &lt;br /&gt;
:○如甲兵、錢榖、籩豆、有司, 到當自家理㑹便理㑹, 不是為别人了理㑹. 如割股、廬墓, 一是不忍其親之病, 一是不忍其親之死, 這都是為已者. 若因要人知了去恁地, 便是為人.&amp;quot;&lt;br /&gt;
:&amp;quot;전쟁일, 창고일, 제사일, 유사의 일 같은 경우라도 마땅히 내가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이해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을 위하여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割股나 廬墓의 경우, 하나는 그 부모의 지병을 차마 보아넘기지 못하는 것이고, 하나는 그 부모의 죽음을 차마 보아넘기지 못하는 것이니, 이는 모두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다른 사람이 알아주기를 바라고서 이렇게 했다면, 이는 곧 남을 위한 것이 된다.&amp;quot;&lt;br /&gt;
:○問: &amp;quot;割股事, 如何?&amp;quot; 曰: &amp;quot;割股固自不是. 若誠心為之, 不求人知, 亦庶幾; 今有以此要譽者.&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割股의 일은 어떻습니까?&amp;quot; 말했다. &amp;quot;割股는 진실로 옳지 않다. 만약 마음을 진실하게 하여 그것을 행하고 다른 사람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거의 [도에] 가깝겠지만, 오늘날에는 이것으로 명예를 구하려는 자들이 있다.&amp;quot;&lt;br /&gt;
:○南軒此言, 擴前聖所未發, 而同於孟子性善、養氣之功者歟!&lt;br /&gt;
:장남헌의 이 말은 전 성현들이 아직 드러내지 못한 바를 넓힌 것이니 맹자의 性善、養氣의 공적&amp;lt;ref&amp;gt;&amp;lt;이정문집&amp;gt; 9-20. &amp;lt;答楊時論西銘書&amp;gt; &amp;lt;西銘&amp;gt;之爲書, 推理以存義, 擴前聖所未發, 與孟子性善、養氣之論同功.(二者亦前聖所未發)&amp;lt;/ref&amp;gt;과 동일하구나!&lt;br /&gt;
&lt;br /&gt;
&lt;br /&gt;
15. &amp;lt;대학&amp;gt;의 저자 문제&lt;br /&gt;
&lt;br /&gt;
曰: “子謂正經蓋夫子之言, 而曾子述之, 其傳&amp;lt;sub&amp;gt;去聲, 後凡言傳文經傳之類皆同.&amp;lt;/sub&amp;gt;則曾子之意, 而門人記之. 何以知其然也.”&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그대는 '正經은 아마 공자의 말씀을 증자가 조술한 것이고, 그 傳文은 증자의 뜻을 문인들이 기록한 것이다'&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경1장 右經一章，蓋孔子之言，而曾子述之。其傳十章，則曾子之意而門人記之也。&amp;lt;/ref&amp;gt;라고 했는데, 어떻게 그러하다는 것을 알았는가?&amp;quot;&lt;br /&gt;
&lt;br /&gt;
曰: “正經辭約而理備, 言近而指遠, 非聖人不能及也. 然以其無他左驗&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證人；證據。 &amp;lt;/ref&amp;gt;, 且意其或出於古昔先民之言也, 故疑之而不敢質&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質】 15. 對質；驗證。&amp;lt;/ref&amp;gt;. 至於傳文, 或引曾子之言, 而又多與『中庸』『孟子』者合, 則知其成於曾氏門人之手, 而子思以授孟子無疑也. 蓋『中庸』之所謂明善, 卽格物致知之功; 其曰誠身, 卽誠意·正心·修身之效也. 孟子之所謂知性者, 物格也; 盡心者, 知至也; 存心·養性·修身者, 誠意·正心·修身也. &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正經의 경우 말은 간략하지만 이치가 갖추어져 있고, 말은 비근하지만 뜻이 원대하니, 성인이 아니라면 해낼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증거가 없고, 또 아마 옛 先民의 말에서 나온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의심만 하고 검증하지는 않았다. 傳文의 경우, 간혹 증자의 말씀을 인용하고 또 『中庸』과 『孟子』의 [내용에] 부합하는 것이 많으니, 증자 문하의 손에서 완성됐음을 알겠고, 자사가 이를 맹자에게 전수했음은 의심할 것이 없다. 대개 『中庸』에서 말한 '明善'은 곧 格物致知의 공부이고, '誠身'을 말한 것은 곧 誠意·正心·修身의 공부이며,&amp;lt;ref&amp;gt;&amp;lt;중용장구&amp;gt; 20장. 在下位不獲乎上，民不可得而治矣；獲乎上有道：不信乎朋友，不獲乎上矣；信乎朋友有道：不順乎親，不信乎朋友矣；順乎親有道：反諸身不誠，不順乎親矣；誠身有道：不明乎善，不誠乎身矣。&amp;lt;/ref&amp;gt; 맹자가 말한 '知性'은 物格이고, '盡心'은 知至며, '存心·養性·修身'은 誠意·正心·修身이다.&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진심상&amp;gt; 1. 孟子曰：「盡其心者，知其性也。知其性，則知天矣。存其心，養其性，所以事天也。殀壽不貳，修身以俟之，所以立命也。」&amp;lt;/ref&amp;gt;&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知性者, 物格也, 物字對性字; 盡心者, 知至也, 知字對心字.&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知性'이라는 것은 物格이니, 物자는 性자에 대응한다. '盡心'이라는 것은 知至니, 知자는 心자에 대응한다.&amp;quot;&lt;br /&gt;
:○'物理之極處無不到', 知性也; '吾心之所知無不盡', 盡心也.&lt;br /&gt;
:'物理의 지극한 곳에 이르지 않음이 없다'&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경1장. 【朱注】 物格者，物理之極處無不到也。&amp;lt;/ref&amp;gt;는 것은 知性이고, '내 마음의 아는 바를 다하지 않음이 없다'&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경1장. 【朱注】 知至者，吾心之所知無不盡也。&amp;lt;/ref&amp;gt;는 것은 盡心이다.&lt;br /&gt;
&lt;br /&gt;
其他如謹獨之云, 不慊&amp;lt;sub&amp;gt;口簟口劫二反&amp;lt;/sub&amp;gt;之說, 義利之分, 恒言之序,&amp;lt;br/&amp;gt;&lt;br /&gt;
그밖에 [『中庸』에서] 말한 '謹獨'과&amp;lt;ref&amp;gt;&amp;lt;중용장구&amp;gt; 1장. 見乎隱，莫顯乎微，故君子慎其獨也。&amp;lt;/ref&amp;gt; [『孟子』에서] 말한 不慊&amp;lt;ref&amp;gt;『맹자』, 「공손추상」, 2장. &amp;quot;是集義所生者，非義襲而取之也。行有不慊於心，則餒矣。我故曰，告子未嘗知義，以其外之也。&amp;quot; 【朱注】 慊，快也，足也。言所行一有不合於義，而自反不直，則不足於心而其體有所不充矣&amp;lt;/ref&amp;gt;·義利의 구분&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양혜왕상&amp;gt; 孟子對曰：「王何必曰利？亦有仁義而已矣。」&amp;lt;/ref&amp;gt;·늘 하는 말의 순서&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이루상&amp;gt; 5. 孟子曰：「人有恆言，皆曰『天下國家』。天下之本在國，國之本在家，家之本在身。」&amp;lt;/ref&amp;gt;가&lt;br /&gt;
:○新安倪氏曰: &amp;quot;孟子云: '人有常言皆曰天下國家, 天下之本在國, 國之本在家, 家之本在身.' 此'常言之序'也.&amp;quot;&lt;br /&gt;
:신안 예씨가 말했다: &amp;quot;맹자께서 '사람들이 늘 하는 말이 있어 모두들 天下國家를 말하는데, 天下의 근본은 國에 있고, 國의 근본은 家에 있으며 家의 근본은 자신에게 있다'고 말한 이것이 '常言之序'이다.&amp;quot;&lt;br /&gt;
&lt;br /&gt;
亦無不脗&amp;lt;sub&amp;gt;武粉反又音冺&amp;lt;/sub&amp;gt;合焉者. 故程子以爲孔氏之遺書, 學者之先務, 而&amp;lt;論&amp;gt;&amp;lt;孟&amp;gt;猶處&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其次焉, 亦可見矣.”&amp;lt;br/&amp;gt;&lt;br /&gt;
또한 [『대학』]에 들어맞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정자께서는 '[『대학』을] 공자께서 남기신 책이며 배우는 자들의 급선무'로 여기셨고,&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서론. 子程子曰：「大學，孔氏之遺書，而初學入德之門也。」於今可見古人為學次第者，獨賴此篇之存，而論、孟次之。學者必由是而學焉，則庶乎其不差矣。 ; &amp;lt;이정유서&amp;gt; 2上-36. 大學乃孔氏遺書, 須從此學則不差.&amp;lt;/ref&amp;gt; '『논어』·『맹자』는 오히려 그 다음'&amp;lt;ref&amp;gt;&amp;lt;이정유서&amp;gt; 22上-1. 棣初見先生, 問「初學如何?」 曰:「入德之門, 無如大學. 今之學者, 賴有此一篇書存, 其他莫如論·孟.」&amp;lt;/ref&amp;gt;인 것도 알 수 있다.&amp;quot;&lt;br /&gt;
&lt;br /&gt;
曰: “程子之先是書而後論、孟, 又且不及乎&amp;lt;中庸&amp;gt;, 何也?”&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정자께서는 이 책(『대학』)을 우선하시고 『논어』·『맹자』를 뒤로 하셨는데, 그런데도 『중용』을 언급하지 않으신 것은 어째서인가?&amp;quot;&lt;br /&gt;
&lt;br /&gt;
曰: “是書垂世立敎&amp;lt;ref&amp;gt;&amp;lt;상서정의&amp;gt; &amp;lt;序&amp;gt; 討論墳典, 斷自唐虞以下 訖于周, 芟夷煩亂, 翦截浮辭, 擧其宏綱, 撮其機要, 足以垂世立敎.&amp;lt;/ref&amp;gt;之大典, 通爲&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天下後世而言者也. &amp;lt;論&amp;gt;&amp;lt;孟&amp;gt;應機接物之微言, 或因一時一事而發者也. 是以是書之規模雖大, 然其首尾該備, 而綱領可尋, 節目分明, 而工夫有序, 無非切於學者之日用. &amp;lt;論&amp;gt;&amp;lt;孟&amp;gt;之爲&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人雖切, 然而問者非一人, 記者非一手, 或先後淺深之無序, 或抑揚進退之不齊, 其間蓋有非初學日用之所及者. 此程子所以先是書後&amp;lt;論&amp;gt;&amp;lt;孟&amp;gt;, 蓋以其難易&amp;lt;sub&amp;gt;去聲下同&amp;lt;/sub&amp;gt;緩急言之, 而非以聖人之言爲有優劣也. 至於&amp;lt;中庸&amp;gt;, 則又聖門傳授極致之言, 尤非後學之所易得而聞者, 故程子之敎未遽及之, 豈不又以爲&amp;lt;論&amp;gt;&amp;lt;孟&amp;gt;旣通, 然後可以及此乎? 蓋不先乎&amp;lt;大學&amp;gt;, 無以提挈綱領而盡&amp;lt;論&amp;gt;&amp;lt;孟&amp;gt;之精微; 不參之&amp;lt;論&amp;gt;&amp;lt;孟&amp;gt;, 無以融貫會通而極&amp;lt;中庸&amp;gt;之歸趣; 然不會其極於&amp;lt;中庸&amp;gt;, 則又何以建立大本&amp;lt;sub&amp;gt;盡性也&amp;lt;/sub&amp;gt;, 經綸大經&amp;lt;sub&amp;gt;立教也&amp;lt;/sub&amp;gt;, 而讀天下之書, 論天下之事哉? 以是觀之, 則務講學者, 固不可不急於四書, 而讀四書者, 又不可不先於&amp;lt;大學&amp;gt;, 亦已明矣. 今之敎者, 乃或棄此不務, 而反以他說先焉, 其不溺於虛空, 流於功利, 而得罪於聖門者, 幾&amp;lt;sub&amp;gt;平聲&amp;lt;/sub&amp;gt;希矣.&amp;quot;&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이 책(『대학』)은 세상에 드리워져 가르침을 세우는 위대한 텍스트니, 모두 천하의 후세를 위하여 말해진 것이다. 『논어』·『맹자』는 주어진 상황에 따라 대응한 微言(별 거 아닌 듯 하지만 심오한 말)이라서, 간혹 한 때나 한 사건에 의해 언급된 것이다. 이 때문에 이 책(『대학』)의 규모는 비록 크지만 머리부터 꼬리까지 갖춰져 강령을 살필 수 있으며 절목이 분명하고 공부에 순서가 있어 배우는 자들의 일상 생활에 절근하지 않음이 없는 반면, 『논어』·『맹자』는 사람들을 위하는 것이 비록 절실하지만 질문자도 한 명이 아니고 기록자도 한 명이 아니라서 간혹 先後·淺深의 순서가 없기도 하고 간혹 抑揚·進退가 일정하지 않기도 해서 이 사이에 대개 초학자의 일상 생활에 관련되지 않는 것이 있다. 이것이 정자께서 『대학』을 우선시하고 『논어』·『맹자』를 뒤로 하신 까닭이다. 이는 대개 난이도나 우선순위로 말씀하신 것이지, 성인의 말씀에 우열이 있다고 여기신 것은 아니다. 『중용』에 경우 성인 문하에서 전수해온 지극한 글이기 때문에, 더욱 후학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정자의 훈계에서 성급하게 언급되지 않았으니, 어찌 『논어』·『맹자』를 통달한 연후에 여기(『중용』)에 미칠 수 있다고 여기신 것이 아니겠는가? 대개 『대학』을 우선하지 않으면 [『대학』을 통해] 강령을  세워 『논어』·『맹자』의 정미한 [뜻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논어』·『맹자』를 참고하지 않으면 [『논어』·『맹자』를] 온전히 통달하여 『중용』의 의미를 지극히 깨달을 수 없다. 그러나 『중용』에서 그 지극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달리 어떻게 큰 근본을 세우고(명명덕)&amp;lt;sub&amp;gt;盡性이다.&amp;lt;/sub&amp;gt; 큰 법도를 운용하여(신민)&amp;lt;sub&amp;gt;立教이다.&amp;lt;/sub&amp;gt; 천하의 책을 읽고 천하의 일을 논하겠는가? 이것으로 본다면, 강학에 힘쓰는 사람들은 진실로 이 네 가지 책(四書, 『대학』·『논어』·『맹자』·『중용』)즉 을 우선하지 않아서는 안 되고, 이 네 가지 책을 읽는 사람은 또한 『대학』을 우선으로 하지 않아서는 안 됨 또한 매우 분명하다. [그러나] 오늘날 교육자들은 도리어 이 네 가지 책을 버려두고 힘쓰지 않으면서 도리어 다른 학설을 우선하니, 虛(도교)·空(불교)에 빠지거나 功利에 흘러들어가 성인의 문하에 죄를 얻지 않는 자가 드물다.&amp;quot;&lt;br /&gt;
&lt;br /&gt;
===傳一章===&lt;br /&gt;
康誥曰：「克明德。」&amp;lt;br/&amp;gt;&lt;br /&gt;
&amp;lt;강고&amp;gt;에서는 &amp;quot;[문왕께서] 능히 [자신의] 명덕을 밝히셨다&amp;quot;고 하였고,&lt;br /&gt;
:康誥，周書。克，能也。&lt;br /&gt;
:'강고'는 &amp;lt;서경&amp;gt; &amp;lt;주서&amp;gt; [편명이다.] '克'은 '能'이다.&lt;br /&gt;
::朱子曰: &amp;quot;此克字, 雖訓能, 然比能字有力. 見人皆有是明徳而不能明, 惟文王能明之. 克只是真箇㑹底意.&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이 '克'자는 '能'으로 풀지만, '能'자와 비교하면 [더욱] 힘이 있다. [이 구절은] 사람들이 모두 이 명덕을 가지고 있는데도 밝히지 못하는데, 오직 문왕만이 이를 밝히실 수 있었음을 드러낸 것이다. '克'은 다만 진정으로 할 수 있다는 뜻이다.&amp;quot;&lt;br /&gt;
&lt;br /&gt;
大甲曰：「顧諟天之明命。」&amp;lt;sub&amp;gt;大讀作泰. 諟古是字.&amp;lt;/sub&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태갑&amp;gt;에서는 &amp;quot;이 하늘의 밝은 명을 돌아본다&amp;quot;고 하였으며,&lt;br /&gt;
:大甲，商書。顧，謂常目在之也。&lt;br /&gt;
:&amp;lt;태갑&amp;gt;은 &amp;lt;서경&amp;gt; &amp;lt;상서&amp;gt; [편명이다.] '顧'는 늘 이것에 눈을 둔다는 것이다. &lt;br /&gt;
::朱子曰: &amp;quot;'常目在之', 古註語, 極好. 如一物在此, 惟恐人偷去, 兩眼常常覷在此相似.&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常目在之'는 옛 주석의 표현이니, 매우 훌륭하다. 마치 여기 어떤 물건을 남이 훔쳐갈까 걱정해 두 눈으로 여기를 보는 것과 같다.&amp;quot;&lt;br /&gt;
:諟，猶此也，&amp;lt;sub&amp;gt;從古是字之說&amp;lt;/sub&amp;gt;或曰審也。&amp;lt;sub&amp;gt;廣韻註也. 今不必從.&amp;lt;/sub&amp;gt;天之明命，即天之所以與我，而我之所以為德者也。常目在之，則無時不明矣。&lt;br /&gt;
:'諟'는 '此'과 같으니,&amp;lt;sub&amp;gt;'是'자로 보는 옛 설을 따랐다.&amp;lt;/sub&amp;gt; 혹자는 '審'이라고 한다.&amp;lt;sub&amp;gt;&amp;lt;광운&amp;gt; 주석이다. 오늘날 굳이 따를 필요는 없다.&amp;lt;/sub&amp;gt; '天之明命'이란 바로 하늘이 나에게 준 것이고, 내가 덕으로 삼은 것이다. '常目在之'는 어느 때고 밝히지 않음이 없다는 것이다.&lt;br /&gt;
::朱子曰: &amp;quot;上下文都說明徳, 這裏却說明命, 盖天之所以與我便是明命; 我所得以為性者便是明徳. 命與徳皆以明言, 是這箇物本自光明. 我自昏蔽了他.&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앞뒤의 글에서 모두 '명덕'을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明命'을 말한 것은, 대개 하늘이 나에게 준 것이 '명명'이고, 내가 얻어 性으로 삼은 것이 '명덕'이다. '命'과 '徳'을 모두 '明'으로 말한 것은, 이것이 본래 빛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어둡게 하고 가린 것이다.&amp;quot;&lt;br /&gt;
::○顧諟者只是長存此心, 知得有這道理光明不昧. 方其未接物, 此理固湛然清明; 及其遇事應接, 此理亦隨處發見. 只要常提撕省察, 念念不忘. 存養久之, 則道理愈明, 雖欲忘之而不可得矣.&lt;br /&gt;
::'顧諟'라는 것은 다만 이 마음을 오래 보존하여 이 도리가 빛나 어둡지 않음을 아는 것이다. 아직 외물을 접하지 않았을 때 이 理는 진실로 고요히 청명하다가, 외물을 만나 대응할 때, 이 理 역시 상황에 따라 발현한다. 다만 늘 일깨우고 살피며 늘 생각하여 잊지 말아야 한다. 존양함이 오래되면 도리는 더욱 밝아져, 비록 잊고자 해도 할 수 없을 것이다.&lt;br /&gt;
::○只是見得道理常在目前, 不被事物遮障了, 不成是有一物可見其形象.&lt;br /&gt;
::다만 늘 눈앞에 있는 도리를 알고 외물에 의해 가려지지 않게 하는 것이니, 형상을 볼 수 있는 뭔가가 있는 것이 아니다.&lt;br /&gt;
&lt;br /&gt;
帝典曰：「克明峻德。」&amp;lt;sub&amp;gt;峻書作俊&amp;lt;/sub&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요전&amp;gt;에서는 &amp;quot;능히 큰 덕을 밝힌다&amp;quot;고 하였으니,&lt;br /&gt;
:帝典，堯典，虞書。峻，大也。&lt;br /&gt;
:'帝典'은 &amp;lt;서경&amp;gt; &amp;lt;요전&amp;gt;이니 &amp;lt;우서&amp;gt;의 편명이다. '峻'은 '큼'이다.&lt;br /&gt;
&lt;br /&gt;
皆自明也。&amp;lt;br/&amp;gt;&lt;br /&gt;
모두 스스로 밝힌 것이다.&lt;br /&gt;
:結所引書，皆言自明己德之意。&lt;br /&gt;
:인용한 &amp;lt;서경&amp;gt;이 모두 스스로 자신의 덕을 밝혔다는 의미임을 말한 것이라고 마무리한 것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右傳之首章。釋明明德。&lt;br /&gt;
::이상은 전1장이다. '명명덕'을 풀이한 것이다.&lt;br /&gt;
:::此通下三章至「止於信」，舊本誤在「沒世不忘」之下。&lt;br /&gt;
:::이 장에서 다음 전3장의 '止於信'까지 옛 판본에서는 '沒世不忘' 다음에 잘못 배치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혹문』 전1장====&lt;br /&gt;
或問: &amp;quot;一章而下以至三章之半, 鄭本元在沒世不忘之下, 而程子乃以次於'此謂知之至也'之文, 子獨何以知其不然而遂以爲傳之首章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혹자가 물었다: &amp;quot;전1장부터 전3장의 반까지를 鄭本(정현본)에서는 원래 '沒世不忘' 다음에 두었고, 정자(이천)께서는 '此謂知之至也' 다음에 두셨는데, 그대는 유독 그것이 옳지 않음을 알고서 마침내 전의 첫 장으로 삼았는가?&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以經統傳, 以傳附經, 則其次第可知, 而二說之不然, 審矣.&amp;quot;&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經으로 傳을 통괄하고, 傳으로 經을 부연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분석하면] 그 순서를 알 수 있으니, 두 설 모두 옳지 않음이 명백하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曰: &amp;quot;然則其曰: '克明徳'者, 何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그렇다면 전1장에서 '克明徳'이라고 한 것은 무슨 의미인가?&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此言文王能明其徳也. 蓋人莫不知徳之當明而欲明之. 然氣稟拘之於前, 物欲蔽之於後. 是以雖欲明之而有不克也. 文王之心, 渾&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然天理, 亦無待於克之而自明矣. 然猶云爾者, 亦見其獨能明之而他人不能. 又以見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未能明者之不可不致其克之之功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이는 문왕께서 자신의 덕을 밝히실 수 있었음을 말한 것이다. 대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덕을 마땅히 밝혀야 함을 알고 이를 밝히려고 한다. 그러나 氣稟이 선천적으로 구속하고, 물욕이 후천적으로 [덕을] 가린다. 그러므로 비록 덕을 밝히려고 하더라도 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문왕의 마음은 혼연한 천리이므로 역시 [기품이나 물욕을] 이겨낼 필요가 없이 본래 밝다. 그런데도 [전1장에서] 오히려 이렇게 말한 것은, 다만 문왕만이 덕을 밝힐 수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할 수 없었음을 드러낸 것이다. 또 이를 통해 아직 밝히지 못한 사람들이 [기품이나 물욕을] 이겨내는 공부를 다하지 않아서는 안 됨을 드러낸 것이다.&amp;quot;&lt;br /&gt;
:問: &amp;quot;'克明徳', 克, 能也. &amp;lt;或問&amp;gt;中却作'能致其克之之功', 又似克治之克, 如何?&amp;quot; 朱子曰: &amp;quot;此克字, 雖訓能字, 然克字重, 是他人不能而文王獨能之. 若只作'能明徳', 語意便都弱了. 凡字有文義一般而聲響頓異, 如云: '克宅心'、'克明徳'之類, 可見.&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克明徳'의 '克'은 '할 수 있다(能)'는 것입니다. &amp;lt;或問&amp;gt;중에 도리어 '[기품이나 물욕을] 이겨내는 공부를 다할 수 있다'라고 써서 또 '克治'&amp;lt;ref&amp;gt; 謂克製私欲邪念。&amp;lt;/ref&amp;gt; 의 '克'과 같아보이는 데, 어떻습니까?&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여기 '克'자는 비록 '能'으로 풀지만 '克'이라는 글자가 더 [뉘앙스가] 강하니, 이는 다른 사람들은 할 수 없고 문왕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다만 '덕을 밝힐 수 있다(能明徳)'고만 쓴다면, 의미가 매우 약해질 것이다. 모든 글자에는 그 뜻은 같지만 울림이 확연히 다른 경우가 있으니, '克宅心'&amp;lt;ref&amp;gt;&amp;lt;상서&amp;gt; &amp;lt;입정&amp;gt; 文王惟克厥宅心，乃克立茲常事司牧人，以克俊有德。」&amp;lt;/ref&amp;gt;이나 '克明徳'과 같은 예에서 확인할 수 있다.&amp;quot;&lt;br /&gt;
:○人所以不能明其徳者, 何哉? 盖氣偏而失之太剛, 則有所不克; 氣偏而失之太柔, 則有所不克; 聲色之欲蔽之, 則有所不克; 貨利之欲蔽之, 則有所不克. 不獨此耳, 凡有一毫之偏蔽得以害之, 則有所不克. 唯文王無氣稟物欲之偏蔽, 故能有以勝之而無疑.&lt;br /&gt;
:사람들이 자신의 덕을 밝힐 수 없는 것은 어째서인가? 대개 기질이 치우쳐 너무 강직한 데서 잘못한다면 이겨내지 못하는 바가 있고, 기질이 치우쳐 너무 유한 데서 잘못한다면 이겨내지 못하는 바가 있으며, 감각적 욕구가 명덕을 가리면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 있고, 물욕이 명덕을 가린다면 이겨내지 못하는 바가 있게 된다. 이뿐만이 아니라 무릇 [기질이] 조금이라도 치우쳐 명덕을 해칠 수 있다면 이겨내지 못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오직 문왕만이 기품의 치우침과 물욕의 가림이 없었기 때문에 이것을 이겨내고 의심이 없을 수 있었다.&lt;br /&gt;
:○西山眞氏曰: &amp;quot;明徳, 人所同有, 其所以為聖愚之分者, 但以克明與不能明之異爾. 常人所以不能明者, 一則以氣稟昏弱之故; 二則以物欲蔽塞之故. 雖是蔽塞之餘, 若一旦悔悟, 欲自明其徳, 亦無不可者. 患在自暴自棄而不肯為耳.&lt;br /&gt;
:서산 진씨가 말했다: &amp;quot;明徳은 사람이 똑같이 가진 것인데, 성인이나 어리석은 사람으로 구분되는 까닭은 다만 [명덕을] 밝힐 수 있는 것과 밝힐 수 없는 것의 차이일 뿐이다.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명덕을] 밝힐 수 없는 까닭은, 하나는 기품이 혼매하고 약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물욕이 가리고 막기 때문이다. 비록 [기품이] 가리고 [물욕이] 막음이 많더라도, 만약 일단 잘못을 깨닫고 스스로 자신의 덕을 밝히려고 한다면, 또한 해내지 못할 리 없을 것이다. 문제는 자포자기&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이루상&amp;gt; 10. 孟子曰：「自暴者，不可與有言也；自棄者，不可與有為也。言非禮義，謂之自暴也；吾身不能居仁由義，謂之自棄也。&amp;lt;/ref&amp;gt;해서 실천하려고 하지 않는데 있을 뿐이다.&amp;quot;&lt;br /&gt;
:○格庵趙氏曰: &amp;quot;文王自誠而明者. 故其心渾然天理, 表裏澄瑩, 不待克之而自明. 若大賢而下, 未能如文王, 則不可無克之之功矣.&amp;quot;&lt;br /&gt;
:격암 조씨가 말했다: &amp;quot;문왕은 '誠을 통해 밝아진' 분이다.&amp;lt;ref&amp;gt;『중용장구』 21장. 自誠明，謂之性；自明誠，謂之教。誠則明矣，明則誠矣。 【朱注】 自，由也。德無不實而明無不照者，聖人之德。&amp;lt;/ref&amp;gt; 그러므로 그 마음은 혼연히 천리이고 안팎이 모두 맑아서 [기품이나 물욕을] 이겨낼 필요 없이 본래 밝으셨다. 大賢 이하는 문왕과 같을 수 없으니, [기품이나 물욕을] 이겨내는 공부가 없어서는 안 된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曰: &amp;quot;'顧諟天之明命', 何也?&amp;quot;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顧諟天之明命'는 무슨 의미인가?&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人受天地之中以生. 故人之明徳, 非他也, 即天之所以命我而至善之所存也. 是其全體大用, 蓋無時而不發見&amp;lt;sub&amp;gt;形甸反&amp;lt;/sub&amp;gt;於日用之間.&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사람은 천지의 중정함을 얻어서 태어난다. 그러므로 사람의 明徳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늘이 나에게 명한 것이며 至善이 보존된 곳이다. 이것이 바로 全體이자 大用이니, 대개 어느 때고 일상생활에 드러나지 않음이 없다.&amp;quot;&lt;br /&gt;
:陳氏曰: &amp;quot;於寂然不動之時, 則合萬殊為一本, 而渾然之全體常昭融於方寸之間; 及感而遂通之際, 則散一本為萬殊, 而縱横曲直莫非大用之所流行矣.&amp;quot; 又曰: &amp;quot;天理本體, 常生生而無一息之已; 而其大用, 亦無一息不流行乎日用之間.&amp;quot;&lt;br /&gt;
:진씨가 말했다: &amp;quot;'寂然不動'한 때에는 萬殊가 합해져 하나의 근본이 되어 혼연한 全體가 늘 마음 속에서 밝게 드러나 있고, '[외물을] 감하여 마침내 통한(感而遂通)' 때에 이르러서는 하나의 근본이 나눠져 萬殊가 되어, 온갖 [차별적인] 것들이 大用의 유행 아닌 것이 없다.&amp;quot; 또 말했다. &amp;quot;天理의 本體는 늘 [만물을] 낳고 낳아 한 순간의 그침도 없고, 天理의 大用 또한 일상생활 속에서 한 순간도 유행하지 않음이 없다.&amp;quot;&lt;br /&gt;
&lt;br /&gt;
人惟不察於此. 是以汨&amp;lt;sub&amp;gt;音骨&amp;lt;/sub&amp;gt;於人欲而不知所以自明. 常目在之而眞若'見其參於前、倚於衡也', 則'成性存存而道義出'矣.&amp;lt;br/&amp;gt;&lt;br /&gt;
사람이 오직 이 점을 살피지 않았기 때문에, 인욕에 빠지고도 스스로 밝힐 줄을 알지 못한다. 늘 눈을 여기(명덕)에 두고서 진실로 '그것이 앞에 참여하고 있고, 멍에에 기대고 있음을 보듯'&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위령공&amp;gt; 5. 立，則見其參於前也；在輿，則見其倚於衡也。夫然後行。&amp;lt;/ref&amp;gt; 한다면, '본래 갖춰진 성이 보존되고 보존되어 道義가 [이를 통해] 드러날 것이다.'&amp;lt;ref&amp;gt;&amp;lt;주역&amp;gt; &amp;lt;계사상&amp;gt; 7. 成性存存，道義之門。&amp;lt;/ref&amp;gt;&amp;quot;&lt;br /&gt;
:問: &amp;quot;如何是體, 如何是用?&amp;quot; 朱子曰: &amp;quot;體與用不相離, 且如身是體, 要起行去便是用. 赤子匍匐將入井, 皆有怵惕惻隱之心, 只此一端體用便可見. 如喜怒哀樂是用, 所以喜怒哀樂是體.&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무엇이 體이고 무엇이 用입니까?&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體와 用은 서로 떨어지지 않으니, 예를 들어 몸은 體이고 일어나서 가려는 것은 用이다. '어린 아이가 기어서 우물에 들어가려고 할 때 모두들 깜짝 놀라며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는데', 단지 이 한 경우에서도 體用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喜怒哀樂[과 같은 감정]은 用이고, 喜怒哀樂[과 같은 감정이 생기는] 까닭이 體이다.&amp;quot;&lt;br /&gt;
:○若'見其參前', '倚衡', 此豈有物可見? 但凡人不知省察, 常行日用毎與是徳相忘, 亦不自知其有是也. 今所謂'顧諟'者, 只是心裏常常存著此理. 一出言, 一行事, 皆必有當然之則, 不可失也. 初豈實有一物之可見其形象耶?&lt;br /&gt;
:'見其參前'·'倚衡'의 경우, 이것이 어찌 [정말로] 볼 수 있는 것이겠는가? 다만 보통 사람들이 성찰할 줄 몰라, 일상 생활에서 매번 이 徳을 잊어버리고 그에게 이 徳이 있는 줄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것이다. 지금 이른바 '顧諟'라는 것은 다만 마음속으로 이 理를 늘 보존하는 것이다. 한 마디 말할 때나 한 번 행동할 때 모두 반드시 마땅한 법칙이 있으니, 이를 어겨서는 안 된다. 애초에 어찌 실제로 그 형상을 볼 수 있는 무언가가 있겠는가?&lt;br /&gt;
:○問: &amp;quot;'成性存存, 道義出矣', 何如?&amp;quot; 曰: &amp;quot;天之所命, 我之所得於己, 只是一箇道理. 人只要存得這些在這裏. 才存得在這裏, 則事君必㑹忠, 事親必㑹孝, 見孺子入井, 則怵惕之心便發, 見穿窬之類, 則羞惡之心便發, 合恭敬處便自然㑹恭敬, 合辭遜處便自然㑹辭遜. 須要常存得此心, 則便見得此性發出底都是道理; 若不存得這些, 待做出, 那箇㑹合道理?&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成性存存, 道義出矣'란 무슨 의미인가?&amp;quot; 대답했다: &amp;quot;하늘이 명령한 것과 내가 얻은 것은 같은 道理일 뿐이다. 사람이라면 단지 이와 같은 것을 내면에 보존해야 한다. 내면에 보존하기만 하면 군주를 섬김에 틀림없이 忠할 수 있고, 부모를 섬김에 틀림없이 孝할 수 있으며, 아이가 우물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 깜짝 놀라는 마음이 일어나고, 도둑질하는 부류를 보면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일어나며, 공경해야 할 상황에서는 저절로 공경할 수 있고, 사양해야 할 상황에서는 저절로 사양할 수 있게 된다. 모름지기 이 마음을 항상 보존해야하니, 그렇게 한다면 이 性이 발한 것이 모두 道理임을 알겠지만, 만일 이것을 보존하지 않고 [저절로] 되기를 기다린다면, 무엇이 道理에 부합할 수 있겠는가?&amp;quot;&lt;br /&gt;
:○西山眞氏曰: &amp;quot;'成性'者, 言天之與我者, 自有渾成之性, 如俗言'見成渾淪之物', 是也. 我但當存之又存, 不令頃刻失之, 則天下之道義皆從此出. 道義, 如事君忠, 事親孝之類.&amp;quot;&lt;br /&gt;
:서산 진씨가 말했다: &amp;quot;'成性'이라는 것은 하늘이 나에게 부여해준 것에 본래 혼연히 완성된 性이 있음을 말하니, 세속에서 '見成渾淪之物'이라고 말하는 것이 이것이다. 내가 다만 마땅히 보존하고 또 보존해 잠시라고 이것을 잃어버리지 않게 한다면, 천하의 道義가 모두 이것을 따라 나올 것이다. '道義'란 군주를 섬김에 忠하고, 부모를 섬김에 孝하는 부류와 같은 것이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天地之中', 太極是已, 天之命我, 此也; 我之明徳, 此也; 謂之至善, 亦此也. 道者, 體; 義者, 用. '成性存存而道義出', 則明徳之全體大用無不明矣.&amp;quot;&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amp;quot; &amp;quot;'天地之中'이란 태극이 이것이니, '하늘이 나에게 명한 것'이 이것이고, 나의 '明徳'이 이것이며, '至善'이라고 한 것 또한 이것이다. '道'라는 것은 體이고, '義'라는 것은 用이다. '成性存存而道義出'이란 明徳의 全體와 大用이 밝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曰: &amp;quot;'克明峻徳', 何也?&amp;quot;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克明峻徳'이란 무슨 의미인가?&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言堯能明其大徳也.&amp;quot; &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요임금께서 자신의 大徳을 밝히실 수 있었음을 말한 것이다.&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人之為徳未嘗不明, 而其明之為體亦未嘗不大. 但人自有以昏之, 是以既不能明, 而又自䧟於一物之小. 唯堯為能明其大徳而無昏暗狹小之累, 是則所謂止於至善.&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사람의 徳은 일찍이 밝지 않음이 없고, 그 밝음의 정도 또한 일찍이 크지 않음이 없다. 다만 사람이 스스로 그것을 어둡게 만들기 때문에 밝힐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사소한 것에 빠진다. 오직 요임금만이 자신의 大徳을 밝히셔서 [그것을] 어둡게 하거나 좁게 하는 장애가 없으셨으니, 이것이 이른바 '止於至善'이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能明其大徳', 只是明明徳到十分盡處, 非明徳之外有峻徳也.&amp;quot;&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能明其大徳'이란 다만 明徳을 밝히는 것을 100% 다하는 것이니, 明徳 밖에 따로 '峻徳'이 있는 게 아니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曰: &amp;quot;是三者, 固皆自明之事也. 然其言之, 亦有序乎?&amp;quot;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이 세 가지는 진실로 모두 스스로 밝히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을 말한 것에도 순서가 있는 것인가?&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amp;lt;康誥&amp;gt;通言明徳而已; &amp;lt;太甲&amp;gt;則明天之未始不爲人而人之未始不爲天也; &amp;lt;帝典&amp;gt;則專言成徳之事, 而極其大焉. 其言之淺深, 亦略有序矣.&amp;quot;&lt;br /&gt;
대답했다: &amp;quot;&amp;lt;康誥&amp;gt;는 明徳을 전체적으로 말한 것일 뿐이고, &amp;lt;太甲&amp;gt;은 '하늘은 애초에 사람을 위하지 않음이 없고, 사람은 애초에 하늘을 위하지 않음이 없음'을 밝힌 것이며, &amp;lt;帝典&amp;gt;은 오로지 완벽한 덕을 지닌 자(成徳, 즉 堯)의 사례를 말하여 그 위대함을 지극히 표현한 것이다. 그 말의 깊이에도 대략 순서가 있다.&amp;quot;&lt;br /&gt;
:問: &amp;quot;'天未始不為人而人未始不為天', 何也?&amp;quot; 朱子曰: &amp;quot;只是言人性本無不善, 而其日用之間莫不有當然之則, 所謂天理也. 人若毎事做得是, 則便合天理. 天人本一理, 若理㑹得此意, 則天何嘗大, 人何嘗小也?&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하늘은 애초에 사람을 위하지 않음이 없고, 사람은 애초에 하늘을 위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다만 사람의 性은 본래 선하지 않음이 없고, 평소에 당연한 법칙이 있지 않음이 없음을 말한 것이니, [이 두 가지는] 이른바 天理이다. 사람이 만일 매사에 옳게 행한다면 천리에 부합하게 된다. 하늘과 사람은 본래 하나의 理이니, 만약 이 뜻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언제 하늘은 크고 사람은 작았겠는가?&amp;quot;&lt;br /&gt;
:○天即人, 人即天. 人之始生, 得於天也; 既生此人, 則天又在人矣. 凡語言動作視聽, 皆天也. '顧'是常要看得光明燦爛, 照在目前.&lt;br /&gt;
:하늘은 곧 사람이고 사람은 곧 하늘이니,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하늘을 얻고, [하늘이] 이 사람을 낳고 나면 하늘은 다시 이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무릇 [사람이] 말하고 행동하고 보고 듣는 것은 모두 하늘[이 하는 것]이다. '顧'란 항상 광명찬란한 것(즉 명덕)이 눈앞에서 빛나는 것을 보려는 것이다.&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4 &amp;lt;대학1&amp;gt; 「在明明德」，須是自家見得這物事光明燦爛，常在目前，始得。; 같은 책, 권 17 &amp;lt;대학혹문상&amp;gt; 顧諟，是常要看教光明燦爛，照在目前。&amp;lt;/ref&amp;gt;&lt;br /&gt;
:○黄氏曰: &amp;quot;本文三引&amp;lt;書&amp;gt;, 乃斷章取義, 以明經文明明徳之意. 其言之序, 則自淺而深, 最爲有用. '克明徳'者, 泛言之; 曰'顧諟', 則言明之之功; 曰'明命', 則言明徳之故; 次之曰'峻徳', 加一峻字, 則又見明徳之極, 乃所謂'止於至善'者也.&amp;quot;&lt;br /&gt;
:황씨가 말했다: &amp;quot;본문에서 세 번 &amp;lt;서경&amp;gt;을 인용한 것은 바로 斷章取義해서 경문의 '明明徳'의 의미를 밝힌 것이다. 언급 순서는 얕은 것에서부터 깊어지니, 매우 쓸모가 있다. '克明徳'이라는 것은 범범하게 말한 것이고, '顧諟'라고 말한 것은 명덕을 밝히는 공부를 말한 것이며, '明命'을 말한 것은 明徳의 원인을 말한 것이다. 다음에 말한 '峻徳'에서 '峻'자를 더한 것은 또한 明徳의 지극함을 드러낸 것이니, 바로 이른바 '止於至善'이라는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傳二章===&lt;br /&gt;
湯之盤銘曰：「苟日新，日日新，又日新。」&amp;lt;br/&amp;gt;&lt;br /&gt;
탕왕의 盤銘에서는 &amp;quot;진실로 어느 날에 새롭게 했거든, [이를 말미암아] 날마다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하라&amp;quot;고 하였고,&lt;br /&gt;
:盤，沐浴之盤也。銘，名其器以自警之辭也。苟，誠也。&amp;lt;sub&amp;gt;&amp;lt;論語&amp;gt;&amp;quot;苟至於仁&amp;quot;, 苟亦訓誠.&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리인&amp;gt; 4. 子曰：「苟志於仁矣，無惡也。」 【朱注】 苟，誠也。&amp;lt;/ref&amp;gt;&amp;lt;/sub&amp;gt;湯以人之洗濯其心以去&amp;lt;sub&amp;gt;上聲下同&amp;lt;/sub&amp;gt;惡，如沐浴其身以去垢。故銘其盤，言誠能一日有以滌其舊染之汙而自新，則當因其已新者，而日日新之，又日新之，不可略有間&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斷&amp;lt;sub&amp;gt;徒玩反&amp;lt;/sub&amp;gt;也。&lt;br /&gt;
:'盤'은 목욕하는 그릇이다. '銘'은 그 그릇에 스스로를 경계하는 말을 새긴 것이다. '苟'는 '진실로'(誠)이다.&amp;lt;sub&amp;gt;&amp;lt;논어&amp;gt;의 &amp;quot;苟至於仁&amp;quot;의 '苟'도 '誠'으로 풀었다.&amp;lt;/sub&amp;gt; 탕왕은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씻어 악을 제거하는 것을 마치 몸을 씻어 때를 제거하는 것처럼 여겼다. 그러므로 자신의 '盤'에 명문을 새겨 '진실로 어느 날 전에 물든 더러움을 씻어 스스로 새롭게 할 수 있다면, 이미 새롭게 한 바에 말미암아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날로 새로워져 조금의 끊어짐도 있어서는 안 됨'을 말한 것이다. &lt;br /&gt;
::問: &amp;quot;盤銘見於何書?&amp;quot; 朱子曰: &amp;quot;只見於&amp;lt;大學&amp;gt;. 緊要在一'苟'字, 首句是為學入頭處. 誠能日新, 則下兩句工夫方能接續做去. 今學者却不去'苟'字上著工夫.&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盤銘은 어떤 책에서 나옵니까?&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amp;lt;대학&amp;gt;에만 보인다. 핵심은 '苟'자에 달려있으니, 첫 구('苟日新')가 학문의 시작점이다. 진실로 어느 날 새롭게 할 수 있었다면, 다음 두 구의 공부('日日新，又日新')가 비로소 연이어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배우는 자들은 '苟'자에서 공부를 하지 않는다.&amp;quot;&lt;br /&gt;
::○'苟日新', 新是對舊染之汙而言; '日日新, 又日新', 只是要常常如此無間斷也.&lt;br /&gt;
::'苟日新'의 '新'은 '전에 물든 더러움'(舊染之汙)에 대해 말한 것이고, '日日新, 又日新'은 단지 늘 이렇게 끊어짐이 없게해야 한다는 것이다.&lt;br /&gt;
&lt;br /&gt;
康誥曰：「作新民。」&amp;lt;br/&amp;gt;&lt;br /&gt;
&amp;lt;강고&amp;gt;에서는 '[스스로] 새롭게 하는 백성을 진작시켜라'라고 하였으며, &lt;br /&gt;
:鼓之舞之之謂作，言振起其自新之民也。&lt;br /&gt;
:고무하는 것을 '作'이라고 하니, 스스로 새롭게 하는 백성을 진작시킴을 말한다.&lt;br /&gt;
::朱子曰: &amp;quot;'鼓之舞之', 如擊鼓然, 自然能使人跳舞踊躍. 上之人之於民, 時時提撕警發之, 則下之觀瞻感化, 各自有以興起同然之善心而不能自已耳.&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鼓之舞之'는 마치 북을 치는 것처럼 저절로 사람들로 하여금 춤추고 뛰어오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정자가 백성에 대해 때때로 그들을 일깨운다면, 이를 보고 감화된 백성들은 각자 스스로 공통의 선한 마음을 흥기시켜 스스로 그만둘 수 없을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詩曰：「周雖舊邦，其命惟新。」&amp;lt;br/&amp;gt;&lt;br /&gt;
&amp;lt;시&amp;gt;에서는 &amp;quot;주나라가 비록 오래된 나라지만, [문왕에 이르러] 천명이 새로워졌다&amp;quot;고 하였다.&lt;br /&gt;
:詩大雅文王之篇。言周國雖舊，至於文王，能新其德以及於民，&amp;lt;sub&amp;gt;此是推本說&amp;lt;/sub&amp;gt;而始受天命也。&amp;lt;sub&amp;gt;始字貼新字&amp;lt;/sub&amp;gt;&lt;br /&gt;
:&amp;lt;시&amp;gt; &amp;lt;대아&amp;gt; &amp;lt;문왕&amp;gt;편이다. 주나라가 비록 오래되었지만, 문왕에 이르러 자신의 덕을 새롭게 해 백성들에게 미쳐&amp;lt;sub&amp;gt;이것은 推本說이다??&amp;lt;/sub&amp;gt; 비로소 천명을 받을 수 있었음을 말한 것이다.&amp;lt;sub&amp;gt;'始'자가 '新'자에 해당한다.&amp;lt;/sub&amp;gt;&lt;br /&gt;
::朱子曰: &amp;quot;是新民之極, 和天命也新.&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6. 「其命維新」，是新民之極，和天命也新。&amp;lt;/ref&amp;g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其命維新'이란] '신민'을 지극히 하니 천명도 새로워졌다는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是故君子無所不用其極。&amp;lt;br/&amp;gt;&lt;br /&gt;
이 때문에 군자는 지극하게 하지 않음이 없다.&lt;br /&gt;
:自新新民，皆欲止於至善也。&lt;br /&gt;
:스스로를 새롭게 하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은 至善에 머물고자 하는 것이다.&lt;br /&gt;
::朱子曰: &amp;quot;'明明徳', 便要如湯之日新; '新民', 便要如文王之'周雖舊邦, 其命維新'. 各求'止於至善'之地而後已也.&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명명덕'은 탕왕이 날로 새롭게 한 것처럼 하려는 것이고, '신민'은 문왕의 '周雖舊邦, 其命維新'처럼 하려는 것이다. 각각 '지어지선'의 경지를 구한 이후에 그치는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右傳之二章。釋新民。&lt;br /&gt;
::이상은 전2장이다. '신민'을 풀이한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혹문』 전2장====&lt;br /&gt;
或問: &amp;quot;盤之有銘, 何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혹자가 물었다: &amp;quot;盤에 銘을 새긴 것'은 어째서인가?'&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盤者, 常用之器, 銘者, 自警之辭也. 古之聖賢, 兢兢業業&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 謹慎戒懼貌。▶ 《書‧皋陶謨》： “兢兢業業， 一日二日萬幾。”▶ 孔 傳： “兢兢， 戒慎；業業， 危懼。” &amp;lt;/ref&amp;gt;, 固無時而不戒謹恐懼. 然猶恐其有所怠忽而或忘之也. 是以於其常用之器, 各因其事而刻銘以致戒焉, 欲其常接乎目, 毎警乎心而不至於忽忘也.&amp;quot; &amp;lt;br/&amp;gt;&lt;br /&gt;
답했다. &amp;quot;'盤'이라는 것은 늘 사용하는 기물이고, '銘'이라는 것은 스스로 경계하는 말이다. 옛 성현들께서는 경계하고 경계하셔서, 진실로 어느 때나 조심하고 두려워하지 않음이 없으셨다. 그런데도 오히려 태만하고 소홀해서 혹 잊어버리는경우가 있지 않을까 걱정하셨다. 이 때문에 늘 사용하는 기물에 각각 그 기물에 따라 銘을 새겨 경계를 지극히 하셨으니, 늘 눈앞에 두어 매번 마음을 경계하고 소홀해 잊어버리는 데 이르지 않고자 하신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曰: &amp;quot;然則沐浴之盤而其所刻之辭如此, 何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그렇다면 목욕하는 盤에 새긴 글이 이러한 것은 어째서인가?&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人之有是徳, 猶其有是身也; 徳之本明, 猶其身之本㓗也; 徳之明而利欲昏之, 猶身之㓗而塵垢&amp;lt;sub&amp;gt;音苟&amp;lt;/sub&amp;gt;汚&amp;lt;sub&amp;gt;音烏又去聲&amp;lt;/sub&amp;gt;之也. 一旦存養省&amp;lt;sub&amp;gt;悉井反&amp;lt;/sub&amp;gt;察之功, 眞有以去&amp;lt;sub&amp;gt;上聲下同&amp;lt;/sub&amp;gt;其前日利欲之昏, 而日新焉, 則亦猶其䟽&amp;lt;sub&amp;gt;平聲&amp;lt;/sub&amp;gt;瀹&amp;lt;sub&amp;gt;音藥&amp;lt;/sub&amp;gt;&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 洗滌；沐浴。 &amp;lt;/ref&amp;gt;澡&amp;lt;sub&amp;gt;音早&amp;lt;/sub&amp;gt;雪&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 洗滌使之清潔；洗滌。 &amp;lt;/ref&amp;gt;, 而有以去其前日塵垢之汚也. 然既新矣, 而所以新之之功不繼, 則利欲之交將復&amp;lt;sub&amp;gt;扶又反下同&amp;lt;/sub&amp;gt;有如前日之昏, 猶既㓗矣而所以㓗之之功不繼, 則塵垢之集將復有如前日之汚也. 故必因其巳新而日日新之, 又日新之, 使其存養省察之功無少間斷&amp;lt;sub&amp;gt;間去聲斷徒玩反後凡二字相連者並同&amp;lt;/sub&amp;gt;, 則明徳常明而不復爲利欲之昏, 亦如人之一日沐浴而日日沐浴, 又無日而不沐浴, 使其䟽瀹澡雪之功無少間斷, 則身常㓗清而不復爲舊染之汚也. &amp;lt;br/&amp;gt;&lt;br /&gt;
昔成湯所以反之而至於聖者, 正惟有得於此. 故稱其徳者有曰: '不邇聲色, 不殖&amp;lt;sub&amp;gt;承職反&amp;lt;/sub&amp;gt;貨利.' 又曰: '以義制事, 以禮制心.' 有曰: '從諌弗咈&amp;lt;sub&amp;gt;音佛&amp;lt;/sub&amp;gt;', '改過不吝.' 又曰: '與人不求備, 檢身若不及.' 此皆足以見其日新之實. 至於所謂聖敬日躋&amp;lt;sub&amp;gt;牋西反&amp;lt;/sub&amp;gt;云者, 則其言愈約而意愈切矣&amp;lt;sub&amp;gt;躋, 升也. 聖人能敬其徳, 日愈升於髙明也.&amp;lt;/sub&amp;gt;然本湯之所以得此, 又其學於伊尹而有發焉. 故伊尹自謂與湯咸有一徳, 而於復&amp;lt;sub&amp;gt;如字&amp;lt;/sub&amp;gt;政太甲之初, 復&amp;lt;sub&amp;gt;扶又反下同&amp;lt;/sub&amp;gt;以終始惟一, 時乃日新, 爲丁寧之戒, 蓋於是時, 太甲方且自怨自艾&amp;lt;sub&amp;gt;音乂&amp;lt;/sub&amp;gt;, 於桐處&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仁遷義而歸, 是亦所謂苟日新者. 故復推其嘗以告于湯者告之, 欲其日進乎此, 無所間斷, 而有以繼其烈祖之成徳也. 其意亦深切矣.&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사람에게 이 덕이 있는 것은 이 몸이 있는 것과 같고, 덕이 본래 밝은 것(즉 명덕)은 몸이 원래 깨끗한 것과 같으며, 밝은 덕을 利欲이 가리는 것은 깨끗한 몸을 먼지가 더럽히는 것과 같다. 한 번 존양성찰의 공부가 진실로 이전의 利欲의 가림을 제거하여 날로 새로워질 수 있는 것은 또한 [몸을] 씻어 전날의 더러움을 제거할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미 새로워졌더라도 새롭게 하는 공부를 계속하지 않으면 利欲이 엮여서 다시 이전의 가림과 같게 되는 것은, 이미 씻었더라도 깨끗하게 하는 노력을 계속하지 않으면 먼지가 모여서 다시 전날의 더러움과 같아지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미 새롭게 한 것에 기인해 날마다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하여 존양성찰의 공부가 조금의 끊어짐도 없게 하면, 명덕이 늘 밝아서 다시는 利欲의 가림이 없는 것이 또한 사람이 어느 날 씻고 또 날마다 씻어 하루라도 씻지 않음이 없어서, 씻는 노력이 조금의 끊어짐도 없게 하면, 몸이 늘 깨끗해 다시는 과거의 더러움이 없게 되는 것과 같다. &amp;lt;br/&amp;gt;&lt;br /&gt;
옛날 탕왕께서 [본성을] 회복해&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진심하&amp;gt; 33. 孟子曰：「堯舜，性者也；湯武，反之也。&amp;lt;/ref&amp;gt; 성인이 되신 까닭은 바로 이점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amp;lt;서경&amp;gt;에서] 탕왕의 덕을 칭송해 '노래와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고 재물을 늘리지 않는다'&amp;lt;ref&amp;gt;&amp;lt;서경&amp;gt; &amp;lt;商書&amp;gt; &amp;lt;仲虺之誥&amp;gt; 惟王不邇聲色，不殖貨利。&amp;lt;/ref&amp;gt;·'義로써 일을 제어하고, 禮로써 마음을 제어한다.'&amp;lt;ref&amp;gt;&amp;lt;서경&amp;gt; &amp;lt;商書&amp;gt; &amp;lt;仲虺之誥&amp;gt; 王懋昭大德，建中于民，以義制事，以禮制心，垂裕後昆。&amp;lt;/ref&amp;gt;·'간언을 따르고 거스르지 않는다'&amp;lt;ref&amp;gt;&amp;lt;서경&amp;gt; &amp;lt;商書&amp;gt; &amp;lt;伊訓&amp;gt; 先王肇修人紀，從諫弗咈，先民時若。&amp;lt;/ref&amp;gt;·'잘못을 고치는데 거리끼지 않는다'&amp;lt;ref&amp;gt;&amp;lt;서경&amp;gt; &amp;lt;商書&amp;gt; &amp;lt;仲虺之誥&amp;gt; 用人惟己，改過不吝。&amp;lt;/ref&amp;gt;고 하였고, 또 &amp;quot;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갖추기를 바라지 않았고, 자신을 단속하기를 마치 부족한 듯 한다&amp;quot;&amp;lt;ref&amp;gt;&amp;lt;서경&amp;gt; &amp;lt;商書&amp;gt; &amp;lt;伊訓&amp;gt; 居上克明，為下克忠，與人不求備，檢身若不及，以至于有萬邦，茲惟艱哉！&amp;lt;/ref&amp;gt;고 하였으니, 이 모두에서 탕왕께서 날마다 새로워지신 실질을 볼 수 있다. 이른바 &amp;quot;성인께서 공경하셔서 날로 발전하셨다&amp;quot;&amp;lt;ref&amp;gt;&amp;lt;시경&amp;gt; &amp;lt;상송&amp;gt; &amp;lt;長發&amp;gt; 湯降不遲、聖敬日躋。&amp;lt;/ref&amp;gt;의 경우, 말은 더욱 간략하지만 의미는 더욱 절실하다.&amp;lt;sub&amp;gt;'躋'는 '올라감'이다. 성인께서 능히 자신의 덕을 공경하셔서 날이 갈수록 더욱 고명한 경지에 오르셨다는 것이다.&amp;lt;/sub&amp;gt; 그러나 본래 탕임금이 이점을 깨달으셨던 이유는 또 이윤에게 배워 감발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윤 스스로 '[탕왕과] 함께 공통적인 덕을 가지고 있다'&amp;lt;ref&amp;gt;&amp;lt;서경&amp;gt; &amp;lt;商書&amp;gt; &amp;lt;咸有一德&amp;gt; 惟尹躬暨湯，咸有一德，克享天心，受天明命，以有九有之師，爰革夏正。&amp;lt;/ref&amp;gt;고 말했고, 태갑을 정치에 복귀시킬 때 다시 '시종 한결같이 하는 것이 바로 날로 새롭게 하는 것'&amp;lt;ref&amp;gt;&amp;lt;서경&amp;gt; &amp;lt;商書&amp;gt; &amp;lt;咸有一德&amp;gt; 終始惟一，時乃日新。&amp;lt;/ref&amp;gt;이라는 말로 간곡한 경계를 삼았다. 아마 이때 태갑이 비로소 '스스로 원망하고 자신을 다스려 桐땅에서 인의를 실천하고 돌아왔으니'&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만장상&amp;gt; 6. 太甲顛覆湯之典刑，伊尹放之於桐。三年，太甲悔過，自怨自艾，於桐處仁遷義；三年，以聽伊尹之訓己也，復歸于亳。&amp;lt;/ref&amp;gt; 이 또한 이른바 '苟日新'이다. 그러므로 다시 전에 탕왕께 고했던 말을 미루어 태갑에게 고한 것은 태갑으로 하여금 날로 이에 나아감에 끊어짐 없게 해서&amp;lt;ref&amp;gt;&amp;lt;서경&amp;gt; &amp;lt;商書&amp;gt; &amp;lt;伊訓&amp;gt; 伊尹乃明言烈祖之成德，以訓于王。&amp;lt;/ref&amp;gt; 조상의 성대한 덕을 계승할 수 있게 한 것이니, 뜻이 매우 깊고 절실하다.&lt;br /&gt;
:朱子曰: &amp;quot;成湯工夫, 全在敬字上. 看來大叚是箇脩飭&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 謹慎整飭， 不違禮義。&amp;lt;/ref&amp;gt;底人. 故當時人說他做工夫處, 如云以義以禮, 不邇不殖等, 可見日新之功. 或問中所以詳載, 非說道人不知, 亦欲學者經心&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 留心；着意。 &amp;lt;/ref&amp;gt;耳.&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成湯의 공부는 모두 '敬'이라는 글자에 달려 있다. 생각건대 [탕왕은] 대체로 [스스로를] 잘 단속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당시 사람들은 그가 공부하는 것에 대해 '義'나 '禮', '不邇'나 不殖' 등의 말로 표현했으니, (여기에서) '날로 새로워지는' 공부를 볼 수 있다. &amp;lt;或問&amp;gt; 안에 [탕왕을 칭송한 말을] 상세히 기록해 놓은 것은 '사람들이 [이를]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여기에] 마음을 두게 하고자 한 것일 뿐이다.&amp;quot;&lt;br /&gt;
:○格庵趙氏曰: &amp;quot;塵垢之汚, 其害淺; 利欲之昏, 其害深. 塵垢之汚, 人知求以去之; 而利欲之昏, 則不知所以去之. 唯聖人則以為徳之不可不新, 甚於身之不可不㓗也. 且人之㓗身也, 既知䟽瀹澡雪以去前日塵垢之汚矣. 然其㓗之之功不繼, 則塵垢復集, 將又如前日之汚. 故必日加䟽瀹澡雪之功, 無少間斷, 而後其身常㓗而不汚, 况欲去利欲之昏, 而復本然之明, 則存養省察之功, 其可一日而有間斷哉!&amp;quot;&lt;br /&gt;
:격암 조씨가 말했다: &amp;quot;먼지와 때가 [깨끗한 몸을] 더럽히는 것은 그 해악이 적지만, 이욕이 [명덕을] 가리는 것은 그 해악이 심하다. 먼지와 때가 [깨끗한 몸을] 더럽히는 것은 사람들이 제거할 줄 알지만,이욕이 [명덕을] 가리는 것은 제거할 줄 모른다. 오직 성인만이 덕을 새롭게 하지 않을 수 없음이 몸을 깨끗하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보다 심하다고 여긴다. 또 사람들이 몸을 깨끗이 함에 있어서, [몸을] 씻어 전날의 먼지와 때의 더러움을 제거할 줄은 이미 알지만, 깨끗이 하는 노력을 잇지 않으면 먼지와 때가 다시 쌓여 다시 전날의 더러움과 같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날마다 깨끗이 하는 노력을 잠깐의 끊어짐도 없이 한 이후에야 그 몸이 항상 깨끗하여 더럽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이욕의 가림을 없애 본연의 밝음을 회복하려고 한다면, 존양성찰의 공부를 어찌 하루라도 끊어지게 해서야 되겠는가?&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不邇聲色等八句, 是敬之目; 聖敬日躋一句, 是敬之綱. 合而言之, 即顧諟明命之事也.&amp;quot;&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不邇聲色'등의 여덟 구절은 敬의 조목이고, '聖敬日躋'의 한 조목 구절은 敬의 강령이다. 합하여 말한다면 '顧諟明命'의 일이다.&amp;quot;&lt;br /&gt;
&lt;br /&gt;
其後周之武王, 踐阼&amp;lt;sub&amp;gt;存故反&amp;lt;/sub&amp;gt;之初, 受師尚父&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齊太公 呂望 的尊稱。 &amp;lt;/ref&amp;gt;丹書之戒曰&amp;lt;sub&amp;gt;尚父太公望吕氏. 詳見孟子離婁上篇&amp;lt;/sub&amp;gt;: '敬勝怠者吉, 怠勝敬者滅, 義勝欲者從, 欲勝義者凶.'&amp;lt;br/&amp;gt;&lt;br /&gt;
이후 주나라 무왕이 즉위하셨을 때, 사상보&amp;lt;sub&amp;gt;상보는 태공망 여씨이다. 자세한 것은 &amp;lt;맹자&amp;gt; &amp;lt;이루상&amp;gt;에 보인다.&amp;lt;/sub&amp;gt;에게 丹書의 경계를 받으셨다: '공경함이 태만함을 이기는 자는 길하고, 태만함이 공경함을 이기는 자는 망한다. 의로움이 욕망을 이기는 자는 순조롭고, 욕구가 의로움을 이기는 자는 흉하다.'&amp;lt;ref&amp;gt;&amp;lt;대대례기&amp;gt; &amp;lt;武王踐阼&amp;gt;王齊三日，端冕，師尚父亦端冕，奉書而入，負屏而立。王下堂，南面而立。師尚父曰：「先王之道不北面！」王行西，折而南，東面而立。師尚父西面道書之言曰：「敬勝怠者吉，怠勝敬者滅，義勝欲者從，欲勝義者凶，凡事，不強則枉，弗敬則不正，枉者滅廢，敬者萬世。藏之約、行之行、可以為子孫常者，此言之謂也！且臣聞之，以仁得之，以仁守之，其量百世；以不仁得之，以仁守之，其量十世；以不仁得之，以不仁守之，必及其世。」&amp;lt;/ref&amp;gt;&lt;br /&gt;
:問從字意. 朱子曰: &amp;quot;從, 順也. 敬便立起, 怠便放倒. 以理從事是義, 不以理從事便是欲. 這處敬與義, 是箇體用.&amp;quot;&lt;br /&gt;
:'從'의 뜻에 대해 물었다.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從은 '순조롭다'는 것이다. 敬은 똑바로 서는 것이고, 怠는 엎어지는 것이다. 이치대로 하는 것이 義이며, 이치대로 하지 않는 것이 欲이다. 敬과 義는 體用관계이다.&amp;quot;&lt;br /&gt;
:○須是將敬來做本領. 涵養得貫通時, 纔敬以直内, 便義以方外. 義便有敬, 敬便有義. 如居仁便由義, 由義便居仁. 敬者, 守於此而勿失之謂; 義者, 施於彼而合宜之謂.&lt;br /&gt;
:모름지기 敬을 본령으로 삼아야 한다. 함양공부가 철저해졌을 때, '敬以直内'하자마자 '義以方外'하게 된다. 義에 敬이 있고 敬에 義가 있으니, 마치 '仁에 머물면 곧 義를 말미암게 되고, 義를 말미암으면 곧 仁에 머물게 된다'는 것과 같다. 敬이라는 것은 여기서 지켜서 잃어버리지 않음을 말하고, 義라는 것은 저기에서 시행하여 합당한 것을 말한다.&lt;br /&gt;
:○西山眞氏曰: &amp;quot;武王之始踐阼也, 訪丹書於太公, 可謂急於聞道者矣. 而太公望所告, 不出敬與義之一言. 蓋敬則萬善俱立, 怠則萬善俱廢; 義則理為之主, 欲則物為之主. 上古聖人巳致謹於此矣. 武王聞之, 若湯之戒懼而銘之器物以自警焉. 蓋恐斯須不存, 而怠與欲得乘其隙也.&amp;quot;&lt;br /&gt;
:서산 진씨가 말했다: &amp;quot;무왕께서 막 즉위하셨을 때  丹書를 태공에게 자문하셨으니, '道를 듣기를 중요하게 생각하셨다'고 말할 만하다. 태공망이 고한 것은 敬과 義 한 마디를 벗어나지 않았다. 대개 공경하면 뭇 善이 함께 확립되고, 태만하면 뭇 善이 함께 사라지며, 의로우면 이치가 주인이 되지만, 욕망을 추구하면 외물이 주인이 된다. 옛적 성인들께서는 이점에 대해 매우 지극히 조심하셨다. 무왕께서 이를 들으시고는, 마치 탕왕이 경계하고 두려워하며 기물에 銘을 새겨 스스로 경계한 것과 같이 하셨다. 아마도 잠시라도 [敬과 義를] 보존하지 않아 怠와 欲이 그 틈을 탈 것을 두려워 하셨던 것이다.&amp;quot;&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敬義對言, 其理甚精. 孔子於坤&amp;lt;文言&amp;gt;曰: '敬以直内, 義以方外.'&amp;lt;ref&amp;gt;&amp;lt;주역&amp;gt; &amp;lt;문언&amp;gt; 「直」其正也，「方」其義也。君子敬以直內，義以方外，敬義立而德不孤。「直、方、大、不習无不利」，則不疑其所行也。&amp;lt;/ref&amp;gt; 實自此發.&amp;quo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敬과 義를 대비해 말한 그 논리가 더욱 정밀하다. 공자께서 곤괘 &amp;lt;文言&amp;gt;에서 '敬以直内, 義以方外'라고 말씀하신 것은 실로 여기(무왕의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退而於其几席、觴豆、刀劒、户牖, 莫不銘焉, 蓋聞湯之風而興起者. 今其遺語尚幸頗見&amp;lt;sub&amp;gt;形甸反&amp;lt;/sub&amp;gt;於禮書, 願治&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之君, 志學之士, 皆不可以莫之考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무왕께서 이를 들으시고는] 물러나 궤석·식기·칼·창문에 이 경계를 새기지 않음이 없으셨으니, 아마도 탕왕의 풍모를 듣고 흥기하신 것이다. 오늘날 그 남겨진 말이 여전히 다행히도 예서에 상당히 드러나 있으니, [나라를] 잘 다스리려는 군주와 학문에 뜻을 둔 선비는 모두 [이 경계를] 상고하지 않아선 안 된다.&amp;lt;br/&amp;gt;&lt;br /&gt;
:張氏存中曰: &amp;quot;&amp;lt;大戴禮&amp;gt; &amp;lt;武王踐阼&amp;gt;篇, '武王踐阼三日, 召師尚父而問焉曰: 『黄帝顓帝之道, 可得而見與?』 曰: 『在丹書, 王欲聞之, 則齊矣.』 王齊三日, 師尚父奉書而入, 道書之言曰: 『敬勝怠者吉, 怠勝敬者滅, 義勝欲者從, 欲勝義者凶. 凡事不强則枉, 弗敬則不正, 枉者滅廢, 敬者萬世.』 王聞書之言, 惕若恐懼, 而為戒書於席四端為銘焉. 銘曰: 『安樂必敬』 『無行可悔』 『一反一側, 亦不可不志&amp;lt;ref&amp;gt;&amp;lt;대대례기&amp;gt; 원문에는 &amp;quot;不志&amp;quot;가 &amp;quot;以忘&amp;quot;으로 되어 있다.&amp;lt;/ref&amp;gt; 『殷&amp;lt;ref&amp;gt;&amp;lt;대대례기&amp;gt; 원문에는 '殷'자는 '所'자로 되어 있다.&amp;lt;/ref&amp;gt;監不逺, 視爾&amp;lt;ref&amp;gt;&amp;lt;대대례기&amp;gt; 원문에는 爾자가 邇자로 되어 있다.&amp;lt;/ref&amp;gt;所代』, 鑑銘曰: 『見爾前, 慮爾後』, 盤銘曰: 『與其溺於人也, 寧溺於淵. 溺於淵, 猶可游也; 溺於人, 不可捄也.』, 楹銘曰: 『毋曰胡殘, 其禍將然; 毋曰胡害, 其禍將大; 毋曰胡傷, 其禍將長』, 牖銘曰: 『隨天之時, 以地之財, 敬祀皇天, 敬以先時』, 劒銘曰: 『帶之以為服, 動必行徳行. 德則興, 倍徳則崩』.'&amp;quot;&amp;lt;sub&amp;gt;倍與背同. 銘凡十有四, 今摘其辭義之易知者于此.&amp;lt;/sub&amp;gt;&lt;br /&gt;
:장존중이 말했다: &amp;quot;&amp;lt;대대례기&amp;gt;의 &amp;lt;武王踐阼&amp;gt;에 [다음과 같이 나와있다]: '무왕이 즉위한 지 3일 후에 사상보를 불러서 물었다: 「황제·전욱의 도를 볼 수 있겠는가?」  사상보가 대답했다: 「丹書에 있으니, 듣고자 하신다면 재계하십시오.」 왕이 3일간 재계하자, 사상보가 丹書를 들고 들어와 丹書의 내용을 낭송했다: 「공경함이 태만함을 이기는 사람은 길하고, 태만함이 공경함을 이기는 사람은 망한다. 의로움이 욕망을 이기는 사람은 순조롭고, 욕망이 의로움을 이기는 사람은 흉하다. 모든 일에 강하지 않으면 굽어지고 공경하지 않으면 바르지 않으니, 굽어진 것은 없어지고 공경한 것은 만세를 갈 것이다.」  왕이 丹書의 내용을 듣고 두려워하고 경계하여, 경계하는 글을 지어 자리 네 귀퉁이에 [다음과 같이] 새겼다: 「편안하고 즐거울 때 반드시 조심하라」·「후회할 만한 짓은 하지 마라」·「한 번 돌아누울 때에도 잊지 말아야 한다」·「은나라라는 거울이 멀지 않으니, 저들이 [하나라를] 대신한 것을 보라.」 거울에는 [다음과 같이] 새겼다: 「네 앞을 보고 네 뒤를 생각해라.」 세숫대야에는 [다음과 같이] 새겼다: 「사람에게 빠질지언정 차라리 연못에 빠져라. 연못에 빠지면 그래도 헤엄칠 수 있지만, 사람에게 빠지면 구할 수 없다.」 기둥에는 [다음과 같이] 새겼다: 「무슨 해가 있겠냐고 말하지 말라. 그 화가 타오를 것이다. 뭐가 걱정스럽냐고 말하지 말라, 그 화가 클 것이다. 뭐가 문제냐고 말하지 말라, 그 화가 커질 것이다.」 창문에는 [다음과 같이] 새겼다: 「하늘의 때를 따르고 땅의 재화를 이용하라. 하늘을 공경히 모시고, 선대를 공경하라.」 검에는 [다음과 같이] 새겼다: 「칼을 차 복식을 갖추되, 움직일 때 반드시 덕을 행하라. 덕을 행하면 흥기하겠지만, 덕을 등지면 망할 것이다.」 &amp;quot;&amp;lt;sub&amp;gt;銘이 총 14수인데, 그 가운데 내용이 알기 쉬운 것만 여기에 뽑았다.&amp;lt;/sub&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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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 &amp;quot;此言'新民', 其引此, 何也?&amp;quot;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여기(전2장)에서는 '新民'을 말하는데, 이것(탕왕의 자기 수양 내용)을 인용한 것은 어째서인가?&amp;quot; &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此自其本而言之, 蓋以是爲自新之至而新民之端也.&amp;quot; &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이것은 근본으로부터 말한 것이다. 대개 이것을 自新의 완성이자 新民의 시작으로 삼은 것이다.&amp;quot; &amp;lt;br/&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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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 &amp;quot;&amp;lt;康誥&amp;gt;之言'作新民', 何也?&amp;quot;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amp;lt;康誥&amp;gt;에 말에서 '作新民'이라고 말한 것은 무슨 의미인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武王之封康叔也, 以商之餘民, 染紂汚俗而失其本心也. 故作&amp;lt;康誥&amp;gt;之書而告之以此, 欲其有以鼓舞而作興之, 使之振奮踴躍, 以去&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其惡而遷於善, 舍&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其舊而進乎新也. 然此豈聲色&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4.   《詩‧大雅‧皇矣》： “帝謂文王，予懷明德，不大聲以色，不長夏以革。” ▶ 孔穎達 疏： “不大其音聲以見於顏色而加人，不以年長大以有變革於幼時。” 後遂以“聲色”為疾言厲色之意。  ▶ 《禮記‧中庸》： “聲色之於以化民， 末也。”&amp;lt;/ref&amp;gt;號令之所及哉? 亦自新而已矣. &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무왕께서 강숙을 봉하셨을 때, 상나라의 유민들이 紂의 오염된 습속에 물들어 그들의 본심을 잃었다. 그러므로 &amp;lt;강고&amp;gt;의 글을 지어 이를 강숙에게 말해줘, 강숙이 백성들을 고무시키고 흥기시켜 백성들로 하여금 떨쳐 일어나 악한 것을 제거하고 선한 것으로 옮겨가며,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나아가게 하고자 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큰 소리나 엄한 낯빛·호령이 미칠 바겠는가? 단지 자신을 새롭게 만들 뿐이다.&amp;quot;&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曰: &amp;quot;孔氏&amp;lt;小序&amp;gt;以&amp;lt;康誥&amp;gt;爲成王周公之書, 而子以武王言之, 何也?&amp;quot;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공안국의 &amp;lt;小序&amp;gt;는 &amp;lt;康誥&amp;gt;를 성왕과 주공의 책이라고 여겼는데,&amp;lt;ref&amp;gt;&amp;lt;상서정의&amp;gt; &amp;lt;강고&amp;gt; &amp;lt;序&amp;gt; 成王旣伐管叔蔡叔.&amp;lt;/ref&amp;gt; 그대가 '무왕께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어째서인가?&amp;quo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曰: &amp;quot;此五峯胡氏之說也.&amp;lt;sub&amp;gt;胡氏, 名宏, 字仁仲, 建安人, 文定公安國之子也. 其說見&amp;lt;皇王大紀&amp;gt;&amp;lt;/sub&amp;gt; 蓋嘗因而考之, 其曰朕弟寡兄云者, 皆爲武王之自言, 乃得事理之實; 而其他証亦多. &amp;lt;小序&amp;gt;之言不足深信, 於此可見. 然非此書大義所關, 故不暇於致詳. 當别爲&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讀書者言之耳.&amp;quot;&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이것은 호오봉의 설이다.&amp;lt;sub&amp;gt;호씨의 이름이 宏이고 字는 仁仲이며 건안 사람이니, 문정공 호안국의 아들이다. 그의 설은 &amp;lt;皇王大紀&amp;gt;에 보인다.&amp;lt;ref&amp;gt;&amp;lt;호굉집&amp;gt;, 중화서국, 1987, 262쪽, &amp;lt;皇王大紀論&amp;gt; &amp;lt;載書之敍&amp;gt; &amp;lt;康誥&amp;gt;序曰: &amp;quot;成王既伐管叔、蔡叔, 以殷餘民封康叔.&amp;quot; 謹按, 康叔者, 成王叔父也, 不應稱之曰: &amp;quot;朕其弟&amp;quot;. 成王者, 康叔之猶子也, 不應自稱曰: &amp;quot;乃寡兄&amp;quot;. 其曰兄曰弟者, 盖武王命康叔之辭也, 故&amp;lt;史記&amp;gt;武王封康叔於衛. 且康叔者, 文王之子, 叔虞, 成王之弟也. 周公東征叔虞, 已得封於唐, 王命歸周公於東, 豈有康叔得封反在唐叔之後乎? 故不得不捨&amp;lt;書&amp;gt;序而從經史也. &amp;lt;/ref&amp;gt;&amp;lt;/sub&amp;gt; 대개 일찍이 호오봉의 설에 따라 상고해보니, [&amp;lt;康誥&amp;gt;에서] 朕·弟·寡兄라고 말하는 것을 모두 무왕이 스스로 일컬은 것으로 보아야 맥락에 맞고, 그 다른 증거 또한 많다. &amp;lt;小序&amp;gt;의 말을 깊이 신뢰하기 부족함을 여기에서 알 수 있다. 그러나 [&amp;lt;小序&amp;gt;의 신뢰성 여부는] 이 책의 대의와 관련이 없기 때문에, 자세히 따질 겨를이 없다. 응당 추가적으로 &amp;lt;서경&amp;gt;을 읽는 사람들을 위해 말했을 뿐이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曰: &amp;quot;&amp;lt;詩&amp;gt;之言'周雖舊邦, 其命維新', 何也?&amp;quot;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amp;lt;詩&amp;gt;에서  '주나라가 비록 오래된 나라지만, [문왕에 이르러] 천명이 새로워졌다'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言周之有邦, 自后稷以來千有餘年, 至於文王, 聖徳日新而民亦丕變&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大變。 ▶ 《書‧盤庚上》： “罔有逸言， 民用丕變。” ▶ 孔 傳： “民用大變從化。” &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주나라가 생기고 후직으로부터 천여 년이 지나 문왕에 이르러, 성인의 덕이 날로 새로워지고 백성들 또한 크게 변했음을 말한 것이다.&amp;quot;&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此乃推本言之, &amp;lt;詩&amp;gt;無日新、丕變意. 蓋承上文'日新', 作新說來.&amp;quo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이것은 바로 [주자께서] 근본을 미루어 말씀하신 것이니, &amp;lt;시&amp;gt;에는 '날로 새로워졌다'거나 '크게 변했다'는 의미는 없다. 아마도 앞 글의 '日新'을 이어 새로운 설명을 만드신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故天命之以有天下. 是其邦雖舊而命則新也. 蓋民之視效在君, 而天之視聽在民. 君徳既新, 則民徳必新; 民徳既新, 則天命之新, 亦不旋日&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 一日之間。 &amp;lt;/ref&amp;gt;矣.&amp;quot;&amp;lt;br/&amp;gt;&lt;br /&gt;
그러므로 하늘이 문왕께 명을 내려 천하를 소유하게 하였다. 이것이 '나라는 비록 오래되었지만 천명은 새롭다'는 것이다. 대개 백성들의 본보기는 군주에게 달려있고, 하늘이 보고 듣는 것은 백성에게 달려있다. 군주의 덕이 새로워진 이상 백성의 덕은 반드시 새로울 것이고, 백성의 덕이 새로워진 이상 천명이 새로워짐 또한 하루가 걸리지 않을 것이다.&amp;lt;br/&amp;gt;&lt;br /&gt;
:問: &amp;quot;'天之視聽在民', 與'天視自我民視, 天聽自我民聽'&amp;lt;ref&amp;gt;&amp;lt;서경&amp;gt; &amp;lt;주서&amp;gt; &amp;lt;泰誓中&amp;gt; 天視自我民視，天聽自我民聽。&amp;lt;/ref&amp;gt;, 若有不同, 如何?&amp;quot; 朱子曰: &amp;quot;天豈曾有耳目以視聽? 只是自民之視聽, 便是天之視聽. 如帝命文王, 豈天諄諄然命之? 只是文王要恁地, 便是理合恁地, 便是帝命之也.&amp;quot; 又曰: &amp;quot;若一件事, 民人皆以為是, 便是天以為是; 若民人皆歸往之, 便是天命也.&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天之視聽在民'과 '하늘은 내 백성이 보는 것을 통해 보고, 하늘은 내 백성이 듣는 것을 통해 듣는다'는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amp;quo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하늘에 언제 일찍이 귀와 눈이 있어서 보고 들었겠는가? 다만 백성들의 보고 들음을 통하는 것이 바로 하늘이 보고 듣는 것이다. 상제께서 문왕에게 명한 것이 어찌 하늘이 꼬치꼬치 명령한 것이겠는가? 다만 문왕께서 이렇게 하려고 하신 것이 이치상 마땅히 이와 같아야 했던 것이니, 이것이 바로 상제가 명한 것이다.&amp;quot; 또 말씀하셨다: &amp;quot;어떤 일을 백성이 모두 옳게 여기는 것은 곧 하늘도 옳게 여기는 것이고, 백성들이 모두 귀의해 오는 것은 하늘이 명한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所謂'君子無所不用其極'者, 何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이른바 '군자는 지극하게 하지 않음이 없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此結上文&amp;lt;詩&amp;gt;&amp;lt;書&amp;gt;之意也. 蓋盤銘言自新也, &amp;lt;康誥&amp;gt;言新民也, 文王之詩自新、新民之極也. 故曰: '君子無所不用其極.' 極, 即至善之云也. 用其極者, 求其止於是而巳矣.&amp;quot;&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이 말은 윗 글의 &amp;lt;詩&amp;gt;와 &amp;lt;書&amp;gt;의 뜻을 마무리한 것이다. 대개 盤銘은 '스스로를 새롭게 함'을 말한 것이고 &amp;lt;康誥&amp;gt;는 '백성을 새롭게 함'을 말한 것이며, 문왕의 시는 '스스로 새롭게 하고' '백성을 새롭게 함'의 지극함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지극하게 하지 않음이 없다'고 한 것이니, '極'이란 곧 至善을 말한다. '지극하게 한다'는 것은 여기(自新과 新民)에 머물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觀上文三引&amp;lt;詩&amp;gt;&amp;lt;書&amp;gt;而此以無所二字總而結之, 則於自新、新民皆欲用其極, 可知矣.&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앞 글에서 &amp;lt;詩&amp;gt;와 &amp;lt;書&amp;gt;를 세 번 인용하고 '無所' 두 글자로 총결한 것을 보면, '스스로 새롭게 하고' '백성을 새롭게 함'을 모두 지극하게 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amp;quot;&lt;br /&gt;
&lt;br /&gt;
===傳三章===&lt;br /&gt;
詩云：「邦畿千里，惟民所止。」&amp;lt;br/&amp;gt;&lt;br /&gt;
&amp;lt;시&amp;gt;에서는 &amp;quot;왕도 천 리, 백성들이 살 곳이로다&amp;quot;라고 하였다.&lt;br /&gt;
:詩商頌玄鳥之篇。邦畿，王者之都也。止，居也，言物各有所當止之處也。&lt;br /&gt;
:&amp;lt;시&amp;gt; &amp;lt;상송&amp;gt; &amp;lt;현조&amp;gt;편이다. '邦畿'은 천자의 도읍이다. '止'는 '居'이니, 만물이 마땅히 머물러야 할 곳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lt;br /&gt;
&lt;br /&gt;
詩云：「緡蠻黃鳥，止于丘隅。」子曰：「於止，知其所止，可以人而不如鳥乎！」&amp;lt;sub&amp;gt;緡，詩作綿。&amp;lt;/sub&amp;gt;&amp;lt;br/&amp;gt;&lt;br /&gt;
[또] &amp;lt;시&amp;gt;에서는 &amp;quot;緡蠻히 우는 황조, 숲속에 머무네&amp;quot;라고 했는데, 공자께서는 &amp;quot;살 곳에 대해 [저 황조는] 살 곳을 [제대로] 아니, 사람이 새만 못해서야 되겠는가!&amp;quot;라고 하셨다.&amp;lt;sub&amp;gt;'緡'을 &amp;lt;시&amp;gt;에서는 '綿'이라고 썼다.&amp;lt;/sub&amp;gt;&lt;br /&gt;
:詩小雅綿蠻之篇。緡蠻，鳥聲。丘隅，岑&amp;lt;sub&amp;gt;鋤林反&amp;lt;/sub&amp;gt;蔚&amp;lt;sub&amp;gt;紆弗反&amp;lt;/sub&amp;gt;之處。&amp;lt;sub&amp;gt;岑蔚二字本古註&amp;lt;/sub&amp;gt;子曰以下，孔子說詩之辭。言人當知所當止之處也。&lt;br /&gt;
:&amp;lt;시&amp;gt; &amp;lt;소아&amp;gt; &amp;lt;緡蠻&amp;gt;편이다. '緡蠻'은 새소리이다. '丘隅'는 깊고 울창한 숲이다.&amp;lt;sub&amp;gt;'岑蔚' 두 자는 옛 주석에 근거한 것이다.&amp;lt;/sub&amp;gt; '子曰' 이하는 공자께서 시를 해설하신 말이니, 사람이라면 마땅히 머물러야 할 곳을 알아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다.&lt;br /&gt;
&lt;br /&gt;
詩云：「穆穆文王，於緝熙敬止！」為人君，止於仁；為人臣，止於敬；為人子，止於孝；為人父，止於慈；與國人交，止於信。&amp;lt;sub&amp;gt;於緝之於，音烏。&amp;lt;/sub&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시&amp;gt;에서 &amp;quot;穆穆한 문왕이시여! 아! 끊임없이 밝히셔서 敬하며 [편히] 머무시는구나!&amp;quot;라고 하였으니, [문왕께서는] 임금이 되서는 '어짊'(仁)에 머무셨고, 신하가 되서는 '공경'(敬)에 머무셨으며, 자식이 되서는는 '효성스러움'(孝)에 머무셨고, 부모가 되서는 '자애로움'(慈)에 머무셨으며, 國人과 교제할 때는 '미더움'(信)에 머무셨다. &lt;br /&gt;
:詩文王之篇。穆穆，深遠之意。&amp;lt;sub&amp;gt;以徳容言&amp;lt;/sub&amp;gt;於，歎美辭。緝，繼續也。熙，光明也。&amp;lt;sub&amp;gt;緝, 不容已之誠也; 熙, 不容掩之明也.&amp;lt;/sub&amp;gt;敬止，言其無不敬而安所止也。&lt;br /&gt;
:&amp;lt;시&amp;gt; &amp;lt;문왕&amp;gt;편이다. '穆穆'은 [문왕의 덕이] 심원하다는 뜻이다.&amp;lt;sub&amp;gt;덕에 대해 말한 것이다.&amp;lt;/sub&amp;gt; '오'(於)는 탄미하는 말이다. '緝'은 계속함이다. '熙'는 빛남이다.&amp;lt;sub&amp;gt;'緝'은 멈출 수 없는 성실함을 [말하고], '熙'는 가릴 수 없는 밝음을 [말한다].&amp;lt;/sub&amp;gt; '敬止'는 敬하지 않음이 없어서 머무는 곳을 편히 여긴다는 것이다.&lt;br /&gt;
::朱子曰: &amp;quot;緝熙是工夫; 敬止是功效.&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緝熙'는 공부이고, '敬止'는 공효이다.&amp;quot;&lt;br /&gt;
:引此而言聖人之止，無非至善。五者乃其目之大者也。學者於此，究其精微之蘊&amp;lt;sub&amp;gt;委粉於問二反&amp;lt;/sub&amp;gt;，而又推類以盡其餘，則於天下之事，皆有以知其所止而無疑矣。&lt;br /&gt;
:이를 인용해 성인은 至善에 머물지 않음이 없음을 말하였다. 다섯 가지는 바로 그(至善에 머묾) 항목 가운데 큰 것이다. 배우는 자가 이에 대해 정미한 것을 궁구하고 또 유추해 나머지를 모두 아우른다면, 천하의 일에 대해 모두 그것이 머물 곳을 알아 의심함이 없을 것이다.&lt;br /&gt;
::朱子曰: &amp;quot;'為人君止於仁', 仁亦有㡬多般, 須隨處看. 這一事合當如此是仁; 那一事又合當如彼是仁. '為人臣止於敬', 敬亦有多少般, 不可止道擎跽曲拳&amp;lt;ref&amp;gt;&amp;lt;장자&amp;gt; &amp;lt;인간세&amp;gt; 擎、跽、曲拳，人臣之禮也，人皆為之，吾敢不為邪！&amp;lt;한어대사전&amp;gt; 陳鼓應 今注： “‘擎’， 執笏；‘跽’， 跪拜。 ‘曲拳’， 鞠躬。”&amp;lt;/ref&amp;gt;是敬. 如'陳善閉邪', 納君無過, 皆是敬. 若止執一, 便偏了, 安得謂之'至善'?&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為人君止於仁'의 '仁'에도 여러 [뜻이] 있으니, 상황에 따라 살펴야 한다. 이 일에서 마땅히 이렇게 해야하는 것도 仁이고, 저 일에서 마땅히 저렇게 해야하는 것도 仁이다. '為人臣止於敬'의 '敬'에도 여러 [뜻이] 있으니, '홀을 잡거나, 무릎 꿇고 절하거나, 몸을 굽히는 것'만이 敬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선한 것을 아뢰고 삿된 것을 막거나'&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이루상&amp;gt; 1. 故曰：責難於君謂之恭，陳善閉邪謂之敬，吾君不能謂之賊。&amp;lt;/ref&amp;gt; 임금을 허물 없는 경지에 들이는 것 모두 敬이다. 만일 그저 하나에만 집착하면 치우치게 되니, 어찌 '至善'이라 할 수 있겠는가?&amp;quot;&lt;br /&gt;
&lt;br /&gt;
詩云：「瞻彼淇澳，菉竹猗猗。有斐君子，如切如磋，如琢如磨。瑟兮僩兮，赫兮喧兮。有斐君子，終不可諠兮！」如切如磋者，道學也；如琢如磨者，自脩也；瑟兮僩兮者，恂慄也；赫兮喧兮者，威儀也；有斐君子，終不可諠兮者，道盛德至善，民之不能忘也。&amp;lt;sub&amp;gt;澳，於六反。菉，詩作綠。猗，協韻音阿。僩，下版反。喧，詩作咺，諠，詩作諼；並況晚反。恂，鄭氏讀作峻。&amp;lt;/sub&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시&amp;gt;에서 &amp;quot;저 기수(淇水) 모퉁이를 보라, 푸른 대가 무성하구나. 문채나는 군자여, 자른 듯 간 듯 쪼은 듯 간 듯하구나. 엄밀하고 굳세며 빛나고 성대하니, 문채나는 군자여, 끝내 잊을 수 없도다!&amp;quot;라고 하니, '如切如磋'라는 것은 학문을 말하고, '如琢如磨'는 스스로 수양함이며, '瑟兮僩兮'는 두려워 하는 듯한 [모습]이고, '赫兮喧兮'는 [겉으로 드러난] 위의이다. '有斐君子，終不可諠兮'는 [그의] 盛德과 至善을 백성들이 잊을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lt;br /&gt;
:詩衛風淇澳之篇。淇，水名。澳，隈&amp;lt;sub&amp;gt;烏回反&amp;lt;/sub&amp;gt;也。猗猗，美盛貌。興&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也。斐，文貌。切以刀鋸&amp;lt;sub&amp;gt;居御反&amp;lt;/sub&amp;gt;，琢以椎&amp;lt;sub&amp;gt;直追反&amp;lt;/sub&amp;gt;鑿，皆裁物使成形質&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 外形， 外表。&amp;lt;/ref&amp;gt;也。磋以鑢&amp;lt;sub&amp;gt;音慮&amp;lt;/sub&amp;gt;鐋&amp;lt;sub&amp;gt;他浪反&amp;lt;/sub&amp;gt;，磨以沙石，皆治物使其滑澤也。治骨角者，既切而復&amp;lt;sub&amp;gt;扶又反下同&amp;lt;/sub&amp;gt;磋之。治玉石者，既琢而復磨之。皆言其治之有緒，而益致其精也。&amp;lt;sub&amp;gt;切與琢是治之有端緒; 磋與磨是益致其精細.&amp;lt;/sub&amp;gt;瑟，嚴密之貌。僩，武毅之貌。&amp;lt;sub&amp;gt;嚴密, 不麤疏也; 武毅, 不怠弛也.&amp;lt;/sub&amp;gt;赫喧，宣著盛大之貌。諠，忘也。道，言也。學，謂講習討論之事，自脩者，省&amp;lt;sub&amp;gt;星上聲&amp;lt;/sub&amp;gt;察克治之功。恂慄，戰懼也。&amp;lt;sub&amp;gt;戰懼之意, 嚴於中.&amp;lt;/sub&amp;gt;威，可畏也。儀，可象也。引詩而釋之，以明&amp;lt;sub&amp;gt;此明字謂發明&amp;lt;/sub&amp;gt;明明德者之止於至善。道學、自脩，言其所以得之之由。恂慄、威儀，言其德容表裏之盛。&amp;lt;sub&amp;gt;恂慄, 在裏徳也; 威儀, 見於表容也&amp;lt;/sub&amp;gt;卒乃指其實&amp;lt;sub&amp;gt;謂盛徳至善&amp;lt;/sub&amp;gt;而歎美之也。&lt;br /&gt;
:&amp;lt;시&amp;gt; &amp;lt;위풍&amp;gt; &amp;lt;기욱&amp;gt; 편이다. '淇'는 강 이름이다. '澳'는 모퉁이이다. '猗猗'는 아름답고 성대한 모양이다. [이 시는] 興이다.&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 《詩》六義之一。 乃先言他物以引起所詠之詞的一種寫作手法。&amp;lt;/ref&amp;gt; '斐'는 문채나는 모습이다. '자르는 것'(切)은 칼·톱을 쓰고, '쪼는 것'(琢)은 망치·끌을 쓰니, 모두 사물을 잘라 모양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가는 것'(磋)은 줄·대패를 쓰고, '연마하는 것'(磨)은 모래·돌을 쓰니, 모두 사물을 다듬어 윤택하게 하는 것이다. 骨角을 다듬는 자는 자르고 나서(切)갈고(磋), 玉石을 다듬는 자는 쪼고 나서(琢) 연마하니(磨), 모두 '[사물을] 다듬을 때 시작점이 있고 [그러고나서] 그것의 정미함을 더욱 지극히 함'을 말한 것이다.&amp;lt;sub&amp;gt;'切'과'琢'은 '다듬을 때 시작점이 있는 것'이고, '磋'와 '磨'는 '그것의 정미함을 더욱 지극히 하는 것'이다.&amp;lt;/sub&amp;gt; '瑟'은 엄밀한 모양이고, '僩'은 굳센 모양이다.&amp;lt;sub&amp;gt;'엄밀함'은 거칠지 읺다는 것이고, '굳셈'은 태만하지 않다는 것이다.&amp;lt;/sub&amp;gt; '赫'·'喧'은 드러나고 성대한 모양이다. '諠'은 '잊는다'는 것이다. '道'는 '말하다'이고, '學'은 강습하고 토론하는 일을 말한다. '自脩'라는 것은 성찰하고 다스리는 공부이다. '恂慄'은 두려워 하는 것이다. &amp;lt;sub&amp;gt;'두려워한다'는 건 마음을 엄숙하게 한다는 것이다.&amp;lt;/sub&amp;gt; '위엄'(威)은 두려워할 만한 것이고, '의장'(儀)은 본받을 만한 것이다.  &amp;lt;시&amp;gt;를 인용하고 이를 풀이해 '[자신의] 명덕을 밝힌 자가 至善에 머묾'을 밝힌 것이다. '道學'과 '自脩'는 至善을 얻게 된 이유를 말한 것이고, '恂慄'과 '威儀'는 그의 德과 容·안과 밖의 성대함을 말한 것이다.&amp;lt;sub&amp;gt;'恂慄'은 내면의 덕에 있고, '威儀'은 겉모습으로 드러난다.&amp;lt;/sub&amp;gt; 마지막에 그의 실질&amp;lt;sub&amp;gt;'盛徳至善'을 말한다.&amp;lt;/sub&amp;gt;을 가리키며 탄미하였다.&lt;br /&gt;
::朱子曰: &amp;quot;切而不磋, 未到至善處; 琢而不磨, 亦未到至善處. '瑟兮僴兮', 則誠敬存於中矣. 未至於'赫兮喧兮', 威儀輝光著見於外, 亦未為至善. 至於'民之不能忘', 若非十分至善, 何以使民久而不能忘?&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자르기만 하고 갈지 않으면 至善한 경지에 이를 수 없고, 쪼기만 하고 연마하지 않아도 至善한 경지에 이를 수 없다. '瑟兮僴兮'는 誠敬이 내면에 보존된 것이지만, '赫兮喧兮'에 도달하지 못하면 위의와 빛이 밖으로 드러나더라도 至善이 될 수 없다. '백성이 잊지 못했다'의 경우, 십분 至善하지 않으면, 어떻게 백성들로 하여금 오래토록 잊지 못하게 할 수 있겠는가?&amp;quot;&lt;br /&gt;
&lt;br /&gt;
詩云：「於戲前王不忘！」君子賢其賢而親其親，小人樂其樂而利其利，此以沒世不忘也。&amp;lt;sub&amp;gt;於戲，音嗚呼。樂，音洛。&amp;lt;/sub&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시&amp;gt;에서 &amp;quot;아! 예전 임금을 잊을 수 없구나!&amp;quot;라고 하니, 군자는 예전 임금의 어진 점을 어질다고 [높게] 평가하고 예전 임금이 가까이 했던 것을 가까이 하며, 소인은 예전 임금이 즐겁게 해줬던 것을 즐겁게 여기고 예전 임금이 이롭게 해줬던 것을 이롭게 여긴다. 이 때문에 [예전 임금께서] 돌아가셨는데도 잊지 못하는 것이다. &lt;br /&gt;
:詩周頌烈文之篇。於戲，歎辭。前王，謂文、武也。君子，謂其後賢後王。小人，謂後民也。此言前王所以新民者，止於至善，能使天下後世無一物不得其所，所以既沒世而人思慕之，愈久而不忘也。此兩節詠歎&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 贊嘆歌頌&amp;lt;/ref&amp;gt;淫泆&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3. 謂聲音綿延不絕。&amp;lt;/ref&amp;gt;，其味深長，當熟玩之。&lt;br /&gt;
:&amp;lt;시&amp;gt; &amp;lt;주송&amp;gt; &amp;lt;열문&amp;gt;편이다. '於戲'는 찬탄하는 말이다. '前王'은 문왕·무왕이다. '君子'는 후대의 현인·임금을 말하고, '小人'은 후대의 백성이다. 이 구절은 '예전 임금이 백성을 새롭게 한 것이 至善에 머물러 천하의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자도 제 자리를 얻지 못함이 없게 할 수 있었으므로, 이미 돌아가셨는데도 사람들이 사모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잊지 못했음'을 말한다. 이 두 구절은 찬탄의 [여운이] 넘쳐 의미가 깊고 오래가니, 충분히 완미해보아야 한다.&lt;br /&gt;
::朱子曰: &amp;quot;沒世而人不能忘, 如堯舜文武之徳萬世尊仰之, 豈不是'賢其賢'? 如周后稷之徳, 子孫宗之, 以為先祖之所自出, 豈不是'親其親'?&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 16. 問「前王不忘」云云。曰：「前王遠矣，盛德至善，後人不能忘之。『君子賢其賢』，如堯舜文武之德，後世尊仰之，豈非賢其所賢乎！『親其親』，如周后稷之德，子孫宗之，以為先祖先父之所自出，豈非親其所親乎！&amp;lt;/ref&amp;g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돌아가셨는데도 사람들이 잊지 못한다'는 것은, 예를 들어, 요·순·문·무의 덕을 만세토록 추앙하는 것과 같으니, 어찌 '그의 어짊을 어질게 여기는 것'(賢其賢)이 아니겠는가? 예를 들어, 주나라 [시조인] 후직의 덕을 자손들이 종지로 삼아 '선조가 말미암아 나온 바'로 여기니, 어찌 '그가 가까이 했던 것을 가까이 함'이 아니겠는가?&amp;quot;&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右傳之三章。釋止於至善。&lt;br /&gt;
::이상은 전3장이다. '止於至善'을 해석했다.&lt;br /&gt;
:::此章內自引淇澳詩以下，舊本誤在誠意章下。&lt;br /&gt;
:::이 장 안에서 &amp;lt;淇澳&amp;gt; 시를 인용한 것 아래로, 옛 판본에서는 성의장 아래에 잘못 위치해 있다.&lt;br /&gt;
&lt;br /&gt;
====『혹문』 전3장====&lt;br /&gt;
或問: &amp;quot;此引&amp;lt;玄鳥&amp;gt;之詩, 何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혹자가 물었다: &amp;quot;여기에서 &amp;lt;현조&amp;gt; 시를 인용한 것은 어째서인가?&amp;quot; &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此以民之止於邦畿而明物之各有所止也.&amp;quot; &amp;lt;br/&amp;gt;&lt;br /&gt;
답했다: &amp;quot;이는 백성들이 수도(邦畿)에 머물렀음을 통해 사물에는 각각 머물 곳이 있음을 밝힌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曰: &amp;quot;引&amp;lt;緜蠻&amp;gt;之詩而系以孔子之言, 孔子何以有是言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amp;lt;緜蠻&amp;gt; 시를 인용하고 공자의 말을 덧붙였는데, 공자께서는 어째서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신 것인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此夫子說詩之辭也. 蓋曰: '鳥於其欲止之時, 猶知其當止之處, 豈可人爲萬物之靈, 而反不如鳥之能知所止而止之乎?' 其所以發明人當知止之義, 亦深切矣.&amp;quot; &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이는 공자께서 시를 해설하신 말이다. 아마도 ‘새조차 머무르고자 할 때에 마땅히 머물러야 할 곳을 아는데, 어찌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 되어서 도리어 새가 머물러야 할 곳을 알아 머무르는 것만 못해서야 되겠는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머물 곳을 알아야 한다'는 의미를 밝히신 것이 또한 매우 간절하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曰: &amp;quot;引&amp;lt;文王&amp;gt;之詩而繼以君臣父子與國人交之所止, 何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amp;lt;문왕&amp;gt; 시를 인용하고 군신·부자·백성들과의 교제에서 머물러야 할 곳을 덧붙인 것은 어째서인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此因聖人之止, 以明至善之所在也. 蓋天生烝民, 有物有則. 是以萬物庶事莫不各有當止之所. 但所居之位不同, 則所止之善不一. 故爲人君, 則其所當止者在於仁; 爲人臣, 則其所當止者在於敬; 爲人子, 則其所當止者在於孝; 爲人父, 則其所當止者在於慈; 與國人交, 則其所當止者在於信, 是皆天理人倫之極致, 發於人心之不容巳者. 而文王之所以爲法於天下, 可傳於後世者, 亦不能加毫末於是焉. 但衆人類&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1. 眾多。; 12. 率，皆；大抵。&amp;lt;/ref&amp;gt;爲氣稟物欲之所昏. 故不能常敬而失其所止. 唯聖人之心表裏洞然, 無有一毫之蔽. 故連續光明, 自無不敬, 而所止者莫非至善, 不待知所止而後得所止也. &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이는 성인이 머문 것에 기인해 지극한 선(至善)이 있는 곳을 밝힌 것이다. 대개 하늘이 백성들을 내림에 사물이 있으면 법칙이 있다.&amp;lt;ref&amp;gt;&amp;lt;시경&amp;gt; &amp;lt;대아&amp;gt; &amp;lt;증민&amp;gt; 天生烝民、有物有則。&amp;lt;/ref&amp;gt; 그러므로 모든 사물에 각각 머물러야 할 곳이 없는 경우는 없다. 다만 머무는 지위가 같지 않기 때문에, 머무는 선이 같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군주가 되면 그가 머물러야 하는 바는 仁에 있고, 신하가 되면 그가 머물러야 하는 바가 敬에 있으며, 자식이 되면 그가 머물러야 하는 바가 孝에 있고, 부모가 되면 그가 마땅히 머물러야 하는 바가 자애(慈)에 있으며, 나라의 백성들과 교제하게 되면 그가 마땅히 머물러야 하는 바가 신뢰(信)에 있다. 이는 모두 천리·인륜의 극치이고 인간의 마음 상 차마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문왕께서 천하의 본보기가 되셔서 후세에 전해질 만했던 점 역시 여기에 터럭만한 것도 더할 수 없다. 다만 사람들은 대체로 기품과 물욕에 의해서 어두워졌기 때문에, 항상 敬할 수 없고 머물 곳을 잃어버렸다. 오직 성인의 마음만 안팎이 훤히 비쳐  한 터럭의 가림도 없기 때문에, [명덕의] 빛을 계속 이어서 스스로 敬하지 않음이 없고, 머무는 바 가운데 지극한 선이 아님이 없어서, 머물 곳을 안 이후에 머물 곳을 얻을 필요가 없었다. &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學者必先知所止, 而後方得所止; 聖人安於所止, 則不待先知而後得也.&amp;quo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배우는 자는 반드시 먼저 머물 곳을 안 이후에야 비로소 머물 곳을 얻을 수 있다. 성인은 머무는 곳을 편히 여기니, 먼저 안 이후에 얻을 필요가 없다.&amp;quot;&lt;br /&gt;
&lt;br /&gt;
故&amp;lt;傳&amp;gt;引此詩而歷陳所止之實, 使天下後世得以取法焉. 學者於此誠有以見其發於本心之不容已者而緝熈之, 使其連續光明, 無少間斷, 則其敬止之功, 是亦文王而已矣. &amp;lt;詩&amp;gt;所謂'上天之載, 無聲無臭, 儀刑文王, 萬邦作孚', 正此意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그러므로 傳에서 이 시를 인용하여 머물 곳에 대한 내용을 하나하나 드러내, 천하의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본보기로 삼을 수 있게 하였다. 배우는 자들이 여기에서 진실로 그칠 수 없는 본심에서 드러난 것을 보고 계속 밝히고, 그 끊임없이 계속 빛나는 것으로 하여금 잠시라도 끊어짐이 없게 할 수 있다면, 그 敬止의 공효가 또한 문왕과 [다름 없을 것이다]. &amp;lt;시&amp;gt;의 이른바 ‘하늘의 일에는 소리도 냄새도 없지만, 문왕을 본받으면 온 나라 사람들이 진작해 믿을 것이다’&amp;lt;ref&amp;gt;&amp;lt;시경&amp;gt; &amp;lt;대아&amp;gt; &amp;lt;문왕&amp;gt; 上天之載、無聲無臭。儀刑文王、萬邦作孚。&amp;lt;/ref&amp;gt;라는 것이 바로 이러한 뜻이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曰: &amp;quot;子之說&amp;lt;詩&amp;gt;, 既以敬止之止爲語助之辭, 而於此書又以爲所止之義, 何也?&amp;quot;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그대가 &amp;lt;詩&amp;gt;를 설명하면서 ‘敬止’의 ‘止’를 어조사로 여겼는데,&amp;lt;ref&amp;gt;&amp;lt;시집전&amp;gt; &amp;lt;대아&amp;gt; &amp;lt;문왕&amp;gt; 止, 語辭.&amp;lt;/ref&amp;gt; 이 글에서 도리어 '所止'라는 뜻으로 새긴 것은 어째서인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古人引&amp;lt;詩&amp;gt;斷&amp;lt;sub&amp;gt;音短&amp;lt;/sub&amp;gt;章, 或姑借其辭以明已意, 未必皆取本文之義也. &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옛 사람들은 &amp;lt;시&amp;gt;를 인용하면서 [일부] 장을 잘랐는데, 간혹 잠시 이 부분의 글을 빌려서 자신의 뜻을 밝혔으므로, 반드시 모두 본문의 뜻을 취한 것은 아니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曰: &amp;quot;五者之目, 詞約而義該矣. 子之說乃復&amp;lt;sub&amp;gt;扶又反&amp;lt;/sub&amp;gt;有所謂'究其精微之藴而推類以通之'者, 何其言之衍而不切耶?&amp;quot;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다섯 가지 항목은 말은 간략한데 의미는 충분하다. 그대의 설에 도리어 다시 이른바 ‘정미한 것을 궁구하고 유추해 통하게 한다’&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學者於此，究其精微之蘊，而又推類以盡其餘，則於天下之事，皆有以知其所止而無疑矣。&amp;lt;/ref&amp;gt;고 말한 것은, 어째서 그 말이 장황하고 절실하지 않은가?&amp;quot; &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舉其徳之要而總名之, 則一言足矣&amp;lt;sub&amp;gt;一言謂一字, 如仁字、敬字之類.&amp;lt;/sub&amp;gt;; 論其所以爲是一言者, 則其始終本末, 豈一言之所能盡哉? 得其名而不得其所以名, 則仁或流於姑息&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 無原則的寬容。&amp;lt;/ref&amp;gt;, 敬或墮於阿諛, 孝或陷父, 而慈或敗子, 且其爲信亦未必不爲尾生、白公之爲也.&amp;quot; &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덕의 요체를 들어서 총체적으로 말한다면 한 글자로 충분하겠지만, 이 한 글자가 되는 까닭을 논한다면 그 과정(始終本末)을 어찌 한 글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름만 얻고 이름이 되는 까닭을 얻지 못한다면, 仁은 혹 '원칙 없는 관용'이 될 것이고, 敬은 혹 아첨에 떨어질 것이며, 孝는 혹 부모를 [곤경에] 빠뜨릴 것이고, 자애로움은 혹 자식을 망칠 것이며, 또 미더움 역시 반드시 尾生이나 白公이 행한 것이 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lt;br /&gt;
:&amp;lt;莊子&amp;gt;尾生與女子期於梁下, 女子不來, 水至不去, 抱梁柱而死. 梁, 橋也.&lt;br /&gt;
:&amp;lt;장자&amp;gt;에  따르면, 미생이 여인과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여인이 오지 않았다. 미생은 물이 차올라도 떠나지 않고 다리 기둥을 껴안고 있다가 죽었다.&amp;lt;ref&amp;gt;&amp;lt;장자&amp;gt; 잡편 &amp;lt;도척&amp;gt; 尾生與女子期於梁下，女子不來，水至不去，抱梁柱而死。&amp;lt;/ref&amp;gt; '梁'은 다리이다.&lt;br /&gt;
:○&amp;lt;左傳&amp;gt;哀公十六年, 鄭人殺子木&amp;lt;sub&amp;gt;楚平王太子建也, 因遇讒出奔而至鄭.&amp;lt;/sub&amp;gt;, 其子曰勝在吳. 子西欲召之&amp;lt;sub&amp;gt;楚令尹子西&amp;lt;/sub&amp;gt;, 曰: &amp;quot;吾聞勝也, 信而勇, 不爲不利.&amp;quot; 葉公曰:&amp;lt;sub&amp;gt;葉音攝&amp;lt;/sub&amp;gt; :&amp;quot;周仁之謂信, 率義之謂勇. 吾聞勝也好復言&amp;lt;sub&amp;gt;言之所許, 必欲復行, 不顧道理.&amp;lt;/sub&amp;gt;而求死士, 殆有私乎! 復言, 非信也; 期死, 非勇也, 子必悔之.&amp;quot; 弗從, 使處吳竟&amp;lt;sub&amp;gt;音境&amp;lt;/sub&amp;gt;爲白公&amp;lt;sub&amp;gt;白, 楚邑也. 邑宰僣稱公&amp;lt;/sub&amp;gt;. 請伐鄭, 子西許之. 未起師, 晉人伐鄭, 楚救之, 勝怒曰: &amp;quot;鄭人在此, 讎不逺矣!&amp;quot; 勝自厲劒, 子期之子平見之曰: &amp;quot;王孫何自厲也?&amp;quot; 曰: &amp;quot;勝以直聞, 不告女&amp;lt;sub&amp;gt;音汝&amp;lt;/sub&amp;gt;, 庸為直乎? 將以殺爾父.&amp;quot; 平以告子西, 子西不悛. 吳人伐愼, 白公敗之. 請以戰備獻, 許之, 遂作亂, 殺子西子期于朝.&lt;br /&gt;
:&amp;lt;좌전&amp;gt; 애공 16년에, 정나라 사람이 子木&amp;lt;sub&amp;gt;초 평왕의 태자 建이니, 참소를 당해 달아났다가 정나라에 왔다.&amp;lt;/sub&amp;gt;을 죽였는데, 그의 아들 勝이 오나라에 있었다. 子西&amp;lt;sub&amp;gt;초나라 영윤 자서이다.&amp;lt;/sub&amp;gt;가 그를 부르고자 했다: &amp;quot;내가 듣기에 승은 신의와 용기가 있다고 하니, 불리한 일은 되지 않을 것이다.&amp;quot; 섭공이 말했다: &amp;quot;인에 부합하는 것을 신의라 하고, 의로운 행동을 실천하는 것을 용기라고 합니다. 제가 듣기에, 승은 뱉은 말을 애써 이행하려 하고&amp;lt;sub&amp;gt;말로 허락한 것을 반드시 이행하고자 하여 도리를 살피지 않는다.&amp;lt;/sub&amp;gt; 죽음을 무릅쓰는 용사가 되고자 하니, 아마도 개인적인 원한 때문일 것입니다! 뱉은 말을 애써 이행하려고 하는 것은 신의가 아니며, 죽기를 바라는 것은 용기가 아니니, 그대는 필시 후회할 것입니다.&amp;quot; 자서는 이를 따르지 않고 승으로 하여금 오나라와의 국경에 있게 하고 白公으로 삼았다.&amp;lt;sub&amp;gt;白은 초나라 고을이다. 읍재를 公으로 참칭했다.&amp;lt;/sub&amp;gt; 승이 정나라를 치자고 자서에게 청했는데, 자서가 허락했다. 아직 군대를 일으키기도 전에 진나라가 정나라를 공격했는데, 초나라가 정나라를 구원하니 승이 분노했다: &amp;quot;정나라 놈이 여기에 있었구나! 원수가 멀리 있지 않았구나!&amp;quot; 승이 스스로 칼을 갈고 있는데, 子期의 아들 平이 이를 보고 물었다: &amp;quot;왕손께서는 어째서 직접 칼을 갈고 계십니까?&amp;quot; 승이 대답했다: &amp;quot;나는 대쪽같기로 유명하니, 너에게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면 어찌 대쪽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장자 이 칼로 네 아비(자서와 자기는 친형제이므로 함께 죽이려고 한 것이다.)를 죽이려고 한다.&amp;quot; 평이 이를 자서에게 고했는데, 자서는 깨닫지 못했다. 오나라가 초나라의 愼 땅을 공격했는데, 백공이 패퇴시켰다. 이에 백공이 전리품을 바치기를 청하니, 자서가 허락했는데, 백공이 마침내 난을 일으켜 조정에서 자서와 자기를 살해했다.&lt;br /&gt;
&lt;br /&gt;
又况&amp;lt;傳&amp;gt;之所陳, 姑以見&amp;lt;sub&amp;gt;形甸反&amp;lt;/sub&amp;gt;物各有止之凡例, 其於大倫之目, 猶且闕其二焉. 苟不推類以通之, 則亦何以盡天下之理哉?&amp;quot;&amp;lt;br/&amp;gt;&lt;br /&gt;
또 하물며 傳에서 말한 것은 다만 사물이 각각 그쳐야 할 일반적 예시를 보여주고 있고, 인륜의 항목에 대해서는 오히려 두 가지(부부와 장유)를 빠뜨렸다. 만약 '유추하여 통하게 하지 않는다'면, 또 어떻게 천하의 이치를 다할 수 있겠는가?&amp;quot;&lt;br /&gt;
:節齊蔡氏曰: &amp;quot;所謂'得其名而不得其所以名', 若細推之, 如為人君止於仁, 固同一仁也, 然仁亦何止一端? 生之育之, 固仁也; 刑之威之, 亦仁也. 若執著其仁之一端, 不能隨處止其仁之所止, 安得謂止於仁之至善? 為人臣止於敬, 固同一敬也, 然敬亦何止一端? 鞠躬盡瘁, 固敬也; 陳善閉邪, 亦敬也. 若執著其敬之一端, 不能隨處止其敬之所止, 安得謂止於敬之至善? 為人子止於孝, 固同一孝也, 然孝亦何止一端? 先意承志, 固孝也; 幾諫不違亦孝也. 若執著其孝之一端, 不能隨處止其孝之所止, 安得謂止於孝之至善? 以至為人父止於慈, 與國人交止於信, 皆當如此. 而又推類以及其餘, 則凡天下之事, 無大無小, 雖千條萬緒, 皆有以知其所當止, 而無不止於至善矣.&amp;quot;&lt;br /&gt;
:절재 채씨가 말했다: &amp;quot;이른바 '이름만 얻고 이름이 되는 까닭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자세히 생각해보자면, 예를 들어 임금된 자가 仁에 머무는 것은 진실로 동일한 仁이지만, 仁이 또 어찌 한 경우에 그치겠는가? 낳아주고 길러주는 것도 진실로 仁이고, 형벌을 내리고 두렵게 하는 것도 仁이다. 만일 仁의 한 경우에 집착해 상황에 따라 仁의 자리에 머물지 못한다면, 어찌 '仁의 지극히 선함'에 머문다고 할 수 있겠는가? 신하된 자가 敬에 머무는 것은 진실로 동일한 敬이지만, 敬이 또 어찌 한 경우에 그치겠는가? '공경해 마음을 다하는 것'(鞠躬盡瘁)도 진실로 敬이고 '선을 아뢰고 삿됨을 막는 것'(陳善閉邪)도 敬이다. 만일 敬의 한 경우에 집착해 상황에 따라 敬의 자리에 머물지 못한다면, 어찌 '敬의 지극히 선함'에 머문다고 할 수 있겠는가? 자식된 자가 孝에 머무는 것은 진실로 동일한 孝지만, 孝가 또 어찌 한 경우에 그치겠는가? '먼저 뜻을 받드는 것'(先意承志)&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本謂孝子先父母之意而承順其志， 後泛指揣摩人意， 諂媚逢迎。  ▶ 《禮記‧祭義》： “君子之所為孝者， 先意承志， 諭父母於道。” &amp;lt;/ref&amp;gt;도 孝이고 '은미하게 간언하고 어기지 않는 것'(幾諫不違)&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리인&amp;gt; 18. 子曰：「事父母幾諫。見志不從，又敬不違，勞而不怨。」&amp;lt;/ref&amp;gt;도 孝이다. 만일 孝의 한 경우에 집착해 상황해 따라 孝의 자리에 머물지 못한다면, 어찌 '孝의 지극히 선함'에 머문다고 할 수 있겠는가? 부모가 되어 慈에 머물고, 國人과 교제함에 信에 머무는 경우도 모두 이와 같아야 한다. 다시 유추하여 나머지에 미친다면, 모든 천하의 일이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비록 다양하더라도 모두 머물러야 할 바를 알 수 있으니, '지어지선'하지 못함이 없을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曰: &amp;quot;復&amp;lt;sub&amp;gt;扶又反&amp;lt;/sub&amp;gt;引&amp;lt;淇澳&amp;gt;之詩, 何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다시 &amp;lt;淇奧&amp;gt; 시를 인용한 것은 어째서인가?&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上言止於至善之理, 備矣. 然其所以求之之方, 與其得之之驗, 則未之及. 故又引此詩以發明之也. 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如切如磋', 言其所以講於學者已精而益求其精也; '如琢如磨', 言其所以脩於身者已宻而益求其宻也. 此其所以擇善固執&amp;lt;sub&amp;gt;擇善即講學之事; 固執即脩身之事.&amp;lt;/sub&amp;gt;, 日就月將, 而得止於至善之由也.&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앞서 '지어지선'의 이치를 말한 것이 충분하다. 그러나 이것('지어지선')을 구하는 방도와 이것을 얻은 효험에 대해서는 아직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다시 이 시를 인용하여 밝히셨다. ‘如切如磋’는 그가 학문을 강구한 것이 이미 정밀하더라도 그 정밀함을 더욱 구해야 함을 말한 것이고, ‘如琢如磨’는 그가 몸을 수양한 것이 이미 엄밀하더라도 그 엄밀함을 더욱 구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을 택해 굳게 붙잡아'&amp;lt;ref&amp;gt;&amp;lt;중용장구&amp;gt; 20장. 誠者，天之道也；誠之者，人之道也。誠者不勉而中，不思而得，從容中道，聖人也。誠之者，擇善而固執之者也。&amp;lt;/ref&amp;gt;&amp;lt;sub&amp;gt;'擇善'은 강학의 일이고, ' 固執'은 수신의 일이다.&amp;lt;/sub&amp;gt; 일취월장해서 '지극한 선에 머무를 수 있는' 방법이다. &lt;br /&gt;
:朱子曰: &amp;quot;'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脩也', 既學而猶慮其未至, 則復講習討論以求之, 猶治骨角者既切而復磋之. 切是切得一箇璞在這裏, 似亦可矣. 又磋之使至於滑澤, 這是治骨角者之至善也. 既脩而又慮其未至, 則又省察克治以終之, 猶治玉石者既琢而復磨之. 琢是琢得一箇璞在這裏, 似亦得矣. 又磨之使至於精細, 這是治玉石者之至善也. 取此以喻君子之止於至善. 既格物以求知所止矣, 又日用力以求得其所止焉.&amp;quot; &amp;lt;br/&amp;g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如切如磋라는 것은 학문을 말하고, 如琢如磨라는 것은 스스로 수양함이다.' 학문하고도 오히려 학문이 지극하지 못함을 걱정해, 다시 강습·토론해 지극함을 구하는 것은 뼈·뿔을 다듬는 자가 자르고도 다시 가는 것과 같다. '자르는 것'(切)은 여기의 옥돌을 자르는 것이니 그 정도면 괜찮을 것 같지만, 다시 갈아서 윤택이 나게 하는 것, 이것이 뼈·뿔을 다듬는 자의 지극히 선함이다. 수양하고도 다시 수양이 지극하지 못함을 염려해, 다시 성찰하고 [자신을] 다스려 [수양을] 끝마치는 것은 옥석을 다듬는 자가 쪼고 나서 다시 가는 것과 같다. '쪼는 것'(琢)은 여기의 옥돌을 쪼는 것이니 그 정도면 괜찮을 것 같지만, 다시 갈아서 정밀하게 하는 것, 이것이 옥석을 다듬는 자의 지극히 선함이다. 이를 가지고 군자의 '지어지선'에 비유하였다. 격물해서 머물 곳을 알고자 하고서, 다시 날마다 힘써 그 머물 곳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amp;quot; &lt;br /&gt;
:○陳氏曰: &amp;quot;切是窮究事物之理, 逐件分析, 有倫有序; 磋是講究到純熟處, 道理瑩徹, 所以如切而又磋. 琢是克去物欲之私, 使無瑕纇. 磨是磨礲至那十分純粹處, 所以如琢而又磨.&amp;quot;&lt;br /&gt;
:진씨가 말했다: &amp;quot;'切'은 사물의 理를 궁구하는 것이니, 대상 마다 분석해 조리가 있게 된다. '磋'는 강구함이 무르익는 것이니, 도리에 훤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르고도 다시 가는 듯'하는 것이다. '琢'은 이기적인 물욕을 제거해 옥의 티를 없게 하는 것이고, '磨'는 갈아서 십분 정수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쪼고도 다시 가는 듯'이 하는 것이다.&amp;quot;&lt;br /&gt;
:○學是知止於至善所在; 自脩是止於至善所在.&lt;br /&gt;
:'배움'(學)이란 至善의 소재에 머무는 것에 대해 아는 것이고, '수양'(自脩)이란 至善의 소재에 머무는 것이다.&lt;br /&gt;
:○西山眞氏曰: &amp;quot;'如切如磋, 道學也', 主知而言; '如琢如磨, 自脩也', 主行而言, 言致知力行當並進也. 知到十分精處, 而行處有一分未宻, 亦未得為至善. 須是知極其至, 行亦極其至, 方謂之至善.&amp;quot;&lt;br /&gt;
:서산 진씨가 말했다: &amp;quot;'如切如蹉라는 것은 학문을 말한다'는 것은 앎(知)에 대해 말한 것이고, '如琢如磨라는 것은 스스로 수양함이다'는 실천(行)에 대해 말한 것이니, 致知와 力行을 병행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앎(知)이 100% 정밀한 경지에 도달했더라도 실천(行)에 10% 엄밀하지 못한 점이 있으면 至善이라고 할 수 없다. 모름지기 앎(知)이 지극한 경지에 이르고 실천(行)도 지극한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그것을 至善이라고 할 수 있다.&amp;quot;&lt;br /&gt;
&lt;br /&gt;
恂慄者, 嚴敬之存乎中也; 威儀者, 輝光之著乎外也. 此其所以睟&amp;lt;sub&amp;gt;雖萃反&amp;lt;/sub&amp;gt;面盎背, 施於四體而爲止於至善之驗也. '盛徳至善, 民不能忘', 蓋人心之所同然, 聖人既先得之而其充盛宣著又如此. 是以民皆仰之而不能忘也. '盛徳', 以身之所得而言也; '至善', 以理之所極而言也. '切磋琢磨', 求其止於是而已矣.&amp;quot;&amp;lt;br/&amp;gt;&lt;br /&gt;
준율(恂慄)이란 마음 안에 보존되어 있는 엄경함(嚴敬)이고, 위의(威儀)란 밖으로 드러나는 광채(輝光)이니, 이것이 바로 '얼굴에 윤택이 나고 몸에 넘쳐나 사체(四體)에 드러나는 것'&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진심상&amp;gt; 21. 君子所性，仁義禮智根於心。其生色也，睟然見於面，盎於背，施於四體，四體不言而喻。&amp;lt;/ref&amp;gt;을 가지고 '지극한 선에 머무른다'는 증거로 삼은 것이다. '덕을 성대하게 하고 선을 지극하게 하여 백성들이 잊을 수 없는 것'은, 대개 [명덕은] 사람들의 동일한 마음이나, 성인은 이것(徳·善)을 먼저 얻은 데다가 충만하게 해 밝게 드러나게 한 것이 또한 이와 같았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이를 우러러 잊지 못했던 것이다. '盛德'은 자신이 얻은 바를 가지고 말한 것이고, '至善'은 이치에 이른 정도를 가지고 말한 것이다. '切磋琢磨'는 이러한 경지(盛徳至善)에 머물기를 바라는 것일 뿐이다.&amp;lt;br/&amp;gt;&lt;br /&gt;
:問: &amp;quot;'切磋琢磨'是學者事, 而'盛徳至善'乃指聖人言之, 何也?&amp;quot; 朱子曰: &amp;quot;後面說得來大, 非聖人不能. 此是連上文'文王於緝熈敬止'說. 然聖人也不是挿手&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 叉手。 表示無所事事。 &amp;lt;/ref&amp;gt;掉臂&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 自在行游貌。 &amp;lt;/ref&amp;gt;, 做到那處, 也須學始得. 如孔子所謂'徳之不脩,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 此有甚緊要? 聖人却憂者, 何故? 惟其憂之, 所以為聖人. 所謂生而知之者, 便只是知得此而已. 故曰: '惟聖罔念作狂, 惟狂克念作聖.'&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切磋琢磨'는 배우는 자들의 일인데, '盛徳至善'은 도리어 성인을 가리켜 말한 것이니, 어째서입니까?&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뒤에서 말한 것이 성대하니, 성인이 아니면 해낼 수 없다. 이것은 앞의 '아! 끊임없이 밝히셔서 敬하며 [편히] 머무시는구나!'를 말한 것이다. 그러나 성인이라고 해도 팔짱 끼고 유유자적 하며 저 경지를 이루신 것이 아니니, 성인도 배워야 [저 경지를] 이룰 수 있다. 공자께서 '덕을 닦지 않고, 학문을 강습하지 않으며, 옳은 것을 듣고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고, 불선한 것을 고치지 못하는 것이 내 걱정이다'&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술이&amp;gt; 3. 子曰：「德之不脩，學之不講，聞義不能徙，不善不能改，是吾憂也。」&amp;lt;/ref&amp;gt;라고 말씀하신 것의 경우, 여기에 어떤 핵심이 있는가? 성인인데도 걱정한 것은 어째서인가? 걱정하기 때문에 성인이 되는 것이다! 이른바 '나면서부터 안다'(生而知之)는 건 단지 이것을 알 뿐이다. 그러므로 '성인도 생각하지 않으면 광인이 되고, 광인도 능히 생각하면 성인이 된다'&amp;lt;ref&amp;gt;&amp;lt;상서&amp;gt; &amp;lt;주서&amp;gt; &amp;lt;다방&amp;gt; 惟聖罔念作狂，惟狂克念作聖。&amp;lt;/ref&amp;gt;고 하는 것이다.&amp;quot;&lt;br /&gt;
:○'盛徳至善', 言聖人事蓋渾然一理, 不可得而分者. 但以人言則曰徳; 以理言則曰善, 又不爲無辨矣.&lt;br /&gt;
:'盛徳至善'은 성인의 일이 대개 혼연히 一理여서 분별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다만 사람을 가지고 말하면 '徳'이라 하고, 理를 가지고 말하면 '善'이라 하니, 다시 구분이 없을 수 없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曰: &amp;quot;'切磋琢磨', 何以爲學問、自脩之别&amp;lt;sub&amp;gt;後列反&amp;lt;/sub&amp;gt;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切磋琢磨'가 어떻게 학문과 수양(自脩)으로 구별되는가?&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骨角脉理可尋, 而切磋之功易&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 所謂'始條理'之事也; 玉石渾&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全堅確&amp;lt;sub&amp;gt;克角反&amp;lt;/sub&amp;gt;, 而琢磨之功難, 所謂'終條理'之事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뼈나 뿔은 결을 찾기 쉬우므로 자르고 가는 작업이 쉬우니, 이른바 '始條理'&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만장하&amp;gt; 1. 孔子之謂集大成。集大成也者，金聲而玉振之也。金聲也者，始條理也；玉振之也者，終條理也。始條理者，智之事也；終條理者，聖之事也。&amp;lt;/ref&amp;gt;의 일이다. 옥이나 돌은 결이 없고(渾全) 단단해 쪼고 다듬는 작업이 어려우니, 이른바 '終條理'의 일이다.&amp;quot;&lt;br /&gt;
:問: &amp;quot;'切磋是始條理, 琢磨是終條理', '終條理'較宻否?&amp;quot; 朱子曰: &amp;quot;始終條理都要宻. 講貫&amp;lt;ref&amp;gt;猶講習。 ▶ 《國語‧魯語下》： “晝而講貫， 夕而習復。” ▶ 韋昭 注： “貫， 習也。” &amp;lt;/ref&amp;gt;而益講貫, 脩飭而益脩飭.&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切磋는 始條理이고, 琢磨는 終條理이다'에서 '終條理'가 ['始條理'보다] 상대적으로 엄밀하겠죠?&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始條理와 終條理 모두 엄밀해야 한다. 강습하고 더욱 강습하고, 다듬고 더욱 다듬는 것이다.&amp;quot;&lt;br /&gt;
:○問: &amp;quot;琢磨後更有'瑟僴赫喧', 何故為'終條理'之事?&amp;quot; 曰: &amp;quot;那不是做工夫處, 是成就後氣象自如此.&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琢磨' 뒤에 '瑟僴赫喧'가 더 있는데, 어째서 ['琢磨'가] '終條理'의 일이라고 하신 겁니까?&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그건('瑟僴赫喧')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가] 성취된 이후의 기상이 절로 이와 같다는 것이다.&amp;quot;&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此與&amp;lt;論語&amp;gt;引&amp;lt;詩&amp;gt;之意異. 此以比講學之先後難易, 又證之以&amp;lt;孟子&amp;gt;之始終條理, 以見二者之當兼盡而不可偏廢也.&amp;quo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이것(『대학』에서 &amp;lt;기욱&amp;gt;을 인용한 것)은 &amp;lt;논어&amp;gt;에서 &amp;lt;시&amp;gt;를 인용한 뜻과 다르다.&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학이&amp;gt; 15. 子貢曰：「貧而無諂，富而無驕，何如？」子曰：「可也。未若貧而樂，富而好禮者也。」 子貢曰：「詩云：『如切如磋，如琢如磨。』其斯之謂與？」 子曰：「賜也，始可與言詩已矣！告諸往而知來者。」 【朱注】 子貢自以無諂無驕為至矣，聞夫子之言，又知義理之無窮，雖有得焉，而未可遽自足也，故引是詩以明之。&amp;lt;/ref&amp;gt; 여기서는 [&amp;lt;기욱&amp;gt;을] 강학의 순서·난이도에 견주고 또 이를 &amp;lt;맹자&amp;gt;의 '始條理·終條理'를 가지고 증명하여, 두 가지('切磋'와 '琢磨' 즉 '學問'과 '自脩')를 함께 다해야지 하나를 폐해서는 안 됨을 드러내신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曰: &amp;quot;引&amp;lt;烈文&amp;gt;之詩而言'前王之沒世不忘', 何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amp;lt;열문&amp;gt; 시를 인용해 '예전 임금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어째서인가?&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賢其賢'者, '聞而知之', 仰其徳業之盛也; '親其親'者, '子孫保之', 思其覆&amp;lt;sub&amp;gt;敷救反&amp;lt;/sub&amp;gt;育之恩也.&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賢其賢'이라는 것은 '전해들어서 알게 되었다'(聞而知之)&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진심하&amp;gt; 38. 孟子曰：「由堯舜至於湯，五百有餘歲，若禹、皋陶，則見而知之；若湯，則聞而知之。由湯至於文王，五百有餘歲，若伊尹、萊朱則見而知之；若文王，則聞而知之。由文王至於孔子，五百有餘歲，若太公望、散宜生，則見而知之；若孔子，則聞而知之。&amp;lt;/ref&amp;gt;는 것이니, 예전 임금의 성대한 덕업을 추앙하는 것이다. '親其親'이라는 것은 '자손이 지켜나갔다'(子孫保之)&amp;lt;ref&amp;gt;&amp;lt;중용장구&amp;gt; 17장. 子曰：「舜其大孝也與！德為聖人，尊為天子，富有四海之內。宗廟饗之，子孫保之。&amp;lt;/ref&amp;gt;는 것이니, 예전 임금이 덮어주고 길러주던 은혜를 그리워하는 것이다.&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如孔子仰文武之徳, 是'賢其賢'; 成康以後, 思其恩而保其基緒&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猶基業。&amp;lt;/ref&amp;gt;, 便是'親其親'.&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예를 들어, 공자께서 문왕·무왕의 덕을 흠앙하신 것이 '賢其賢'이고, 성왕·강왕 이후 문왕·무왕의 은혜를 그리워하며 그들의 기업을 지켜나간 것이 '親其親'이다.&amp;quot;&lt;br /&gt;
&lt;br /&gt;
'樂其樂'者, 舍哺&amp;lt;sub&amp;gt;蒲故反&amp;lt;/sub&amp;gt;鼓腹而安其樂也; '利其利'者, 耕田鑿井而享其利也, 此皆先王盛徳至善之餘澤&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 指遺留給後人的德澤。 &amp;lt;/ref&amp;gt;. 故雖已沒世而人猶思之, 愈久而不能忘也. 上文之引&amp;lt;淇澳&amp;gt;, 以明明徳之得所止言之, 而發新民之端也; 此引&amp;lt;烈文&amp;gt;, 以新民之得所止言之, 而著明明徳之效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樂其樂'이라는 것은 '배불리 먹고 배를 두들기며'&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口含食物， 飽食挺腹。語出《莊子‧馬蹄》： “夫 赫胥氏 之時， 民居不知所為， 行不知所之， 含哺而熙， 鼓腹而遊， 民能以此矣。”後因以“含哺鼓腹”形容人過着安樂的生活。 &amp;lt;/ref&amp;gt; 그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고, '利其利'라는 것은 '밭 갈아 [먹고] 우물 파 [마시며]'&amp;lt;ref&amp;gt;&amp;lt;논형&amp;gt; &amp;lt;감허&amp;gt; 堯時，五十之民，擊壤於塗。觀者曰：「大哉，堯之德也！」擊壤者曰：「吾日出而作，日入而息，鑿井而飲，耕田而食，堯何等力？」&amp;lt;/ref&amp;gt; 그 이익을 누리는 것이니, 이것들은 모두 선왕의 성덕·至善 덕택이다. 그러므로 비록 [선왕이] 이미 세상을 떠났더라도 사람들이 오히려 그리워하고, 오래될수록 잊지 못하는 것이다. 앞에서 &amp;lt;기욱&amp;gt;을 인용한 것은 '明明徳'이 머물 바를 얻었음을 말하여 '新民'의 단서를 연 것이고, 여기서 &amp;lt;열조&amp;gt;를 인용한 것은 '新民'이 머물 바를 얻었음을 말하여 '明明徳'의 공효를 드러낸 것이다.&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amp;lt;淇澳&amp;gt;言明明徳而可以新民, 以見明明徳之極功; &amp;lt;烈文&amp;gt;因言非獨一時民不能忘, 而後世之民亦不能忘, 以見新民之極功.&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amp;lt;기욱&amp;gt;은 '明明徳하면 新民할 수 있음'을 말하여 '明明徳'의 지극한 공효를 드러내고, &amp;lt;열문&amp;gt;은 이에 근거하여 '한 때의 백성만 잊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후세의 백성 또한 잊을 수 없음'을 말하여 '新民'의 지극한 공효를 드러낸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曰: &amp;quot;&amp;lt;淇澳&amp;gt;&amp;lt;烈文&amp;gt;二節, 鄭本元在誠意章後, 而程子置之卒章之中, 子獨何以知其不然而屬&amp;lt;sub&amp;gt;音蜀下同&amp;lt;/sub&amp;gt;&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zhŭ   〔《廣韻》之欲切， 入燭， 章。 〕  1.  繼續；聯接。 &amp;lt;/ref&amp;gt;之此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amp;lt;기욱&amp;gt;·&amp;lt;열문&amp;gt; 두 구절의 경우, 鄭本에서는 원래 성의장 뒤에 있었고, 정자께서는 마지막 장 가운데 두셨는데, 그대만 어떻게 그것들이 옳지 않음을 알고서 여기에 귀속시켰는가?&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二家所繫, 文意不屬&amp;lt;sub&amp;gt;音燭&amp;lt;/sub&amp;gt;&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shŭ 〔《廣韻》市玉切， 入燭， 禪。 〕 6. 歸屬；隸屬。 &amp;lt;/ref&amp;gt;, 故有不得而從者. 且以所謂'道盛徳至善, 沒世不忘'者推之, 則知其當屬乎此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두 사람이 이은 것은 의미상 연결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따를 수 없는 점이 있었다. 또 이른바 '道盛徳至善, 沒世不忘'을 가지고 추론해보면, &amp;lt;기욱&amp;gt;·&amp;lt;열문&amp;gt;이 마땅히 여기에 속함을 알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傳四章===&lt;br /&gt;
子曰：「聽訟，吾猶人也，必也使無訟乎！」無情者不得盡其辭。大畏民志，此謂知本。&amp;lt;br/&amp;gt;&lt;br /&gt;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송사를 처리하는 건 나도 남들처럼 하겠지만, 반드시 송사가 없게 할 것이다!&amp;quot;&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안연&amp;gt; 13. 子曰：「聽訟，吾猶人也，必也使無訟乎！」&amp;lt;/ref&amp;gt; 진실하지 못한 자가 거짓말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백성들의 마음을 크게 두렵게 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근본을 안다'고 말한다.&lt;br /&gt;
:猶人，不異於人也。情，實也。引夫子之言，而言聖人能使無實之人不敢盡其虛誕之辭。蓋我之明德既明，自然有以畏服民之心志，故訟不待聽而自無也。觀於此言，可以知本末之先後矣。&lt;br /&gt;
:&amp;quot;猶人&amp;quot;은 남과 다르지 않음이다. 情은 實이다. 공자의 말씀을 인용해 성인이 진실하지 못한 자로 하여금 감히 거짓말을 다하지 못하게 할 수 있었음을 말한다. 대개 내 明德이 밝혀진 이상, 저절로 백성들의 마음을 두렵게 하고 복종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송사를 다스릴 필요도 없이 저절로 없어진다. 이 말을 살펴보면 근본적인 것과 말단적인 것의 선후를 알 수 있을 것이다.&lt;br /&gt;
::朱子曰: &amp;quot;聖人說: '聽訟, 我也無異於人, 當使其無訟之可聽, 方得.' 聖人固不㑹錯斷了事. 只是他所以無訟者, 却不在於善聽訟, 在於意誠心正, 自然有以薰炙漸染, 大服民志. 故自無訟之可聽耳.&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성인께서 '송사를 처리하는 건 나라도 남과 다를 것이 없지만, 처리할 만한 송사가 없게 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성인은 진실로 일을 잘못 처리하지 않는다. 다만 그에게 송사가 없는 까닭은 송사를 잘 처리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뜻이 진실하고 마음이 발라 자연히 물들여 크게 백성의 뜻을 복종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절로 다스릴 만한 송사가 없는 것이다.&amp;quot;&lt;br /&gt;
::○使民無訟, 在我之事, 本也. 此所以聽訟為末.&lt;br /&gt;
::백성들로 하여금 송사가 없게 하는 건 내게 달린 일이니, 근본이다. 이것이 '송사를 다스리는 것이' 말단인 까닭이다.&lt;br /&gt;
::○'無情者不得盡其辭', 便是說那無訟之由. 然惟先有以服其心志, 所以能使之不得盡其虚誕之辭.&lt;br /&gt;
::'진실하지 못한 자가 거짓말을 다하지 못한다'는 것은 저 송사가 없는 이유를 말한 것이다. 그러나 먼저 그들의 마음을 복종시킬 수 있기 때문에 그들로 하여금 거짓말을 다할 수 없게 할 수 있는 것이다.&lt;br /&gt;
::○如成人有其兄死而不為衰者, 聞子臯將為成宰, 遂為衰. 子臯又何曾聽訟了致然? 只是自然感動人處耳.&lt;br /&gt;
::예컨대, 成땅 사람 가운데 제 형이 죽었는데도 상복을 입지 않는 자가 있었는데, 자고가 장차 成의 읍재로 부임한다는 소식을 듣고 마침내 상복을 입었다.&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단궁하&amp;gt; 成人有其兄死而不為衰者，聞子皋將為成宰，遂為衰。成人曰：「蠶則績而蟹有匡，范則冠而蟬有緌，兄則死而子皋為之衰。」&amp;lt;/ref&amp;gt; 자고가 또 언제 송사를 다스려 그렇게 만들었는가? 그저 자연히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일 뿐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右傳之四章。釋本末。&lt;br /&gt;
::이상은 전4장이다. '本末'을 해석했다.&lt;br /&gt;
:::此章舊本誤在「止於信」下。&lt;br /&gt;
:::이 장은 옛 판본에 &amp;quot;止於信&amp;quot; 다음에 잘못 위치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혹문』 전4장====&lt;br /&gt;
或問: &amp;quot;聽訟一章, 鄭本元在'止於信'之後, '正心脩身'之前; 程子又進而寘之經文之下、'此謂知之至也'之上, 子不之從而寘之於此, 何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혹자가 물었다: &amp;quot;&amp;lt;聽訟&amp;gt;장(전4장)의 경우, 鄭本에서는 원래 '止於信' 뒤, '正心脩身' 이전에 있었고, 程子(이천)께서는 더 앞당겨 경문 다음, '此謂知之至也'의 앞에 두셨다. 그대가 [선유의 설을] 따르지 않고 여기에 둔 것은 어째서인가?&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以傳之結語考之, 則其爲釋本末之義可知矣; 以經之本文乘&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6. 計算；籌劃。&amp;lt;/ref&amp;gt;之, 則其當屬&amp;lt;sub&amp;gt;音蜀&amp;lt;/sub&amp;gt;於此可見矣. 二家之說有未安者, 故不得而從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답했다: &amp;quot;傳(전4장)의 마지막 말(&amp;quot;此謂知本&amp;quot;)로 상고하면 그것이 '本末'의 뜻을 해석한 것임을 알 수 있고, 經의 본문(&amp;quot;物有本末&amp;quot;)에 적용하면 그것이 여기에 속해야 함을 알 수 있다. 두 학자의 설에 적절치 못한 점이 있었기 때문에 따를 수 없었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曰: &amp;quot;然則聽訟、無訟, 於明徳新民之義, 何所當也?&amp;quot;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그렇다면 '聽訟·無訟'은 '明徳·新民'의 뜻 가운데 무엇에 해당하는가?&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聖人徳盛仁熟, 所以自明者皆極天下之至善. 故能大有以畏服其民之心志而使之不敢盡其無實之辭. 是以雖其聽訟無以異於衆人而自無訟之可聽. 蓋己徳既明而民徳自新, 則得其本之明效也. 或不能然而欲區區於分爭辯訟之間以求新民之效, 其亦末矣. 此傳者釋經之意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성인께서는 덕이 성대하고 仁이 순숙하시기 때문에 스스로 밝히신 것이 모두 천하의 至善에 이르셨다. 그러므로 크게 백성들의 마음을 두렵게 하고 복종시켜 그들로 하여금 진실하지 못한 말을 다하지 못하게 하실 수 있으셨다. 그러므로 비록 성인께서 송사를 다스리시는 것이 다른 사람들과 다를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저절로 다스릴 만한 송사가 없게 되었다. 대개 자신의 덕이 이미 밝혀져 백성들의 덕이 저절로 새로워지는 것은 근본을 얻었다는 명백한 공효이다. 혹 그렇게 하지 못하고 爭訟의 [시비를] 가리는 데 얽매이면서 新民의 공효를 얻고자 한다면, 이 또한 말단이다. 이것은 傳을 쓴 자가 經을 해석한 뜻이다.&amp;quot;&lt;br /&gt;
:陳氏曰: &amp;quot;聽訟, 末也; 明徳, 本也. 不能明己之徳而專以智能决訟者, 抑&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0. 似；如。 ▶ 《國語‧魯語下》： “ 楚公子 甚美， 不大夫矣， 抑君也。” ▶ 韋昭 注： “似君也。” -이렇게 번역할 경우, '말단과 같다.' &amp;lt;/ref&amp;gt;末矣.&amp;quot; &lt;br /&gt;
:진씨가 말했다: &amp;quot;'聽訟'은 말단이고 '明徳'은 근본이다. 자신의 덕을 밝히지 못하고 오로지 지혜로 송사를 잘 판결하는 것은 도리어 말단이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曰: &amp;quot;然則其不論夫終始者, 何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그렇다면 여기서 '終始'를 논하지 않은 것(&amp;quot;事有終始&amp;quot;)은 어째서인가?&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古人釋經, 取其大略, 未必如是之屑屑也. 且此章之下有闕文焉, 又安知其非本有而并失之也邪?&amp;quot;&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옛 분들이 경전을 해석할 때, 대략만 취할 뿐 반드시 이처럼 하나하나 하신 것은 아니었다. 또 이 장 아래에 빠진 글이 있으니, ['終始'를 논한 것이] 본래는 있었으나 [다음 글과] 함께 망실된 것은 아닌지 어떻게 알겠는가?&amp;quot;&lt;br /&gt;
&lt;br /&gt;
===傳五章===&lt;br /&gt;
(此謂知本，)&lt;br /&gt;
:程子曰：「衍文也。」&lt;br /&gt;
:정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군더더기 글이다.&amp;quot;&amp;lt;ref&amp;gt;&amp;lt;정씨경설&amp;gt; 5-10 子曰: &amp;quot;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amp;quot; 無情者不得盡其辭, 大畏民志, 此謂知本.&amp;lt;四字衍&amp;gt; 此謂知本, 此謂知之至也.&amp;lt;/ref&amp;gt;&lt;br /&gt;
&lt;br /&gt;
此謂知之至也。&amp;lt;br/&amp;gt;&lt;br /&gt;
이것을 '앎의 지극함'이라고 한다.&lt;br /&gt;
:此句之上別有闕文，此特其結語耳。&lt;br /&gt;
:이 구절 앞에 따로 궐문이 있었으니, 이 말은 다만 맺음말일 뿐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右傳之五章，蓋釋格物、致知之義，而今亡矣。&lt;br /&gt;
::이상은 전5장이니 格物·致知의 뜻을 해석했는데, 지금은 망실되었다.&lt;br /&gt;
:::此章舊本通下章，誤在經文之下。&lt;br /&gt;
:::이 장은 구본(鄭本)에 다음 장과 마찬가지로 경문 다음에 잘못 위치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閒嘗竊取程子之意以補之曰：「所謂致知在格物者，言欲致吾之知，在即物而窮其理也。蓋人心之靈莫不有知，而天下之物莫不有理，惟於理有未窮，故其知有不盡也。是以大學始教，必使學者即凡天下之物，莫不因其已知之理而益窮之，以求至乎其極。至於用力之久，而一旦豁然貫通焉，則眾物之表裏精粗無不到，而吾心之全體大用無不明矣。此謂物格，此謂知之至也。」&lt;br /&gt;
:근자에 삼가 정자의 뜻을 취해 다음과 같이 보충하였다: &amp;quot;이른바 '致知在格物'이라는 것은, '내 앎을 지극히 하고자 한다면, [그것이] 사물에 나아가 그 理를 궁구함에 달려있음을 말한 것이다. 대개 영험한 사람의 마음은 알지 못하는 것이 없고, 천하 만물에는 理가 없는 경우는 없다. 오직 理를 아직 [전부] 궁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앎에 다하지 못하는 점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amp;lt;대학&amp;gt;의 첫 가르침이 반드시 배우는 자로 하여금 뭇 천하 사물에 나아가 이미 알고 있는 理를 근거로 더욱 궁구하여 그 지극한 경지에 이르길 구하지 않게 함이 없는 것이다. [格物·致知에] 오래 힘써 하루 아침에 막힘 없이 꿰뚫게 되면, 만물의 表裏·精粗에 주도하지 않음이 없게 되고, 내 마음의 全體大用이 밝혀지지 않음이 없게 된다. 이것을 '物格'이라 하고, 이것을 '앎의 지극함'(知之至)이라고 한다.&amp;quot;&lt;br /&gt;
::問: &amp;quot;所補第五章, 何不效其文體?&amp;quot; 朱子曰: &amp;quot;亦嘗效而為之, 竟不能成.&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선생님께서] 보충하진 전5장의 경우, 어째서 [&amp;lt;대학&amp;gt;의] 문체를 모방하지 않으신 겁니까?&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나 역시 전에 모방해 지어보았지만, 끝내 완성할 수 없었다.&amp;quot;&lt;br /&gt;
::○&amp;lt;大學&amp;gt;不說窮理而謂之格物, 只是使人就實處窮究.&lt;br /&gt;
::&amp;lt;대학&amp;gt;에서 '窮理'라고 말하지 않고 그것을 '格物'이라고 한 것은 다만 사람들로 하여금 실제적인 것을 궁구하도록 하는 것일 뿐이다. &lt;br /&gt;
::○格物只是就一物上窮盡一物之理; 致知便只是窮得物理盡, 後我之知識亦無不盡處.&lt;br /&gt;
::'格物'은 다만 한 사물에서 한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고, '致知'는 다만 사물의 이치를 모두 궁구한 뒤에 내 지식도 다하지 않음이 없게 되는 것이다.&lt;br /&gt;
::○&amp;lt;大學&amp;gt;是聖門最初用功處; 格物又是&amp;lt;大學&amp;gt;最初用功處. 試考其說, 就日用間如此作工夫, 久之意思自别.&lt;br /&gt;
::&amp;lt;대학&amp;gt;은 성인의 문하에서 가장 먼저 노력해야 하는 것이고, '格物'은 다시 &amp;lt;대학&amp;gt;에서 가장 먼저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 설명을 한 번 살펴보건대, 일상 생활에서 이처럼 공부를 해서, 오래되면 생각이 절로 달라질 것이다.&lt;br /&gt;
::○問: &amp;quot;經文'物格而後知至', 却是知至在後; 今乃云'因其巳知而益窮之', 則又在格物前.&amp;quot; 曰: &amp;quot;知元自有. 纔要去理㑹, 便是這些知萌露. 若懵然全不向着, 便是知之端未曾通. 纔思量著, 便這箇骨子透出來. 且如做些事錯, 纔知道錯, 便是向好門路, 却不是方始去理㑹箇知. 只是如今須著因其端而推致之, 使四方八面千頭萬緒, 無有些不知, 無有毫髪窒礙. &amp;lt;孟子&amp;gt;所謂: '知皆擴而充之, 若火之始然, 泉之始達.' 擴而充之, 便是致字意思.&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경문의 '物格而後知至'에서 '知至'가 뒤에 있는데, 지금 도리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근거로 더욱 궁구한다'고 말하니, 도리어 ['知至'가] '格物' 앞에 있습니다.&amp;quot; 대답하셨다: &amp;quot;앎은 본래 있다. 이해하려고 하자마자 이 약간의 앎이 싹튼다. 멍하니 전혀 향하지 않는 경우는 앎의 단서에 아직 통하지 않은 것이다. 생각하자마자 이 骨子(앎)가 새어나온다. 일을 잘못한 경우, 잘못을 알자마자 좋은 길을 향하는 것이니, 처음 앎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지금은 그 단서를 바탕으로 미루어나가 사방팔면, 천 가지 만 가지에 대해 조금도 모르는 것이 없고 털끝 만큼도 막히는 것이 없도록 해야 한다. &amp;lt;맹자&amp;gt;에서 '[사단을] 모두 확충할 줄 알면, 불이 처음 타오르거나 샘이 처음 솟는 것과 같을 것이다'&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공손추상&amp;gt; 6. 凡有四端於我者，知皆擴而充之矣，若火之始然，泉之始達。苟能充之，足以保四海；苟不充之，不足以事父母。&amp;lt;/ref&amp;gt;고 할 때의 '확충'이 바로 '致'자의 뜻이다.&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6 任道弟問：「『致知』章，前說窮理處云：『因其已知之理而益窮之。』且經文『物格，而后知至』，卻是知至在後。今乃云『因其已知而益窮之』，則又在格物前。」曰：「知先自有。才要去理會，便是這些知萌露。若懵然全不向著，便是知之端未曾通。才思量著，便這箇骨子透出來。且如做些事錯，才知道錯，便是向好門路，卻不是方始去理會箇知。只是如今須著因其端而推致之，使四方八面，千頭萬緒，無有些不知，無有毫髮窒礙。孟子所謂：『知皆擴而充之，若火之始然，泉之始達。』『擴而充之』，便是『致』字意思。」&amp;lt;/ref&amp;gt;&lt;br /&gt;
::○表者人物所共由; 裏者吾心所獨得. 有人只就皮殻上用工, 於理之所以然者全無見處; 有人思慮向裏去多, 於事物上都不理㑹, 此乃說玄說妙之病. 二者都是偏. 若到物格知至, 則表裏精粗無不盡.&amp;quot;&lt;br /&gt;
::'겉'이라는 것은 사람과 사물이 똑같이 말미암는 것이고, '속'이라는 것은 내 마음이 홀로 얻은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저 껍데기에서만 노력할 뿐 理라는 所以然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고, 어떤 사람은 내면으로의 생각이 많을 뿐 사물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니, 이는 현묘한 것을 말하는 병이다. 두 경우는 모두 치우친 것이다. 만약 '物格知至'에 이른다면, 겉과 속·정밀한 것과 거친 것을 다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혹문』 전5장====&lt;br /&gt;
1.&amp;lt;br/&amp;gt;&lt;br /&gt;
或問: &amp;quot;'此謂知本', 其一爲聽訟章之結語則聞命&amp;lt;ref&amp;gt;接受命令或教導。&amp;lt;/ref&amp;gt;矣. 其一, 鄭本元在經文之後, '此謂知之至也'之前; 而程子以爲衍文, 何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혹자가 물었다: &amp;quot;[두 번 나오는] '此謂知本' [가운데] 하나가 聽訟章(전4장)의 마지막 문장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설명을 들었다. 다른 하나의 경우, 鄭本에서는 원래 경문의 뒤, '此謂知之至也' 앞에 있었는데, 정자께서 [이를] '군더더기 글'이라고 여기신 것은 어째서인가?&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以其複&amp;lt;sub&amp;gt;音福&amp;lt;/sub&amp;gt;出而他無所繫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그것('此謂知本')이 중복해서 나왔는데 다른 데 연결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2.&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此謂知之至也', 鄭本元隨'此謂知本'繫於經文之後而下屬&amp;lt;sub&amp;gt;音蜀下同&amp;lt;/sub&amp;gt;誠意之前; 程子則去&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其上句之複而附此句於聽訟知本之章以屬明徳之上, 是必皆有說矣. 子獨何據以知其皆不盡然而有所取舍&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於其間邪?&amp;quot;&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此謂知之至也'의 경우, 鄭本에서는 원래 '此謂知本'을 따라 경문 뒤에 연결되어 다음으로 誠意장 앞에 이어져있고, 정자께서는 윗 구절의 중복된 것을 제거하고 이 구절을 聽訟知本장(전4장)에 붙이시고는 명덕장 앞에 이으셨으니, 이들에는 필시 모두 근거가 있을 것이다. 그대는 유독 무엇에 의거해 그것들이 모두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님을 알고서 그 가운데서 취사선택 했는가?&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此無以他求爲也. 考之經文, 初無再論知本、知至之云者, 則知屬之經後者之不然矣; 觀於聽訟之章, 既以知本結之而其中間又無知至之說, 則知再結聽訟者之不然矣. 且其下文所屬明徳之章, 自當爲傳文之首, 又安得以此而先之乎? 故愚於此皆有所不能無疑者. 獨程子上句之所刪、鄭氏下文之所屬, 則以經傳之次求之而有合焉. 是以不得而異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이것은 달리 찾을 것도 없다. 경문을 상고해보면 애당초 '知本'·'知至'라는 것을 재론할 것도 없으니, ['此謂知本, 此謂知之至也'를] 경문 뒤에 잇는 것이 옳지 않음을 알겠다.('此謂知本, 此謂知之至也'이 경문 뒤에 위치할 수 없다.) 聽訟장(전4장)을 보면 '知本'으로 마무리하는 데다가 그 중간에 또 '知至'를 말하는 부분이 없으니, '聽訟'을 ['此謂知本'로] 거듭 마무리하는 것이 옳지 않음을 알겠다.(중복된 '此謂知本' 가운데 하나는 산삭해야 한다) 또 그 아래 이어진 명덕장은 응당 傳文의 첫머리가 되어야 하니, 또 어찌 이것('此謂知本, 此謂知之至也')을 명덕장의 앞에 둘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내가 이것들에 대해 모두 의심이 없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다만 정자께서 윗 구절(중복된 '此謂知本' 가운데 앞의 것)을 산삭하신 것과 정현이 다음 글로 이은 것(전6장)은 경문-전문의 순서로 헤아려보면 부합하는 점이 있다. 그러므로 바꿀 수 없었던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3.&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然則子何以知其爲釋知至之結語, 而又知其上之當有闕文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그렇다면 그대는 어떻게 그것('此謂知之至也')이 '知至'에 대한 해석을 마무리하는 문장임을 알았고,&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此句之上別有闕文，此特其結語耳。&amp;lt;/ref&amp;gt; 또 어떻게 그 앞에 응당 빠진 글이 있는 줄 알았는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lt;br /&gt;
曰: &amp;quot;以文義與下文推之而知其釋知至也; 以句法&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 句子的結構方式。 &amp;lt;/ref&amp;gt;推之而知其爲結語也; 以傳之例推之而知其有闕文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글의 뜻('知之至'='知至')과 다음의 글(전6장)로 추론해보고서 그것이 '知至'를 해석한 것임을 알았고, 문장 구조('此謂')로 추론해보고서 그것이 마무리하는 문장임을 알았으며, 전문의 [다른] 예시로 추론해보고서 거기에 빠진 글이 있음을 알았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4.&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此經之序, 自誠意以下, 其義明而傳悉矣; 獨其所謂格物致知者, 字義不明而傳復&amp;lt;sub&amp;gt;扶又反下同&amp;lt;/sub&amp;gt;闕焉. 且爲最初用力之地而無復上文語緒之可尋也. 子乃自謂'取程子之意以補之', 則程子之言何以見其必合於經意? 而子之言又似不盡出於程子, 何邪?&amp;quot;&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이 경(&amp;lt;대학&amp;gt;)의 차례에서 '誠意'부터는 뜻이 분명하고 전문이 상세하다. 오직 이른바 '格物致知'라는 것만 글자의 뜻이 불분명하고 전문이 다시 빠져있다. 또 [格物致知'는] 처음 힘쓰는 단계인데도(즉, 매우 중요한 부분인데도) 앞 글에서 찾을 수 있는 단서가 달리 없다. [그런데] 그대는 도리어 스스로 '정자의 뜻을 가져다 보충한다'고 말했으니,&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閒嘗竊取程子之意以補之.&amp;lt;/ref&amp;gt; 정자의 말씀이 어떻게 틀림없이 경(&amp;lt;대학&amp;gt;)의 뜻에 부합함을 알았는가? 그대의 말은 또 정자에게서 모두 나온 것은 아닌 듯 하니, 어째서인가?&amp;quot;&lt;br /&gt;
&lt;br /&gt;
4-1.&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或問於程子曰: '學何爲而可以有覺也?' 程子曰: '學莫先於致知. 能致其知, 則思日益明, 至於久而後有覺爾. &amp;lt;書&amp;gt;所謂「思曰睿, 睿作聖」&amp;lt;sub&amp;gt;見周書洪範篇&amp;lt;/sub&amp;gt;、董子所謂「勉强&amp;lt;sub&amp;gt;上聲下同&amp;lt;/sub&amp;gt;學問則聞見博而智益明」, 正謂此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혹자가 정자께 물었다: '배움은 어떻게 해야 깨우칠 수 있습니까?' 정자께서 대답하셨다: '배움에서 致知보다 앞서는 것은 없다. 앎을 지극히 할 수 있다면, 생각은 날로 더욱 밝아질 것이고, [그것이] 오래된 이후에 깨우치게 된다. &amp;lt;서경&amp;gt;에서 말한 「생각은 슬기롭게 해야 하니, 슬기로우면 성인이 된다」는 것과,&amp;lt;sub&amp;gt;&amp;lt;주서&amp;gt; &amp;lt;홍범&amp;gt;에 보인다&amp;lt;/sub&amp;gt; 동중서가 말한 「학문에 힘쓰면 견문은 넓어지고 앎은 더욱 밝아진다」는 것이 바로 이를 말하는 것이다.'&amp;quot;&lt;br /&gt;
:&amp;lt;西漢書&amp;gt;董仲舒&amp;lt;sub&amp;gt;廣川人&amp;lt;/sub&amp;gt;以賢良對䇿曰: &amp;quot;勉强學問, 則聞見博而智益明; 勉强行道, 則徳日起而大有功: 此皆可使還&amp;lt;ref&amp;gt;&amp;lt;한서&amp;gt; 師古曰: &amp;quot;還讀曰旋, 旋, 速也.&amp;quot;&amp;lt;/ref&amp;gt;至而立&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9. 立刻(즉시) ▶ 《史記‧留侯世家》： “於是 呂澤 立夜見 呂后 ， 呂后 承間為上泣涕而言， 如四人意。” ; &amp;lt;한서&amp;gt; 宋祁曰: &amp;quot;越本無立字.&amp;quot;&amp;lt;/ref&amp;gt;有效者也.&amp;quot;&lt;br /&gt;
:&amp;lt;한서&amp;gt;에 동중서&amp;lt;sub&amp;gt;광천 사람이다.&amp;lt;/sub&amp;gt;가 &amp;lt;현량대책&amp;gt;으로 말했다: &amp;quot;학문에 힘쓰면 견문은 넓어지고 앎은 더욱 밝아지고. 道를 행하는 데 힘쓰면, 덕은 날로 진작하고 크게 공효가 있을 것이니, 이 모두는 속히 [목표에] 이르고 바로 공효를 이루도록 할 수 있는 것입니다.&amp;quot;&amp;lt;ref&amp;gt;&amp;lt;한서&amp;gt; &amp;lt;동중서전&amp;gt; 彊勉學問，則聞見博而知益明；彊勉行道，則德日起而大有功：此皆可使還至而立有效者也。《詩》曰「夙夜匪解」，《書》云「茂哉茂哉！」皆彊勉之謂也。&amp;lt;/ref&amp;gt;&lt;br /&gt;
&lt;br /&gt;
&amp;quot;'學而無覺, 則亦何以學爲&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42. 助詞。 用在句末， 常與“何”、“奚”等相配合， 表疑問或反詰。 ▶ 《左傳‧襄公十七年》： “親逐而君， 爾父為厲。 是之不憂， 而何以田為？” &amp;lt;/ref&amp;gt;也哉?'&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배우고도 깨우침이 없다면, 또 어째서 배우겠는가?'&amp;lt;ref&amp;gt;&amp;lt;이정유서&amp;gt; 18-18 問:「學何以有至覺悟處?」 曰:「莫先致知. 能致知, 則思一日愈明一日, 久而後有覺也. 學而無覺, 則何益矣? 又奚學爲? 『思曰睿, 睿作聖.』纔思便睿, 以至作聖, 亦是一箇思. 故曰:『勉强學問, 則聞見博而智益明.』」 又問:「莫致知與力行兼否. 曰:「爲常人言纔知得非禮不可爲, 須用勉强, 至於知穿窬不可爲, 則不待勉强, 是知亦有深淺也. 古人言樂循理之謂君子. 若勉强, 只是知循理, 非是樂也. 纔到樂時, 便是循理爲樂, 不循理爲不樂, 何苦而不循理. 自不須勉强也. 若夫聖人不勉而中, 不思而得. 此又上一等事.」&amp;lt;/ref&amp;gt;&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能致知, 則思自然明. '至於久而後有覺', 是積累之多自有箇覺悟時節.&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致知할 수 있다면 생각이 저절로 밝아진다. '오래된 이후에 깨우침이 있게 된다'는 것은 많이 쌓여 절로 깨우치는 때가 있다는 것이다.&amp;quot;&lt;br /&gt;
:○格菴趙氏曰: &amp;quot;知是識其所當然; 覺是悟其所以然.&amp;quot;&lt;br /&gt;
:격암 조씨가 말했다: &amp;quot;'知'는 所當然을 아는 것이고, '覺'는 所以然을 깨우치는 것이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覺者, 知至之事. '思曰睿', 所以致知; '睿作聖', 則知至矣. '勉强學問', 所以致知; '聞見博, 智益明', 則知至矣.&amp;quot;&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覺'이라는 것은 '知至'의 일이다. '생각은 슬기롭게 해야 한다'는 것은 '致知'하는 방법이고, '슬기로우면 성인이 된다'는 것은 '知至'이다. '학문에 힘쓴다'는 것은 '致知'하는 방법이고, '견문은 넓어지고 앎은 더욱 밝아진다'는 것은 '知至'이다.&amp;quot;&lt;br /&gt;
&lt;br /&gt;
4-2.&amp;lt;br/&amp;gt;&lt;br /&gt;
&amp;quot;或問: '忠信則可勉矣. 而致知爲難, 柰何?' 程子曰: '誠敬固不可以不勉. 然天下之理不先知之, 亦未有能勉以行之者也. 故&amp;lt;大學&amp;gt;之序, 先致知而後誠意, 其等有不可躐者. 苟無聖人之聰明睿知而徒欲勉焉以踐其行事之迹, 則亦安能如彼之動容周旋無不中&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禮也哉? 惟其燭理之明, 乃能不待勉彊而自樂&amp;lt;sub&amp;gt;音洛下同&amp;lt;/sub&amp;gt;循理爾. 夫&amp;lt;sub&amp;gt;音扶下同&amp;lt;/sub&amp;gt;人之性本無不善, 循理而行, 宜無難者. 惟其知之不至而但欲以力爲之, 是以苦其難而不知其樂耳. 知之而至, 則循理爲樂, 不循理爲不樂, 何苦而不循理以害吾樂耶? 昔嘗見有談虎傷人者. 衆莫不聞, 而其間一人神色&amp;lt;ref&amp;gt;神情面色。 &amp;lt;/ref&amp;gt;獨變. 問其所以, 乃嘗傷於虎者也. 夫虎能傷人, 人孰不知? 然聞之有懼有不懼者, 知之有眞有不眞也. 學者之知道, 必如此人之知虎然後爲至耳. 若曰: 知不善之不可爲而猶或爲之, 則亦未嘗眞知而巳矣.'&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혹자가 물었다: '忠信은 힘쓸 수 있지만, 致知는 어려우니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자께서 대답하셨다: '誠敬은 진실로 힘쓰지 않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천하의 理를 먼저 알지 않으면 힘써 행할 수 있는 바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amp;lt;대학&amp;gt;의 차례가 致知를 우선하고 誠意를 나중에 하는 것이니, 그 단계에 엽등해서는 안 되는 점이 있는 것이다. 만약 성인과 [같은] 지혜(聰明睿知)도 없으면서 그저 힘써 성인이 행한 일의 자취를 좇고자 한다면, 또 어찌 저 행동거지가 예에 맞지 않음이 없는 성인과 같을 수 있겠는가? 오직 理를 분명히 알아야 힘쓰지 않고도 절로 즐거이 理를 따를 수 있을 것이다. 무릇 사람의 性은 본래 선하지 않음이 없어서, 理를 따라 행함에 의당 어려운 점이 없을 것이다. 오직 앎이 지극하지 못하면서 그저 애써 행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 어려움을 괴롭게 여기고 그 즐거움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아는 것이 지극해지면 理를 따르는 것을 즐기고 理를 따르지 않는 것을 즐기지 않을 것이니, 무엇이 괴롭길래 理를 따르지 않아 자신의 즐거움을 해치겠는가? 전에 범이 사람을 해친 이야기를 하는 자를 보았다. [그것을] 듣지 않은 자가 없었는데 그 중 한 사람만 정신과 안색이 변했다. 그 까닭을 물어보니, 바로 전에 범에게 물렸기 때문이었다. 범이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을 사람 가운데 누가 모르겠는가? 그러나 그것을 듣고 두려워하는 자가 있고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있는 것은, 그것을 진정으로 아는 경우가 있고 진정으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배우는 자가 道를 앎은 반드시 이 사람이 범을 아는 것과 같은 후에야 지극하다고 할 것이다. 만약 불선을 행해선 안 됨을 안다면서 오히려 혹 불선을 행한다면, 그 또한 진정으로 안 적이 없었던 것이다.'&amp;lt;ref&amp;gt;&amp;lt;이정유서&amp;gt; 18-25 問: 「忠信進德之事固可勉强, 然致知甚難.」 曰:「子以誠敬爲可勉强, 且恁地說. 到底, 須是知了方行得. 若不知, 只是覰却堯學他行事. 無堯許多聰明叡智, 怎生得如他動容周旋中禮? 有諸中, 必形諸外. 德容安可妄學? 如子所言, 是篤信而固守之, 非固有之也. 且如中庸九經, 修身也, 尊賢也, 親親也. 堯典『克明峻德, 以親九族』. 親親本合在尊賢上, 何故却在下? 須是知所以親親之道方得. 未致知, 便欲誠意, 是躐等也. 學者固當勉强, 然不致知, 怎生行得? 勉强行者, 安能持久. 除非燭理明, 自然樂循理. 性本善, 循理而行是順理事, 本亦不難. 但爲人不知, 旋安排著, 便道難也. 知有多少般數, 煞有深淺. 向親見一人, 曾爲虎所傷, 因言及虎, 神色便變. 傍有數人, 見佗說虎, 非不知虎之猛可畏, 然不如佗說了有畏懼之色, 蓋眞知虎者也. 學者深知亦如此. 且如膾炙, 貴公子與野人莫不皆知其美, 然貴人聞著便有欲嗜膾炙之色, 野人則不然. 學者須是眞知, 纔知得是, 便泰然行將去也. 某年二十時, 解釋經義, 與今無異. 然思今日, 覺得意味與少時自別.」&amp;lt;/ref&amp;gt;&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今人有知不善之不當為, 及臨事又為之, 只是知之未至. 人知烏喙&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3. 中藥附子的別稱。 以其塊莖形似得名。 &amp;lt;/ref&amp;gt;之殺人不可食, 斷然終於不食, 是眞知之也. '知不善不可為而猶或為之', 是特未能眞知也. 所以未能眞知者, 縁於道理上只就外面理㑹, 裏面却未理㑹得十分瑩浄.&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요즘 사람들이 불선을 행해선 안 됨을 알면서도 일에 닥쳐서는 다시 불선을 행하는 것은 다만 앎이 지극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부자(附子)가 사람을 죽이기 때문에 먹어선 안 됨을 알아서, 결단코 끝내 먹지 않으니, 이는 진정으로 아는 것이다. '불선을 행해선 안 됨을 안다면서 오히려 혹 불선을 행하는 것'은 다만 진정으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알지 못하는 까닭은 도리에 대해 그저 겉만 이해하고 속은 십분 명쾌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amp;quot;&lt;br /&gt;
&lt;br /&gt;
&amp;quot;此兩條者, 皆言格物致知所以當先而不可後之意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이 두 조목은 모두 格物致知를 우선해야지 뒤로 미뤄서는 안 된다는 뜻을 말한 것이다.&amp;quo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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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amp;lt;br/&amp;gt;&lt;br /&gt;
&amp;quot;又有問進脩之術何先者. 程子曰: '莫先於正心誠意. 然「欲誠意, 必先致知; 而欲致知, 又在格物」. 致, 盡也; 格, 至也. 凡有一物, 必有一理, 窮而至之, 所謂格物者也. 然而格物亦非一端. 如或讀書講明道義, 或論古今人物而别&amp;lt;sub&amp;gt;彼列反&amp;lt;/sub&amp;gt;其是非, 或應接事物而處&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其當&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否, 皆窮理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또 '덕을 진작하고 공업을 닦는'(進德脩業)&amp;lt;ref&amp;gt;&amp;lt;주역&amp;gt; &amp;lt;문언·건&amp;gt; 九三曰：「君子終日乾乾、夕惕若、厲、无咎」。何謂也？子曰：「君子進德脩業，忠信，所以進德也，脩辭立其誠，所以居業也。&amp;lt;/ref&amp;gt; 방법으로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 묻는 자가 있었다. 정자께서 대답하셨다: '正心誠意보다 우선할 것은 없다. 그러나 誠意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致知를 우선해야 하고, 致知하고자 한다면 다시 格物에 달려있다. 致란 다함이고, 格이란 이름이다. 무릇 사물이 하나 있으면 틀림없이 하나의 이치가 있으니, 그 이치를 궁구해 이르는 것이 이른바 格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格物 역시 한 가지가 아니다. 예를 들어 혹 책을 읽고 도리를 강론하거나, 고금의 인물을 논해 그들의 시비를 분별하거나, 혹 사물에 응해 그 옳고 그름에 대처하는 것, 모두 窮理이다.'&amp;lt;ref&amp;gt;&amp;lt;이정유서&amp;gt; 18-27 或問:「進修之術何先?」 曰:「莫先於正心誠意. 誠意在致知, 『致知在格物』. 格, 至也. 如『祖考來格』之格. 凡一物上有一理, 須是窮致其理. 窮理亦多端: 或讀書, 講明義理; 或論古今人物, 別其是非. 或應接事物而處其當. 皆窮理也.」 或問:「格物須物物格之, 還只格一物而萬理皆知?」 曰:「怎生便會該通? 若只格一物便通衆理. 雖顔子亦不敢如此道. 須是今日格一件, 明日又格一件, 積習旣多, 然後脫然自有貫通處.」&amp;lt;/ref&amp;gt;&lt;br /&gt;
:朱子曰: &amp;quot;格物之理, 所以致我之知.&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사물의 이치를 궁구(格)하는 것이 내 앎을 지극히 하는 방법이다.&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8 格物、致知，彼我相對而言耳。格物所以致知。於這一物上窮得一分之理，即我之知亦知得一分；於物之理窮二分，即我之知亦知得二分；於物之理窮得愈多，則我之知愈廣。其實只是一理，「才明彼，即曉此」。所以大學說「致知在格物」，又不說「欲致其知者在格其物」。蓋致知便在格物中，非格之外別有致處也。又曰：「格物之理，所以致我之知。」&amp;lt;/ref&amp;gt;&lt;br /&gt;
:○而今且只就事物上格去. 如讀書便就文字上格, 聽人說話便就說話上格, 接物便就接物上格, 精粗大小都要格. 久後貫通, 粗底便是精, 小底便是大, 這便是理之一本處.&lt;br /&gt;
:지금 우선 그저 사물에 대해 궁구(格)하라. 예를 들어, 책을 읽을 땐 문자를 궁구(格)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이야기를 궁구(格)하며, 사물을 대할 때는 사물을 대하는 것을 궁구(格)해서 정밀하고 거친 것, 크고 작은 것에 모두 궁구(格)해야 한다. [이것이] 오래된 이후에 통달해 거친 것이 정밀해지고 작은 것이 커지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의 근본으로서의 理이다.&lt;br /&gt;
:○陳氏曰: &amp;quot;事事物物固皆有理, 而聖賢書中又見成理義所萃, 而皆事物之則也. 在初學者窮理工夫, 先且就聖賢言語實處為凖則, 於幽間静一之中, 虛心而詳玩, 隨章逐句, 一一實下講明工夫, 果實有得, 則是非邪正大分已明, 而胷中權度稍定; 然後次而及於論古今人物以相參質&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參考質正。 &amp;lt;/ref&amp;gt;, 則其褒貶去取方可有定論; 最其後也, 乃及於應接事物, 更相&amp;lt;ref&amp;gt;相繼；相互。 &amp;lt;/ref&amp;gt;證訂, 則其裁處剖决方中節而不至於差謬. 故以我之見有以照彼之情, 而歴練感觸處有以長吾之見, 内外交相發, 將何所往而非吾窮格之益也? 程子之言, 其有序矣.&amp;quot;&lt;br /&gt;
:진씨가 말했다: &amp;quot;모든 사물에는 본래 理가 있지만, 성현의 책 안에도 이미 완성된 理義의 모음이 있으니, [이 두 가지] 모두 사물의 법칙이다. 초학자의 궁리 공부에 있어, 먼저 일단 성현 말씀 가운데 핵심적인 것을 준칙으로 삼고서, 한가한 때에 마음을 비우고 완미하여 장과 구절마다 하나하나 착실하게 강명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 [이런 공부를 통해] 과연 실로 얻은 바가 있다면, 옳고 그름과 삿되고 바름의 큰 경계(大分)가 매우 분명해져 가슴속의 기준(權度)이 조금 확정될 것이다.(기준 확립) 그런 연후에 다음으로 고금 인물에 대해 논해 서로 비교하고 질정하게 되면, 포폄과 취사에 비로소 정론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기준을 역사적 사례에 적용) 가장 마지막에는 마침내 사물을 대해 연이어 평정(評定)하게 되면, 결재하고 판결함이 비로소 절도에 맞아 잘못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기준을 현실에 적용) 그러므로 내 앎을 가지고 저것의 실정을 비출 수 있고, 겪은 것을 가지고 내 앎을 기를 수 있어서, 안팎으로 서로 계발한다면 장차 어디를 간들 내가 궁리·격물했던 덕(窮格之益)이 아니겠는가? 정자의 말씀에 진실로 차례가 있다.&amp;quot;&lt;br /&gt;
&lt;br /&gt;
&amp;quot;曰: '格物者, 必物物而格之耶? 將&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40. 介詞。 或；抑。 &amp;lt;/ref&amp;gt;止格一物而萬理皆通邪?' 曰: '一物格而萬理通, 雖顏子亦未至此. 惟今日而格一物焉, 明日又格一物焉, 積習既多, 然後脫然有貫通處耳.'&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물었다: '格物이라는 것은 반드시 物마다 궁구(格)해야 하는 겁니까? 아니면 단지 하나의 物만 궁구하면 온갖 이치에 모두 통달하는 겁니까?' 대답하셨다: '하나의 物만 궁구하고서 온갖 이치에 통달하는 건, 비록 안자라도 이러한 경지에 이르지 못하셨다. 오늘 하나의 物을 궁구하고, 내일 또 하나의 物을 궁구해, 점진적으로 익힌 것이 많아진 연후에야 脫然&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 超越尋常貌。&amp;lt;/ref&amp;gt;하게 통달하게 될 뿐이다.'&amp;lt;ref&amp;gt;&amp;lt;이정유서&amp;gt; 18-27 或問:「進修之術何先?」 曰:「莫先於正心誠意. 誠意在致知, 『致知在格物』. 格, 至也. 如『祖考來格』之格. 凡一物上有一理, 須是窮致其理. 窮理亦多端: 或讀書, 講明義理; 或論古今人物, 別其是非. 或應接事物而處其當. 皆窮理也.」 或問:「格物須物物格之, 還只格一物而萬理皆知?」 曰:「怎生便會該通? 若只格一物便通衆理. 雖顔子亦不敢如此道. 須是今日格一件, 明日又格一件, 積習旣多, 然後脫然自有貫通處.」&amp;lt;/ref&amp;gt;&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一日一件'者, 格物工夫次第也; '脱然貫通'者, 知至效驗極致也. 不循其序而遽責其全, 則為自罔; 但求粗曉而不期貫通, 則為自畫.&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하루에 한 건'(一日一件)이라는 것은 격물 공부의 단계이고, '脫然하게 통달한다'는 것은 '知至'라는 결과의 극치이다. 차례를 따르지 않고 바로 온전하기를 구한다면 '스스로 속이는 것'이 되고, 조금만 알려고 하고 통달하려고 하지 않으면 '스스로 한계짓는 것'이 된다.&amp;quot;&lt;br /&gt;
:○程子此語, 便是眞實做工夫來, 不說格一件後便貫通, 也不說盡格得天下物理後方始通. 只云積習既多, 然後脱然有箇貫通處.&lt;br /&gt;
:정자의 이 말씀은 진정으로 공부해보신 것이니, '하나만 궁구(格)하면 통달하게 된다'고 말씀하시지도 않고, '천하 사물의 이치를 모두 궁구(格)한 뒤에야 통달할 수 있다'고도 말씀하시지 않았다. 단지 '점진적으로 익힌 것이 많아진 연후에야 脫然하게 통달하게 된다'고 말씀하셨다.&lt;br /&gt;
:○問: &amp;quot;'一理通則萬理通', 其說如何?&amp;quot; 曰: &amp;quot;伊川嘗云: '雖顔子亦未到此', 天下豈有一理通便解萬理皆通? 也須積累將去. 如顔子髙明, 不過聞一知十, 亦是大叚聰明了. 學問却有漸, 無急迫之理.&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하나의 이치에 통달하면 모든 이치에 통달하게 된다'는 설은 어떻습니까?&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이천 선생께서는 '비록 안자라도 이런 경지에 이르지 못하셨다'고 말씀하셨으니, 천하에 어찌 하나의 이치에 통달하면 모든 이치에 통달할 수 있는 경우가 있겠는가? 역시 점진적으로 쌓아나가야 한다. 안자와 같은 고명하신 분도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는'&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공야장&amp;gt; 9. 子謂子貢曰：「女與回也孰愈？」 對曰：「賜也何敢望回。回也聞一以知十，賜也聞一以知二。」&amp;lt;/ref&amp;gt; 정도에 지나지 않으셨지만, 그래도 대단히 총명하신 것이었다. 학문은 점진적인 것이지 급박할 리가 없다.&amp;quot;&lt;br /&gt;
:○窮理者, 因其所已知而及其所未知; 因其所已逹而及其所未逹. 人之良知, 本所固有, 然不能窮理者, 只是足於已知已逹, 而不能窮其未知未逹. 故見得一截, 不曾又見得一截, 此其所以於理未精也. 然仍須工夫日日增加, 今日既格得一物, 明日又格得一物, 工夫更不住地做. 如左脚進得一歩, 右脚又進一歩; 右脚進得一歩, 左脚又進, 接續不已, 自然貫通.&lt;br /&gt;
:'窮理'라는 것은 이미 아는 것에 기인해 아직 알지 못하는 것에 이르고, 이미 통달한 것에 기인데 아직 통달하지 못한 것에 이르는 것이다. 사람의 양지는 본래 가지고 있는 것에 근거하지만, 窮理하지 못하는 것은 다만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만족해서,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궁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만 알고 나머지 반을 더이상 알지 못하니, 이것이 바로 이치에 대해 정통하지 못한 까닭이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는 것에] 기인해 공부해서 날마다 [앎을] 증진시켜야 한다. 오늘 하나를 궁구(格)하고 내일 또 하나를 궁구(格)해 공부를 더이상 끊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마치 왼발을 한 걸음 내딛으면 오른발을 또 한 걸음 내딛고, 오른발을 한 걸음 내딛으면 왼발을 또 내딛듯이 끊임없이 이어간다면 저절로 통달하게 될 것이다.&lt;br /&gt;
:○問: &amp;quot;無事時, 見得是如此; 臨事又做錯了, 如何?&amp;quot; 曰: &amp;quot;只是斷置不分明, 所以格物便要閒時理㑹, 不是要臨時理㑹. 閒時看得道理分曉, 則事來時, 斷置自易. 格物只是理㑹未理㑹得底; 不是從頭都要理㑹. 如水火人自是知其不可蹈, 何曾有錯去蹈水火? 格物只是理㑹當蹈水火與不當蹈水火, 臨事時斷置教分曉. 程子所謂: '今日格一件, 明日格一件', 亦是如此.&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별 일이 없을 때에는 이러한 줄 알다가, 일을 마주하면 또 잘못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amp;quot; 대답하셨다: &amp;quot;단지 대처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格物하는 방법은 한가할 때 이해하려는 것이지, 일이 닥쳤을 때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가할 때 도리를 분명히 알면, 일이 닥쳤을 때 대처하기 절로 쉬워진다. 격물은 다만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을 이해하는 것이지, 처음부터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물이나 불에 대해 사람들은 본래부터 거기에 들어가서는 안 됨을 아는데, 언제 물이나 불에 잘못 들어가봤던가? 격물은 단지 물이나 불에 들어가야 하는지 들어가면 안 되는 지 이해해, 일을 마주했을 때 대처를 분명하게 하는 것이다. 정자께서 말씀하신 '오늘 하나를 궁구(格)하고 내일 하나를 궁구(格)하라'는 것 역시 이와 같다.&amp;quot;&lt;br /&gt;
:○'積習既多, 自當脫然有貫通處', 乃是零零碎碎湊合將來, 不知不覺, 自然醒悟. 其始固須用力; 及其得之也, 又却不假用力. 此箇事不可欲速, 欲速則不逹. 須是慢慢做去.&lt;br /&gt;
:'점진적으로 익힌 것이 많아지고 나면 절로 응당 脫然하게 통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라는 것은 바로 자질구레하게 모으면 부지불식간에 저절로 깨우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힘을 써야겠지만, 터득하고 나면 더이상 힘을 쓸 필요가 없다. 이 일은 서둘러서는 안 되니, 서두르면 이루지 못한다.&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자로&amp;gt; 17. 子夏為莒父宰，問政。子曰：「無欲速，無見小利。欲速，則不達；見小利，則大事不成。」&amp;lt;/ref&amp;gt; 반드시 천천히 해야 한다.&lt;br /&gt;
&lt;br /&gt;
4-4.&amp;lt;br/&amp;gt;&lt;br /&gt;
&amp;quot;又曰: '自一身之中, 以至萬物之理, 理㑹得多, 自當豁然有箇覺處.'&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또 말씀하셨다: '일신의 마음(中)으로부터 만물의 이치에 이르기까지, 많이 이해하면 저절로 응당 豁然하게 깨우치는 바가 있게 된다.'&amp;lt;ref&amp;gt;&amp;lt;이정유서&amp;gt; 17-64 今人欲致知, 須要格物. 物不必謂事物然後謂之物也, 自一身之中, 至萬物之理, 但理會得多, 相[幾]次自然豁然有覺處.&amp;lt;/ref&amp;gt;&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一身之中', 是仁義禮智、惻隱羞惡辭遜是非, 與視聽言動, 皆所當理㑹. 至夫萬物之榮悴, 與夫動植小大, 這底是如何使, 那底是如何用; 車之可以行陸, 舟可以行水, 皆當理㑹.&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一身之中'은 인의예지와 측은·수오·사양(辭遜)·시비지심 그리고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는 것이니, 모두 이해해야 할 것들이다. 만물의 성쇠와 동식물의 크고 작음, 이것은 어떻게 사용하고 저것은 어떻게 사용하는지, 수리는 육지를 다닐 수 잇고 배는 물 위를 다닐 수 있는 것 모두 이해해야 한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至'豁然覺處', 則一身之理與夫萬物之理通貫而為一矣.&amp;quot;&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豁然하게 깨우치게 되면' 일신의 이치와 저 만물의 이치가 꿰어져 하나가 된다.&amp;quot; &lt;br /&gt;
&lt;br /&gt;
4-5.&amp;lt;br/&amp;gt;&lt;br /&gt;
&amp;quot;又曰: '窮理者, 非謂必盡窮天下之理; 又非謂止窮得一理便到. 但積累&amp;lt;sub&amp;gt;魯水反. 後凡言積累者音同.&amp;lt;/sub&amp;gt;多後, 自當脫然有悟處.'&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또 말씀하셨다: '窮理라는 것은 반드시 천하의 이치를 모두 궁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하나의 이치만 궁구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도 안다. 단지 점진적으로 누적한 것이 많아진 뒤에 저절로 응당 脫然하게 깨우치는 바가 있게 되는 것이다.'&amp;lt;ref&amp;gt;&amp;lt;이정유서&amp;gt; 02上-192 所務於窮理者, 非道須盡窮了天下萬物之理, 又不道是窮得一理便到, 只是要積累多後, 自然見去.&amp;lt;/ref&amp;gt;&amp;quot;&lt;br /&gt;
:問: &amp;quot;'知至'若論極盡處, 聖賢亦難言. 如孟子未學諸侯䘮禮,&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등문공상&amp;gt; 2. 諸侯之禮，吾未之學也；&amp;lt;/ref&amp;gt; 與未詳班爵之制.&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만장하&amp;gt; 2. 北宮錡問曰：「周室班爵祿也，如之何？」 孟子曰：「其詳不可得聞也。&amp;lt;/ref&amp;gt;&amp;quot; 朱子曰: &amp;quot;如何要一切知得? 然理㑹得已多, 萬一有揷一件差異底事來, 也識得他破&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32. 用在動詞後， 表示極度。 相當於“煞”。 &amp;lt;/ref&amp;gt;. 只是貫通, 便不通底亦通將去. 某舊亦有此疑, 後看程子說'格物, 非欲窮盡天下之理, 積累多, 後自當脫然有悟處', 方理㑹得. 如十事, 巳窮得八九, 其一二雖未窮, 將來凑合, 都自見得.&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8 問：「知至若論極盡處，則聖賢亦未可謂之知至。如孔子不能證夏商之禮，孟子未學諸侯喪禮，與未詳周室班爵之制之類否？」曰：「然。如何要一切知得！然知至只是到脫然貫通處，雖未能事事知得，然理會得已極多。萬一有插生一件差異底事來，也都識得他破。只是貫通，便不知底亦通將去。某舊來亦如此疑，後來看程子說：『格物非謂欲盡窮天下之物，又非謂只窮得一理便到，但積累多後自脫然有悟處。』方理會得。」; 같은 책, 같은 곳. 問程子格物之說。曰：「須合而觀之，所謂『不必盡窮天下之物』者，如十事已窮得八九，則其一二雖未窮得，將來湊會，都自見得。&amp;lt;/ref&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知至'를 '지극한 것'으로 논한다면, 성현이라도 ['知至'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니, 맹자께서 제후의 상례를 배우지 못하신 것과 班爵의 제도에 대해 잘 알지 못하신 것과 같습니다.&amp;quo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어찌 모두 알려고 하는가? 그러나 이해한 것이 이미 많다면, 만에 하나라도 다른 일이 끼어들더라도 그것을 잘 알아챌 것이다. 단지 통달하기만 하면 알지 못했던 것도 알게 된다. 나도 예전에 이런 의문이 있었는데, 나중에 정자께서 '격물은 천하의 모든 이치를 모두 궁구하려는 것이 아니니, 점진적으로 누적한 것이 많게 된 뒤에 절로 응당 脫然하게 깨우치는 바가 있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을 보고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열 가지 일 가운데 이미 8-9개를 궁구했다면, 나머지 1-2개를 비록 아직 궁구하지 못했더라도 나중에 모으면 모두 절로 알 수 있다.&amp;quot;&lt;br /&gt;
:○王氏曰: &amp;quot;右三條皆要工夫多積, 自能貫通覺悟. 却自是三樣: 第一是漸漸格; 第二是合内外格; 第三是不泛不漏格.&amp;quot;&lt;br /&gt;
:왕씨가 말했다: &amp;quot;이상 세 조목(4-3·4·5)은 모두 '공부는 많이 쌓아야 한다'는 것이니, [그러면] 절로 통달하고 깨우칠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4-3)는 점진적인 궁구(格)이고, 두 번째(4-4)는 안팎을 합하는 궁구(格)이며, 세 번째(4-5)는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궁구(格)이다.&amp;quot;&lt;br /&gt;
&lt;br /&gt;
4-6.&amp;lt;br/&amp;gt;&lt;br /&gt;
&amp;quot;又曰: '格物, 非欲盡窮天下之物, 但於一事上窮盡, 其他可以類推. 至於言孝, 則當求其所以爲孝者如何. 若一事上窮不得, 且别窮一事, 或先其易&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者, 或先其難者, 各隨人淺深. 譬如千蹊萬徑, 皆可以適國, 但得一道而入, 則可以推類而通其餘矣. 蓋萬物各具一理, 而萬理同出一原, 此所以可推而無不通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또 말씀하셨다: '格物은 천하의 사물을 모두 궁구하려는 것이 아니니, 단지 한 사물을 모두 궁구하면 나머지는 유추할 수 있다. 효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이 효 되는 까닭이 무엇인지 궁구해야 한다. 한 사물을 궁구하지 못하면, 우선 달리 한 사물을 궁구하되, 어떤 경우에는 쉬운 것을 우선하고, 어떤 경우에는 어려운 것을 우선해 각각 사람의 수준에 따른다. 비유하자면, 온갖 길로도 모두 도성에 다다를 수 있지만, 하나의 길을 택해 들어가면 유추하여 나머지를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대개 만물은 각각 하나의 이치를 갖추고 있고, 모든 이치는 하나의 근원에서 동일하게 나오니, 이것이 유추해서 통달하지 않음이 없는 까닭이다.'&amp;lt;ref&amp;gt;&amp;lt;이정유서&amp;gt; 15-104 格物窮理, 非是要盡窮天下之物. 但於一事上窮盡, 其他可以類推. 至如言孝, 其所以爲孝者如何, 窮理(一無此二字). 如一事上窮不得, 且別窮一事, 或先其易者, 或先其難者, 各隨人深淺. 如千蹊萬徑, 皆可適國, 但得一道入得便可. 所以能窮者, 只爲萬物皆是一理, 至如一物一事, 雖小, 皆有是理.&amp;lt;/ref&amp;gt;&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既是教人類推, 不是窮盡一事便了. 且如盡得箇孝底道理, 故忠可移於君, 又須盡得忠. 以至兄弟、夫婦、朋友, 從此推之無不盡窮, 始得.&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사람들에게 유추하게 한 이상, 하나의 사물만 모두 궁구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孝라는 도리를 모두 터득했다면, 忠을 임금에게 적용할 수 있지만,&amp;lt;ref&amp;gt;&amp;lt;효경&amp;gt; &amp;lt;廣揚名&amp;gt; 子曰：「君子之事親孝，故忠可移於君。事兄悌，故順可移於長。居家理，故治可移於官。是以行成於內，而名立於後世矣。」&amp;lt;/ref&amp;gt; 다시 忠을 다해야 한다. 형제·부부·친구에 이르기까지 이것으로부터 유추해 모두 궁구하지 않음이 없어야 한다.&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8 問：「程子言：『今日格一件，明日格一件，積習既久，自當脫然有貫通處。』又言：『格物非謂盡窮天下之理，但於一事上窮盡，其他可以類推。』二說如何？」曰：「既是教類推，不是窮盡一事便了。且如孝，盡得箇孝底道理，故忠可移於君，又須去盡得忠。以至於兄弟、夫婦、朋友，從此推之無不盡窮，始得。且如炭，又有白底，又有黑底。只窮得黑，不窮得白，亦不得。且如水雖是冷而濕者，然亦有許多樣，只認冷濕一件也不是格。但如今下手，且須從近處做去。若幽奧紛拏，卻留向後面做。所以先要讀書，理會道理。蓋先學得在這裏，到臨時應事接物，撞著便有用處。且如火爐，理會得一角了，又須都理會得三角，又須都理會得上下四邊，方是物格。若一處不通，便非物格也。」又曰：「格物不可只理會文義，須實下工夫格將去，始得。」&amp;lt;/ref&amp;gt;&lt;br /&gt;
:○問: &amp;quot;程子 '若一事上窮不得, 且别窮一事'之說, 與&amp;lt;中庸&amp;gt;'弗得弗措'相發明否?&amp;quot; 曰: &amp;quot;看來有一様底, 若'弗得弗措', 一向思量這箇, 少間便㑹擔閣&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擔擱】 2. 耽誤.&amp;lt;/ref&amp;gt;了. 若謂窮一事不得, 便掉了别窮一事, 又輕忽了, 也不得. 程子為見學者有恁地底, 不得已說此話.&amp;quot;::물었다: &amp;quot;정자의 '한 사물을 궁구하지 못하면, 우선 달리 한 사물을 궁구하라'는 설과 &amp;lt;중용&amp;gt;의 '터득하지 못했거든 놔두지 말라'는 것은 서로 밝혀주는 것(상호보완적)입니까?&amp;quot; 대답하셨다: &amp;quot;보아하니 [정자의 설과 &amp;lt;중용&amp;gt;의 설에] 공통점이 있다. '터득하지 못해 놔두지 않는다면' 오로지 이것만 생각해 잠깐 사이에 시간을 허비하게 될 것이다. '한 일을 궁구하지 못하면 달리 일을 궁구하지도 않고 또 소홀히 여겨버려라'라고 여겨도 안 된다?? 정자께서는 배우는 자들에게 이러한 점이 있음을 보셨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것이다.&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8 問：「程子『若一事上窮不得，且別窮一事』之說，與中庸『弗得弗措』相發明否？」曰：「看來有一樣底，若『弗得弗措』，一向思量這箇，少間便會擔閣了。若謂窮一事不得，便掉了別窮一事，又輕忽了，也不得。程子為見學者有恁地底，不得已說此話。」&amp;lt;/ref&amp;gt;&lt;br /&gt;
:○問: &amp;quot;致之為言, 推而致之以至於盡也. 於窮不得處正當努力, 豈可遷延&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 退卻， 後退。 &amp;lt;/ref&amp;gt;逃避, 别求一事邪?&amp;quot; 曰: &amp;quot;這是隨人之量, 非曰遷延逃避也. 蓋於此處既理㑹不得, 若專一守在這裏, 却轉昏了. 須著别窮一事, 又或可以因此而明彼也.&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8 問：「伊川論致知處云：『若一事上窮不得，且別窮一事。』竊謂致之為言，推而致之以至於盡也。於窮不得處正當努力，豈可遷延逃避，別窮一事邪？至於所謂『但得一道而入，則可以類推而通其餘矣』。夫專心致志，猶慮其未能盡知，況敢望以其易而通其難者乎？」曰：「這是言隨人之量，非曰遷延逃避也。蓋於此處既理會不得，若專一守在這裏，卻轉昏了。須著別窮一事，又或可以因此而明彼也。」&amp;lt;/ref&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致'라는 말은 미루어 나가 지극한 데 이른다는 것입니다. 궁구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마땅히 노력해야지, 어찌 물러나고 회피해 달리 일을 구해서야 되겠습니까?&amp;quot; 대답하셨다: &amp;quot;이 말은 사람의 역량에 따르라는 것이지, '물러나고 회피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대개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여기서 전일하게 지키기만 한다면 도리어 혼매하게 된다. 모름지기 달리 일을 궁구해야 하고, 또 간혹 이것(달리 궁구한 일)에 기인해 저것(원래 궁구하지 못했던 일)을 알게 될 수도 있다.&amp;quot;&lt;br /&gt;
:○問: &amp;quot;伊川說, 與延平李先生說, 如何?&amp;quot; 曰: &amp;quot;這說自有一項難窮底事, 如造化、禮樂、度數等, 卒急難曉, 只得且放住. 李先生說是窮理之要. 若平常遇事, 這一件理㑹未透, 又理㑹第二件; 第二件理㑹未得, 又理㑹第三件, 恁地終身不長進.&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이천 선생의 설은 연평 선생의 설&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8 問：「延平謂：『為學之初，且當常存此心，勿為他事所勝。凡遇一事，即當且就此事反復推尋以究其極。待此一事融釋脫落，然後別窮一事，久之自當有洒然處。』與伊川『今日格一件，明日格一件』之語不同，如何？」曰：「這話不如伊川說『今日明日』恁地急。卓錄但云：「伊川說得較快。」這說是教人若遇一事，即且就上理會教爛熟離析，不待擘開，自然分解。久之自當有洒然處，自是見得快活。某常說道，天下事無他，只是箇熟與不熟。若只一時恁地約摸得，都不與自家相干，久後皆忘卻。只如借得人家事一般，少間被人取將去，又濟自家甚事！」&amp;lt;/ref&amp;gt;과 비교했을 때 어떻습니까?&amp;quot; 대답하셨다: &amp;quot;이 설(이천의 설)에는 궁구하기 어려운 일이 전제되어 있다. 예를 들어 [만물의] 조화·예악·도수 등은 갑자기 이해하기는 어려우니, 우선 그대로 놔둬야 한다. 연평 선생의 설은 窮理공부의 핵심이다. 평소 일을 마주했을 때 이것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다시 두 번째 것을 이해하고, 두 번째 것을 이해하지 이해하지 못해 다시 세 번째 것을 이해하려 한다면, 이렇게 해서는 죽을 때까지 발전하지 못할 것이다.&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8 仁甫問：「伊川說『若一事窮不得，須別窮一事』，與延平之說如何？」曰：「這說自有一項難窮底事，如造化、禮樂、度數等事，是卒急難曉，只得且放住。且如所說春秋書『元年春王正月』，這如何要窮曉得？若使孔子復生，也便未易理會在。須是且就合理會底所在理會。延平說，是窮理之要。若平常遇事，這一件理會未透，又理會第二件；第二件理會未得，又理會第三件，恁地終身不長進。」&amp;lt;/ref&amp;gt;&lt;br /&gt;
:○問: &amp;quot;'千蹊萬徑, 皆可以適國.' 國是譬理之一原處. 不知從一事上便窮到一原處否?&amp;quot; 曰: &amp;quot;也未解便至如此, 只要以類而推. 理固是一理, 然其間曲折甚多, 須是把這箇做樣子&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 供人效法、模仿的榜樣和式樣。 &amp;lt;/ref&amp;gt;, 却從這裏推去, 始得. 且如事親, 固當盡其事之之道, 若得於親是如何, 不得於親又當如何. 以此而推之於事君, 則知得於君是如何, 不得於君又當如何. 推以事長, 亦是如此. 推去, 莫不皆然.&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온갖 길로도 모두 도성에 다다를 수 있다'에서, '도성'(國)은 하나의 근원으로서의 理를 비유할 것입니다. 잘 모르겠습니다만, 하나의 일에서 하나의 근원을 궁구할 수 있습니까?&amp;quot; 대답하셨다: &amp;quot;물론 바로 이러한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다만 부류에 따라 추론해야 한다. 理는 진실로 하나의 理이지만, 그 안에 디테일이 매우 많으니, 모름지기 이것을 표준으로 삼아 여기서 추론해야 한다. 가령 부모를 섬길 때에는, 예를 들어 부모의 마음에 들었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고, 부모의 마음에 들지 못했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진실로 마땅히 부모 섬기는 도리를 다해야 한다. 이것을 가지고 임금 섬기는 경우에 미루어 적용한다면, 임금의 마음에 들었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고, 임금의 마음에 들지 못했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것이다. 어른을 섬기는 경우에 미루어 적용하는 것도 이와 같다. 미루어 적용한다면 모두 그렇지 않은 경우가 없을 것이다.&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8 陶安國問：「『千蹊萬徑，皆可適國。』國，恐是譬理之一源處。不知從一事上便可窮得到一源處否？」曰：「也未解便如此，只要以類而推。理固是一理，然其間曲折甚多，須是把這箇做樣子，卻從這裏推去，始得。且如事親，固當盡其事之之道，若得於親時是如何，不得於親時又當如何。以此而推之於事君，則知得於君時是如何，不得於君時又當如何。推以事長，亦是如此。自此推去，莫不皆然。」&amp;lt;/ref&amp;gt;&lt;br /&gt;
:○&amp;quot;萬物皆有此理, 理皆同出一原. 但所居之位不同, 則其理之用不一. 如為君須仁, 為臣須敬, 為子須孝, 為父須慈. 物物各具此理, 而物物各具其用, 然莫非一理之流行者也.&amp;quot; 又曰: &amp;quot;近而一身之中, 逺而八荒&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八方荒遠的地方。&amp;lt;/ref&amp;gt;之外, 微而一草一木之衆, 莫不各具此理. 如此四人在坐, 各有這箇道理, 某不用假借於公, 公不用求於某. 然雖各有這一道理, 又却同出於一箇理耳. 如排數器水相似: 這盂也是這樣水, 那盂也是這樣水, 各各滿足, 不待求假於外. 然打破放裏, 也只是這箇水. 此所以可推而無不通也. 所以謂格得多後自能貫通, 只為是一理.&amp;quot;&lt;br /&gt;
:&amp;quot;만물은 모두 이 理를 가지고 있고, 理는 모두 하나의 근원에서 동일하게 나온다. 다만 처한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理의 用이 같지 않은 것이다. 예를 들어, 임금된 자는 仁해야 하고 신하된 자는 공경해야 하며 부모된 자는 자애로워야 한다.&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전3장 為人君，止於仁；為人臣，止於敬；為人子，止於孝；為人父，止於慈；與國人交，止於信。&amp;lt;/ref&amp;gt; 모든 사물은 각각 이 理를 갖추고 있고, 모든 사물은 각각 이 理의 用을 갖추고 있지만, 하나의 用가 유행한 것이 아님이 없다.&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8 德元問：「萬物各具一理，而萬理同出一原。」曰：「萬物皆有此理，理皆同出一原。但所居之位不同，則其理之用不一。如為君須仁，為臣須敬，為子須孝，為父須慈。物物各具此理，而物物各異其用，然莫非一理之流行也。&amp;lt;/ref&amp;gt; 또 말씀하셨다: &amp;quot;가까이로는 일신의 마음으로부터 멀게는 八荒의 바깥, 작게는 한 초목에 이르기까지 각각 이 理를 갖추고 있지 않은 것이 없다. 예를 들어, 여기 자리에 있는 네 사람 각각 이 도리를 가지고 있으니, 나는 그대에게 빌릴 필요가 없고, 그대는 나에게 찾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비록 각각 이 도리를 가지고 있지만, 동일하게 하나의 理에서 나왔을 뿐이다. 마치 여러 그릇에 물을 담는 것과 같아, 이 사발도 이런 물이고 저 사발도 저런 물이니, 각각 가득 차서 밖에서 빌려올 필요가 없다. 그러나 [사발을] 깨뜨리면 이 물일 뿐이다. 이것이 '유추해서 통달하지 않음이 없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궁구(格)한 것이 많아진 뒤에 절로 통달할 수 있는 것은 하나의 理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8 行夫問：「萬物各具一理，而萬理同出一源，此所以可推而無不通也。」曰：「近而一身之中，遠而八荒之外，微而一草一木之眾，莫不各具此理。如此四人在坐，各有這箇道理，某不用假借於公，公不用求於某，仲思與廷秀亦不用自相假借。然雖各自有一箇理，又卻同出於一箇理爾。如排數器水相似；這盂也是這樣水，那盂也是這樣水，各各滿足，不待求假於外。然打破放裏，卻也只是箇水。此所以可推而無不通也。所以謂格得多後自能貫通者，只為是一理。釋氏云：『一月普現一切水，一切水月一月攝。』這是那釋氏也窺見得這些道理。濂溪通書只是說這一事。」&amp;lt;/ref&amp;g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一事上窮盡, 他可類推', 此貫通覺悟之機也. '如言孝則求其所以為孝者如何', 此格物致知要法; '一事上窮不得, 且别窮一事', 此格物致知活法&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 宋 人詩論中提出的學詩所必須掌握的能靈活變通的法則。 &amp;lt;/ref&amp;gt;. '萬物各具一理', 萬物各具之太極也; '萬理同出一原', 萬物統體之太極也. '推而無不通', 則有脫然豁然處矣.&amp;quot;&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한 사물을 궁구하면 나머지는 유추할 수 있다' 이것은 통달하고 깨우치게 되는 계기(機)이다. '효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이 효 되는 까닭이 무엇인지 궁구해야 한다'는 것은 격물치지의 핵심적 방법이다. 하나의 일에서 궁구하지 못하면 우선 달리 일을 궁구하라' 이것은 격물치지의 변통적 방법이다. '만물이 각각 하나의 理를 갖추고 있다'는 것은 '만물이 각각 갖추고 있는 태극'이고, '모든 理가 동일하게 하나의 근원에서 나온다'는 것은 '만물 통체로서의 태극'이다.&amp;lt;ref&amp;gt;&amp;lt;태극해의&amp;gt; 蓋合而言之, 萬物統體一太極也; 分而言之, 一物各具一太極也.&amp;lt;/ref&amp;gt; '유추해서 통달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脫然·豁然한 점이 있다는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4-7.&amp;lt;br/&amp;gt;&lt;br /&gt;
&amp;quot;又曰: '物必有理, 皆所當窮. 若天地之所以髙深, 鬼神之所以幽顯, 是也. 若曰: 天吾知其髙而已矣; 地吾知其深而已矣; 鬼神吾知其幽且顯而已矣, 則是已然之詞, 又何理之可窮哉?'&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또 말씀하셨다: '사물에는 반드시 이치가 있으니, 모두 궁구해야 할 것들이다. 예를 들어, 하늘은 높고 땅은 깊은 까닭이나, 鬼는 숨겨져 있고 神은 드러나는 까닭이 이것이다. 만약 「하늘이 높은 건 알고 있다」, 「땅히 깊다는 건 알고 있다」던가 「鬼가 숨겨져 있고 神은 드러나 있다는 건 알고 있다」고 할 뿐이라면, 이는 기정사실화하는 말이니, 어떤 이치가 궁구할 만한 하겠는가?'&amp;lt;ref&amp;gt;&amp;lt;이정유서&amp;gt; 15-108 物理須是要窮. 若言天地之所以高深, 鬼神之所以幽顯. 若只言天只是高, 地只是深, 只是已辭, 更有甚?&amp;lt;/ref&amp;gt;&amp;lt;br/&amp;gt;&amp;quot;&lt;br /&gt;
&lt;br /&gt;
4-8.&amp;lt;br/&amp;gt;&lt;br /&gt;
&amp;quot;又曰: '如欲爲孝, 則當知所以爲孝之道, 如何而爲奉養&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之宜, 如何而爲温凊&amp;lt;sub&amp;gt;七性反&amp;lt;/sub&amp;gt;之節,&amp;lt;sub&amp;gt;&amp;lt;禮記&amp;gt;凡為人子者, 冬温而夏凊.&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곡례상&amp;gt; 凡為人子之禮：冬溫而夏凊，昏定而晨省，在醜夷不爭。&amp;lt;/ref&amp;gt;&amp;lt;/sub&amp;gt;莫不窮究, 然後能之, 非獨守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孝之一字而可得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또 말씀하셨다: '효를 행하고자 한다면, 효라는 도를 행하는 방법을 알아야 하니, 어떻게 해야 적절한 봉양이 되며, 어떻게 해야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드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드리는」 예절이 되는 지를 궁구하지 않음이 없은 뒤에야 [효를 행할 수] 있으니, 저 「효」(孝) 한 글자만 지켜서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amp;lt;ref&amp;gt;&amp;lt;이정유서&amp;gt; 18-101 問:「必有事焉, 當用敬否?」 曰:「敬只是涵養一事. 必有事焉, 須當集義. 只知用敬, 不知集義, 却是都無事也.」 又問:「義莫是中理否?」 曰:「中理在事, 義在心內. 苟不主義, 浩然之氣從何而生? 理只是發而見於外者. 且如恭敬, 幣之未將也恭敬, 雖因幣帛威儀而後發見於外, 然須心有此恭敬, 然後著見. 若心無恭敬, 何以能爾? 所謂德者得也, 須是得於己, 然後謂之德也.」 幣之未將之時, 已有恭敬, 非因幣帛而後有恭敬也. 問:「敬義何別?」 曰:「敬只是持己之道, 義便知有是有非. 順理而行, 是無義也. 若只守一箇敬, 不知集義, 却是都無事也. 且如欲爲孝, 不成只守著一箇孝字? 須是知所以爲孝之道, 所以侍奉當如何, 溫凊當如何, 然後能盡孝道也.」 又問:「義只在事上, 如何?」 曰:「內外一理, 豈特事上求合義也?」&amp;lt;/ref&amp;gt;&amp;quot;&lt;br /&gt;
:朱子曰: “聖人言孝, 其實精粗本末只是一理. 人皆有良知, 而前此未嘗知者, 只為不曽推去耳. 愛親從兄, 誰無是心? 於此推去, 則温凊定省之事, 亦不過是. 自其所知, 推而至於無所不知, 皆由人推耳.”&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성인께서 말씀하신 孝는 사실 정미한 것이든 거친 것이든, 근본적인 것이든 지엽적인 것이든 단지 하나의 이치일 뿐이다. 사람들은 모두 양지를 가지고 있는데, 이전에 알지 못했던 것은 단지 추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를 사랑하고 형에게 순종하는 것, 누군들 이런 마음이 없겠는가? 이것으로부터 추론한다면,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드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드리며, [밤에는] 이부자리를 정돈해드리고, [아침에는] 안부를 여쭙는 일 역시 이(양지)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아는 것으로부터 추론해 알지 못하는 것이 없는 경지에 이르는 것은 모두 사람이 추론하는 데 말미암는다.&amp;quot;&lt;br /&gt;
:○陳氏曰: “如事親當孝, 非是空守一箇孝字, 必須窮格所以為孝之理當如何. 凡古人事親條目, 皆無一不講, 然後可以實能盡孝.”&lt;br /&gt;
:진씨가 말했다: &amp;quot;예를 들어 '부모를 섬길 때 효성스러워야 한다'는 것은 헛되이, 효 한 글자만 지키라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효라는 이치를 행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궁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개 옛 분들께서 [말씀하신] 부모 섬기는 것에 대한 조목들을 하나도 강론하지 않음이 없은 뒤라야 실제로 효를 다할 수 있다.&amp;quot;&lt;br /&gt;
&lt;br /&gt;
4-9.&amp;lt;br/&amp;gt;&lt;br /&gt;
&amp;quot;或問: '觀物察己者, 豈因見物而反求諸己乎?' 曰: '不必然也. 物我一理, 纔明彼即曉此, 此合&amp;lt;ref&amp;gt;5. 同， 相同；一致。▶ 《易‧乾》： “夫大人者， 與天地合其德， 與日月合其明， 與四時合其序， 與鬼神合其吉凶。” &amp;lt;/ref&amp;gt;内外之道也. 語其大, 天地之所以髙厚; 語其小, 至一物之所以然, 皆學者所宜致思也.' 曰: '然則先求之四端, 可乎?' 曰: '求之情性, 固切於身. 然一草一木, 亦皆有理, 不可不察.'&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혹자가 물었다: '「사물을 살피고 나를 살펴라」라는 것이 어찌 사물을 보고 나서 돌이켜 자신을 탐구하라는 것이겠습니까?' [정자께서] 말씀하셨다: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사물과 나는 하나의 이치[를 갖추고 있으니], 저것(사물)을 알자마자 이것(나)을 알게 되니, 이것이 「안팎으로 일치된 도」이다. 큰 것을 말하자면 「하늘은 높고 땅은 두터운 까닭」과, 작은 것을 말하자면 「한 사물의 소이연」에 이르기까지 모두 배우는 자들이 지극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물었다: '그렇다면 먼저 四端을 궁구해도 괜찮습니까?' [정자께서] 말씀하셨다: '감정이나 본성(情性)을 탐구하는 것이 진실로 자신에게 절실한 것이지만,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이치가 있으니 살피지 않아선 안 된다.'&amp;lt;ref&amp;gt;&amp;lt;이정유서&amp;gt; 18-48 問:「觀物察己, 還因見物, 反求諸身否?」 曰:「不必如此說. 物我一理, 纔明彼卽曉此, 合內外之道也. 語其大, 至天地之高厚; 語其小, 至一物之所以然. 學者皆當理會.」  又問:「致知, 先求之四端, 如何.」 曰:「求之性情, 固是切於身. 然一草一木皆有理, 須是察.」 &amp;lt;/ref&amp;gt;&amp;quot;&lt;br /&gt;
:朱子曰: “‘天地之所以髙厚’, ‘一物之所以然’, 只是舉至大與至細者言之. 學者之窮理, 無一物而在所遺也.”&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하늘은 높고 땅은 두터운 까닭'과 '한 사물의 소이연'은 다만 지극히 큰 것과 지극히 작은 것을 가지고 말씀하신 것이다. 배우는 자의 궁리는 한 사물도 빠뜨리지 않는다.&amp;quot;&lt;br /&gt;
:○問: “格物須合内外始得.” 曰: “未嘗不合. 自家知得物之理如此, 則因其理之自然而應之, 便是合内外之理. 目前事事物物, 皆有至理, 如一草一木、一禽一獸皆有理. 草木春生秋殺, 好生惡死, 仲夏斬陽木, 仲冬斬隂木, 皆是順隂陽道理. 自家知得萬物均氣同體, 見生不忍見死, 聞聲不忍食肉; 非其時不伐一木, 不殺一獸; 胎不殀, 不覆巢, 此便是合内外之道.”&lt;br /&gt;
:물었다: &amp;quot;격물 공부는 '안팎을 일치시켜야' 합니다.&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일치되지 않았던 적이 없다. 사물의 이치가 이러함을 스스로 알았다면, 본래의 이치에 따라 응하는 것이 '안팎의 이치를 일치시키는 것'이다. 눈앞의 사물마다 모두 지극한 이치를 가지고 있으니, 예를 들어 한 포기 풀과 한 그루 나무, 한 마리의 금수 모두 이치를 가지고 있다. '초목이 봄에 나서 가을에 시들고',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며', '仲夏에는 陽木을 베고 仲冬에는 隂木을 베는 것'&amp;lt;ref&amp;gt;&amp;lt;주례&amp;gt; &amp;lt;지관사도&amp;gt; 仲冬斬陽木，仲夏斬陰木。&amp;lt;/ref&amp;gt; 모두 음양의 도리를 따르는 것이다. 만물이 氣를 공유하는 한 몸임을 스스로 안다면, '살아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죽는 걸 보지 못하고, [살아있는 금수의] 울음 소리를 듣고 차마 그 고기를 먹지 못하며',&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양혜왕상&amp;gt; 7. 君子之於禽獸也，見其生，不忍見其死；聞其聲，不忍食其肉。是以君子遠庖廚也。&amp;lt;/ref&amp;gt; '제때가 아니라면 나무 한 그루도 베지 않고 짐승 한 마리고 죽이지 않고',&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양혜왕상&amp;gt; 3. 不違農時，穀不可勝食也；數罟不入洿池，魚鼈不可勝食也；斧斤以時入山林，材木不可勝用也。&amp;lt;/ref&amp;gt; '새끼를 죽이지 않고 둥지를 엎지 않으니',&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왕제&amp;gt; 昆蟲未蟄，不以火田，不麑，不卵，不殺胎，不殀夭，不覆巢。&amp;lt;/ref&amp;gt; 이것이 '안팎을 일치시키는 도'이다.&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5 問：「格物須合內外始得？」曰：「他內外未嘗不合。自家知得物之理如此，則因其理之自然而應之，便見合內外之理。目前事事物物，皆有至理。如一草一木，一禽一獸，皆有理。草木春生秋殺，好生惡死。『仲夏斬陽木，仲冬斬陰木』，皆是順陰陽道理。砥錄作「皆是自然底道理」。自家知得萬物均氣同體，『見生不忍見死，聞聲不忍食肉』，非其時不伐一木，不殺一獸，『不殺胎，不殀夭，不覆巢』，此便是合內外之理。」&amp;lt;/ref&amp;gt;&lt;br /&gt;
&lt;br /&gt;
4-10.&amp;lt;br/&amp;gt;&lt;br /&gt;
“又曰: ‘致知之要, 當知至善之所在, 如父止於慈, 子止於孝之類. 若不務此而徒欲汎然&amp;lt;ref&amp;gt;【泛然】 5. 空泛；浮淺， 不深入。 &amp;lt;/ref&amp;gt;以觀萬物之理, 則吾恐其如大軍之遊騎&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出太逺而無所歸也&amp;lt;br/&amp;gt;&lt;br /&gt;
&amp;quot;[정자께서] 또 말씀하셨다: '致知의 핵심은 至善의 소재를 아는 것이니, 예를 들면 '부모는 자애로움(慈)에 머물고, 자식은 효성스러움(孝)에 머무는 것'&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전3장 為人子，止於孝；為人父，止於慈；&amp;lt;/ref&amp;gt; 따위와 같다. 만약 이런 것에 힘쓰지 않고 그저 막연하게 만물의 이치만 관찰하려고 한다면, 나는 그러한 것이 대군의 遊騎가 너무 멀리 나가 돌아오지 않는 것과 같을까 염려스럽다.'&amp;lt;ref&amp;gt;&amp;lt;이정유서&amp;gt; 07-60 致知, 但知止於至善·爲人子止於孝·爲人父止於慈之類, 不須外面, 只務觀物理, 汎然正如遊騎無所歸也.&amp;lt;/ref&amp;gt;&amp;quot;&lt;br /&gt;
:朱子曰: “格物之論, 伊川意雖謂眼前無非是物, 然其格之也, 亦須有緩急先後之序. 如今為學而不窮天理、明人倫、論聖言、通世故, 乃兀然存心於一草木、器用之間, 此是何學問?”&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格物에 대한 이야기에서, 이천 선생의 뜻은 '비록 눈앞에 사물이 아닌 것이 없지만, 그것을 궁구(格)하는 경우에 역시 선후의 차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지금 학문을 한다면서 천리를 궁구하지도, 인륜을 밝히지도, 성인의 말씀을 논하지도, 세상 일을 이해하지도 않고 그저 우두커니 초목이나 기물에 마음을 쏟는다면, 이것이 무슨 학문이겠는가?&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대전&amp;gt; 권39 &amp;lt;答陳齊仲&amp;gt; 格物之論, 伊川意雖謂眼前無非是物, 然其格之也, 亦須有緩急先後之序, 豈遽以爲存心於一草木器用之間而忽然懸悟也哉? 且如今爲此學而不窮天理、明人倫、講聖言、通世故, 乃兀然存心於一草木․一器用之間, 此是何學問?&amp;lt;/ref&amp;gt;&lt;br /&gt;
:○天下之理, 偪塞滿前, 耳之所聞、目之所見, 無非物也. 若之何而窮之哉? 須當察之於心, 使此心之理既明, 然後於物之所在, 從而察之, 則不至於汎濫矣.&lt;br /&gt;
:천하의 이치는 눈앞에 가득차 있어서, 귀에 들리는 것과 눈에 보이는 것 가운데 사물 아닌 것이 없다. 이 [많은] 것들을 어떻게 궁구할까? 마음을 살펴 이 마음의 이치가 밝아진 연후에 사물의 소재를 이어 살펴야 하니, 그렇게 한다면 압도당하지 않을 것이다.&amp;quot;&lt;br /&gt;
:○致知一章, 是&amp;lt;大學&amp;gt;最初下手處. 若理㑹透徹, 後面便容易. 故程子此處說得節目甚多, 皆是因人之資質了說, 雖若不同, 其實一也. 見敏者太去理㑹外事, 則教之去父慈子孝上理㑹, 曰: ‘若不務此而徒泛觀萬物之理, 恐如遊騎出太逺而無所歸’; 見人專去裏面理㑹, 則教之以 ‘求之性情, 固切於身, 然一草木亦皆有理.’ 要之, 内事外事皆是自已合當理㑹底. 但須是六七分去裏面理㑹, 三四分去外面理㑹, 方可. 若是工夫中半時, 亦自不可, 况在外面工夫多, 在内工夫少邪? 此尤不可也.”&lt;br /&gt;
:致知장은 &amp;lt;대학&amp;gt;에서 가장 먼저 힘써야 할 곳이다. 만약 투철하게 이해했다면, 그 뒤에는 쉬워질 것이다. 그러므로 정자께서 이것에 대해 말씀하신 조목이 매우 많으니, 이 모두는 사람의 자질에 따라 말씀하신 것으로 비록 다른 것 같지만 사실 한 가지이다. 명민한 자가 바깥 일을 지나치게 이해한 것을 보시고는 '부모는 자애로움(慈)에 머물고, 자식은 효성스러움(孝)에 머무는 것'을 이해하게 하시고는, '만약 이런 것에 힘쓰지 않고 그저 막연하게 만물의 이치만 관찰하려고 한다면, 나는 그러한 것이 대군의 遊騎가 너무 멀리 나가 돌아오지 않는 것과 같을까 염려스럽다'고 말씀하셨고, 어떤 사람이 오로지 내면을 이해하려는 것을 보시고는 '감정이나 본성(情性)을 탐구하는 것이 진실로 자신에게 절실한 것이지만,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이치가 있다'고 가르치셨다. 요컨대, 안팎의 일 모두 스스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6-70% 정도는 내면을 이해하고, 3-40% 정도는 외면을 이해해야 괜찮을 것이다. [안팎의] 공부가 반반일 때에도 안 되는데, 하물며 외면 공부는 많고 내면 공부는 적을 때는 어떻겠는가? 이는 더욱 안 된다.&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8 「致知」一章，此是大學最初下手處。若理會得透徹，後面便容易。故程子此處說得節目最多，皆是因人之資質耳。雖若不同，其實一也。見人之敏者，太去理會外事，則教之使去父慈、子孝處理會，曰：「若不務此，而徒欲汎然以觀萬物之理，則吾恐其如大軍之遊騎，出太遠而無所歸。」若是人專只去裏面理會，則教之以「求之情性，固切於身，然一草一木，亦皆有理」。要之，內事外事，皆是自己合當理會底，但須是六七分去裏面理會，三四分去外面理會方可。若是工夫中半時，已自不可。況在外工夫多，在內工夫少耶！此尤不可也。」&amp;lt;/ref&amp;gt;&lt;br /&gt;
&lt;br /&gt;
4-11.&amp;lt;br/&amp;gt;&lt;br /&gt;
“又曰: ‘格物莫若察之於身, 其得之尤切.’”&amp;lt;br/&amp;gt;&lt;br /&gt;
&amp;quot;[정자께서] 또 말씀하셨다: '格物 [공부로는] 자신을 살펴 터득한 것이 더욱 절실한 것 만한 것이 없다.'&amp;lt;ref&amp;gt;&amp;lt;이정유서&amp;gt; 17-07 「致知在格物」, 格物之理, 不若察之於身, 其得尤切.&amp;lt;/ref&amp;gt;&amp;quot;&lt;br /&gt;
:朱子曰: “前既說 ‘當察物理, 不可專在性情’; 至此又言 ‘莫若察之於身為尤切’, 皆是互相發處.”&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앞에서는 사물의 이치를 살펴야지 性情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고, 여기서는 다시 '자신을 살피는 것이 더욱 절실함 만한 것이 없다'고 말씀하시니, 두 가지는 상호보완적이다.&amp;quot;&lt;br /&gt;
:○王氏曰: “前數條是推開去&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  用在動詞後。 表示擴大或擴展。; 3.  用在動詞後。 表示開始並繼續下去。 ; 4. 用在動詞後。 表示分開或離開。 &amp;lt;/ref&amp;gt;用工; 此兩條是収歸來用工, 皆隨人偏處教他.”&lt;br /&gt;
:왕씨가 말했다: &amp;quot;앞의 여러 조목(4-3~9)은 확장해나가는 공부이고, 이 두 조목(4-10, 11)은 수렴하는 공부이니, 모두 사람의 치우친 점에 따라 그를 가르치신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此九條者, 皆言格物致知所當用力之地、與其次第工程也.”&amp;lt;br/&amp;gt;&lt;br /&gt;
&amp;quot;이 아홉 조목(4-3~11)은 모두 '格物致知에서 힘써야 할 것과 그 순서·과정을 말한 것이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用力之地’者, ‘讀書’、‘應接事物’之類, 是也; ‘次第工程’者, ‘今日格一物, 明日又格一物’之類, 是也.”&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힘써야 할 것'이라는 것은 '독서'(4-3)나 '사물에 응대하는 것'(4-3) 따위가 이것이고, '순서·과정'이라는 것은 '오늘 한 사물을 궁구(格)하고 내일 또 한 사물을 궁구한다'(4-3)는 것이 이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4-12.&amp;lt;br/&amp;gt;&lt;br /&gt;
“又曰: ‘格物窮理, 但立誠意以格之. 其遲速, 則在乎人之明暗耳.’”&amp;lt;br/&amp;gt;&lt;br /&gt;
&amp;quot;[정자께서] 또 말씀하셨다: '格物窮理는 다만 誠意를 확립하고서 궁구(格)하는 것이다. 格物窮理의 속도는 사람의 현명함에 달려있을 뿐이다.'&amp;lt;ref&amp;gt;&amp;lt;이정유서&amp;gt; 22上-03 又問:「如何是格物?」先生曰:「格, 至也, 言窮至物理也.」又問:「如何可以格物?」曰:「但立誠意去格物, 其遲速卻在人明暗也. 明者格物速, 暗者格物遲.」&amp;lt;/ref&amp;gt;&amp;quot;&lt;br /&gt;
:問: “‘知至而後意誠’, 而程子又云: ‘格物窮理, 但立誠意以格之’, 何也?” 朱子曰: “此誠字說較淺, 未說得深處. 只是確定其志, 朴實去做工夫, 如胡氏 ‘立志以定其本’便是. 這意此與經文誠意之說不同也.” 又曰: “誠意不立, 如何能格物? 所謂 ‘立誠意’者, 只是要著實下工夫, 不要若存若亡. 遇一物, 須是眞箇即此一物, 究極得箇道理了, 方可言格. 若 ‘物格而後知至, 知至而後意誠’, &amp;lt;大學&amp;gt;蓋言其所止之序. 其始則必在於立誠.”&lt;br /&gt;
:물었다: &amp;quot;[&amp;lt;대학&amp;gt;의 가르침에 따르면] ‘앎이 지극해진 이후에 뜻이 진실해지는데'(知至而後意誠), 정자께서는 도리어 '格物窮理는 다만 誠意하고서 궁구(格)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정자께서 말씀하신] '誠'자의 [의미는 &amp;lt;대학&amp;gt;의 '誠意'에 비해] 비교적 가벼우니(淺) 무겁게(深) 말해서는 안 된다. [정자의 말씀은] 다만 자신의 뜻을 확정하고 착실하게 공부하라는 것이니, 호오봉이 말한 '뜻을 세우고서 근본을 정초한다'&amp;lt;ref&amp;gt;&amp;lt;예기집설&amp;gt; 五峯胡氏曰: &amp;quot;人非生而知之, 則其所知皆縁事物而知. 故迷於事物, 流蕩失中, 無所攸止. 然所謂事物者, 乃人生所不可無而亦不能掃滅使之無者也. 故儒之道, 即事即物, 不厭不棄, 必身親格之以精其知焉. 格之之道, 立志以定其本, 而居敬以持其志. 志立乎事物之表而敬行乎事物之内, 則物可格而知可精矣.&amp;quot;&amp;lt;/ref&amp;gt;는 것이 이것이다. 이 뜻은 [&amp;lt;대학&amp;gt;] 경문의 '誠意'설과 다르다.&amp;quot; 또 말씀하셨다: &amp;quot;誠意가 확립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格物하겠는가? [정자께서] 말씀하신 ‘立誠意’라는 것은 다만 착실히 공부하라는 것이요, [뜻이] 있는 듯 없는 듯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사물을 마주했을 때 이 사물에 진정으로 다가가 도리를 모두 궁구해야 '格'이라고 할 수 있다. ‘物格而後知至, 知至而後意誠’은 &amp;lt;대학&amp;gt;에서 머무를 바의 차례를 말한 것이니, 그 시작은 반드시 '立誠'에 달려있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立誠意, 即主敬之謂.”&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정자의] '誠意를 확립한다'는 것은 바로 '主敬'을 말한다.&amp;quot;&lt;br /&gt;
&lt;br /&gt;
4-13.&amp;lt;br/&amp;gt;&lt;br /&gt;
“又曰: ‘入道莫如敬. 未有能致知而不在敬者.’”&amp;lt;br/&amp;gt;&lt;br /&gt;
&amp;quot;[정자께서] 또 말씀하셨다: '道로 들어가는 [방법으로] 敬만한 것이 없다. 능히 致知하면서 敬에 있지 않은 경우는 없다.'&amp;lt;ref&amp;gt;&amp;lt;이정유서&amp;gt; 03-98 入道莫如敬, 未有能致知而不在敬者. 今人主心不定, 視心如寇賊而不可制, 不是事累心, 乃是心累事. 當知天下無一物是合少得者, 不可惡也.&amp;lt;/ref&amp;gt;&amp;quot;&lt;br /&gt;
:朱子曰: “今人將持敬致知來做兩事, 持敬時只塊然獨坐, 更不去思量; 却是今日持敬, 明日去思量道理也, 豈可如此? 但一面自持敬, 一面自思量道理, 二者本不相妨.”&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요즘 사람들은 '持敬'과 '致知'를 두 가지로 여겨, '持敬'할 때에는 그저 우두커니 홀로 앉아 전혀 사유하지 않거나, 아니면 오늘은 '持敬'하고 내일은 도리를 생각하니, 어찌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다만 한편으로는 '持敬'하고, 한편으로는 도리를 생각해야하니, 두 가지는 본래부터 서로 방해하지 않는다.&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17. 又曰：「今人將敬、致知來做兩事。特敬時只塊然獨坐，更不去思量；卻是今日持敬，明日去思量道理也！豈可如此？但一面自持敬，一面去思慮道理，二者本不相妨。」&amp;lt;/ref&amp;gt;&lt;br /&gt;
:○莫若且收歛身心, 盡掃雜慮, 令其光明洞逹, 方能作得主宰, 方能見理.&lt;br /&gt;
:우선 몸과 마음을 수렴해 잡생각을 모두 없애 빛나는 것이 훤히 비치게 하는 것 만한 것이 없으니, [그렇게 하면] 비로소 주재를 세울 수 있고, 비로소 이치를 깨우칠 수 있다.&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28. 某以為諸公莫若且收斂身心，盡掃雜慮，令其光明洞達，方能作得主宰，方能見理。不然，亦終歲而無成耳。&amp;lt;/ref&amp;gt;&lt;br /&gt;
&lt;br /&gt;
4-14.&amp;lt;br/&amp;gt;&lt;br /&gt;
“又曰: ‘涵養須用敬, 進學則在致知.’”&amp;lt;br/&amp;gt;&lt;br /&gt;
&amp;quot;[정자께서] 또 말씀하셨다: '함양할 때는 敬해야 하고, 학문을 진전시키는 것은 致知에 달려있다.'&amp;lt;ref&amp;gt;&amp;lt;이정유서&amp;gt; 8-28 涵養須用敬, 進學則在致知.&amp;lt;/ref&amp;gt;&amp;quot;&lt;br /&gt;
:朱子曰: “學者工夫, 惟在居敬窮理二事. 此二事互相發. 能窮理, 則居敬工夫日益進; 能居敬, 則窮理工夫日益密.”&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배우는 자의 공부는 오직 '居敬'과 '窮理' 두 가지에 달려있을 뿐이다. 이 두 가지는 상호보완적이다. 능히 窮理한다면 居敬 공부가 날로 발전될 것이고, 능히 居敬한다면 窮理공부가 날로 치밀해질 것이다.&amp;quot;&lt;br /&gt;
:○問涵養在致知之先. 曰: “涵養合下在先. 古人從少以敬涵養, 父兄漸教之讀書、識義理. 今若說 ‘待涵養了, 方去致知’, 也無限期. 須兩下用工.”&lt;br /&gt;
:'함양이 致知보다 우선한다'는 것에 대해 물었다.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함양이 원래 우선한다. 옛 분들은 어려서부터 敬으로 함양하시고, 부형이 점진적으로 책을 읽게 해 의리를 알게 하셨다. 만약 '함양하고나서야 致知한다'고 말한다면 기약이 없을 것이니, 둘 다 공부해야 한다.&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8. 任道弟問：「或問，涵養又在致知之先？」曰：「涵養是合下在先。古人從小以敬涵養，父兄漸漸教之讀書，識義理。今若說待涵養了方去理會致知，也無期限。須是兩下用工，也著涵養，也著致知。伊川多說敬，敬則此心不放，事事皆從此做去。」&amp;lt;/ref&amp;gt;&lt;br /&gt;
:○涵養本原、思索義理, 須用齊頭&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tou] 3. 名詞後綴。 接於形容詞詞根之後。 ▶ 《朱子語類》卷二一： “眾人只是樸實頭不欺瞞人， 亦謂之忠。” &amp;lt;/ref&amp;gt;做, 方能互相發. 程子下須字、在字便是要齊頭著力.&lt;br /&gt;
:본원을 함양하고 의리를 사색하는 것은 병행해야 서로 보완할 수 있다. 정자께서 '須'자와 '在'자를 쓰신 것이 바로 둘다 똑같이 힘쓰라는 것이다.&amp;quot;&lt;br /&gt;
:○問: “涵養、體認、致知、力行, 雖云互相發明, 然畢竟當於甚處著力?” 曰: “四者不可先後, 又不可無先後. 須當以涵養為先. 若不涵養而專於致知, 則是徒然思索; 若專於涵養而不致知, 則却鶻突去了. 以某觀之, 四事只是三事, 盖體認便是致知也.”&lt;br /&gt;
:물었다: &amp;quot;'涵養'·'體認'·'致知'·'力行'에 대해 비록 '상호보완적'이라고 말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어디에 힘써야 합니까?&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네 가지는 차례지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차례가 없을 수도 없다. 모름지기 함양을 우선해야 한다. 만약 함양하지 않고 致知에 전념한다면 이는 헛된 사색일 뿐이고, 함양만 하고 致知하지 않으면 도리어 멍청해진다. 내가 보기에, 네 가지는 세 가지일 뿐이니, '體認'은 곧 '致知'이다.&amp;quot;&lt;br /&gt;
:○無事時, 且存養在這裏, 提撕警覺, 不要放肆. 到那講習應接, 便當思量義理, 用義理做將去. 無事便著存養收拾此心.&lt;br /&gt;
:특별한 일이 없을 때에는 일단 내면을 존양해야 하니, 가볍게 일깨워 나태하지 않게 해야 한다. 강습하고 [외물에] 대응하게 되면, 마땅히 의리를 생각해 의리대로 행해야 한다. 특별한 일이 없을 때에는 이 마음을 존양·수습하라.&lt;br /&gt;
&lt;br /&gt;
&lt;br /&gt;
4-15.&amp;lt;br/&amp;gt;&lt;br /&gt;
“又曰: ‘致知在乎所養, 養知&amp;lt;ref&amp;gt;&amp;lt;莊子&amp;gt; &amp;lt;繕性&amp;gt; 古之治道者，以恬養知； &amp;lt;/ref&amp;gt;莫過於寡欲.’”&amp;lt;br/&amp;gt;&lt;br /&gt;
&amp;quot;[정자께서] 또 말씀하셨다: ' 致知는 함양하는 바에 달려있으니, 知를 함양하는 [방법으론] 욕심을 줄이는 것만한 것이 없다.'&amp;quot;&amp;lt;ref&amp;gt;&amp;lt;이정외서&amp;gt; 2-66 &amp;quot;致知在格物&amp;quot;, 格, 至也; 物, 事也. 事皆有理, 至其理, 乃格物也. 然致知在所養, 養知莫過於寡欲二字. &amp;lt;正叔&amp;gt; &amp;lt;/ref&amp;gt;&lt;br /&gt;
:問: “養知是既知後如此養否?” 朱子曰: “此不分先後. 未知之前, 若不養之, 此知如何養得? 既知之後, 若不養, 又差了. 不可道未知之前便不必如此.”&lt;br /&gt;
:물었다: &amp;quot;'養知'는 '안 뒤에 이렇게 함양한다'는 겁니까?'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養知'는 선후를 나누지 않는다. 아직 모를 때 知를 함양하지 않는다면 이 知를 어떻게 함양할 수 있겠는가? 알고 나서 함양하지 않는다면 또 잘못된다. '아직 모를 때 이렇게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선 안 된다.&amp;quot;&lt;br /&gt;
:○致知者, 推致其知識而至於盡也. 將致知者, 必先有以養其知; 有以養之, 則所見益明, 所得益固. 欲養其知者, 惟寡欲而已矣. 欲寡則無紛櫌之雜而知益明矣; 無變遷之患而得益固者矣.” 又曰: “二者自是箇兩頭說話, 本若無相干. 但得其道, 則交相為養; 失其道, 則交相為害.”&lt;br /&gt;
:致知라는 것은 자신의 지식을 확충해 지극한 수준에 이르는 것이다. 致知하려는 자는 먼저 자신의 知를 함양해야 한다. 知를 함양할 수 있다면, 알게 되는 것이 더욱 분명해지고, 터득한 것이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자신의 知를 함양하고자 하는 자는 다만 욕심을 줄일 뿐이다. 욕심을 줄이면 어지러운 잡생각이 없어져 知가 더욱 밝아지고, 오락가락한 근심이 없어져 터득한 것이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amp;quot; 또 말씀하셨다: &amp;quot;두 가지(致知와 養知)는 별개의 이야기로 본래부터 상관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제대로 하면 서로 길러주겠지만, 제대로 하지 않으면 서로 방해가 될 것이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欲致知, 固在有所養. 知既至, 又不可無所養. 欲多, 則心無所養而知昏; 欲寡, 則心有所養而知明.”&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致知하고자 한다면, [致知의 성패는] 진실로 함양하는 바에 달려있다. 知가 이미 지극하더라도 함양하는 바가 없어선 안 된다. 욕심이 많으면 마음에 함양한 것이 없어 知가 어두워지고, 욕심이 적으면 마음에 함양한 것이 있어 知가 밝아진다.&amp;quot;&lt;br /&gt;
&lt;br /&gt;
4-16.&amp;lt;br/&amp;gt;&lt;br /&gt;
“又曰: ‘格物者, 適道之始. 思欲格物, 則固已近道矣. 是何也? 以收其心而不放也.’”&amp;lt;br/&amp;gt;&lt;br /&gt;
&amp;quot;[정자께서] 또 말씀하셨다: '格物이라는 것은 道로 나아가는 시작이다. 格物하려고 생각하면 진실로 이미 道에 가까운 것이다. 이는 어째서인가? 자신의 마음을 수렴해 놓아버리지 않기 때문이다.&amp;quot;&amp;lt;ref&amp;gt;&amp;lt;이정유서&amp;gt; 25-01 大學曰:「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人之學莫大於知本末終始. 致知在格物, 則所謂本也, 始也; 治天下國家, 則所謂末也, 終也. 治天下國家, 必本諸身, 其身不正而能治天下國家者無之. 格猶窮也, 物猶理也, 猶曰窮其理而已也. 窮其理, 然後足以致之, 不窮則不能致也. 格物者適道之始, 欲思格物, 則固已近道矣. 是何也? 以收其心而不放也.&amp;lt;/ref&amp;gt;&lt;br /&gt;
:新安陳氏曰: “纔思量要格物, 便已近道, 只就格物上便可收其放心. 此條與上四條微不同.”&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格物하려고 생각하자마자 이미 道에 가까워지니, 格物에 자신의 놓아버린 마음을 수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조목(4-16)은 이전의 네 조목(4-12~15)과 조금 다르다.&amp;quot;&amp;lt;ref&amp;gt;4-12~15조목은 경공부와 격물치지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말하고 있다면, 4-16조목은 격물 공부 자체가 일종의 경공부라고 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此五條者, 又言涵養本原之功, 所以爲格物致知之本者也. 凡程子之爲說者不過如此, 其於格物致知之傳詳矣.”&amp;lt;br/&amp;gt;&lt;br /&gt;
&amp;quot;이 다섯 조목(4-12~16)은 또 본원을 함양하는 공부가 격물치지의 근본이 된다는 것을 말한다. 무릇 정자께서 [格物致知에 대해] 말씀하신 것은 이러한 것에 지나지 않으니, 格物致知의 전문(전5장)에 대해 상세하다.&amp;quot;&lt;br /&gt;
:問程子致知格物之說不同. 曰: “當時答問, 各就其人而言之. 今須是合就許多不同處來看作一意為佳. 且如既言 ‘不必盡窮天下之物’, 又云: ‘一草一木亦皆有理.’ 今若以一草一木上理㑹, 有甚了期&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 盡頭。 ▶ 宋 晏幾道 《長相思》詞： “若問相思甚了期， 除非相見時。”&amp;lt;/ref&amp;gt;? 但其間有 ‘積習多後, 自當脫然有貫通處’者, 為切當耳. 今以十事言之, 若理㑹得七八件, 則那兩三件觸類可通; 若四旁都理㑹得, 則中間所未通者, 其道理亦是如此. 蓋長短小大, 自有凖則. 如忽然遇一件事來時, 必知某事合如此, 某事合如彼, 則此方來之事亦有可見者矣. 聖賢於難處之事, 只以數語盡其曲折, 後人皆不能易者, 以其於此理素明故也.” 又曰: “所謂格物者, 常人於此理或能知一二分, 即其一二分之所知者推之, 直要推到十分, 窮得來無去處, 方是格物.”&lt;br /&gt;
:정자의 格物致知에 대한 설이 같지 않은 것에 대해 물었다.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당시의 문답은 각각 질문자에 다라 대답하신 것이다. 지금은 다양하게 다른 것들을 모아 하나의 의미로 만들어야 좋을 것이다. 가령 [정자께서] '천하 사물을 모두 궁구할 필요는 없다'(4-5)고 말씀하셔놓고 다시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이치가 있다'(4-9)고 말씀하셨다. 만약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서 이해'한다면, 언제 끝나겠는가? 다만 그 사이에 '점진적으로 익힌 것이 많아지고 나면 절로 응당 脫然하게 통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4-5)라는 말이 있어 적당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열 가지 일로 말하자면, 만약 7~8개를 이해했다면, 나머지 2-3개는 '부류에 따라 이해할 수 있고',&amp;lt;ref&amp;gt;&amp;lt;주역&amp;gt; &amp;lt;계사상&amp;gt; 八卦而小成，引而伸之，觸類而長之，天下之能事畢矣。; &amp;lt;한어대사전&amp;gt; 【觸類旁通】 《易‧繫辭上》： “引而伸之， 觸類而長之。”又《乾》： “六爻發揮， 旁通情也。”後以“觸類旁通”謂掌握了某一事物規律， 就能推知同類事物。 &amp;lt;/ref&amp;gt; 사방을 모두 이해했다면 아직 이해하지 못한 중간도 그 도리는 역시 이것(상방)과 같을 뿐이다. 대개 긴 것이든 짧은 것이든,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모두 [일정한] 준칙이 있다. 우연히 어떤 일을 만났을 때, 반드시 '어떤 일은 이렇게 해야 하고, 어떤 일은 저렇게 해야 함'을 알고 있다면, 방금 다가온 이 일에도 알 수 있는 점이 있을 것이다. 성현께서는 대처하기 어려운 일에 대해 단지 몇 마디로 그 디테일을 모두 표현하시고 후인들이 누구도 그것을 바꾸지 못하는 것은, 성현께서 이 이치에 대해 밝으셨기 때문이다.&amp;quot; 또 말씀하셨다: &amp;quot;이른바 格物이라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이 이치에 대해 혹 10~20% 정도 알 수 있다면, 이 10~20% 아는 것에서 확충해 바로 100%에 이르려고 하는 것이니, 궁구해 더이상 갈 곳이 없어야 格物이다.&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8. 或問程子致知、格物之說不同。曰：「當時答問，各就其人而言之。今須是合就許多不同處，來看作一意為佳。且如既言『不必盡窮天下之物』，又云『一草一木亦皆有理』。今若於一草一木上理會，有甚了期。但其間有『積習多後自當脫然有貫通處』者為切當耳。今以十事言之，若理會得七八件，則那兩三件觸類可通。若四旁都理會得，則中間所未通者，其道理亦是如此。蓋長短大小，自有準則。如忽然遇一件事來時，必知某事合如此，某事合如彼，則此方來之事亦有可見者矣。聖賢於難處之事，只以數語盡其曲折，後人皆不能易者，以其於此理素明故也。」又云：「所謂格物者，常人於此理，或能知一二分，即其一二分之所知者推之，直要推到十分，窮得來無去處，方是格物。」&amp;lt;/ref&amp;gt;&lt;br /&gt;
:○問: “伊川說格物致知許多項, 當如何看?” 曰: “說得已自分曉. 如初間說知覺及誠敬, 固不可不勉; '然天下之理必先知之而後有以行之', 這許多說不可不格物致知; 中間說 '物物當格'、及'反之吾身'之說, 却是指出格物箇&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9. 助詞。 相當於“的”用在定語後面。 表示領屬。 &amp;lt;/ref&amp;gt;地頭&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3. 處所；地方。&amp;lt;/ref&amp;gt;如此.” 又曰: “此項兼兩意, 又見節次&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 逐次；逐一。▶ 宋 朱熹 《勸農文》之一： “其塍畔斜生茅草之屬， 亦須節次芟削， 取令凈盡， 免得分耗土力。” &amp;lt;/ref&amp;gt;格處. 自 ‘立誠意以格之’以下, 却是做工夫合如此.” 又曰: “用誠敬涵養為格物致知之本.”&lt;br /&gt;
:물었다: &amp;quot;이천 선생께서 格物致知에 대해 말씀하신 많은 조목들을 어떻게 봐야 합니까?&amp;quot; 대답하셨다: &amp;quot;[정자께서] 말씀하신 것이 매우 분명하다. 처음에 致知와 깨우침(4-1) 그리고 誠敬에 대해 말씀하신 것(4-2)은 '진실로 힘쓰지 않아선 안 된다'는 것이고, '그러나 천하의 이치는 필시 먼저 안 뒤에 행할 수 있다'(4-2) 이 여러 말은 '格物致知하지 않아선 안 된다'는 것이며, 중간에 '사물마다 궁구(格)해야 한다'(4-3)와 '내 자신을 반성한다'(4-11)고 말씀하신 것은 '격물하는 대상이 이와 같음'을 가리킨 것이다.&amp;quot; 또 말씀하셨다: &amp;quot;이 항목(??)은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고, 또 하나하나 궁구(格)함을 알 수 있다??  ‘立誠意以格之’ 이하(4-11)는 '공부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amp;quot;  또 말씀하셨다: &amp;quot;誠敬으로 함양하는 것을 格物致知의 근본으로 삼은 것이다.&amp;quo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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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今也尋其義理, 既無可疑; 考其字義, 亦皆有據. 至以他書論之, 則&amp;lt;文言&amp;gt;所謂學聚問辨&amp;lt;sub&amp;gt;&amp;lt;易&amp;gt; &amp;lt;文言&amp;gt; &amp;quot;學以聚之, 問以辨之, 寛以居之, 仁以行之.&amp;quot;&amp;lt;/sub&amp;gt; 、 &amp;lt;中庸&amp;gt;所謂明善擇善、&amp;lt;孟子&amp;gt;所謂知性知天, 又皆在乎固守力行之先, 而可以驗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amp;lt;大學&amp;gt;始教之功爲有在乎此也. 愚嘗反覆考之而有以信其必然. 是以竊取其意以補傳文之缺. 不然則又安敢犯不韙之罪, 爲無證之言, 以自託於聖經賢傳之間乎?&amp;lt;sub&amp;gt;韙, 音偉, 是也. ‘犯不韙’之說, 出&amp;lt;春秋左氏傳&amp;gt;.&amp;lt;/sub&amp;gt;&amp;lt;br/&amp;gt;&lt;br /&gt;
&amp;quot;[내가 위와 같이 정자의 설을 빌려 '格物致知'를 설명했는데], 이제 [정자 설의] 의미를 살펴보건대 의심할 것이 없고, [정자가 규정한 '格物致知'의] 문자적 뜻을 살펴봐도 모두 근거가 있다. 다른 책으로 논해본다면, &amp;lt;문언&amp;gt;에서 말한 '學聚問辨', &amp;lt;중용&amp;gt;에서 말한 '明善擇善',&amp;lt;ref&amp;gt;&amp;lt;중용장구&amp;gt; 20장. 誠身有道：不明乎善，不誠乎身矣。…… 誠之者，擇善而固執之者也。&amp;lt;/ref&amp;gt; &amp;lt;맹자&amp;gt;에서 말한 '知性知天'&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진심상&amp;gt; 1. 孟子曰：「盡其心者，知其性也。知其性，則知天矣。&amp;lt;/ref&amp;gt;도 모두 '굳게 지키고 힘써 실천하는 것'의 앞에 있으니, &amp;lt;대학&amp;gt;의 첫 가르침에 해당하는 공부가 여기(格物致知)에 달려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 나는 일찍이 이를 반복해 살펴보고 그것(格物致知의 뜻이)이 반드시 그러함을 신뢰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삼가 정자의 뜻을 취해 傳文의 빠진 부분을 보충하였다. 그렇지 않다면(확신이 없었다면) 또 어찌 감히 '옳지 않은 죄'를 범하고 '증거 없는 말'을 해서 스스로 '성현의 경전' 사이에 넣겠는가?&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5.&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然則吾子之意, 亦可得而悉聞之乎?&amp;quot; 曰: &amp;quot;吾聞之也: 天道流行&amp;lt;sub&amp;gt;此以理言&amp;lt;/sub&amp;gt;, 造化發育&amp;lt;sub&amp;gt;此以氣言&amp;lt;/sub&amp;gt;, 凡有聲色貌象而盈於天地之間者, 皆物也; 既有是物, 則其所以爲是物者莫不各有當然之則而自不容已, 是皆得於天之所賦而非人之所能爲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혹자가 물었다: &amp;quot;그렇다면 그대의 생각도 모두 들어볼 수 있겠는가?&amp;quot; 대답했다: &amp;quot;나는 [다음과 같이] 들었다: 천도가 유행해 [만물을] 만들고 발육함에, 소리·색·모양을 가지면서 천지 사이를 채운 것은 모두 物이다. 이러한 物이 있는 이상, 이 物이 된 것에는 각각 마땅히 그러해야 할 법칙이 있지 않음이 없어 스스로 그칠 수 없으니, 이 모두는 하늘이 부여한 것에서 얻은 것이지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物, 乃形氣; 則, 乃理也. 物之理方為則.&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物'은 바로 형기이고, '則'은 바로 理이다. 物의 理라야 '則'이 된다.&amp;quot;&lt;br /&gt;
:○理之所當為者, 自不容巳, 如孩提之愛、及長知敬, 自有住不得處.&lt;br /&gt;
:마땅히 행해야 할 理는 스스로 그칠 수 없으니, 예를 들면 아이가 [부모를] 사랑하고, 자라서는 [형을] 공경함에&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진심상&amp;gt; 15. 孩提之童，無不知愛其親者；及其長也，無不知敬其兄也。&amp;lt;/ref&amp;gt; 스스로 그만둘 수 없는 점이 있는 것과 같다.&lt;br /&gt;
:○問: &amp;quot;人物之生, 莫不得其所以生者以為一身之主, 是此性隨所生處便在否?&amp;quot; 曰: &amp;quot;一物各具一太極. '天生烝民, 有物有則', 盖視有當視之則, 聽有當聽之則, 如是而視, 如是而聽, 便是; 不如是而視, 不如是而聽, 便不是. 謂如'視逺惟明, 聽徳惟聰', 能視逺謂之明, 所視不逺不謂之明; 能聽徳謂之聰, 所聽非徳不謂之聰. 視聽是物, 聰明是則. 推之至於口之於味、鼻之於臭, 莫不各有當然之則. 所謂窮理者, 窮此而巳.&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사람·만물이 태어날 때, 태어난 까닭을 얻어 일신의 주인으로 삼지 않는 경우가 없으니, 이 性은 태어난 바에 따라 존재하게 되는 겁니까?&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한 物마다 각각 하나의 태극을 갖추고 있다. '하늘이 뭇 백성을 낳음에, 物이 있으면 법칙이 있다'고 하니, 봄에 마땅히 봐야하는 법칙이 있고, 들음에 마땅히 들어야하는 법칙이 있어서, 이렇게 보고 이렇게 듣으면 옳고, 이와 같지 않게 보고 이와 같지 않게 들으면 옳지 않다. 예를 들어 '멀리 보되 밝게 볼 것을 생각하고, 덕스러운 것을 듣되 귀밝게 들을 것을 생각한다'&amp;lt;ref&amp;gt;&amp;lt;서경&amp;gt; &amp;lt;태갑중&amp;gt; 視遠惟明；聽德惟聰。&amp;lt;/ref&amp;gt;고 하니, 능히 멀리 보는 것을 '밝음'(明)이라고 하지 보는 것이 멀지 않은 것을 '밝음'(明)이라 하지 않고, 능히 덕스러운 것을 듣는 것을 '귀밝음'(聰)이라고 하지 듣는 것이 덕스럽지 않은 것을 '귀밝음'(聰)이라 하지 않는다. 보고 듣는 것은 이 物이고, 귀밝고 눈밝은 것은 이 則이다. 이러한 관계를 입과 맛, 코와 냄새 간으로 유추해보면, 각각 마땅히 그러한 원칙이 없는 경우는 없다. 이른바 '窮理'라는 것은 이것을 궁구하는 것일 뿐이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物者, 形而下之器; 則者, 形而上之道. 形而上者, 不出於形而下者之外, 所謂有物必有則也.&amp;quot;&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物'이라는 것은 형이하의 器이고, 則이라는 것은 형이상의 道이다.&amp;lt;ref&amp;gt;&amp;lt;주역&amp;gt; &amp;lt;계사상&amp;gt; 12. 形而上者謂之道，形而下者謂之器。&amp;lt;/ref&amp;gt; 형이상자는 형이하자의 밖으로 벗어나지 않으니, 이른바 '物이 있으면 반드시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amp;quot;今且以其至切而近者言之, 則心之爲物, 實主於身, 其體則有仁義禮智之性; 其用則有惻隱、羞惡、恭敬、是非之情, 渾&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然在中, 隨感而應, 各有攸主而不可亂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우선 매우 비근한 것으로 말하자면, 마음(心)이라는 것은 실로 몸(身)을 주재하니, 그 體에는 仁義禮智의 性이 있고 그 用에는 측은·수오·공경·시비의 情이 있어서, [性은] 혼연히 마음속에 있다가 감각하는 바에 따라 응함에&amp;lt;ref&amp;gt;&amp;lt;주역&amp;gt; &amp;lt;계사상&amp;gt; 10장. 易无思也，无為也，寂然不動，感而遂通天下之故。&amp;lt;/ref&amp;gt; 각각 주로 하는 바가 있어 어지럽힐 수 없다.&amp;quot;&lt;br /&gt;
:西山眞氏曰: &amp;quot;圓外竅中者, 心之形體, 可以物言, 備具衆理. 神明不測者, 此心之理, 不可以物言. 然有此形體, 方包得此理.&amp;quot;&lt;br /&gt;
:서산 진씨가 말했다: &amp;quot;외부는 둥글고 속에 구멍이 있는 것이 心의 형체이니, 物로 말할 수 있고, 뭇 이치를 갖추고 있다. 神明해서 헤아릴 수 없는 것이 이 心의 理이니, 物로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 형체가 있어야 비로소 이 理를 품을 수 있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心之為物, 主於身', 形而下者也; 其體用性情, 形而上者也. '渾然在中', 其體初無仁義禮智之分; '隨感而應', 其用始有惻隱等四者之别. 仁為惻隱之主, 義為羞惡之主, 禮智為恭敬、是非之主, 而皆不可亂, 所謂則也.&amp;quot;&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心之為物, 主於身'은 형이하자이고, 心의 體用·性情은 형이상자이다. '渾然在中'에서는 心의 體에 처음에는 仁義禮智의 구분이 없다가, '隨感而應'하면 心의 用에 비로소 측은지심 등의 네 가지 구별이 생긴다. 仁은 측은지심의 주인이고, 義는 수오지심의 주인이며, 禮와 智는 공경지심과 시비지심의 주인이니, [이러한 性情간의 관계를] 모두 어지럽힐 수 없는 것이 이른바 '則'이다.&amp;quot;&lt;br /&gt;
&lt;br /&gt;
&amp;quot;次而及於身之所具, 則有口鼻耳目四肢之用; 又次而及於身之所接, 則有君臣、父子、夫婦、長㓜、朋友之常, 是皆必有當然之則而自不容已, 所謂理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다음으로 몸이 갖추고 있는 [부위의] 경우 입·코·귀·눈·사지의 쓰임이 있고, 또 다음으로 몸이 마주치는 [사회적 관계의] 경우 군신·부자·부부·장유·붕우의 일상이 있으니, 이 모두에는 반드시 마땅히 그래야 하는 법칙이 있어서 스스로 그만둘 수 없으니, 이른바 理이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耳目等乃吾身所具之物; 君臣等乃吾身所接之物. 口容止, 口之則也; 氣容肅, 鼻之則也; 聽思聰, 視思明, 耳目之則也; 非禮勿動, 四肢之則也; 君臣有義, 是君臣之則; 父子有親, 是父子之則; 有别有序有信是夫婦長㓜朋友之則, 皆所謂有物必有則也. 吾心之則乃此身統體一太極; 吾身所具所接者之則乃物物各具一太極也. 其統體者乃各具者之所自出, 其各具者初未嘗在統體者之外也.&amp;quot;&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귀·눈 등의 [부위는] 바로 내 몸이 갖추고 있는 物이고, 군신 등의 [사회적 관계는] 바로 내 몸이 마주치는 物이다. '입 모양은 그친다'는 것은 입에 대한 준칙이고, '숨쉬는 모양은 엄숙하게 한다'는 것은 코에 대한 준칙이며,&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옥조&amp;gt; 足容重，手容恭，目容端，口容止，聲容靜，頭容直，氣容肅，立容德，色容莊，坐如尸，燕居告溫溫。&amp;lt;/ref&amp;gt; '들을 때 귀밝기를 생각하고, 볼 때 눈밝기를 생각한다'는 것은 귀·눈에 대한 준칙이고,&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계씨&amp;gt; 10. 孔子曰：「君子有九思：視思明，聽思聰，色思溫，貌思恭，言思忠，事思敬，疑思問，忿思難，見得思義。」&amp;lt;/ref&amp;gt;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는 것은 사지에 대한 준칙이며,&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안연&amp;gt; 1. 顏淵問仁。子曰：「克己復禮為仁。一日克己復禮，天下歸仁焉。為仁由己，而由人乎哉？」顏淵曰：「請問其目。」子曰：「非禮勿視，非禮勿聽，非禮勿言，非禮勿動。」&amp;lt;/ref&amp;gt; '군신 간에 의리가 있다'는 것은 군신 관계에 대한 준칙이고, '부자 간에 친애함이 있다'는 것은 부자 관계에 대한 준칙이며, 구별·차례·신의는 부부·장유·붕우에 대한 준칙이니,&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등문공상&amp;gt; 4. 聖人有憂之，使契為司徒，教以人倫：父子有親，君臣有義，夫婦有別，長幼有序，朋友有信。&amp;lt;/ref&amp;gt; 모두 이른바 '物이 있으면 반드시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내 마음의 법칙은 바로 내 몸 統體의 하나의 태극이고, 내 몸이 갖추고 있거나 마주치는 것의 법칙은 바로 物마다 각각 지니고 있는 하나의 태극이다.&amp;lt;ref&amp;gt;&amp;lt;태극해의&amp;gt; 蓋合而言之, 萬物統體一太極也; 分而言之, 一物各具一太極也.&amp;lt;/ref&amp;gt; 그 統體라는 것은 바로 각각 지니고 있는 것의 출처이고, 그 각각 지니고 있는 것은 애당초 統體라는 것 밖에 존재했던 적이 없다.&amp;quot;&lt;br /&gt;
&lt;br /&gt;
&amp;quot;外而至於人, 則人之理不異於己也; 遠而至於物, 則物之理不異於人也. 極其大, 則天地之運、古今之變, 不能外也; 盡於小, 則一塵之微、一息之頃, 不能遺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그 외에 다른 사람의 경우 다른 사람의 理는 내 것과 다르지 않고, 멀리 사물의 경우 사물의 理는 사람의 것과 다르지 않다. 지극히 크게 봤을 때 천지의 운행이나 고금의 변화도 [理를] 벗어날 수 없고, 지극히 작게 봤을 때 미세한 먼지나 숨쉬는 짧은 틈도 [理를] 빠뜨릴 수 없다.&amp;quot;&lt;br /&gt;
:格菴趙氏曰: &amp;quot;'一塵之微、一息之頃, 不能遺'者, 理無物不在, 無時不然. 大而天地之一開一闔、古今之一否一㤗, 小而一塵之或飛或伏、一息之或呼或吸, 皆此理之所寓也.&amp;quot;&lt;br /&gt;
:격암 조씨가 말했다: &amp;quot;미세한 먼지나 숨쉬는 짧은 틈도 [理를] 빠뜨릴 수 없다'는 것은 理가 어느 사물에도 어느 때에도 존재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크게는 천지가 열리고 닫히거나 고금이 막히거나 트이는 것으로부터, 작게는 먼지 하나가 날리거나 숨어있고 숨을 내쉬거나 들이쉬기는 데까지 모두 이 理가 깃들어있는 바이다.&amp;quot;  &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天地'及'一塵'是横說; '古今'及'一息'是直說.&amp;quo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天地'와 '一塵'은 横說(공간적으로 말한 것)이고, '古今'과 '一息'은 直說(시간적으로 말한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amp;quot;是乃上帝所降之衷&amp;lt;sub&amp;gt;&amp;lt;書&amp;gt; &amp;lt;湯誥&amp;gt; &amp;quot;惟皇上帝, 降衷于下民.&amp;quot;&amp;lt;/sub&amp;gt;, 烝民所秉之彛&amp;lt;sub&amp;gt;&amp;lt;詩&amp;gt; &amp;lt;烝民&amp;gt; &amp;quot;民之秉彛.&amp;quot;&amp;lt;/sub&amp;gt;, 劉子所謂天地之中&amp;lt;sub&amp;gt;&amp;lt;左傳·成公十三年&amp;gt; &amp;quot;劉康公、成肅公㑹晉侯伐秦. &amp;lt;劉、成, 食采之邑名; 康、肅, 皆其諡也.&amp;gt; 成子受脤于社, 不敬.&amp;lt;脤, 市軫反, 宜社之肉也.&amp;gt; 劉子曰: '吾聞之: 民受天地之中以生, 所謂命也. 是以有動作、禮義、威儀之則以定命也. 能者養之以福, 不能者敗以取禍.&amp;quot;&amp;lt;/sub&amp;gt; 夫子所謂性與天道, 子思所謂天命之性, 孟子所謂仁義之心, 程子所謂天然自有之中,&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이것이 바로 '상제께서 내려주신 마음'&amp;lt;sub&amp;gt;&amp;lt;서경&amp;gt; &amp;lt;탕고&amp;gt; &amp;quot;위대한 상제께서 백성에게 마음을 내려주셨다.&amp;quot;&amp;lt;/sub&amp;gt;이고, '뭇 백성이 지니고 있는 불변의 도리'&amp;lt;sub&amp;gt;&amp;lt;시경&amp;gt; &amp;lt;증민&amp;gt; &amp;quot;백성이 지니고 있는 불변의 도리.&amp;quot;&amp;lt;/sub&amp;gt;이며, 유강공이 말한 '天地之中'이고,&amp;lt;sub&amp;gt;&amp;lt;춘추좌전·성공13년&amp;gt; &amp;quot;劉康公·成肅公이 晉侯를 회맹하고 秦을 정벌했다.&amp;lt;劉·成은 채지로 받은 고을의 이름이고,康·肅은 모두 그들의 시호이다.&amp;gt; 成肅公이 제사에서 제사고기를 받았는데, 공경스럽지 못했다. 劉康公이 말했다: '내가 들으니, 백성은 천지의 中을 받아 태어나니, 이른바 命이다. 그러므로 동작·예의·위의에 대한 준칙을 두어 命을 구현하는 것이다. 뛰어난 자는 천지의 中을 잘 길러 복을 받고, 못난 자는 천지의 中을 해쳐 화를 입는다.'&amp;quot;&amp;lt;/sub&amp;gt; 공자께서 말씀하신 '性과 天道'이며,&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공야장&amp;gt; 12. 子貢曰：「夫子之文章，可得而聞也；夫子之言性與天道，不可得而聞也。」&amp;lt;/ref&amp;gt; 자사께서 말씀하신 '天命之性'이고, 맹자께서 말씀하신 '仁義之心'이며, 정자께서 말씀하신 '天然自有之中'이고,&amp;quot;&lt;br /&gt;
:程子曰: &amp;quot;楊子拔一毛不為, 墨子又摩頂放踵為之, 此皆是不得中. 至如子莫執中, 欲執此二者之中, 不知怎麽執得? 識得則事事物物上皆天然有箇中在那上, 不待人安排也. 安排著, 則不中矣.&amp;quot;&lt;br /&gt;
:정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양주는 [남을 이롭게 하기 위해] 터럭 하나만 뽑으라고 해도 하지 않았는데, 묵적은 또 [남을 이롭게 하기 위해] 정수리에서부터 발꿈치까지 갈아넣어야 한다고 해도 했으니, 이 두 가지 모두 中을 얻은 것이 아니다. 子莫이 잡은 中의 경우, 이 두 가지의 가운데(中)를 잡으려고 했다. 잘 모르겠지만, 어떻게 잡을 수 있겠는가? 알았다면?? 사물마다 모두 선천적으로 中이 그 위에 있으니 사람이 손쓸 필요가 없다. 손쓰면 中이 아니다.&amp;lt;ref&amp;gt;&amp;lt;이정유서&amp;gt; 17-65 楊子拔一毛不爲, 墨子又摩頂放踵爲之, 此皆是不得中. 至如子莫執中, 欲執此二者之中, 不知怎麽執得? 識得則事事物物上皆天然有箇中在那上, 不待人安排也. 安排著, 則不中矣.&amp;lt;/ref&amp;gt;&lt;br /&gt;
&lt;br /&gt;
&amp;quot;張子所謂萬物之一原,&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장자께서 말씀하신 '만물의 동일한 근원'이며,&amp;quot;&lt;br /&gt;
:張子名載, 字子厚, 家于鳳翔府郿縣横渠鎭, 世號横渠先生.&lt;br /&gt;
:張子의 이름은 載이고 자는 子厚이니, 봉상부 미현 횡거진에 사셨으므로 대대로 횡거선생이라고 불렀다.&lt;br /&gt;
:○&amp;lt;正蒙&amp;gt; &amp;lt;誠明篇&amp;gt; &amp;quot;性者, 萬物之一原, 非有我之得私也.&amp;quot;&lt;br /&gt;
:&amp;lt;정몽&amp;gt; &amp;lt;성명편&amp;gt; &amp;quot;性이라는 것은 만물의 동일한 근원이니,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amp;quot;&amp;lt;ref&amp;gt;&amp;lt;정몽&amp;gt; &amp;lt;성명편&amp;gt; 性者萬物之一源，非有我之得私也。惟大人僞能盡其道，是故立必俱立，知必周知，愛必兼愛，成不獨成。披自蔽塞而不知順吾理者，則亦末如之何矣。&amp;lt;/ref&amp;gt;&lt;br /&gt;
&lt;br /&gt;
&amp;quot;邵子所謂道之形體者.&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소자께서 말씀하신 '道의 形體'이다.&amp;quot;&lt;br /&gt;
:邵子名雍, 字堯夫, 諡康節, 河南人.&lt;br /&gt;
:邵子의 이름은 雍이고 자는 堯夫이며 시호는 康節이니, 하남 사람이다.&lt;br /&gt;
:○&amp;quot;性者, 道之形體&amp;quot;, 見&amp;lt;擊壤集序&amp;gt;.&lt;br /&gt;
:&amp;quot;性이라는 것은 道의 形體이다&amp;quot;라는 말은 &amp;lt;격양집서&amp;gt;에 보인다.&amp;lt;ref&amp;gt;[https://zh.wikisource.org/wiki/伊川擊壤集 &amp;lt;격양집&amp;gt;] 性者，道之形體也。性傷，則道亦從之矣。心者，性之邪郭也。心傷，則性亦從之矣。身者，心之區宇也。身傷，則心亦從之矣。物者，身之舟車也。物傷，則亦從之矣。是知以道觀性，以性觀心，以心觀身，以身觀物，治則治矣，然猶未離乎害者也。不若以道觀道，以性觀性，以心觀心，以身觀身，以物觀物，則雖欲相傷其可得乎。&amp;lt;/ref&amp;gt;&lt;br /&gt;
&lt;br /&gt;
&amp;quot;但其氣質有清濁偏正之殊, 物欲有淺深厚薄之異. 是以人之與物, 賢之與愚, 相與懸絶而不能同耳.&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그러나 기질에 清濁·偏正의 차이가 있고, 물욕에 淺深·厚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인간은 사물과, 현명한 자는 어리석은 자와 현격히 달라 같을 수 없을 뿐이다.&amp;quot;&lt;br /&gt;
:問: &amp;quot;降衷秉彛一段, 其名雖異, 要之皆是一理.&amp;quot; 朱子曰: &amp;quot;誠是一理, 豈可無分别? 須各曉其名字訓義之所以異, 方見其所謂同.&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降衷'·'秉彛' 부분에서 그러한 이름은 비록 다르지만, 요컨대 모두 하나의 理입니다.&amp;quo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진실로 하나의 理지만, 차이가 없을 수 있겠는가? 그 명칭과 의미의 차이점을 각각 알아야 하니, 그래야 이른바 '같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amp;quot;&lt;br /&gt;
:○衷字只是箇無過不及之中, 是箇恰好底道理. 天生人物, 箇箇有一副當恰好無過不及道理降與你. 今人言折衷, 折衷者以中為則而取其正也. '天生烝民, 有物有則', 則字却似中字. 天之生此物, 必有箇當然之則, 故民執之以為常道. 所以無不好此懿徳. '降衷于下民', 緊要在降字上. 故自天而言謂之降衷; 自人受此衷而言則謂之性, 縁各據來處與受處而言也.&lt;br /&gt;
:'衷'자는 '過不及이 없다'는 의미의 中이니, 적절한 도리이다. 하늘이 인간과 사물을 낳을 때, 각각 적절하고 過不及이 없는 도리를 두어 너에게 내려주었다. 요즘 사람들이 '절충'(折衷)을 말할 때, '折衷'이란 中을 기준으로 삼아 바름을 취한다는 것이다. '하늘이 뭇 백성을 낳으매 사물이 있으면 법칙이 있다'의 '則'자는 '中'자와 같다. 하늘이 이 사물을 낳을 때 반드시 규범적 준칙(當然之則)을 둔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이를 가지고 불변의 도리로 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마땅한 덕을 좋아하지 않는 이가 없는 것이다. '백성에게 衷을 내렸다'(降衷于下民)에서 핵심은 '降'자에 있다. 그러므로 하늘의 관점에서 말하면 '降衷'이라 하고, 사람이 이 '衷'을 받았다는 측면에서 말하면 '性'이라 하니, 각각 온 곳과 받은 곳에 의거해 말한 것이다. &lt;br /&gt;
:○問: &amp;quot;彛而言秉, 何也?&amp;quot; 曰: &amp;quot;渾然一理, 只于吾心不可移奪&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强行改變.&amp;lt;/ref&amp;gt;, 若秉執然.&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불변의 도리'(彛)인데 '잡는다'(秉)고 말한 것은 어째서입니까?&amp;quot; 대답하셨다: &amp;quot;渾然한 理가 그저 내 마음에 있어 바꿀 수 없는 것이 마치 잡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amp;quot;&lt;br /&gt;
:○問: &amp;quot;劉子云天地之中, 程子云天然自有之中, 此中字同否?&amp;quot; 曰: &amp;quot;天地之中是未發之中; 天然自有之中是時中; 天地之中是指道體; 天然自有之中是指事物之理.&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劉子가 말한 '天地之中'과 程子가 말한 '天然自有之中'의 이 中자는 같습니까?&amp;quot; 대답하셨다: &amp;quot;'天地之中'은 '未發之中'이고, '天然自有之中'은 '時中'이다. '天地之中'은 '道體'를 가리키고, '天然自有之中'은 사물의 이치를 가리킨다.&amp;quot;&lt;br /&gt;
:○&amp;quot;性與天道&amp;quot;, 性便是自家底; 天道便是上面腦子. 其流行者是天道; 人得之為性.&lt;br /&gt;
:&amp;quot;性與天道&amp;quot;에서 '性'은 자신의 것이고 '天道'는 그 위의 근원이다. 유행하는 것이 天道이고, 인간이 이를 얻어 性으로 삼는다.&lt;br /&gt;
:○諸先生說這道理, 邵子說得最著實. 這道理空虚無形影, 惟是說 '性者, 道之形體', 却見得實[有]&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에 의거해 수정한다. &amp;lt;주자어류&amp;gt; 권100 正卿問：「邵子所謂『道之形體』如何？」曰：「諸先生說這道理，卻不似邵子說得最著實。這箇道理，纔說出，只是虛空，更無形影。惟是說『性者道之形體』，卻見得實有。不須談空說遠，只反諸吾身求之，是實有這箇道理？還是無這箇道理？故嘗為之說曰：『欲知此道之實有者，當求之吾性分之內。』邵子忽地於擊壤集序自說出幾句，最說得好！」&amp;lt;/ref&amp;gt;. 只反諸吾身求之: 是實有這道理? 還是無這道理? 故嘗為之說曰: '欲知此道之實有者, 當求之吾性分之内.' 邵子忽自於&amp;lt;擊壤集序&amp;gt;内說出幾句云: &amp;quot;性者, 道之形體也; 心者, 性之郛郭也; 身者, 心之區宇也; 物者, 身之舟車也.&amp;quot; 此說極好.&lt;br /&gt;
:여러 선생이 이 도리를 말씀하셨는데, 소자께서 말씀하신 것이 가장 착실하다. 이 도리는 텅 비어 어떠한 형체·그림자도 없지만, 오직 '性이라는 것은 道의 形體이다'라고 말씀하셨으므로 [도리가] 실제로 존재함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단지 자기 자신을 반성해 찾아보라: 이 도리가 실제로 있는가, 아니면 없는가? 그러므로  전에 이에 대해 '이 道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알고 싶은 자는 자기 性分 안에서 찾아봐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소자께서 문득 스스로 &amp;lt;격양집서&amp;gt;에서 몇 구절 말씀하셨다: &amp;quot;性이라는 것은 道의 형체이고, 心이라는 것은 性의 성곽이며, 身이라는 것은 心의 집이고, 物이라는 것은 身의 배나 수레이다.&amp;quot; 이 설이 매우 좋다. &lt;br /&gt;
:○'氣質清濁偏正', 本&amp;lt;正蒙&amp;gt;中語, 亦是將人物賢不肖、智愚相對而分言之如此. 若大槩而論, 則人清而物濁, 人正而物偏; 又細論之, 則智乃清之清, 賢乃正之正, 愚乃清之濁, 不肖乃正之偏. 而張子所謂 &amp;quot;物有近人之性&amp;quot;者, 又濁之清, 偏之正者也. &amp;quot;物欲淺深厚薄&amp;quot;, 乃通為衆人而言.&lt;br /&gt;
:'氣質에 清濁·偏正의 [차이가 있다]'&amp;lt;ref&amp;gt;&amp;lt;正蒙&amp;gt; &amp;lt;誠明篇第六&amp;gt; 人之剛柔、緩急、有才與不才，氣之偏也。天本參和不偏，養其氣，反之本而不偏，則盡性而天矣。; 莫非天也，陽明勝則德性用，陰濁勝則物欲行。領惡而全好者，其必由學乎！- '氣質清濁偏正'을 직접 언급한 구절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amp;lt;/ref&amp;gt;는 것은 본래 &amp;lt;정몽&amp;gt;의 말이니, 사람·사물의 賢·不肖나 智·愚를 대비해 이렇게 나눠 말한 것이다. 대체적으로 말하자면, 사람[의 氣質은] 맑고 사물[의 氣質은] 탁하며, 사람[의 氣質은] 바르고 사물[의 氣質은] 치우쳐져 있다. [그러나] 다시 자세하게 말하자면, 지혜로운 건(智) 맑은 것 가운데 [더욱] 맑은 것이고, 어진 건(賢) 바른 것 가운데 [더욱] 바른 것이며, 어리석은 것(愚)은 맑은 것 가운데 탁한 것이고, 못난 것(不肖)은 바른 것 가운데 치우친 것이다. 장자께서 &amp;quot;사물 가운데 사람의 性에 가까운 것이 있다&amp;quot;&amp;lt;ref&amp;gt;&amp;lt;예기집설&amp;gt; 권133 藍田吕氏曰: &amp;quot; …… 然人有近物之性者, 物有近人之性者, 亦係乎此. 於人之性開塞偏正無所不盡, 則物之性未有不能盡也. 人也物也莫不盡其性, 則天地之化幾矣.&amp;quot; - 주자는 장재 말로 알았던 것 같은데, 衛湜은 여대림의 말로 본다.&amp;lt;/ref&amp;gt;고 말씀하신 것은 또 탁한 것 가운데 [그나마] 맑은 것, 치우친 것 가운데 [그나마] 바른 것이다. &amp;quot;物欲淺深厚薄&amp;quot;은 뭇 사람을 통틀어 말한 것이다.&lt;br /&gt;
:○陳氏曰: &amp;quot;天命即天道之流行而賦予於物者, 受於天而為我所有, 故謂之性.&amp;quot; 又曰: &amp;quot;道者, 事物中所當然之理, 人之所共由者也. 性即在我之理, 具於吾心而道之所總㑹也. 所謂 '形體'正如此.&amp;quot;&lt;br /&gt;
:진씨가 말했다: &amp;quot;'天命'은 바로 天道가 유행하다가 사물에 부여된 것이고, 하늘로부터 받아서 내 소유가 되었기 때문에 '性'이라고 한다.&amp;quot; 또 말했다: &amp;quot;'道'라는 것은 사물의 당위적 원리(所當然之理)이니, 사람이 공통적으로 따르는 바이다. '性'은 내게 있는 理이니 내 마음에 갖춰져 있고, '道'가 모여있는 곳이다. 이른바 [소옹이 말한 '道'의] 形體'가 바로 이와 같다.&amp;quot; &lt;br /&gt;
:○西山眞氏曰: &amp;quot;&amp;lt;詩&amp;gt;謂 '秉彛', 言衆民所秉執此常理. &amp;lt;孟子&amp;gt;謂 '仁義之心', 言人既得隂陽之理以為性, 則自然有仁義之心. 只舉仁義二字者, 仁包禮, 義包智故也. 禮是仁之著; 智是義之藏. 程子所謂 '天然之中', 言凡百事物皆有箇恰好底道理, 不可過, 不可不及也. 張子所謂 '萬物之一原', 凡人物之性皆自此流出, 如百川之同一原也.&amp;quot;&lt;br /&gt;
:서산 진씨가 말했다: &amp;quot;&amp;lt;시경&amp;gt;에서 말한 '秉彛'는 뭇 백성이 이 불변의 理를 지니고 있음을 말한 것이다. &amp;lt;맹자&amp;gt;에서 말한 '仁義之心'은 사람이 음양의 理를 얻어 性으로 삼은 이상, 저절로 仁義로운 마음(仁義之心)이 있다는 것이다. 단지 '仁義' 두 글자만 거론한 것은, 仁이 禮를 포괄하고 義가 智를 포괄하기 때문이다. 禮는 仁이 드러난 것이고, 智는 義가 감춰져 있는 것이다. 정자께서 말씀하신 '天然之中'은 온갖 사물에 모두 적합한 도리가 있어서 지나쳐서도 미치지 못해서도 안 됨을 말한 것이다. 장자께서 말씀하신 '萬物之一原'은 사람과 사물의 性이 여기서부터 흘러나왔다는 것이니, 뭇 시내의 동일한 수원과 같다.&amp;quot;&lt;br /&gt;
&lt;br /&gt;
&amp;quot;以其理之同, 故以一人之心而於天下萬物之理無不能知; 以其稟之異, 故於其理或有所不能窮也. 理有未窮, 故其知有不盡; 知有不盡, 則其心之所發, 必不能純於義理而無雜乎物欲之私. 此其所以意有不誠, 心有不正, 身有不脩, 而天下國家不可得而治也. 昔者聖人蓋有憂之, 是以於其始教, 爲之小學而使之習於誠敬, 則所以收其放心, 養其徳性者, 已無所不用其至矣.&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理가 동일하기 때문에 한 사람의 마음으로 천하 만물의 理를 알지 못하는 것이 없고, 품부받은 것(氣質)이 다르기 때문에 理에 혹 궁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理를 궁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앎이 온전하지 못하고, 앎이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마음이 발현될 때 틀림없이 義理에 순수해 자기중심적 物欲에 뒤섞이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意에 진실하지 못한 점이 있고, 心에 바르지 않은 점이 있으며, 身에 닦이지 않은 부분이 있고, 天下國家가 잘 다스려질 수 없는 까닭이다. 과거 성인께서도 이를 염려하셨기 때문에, 처음 가르치실 때는 소학을 세워 사람들로 하여금 誠敬을 익히게 하셨으니, '놓아버린 마음을 거두고'&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고자상&amp;gt; 11. 學問之道無他，求其放心而已矣。&amp;lt;/ref&amp;gt; '덕성을 함양한다'&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진심상&amp;gt; 1. 存其心，養其性，所以事天也。&amp;lt;/ref&amp;gt;는 것에 대해 이미 지극하게 하지 않으신 점이 없었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此格物致知之本原.&amp;quot;&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이것은 격물치지 [공부의] 근원이다.&amp;quot;&lt;br /&gt;
&lt;br /&gt;
&amp;quot;及其進乎大學, 則又使之即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事物之中, 因其所知之理, 推而究之, 以各到乎其極, 則吾之知識, 亦得以周遍精切, 而無不盡也. 若其用力之方, 則或考之事爲之著, 或察之念慮之微,&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사람들이 태학에 진학하게 되자, [성인께서] 다시 그들로 하여금 사물에 나아가 알고있는 理를 근거로 추론·궁구해 각각 [궁구하는 대상의] 극치(즉 事物之理)에 이르게 하셨으니, 내 지식 역시 [성인처럼] 周遍하고 精切해 완전하지 않음이 없게 되었다. 공부 방법에 대해서는, 어떤 분은 드러난 행적에서 [理를] 분석하셨고, 어떤 분은 은미한 사려에서 [理를] 살피셨으며,&amp;quot;&lt;br /&gt;
:問: &amp;quot;關於事為者不外乎念慮, 而入於念慮者往往皆是事為, 此分為二項, 意如何?&amp;quot; 朱子曰: &amp;quot;固是都相關. 然也有做在外底, 也有念慮方動底. 念慮方動, 便須辨别那箇是正, 那箇是不正. 這只就始末上大約如此說.&amp;quot; 問: &amp;quot;只就著與微上看?&amp;quot; 曰: &amp;quot;有箇顯有箇微.&amp;quot;&lt;br /&gt;
&lt;br /&gt;
&amp;quot;或求之文字之中, 或索&amp;lt;sub&amp;gt;山客反&amp;lt;/sub&amp;gt;之講論之際,&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어떤 분은 글에서 [理를] 탐구하셨고, 어떤 분은 강론하면서 [理를] 찾으셔서,&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此四句, 格物致知之條目.&amp;quot;&lt;br /&gt;
&lt;br /&gt;
&amp;quot;使於身心性情之徳、人倫日用之常, 以至天地鬼神之變、鳥獸草木之宜, 自其一物之中, 莫不有以見其所當然而不容巳、與其所以然而不可易者.&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 身心과 性情의 덕, 일상에서 지키는 인륜으로부터 천지와 귀신의 변화, 들짐승·날짐승과 초목의 적절함까지 한 사물에서 '마땅히 그러해야 해서 그만둘 수 없는 점'과 '그러해서 바꿀 수 없는 점'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없으셨다.&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今人未嘗看見當然而不容已者, 只是就上較量一箇好惡耳. 如眞見得這底是我合當為, 則自有所不可已者矣. 如為臣而必忠, 非是謾說如此, 蓋為臣不可以不忠; 為子而必孝, 亦非是謾說如此, 蓋為子不可以不孝也.&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요즘 사람들은 '마땅히 그러해야 해서 그만둘 수 없는 점'을 본 적이 없어서 그저 일에 대해 호오를 따질 뿐이다. 만약 이것이 내가 마땅히 해야할 것임을 진정으로 안다면, 그만두지 못하는 점이 저절로 생길 것이다. 예를 들어, '신하가 되면 반드시 충성한다'는 게, 대충 이와 같다고 말한 게 아니라, 신하가 되면 충성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식이 되면 반드시 효도한다'는 것 역시 대충 이와 같다고 말한 게 아니라, 자식이 되면 효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amp;quot;&lt;br /&gt;
:○問: &amp;quot;'所以然而不可易'者, 是指理而言; '所當然而不容已'者, 是指人心而言否?&amp;quot; 曰: &amp;quot;下句只是指事而言. 凡事固有所當然而不容已者, 然又當求其所以然者何故. 其所以然者, 理也; 理如此, 故不可易. 又如人見赤子入井, 皆有怵惕惻隱之心, 此其事所當然而不容已者也. 然其所以如此者何故? 必有箇道理之不可易者.&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그러해서 바꿀 수 없는 것'은 理를 가리켜 말한 것이고, '마땅히 그러해야 해서 그만둘 수 없는 것'은 人心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amp;quot; 대답하셨다: &amp;quot;아랫 구절은 단지 일(事)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일(事)에는 본래 '마땅히 그러해야 해서 그만둘 수 없는 점'이 있지만, '그러한 까닭'이 어째서인지에 대해서도 마땅히 탐구해야 한다. '그러한 까닭'이 理이고, 理가 이와 같기 떄문에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또 예를 들어, 사람이 어린 아기가 우물로 기어가는 것을 보면 모두 깜짝 놀라고 측은해 하는 마음이 드니, 이것이 일(事)의 '마땅히 그러해야 해서 그만둘 수 없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까닭은 어째서인가? 필시 바꿀 수 없는 도리가 있는 것이다.&amp;quot;&lt;br /&gt;
:○陳氏曰: &amp;quot;在身, 謂手容合當恭, 足容合當重之類; 在心, 如體合當寂, 用合當感之類; 性, 如仁合當愛, 義合當斷之類; 情, 如見赤子入井合當惻隱, 見大賔客合當恭敬之類; 人倫, 如君合當止仁, 臣合當止敬之類; 日用, 如居處合當恭, 執事合當敬之類; 天地, 如天合當髙, 地合當厚; 鬼神二氣, 如陽合當伸, 隂合當屈; 鳥獸, 如牛合當耕, 馬合當乘; 草木, 如春合當生, 秋合當殺等類, 皆有理存乎其間也.&amp;quot;&lt;br /&gt;
:진씨가 말했다: &amp;quot;'몸(身)'은 '손 모양은 조심스러워야 하고, 발 모양은 무거워야 한다'&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옥조&amp;gt; 足容重，手容恭，目容端，口容止，聲容靜，頭容直，氣容肅，立容德，色容莊&amp;lt;/ref&amp;gt; 따위를 말하고, '마음(心)'은 '體의 국면에서는 고요해야 하고, 用의 국면에서는 [적절히] 감응해야 한다'&amp;lt;ref&amp;gt;&amp;lt;주역&amp;gt; &amp;lt;계사상&amp;gt; 10. 易无思也，无為也，寂然不動，感而遂通天下之故。&amp;lt;/ref&amp;gt; 따위이며, '性'은 '仁은 마땅히 아껴야 하고, 義는 마땅히 결단해야 한다' 따위이고, '情'은 '어린 아기가 우물로 기어가는 것을 보면 측은한 감정을 느껴야 하고, 중요한 손님을 보면 공경해야 한다' 따위이며, '人倫'은 '임금은 仁에 머물러야 하고, 신하는 敬에 머물러야 한다'&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전3장 為人君，止於仁；為人臣，止於敬；為人子，止於孝；為人父，止於慈；與國人交，止於信。&amp;lt;/ref&amp;gt; 따위이고, '日用'은 '거처할 때는 공손해야 하고, 일 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자로&amp;gt; 19. 樊遲問仁。子曰：「居處恭，執事敬，與人忠。雖之夷狄，不可棄也。」&amp;lt;/ref&amp;gt; 따위이며, '天地'는 '하늘은 높아야 하고 땅은 두터워야 한다'는 것이고, '鬼神' 두 기는 '陽은 펴져야 하고(伸), 隂은 움츠려야 한다(屈)'는 것이며, '鳥獸'는 '소는 밭을 갈아야 하고, 말은 [사람을] 태워야 한다'는 것이고, '草木'은 '봄에는 싹터야 하고 가을에는 죽여야 한다'는 등의 부류이니, 모두 그 사이에 理가 있는 것이다.&amp;quot;&lt;br /&gt;
:○西山眞氏曰: &amp;quot;如為君當仁, 臣當敬之類, 乃道理合當如此. 不如此, 則不可, 故曰所當然. 然仁敬等, 非是人力强為. 有生之初, 即稟此理, 是乃天之所與也. 故曰所以然. 知所當然是知性; 知所以然是知天, 謂知其理所自來也.&amp;quot;&lt;br /&gt;
:서산 진씨가 말했다: &amp;quot;예를 들어 '임금은 仁해야 하고 신하는 敬해야 한다' 따위는 도리상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는 것이니, 이와 같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바'(所當然)라고 한다. 그러나 仁·敬 등은 사람의 힘으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갓 태어날 때 이 理를 품부받으니, 이것이 바로 하늘이 부여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까닭'(所以然)이라고 한다.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바'를 아는 것이 '知性'이고, '그러한 까닭'을 아는 것이 '知天'이니&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진심상&amp;gt; 1. 孟子曰：「盡其心者，知其性也。知其性，則知天矣。&amp;lt;/ref&amp;gt; 理의 유래를 안다는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amp;quot;必其表裏精粗無所不盡, 而又益推其類以通之, 至於一日脫然而貫通焉, 則於天下之物皆有以究其義理精微之所極,&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반드시 表裏·精粗에 다하지 않음이 없게 하고 또 더욱 그 부류를 미루어나가 이해해, 어느날 脫然하게 통달하게 되면, 천하 사물에 대해 모두 그것의 精微한 義理의 지극한 바를 궁구할 수 있게 되어,&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極即至善之謂.&amp;quot;&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極'은 '至善'을 말한다.&amp;quot;&lt;br /&gt;
&lt;br /&gt;
&amp;quot;而吾之聰明睿智, 亦皆有以極其心之本體而無不盡矣.&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내 聰明睿智 역시 마음의 본모습을 다해 빠뜨리는 바가 없을 것이다.&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不可盡者, 心之事; 可盡者, 心之理. 理既盡後, 謂如&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猶如; 例如.&amp;lt;/ref&amp;gt;一物初不曾識, 來到面前, 便識得此物, 盡吾心之理.&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다할 수 없는 것'은 마음의 事이고, '다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의 理이다. 理를 다한 뒤에는 마치 하나도 안 적이 없는 것 같지만, 눈앞에 닥치면 이것을 알고서 내 마음의 理를 다하게 된다.&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60 盡心，如何盡得？不可盡者心之事，可盡者心之理。理既盡之後，謂如一物初不曾識，來到面前，便識得此物，盡吾心之理。盡心之理，便是「知性，知天」。&amp;lt;/ref&amp;gt;&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此格物致知之效騐.&amp;quo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이것은 격물치지의 공효이다.&amp;quot;&lt;br /&gt;
&lt;br /&gt;
&amp;quot;此愚之所以補乎本傳闕文之意. 雖不能盡用程子之言, 然其指趣要歸, 則不合者鮮&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矣. 讀者其亦深考而實識之哉!&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이것이 내가 本傳의 빠진 글을 보충한 까닭이다. 비록 정자의 말씀을 다 인용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보충한 글의] 취지나 요점 가운데 [정자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드물 것이다. 독자 역시 [나처럼] 깊게 살피고 실제적으로 이해하라!&amp;quot;&lt;br /&gt;
&lt;br /&gt;
6.&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然則子之爲學, 不求諸心而求諸迹; 不求之内而求之外. 吾恐聖賢之學不如是之淺近而支離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혹자가 말했다: &amp;quot;그렇다면 그대의 학문은 마음에서 구하지 않고 자취에서 구하며, 내면에서 구하지 않고 외면에서 구하는 것이다. 나는 성현의 학문이 이처럼 淺近하며 지루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人之所以爲學, 心與理而已矣. 心雖主乎一身, 而其體之虛靈足以管乎天下之理; 理雖散在萬物, 而其用之微妙實不外一人之心, 初不可以内外精粗而論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사람이 학문하는 대상은 心과 理일 뿐이다. 心은 비록 일신을 주재하지만, 그 體의 허령함은 천하의 理를 주관하기에 충분하고, 理는 비록 만물에 흩어져있지만, 그 用의 미묘함은 실로 개인의 心을 벗어나지 않으니, 애당초 内外·精粗로 [구분해] 논할 수 없다.&amp;quot;&lt;br /&gt;
:問: &amp;quot;'用之微妙', 是心之用否?&amp;quot; 朱子曰: &amp;quot;理必有用, 何必又說是心之用乎? 心之體具乎是理, 理則無所不該而無一物之不在. 然其用實不外乎人心, 蓋理雖在物而用實在心也.&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用之微妙'은 心의 用입니까?&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理에도 분명 用이 있으니, 굳이 또 心의 用을 말해야 겠는가? 心의 體는 理를 갖추고 있고, 理는 갖추고 있지 않은 것이 없고 존재하지 않는 사물이 없다. 그러나 理의 用은 실로 사람의 心을 벗어나지 않으니, 대개 理가 비록 사물에 있더라도 [그] 用은 실로 心에 달린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amp;quot;然或不知此心之靈而無以存之, 則昏昩雜擾而無以窮衆理之妙; 不知衆理之妙而無以窮之, 則偏狹固滯&amp;lt;sub&amp;gt;偏一作褊&amp;lt;/sub&amp;gt;而無以盡此心之全. 此其理勢之相須, 蓋亦有必然者. 是以聖人設教, &lt;br /&gt;
使人黙識此心之靈而存之於端莊靜一之中, 以爲窮理之本; &lt;br /&gt;
使人知有衆理之妙而窮之於學問思辨之際, 以致盡心之功. &lt;br /&gt;
巨細相涵, 動靜交養, 初未嘗有内外精粗之擇; &lt;br /&gt;
及其眞積力乆而豁然貫通焉, 則亦有以知其渾然一致而果無内外精粗之可言矣. &lt;br /&gt;
今必以是爲淺近支離, 而欲藏形匿影, 别爲一種&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幽深恍惚艱難阻絶之論, 務使學者莽&amp;lt;sub&amp;gt;模黨反&amp;lt;/sub&amp;gt;措其心於文字言語之外, 而曰: '道必如此然後可以得之', 則是近世佛學詖淫邪遁之尤者, 而欲移之以亂古人明徳新民之實學, 其亦誤矣.&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그러나 이 心의 허령함을 알지 못해 보존하지 못하면 혼매하고 어지러워져 뭇 理의 신묘함을 궁구하지 못할 것이고, 뭇 理의 신묘함을 알지 못해 궁구하지 못한다면 편협하고 꽉 막혀 이 心의 온전함을 회복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형세상의 상호 의존 관계이니, 역시 반드시 그러한 점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께서 가르침을 세워, 사람들로 하여금 묵묵히 이 心의 허령함을 알아 端莊·靜一한 가운데 보존하여 궁리의 근본으로 삼게 하시고, 사람들로 하여금 뭇 理의 신묘함을 알아 學問·思辨할 때 궁구하게 해 盡心의 공부를 다하게 하셨다. [성인의 가르침은] 巨細가 서로 기르고 動靜이 서로 배양해 애당초 内外·精粗를 가린 적이 없고, 진실로 오래 노력을 모아 豁然하게 통달하면 또한 渾然히 일치되어 진실로 말할 만한 内外·精粗의 [구분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만일 이것을 '淺近하고 지루하다'고 여기고서, 형체와 그림자를 숨기고 따로 일종의 幽深·恍惚·艱難·阻絶한 주장을 만들어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문자·언어 밖에서 막연하게 자기 心을 잡게 하는데 힘쓰며, '道는 분명 이렇게 한 연후에야 얻을 수 있다'고 말하고자 한다면, 이는 근래 불학의 詖淫邪遁&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공손추상&amp;gt; 2. 「何謂知言？」曰：「詖辭知其所蔽，淫辭知其所陷，邪辭知其所離，遁辭知其所窮。&amp;lt;/ref&amp;gt; 중에서도 심한 것인데, 이것을 옮겨 옛 분의 明徳·新民의 實學을 변화시키려 하니, 그 역시 잘못이다.&amp;quot; &lt;br /&gt;
:問: &amp;quot;陸象山不取伊川格物之說, 以為'若隨事討論, 則精神易弊, 不若但求之心. 心明則無不照.' 其說亦似省力.&amp;quot; 朱子曰: &amp;quot;不去隨事討論, 便聽他胡做, 話便信口說, 脚便信歩行, 冥冥地去, 都不管他.&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육상산은 이천의 格物설을 취하지 않고서 '만약 일마다 따진다면 정신이 쉽게 지칠 것이니, 그저 마음에서 구하는 것만 못하다. 마음이 밝아지면 비추지 못하는 것이 없을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의 설 역시 공력을 적게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일마다 따지지 않는다면, 그가 멋대로 하는 짓을 받아들여 [그가] 말하면 [그] 말을 믿어버리고 [그가] 걸으면 [그] 걸음을 믿어버려 흐리멍덩하게 그를 전혀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8. 問：「陸先生不取伊川格物之說。若以為隨事討論，則精神易弊，不若但求之心，心明則無所不照，其說亦似省力。」曰：「不去隨事討論後，聽他胡做，話便信口說，腳便信步行，冥冥地去，都不管他。」&amp;lt;/ref&amp;gt;&lt;br /&gt;
:○節齋蔡氏曰: &amp;quot;盡心者, 言其心之所存, 更無一毫之不盡也. 然若要盡得, 須先知得. 所以學者要先窮理也.&amp;quot; 又曰: &amp;quot;存此心於端莊靜一之中以立其本; 窮此理於學問思辨之際以逹其用; 反之於身以踐其實, 則巨細相涵, 動靜交養, 及其眞積力乆而豁然融㑹, 然後可以造乎一之妙.&amp;quot;&lt;br /&gt;
:절재 채씨가 말했다: &amp;quot;'盡心'이라는 것은 心이 보존함에 털끝만큼의 다하지 않음도 없는 것을 말한다. 만약 盡心하고자 한다면,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배우는 자는 우선 窮理해야 한다.&amp;quot; 또 말했다: &amp;quot;이 心을 端莊靜一한 가운데서 보존하여 心의 근본을 세우고 이 理를 學問思辨할 때 궁구하여 理의 用에 통달하고서 자신에게 돌이켜 그 실제 내용을 실천한다면, 巨細가 서로 길러주고 動靜이 서로 배양할 것이며, 진정으로 오래 노력을 모아 豁然하게 통달한 연후에 一(渾然一致)의 신묘함에 도달할 수 있다.&amp;quot;&lt;br /&gt;
:○陳氏曰: &amp;quot;古人毎言學, 必欲其博, 所以極盡乎此心無窮之量也. 所謂盡心者, 須是盡得箇極大無窮之量, 無一理之或遺, 方是實能盡得心.&amp;quot;&lt;br /&gt;
:진씨가 말했다: &amp;quot;옛 분들은 학문을 논하실 때마다 반드시 넓게 하기를 바라신 것은 그것으로써 이 心의 무궁한 역량을 다하려는 것이었다. 이른바 '盡心'이라는 것은 지극히 크고 무궁한 역량을 다하여 하나의 이치도 혹 빠뜨림이 없어야 하니, [그래야] 비로소 진실로 心을 다할 수 있다.&amp;quot; &lt;br /&gt;
:○西山眞氏曰: &amp;quot;存心窮理二者, 當表裏用工. 蓋知窮理而不知存心, 則思慮紛擾, 物欲交攻, 此心昏亂, 如何窮理? 但知存心而不務窮理, 雖能執持静定, 亦不過如禪家之空寂而已. 故必二者交進, 則心無不正, 理無不通. 學之大端, 惟此而已.&amp;quot;&lt;br /&gt;
:서산 진씨가 말했다: &amp;quot;存心·窮理 두 가지는 안팎의 공부에 해당한다. 窮理할 줄만 알고 存心할 줄 모르면, 사려가 어지러워지고 물욕이 서로 치받아 이 心이 혼매하고 어지러워지니, 어떻게 窮理하겠는가? 存心할 줄만 알고 窮理에 힘쓰지 않으면, 비록 [내면을] 단속해 고요하게 만들 수 있더라도 선가의 空寂과 같을 뿐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두 가지를 병진해야 하니, 그렇게 한다면 心은 바르지 않음이 없고 理에는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다. 학문의 큰 줄기는 이것일 뿐이다.&amp;quot;&lt;br /&gt;
:○端莊主容貌言; 静一主心言; 表裏交正之義. 合而言之, 則敬而已.&lt;br /&gt;
:'端莊'은 용모를 위주로 말한 것이고, '静一'은 心을 위주로 말한 것이니, 안팎을 모두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합해서 말하면 敬일 뿐이다.&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存心於端莊静一', 主敬之工夫也; '窮理於學問思辨', 格致之工夫也. '巨'以此心言; '細'以衆理言; '動'以格物工夫言; '静'以主敬工夫言; '豁然貫通而果無内外精粗之可言', 則明徳明矣.&amp;quot;&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存心於端莊静一'은 主敬공부이고, '窮理於學問思辨'는 격물치지 공부이다. '巨'는 이 心을 말한 것이고, '細'는 뭇 理를 말한 것이며, '動'은 격물공부를 말한 것이고, '静'은 主敬공부를 말한 것이다. '豁然貫通而果無内外精粗之可言'은 明徳이 밝혀진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7. '格物'을 '外物을 막다'로 해설하는 것에 대한 평가&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近世大儒有爲格物致知之說者, 曰: '格猶扞&amp;lt;sub&amp;gt;音汗&amp;lt;/sub&amp;gt;也, 禦也. 能扞禦外物而後能知至道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근세 大儒 가운데 格物致知에 대해 설명한 자가 있다. [그는] '格은 扞·禦(막다)와 같다. 외물을 막은 이후에야 至道를 알 수 있다'&amp;lt;ref&amp;gt;&amp;lt;傳家集&amp;gt; &amp;lt;致知在格物論&amp;gt; 太學曰: &amp;quot;致知在格物.&amp;quot; 格猶扞也, 禦也. 能扞禦外物, 然後能知至道矣.&amp;lt;/ref&amp;gt;고 하였다.&lt;br /&gt;
:問: &amp;quot;温公以格物為扞格之格, 不知格字有訓扞義否?&amp;quot; 朱子曰: &amp;quot;亦有之, 如格闘之格, 是也.&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온공(사마광)은 格物을 '막다'(扞格)의 格이라고 생각했는데, 잘 모르겠습니다만, 格자에 '막다'(扞)라는 뜻이 있습니까?&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그런 뜻도 있으니, 예를 들어 '격투'(格闘)의 格이 이에 해당한다.&amp;quot;&lt;br /&gt;
&lt;br /&gt;
&amp;quot;又有推其說者, 曰: '人生而靜, 其性本無不善. 而有爲不善者, 外物誘&amp;lt;sub&amp;gt;音酉&amp;lt;/sub&amp;gt;之也. 所謂格物以致其知者, 亦曰扞去&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外物之誘而本然之善自明耳.'&amp;lt;sub&amp;gt;孔周翰說&amp;lt;/sub&amp;gt; 是其爲說, 不亦善乎?&amp;quot; 曰: &amp;quot;'天生烝民, 有物有則', 則物之與道, 固未始相離&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또 이 설을 발전시킨 자도 있다. [그는] '사람이 태어났을 때에는 고요하니,&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악기&amp;gt; 人生而靜，天之性也；感於物而動，性之欲也。物至知知，然後好惡形焉。好惡無節於內，知誘於外，不能反躬，天理滅矣。&amp;lt;/ref&amp;gt; 그 본성은 본래 선하지 않음이 없다. 불선한 점이 있는 것은 외물이 꾄 것이다. 이른바 格物致知라는 것 역시 외물의 꾐을 막고 제거해 본래 그러한 선함이 저절로 드러나게 하는 것일 뿐이다.'&amp;lt;sub&amp;gt;孔周翰&amp;lt;ref&amp;gt;[https://baike.baidu.com/item/孔宗翰 孔宗翰(1029-1088)]&amp;lt;/ref&amp;gt;의 설이다&amp;lt;/sub&amp;gt;라고 하였는데, 그의 설이 괜찮지 않은가?&amp;quot; 대답했다: &amp;quot;'하늘이 뭇 백성을 낳음에, 物이 있으면 법칙이 있으니', 物과 道는 본래 애당초 서로 떨어진 적이 없다.&amp;quot;&lt;br /&gt;
:格菴趙氏曰: &amp;quot;物與理未嘗相離. 若離物以求理, 則空虚而無據, 豈得一切扞而去之?&amp;quot;&lt;br /&gt;
:격암 조씨가 말했다: &amp;quot;物과 理는 본래 애당초 서로 떨어진 적이 없다. 만약 物을 떠나 理를 찾는다면 텅 비어 근거할 것이 없을 것이니, 어찌 모두 막고 제거할 수 있겠는가?&amp;quot; &lt;br /&gt;
&lt;br /&gt;
&amp;quot;今曰: '禦外物而後可以知至道', 則是絶父子而後可以知孝慈; 離&amp;lt;sub&amp;gt;如字&amp;lt;/sub&amp;gt;君臣而後可以知仁敬也, 是安有此理哉? 若曰: '所謂外物者, 不善之誘耳, 非指君臣父子而言也', 則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外物之誘, 人莫甚於飲食男女之欲. 然推其本, 則固亦莫非人之所當有而不能無者也. 但於其間自有天理人欲之辨, 而不可以毫釐&amp;lt;sub&amp;gt;力之反正作氂&amp;lt;/sub&amp;gt;差耳.&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만일 '외물을 막은 이후에야 至道를 알 수 있다'고 한다면, 이는 부자관계를 끊은 이후에야 孝慈를 알 수 있다는 것이며, 군신관계를 떠난 이후에야 仁敬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니, 어찌 이럴 리가 있겠는가? 만약 '이른바 外物이란 불선의 꾐일 뿐이니, 군신·부자관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저 '外物의 꾐'으론 식욕·색욕&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예운&amp;gt; 飲食男女，人之大欲存焉；死亡貧苦，人之大惡存焉。故欲惡者，心之大端也。人藏其心，不可測度也；美惡皆在其心，不見其色也，欲一以窮之，舍禮何以哉？&amp;lt;/ref&amp;gt;보다 심한 것이 없을 것이지만, 그 근본을 헤아려 본다면 진실로 [이러한 욕구] 역시 사람이 마땅히 지녀야 할 것으로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그 가운데 본래 천리와 인욕의 구별이 있어 털끝만큼도 어긋나서는 안 될 뿐이다.&amp;quot;&lt;br /&gt;
:問: &amp;quot;飲食之間, 孰為天理, 孰為人欲?&amp;quot; 朱子曰: &amp;quot;飲食者, 天理也; 要求美味, 人欲也.&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먹고 마시는 것'(飲食)에서 무엇이 천리이고 무엇이 인욕입니까?&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먹고 마시는 것은 천리이고, 맛있는 것을 찾는 것은 인욕이다.&amp;quot;&lt;br /&gt;
&lt;br /&gt;
&amp;quot;惟其徒有是物而不能察於吾之所以行乎其間者, 孰爲天理, 孰爲人欲. 是以無以致其克復之功, 而物之誘於外者得以奪乎天理之本然也. 一&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6. 連詞. 與'便'或'就'連用, 表示兩種動作時間上的前後緊接.&amp;lt;/ref&amp;gt;不即物以窮其原, 而徒惡&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物之誘乎己, 乃欲一切扞而去&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之, 則是必閉口枵&amp;lt;sub&amp;gt;虚驕反&amp;lt;/sub&amp;gt;腹然後可以得飲食之正; 絶滅種&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類然後可以全夫婦之别&amp;lt;sub&amp;gt;筆列反&amp;lt;/sub&amp;gt;也. 是雖裔&amp;lt;sub&amp;gt;以制反&amp;lt;/sub&amp;gt;戎無君無父之教有不能充其說者, 况乎聖人大中至正之道而得以此亂之哉!&amp;quot;&amp;lt;br/&amp;gt;&lt;br /&gt;
:이러한 物이 있음만 생각하고 그 사이에서 내가 행하는 것 가운데 어떤 것이 천리이며 어떤 것이 인욕인지 살피지 못하기 때문에, 극기복례의 공부를 다하지 못하고 외부로부터의 物의 꾐이 본래 그러한 천리를 빼앗을 수 있는 것이다. 만일 物에 나아가 그 근원을 궁구하지 않고 그저 物이 자신을 꾐만 미워해 모두 막고 제거하려 한다면, 이러한 [목표는] 입을 막고 배를 비운 뒤에야 먹고 마심의 정도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종족을 끊어버린 뒤에야 부부의 구별을 온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오랑캐의 '임금도 없고 부모도 없는' 가르침도 이러한 설을 충족시킬 수가 없는데, 하물며 성인의 지극히 중정한 도리를 이러한 것으로 어지럽힐 수 있겠는가!&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8. 程門 제자의 格物致知설에 대한 평가&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自程子以格物爲窮理, 而其學者傳之見&amp;lt;sub&amp;gt;形甸反&amp;lt;/sub&amp;gt;於文字多矣. 是亦有以發其師說而有助於後學者耶?&amp;quot; 曰: &amp;quot;程子之說, 切於己而不遺於物; 本於行事之實而不廢文字之功; 極其大而不略其小; 究其精而不忽其粗. 學者循是而用力焉, 則既不務博而陷於支離, 亦不徑約而流於狂妄. 既不舍&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其積累之漸, 而其所謂豁然貫通者, 又非見聞思慮之可及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정자께서 格物을 '窮理'로 여기신 뒤로 정자께 배운 자들이 그 설을 글로 표현해 전한 경우가 많다. 이 역시 자기 스승의 설을 밝혀 후학에게 보탬이 될 수 있는 것인가?&amp;quot; 대답했다: &amp;quot;정자의 설은 자신에게 절실하면서도 남을 빠뜨리지 않고, 실제적인 실천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글공부를 폐하지 않으며, 큰 것을 지극히 하면서도 작은 것을 생략하지 않고, 정밀한 것을 궁구하면서도 거친 것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배우는 자가 이를 따라 힘쓴다면, 넓게 하는데 힘쓰더라도 지리한 데 빠지지 않으며, 간략함을 말미암더라도 허무맹랑한 데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정자의 설은] 점진적인 공부를 버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자 설에서] 이른바 '豁然貫通'이라는 것 역시 [일반적인] 생각으로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amp;quot;&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務博陷於支離', 博物洽聞&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多聞博識.&amp;lt;/ref&amp;gt;之徒; '徑約流於狂妄', 禪學頓悟之徒. 一句說盡世人爲學之弊.&amp;quo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務博陷於支離'는 박식을 [추구하는] 무리이고, '徑約流於狂妄'은 선학의 돈오를 [주장하는] 무리이다. 한 마디로 세상 사람들이 학문하면서 [저지르는] 폐단을 모두 표현했다.&amp;quot;&lt;br /&gt;
&lt;br /&gt;
&amp;quot;是於說經之意、入徳之方, 其亦可謂反復&amp;lt;sub&amp;gt;芳服反, 亦作覆. 後凡言反復音同.&amp;lt;/sub&amp;gt;詳備而無俟於發明&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 說明; 證明; 表明.&amp;lt;/ref&amp;gt;矣.&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이는(정자가 格物을 '窮理'로 풀이한 설) 경전을 해설한 뜻으로나 덕을 갖추는 방법으로나 ?? '반복하고 상세히 [설명해서 더 이상] 밝힐 것이 없다'고 말할 만하다.&amp;quot; &lt;br /&gt;
:朱子曰: &amp;quot;博學, 亦非欲求異聞雜學方謂之博. 博之與約, 初學且須作兩途理㑹. 一面博學, 又自一面持敬守約, 莫令兩下&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 雙方; 兩方面.&amp;lt;/ref&amp;gt;相靠&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 相違; 背向. 3. 依賴; 憑藉. 5. 指在時間或空間上接近.&amp;lt;/ref&amp;gt;; 須兩路進前用工, 塞斷中間, 莫令相通. 將來成時, 便自有㑹通處. 若不如此兩下用工, 成甚次第&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6. 規模.&amp;lt;/ref&amp;gt;?&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博學' 역시 색다르거나 뒤섞은 배움을 찾으려고 하고 나서야 '博'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博'과 '約'은 초학자라면 우선 별개의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博學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持敬·守約해서 양자가 서로 닿게 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두 길로 나아가며 공부해, 중간을 막고 끊어 서로 통하지 않게 해야 한다. [공부가] 완성될 때 저절로 통하게 될 것이다. 만약 이렇게 두 가지로 공부하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이 되겠는가?&amp;quot;&lt;br /&gt;
&lt;br /&gt;
&amp;quot;若其門人雖曰: '祖&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9. 效法; 承襲.&amp;lt;/ref&amp;gt;其師說', 然以愚考之, 則恐其皆未足以及此也. 蓋有以必窮萬物之理同出於一爲格物; 知萬物同出乎一理爲知至. 如合内外之道則天人物我爲一; 通晝夜之道則死生幽明爲一; 逹哀樂&amp;lt;sub&amp;gt;音洛&amp;lt;/sub&amp;gt;好惡&amp;lt;sub&amp;gt;並去聲&amp;lt;/sub&amp;gt;之情則人與鳥獸魚鼈爲一; 求屈伸消長&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之變則天地山川爲一者, 似矣.&amp;lt;sub&amp;gt;吕與叔說&amp;lt;/sub&amp;gt; 然其欲必窮萬物之理而專指外物, 則於理之在己者有不明矣; 但求衆物比類之同而不究一物性情之異, 則於理之精微者有不察矣; 不欲其異而不免乎四說之異; 必欲其同而未極乎一原之同, 則徒有牽合之勞而不睹貫通之妙矣. 其於程子之說, 何如哉?&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예를 들어, 정자의 문인이 '자기 스승의 설을 본받았다'고 말했더라도, 내가 살펴보니 정자 문인 모두가 이에 미치지 못한 것 같다. '만물의 理가 똑같이 하나(一)에서 나옴을 반드시 궁구하는 것을 格物로 여기고, 만물이 똑같이 하나(一)에서 나옴을 아는 것을 知至로 여기며, [정자가 말한] 「合内外之道」&amp;lt;ref&amp;gt;&amp;lt;이정유서&amp;gt; 03-08 須是合內外之道, 一天人, 齊上下, 下學而上達, 極高明而道中庸.&amp;lt;/ref&amp;gt;는 하늘과 인간·사물과 내가 하나되는 것이라고 [여기고], [정자가 말한]「通晝夜之道」&amp;lt;ref&amp;gt;&amp;lt;이정유서&amp;gt; 25-40 通乎晝夜之道, 而知晝夜, 死生之道也.&amp;lt;/ref&amp;gt;는 죽음과 삶·저승과 이승이 하나되는 것이라고 [여기며], 哀樂·好惡의 감정에 통달하는 것에 대해서는 인간과 鳥獸魚鼈이 하나되는 것으로 [여기고], 屈伸消長의 변화를 탐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天地山川이 하나되는 것으로 [여기는] 자가 있는데, 그럴 듯하다.&amp;lt;sub&amp;gt;吕與叔의 설이다&amp;lt;/sub&amp;gt; 그러나 그가 만물의 理를 반드시 궁구하려고 하면서 오직 外物만 가리킨 것은 내게 있는 理에 대해 밝지 못한 점이 있는 것이고, 뭇 사물 부류의 공통점만 탐구하고 개별 사물의 性情 차이는 탐구하지 않은 것은 理의 자세한 부분에 살피지 않은 점이 있는 것이며, [정자의 설과] 다르고자 하지 않으면서 [정자의] 네 가지 설에 대해서는 다름을 면하지 못했고, [정자의 설과] 같고자 하면서 하나의 동일한 근원에는 이르지 못했으니, 억지로 갖다 붙이는 수고만 있었을 뿐 관통하는 신묘함을 보지 못했다. 그가 정자의 설에 대해 어떠한가?&amp;quot;&lt;br /&gt;
&lt;br /&gt;
&amp;quot;又有以爲窮理只是尋箇是處, 然必以恕爲本而又先其大者, 則一處理通而觸&amp;lt;sub&amp;gt;樞玉反&amp;lt;/sub&amp;gt;處皆通者.&amp;lt;sub&amp;gt;謝顯道說&amp;lt;/sub&amp;gt; 其曰: '尋箇是處'者則得矣, 而曰: '以恕爲本', 則是求仁之方而非窮理之務也. 又曰: '先其大者', 則不若先其近者之切也. 又曰: '一處通而一切通', 則又顔子之所不能及、程子之所不敢言, 非若類推積累之可以循序而必至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또 '窮理는 다만 옳은 것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恕를 근본으로 여겨야 하고, 또 큰 것을 우선해야 하니, 한 곳의 理에 통달하면 닿는 곳마다 모두 통달할 것이다'라고 여긴 자가 있었다.&amp;lt;sub&amp;gt;謝顯道의 설이다.&amp;lt;/sub&amp;gt; 그가 '옳은 것을 찾는다'고 말한 것은 맞지만, '恕를 근본으로 한다'고 말한 것의 경우, [恕는] 仁하기 위한 방법이지&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위령공&amp;gt; 23. 子貢問曰：「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子曰：「其恕乎！己所不欲，勿施於人。」- 尹氏曰：「學貴於知要。子貢之問，可謂知要矣。孔子告以求仁之方也。」&amp;lt;/ref&amp;gt; 窮理에 힘쓰는 것이 아니다. 또 '큰 것을 우선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비근한 것을 우선하는 것이 절실함만 못하다. 또 '한 곳의 [理에] 통달하면 [닿는 곳마다] 모두 통달한다'는 것은 또 안자께서도 미치지 못했던 바이며, 정자께서도 감히 말씀하시지 못하셨던 것이니,&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8 問：「『一理通則萬理通』，其說如何？」曰：「伊川嘗云：『雖顏子亦未到此。』天下豈有一理通便解萬理皆通！也須積累將去。如顏子高明，不過聞一知十，亦是大段聰明了。學問卻有漸，無急迫之理。」&amp;lt;/ref&amp;gt; [아는 것에서부터] 유추하고 쌓아나는 [식으로 일정한] 단계를 거쳐 [목표에] 반드시 도달할 수 있는 것만 못하다.&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謝氏'尋箇是處'之說甚好, 與吕與叔'必窮萬物之理同出於一為格物, 知萬物同出乎一理為知至', 其所見大叚不同. 但'尋箇是處'者, 須是於其一二分是處直窮到十分是處, 方可.&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사량좌의 '옳은 것을 찾는다'는 말은 매우 좋으니, 여여숙의 '만물의 理가 똑같이 하나(一)에서 나옴을 반드시 궁구하는 것을 格物로 여기고, 만물이 똑같이 하나(一)에서 나옴을 아는 것을 知至로 여기는 것'과는 견식이 매우 다르다. 그러나 '옳은 것을 찾는다'는 것은 10~20% 옳은 것에서 단지 100% 옳은 것을 궁구해야 한다. ??&amp;quo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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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quot;又有以爲天下之物不可勝&amp;lt;sub&amp;gt;平聲&amp;lt;/sub&amp;gt;窮, 然'皆備於我'而非從外得也. 所謂格物, 亦曰'反身而誠', 則天下之物無不在我者, 是亦似矣.&amp;lt;sub&amp;gt;楊中立說&amp;lt;/sub&amp;gt; 然'反身而誠'乃爲物格知至以後之事, 言其窮理之至無所不盡. 故凡天下之理反求諸身, 皆有以見其如目視、耳聽、手持、足行之畢具於此而無毫髮之不實耳, 固非以是方爲格物之事, 亦不謂但務反求諸身而天下之理自然無不誠也. &amp;lt;中庸&amp;gt;之言'明善'即物格知至之事; 其言'誠身'即意誠心正之功. 故不明乎善, 則有反諸身而不誠者. 其功夫地位固有序而不可誣矣. 今爲格物之說, 又安得遽以是而爲言哉?&amp;quot;&amp;lt;br/&amp;gt; &lt;br /&gt;
&amp;quot;또 '천하의 사물[의 理를] 이루 다 궁구할 수 없다. 그러나 [理는]「모두 내게 갖춰져 있지」&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진심상&amp;gt; 4. 孟子曰：「萬物皆備於我矣。反身而誠，樂莫大焉。&amp;lt;/ref&amp;gt; 외부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格物이라는 것 역시「자신을 반성해 진실하면」 천하 사물[의 理 가운데] 내게 있지 않음이 없다는 것이다'라고 여긴 자가 있었다.&amp;lt;sub&amp;gt;楊中立의 설이다.&amp;lt;/sub&amp;gt; 그러나 '자신을 반성해 진실하다'는 것은 바로 '物格知至' 이후의 일이니, 窮理가 완성되어 빠뜨린 것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때] 천하의 理를 돌이켜 자신에게 구하면, 누구나 천하의 理가 '눈의 봄·귀의 들음·손의 쥠·발의 걸음이 이 몸에 모두 갖춰져 털끝만큼도 실제적이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니, 진실로 이러한 것을 바로 格物의 일로 여긴 것도 아니고, 또 '그저 돌이켜 자신에게 찾는데 힘쓰면 천하의 理가 저절로 진실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amp;lt;중용&amp;gt;에서 말한 '明善'은 物格知至의 일이고, &amp;lt;중용&amp;gt;에서 말한 '誠身'은 意誠心正의 공효이다. 그러므로 '선에 밝지 않으면 자신에게 돌이켜보았을 때 진실하지 못한 점이 있는 것이다.'&amp;lt;ref&amp;gt;&amp;lt;중용장구&amp;gt; 20장. 反諸身不誠，不順乎親矣；誠身有道：不明乎善，不誠乎身矣。&amp;lt;/ref&amp;gt; 공부의 단계에 진실로 차례가 있으니 속일 수 없다. 지금 格物에 대한 해설을 하면서, 또 어찌 바로 이것을 가지고 말할 수 있겠는가?&amp;quo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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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quot;又有以'今日格一物, 明日格一物'爲非程子之言者,&amp;lt;sub&amp;gt;尹彦明說&amp;lt;/sub&amp;gt; 則諸家所記程子之言, 此類非一, 不容皆誤. 且其爲說正&amp;lt;中庸&amp;gt;學問思辨、弗得弗措之事, 無所咈&amp;lt;sub&amp;gt;音佛&amp;lt;/sub&amp;gt;於理者. 不知何所病而疑之也? 豈其習於持敬之約而厭夫&amp;lt;sub&amp;gt;音扶下同&amp;lt;/sub&amp;gt;觀理之煩耶? 抑直以己所未聞而不信他人之所聞也? 夫持敬觀理不可偏廢, 程子固已言之. 若以己偶未聞而遂不之信, 則以有子之似聖人, 而速貧速朽之論猶不能無待於子游而後定. 今又安得遽以一人之所未聞而盡廢衆人之所共聞者哉?&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또 '「오늘 하나를 궁구(格)하고 내일 하나를 궁구(格)하라」는 것은 정자의 말씀이 아니다'라고 여긴 자가 있었다.&amp;lt;sub&amp;gt;尹彦明의 설이다.&amp;lt;/sub&amp;gt; 여러 학자가 기록한 정자의 말씀 가운데 이러한 것이 하나는 아니고, 모두 틀렸다고 할 수도 없다. 우선 정자께서 말씀하신 것은 바로 &amp;lt;중용&amp;gt;의 '學問思辨'과 '弗得弗措'의 일이니,&amp;lt;ref&amp;gt;&amp;lt;중용장구&amp;gt; 20장. 博學之，審問之，慎思之，明辨之，篤行之。有弗學，學之弗能弗措也；有弗問，問之弗知弗措也；有弗思，思之弗得弗措也；有弗辨，辨之弗明弗措也；有弗行，行之弗篤弗措也；&amp;lt;/ref&amp;gt; 理에 어긋난 것이 없다. 잘 모르겠지만, [윤돈은] 무엇을 문제로 여겨 의심한 것인가? 어찌 그가 持敬의 간략함에 익숙하고 觀理의 번거로움에 염증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아니면 단지 자신이 듣지 못했다고 해서 남이 들은 것을 불신한 것인가? 持敬과 觀理는 한쪽을 폐해서는 안 되니, 정자께서 진실로 이미 말씀하셨다. 만일 자신이 우연히 듣지 못했다고 해서 마침내 신뢰하지 않는 것은, 유자의 [생각이] 성인과 같은데도 '速貧速朽'에 대한 설명을 자유에게 기대지 않고서는 확정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지금 또 어찌 급히 한 사람이 듣지 못했다 해서 여러 사람이 함께 들은 것을 모두 폐할 수 있겠는가?&amp;quot; &lt;br /&gt;
:&amp;lt;禮記&amp;gt; &amp;lt;檀弓&amp;gt; 有子問於曽子曰: &amp;quot;問&amp;lt;sub&amp;gt;當作聞&amp;lt;/sub&amp;gt;喪&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於夫子乎?&amp;lt;sub&amp;gt;喪, 謂失位去國.&amp;lt;/sub&amp;gt; 曰: &amp;quot;聞之矣. 喪欲速貧, 死欲速朽.&amp;quot; 有子曰: &amp;quot;是非君子之言也.&amp;quot; 曽子曰: &amp;quot;參也與子游聞之.&amp;quot; 有子曰: &amp;quot;然, 然則夫子有爲&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言之也.&amp;quot; 曽子以斯言告於子游, 子游曰: &amp;quot;甚哉! 有子之言似夫子也. 昔者夫子居於宋, 見桓司馬&amp;lt;sub&amp;gt;宋向戌之孫, 名魋.&amp;lt;/sub&amp;gt;自為石槨, 三年而不成. 夫子曰: '若是其靡也, 死不如速朽之愈也.' 死之欲速朽, 為桓司馬言之也. 南宫敬叔反,&amp;lt;sub&amp;gt;魯仲孫閲嘗失位去國而得反.&amp;lt;/sub&amp;gt; 必載寳而朝. 夫子曰: '若是其貨也, 喪不如速貧之愈也.' 喪之欲速貧, 為敬叔言之也.&amp;quot; 曽子以子游之言告於有子, 有子曰: &amp;quot;然. 吾固曰非夫子之言也.&amp;quot;&lt;br /&gt;
:&amp;lt;예기&amp;gt; &amp;lt;단궁상&amp;gt; 유자가 증자에게 물었다: &amp;quot;선생님께 벼슬에서 물러났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들은 게 있는가?&amp;quot; 증자가 대답했다: &amp;quot;그에 대해 들었다. '벼슬에서 물러났으면 빨리 가난해지려고 하고, 죽었으면 빨리 썩으려고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amp;quot; 유자가 말했다: &amp;quot;이는 군자의 말이 아니다.&amp;quot; 증자가 대답했다: &amp;quot;나는 자유와 함께 이를 들었다.&amp;quot; 유자가 말했다: &amp;quot;그렇가?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까닭이 있어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amp;quot; 증자가 이 말을 자유에게 하니, 자유가 말했다: &amp;quot;훌륭하구나! 유자의 말이 선생님과 같다. 전에 선생님께서 송나라에 머무실 때, 환퇴가 스스로 석곽을 만드는데 3년이 되도록 완성하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는, '이렇게 화려하다니! 차라리 죽어서 빨리 썩는 것만 못하다'고 말씀하셨다. [즉] '죽어서 빨리 썩는다'는 것은 환퇴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남궁경숙이 돌아오고나서 반드시 보물을 싣고 임금을 뵈었는데,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뇌물을 쓰다니! 차라리 벼슬에서 물러나 빨리 가난해지는 것만 못하다'고 말씀하셨다. [즉] '벼슬에서 물러나 빨리 가난해진다'는 것은 남궁경숙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amp;quot; 증자가 자유의 말을 유자에게 하니, 유자가 말했다: &amp;quot;그렇다! 내가 진실로 '선생님의 말씀이 아니다'라고 말했었다.&amp;quo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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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quot;又有以爲物物致察而宛轉歸己, 如察天行以自强, 察地勢以厚徳者, 亦似矣.&amp;lt;sub&amp;gt;胡安國說&amp;lt;/sub&amp;gt; 然其曰: '物物致察', 則是不察程子所謂'不必盡窮天下之物'也; 又曰: '宛轉歸己', 則是不察程子所謂'物我一理, 纔明彼即曉此'之意也; 又曰: '察天行以自强, 察地勢以厚徳', 則是但欲因其已定之名, 擬其已著之迹, 而未嘗如程子所謂'求其所以然與其所以爲'者之妙也. 獨有所謂'即事即物, 不厭不棄而身親格之以精其知'者, 爲得致字向裏之意. 而其曰: '格之之道, 必立志以定其本, 居敬以持其志. 志立乎事物之表, 敬行乎事物之内, 而後知乃可精'者,&amp;lt;sub&amp;gt;胡仁仲說&amp;lt;/sub&amp;gt; 又有以合乎所謂'未有致知而不在敬者'之指. 但其語意頗傷急迫, 既不能盡其全體規模之大, 又無以見其從&amp;lt;sub&amp;gt;七恭反&amp;lt;/sub&amp;gt;容潛玩、積乆貫通之功耳.&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또 '[격물이란] 사물마다 자세히 살펴서 宛轉하게?? 자신에게 귀결시키는 것이니, 하늘의 운행을 관찰하여 자신을 강하게 하고,&amp;lt;ref&amp;gt;&amp;lt;주역&amp;gt; 건괘 상전 天行健，君子以自強不息。&amp;lt;/ref&amp;gt; 땅의 형세를 관찰하여 덕을 두텁게 하는 것&amp;lt;ref&amp;gt;&amp;lt;주역&amp;gt; 곤괘 상전 地勢坤，君子以厚德載物。&amp;lt;/ref&amp;gt;과 같다'고 여기는 자가 있었으니, 그럴 듯하다.&amp;lt;sub&amp;gt;胡安國의 설이다.&amp;lt;/sub&amp;gt;&amp;lt;ref&amp;gt;&amp;lt;예기집설&amp;gt; 권 149. 武夷胡氏曰: &amp;quot;格, 度也, 猶曰品式也, 所謂物之則也.&amp;quot; 又曰: &amp;quot;夫窮理盡性乃聖門事業, 物物而察知之始也, 中人所可能者; 一以貫之, 知之至也, 非上知不與焉. 是故以子貢之明達, 猶疑於其師以為多學而識之也. 且置是事而以致知格物為先, 物物而察則知益明, 心益廣, 道可近矣. 然物物而察者, 又豈逐物而不知反哉? 又豈以己與物為二哉? 察於天行, 以自强也; 察於地勢, 以厚德也; 察於雲雷, 以經綸也; 察於山泉, 以果行也; 察於日月, 通晝夜也; 察於尺蠖, 明屈伸也; 逺察諸物, 其畧如此. 察於耳目身舌, 克私心也; 察於辭貌顔色, 尊德性也; 察於灑掃應對, 兼本末也; 察於心性四體, 養浩然之氣也; 近察諸身, 其要如此. 無所不在者, 理也; 無所不有者, 心也. 物物致察, 宛轉歸己, 則心與理不昧. 故知循理者, 士也; 物物皆備, 反身而誠, 則心與理不違. 故樂循理者, 君子也; 天地合德, 四時合序, 則心與理為一無事乎循矣. 故一以貫之, 聖人也, 豈易言哉?&amp;lt;/ref&amp;gt; 그러나 그가 '사물마다 자세히 살핀다'고 한 것은 정자의 '천하의 사물을 모두 궁구할 필요는 없다'는 말을 살피지 않은 것이고, 또 '宛轉하게?? 자신에게 귀결시킨다'고 한 것은 정자의 '사물과 나는 동일한 理를 [갖고 있으니], 저것을 밝히자마자 이것을 알게 된다'는 뜻을 살피지 않은 것이며, 또 '하늘의 운행을 관찰하여 자신을 강하게 하고, 땅의 형세를 관찰하여 덕을 두텁게 한다'고 한 것은 단지 이미 정해진 이름을 따르고 이미 드러난 자취에 의거하는 것이니, 정자의 이른바 '그 所以然과 그 所以爲를 찾는 묘함'과 같았던 적이 없는 것이다. 오직 이른바 '사물에 나아가 싫증내지도 버리지도 않고 몸소 직접 궁구해 앎을 정밀하게 한다'는 것이 있으니, '致'자의 향내적 의미를 [제대로] 파악했다 하겠다. 그가 '궁구하는 방법은 반드시 뜻을 세워 근본을 확정하고, 居敬해 그 뜻을 유지하는 것이다. 뜻이 사물 밖에서 확립되고 敬이 사물 안에서 행해진 뒤에야 앎이 정밀해질 수 있다'고 말한 것은 또 [정자의] '致知하면서 敬에 있지 않은 경우는 없다'는 뜻에 부합한다. 다만 그의 표현이 급박하다는 작지 않은 문제가 있어 정자의 큰 전체 규모를 포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정자의 느긋하게 익히고 누적이 오래되어 통달하게 되는 공부를 보지 못한다.&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身親格之', 說得親字急迫, 不成是倩人格?&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身親格之'에서 '親'자를 말한 것이 급박하니, 남한테 부탁해서 궁구(格)하겠는가!&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8 上蔡說：「窮理只尋箇是處，以恕為本。」窮理自是我不曉這道理，所以要窮，如何說得「恕」字？他當初說「恕」字，大概只是說要推我之心以窮理，便礙理了。龜山說「反身而誠」，卻大段好。須是反身，乃見得道理分明。如孝如弟，須見得孝弟，我元有在這裏。若能反身，爭多少事。他又卻說：「萬物皆備於我，不須外面求。」此卻錯了。「身親格之」，說得「親」字急迫。自是自家格，不成倩人格！&amp;lt;/ref&amp;gt;&lt;br /&gt;
:○此叚本說得精, 然却有病者, 只說得向裏來, 不曾説得外面, 所以語意頗傷急迫. 蓋致知本廣大, 須說得表裏内外、周遍兼該, 方得. 其曰: &amp;quot;志立乎事物之表, 敬行乎事物之内&amp;quot;, 此語極好. 而曰: &amp;quot;知乃可精&amp;quot;, 便有局促氣象. 他須要就這裏便精其知, 殊不知致知之道不如此急迫. 須是寛其程限&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 期限; 3. 路程.&amp;lt;/ref&amp;gt;, 大其度量, 久久自然通貫. 他只說得裏面一邊極精, 遺了外面一邊, 所以其規模之大不如程子. 且看程子所說: &amp;quot;今日格一物, 明日格一物, 積久自貫通&amp;quot;, 此言該内外, 寛緩不迫, 有涵泳從容之意. 所謂&amp;quot;語小天下莫能破, 語大天下莫能載&amp;quot;也.&lt;br /&gt;
:이 단락은 본래 정밀하게 말했지만 병폐가 있다. 내면에 대해서만 말하고 외면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표현이 급박하다는 상당한 단점이 있다. 대개 致知는 본래 광대해서 안팎을 두루 빠짐 없이 말해야 한다. 그가 '뜻은 사물 밖에서 세워지고, 敬은 사물 안에서 행해진다'고 한 이 말은 매우 좋다. 그러나 '앎이 그제서야 정밀해질 수 있다'고 말한 것은 급박한 느낌이 있다. 그는 여기에서 앎을 정밀하게 하려고 했으니, 致知하는 방법이 이렇게 급박하지 않음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반드시 기한을 여유롭게 두고 도량을 크게 해 오래 되면 저절로 통달하게 된다. 그는 그저 내면 하나에 대해서만 매우 지극하게 말하고 외면은 빠뜨렸기 때문에, 규모가 정자만 못한 것이다. 또 정자께서 '오늘 하나를 궁구하고 내일 하나를 궁구해, 누적이 오래되면 저절로 통달하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이 말은 안팎을 겸하면서도 여유 있고 급박하지 않아 천천히 젖어드는 뜻이 있다. 이른바 '작은 것을 말하면 누구도 쪼갤 수 없고, 큰 것을 말하면 천하도 실을 수 없다'&amp;lt;ref&amp;gt;&amp;lt;중용장구&amp;gt; 12장. 故君子語大，天下莫能載焉；語小，天下莫能破焉。&amp;lt;/ref&amp;gt;는 것이다.&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8 五峰說「立志以定其本，居敬以持其志。志立乎事物之表，敬行乎事物之內，而知乃可精」者，這段語本說得極精。然卻有病者，只說得向裏來，不曾說得外面，所以語意頗傷急迫。蓋致知本是廣大，須用說得表裏內外周遍兼該方得。其曰「志立乎事物之表，敬行乎事物之內」，此語極好。而曰「而知乃可精」，便有局促氣象。他便要就這裏便精其知。殊不知致知之道不如此急迫，須是寬其程限，大其度量，久久自然通貫。他言語只說得裏面一邊極精，遺了外面一邊，所以其規模之大不如程子。且看程子所說：「今日格一件，明日格一件，積久自然貫通。」此言該內外，寬緩不迫，有涵泳從容之意，所謂「語小天下莫能破，語大天下莫能載」也。&amp;lt;/ref&amp;gt;&lt;br /&gt;
:○問'立志以定其本, 居敬以持其志.' 曰: &amp;quot;人之爲事, 必先立志以為本. 志不立, 則不能爲得事. 雖能立志, 苟不能居敬以持之, 此心亦泛然而無主, 悠悠終日, 亦只是虛言. 立志必須髙出事物之表, 而居敬則常存於事物之中, 令此敬與事物皆不相違. 言也須敬, 動也須敬, 坐也須敬, 頃刻去他不得.&amp;quot;&lt;br /&gt;
:'뜻을 세워 근본을 확정하고, 居敬해 뜻을 유지한다'에 대해 물었다.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사람이 뭔가를 할 때 반드시 먼저 뜻을 세워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뜻이 확정되지 않으면 일을 할 수가 없다. 비록 뜻을 세울 수 있더라도 居敬해 유지하지 못한다면, 이 마음은 역시 泛然히 주재가 없어 아득한 채로 하루를 보낼 것이니, ['立志'라는 말] 역시 허언이 되버린다. '뜻을 세우는 것'은 반드시 사물 밖에 높이 드러나야 하고, '居敬'은 늘 사물 안에 보존되어 이 敬과 사물 모두 서로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말할 때에도 敬하고, 움직일 때에도 敬하며, 앉아있을 때에도 敬해서 잠시라도 敬에서 떨어져서는 안 된다.&amp;quot;&lt;br /&gt;
&lt;br /&gt;
&amp;quot;嗚呼! 程子之言, 其答問反復之詳且明也如彼, 而其門人之所以爲說者乃如此. 雖或僅有一二之合焉, 而不免於猶有所未盡也. 是亦不待七十子喪&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而大義已乖矣.&amp;lt;sub&amp;gt;出&amp;lt;家語&amp;gt;後序&amp;lt;/sub&amp;gt; 尚何望其能有所發而有助於後學哉?&amp;lt;br/&amp;gt;&lt;br /&gt;
&amp;quot;아! 정자의 말씀하신 문답이 반복되어 상세하고도 명백한 것이 저와 같은데, 그의 문인들이 말한 것은 도리어 이와 같다. 비록 혹시 겨우 10~20%라도 부합하는 점이 있더라도, 여전히 포괄하지 못하는 점이 있음을 면하지 못하니, [공자의] 칠십 제자가 죽기를 기다릴 것도 없이 대의가 이미 어그러졌다.&amp;lt;sub&amp;gt;&amp;lt;공자가어&amp;gt; 후서에 나온다.&amp;lt;ref&amp;gt;&amp;lt;공자가어&amp;gt; &amp;lt;후서&amp;gt; 孔子旣没而微言絶, 七十二弟子終而大義乖.&amp;lt;/ref&amp;gt;&amp;lt;/sub&amp;gt; 그런데도 어찌 그들이 계발한 바가 있어 후학들에게 보탬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겠는가?&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程子說更不可易. 某當初於呂、謝、楊、尹說, 叚叚録出, 句句比對, 逐字秤停&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衡量斟酌.&amp;lt;/ref&amp;gt;過, 方見程子說攧撲不破, 諸說挨著便成粉碎, 諸說皆失了程子意. 此正是入門欵, 於此既差, 他可知矣.&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정자의 설은 더이상 바꿀 수 없다. 나는 원래 여여숙·사상채·양귀산·윤화정의 설을 단락마다 기록해두고 구절마다 비교하며 글자마다 헤아려보았고, 그제서야 정자의 설을 어떻게 해도 깨뜨릴 수 없고, 정자 제자들의 설은 줄줄이 분쇄되어 그들의 설 모두 정자의 뜻을 놓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것(격물치지)은 바로 입문에 [해당하는] 조목이니, 여기서 어긋나면 다른 것도 알 수 있다.&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8. 先生問：「大學看得如何？」曰：「大綱只是明明德，而著力在格物上。」曰：「著力處大段在這裏，更熟看，要見血脈相貫穿。程子格物幾處，更子細玩味，說更不可易。某當初亦未曉得。如呂，如謝，如尹楊諸公說，都見好。後來都段段錄出，排在那裏，句句將來比對，逐字稱停過，方見得程子說鶏撲不破。諸公說，挨著便成粉碎了！」; 같은 책, 같은 곳. 諸公致知、格物之說，皆失了伊川意，此正是入門款。於此既差，則他可知矣。&amp;lt;/ref&amp;gt;&lt;br /&gt;
:○程子諸門人說得都差, 不曽精曉程子之說. 亦縁當時諸公所聞於程子者語意不全, 所以多差, 後來集註家語録凑起衆說, 此叚工夫方是渾全. 然則當時親炙, 未為全幸; 生先生之後者, 未為不幸也.&lt;br /&gt;
:정자의 여러 문인들이 말한 것은 모두 어긋나 정자의 설을 제대로 이해한 경우가 없었다. 또 당시 여러 선생이 정자께 들은 내용이 온전하지 않기 때문에 많이 차이를 보여, 나중에 주석가의 어록이나 여러 설을 모으고 나서야 이 공부(격물치지)가 비로소 온전해졌다. 그렇다면 당시에 [정자께] 직접 수업을 들었다고 해서 십분 다행인 것도 아니고, 선생 뒤에 태어난 것도 불행이 아니다.&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8. 這箇道理，自孔孟既沒，便無人理會得。只有韓文公曾說來，又只說到正心、誠意，而遺了格物、致知。及至程子，始推廣其說，工夫精密，無復遺憾。然程子既沒，諸門人說得便差，都說從別處去，與致知、格物都不相干，只不曾精曉得程子之說耳。只有五峰說得精，其病猶如此。亦緣當時諸公所聞於程子者語意不全，或只聞一時之語，或只聞得一邊，所以其說多差。後來卻是集諸家語錄，湊起眾說，此段工夫方始渾全。則當時門人親炙者未為全幸，生於先生之後者未為不幸。&amp;lt;/ref&amp;gt;&lt;br /&gt;
&lt;br /&gt;
&amp;quot;間獨惟念昔聞延平先生之教,&amp;lt;sub&amp;gt;李先生名侗, 字愿中, 延平人, 朱子之師也.&amp;lt;/sub&amp;gt; 以爲'爲學之初, 且當常存此心, 勿爲他事所勝. 凡遇一事, 即當且就此事反復推尋以究其理, 待此一事融釋脫落, 然後循序少進, 而别窮一事. 如此既久, 積累之多, 胷中自當有洒然處, 非文字言語之所及也.' 詳味此言, 雖其規模之大、條理之宻, 若不逮於程子. 然其功夫之漸次、意味之深切, 則有非他說所能及者. 惟嘗實用力於此者, 爲能有以識之, 未易&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以口舌爭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근래에 유독 전에 들었던 연평 선생의 가르침이 떠올랐다.&amp;lt;sub&amp;gt;이선생의 이름은 侗이고 자는 愿中이니 延平 사람으로, 주자의 스승이다.&amp;lt;/sub&amp;gt; [연평 선생께서는] '학문하는 첫 단계에는 우선 이 마음을 늘 보존하여 다른 일에 압도당하지 않게 해야 한다. 무릇 어떤 일을 마주쳤을 때에는 우선 이 일을 반복해 탐구해 그 안의 理를 찾아야 하고, 한 가지 일이 눈 녹듯 해결된 연후에 차례대로 조금씩 나아가 다른 일을 궁구해야 한다. 이런 식이 오래 되고 누적한 것이 많게 되면, 가슴 속에 저절로 응당 시원한 부분이 있을 것이니,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다. 이 말씀을 잘 살펴보니, 비록 규모의 크기나 조리의 엄밀성이 정자의 설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공부의 단계나 의미의 깊이는 다른 설이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오직 이에 실제로 힘쓴 자만이 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요, 쉽게 말로 다툴 문제가 아니다.&amp;quot;&lt;br /&gt;
:格菴趙氏曰: &amp;quot;程子言: '若一事窮未得, 且别窮一事'; 延平則言: '且就一事推尋, 待其融釋脫落, 然後别窮一事', 其言不同. 盖程子以人心各有明處有暗處, 若就明處推去, 則易為力, 非謂一事未窮得而可貳以二、參以三也. 若延平則專爲不能主一者之戒. 讀者不可以辭害意.&amp;quot;&lt;br /&gt;
:격암 조씨가 말했다: &amp;quot;정자께서는 '만약 한 가지 일을 아직 다 궁구하지 못했다면 우선 다른 일을 궁구하라'고 말씀하셨고, 연평 선생께서는 '우선 한 가지 일을 탐구해 눈 녹듯 해결된 연후에 다른 일을 궁구하라'고 말씀하셨으니, 말이 같지 않다. 대개 정자께서는 '사람의 마음에 각각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있으니, 밝은 부분에서 탐구한다면 쉽게 힘을 낼 수 있다'고 여기신 것이지, '한 가지 일을 아직 궁구하지 못했더라도 두 번째·세 번째로 옮겨가도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연평 선생의 경우는 오직 主一하지 못하는 자에 대해 경계하신 것이다. 독자는 표현을 가지고 의미를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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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然則所謂'格物致知之學', 與世之所謂'博物洽聞'者, 奚以異?&amp;quot; 曰: &amp;quot;此以反身窮理爲主, 而必究其本末是非之極摯&amp;lt;sub&amp;gt;與至同&amp;lt;/sub&amp;gt;; 彼以徇外誇多爲務, 而不覈&amp;lt;sub&amp;gt;下革反&amp;lt;/sub&amp;gt;其表裏眞妄之實. 然必究其極, 是以知愈博而心愈明; 不覈其實, 是以識愈多而心愈窒&amp;lt;sub&amp;gt;陟力反&amp;lt;/sub&amp;gt;. 此正爲&amp;lt;sub&amp;gt;去聲下同&amp;lt;/sub&amp;gt;己爲人之所以分, 不可不察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그렇다면 이른바 '격물치지의 학문'은 세간의 이른바 '博物洽聞'이라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amp;quot; 대답했다: &amp;quot;이것(격물치지)은 자신을 반성하고 理를 궁구하는 것을 위주로 하니, 반드시 본말·시비의 극치를 궁구한다. 저것(博物洽聞)은 외물을 좇아 박식을 과장하는 데 힘쓸 뿐 표리·眞妄의 실질은 탐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격물치지는] 반드시 극치를 궁구하기 때문에 앎이 넓어질수록 마음이 더욱 밝혀지는 반면, [博物洽聞은] 실질을 탐구하지 않기 때문에 지식이 많아질수록 마음은 더욱 막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위기지학과 위인지학이 나뉘는 지점이니,&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헌문&amp;gt; 25. 子曰：「古之學者為己，今之學者為人。」&amp;lt;/ref&amp;gt; 살피지 않아선 안 된다.&amp;quot;&lt;br /&gt;
:濳室陳氏曰: &amp;quot;格物致知, 研窮義理, 心學也; 記誦博識, 口耳外馳, 喪志之學也. 二者正相反.&amp;quot;&lt;br /&gt;
:잠실 진씨가 말했다: &amp;quot;격물치지는 의리를 연구하니 마음의 학문이고, 記誦博識은 입과 귀가 밖으로 내달리니, 뜻을 해치는 학문이다.&amp;lt;ref&amp;gt;&amp;lt;이정유서&amp;gt; 03-17 以記誦博識爲玩物喪志.&amp;lt;/ref&amp;gt; 두 가지는 정반대이다.&amp;quot;&lt;br /&gt;
&lt;br /&gt;
===傳六章===&lt;br /&gt;
所謂誠其意者：毋自欺也，如惡惡臭，如好好色，此之謂自謙，故君子必慎其獨也！&amp;lt;sub&amp;gt;惡、好上字，皆去聲。謙讀為慊，苦劫反。&amp;lt;/sub&amp;gt;&amp;lt;br/&amp;gt;&lt;br /&gt;
이른바 '誠其意'라는 것은 자신을 속이지 말라는 것이다. [악을 미워하기를] 악취를 싫어하듯이 하고 [선을 좋아하기를] 미모를 좋아하듯이 하는 것, 이것을 '스스로 만족스럽다'고 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혼자 있을 때 삼가는 것이다.&lt;br /&gt;
:誠其意者，自脩之首也。毋者，禁止之辭。自欺云者，知為善以去&amp;lt;sub&amp;gt;上聲下同&amp;lt;/sub&amp;gt;惡&amp;lt;sub&amp;gt;此知字帶從上章致知之知字來&amp;lt;/sub&amp;gt;，而心之所發有未實也。謙，快也，足也。&amp;lt;sub&amp;gt;朱子曰: &amp;quot;誠意章在兩箇自字上用功.&amp;quot;&amp;lt;/sub&amp;gt;獨者，人所不知而己所獨知之地也。言欲自脩者知為善以去其惡，則當實用其力，而禁止其自欺。使其惡惡則如惡惡臭，好善則如好好色，皆務決去，而求必得之，以自快足於己，不可徒苟且以殉外而為&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人也。&amp;lt;sub&amp;gt;不求自惬便是為人&amp;lt;/sub&amp;gt; 然其實與不實，蓋有他人所不及知而己獨知之者，故必謹之於此&amp;lt;sub&amp;gt;此指獨字&amp;lt;/sub&amp;gt;以審其幾焉。&lt;br /&gt;
:'誠其意'라는 것은 '自脩'&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전3장. 如切如磋者，道學也；如琢如磨者，自脩也；&amp;lt;/ref&amp;gt;의 시작이다. '毋'는 금지사이다. '自欺'라는 것은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해야 함을 알면서도&amp;lt;sub&amp;gt;여기 '知'자는 앞 장의 '致知'의 知자에서 가져온 것이다.&amp;lt;/sub&amp;gt; 마음에서 발현되는 것에 진실하지 못한 점이 있는 것이다. '謙'은 만족스러움이다.&amp;lt;sub&amp;gt;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성의장은 두 自자(毋自欺, 自謙)에서 공부해야 한다.&amp;quot;&amp;lt;/sub&amp;gt; '獨'은 남은 모르고 자기만 아는 곳이다. 자신을 닦고자 하는 자가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해야 함을 안다면, 마땅히 자신의 힘을 실제로 써서 스스로를 속이는 일을 금해, 악을 미워하기를 마치 악취를 싫어하듯이 하고 선을 좋아하기를 미모를 좋아하듯이 해서, [악은] 모두 없애는 데 힘쓰고 [선은] 구하면 반드시 얻어 자신에게 만족스럽게 해야지, 그저 구차하게 외물을 좇고 남을 위해서는 안 된다.&amp;lt;sub&amp;gt;스스로 만족스럽기를 구하지 않는 것이 남을 위하는 것이다.&amp;lt;/sub&amp;gt; 그러나 그 진실함과 진실하지 못함은 대개 타인은 알 수 없고 자기만 알 수 있는 것이므로, 반드시 여기서(혼자만 아는 곳) 조심하며 기미를 살펴야 한다.&lt;br /&gt;
::○朱子曰: &amp;quot;'㡬者, 動之微', 是欲動未動之間, 便有善惡, 便須就這處理㑹. 若到發出處, 更怎生奈何得?&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기미(㡬)라는 것은 움직임의 싹이다'&amp;lt;ref&amp;gt;&amp;lt;주역&amp;gt; &amp;lt;계사하&amp;gt; 5. 子曰：「知幾其神乎？君子上交不諂，下交不瀆，其知幾乎，幾者動之微，吉之先見者也，君子見幾而作，不俟終日。易曰：『介于石，不終日，貞吉。』介如石焉，寧用終日，斷可識矣，君子知微知彰，知柔知剛，萬夫之望。」&amp;lt;/ref&amp;gt;란 동하려고 하거나 동하지 않은 사이이니, [이때] 선악이 있으니&amp;lt;ref&amp;gt;&amp;lt;통서&amp;gt; &amp;lt;誠幾德&amp;gt; 幾，善惡.&amp;lt;/ref&amp;gt; 이것을 이해해야 한다. 발현되고 나면 더이상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amp;quot;&lt;br /&gt;
::○問: &amp;quot;知至了, 如何到誠意? 又說'毋自欺'?&amp;quot; 曰: &amp;quot;到這裏, 方可著手下工夫, 不是知至了下面許多一齊掃去. 下面節節有工夫在.&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知至하고 나서 어떻게 誠意합니까? 또 어째서 '毋自欺'라고 말한 것입니까?&amp;quot; 대답하셨다: &amp;quot;知至하고 나서야 비로소 공부에 착수할 수 있지, 知至하고 나면 다음의 많은 공부를 일절 제치는 것이 아니다. 知至 다음에 단계별로 공부가 있다.&amp;quot;&lt;br /&gt;
::○譬如一塊物, 外面是銀, 裏面是鐵, 便是自欺. 須表裏如一, 方是不自欺. 須是見得分曉, 如知烏喙不可食, 水火不可蹈, 則自不食不蹈. 如寒欲衣, 饑欲食, 則自是不能已. 人果見善如饑欲食寒欲衣, 見惡如烏喙不可食, 水火不可蹈, 則此意自是實矣.&amp;lt;sub&amp;gt;烏喙藥石, 食之, 能殺人.&amp;lt;/sub&amp;gt;&lt;br /&gt;
::어떤 덩어리에 비유하자면, 외면은 은인데 내면은 철이라면 스스로 속이는 것이다. 반드시 안팎이 한결같아야 스스로 속이지 않는 것이다. 마치 오훼는 먹어선 안 되고 물·불에 뛰어들어서는 안 됨을 아는 것처럼 분명히 안다면 스스로 오훼를 먹지도 물·불에 뛰어들지도 않을 것이다. 추우면 옷을 입으려 하고 배고프면 음식을 먹으려 하는 것은 본래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선천적으로 아는 것이다) 사람이 만약 마치 배고플 때 먹으려 하고 추울 때 옷을 입으려 하는 것처럼 선을 보고, 마치 오훼를 먹어선 안 되고 물·불에 뛰어들어선 안 되는 것처럼 악을 본다면, 이 뜻이 저절로 진실해질 것이다.&amp;lt;sub&amp;gt;오훼는 약석이니 먹으면 사람을 죽일 수 있다.&amp;lt;/sub&amp;gt;&lt;br /&gt;
::○自欺是半知半不知底人. 知道善我所當為, 却又不十分去為善; 知道惡不可為, 却又自家舎他不得, 這便是自欺. 不知不識只喚欺; 不知不識不喚做自欺.&amp;lt;sub&amp;gt;新安陳氏曰: &amp;quot;以上語, 以知為重. 見得物格知至為意誠之根基也.&amp;quot;&amp;lt;/sub&amp;gt;&lt;br /&gt;
::'自欺'는 반은 알고 반은 모르는 사람이다. 선을 내가 실천해야 함을 알면서도 십분 선을 실천하지 못하고, 악을 내가 행해선 안 됨을 알면서도 스스로 악을 버리지 못하는 것, 이것이 '自欺'이다. 모르는 것은 '欺'라고만 부르지, 모르는 것을 '自欺'라고 부르지는 않는다.&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6. 問劉棟：「看大學自欺之說如何？」曰：「不知義理，卻道我知義理，是自欺。」先生曰：「自欺是箇半知半不知底人。知道善我所當為，卻又不十分去為善；知道惡不可作，卻又是自家所愛，舍他不得，這便是自欺。不知不識，只喚欺，不知不識卻不喚做『自欺』。」&amp;lt;/ref&amp;gt;&amp;lt;sub&amp;gt;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이상의 말은 앎(知)을 중시한 것이다. 物格知至가 意誠의 근거가 됨을 알겠다.&amp;quot;&amp;lt;/sub&amp;gt;&lt;br /&gt;
::○纔說不自欺, 則其好善惡惡, 只要求以自快自足. 如寒而思衣以自溫, 饑而思食以自飽, 非有牽強苟且姑以為人之意也.&lt;br /&gt;
::'不自欺'를 말하는 순간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것은 단지 스스로 만족스러움을 구하는 것이니 되니, 마치 추울 때 옷을 입어 스스로 따뜻하게 하고자 하고 배고플 때 음식을 먹어 스스로 배부르게 하고자 하는 것과 같다. 억지로 구차하게 남을 위하는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다.&amp;lt;ref&amp;gt;&amp;lt;주자대전&amp;gt; 권64 &amp;lt;答孫敬甫&amp;gt; 蓋自欺自慊兩事正相抵背, 纔不自欺, 卽其好惡眞如好好色惡惡臭, 只爲求以自快自足, 如寒而思衣以自溫, 饑而思食以自飽, 非有牽强苟且, 姑以爲人之意.&amp;lt;/ref&amp;gt;&lt;br /&gt;
::○如鑄私錢, 做官㑹&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宋代發行的一種紙幣.&amp;lt;/ref&amp;gt;, 此是大故&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5. 猶言特別.&amp;lt;/ref&amp;gt;無狀&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4. 謂所行醜惡無善狀.&amp;lt;/ref&amp;gt;小人, 豈自欺之謂耶? 此處工夫極細, 未便說到粗處. 前後學者說差了. 縁賺&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4.誤, 貽誤.&amp;lt;/ref&amp;gt;連下文'小人閒居'一節看了, 所以差也.&lt;br /&gt;
::私錢을 주조하고 지폐를 위조하는 것은 매우 볼썽사나운 소인이니, 어찌 '自欺'를 말하는 것이겠는가? 이 공부(성의)는 지극히 세밀하니, 거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앞뒤 학자들이 잘못 설명했다. 다음의 '小人閒居'와 잘못 이어 봤기 때문에 틀린 것이다.&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6. 如公之言，須是鑄私錢，假官會，方為自欺，大故是無狀小人，此豈自欺之謂邪！…… 此處工夫極細，未便說到那粗處。所以前後學者多說差了，蓋為牽連下文『小人閒居為不善』一段看了，所以差也。&amp;lt;/ref&amp;gt;&lt;br /&gt;
::○如有九分義理, 雜了一分私意, 便是自欺. 到得厭然揜著之時, 又其甚者.&lt;br /&gt;
::의리가 90%이고 사의가 10% 뒤섞였다면 '自欺'이다. '슬쩍 [악을] 숨기고 [선을] 드러내는 때가 되면 ['自欺'가] 더욱 심한 경우이다.&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6. 如有得九分義理，雜了一分私意，九分好善、惡惡，一分不好、不惡，便是自欺。到得厭然揜著之時，又其甚者。&amp;lt;/ref&amp;gt;&lt;br /&gt;
::○十分為善, 有一分不好底意潜發於其間, 便由邪徑以長, 這箇却是實, 前面善意却是虚矣.&lt;br /&gt;
::100% 선을 행하더라도 10% 좋지 못한 뜻이 그때 슬그머니 발한다면 삿된 길을 통해 [좋지 못한 뜻이] 자라니, 이것(선을 행한 것)은 진실하지만, 앞의 선의는 허위이다.&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6. 今能致知，知至而意誠矣。驗以日用間誠意，十分為善矣。有一分不好底意思潛發以間於其間，此意一發，便由斜徑以長，這箇卻是實，前面善意卻是虛矣。&amp;lt;/ref&amp;gt;&lt;br /&gt;
::○凡惡惡之不真, 為善之不勇, 外然而中實不然, 或有為而為之, 或始勤而終怠, 皆不實而自欺之患也.&lt;br /&gt;
::악을 미워함에 진실하지 않고, 선을 행함에 용감하지 않으며, 겉으로는 옳게 여기면서 속으로는 사실 옳게 여기지 않고, 어떨 때는 까닭이 있어 하고, 어떨 때는 처음에는 부지런히 하다 끝에 가서는 해이해지니, 이 도무는 진실하지 않고 스스로를 속이는 근심거리이다.&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6. 凡惡惡之不實，為善之不勇，外然而中實不然，或有所為而為之，或始勤而終怠，或九分為善，尚有一分苟且之心，皆不實而自欺之患也。&amp;lt;/ref&amp;gt;&lt;br /&gt;
::○論自欺細處: 且如為善, 自家也知得是當為, 也勉強去做, 只是心裏又有些便不消如此做也不妨底意思; 如為不善, 也知得不當為而不為, 心中也又有些便為也不妨底意思, 便是自欺, 便是虚偽不實矣.&lt;br /&gt;
::'스스로를 속이는(自欺)' 디테일한 상황을 따져보자: 선을 행하는 경우, 스스로도 이것을 마땅히 행해야 하고 힘써야 함을 알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하지 않다고 괜찮다'는 생각이 있고, 불선을 행하는 경우에도 해서는 안 됨을 알아서 하지 않지만, 마음 속으로는 여전히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있다면,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요, 거짓되어 진실하지 않은 것이다.&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8. 若論自欺細處：且如為善，自家也知得是合當為，也勉強去做，只是心裏又有些便不消如此做也不妨底意思；如不為不善，心裏也知得不當為而不為，雖是不為，然心中也又有些便為也不妨底意思。此便是自欺，便是好善不『如好好色』，惡惡不『如惡惡臭』。便做九分九釐九毫要為善，只那一毫不要為底，便是自欺，便是意不實矣。&amp;lt;/ref&amp;gt;&lt;br /&gt;
::○&amp;quot;'自謙', 與&amp;lt;孟子&amp;gt;'行有不慊於心'相類, 亦微不同. &amp;lt;孟子&amp;gt;訓滿足意多, &amp;lt;大學&amp;gt;訓快意多.&amp;quot; 問: &amp;quot;'自謙'只是真實為善去惡, 無牽滯於己私, 只是快底意, 方是心下滿足?&amp;quot; 曰: &amp;quot;是.&amp;quot;&lt;br /&gt;
::&amp;quot;'自謙'은 &amp;lt;맹자&amp;gt;의 '행실이 마음에 만족스럽지 않다(行有不慊於心)'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다. &amp;lt;맹자&amp;gt;의 의미는 '만족스럽다'는 뜻이 많고, &amp;lt;대학&amp;gt;의 의미는 '시원하다'는 뜻이 많다.&amp;quot; 물었다: &amp;quot;'自謙'은 진실하게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함에 사욕에 얽매이지 않는 것일 뿐이요, '시원하다'는 뜻이며, 그러고나서야 만족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입니까?&amp;quot; 대답하셨다: &amp;quot;그렇다.&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6.「『自慊』之『慊』，大意與孟子『行有不慊』相類。子細思之，亦微有不同：孟子慊訓滿足意多，大學訓快意多。橫渠云：『有外之心，蜀錄作「自慊」。不足以合天心。』初看亦只一般。然橫渠亦是訓足底意思多，大學訓快意多。」問：「大學說『自慊』，且說合做處便做，無牽滯於己私，且只是快底意，少間方始心下充滿。孟子謂『行有不慊』，只說行有不滿足，則便餒耳。」曰：「固是。 &amp;lt;/ref&amp;gt;&lt;br /&gt;
::○自謙是合下好惡時便是要自謙了, 非謂做得善了方能自謙. 自謙正與自欺相對. 所謂誠其意, 便是要毋自欺, 非是誠其意了, 方能不自欺也. 自謙者, 外面如此, 中心也是如此, 表裏一般; 自欺者, 外面如此, 中心其實有些子不願. 只此便是二心, 誠偽之所由分也.&lt;br /&gt;
::'自謙'은 좋아하거나 싫어할 때 당장 스스로 만족스러워야 한다는 것이지, 선을 행하고 나서 비로소 스스로 만족스러워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自謙'은 '自欺'와 정반대이다. '자기 뜻을 진실하게 한다(誠其意)'라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지, 자신의 뜻을 진실하게 하고 나서 비로소 스스로를 속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自謙'이라는 것은 밖으로 이러하다면 마음속도 이와 같아 겉과 속이 똑같은 것이고, '自欺'라는 것은 밖으로는 이러한데 마음속으로는 조금 내키지 않는 점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음을 둘로 만드는 것이니, 진실과 거짓이 나뉘는 지점이다.&lt;br /&gt;
::○謹獨, 則於善惡之㡬察之愈精愈密.&lt;br /&gt;
::혼자 있을 때 삼간다면, 선악이 나뉘는 기미를 살피는 것이 더욱 정밀해질 것이다.&lt;br /&gt;
::○如與衆人對坐, 自心中發一念, 或正或不正, 此亦是獨處.&lt;br /&gt;
::여러 사람들과 마주앉아있을 때 마음속에서 한 생각이 싹트면 바르기도 하고 바르지 않기도 하는데, 이 역시 '혼자 있는 경우'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小人閒居為不善，無所不至，見君子而后厭然，揜其不善，而著其善。人之視己，如見其肺肝然，則何益矣。此謂誠於中，形於外，故君子必慎其獨也。&amp;lt;sub&amp;gt;閒，音閑。厭，鄭氏讀為黶。&amp;lt;/sub&amp;gt;&amp;lt;br/&amp;gt;&lt;br /&gt;
소인은 혼자 있을 때 불선한 짓을 해 이르지 않는 곳이 없다가, 군자를 본 이후에 厭然히 자신의 불선을 가리고 선을 드러낸다. 남들이 자신을 봄이 마치 폐나 간을 보는 것과 같으니, [감춘들] 무슨 보탬이 있겠는가? 이를 '내면으로 진실하면 겉으로 드러난다'고 말하니,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가 혼자 있을 때 삼간다. &lt;br /&gt;
:閒居，獨處也。厭然，消沮閉藏之貌。此言小人陰為不善，而陽欲揜之&amp;lt;sub&amp;gt;閒居為隂, 見君子為陽.&amp;lt;/sub&amp;gt;，則是非不知善之當為與惡之當去&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也&amp;lt;sub&amp;gt;非不知乃其秉彝之天不可泯沒者&amp;lt;/sub&amp;gt;；但不能實用其力以至此耳。然欲揜其惡而卒不可揜，欲詐為善而卒不可詐，則亦何益之有哉！此君子所以重&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以為戒，而必謹其獨也。&lt;br /&gt;
:'閒居'는 혼자 있는 경우이다. '厭然'은 막고 가리는 모습이다. 이 구절은 [다음을] 말한 것이다: 몰래 불선한 짓을 하면서 겉으로 그것을 숨기려 한다면, 이는 선은 행하고 악은 제거해야 함을 모르는 것이 아니고, 단지 실제로 힘을 써 이에 이르지 못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자신의 악을 가리려 하더라고 끝내 가릴 수 없고, 선을 거짓으로 행하려 하더라도 끝내 속일 수 없으니, 무슨 보탬이 있겠는가? 이것이 군자가 거듭 이를 경계하고 반드시 혼자 있을 때 삼가는 이유이다. &lt;br /&gt;
::朱子曰: &amp;quot;'小人閒居為不善', 是誠心為不善也; '揜其不善而著其善', 是為善不誠也. 為惡於隠微之中而詐善於顯明之地, 將虚假之善來盖真實之惡, 自欺以欺人也. 然人豈可欺哉?&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小人閒居為不善'은 진심으로 불선을 행하는 것이고, '揜其不善而著其善'은 선을 행함에 진실하지 않은 것이다. 몰래 악을 행하면서 겉으로 선을 꾸미는 것은 거짓된 설으로 진실한 악을 가리는 것이니, 자실을 속여 남을 속이는 것이다. 그러나 남을 어찌 속일 수 있겠는가?&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64. 曰：「『小人閒居為不善』，是誠心為不善也。『掩其不善，而著其善』，是為善不誠。」; 같은 책, 권16. 所謂為惡於隱微之中，而詐善於顯明之地，是所謂自欺以欺人也。然人豈可欺哉！&amp;lt;/ref&amp;gt;&lt;br /&gt;
::○'閒居為不善', 便是'惡惡不如惡惡臭'; '揜不善, 著其善', 便是'好善不如好好色'.&lt;br /&gt;
::'閒居為不善'은 '악을 미워하기를 악취를 싫어하듯 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揜不善, 著其善'은 '선을 좋아하기를 아름다운 여색을 좋아하듯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lt;br /&gt;
::○君子小人之分, 却在誠其意處. 誠於為善, 便是君子; 不誠底便是小人.&lt;br /&gt;
::군자와 소인의 구분은 '誠其意'에 달려있다. 선을 행함에 진실하면 군자이니, 진실하지 않은 자는 소인이다.&lt;br /&gt;
&lt;br /&gt;
曾子曰：「十目所視，十手所指，其嚴乎！」&amp;lt;br/&amp;gt;&lt;br /&gt;
증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열 눈이 보는 대상이며, 열 손이 가리키는 대상이니, 엄중하도다!&amp;quot;&lt;br /&gt;
:引此以明上文之意。言雖幽獨之中，而其善惡之不可揜如此。可畏之甚也。&lt;br /&gt;
:이것(증자의 말)을 인용해 앞 글의 의미를 밝혔다. 비록 혼자 있을 때라도 선악을 가릴 수 없음이 이와 같으니, 매우 두려워할 만함을 말한 것이다.&lt;br /&gt;
::朱子曰: &amp;quot;此是承上文'人之視己, 如見其肺肝'之意. 不可說人不知, 人曉然共知如此. 人雖不知, 我已自知, 自是甚可皇恐了, 其與十目十手所視所指, 何異哉?&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이것은 앞 글의 '人之視己, 如見其肺肝'의 의미를 이은 것이다. 남들이 모른다고 말해선 안 되니, 남들은 이처럼 훤히 모두 알고 있다. 남이 비록 모르더라도 나는 이미 스스로 알고 있어서 스스로 매우 두려워할 만하니, 이것이 '열 눈이 보는 대상이며, 열 손이 가리는 바'와 무엇이 다르겠는가?&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6. 蓋人雖不知，而我已自知，自是甚可皇恐了，其與十目十手所視所指，何以異哉？&amp;lt;/ref&amp;gt;&lt;br /&gt;
&lt;br /&gt;
富潤屋，德潤身，心廣體胖，故君子必誠其意。&amp;lt;sub&amp;gt;胖，步丹反。&amp;lt;/sub&amp;gt;&amp;lt;br/&amp;gt;&lt;br /&gt;
부는 집을 윤택하게 해주고 덕은 자신을 윤택하게 해주기에,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편안해진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자신의 뜻을 진실하게 한다.&lt;br /&gt;
:胖，安舒也。言富則能潤屋矣，德則能潤身矣，故心無愧怍，則廣大寬平，而體常舒泰，德之潤身者然也。蓋善之實於中而形於外者如此，故又言此以結之。&lt;br /&gt;
:'胖'은 편안함이다. [이 구절은 다음을] 말한 것이다: 부는 집을 윤택하게 만들 수 있고, 덕은 자신을 윤택하게 해준다. 그러므로 마음에 부끄러운 바가 없다면, [마음은] 넓고 안정되고 몸은 늘 편안해지니, '덕이 자신을 윤택하게 만든다'는 것이 그러한 것이다. 대개 선이 '내면으로 진실하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 이와 같으므로, 다시 이를 말하여 마무리한 것이다.&lt;br /&gt;
::朱子曰: &amp;quot;'富潤屋'以下, 是說意誠之驗如此. 心本是濶大底物事, 只因愧怍便卑狹. 被他隔礙了, 所以體不能得安舒.&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富潤屋' 이하는 意誠의 결과가 이와 같음을 말한다. 마음은 본래 광대한 것인데, 부끄러움에 의해 협소해진다. 부끄러움에 의해 막혔기 때문에 몸이 편안할 수 없는 것이다.&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6.『富潤屋』以下，卻是說意誠之驗如此。&amp;lt;/ref&amp;gt;&lt;br /&gt;
::○毋自欺是誠意; 自慊是意誠&lt;br /&gt;
::'毋自欺'는 '誠意'이고, '自慊'은 '意誠'이다.&lt;br /&gt;
::○小人閒居以下是形容自欺之情狀; 心廣體胖是形容自慊之意.&lt;br /&gt;
::'小人閒居' 이하는 '自欺'의 정황을 형용한 것이고, '心廣體胖'은 '自慊'의 의미를 형용한 것이다.&lt;br /&gt;
::○無愧怍是無物欲之蔽, 所以能廣大.&lt;br /&gt;
::[마음에] 부끄러워하는 바가 없는 것이 [마음에] 물욕에 의한 가림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광대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右傳之六章。釋誠意。&amp;lt;sub&amp;gt;朱子曰: &amp;quot;許多病痛都在誠意章, 一齊說了. 下面有些小病痛, 亦輕可. 此章最緊切. 若透過此一關此去做工夫便易了. 由是而之, 便駸駸&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 疾速.&amp;lt;/ref&amp;gt;進於善, 而決不至下陷於惡矣.&amp;quot;&amp;lt;/sub&amp;gt;&lt;br /&gt;
::이상은 전6장이니, '誠意'를 풀이하였다. &amp;lt;sub&amp;gt;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수많은 병통이 모두 성의장에 달려있으니, 모두 말했다. 이후의 여러 작은 병통들은 가벼이 여겨도 괜찮다. 이 장이 가장 핵심적이다. 만약 이 관문을 통과하고서 공부한다면 쉬울 것이다. 이로부터 나아간다면 빠르게 선을 진전시켜 결코 악에 빠지는 지경에는 이르지 않을 것이다.&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6. 說許多病痛，都在「誠意」章，一齊要除了。下面有些小為病痛，亦輕可。若不除去，恐因此滋蔓，則病痛自若。&amp;lt;/ref&amp;gt;&amp;lt;/sub&amp;gt;&lt;br /&gt;
:::經曰：「欲誠其意，先致其知。」又曰：「知至而后意誠。」蓋心體之明有所未盡，則其所發必有不能實用其力，而苟焉以自欺者。&amp;lt;sub&amp;gt;朱子曰: &amp;quot;&amp;lt;大學&amp;gt;雖使人戒夫自欺, 而推其本, 則必其有以用力於格物致知之地, 然後理明心一, 而所發自然莫非真實. 不然則正念方萌, 而私意隨起, 亦非力之所能制矣.&amp;quot; ○若知有不至, 則其不至之處, 惡必蔵焉以為自欺之主, 雖欲致其謹獨之功, 亦且無主之能為而無地之可據矣. 此又傳文之所未發, 而其理已具於經者, 皆不可以不察也.&amp;lt;/sub&amp;gt; 然或己明而不謹乎此，則其所明又非己有，而無以為進德之基。故此章之指，必承上章而通考之，然後有以見其用力之始終，其序不可亂而功不可闕如此云。&lt;br /&gt;
:::&amp;lt;대학&amp;gt; 경문에서 &amp;quot;欲誠其意，先致其知&amp;quot;라고 했고, 또 &amp;quot;知至而后意誠&amp;quot;이라고 했다. 대개 心體의 밝음을 다 드러내지 못하면, 마음에서 발한 것 가운데 필시 자기 힘을 실제로 쓰지 못하는 것이 있어 구차하게 그 때문에 자신을 속일 것이다. &amp;lt;sub&amp;gt;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amp;lt;대학&amp;gt;이 비록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속이는 것을 경계하게 하지만, 그 근본을 추론해보면 반드시 격물치지 단계에 힘을쏟을 수 있은 연후에야 理가 밝혀지고 마음이 전일해져 [마음에서] 발한 것이 저절로 진실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격물치지하지 않는다면) 바른 생각이 막 싹텄을 때 이기적인 생각이 따라 일어나 힘으로 제압할 수 없을 것이다.&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대전&amp;gt; 권60 &amp;lt;答彭子壽&amp;gt; 然竊聞之: &amp;lt;大學&amp;gt;於此雖若使人戒夫自欺, 而推其本則必其有以用力於格物致之地, 然後理明心一, 而所發自然莫非眞實. 如其不然, 則雖欲防微謹獨, 無敢自欺, 而正念方萌, 私欲隨起, 亦非力之所能制矣. &amp;lt;/ref&amp;gt; ; 만약 앎에 지극하지 않은 점이 있다면, 지극하지 않은 곳에서 악이 반드시 숨어서 스스로를 속이는  주체가 될 것이니, 비록 '謹獨'의 공부를 다하려 하더라도 해낼 수 있는 주체가 없고 근거할 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또 전문에서 말하지 않았지만 그 이치는 이미 경문에 갖춰져 있는 것이니, 모두 살피지 않아선 안 된다.&amp;lt;/sub&amp;gt; 그러나 혹시라도 [心體가] 이미 밝은데 여기서 삼가지 않는다면, 밝은 것이 다시 제 소유가 아니게 되어 덕을 진전시키는 기초로 삼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장의 의미는 반드시 앞 장을 이어 전체적으로 살펴본 연후에야 실천의 순서와 그 순서를 어지럽혀선 안 되며 공부는 빠드려서는 안 됨이 이와 같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lt;br /&gt;
&lt;br /&gt;
====『혹문』 전6장====&lt;br /&gt;
或問: &amp;quot;六章之㫖, 其詳猶有可得而言者邪?&amp;quot; 曰: &amp;quot;天下之道二, 善與惡而已矣. 然揆厥所元而循其次第, 則善者天命所賦之本然; 惡者物欲所生之邪穢也. 是以人之常性莫不有善而無惡, 其本心莫不好&amp;lt;sub&amp;gt;去聲下並同&amp;lt;/sub&amp;gt;善而惡惡&amp;lt;sub&amp;gt;上去聲下如字. 此後可惡其惡惡之不惡而惡好惡並去聲&amp;lt;/sub&amp;gt;. 然既有是形體之累而又爲氣稟之拘. 是以物欲之私得以蔽之, 而天命之本然者不得而著. 其於事物之理, 固有瞢&amp;lt;sub&amp;gt;莫中反&amp;lt;/sub&amp;gt;然不知其善惡之所在者, 亦有僅識其粗而不能眞知其可好可惡之極者. 夫&amp;lt;sub&amp;gt;音扶下同&amp;lt;/sub&amp;gt;不知善之眞可好, 則其好善也雖曰好之, 而未能無不好者以拒之於内; 不知惡之眞可惡, 則其惡惡也雖曰惡之, 而未能無不惡者以挽&amp;lt;sub&amp;gt;音晚&amp;lt;/sub&amp;gt;之於中. 是以不免於苟焉以自欺, 而意之所發有不誠者.&amp;quot;&amp;lt;br/&amp;gt;&lt;br /&gt;
혹자가 물었다.: &amp;quot;6장의 뜻의 그 상세함을 그래도 (더)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amp;quot; 대답했다. &amp;quot;세상의 길은 두 가지이니 善과 惡일 뿐이다. 그러나 그 근원하는 바를 헤아려서 그 순서를 따라가 본다면 善이라는 것은 天命이 부여한 본래적인 것이고, 惡이라는 것은 물욕에서 생겨난 삿되고 더러운 것이다. 이 때문에 인간의 항상된 性은 선함이 있고 악함이 없지 않은 경우가 없고, 그 본래적인 心은 善을 좋아하고 惡을 싫어하지 않은 경우가 없다. &amp;lt;sub&amp;gt;上去聲下如字. 此後可惡其惡惡之不惡而惡好惡並去聲&amp;lt;/sub&amp;gt; 그러나 그 형체의 얽매임 있고, 또 기품의 얾매이게 되었기 때문에 물욕의 사사로움이 그 본래적인 心을 가릴 수 있어서 天命의 본연적인 것이 드러나지 못한다. 그가 사물의 이치에 대해서 진실로 멍청하게 그 善惡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는 경구가 있고 또 겨우 그 (이치에 대해) 거친 것을 알았는데 그 좋아해야하고 싫어해야하는 지극함을 진실로 알수 없는 경우가 있다. 무릇 善 중에 진실로 좋아해야 하는 것을 알지 못하면, 그가 善을 좋아하는 것이 비록 '좋아한다'고 말하더라도 좋아하지 않음이 없을 수 없어서 마음에서 그것을 막게되고, 惡 중에 진실로 싫어해야하는 것을 알지 못하면 그가 惡을 싫어하는 것이 비록 '싫어한다'고 말하더라도 싫어하지 않는 것이 없을 수 없어서 마음으로 그것을 끌어온다. 이 때문에 구차하게 그것으로 자신을 속이고, 마음이 발하는 바가 진실하지 않은 점이 있게 되는 것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amp;quot;&lt;br /&gt;
:北溪陳氏曰: &amp;quot;造化流行, 生育賦與, 更無别物, 只是箇善而已. 所謂善者, 以實理言, 人受得此理以為善, 亦本善而無惡. 如外好善而内不好善, 外惡惡而内不惡惡, 便是不眞實. 一等未實見道理, 人雖分明有好善之心, 終是不能徹表裏. 須是眞知善惡分明, 然後有眞好眞惡之切.&amp;quot;&lt;br /&gt;
:북계진씨가 말했다.: &amp;quot;조화 유행해서 (만물을) 생육시키고 (그들에게) 부여하는 것은 또 다른 것이 아니라 다만 善일 뿐이다. 이른바 善이라는 것은 實理로 말한 것이니, 사람은 이 理를 얻어서 善이 되었고 또 본래 善하여 惡함이 없다. 만일 겉으로만 선을 좋아하고 안으로는 선을 좋아하지 않으며 겉으로는 악을 싫어하는데 안으로는 악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이는 진실하지 않은 것이다. 하나라도 道理를 진실로 보지 못한다면 사람이 비록 그 善을 좋아하는 마음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더라도 끝내 그 겉과 속을 다 꿰뚫 수 없다. 모름지기 그 善惡을 진짜 아는 것이 분명해진 연후에야 진짜 좋아하고 진짜 싫어하는 절실함이 있게 된다.&amp;quot; &lt;br /&gt;
&lt;br /&gt;
&amp;quot;夫好善而不誠, 則非唯不足以爲善, 而反有以賊乎其善; 惡惡而不誠, 則非唯不足以去&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惡, 而適所以長&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乎其惡. 是則其爲害也徒有甚焉, 而何益之有哉? 聖人於此蓋有憂之. 故爲&amp;lt;大學&amp;gt;之教而必首之以格物致知之目, 以開明其心術, 使既有以識夫善惡之所在、與其可好可惡之必然矣. 至此而復&amp;lt;sub&amp;gt;扶又反&amp;lt;/sub&amp;gt;進之以必誠其意之說焉, 則又欲其謹之於幽獨隱微之奥, 以禁止其苟且自欺之萌. 而凡其心之所發, 如曰好善則必由中及外無一毫之不好也; 如曰惡惡則必由中及外無一毫之不惡也. 夫好善而中無不好, 則是其好之也, 如好好色之眞, 欲以快乎已之目, 初非爲&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人而好之也; 惡惡而中無不惡, 則是其惡之也, 如惡惡臭之眞, 欲以足乎已之鼻, 初非爲人而惡之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무릇 선을 좋아하는데 진실하지 않다면 善을 행하기에 부족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의 善함을 해치게 되고, 惡을 싫어하는데 진실하지 않다면 惡을 제거하는데 부족할 뿐만 아니라 바로 그의 惡함을 기르게 되다. 그렇다면 그 해됨이 심하기만 할 뿐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성인께서 이에 대해 대개 우려하는 것이 있엇기 때문에 &amp;lt;大學&amp;gt;의 가르침을 행하실 때 반드시 격물치지의 조목을 첫 머리에 두어서 그 心術을 열어 밝혀서 그들로 하여금 저 善惡이 있는 곳과 좋아해야하고 싫어해야하는 필연적인 것을 알게하셨는데, 여기에 이르러서 다시 반드시 그 뜻을 진실하게 해야한다는 설명으로 진작 시킨 것은 또한 그들이 은밀한 곳에서부터 삼가해서 그 구차하고 자신을 속이는 싹을 막고자 한 것이고, 무릇 그 마음이 발현하는 바가 만약 '善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반드시 마음에서부터 나와 밖에 미쳐서 한 터럭만큼의 좋아하지 않음이 없게 되고, 만약 '惡을 싫어한다'고 말하면 반드시 마음에서부터 나와 밖에 미쳐서 한 터럭만큼의 싫어하지 않음이 없게 하고자 한 것이다. 무릇 善을 좋아하여 마음에 좋아하지 않는 바가 없다면 그가 그것을 좋아하는 것은 마치 잘생긴 것을 좋아하는 진실함이 자기 눈에 만족하고자 한 것이지 애초에 다른 사람을 위해서 좋아하는 것이 아닌 것과 같고, 惡을 싫어하여 마음이 싫어하지 않음이 없다면 그가 그것을 싫어함은 마치 악취를 싫어하는 진실함은 자기 코에 만족하고자 하는 것이지 애초에 다른 사람을 위해서 싫어하는 것이 아님과 같은 것이다.&amp;quot;&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慊字, 兼快、足之義. 此以快與足分屬好惡言之, 蓋對舉而互相備也.&amp;quot;&lt;br /&gt;
:신안진씨가 말했다. : &amp;quot;慊이라는 글자는 快와 足의 뜻을 겸한다. 여기에서 快와 足을 각각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 분속하여 말한 것은 대개 상대해서 들어서 서로 갖추려는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amp;quot;所發之實既如此矣, 而須臾之頃、纎芥之微, 念念相承, 又無敢有少間斷焉, 則庶乎内外昭融, 表裏澄徹, 而心無不正, 身無不脩矣.&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발현한 바의 실질이 이미 이와 같아서 아주 잠깐 사이나 아주 실같이 작은 것이라도 생각마다 이어지고 또 감히 잠깐 사이라도 끊어짐이 없다면 거의 안과 밖, 겉과 속이 다 훤히 밝혀지고 마음이 바르지 않음이 없고 몸도 닦여지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amp;quot; &lt;br /&gt;
:意誠則心正, 身脩之本皆已在此. 故於此便究言之.&lt;br /&gt;
:意誠은 心正과 身脩이 근본이니 모두 이미 이 안에 달려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다 말한 것이다.&lt;br /&gt;
&lt;br /&gt;
&amp;quot;若彼小人, 幽隱之間實爲不善, 而猶欲外託於善以自蓋, 則亦不可謂其全然不知善惡之所在. 但以不知其眞可好惡, 而又不能謹之於獨以禁止其苟且自欺之萌. 是以淪䧟至於如此, 而不自知耳. 此章之說其詳如此, 是固宜爲自脩之先務矣. 然非有以開其知識之眞, 則不能有以致其好惡之實. 故必曰: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又曰: '知至而后意誠.' 然猶不敢恃其知之已至而聽其所自爲也. 故又曰: '必誠其意, 必謹其獨而毋自欺焉', 則&amp;lt;大學&amp;gt;工夫次第相承首尾爲一, 而不假他術以雜乎其間, 亦可見矣. 後此皆然. 今不復&amp;lt;sub&amp;gt;扶又反&amp;lt;/sub&amp;gt;重&amp;lt;sub&amp;gt;平聲&amp;lt;/sub&amp;gt;出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만약 저 소인이 으슥한 곳에서 진실로 불선을 행하고도 오히려 겉으로는 善에 가탁하여 스스로를 덮으려고 한다면 그가 전혀 그 善惡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진실로 좋아하고 싫어해야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또 홀로있을 적에 삼가서 그의 구차하고 자기를 속이려는 싹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푹 빠져서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스스로 알지 못할 뿐이다. 이 장의 설명은 그 상세함이 이와 같으니 진실로 마땅히 자신을 닦는 것을 우선으로 삼아야한다. 그러나 그 앎의 진실함을 열지 못하면 그 좋아하고 싫어하는 실질을 다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그 뜻을 진실하게 하고자 하는 자는 그 앎을 먼저 지극히 해야한다'고 말하고 또 '앎이 지극해진 이후에 뜻이 진실해진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감히 그의 앎이 이미 지극해졌음을 믿고서 그가 스스로 하는 바를 듣지 못하기 때문에 또한 '반드시 그 뜻을 진실하게 하고 반드시 그 혼자있을때를 삼가해서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고 말한 것이니 &amp;lt;大學&amp;gt; 공부의 순서가 서로 이어지고 앞과 끝이 하나가 되어 감히 다른 학설이 그 사이를 어지럽히지 못함을 또한 알 수 있다. 이후의 것들이 모두 그러허니 지금 다시 거듭 나온 것이 아니다.&lt;br /&gt;
:&amp;quot;後此皆然&amp;quot;, 如'意誠而後心正'. 意既誠, 又不可不正其心. 心正而后身修倣此.&lt;br /&gt;
:&amp;quot;後此皆然&amp;quot;은 '뜻이 진실해진 이후에 마음이 바르게 된다'와 같으니, 뜻이 진실해지고 또 그 마음이 바르지 않을 수 없는지라 마음이 바르게 된 이후에 몸이 닦여지는 것도 이를 본뜬 것이다.&lt;br /&gt;
&lt;br /&gt;
○曰: &amp;quot;然則慊之爲義, 或以爲少, 又以爲恨, 與此不同, 何也?&amp;quot; 曰: &amp;quot;慊之爲字, 有作嗛&amp;lt;sub&amp;gt;口簟反&amp;lt;/sub&amp;gt;者, 而&amp;lt;字書&amp;gt;以爲口銜物也. 然則慊亦但爲心有所銜之義, 而其爲快爲足、爲恨爲少. 則以所銜之異而别&amp;lt;sub&amp;gt;筆列反下同&amp;lt;/sub&amp;gt;之耳. &amp;lt;孟子&amp;gt;所爲'慊於心', &amp;lt;樂毅&amp;gt;所謂'慊於志', 則以銜其快與足之意而言者也&amp;lt;sub&amp;gt;&amp;lt;史記&amp;gt; &amp;lt;列傳&amp;gt; 樂毅遺燕惠王書曰: '自五伯&amp;lt;sub&amp;gt;音霸&amp;lt;/sub&amp;gt;以來, 功未有及於先王者也.' 先王以爲慊於志.&amp;lt;sub&amp;gt;先王, 燕昭王也.&amp;lt;/sub&amp;gt;&amp;lt;/sub&amp;gt; &amp;lt;孟子&amp;gt;所謂'吾何慊'、&amp;lt;漢書&amp;gt;所謂'嗛栗姬'&amp;lt;sub&amp;gt;&amp;lt;史記&amp;gt; &amp;lt;西漢外戚傳&amp;gt; 景帝立齊栗姬男爲太子, 王夫人男爲膠東王. 長公主嫖有女, 欲與太子為妃, 栗姬謝不許. 長公主欲與王夫人, 夫人許之. 㑹薄皇后廢, 長公主日譛栗姬短景帝. 甞屬諸姬曰: '吾百嵗&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3. 死的諱稱.&amp;lt;/ref&amp;gt;後, 善視之.' 栗姬怒, 不肯應, 言不遜. 景帝心銜之而未發也. 長公主日譽王夫人男之美, 帝亦自賢之. 王夫人知嗛栗姬, 又隂使人趣大臣立栗姬為皇后. 大臣奏事文曰: '子以母貴, 母以子貴. 今太子母宜號為皇后.' 帝怒曰: '是乃所當言耶?' 遂案誅&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査明罪行而處以死刑.&amp;lt;/ref&amp;gt;大臣而廢太子為臨江王, 栗姬以憂死. 卒立王夫人為皇后, 男為太子.&amp;lt;/sub&amp;gt;, 則以銜其恨與少之意而言者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그렇다면 慊의 뜻됨은 간혹 '少'라고 여기고 또 '恨'이라고 여기는데 여기와 같지 않은 것은 어째입니까?&amp;quot; 답했다. &amp;quot;慊이라는 글자됨은 '嗛'이라고 쓴 경우가 있으니 &amp;lt;字書&amp;gt;에서 입이 물건을 머금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慊은 또한 다한 마음이 포함하는 바가 있다는 뜻이니, 그것이 '快'가 되고 '足'이 되며 '恨'이 되고 '少'가 되는 것은 그 포함하는 다름 때문에 그것들을 구별할 뿐이다. &amp;lt;맹자&amp;gt;에서 '마음에 흡족하다'고 말한 것과 &amp;lt;악의전&amp;gt;에서 말한 '마음에 흡족함'이란 것이 '快'와 '足'의 뜻을 포함하여 말한 것이다.&amp;lt;sub&amp;gt;&amp;lt;史記&amp;gt; &amp;lt;列傳&amp;gt;에 악의가 遺연나라 혜왕에게 글을 남기기를 '오패 이후로, 공부가 선왕에 준하는 사람은 있지 않았습니다'라고하니 선왕이 흡족해 하였다.&amp;lt;sub&amp;gt;선왕은, 연나라 소왕이다.&amp;lt;/sub&amp;gt;&amp;lt;/sub&amp;gt; &amp;lt;맹자&amp;gt;에서 말한 '내 어찌 부족할 것이 있겠는가?'라는 것과 &amp;lt;한서&amp;gt;에서 말한 '율희를 원망하다'라고 말한 것 &amp;lt;sub&amp;gt;&amp;lt;사기&amp;gt; &amp;lt;외척세가&amp;gt; 경제는 제나라 출신 율희의 아들을 태자로, 왕부인의 아들을 교동왕으로 세웠다. 장공주 표에게 딸이 있었는데, 그를 태자에게 주어 태자비로 삼게 하고자 했는데, 율희가 거절하고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자] 장공주는 왕부인의 [아들(교동왕)에게 자신의 딸을] 주려고 했는데, 왕부인은 허락했다. 마침 박황후가 폐해지자, 장공주는 날마다 율희의 단점을 경제에게 참소하였다. [경제는] 일찍이 여러 처첩들을 [율희에게] 부탁했다: '내가 죽은 뒤에 잘 돌봐주시오.' 율희가 노하여 응낙하려 하지 않아 말이 불손했다. 경제는 마음속으로 [화를] 품었을 뿐 드러내지는 않았다. 장공주가 날마다 왕부인 아들(교동왕)의 훌륭함을 칭찬하니, 경제 역시 절로 그를 대견하게 생각했다. 왕부인은 [경제가 여전히] 율희를 원망함을 알고, 다시 사람을 대신에게 보내 율희를 황후로 세우도록 은밀히 사주했다. 대신이 상주문에서 아뢰었다: '자식은 어머니를 때문에 귀해지고, 어머니는 자식 때문에 귀해진다고 합니다. 지금 태자의 어머니를 마땅히 황후로 불러야 합니다.' 경제가 노하여 말했다: '이게 마땅히 해야 할 말인가?' 마침내 대신의 죄를 따져 주살하고 태자를 폐해 임강왕으로 삼으니, 율희는 근심하다가 죽었다. 마침내 왕부인을 황후로, 그 아들(교동왕)을 태자로 삼았다.&amp;lt;ref&amp;gt; &amp;lt;사기&amp;gt; &amp;lt;외척세가&amp;gt; 景帝長男榮，其母栗姬。栗姬，齊人也。立榮為太子。長公主嫖有女，欲予為妃。栗姬妒，而景帝諸美人皆因長公主見景帝，得貴幸，皆過栗姬，栗姬日怨怒，謝長公主，不許。長公主欲予王夫人，王夫人許之。長公主怒，而日讒栗姬短於景帝曰：「栗姬與諸貴夫人幸姬會，常使侍者祝唾其背，挾邪媚道。」景帝以故望之。景帝嘗體不安，心不樂，屬諸子為王者於栗姬，曰：「百歲後，善視之。」栗姬怒，不肯應，言不遜。景帝恚，心嗛之而未發也。長公主日譽王夫人男之美，景帝亦賢之，又有曩者所夢日符，計未有所定。王夫人知帝望栗姬，因怒未解，陰使人趣大臣立栗姬為皇后。大行奏事畢，曰：「『子以母貴，母以子貴』，今太子母無號，宜立為皇后。」景帝怒曰：「是而所宜言邪！」遂案誅大行，而廢太子為臨江王。栗姬愈恚恨，不得見，以憂死。卒立王夫人為皇后，其男為太子，封皇后兄信為蓋侯。&amp;lt;/ref&amp;gt;&amp;lt;/sub&amp;gt; 이것들은 '恨'과 '少'의 뜻을 포함하여 말한 것이다.&lt;br /&gt;
:朱子曰: &amp;quot;字有同一義而二用者. 如銜字, 或為銜恨, 或為銜思, 亦同此義. 讀者各隨所指而觀之, 則既並行而不悖矣. &amp;lt;字書&amp;gt;又以其訓快與足者. 讀與惬同, 則義愈明而音又異, 尤不患於無别也.&amp;quot;&lt;br /&gt;
:주자가 말했다. : &amp;quot;글자는 똑같이 하나의 뜻인데 쓰임을 둘러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들어 '銜'이라는 글자가 간혹 '恨'을 포함하게 되고 '思'를 포함하게 되는 것도 모두 이러한 뜻이다. 독자가 각각 그 지시하는 바를 따라서 본다면 (두 가지 뜻을) 같이 가져가더라도 잘못됨이 없을 것이다. &amp;lt;字書&amp;gt;에서 또 '快'와 '足'을 뜻으로 하고 독음을 惬와 똑같이 한다고 하니, 그 뜻은 더욱 분명하고 음 또한 다르니 더욱이 구별이 없는 것에 걱정이 없을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傳七章===&lt;br /&gt;
所謂脩身在正其心者，身有所忿懥，則不得其正；有所恐懼，則不得其正；有所好樂，則不得其正；有所憂患，則不得其正。&amp;lt;sub&amp;gt;忿, 弗粉反; 懥, 勑值反. 好樂, 並去聲.&amp;lt;/sub&amp;gt;&amp;lt;br/&amp;gt;&lt;br /&gt;
이른바 '몸을 닦음이 그 마음을 바룸에 있다'는 것은 마음에 화나는(忿懥)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두려워(恐懼)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좋아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걱정(憂患)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lt;br /&gt;
:程子曰：「身有之身當作心。」○ 忿懥，怒也。蓋是四者，皆心之用，而人所不能無者。然一有之而不能察，則欲動情勝，而其用之所行，或不能不失其正矣。&lt;br /&gt;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amp;quot;'身有'의 '身'은 마땅히 '心'이 되어야 한다.&amp;quot; ○ 忿懥는 분노함이다. 이 네 가지는 모두 마음의 用이니, 사람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 번 이것을 두고 살피지 못하면, 욕심에 동요되고 감정에 져서, 그 用의 행하는 바가 혹 올바름을 잃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lt;br /&gt;
::問: &amp;quot;'有所忿懥、恐懼、好樂、憂患, 心不得其正', 是要無此數者, 心乃正乎?&amp;quot; 程子曰: &amp;quot;非是謂無, 只是不以此動其心. 學者未到不動處, 須是執持其志.&amp;quot;&lt;br /&gt;
::&amp;lt;ref&amp;gt;&amp;lt;이정유서&amp;gt; 19-05 問:「『有所忿懥·恐懼·憂患, 心不得其正.』是要無此數者, 心乃正乎?」 曰:「非是謂無, 只是不以此動一本作累.其心. 學者未到不動處, 須是執持其志.」 &amp;lt;/ref&amp;gt;&lt;br /&gt;
::○朱子曰:&amp;quot;&amp;lt;大學&amp;gt;格物誠意, 都已鍊成; 到得正心脩身章, 都易了. 意有善惡之殊, 意或不誠, 則易於為惡; 心有偏正之異, 心有不正, 則為物欲所動, 未免有偏處, 却未必為惡.&amp;quot;&lt;br /&gt;
::&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6. 大學於「格物」、「誠意」章，都是鍊成了，到得正心、修身處，都易了。&amp;lt;/ref&amp;gt;&lt;br /&gt;
::○四者只要從無處發出, 不可先有在心下. 須看'有所'二字. 如有所忿怒, 因人有罪而撻之, 纔了, 其心便平, 是不有; 若此心常常不平, 便是有.&lt;br /&gt;
::&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6. 只是這許多好樂、恐懼、忿懥、憂患，只要從無處發出，不可先有在心下。; 같은 책, 같은 곳. 大學七章，看「有所」二字。「有所憂患」，憂患是合當有，若因此一事而常留在胸中，便是有。「有所忿懥」，因人之有罪而撻之，才撻了，其心便平，是不有；若此心常常不平，便是有。恐懼、好樂亦然。&amp;lt;/ref&amp;gt;&lt;br /&gt;
::○所謂'有所', 是被他為主於内, 心反為他動也.&lt;br /&gt;
::○心纔繫於物, 便為所動. 所以繫於物者有三事: 未來先有箇期待之心; 或事已應過, 又留在心下, 不能忘; 或正應事時, 意有偏重, 都是為物所繫縳. 便是有這箇物事, 到别事來到面前, 應之便差了, 如何心得其正? 聖人之心, 瑩然虚眀, 看事物來, 若大若小, 四方八面, 莫不隨物隨應, 此心元不曾有這物事.&lt;br /&gt;
::&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6. 才係於物，心便為其所動。其所以係於物者有三：或是事未來，而自家先有這箇期待底心；或事已應去了，又卻長留在胸中不能忘；或正應事之時，意有偏重，便只見那邊重，這都是為物所係縛。既為物所係縛，便是有這箇物事，到別事來到面前，應之便差了，這如何會得其正！聖人之心，瑩然虛明，無纖毫形跡。一看事物之來，若小若大，四方八面，莫不隨物隨應，此心元不曾有這箇物事。&amp;lt;/ref&amp;gt;&lt;br /&gt;
::○如顔子'不遷怒', 可怒在物, 顔子未嘗為血氣所動而移於人也, 則豈怒而心有不正哉?&lt;br /&gt;
::○今人多是才怒, 雖有可喜事, 亦所不喜; 才喜, 雖有當怒之事來, 亦不復怒, 便是蹉過事理了. 盖這物事纔私, 便不去, 只管在胷中推盪, 終不消釋. 使此心如太虚, 則應接萬務, 各止其所, 而我無所與, 可也. 看此一章, 只是要人不可先有此心耳.&lt;br /&gt;
::&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6. 今人多是才忿懥，雖有可喜之事亦所不喜；才喜，雖有當怒之事亦不復怒，便是蹉過事理了，便『視而不見，聽而不聞，食而不知其味』了。蓋這物事才私，便不去，只管在胸中推盪，終不消釋。設使此心如太虛然，則應接萬務，各止其所，而我無所與，則便視而見，聽而聞，食而真知其味矣。看此一段，只是要人不可先有此心耳。&amp;lt;/ref&amp;gt;&lt;br /&gt;
::○問: &amp;quot;忿、好自己事, 可勉強不為; 憂患恐懼自外來, 不由自家.&amp;quot; 曰: &amp;quot;便是自外來, 須要我有道理處之. 事來亦合當憂懼. 但只管累其本心, 亦濟甚事? 孔子畏於匡, 文王囚羑里, 死生在前, 聖人元不動心, 處之恬然.&amp;quot;&lt;br /&gt;
::&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20. 又問：「忿懥好樂，乃在我之事，可以勉強不做。如憂患恐懼，乃是外面來底，不由自家。」曰：「都不得。便是外面來底，須是自家有箇道理措置得下。恐懼憂患，只是徒然。事來亦合當思慮不妨，但只管累其本心，也不濟得事。孔子畏匡人，文王囚羑里，死生在前了，聖人元不動心，處之恬然。&amp;lt;/ref&amp;gt;&lt;br /&gt;
&lt;br /&gt;
心不在焉，視而不見，聽而不聞，食而不知其味。&amp;lt;br/&amp;gt;&lt;br /&gt;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lt;br /&gt;
:心有不存，則無以檢其身，是以君子必察乎此而敬以直之，然後此心常存而身無不脩也。&lt;br /&gt;
:마음이 보전되지 못함이 있으면 그 몸을 검속할 수가 없다. 이 때문에 군자는 반드시 이를 살펴서 敬하여 마음을 곧게 하니, 그러한 뒤에야 이 마음이 항상 보존되어서 몸이 닦아지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lt;br /&gt;
::朱子曰: &amp;quot;心若不存, 一身便無主宰.&amp;quot;&lt;br /&gt;
::○敬是常要此心在這裏, 直是直上直下無纎毫委曲.&lt;br /&gt;
::○問: &amp;quot;'視而不見, 聽而不聞', 只是說知覺之心, 却不及義理之心.&amp;quot; 曰: &amp;quot;才知覺, 義理便在此; 才昏, 便不見了.&amp;quot;&lt;br /&gt;
::&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6. 黃丈云：「舊嘗問：『「視而不見，聽而不聞」，只是說知覺之心，卻不及義理之心。』先生曰：『才知覺，義理便在此；才昏，便不見了。』」&amp;lt;/ref&amp;gt;&lt;br /&gt;
&lt;br /&gt;
此謂脩身在正其心。&amp;lt;br/&amp;gt;&lt;br /&gt;
이것을 일러 &amp;quot;몸을 닦음이 그 마음을 바룸에 있다.&amp;quot;고 하는 것이다.&lt;br /&gt;
&lt;br /&gt;
::右傳之七章。釋正心脩身。&lt;br /&gt;
::이상은 전 7장이니, 正心․修身을 해석하였다.&lt;br /&gt;
:::此亦承上章以起下章。蓋意誠則真無惡而實有善矣，所以能存是心以檢其身。&amp;lt;sub&amp;gt;朱子曰: &amp;quot;意誠然後心得其正, 自有先後.&amp;quot; ○新安陳氏曰: &amp;quot;此言'意誠而後心可得而正', 盖其序之不可亂者.&amp;quot;&amp;lt;/sub&amp;gt;然或但知誠意，而不能密察此心之存否，則又無以直內而脩身也。&amp;lt;sub&amp;gt;○或謂: &amp;quot;意誠則心正.&amp;quot; 朱子曰: &amp;quot;不然. 這㡬句連了又斷, 斷了又連. 雖若不相連綴, 中間又自相貫. 譬如一竿竹, 雖只是一竿, 然其間又有許多節. 意未誠, 則全體是私意, 更理㑹甚正心? 然意雖誠了, 又不可不正其心.&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6. 或問「正心」、「誠意」章。先生令他說。曰：「意誠則心正。」曰：「不然。這幾句連了又斷，斷了又連，雖若不相粘綴，中間又自相貫。譬如一竿竹，雖只是一竿，然其間又自有許多節。意未誠，則全體是私意，更理會甚正心！然意雖誠了，又不可不正其心。」&amp;lt;/ref&amp;gt;&amp;lt;/sub&amp;gt;自此以下，並以舊文為正。&lt;br /&gt;
:::이 또한 앞 장을 이어서 뒷 장을 일으킨 것이다. 대개 뜻이 진실해지면 진실로 악이 없고 진실로 선이 있을 것이니, 이 때문에 능히 마음을 보존하여 그 몸을 검속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혹 다만 誠意만을 알고, 이 마음의 보존되고 보존되지 않음을 치밀히 살피지 못한다면, 또 안을 곧게 하여 몸을 닦을 수가 없다. 이로부터 이하는 모두 옛 글을 옳은 것으로 삼는다.&lt;br /&gt;
&lt;br /&gt;
====『혹문』 전7장====&lt;br /&gt;
或問: &amp;quot;人之有心, 本以應物. 而此章之傳, 以爲有所喜怒、憂懼, 便爲不得其正. 然則其爲心也, 必如槁木之不復&amp;lt;sub&amp;gt;扶又反下同&amp;lt;/sub&amp;gt;生, 死灰之不復然, 乃爲得其正邪?&amp;quot;&amp;lt;br/&amp;gt; &lt;br /&gt;
曰: &amp;quot;人之一心, 湛&amp;lt;sub&amp;gt;丈減反&amp;lt;/sub&amp;gt;然虛明, 如鑑之空, 如衡之平, 以爲一身之主者, 固其眞體之本然.&amp;lt;sub&amp;gt;眞體乃其本體之不雜於人偽者也&amp;lt;/sub&amp;gt; 而喜怒、憂懼, 隨感而應, 妍蚩&amp;lt;sub&amp;gt;充之反&amp;lt;/sub&amp;gt;俯仰因物賦形者, 亦其用之所不能無者也. 故其未感之時, 至虛至静, 所謂鑑空衡平之體, 雖鬼神有不得窺其際者, 固無得失之可議. 及其感物之際, 而所應者又皆中&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節, 則其鑑空衡平之用, 流行不滯, 正大光明, 是乃所以爲天下之逹道, 亦何不得其正之有哉? 唯其事物之來, 有所不察, 應之既或不能無失, 且又不能不與俱往, 則其喜怒憂懼必有動乎中者, 而此心之用始有不得其正者耳.&amp;quot;&amp;lt;br/&amp;gt;&lt;br /&gt;
혹자가 물었다. &amp;quot;사람에게 있는 마음은 본래 이것으로 외물에게 응하는 것인데, 이 장의 설명에서는 喜怒憂懼한 것이 있으면 곧 바르지 않음이 있기 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렇다면 마음 됨이라는 것은 반드시 죽어버린 나무가 다시 살아나지 못하고, 꺼져버린 잿더미가 다시 불나지 못하는 것과 같이 되고 나서야 그 바름을 얻게 되는 것입니까?&amp;quot;&amp;lt;br/&amp;gt; &lt;br /&gt;
답했다. &amp;quot;사람의 한 마음은 맑고 허령불매함이 마치 거울의 텅빔과 저울의 평평함 같아서 한 몸의 주재자가 되는 것이니 진실로 眞體의 본래 그러함이다.&amp;lt;sub&amp;gt;眞體란 바로 그 본체가 인위적인 것에 섞이지 않는 것이다.&amp;lt;/sub&amp;gt; 喜怒憂懼는 (외물에게) 감한 것을 따라서 응한 것이고, 아름다움과 추함, (저울의) 오르내림은 외물에 따라서 형체가 부여된 것이니 또한 마음의 用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아직 감하기 전에는 매우 허명하고 고요하니 이른바 거울의 텅빔, 저울의 평평함 이라는 體다. 비록 귀신이라고 그 때(미발)을 헤아릴 수 없는 것이 있어서 진실로 의논할 만한 잘못을 얻지 않는 것이고, 외물에 감할 때에 미쳐서 그 응한 것이 또한 모두 절도에 맞으면 그 鑑空衡平이라는 用이 흘러다님에 막힘이 없고 바르고 크며 빛나니 이것이 바로 천하의 공통된 도가 되는 이유이다. 또 어찌 그 바름을 얻지 못함이 있겠는가! 오직 그 사물이 올 때에 살피지 못하 바가 있어서 응하는 것에 잘못이 없을 수 없고, 또 (외물에) 휩쓸려가버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그 喜怒憂懼가 반드시 미발 상태에서 동요된 바가 있어서 이 마음의 用이 비로소 그 바름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人心如一箇鏡. 先未有一箇影象, 有物事來, 方始照見妍醜. 若先有箇影象在裏面, 如何照得人心本是湛然虚明? 事物之來, 隨感而應, 自然照得髙下輕重. 事過便當依前恁地虚方得. 若事未來, 先有一箇忿懥、好樂、恐懼、憂患之心在這裏; 及忿懥、好樂、恐懼、憂患之事到來, 又以這心相與滚合, 便失其正. 事了又只若留在這裏, 如何得正?&amp;quot;&lt;br /&gt;
:주자가 말했다. &amp;quot;사람의 마음은 마치 어떤 거울 같아서 먼저 어떤 형상이 있지 않다가 외물이 오는 경우에야 비로소 (외물의) 아름답고 추함을 비추게 된다. 만약 먼저 어떤 형상이 그 안에 있다면 어떻게 (외물을) 비출 수 있겠는가. 사람의 마음은 본래 맑고 허명해서 사물이 올 때에 감한 것을 따라 응해서 자연스럽게 높이와 무게를 비출 수 있는 것이다. 외물이 지나가면 이전의 이와같은 허명함을 따라야 비로소 옳다. 만약 외물이 아직 오지 않았는데 먼저 어떤 忿懥、好樂、恐懼、憂患의 마음이 그 안에 있다가 忿懥、好樂、恐懼、憂患한 일이 오는 경우에 미쳐서 이 마음으로 서로 합하는 경우에는 그 바름을 잃어버리고 일이 끝나고도 그 안에 머무르는 바가 있게 되면 어떻게 바름을 얻을 수 있겠는가?&amp;quot;&lt;br /&gt;
:○北溪陳氏曰: &amp;quot;感自外入, 以彼物之至吾前而言. 應由中出, 以此心之接彼物而言.&amp;quot;&lt;br /&gt;
:북계진씨가 말했다. &amp;quot;感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것이니 저 외물이 와서 내 앞에 있는 것으로 말한 것이고, 應은 마음으로 부터 나온 것이니 이 마음이 외물에 접한 것으로 말한 것이다.&amp;quot;&lt;br /&gt;
:○節齋蔡氏曰: &amp;quot;鑑之空, 方能照人. 若先有人形滯其中, 則人之繼至者不復可得而照矣. 衡之平, 方能稱物. 若先有物重滯於上, 則物之繼至者不復可得而稱矣. 以鑑空衡平喻心體之虚明, 最為精切.&amp;quot;&lt;br /&gt;
:절제채씨가 말했다. &amp;quot;거울의 텅빔이어야 다른 사람을 비출 수 있다. 만약 먼저 그 마음에 모습이 있다면 다른 모습이 이어지는 경우에 다시 비출 수 없게 된다. 저울의 평평함 이라야 외물을 잴 수 있다. 만약 먼저 그 위에 무게가 달려있으면 다른 외물이 이어지는 경우에 다시 잴 수 없다. 鑑空衡平으로 心體의 허명함을 비유한 것은 가장 정밀하고 적절하다.&amp;quot;&lt;br /&gt;
:○陳氏曰: &amp;quot;此章只是四者感物而應不中其節, 則此心便爲四者所動而不得其正矣. 若世俗心盧昏昏, 莫克主宰, 體用動静無復凖則, 目隨物視, 耳隨物聽, 行信足歩, 言信口說矣.&amp;quot;&lt;br /&gt;
:진씨가 말했다. &amp;quot;이 장에서 다만 (忿懥、好樂、恐懼、憂患의) 네 가지가 외물에 감하여 응한 것이 그 절도에 맞지 못하면 이 마음은 곧 이 네 가지에 의해 동요되어서 그 바름을 얻지 못하게 된다. 마치 세상 사람들의 걱정이 혼란스러워서 (그들을) 주재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마음의) 體用과 動静이 기준을 회복하지 못하면 눈은 외물을 따라 보고, 귀는 외물을 따라 듣고, 걷는 것은 발 가는대로 가고, 말은 말하는 대로 말한다.&amp;quot;&lt;br /&gt;
:○西山眞氏曰: &amp;quot;鑑空衡平之體用, 切須玩味. 蓋未應物時, 此心只要清明虛静, 不可先有一物, 如鑑未照物, 只是一箇空; 如衡未稱物, 只是一箇平. 此乃心之本體; 即喜怒哀樂未發之中; 所謂鑑空衡平之體也. 及事物之來, 隨感而應, 因其可喜而喜, 可怒而怒, 在我本未甞先有此心, 但隨物所感而應之耳, 故其發無不中節, 此所謂鑑空衡平之用也.&amp;quot;&lt;br /&gt;
:서산진씨가 말했다. &amp;quot;鑑空衡平의 體用은 절실히 완미해야한다. 대개 외물에 아직 응하지 않았을 때에 이 마음은 清明虛静하기 마련이니 어떤 외물이 먼저 있을 수 없다. 마치 거울이 아직 외물을 비추지 않으면 다만 텅 비어있고, 저울이 아직 외물을 재지 않았으면 다만 평평한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본체이니 '喜怒哀樂未發之中'의 경우가 이른바 鑑空衡平의 體라는 것이요, 사물이 올 때에 감응한 것을 따라 응하는 것은 기뻐할 만한 것을 따라 기뻐하고, 화낼 만한 것에 화내니, 나에게 있는 것은 본래 먼저 이러한 마음이 아닌 적이 없고 다만 외물에 감응한 바를 따라서 응할 뿐이다. 그러므로 '其發無不中節'한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鑑空衡平의 用이라는 것이다.&amp;quot;&lt;br /&gt;
:○徽菴程氏曰: &amp;quot;未發之前, 氣未用事, 心之本體, 不待正而後正; 發而中節, 則心之用無不正, 亦不待正之而後正. 夫有不正而後正, 心體静而未發, 何待於正乎? 惟此心之用, 發不中節, 始有不正, 而待於正耳. &amp;lt;章句&amp;gt;曰: '用之所行, 或失其正'; &amp;lt;或問&amp;gt;曰: '此心之用, 不得其正', 未甞言體之不正也. 惟經之&amp;lt;或問&amp;gt;有曰: '不得其本然之正', 曰: '心之本體, 物不能動而無不正', 或者遂執之以為正心乃静時工夫, 如&amp;lt;中庸&amp;gt;未發之中, &amp;lt;太極圖&amp;gt;之主静, 而經之所謂定静安也. 傳之心不在焉, 乃心不在腔子裏時也, 殊不知聖人教人多於動處用功. 格至誠正脩皆教人用功於動者, 定静安, 亦非但言心之静也. 若静時工夫, 則戒謹恐懼而已, 存之養之守之而已, 不待乎正其所不正也. 聖賢之動固主乎静. 元亨誠之通, 固主乎利貞誠之復. 而誠正脩云者, 正誠通之事. 既誠正而脩矣, 始有誠復之明. 若當誠意之後, 厭動而求静, 棄事而㝠心, 收視反聽, 而曰: '吾將以正心焉', 此乃異端之事, 非吾儒事也. 况'心不在焉'亦曰: 心不在視, 則視而不見; 不在聽, 則聽而不聞, 豈静在腔中之謂哉? &amp;lt;或問&amp;gt;所謂本然、本體, 亦指此心之義理而言; 孟子言本心亦指仁義之心而言, 豈一於静之謂乎?&amp;quot;&lt;br /&gt;
:휘암정씨가 말했다. &amp;quot;아직 발하기 전에 기가 용사하지 않았으면 마음의 본체는 바르기를 기다린 이후에 바르게 되는 것이 아니며; 발하여 절도에 맞게 되었다면 마음의 용은 바르지 않음이 없어서 또한 마음을 바르게 하기를 기다린 이후에 바르게 되는 것이 아니다. 무릇 바르지 않은 것이 있은 이후에 바르게 하는 것이니 心體가 고요하고 아직 말하지 않았다면 무슨 바르게 하기를 기다리겠는가? 오직 이 마음의 用이 발하여 중절하지 않아야 비로소 바르지 않음이 있어서 바르게 하기를 기라릴 뿐이다. &amp;lt;대학장구&amp;gt;에서 (주자의 주석에서) 말한 '마음이 행하는 바가 혹 그 바름을 잃는다'&amp;lt;ref&amp;gt; &amp;lt;대학장구&amp;gt; 8장. 所謂脩身在正其心者，身有所忿懥，則不得其正；有所恐懼，則不得其正；有所好樂，則不得其正；有所憂患，則不得其正。&amp;lt;주&amp;gt; 程子曰：「身有之身當作心。」忿，弗粉反。懥，敕值反。好、樂，並去聲。忿懥，怒也。蓋是四者，皆心之用，而人所不能無者。然一有之而不能察，則欲動情勝，而其用之所行，或不能不失其正矣。&amp;lt;/ref&amp;gt; 고 말한 것과 &amp;lt;혹문&amp;gt;에서 '이 마음의 용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일찍이 그 마음의 體의 바르지 않음을 말한 것이 아니다. 오직 경1장에 관한 &amp;lt;혹문&amp;gt;에서 '그 본연의 바름을 얻지 못한다'는 것과 '마음의 본체는 외물이 동요시킬 수 없으니 바르지 않음이 없다'고 말한 것을 혹자가 끝내 그것을 가져가다 正心은 바로 고요한때의 공부이니, &amp;lt;중용&amp;gt;의 '未發之中'과 &amp;lt;태극도&amp;gt;의 主静공부와 경전에서 말한 '定静安'과 같은 것이라고 여겼다. (&amp;lt;대학&amp;gt;의) 傳의 '心不在焉'는 바로 마음이 텅 비어있는 때에 있다는 것이 아니니 성인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움직이는 곳에서 힘쓰게 하신 바가 많게 했음을 전혀 모르는 것이다. 격물, 치지, 성의, 정신, 수신은 모두 사람들도 하여금 움직이는 곳에서 힘쓰게 한 것들이니, '定静安'또한 다만 마음의 고요한 때만 말한 것이 아니다. 고요한 때의 공부는 계신공구일 뿐이요 '存之', '養之', '守之'일 뿐이니, 그 바르지 않은 바를 바르게 하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성현의 動은 진실로 靜을 주로하니, 元亨의 誠의 통함이 진실로 利貞의 誠의 돌아옴(復)을 주로하는 것이다. &amp;lt;ref&amp;gt; &amp;lt;통서해&amp;gt;, 誠上第一. 元、亨，誠之通；利、貞，誠之復。&amp;lt;/ref&amp;gt; 성의, 정심, 수신을 말한 것은 바로 (앞 구절의) '誠'과 '通'의 일이요, 성의 정심하고 나서 수신하여야 비로소 '誠'과 '復'의 밝음이 있게 된다. 만약 성의한 이후에 움직이기를 싫어하면서 精을 구하고, 일을 버리고 마음을 밝히려 하여 보는 것을 거두고 듣는 것을 돌이켜 말하기를 '나는 장차 이러한 행동들로 마음을 바르게 할 것이다'라고 한다면 이것이 바로 이단의 일이요 우리 유가의 일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心不在焉'은 또한 마음이 보는 것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마음이 듣는 것에 있지 않으면 들어도 들리지 않는 다는 말이니, 어찌 텅 빈 곳 속에 고요하게 있음을 말한 것이겠는가! &amp;lt;혹문&amp;gt;에서 말한 (경1장의) '本然'과 '本體' 또한 이 마음의 의리를 가리켜 말한 것이요, 맹자가 말한 '本心' 또한 인의의 마음을 가리켜 말한 것이니 어찌 静에 한결같음을 말한 것이겠는가?&amp;quot; &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湛然虚明者, 心之體; 隨感而應者, 心之用. 如鑑之空, 則妍蚩因物, 而空者自如; 如衡之平, 則俯仰因物, 而平者自若. 眞體之本然, 吾心之太極也. 隨感而應, 則本體之眞, 在在呈露, 而太極亦無不在矣. 未感之時, 鬼神不得窺其際, 乃天下之大本, 是明徳之體、寂然不動者也. 寂之中有能感者存, 感物之際, 流行不滯, 正大光明, 乃天下之逹道, 是明徳之用、感而遂通者也. 感之中未甞無寂者存.&amp;quot;&lt;br /&gt;
:옥계노씨가 말했다. &amp;quot;맑고 허명하다는 것은 마음의 體요, 감한 것을 따라 응한다는 것은 마음의 用이니, 마치 거울의 텅빔은 그 아름답고 추함이 외물을 따르지만 텅빔은 본래 그러함과 같고, 저울의 평평함은 그 오르내림이 외물을 따르지만 평평함은 본래 그러함과 같다. 眞體之本然은 내 마음의 태극이다. 감하는 바에 따라 응하면 본체의 眞이 곳곳마다 드러나니 태극 또한 없는 곳이 없다. (마음이) 아직 발하기 이전에 귀신이 그 (미발의) 때를 헤아릴 수 없는 것이 바로 '天下之大本'이니 明徳의 體이고 寂然不動하다는 것이다. 적연한 가운데에 감할 수 있는 것이 있으니, 외물에 감할 때에 그 흘러감이 막힘이 없고 正大光明한 것이 바로 '天下之逹道'이니, 이것이 明徳의 用이요, 感而遂通한다는 것이다. 감하는 중에도 일찍이 고요함이 보존되지 않는 경우가 없었다.&amp;quot;&lt;br /&gt;
&lt;br /&gt;
&amp;quot;傳者之意, 固非以心之應物便爲不得其正, 而必如枯木死灰然後乃爲得其正也. 惟是此心之靈, 既曰一身之主, 苟得其正而無不在是, 則耳目鼻口四肢百骸, 莫不有所聽命以供其事, 而其動靜語黙出入起居, 唯吾所使而無不合於理. 如其不然, 則身在於此而心馳於彼, 血肉之軀無所管攝, 其不爲仰面貪看鳥. 囘頭錯應人者幾&amp;lt;sub&amp;gt;平聲&amp;lt;/sub&amp;gt;希矣.&amp;lt;sub&amp;gt;所引二句乃杜子美詩&amp;lt;/sub&amp;gt; 孔子所謂: '操則存, 舍則亡', 孟子所謂: '求其放心'、'從其大體'者, 蓋皆謂此. 學者可不深念而屢省&amp;lt;sub&amp;gt;悉井反&amp;lt;/sub&amp;gt;之哉!&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傳의 뜻은 진실로 마음이 외물에 응하면 곧 바름을 얻지 못하게 되어 반드시 죽은 나무와 꺼진 재와 같이 된 이후에야 그 바름을 얻을 수 있게 된다고 한 것이 아니다. 오직 이 마음의 허령임을 이미 '一身之主'라고 말했으니 만약 그 바름을 얻고 옳은 곳에 있지 않음이 없다면 귀, 눈, 코, 입, 사지 온 몸의 뼈가 그 (마음이) 명령한 바를 들어서 각자의 일에 이바지 하지 않음이 없고 그 움직임과 말함과 출입함과 행동함이 오직 내가 시키는 바 대로 하여도 이치에 부합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몸이 여기에 있더라도 마음이 저쪽을 내달리고  , 육신이 다스려지는 바가 없게되니, 얼굴 들어 새보기를 탐하다가 고개 돌려 사람에게 응답하지 못하지 않는 사람이 드물 것이다.  &amp;lt;sub&amp;gt;인용한 두 구절은 모두 두보의 아름다운 시이다.&amp;lt;/sub&amp;gt; 공자가 말한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없어진다' &amp;lt;ref&amp;gt; &amp;lt;맹자&amp;gt;, &amp;lt;고자상&amp;gt; 8장 &amp;lt;/ref&amp;gt;는 것과 맹자가 말한 '그 놓아버린 마음을 구한다' &amp;lt;ref&amp;gt; &amp;lt;맹자&amp;gt;, &amp;lt;고자상&amp;gt;, 11장. &amp;lt;/ref&amp;gt;, '그 큰 것을 따른다' &amp;lt;ref&amp;gt; &amp;lt;맹자&amp;gt;, &amp;lt;고자상&amp;gt;, 15장 &amp;lt;/ref&amp;gt;는 것이 모두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학자가 깊히 생각하고 자주 이것을 성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lt;br /&gt;
&lt;br /&gt;
===傳八章===&lt;br /&gt;
所謂齊其家在脩其身者：人之其所親愛而辟焉，之其所賤惡而辟焉，之其所畏敬而辟焉，之其所哀矜而辟焉，之其所敖惰而辟焉。故好而知其惡，惡而知其美者，天下鮮矣！&amp;lt;sub&amp;gt;辟，讀為僻。惡而之惡、敖、好，並去聲。鮮，上聲&amp;lt;/sub&amp;gt;&amp;lt;br/&amp;gt;&lt;br /&gt;
이른바 '자기 집안을 단속하는 것은 제 자신을 수양하는 데 달려있다'는 것은 [다음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이 아끼는 것에 치우치고, 자신이 싫어하는 것에 치우치며, 경외하는 것에 치우치고, 안타까워하는 것에 치우치며, 게으른 바에 치우치므로, 좋게 여기면서 그것의 단점을 알거나 싫어하면서 그것의 장점을 아는 경우는 천하에 드물다.&lt;br /&gt;
:人，謂眾人。之，猶於也。辟，猶偏也。&amp;lt;sub&amp;gt;朱子曰: &amp;quot;古註辟音譬, 窒礙不通. 只是辟字便通. 况此篇自有僻字, '辟則為天下僇', 是矣&amp;quot;&amp;lt;/sub&amp;gt;五者，在人本有當然之則；然常人之情惟其所向而不加審焉，則必陷於一偏而身不脩矣。&lt;br /&gt;
:'人'은 뭇 사람들을 말한다. '之'는 '於'와 같다. '辟'은 치우침(偏)과 같다.&amp;lt;sub&amp;gt;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옛 주석에 '辟'의 음이 '비(譬)'라고 했는데, [의미가] 막혀서 통하지 않는다. '벽(辟)'자라면 [의미가] 통한다. 게다가 이 책에 본래 '벽(僻)'자가 있으니, '편벽되면 천하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한다'&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전10장. 詩云：「節彼南山，維石巖巖，赫赫師尹，民具爾瞻。」有國者不可以不慎，辟則為天下僇矣。&amp;lt;/ref&amp;gt;는 것이 이것이다.&amp;quot;&amp;lt;/sub&amp;gt; 이 다섯 가지의 경우 사람에게 마땅히 따라야 할 준칙이 본래부터 있지만, 일반 사람들의 마음은 오직 이를 좇을 뿐 더 이상 살피지 않으니, 틀림없이 한 쪽에 빠져 자신이 수양되지 못한다.&lt;br /&gt;
::○朱子曰: &amp;quot;正心、脩身兩段, 大㮣差錯處, 皆非在人欲上, 皆是人合有底事, 如在官街&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都市中的大街.&amp;lt;/ref&amp;gt;上差了路.&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정심과 수신 두 단락에서 일반적으로 잘못하는 지점은 모두 인욕에 있지 않고, 모두 사람이 해야 할 일에 있으니, 마치 대로에서 길을 잃는 것과 같다.&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6. 正心、修身，今看此段大概差錯處，皆未在人欲上。這箇皆是人合有底事，皆恁地差錯了。況加之以放辟邪侈，分明是官街上錯了路！&amp;lt;/ref&amp;gt;&lt;br /&gt;
::○忿懥等是心與物接時事; 親愛等是身與物接時事.&lt;br /&gt;
::'忿懥' 등은 마음이 외물과 접했을 경우이고, '親愛' 등은 몸이 외물과 접했을 경우이다.&lt;br /&gt;
::○'之所親愛', 如父子當主於愛. 然父有不義, 不可以不争; 子有不肖, 亦不可不知教之. '之所敬畏', 如君固當敬畏. 然若當正救責難, 也只管敬畏不得. '賤惡'固可惡, 或尚可教, 或有長處, 亦當知之.&lt;br /&gt;
::'之所親愛'는 예를 들어 마땅히 사랑(愛)을 위주로 해야 하는 부자 관계와 같다. 그러나 부모에게 불의한 점이 있으면 [자식이] 다투지 않아선 안 되고, 자식에게 불초한 점이 있으면 [부모] 또한 그를 가르칠 줄 몰라서는 안 된다. '之所敬畏'는 예를 들어 마땅히 경외해야 하는 군주와 같다. 그러나 마땅히 바로잡고 어려운 것을 요구하는 경우 그저 경외만 해서는 안 된다. '賤惡'은 진실로 미워할 만하지만, 혹 여전히 가르칠 만하거나 혹 뛰어난 점이 있다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6. 「人之其所親愛而僻焉」，如父子是當主於愛，然父有不義，子不可以不爭；如為人父雖是止於慈，若一向僻將去，則子有不肖，亦不知責而教焉，不可。「人之其所賤惡而僻焉」，人固自有一種可厭者，然猶未至於可賤惡處，或尚可教，若一向僻將去，便賤惡他，也不得。「人之其所畏敬而僻焉」，如事君固是畏敬，然「說大人則藐之」，又不甚畏敬。孟子此語雖稍粗，然古人正救其惡，與「陳善閉邪」，「責難於君」，也只管畏敬不得。&amp;lt;/ref&amp;gt;&lt;br /&gt;
::○問: &amp;quot;'敖惰', 恐非好事.&amp;quot; 曰: &amp;quot;此如眀鏡之懸, 妍醜隨其來而應之. 不成醜者至前, 亦喚做妍者? 又'敖惰'是輕, '賤惡'是重. 既賤惡得, 如何却不得敖惰? 然傳者猶戒其辟, 則須檢㸃, 不可有過當處.&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敖惰'는 좋은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amp;quot; 대답하셨다: &amp;quot;이는 밝은 거울이 매달려있는 것과 같으니, 예쁘고 못난 것은 오는 바에 따라 드러나는 것이다. 못난 것이 앞에 왔는데 예쁘다고 하지는 않겠지? 또 '게으름(敖惰)'는 가볍고 '싫어함(賤惡)'는 무겁다. 싫어한 이상 어찌 게으르지 않겠는가? 그러나 전을 쓴 자가 오히려 그 치우침을 경계했으니, 반드시 점검해 정도를 넘어서는 점이 있어선 안 된다.&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6. 又問：「『敖惰』二字，恐非好事。」曰：「此如明鑑之懸，妍者自妍，醜者自醜，隨所來而應之。不成醜者至前，須要換作妍者！又敖惰是輕，賤惡是重。既得賤惡，如何卻不得敖惰？然聖人猶戒其僻，則又須點檢，不可有過當處。」&amp;lt;/ref&amp;gt;&lt;br /&gt;
::○'哀矜', 如有大姦, 方欲懲之, 被他哀鳴懇吿, 又却寬之, 這便是哀矜之偏處.&lt;br /&gt;
::'哀矜'은 마치 매우 간사한 자를 징계하려고 할 때, 그의 슬프고 간곡한 하소연을 듣고 용서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바로 '안타까움(哀矜)'에 의해 치우친 것이다.&lt;br /&gt;
::○五者各自有當然之則, 只不可偏. 如人饑而食, 只合當食, 食纔過些子便是偏; 渴而飲, 飲纔過些子便是偏. 如愛其人之善, 若愛之過則不知其惡, 便是因其所重而陷於所偏; 惡惡亦然. 下面說'人莫知其子之惡, 莫知其苗之碩', 上面許多偏病不除, 必至於此.&lt;br /&gt;
::다섯 가지 각각에는 마땅히 따라야 할 준칙이 있으니, 치우쳐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사람이 굶주렸다가 먹을 때에는 마땅히 먹어야겠지만, 먹는 것이 조금이라도 지나치면 치우친 것이다. 목이 말라서 마실 때 마시는 것이 조금이라도 지나치면 치우친 것이다. 다른 사람의 선을 아끼는 경우, 아낌이 지나치면 그의 단점을 알아채지 못하니, 이것이 바로 중하게 여기는 바 때문에 치우침에 빠지는 것이다. 악을 미워하는 것 역시 그러하다. 아래에 '사람 중에 제 자식의 단점을 아는 자가 없고, 제 싹이 큼을 아는 자가 없다'고 말한 것은, 위의 수많은 치우침의 병폐가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에 틀림없이 이런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lt;br /&gt;
&lt;br /&gt;
故諺有之曰：「人莫知其子之惡，莫知其苗之碩。」&amp;lt;sub&amp;gt;諺，音彥。碩，協韻，時若反。&amp;lt;/sub&amp;gt;&amp;lt;br/&amp;gt;&lt;br /&gt;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속담이 있다: &amp;quot;사람 중에 제 자식의 단점을 아는 자가 없고, 제 싹이 큼을 아는 자가 없다.&amp;quot;&lt;br /&gt;
:諺，俗語也。溺愛者不明，貪得者無厭，是則偏之為害，而家之所以不齊也。&lt;br /&gt;
:'諺'은 속담이다. 자식 사랑에 빠진 자는 사리에 어둡고, 이득을 탐하는 자는 만족을 모르니, 이것이 치우침의 해이며 집안이 단속되지 못하는 까닭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此謂身不脩不可以齊其家。&amp;lt;br/&amp;gt;&lt;br /&gt;
이를 &amp;quot;자신이 수양되지 않으면 제 집안을 단속할 수 없다&amp;quot;고 말한다.&lt;br /&gt;
::問: &amp;quot;如何脩身專指待人而言?&amp;quot; 朱子曰: &amp;quot;脩身以後, 大㮣說向接物待人去, 又與只說心處不同. 要之, 根本之理則一, 但一節說濶, 一節去.&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어째서 '脩身'인데 오로지 다른 사람(人)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까?&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脩身' 이후에는 대체로 외물이나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경우를 말하니, 단지 마음에 대해 말하는 부분과는 다르다. 요컨대 근본 이치는 똑같지만, 한 절은 넓게 말했고, 한 절은 없애버렸다.&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6. 問：「如何修身卻專指待人而言？」曰：「修身以後，大概說向接物待人去，又與只說心處不同。要之，根本之理則一，但一節說闊，一節去。」&amp;lt;/ref&amp;gt;&lt;br /&gt;
&lt;br /&gt;
::右傳之八章。釋脩身、齊家。&lt;br /&gt;
::이상은 전8장이니, 脩身·齊家를 풀이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혹문』 전8장====&lt;br /&gt;
或問: &amp;quot;八章之辟, 舊讀爲譬, 而今讀爲僻, 何也?&amp;quot; 曰: &amp;quot;舊音舊說, 以上章例之而不合也; 以下文逆之而不通也. 是以間者竊以類例文意求之而得其說如此, 蓋曰人之常情. 於此五者一有所向, 則失其好&amp;lt;sub&amp;gt;去聲下同&amp;lt;/sub&amp;gt;惡&amp;lt;sub&amp;gt;去聲下於惡好惡同&amp;lt;/sub&amp;gt;之平, 而陷於一偏. 是以身有不脩, 不能齊其家耳. 蓋偏於愛, 則溺焉而不知其惡矣; 偏於惡, 則阻焉而不知其善矣. 是其身之所接好惡取舍&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之間, 將無一當&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於理者. 而况於閨門之内恩常掩義, 亦何以勝其情愛暱&amp;lt;sub&amp;gt;尼質反&amp;lt;/sub&amp;gt;比&amp;lt;sub&amp;gt;音鼻&amp;lt;/sub&amp;gt;之私, 而能有以齊之哉?&amp;quot;&amp;lt;br/&amp;gt;&lt;br /&gt;
혹자가 물었다. &amp;quot;8장의 '辟'을 옛날에는 '譬'으로 읽었고, 지금은 '僻'이라고 읽는 것은 어째서 입니까?&amp;quot; 답했다. &amp;quot;옛날 음과 옛 설명은 위의 장을 참조해 보아도 맞지 않고, 아래의 글로 역추해봐도 통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최근에 삼가 부류들과 글의 뜻으로 구해서 이와 같은 설명을 얻은 것이다. 대게 '사람들의 항상된 감정은 이 다섯가지에 대해 하나라도 지향하는 바가 있으면 그 좋아하고 싫어함의 평정심을 잃고 한 쪽 편에 빠져버리니, 이 때문에 몸은 닦여지지 않는 것이 있고, 그 집안은 다스려질 수 없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대개 愛에 치우치면 愛에 빠져서 그의 악함을 알지 못하게 되고, 싫어함(惡)에 빠지면 惡에 가로막혀서 그의 선함을 알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amp;lt;ref&amp;gt; 是 15. 則&amp;lt;/ref&amp;gt; 이 몸이 (외물을) 접하는 것과 좋아하고 싫어하고 취하고 버리는 때에 장차 하나도 이치에 합당한 것이 없을텐데 하물며 집안에서는 '은혜가 항상 義를 가리니'&amp;lt;ref&amp;gt; 예기, &amp;lt;喪服四制&amp;gt;, '門內之治，恩掩義；門外之治，義斷恩。資於事父以事君，而敬同，貴貴尊尊，義之大者也。故為君亦斬衰三年，以義制者也。'&amp;lt;/ref&amp;gt; , 또 어찌 이 情,愛,暱,比의 사사로움을 이겨서 집안을 가지런히 할 수 있겠는가!&amp;quot;&lt;br /&gt;
:北溪陳氏曰: &amp;quot;治家非如治國. 治國可用刑威, 治家則刑威不可得而施, 只是公其心而已.&amp;quot;&lt;br /&gt;
:북계진씨가 말했다.: &amp;quot;집안을 다스리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것만 못하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에는 형벌을 쓸 수 있지만, 집안을 다스릴 적에는 형벌을 시행할 수 없으니 다만 이 마음을 공정하게 할 뿐이다.&amp;quot;&lt;br /&gt;
:○格菴趙氏曰: &amp;quot;'閨門之内, 義常不勝乎恩; 情愛暱比之私, 尤所難克. 使一有偏焉, 則長幼親疏, 欲其心之齊一不可得矣. 盖至近至宻之地, 一毫之偽無所容欺. 此常情之所易忽而君子之所甚謹也.&amp;quot;&lt;br /&gt;
:○격암조씨가 말했다. &amp;quot;집 안에서 義는 항상 은혜를 이기지 못하니 情,愛,暱,比의 사사로움은 더욱 이기기 어려운 것이다. 만일 그 중에 하나라도 치우친 것이 있다면 長幼, 親疏에 그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싶어도 할 수 없다. 대개 가장 가깝고 가장 친밀한 경우에 약간의 거짓됨이라도 속임을 용납하는 바가 없이 해야하니 이것이 (일반사람들의) 항상된 감정이 쉽게 소홀히하는 바이며 군주는 매우 삼가는 바이다.&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凡是五者, 皆身與物接所不能無, 而亦既有當然之則矣. 今曰一有所向便爲偏倚而身不脩, 則是必其接物之際, 此心漠然都無親疎之等、貴賤之别&amp;lt;sub&amp;gt;筆列反&amp;lt;/sub&amp;gt;, 然後得免於偏也. 且心既正矣, 則宜其身之無不脩, 今乃猶有若是之偏, 何哉?&amp;quot; 曰: &amp;quot;不然也. 此章之義, 實承上章. 其立文命意, 大抵相似. 蓋以爲身與事接而後或有所偏, 非以爲一與事接而必有所偏. 所謂'心正而后身脩', 亦曰: '心得其正, 乃能脩身',非謂: '此心一正, 則身不待檢而自脩'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무릇 이 다섯가지는 모두 자신이 외물과 접하는 경우에 없을 수 없는 것이며 또 이미 당연한 이치가 있습니다. 지금 '하나라도 지향하는 바가 있으면 곧 치우치게 되어서 몸이 닦여지지 않는다'고 말하니 이것은 필시 그 외물을 접할 때에 이 마음이 막연하게 親疎의 차이와 貴賤의 구별을 없앤 다음에야 이 치우침을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마음이 이미 바르다면 마땅히 그 몸이 닦여지지 않음이 없을 것인데 지금 이내 이와 같은 치우침이 있는 것은 어째서 입니까?&amp;quot; 답했다. &amp;quot;그렇지 않다. 이 장의 뜻은 진실로 윗 장을 이은 것이니, 그 의도가 대체로 서로 비슷하다. 대개 몸이 외물과 접한 이후에 간혹 치우친 바가 있게 된다고 여긴 것이지, 한 번이라도 외물과 접하면 반드시 치우치는 바가 있다고 여긴것이 아니다. 이른바 '마음이 바르게 된 이후에 몸이 닦여진다'고 한 것은 '마음이 그 바름을 얻어야 몸을 닦을 수 있다고'고 하 것이지 이 마음이 한 번 바르게 되면 몸은 검속할 필요도 없이 저절로 닦여진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amp;lt;大學&amp;gt;所以有許多節次, 正欲教人逐節用功, 非如一無節之竹, 使人才能格物, 便知平天下也. 人蓋有意誠而心未正者, 故於忿懥等, 誠不可不隨事而排遣; 有心正而身未脩者, 故於好惡間, 誠不可不隨人而節制. 齊家以下, 皆是教人省察用功. 故經之序, 但言心正者必自誠意而來; 修身者必自正心而來, 非謂意既誠, 則心無事乎正; 心既正, 則身無事乎脩也.&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6. 大學所以有許多節次，正欲學者逐節用工。非如一無節之竹，使人才能格物，則便到平天下也。夫人蓋有意誠而心未正者，蓋於忿懥、恐懼等事，誠不可不隨事而排遣也。蓋有心正而身未修者，故於好惡之間，誠不可不隨人而節制也。至於齊家以下，皆是教人節節省察用功。故經序但言心正者必自誠意而來，修身者必自正心而來。非謂意既誠而心無事乎正，心既正而身無事乎修也。&amp;lt;/ref&amp;gt;&lt;br /&gt;
:주자가 말했다. &amp;quot;&amp;lt;대학&amp;gt;에 많은 절목들이 있는 것은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절목을 따라 힘쓰게 하기 위함이지, 하나의 마디도 없는 나무와 같이 사람들로 하여금 격물하자마자 곧바로 평천하를 알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대개 뜻이 진실되더라도 마음이 아직 바르지 않은 경우가 있기 때문에 忿,懥등에 있어서 진실로 일에 따라서 배제하지 않을 수 없고, 마음이 바르게 되더라도 몸은 아직 닦여지지 않은 경우가 있기 때문에 好,惡사이에 진실로 사람에 따라서 절제하지 않을 수 없다. 齊家이하는 모두 사람들로 하여금 성찰하고 힘쓰게 한 것이기 때문에 경전의 순서에서 다만 마음이 바르게 되는 것은 반드시 뜻을 진실하게 하는 것으로 부터 오고, 몸을 닦는 것은 반드시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으로부터 온다고 말한 것이지 뜻이 이미 진실해 졌다면 마음은 바름에 종사하지 않음이 없고, 마음이 이미 바르게 되었다면 몸은 닦음에 종사하지 않음이 없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親愛、賤惡、畏敬、哀矜, 固人心之所宜有. 若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敖惰, 則凶徳也. 曾謂本心而有如是之則哉?&amp;quot; 曰: &amp;quot;敖之爲凶徳也, 正以其先有是心, 不度&amp;lt;sub&amp;gt;待洛反&amp;lt;/sub&amp;gt;所施而無所不敖爾. 若因人之可敖而敖之, 則是常情所宜有而事理之當然也. 今有人焉, 其親且舊未至於可親而愛也; 其位與徳未至於可畏而敬也; 其窮未至於可哀而其惡未至於可賤也, 其言無足去&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取而其行&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無足是非也, 則視之泛然如塗之人而已爾. 又其下者, 則夫子之取瑟而歌,&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양화&amp;gt; 21. 孺悲欲見孔子，孔子辭以疾。將命者出戶，取瑟而歌。使之聞之。&amp;lt;/ref&amp;gt; 孟子之隱&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几而臥,&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공손추하&amp;gt; 11. 孟子去齊，宿於晝。有欲為王留行者，坐而言。不應，隱几而臥。客不悅曰：「弟子齊宿而後敢言，夫子臥而不聽，請勿復敢見矣。」曰：「坐！我明語子。昔者魯繆公無人乎子思之側，則不能安子思；泄柳、申詳，無人乎繆公之側，則不能安其身。子為長者慮，而不及子思，子絕長者乎？長者絕子乎？」&amp;lt;/ref&amp;gt; 蓋亦因其有以自取而非吾故有敖之之意, 亦安得而遽謂之凶徳哉? 又况此章之㫖, 乃爲&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慮其因有所重而陷於一偏者發. 其言雖曰有所敖惰, 而其意則正欲人之於此更加詳審; 雖曰所當敖惰, 而猶不敢肆其敖惰之心也. 亦何病哉?&amp;quot;&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親愛、賤惡、畏敬、哀矜은 진실로 人心이 마땅히 가지고 있는 것인데, 저 업신여김(敖惰)의 경우는 흉한 덕인데 일찍이 본심에 이와같은 법칙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까?&amp;quot; 답했다. &amp;quot;敖이 흉덕이 되는 것은 바로 그것이 이 마음에 먼저 있는데 시행하는 바를 헤아리지 않고, 업신여기지 않는 바가 없을 뿐이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사람의 업신여길말한 것에 인하여 그를 업신여긴다면 이것은 항상된 감정이 마땅히 가지고 있는 바이고 이치의 당연한 것이다. 지금 어떤 사람이 있어서 그의 親과 舊가 친애할 수 있음에 미치지 못하고, 그의 지위와 덕망이 경외할 수 있음에 미치지 못하고, 그의 곤궁함이 슬퍼할만함에 미치지 않고, 그의 악함이 천하게 여길만함에 미치지 못하고, 그의 말이 버리고 취하기에 부족하고, 그의 행실도 시비를 논하기 부족하니, 평범하게 그를 보기를 마치 길가의 일반 사람들 같이할 뿐이다. 또 그보다 못한 사람의 경우 공자는 비파를 가져다 노래하였고, 맹자는 궤에 기대어 누워있었다. (이는) 대개 그가 스스로 취할 수 있는 것에 따른 것이지, 내가 고의로 그를 업신여기는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니니 또 어찌 갑자기 흉덕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이 장의 뜻은 바로 그가 중요하게 가진 것에 인하여 한 쪽으로 빠져버릴까 염려했기 때문에 말한 것이다. 그 말이 비록 '업신여기는 바가 있다'고 했지만 그 뜻은 바로 사람들이 '敖惰'에 대해서 더욱 자세히 살펴보기를 바란 것이다. 비록 '마땅히 업신여기는 바'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감히 그 업신여기는 마음을 멋대로 하지 않는 것이니 또 뭐가 병폐이겠는가!&amp;quot;&lt;br /&gt;
&lt;br /&gt;
===傳九章===&lt;br /&gt;
所謂治國必先齊其家者，其家不可教而能教人者，無之。故君子不出家而成教於國：孝者，所以事君也；弟者，所以事長也；慈者，所以使眾也。&amp;lt;sub&amp;gt;弟，去聲。長，上聲。&amp;lt;/sub&amp;gt;&amp;lt;br/&amp;gt;&lt;br /&gt;
이른바 '治國은 반드시 齊家를 우선해야 한다'는 것은, 자기 집안을 가르치지 못하면서 남을 가르칠 수 있는 경우는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집안을 벗어나지 않고도 나라에 대한 교화를 이루는 것이다: 孝라는 것은 임금을 섬기는 방법이고, 弟(悌)라는 것은 어른을 섬기는 방법이며, 慈라는 것은 백성을 부리는 방법이다.&lt;br /&gt;
:身脩，則家可教矣&amp;lt;sub&amp;gt;因家不可教而推家所以可教之由, 實自脩身始.&amp;lt;/sub&amp;gt;；孝、弟、慈，所以脩身而教於家者也；然而國之所以事君、事長、使眾之道不外乎此&amp;lt;sub&amp;gt;此字指孝弟慈而言&amp;lt;/sub&amp;gt;。此所以家齊於上，而教成於下也。&lt;br /&gt;
:자신이 수양된다면 집안을 가르칠 수 있다.&amp;lt;sub&amp;gt;집안을 가르칠 수 없음으로부터 집안을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미뤄보면, [齊家는] 실로 脩身에서 비롯된다.&amp;lt;/sub&amp;gt; 孝·弟·慈는 脩身하고서 집안을 가르치는 방법이다. 그러나 나라에서 임금을 섬기고 어른을 섬기며 백성을 부리는 방법이 이것&amp;lt;sub&amp;gt;'이것'은 孝·弟·慈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amp;lt;/sub&amp;gt;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지배층에서는 집안이 단속되고, 피지배층에서는 교화가 완성된 방법이다.&lt;br /&gt;
::朱子曰: &amp;quot;上面說不出家而成教於國, 下面便說所以教者如此, 此三者便是教之目.&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앞부분에서 '집안을 벗어나지 않고도 나라에 대한 교화를 이룬다'고 말하고, 뒷부분에서 '가르치는 방법이 이와 같다'고 말하였으니, 이 세 가지(孝·弟·慈)가 바로 교화의 조목이다.&amp;quot;&lt;br /&gt;
::○'孝者, 所以事君; 弟者, 所以事長; 慈者, 所以使衆', 此道理皆是我家裏做成了, 天下人看着, 自能如此; 不是我推之於國.&lt;br /&gt;
::'孝라는 것은 임금을 섬기는 방법이고, 弟(悌)라는 것은 어른을 섬기는 방법이며, 慈라는 것은 백성을 부리는 방법이다.' 이 도리는 모두 자기 집안에서 이뤄진 것을 천하 사람들이 보고 스스로 이처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 내가 이를 나라에 적용하는 게 아니다.&lt;br /&gt;
::○孝以事親, 而使一家之人皆孝; 弟以事長, 而使一家之人皆弟; 慈以使衆, 而使一家之人皆慈, 是乃成教於國者也.&lt;br /&gt;
::孝로 부모를 섬겨 집안 사람들이 모두 효도하게 만들고, 弟(悌)로 어른을 섬겨 집안 사람들이 모두 공경하게 만들며, 慈로 백성을 부려 집안 사람들이 모두 자애롭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나라에 대한 교화를 이루는 것'이다.&lt;br /&gt;
&lt;br /&gt;
康誥曰「如保赤子」，心誠求之，雖不中不遠矣。未有學養子而后嫁者也！&amp;lt;sub&amp;gt;中，去聲。&amp;lt;/sub&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康誥&amp;gt;에서 '핏덩이를 보호하듯 한다'고 말하니, 마음으로 진실하게 [핏덩이가/백성이 원하는 바를] 추구한다면 비록 [목표에] 들어맞지는 않더라도 [목표에서] 멀지 않을 것이다. 자식 기르는 법을 배운 뒤에 장가가는 경우는 없다! &lt;br /&gt;
:此引書而釋之，又明立教之本不假強&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為，在識其端而推廣之耳。&lt;br /&gt;
:이는 &amp;lt;서경&amp;gt;을 인용하여 해석한 것이니, '교화를 세우는 근본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교화의 실마리를 알아 이를 확충하는 데 달려있을 뿐'임을 거듭 밝힌 것이다.&lt;br /&gt;
::朱子曰: &amp;quot;孝弟雖人所同有, 能守而不失者鮮; 惟保赤子罕有失者. 故特即人所易曉者以示訓, 亦與&amp;lt;孟子&amp;gt;言'見孺子入井'之意同.&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孝·弟가 비록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덕목이지만, 지켜서 잃지 않을 수 있는 자는 드물다. 오직 핏덩이를 보호하려는 마음만큼은 잃는 자가 드물다. 그러므로 특별이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가르치신 것이니, 이 역시 &amp;lt;맹자&amp;gt;의 '어린 아이가 우물로 기어가는 것을 본 사례'의 의미과 같다.&lt;br /&gt;
::○'保赤子', 慈於家也; '如保赤子', 慈於國也. '保赤子', 是慈; '如保赤子', 是使衆. 心誠求赤子所欲, 於民亦當求其不能自達者. 此是推慈幼之心以使衆也.&lt;br /&gt;
::'핏덩이를 보호하는 것'은 집안 사람들에게 자애롭게 대하는 것이고, '핏덩이를 보호하듯 하는 것'은 나라에 자애롭게 대하는 것이다. '핏덩이를 보호하는 것'은 慈이고, '핏덩이를 보호하듯 하는 것은' 백성을 부리는 것(使衆)이다. 마음으로 진실로 핏덩이가 원하는 바를 추구한다면, 백성에 대해서도 응당 그들이 스스로 이루지 못하는 것에 대해 탐구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어린 아이에 대한 자애로운 마음을 미루어 백성을 부리는 것'이다.&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6. 「心誠求之」者，求赤子之所欲也。於民，亦當求其有不能自達。此是推其慈幼之心以使眾也。&amp;lt;/ref&amp;gt;&lt;br /&gt;
::○此且只說動化&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感化.&amp;lt;/ref&amp;gt;為本; 未說到推上. 後方全是說推.&lt;br /&gt;
::이 구절은 우선 감화가 근본임을 말하고 있을 뿐, 그 이상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다. 뒷장에서 비로소 그 이상을 말한다.&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6. 問「治國在齊其家」。曰：「且只說動化為功，未說到推上。後章方全是說推。&amp;lt;/ref&amp;gt;&lt;br /&gt;
&lt;br /&gt;
一家仁，一國興仁；一家讓，一國興讓；一人貪戾&amp;lt;ref&amp;gt;&amp;lt;예기정의&amp;gt; 정현 注: 戾之言利也。&amp;lt;/ref&amp;gt;，一國作亂；其機如此。此謂一言僨事，一人定國。&amp;lt;sub&amp;gt;僨，音奮。&amp;lt;/sub&amp;gt;&amp;lt;br/&amp;gt;&lt;br /&gt;
한 집안이 仁해야 한 나라가 그 仁에 감동해 일어나고, 한 집안이 겸양해야 한 나라가 그 겸양에 감동해 일어나며, [군주] 한 사람만이라도 이익을 탐내면 한 나라가 난을 일으키니, 그 기미가 이와 같다. 이를 '말 한 마디가 일을 망치기도 하고, 한 사람이 나라를 안정시키기도 한다'고 한다.&lt;br /&gt;
:一人，謂君也。機，發動所由也。僨，覆敗也。此言教成於國之效。&lt;br /&gt;
:'한 사람'은 군주이다. '機'는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된 시원이다. '僨'은 엎어지는 것이다. 이 구절은 '나라에 대한 교화가 이뤄진' 결과를 말한 것이다.&lt;br /&gt;
::朱子曰: &amp;quot;'一家仁, 一國興仁; 一家讓, 一國興讓', 自家禮讓, 有以感之. 故民亦如此興起. 自家好争利, 却責民間禮讓, 如何得他應?&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군주] 한 집안이 仁하면 한 나라가 그 仁에 감동해 일어나고, 한 집안이 겸양하면 한 나라가 그 겸양에 감동해 일어난다'는 것은, [군주] 자신이 예양하면 [백성을] 감동시킬 수 있으므로, 백성도 이렇게(겸양) 흥기한다는 것이다. [군주] 자신이 이익 다투길 좋아하면서 도리어 백성들에게는 예양을 요구한다면, 백성의 호응을 어떻게 얻겠는가?&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6. 因講「禮讓為國」，曰：「『一家仁，一國興仁；一家讓，一國興讓。』自家禮讓有以感之，故民亦如此興起。自家好爭利，卻責民間禮讓，如何得他應！&amp;lt;/ref&amp;gt;&lt;br /&gt;
::○'一家仁'以上, 是推其家以治國; '一家仁'以下, 是人自化之也.&lt;br /&gt;
::'一家仁' 이전은 [논의의 대상을] '집안'에서부터 '국가 통치'로 확장한 것이고,  '一家仁' 이후는 백성들이 스스로 교화되는 것이다.&lt;br /&gt;
&lt;br /&gt;
堯舜帥天下以仁，而民從之；桀紂帥天下以暴，而民從之；其所令反其所好，而民不從。是故君子有諸己而后求諸人，無諸己而后非諸人。所藏乎身不恕，而能喻諸人者，未之有也。&amp;lt;sub&amp;gt;好，去聲。&amp;lt;/sub&amp;gt;&amp;lt;br/&amp;gt;&lt;br /&gt;
요순은 천하 사람들을 [자신의] 仁한 덕으로 이끌었는데 백성들이 따랐고, 걸주는 천하 사람들을 [자신의] 포악한 덕으로 이끌었는데 백성들이 따랐으니, 군주가 명령한 것이 군주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배치되면 백성들은 따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자신에게 [선함이] 있은 뒤에야 남에게 [선함을] 요구하고, 자기에게 [악함이] 없은 뒤에야 남에게 [악함이 있음을] 비판한다. 자기 몸에 간직하고 있는 것을 恕하지 못하면서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lt;br /&gt;
:此又承上文一人定國而言。有善於己，然後可以責人之善；無惡於己，然後可以正人之惡。皆推己以及人，所謂恕也，不如是，則所令反其所好，而民不從矣。喻，曉也。&lt;br /&gt;
:이는 다시 앞 글의 '한 사람이 나라를 안정시키기도 한다'에 이어 말한 것이다. 자신에게 선함이 있고 나서 남에게 선을 요구할 수 있고, 자신에게 악함이 없고 나서 남의 악을 바로잡을 수 있다. 모두 자기로부터 남에게 확장하는 것(推己以及人)이니, 이른바 '恕'이다. 이와 같지 않다면, 명령하는 바가 자신이 좋아하는 바에 배치되 백성들이 따르지 않을 것이다. '喻'는 가르침이다.&lt;br /&gt;
::問: &amp;quot;此章言治國, 乃言'帥天下以仁', 又似說平天下; 言'有諸己', 又似說脩身, 何也?&amp;quot; 朱子曰: &amp;quot;聖賢之文簡暢. 身是齊治平之本; 治國、平天下自是相關, 豈可截然不相入?&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이 장은 治國을 말하는데, 천하 사람들을 [자신의] 仁한 덕으로 이끌었다'고 말하니 또 흡사 '平天下'를 말하는 것 같고,  '자신에게 [선함이] 있다'고 말하니 또 흡사 脩身을 말하는 것 같은데, 어째서입니까?&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성현의 글은 간단하면서도 막힘이 없다. 자기 자신(身)은 治國·平天下의 근본이고, 治國·平天下는 본래 연관되어 있으니, 어찌 자른 듯이 서로 관련이 없을 수 있겠는가?&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6. 問：「九章本言治國，何以曰『堯舜率天下以仁而民從之』，都是說治天下之事也？至言『君子有諸己而後求諸人，無諸己而後非諸人』，又似說修身，如何？」曰：「聖人之言，簡暢周盡。修身是齊家之本，齊家是治國之本。如言『一家仁，一國興仁；一家讓，一國興讓』之類，自是相關，豈可截然不相入也！」&amp;lt;/ref&amp;gt;&lt;br /&gt;
::○尋常人若有諸己, 又何必求諸人? 無諸己, 又何必非諸人? 如孔子說'躬自厚而薄責於人', '攻其惡, 無攻人之惡'. 至於&amp;lt;大學&amp;gt;之說, 是有天下國家者, 勢不可以不責他. 大抵治國者禁人惡、勸人善, 便是求諸人、非諸人.&lt;br /&gt;
::보통 사람은 만약 [선함이] 자신에게 있다면 또 어찌 남에게 [선함을] 반드시 요구하겠는가? [악함이] 자신에게 없다면, 또 어찌 남에게 [악함이 있음을] 비판하겠는가? 공자께서 '몸소 후하게 자책하고 남에게는 박하게 책망하라'&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위령공&amp;gt; 14. 子曰：「躬自厚而薄責於人，則遠怨矣。」&amp;lt;/ref&amp;gt;, '자신의 악함을 공격하고 남의 악은 공격하지 말아라'&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안연&amp;gt; 21. 樊遲從遊於舞雩之下，曰：「敢問崇德、脩慝、辨惑。」子曰：「善哉問！先事後得，非崇德與？攻其惡，無攻人之惡，非脩慝與？一朝之忿，忘其身，以及其親，非惑與？」&amp;lt;/ref&amp;gt;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amp;lt;대학&amp;gt;의 말의 경우는, 천하국가를 소유한 자는 형세상 다른 사람을 책망하지 않을 수 없다.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사람들의 악함을 금하고 선함을 권하니, 이것이 바로 '남에게 요구하고 남을 비판하는 것'이다.&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8.	或問：「先吏部說：『有諸己而後求諸人，無諸己而後非諸人。』」曰：「這是說尋常人，若自家有諸己，又何必求諸人；無諸己，又何必非諸人。如孔子說『躬自厚而薄責於人』，『攻其惡，毋攻人之惡』。至於大學之說，是有天下國家者，勢不可以不責他。然又須自家有諸己，然後可以求人之善；無諸己，然後可以非人之惡。」&amp;lt;/ref&amp;gt;&lt;br /&gt;
&lt;br /&gt;
故治國在齊其家。&amp;lt;br/&amp;gt;&lt;br /&gt;
그러므로 治國은 齊家에 달려있는 것이다.&lt;br /&gt;
:通結上文。&lt;br /&gt;
:이상의 글을 총괄해 마무리한 것이다.&lt;br /&gt;
&lt;br /&gt;
詩云：「桃之夭夭，其葉蓁蓁；之子于歸，宜其家人。」宜其家人，而后可以教國人。&amp;lt;sub&amp;gt;夭，平聲。蓁，音臻。&amp;lt;/sub&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시&amp;gt;에서 &amp;quot;어리고 예쁜 복사꽃, 그 잎이 무성하네. 시집 가는 이 처자, 집안 사람들에게 잘하라&amp;quot;고 하니, 집안 사람에게 잘한 이후에야 나라 백성들을 교화할 수 있다.&lt;br /&gt;
:詩周南桃夭之篇。夭夭，少&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好貌&amp;lt;sub&amp;gt;少嫩也&amp;lt;/sub&amp;gt;。蓁蓁，美盛貌。興&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也。&amp;lt;sub&amp;gt;於六義屬興&amp;lt;/sub&amp;gt;之子，猶言是子，此指女子之嫁者而言也。婦人謂嫁曰歸。宜，猶善也。&lt;br /&gt;
:&amp;lt;시&amp;gt; &amp;lt;주남&amp;gt; &amp;lt;도요&amp;gt;편이다. '夭夭'는 어리고 예쁜 모습이다. '蓁蓁'은 아름다고 성대한 모습이다. 興이다.&amp;lt;sub&amp;gt;六義 가운데 興에 속한다.&amp;lt;/sub&amp;gt; '之子'는 '是子'라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 이는 시집가는 여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부인이 시집가는 것을 '歸'라고 한다. '宜'는 '善'과 같다.&lt;br /&gt;
&lt;br /&gt;
詩云：「宜兄宜弟。」宜兄宜弟，而后可以教國人。&amp;lt;br/&amp;gt;&lt;br /&gt;
&amp;lt;시&amp;gt;에서 &amp;quot;형과 동생에게 잘하라&amp;quot;라고 하니, 형과 동생에게 잘한 뒤에야 나라 백성들을 교화할 수 있다.&lt;br /&gt;
:詩小雅蓼&amp;lt;sub&amp;gt;音六&amp;lt;/sub&amp;gt;蕭篇。&lt;br /&gt;
:&amp;lt;시&amp;gt; &amp;lt;소아&amp;gt; &amp;lt;육소&amp;gt;편이다.&lt;br /&gt;
&lt;br /&gt;
詩云：「其儀不忒，正是四國。」其為父子兄弟足法，而后民法之也。&amp;lt;br/&amp;gt;&lt;br /&gt;
&amp;lt;시&amp;gt;에서 &amp;quot;그 위의가 어긋나지 않으니, 이 사방 나라를 바로잡을 것이다&amp;quot;라고 하니, 父子·兄弟가 [그를] 본받을 만한 이후에야 백성들이 그를 본받을 것이다.&lt;br /&gt;
:詩曹風鳲&amp;lt;sub&amp;gt;音尸&amp;lt;/sub&amp;gt;鳩篇。忒，差也。&lt;br /&gt;
:&amp;lt;시&amp;gt; &amp;lt;조풍&amp;gt; &amp;lt;시구&amp;gt;편이다. '忒'은 어긋남이다.&lt;br /&gt;
::問: &amp;quot;'父子兄弟足法而後民法之', 然堯舜不能化其子, 周公不能和兄弟, 是如何?&amp;quot; 朱子曰: &amp;quot;聖賢是論其常; 堯、舜、周公是處其變. 如不將天下與其子而傳賢, 便是能處變得好. 若周公不辟管叔, 周如何不亂? 是不得已著恁地. 而今且理㑹常底. 今未解有父如瞽瞍、兄弟如管蔡, 未論到變處.&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부자·형제가 본받을 만한 이후에야 백성들이 그를 본받을 것'이지만, 요순은 제 자식을 교과하지 못했고, 주공은 자기 형제를 화합하지 못했으니, 이는 어째서입니까?&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성현(&amp;lt;대학&amp;gt;)은 일반적(常)인 경우를 논한 것이고, 요·순·주공은 예외적(變)인 경우에 대처한 것이다. 예를 들어, 천하를 자기 아들에게 주지 않고 현자에게 전한 것은 예외적인 경우에 잘 대처한 것이다. 만약 주공이 관숙을 물리치지 않았다면, 주나라가 어떻게 어지럽지 않았겠는가? 이는 부득이하게 이렇게 한 것이다. 지금 우선 일반적인 경우를 이해해야 한다. 지금은 고수같은 아버지나 관숙·채숙같은 형제가 있을 수 없으므로, 예외적인 경우를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6. 問：「齊家、治國之道，斷然『是父子兄弟足法，而後人法之』。然堯舜不能化其子，而周公則上見疑於君，下不能和其兄弟，是如何？」曰：「聖人是論其常，堯舜是處其變。看他『烝烝乂，不格姦』，至於『瞽瞍底豫』，便是他有以處那變處。且如他當時被那兒子恁地，他處得好，不將天下與兒子，卻傳與賢，便是他處得那兒子好。若堯當時把天下與丹朱，舜把天下與商均，則天下如何解安！他那兒子如何解寧貼！如周公被管蔡恁地，他若不去致辟于商，則周如何不擾亂！他後來盡死做這一著時，也是不得已著恁地。但是而今且去理會常倫。而今如何便解有箇父如瞽瞍，有箇兄弟如管蔡。未論到那變處。」&amp;lt;/ref&amp;gt;&lt;br /&gt;
&lt;br /&gt;
此謂治國在齊其家。&amp;lt;br/&amp;gt;&lt;br /&gt;
이것을 '治國은 齊家에 달려있다'고 말한다.&lt;br /&gt;
:此三引詩，皆以詠歎上文之事，而又結之如此。其味深長，最宜潛玩。&lt;br /&gt;
:여기서 &amp;lt;시&amp;gt;를 세 편 인용한 것은 모두 앞 글의 일을 읊은 것이고, 또 이렇게 마무리한 것이다. 그 맛이 깊고 기니, 가장 마땅히 음미해야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右傳之九章。釋齊家治國。&lt;br /&gt;
::이상은 전9장이다. 齊家·治國을 풀이했다.&lt;br /&gt;
&lt;br /&gt;
====『혹문』 전9장====&lt;br /&gt;
或問: &amp;quot;'如保赤子', 何也?&amp;quot; 曰: &amp;quot;程子有言: '赤子未能自言其意, 而爲之母者慈愛之心出於至誠, 則凡所以求其意者雖或不中&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 而不至於大相逺矣.' 豈待學而後能哉? 若民則非如赤子之不能自言矣. 而使之者反不能無失於其心, 則以本無慈愛之實而於此有不察耳. 傳之言此, 蓋以明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使衆之道不過自其慈幼者而推之, 而慈幼之心又非外鑠&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고자상&amp;gt; 6. 仁義禮智，非由外鑠我也，我固有之也，弗思耳矣。【朱注】鑠，以火銷金之名，自外以至內也。&amp;lt;/ref&amp;gt;&amp;lt;sub&amp;gt;式約反&amp;lt;/sub&amp;gt;而有待於强&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爲也. 事君之孝、事長之弟, 亦何以異於此哉? 既舉其細, 則大者可知矣.&amp;lt;sub&amp;gt;細謂慈; 大謂孝弟.&amp;lt;/sub&amp;gt;&amp;quot;&amp;lt;br/&amp;gt;&lt;br /&gt;
혹자가 물었다: &amp;quot;'핏덩이를 보호하듯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amp;quot; 대답했다: &amp;quot;정자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핏덩이는 아직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못하지만, 그 어미의 자애로운 마음은 지극한 정성에서 나오니, 무릇 [어미가] 핏덩이의 생각을 추리하는 것이 비록 딱 들어맞지는 않겠지만,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amp;lt;ref&amp;gt;&amp;lt;이정유서&amp;gt; 02上-26 今夫赤子未能言, 其志意嗜欲人所未知, 其母必不能知之, 然不至誤認其意者, 何也? 誠心愛敬而已. 若使愛敬其民如其赤子, 何錯繆之有? 故心誠求之, 雖不中, 不遠矣. &amp;lt;/ref&amp;gt; [이것이] 어찌 배운 뒤에야 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백성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핏덩이와 같지 않은데도 백성을 부리는 자가 도리어 그들의 마음을 놓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본래 [어미와 같은] 자애로움의 실질이 없어 그들의 마음을 살피지 못한 점이 있기 때문일 뿐이다. 전9장에서 이를(如保赤子) 말한 것은, '백성을 부리는 방법은 아이에게 자애롭게 대하는 것으로부터 미루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아이에게 자애롭게 대하는 마음은 또 밖으로부터 들어와 강제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군주를 섬기는 것과 孝와의 관계, 어른을 섬기는 것과 弟(悌)와의 관계 역시 이(慈)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상세한 것(慈)을 거론한 이상, 큰 것(孝弟)은 알 수 있다.&amp;lt;sub&amp;gt;'상세한 것'은 '慈'이고, 큰 것은 '孝弟'이다.&amp;lt;/sub&amp;gt;&amp;quot;&lt;br /&gt;
:○三山陳氏曰: &amp;quot;長民者往往不得下之情, 蓋亦視之不切於己, 不若慈母之心耳. 孝弟與慈初無二心. 苟自切己推之, 則舉慈可以見孝矣.&amp;quot;&lt;br /&gt;
:삼산 진씨가 말했다: &amp;quot;백성의 우두머리가 된 자가 종종 백성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역시 백성을 보는 것이 자신에게 절실하지 않아 자애로운 어미의 마음과 같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孝弟'와 '慈'는 애당초 두 가지 마음이 아니다. 만약 자신에게 절실한 것으로부터 추론한다면, '慈'만 거론해도 '孝'를 알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曰: &amp;quot;仁讓言家, 貪戾言人, 何也?&amp;quot; 曰: &amp;quot;善必積而後成, 惡雖小而可懼, 古人之深戒也. &amp;lt;書&amp;gt;所謂'爾惟徳罔小, 萬邦惟慶; 爾惟不徳罔大, 墜厥宗', 亦是意爾.&amp;quot;&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仁讓'에 대해서는 집안(家)을 말하고, '貪戾'에 대해서는 개인(人)을 말한 것은 어째서인가?&amp;quot; 대답했다: &amp;quot;선(仁讓)은 반드시 누적된 이후에야 완성되므로 [家로 말하고], 악(貪戾)은 비록 적더라도 두려워할 만하므로 [人으로 말하였으니], 옛 분들의 심오한 경계이다. &amp;lt;서경&amp;gt;에서 '너는 덕을 작게 여기지 말라, 만방이 경하할 것이다. 너는 부덕을 크게 여기지 않으면 종묘사직를 무너뜨릴 것이다'&amp;lt;ref&amp;gt;&amp;lt;서경&amp;gt; &amp;lt;이훈&amp;gt; 爾惟德罔小，萬邦惟慶；爾惟不德罔大，墜厥宗。&amp;lt;/ref&amp;gt;라고 말한 것 역시 이런 의미이다.&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惟徳罔小', 言其不可小也.&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惟徳罔小'는 것은 작게 여겨선 안 됨을 말한 것이다.&amp;quot;&lt;br /&gt;
:○三山陳氏曰: &amp;quot;為惡之効, 捷於為善. 仁讓必積而刑&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2. 通&amp;quot;形&amp;quot;.&amp;lt;/ref&amp;gt;於一家, 而後可以化一國; 貪戾則纔出於一人之身, 而一國已作亂矣. 見為善者不可無悠久之積; 為惡者不可有斯須之暫也.&amp;quot;&lt;br /&gt;
:삼산 진씨가 말했다: &amp;quot;악을 행한 결과는 선을 행한 것보다 빠르게 [나타난다.] '仁讓'이 반드시 누적되고서야 한 집안에 드러나고, 그런 이후에야 한 나라를 교화할 수 있다. [군주가] 이익을 탐내면, 개인의 몸을 벗어나자마자 한 나라가 이미 난을 일으킨다. 선을 행하는 것은 오래 누적하지 않아서는 안 되고, 악을 행하는 것은 잠시라도 있어선 안 됨을 알 수 있다.&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此章本言上行下效有不期然而然者, 今曰: '有諸己而后求諸人, 無諸己而後非諸人', 則是猶有待於勸勉程督&amp;lt;sub&amp;gt;督音篤, 察也勸也.&amp;lt;/sub&amp;gt;而后化. 且内適自脩, 而遽欲望人之皆有; 己方僅免, 而遂欲責人以必無也.&amp;quot; 曰: &amp;quot;此爲&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治其國者言之, 則推吾所有與民共由. 其條教法令之施、賞善罰惡之政, 固有理所當然而不可已者. 但以所令反其所好, 則民不從. 故又推本言之, 欲其先成於己而有以責人, 固非謂其專務修己, 都不治人, 而拱手以俟其自化; 亦非謂其矜己之長, 愧人之短, 而脅之以必從也. 故先君子之言曰&amp;lt;sub&amp;gt;文公父名松, 字喬年, 號韋齊先生.&amp;lt;/sub&amp;gt;: &amp;quot;有諸己, 不必求諸人, 以爲求諸人而無諸己, 則不可也; 無諸己, 不必求諸人, 以爲非諸人而有諸己, 則不可也&amp;quot;, 正此意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이 장에서는 본래 '윗사람이 행하면 그렇게 하라고 약속하지 않아도 아랫사람이 본받음'을 말하는데, 지금 '자신에게 [선함이] 있은 이후에 남에게 [선함을] 요구하고, 자신에게 [악함이] 없은 이후에 남에게 [악함이 있음을] 비판한다'고 말하니, 이는 오히려 [인위적으로] 권면하고 감독하고서야 교화되는 것이다. 또 내면으로 이제 막 자신을 수양해놓고 급히 백성 모두 [선함을] 가지고 있기를 바라고, 자신은 이제야 겨우 [악함을] 면해놓고 마침내 남에게 [악함이] 반드시 없기를 요구한다.&amp;quot; 대답했다: &amp;quot;이는 나라를 다스리는 자에 대해 말한 것이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미루어 백성들과 함께 말미암는 것이다. 법령의 시행과 선을 포상하고 악을 벌주는 정치는 진실로 이치상 당연해서 그만둘 수 없는 점이 있다.(정치에서 인위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군주가] 명령한 것이 그가 좋아하는 바에 배치되면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따르지 않기 때문에 다시 근본을 미루어 말한 것이다. 먼저 자신을 완성하고 백성을 책망하고자 하는 것이지, 진실로 오로지 자기 수양에만 힘쓰고 백성을 전혀 다스리지 않아서 팔짱 끼고 백성 스스로 교화되기를 기다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또 자신의 뛰어남을 뽐내고 백성의 못남을 부끄러워해 백성을 을러 반드시 따르게끔 하라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선군자께서&amp;lt;sub&amp;gt;주자 부친의 이름은 송(松)이고 자는 교년(喬年)이며 호는 위재선생(韋齊先生)이다.&amp;lt;/sub&amp;gt; ‘자신에게 [선함이] 있으면 되지 반드시 남에게 [선함을] 요구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에게 요구하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악함이] 없으면 되지 반드시 남에게 [악함이 없기를] 요구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을 비난하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이런 의미이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有諸己而求諸人, 無諸己而非諸人者, 恕也. 求諸人而無諸己, 則不可. 非諸人而有諸己則不可者, 必先有忠而後有恕也.&amp;quot;&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amp;lt;대학&amp;gt;의] ‘자신에게 [선함을] 있어서 [선함을] 남에게 요구하거나, 자신에게 [악함을] 없어서 남에게 있는 [악함을] 비판한다’는 것은 恕이다. [주송의] ‘남에게 [선함을] 요구하면서 자신에게 [선함이] 없어서는 안 된다. 남에게 있는 [악함을] 비판하면서 자신에게 [악함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은, 반드시 忠을 우선하고 恕를 나중에 하는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然則未能有善而遂不求人之善; 未能去&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惡而遂不非人之惡, 斯不亦恕而終身可行乎哉?&amp;quot; 曰: &amp;quot;恕字之旨, 以如心爲義, 蓋曰如治己之心以治人, 如愛己之心以愛人, 而非苟然&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隨隨便便.(아무 생각 없이, 멋대로, 좋을대로)&amp;lt;/ref&amp;gt;姑息&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 苟安.(안일하다)&amp;lt;/ref&amp;gt;之謂也. 然人之爲心, 必甞窮理以正之, 使其所以治己愛己者, 皆出於正, 然後可以即是推之以及於人, 而恕之爲道有可言者. 故&amp;lt;大學&amp;gt;之傳最後兩章, 始及於此, 則其用力之序, 亦可見矣.&amp;quot;&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그렇다면 선함을 가지지 못했다면 마침내 남에게 선을 요구하지 않거나, 악함을 아직 제거하지 못했다면 끝내 남의 악함을 비판하지 않는 것, 이것도 '恕해서 종신토록 행할 만한 것'이 아니겠는가?&amp;quot; 대답했다: &amp;quot;'恕'자의 뜻은 '如心'으로 의미를 삼으니, '자신을 다스리는 마음처럼 남을 다스리고, 자신을 아끼는 마음처럼 남을 아낌'을 말하는 것이지, ['마음대로(如心)'라는 말처럼] 아무 생각 없이 마음대로 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됨은 반드시 궁리(격물)하고 바로잡아(정심) 자신을 다스리고 자신을 아끼는 것(수신)이 모두 바름에서 나오게 한 연후에야 곧 이를 미루어 남에게 미칠 수 있고, 恕의 도리에 말할 만한 것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amp;lt;대학&amp;gt;의 마지막 두 장(전9장&amp;lt;제가치국&amp;gt;, 전10장&amp;lt;치국평천하&amp;gt;)에서 처음 이것(恕)을 언급하였으니, &amp;lt;대학&amp;gt;의 공부 순서를 여기서도 볼 수 있다.&amp;quot;&lt;br /&gt;
&lt;br /&gt;
&amp;quot;至即此章而論之, 則欲如治己之心以治人者, 又不過以强&amp;lt;sub&amp;gt;上聲下同&amp;lt;/sub&amp;gt;於自治爲本. 蓋能强於自治, 至於有善而可以求人之善, 無惡而可以非人之惡, 然後推己及人, 使之亦如我之所以自治而自治焉, 則表端景正&amp;lt;sub&amp;gt;景即影字, 古只作景. 至晉葛洪始加彡.&amp;lt;/sub&amp;gt;, 源潔流清, 而治己治人, 無不盡其道矣. 所以終身力此而無不可行之時也. 今乃不然, 而直欲以其不肖之身爲標凖, 視吾治教所當及者, 一以姑息待之, 不相訓誥, 不相禁戒, 將使天下之人, 皆如已之不肖, 而淪胥以䧟焉, 是乃大亂之道, 而豈所謂終身可行之恕哉? 近世名卿之言有曰&amp;lt;sub&amp;gt;范純仁, 字堯夫, 諡忠宣公.&amp;lt;/sub&amp;gt;: '人雖至愚, 責人則明; 雖有聰明, 恕己則昏. 苟能以責人之心責己, 恕己之心恕人, 則不患不至於聖賢矣.' 此言近厚, 世亦多稱之者. 但恕字之義, 本以如心而得. 故可以施之於人, 而不可以施之於己. 今曰: '恕己則昏', 則是己知其如此矣; 而又曰: '以恕己之心恕人', 則是既不知自治其昏, 而遂推以及人, 使其亦將如我之昏而後已也. 乃欲由此以入聖賢之域, 豈不誤哉? 藉令&amp;lt;sub&amp;gt;平聲&amp;lt;/sub&amp;gt;其意但爲欲反此心以施於人, 則亦止可以言下章愛人之事, 而於此章治人之意, 與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amp;lt;中庸&amp;gt;以人治人之說, 則皆有未合者. 蓋其爲恕雖同, 而一以及人爲主; 一以自治爲主, 則二者之間, 毫釐之異, 正學者所當深察而明辨也. 若漢之光武亦賢君也. 一旦以無罪黜其妻, 其臣郅&amp;lt;sub&amp;gt;音質&amp;lt;/sub&amp;gt;惲&amp;lt;sub&amp;gt;委粉反&amp;lt;/sub&amp;gt;不能力陳大義以救其失, 而姑爲緩辭以慰解之. 是乃所謂'不能三年而緦功之察, 放飯流歠而齒决是憚者. 光武乃謂惲爲善恕己量主, 則其失又甚逺, 而大啓爲人臣者不肯責難陳善以賊其君之罪. 一字之義, 有所不明, 而其禍乃至於此, 可不謹哉?&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quot;이 장에 대해 논한다면, 자신을 다스리는 마음처럼 남을 다스리려는 것은 또 자신을 다스리는 것(自治)에 힘쓰는 것을 근본으로 함에 지나지 않는다. 대개 자신을 다스리는 데 능히 힘써, '선하게 되어 남에게 선을 요구할 수 있고, 악함이 없게 되어 남의 악을 비판할 수 있게 된' 연후에 자신을 미루어 남에게 미쳐 남들도 내가 자신을 다스린 방법처럼 자신을 다스리게 하는 것이니, 그렇게 되면 겉모습이 단정해 그림자가 바르고, 근원이 정결해 물줄기가 맑듯 자신을 다스리고 남을 다스림에 도리를 다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종신토록 이에 힘써도 행하지 못하는 때가 없는 것이다. 오늘날은 그렇지 않아서, 단지 못난 자신을 기준으로 삼고 [이것을] 내 治教가 마땅히 미쳐야 할 바로 여기고는, 한결같이 제멋대로 남을 대해 훈계하지도 금지하지도 않아 장차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못난 자신과 같이 되어 함께 [수렁에] 빠지고자 하니, 이것이 바로 크게 어지러운 도이니, [이것이] 어찌 이른바 '종신토록 행할 만한 恕'이겠는가? 근래 유명한 공경&amp;lt;sub&amp;gt;범순인의 자는 요부(堯夫)이고 시호는 충선공(忠宣公)이다.&amp;lt;/sub&amp;gt;의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사람이 비록 매우 어리석더라도 남을 비판할 때만큼은 현명하다. 사람이 비록 총명하더라도 자신을 용서(恕)할 때만큼은 어리석다. 만약 남을 비판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비판하고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한다면, 성현이 되지 못할 것을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은 비근하면서도 울림이 있어 세상 사람들도 자주 이를 일컫는다. 다만 '恕'자의 뜻은 본래 '如心'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恕'자는] 남에게 쓸 수 있지 자신에게는 쓸 수 없다. 지금 [범순인이] '자신을 용서(恕)할 때는 어리석다'고 말한 것은 자신이 이처럼 [어리석음을] 아는 것이지만, 또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한다'고 말한다면 스스로 자신의 어리석음을 다스릴 줄 모를 뿐만 아니라 마침내 이를 미루어 남에게 미쳐 남도 장차 어리석은 나같이 만든 뒤에야 그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통해 성현의 경지에 들어가고자 하니, 어찌 잘못이 아니겠는가? 설령 범순인의 뜻이 단지 '이 마음을 뒤집어 남에게 베풀고자 한다'는 것이었더라도, 다음 장의 '愛人'의 일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을 뿐 이 장의 '治人'의 일과 &amp;lt;중용&amp;gt;의 '以人治人'&amp;lt;ref&amp;gt;&amp;lt;중용장구&amp;gt; 13장. 故君子以人治人，改而止。&amp;lt;/ref&amp;gt; 설에 대해서는 모두 부합하지 않는다. 대개 '恕'라고 말한 것은 똑같지만, 하나는 남에게 미치는 것(及人)을 위주로 하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다스리는 것(自治)을 위주로 하니, 양자의 미세한 차이가 바로 배우는 자들이 마땅히 면밀하게 살펴 분명하게 변별해야 할 바이다. 예를 들어, 후한 광무제 역시 현군이었지만 하루 아침에 죄없이 자기 아내를 쫓아냈는데, 신하였던 질운은 대의를 힘써 말해 군주의 잘못을 구제하지 못하고 그저 완곡한 말로 위로하며 타일렀다. 이것이 바로 이른바 '삼년상은 잘 치르지 못하면서 시마복이나 소공복만 자세히 살피며, 밥숟가락은 크게 뜨고 국은 흘리면서 마른고기를 이로 끊어 먹는 걸 꺼리는 격'&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진심상&amp;gt; 47. 不能三年之喪，而緦小功之察；放飯流歠，而問無齒決，是之謂不知務。」&amp;lt;/ref&amp;gt;이다. 광무제는 도리어 '질운이 잘 자신을 恕하여 군주를 헤아렸다'고 말했으니 그 잘못이 매우 심할 뿐더러, 신하된 자가 군주를 책망하고 선을 말하려 하지 않아 제 군주를 망치는 죄를 크게 열었다. 한 글자의 뜻이 밝혀지지 않았는데 그 화가 도리어 이 지경에 이르니, 삼가지 않아서야 되겠는가!&amp;quot;&lt;br /&gt;
:&amp;lt;後漢書&amp;gt; &amp;lt;郅惲傳&amp;gt; 郭皇后廢,&amp;lt;sub&amp;gt;光武之后. 以寵衰數懐懟而廢.&amp;lt;/sub&amp;gt; 惲乃言於帝曰: &amp;quot;臣聞夫婦之好, 父不能得之於子, 况臣能得之於君乎? 是臣所不敢言. 雖然, 願陛下念其可否之計, 無令天下有議社稷而巳.&amp;quot; 帝曰: &amp;quot;惲善恕己量主, 知我必不有所左右而輕天下也.&amp;quot;&lt;br /&gt;
:&amp;lt;후한서&amp;gt; &amp;lt;질운전&amp;gt; 곽황후가 폐위되자,&amp;lt;sub&amp;gt;[곽황후는] 광무제의 황후이다. 총애가 식자 자주 원망을 품었다는 이유로 폐위되었다.&amp;lt;/sub&amp;gt; 질운이 이에 광무제에게 아뢰었다: &amp;quot;신이 듣건대, '부부 간의 애정은 아버지도 자식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고 하는데, 하물며 신이 폐하께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신이 감히 말할 수 없는 바입니다. 비록 그렇지만 폐하께서 황후를 폐하신 일이 괜찮은지 아닌지 유념하셔서, 천하 사람들이 종묘사직 운운하지 않게 해주시길 바랄 뿐입니다.&amp;quot; 광무제가 말했다: &amp;quot;질운이 자신을 恕하여 군주를 헤아리길 잘하니, 내가 필시 左右??하는 바가 있는데도 천하를 가볍게 여기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알 것이다.&amp;quot;&amp;lt;ref&amp;gt;&amp;lt;후한서&amp;gt; &amp;lt;申屠剛鮑永郅惲列傳&amp;gt; 及郭皇后廢，惲乃言於帝曰：「臣聞夫婦之好，父不能得之於子，況臣能得之於君乎？是臣所不敢言。雖然，願陛下念其可否之計，無令天下有議社稷而已。」帝曰：「惲善恕己量主，知我必不有所左右而輕天下也。」; &amp;lt;자치통감&amp;gt; 권43. 郭后寵衰，數懷怨懟，上怒之。冬，十月，辛巳，廢皇后郭氏，立貴人陰氏為皇后。詔曰：「異常之事，非國休福，不得上壽稱慶。」郅惲言於帝曰：「臣聞夫婦之好，父不能得之於子，況臣能得之於君乎！&amp;lt;sub&amp;gt;賢曰: &amp;quot;得猶制御也. 司馬遷曰: '妃匹之愛, 君不能得之臣, 父不能得之子, 况卑下乎?'&amp;quot;&amp;lt;/sub&amp;gt;是臣所不敢言。雖然，願陛下念其可否之計，無令天下有議社稷而已。」帝曰：「惲善恕己量主，知我必不有所左右而輕天下也！」&amp;lt;sub&amp;gt;賢曰: &amp;quot;左右, 猶向背也, 言其齊等.&amp;quot;&amp;lt;/sub&amp;gt; 帝進郭后子右翊公輔為中山王，以常山郡益中山國，郭后為中山太后，其餘九國公皆為王。 &amp;lt;/ref&amp;gt;&lt;br /&gt;
:○問如心爲恕. 朱子曰: &amp;quot;如, 比也, 比自家心上推去. 仁之與恕, 只争些子. 自然底是仁; 比而推之, 便是恕.&amp;quot;&lt;br /&gt;
:○'如心'이 '恕'가 되는 것에 대해 물었다. 주자가 답했다. &amp;quot;如는 비교한다는 것이니, 나의 마음에서 비교해서 (이를) 미루어나가는 것이다. 仁은 恕와 약간의 차이가 있으니, 자연스럽게 되는 것은 仁이고, 비교하여 이를 미루어서 나가는 것이 恕다.&amp;quot;&lt;br /&gt;
:○問: &amp;quot;范忠宣以恕己恕人此語固有病. 但上文先言以責人之心責己, 則連下句亦未害.&amp;quot; 曰: &amp;quot;上句自好, 下句自不好. 蓋才恕己便已不是. 若横渠云: '以愛己之心愛人, 則盡仁; 以責人之心責己, 則盡道'&amp;lt;ref&amp;gt;&amp;lt;정몽&amp;gt; &amp;lt;中正篇第八&amp;gt; 以責人之心責己則盡道，所謂「君子之道四，丘未能一焉」者也；以愛己之心愛人則盡仁，所謂「施諸己而不願，亦勿施於人」者也；以衆人望人則易從，所謂「以人治人改而止」者也；此君子所以責己責人愛人之三術也。 &amp;lt;/ref&amp;gt;, 語便不同. 蓋恕是推去底, 我有是善, 亦要他人有是善. 推此計度之心, 此乃恕也. 於己不當下恕字.&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범충선이 '나를 용서하는 것을 가지고 남을 용서한다'고 한 이 말은 진실로 병폐가 있습니다. 다만 윗글에서 먼서 '남을 책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를 책한다'고 말하였으니 아랫 문장을 이어도 해가 아닌 것입니다.&amp;quot; 답했다, &amp;quot;윗 구절은 그 자체로 좋고, 아랫구절은 그 자체로 좋지 않다. 대개 나를 용서하자마자라고 한다면 이미 옳지 않다. 만약 횡거가 말한 '나를 아끼는 마음으로 남을 아낀다면 仁을 다한 것이고, 남을 책하는 마음으로 나를 책한다면 道를 다한 것이다.'라는 것과는 말이 같지 않다. 대개 恕는 미루어 나가는 것으로 내가 선함이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선함을 요구할 수 있어서 이 헤아리는 마음을 미루니 이것이 바로 恕다. 본인(己)에 대해서 아래 恕자가 붙는 것은 옳지 못하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心必窮理以正之者, 格物致知之事. 治己愛己, 皆出於正者, 誠意正心脩身之事. 即是推之以及人者, 齊家治國平天下之事也. 治己愛己, 皆出於正, 是盡己之忠, 即是推之以及於人, 是推己之恕. 忠者體, 恕者用. 表端源潔, 忠也; 景正流清, 恕也. 忠者, 明徳之事; 恕者, 新民之事. &amp;lt;大學&amp;gt;之道, 一忠恕而已. 此章言治國, 下章言治國平天下, 皆明明徳之推而恕之事也. 此章之義, 則欲如治己之心以治人; 下章絜矩之義, 則欲如愛己之心以愛人. 蓋治國乃平天下之本, 故此章以治人言; 下章以愛人言. 義各有攸當也.&amp;quot;&lt;br /&gt;
:○옥계노씨가 말했다. &amp;quot;'마음은 반드시 궁리해서 그것을 바로잡는 것이다'라는 것은, 격물치지의 일이요, '나를 다스리고 나를 아끼는 것은 모두 바름에서 나온다'는 것은 성의, 정심, 수신의 일이요 '이것을 미루어서 남에게 미친다'는 것은 제가, 치국, 평천하의 일이다. '治己愛己, 皆出於正'은 '盡己之忠'이요, '即是推之以及於人'은 '推己之恕'이다. 忠은 體이고 恕는 用이다. (위에서) '表端', '源潔'이라고 한 것은 忠이고, '景正', '流清'이라고 한 것은 恕이다. 忠이라는 것은 '明徳'의 일이요, 恕라는 것은 '新民'의 일이다. &amp;lt;대학&amp;gt;의 도는 '忠恕'로 관통될 뿐이다. 이 장에서 치국을 말하고, 아래장에서는 치국, 평천하를 말한 것은 모두 명명덕을 미루어서 恕하는 일이다. 이 장의 뜻은 나를 다스리는 마음과 같이 남을 다스리고자 하는 것이요, 아래장 '絜矩'의 뜻은 나를 아끼는 마음으로 나를 아끼고자 하는 것이다. 대개 치국은 평천하의 근본이기 때문에 이 장에서는 治人으로 말한 것이고, 아래 장에서는 愛人으로 말한 것이니 뜻은 각각 마땅한 바가 있다.&amp;quot;&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amp;lt;大學&amp;gt;傳至治國平天下章方言恕. 觀此言恕, 則隱然見脩身以前之當言忠矣. 盧氏之說, 正是即後之言以發明前之所未言者也.&amp;quot;&lt;br /&gt;
:○신안진씨가 말했다. &amp;quot;&amp;lt;대학&amp;gt;의 傳은 치국, 평천하장에 이르러서 비로소 恕를 말하였다. 이 恕를 말한 것을 보면 은연중에 수신 이전의 일은 忠을 말한 것임을 알겠다. 노씨의 설은 바로 이후의 것을 말하여서 이전에 말하지 않은 것을 드러낸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既結上文而復&amp;lt;sub&amp;gt;扶又反&amp;lt;/sub&amp;gt;引詩者三, 何也?&amp;quot; 曰: &amp;quot;古人言必引詩, 蓋取其嗟嘆咏歌, 優游厭飫&amp;lt;sub&amp;gt;依據反&amp;lt;/sub&amp;gt;, 有以感發人之善心, 非徒取彼之文, 證此之義而已也. 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以此章所論齊家治國之事, 文具而意足矣. 復三引詩, 非能於其所論之外, 别有所發明也. 然甞試讀之, 則反覆吟咏之間, 意味深長, 義理通暢, 使人心融神㑹, 有不知手舞而足蹈者, 是則引詩之助與&amp;lt;sub&amp;gt;音預&amp;lt;/sub&amp;gt;爲多焉. 蓋不獨此, 他凡引詩云者, 皆以是求之, 則引者之意可見, 而詩之爲用亦得矣.&amp;quot; 曰: &amp;quot;三詩亦有序乎?&amp;quot; 曰: &amp;quot;首言家人, 次言兄弟, 終言四國, 亦'刑于寡妻, 至于兄弟, 以御于家邦'&amp;lt;ref&amp;gt;&amp;lt;시경&amp;gt; &amp;lt;대아&amp;gt; &amp;lt;思齊&amp;gt; 刑于寡妻、至于兄弟、以御于家邦。&amp;lt;/ref&amp;gt;之意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이미 윗 글을 결론지었는데 다시 시 세 가지를 인용한 것은 어째서 입니까?&amp;quot; 답했다. &amp;quot;옛 사람들은 말할 적에 반드시 시를 인용했으니 대개 시의 특성들을 취해서 사람들의 선한 마음을 감발시킬 수 있었으니 다만 저 글자만을 취하여 여기의 뜻을 알린 것이 아니었다. 무읏 이 장에서 논한 제가, 치국의 일은 글이 갖춰져있고 의미가 충분하다. 다시 시 세가지를 인용한 것은 논한 것 이외에 별도로 감발하려는 바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일찍이 시험삼아 읽어보니, 반복해서 읊어보는 사이에 의미가 더욱 풍부해지고, 뜻이 통하게 되어 사람들도 하여금 마음으로 이해하게 하여서 (본인들도) 모르는 사이에 '足之蹈之、手之舞之'&amp;lt;ref&amp;gt; &amp;lt;맹자장구&amp;gt;, 이루상 27. &amp;quot;孟子曰：「仁之實，事親是也；義之實，從兄是也。智之實，知斯二者弗去是也；禮之實，節文斯二者是也；樂之實，樂斯二者，樂則生矣；生則惡可已也，惡可已，則不知足之蹈之、手之舞之。」&amp;quot;&amp;lt;/ref&amp;gt; 하는 경우가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시를 인용하는 도움이 많은 것이다. 대개 이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 시를 인용해 말한 것은 모두 이러한 이유로 헤아린 것이니, 인용한 사람의 뜻을 알수 있고 시의 쓰임도 얻은 것이다.&amp;quot; 물었다. &amp;quot;세 시는 또한 순서가 있습니까?&amp;quot; 답했다. &amp;quot;처음에 家人을 말하였고 다음에 兄弟를 말하였고 마지막에 四國을 말하였으니, 또한 '덕이 적은 부인에게 모범이 되고, 형제들에까지 미쳐서 나라를 다스린다'는 뜻이다.&amp;quot;&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所引詩, 見&amp;lt;大雅&amp;gt;&amp;lt;思齊&amp;gt;篇. 孟子甞引之, &amp;lt;集註&amp;gt;云: '御, 治也', 於御字無音; &amp;lt;詩傳&amp;gt;云: '御, 迎也', 於御字音牙嫁反. 當依&amp;lt;集註&amp;gt;如字讀.&amp;quot;&lt;br /&gt;
:신안진씨가 말했다. &amp;quot;인용한 시는 &amp;lt;大雅&amp;gt;, &amp;lt;思齊&amp;gt;편에 보인다. 맹자가 일찍이 이를 인용하여 &amp;lt;집주&amp;gt;에서 '御는 다스린다는 것이다'라고 한 것은 '御'자가 성조가 없고, &amp;lt;시집전&amp;gt;에서 '御'는 맞이하는 것이다' 라고 한 것은 御의 음이 牙嫁反이니, 마땅히 &amp;lt;집주&amp;gt;가 如字로 읽은 것에 의거해야한다.&amp;quot;&lt;br /&gt;
&lt;br /&gt;
===傳十章===&lt;br /&gt;
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上老老而民興孝，上長長而民興弟，上恤孤而民不倍，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amp;lt;sub&amp;gt;長，上聲。弟，去聲。倍，與背同。絜，胡結反。&amp;lt;/sub&amp;gt;&lt;br /&gt;
:老老，所謂老吾老&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양혜왕상&amp;gt; 7. 老吾老，以及人之老；幼吾幼，以及人之幼。天下可運於掌。&amp;lt;/ref&amp;gt;也。興，謂有所感發而興起也。孤者，幼而無父之稱。絜，度&amp;lt;sub&amp;gt;待洛反下同&amp;lt;/sub&amp;gt;也。矩，所以為方也。&amp;lt;sub&amp;gt;矩者, 制方之器, 俗呼曲尺. 此借以為喻.&amp;lt;/sub&amp;gt;言此三者，上行下效，捷&amp;lt;sub&amp;gt;疾業反&amp;lt;/sub&amp;gt;於影響，所謂家齊而國治也。亦可以見人心之所同，而不可使有一夫之不獲矣。是以君子必當因其所同，推以度物&amp;lt;sub&amp;gt;物即人也&amp;lt;/sub&amp;gt;，使彼我之間各得分&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願，則上下四旁均齊方正，而天下平矣。&lt;br /&gt;
::朱子曰: &amp;quot;老老、長長、恤孤, 方是就自家切近處說, 所謂家齊也; 民興孝、興弟、不倍是就民之感發興起處說, 治國而國治之事也. 上行下效, 感應甚速, 可見人心所同者如此. 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 此句方是引起絜矩事; 下面方說絜矩, 而結之云此之謂絜矩之道.&amp;quot;&lt;br /&gt;
::○絜矩之說, 不在前數章, 却在治國平天下章. 到此是節次成了, 方用得.&lt;br /&gt;
::○先說上行下效, 到絜矩處是就政事上說. 若但興起其善心, 不使得遂其心, 雖能興起, 亦徒然耳. 如政煩賦重, 不得養其父母, 畜其妻子, 又安得遂其善心? 須是推己之心, 以及於彼, 使彼仰足以事, 俯足以育, 方得.&lt;br /&gt;
::○能使人興起者, 聖人之教化也; 能遂其興起之心者, 聖人之政事也.&lt;br /&gt;
::○矩者, 心也. 我心所欲, 即他人所欲; 我欲孝弟慈, 必使他人皆如我之孝弟慈, 不使一夫之不獲, 方可. 只我能如此, 他人不能如此, 即是不平矣.&lt;br /&gt;
::○絜矩不是外面别有箇道理, 只便是前面正心脩身底推而措之.&lt;br /&gt;
::○問: &amp;quot;絜矩之道是廣仁之用否?&amp;quot; 曰: &amp;quot;此乃求仁工夫, 正要著力. 若仁者, 只是舉而措之耳, 不待絜矩而自無不平矣. 絜矩正是恕者之事.&amp;quot;&lt;br /&gt;
::○興孝、興弟、不倍, 上行下效之意, 上章已言之矣. 此章再舉之者, 乃欲引起下文'君子必須絜矩然後可以平天下'之意. 不然則雖民化其上以興於善, 而天下終不免於不平也. 故此一章首尾皆以絜矩之意推之, 而未嘗復言躬行化下之說.&lt;br /&gt;
::○問: &amp;quot;'上老老而民興孝', 下面接'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 似不相續, 如何?&amp;quot; 曰: &amp;quot;這箇便是相續. 絜矩是四面均平底道理. 教他各得老其老, 各得長其長, 各得幼其幼. 不成自家老其老, 教他不得老其老; 長其長, 教他不得長其長; 幼其幼, 教他不得幼其幼, 便不得. '是以'二字是結上文, 猶言君子為是之故所以有絜矩之道.&amp;quot;&lt;br /&gt;
::○絜矩如自家好安樂, 便思他人亦欲安樂, 當使無'老稚轉乎溝壑, 壯者散而之四方'&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등문공상&amp;gt; 3. 使老稚轉乎溝壑，惡在其為民父母也？; &amp;lt;양혜왕하&amp;gt; 12. 孟子對曰：「凶年饑歲，君之民老弱轉乎溝壑，壯者散而之四方者，幾千人矣；而君之倉廩實，府庫充，有司莫以告，是上慢而殘下也。&amp;lt;/ref&amp;gt;之患. 制其田里, 教之樹畜, 皆比以推之.&lt;br /&gt;
&lt;br /&gt;
所惡於上，毋以使下；所惡於下，毋以事上；所惡於前，毋以先後；所惡於後，毋以從前；所惡於右，毋以交於左；所惡於左，毋以交於右：此之謂絜矩之道。&amp;lt;sub&amp;gt;惡、先，並去聲。&amp;lt;/sub&amp;gt;&lt;br /&gt;
:此覆解上文絜矩二字之義。如不欲上之無禮於我，則必以此度下之心，而亦不敢以此無禮使之。不欲下之不忠於我，則必以此度上之心，而亦不敢以此不忠事之。至於前後左右，無不皆然，則身之所處&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上下、四旁&amp;lt;sub&amp;gt;上下己見上文. 前後左右為四旁, 四旁即四方也.&amp;lt;/sub&amp;gt;、長短、廣狹，彼此如一，而無不方矣。彼同有是心而興起焉者，又豈有一夫之不獲哉。所操&amp;lt;sub&amp;gt;平聲&amp;lt;/sub&amp;gt;者約，而所及者廣，此平天下之要道也。故章內之意，皆自此而推之。&lt;br /&gt;
::朱子曰: &amp;quot;上下、前後、左右都只一様. 心只是將那頭折轉來比這頭. 在我上者使我如此而我惡之, 更不將來待在下之人. 如此則自家在中央, 上面也占許多地步, 下面也占許多地步, 便均平方正. 若下之事我如此而我惡之, 我若將去事上, 便下面長, 上面短, 不方了. 左右前後皆然.&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6. 問絜矩。曰：「只把『上下』、『前後』、『左右』等句看，便見。絜，度也。不是真把那矩去量度，只是自家心裏暗度那箇長那箇短。所謂度長絜大，上下前後左右，都只一樣。心無彼己之異，只是將那頭折轉來比這頭。在我之上者使我如此，而我惡之，則知在我下者心亦似我如此，故更不將所責上底人之心來待下人。如此，則自家在中央，上面也占許多地步，下面也占許多地步，便均平正方。若將所責上底人之心來待下，便上面長，下面短，不方了。下之事我如此，而我惡之，則知在我之上者心亦似我如此。若將所責下底人之心更去事上，便又下面長，上面短了。左右前後皆然。待前底心，便折轉來待後；待左底心，便折轉來待右，如此便方。每事皆如此，則無所不平矣。」&amp;lt;/ref&amp;gt;&lt;br /&gt;
::○譬如交代官, 前官之待我既不善, 吾毋以前官所以待我者待後官也. 左右, 如東西鄰, 以鄰國為壑, 是所惡於左, 毋以交於右, 可也.  上下、前後、左右做九箇人來看便是. &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6 「平天下，謂均平也。『所惡於上，毋以使下；所惡於下，毋以事上。』此與中庸所謂『所求乎臣，以事君未能』者同意。但中庸是言其所好者，此言其所惡者也。」問：「前後左右何指？」曰：「譬如交代官相似。前官之待我者既不善，吾毋以前官所以待我者待後官也。左右，如東鄰西鄰。以鄰國為壑，是所惡於左而以交於右也。俗語所謂『將心比心』，如此，則各得其平矣。」; 같은 책, 같은 곳. 問絜矩。曰：「只把『上下』、『前後』、『左右』等句看，便見。&amp;lt;/ref&amp;gt;&lt;br /&gt;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옹야&amp;gt; 28. 夫仁者，己欲立而立人，己欲達而達人。&amp;lt;/ref&amp;gt; 是兩摺說, 只以己對人言. 若絜矩, 則上之人所以待我, 我又思以待下之人, 是三摺說, 如&amp;lt;中庸&amp;gt;'所求乎子以事父未能'&amp;lt;ref&amp;gt;&amp;lt;중용장구&amp;gt; 13장. 君子之道四，丘未能一焉：所求乎子，以事父未能也；&amp;lt;/ref&amp;gt;亦是此意. 但&amp;lt;中庸&amp;gt;是言其所好; 此言其所惡也. 人莫不有在我之上者, 莫不有在我之下者, 如親在我之上、子孫在我之下, 我欲子孫孝於我而我却不能孝於親; 我欲親慈於我而我却不能慈於子孫, 便是一畔長一畔短, 不是絜矩.&lt;br /&gt;
::○問: &amp;quot;長短、廣狭如一而無不方. 在人有天子、諸侯、大夫、士、庶人之分, 何以使之均平?&amp;quot; 曰: &amp;quot;非言上下之分欲使之均平. 盖事親事長, 當使之均平, 上下皆得行之. 上之人得事其親, 下之人也得事其親. 但各隨其分, 得盡其事親事長之意耳.&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6. 問：「論上下四旁，長短廣狹，彼此如一，而無不方。在矩，則可以如此。在人則有天子諸侯大夫士庶人之分，何以使之均平？」曰：「非是言上下之分欲使之均平。蓋事親事長，當使之均平，上下皆得行。上之人得事其親，下之人也得以事其親；上之人得長其長，下之人也得以事其長。」&amp;lt;/ref&amp;gt;&lt;br /&gt;
&lt;br /&gt;
詩云：「樂只君子，民之父母。」民之所好好之，民之所惡惡之，此之謂民之父母。&amp;lt;sub&amp;gt;樂，音洛。只，音紙。好、惡，並去聲，下並同。&amp;lt;/sub&amp;gt;&lt;br /&gt;
:詩小雅南山有臺之篇。只，語助辭。言能絜矩而以民心為己心，則是愛民如子，而民愛之如父母矣。&lt;br /&gt;
::此言能絜矩之效.&lt;br /&gt;
&lt;br /&gt;
詩云：「節彼南山，維石巖巖，赫赫師尹，民具爾瞻。」有國者不可以不慎，辟則為天下僇矣。&amp;lt;sub&amp;gt;節，讀為截。辟，讀為僻。僇，與戮同。&amp;lt;/sub&amp;gt;&lt;br /&gt;
:詩小雅節南山之篇。節，截然高大貌。師尹，周太師尹氏也。具，俱也。辟，偏也。言在上者人所瞻仰，不可不謹。若不能絜矩而好惡殉於一己之偏，則身弒國亡，為天下之大戮矣。&lt;br /&gt;
::此言不能絜矩之禍, 與上一節正相反者也.&lt;br /&gt;
&lt;br /&gt;
詩云：「殷之未喪師，克配上帝；儀監于殷，峻命不易。」道得眾則得國，失眾則失國。&amp;lt;sub&amp;gt;喪，去聲。儀，詩作宜。峻，詩作駿。易，去聲。&amp;lt;/sub&amp;gt;&lt;br /&gt;
:詩文王篇。師，眾也。配，對也。配上帝，言其為天下君，而對乎上帝也。監，視也。峻，大也。不易，言難保也。道，言也。引詩而言此，以結上文兩節之意。有天下者，能存此心而不失，則所以絜矩而與民同欲者，自不能已矣。&lt;br /&gt;
&lt;br /&gt;
是故君子先慎乎德。有德此有人，有人此有土，有土此有財，有財此有用。&lt;br /&gt;
:先慎乎德，承上文不可不慎而言。德，即所謂明德。有人，謂得眾。有土，謂得國&amp;lt;sub&amp;gt;應上文得衆則得國&amp;lt;/sub&amp;gt;。有國則不患無財用矣。&lt;br /&gt;
::朱子曰: &amp;quot;為國絜矩之大者又在於財用. 所以後面只管說財.&amp;quot;&lt;br /&gt;
::○自家若意誠、心正、身脩、家齊了, 則天下之人, 安得不歸於我? 如湯、武之東征西怨, 則自然有人有土.&amp;quot;&lt;br /&gt;
&lt;br /&gt;
德者本也，財者末也，&lt;br /&gt;
:本上文而言。&lt;br /&gt;
&lt;br /&gt;
外本內末，爭民施奪。&lt;br /&gt;
:人君以德為外，以財為內，則是爭鬥其民，而施之以劫奪之教也。蓋財者人之所同欲，不能絜矩而欲專之，則民亦起而爭奪矣。&lt;br /&gt;
::朱子曰民本不是要争奪惟上之人以徳為外而暴征横斂民便效尤相攘相奪是上教得他如此&lt;br /&gt;
&lt;br /&gt;
是故財聚則民散，財散則民聚。&lt;br /&gt;
:外本內末故財聚，爭民施奪故民散，反是則有德而有人矣。&lt;br /&gt;
&lt;br /&gt;
是故言悖而出者，亦悖而入；貨悖而入者，亦悖而出。&amp;lt;sub&amp;gt;悖，布內反。悖，逆也。&amp;lt;/sub&amp;gt;&lt;br /&gt;
:此以言之出入，明貨之出入也。自先慎乎德以下至此，又因財貨以明能絜矩與不能者之得失也。&lt;br /&gt;
::問絜矩如何只管說財利朱子曰畢竟人為這箇較多所以生養人只是這箇所以殘害人亦只是這箇&lt;br /&gt;
::○此章大㮣是専從絜矩上來盖財者人之所同好也而我欲専其利則民有不得其所好者矣大抵有國有家所以生起禍亂皆是從這裏來&lt;br /&gt;
&lt;br /&gt;
康誥曰：「惟命不于常！」道善則得之，不善則失之矣。&lt;br /&gt;
:道，言也。因上文引文王詩之意而申言之，其丁寧反覆之意益深切矣。&lt;br /&gt;
&lt;br /&gt;
楚書曰：「楚國無以為寶，惟善以為寶。」&lt;br /&gt;
:楚書，楚語。言不寶金玉而寶善人也。&lt;br /&gt;
::&amp;lt;國語&amp;gt;&amp;lt;楚語&amp;gt;王孫圉聘扵晉, 定公饗之, 趙簡子鳴玉以相, 問曰: &amp;quot;楚之白珩, 猶在乎? 其為寳也, 㡬何矣?&amp;quot; 曰: &amp;quot;楚之所寳者, 曰觀射父, 能作訓辭以行事於諸侯, 使無以寡君為口實. 又有左史倚相, 能通訓典, 以敘百物, 以朝夕獻善敗于寡君, 使無忘先王之業. 若諸侯之好幣具, 而導之以訓辭, 寡君其可以免罪於諸侯, 而國民保焉. 此楚國之寳也. 若夫白珩, 先王之玩也, 何寳之焉?&amp;quot;&amp;lt;sub&amp;gt;王孫圉, 楚大夫; 趙簡子, 名鞅. '鳴玉以相', 鳴佩玉以相禮也. 珩, 佩玉之横者.&amp;lt;/sub&amp;gt;&lt;br /&gt;
&lt;br /&gt;
舅犯曰：「亡人無以為寶，仁親以為寶。」&lt;br /&gt;
:舅犯，晉文公舅狐偃，字子犯。亡人，文公時為公子&amp;lt;sub&amp;gt;名重耳&amp;lt;/sub&amp;gt;，出亡在外也。仁，愛也。事見&amp;lt;sub&amp;gt;形甸反&amp;lt;/sub&amp;gt;檀弓。&amp;lt;sub&amp;gt;&amp;lt;禮記&amp;gt;&amp;lt;檀弓篇&amp;gt;晉獻公之喪, 秦穆公使人弔公子重耳, 且曰: &amp;quot;寡人閒之: 亡國恒於斯, 得國恒於斯. 雖吾子儼然在憂服之中, 喪亦不可久也. 時亦不可失也. 孺子其圖之.&amp;quot; 以吿舅犯, 舅犯曰: &amp;quot;孺子其辭焉. 喪人無寳, 仁親以為寳. 父死之謂何? 又因以為利而天下其孰能說之? 孺子其辭焉.&amp;quot;&amp;lt;sub&amp;gt;重, 平聲. 喪亦、喪人之喪並去聲. 喪即出亡也. 父死而欲反國求為後, 是因以為利也. 說如字, 猶解也.&amp;lt;/sub&amp;gt;&amp;lt;/sub&amp;gt;此兩節又明不外本而內末之意。&lt;br /&gt;
&lt;br /&gt;
秦誓曰：「若有一个臣，斷斷兮無他技，其心休休焉，其如有容焉。人之有技，若己有之，人之彥聖，其心好之，不啻若自其口出，寔能容之，以能保我子孫黎民，尚亦有利哉。人之有技，媢疾以惡之，人之彥聖，而違之俾不通，寔不能容，以不能保我子孫黎民，亦曰殆哉。」&amp;lt;sub&amp;gt;个，古賀反，書作介。斷，丁亂反。媢，音冒。&amp;lt;/sub&amp;gt;&lt;br /&gt;
:秦誓，周書。斷斷，誠一之貌。彥，美士也。聖，通明也。尚，庶幾也。媢，忌也。違，拂戾也。殆，危也。&lt;br /&gt;
&lt;br /&gt;
唯仁人放流之，迸諸四夷，不與同中國。此謂唯仁人為能愛人，能惡人。&amp;lt;sub&amp;gt;迸，讀為屏，古字通用。&amp;lt;/sub&amp;gt;&lt;br /&gt;
:迸，猶逐也。言有此媢疾之人，妨賢而病國，則仁人必深惡而痛絕之。以其至公無私，故能得好惡之正如此也。&lt;br /&gt;
&lt;br /&gt;
見賢而不能舉，舉而不能先，命也；見不善而不能退，退而不能遠，過也。&lt;br /&gt;
:命，鄭氏云「當作慢。」程子云：「當作怠。」未詳孰是。遠，去聲。若此者，知所愛惡矣，而未能盡愛惡之道，蓋君子而未仁者也。&lt;br /&gt;
&lt;br /&gt;
好人之所惡，惡人之所好，是謂拂人之性，菑必逮夫身。&amp;lt;sub&amp;gt;菑，古災字。夫，音扶。&amp;lt;/sub&amp;gt;&lt;br /&gt;
:拂，逆也。好善而惡惡，人之性也；至於拂人之性，則不仁之甚者也。自秦誓至此，又皆以申言好惡公私之極，以明上文所引南山有臺、節南山之意。&lt;br /&gt;
&lt;br /&gt;
是故君子有大道，必忠信以得之，驕泰以失之。&lt;br /&gt;
:君子，以位言之。道，謂居其位而修己治人之術。發己自盡為忠，循物無違謂信。驕者矜高，泰者侈肆。此因上所引文王、康誥之意而言。章內三言得失，而語益加切，蓋至此而天理存亡之幾決矣。&lt;br /&gt;
&lt;br /&gt;
生財有大道，生之者眾，食之者寡，為之者疾，用之者舒，則財恒足矣。&amp;lt;sub&amp;gt;恒，胡登反。&amp;lt;/sub&amp;gt;&lt;br /&gt;
:呂氏曰：「國無遊民，則生者眾矣；朝無幸位，則食者寡矣；不奪農時，則為之疾矣；量入為出，則用之舒矣。愚按：此因有土有財而言，以明足國之道在乎務本而節用，非必外本內末而後財可聚也。自此以至終篇，皆一意也。&lt;br /&gt;
&lt;br /&gt;
仁者以財發身，不仁者以身發財。&lt;br /&gt;
:發，猶起也。仁者散財以得民，不仁者亡身以殖貨。&lt;br /&gt;
&lt;br /&gt;
未有上好仁而下不好義者也，未有好義其事不終者也，未有府庫財非其財者也。&lt;br /&gt;
:上好仁以愛其下，則下好義以忠其上；所以事必有終，而府庫之財無悖出之患也。&lt;br /&gt;
&lt;br /&gt;
孟獻子曰：「畜馬乘不察於雞豚，伐冰之家不畜牛羊，百乘之家不畜聚斂之臣，與其有聚斂之臣，寧有盜臣。」此謂國不以利為利，以義為利也。&amp;lt;sub&amp;gt;畜，許六反。乘、斂，並去聲。&amp;lt;/sub&amp;gt;&lt;br /&gt;
:孟獻子，魯之賢大夫仲孫蔑也。畜馬乘，士初試為大夫者也。伐冰之家，卿大夫以上，喪祭用冰者也。百乘之家，有采地者也。君子寧亡己之財，而不忍傷民之力；故寧有盜臣，而不畜聚斂之臣。此謂以下，釋獻子之言也。&lt;br /&gt;
&lt;br /&gt;
長國家而務財用者，必自小人矣。彼為善之，小人之使為國家，菑害並至。雖有善者，亦無如之何矣！此謂國不以利為利，以義為利也。&amp;lt;sub&amp;gt;長，上聲。&amp;lt;/sub&amp;gt;&lt;br /&gt;
:「彼為善之」，此句上下，疑有闕文誤字。自，由也，言由小人導之也。此一節，深明以利為利之害，而重言以結之，其丁寧之意切矣。&lt;br /&gt;
&lt;br /&gt;
::右傳之十章。釋治國平天下。&lt;br /&gt;
:::此章之義，務在與民同好惡而不專其利，皆推廣絜矩之意也。能如是，則親賢樂利各得其所，而天下平矣。&lt;br /&gt;
:::凡傳十章：前四章統論綱領指趣，後六章細論條目功夫。其第五章乃明善之要，第六章乃誠身之本，在初學尤為當務之急，讀者不可以其近而忽之也。&lt;br /&gt;
&lt;br /&gt;
====『혹문』 전10장====&lt;br /&gt;
或問: &amp;quot;上章論齊家治國之道, 既以孝弟慈爲言矣. 此論治國平天下之道, 而復&amp;lt;sub&amp;gt;扶又反&amp;lt;/sub&amp;gt;以是爲言, 何也?&amp;quot; 曰: &amp;quot;三者, 人道之大端、衆心之所同得者也. 自家以及國, 自國以及天下, 雖有大小之殊, 然其道不過如此而已. 但前章專以己推而人化爲言; 此章又申言之以見&amp;lt;sub&amp;gt;形甸反&amp;lt;/sub&amp;gt;人心之所同而不能已者如此. 是以君子不唯有以化之, 而又有以處&amp;lt;sub&amp;gt;上聲下同&amp;lt;/sub&amp;gt;之也.&amp;lt;sub&amp;gt;新安陳氏曰: &amp;quot;'老老長長恤孤, 躬行於上而民興孝弟不倍於下', 是'有以化之'. '絜矩'是乃'處之'之道也.&amp;quot;&amp;lt;/sub&amp;gt; 蓋人之所以爲心者, 雖曰未甞不同, 然貴賤殊勢, 賢愚異稟. 苟非在上之君子眞知實蹈有以倡&amp;lt;sub&amp;gt;尺亮反&amp;lt;/sub&amp;gt;之, 則下之有是心者, 亦無所感而興起矣.&amp;lt;sub&amp;gt;以上詳說'有以化之'.&amp;lt;/sub&amp;gt; 幸其有以倡焉而興起矣, 然上之人乃或不能察彼之心而失其所以處之之道, 則彼其所興起者或不得遂而反有不均之歎. 是以君子察其心之所同而得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絜矩之道, 然後有以處此而遂其興起之善端也.&amp;lt;sub&amp;gt;以上詳説'有以處之'.&amp;lt;/sub&amp;gt;&amp;quot; &amp;lt;br/&amp;gt; &lt;br /&gt;
혹자가 물었다. &amp;quot;윗 장에서 齊家, 治國의 도를 논할 적에 이미 孝弟慈를 말했는데, 여기에서 治國, 平天下의 도를 논할 적에 다시 孝弟慈를 말하는 것은 어째서 입니까?&amp;quot; 답했다. &amp;quot;세 가지는 人道의 핵심이요, 뭇 사람들의 마음이 똑같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집안에서부터 나라까지, 나라에서부터 천하까지 비록 그 크기는 다르지만, 그 道는 여기(孝弟慈)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다만 이전 장에서는 오직 나를 미루어서 남을 변화시키는 것을 말하였고, 여기에서는 또 (효제자를) 거듭 말하여 사람들의 마음이 똑같이 가진 것이라서 그칠 수 없음이 이와 같음을 드러낸 것이다. 이 때문에 군자는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대처할 수 있는 것이다.&amp;lt;sub&amp;gt;신안진씨가 말했다. &amp;quot;'노인을 노인대접하고 어른을 어른대접하며 고아를 긍휼히 여기는 것을 위에서 부터 몸소 실천하면 백성들이 아래에서 부터 孝, 弟, 不倍를 일으킨다'는 것이 '有以化之'요,  '絜矩'가 바로 '그들을 대처'하는 방법이다.&amp;quot;&amp;lt;/sub&amp;gt; 대개 사람들의 마음은 비록 똑같지 않음이 없다고 말하지만 귀천이 형세를 달리하고, 어질고 우매함이 기품을 달리하여 만일 위에 있는 군자가 진실로 알고 몸소 실천해서 그들을 선도할 수 있지 않다면 아래사람들 중에 이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또한 감발하여 흥기함이 없을 것이다. &amp;lt;sub&amp;gt;여기까지가 '有以化之'를 상세히 설명한 것이다.&amp;lt;/sub&amp;gt; 요행히 그들을 선도하여 흥기시킬 수 있겠지만, 윗 사람들이 이에 간혹 그들의 마음을 살필 수 없고, 그들을 대처하는 방법을 잃어버린다면 그들이 흥기하는 바가 간혹 이루어질 수 없고 도리어 균등하지 못하다는 탄식이 있을 것이니, 이 때문에 군자가 그 마음이 동일한 바를 살피고 絜矩의 방법을 얻은 이후에야 그들에게 대처하고 그 흥기하는 선한 단서를 완성시킬 수 있는 것이다. &amp;lt;sub&amp;gt;여기까지가 '有以處之'를 자세히 설명한 것이다.&amp;lt;/sub&amp;gt;&lt;br /&gt;
&lt;br /&gt;
曰: &amp;quot;何以言'絜之爲度'&amp;lt;sub&amp;gt;待洛反下同&amp;lt;/sub&amp;gt;也?&amp;quot; 曰: &amp;quot;此&amp;lt;莊子&amp;gt;所謂'挈之百圍'; 賈子所謂'度長絜大'者也.&amp;lt;sub&amp;gt;莊子&amp;lt;sub&amp;gt;名周&amp;lt;/sub&amp;gt;人間世篇匠石之齊, 至于曲轅, 見社櫟樹, 其大蔽牛, 絜之百圍.&amp;lt;sub&amp;gt;&amp;lt;註&amp;gt; 絜, 圍束也. 是将一物圍束以為之則也.&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6. 道夫云：「古注，絜音戶結反。云結也。」曰：「作『結』字解，亦自得。蓋荀子莊子注云：『絜，圍束也。』是將一物圍束以為之則也。」又曰：「某十二三歲時，見范丈所言如此。他甚自喜，以為先儒所未嘗到也。」&amp;lt;/ref&amp;gt;&amp;lt;/sub&amp;gt;賈子&amp;lt;sub&amp;gt;名誼, 西漢洛陽人.&amp;lt;/sub&amp;gt;&amp;lt;過秦論&amp;gt;試使山東之國, 與陳渉度長絜大, 比權量力, 則不可同年而語矣.&amp;lt;/sub&amp;gt; 前此諸儒, 蓋莫之省&amp;lt;sub&amp;gt;悉井反&amp;lt;/sub&amp;gt;而强&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訓以挈&amp;lt;sub&amp;gt;口結反&amp;lt;/sub&amp;gt;,&amp;lt;ref&amp;gt;&amp;lt;예기정의&amp;gt; 絜，猶結也，挈也。矩，法也。君子有挈法之道，謂當執而行之，動作不失之。&amp;lt;/ref&amp;gt; 殊無意謂&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3. 猶意義.&amp;lt;/ref&amp;gt;. 先友太史范公&amp;lt;sub&amp;gt;名如圭, 文公父韋齋之友.&amp;lt;/sub&amp;gt;乃獨推此以言之, 而後其理可得而通也. 蓋挈, 度也; 矩, 所以爲方也. 以己之心, 度人之心, 知人之所惡&amp;lt;sub&amp;gt;去聲下同&amp;lt;/sub&amp;gt;者不異乎己, 則不敢以己之所惡者施之於人, 使吾之身一處乎此, 則上下四方物我之際, 各得其分&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 不相侵越, 而各就其中. 校&amp;lt;sub&amp;gt;音教&amp;lt;/sub&amp;gt;其所占之地, 則其廣狹、長短又皆平均如一, 截然方正, 而無有餘不足之處&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 是則所謂絜矩者也. 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爲天下國家, 而所以處心制事者一出於此, 則天地之間, 將無一物不得其所, 而凡天下之欲爲孝弟不倍者, 皆得以自盡其心而無不均之歎矣. 天下其有不平者乎? 然君子之所以有此, 亦豈自外至而强&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爲之哉? 亦曰物格知至, 故有以通天下之志, 而知千萬人之心即一人之心; 意誠心正, 故有以勝一己之私而能以一人之心爲千萬人之心. 其如此而已矣.&amp;quot;&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어째서 '絜'는 탁(度)이 된다고 말한 것입니까?&amp;quot; 답했다. &amp;quot;이것은 &amp;lt;장자&amp;gt;에서 '둘레가 백아름이다'라고 말한 것과 가의가 '길이를 헤아리고 크기를 재다'라고 말한 것이다.&amp;quot; &amp;lt;sub&amp;gt;&amp;lt;장자&amp;gt;&amp;lt;sub&amp;gt;이름은 周다.&amp;lt;/sub&amp;gt;&amp;lt;人間世&amp;gt;편에, '장인 石이 齊나라에 가다가, 曲轅에 이르러 社櫟樹를 보았는데 그 크기가 소를 가릴만했고, 둘레가 백 아름이었다'라고 하였다.&amp;lt;sub&amp;gt;&amp;lt;註&amp;gt;에 絜, 는 두른다는 것이니 장차 하나의 물건으로 두른 것을 규격으로 삼는다는 것이다.&amp;lt;/sub&amp;gt;賈子&amp;lt;sub&amp;gt;이름은 의(誼)요, 서한 낙양사람이다.&amp;lt;/sub&amp;gt;&amp;lt;過秦論&amp;gt;에 '시험삼아 산동국으로 하여금 진섭과 (서로) 길이와 크기를 재보고 그 힘을 비교해보니, 동등하게 말할 수 없었다.'라고 하였다.&amp;lt;/sub&amp;gt; 이 전의 여러 유자들은 대개 아무도 이것을 성찰하지 않고 억지로 '挈'을 뜻으로 하였으니, 매우 말이 안 된다. 아버지의 친우이신 태사범공이&amp;lt;sub&amp;gt;이름은 如圭이고, 문공부 위재의 친구이다.&amp;lt;/sub&amp;gt; 이에 홀로 '度'을 미루어서 말씀하신 이후에 그 문맥이 통할 수 있었다. 대개 '絜'는 헤아린다는 것이고 '矩'는 직각을 만드는 것이니, 자신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서 사람이 싫어하는 것이 자신과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면 감히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않을 것이다. 내 몸으로 하여금 한결같이 여기에 거처하게 한다면 세상 안의 나와 외물 사이에 각각 그 몫을 얻어서 서로 침범하지 않고 각각 그 中을 얻을 수 있으니, 점유한 곳을 비교해봐도 그 넓이와 길이가 또한 한결같이 일정할 것이고 완전히 딱 정확해서 남거나 부족한 곳이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絜矩'라는 것이다. 무릇 나라와 집안을 다스리면서 대처하고 일을 제재하는 방법이 모두 絜矩에서 똑같이 나온다면 천지간에 장차 한 가지라도 그 바른 곳을 얻지 못함이 없을 것이고 무릇 천하에 효, 제, 不倍하고자 아는 사람들이 모두 그 마음을 스스로 다해서 균등하지 않다는 탄식이 없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천하에 어찌 평화롭지 않음이 있겠는가! 그러나 군자가 絜矩를 소유한 것이 또한 어찌 외부에서부터 와서 억지로 하는 것이겠는가. 또한 '物格知至'라고 말하였으니 그러므로 천하의 志를 통달할 수 있고 천만가지 마음은 곧 한 사람의 마음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고, '意誠心正'이라고 말하였으니 그러므로 한 가지의 사사로움을 이겨서 한 사람의 마음을 천만가지 사람의 마음으로 여길 수 있으니 絜矩는 이와같을 뿐이다.&lt;br /&gt;
:格庵趙氏曰: &amp;quot;天下之志萬殊, 理則一也. 物格知至者, 能燭理, 則視衆人之心猶一心而明絜矩之義, 公則一致, 私則萬殊; 意誠心正者, 能克己則以一心為衆人之心而盡絜矩之道.&amp;quot;&lt;br /&gt;
:격암조씨가 말했다. &amp;quot;천하의 뜻은 만가지로 다르지만 理는 하나이다. 물격지지한 사람은 이치를 밝힐 수 있으니 뭇사람들의 마음이 한 마음과 같음을 볼 것이요 혈구의 의미를 밝힐 것이다. 公은 일치하지만 사사로움(私)은 만 가지로 다르니, 자기를 극복할 수 있다면 한 마음을 뭇 사람들의 마음으로 삼아서 혈구의 도를 다할 수 있다.&amp;quot;&lt;br /&gt;
&lt;br /&gt;
&amp;quot;一有私意存乎其間, 則一膜&amp;lt;sub&amp;gt;音莫&amp;lt;/sub&amp;gt;之外, 便爲胡越&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 胡地在北, 越在南, 比喩疎遠隔絶.&amp;lt;/ref&amp;gt;, 雖欲絜矩, 亦將有所隔礙&amp;lt;sub&amp;gt;牛代反&amp;lt;/sub&amp;gt;而不能通矣. 若趙由之爲守, 則易&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尉; 而爲尉則陵守. 王肅之方於事上而好&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人佞己. 推其所由, 蓋出於此. 而充其類, 則雖桀、紂、盗跖&amp;lt;sub&amp;gt;音隻&amp;lt;/sub&amp;gt;之所爲, 亦將何所不至哉?&amp;quot; &amp;lt;br/&amp;gt;&lt;br /&gt;
하나의 사사로운 의도라도 그 사이에 있으면 한 장막의 밖일 뿐이었는데 아주 멀어지게 될 것이니, 비록 絜矩하고자 하더라도 장차 떨어지는 바가 있어서 통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마치 조유가 태수가 되면 도위를 업신여기고, 도위가 되면 태수를 능멸하는 것과 왕숙이 윗사람 섬기기에는 맞게하고, 사람이 자신에게 아첨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과 같다. 그 말미암은 바를 추론해보면 대개 사의에서 나온 것이니 그 사의를 충족한다면 비록 걸주와 도척이 한 짓이라도 장차 무슨 미치지 못할 것이 있겠는가!&lt;br /&gt;
:&amp;lt;史記&amp;gt; &amp;lt;酷吏傳&amp;gt; 周陽由者, 其父趙兼, 以淮南王舅父, 侯周陽. 故因姓周陽氏. 由為郎事孝文及景帝, 景帝時為郡守. 武帝即位, 吏治尚循謹甚. 然由居二千石中, 最為酷暴驕恣, 所居郡, 必夷其豪, 為守視都尉如令; 為令必陵太守, 奪之治. 由後為河東都尉時, 與其守勝屠公&amp;lt;sub&amp;gt;勝屠, 即申屠也.&amp;lt;/sub&amp;gt;, 相告言罪. 勝屠公當抵罪, 義不受刑, 自殺而由棄市.&amp;lt;ref&amp;gt;&amp;lt;사기&amp;gt; &amp;lt;혹리열전&amp;gt; 周陽由者，其父趙兼以淮南王舅父侯周陽，故因姓周陽氏。由以宗家任為郎，事孝文及景帝。景帝時，由為郡守。武帝即位，吏治尚循謹甚，然由居二千石中，最為暴酷驕恣。所愛者，撓法活之；所憎者，曲法誅滅之。所居郡，必夷其豪。為守，視都尉如令。為都尉，必陵太守，奪之治。與汲黯俱為忮，司馬安之文惡，俱在二千石列，同車未嘗敢均茵伏。由后為河東都尉，時與其守勝屠公爭權，相告言罪。勝屠公當抵罪，義不受刑，自殺，而由棄市。&amp;lt;/ref&amp;gt;&lt;br /&gt;
:&amp;lt;사기&amp;gt;, &amp;lt;혹리전&amp;gt;에 주양유라는 사람은 그 아버지 조겸이 회남왕의 외삼촌으로 주양의 제후가 되었기 때문에 이를 말미람아 주양씨를 성으로 삼은 것이다. 유가 랑이 되어 효문과 경제를 모셨다. 경제때에 군수가 되었다. 무제가 즉위할 적에 관리들의 풍속이 여전히 법을 지키는 풍속이 심하였다. 그러나 유가 이천 석에 있을 적에 가장 혹독하고 교만하였다. 거처하는 도위는 그의 호족을 배척하였고, 도위를 대할적에 현령과 같이 하였다. 현령이 되어서는 꼭 태수를 능멸했고, 그의 권력을 빼앗았다. 유가 후에 하동군위가 되었을 적에 거기 태수인 승도공과 권세를 다퉜다. &amp;lt;sub&amp;gt;승도는 바로 申屠이다.&amp;lt;/sub&amp;gt; 서로 죄를 고하였는데, 승도공은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았으나 의리상 형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자살하였고, 유는 기시형을 받아서 죽었다.&lt;br /&gt;
:○&amp;lt;魏志&amp;gt; &amp;lt;王肅傳&amp;gt; 肅太和中拜散騎常侍,&amp;lt;sub&amp;gt;肅字子雍, 東海郡人.&amp;lt;/sub&amp;gt; 史評曰: &amp;quot;劉寔以為肅方於事上而好下佞己, 此一反也.&amp;quot;&amp;lt;ref&amp;gt;&amp;lt;삼국지&amp;gt; &amp;lt;王朗傳子名肅&amp;gt; 王肅亮直多聞，能析薪哉！&amp;lt;sub&amp;gt;劉寔以為肅方於事上而好下佞己，此一反也。性嗜榮貴而不求苟合，此二反也。吝惜財物而治身不穢，此三反也。&amp;lt;/sub&amp;gt;&amp;lt;/ref&amp;gt;&lt;br /&gt;
:&amp;lt;위지&amp;gt;, &amp;lt;왕숙전&amp;gt;에 왕숙이 태화 때 산기상시에 제수되었다. &amp;lt;sub&amp;gt;숙은 字가 子雍이고, 동해군 사람이다.&amp;lt;/sub&amp;gt; 사평에 이르길 '유식은 숙이 윗 사람에게는 맞게 하였지만 아랫사람이 자신에게 아첨하는 것을 좋아했으니 이것이 하나의 반례이다라고 생각했다.'&lt;br /&gt;
&lt;br /&gt;
曰: &amp;quot;然則絜矩之云, 是則所謂恕者己乎?&amp;quot; 曰: &amp;quot;此固前章所謂'如愛己之心以愛人'者也. 夫子所謂終身可行,&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위령공&amp;gt; 23. 子貢問曰：「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子曰：「其恕乎！己所不欲，勿施於人。」&amp;lt;/ref&amp;gt; 程子所謂'充拓&amp;lt;sub&amp;gt;音托&amp;lt;/sub&amp;gt;得去, 則天地變化而草木蕃&amp;lt;sub&amp;gt;音煩&amp;lt;/sub&amp;gt;; 充拓不去, 則天地閉而賢人隱',&amp;lt;ref&amp;gt;&amp;lt;이정외서&amp;gt; 12-22 或問: &amp;quot;明道先生如何斯可謂之恕?&amp;quot; 先生曰: &amp;quot;充擴得去則爲恕.&amp;quot; &amp;quot;心如何是充擴得去底氣象?&amp;quot; 曰: &amp;quot;天地變化, 草木蕃.&amp;quot; &amp;quot;充擴不去時, 如何?&amp;quot; 曰: &amp;quot;天地閉, 賢人隱.&amp;quot;&amp;lt;/ref&amp;gt; 皆以其可以推之而無不通耳.&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推得去, 則物我貫通, 自有箇生生無窮底意思, 便有'天地變化, 草木蕃'氣象. 天地只是這様道理. 若推不去, 物我隔絶, 欲利於己, 不利於人; 欲己之富, 欲人之貧; 欲己之壽, 欲人之夭, 似這氣象, 全然閉塞隔絶了, 便似'天地閉, 賢人隱'.&amp;quot;&lt;br /&gt;
&lt;br /&gt;
&amp;quot;然必自其窮理正心者而推之, 則吾之愛惡、取舍&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 皆得其正; 而其所推以及人者, 亦無不得其正. 是以上下四方, 以此度&amp;lt;sub&amp;gt;音鐸&amp;lt;/sub&amp;gt;之, 而莫不截然各得其分&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 若於理有未明而心有未正, 則吾之所欲者, 未必其所當欲; 吾之所惡者, 未必其所當惡. 乃不察此而遽欲以是爲施於人之凖則, 則其意雖公而事則私. 是將見其物我相侵, 彼此交病, 而雖庭除&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 庭院.&amp;lt;/ref&amp;gt;之内、跬&amp;lt;sub&amp;gt;丘弭反&amp;lt;/sub&amp;gt;歩&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 半步, 跨一脚. ; 3. 指極近的距離.&amp;lt;/ref&amp;gt;之間, 亦且參商&amp;lt;sub&amp;gt;參音森參商二星名&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 參星和商星. 參星在西, 商星在東, 此出彼沒, 永不上見. ; 2. 喩彼此對立, 不和睦.&amp;lt;/ref&amp;gt;&amp;lt;/sub&amp;gt;矛盾&amp;lt;sub&amp;gt;盾食允反二者皆兵器名&amp;lt;/sub&amp;gt;而不可行矣. 尚何終身之望哉? 是以聖賢凡言恕者, 又必以忠爲本; 而程子亦言'忠恕兩言, 如形與影',&amp;lt;ref&amp;gt;&amp;lt;이정외서&amp;gt; 11-6 或問忠恕之別, 曰: &amp;quot;猶形影也. 無忠則不能爲恕矣.&amp;quot;&amp;lt;/ref&amp;gt; 欲去&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其一而不可得. 蓋唯忠而後所如之心始得其正, 是亦此篇先後本末之意也.&amp;lt;sub&amp;gt;所當先而為本者, 忠也; 所當後而為末者, 恕也.&amp;lt;/sub&amp;gt; 然則君子之學, 可不謹其序哉!&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忠是本體, 恕是枝葉, 非是别有枝葉, 乃是本根中發出枝葉.&amp;quot;&lt;br /&gt;
:○陳氏曰: &amp;quot;大槩忠恕只是一物; 就中截作兩片, 則為二物. 蓋存諸中者既忠, 則發出外來便是恕; 應事接物處不恕, 則是在我者必不十分眞實. 故發出忠底心, 便是恕底事; 做成恕底事, 便見忠底心.&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自身而家, 自家而國, 自國而天下, 均爲推己及人之事, 而傳之所以釋之者, 一事自爲一說, 若有不能相通焉者, 何也?&amp;quot; 曰: &amp;quot;此以勢之遠邇、事之先後而所施有不同耳, 實非有異事也. 蓋必審於接物、好惡&amp;lt;sub&amp;gt;二字並去聲下同&amp;lt;/sub&amp;gt;不偏, 然後有以正倫理、篤思義而齊其家; 其家已齊, 事皆可法, 然後有以立標凖、胥教誨而治其國; 其國已治&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 民知興起, 然後可以推已度&amp;lt;sub&amp;gt;待洛反&amp;lt;/sub&amp;gt;物、舉此加彼而平天下. 此以其遠近、先後而施有不同者也. 然自國以上&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 則治於内者嚴宻而精詳; 自國以下, 則治於外者廣愽而周遍, 亦可見其本末實一物, 首尾實一身矣. 何名爲異說哉?&amp;quot;&lt;br /&gt;
:格庵趙氏曰: &amp;quot;嚴宻精詳, 所以為廣博周遍之地. 治内者疎略苟簡, 則治外者雖欲廣博周遍, 得乎?&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所謂'民之父母'者, 何也?&amp;quot; 曰: &amp;quot;君子有絜矩之道, 故能以己之好惡知民之好惡; 又能以民之好惡爲己之好惡也. 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好其所好而與之聚之; 惡其所惡而不以施焉, 則上之愛下, 眞猶父母之愛其子矣. 彼民之親其上, 豈不亦猶子之愛其父母哉?&amp;quot;&lt;br /&gt;
:三山陳氏曰: &amp;quot;父母之於子, 其所好惡無有不知者, 體氣同也. 至於民之好惡, 其君常有所不知, 無他, 制於形體之異耳. 能絜矩, 則能以民之心為心, 而可以父母斯民, 民亦父母之矣.&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此所引節南山之詩, 何也?&amp;quot; 曰: &amp;quot;言在尊位者, 人所觀仰, 不可不謹. 若人君恣己徇私, 不與天下同其好惡, 則爲天下僇如桀、紂、幽、厲也,&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得衆得國, 失衆失國, 何也?&amp;quot; 曰: &amp;quot;言能絜矩, 則民父母之而得衆得國矣; 不能絜矩, 則爲天下僇而失衆失國矣.&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所謂先慎乎徳, 何也?&amp;quot; 曰: &amp;quot;上言有國者不可不謹; 此言其所謹而當先者尤在於徳也. 徳即所謂明徳; 所以謹之, 亦曰格物、致知、誠意、正心以脩其身而已矣.&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此其深言務財用而失民, 何也?&amp;quot; 曰: &amp;quot;有徳而有人有土, 則因天分地, 不患乎無財用矣. 然不知本末而無絜矩之心, 則未有不爭鬭其民而施之以劫奪之教者也. &amp;lt;易&amp;gt;大傳曰: '何以聚人? 曰財'&amp;lt;ref&amp;gt;&amp;lt;주역&amp;gt; &amp;lt;계사하&amp;gt; 1. 天地之大德曰生，聖人之大寶曰位。何以守位曰仁，何以聚人曰財。理財正辭，禁民為非曰義。&amp;lt;/ref&amp;gt;; &amp;lt;春秋外傳&amp;gt;曰:&amp;lt;sub&amp;gt;即&amp;lt;國語&amp;gt;&amp;lt;/sub&amp;gt; '王人者, 將以導利而布之上下者也'&amp;lt;ref&amp;gt;&amp;lt;국어&amp;gt; &amp;lt;周語上&amp;gt; 夫王人者，將導利而布之上下者也，使神人百物無不得其極，猶曰怵惕，懼怨之來也。&amp;lt;/ref&amp;gt;. 故財聚於上, 則民散於下矣; 財散於下, 則民歸於上矣. 言悖而出者亦悖而入; 貨悖而入者亦悖而出. 鄭氏以爲君有逆命, 則民有逆辭; 上貪於利, 則下人侵畔, 得其㫖矣.&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前既言命之不易矣,&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전10장. 詩云：「殷之未喪師，克配上帝；儀監于殷，峻命不易。」道得眾則得國，失眾則失國。&amp;lt;/ref&amp;gt; 此又言命之不常, 何也?&amp;quot; 曰: &amp;quot;以天命之重而致其丁寜之意, 亦承上文而言之也. 蓋'善則得之'者, 有徳而有人之謂也; '不善則失之'者, 悖入而悖出之謂也. 然則命之不常, 乃人之所自爲耳, 可不謹哉?&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其引&amp;lt;秦誓&amp;gt;, 何也?&amp;quot; 曰: &amp;quot;言好&amp;lt;sub&amp;gt;去聲下同&amp;lt;/sub&amp;gt;善之利及其子孫; 不好善之害流於後世, 亦由絜矩與否之異也.&amp;quot; &lt;br /&gt;
&lt;br /&gt;
曰: &amp;quot;媢疾之人, 誠可惡&amp;lt;sub&amp;gt;去聲下並同&amp;lt;/sub&amp;gt;矣. 然仁人惡之之深, 至於如此, 得無疾之己甚之亂邪?&amp;quot; 曰: &amp;quot;小人爲惡&amp;lt;sub&amp;gt;如字. 下惡人、其惡、善惡並同&amp;lt;/sub&amp;gt;, 千條萬端, 其可惡者, 不但媢疾一事而已. 仁人不深惡乎彼而獨深惡乎此者, 以其有害於善人, 使民不得被其澤; 而其流禍之長, 及於後世而未已也. 然非殺人于貨之盗, 則罪不至死. 故亦放流之而已. 然又念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彼此之勢雖殊, 而苦樂&amp;lt;sub&amp;gt;音洛&amp;lt;/sub&amp;gt;之情則一. 今此惡人放而不遠, 則其爲害雖得不施於此, 而彼所放之地其民復&amp;lt;sub&amp;gt;扶又反&amp;lt;/sub&amp;gt;何罪焉? 故不敢以己之所惡施之於人, 而必遠而置之無人之境, 以禦魑&amp;lt;sub&amp;gt;抽知反&amp;lt;/sub&amp;gt;魅&amp;lt;sub&amp;gt;音媚&amp;lt;/sub&amp;gt;而後己, 蓋不惟保安善人, 使不蒙其害; 亦所以禁伏凶人, 使不得稔其惡. 雖因彼之善惡而有好惡之殊, 然所以仁之之意, 亦未甞不行乎其間也. 此其爲禦亂之術至矣, 而何致亂之有?&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迸之爲屏&amp;lt;sub&amp;gt;必正反下同&amp;lt;/sub&amp;gt;, 何也?&amp;quot; 曰: &amp;quot;古字之通用者, 多矣. 漢石刻詞有引'尊五美, 屏四惡'&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요왈&amp;gt; 2. 子張問於孔子曰：「何如斯可以從政矣？」子曰：「尊五美，屏四惡，斯可以從政矣。」&amp;lt;/ref&amp;gt;者, 而以尊爲遵, 以屏爲迸, 則其證也.&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仁人之能愛人、能惡人, 何也?&amp;quot; 曰: &amp;quot;仁人者, 私欲不萌而天下之公在我. 是以是非不謬&amp;lt;sub&amp;gt;靡又反&amp;lt;/sub&amp;gt;而舉措得宜也.&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命之爲慢, 與其爲怠也, 孰得?&amp;quot; 曰: &amp;quot;大凡疑義所以决之, 不過乎義理、文勢、事證三者而已. 今此二字欲以義理、文勢决之, 則皆通; 欲以事證决之, 則無考, 蓋不可以深求矣. 若使其於義理、事實之大者有所鄉&amp;lt;sub&amp;gt;許亮反&amp;lt;/sub&amp;gt;背&amp;lt;sub&amp;gt;音佩&amp;lt;/sub&amp;gt;而不可以不究, 猶當視其緩急以爲先後, 况於此等字既兩通, 而於事義無大得失, 則亦何必苦心極力以求之, 徒費日而無所益乎? 以是而推他, 亦皆可見矣.&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好善惡&amp;lt;sub&amp;gt;好惡並去聲下同&amp;lt;/sub&amp;gt;惡&amp;lt;sub&amp;gt;如字&amp;lt;/sub&amp;gt;, 人之性, 然也. 有'拂人之性'者, 何哉?&amp;quot; 曰: &amp;quot;不仁之人, 阿黨媢疾, 有以陷溺其心. 是以其所好惡戾於常性如此, 與民之父母能好惡人者&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전10장. 詩云：「樂只君子，民之父母。」民之所好好之，民之所惡惡之，此之謂民之父母。&amp;lt;/ref&amp;gt;正相反. 使其能勝私而絜矩, 則不至於是矣.&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忠信、驕泰之所以爲得失者, 何也?&amp;quot; 曰: &amp;quot;忠信者, 盡己之心而不違於物, 絜矩之本也; 驕泰, 則恣己徇私, 以人從欲, 不得與人同好惡矣.&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上文深陳財用之失民矣, 此復&amp;lt;sub&amp;gt;扶又反&amp;lt;/sub&amp;gt;言生財之道, 何也?&amp;quot; 曰: &amp;quot;此所謂'有土而有財'&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전10장. 有德此有人，有人此有土，有土此有財，有財此有用。&amp;lt;/ref&amp;gt;者也. 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amp;lt;洪範&amp;gt;八政, 食、貨爲先&amp;lt;sub&amp;gt;見&amp;lt;尚書&amp;gt; &amp;lt;洪範&amp;gt;篇'三八政'疇&amp;lt;/sub&amp;gt;;&amp;lt;ref&amp;gt;&amp;lt;서경&amp;gt; &amp;lt;주서&amp;gt; &amp;lt;홍범&amp;gt; 三、八政：一曰食，二曰貨，三曰祀，四曰司空，五曰司徒，六曰司寇，七曰賓，八曰師。&amp;lt;/ref&amp;gt; 子貢問政, 而夫子告之亦以'足食'爲首;&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안연&amp;gt; 7. 子貢問政。子曰：「足食。足兵。民信之矣。」&amp;lt;/ref&amp;gt; 蓋生民之道不可一日而無者, 聖人豈輕之哉? 特以爲國者以利爲利, 則必至於剥民以自奉, 而有悖出之禍. 故深言其害以爲戒耳. 至於崇本節用&amp;lt;sub&amp;gt;'崇本', '生之衆'、'為之疾'也; '節用', '食之寡'、'用之舒'也.&amp;lt;/sub&amp;gt;, 有國之常政, 所以厚下而足民者, 則固未甞廢也. 吕氏之說得其㫖矣.&amp;lt;sub&amp;gt;吕說已見章句中&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전10장. 呂氏曰：「國無遊民，則生者眾矣；朝無幸位，則食者寡矣；不奪農時，則為之疾矣；量入為出，則用之舒矣。&amp;lt;/ref&amp;gt;&amp;lt;/sub&amp;gt; 有子曰: '百姓足, 君孰&lt;br /&gt;
與不足?';&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안연&amp;gt; 9. 哀公問於有若曰：「年饑，用不足，如之何？」有若對曰：「盍徹乎？」曰：「二，吾猶不足，如之何其徹也？」對曰：「百姓足，君孰與不足？百姓不足，君孰與足？」&amp;lt;/ref&amp;gt;孟子曰: &amp;quot;無政事, 則財用不足&amp;quot;,&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진심하&amp;gt; 12. 孟子曰：「不信仁賢，則國空虛。無禮義，則上下亂。無政事，則財用不足。」&amp;lt;/ref&amp;gt; 正此意也. 然孟子所謂政事, 則所以告齊、梁之君, 使之制民之産者是己, 豈若後世頭㑹&amp;lt;sub&amp;gt;古外反&amp;lt;/sub&amp;gt;箕歛&amp;lt;sub&amp;gt;力驗反&amp;lt;/sub&amp;gt;, 厲民自養之云哉?&amp;quot;&lt;br /&gt;
:&amp;lt;前漢書&amp;gt; &amp;lt;陳餘傳&amp;gt; 秦為亂政, 外内騷動, 百姓罷敝&amp;lt;sub&amp;gt;罷音疲&amp;lt;/sub&amp;gt;; 頭㑹箕歛, 以供軍費&amp;lt;sub&amp;gt;秦吏到民家, 計人頭數以箕歛之, 而供軍需.&amp;lt;/sub&amp;gt;財匱力盡.&lt;br /&gt;
:&amp;lt;전한서&amp;gt; &amp;lt;진여전&amp;gt; 진나라가 어지러운 정치를 행해, 나라 안팎으로 동요가 일어나고 백성들은 피폐해졌다. [진나라 관리들이] 사람 머릿수대로 키질하듯 세금을 거둬 군비에 충당하니, 재정은 바닥나고 민력은 다하였다.&amp;lt;ref&amp;gt;&amp;lt;한서&amp;gt; &amp;lt;장이진여전&amp;gt; 至諸縣，說其豪桀曰：「秦為亂政虐刑，殘滅天下，北為長城之役，南有五領之戍，外內騷動，百姓罷敝，頭會箕斂以供軍費，財匱力盡，重以苛法，使天下父子不相聊。&amp;lt;/ref&amp;gt;&lt;br /&gt;
&lt;br /&gt;
○曰: &amp;quot;'仁者以財發身; 不仁者以身發財', 何也?&amp;quot; 曰: &amp;quot;仁者不私其有, 故財散民聚而身尊; 不仁者惟利是圖, 故捐身賈&amp;lt;sub&amp;gt;音古&amp;lt;/sub&amp;gt;禍以崇貨也. 然亦即財貨而以其效言之爾, 非謂仁者眞有以財發身之意也.&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未有府庫財非其財'者, 何也?&amp;quot; 曰: &amp;quot;上好&amp;lt;sub&amp;gt;去聲下同&amp;lt;/sub&amp;gt;仁, 則下好義矣; 下好義, 則事有終矣; 事有終, 則爲君者安富尊榮, 而府庫之財可長保矣. 此'以財發身'之效也. 上不好仁, 則下不好義; 下不好義, 則其事不終. 是將爲天下僇之不暇, 而况府庫之財又豈得爲吾之財乎? 若商紂以自焚而起鉅橋、鹿臺之財; 徳宗以出走而豐瓊林、大盈之積, 皆'以身發財'之效也.&amp;quot;&lt;br /&gt;
:&amp;lt;史記&amp;gt; 紂使師㳙作新淫聲, 北里之舞、靡靡之樂. 厚賦税以實鹿臺之財, 而盈鉅橋之粟, 以酒為池, 縣肉為林, 爲長夜之飲, 百姓怨望, 而諸侯有畔者. 周武王於是遂率諸侯伐紂. 紂亦發兵距之牧野. 甲子日, 紂兵敗, 紂走登鹿臺, 衣其寳玉, 乃自焚而死. 武王遂斬紂頭, 懸之白旗. 又&amp;lt;書&amp;gt; &amp;lt;武成&amp;gt;篇&amp;lt;sub&amp;gt;此篇記武王功成之事&amp;lt;/sub&amp;gt; &amp;quot;乃反商政, 政由舊. 散鹿臺之財, 發鉅橋之栗, 大賚于四海, 而萬姓悦服.&amp;quot;&lt;br /&gt;
:&amp;lt;사기&amp;gt; 주왕(紂)이 사연(師㳙)으로 하여금 새로운 음란한 노래, 즉 &amp;lt;북리&amp;gt;라는 춤과 &amp;lt;미미&amp;gt;라는 음악을 짓게 했다. 세금을 심하게 걷어 녹대(鹿臺)에는 재물을 채우고 거교(鉅橋)에는 곡식을 채웠으며, 술로 연못을 만들고 고기를 매달아 숲을 만들어 밤새도록 마시니, 백성들은 원망하고 제후 가운데에는 배신하는 자가 있었다. 주 무왕이 이에 마침내 제후들을 거느리고 주왕을 정벌했다. 주왕 역시 군대를 일으켜 목야(牧野)에서 항거했다. 갑자일에 주왕의 군대가 패퇴하자, 주왕은 달아나 녹대에 올라 보옥을 둘러입고 스스로 불을 질러 죽었다. 무왕이 마침내 주왕의 머리를 베어 백기에 매달았다.&amp;lt;ref&amp;gt;&amp;lt;사기&amp;gt; &amp;lt;은본기&amp;gt; 愛妲己，妲己之言是從。於是使師涓作新淫聲，北里之舞，靡靡之樂。厚賦稅以實鹿臺之錢，而盈鉅橋之粟。益收狗馬奇物，充仞宮室。益廣沙丘苑臺，多取野獸蜚鳥置其中。慢於鬼神。大聚樂戲於沙丘，以酒為池，縣肉為林，使男女裸相逐其閒，為長夜之飲。百姓怨望而諸侯有畔者，…… 周武王於是遂率諸侯伐紂。紂亦發兵距之牧野。甲子日，紂兵敗。紂走入，登鹿臺，衣其寶玉衣，赴火而死。周武王遂斬紂頭，縣之白旗。&amp;lt;/ref&amp;gt; 또 &amp;lt;서경&amp;gt; &amp;lt;무성편&amp;gt; &amp;quot;상나라 정사를 되돌렸는데, 정사는 옛 것을 따랐다. 녹대의 재물을 나눠주고 거교의 곡식을 베풀어 사해의 백성을 크게 위로하니, 온 백성이 기뻐하며 복종했다.&amp;quot;&amp;lt;ref&amp;gt;&amp;lt;상서&amp;gt; &amp;lt;주서&amp;gt; &amp;lt;무성&amp;gt; 乃反商政，政由舊。釋箕子囚，封比干墓，式商容閭。散鹿臺之財，發鉅橋之粟，大賚于四海，而萬姓悅服。&amp;lt;/ref&amp;gt;&lt;br /&gt;
:○&amp;lt;唐書&amp;gt; &amp;lt;陸贄𫝊&amp;gt; &amp;quot;始, 帝播遷&amp;lt;sub&amp;gt;帝, 徳宗也. 朱泚反, 帝出走在外.&amp;lt;/sub&amp;gt;, 府蔵委棄, 至是天下貢奉稍至, 乃於行在夾廡署&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3. 布置, 安排.&amp;lt;/ref&amp;gt;瓊林、大盈二庫, 别藏貢物. 贄諌以為: '今師旅方殷, 瘡痛呻吟之聲未息, 遽以珍貢私别庫, 恐羣下有所觖望&amp;lt;sub&amp;gt;不滿所望&amp;lt;/sub&amp;gt;. 請悉出以賜有功, 給軍賞.' 帝悟, 即撤其署.&amp;quot;&lt;br /&gt;
:&amp;lt;당서&amp;gt; &amp;lt;육지전&amp;gt; &amp;quot;예전에 황제가 파천했을 때&amp;lt;sub&amp;gt;'황제'는 덕종이다. 주차(朱泚)가 반란을 일으키자, 황제는 도성 밖으로 달아났다.&amp;lt;/sub&amp;gt; 창고를 버려두었는데, 이때 천하 각지의 공물이 조금씩 올라오자 행재소의 협무(夾廡)에 경림(瓊林)·대영(大盈) 두 창고를 설치하고 따로 공물을 보관하였다. 육지가 다음과 같이 간언했다: '지금 전쟁이 한창 성하고 부상으로 신음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데, 급히 공물을 별도의 창고에 개인적으로 보관하신다면 아랫사람들이 불만을 품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청컨대 이를 모두 내어 유공자에게 내리시거나 군대의 포상에 사용하십시오.' 황제가 깨달아 바로 설치했던 것을 철거했다.&amp;quot;&amp;lt;ref&amp;gt;&amp;lt;신당서&amp;gt; 권157 &amp;lt;열전제82 陸贄&amp;gt; 始，帝播遷，府藏委棄，衛兵無褚衣。至是，天下貢奉稍至，乃於行在夾廡署瓊林、大盈二庫，別藏貢物。贄諫，以為：「瓊林、大盈於古無傳。舊老皆言：開元時貴臣飾巧以求媚，建言郡邑賦稅，當委有司以制經用，其貢獻悉歸天子私有之。蕩心侈欲，亦終以餌寇。今師旅方殷，瘡痛呻吟之聲未息，遽以珍貢私別庫，恐群下有所觖望，請悉出以賜有功。令後納貢必歸之有司，先給軍賞，瑰怪纖麗無得以供。是乃散小儲成大儲，捐小寶固大寶也。」帝悟，即撤其署。&amp;lt;/ref&amp;gt;&lt;br /&gt;
&lt;br /&gt;
曰: &amp;quot;其引孟獻子之言, 何也?&amp;quot; 曰: &amp;quot;鷄、豚、牛、羊, 民之所畜&amp;lt;sub&amp;gt;許六反&amp;lt;/sub&amp;gt;養以爲利者也. 既已食君之禄而享民之奉矣, 則不當復&amp;lt;sub&amp;gt;扶又反&amp;lt;/sub&amp;gt;與之爭. 此公儀子所以㧞園葵去&amp;lt;sub&amp;gt;上聲下同&amp;lt;/sub&amp;gt;織婦; 而董子因有與之齒者去其角. 傅之翼者兩其足之喻, 皆絜矩之義也.&amp;quot;&lt;br /&gt;
:&amp;lt;史記&amp;gt; 公儀休爲魯相, 食茹而美,&amp;lt;sub&amp;gt;食其菜曰茹&amp;lt;/sub&amp;gt; 㧞其園葵而棄之; 見其家織布好而疾, 出其家婦, 燔其機, 云: '欲令農夫工女, 安所讎其貨乎?'&amp;lt;sub&amp;gt;讎, 售也. 謂食禄者不得與下民爭利.&amp;lt;/sub&amp;gt;&lt;br /&gt;
:&amp;lt;사기&amp;gt; 공의휴가 노나라 재상일 때, 자기 채소밭의 채소를 먹었는데 맛이 좋자 자기 채소밭의 채소를 뽑아 갖다버렸고, 자기 집에서 베를 빨리 잘 짜는 것을 보고는 베 짜는 여인을 내쫓고 베틀을 태워버리고는 말했다: &amp;quot;농부와 베 짜는 여인들이 어디서 이 재화를 팔라는 것이냐?&amp;quot;&amp;lt;sub&amp;gt;녹을 받는 자는 백성들과 이익을 다퉈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amp;lt;/sub&amp;gt;&amp;lt;ref&amp;gt;&amp;lt;사기&amp;gt; &amp;lt;순리열전&amp;gt; 公儀休者，魯博士也。以高弟為魯相。奉法循理，無所變更，百官自正。使食祿者不得與下民爭利，受大者不得取小。客有遺相魚者，相不受。客曰：「聞君嗜魚，遺君魚，何故不受也？」相曰：「以嗜魚，故不受也。今為相，能自給魚；今受魚而免，誰復給我魚者？吾故不受也。」食茹而美，拔其園葵而棄之。見其家織布好，而疾出其家婦，燔其機，云「欲令農士工女安所讎其貨乎」？&amp;lt;/ref&amp;gt;&lt;br /&gt;
:○&amp;lt;西漢書&amp;gt; 董仲舒以賢良對䇿曰: &amp;quot;夫天亦有所分&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 予&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之齒者去其角,&amp;lt;sub&amp;gt;言天生物賦予有分定. 牛無上齒者, 則有角; 其餘無角則有上齒.&amp;lt;/sub&amp;gt; 傅之翼者两其足,&amp;lt;sub&amp;gt;傅, 讀曰附, 附著也. 言鳥不四足&amp;lt;/sub&amp;gt; 是所受大者不得取小也. 古之所予禄者, 不食於力, 不勤於末,&amp;lt;sub&amp;gt;末謂工商之業.&amp;lt;/sub&amp;gt; 是亦受大者不得取小, 與天同意者也.&amp;quot;&lt;br /&gt;
:&amp;lt;서한서&amp;gt; 동중서가 현량대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amp;quot;하늘에도 정해진 몫이 있으니, 윗니를 준 소에게는 뿔을 없애고,&amp;lt;sub&amp;gt;하늘이 만물을 낳고 부여함에 일정한 몫이 있음을 말한다. 소 중에 윗니가 없는 것은 뿔이 있고, 나머지 뿔이 없는 소는 윗니가 있다.&amp;lt;/sub&amp;gt; 날개를 붙여준 것에는 다리가 두 개 뿐이니,&amp;lt;sub&amp;gt;'傅'는 '附'로 읽으니 붙인다는 것이다. 새는 다리가 넷이 아님을 말한다.&amp;lt;/sub&amp;gt; 이는 '큰 것을 받은 자는 작은 것을 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옛적 봉록을 주는 자가 자기 힘으로 농사지어 먹지 않고 말업에 힘쓰지 않은 것 역시 '큰 것을 받은 자는 작은 것을 취할 수 없다'는 것이니, 하늘과 같은 뜻입니다.&amp;quot;&amp;lt;ref&amp;gt;&amp;lt;한서&amp;gt; &amp;lt;동중서전&amp;gt; 夫天亦有所分予，予之齒者去其角，傅其翼者兩其足，是所受大者不得取小也。古之所予祿者，不食於力，不動於末，是亦受大者不得取小，與天同意者也。夫已受大，又取小，天不能足，而況人乎！此民之所以囂囂苦不足也。&amp;lt;/ref&amp;gt;&lt;br /&gt;
&lt;br /&gt;
&amp;quot;聚歛之臣, 剥民之膏血以奉上, 而民被其殃; 盗臣, 竊君之府庫以自私, 而禍不及下. 仁者之心, 至誠惻怛,&amp;lt;sub&amp;gt;當葛反&amp;lt;/sub&amp;gt; 寧亡己之財, 而不忍傷民之力. 所以'與其有聚歛之臣, 寧有盗臣'亦絜矩之義也. 昔孔子以臧文仲之妾織蒲, 而直斥其不仁;&amp;lt;sub&amp;gt;事詳見&amp;lt;論語&amp;gt;&amp;lt;公冶長&amp;gt;篇&amp;lt;ref&amp;gt;&amp;lt;공자가어&amp;gt; &amp;lt;안회&amp;gt; 	顏回問於孔子曰：「臧文仲、武仲孰賢？」孔子曰：「武仲賢哉！」顏回曰：「武仲世稱聖人，而身不免於罪，是智不足稱也；好言兵討，而挫銳於邾，是智不足名也。夫文仲、其身雖歿，而言不朽，惡有未賢？」孔子曰：「身歿言立，所以為文仲也。然猶有不仁者三，不智者三，是則不及武仲也。」回曰：「可得聞乎？」孔子曰：「下展禽，置六關，妾織蒲，三不仁。設虛器，縱逆祀，祠海鳥，三不智。&amp;lt;/ref&amp;gt;&amp;lt;/sub&amp;gt; 以冉求聚歛於季氏, 而欲鳴鼓以聲其罪.&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선진&amp;gt; 16. 季氏富於周公，而求也為之聚斂而附益之。子曰：「非吾徒也。小子鳴鼓而攻之，可也。」&amp;lt;/ref&amp;gt; 以聖人之宏大兼容、温良博愛, 而所以責二子者, 疾痛深切, 不少假借如此, 其意亦可見矣.&amp;quot;&lt;br /&gt;
:三山陳氏曰: &amp;quot;織紝亦儉矣, 而君子疾之, 以其主於利也. 冉求之聚歛, 未必有後世掊克之事, 但聚歛藏於季氏之家, 而不能布之於下, 則聖人疾而欲攻之, 况剥民力以自富乎?&amp;quot;&lt;br /&gt;
:○西山眞氏曰: &amp;quot;近世所謂善理財者, 何其僭乎此也! 元元已病, 而科歛日興, 不知皮將盡而毛無所附也. 出新巧以籠愚民, 苟邀倍稱之入, 不知朝四暮三之無益也. 孟子曰: '「我能為君充府庫.」今之所謂良臣, 古之所謂民賊也.'&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고자하&amp;gt; 9. 孟子曰：「今之事君者曰：『我能為君辟土地，充府庫。』今之所謂良臣，古之所謂民賊也。&amp;lt;/ref&amp;gt;&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國不以利爲利, 以義爲利', 何也?&amp;quot; 曰: &amp;quot;'以利爲利', 則上下交征, 不奪不饜;&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양혜왕상&amp;gt; 1. 孟子對曰：「王何必曰利？亦有仁義而已矣。王曰『何以利吾國』？大夫曰『何以利吾家』？士庶人曰『何以利吾身』？上下交征利而國危矣。萬乘之國弒其君者，必千乘之家；千乘之國弒其君者，必百乘之家。萬取千焉，千取百焉，不為不多矣。苟為後義而先利，不奪不饜。&amp;lt;/ref&amp;gt; '以義爲利', 則不遺其&lt;br /&gt;
親, 不後其君, 蓋惟義之安而自無所不利矣. 程子曰: '聖人以義爲利. 義之所安, 即利之所生'&amp;lt;ref&amp;gt;&amp;lt;이정유서&amp;gt; 16-03 趙景平問:「『子罕言利與命與仁』, 所謂利者, 何利?」 曰:「不獨財利之利, 凡有利心, 便不可. 如作一事, 須尋自家穩便處, 皆利心也. 聖人以義爲利, 義安處便爲利. 如釋氏之學, 皆本於利, 故便不是.」 &amp;lt;/ref&amp;gt;, 正謂此也. 孟子分别&amp;lt;sub&amp;gt;筆列反&amp;lt;/sub&amp;gt;義利、㧞本塞源之意, 其傳蓋亦出於此云.&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只萬物皆得其分便是利. 君得其為君, 臣得其為臣, 父得其為父, 子得其為子, 何利如之? 這利字即&amp;lt;易&amp;gt;所謂'利者, 義之和'&amp;lt;ref&amp;gt;&amp;lt;주역&amp;gt; 건괘 &amp;lt;문언&amp;gt; 「元」者，善之長也；「亨」者，嘉之會也；「利」者，義之和也；「貞」者，事之幹也。&amp;lt;/ref&amp;gt;, 利便是義之和處.&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此其言'菑害並至, 無如之何', 何也?&amp;quot; 曰: &amp;quot;怨己結於民心, 則非一朝一夕之可解矣. 聖賢深探其實而極言之, 欲人有以審於未然而不爲無及於事之悔也. 以此爲防, 人猶有用桑羊、孔僅、宇文融、楊矜、陳京、裴延齡之徒, 以敗其國者.&amp;quot;&lt;br /&gt;
:桑弘羊、楊愼矜, 朱子以在宋避諱, 故各去一字.&lt;br /&gt;
:○張氏存中曰: &amp;quot;桑弘羊, 洛陽賈人之子. 漢武帝朝, 為治栗都尉, 領大司農, 盡管天下監鐵, 後為御史大夫. 昭帝朝, 與燕王旦謀反坐誅.&amp;quot;&lt;br /&gt;
:○孔僅, 漢武帝朝為大農丞, 領鹽鐵事, 後為大農令.&lt;br /&gt;
:○宇文融, 辨給多詐. 唐玄宗朝為覆田勸農使, 擢兵部員外郎兼侍御史; 又兼稅地安輯戸口使, 拜御史中丞. 有司劾融交不逞, 作威福, 貶平樂尉. 司農發融在汴州紿隱官息錢巨萬, 給事中馮紹烈深文推證. 詔流嵓州道廣州, 惶恐而卒.&lt;br /&gt;
:○楊愼矜, 唐玄宗朝為御史知雜事, 後授御史中丞. 以蓄讖緯妖言賜死.&lt;br /&gt;
:○陳京事唐徳宗. 帝討李希烈, 財用屈, 京為給事中與戸部侍郎趙賛請稅民屋間架, 籍賈人資力, 以率貸之. 後以事罷, 為秘書少監卒.&lt;br /&gt;
:○裴延齡, 唐徳宗朝為司農少卿, 領度支. 取宿姦老吏與謀, 以固帝幸. 延齡資苛刻, 專剥下附上. 肆騁譎怪, 時人側目. 及死, 人語以相安. 惟帝悼不已.&lt;br /&gt;
&lt;br /&gt;
&amp;quot;故陸宣公之言曰:&amp;lt;sub&amp;gt;陸公名䞇, 字敬輿, 蘇州嘉興人. 事唐徳宗, 諡曰宣. 其言見奏議.&amp;lt;/sub&amp;gt; &amp;quot;民者, 邦之本; 財者, 民之心. 其心傷, 則其本傷; 其本傷, 則枝幹凋瘁&amp;lt;sub&amp;gt;秦醉反&amp;lt;/sub&amp;gt;而根柢蹷&amp;lt;sub&amp;gt;居月反&amp;lt;/sub&amp;gt;㧞矣.&amp;quot; 吕正獻公之言曰:&amp;lt;sub&amp;gt;吕公名公著, 字晦叔, 諡正獻, 河南人. 其言見奏劄.&amp;lt;/sub&amp;gt; &amp;quot;小人聚歛以佐人主之欲, 人主不悟以爲有利於國, 而不知其終爲害也. 賞其納忠而不知其大不忠也; 嘉其任怨而不知其怨歸於上也.&amp;quot; 嗚呼! 若二公之言, 則可謂深得此章之指者矣. 有國家者可不監哉?&amp;quot;&lt;br /&gt;
:格庵趙氏曰: &amp;quot;興利之臣, 不過以聚歛為長䇿; 以掊克為善謀/ 唯求取媚於上而不顧結怨於下, 人主以其奉己之欲悅而寵之, 不知其失民心而蠧國脉. '菑害並至', 匪一朝一夕之可解, 有必然之理者. 此桑羊之徒, 所以誤人之天下國家至於極也. 陸、吕二公之言, 可謂當矣. 如司馬公闢善理財者, 不加賦之說, 則亦所當知. 其言曰: '天地所生財貨百物, 止有此數, 不在民, 則在官. 譬如雨澤, 夏澇則秋旱',&amp;lt;ref&amp;gt;&amp;lt;송사&amp;gt; 권336 &amp;lt;열전제95 사마광&amp;gt; 執政以河朔旱傷，國用不足，乞南郊勿賜金帛。詔學士議，光與王珪、王安石同見，光曰：「救災節用，宜自貴近始，可聽也。」安石曰：「常袞辭堂饌，時以爲袞自知不能，當辭位不當辭祿。且國用不足，非當世急務，所以不足者，以未得善理財者故也。」光曰：「善理財者，不過頭會箕斂爾。」安石曰：「不然，善理財者，不加賦而國用足。」光曰：「天下安有此理？天地所生財貨百物，不在民，則在官，彼設法奪民，其害乃甚於加賦。此蓋桑羊欺武帝之言，太史公書之以見其不明耳。」爭議不已。&amp;lt;/ref&amp;gt; 此古今之至言也. 後世之臣, 有以言利媒人主者, 其尚以&amp;lt;大學&amp;gt;此章之㫖. 與三君子之言察之.&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聖賢千言萬語, 其論道, 只在遏人欲以存天理; 其論治, 只在進君子而退小人.&amp;quo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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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 &amp;quot;此章之文, 程子多所更&amp;lt;sub&amp;gt;平聲下同&amp;lt;/sub&amp;gt;定, 而子獨以舊文爲正者, 何也?&amp;quot; 曰: &amp;quot;此章之義博, 故傳言之詳. 然其實, 則不過好惡&amp;lt;sub&amp;gt;並去聲&amp;lt;/sub&amp;gt;義利之兩端而已. 但以欲致其詳, 故所言已足, 而復&amp;lt;sub&amp;gt;扶又反&amp;lt;/sub&amp;gt;更端以廣其意. 是以二義相循, 間&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見&amp;lt;sub&amp;gt;形甸反下同&amp;lt;/sub&amp;gt;層出, 有似於易置而錯陳耳. 然徐而考之, 則其端緒接續, 脉絡貫通, 而丁寧反復爲&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人深切之意, 又自别見於言外, 不可易也. 必欲二說中判, 以類相從, 自始至終, 畫爲兩節, 則其界辨雖若有餘, 而意味或反不足. 此不可不察也.&amp;quot;&lt;br /&gt;
&lt;br /&gt;
=대학 판본 비교=&lt;br /&gt;
송대 유학자들이 『禮記』 「大學」을 높이 평가했지만 모두 온전한 글이라고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大學」이 순하게 읽히지 않는 것은 전래되는 과정에서 오류(착간이나 오탈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아마도) 내용을 기준으로 「大學」의 순서를 바로잡거나 글자를 수정하거나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기도 했다. (자세한 수정 사항은 차치하고) 『禮記』 「大學」의 구절을 순서에 따라 ①~⑯으로 구분했을 때, &lt;br /&gt;
*「明道先生改正大學」 : 1-6-7-8, 2-3-4-10-11-12-13, 5-9-14-15-16&lt;br /&gt;
*「伊川先生改正大學」 : 1-2-9-3, 6-7-8, 4-10-11-12-13, 5-15-14-16 &lt;br /&gt;
*『大學章句』 : 1-2-6-7-8-5-9-3, 4-10-11-12-13, 14-15-16&lt;br /&gt;
의 순서로 수정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표와 같다: &amp;lt;br/&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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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ign=&amp;quot;center&amp;quot; |  '''『大學章句』'''&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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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lt;br /&gt;
|①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lt;br /&gt;
|①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amp;lt;當作新&amp;gt;民, 在止於至善. 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lt;br /&gt;
|①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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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物格而後知至, 知至而後意誠, 意誠而後心正, 心正而後身修, 身修而後家齊, 家齊而後國治, 國治而後天下平. 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為本. 其本亂而末治者否矣, 其所厚者薄, 而其所薄者厚, 未之有也! &lt;br /&gt;
|⑥《康誥》曰: 「克明德.」 《大甲》曰: 「顧諟天之明命.」 《帝典》曰: 「克明峻德.」 皆自明也.&lt;br /&gt;
|②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物格而後知至, 知至而後意誠, 意誠而後心正, 心正而後身修, 身修而後家齊, 家齊而後國治, 國治而後天下平. 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為本. 其本亂而末治者否矣, 其所厚者薄, 而其所薄者厚, 未之有也! &lt;br /&gt;
|②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物格而後知至, 知至而後意誠, 意誠而後心正, 心正而後身修, 身修而後家齊, 家齊而後國治, 國治而後天下平. 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為本. 其本亂而末治者否矣, 其所厚者薄, 而其所薄者厚, 未之有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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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此謂知本, 此謂知之至也. &lt;br /&gt;
|⑦湯之盤銘曰: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康誥》曰: 「作新民.」 《詩》曰: 「周雖舊邦, 其命維新.」 是故君子無所不用其極.&lt;br /&gt;
|⑨子曰: 「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無情者不得盡其辭, 大畏民志. 此謂知本.&amp;lt;四字衍&amp;gt;&lt;br /&gt;
|⑥《康誥》曰: 「克明德.」  《大甲》曰: 「顧諟天之明命.」 《帝典》曰: 「克明峻德.」 皆自明也.&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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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謙, 故君子必慎其獨也! 小人閑居為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後厭然, 掩其不善, 而著其善. 人之視己, 如見其肺肝然, 則何益矣! 此謂誠於中, 形於外, 故君子必慎其獨也. 曾子曰: 「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富潤屋, 德潤身, 心廣體胖, 故君子必誠其意. &lt;br /&gt;
|⑧《詩》云: 「邦畿千里, 惟民所止.」 《詩》云: 「緡蠻黃鳥, 止于丘隅.」 子曰: 「於止, 知其所止, 可以人而不如鳥乎？」 《詩》云: 「穆穆文王, 於緝熙敬止!」 為人君, 止於仁; 為人臣, 止於敬; 為人子, 止於孝; 為人父, 止於慈; 與國人交, 止於信. &lt;br /&gt;
|③此謂知本, 此謂知之至也. &lt;br /&gt;
|⑦湯之盤銘曰: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康誥》曰: 「作新民.」 《詩》曰: 「周雖舊邦, 其命維新.」 是故君子無所不用其極.&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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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詩》云: 「瞻彼淇澳, 菉竹猗猗. 有斐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瑟兮僩兮, 赫兮喧兮. 有斐君子, 終不可諠兮!」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 「瑟兮僩兮」者, 恂慄也; 「赫兮喧兮」者, 威儀也; 「有斐君子, 終不可諠兮」者, 道盛德至善, 民之不能忘也. 《詩》云: 「於戲前王不忘!」 君子賢其賢而親其親, 小人樂其樂而利其利, 此以沒世不忘也. &lt;br /&gt;
|②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物格而後知至, 知至而後意誠, 意誠而後心正, 心正而後身修, 身修而後家齊, 家齊而後國治, 國治而後天下平. 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為本. 其本亂而末治者否矣, 其所厚者薄, 而其所薄者厚, 未之有也! &lt;br /&gt;
|⑥《康誥》曰: 「克明德.」 《大甲》曰: 「顧諟天之明命.」 《帝典》曰: 「克明峻德.」 皆自明也.&lt;br /&gt;
|⑧《詩》云: 「邦畿千里, 惟民所止.」 《詩》云: 「緡蠻黃鳥, 止于丘隅.」 子曰: 「於止, 知其所止, 可以人而不如鳥乎？」 《詩》云: 「穆穆文王, 於緝熙敬止!」 為人君, 止於仁; 為人臣, 止於敬; 為人子, 止於孝; 為人父, 止於慈; 與國人交, 止於信.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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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康誥》曰: 「克明德.」 《太甲》曰: 「顧諟天之明命.」 《帝典》曰: 「克明峻德.」 皆自明也. &lt;br /&gt;
|③此謂知本, 此謂知之至也. &lt;br /&gt;
|⑦湯之盤銘曰: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康誥》曰: 「作新民.」 《詩》曰: 「周雖舊邦, 其命維新.」 是故君子無所不用其極.&lt;br /&gt;
|⑤《詩》云: 「瞻彼淇澳, 菉竹猗猗. 有斐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瑟兮僩兮, 赫兮喧兮. 有斐君子, 終不可諠兮!」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 「瑟兮僩兮」者, 恂慄也; 「赫兮喧兮」者, 威儀也; 「有斐君子, 終不可諠兮」者, 道盛德至善, 民之不能忘也. 《詩》云: 「於戲前王不忘!」 君子賢其賢而親其親, 小人樂其樂而利其利, 此以沒世不忘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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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湯之盤銘曰: 「茍日新, 日日新, 又日新.」 《康誥》曰: 「作新民.」 《詩》曰: 「周雖舊邦, 其命惟新.」 是故君子無所不用其極. &lt;br /&gt;
|④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謙, 故君子必慎其獨也! 小人閑居為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後厭然, 掩其不善, 而著其善. 人之視己, 如見其肺肝然, 則何益矣! 此謂誠於中, 形於外, 故君子必慎其獨也. 曾子曰: 「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富潤屋, 德潤身, 心廣體胖, 故君子必誠其意. &lt;br /&gt;
|⑧《詩》云: 「邦畿千里, 惟民所止.」 《詩》云: 「緡蠻黃鳥, 止于丘隅.」 子曰: 「於止, 知其所止, 可以人而不如鳥乎？」 《詩》云: 「穆穆文王, 於緝熙敬止!」 為人君, 止於仁; 為人臣, 止於敬; 為人子, 止於孝; 為人父, 止於慈; 與國人交, 止於信. &lt;br /&gt;
|⑨子曰: 「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無情者不得盡其辭, 大畏民志. 此謂知本. .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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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詩》云: 「邦畿千里, 惟民所止.」 《詩》云: 「緡蠻黃鳥, 止于丘隅.」 子曰: 「於止, 知其所止, 可以人而不如鳥乎？」 《詩》云: 「穆穆文王, 於緝熙敬止!」 為人君, 止於仁; 為人臣, 止於敬; 為人子, 止於孝; 為人父, 止於慈; 與國人交, 止於信. &lt;br /&gt;
|⑩所謂修身在正其心者: 身有所忿懥, 則不得其正; 有所恐懼, 則不得其正; 有所好樂, 則不得其正; 有所憂患, 則不得其正.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此謂修身在正其心. &lt;br /&gt;
|④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謙, 故君子必愼其獨也. 小人閒居爲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后厭然揜其不善, 而著其善. 人之視已, 如見其肺肝, 然則何益矣?  此謂誠於中, 形於外, 故君子必愼其獨也. 曾子曰: 「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富潤屋, 德潤身, 心廣體胖, 故君子必誠其意.&lt;br /&gt;
|③此謂知本&amp;lt;四字衍&amp;gt;, 此謂知之至也. (閒嘗竊取程子之意以補之曰: 「所謂致知在格物者, 言欲致吾之知, 在即物而窮其理也. 蓋人心之靈莫不有知, 而天下之物莫不有理, 惟於理有未窮, 故其知有不盡也. 是以大學始教, 必使學者即凡天下之物, 莫不因其已知之理而益窮之, 以求至乎其極. 至於用力之久, 而一旦豁然貫通焉, 則眾物之表裏精粗無不到, 而吾心之全體大用無不明矣. 此謂物格, 此謂知之至也.」)&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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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子曰: 「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無情者不得盡其辭, 大畏民志. 此謂知本. &lt;br /&gt;
|⑪所謂齊其家在修其身者: 人之其所親愛而辟焉, 之其所賤惡而辟焉, 之其所畏敬而辟焉, 之其所哀矜而辟焉, 之其所敖惰而辟焉. 故好而知其惡, 惡而知其美者, 天下鮮矣! 故諺有之曰: 「人莫知其子之惡, 莫知其苗之碩.」 此謂身不修不可以齊其家. &lt;br /&gt;
|⑩所謂修身在正其心者: 身&amp;lt;當作心&amp;gt;有所忿懥, 則不得其正; 有所恐懼, 則不得其正; 有所好樂, 則不得其正; 有所憂患, 則不得其正.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此謂修身在正其心. &lt;br /&gt;
|④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謙, 故君子必愼其獨也. 小人閒居爲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后厭然揜其不善, 而著其善. 人之視已, 如見其肺肝, 然則何益矣?  此謂誠於中, 形於外, 故君子必愼其獨也. 曾子曰: 「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富潤屋, 德潤身, 心廣體胖, 故君子必誠其意.&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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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所謂修身在正其心者: 身有所忿懥, 則不得其正; 有所恐懼, 則不得其正; 有所好樂, 則不得其正; 有所憂患, 則不得其正.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此謂修身在正其心. &lt;br /&gt;
|⑫所謂治國必先齊其家者, 其家不可教而能教人者, 無之. 故君子不出家而成教於國: 孝者, 所以事君也; 弟者, 所以事長也; 慈者, 所以使眾也. 《康誥》曰: 「如保赤子」, 心誠求之, 雖不中不遠矣. 未有學養子而後嫁者也! 一家仁, 一國興仁; 一家讓, 一國興讓; 一人貪戾, 一國作亂. 其機如此. 此謂一言僨事, 一人定國. 堯、舜率天下以仁, 而民從之; 桀、紂率天下以暴, 而民從之. 其所令反其所好, 而民不從. 是故君子有諸己而後求諸人, 無諸己而後非諸人. 所藏乎身不恕, 而能喻諸人者, 未之有也. 故治國在齊其家. 《詩》云: 「桃之夭夭, 其葉蓁蓁; 之子于歸, 宜其家人.」 宜其家人, 而後可以教國人. 《詩》云: 「宜兄宜弟.」 宜兄宜弟, 而後可以教國人. 《詩》云: 「其儀不忒, 正是四國.」 其為父子兄弟足法, 而後民法之也. 此謂治國在齊其家. &lt;br /&gt;
|⑪所謂齊其&amp;lt;其字衍&amp;gt;家在脩其身者: 人之其所親愛而辟焉, 之其所賤惡而辟焉, 之其所畏敬而辟焉, 之其所哀矜而辟焉, 之其所敖惰而辟焉; 故好而知其惡, 惡而知其美者, 天下鮮矣; . 故諺有之曰: 「人莫知其子之惡, 莫知其苗之碩.」 此謂身不脩不可以齊其家. &lt;br /&gt;
|⑩所謂修身在正其心者: 身有所忿懥, 則不得其正; 有所恐懼, 則不得其正; 有所好樂, 則不得其正; 有所憂患, 則不得其正.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此謂修身在正其心.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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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⑪所謂齊其家在修其身者: 人之其所親愛而辟焉, 之其所賤惡而辟焉, 之其所畏敬而辟焉, 之其所哀矜而辟焉, 之其所敖惰而辟焉. 故好而知其惡, 惡而知其美者, 天下鮮矣! 故諺有之曰: 「人莫知其子之惡, 莫知其苗之碩.」 此謂身不修不可以齊其家. &lt;br /&gt;
|⑬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 上老老而民興孝, 上長長而民興弟, 上恤孤而民不倍, 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 所惡於上, 毋以使下; 所惡於下, 毋以事上; 所惡於前, 毋以先後; 所惡於後, 毋以從前; 所惡於右, 毋以交於左; 所惡於左, 毋以交於右. 此之謂絜矩之道. 《詩》云: 「樂只君子, 民之父母.」 民之所好好之, 民之所惡惡之, 此之謂民之父母. 《詩》云: 「節彼南山, 維石巖巖. 赫赫師尹, 民具爾瞻.」 有國者不可以不慎, 辟則為天下戮矣.&lt;br /&gt;
|⑫所謂治國必先齊其家者, 其家不可教而能教人者, 無之. 故君子不出家而成教於國: 孝者, 所以事君也; 弟者, 所以事長也; 慈者, 所以使眾也. 《康誥》曰: 「如保赤子」, 心誠求之, 雖不中不遠矣. 未有學養子而後嫁者也! 一家仁, 一國興仁; 一家讓, 一國興讓; 一人貪戾, 一國作亂. 其機如此. 此謂一言僨事, 一人定國. 堯、舜率天下以仁, 而民從之; 桀、紂率天下以暴, 而民從之. 其所令反其所好, 而民不從. 是故君子有諸己而後求諸人, 無諸己而後非諸人. 所藏乎身不恕, 而能喻諸人者, 未之有也. 故治國在齊其家. 《詩》云: 「桃之夭夭, 其葉蓁蓁; 之子于歸, 宜其家人.」 宜其家人, 而後可以教國人. 《詩》云: 「宜兄宜弟.」 宜兄宜弟, 而後可以教國人. 《詩》云: 「其儀不忒, 正是四國.」 其為父子兄弟足法, 而後民法之也. 此謂治國在齊其家. &lt;br /&gt;
|⑪所謂齊其家在修其身者: 人之其所親愛而辟焉, 之其所賤惡而辟焉, 之其所畏敬而辟焉, 之其所哀矜而辟焉, 之其所敖惰而辟焉. 故好而知其惡, 惡而知其美者, 天下鮮矣! 故諺有之曰: 「人莫知其子之惡, 莫知其苗之碩.」 此謂身不修不可以齊其家.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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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⑫所謂治國必先齊其家者, 其家不可教而能教人者, 無之. 故君子不出家而成教於國: 孝者, 所以事君也; 弟者, 所以事長也; 慈者, 所以使眾也. 《康誥》曰: 「如保赤子」, 心誠求之, 雖不中不遠矣. 未有學養子而後嫁者也! 一家仁, 一國興仁; 一家讓, 一國興讓; 一人貪戾, 一國作亂. 其機如此. 此謂一言僨事, 一人定國. 堯、舜率天下以仁, 而民從之; 桀、紂率天下以暴, 而民從之. 其所令反其所好, 而民不從. 是故君子有諸己而後求諸人, 無諸己而後非諸人. 所藏乎身不恕, 而能喻諸人者, 未之有也. 故治國在齊其家. 《詩》云: 「桃之夭夭, 其葉蓁蓁; 之子于歸, 宜其家人.」 宜其家人, 而後可以教國人. 《詩》云: 「宜兄宜弟.」 宜兄宜弟, 而後可以教國人. 《詩》云: 「其儀不忒, 正是四國.」 其為父子兄弟足法, 而後民法之也. 此謂治國在齊其家. &lt;br /&gt;
|⑤《詩》云: 「瞻彼淇澳, 菉竹猗猗. 有斐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瑟兮僩兮, 赫兮喧兮. 有斐君子, 終不可諠兮!」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 「瑟兮僩兮」者, 恂慄也; 「赫兮喧兮」者, 威儀也; 「有斐君子, 終不可諠兮」者, 道盛德至善, 民之不能忘也. 《詩》云: 「於戲前王不忘!」 君子賢其賢而親其親, 小人樂其樂而利其利, 此以沒世不忘也. &lt;br /&gt;
|⑬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 上老老而民興孝, 上長長而民興弟, 上恤孤而民不倍, 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 所惡於上, 毋以使下; 所惡於下, 毋以事上; 所惡於前, 毋以先後; 所惡於後, 毋以從前; 所惡於右, 毋以交於左; 所惡於左, 毋以交於右. 此之謂絜矩之道. 《詩》云: 「樂只君子, 民之父母.」 民之所好好之, 民之所惡惡之, 此之謂民之父母. 《詩》云: 「節彼南山, 維石巖巖. 赫赫師尹, 民具爾瞻.」 有國者不可以不慎, 辟則為天下戮矣.&lt;br /&gt;
|⑫所謂治國必先齊其家者, 其家不可教而能教人者, 無之. 故君子不出家而成教於國: 孝者, 所以事君也; 弟者, 所以事長也; 慈者, 所以使眾也. 《康誥》曰: 「如保赤子」, 心誠求之, 雖不中不遠矣. 未有學養子而後嫁者也! 一家仁, 一國興仁; 一家讓, 一國興讓; 一人貪戾, 一國作亂. 其機如此. 此謂一言僨事, 一人定國. 堯、舜率天下以仁, 而民從之; 桀、紂率天下以暴, 而民從之. 其所令反其所好, 而民不從. 是故君子有諸己而後求諸人, 無諸己而後非諸人. 所藏乎身不恕, 而能喻諸人者, 未之有也. 故治國在齊其家. 《詩》云: 「桃之夭夭, 其葉蓁蓁; 之子于歸, 宜其家人.」 宜其家人, 而後可以教國人. 《詩》云: 「宜兄宜弟.」 宜兄宜弟, 而後可以教國人. 《詩》云: 「其儀不忒, 正是四國.」 其為父子兄弟足法, 而後民法之也. 此謂治國在齊其家. &lt;br /&gt;
|-&lt;br /&gt;
|⑬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 上老老而民興孝, 上長長而民興弟, 上恤孤而民不倍, 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 所惡於上, 毋以使下; 所惡於下, 毋以事上; 所惡於前, 毋以先後; 所惡於後, 毋以從前; 所惡於右, 毋以交於左; 所惡於左, 毋以交於右. 此之謂絜矩之道. 《詩》云: 「樂只君子, 民之父母.」 民之所好好之, 民之所惡惡之, 此之謂民之父母. 《詩》云: 「節彼南山, 維石巖巖. 赫赫師尹, 民具爾瞻.」 有國者不可以不慎, 辟則為天下戮矣.&lt;br /&gt;
|⑨子曰: 「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無情者不得盡其辭, 大畏民志. 此謂知本. &lt;br /&gt;
|⑤《詩》云: 「瞻彼淇澳, 菉竹猗猗. 有斐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瑟兮僩兮, 赫兮喧兮. 有斐君子, 終不可諠兮!」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 「瑟兮僩兮」者, 恂慄也; 「赫兮喧兮」者, 威儀也; 「有斐君子, 終不可諠兮」者, 道盛德至善, 民之不能忘也. 《詩》云: 「於戲前王不忘!」 君子賢其賢而親其親, 小人樂其樂而利其利, 此以沒世不忘也. &lt;br /&gt;
|⑬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 上老老而民興孝, 上長長而民興弟, 上恤孤而民不倍, 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 所惡於上, 毋以使下; 所惡於下, 毋以事上; 所惡於前, 毋以先後; 所惡於後, 毋以從前; 所惡於右, 毋以交於左; 所惡於左, 毋以交於右. 此之謂絜矩之道. 《詩》云: 「樂只君子, 民之父母.」 民之所好好之, 民之所惡惡之, 此之謂民之父母. 《詩》云: 「節彼南山, 維石巖巖. 赫赫師尹, 民具爾瞻.」 有國者不可以不慎, 辟則為天下戮矣. &lt;br /&gt;
|-&lt;br /&gt;
|⑭《詩》云: 「殷之未喪師, 克配上帝. 儀監于殷, 峻命不易.」 道得眾則得國, 失眾則失國. 是故君子先慎乎德. 有德此有人, 有人此有土, 有土此有財, 有財此有用. 德者本也, 財者末也, 外本內末, 爭民施奪. 是故財聚則民散, 財散則民聚. 是故言悖而出者, 亦悖而入; 貨悖而入者, 亦悖而出. &lt;br /&gt;
|⑭《詩》云: 「殷之未喪師, 克配上帝. 儀監于殷, 峻命不易.」 道得眾則得國, 失眾則失國. 是故君子先慎乎德. 有德此有人, 有人此有土, 有土此有財, 有財此有用. 德者本也, 財者末也, 外本內末, 爭民施奪. 是故財聚則民散, 財散則民聚. 是故言悖而出者, 亦悖而入; 貨悖而入者, 亦悖而出. &lt;br /&gt;
|⑮《康誥》曰: 「惟命不于常!」 道善則得之, 不善則失之矣. 《楚書》曰: 「楚國無以為寶, 惟善以為寶.」 舅犯曰: 「亡人無以為寶, 仁親以為寶.」 《秦誓》曰: 「若有一个臣, 斷斷兮無他技, 其心休休焉, 其如有容焉. 人之有技, 若己有之; 人之彥聖, 其心好之, 不啻若自其口出. 實能容之, 以能保我子孫黎民, 尚亦有利哉! 人之有技, 媢嫉以惡之; 人之彥聖, 而違之俾不通. 實不能容, 以不能保我子孫黎民, 亦曰殆哉!」 唯仁人放流之, 迸諸四夷, 不與同中國, 此謂唯仁人為能愛人, 能惡人. 見賢而不能舉, 舉而不能先, 命也&amp;lt;作怠之誤也.&amp;gt;; 見不善而不能退, 退而不能遠, 過也. 好人之所惡, 惡人之所好, 是謂拂人之性, 災必逮夫身. 是故君子有大道, 必忠信以得之, 驕泰以失之. &lt;br /&gt;
|⑭《詩》云: 「殷之未喪師, 克配上帝. 儀監于殷, 峻命不易.」 道得眾則得國, 失眾則失國. 是故君子先慎乎德. 有德此有人, 有人此有土, 有土此有財, 有財此有用. 德者本也, 財者末也, 外本內末, 爭民施奪. 是故財聚則民散, 財散則民聚. 是故言悖而出者, 亦悖而入; 貨悖而入者, 亦悖而出. &lt;br /&gt;
|-&lt;br /&gt;
|⑮《康誥》曰: 「惟命不于常!」 道善則得之, 不善則失之矣. 《楚書》曰: 「楚國無以為寶, 惟善以為寶.」 舅犯曰: 「亡人無以為寶, 仁親以為寶.」 《秦誓》曰: 「若有一个臣, 斷斷兮無他技, 其心休休焉, 其如有容焉. 人之有技, 若己有之; 人之彥聖, 其心好之, 不啻若自其口出. 實能容之, 以能保我子孫黎民, 尚亦有利哉! 人之有技, 媢嫉以惡之; 人之彥聖, 而違之俾不通. 實不能容, 以不能保我子孫黎民, 亦曰殆哉!」 唯仁人放流之, 迸諸四夷, 不與同中國, 此謂唯仁人為能愛人, 能惡人. 見賢而不能舉, 舉而不能先, 命也; 見不善而不能退, 退而不能遠, 過也. 好人之所惡, 惡人之所好, 是謂拂人之性, 災必逮夫身. 是故君子有大道, 必忠信以得之, 驕泰以失之. &lt;br /&gt;
|⑮《康誥》曰: 「惟命不于常!」 道善則得之, 不善則失之矣. 《楚書》曰: 「楚國無以為寶, 惟善以為寶.」 舅犯曰: 「亡人無以為寶, 仁親以為寶.」 《秦誓》曰: 「若有一个臣, 斷斷兮無他技, 其心休休焉, 其如有容焉. 人之有技, 若己有之; 人之彥聖, 其心好之, 不啻若自其口出. 實能容之, 以能保我子孫黎民, 尚亦有利哉! 人之有技, 媢嫉以惡之; 人之彥聖, 而違之俾不通. 實不能容, 以不能保我子孫黎民, 亦曰殆哉!」 唯仁人放流之, 迸諸四夷, 不與同中國, 此謂唯仁人為能愛人, 能惡人. 見賢而不能舉, 舉而不能先, 命也; 見不善而不能退, 退而不能遠, 過也. 好人之所惡, 惡人之所好, 是謂拂人之性, 災必逮夫身. 是故君子有大道, 必忠信以得之, 驕泰以失之. &lt;br /&gt;
|⑭《詩》云: 「殷之未喪師, 克配上帝. 儀監于殷, 峻命不易.」 道得眾則得國, 失眾則失國. 是故君子先慎乎德. 有德此有人, 有人此有土, 有土此有財, 有財此有用. 德者本也, 財者末也, 外本內末, 爭民施奪. 是故財聚則民散, 財散則民聚. 是故言悖而出者, 亦悖而入; 貨悖而入者, 亦悖而出. &lt;br /&gt;
|⑮《康誥》曰: 「惟命不于常!」 道善則得之, 不善則失之矣. 《楚書》曰: 「楚國無以為寶, 惟善以為寶.」 舅犯曰: 「亡人無以為寶, 仁親以為寶.」 《秦誓》曰: 「若有一个臣, 斷斷兮無他技, 其心休休焉, 其如有容焉. 人之有技, 若己有之; 人之彥聖, 其心好之, 不啻若自其口出. 實能容之, 以能保我子孫黎民, 尚亦有利哉! 人之有技, 媢嫉以惡之; 人之彥聖, 而違之俾不通. 實不能容, 以不能保我子孫黎民, 亦曰殆哉!」 唯仁人放流之, 迸諸四夷, 不與同中國, 此謂唯仁人為能愛人, 能惡人. 見賢而不能舉, 舉而不能先, 命也; 見不善而不能退, 退而不能遠, 過也. 好人之所惡, 惡人之所好, 是謂拂人之性, 災必逮夫身. 是故君子有大道, 必忠信以得之, 驕泰以失之.&lt;br /&gt;
|-&lt;br /&gt;
|⑯生財有大道. 生之者眾, 食之者寡, 為之者疾, 用之者舒, 則財恒足矣. 仁者以財發身, 不仁者以身發財. 未有上好仁而下不好義者也, 未有好義其事不終者也, 未有府庫財非其財者也. 孟獻子曰: 「畜馬乘, 不察於雞豚; 伐冰之家, 不畜牛羊; 百乘之家, 不畜聚斂之臣. 與其有聚斂之臣, 寧有盜臣.」此謂國不以利為利, 以義為利也. 長國家而務財用者, 必自小人矣. 彼為善之, 小人之使為國家, 災害并至. 雖有善者, 亦無如之何矣! 此謂國不以利為利, 以義為利也. &lt;br /&gt;
|⑯生財有大道. 生之者眾, 食之者寡, 為之者疾, 用之者舒, 則財恒足矣. 仁者以財發身, 不仁者以身發財. 未有上好仁而下不好義者也, 未有好義其事不終者也, 未有府庫財非其財者也. 孟獻子曰: 「畜馬乘, 不察於雞豚; 伐冰之家, 不畜牛羊; 百乘之家, 不畜聚斂之臣. 與其有聚斂之臣, 寧有盜臣.」此謂國不以利為利, 以義為利也. 長國家而務財用者, 必自小人矣. 彼為善之, 小人之使為國家, 災害并至. 雖有善者, 亦無如之何矣! 此謂國不以利為利, 以義為利也. &lt;br /&gt;
|⑯生財有大道. 生之者眾, 食之者寡, 為之者疾, 用之者舒, 則財恒足矣. 仁者以財發身, 不仁者以身發財. 未有上好仁而下不好義者也, 未有好義其事不終者也, 未有府庫財非其財者也. 孟獻子曰: 「畜馬乘, 不察於雞豚; 伐冰之家, 不畜牛羊; 百乘之家, 不畜聚斂之臣. 與其有聚斂之臣, 寧有盜臣.」此謂國不以利為利, 以義為利也. 長國家而務財用者, 必自小人矣. 彼為善之, 小人之使為國家, 災害并至. 雖有善者, 亦無如之何矣! 此謂國不以利為利, 以義為利也. &amp;lt;一本云彼爲不善之小人使之爲國家&amp;gt;&lt;br /&gt;
|⑯生財有大道. 生之者眾, 食之者寡, 為之者疾, 用之者舒, 則財恒足矣. 仁者以財發身, 不仁者以身發財. 未有上好仁而下不好義者也, 未有好義其事不終者也, 未有府庫財非其財者也. &lt;br /&gt;
孟獻子曰: 「畜馬乘, 不察於雞豚; 伐冰之家, 不畜牛羊; 百乘之家, 不畜聚斂之臣. 與其有聚斂之臣, 寧有盜臣.」此謂國不以利為利, 以義為利也. 長國家而務財用者, 必自小人矣. 彼為善之, 小人之使為國家, 災害并至. 雖有善者, 亦無如之何矣! 此謂國不以利為利, 以義為利也. &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Wooya0902</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B%8C%80%ED%95%99</id>
		<title>대학</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B%8C%80%ED%95%99"/>
				<updated>2020-05-13T16:14:3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Wooya0902: 줄 넘김 추가&lt;/p&gt;
&lt;hr /&gt;
&lt;div&gt;=해제=&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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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본은 &amp;lt;사서장구집주대전&amp;gt;, &amp;lt;대학혹문&amp;gt;이다.&lt;br /&gt;
&lt;br /&gt;
=원문=&lt;br /&gt;
==讀大學法==&lt;br /&gt;
1.&amp;lt;br/&amp;gt;&lt;br /&gt;
朱子曰。語孟。隨事問答。難見要領。惟大學。是曾子述孔子說古人為學之大方。而門人又傳述&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轉述; 傳授; 傳說.&amp;lt;/ref&amp;gt;以明其旨。前後相因。體統都具。翫味此書。知得古人為學所向。却讀語孟。便易&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入。後面工夫雖多。而大體已立矣。&amp;lt;br/&amp;g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amp;lt;논어&amp;gt;와 &amp;lt;맹자&amp;gt;는 일에 따라 문답한 것이므로 핵심을 이해하기 어렵다. 오직 &amp;lt;대학&amp;gt;만은 증자가 공자께서 옛 분들이 학문한 큰 방법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조술하고 [증자의] 문인들이 다시 전술하여 그 뜻을 밝힌 것이어서, 앞뒤로 [맥락이] 서로 연결되고 체계가 모두 갖춰져 있으니, 이 책을 완미한다면 옛 분들의 학문적 지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amp;lt;논어&amp;gt;와 &amp;lt;맹자&amp;gt;를 읽는다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뒤에 공부가 비록 많지만, 큰 얼개는 이미 세워진 것이다.&amp;quot;&lt;br /&gt;
:○看這一書又自與看語孟不同。語孟中。只一項事。是一箇道理。如孟子說仁義處。只就仁義上說道理。孔子答顔淵以克己復禮。只就克己復禮上說道理。若大學。却只統說。論其功用之極。至於平天下。然天下所以平。却先須治國。國之所以治。却先須齊家。家之所以齊。却先須修身。身之所以修。却先須正心。心之所以正。却先須誠意。意之所以誠。却先須致知。知之所以至。却先須格物。&amp;lt;br/&amp;gt;&lt;br /&gt;
:이 책을 읽는 것은 &amp;lt;논어&amp;gt;나 &amp;lt;맹자&amp;gt;를 읽는 것과는 또 절로 다르다. &amp;lt;논어&amp;gt;와 &amp;lt;맹자&amp;gt;에서는 한 가지 사건이 하나의 도리일 뿐이니, 예를 들어 맹자께서 인의에 대해 말씀하신 부분은 그저 인의의 차원에서 도리를 말한 것이고, 공자께서 안연에게 '극기복례'라고 대답해주신 부분은 그저 '극기복례'의 차원에서 도리를 말씀하신 것일 뿐이다. [그러나] &amp;lt;대학&amp;gt;은 統說(한 텍스트가 하나의 체계를 설명)일 뿐이다. 최종적 공효를 말한다면 '평천하'에 이르지만, 천하가 평안하기 위해서는 먼저 '치국'해야 하고, 나라가 다스려지기 위해서는 먼저 '제가'해야 하며, 집안이 가지런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수신'해야 하고, 자신이 수양되기 위해서는 먼저 '정심'해야 하며, 마음을 바루기 위해서는 먼저 '성의'해야 하고, 뜻을 진실되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치지'해야 하며, 앎을 지극하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격물'해야 한다. &lt;br /&gt;
&lt;br /&gt;
:○大學。是為學綱目。先讀大學。立定綱領。他書皆雜說在裏許。通得大學了。去看他經。方見得此是格物致知事。此是誠意正心事。此是修身事。此是齊家治國平天下事。&amp;lt;br/&amp;gt;&lt;br /&gt;
:&amp;lt;대학&amp;gt;은 학문의 綱目(큰 줄기와 세목)이다. 먼저 &amp;lt;대학&amp;gt;을 읽어 강령을 강령(큰 줄기)를 굳게 세우고 나면, 다른 책들은 모두 그 안의 여러 설일 뿐이다. &amp;lt;대학&amp;gt;에 통달하고 나서 다른 경전을 보아야 비로소 '이건 격물치지의 일이고, 이건 성의정심의 일이며, 이건 수신의 일이고, 이건 제가치국평천하의 일'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今且熟讀大學作間架。却以他書。塡補去。&amp;lt;br/&amp;gt;&lt;br /&gt;
:지금 우선 &amp;lt;대학&amp;gt;을 숙독하여 얼개를 세우고, 다른 책으로 [세목을] 채워나가라.&lt;br /&gt;
&lt;br /&gt;
:○大學。是通言學之初終。中庸是指本原極致處。&amp;lt;br/&amp;gt;&lt;br /&gt;
:&amp;lt;대학&amp;gt;은 학문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전체적으로 말하고, &amp;lt;중용&amp;gt;은 궁극적인 본원을 가리킨다.&lt;br /&gt;
&lt;br /&gt;
:○問欲專看一書。以何為先。曰先讀大學。可見古人為學首末次第。不比他書。他書非一時所言。非一人所記。&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한 책만 집중해서 보고자 한다면, 무슨 책을 먼저 봐야합니까?&amp;quot; 말씀하셨다: &amp;quot;먼저 &amp;lt;대학&amp;gt;을 읽으면 옛 분들이 학문 하신 단계를 알 수 있으니, 다른 책이 비길 바가 아니다. 다른 책은 어느 한 시점에 말한 것도 아니고, 한 사람의 기록도 아니다.&amp;quot;&lt;br /&gt;
&lt;br /&gt;
2.&amp;lt;br/&amp;gt;&lt;br /&gt;
又曰。看大學。固是着逐句看去。也須先統讀傳文敎熟。方好&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0. 可以; 便於.&amp;lt;/ref&amp;gt;從頭仔細看。若專不識傳文大意。便看前頭亦難。&amp;lt;br/&amp;gt;&lt;br /&gt;
또 말씀하셨다: &amp;quot;&amp;lt;대학&amp;gt;을 읽을 때에는 진실로 구절마다 읽어나가야 하지만, 그래도 먼저 傳文을 통독해 익숙하게 해야 하니, 그래야 비로소 처음부터 자세하게 읽을 수 있다. 만일 傳文의 대의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면, 앞부분 읽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amp;quot; &lt;br /&gt;
&lt;br /&gt;
3.&amp;lt;br/&amp;gt;&lt;br /&gt;
又曰。嘗欲作一說。敎人只將大學一日去讀一遍。看他如何是大人之學。如何是小學。如何是明明德。如何是新民。如何是止於至善。日日如是讀。月來日去。自見所謂溫故而知新。須是知新。日日看得新。方得。却不是道理解&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8. 能够; 會.&amp;lt;/ref&amp;gt;新。但自家這箇意思。長長地新。&amp;lt;br/&amp;gt;&lt;br /&gt;
또 말씀하셨다: &amp;quot;전에 한 마디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저 &amp;lt;대학&amp;gt;을 하루에 한 번 읽게 해, &amp;lt;대학&amp;gt;에서 무엇이 '大人의 학문'이며, 무엇이 '소학'이며, 무엇이 '명명덕'이며, 무엇이 '신민'이며, 무엇이 '지어지선'인지 보게 하고자 하였다. 날마다 이처럼 읽어 시간이 흐르면 절로 이른바 '온고이지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반드시 새로운 것을 알아야 하니, 날마다 새로운 것을 읽어야 옳다. 도리가 새로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자신의 이 생각이 길이길이 새로워지는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讀大學初間也只如此讀後來也只如此讀。只是初間讀得。似不與自家相關。後來看熟。見許多說話。須著如此做。不如此做自不得。&amp;lt;br/&amp;gt;&lt;br /&gt;
:&amp;lt;대학&amp;gt;을 읽을 때 처음에도 이렇게 읽고 나중에도 이렇게 읽으라. 처음에 읽고는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 같겠지만, 나중에 읽는 것이 익숙해지고 나면 여러 말이 이렇게 해야 하거나 절로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음을(여러 말대로 해야 하거나 절로 여러 말대로 하지 않을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lt;br /&gt;
&lt;br /&gt;
:○讀書。不可貪多。當且以大學為先逐段熟讀精思。須令了了分明。方可改讀後段。看第二段。却思量前段。令文意連屬&amp;lt;sub&amp;gt;音燭。&amp;lt;/sub&amp;gt;却不妨。&amp;lt;br/&amp;gt;&lt;br /&gt;
:책을 읽을 때 많이 읽기를 탐해서는 안 된다. 마땅히 우선 &amp;lt;대학&amp;gt;을 우선으로 해서 단락마다 자세히 읽으며 정밀히 생각해보아야 한다. 명명백백하게 이해하고서야 다음 단락을 읽어야 하고, 두 번째 단락을 읽을 때 앞 단락을 생각해 문의가 연결되게 해야 문제가 없을 것이다.&lt;br /&gt;
&lt;br /&gt;
:○問大學稍通。方要讀論語。曰且未可。大學稍通。正好着&amp;lt;sub&amp;gt;陟略反。下同&amp;lt;/sub&amp;gt;心精讀。前日讀時。見得前未見得後面。見得後未見得前面。今識得大綱體統。正好熟看。讀此書。功深則用博。昔尹和靖見伊川半年。方得大學西銘看。今人半年。要讀多少書。某且要人讀此是如何。緣此書却不多。而規模周備。凡讀書。初一項。須著十分工夫了。第二項。只費得八九分工夫。第三項。便只費得六七分工夫。少間讀漸多。自通貫他書。自著不得多工夫。&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amp;lt;대학&amp;gt;은 조금 알겠으니, 이제 &amp;lt;논어&amp;gt;를 읽으려고 합니다.&amp;quot; 말씀하셨다: &amp;quot;아직 안 된다. &amp;lt;대학&amp;gt;을 조금 알게 되었다면, 이제는 집중해서 정독할 때다. 전에 읽었을 때에는 앞부분만 이해하고 뒷부분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뒷부분만 이해하고 앞부분을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지금 [&amp;lt;대학&amp;gt;을 조금 알게 되어] 큰 얼개와 체계를 이해했다면, 이제는 숙독할 때다. 이 책을 읽는 공부가 깊어진다면 공효가 넓어질 것이다. 전에 윤화정은 이천 선생을 뵌 지 반 년이 돼서야 &amp;lt;대학&amp;gt;과 &amp;lt;서명&amp;gt;을 볼 수 있었다. 요즘 사람들은 반 년만에 많은 책을 읽으려고 한다. 나는 우선 사람들로 하여금 이 책만 읽게 하는데, 어째서일까? 이 책이 분량은 많지 않지만 체계를 빠짐없이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무릇 책을 읽을 때, 처음에는 100%로 노력해야 하지만, 두 번째에는 8-90% 노력만 필요로 하고, 세 번째에는 6-70%의 노력만 필요로 하니, [그렇게 되면] 잠깐 사이에 점차 많은 것을 읽게 되고 다른 책을 절로 이해하게 되어, 절로 많은 노력을 들이지 않게 될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看大學。俟見大指。乃及他書。但看時。須是更將大段分作小段。字字句句。不可容易放過。常時暗誦黙思反覆硏究。未上口時。須敎上口。未通透時。須敎通透。已通透後。便要純熟。直待&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直要.&amp;lt;/ref&amp;gt;不思索時。此意。常在心胸之間。驅遣不去&amp;lt;ref&amp;gt;1. 접미사. 동작의 결과가 화자로부터 떨어질 수 없는 뜻을 나타냄.&amp;lt;/ref&amp;gt;。方是。此一段了。又換一段看。令如此數段之後。心安理熟。覺工夫省力時。便漸得力也。&amp;lt;br/&amp;gt;&lt;br /&gt;
:&amp;lt;대학&amp;gt;을 읽을 때 요지를 이해하고서 다른 책을 읽어야 한다. 다만 [&amp;lt;대학&amp;gt;을] 읽을 때 다시 큰 단락을 작은 단락으로 나눠야 하고, 글자마다 구절마다 쉽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 평소에 암송하기도 하고 묵묵히 생각하기도 하며 반복해서 탐구해, 입에 붙지 않았을 때에는 입에 붙게 해야 하고, 완전히 이해되지 않았을 때에는 완전히 이해되기 해야 한다. 완전히 이해된 이후에는 숙달되게 해서, 사색하지 않을 때에도 이 뜻이 늘 마음에 있어 쫓아버릴 수 없어야 옳다. 이 단락이 끝나고서 다음 단락을 읽어 이와 같이 여러 단락을 하고 나면, 마음은 안정되고 도리는 익숙해질 것이니, 공부에 힘이 덜 든다고 느낄 때 점차 힘을 얻게 될 것이다.&lt;br /&gt;
&lt;br /&gt;
4.&amp;lt;br/&amp;gt;&lt;br /&gt;
又曰。大學是一箇腔子。而今却要塡敎&amp;lt;sub&amp;gt;平聲&amp;lt;/sub&amp;gt;他實。如他說格物。自家須是去格物後塡敎他實著。誠意亦然。若只讀得空殼子。亦無益也。&amp;lt;br/&amp;gt;&lt;br /&gt;
또 말씀하셨다: &amp;quot;&amp;lt;대학&amp;gt;은 腔子이니, 지금 그것을 메워 충실하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amp;lt;대학&amp;gt;에서 '격물'을 말하면, 스스로 '격물' 뒤에서 메워 그것을 채워야 한다. '성의'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그저 빈 껍데기만 읽는다면 역시 무익할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讀大學。豈在看他言語。正欲驗之於心如何。如好好色惡惡臭。試驗之吾心。果能好善惡惡如此乎。閒居為不善。是果有此乎。一有不至。則勇猛奮躍不已。必有長&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進。今不知如此。則書自書我自我。何益之有。&amp;lt;br/&amp;gt;&lt;br /&gt;
:&amp;lt;대학&amp;gt;을 읽는 [관건이] 어찌 그 문장을 읽는 데 달려있겠는가? 다만 내 마음에 어떠한지 증험해보려는 것이다. [&amp;lt;대학&amp;gt;에서] '아름다운 여색을 좋아하듯, 악취를 싫어하듯이 한다'&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傳6章. 所謂誠其意者：毋自欺也，如惡惡臭，如好好色，此之謂自謙，故君子必慎其獨也！&amp;lt;/ref&amp;gt;고 하는데, [이것을] 한 번 자기 마음에 증험해보면 과연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기를' 이처럼 할 수 있는가? [&amp;lt;대학&amp;gt;에서 '소인은] 혼자 있을 때 불선한 짓을 한다'&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傳6章. 小人閒居為不善，無所不至。&amp;lt;/ref&amp;gt;고 하는데, 과연 [나에게] 이런 점이 있는가? 하나라도 지극하지 못한 점이 있으면 용맹하게 분발하기를 그치지 않아야 반드시 장구적인 진전이 있을 것이다. 만일 이와 같음을 알지 못한다면 책은 책이고 나는 나일 것이니, 무슨 보탬이 있겠는가?&lt;br /&gt;
&lt;br /&gt;
5.&amp;lt;br/&amp;gt;&lt;br /&gt;
又曰。某一生。只看得這文字透。見得前賢所未到&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8. 知; 覺.&amp;lt;/ref&amp;gt;處。溫公作通鑑。言平生精力。盡在此書。某於大學亦然。先須通此。方可讀他書。&amp;lt;br/&amp;gt;&lt;br /&gt;
또 말씀하셨다: &amp;quot;나는 일생토록 이 글을 철저하게 읽어 이전 현인들이 알지 못했던 바를 알게 되었다. 사마온공은 &amp;lt;자치통감&amp;gt;을 짓고서 '평생의 정력이 모두 이 책에 있다'고 말했는데, 내가 &amp;lt;대학&amp;gt;에 있어서 역시 그러하다. 먼저 이 책에 통달하고서 다른 책을 봐야 한다.&amp;quot;&lt;br /&gt;
&lt;br /&gt;
6.&amp;lt;br/&amp;gt;&lt;br /&gt;
又曰。伊川舊日。敎人先看大學。那時。未解說。而今有註解。覺大段分曉了。只在仔細看。&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4 &amp;lt;대학1&amp;gt; 伊川舊日教人先看大學，那時未有解說，想也看得鶻突。而今看注解，覺大段分曉了，只在子細去看。&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또 말씀하셨다: &amp;quot;이천 선생께서 전에 사람들로 하여금 먼저 &amp;lt;대학&amp;gt;을 읽게 하셨지만 그때에는 [&amp;lt;대학&amp;gt;을] 풀이하지 않으셨다. 지금은 [이천 후학의] 주해가 있어 [의미가] 상당히 밝혀졌다고 생각하니, 그저 자세하게 읽는 데 달렸을 뿐이다.&amp;quot;&lt;br /&gt;
&lt;br /&gt;
7.&amp;lt;br/&amp;gt;&lt;br /&gt;
又曰。看大學。且逐章理會。先將本文念得。次將章句來解本文。又將或問來參章句。須逐一令&amp;lt;sub&amp;gt;平聲。下同&amp;lt;/sub&amp;gt;記得。反覆尋究。待他浹洽。旣逐段曉得。却統看溫尋過。&amp;lt;br/&amp;gt;&lt;br /&gt;
또 말씀하셨다: &amp;quot;&amp;lt;대학&amp;gt;을 볼 때 우선 장마다 이해해야 한다. 먼저 본문을 생각해보고서 다음으로 장구로 본문을 해석해보고, 다시 &amp;lt;혹문&amp;gt;으로 장구에 참조해보라. [그리고 나서] 하나하나 기억나게 하고 반복 탐구해 그것이 [마음에] 젖어들고 나서, 단락마다 이해되면, 전체적으로 읽으며 복습해보라.&amp;quot;&lt;br /&gt;
&lt;br /&gt;
8.&amp;lt;br/&amp;gt;&lt;br /&gt;
又曰。大學一書有正經有章句有或問。看來看去。不用或問。只看章句便了。久之又只看正經便了。又久之自有一部大學在我胸中。而正經亦不用矣。然不用某許多工夫。亦看某底不出。不用聖賢許多工夫。亦看聖賢底不出。&amp;lt;br/&amp;gt;&lt;br /&gt;
또 말씀하셨다: &amp;quot;&amp;lt;대학&amp;gt; 한 텍스트에는 正經(경전 원문), &amp;lt;章句&amp;gt;, &amp;lt;或問&amp;gt;이 있다. 여러 번 읽다보면 &amp;lt;혹문&amp;gt;은 필요하지 않고 &amp;lt;장구&amp;gt;만 읽어도 될 것이며, [읽기가] 오래되면 다시 경전 원문만 읽어도 될 것이다. [읽기가] 더 오래되어 저절로 &amp;lt;대학&amp;gt; 한 부가 마음속에 있게 되면, 경전 원문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많은 공부를 하지 않으면 내 것을 알 수 없고, 성현의 많은 공부를 하지 않으면 성현의 것을 알 수 없을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9.&amp;lt;br/&amp;gt;&lt;br /&gt;
又曰。大學解本文未詳者。於或問中詳之。且從頭逐句理會。到不通處却看。或問乃註脚之註脚。&amp;lt;br/&amp;gt;&lt;br /&gt;
또 말씀하셨다: &amp;quot;&amp;lt;대학&amp;gt;에서 본문을 해석하다가 자세하지 않은 것은 &amp;lt;혹문&amp;gt; 가운데 상세히 설명하였다. 앞으로 처음부터 구절마다 이해하다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만나면 읽어보라. &amp;lt;혹문&amp;gt;은 바로 '주석의 주석'이다.&amp;quot;&lt;br /&gt;
&lt;br /&gt;
:○某解書不合太多。又先準備學者為&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他設疑說了。所以致得學者看得容易&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了。&amp;lt;br/&amp;gt;&lt;br /&gt;
:나는 책을 해설할 때 설명을 너무 많이 해서는 안 되지만, 그래도 배우는 자들이 그에 대해 의심할 것을 먼저 대비해 설명해서 배우는 자들이 쉽게 볼 수 있게 했다.&lt;br /&gt;
&lt;br /&gt;
:○人只說某說大學等不略說使人自致思。此事大不然。人之為學。只爭箇肯與不肯耳。他若不肯向&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9. 介詞. 對; 與. 表示動作的對象.&amp;lt;/ref&amp;gt;這裏。略亦不解致思。他若肯向此一邊。自然有味。愈詳愈有味。&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18 &amp;lt;주자13/훈문인4&amp;gt;又言：「大學等書，向來人只說某說得詳，如何不略說，使人自致思？此事大不然。人之為學，只是爭箇肯不肯耳。他若無得，不肯向這邊，略亦不解致思；他若肯向此一邊，自然有味，愈詳愈有意味。」&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사람들은 그저 내가 '&amp;lt;대학&amp;gt; 등에 대해 설명할 때, 간략하게 설명하지 않아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을 다하지 못하게 한다(상세하게 설명해 해석의 여지를 좁힌다)'고만 말하는데, 이는 전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학문함은 그저 긍정하냐 긍정하지 않냐를 따질 뿐이다. 그가 만약 이쪽에 대해 긍정하지 않는다면, 간략하게 설명하더라도 생각을 다하지 못하겠지만, 그가 만일 이쪽에 대해 긍정한다면 절로 재미가 있어, 설명이 상세할수록 재미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大學章句序==&lt;br /&gt;
1.&amp;lt;br/&amp;gt;&lt;br /&gt;
大學之書。古之大學所以敎人之法&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6. 標准; 模式.&amp;lt;/ref&amp;gt;也。蓋自天降生民。則旣莫不與之以仁義禮智之性矣。&amp;lt;br/&amp;gt;&lt;br /&gt;
&amp;lt;대학&amp;gt;은 옛적 태학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던 교법(표준 텍스트)이다. 대개 하늘이 백성을 내리고 나서 이미 인의예지의 성을 주지 않은 경우는 없다.&lt;br /&gt;
:朱子曰。天之生民。各與以性。性非有物。只是一箇道理之在我者耳。仁則是箇溫和慈愛底道理。義則是箇斷制裁割底道理。禮則是箇恭敬撙節底道理。智則是箇分別是非底道理。凡此四者。具於人心。乃是性之本體。&amp;lt;br/&amp;g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하늘이 백성을 낳을 때 각각 性을 부여했다. 性은 물건이 아니라 그저 나에게 있는 도리일 뿐이다. 인은 온화하고 자애로운 도리이고, 의는 판단하고 제재하는 도리이며, 예는 공경하고 절약하는 도리이고, 지는 시비를 분별하는 도리이다. 무릇 이 네 가지는 사람의 마음에 갖춰져 있으니, 바로 성의 본모습(本體)이다.&amp;quot;&lt;br /&gt;
:○雲峯胡氏曰。朱子四書。釋仁曰心之德。愛之理。義曰心之制。事之宜。禮曰天理之節文。人事之儀則。皆兼體用。獨智字未有明釋。嘗欲竊取朱子之意以補之。曰智則心之神明。所以妙衆理而宰萬物者也。番易沈氏云。智者。涵天理動靜之機。具人事是非之鑑。&amp;lt;br/&amp;gt;&lt;br /&gt;
:운봉 호씨가 말했다: &amp;quot;주자의 &amp;lt;사서&amp;gt;에서 인은 '마음의 덕이자 사랑의 이치'라고 하고, 의는 '마음의 제재이자 일의 마땅함'이라 하며, 예는 '천리의 절문이며 인사의 의칙'이라고 하니, 모두 體用을 겸한다. [그런데] 유독 智자에만 분명한 해석이 없다. 전에 주자의 생각을 삼가 취해 보충하려고 했다: '智는 마음의 신명이니, 뭇 이치를 신묘하게 [갖추고서]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 파양 심씨가 말하길: '智라는 것은 天理動靜의 기틀을 포함하고, 인사의 시비를 [비추는] 거울을 갖추고 있다.'라고 하였다.&amp;quot;&lt;br /&gt;
:○新安陳氏曰。書云。惟皇上帝。降衷于下民。若有恒性。六經言性自此始。謂天降生民而與之以性。亦本書之意而言。&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amp;lt;서경&amp;gt;에서 말하길: '위대한 상제께서 백성들에게 속마음(衷)을 내려주셔서 순히 변치 않는 性을 두셨다'&amp;lt;ref&amp;gt;&amp;lt;서경&amp;gt; 탕고&amp;lt;/ref&amp;gt;고 하니, 육경에서 性을 말하는 것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amp;lt;대학장구서&amp;gt;에서] '하늘이 백성을 내리고 나서 性을 주었다'고 말한 것 역시 &amp;lt;서경&amp;gt;의 뜻에 근거해 말한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然其氣質之稟。或不能齊。是以不能皆有以知其性之所有而全之也。&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품수받은 기질이 혹 일정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性에 있는 [인의예지를] 알고서 이를 온전히 할 수는 없다.&lt;br /&gt;
:新安陳氏曰。性之所有。卽仁義禮智是也。性無智愚賢不肖之殊。惟氣有淸濁。淸者能知。而濁者不能知。故不能皆知。質有粹駁。粹者能全。而駁者不能全。故不能皆全。知性之所有屬知。全性之所有屬行。知行二者。該盡一部大學。意已寓於此矣。&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지닌 性'은 곧 인의예지가 이것이다. 性에는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현명한 자와 못난 자의 차이가 없고, 오직 氣에 맑고 탁함의 차이가 있어서, 기가 맑은 자는 지닌 성을 알 수 있지만, 기가 탁한 자는 알 수 없다. 質에는 순수하고 잡박함의 차이가 있어, 質이 순수한 자는 [자신의 성을] 온전히 할 수 있지만, 잡박한 자는 온전히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온전히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닌 성을 아는 것은 앎(知)에 속하고, 지닌 성을 온전히 하는 것은 실천(行)에 속한다. 앎과 실천(知行) 두 가지는 &amp;lt;대학&amp;gt; 한 부에 완비되어 있으니, 그 의미가 이미 여기에 깃들여져 있다.&amp;quot;&lt;br /&gt;
&lt;br /&gt;
一有聰明睿智。能盡其性者。出於其間。則天必命之。以為億兆之君師。使之治&amp;lt;sub&amp;gt;平聲下治人同&amp;lt;/sub&amp;gt;而敎之。以復其性。&amp;lt;br/&amp;gt;&lt;br /&gt;
총명예지를 갖추고서 자신의 성을 다할 수 있는 자가 혹 한 명이라도 그 사이에서 나오면, 하늘은 반드시 그에게 명하여 뭇 백성의 임금이자 스승(君師)으로 삼아 그로 하여금 백성들을 다스리고 가르쳐 자신의 성을 회복하게(자신의 본성으로 돌아가게) 하였다.&lt;br /&gt;
:問何處見得天命處。朱子曰。此也如何知得。只是才生得一箇恁地底人。定是為億兆之君師。便是天命之也。他旣有許多氣魄才德。決不但已&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僅此而已. 謂不復深究或就此了事.&amp;lt;/ref&amp;gt;。必統御億兆之衆。人亦自是歸他。如三代已前。聖人都是如此。至孔子方不然。雖不為帝王。然也閑他不得。也做出許多事來。以敎天下後世。是亦天命也。&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어디에서 천명을 볼 수 있습니까?&amp;quo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이것을 또 어찌 알겠느냐? 그저 이런 사람을 낳자마자 반드시 뭇 백성의 임금이자 스승으로 삼는 것, 이것이 '하늘이 명한 것'이다. 그는 많은 기백과 재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반드시 뭇 백성을 통솔할 것이요, 사람들 또한 스스로 그에게 귀의할 것이니, 삼대 이전의 성인들은 모두 이와 같았다. 공자에 이르러 비로소 그러하지 못했다. 공자의 경우 비록 제왕으로 삼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를 내버려 둘 수 없었고, 그래도 수많은 일을 해내 천하 후세를 가르치게 하셨으니, 이 또한 천명이다.&amp;quot;&lt;br /&gt;
:○新安陳氏曰。聰明睿智。能盡其性者。是就淸濁粹駁不齊中。指出極淸極粹者言之。聰明睿智。生知之聖也。與知其性相應。能盡其性。安行之聖也。與全之相應。常人必先知其性。方可望以全其性。故於中下一而字。聖人合下生知安行。不待知而方全。故只平說。天必命之以為億兆君師。君以治之。師以敎之。變化其氣質。而復還其本性。以上四箇性字。須融貫看透。三代以前。聖賢之君。君師之責兼盡。三代以後。君道有略得之者。而師道則絶無矣。&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총명예지를 갖추고서 자신의 성을 다할 수 있는 자'는 기질의 청탁/수박이 고르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 지극히 맑고 지극히 순수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총명예지를 갖춘 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는(生知) 성인이니, '자신의 성을 안다'와 호응한다. '자신의 성을 다할 수 있는 자'는 편안히 여겨 행하는(安行) 성인이니, '온전히 한다'와 상응한다. 보통 사람들은 반드시 자신의 성을 알아야 비로소 자신의 성을 온전히 하기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운데에 '而'자를 두었다. 성인은 원래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편안히 여겨 행하니, 보통 사람들처럼 자신의 성을 알고서 비로소 온전히 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다만 평이하게 말했다. 하늘은 반드시 그에게 명하여 뭇 백성의 임금이자 스승이 되게 하여, 임금의 자격으로 그들을 다스리고, 스승의 자격으로 그들을 가르쳐 기질을 변화시켜 자신의 본성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이상 네 번의 性자(仁義禮智之性, 知其性之所有, 能盡其性, 復其性)를 반드시 일관하여 철저히 읽어야 한다. 삼대 이전의 성현이었던 임금들은 임금과 스승의 책임을 모두 지극히 하셨지만, 삼대 이후에는 임금의 도(君道)의 경우에는 이를 대략 얻은 자는 있었지만 스승의 도(師道)의 경우에는 [이를 대략이라도 얻은 자가] 전혀 없었다.&amp;quot;&lt;br /&gt;
&lt;br /&gt;
此伏羲神農黃帝堯舜。所以繼天立極。而司徒之職。典樂之官。所由設也。&amp;lt;br/&amp;gt;&lt;br /&gt;
이것이 복희·신농·황제·요·순이 하늘의 뜻을 잇고 법도를 세운 까닭이며, 사도의 직책과 전악의 관직이 설치된 이유이다.&lt;br /&gt;
:書舜典。帝曰。契。汝作司徒。敬敷五敎在寬。又曰。夔。命汝典樂。敎冑子。&amp;lt;br/&amp;gt;&lt;br /&gt;
:&amp;lt;서경&amp;gt; &amp;lt;순전&amp;gt;에 &amp;quot;요임금께서 말씀하셨다: '설아! 너는 사도가 되어 공경히 五敎를 펴되, 너그럽게 하라.&amp;quot;고 하였고, 또 &amp;quot;기야! 너를 전악으로 임명하니, 冑子&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 古代稱帝王或貴族的長子.&amp;lt;/ref&amp;gt;를 가르쳐라.&amp;quot;라고도 하였다.&lt;br /&gt;
:○朱子曰。天只生得許多人物。與你&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4. 代詞. 泛指任何人.&amp;lt;/ref&amp;gt;許多道理。然天却自做不得。所以必得聖人為之脩道立敎。以敎化百姓。所謂裁成天地之道。輔相天地之宜是也。&amp;lt;br/&amp;g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하늘은 그저 수많은 인물을 낳고 모든 사람에게 많은 도리를 부여한다. 그러나 하늘은 스스로 작용할 수 없으므로, 반드시 성인을 얻어 그로 하여금 도를 닦고 가르침을 세워 백성을 교화하게 했으니, 이른바 '천지의 도를 재단하고 이루며, 천지의 마땅함을 돕는다'&amp;lt;ref&amp;gt;&amp;lt;주역&amp;gt; 태괘 대상전. 天地交泰，后以財成天地之道，輔相天地之宜，以左右民。&amp;lt;/ref&amp;gt;는 것이 이것이다.&amp;quot;&lt;br /&gt;
:○古者敎法。禮樂射御書數。不可闕一。就中樂之敎尤親切。夔敎冑子。只用樂。大司徒之職。也是用樂。蓋是敎人朝夕從事於此物。束得心長在這上面。蓋為樂有節奏。學他底。急也不得。慢也不得。久之都換了他情性。&amp;lt;br/&amp;gt;&lt;br /&gt;
:과거의 교법(교과 과정)인 육예(禮樂射御書數)는 하나라도 빠뜨려서는 안 되는데, 그 가운데 음악의 가르침은 더욱 친절하다. 夔가 冑子를 가르칠 때 단지 음악을 사용했고, 대사도의 직임도 음악을 사용했으니, 대개 사람들로 하여금 하루 종일 이것에 종사하게 해서 마음을 단속해 오래토록 여기에 있게 한 것이다. 대개 음악을 연주하는 데에는 리듬(節奏)이 있으니, 그것을 배울 때에는 급해도 안 되고 느슨해서도 안 된다. [음악을 배우는 것이] 오래되면 그들의 情性을 모두 바꿀 것이다.&lt;br /&gt;
:○雲峯胡氏曰。司徒之職。統敎百姓。典樂之官。專敎冑子。&amp;lt;br/&amp;gt;&lt;br /&gt;
:운봉 호씨가 말했다: &amp;quot;사도의 직책은 백성을 통솔하고 가르치는 것이며, 전악의 관리는 오로지 冑子만 가르친다.&amp;quot;&lt;br /&gt;
:○新安陳氏曰。上文說其理。此實之以其事。天生民而賦與之。不能敎之。聖君代天立標準。以主敎於上。而設司徒及典樂之官。以掌敎於下。此時敎已立。而敎之法未備。學之名未聞也。&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앞의 글에서 이치를 말했다면, 여기서는 일로 실증한다. 하늘은 백성을 낳고 [성을] 부여하지만, [직접] 가르치지는 못한다. 성군이 하늘을 대신해 표준을 세워 위에서 가르침을 주관하고, 사도와 전악의 관직을 설치해 아래에서 가르침을 관장하게 했다. 이때에는 가르침이 이미 세워졌지만 교법(교육 제도)가 미비했고, '학교'라는 명칭이 아직 들리지 않았다.&amp;quot;&lt;br /&gt;
&lt;br /&gt;
2.&amp;lt;br/&amp;gt;&lt;br /&gt;
三代之隆。其法寖備。然後王宮國都。以及閭巷。莫不有學。人生八歲。則自王公以下。至於庶人之子弟。皆入小學。而敎之以灑&amp;lt;sub&amp;gt;上聲又去聲&amp;lt;/sub&amp;gt;掃&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應對進退之節。禮樂射御書數之文。&amp;lt;br/&amp;gt;&lt;br /&gt;
융성한 삼대에 그 법도가 차츰 갖춰진 연후에, 왕궁(천자의 도성)·국도(제후의 도성)에서 여항(그 외 지방)에 이르기까지 학교가 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사람이 태어나 8세가 되면 왕·공 이하로 서인의 자제에 이르기까지 모두 소학에 들어가게 해서 쇄소·응대·진퇴의 예절과 육예의 이름을 가르쳤다.&lt;br /&gt;
:朱子曰。古者小學。已自是聖賢坯樸&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坯墣] 亦作“坯璞”。 謂初具規模的事物；半成品。 &amp;lt;/ref&amp;gt;了。但未有聖賢許多知見。及其長也。令入大學。使之格物致知。長許多知見。&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7 &amp;lt;학1&amp;gt; 古者小學已自養得小兒子這裏定，已自是聖賢坯璞了，但未有聖賢許多知見。及其長也，令入大學，使之格物、致知，長許多知見。&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옛날에 소학을 [다니면] 이미 성현의 그릇(坯璞)이지만, 성현의 많은 지식(내용물)은 없다. 자라서 태학에 들어가게 해 격물치지하게 해 많은 지식을 기르는 것이다.&amp;quot;&lt;br /&gt;
:○番易齊氏曰。灑掃。內則所謂雞初鳴。灑掃室堂及庭。曲禮所謂。為長者糞。加帚箕上以袂拘而退。以箕自向而扱之之類是也。應對。內則所謂。在父母之所。有命之。應唯敬對。曲禮所謂。長者負劍辟咡詔之。&amp;lt;sub&amp;gt;負。置之於背。劍。挾之於旁。口耳之間曰咡。辟咡詔之。傾頭與語。&amp;lt;/sub&amp;gt;則揜口而對之類是也。進退。內則所謂。在父母之所。進退周旋愼齊。曲禮所謂。凡與客入者。每門讓於客之類是也。禮。習於度數之節文。所以敎之中也。樂。明於聲音之高下。所以敎之和也。射法。一弓挾四矢。驗其中否。以觀德行。御法。一車乘四馬。御者執轡。立於車上。欲調習不失驅馳之正也。書。書字之體。可以見心畫。數。算數之法。可以盡物變。周禮大司徒。所以敎萬民而賓興之者。始以六德。繼以六行。後及於六藝。非八歲以上者。所能盡究其事。不過使曉其名物而已。故上三者言節。有品節存焉。下六者言文。文者。名物之謂也。非其事也。&amp;lt;br/&amp;gt;&lt;br /&gt;
:파양 제씨가 말했다: &amp;quot;'쇄소'는 &amp;lt;내칙&amp;gt;의 이른바 '닭이 막 울거든 집과 뜰에 물을 뿌리고 쓴다'&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내칙&amp;gt; 凡內外，雞初鳴，咸盥漱，衣服，斂枕簟，灑掃室堂及庭，布席，各從其事。&amp;lt;/ref&amp;gt;, &amp;lt;곡례&amp;gt;의 이른바 '어른을 위해 청소하는 [예절은 반드시] 빗자루를 쓰레받기 위에 두고서 소매로 빗자루 앞을 막고 [쓸면서] 물러나 [먼지가 어른에게 이르지 않게 하며] 쓰레받기를 자신을 향하게 하여 쓸어담든다'&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곡례상&amp;gt; 凡為長者糞之禮，必加帚於箕上，以袂拘而退；其塵不及長者，以箕自鄉而扱之。&amp;lt;/ref&amp;gt;는 것 따위가 이것이다. '응대'는 &amp;lt;내칙&amp;gt;의 이른바 '부모·[시부모가 계신] 곳에서 명하시거든 길고 짧게(應·唯) 공경스럽게 대답한다'&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내칙&amp;gt; 在父母舅姑之所，有命之，應唯敬對。&amp;lt;/ref&amp;gt;, &amp;lt;곡례&amp;gt;의 이른바 '장자가 칼은 등에 진 듯, 칼을 찬 듯 입가에 대고 말씀하시거든, 입을 가리고 대답한다'&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곡례상&amp;gt; 長者與之提攜，則兩手奉長者之手。負劍辟咡詔之，則掩口而對。&amp;lt;/ref&amp;gt;&amp;lt;sub&amp;gt;'負'는 등에 지는 것이고, '劍'은 옆에 차는 것이다. 입과 귀 사이를 '咡'라고 하니, '辟咡詔之'는 머리를 숙여 그에게 말하는 것이다.&amp;lt;/sub&amp;gt;따위가 이것이다. '진퇴'는 &amp;lt;내칙&amp;gt;의 이른바 '부모·[시부모가 계신] 곳에서는 진퇴와 행동을 삼간다'&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내칙&amp;gt; 進退周旋慎齊。&amp;lt;/ref&amp;gt;, &amp;lt;곡례&amp;gt;의 이른바 '무릇 손님과 들어갈 때에는 문마다 손님에게 양보한다'&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곡례상&amp;gt; 凡與客入者，每門讓於客。&amp;lt;/ref&amp;gt;는 것 따위가 이것이다. '예'는 도수의 절차를 익히는 것이니, '中'을 가르치는 과정이고, '악'은 음악의 고하를 밝히는 것이니, '和'를 가르치는 과정이다. 활쏘는 법은 활 하나에 화살 네 개를 가지고서 적중 여부를 시험해 그의 덕행을 살피는 것이다. 수레 모는 법은 한 수레에 말 네 마리를 매고, 모는 사람이 고삐를 쥐고 수레 위에 서서 바른 운전법을 잃지 않기를 연습하려는 것이다. '서'는 글자 쓰는 체계이니, '心畫'&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指書面文字。  ▶ 漢 揚雄 《法言‧問神》： “言， 心聲也；書， 心畫也。 聲畫形， 君子小人見矣。” &amp;lt;/ref&amp;gt;를 볼 수 있고, '수'는 계산법이니, 사물의 변화를 다할 수 있다. &amp;lt;주례&amp;gt; &amp;lt;대사도&amp;gt;에 따르면, 만민을 가르치고 우대하는 것 방법은 육덕으로 시작하고 육행으로 이으며 육예에 미치는데,&amp;lt;ref&amp;gt;&amp;lt;주례&amp;gt; &amp;lt;지관사도&amp;gt; 以鄉三物教萬民而賓興之：一曰六德，知、仁、聖、義、忠、和；二曰六行，孝、友、睦、姻、任、恤；三曰六藝，禮、樂、射、御、書、數。&amp;lt;/ref&amp;gt; [육예는] 8세 이상인 [아이가] 능히 그(육예) 구체적 일을 모두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들로 하여금 그저 사물의 이름을 알게 할 뿐이다. 그러므로 앞의 세 가지(쇄소·응대·진퇴)에서는 '예절(灑掃應對進退之節)'이라고 말했으니 구체적 절차(品節)가 있는 것이요, 뒤의 여섯 가지에서는 '이름(禮樂射御書數之文)'이라고 말했으니, 文이라는 것은 사물의 이름을 말하니, 그 일이 아니다.&amp;quot;&lt;br /&gt;
:○勿軒熊氏曰。按大戴記保傅篇。古者年八歲。出就外舍。學小藝焉。履小節焉。束髮就大學。學大藝焉。履大節焉。註曰小學為庠門。一作虎闈。大學在王宮之東。束髮謂成童。尙書大傳曰。公卿之太子。元士之嫡子。年十三入小學。二十入大學。白虎通曰。八歲入小學。十五入大學。此太子之禮也。按年數互有不同。而朱子獨以白虎通為斷。&amp;lt;br/&amp;gt;&lt;br /&gt;
:물헌 웅씨가 말했다: &amp;quot;&amp;lt;대대례기&amp;gt; &amp;lt;보부&amp;gt;편에 '옛적에 8세가 되면 소학(外舍)에 가서 小藝를 배우고 小節을 실천한다. [成童이 되어] 상투를 묶으면(束髮) 태학에 가서 大藝를 배우고 大節을 실천한다'&amp;lt;ref&amp;gt;&amp;lt;대대례기&amp;gt; &amp;lt;보부&amp;gt; 古者年八歲而出就外舍，學小藝焉，履小節焉。束髮而就大學。學大藝焉，履大節焉。&amp;lt;/ref&amp;gt;고 하고, 그 주석에 '소학은 庠門&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 指學校。 &amp;lt;/ref&amp;gt;이니, 虎闈&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 古時國子學的代稱。 因其地在虎門之左， 故有是稱。 &amp;lt;/ref&amp;gt;라고도 한다. 태학은 왕궁의 동쪽에 있었다. 송발은 성동이다.'라고 하였으며, &amp;lt;상서&amp;gt; 대전에 이르길: '公卿의 태자와 元士의 적자가 13세가 되면 소학에 들어가고, 20세가 되면 태학에 들어간다'고 하고, &amp;lt;백호통&amp;gt;에 이르길: '8세에 소학에 들어가고, 15세에 태학에 들어가니, 이는 태자의 예이다'라고 했다. 살펴보건대, 입학연령이 서로 같지 않은데, 주자께서는 유독 &amp;lt;백호통&amp;gt;을 기준으로 판단하셨다.&amp;quot;&lt;br /&gt;
&lt;br /&gt;
及其十有五年。則自天子之元子衆子。以至公卿大夫元士之適&amp;lt;sub&amp;gt;音的&amp;lt;/sub&amp;gt;子。與凡民之俊秀。皆入大學。&amp;lt;br/&amp;gt;&lt;br /&gt;
15세가 되면 천자의 元子와 衆子로부터 공·경·대부·원사의 적자 및 뭇 백성 가운데 준수한 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태학에 들어가게 해서,&lt;br /&gt;
:新安陳氏曰。凡民惟賢者得入大學。不比&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3. 不可相比；不同於。 &amp;lt;/ref&amp;gt;小學。則無貴賤賢愚皆得入也。&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뭇 백성의 경우 오직 현명한 자만 태학에 들어갈 수 있었으니, 소학은 貴賤·賢愚와 관계없이 모두 들어갈 수 있었던 것과는 다르다.&amp;quot;&lt;br /&gt;
&lt;br /&gt;
而敎之以窮理正心修己治人之道。此又學校之敎。大小之節。所以分也。&amp;lt;br/&amp;gt;&lt;br /&gt;
窮理·正心·修己·治人의 도를 가르쳤다. 이것은 또한 학교의 가르침과 대학·소학의 제도가 구분되는 방식이다.&lt;br /&gt;
:新安陳氏曰。三代有小學大學之敎法。未有書也。天子元子。繼世有天下。衆子建為諸侯。公卿大夫元士適子。將有國家之責。皆在所敎。民之俊秀。他日亦將用之。以佐理天下國家者也。窮理。知之事。正心以下。行之事。&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삼대에는 소학·태학의 교법이 있었지만 이 텍스트는 없었다. 천자의 원자는 대를 이어 천하를 소유하고, 중자는 제후로 세워진다. 공·경·대부·원사의 적자는 장자 국가를 다스릴 책무를 갖게 되니, 모두 가르침을 받아야 할 대상에 속한다. 준수한 백성 역시 훗날 등용되어 천하·국가를 다스리는 데 보좌하는 자이다. 궁리는 앎의 일이고, 정심 이하는 실천의 일이다.&amp;quot;&lt;br /&gt;
&lt;br /&gt;
3.&amp;lt;br/&amp;gt;&lt;br /&gt;
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以學校之設。其廣如此。敎之之術。&amp;lt;sub&amp;gt;術卽法也。&amp;lt;/sub&amp;gt;其次第節目之詳又如此。而其所以為敎。則又皆本之人君躬行心得之餘。不待求之民生日用彝倫之外。&amp;lt;br/&amp;gt;&lt;br /&gt;
저 학교를 설치함에 그 범위가 넓음이 이와 같고, 가르치는 법제의 순서나 절목이 상세함이 또 이와 같았는데, 가르침으로 삼았던 것은 또한 모두 임금이 몸소 실천하고 마음으로 깨닫는 것들에 근본하고, 백성들이 날마다 쓰는 도리 밖에 것은 필요로 하지 않았다.&lt;br /&gt;
:新安陳氏曰。上言學校施敎之法。此言君身為立敎之本。卽所謂為億兆君師繼天立極者也。躬行心得。謂躬行仁義禮智之道。心得仁義禮智之德。卽行道而有得於心也。彛倫。常理也。&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앞에서는 학교에서 교육하는 방식에 대해 말했고, 여기서는 임금 자신이 가르침을 세우는(즉 교육제도를 만듦과 동시에 교육의 본보기가 되는) 근본이 됨을 말했으니, 곧 이른바 '뭇 백성의 임금이자 스승이 되어 하늘을 잇고 법도를 세운다'는 것이다. '躬行心得'은 몸소 인의예지의 도리를 실천하고, 인의예지라는 덕을 마음으로 터득하는 것이니, 즉 도를 실천해 마음으로 터득하는 것이다. '彛倫'은 일상적인 도리이다.&amp;quot;&lt;br /&gt;
&lt;br /&gt;
是以當世之人無不學。其學焉者。無不有以知其性分&amp;lt;sub&amp;gt;去聲下同&amp;lt;/sub&amp;gt;之所固有。職分之所當為。而各俛&amp;lt;sub&amp;gt;音免&amp;lt;/sub&amp;gt;焉以盡其力。&amp;lt;br/&amp;gt;&lt;br /&gt;
이 때문에 당시 사람들 가운데 배우지 않았던 자가 없었고, [태학에서] 배웠던 자들 가운데 자신의 성에 본래부터 있었던 것과 직분상 마땅히 해야할 것을 알아서 각자 노력해 자신의 힘을 다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lt;br /&gt;
:雲峯胡氏曰。前說上之所以為敎。此說下之所以為學。&amp;lt;br/&amp;gt;&lt;br /&gt;
:운봉 호씨가 말했다: &amp;quot;앞에서는 윗사람이 가르치는 방식을 말했고, 여기서는 아랫사람이 배우는 방식을 말한다.&amp;quot;&lt;br /&gt;
:○新安陳氏曰。性分固有。卽仁義禮智。是理是體。職分當為。如子職分當孝。臣職分當忠之類。是事是用。知性分職分。是知之事。俛焉盡力。是行之事。與前知性之所有而全之相照應。&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性分固有'는 곧 인의예지이니, 理이자 體이다. '職分當為'는 자식의 직분은 마땅히 효도해야 하고, 신하의 직분은 마땅히 충성해야 하는 것 등이니, 事이자 用이다. '知性分職分'은 앎의 일이고, '俛焉盡力'은 실천의 일이니, 앞의 '知性之所有而全之'와 호응된다.&amp;quot;&lt;br /&gt;
&lt;br /&gt;
此古昔盛時所以治&amp;lt;sub&amp;gt;去聲下同&amp;lt;/sub&amp;gt;隆於上。俗美於下。而非後世之所能及也。&amp;lt;br/&amp;gt;&lt;br /&gt;
이것이 과거 성대했던 때에 위에서는 통치가 훌륭하고 아래에서는 풍속이 아름다웠던 까닭이니, 후세가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lt;br /&gt;
&lt;br /&gt;
4.&amp;lt;br/&amp;gt;&lt;br /&gt;
及周之衰。賢聖之君不作。學校之政不修。敎化陵夷。風俗頹&amp;lt;sub&amp;gt;徒回反&amp;lt;/sub&amp;gt;敗。時則有若孔子之聖。而不得君師之位以行其政敎。於是獨取先王之法。誦而傳之。以詔後世。&amp;lt;br/&amp;gt;&lt;br /&gt;
주 왕조가 쇠퇴하자 성현다운 임금이 흥기하지 않고 교육 정책이 닦이지 않아, 교화는 쇠퇴했고 풍속은 타락했다. 이 때 공자 같은 성인이 계셨지만 임금이자 스승으로서의 지위를 얻어 정치와 가르침을 행할 수 없으셨다. 이에 공자께서는 오직 선왕의 법도를 취해 이를 외고 전달해 후세에게 알려주셨다.&lt;br /&gt;
:新安陳氏曰。皇帝生當天地氣運盛時。所以達而在上。以身為敎。而道行於當世。孔子當天地氣運衰時。不免窮而在下。以言為敎。傳諸其徒。而道明於後世而已。&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황제가 살아있을 때에는 천지의 기운이 성대한 때를 만나 현달하여 임금의 자리에 있게 되었으므로, 몸소 가르침을 행해 도가 당시에 행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공자께서는 천지의 기운이 쇠한 때를 만나 곤궁하여 아랫자리에 있음을 면하지 못했으므로,  말로 가르침을 행해 제자들에게 전했고 도가 후세에나 밝혀질 수 있었을 뿐이다.&amp;quot; &lt;br /&gt;
&lt;br /&gt;
若曲禮少&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儀內則弟子職諸篇。固小學之支流餘裔&amp;lt;sub&amp;gt;餘制反&amp;lt;/sub&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곡례&amp;gt;·&amp;lt;소의&amp;gt;·&amp;lt;내칙&amp;gt;·&amp;lt;제자직&amp;gt; 등의 여러 편은 본래 소학의 지류이자 말단이지만,&lt;br /&gt;
:○番易齊氏曰。曲禮少儀內則。見禮記。弟子職。見管子。此四篇作於春秋時。三代小學之全法。僅存其一二。故曰支流餘裔。支流。水之旁出而非正流者。餘裔。衣裾之末也。&amp;lt;br/&amp;gt;&lt;br /&gt;
:파양 제씨가 말했다: &amp;quot;&amp;lt;곡례&amp;gt;·&amp;lt;소의&amp;gt;·&amp;lt;내칙&amp;gt;은 &amp;lt;예기&amp;gt;에 보이고, &amp;lt;제자직&amp;gt;은 &amp;lt;관자&amp;gt;에 보인다. 이 네 편은 춘추 시대에 지어졌다. 삼대 소학의 전체 교법 가운데 겨우 한두 가지만 보존되었으므로 '支流·餘裔'라고 한 것이다. '지류'는 물이 옆으로 흘러나와 바른 줄기가 아닌 것이고, '餘裔'는 옷자락 끝이다.&amp;quot;&lt;br /&gt;
&lt;br /&gt;
而此篇者。則因小學之成功。以著大學之明法。外有以極其規模之大。而內有以盡其節目之詳者也。&amp;lt;br/&amp;gt;&lt;br /&gt;
이 편(&amp;lt;대학&amp;gt;)은 소학에서 이룬 공부를 기반으로 태학의 밝은 교법을 드러내는 것이니, 밖으로는 規模의 큼을 지극히 하고, 안으로는 節目의 상세함을 다한다.&amp;quot;&lt;br /&gt;
:問外有以極其規模之大。內有以盡其節目之詳。朱子曰。這箇須先識得外面一箇規模如此大了。而內做工夫以實之。凡人為學。便當以[明]&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4 &amp;lt;대학1&amp;gt; 問：「外有以極其規模之大，內有以盡其節目之詳。」曰：「這丢須先識得外面一丢規模如此大了，而內做工夫以實之。所謂規模之大，凡人為學，便當以『明明德，新民，止於至善』，及『明明德於天下』為事，不成只要獨善其身便了。須是志於天下，所謂『志伊尹之所志，學顏子之所學也』。所以大學第二句便說『在新民』。」&amp;lt;/ref&amp;gt;明德新民止於至善。及明明德於天下為事。不成只要獨善其身便了。須是志於天下。所謂志伊尹之所志。學顔子之所學也。所以大學第二句。便說在新民。&amp;lt;br/&amp;gt;&lt;br /&gt;
:&amp;quot;外有以極其規模之大。內有以盡其節目之詳。&amp;quot;에 대해 물었다.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이는 반드시 밖의 규모가 이처럼 큼을 먼저 알고서 안으로 공부를 해 채워야 한다. 무릇 사람이 학문한다면 마땅히 '明明德'·'新民'·'止於至善'해서 '明明德於天下'함을 일삼아야지, 그저 자신만 선하게 해서는 안 된다.&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진심상&amp;gt; 9. 古之人，得志，澤加於民；不得志，脩身見於世。窮則獨善其身，達則兼善天下。&amp;lt;/ref&amp;gt; 반드시 천하에 뜻을 두어야 하니, 이른바 '이윤이 지향한 것을 지향하고, 안연이 배운 것을 배우라'&amp;lt;ref&amp;gt;&amp;lt;通書&amp;gt; &amp;lt;志學第十&amp;gt; 志伊尹之所志。學顔子之所學也。&amp;lt;/ref&amp;gt;는 것이다. 그러므로 &amp;lt;대학&amp;gt;의 두 번째 구절에서 '新民'을 설하고 있는 것이다.&amp;quot; (1. 공부 과정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공부의 공효는 사회/국가/천하에 미친다. 즉 전자가 節目之詳이고 후자가 規模之大이다.)&lt;br /&gt;
:○新安陳氏曰。規模之大。指三綱領。節目之詳。指八條目。孔子時。方有大學一章之經。&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規模之大'는 삼강령을 가리키고, '節目之詳'은 팔조목을 가리킨다. 공자 때가 돼서야 비로소 &amp;lt;대학&amp;gt; 1장의 경문이 있게 되었다.&amp;quot; (2. 삼강령이 대원칙이고, 팔조목이 그에 대한 구체적 실천 방법이다.  즉 전자가 規模之大이고 후자가  節目之詳이다.)&lt;br /&gt;
:○東陽許氏曰。規模節目。以三綱八條對言。則三綱為規模。八條為節目。謂八條卽三綱中事也。獨以八條言之。則平天下為規模。上七條為節目。平天下是大學之極功。然須是有上七條。節節做工夫。行至于極。然後可以天下平。&amp;lt;br/&amp;gt;&lt;br /&gt;
:동양 허씨가 말했다: &amp;quot;'規模'와 '節目'을 삼강령과 팔조목으로 대대해서 말하면, 삼강령이 '規模'이고 팔조목이 '節目'이니, 팔조목은 곧 삼강령 안의 일이다. 오직 팔조목만 말한다면 '平天下'가 '規模'가 되고, 앞의 일곱 조목은 '節目'이 된다. '平天下'는 &amp;lt;대학&amp;gt;의 궁극적 공효지만, 앞의 일곱 조목마다 공부해서 그 실천이 지극한 경지에 이른 연후에야 천하가 평안해질 수 있다.&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4 &amp;lt;대학1&amp;gt; 明德，新民，便是節目；止於至善，便是規模之大。(3. 止於至善이 궁극적 목표이고,  明德，新民은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두 단계의 세부 과정이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三千之徒。蓋莫不聞其說。而曾氏之傳獨得其宗。於是作為傳&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義。以發其意。&amp;lt;br/&amp;gt;&lt;br /&gt;
[공자의] 삼천 제자 가운에 이러한 설을 듣지 못한 자가 없었지만, 증자가 전수받은 것만이 그 종지를 얻었다. 이에 [&amp;lt;대학&amp;gt;의] 傳義(文義에 대한 해설)를 지어 공자의 뜻을 드러냈다.&amp;lt;ref&amp;gt;義와 意의 차이: &amp;lt;논어집주&amp;gt; &amp;lt;讀論語孟子法&amp;gt; 程子曰：「凡看文字，須先曉其文義，然後可以求其意。未有不曉文義而見意者也。」&amp;lt;/ref&amp;gt;&lt;br /&gt;
:曾子方有今大學之傳。以發明孔子之意。&amp;lt;br/&amp;gt;&lt;br /&gt;
:증자가 비로소 오늘날의 &amp;lt;대학&amp;gt;의 傳을 두어 공자의 뜻을 발명했다.&lt;br /&gt;
&lt;br /&gt;
及孟子沒而其傳泯&amp;lt;sub&amp;gt;音閔&amp;lt;/sub&amp;gt;焉。則其書雖存。而知者鮮&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矣。&amp;lt;br/&amp;gt;&lt;br /&gt;
맹자가 돌아가시고 나서 전수가 민멸되어, &amp;lt;대학&amp;gt; 텍스트는 비록 남아있었지만 [그 의미를] 아는 자는 드물었다.&lt;br /&gt;
&lt;br /&gt;
5.&amp;lt;br/&amp;gt;&lt;br /&gt;
自是以來。俗儒記誦詞章之習。其功倍於小學而無用。&amp;lt;br/&amp;gt;&lt;br /&gt;
이때부터 속유들이 記誦·詞章을 익히는 공력이 소학에 배가 되었으나 쓸모가 없었다.&lt;br /&gt;
:朱子曰。自聖學不傳。為士者不知學之有本。而所以求於書。不越乎記誦訓詁文詞之間。是以天下之書愈多而理愈昧。學者之事愈勤而心愈放。詞章愈麗。議論愈高。而其德業事功之實。愈無以逮乎古人。&amp;lt;br/&amp;g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聖學이 전해지지 않은 뒤로 선비들이 학문에 근본이 있음을 알지 못해, 책에서 찾는 것이라곤 記誦·訓詁·文詞 사이를 넘지 못했다. 그러므로 천하에 책이 더 많아질수록 이치는 더욱 어두워졌고, 배우는 자들이 더 열심히 노력할수록 그들의 마음은 더욱 방탕해졌으며, 詞章은 더욱 아름다워지고 議論은 더욱 고원해졌지만 德業·事功의 성과는 더욱 고인에 미치지 못했다.&amp;quot;&lt;br /&gt;
:○新安陳氏曰。記誦。口耳之學。詞章。枝葉之文。&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記誦'은 단순 암기의 학문(口耳之學)이요, '詞章'은 지엽적인(하찮은) 글쓰기(枝葉之文)이다.&amp;quot;&lt;br /&gt;
&lt;br /&gt;
異端虛無寂滅之敎。其高過於大學而無實。&amp;lt;br/&amp;gt;&lt;br /&gt;
이단의 虛無(도가)·寂滅(불교)한 가르침은 고원하기가 &amp;lt;대학&amp;gt;을 넘어섰으나 실질이 없었고,&lt;br /&gt;
:問異端何以高而無實。朱子曰。吾儒便著讀書。逐一就事物上理會道理。異端便都掃了。只恁地空空寂寂。便道事都了。若將些子事付之。便都沒奈何。&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이단은 어째서 고원하지만 실질이 없습니까?&amp;quo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우리 유가는 책을 읽어 하나하나 사물에서 도리를 이해하지만, 이단은 [그런 것들을] 모두 쓸어버리고는 그저 이처럼 거듭 비우고 거듭 고요하게만 하고서 '일이 모두 끝났다'고 말하는데, 만약 약간의 일이라도 맡기면 전혀 어찌하지 못한다.&amp;quot;&lt;br /&gt;
:○雲峯胡氏曰。此之虛。虛而有。彼之虛。虛而無。此之寂。寂而感。彼之寂。寂而滅。所以高而無實。&amp;lt;br/&amp;gt;&lt;br /&gt;
:운봉 호씨가 말했다: &amp;quot;여기(유가)의 '虛'는 虛하면서도 有하지만, 저기(도가)의 '虛'는 虛하면서 無이다. 여기(유가)의 '寂'는 寂하면서도 感하지만,&amp;lt;ref&amp;gt;&amp;lt;주역&amp;gt; &amp;lt;계사전상&amp;gt; 寂然不動，感而遂通天下之故。&amp;lt;/ref&amp;gt; 저기(도가)의 '寂'는 寂하면서 滅이다. 그래서 [저들은] 고원하면서도 실질이 없는 것이다.&amp;quot;&lt;br /&gt;
:○新安陳氏曰。老氏虛無。佛氏寂滅。&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老氏(도가)가 '虛無'이고, 佛氏(불교)가' 寂滅'이다.&amp;quot;&lt;br /&gt;
&lt;br /&gt;
其他權謀術數。一切以就功名之說。與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百家衆技之流。所以惑世誣民。充塞&amp;lt;sub&amp;gt;先則反下同&amp;lt;/sub&amp;gt;仁義者&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등문공하&amp;gt; 楊墨之道不息，孔子之道不著，是邪說誣民，充塞仁義也。&amp;lt;/ref&amp;gt;。又紛然雜出乎其間。&amp;lt;br/&amp;gt;&lt;br /&gt;
나머지 권모술수를 [부려] 공명을 추구하는 일체의 설과 저 각종 재주를 [부리는] 제자백가 부류들이 혹세무민하여 인의(유가)를 막는 경우가 또 어지럽게 그 사이에서 뒤섞여 나와,&lt;br /&gt;
:朱子曰。秦漢以來。隨世以就功名者。未必自其本而推之。是以天理不明而人欲熾。道學不傳而異端起。人挾其私智。以馳騖於一世。&amp;lt;br/&amp;g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秦漢이래로 시대에 따라 功名을 좇는 자들이 반드시 근본으로부터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천리는 밝혀지지 않고 인욕은 타올랐으며, 도학은 전해지지 않고 이단은 흥기해, 사람들은 자신의 꾀(私智)에 의지해 한 시대를 풍미했다.&amp;quot;&lt;br /&gt;
:○新安陳氏曰。權謀術數。謂管仲商鞅等。百家衆技。如九流等是也。&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權謀術數'는 관중·상앙 등을 말하고, '百家衆技'는 예를 들면 '九流'&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先秦的九個學術流派。▶ 《漢書‧敘傳下》： “ 劉向 司籍， 九流以別。” ▶ 顏師古 注引 應劭 曰： “儒、道、陰、陽、法、名、墨、從橫、雜、農， 凡九家。”&amp;lt;/ref&amp;gt; 등이 이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使其君子。不幸而不得聞大道之要。其小人。不幸而不得蒙至治之澤。晦盲&amp;lt;sub&amp;gt;眉庚反&amp;lt;/sub&amp;gt;否塞。&amp;lt;br/&amp;gt;&lt;br /&gt;
군자(치자)들로 하여금 불행히 위대한 도의 핵심을 듣지 못하게 하였고, 소인(피치자)들로 하여금 불행히 이상적 통치의 은택을 입지 못하게 해, [그들로 하여금] 어둡고 막히며,&lt;br /&gt;
:東陽許氏曰。如月之晦。如目之盲。如氣之否。如川之塞。晦盲。言不明。否塞。言不行。&amp;lt;br/&amp;gt;&lt;br /&gt;
:동양 허씨가 말했다: &amp;quot;달이 그믐인 것 같고, 눈이 먼 것 같으며, 기가 막힌 것 같고, 개울이 막힌 것 같은 것이다. '晦盲'은 밝지 않은 것(不明, 밝혀지지 않은 것)이고, '否塞'은 흐르지 않는 것(不行, 실천되지 않는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反覆沈&amp;lt;sub&amp;gt;俗作沉非&amp;lt;/sub&amp;gt;痼&amp;lt;sub&amp;gt;音固&amp;lt;/sub&amp;gt;。&amp;lt;br/&amp;gt;&lt;br /&gt;
엎어지고(反覆) 잠기고(沈) 병들게 되었는데(痼), &lt;br /&gt;
:○東陽許氏曰。反覆。是展轉愈深而不可去底意。沈。如物沒於水而不可浮。痼。如病著於身而不可愈。&amp;lt;br/&amp;gt;&lt;br /&gt;
:동양 허씨가 말했다: &amp;quot;'反覆'은 더욱 깊은 곳으로 굴러 떨어져 떠나지 못한다는 뜻이다. '沈'은 사물이 물에 잠겨 떠오르지 못하는 것과 같다. '痼'는 몸에 병이 나 나을 수 없는 것과 같다.&amp;quot;&lt;br /&gt;
&lt;br /&gt;
以及五季&amp;lt;sub&amp;gt;謂梁唐晉漢周。五代季世。&amp;lt;/sub&amp;gt;之衰。而壞亂極矣。&amp;lt;br/&amp;gt;&lt;br /&gt;
[당나라 이후] 五季의 쇠퇴한 시절에 이르러 혼란이 극에 달했다. &lt;br /&gt;
:雲峯胡氏曰。惑世誣民。使斯民昏而不能知。充塞仁義。使斯道壅而不能行。晦盲。全無能知者。否塞。全無能行者。所以為壞亂之極也。大道之要。是大學書中所載者。至治之澤。是自大學中流出者。上之人無能知此大學。故君子不得聞大道之要。上之人無能行此大學。故小人不得蒙至治之澤。&amp;lt;br/&amp;gt;&lt;br /&gt;
:운봉 호씨가 말했다: &amp;quot;'혹세무민'해서 이 백성들로 하여금 어리석어 알지 못하게 하고, '인의를 막아(充塞仁義)' 이 도로 하여금 막혀 행해지지 못하게 했다. '晦盲'은 전혀 알 수 없는 것이고, '否塞'은 전혀 실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혼란의 극이 된 것이다. '大道之要'는 &amp;lt;대학&amp;gt;에 기록된 것이고, '至治之澤'은 &amp;lt;대학&amp;gt;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윗사람이 이 &amp;lt;대학&amp;gt;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군자가 위대한 도의 핵심을 듣지 못했고', 윗사람이 이 &amp;lt;대학&amp;gt;을 실천하지 못했으므로 '소인이 완벽한 통치의 은택을 입지 못했다'.&amp;quot;&lt;br /&gt;
&lt;br /&gt;
6.&amp;lt;br/&amp;gt;&lt;br /&gt;
天運循環。無往不復。宋德隆盛。治敎休明。於是河南程氏兩夫子出。&amp;lt;br/&amp;gt;&lt;br /&gt;
하늘의 운수는 순환하기 때문에 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은 없으니, 송나라의 덕이 융성하여 통치와 교화가 아름답게 빛났다. 이때 하남 정씨 두 부자께서 나오셔서,&lt;br /&gt;
:伯子諱顥。字伯淳。號明道先生。叔子諱頤。字正叔。號伊川先生。&amp;lt;br/&amp;gt;&lt;br /&gt;
:첫째의 성함은 '호(顥)'이고 字는 '백순(伯淳)'이며, 號는 '명도선생(明道先生)'이다. 셋째의 성함은 '이(頤)'이고 字는 '정숙(正叔)'이며 號는 '이천선생(伊川先生)'이다.&lt;br /&gt;
&lt;br /&gt;
而有以接乎孟氏之傳。實始尊信此篇而表章之。旣又為&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之次其簡編。發其歸趣&amp;lt;sub&amp;gt;音娶&amp;lt;/sub&amp;gt;。&amp;lt;br/&amp;gt;&lt;br /&gt;
맹자의 전수를 이으셨으니, 실질적으로 처음 이 편(&amp;lt;대학&amp;gt;)을 존신하시고 표창하신 것이다. 이어서 또 &amp;lt;대학&amp;gt;에 대해서 텍스트의 차례를 손보고 그 의미를 드러내셨는데, &lt;br /&gt;
:○新安陳氏曰。孟子沒而其傳泯焉。至二程夫子出。而絶學復傳。於是始拔大學篇於戴記之中而尊信之。又整頓其錯亂之簡而發揮之。但未成書耳。&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맹자께서 돌아가시자 전수되던 것이 민멸됐었는데, 이정 선생이 나오시고 나서 끊어졌던 학문이 다시 전해졌다. 이때 [이정 선생께서] 처음 &amp;lt;소대례기&amp;gt; 안에서 &amp;lt;대학&amp;gt;편을 독립시켜 존신하셨고, 또 뒤섞인 죽간을 정돈해 [그 의미를] 드러내셨다. 그러나 책을 완성하시지는 않았다.&amp;quot;&lt;br /&gt;
&lt;br /&gt;
然後古者大學敎人之法。&amp;lt;br/&amp;gt;&lt;br /&gt;
그런 연후에야 옛 태학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던 교법과 &lt;br /&gt;
:此八字收拾序文起句。&amp;lt;br/&amp;gt;&lt;br /&gt;
:이 여덟 글자(古者大學敎人之法)는 &amp;lt;대학장구서&amp;gt; 앞쪽 구절을 모은 것이다.&lt;br /&gt;
&lt;br /&gt;
聖經賢傳&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之指。粲然復&amp;lt;sub&amp;gt;扶又反&amp;lt;/sub&amp;gt;明於世。雖以熹之不敏。亦幸私淑而與&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有聞焉。&amp;lt;br/&amp;gt;&lt;br /&gt;
聖經賢傳(성인이 지은 經에 현인이 傳을 달아 해석함)의 뜻이 찬연하게 다시 세상에 밝혀졌으니, 비록 불민한 나도 다행히 사숙해서&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이루하&amp;gt; 22. 予未得為孔子徒也，予私淑諸人也。&amp;lt;/ref&amp;gt; 그것을 들을 수 있었다&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자로&amp;gt; 14. 雖不吾以，吾其與聞之。&amp;lt;/ref&amp;gt;. &lt;br /&gt;
:新安陳氏曰。孟子云。予未得為孔子徒也。予私淑諸人也。此用其語。謂聞程子之敎於延平李先生諸公。&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맹자께서 '나는 공자의 제자가 될 수는 없었지만, [자사의 제자에게]&amp;lt;ref&amp;gt;&amp;lt;맹자집주&amp;gt; &amp;lt;이루하&amp;gt; 22. 人，謂子思之徒也。&amp;lt;/ref&amp;gt; 사숙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을 인용한 것이다. 정자의 가르침을 연평 선생 등 여러 공께 들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amp;quot;&lt;br /&gt;
:○東陽許氏曰。私淑者。私善於人。孟子不得為孔子之徒。而私善於再傳之子思。朱子不得為程子之徒。而私善於三傳之李氏。此私淑字最切。&amp;lt;br/&amp;gt;&lt;br /&gt;
:동양 허씨가 말했다: &amp;quot;'私淑'이라는 것은 남을 통해 스스로를 선하게 하는 것이다. 맹자께서는 공자의 제자가 될 수 없어서 [공자의] 재전제자인 자사를 통해 스스로를 선하게 하셨고, 주자께서는 정자의 제자가 될 수 없어서 [정자의] 삼전제자인 연평 선생(李氏)을 통해 스스로를 선하게 하셨다. 여기의 '私淑'이라는 단어가 가장 절실하다.&amp;quot;&lt;br /&gt;
&lt;br /&gt;
顧其為書猶頗放失。是以忘其固陋。采而輯&amp;lt;sub&amp;gt;音集&amp;lt;/sub&amp;gt;之。間亦竊附己意。補其闕略。&amp;lt;br/&amp;gt;&lt;br /&gt;
그런데 &amp;lt;대학&amp;gt; 텍스트가 여전히 상당히 방실되었기 때문에, 내 고루함을 [잠시] 잊고서 [주제넘게 방실된 부분을 다른 곳에서] 찾아 모으고 그 사이에 다시 삼가 내 생각을 덧붙여 빠진 부분을 보충하고서,&lt;br /&gt;
:謂補傳之第五章。&amp;lt;br/&amp;gt;&lt;br /&gt;
:傳의 제5장을 보충한 것을 말한다.&lt;br /&gt;
&lt;br /&gt;
以俟後之君子。極知僭踰。無所逃罪。然於國家化民成俗之意。學者修己治人之方。則未必無小補云。&amp;lt;br/&amp;gt;&lt;br /&gt;
훗날의 군자를 기다린다. 주제 넘는 짓이라 죄를 피할 길이 없음을 너무나 잘 알지만, 국가가 백성을 교화시키고 풍속을 이루는 뜻과 배우는 자가 수기치인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조그만 보탬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lt;br /&gt;
:脩己治人四字。包盡大學體用綱目。&amp;lt;br/&amp;gt;&lt;br /&gt;
:'脩己治人' 네 자는 &amp;lt;대학&amp;gt;의 體用·綱目을 모두 포괄한다.&lt;br /&gt;
&lt;br /&gt;
7.&amp;lt;br/&amp;gt;&lt;br /&gt;
淳熙己酉二月甲子新安朱熹序。&amp;lt;br/&amp;gt;&lt;br /&gt;
순희 기유년(1189) 2월 갑자일에 신안 주희가 서문을 쓴다.&lt;br /&gt;
:新安陳氏曰。此序分六節。精義尤在第二節。曰知其性之所有而全之。曰敎之以復其初是也。朱子論學。必以復性初為綱領要歸。論語首註學字。曰人性皆善。曰明善而復其初。小學題辭曰。仁義禮智。人性之綱。曰德崇業廣。乃復其初。此書首釋明明德。亦曰遂明之以復其初。與此序凡四致意焉。聖人盡性。盡其本全者也。學者復其性。復而後能全也。欲知性之所有。在格物致知。欲復全其性之所有。在誠意正心脩身。以力於行而已。讀此序此書者。其以知性之所有。與復其性初為要領。以知行為工夫而融貫其旨云。&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이 &amp;lt;대학장구서&amp;gt;는 여섯 단락으로 나눠지는데,&amp;lt;ref&amp;gt;신안 진씨는 &amp;quot;大學之書，古之大學所以教人之法也。&amp;quot;을 한 단락으로, 다음 &amp;quot;蓋自天降生民，則既莫不與之以仁義禮智之性矣。然其氣質之稟或不能齊，是以不能皆有以知其性之所有而全之也。一有聰明睿智能盡其性者出於其閒，則天必命之以為億兆之君師，使之治而教之，以復其性。此伏羲、神農、黃帝、堯、舜，所以繼天立極，而司徒之職、典樂之官所由設也。&amp;quot;을 또 한 단락으로 본 듯 하다.&amp;lt;/ref&amp;gt; 핵심적 의미(精義)는 두 번째 단락에 있으니, '모든 사람이 性에 있는 [인의예지를] 알고서 이를 온전히 한다', '가르쳐 자신의 처음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것이 이것이다. 주자께서 학문을 말씀하실 때에는 반드시 '본성을 회복하는 것(復性)'을 강령·핵심으로 삼으셨다. &amp;lt;논어&amp;gt;에서 '學'자에 주석을 다시길: '사람의 본성은 모두 선하다', '선을 밝혀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amp;lt;ref&amp;gt;&amp;lt;논어집주&amp;gt; &amp;lt;학이&amp;gt; 學之為言效也。人性皆善，而覺有先後，後覺者必效先覺之所為，乃可以明善而復其初也。&amp;lt;/ref&amp;gt;고 하셨고, &amp;lt;소학제사&amp;gt;에서 말씀하시길: '인의예지는 사람 본성의 벼리이다', '덕이 높고 업이 넓어야 처음으로 돌아간다'고 하셨으며, 이 책(&amp;lt;대학장구&amp;gt;)의 처음에 '명명덕'을 풀이하시며 또한 '마침내 밝혀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故學者當因其所發而遂明之，以復其初也。&amp;lt;/ref&amp;gt;고 하셨으니, 이 &amp;lt;대학장구서&amp;gt;까지 총 네 곳에서 자신의 뜻을 드러내셨다. '聖人盡性'은 본래 온전한 것을 지극히 하는 것이요, '學者復其性'은 돌아간 이후에야 온전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성에 있는 것을 알고자 하는 것은 格物·致知에 달렸고, 성에 있는 것을 다시 온전히 하고자 하는 것은 誠意·正心·脩身해 실천에 힘을 다하는 것에 달려있을 뿐이다. 이 &amp;lt;대학장구서&amp;gt;와 이 &amp;lt;대학&amp;gt;을 읽는 자는 '성에 있는 것을 아는 것'과 '본성(性初)으로 돌아가는 것'을 핵심으로 삼고 知行을 공부 방법으로 삼아서 그 종지를 완전히 깨달을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대학 경문/전문/혹문==&lt;br /&gt;
'''大學章句大全'''&lt;br /&gt;
:大，舊音泰，今讀如字。	&lt;br /&gt;
:子程子曰：「大學，孔氏之遺書，而初學入德之門也。」於今可見古人為學次第者，獨賴此篇之存，而論、孟次之。學者必由是而學焉，則庶乎其不差矣。&lt;br /&gt;
&lt;br /&gt;
===經一章===&lt;br /&gt;
大學之道，在明明德，在親民，在止於至善。&lt;br /&gt;
:程子曰：「親，當作新。」大學者，大人之學也。明，明之也。明德者，人之所得乎天，而虛靈不昧，以具眾理而應萬事者也。但為氣稟所拘，人欲所蔽，則有時而昏；然其本體之明，則有未嘗息者。故學者當因其所發而遂明之，以復其初也。新者，革其舊之謂也，言既自明其明德，又當推以及人，使之亦有以去其舊染之污也。止者，必至於是而不遷之意。至善，則事理當然之極也。言明明德、新民，皆當至於至善之地而不遷。蓋必其有以盡夫天理之極，而無一毫人欲之私也。此三者，大學之綱領也。&lt;br /&gt;
&lt;br /&gt;
知止而后有定，定而后能靜，靜而后能安，安而后能慮，慮而后能得。&lt;br /&gt;
:后，與後同，後放此。止者，所當止之地，即至善之所在也。知之，則志有定向。靜，謂心不妄動。安，謂所處而安。慮，謂處事精詳。得，謂得其所止。&lt;br /&gt;
&lt;br /&gt;
物有本末，事有終始，知所先後，則近道矣。&lt;br /&gt;
:明德為本，新民為末。知止為始，能得為終。本始所先，末終所後。此結上文兩節之意。&lt;br /&gt;
&lt;br /&gt;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先治其國；欲治其國者，先齊其家；欲齊其家者，先脩其身；欲脩其身者，先正其心；欲正其心者，先誠其意；欲誠其意者，先致其知；致知在格物。&lt;br /&gt;
:治，平聲，後放此。明明德於天下者，使天下之人皆有以明其明德也。心者，身之所主也。誠，實也。意者，心之所發也。實其心之所發，欲其一於善而無自欺也。致，推極也。知，猶識也。推極吾之知識，欲其所知無不盡也。格，至也。物，猶事也。窮至事物之理，欲其極處無不到也。此八者，大學之條目也。&lt;br /&gt;
&lt;br /&gt;
物格而后知至，知至而后意誠，意誠而后心正，心正而后身脩，身脩而后家齊，家齊而后國治，國治而后天下平。&lt;br /&gt;
:治，去聲，後放此。物格者，物理之極處無不到也。知至者，吾心之所知無不盡也。知既盡，則意可得而實矣，意既實，則心可得而正矣。脩身以上，明明德之事也。齊家以下，新民之事也。物格知至，則知所止矣。意誠以下，則皆得所止之序也。&lt;br /&gt;
&lt;br /&gt;
自天子以至於庶人，壹是皆以脩身為本。&lt;br /&gt;
:壹是，一切也。正心以上，皆所以脩身也。齊家以下，則舉此而措之耳。&lt;br /&gt;
&lt;br /&gt;
其本亂而末治者否矣，其所厚者薄，而其所薄者厚，未之有也！&lt;br /&gt;
:本，謂身也。所厚，謂家也。此兩節結上文兩節之意。&lt;br /&gt;
&lt;br /&gt;
*右經一章，蓋孔子之言，而曾子述之。&lt;br /&gt;
::凡二百五字。&lt;br /&gt;
*其傳十章，則曾子之意而門人記之也。舊本頗有錯簡，今因程子所定，而更考經文，別為序次如左。&lt;br /&gt;
::凡千五百四十六字。凡傳文，雜引經傳，若無統紀，然文理接續，血脈貫通，深淺始終，至為精密。熟讀詳味，久當見之，今不盡釋也。&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혹문의 원전 [https://www.kanripo.org/text/KR1h0043/000#15a 링크]&lt;br /&gt;
&lt;br /&gt;
====『혹문』 경1장====&lt;br /&gt;
1. &amp;lt;대학&amp;gt;과 &amp;lt;소학&amp;gt;의 구분&lt;br /&gt;
或問: “大學之道, 吾子以爲大人之學, 何也?”&amp;lt;br/&amp;gt;&lt;br /&gt;
혹자가 물었다: &amp;quot;'大學之道'를 그대가 '대인의 학문(大人之學)'이라고 한 것은 어째서인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lt;br /&gt;
曰: “此對小子之學言之也.”&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이는 '아이의 학문(小子之學)'에 대비해 말한 것이다.&amp;quot;&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2. &amp;lt;소학&amp;gt;이란?&lt;br /&gt;
&lt;br /&gt;
曰: “敢問其爲小子之學, 何也?”&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감히 묻건대, '아이의 학문'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lt;br /&gt;
曰: “愚於序文已畧陳之. 而古法之宜於今者, 亦旣輯而爲書矣,&amp;lt;sub&amp;gt;即今之小學書&amp;lt;/sub&amp;gt; 學者不可以不之考也.”&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내가 서문(&amp;lt;대학장구서&amp;gt;)에서 이미 간략하게 말했고, 옛 법도 가운데 오늘날에 적합한 것을 역시 이미 모아 책을 만들었으니,&amp;lt;sub&amp;gt;즉 오늘날의 &amp;lt;소학&amp;gt;이다.&amp;lt;/sub&amp;gt; 배우는 자들이 이를 고찰하지 않아선 안 될 것이다.&amp;quot;&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3. &amp;lt;대학&amp;gt;과 &amp;lt;소학&amp;gt; 간의 관계&lt;br /&gt;
&lt;br /&gt;
曰: “吾聞君子務其遠者大者, 小人務其近者小者. 今子方將語&amp;lt;sub&amp;gt;音御&amp;lt;/sub&amp;gt;人以大學之道, 而又欲其考乎『小學』之書, 何也?”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내가 듣기에 군자는 고원한 것·거대한 것에 힘쓰고, 소인은 비근한 것·사소한 것에 힘쓴다고 하는데, 지금 그대는 사람들에게 '大學之道'를 말하면서 다시 그들로 하여금 &amp;lt;소학&amp;gt;을 고찰하게 하려는 것은 어째서인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朱子曰: &amp;quot;&amp;lt;小學&amp;gt;書是做人底樣子.&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amp;lt;소학&amp;gt;은 사람을 만드는 틀이다.&amp;quot;&lt;br /&gt;
:○問小學大學之别. 曰: &amp;quot;小學大學只是一箇事. 小學是學事親事長; 大學便就上面講究委曲其所以事親事長是如何.&amp;quot;&lt;br /&gt;
:小學과 大學의 차이에 대해 물었다. 대답하셨다: &amp;quot;小學과 大學은 하나의 일일 뿐이다. 소학은 부모를 섬기고 어른을 섬기는 것을 배우는 것이고, 대학은 그 위에서 부모를 섬기고 어른을 섬기는 까닭이 무엇인지 강구하고 상세히 살피는 것이다.&amp;quot;&lt;br /&gt;
:○古人由小學而進於大學, 其於洒掃應對進退之間, 持守堅定, 涵養純熟, 固已久矣. 大學之序, 特因小學已成之功.&lt;br /&gt;
:옛 분들은 소학을 거쳐 대학으로 나아가셨기 때문에, 쇄소응대·진퇴하는 때에 단속이 堅定하고 함양이 純熟했던 것이 진실로 매우 오래됐었다. [그러므로 삼강령·팔조목 같은] &amp;lt;대학&amp;gt;의 순서는 그저 소학에서 이미 이룬 결과에 기인할 뿐이다. &lt;br /&gt;
:○陳氏曰: &amp;quot;小學書綱領甚好, 最切於日用. 雖至大學之成, 亦不外是.&amp;quot;&lt;br /&gt;
:진씨가 말했다: &amp;quot;&amp;lt;소학&amp;gt;의 강령이 매우 좋으니, 일상 생활에 매우 비근하다. 비록 대학 [공부가 완성되더라도] 이를 벗어나지 않는다.&amp;quot; &lt;br /&gt;
&lt;br /&gt;
曰: “學之大小, 固有不同, 然其爲道則一而已. 是以方其幼也, 不習之於小學, 則無以收其放心, 養其德性, 而爲大學之基本.&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학문의 큰 것(대학)과 작은 것(소학)에는 진실로 차이가 있지만, 도를 추구한다는 점은 같을 뿐이다. 그러므로 어렸을 때 소학에서 익히지 않는다면 놓아버린 마음을 수습하고 덕성을 길러 대학의 기반으로 삼을 수 없고, &amp;lt;br/&amp;gt;&lt;br /&gt;
:或曰: &amp;quot;放心者, 或心起邪思妄念, 耳聽邪言, 目觀亂色, 口談不道之言, 以至手足動之不以禮, 皆是放也; 收者, 便於邪思妄念處, 截斷不續, 耳目言動皆然, 此謂之收. 既能收其放心, 徳性自然養得, 不是收放心外, 又養箇徳性也.&amp;quot; 朱子曰: &amp;quot;然.&amp;quot;&lt;br /&gt;
:혹자가 말했다. &amp;quot;방심이라는 것은 간혹 마음에 삿된 생각이나 망념이 일어나서 귀로는 거짓된 말을 듣고, 눈으로는 난색을 보며, 입으로는 도가 아닌 말을 하여 손과 발이 움직임에 예로 하지 않는데 이르게 되니, 모두 '放'인 것입니다. 거둔다는 것은 바로 삿된 생각이나 망념이 일어난 곳을 절단해서 이어지지 않게하는 것이니 귀, 눈, 말과 행동이 모두 그렇게 (잘못하지 않게) 되니 이것이 '收'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미 그 놓아버린 마음을 거둘 수 있다면 덕성은 자연히 길러질 수 있으니 놓아버린 마음을 거두는 것 이외에 또 덕성을 기르는 것이 아닙니다.&amp;quot; 주자가 말했다. &amp;quot;그렇다.&amp;quot;&lt;br /&gt;
:○西山真氏曰: &amp;quot;徳性謂得之於天者, 仁義禮智信, 是也; 徳性在心, 本皆全備, 縁放縱其心, 不知操存, 是致賊害其性. 若能收其放心, 即是養其徳性, 非二事也.&amp;quot;&lt;br /&gt;
:진덕수가 말하였다. &amp;quot;덕성이란 하늘에서 얻어진 것이니 인의예지신이 이것이요, 덕성은 마음 안에 있으니 본애 완전히 갖춰진 것이지만 그 마음을 방종하게 하면서도 잡아서 지킬 줄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 성을 해치는데 이른 것이다. 만약 그 놓아버린 마음을 거두어 들일 수 있다면 곧바로 덕성을 기르게 되는 것이지, 두 가지 일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amp;quot;&lt;br /&gt;
&lt;br /&gt;
及其長&amp;lt;sub&amp;gt;上聲下同&amp;lt;/sub&amp;gt;也, 不進之於大學, 則無以察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義理, 措諸事業, 而收小學之成功. &amp;lt;br/&amp;gt;&lt;br /&gt;
장성해서 태학에 진학하지 않으면 의리를 살피고 여러 사업을 주관해 소학에서의 성과를 거둘 수 없다. &amp;lt;br/&amp;g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察夫義理, 大學始事, 格致是也; 措諸事業, 大學終事, 齊治平是也.&amp;quot;&lt;br /&gt;
:옥계노씨가 말했다. &amp;quot;'察夫義理'란 대학의 시작이 되는 일이니 격물치지가 이것이고, '措諸事業'은 대학의 마지막이 되는 일이니, 제가·치국·평천하가 이것이다.&amp;quot;&lt;br /&gt;
是則學之大小所以不同, 特以少&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長所習之異宜, 而有高下淺深先後緩急之殊, 非若古今之辨, 義利之分, 判然如薰蕕&amp;lt;sub&amp;gt;音猶&amp;lt;/sub&amp;gt;冰炭之相反而不可以相入也.&amp;lt;sub&amp;gt;薰香草蕕臭草&amp;lt;/sub&amp;gt; 今使幼學之士, 必先有以自盡乎洒&amp;lt;sub&amp;gt;上去二聲&amp;lt;/sub&amp;gt;掃&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應對進退之間, 禮樂射御書數之習, 俟其旣長, 而後進乎明德·新民, 以止於至善, 是乃次第之當然, 又何爲而不可哉?”&amp;lt;br/&amp;gt;&lt;br /&gt;
이렇다면 학문의 큰 것과 작은 것의 차이는 그저 나이에 따라 익혀야 하는 것의 차이에 따라 高下·淺深·先後·緩急의 차이가 있는 것일 뿐이니, 고금의 차이·義利의 차이가 마치 薰蕕·冰炭이 상반되어 판연히 서로 섞일 수 없는 것과는 같지 않다. 이제 어린 선비로 하여금 반드시 우선 洒掃應對進退之間과 禮樂射御書數之習에 스스로 다하도록 하고, 그가 장성하기를 기다린 이후에 明德·新民·止於至善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야말로 당연한 순서이니, 또 무엇 때문에 불가하겠는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4. &amp;lt;소학&amp;gt;을 배우지 않고 장성한 사람의 학문 순서 문제(경공부)&lt;br /&gt;
&lt;br /&gt;
曰: “幼學之士, 以子之言而得循序漸進, 以免於躐等陵節之病, 則誠幸矣. 若其年之旣長, 而不及乎此者, 欲反從事於小學, 則恐其不免於扞格不勝、勤苦難成之患;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어린 선비가 그대의 말에 따라 순서를 얻어 점차 나아가 躐等·陵節&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超越制度規定之範圍。 &amp;lt;/ref&amp;gt;의 병폐를 면한다면 진실로 다행일 것이다. [그러나] 만일 장성했는대도 이에 미치지 못한 자가 반대로 [거슬러 올라가] 소학에 종사하고자 한다면  '[인욕에] 부딪혀 이기지 못하고 고생하더라도 이루기 힘든' 근심을 면하지 못할까 걱정스러우며, &amp;lt;br/&amp;gt;&lt;br /&gt;
:&amp;lt;記&amp;gt;&amp;lt;學記&amp;gt;&amp;quot;發然後禁, 則扞格而不勝; 時過然後學, 則勤苦而難成.&amp;quot;&amp;lt;sub&amp;gt;扞, 胡半反; 格, 胡客反. 勝, 平聲. 人欲既發而後禁之, 則扞拒堅强而不勝也.&amp;lt;/sub&amp;gt;&lt;br /&gt;
:『예기』, 「학기」편에서 &amp;quot;일어난 다음에 금지한다면 인욕에 부딪혀 이겨내지 못할 것이고, 때가 지난 다음에 배운다면 노력하고 고생하면서도 이루기가 어려울 것이다.&amp;quot; &amp;lt;sub&amp;gt;인욕이 이미 일어난 후에 금지하면 [인욕의] 저항이 견고하고 강해 이길 수 없다.&amp;lt;/sub&amp;gt;&lt;br /&gt;
&lt;br /&gt;
欲直從事於大學, 則又恐其失序無本, 而不能以自達也, 則如之何?”&amp;lt;br/&amp;gt;&lt;br /&gt;
[그렇다고] 바로 대학에 종사하고자 한다면 또한 순서를 어겨 근본이 없기에 스스로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까 걱정스러우니, 어떻게 해야 하나?&amp;quot;&amp;lt;br/&amp;gt;&lt;br /&gt;
&lt;br /&gt;
曰: “是其歲月之已逝者, 則固不可得而復&amp;lt;sub&amp;gt;扶又反下同&amp;lt;/sub&amp;gt;追矣. 若其工夫之次第條目, 則豈遂不可得而復補耶? &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이미 지나가버린 세월은 진실로 다시 나아갈 순 없지만, 공부의 순서나 조목은 어찌 끝내 다시 보완할 수 없겠는가?&amp;lt;br/&amp;gt;&lt;br /&gt;
:朱子曰: &amp;quot;古人於小學, 自能言便有教, 一嵗有一嵗工夫, 到二十來嵗, 聖賢資質已自有二三分, 大學只出治光采. 而今都蹉過了, 不能更轉去做得, 只據而今地頭, 便劄住立定脚跟&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 比喻立足點或立場。▶ 宋 朱熹 《答陳膚仲》四： “凡事從今更宜審細， 見得是， 當便立定腳根， 斷不移易。”&amp;lt;/ref&amp;gt;做去, 栽種後來根株, 塡補前日欠缺. 如二十嵗覺悟, 便從二十嵗立定脚跟做去; 如三十嵗覺悟, 亦然; 便年八九十嵗覺悟, 亦只據現定劄住硬寨&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 比喻堅定的立場與意志。&amp;lt;/ref&amp;gt;做去.&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옛날에 소학에서는 말할 수 있을 때부터 교육을 두었고, 1년에 (그에 해당하는) 1년 과정의 공부를 두었으니, 20세가 되면 성현의 자질이 이미 2-30%정도 있게 된다. &amp;lt;대학&amp;gt;은 다만 [거기에] 광채를 내는 것이다. 지금 [이미] 다 지나가버려서 다시 뒤돌아 갈 수 없다면, 다만 현위치에 의거하여 입장을 확고히 해, 훗날의 기반을 북돋고 과거의 흠결을 보완하여야 한다. 만약 스무살에 깨우쳤다면 스무살 때 부터 그 입장을 확고히 하고, 서른에 깨우쳤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8-90세에 깨우쳤더라도 역시 그저 현재에 의거해서 견고한 입장을 확고하게 세워야 한다.&amp;quot;&lt;br /&gt;
&lt;br /&gt;
蓋吾聞之, 敬之一字, 聖學之所以成始而成終者也. 爲小學者, 不由乎此, 固無以涵養本原,&amp;lt;sub&amp;gt;即前所謂收放心養徳性&amp;lt;/sub&amp;gt;而謹夫&amp;lt;sub&amp;gt;音扶下同&amp;lt;/sub&amp;gt;洒掃應對進退之節, 與夫六藝之敎. 爲大學者, 不由乎此, 亦無以開發聰明,&amp;lt;sub&amp;gt;格致之事&amp;lt;/sub&amp;gt; 進德&amp;lt;sub&amp;gt;誠正修&amp;lt;/sub&amp;gt;修業,&amp;lt;sub&amp;gt;齊治平&amp;lt;/sub&amp;gt; 而致夫明德新民之功也. 是以程子發明格物之道, 而必以是爲說焉. &amp;lt;br/&amp;gt;&lt;br /&gt;
내가 들으니, '敬' 한 자는 성인되는 학문(聖學)의 처음과 끝을 이루는 것이라고 한다. 소학이라는 것도 이를 말미암지 않으면 진실로 본원을 함양해 저 洒掃應對進退之節과 저 六藝之敎를 삼가 실천할 수 없고, 대학이라는 것도 이를 말미암지 않으면 또한 開發聰明하고 進德修業&amp;lt;ref&amp;gt;&amp;lt;주역&amp;gt; 건괘 &amp;lt;문언&amp;gt; 子曰：「君子進德脩業，忠信，所以進德也，脩辭立其誠，所以居業也。」&amp;lt;/ref&amp;gt;해 저 明德·新民의 공효를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정자께서 격물의 도를 발명하실 때 반드시 이것(敬)을 말씀하셨던 것이다.&amp;lt;br/&amp;gt;&lt;br /&gt;
:問: &amp;quot;敬字當不得小學.&amp;quot; 朱子曰: &amp;quot;看來小學却未當得敬, 敬巳自包得小學. 敬是徹上徹下工夫, 雖做到聖人田地, 也只放下這敬不得.&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敬'이라는 글자는 소학에 대적할 수 없습니다.&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내 생각에는 소학이 도리어 '敬'에 대적할 수 없으니, 敬은 이미 그 자체로 소학을 포함한다. 敬은 위 아래를 관통하는 공부이니, 비록 성인의 경지에 이르더라도 이 敬을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amp;quot;&lt;br /&gt;
:○問: &amp;quot;大學首云明徳, 却不曾說主敬, 莫是已見於小學否?&amp;quot; 曰: &amp;quot;然. 自小學不傳, 伊川却是帶補一敬字.&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대학』 첫 머리에서는 '명덕'만 말하고 도리어 '主敬'을 말한 적이 없으니, [경이] 이미 『소학』에서 드러났기 때문 아닙니까?&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그렇다 소학에서 부터 전해지지 않은 것을 이천선생께서 오히려 하나의 '敬'자를 겸하여 보완하신 것이다.&lt;br /&gt;
:○北溪陳氏曰: &amp;quot;程子只說一箇主敬工夫, 可以補小學之缺. 盖主敬工夫可以收放心而立大本; 大本既立, 然後工夫循序而進, 無往不通. 大抵主敬之功, 貫始終, 一動靜, 合内外, 小學大學皆不可無也.&amp;quot;&lt;br /&gt;
:북계 진씨가 말했다: &amp;quot;정자께서는 오직 주경공부를 말씀하셨으니, 소학의 흠결을 보완할 수 있다. 대개 주경공부를 [통해] 놓아버린 마음을 거두어들이고 큰 근본을 세울 수 있으니, 큰 근본이 세워지고 난 연후에야 공부가 순서대로 나아가 가는 곳마다 통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 대저 주경공부라고 하는 것은 시작과 끝을 관통하고  動과 靜에 동일하며 内와 外에 일치하니, 소학과 대학에 모두 없어선 안 된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敬者, 定志慮, 攝精神, 而存養本心之道, 故為聖學之始終. 百倍其功, 只在主敬. 篇首三言為大學一書之綱領; 明明徳一句為篇首三言之綱領; 朱子敬之一字, 則又明明徳之綱領也.&amp;quot;&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경이라는 것은 사려를 안정시키고 정신을 거두어들여 본심을 존양하는 방법이므로 성인의 학문의 시작과 끝이 된다. [남들보다] 백 배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amp;lt;ref&amp;gt;&amp;lt;중용&amp;gt; 人一能之己百之，人十能之己千之。【章句】 君子之學，不為則已，為則必要其成，故常百倍其功。&amp;lt;/ref&amp;gt; 다만 주경공부에 달려있을 뿐이다. [『대학』] 첫머리의 세 마디(명명덕, 신민, 지어지선)는 『대학』의 강령이 되며, '명명덕' 한 구절은 첫머리 세 마디의 강령이 되며, 주자의 '敬' 한 글자는 다시 '명명덕'의 강령이 된다.&amp;quot;&lt;br /&gt;
&lt;br /&gt;
不幸過時而後學者, 誠能用力於此, 以進乎大, 而不害兼補乎其小, 則其所以進者, 將不患於無本而不能以自達矣. 其或摧頹已甚, 而不足以有所兼, 則其所以固其肌膚之會·筋骸之束, 而養其良知良能之本者, 亦可以得之於此, 而不患其失之於前也. &amp;lt;br/&amp;gt;&lt;br /&gt;
불행이 때를 놓쳐 뒤늦게 배우는 자가 진실로 이에 힘쓸 수 있다면, 큰 것(대학)에 나아가면서도 작은 것(소학)을 아울러 보완하는 데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니, 그렇다면 그가 진전된 바가 장차 근본이 없어 스스로 [목표에] 도달하지 못함을 근심하지 않을 것이다. 혹 摧頹함이 너무 심해 [소학까지] 아우를 수 없다면, 肌膚와 筋骸의 결속을 굳게 해&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예운&amp;gt; 故禮義也者，人之大端也，所以講信修睦而固人之肌膚之會、筋骸之束也。&amp;lt;/ref&amp;gt;良知·良能의 근본을 기르는 것 또한 이것(경)에서 얻을 수 있으니 과거에 잘못했던 것을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amp;lt;br/&amp;gt;&lt;br /&gt;
:&amp;lt;記&amp;gt;&amp;lt;禮運&amp;gt;&amp;quot;故禮義也者, 人之大端也, 所以講信脩睦, 而固人之肌膚之㑹、筋骸之束也.&amp;quot; 㑹, 合也, 物合其則也, 如頭容宜合於直之類; 束, 收歛也, 如手容宜恭之類.&lt;br /&gt;
:『예기』, 「예운」편에서 &amp;quot;그러므로 예의라는 것은 사람에게 중요한 것(大端)이니, 신의를 익히고 화목함을 닦아 肌膚와 筋骸의 결속을 굳게 하는 것이다.&amp;quot;&amp;lt;ref&amp;gt;&amp;lt;예기집설&amp;gt; 肌膚之總會, 筋骨之聨束, 非不固也。 然無禮以維飭之, 則惰慢傾側之容見矣。 &amp;lt;/ref&amp;gt;라고 하였는데, '㑹'는 '맞다'로 사물이 그 법도에 맞는 것이니, 마치 머리모양이 마땅히 '直'에 맞아야 하는 부류와 같다. '束'은 '거두어들인다'로 손모양이 마땅히 공손해야 하는 부류와 같다.&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옥조&amp;gt; 足容重，手容恭，目容端，口容止，聲容靜，頭容直，氣容肅，立容德，色容莊，坐如尸，燕居告溫溫。&amp;lt;/ref&amp;gt;&lt;br /&gt;
&lt;br /&gt;
顧以七年之病, 而求三年之艾, 非百倍其功, 不足以致之. 若徒歸咎於旣往, 而所以補之於後者, 又不能以自力, 則吾見其扞格勤苦日有甚焉, 而身心顚倒, 眩瞀&amp;lt;sub&amp;gt;務茂二音&amp;lt;/sub&amp;gt;迷惑, 終無以爲致知力行之地矣. 况欲有以及乎天下國家也哉!” &amp;lt;br/&amp;gt;&lt;br /&gt;
생각건대 7년의 병치레에 3년 묵은 쑥을 구하는 경우,&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이루상&amp;gt; 9. 今之欲王者，猶七年之病求三年之艾也。苟為不畜，終身不得。&amp;lt;/ref&amp;gt; 백 배로 노력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으니, 만일 그저 과거에 허물을 돌리고 나중에 보완하려는 자도 스스로 힘쓰지 않는다면, 그가 [인욕에] 부딪히고 고생하는 것이 날로 심해져 몸과 마음이 엎어지고 어지럽고 미혹돼 끝내 致知力行의 경지가 되지 못할 것이다. 하물며 천하·국가에 미칠 수 있기를 바라는 자에 있어서랴!&amp;quot;&amp;lt;br/&amp;gt;&lt;br /&gt;
:問: &amp;quot;人於已失學後, 須如此勉强奮勵, 方得.&amp;quot; 朱子曰: &amp;quot;失時而後學, 必著如此䟎補得前許多欠缺處. '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若不如是, 悠悠度日, 一日不做得一日工夫, 只見没長進, 如何要補前面?&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사람이라면 배움을 놓치고 나서는 모름지기 이처럼 열심히 힘써야 합니다.&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때를 놓친 이후에 배우게 됐다면 반드시 많은 흠결을 서둘러 이처럼 보완해야 하니, '다른 사람이 한 번에 할 수 있으면 나는 백 번하고, 다른 사람이 열번에 할 수 있으면 나는 천 번한다.'고 하였다. 만약 이와같이 하지 않고 덧없이 시간만 보내고 하루에 하루치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발전이 없을 것이니, 어찌 과거를 보완하려고 하겠는가?&amp;quot;&lt;br /&gt;
:○今人不曽做得小學工夫, 一旦學大學, 是以無下手處. 今且當自持敬始, 使端的純一静専, 然後能致知格物. 敬字是徹頭徹尾工夫, 自格物以至平天下, 皆不外此.&lt;br /&gt;
:요즘 사람들은 일찍이 소학공부를 하지 않고 단지 대학만 배웠기 때문에 실천할 길이 없다. 지금은 우선 마땅히 持敬부터 시작해서 확실하게 순일하고 오롯하게 해야 하니, 그런 연후에야 격물치지할 수 있을 것이다. '敬'이라는 글자는 철두철미한 공부이니, 격물에서부터 평천하까지 모두 이것(경)을 벗어나지 않는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5. 경공부의 방법&lt;br /&gt;
&lt;br /&gt;
曰: “然則所謂敬者, 又若何而用力耶?”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그렇다면 이른바 '敬'이라는 것에 또 어떻게 힘쓰는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lt;br /&gt;
曰: “程子於此, 嘗以主一無適言之矣, &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정자께서는 이에 대해 '主一無適'으로 설명하시기도 했고,&lt;br /&gt;
:程子曰: &amp;quot;主一之謂敬, 無適之謂一.&amp;quot;&lt;br /&gt;
:정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主一'은 '敬'을 말하고 '無適'은 '一'을 말한다.&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主一只是心專一, 不以他念雜之; 無適只是不走作&amp;lt;ref&amp;gt;2.越規；放逸。&amp;lt;/ref&amp;gt;, 如讀書時只讀書; 著衣時只著衣. 了此一件, 又做一件, 身在這裏, 心亦在這裏.&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主一'은 다만 마음을 전일하게 하여 다른 생각이 섞이지 않게 하는 것이고, '無適'은 다만 [마음이] 방일하지 않게 하는 것이니, 독서할 때는 단지 독서만하고 옷 입을 때에는 단지 옷만 입는 것처럼 한 가지 일을 끝내고 나서 또 한 가지 일을 하고, 몸이 여기에 있으면 마음 또한 여기에 있는 것이다.&amp;quot;&lt;br /&gt;
:○今講學, 更須於主一上做工夫. 若無主一工夫, 則講底義理無安著處, 都不是自家物事. 若有主一底工夫, 則外面許多義理, 方始為我有, 都是自家物事. 工夫到時, 纔主一, 便覺意思好, 卓然精明.&lt;br /&gt;
:지금 강학함에 더욱 '主一'에 대해 공부(노력)해야 한다. 만약 '主一'공부가 없다면 강학한 의리가 안착할 곳이 없어서 모두 나의 일이 아니게 된다. 만약 '主一'공부가 있다면 외면의 많은 의리가 비로소 나에게 있게 되어 모두 나의 일이 된다. 공부가 완성된 때에는 '主一'하자마자 바로 생각이 좋고 매우 정밀하고 밝게 됨을 알게 될 것이다.&lt;br /&gt;
:○北溪陳氏曰: &amp;quot;主一, 是心只在此, 不二不三; 無適, 是心只在此, 不東不西. 主一無適, 只展轉相解, 釋要分明, 非主一外, 又别有無適之功也.&amp;quot;&lt;br /&gt;
:북계 진씨가 말했다: &amp;quot;'主一'이라는 것은 마음이 단지 여기에 있어서 두 갈래 세 갈래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이고, '無適'은 마음이 다만 여기에 있어서 동쪽으로 가거나 서쪽으로 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주일'과 '무적'은 상보적으로 풀어야 해석이 분명하게 되니, '主一' 이외에 또 따로 '無適'공부가 있는 것이 아니다.&amp;quot;&lt;br /&gt;
&lt;br /&gt;
嘗以整齊嚴肅言之矣. &amp;lt;br/&amp;gt;&lt;br /&gt;
'整齊嚴肅'으로 설명하시기도 했다. &lt;br /&gt;
:程子曰: &amp;quot;只整齊嚴肅, 則心便一; 一則無非僻之干矣.&amp;quot;&lt;br /&gt;
:정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다만 整齊嚴肅 한다면 마음이 전일해지고, [마음이] 전일해지면 사악함&amp;lt;ref&amp;gt;非僻 : 邪惡。《禮記‧玉藻》：“非辟之心，無自入也。”&amp;lt;/ref&amp;gt;의 간섭이 없을 것이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主一無適, 未易曉. 故又就事實上教人, 使只就眼前做工夫, 如正衣冠, 尊瞻視, 足容重, 手容恭之類, 皆是内外一致. 外面整齊嚴肅, 則内面便一; 内面便一, 則外面便無非僻之干.&amp;quot;&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主一無適'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다시 구체적인 일로 사람들을 가르쳐서, 그들로 하여금 단지 눈앞에서 공부하게 하셨으니, 예를 들어 '의관을 바르게 하고 보기를 높게 하며'&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요왈&amp;gt; 2. 君子正其衣冠，尊其瞻視，儼然人望而畏之，斯不亦威而不猛乎？&amp;lt;/ref&amp;gt; '발모양은 무겁게 하고 손모양은 공경스럽게 하는'&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옥조&amp;gt; 足容重，手容恭，目容端，口容止，聲容靜，頭容直，氣容肅，立容德，色容莊，坐如尸，燕居告溫溫。&amp;lt;/ref&amp;gt; 것들은 모두 내외가 일치되는 것이다. 외면을 整齊嚴肅하면 내면이 전일해지고, 내면이 전일하다면 외에 사악함의 간섭이 없을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至其門人謝氏之說, 則又有所謂常惺惺法者焉.&amp;lt;br/&amp;gt;&lt;br /&gt;
정자의 문인 사량좌의 설의 경우에는 이른바 '常惺惺法'이라는 것이 있기도 하고,&lt;br /&gt;
:上蔡謝氏曰: &amp;quot;敬是常惺惺法.&amp;quot;&lt;br /&gt;
:상채 사씨가 말했다: &amp;quot;敬은 늘 깨어있는 수양법(常惺惺法)이다.&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惺惺乃心不昏昧之謂, 只此便是敬. 整齊嚴肅固是敬, 然心若昏昧, 燭理不明, 雖强把捉, 豈得為敬?&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惺惺은 바로 마음이 혼매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니, 이렇게만 해도 敬이다. 整齊嚴肅은 진실로 경공부지만, 마음이 만약 혼매해서 이치를 밝게 밝히지 못한다면, 비록 [정제엄숙에 집착해 마음을] 애써 붙들더라도 어찌 敬이라 할 수 있겠는가?&amp;quot;&lt;br /&gt;
:○學問須是警省, 且如瑞巖和尚每日常自問: &amp;quot;主人翁惺惺否?&amp;quot; 又自答曰: &amp;quot;惺惺.&amp;quot; 今時學者却不能如此.&lt;br /&gt;
:학문할 때는 모름지기 경계하고 성찰해야하니, 예를 들어 서암화상이 매일 항상 스스로 '주인장은 깨어있는가?'하고 묻고는 다시 스스로 '깨어있네'라고 대답하는 것과 같다. 오늘날의 학자들은 이렇게도 하지 못한다.&lt;br /&gt;
:○或問: &amp;quot;佛氏亦有此語.&amp;quot; 曰: &amp;quot;其喚醒此心則同; 其為道則異. 吾儒喚醒此心, 欲他照管許多道理; 佛氏則空喚醒此心, 無所作為, 異處在此.&amp;quot;&lt;br /&gt;
:혹자가 물었다: &amp;quot;불교에도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이 마음을 일깨우는 것&amp;lt;ref&amp;gt; 喚醒 : 叫醒。常用作比喻，有使之覺醒意。&amp;lt;/ref&amp;gt;은 동일하지만 도를 행하는 것은 다르다. 우리 유가는 이 마음을 일깨워 그것으로 하여금 수많은 도리를 비추고자 하지만, 불교는 헛되이 마음을 일깨우기만 하고 하는 바가 없으니,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amp;quot;&lt;br /&gt;
:○心既常惺惺, 又以規矩䋲檢之, 此内外交相養之道也.&lt;br /&gt;
:마음이 이미 항상 깨어있는 상태에서 다시 規矩로 마음을 검속하는 것, 이것이 안과 밖을 같이 기르는 방법이다.&lt;br /&gt;
:○今人心聳然在此, 尚無惰慢之氣, 况曰心常能惺惺者乎! 故心常惺惺, 自無客慮.&lt;br /&gt;
:요즘 사람들의 마음도 조심히 여기에 있으면 오히려 태만한 기운이 없는데, 하물며 '마음이 늘 깨어있을 수 있다'고 하는 경우에 있어서랴! 그러므로 마음이 늘 깨어있으면 저절로 사념이 없게 된다. &lt;br /&gt;
:○陳氏曰: &amp;quot;是就心地上做工夫處. 盖心常惺惺在這裏, 便常惺惺恁地活; 若不在, 便死了. 心纔在這裏, 則萬理便森然於其中矣.&amp;quot;&lt;br /&gt;
:진씨가 말했다: &amp;quot;이것(경)은 마음에서 공부하는 것이다. 대개 마음이 늘 깨어있어서 여기에 있으면 늘 깨어있는 것이 이처럼 활발하지만, 만약 여기에 있지 않으면 곧 바로 죽어버린다. 마음은 여기에 있자마자 만리가 마음속에 가득하다.&amp;quot;&lt;br /&gt;
&lt;br /&gt;
尹氏之說, 則又有所謂其心收斂不容一物者焉. &amp;lt;br/&amp;gt;&lt;br /&gt;
윤돈의 설의 경우에는 또 이른바 '其心收斂, 不容一物'이라는 것이 있기도 하다.&lt;br /&gt;
:祈寛問: &amp;quot;如何是主一?&amp;quot; 和靖尹氏曰: &amp;quot;只收歛身心, 便是主一. 且如人到神祠致敬時, 其心收歛, 便著不得毫髮事, 非主一而何?&amp;quot;&lt;br /&gt;
:기관이 물었다: &amp;quot;무엇이 '主一'입니까?&amp;quot; 화정 윤씨가 말했다: &amp;quot;다만 몸과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바로 '主一'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신사에 이르러 공경을 다할 때 그 마음을 거둬들여 털끝 만큼의 일도 [마음속에] 두지 못하는 것, 이것이 '主一'아니고 무엇이겠는가?&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心主這一事, 不為他事攙亂, 便是不容一物.&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마음이 이 한 가지 일을 주로하고 다른 일로 어지럽히지 않는 것이 바로 이것이 '不容一物'이다.&amp;quot;&lt;br /&gt;
:○問'心收歛, 不容一物.' 曰: &amp;quot;這心都不著一物, 便收歛. 他上文云: '今人入神祠, 當那時, 直是更著不得些子事, 只有箇恭敬.' 此最親切. 今人若能專一此心, 便收歛緊宻, 都無些子空罅; 若這事思量未了, 又走做那邊去, 心便成兩路.&amp;quot;&lt;br /&gt;
:'心收歛, 不容一物.'에 대해 물었다.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이 마음이 어떤 일에도 마음두지 않는 것이 곧 '收歛'이다. 윤돈의 윗 글에서 '사람이 신사에 들어가면 그때에는 단지 어떤 일에도 마음두지 않고 다만 공경함만 지니고 있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가장 비근하다. 사람들이 만약 이 마음을 전일하게 할 수 있다면, [마음이] 수렴되고 긴밀해져 약간의 틈도 없겠지만, 만약 이 일에 대한 생각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또 다른 것으로 가버린다면 마음이 두 갈래가 되는 것이다.&amp;quot; &lt;br /&gt;
&lt;br /&gt;
觀是數說, 足以見其用力之方矣.” &amp;lt;br/&amp;gt;&lt;br /&gt;
이 여러 설을 보면 힘쓸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이다.&amp;quot;&amp;lt;br/&amp;gt;&lt;br /&gt;
:問程子、謝氏、尹氏所說敬處. 朱子曰: &amp;quot;譬如此屋四方皆入得, 若從一方入到這裏, 則那三方入處都在這裏了.&amp;quot;&lt;br /&gt;
:정자와 사량좌와 윤돈이 敬을 설명한 것에 대해 물었다.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비유하자면, 이 방은 사방으로 모두 들어올 수 있는데, 만일 한 쪽으로 들어온다면 나머지 세 쪽도 모두 여기에 있는 것과 같다.&amp;quot;&lt;br /&gt;
:○問: &amp;quot;敬, 諸先生之說, 各不同. 然總而言之, 常令此心常存, 是否?&amp;quot; 曰: &amp;quot;其實只一般. 若是敬時, 自然主一無適, 自然整齊嚴肅, 自然常惺惺, 其心收歛不容一物. 但程子'整齊嚴肅', 與謝氏、尹氏之說又更分曉.&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敬에 대한 여러 선생들의 설명이 각각 같지 않는데, 총괄해 말한다면 항상 이 마음을 보존하는 것이지요?&amp;quot; 말했다. &amp;quot;그 실질은 똑같을 뿐이다. 만약 敬하는 때라면 자연히 主一無適하고 자연히 整齊嚴肅하며 자연히 常惺惺하고 그 마음이 수렴되어 어떤 외물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정자께서 말씀하신 '整齊嚴肅'이 사량좌나 윤돈의 설명과 비교했을 때 [의미가] 더욱 분명하다.&amp;quot;&lt;br /&gt;
:○問: &amp;quot;程子、謝氏之説, 謝氏尤切當&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貼切恰當。 &amp;lt;/ref&amp;gt;.&amp;quot; 曰: &amp;quot;如某所見, 程子說得切當. 整齊嚴肅, 此心便存, 便能惺惺, 未有外面整齊嚴肅而内不惺惺者. 人一時間外面整肅, 便一時惺惺; 一時放寛了, 便昏怠也.&amp;quot; 新安陳氏曰: &amp;quot;朱子深取整齊嚴肅之説者, 盖以有著實下手處耳.&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정자와 사량좌의 설명 가운데 사량좌이 설명이 더욱 적절한 것 같습니다.&amp;quo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내가 보건대, 정자의 설명이 가장 적절하다.  整齊嚴肅하면 마음이 보존되고 惺惺해질 수 있으니 외면을 整齊嚴肅하는데 내면이 惺惺하지 않은 자는 있지 않았다. 사람이 한 번 외면을 바르게 하면 일시에 惺惺해지며, 한 번 방관하게 되면 곧바로 혼매하고 나태해진다.&amp;quo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주자께서 整齊嚴肅의 설명을 깊히 취하신 것은 아마도 착실히 실천하는 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amp;quot;&lt;br /&gt;
:○勿齋程氏曰: &amp;quot;整齊嚴肅、及收歛不容一物, 皆敬之始也; 主一無適、及常惺惺者, 皆敬之成也. 主一無適者, 敬之純; 常惺惺者, 敬而明也. 然主一亦有淺深, 以初學言之, 則欲主乎一; 以成徳言之, 則所主者一.&amp;quot;&lt;br /&gt;
:물재 정씨가 말했다. &amp;quot;'整齊嚴肅'과 '收歛不容一物'은 모두 敬의 시작이고, '主一無適'과 '常惺惺'은 모두 경의 완성이다. '主一無適'은 敬 중에 순수한 것이고 '常惺惺'은 敬 중에 밝은 것이다. 그러나 '主一'함에는 깊이가 있으니, 초학자로 말한다면 한 가지를 주로 하고자 해야하고, 덕을 이룬 사람으로 말한다면 주로하는 한 가지일 것이다.&amp;quot;&lt;br /&gt;
:○黄氏曰: &amp;quot;且將自家身心去體察見得如何是主一無適, 如何是整齊嚴肅, 如何是常惺惺, 如何是其心收歛不容一物. 是四者皆以有所畏而然. 朱子晚年言敬字之義, 惟畏字近之, 其意精矣.&amp;quot;&lt;br /&gt;
:황씨가 말했다: &amp;quot;우선 나의 몸과 마음을 가지고 무엇이 主一無適이고 무엇이 整齊嚴肅이며 무엇이 常惺惺이고 무엇이 心收歛不容一物인지 살펴보라(體察見得). 이 네 가지는 모두 두려워하는 바가 있어서 그러한 것이다. 주자께서 만년에 말씀하신 敬자의 의미는 오직 畏자에 가까우니, 그 의미가 정밀하다. &amp;quot; &lt;br /&gt;
:○西山眞氏曰: &amp;quot;持敬之道, 合三先生之言而用力焉, 然後内外交相養之功始備.&amp;quot;&lt;br /&gt;
:서산 진씨가 말했다: &amp;quot;敬을 유지하는 방법은, 세 선생의 말을 합쳐서 그것에 힘쓰는 것이니, 그런 연후에야 내외를 서로 길러주는 공부가 비로소 갖추어질 것이다.&amp;quot;&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6. 경공부가 학문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되는 이유&lt;br /&gt;
&lt;br /&gt;
曰: “敬之所以爲學之始者然矣, 其所以爲學之終也, 奈何?”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敬이 학문의 시작이 되는 것은 맞지만, 학문의 끝이 되는 것은 어째서인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敬者, 一心之主宰, 而萬事之本根也. 知其所以用力之方, 則知小學之不能無賴於此以爲始; 知小學之賴此以始, 則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大學之不能無賴乎此以爲終者, 可以一以貫之而無疑矣. 蓋此心旣立, 由是格物致知以盡事物之理, 則所謂尊德性而道問學; &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敬이라는 것은 一心의 주재이자 모든 일의 근본이니, [이에] 힘쓸 방법을 안다면 소학은 이것에 의지하지 않고는 시작이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고, 소학이 이를 의지해 시작이 됨을 안다면, 저 대학이 이것에 의지하지 않고는 끝이 될 수 없다는 것도 '一以貫之'&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리인&amp;gt; 15. 子曰：「參乎！吾道一以貫之。」&amp;lt;/ref&amp;gt;해 의심이 없을 수 있을 것이다. 대개 이 마음이 확립되고서 이것(敬)을 통해 格物致知해 사물의 이치를 다하는 것이 이른바 '尊德性而道問學'&amp;lt;ref&amp;gt;&amp;lt;중용장구&amp;gt; 27장. 故君子尊德性而道問學，致廣大而盡精微，極高明而道中庸。溫故而知新，敦厚以崇禮。&amp;lt;/ref&amp;gt;이요, &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尊徳性, 持敬以涵養本原也; 道問學, 窮格以開發聰明也.&amp;quo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尊徳性은 敬의 상태를 유지해서 본원을 함양하는 것이고 道問學은 궁리·격물해서 총명함을 개발하는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由是誠意正心以修其身, 則所謂先立其大者而小者不能奪; &amp;lt;br/&amp;gt;&lt;br /&gt;
이것(敬)을 통해 誠意正心해 자신을 닦는 것이 이른바 '先立其大者而小者不能奪'&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고자상&amp;gt; 15. 先立乎其大者，則其小者弗能奪也。&amp;lt;/ref&amp;gt;이요,&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先立其大者, 持敬以誠其意、正其心也; 小者不能奪, 百體從心君所令而身脩也.&amp;quo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先立其大'라는 것은 경의 상태를 유지하여 그 뜻을 진실하게 하고 그 마음을 바로하는 것이며, '小者不能奪'이라는 것은 온 몸이 心이라는 군주가 명령한 바를 따라서 몸이 닦이는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由是齊家治國以及乎天下, 則所謂修已以安百姓, 篤恭而天下平. 是皆未始一日而離&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乎敬也. 然則敬之一字, 豈非聖學始終之要也哉!” &amp;lt;br/&amp;gt;&lt;br /&gt;
이것(敬)을 통해 齊家治國해 천하에 이르는 것이 이른바 '修已以安百姓'&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헌문&amp;gt; 45. 脩己以安百姓，堯舜其猶病諸！&amp;lt;/ref&amp;gt;, '篤恭而天下平'&amp;lt;ref&amp;gt;&amp;lt;중용장구&amp;gt; 33장. 是故君子篤恭而天下平。&amp;lt;/ref&amp;gt;이니, 이 모두는 하루도 敬에서 떨어진 적이 없다. 그렇다면 敬 한 자가 어찌 성인되는 학문(聖學)의 처음부터 끝까지 [적용되는] 키워드가 아니겠는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朱子曰: &amp;quot;敬者, 始終之要, 未知則敬以知之; 巳知則敬以守之. 若不敬則其心顛倒昏昧, 而不自知, 未知者, 非敬無以知; 巳知者, 非敬無所守.&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敬이라는 것은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핵심이니, 아직 알지 못한 것이 있다면 敬해서 그것을 알아가고, 이미 알았다면 敬해서 그것을 지켜야 한다. 만약 敬하지 않은다면 마음이 전도되고 어두워져도 스스로 알아채지 못하게 되니,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은 敬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이미 안 것은 敬하지 않으면 지킬 수 없다.&amp;quot;&lt;br /&gt;
:○陳氏曰: &amp;quot;心之為物, 虚靈知覺, 所以為一身之主宰也. 身無此以為之主宰, 則四肢百體皆無所管攝矣. 然所以為心者, 又當由我有以主宰之, 我若何而主宰之乎? 所謂敬者, 是又一心之主宰也.&amp;quot;&lt;br /&gt;
:진씨가 말했다: &amp;quot;마음이라는 것은 허령한 지각이라서 한 몸의 주재가 된다. 몸이 이것을 주재로 삼지 않으면 온몸의 기관 모두를 관장하는 것이 없게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또한 마땅히 나를 통해 주재돼야 하니, 나는 어떻게 그것을 주재하나? 이른바 敬이라는 것이 다시 마음의 주재가 된다.&amp;quot;&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7. 삼강령·팔조목&lt;br /&gt;
&lt;br /&gt;
曰: “然則此篇所謂‘在明明德, 在新民, 在止於至善’者, 亦可得而聞其說之詳乎?”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그렇다면 이 편에서 말한 '在明明德, 在新民, 在止於至善'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겠는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lt;br /&gt;
曰: “天道流行, 發育萬物, 其所以爲造化者, 陰陽五行而已.&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천도가 유행해 만물을 발육함에 조화를 이루는 것은 음양오행일 뿐인데,&lt;br /&gt;
:黄氏曰:&amp;quot;天道是理; 隂陽五行是氣. 合而言之, 氣即是理, 一隂一陽之謂道, 是也; 分而言之, 理自為理, 氣自為氣, 形而上下, 是也. &amp;lt;br/&amp;gt;&lt;br /&gt;
:황씨가 말했다: &amp;quot;'천도'는 理이고 '음양오행'은 氣이다. 합해서 말하면 氣는 곧 理이니 '一隂一陽之謂道'&amp;lt;ref&amp;gt;&amp;lt;주역&amp;gt; &amp;lt;계사상&amp;gt; 5. 一陰一陽之謂道，繼之者善也，成之者性也。&amp;lt;/ref&amp;gt;가 이것이다. 나눠 말하면 理는 그 자체로 理이고, 氣는 그 자체로 氣이니 '形而上下'&amp;lt;ref&amp;gt;&amp;lt;주역&amp;gt; &amp;lt;계사상&amp;gt; 12. 形而上者謂之道，形而下者謂之器。&amp;lt;/ref&amp;gt;가 이것이다.&amp;quot;&lt;br /&gt;
:○未有五行, 只得喚做隂陽; 既有五行, 則隂陽在五行之中矣.&amp;lt;br/&amp;gt;&lt;br /&gt;
:아직 오행이 있지 않을 때에는 단지 음양이라고 부를 수 있을 뿐이다. 오행이 있고 나면 음양은 오행 가운데 있다.&lt;br /&gt;
&lt;br /&gt;
而所謂陰陽五行者, 又必有是理而後有是氣; 及其生物, 則又必因是氣之聚而後有是形. 故人物之生必得是理, 然後有以爲健順仁義禮智之性; 必得是氣, 然後有以爲魂魄五臟百骸之身. 周子所謂‘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者, 正謂是也.&amp;lt;br/&amp;gt;&lt;br /&gt;
이른바 '음양오행'이라는 것은 다시 반드시 理가 있은 뒤에 氣가 있고, 만물을 낳음에 이르러서는 다시 반드시 氣의 응취에 기인해 形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과 만물이 태어남에 반드시 理를 얻은 연후에 健順·仁義禮智와 같은 性이 될 수 있고, 반드시 氣를 얻은 연후에 魂魄·五臟·百骸와 같은 身이 될 수 있다. 周子께서 ‘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amp;lt;ref&amp;gt;&amp;lt;[[태극도설]]&amp;gt;&amp;lt;/ref&amp;gt;라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이것이다. &lt;br /&gt;
:問: &amp;quot;必有是理然後有是氣, 是如何?&amp;quot; 朱子曰: &amp;quot;此本無先後之可言. 然必欲推其氣之所從來, 則須說先有是理. 然理又非别為一物, 即存乎是氣之中. 無是氣, 則是理亦無掛搭&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 比喻着落、依據。&amp;lt;/ref&amp;gt;處. 氣則為金木水火, 理則為仁義禮智.&lt;br /&gt;
:물었다. &amp;quot;'반드시 이 理가 있은 이후에 氣가 있다'고 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amp;quo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이는 본래 말할 만한 선후가 없다. 그러나 굳이 氣의 유래를 추론하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理가 먼저 있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理가 다시 별도로 하나의 사물인 것이 아니니, 氣 가운데에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氣가 없다면 理 또한 안착할 곳이 없다. 氣는 金·木·水·火가 되고  理는 인·의·예·지가 된다.&amp;quot;&lt;br /&gt;
:○理未嘗離乎氣, 然豈無先後? 理無形, 氣便粗有查滓.&lt;br /&gt;
:理는 일찍이 氣와 떨어진 적이 없지만, 어찌 선후가 없겠는가? 理에는 형체가 없지만 氣는 거칠게 찌꺼기 [같은 것이] 있다. &lt;br /&gt;
:○就原頭定體上說, 則未分五行時, 只謂之隂陽; 未分五性時, 只謂之健順. 及分而言之, 則陽為木火, 隂為金水, 健為仁禮, 順為智義.&lt;br /&gt;
:근원적 상태(原頭定體)에 대해 말한다면, 아직 오행으로 나눠지지 않은 때에는 다만 隂·陽이라 말하고, 아직 오성으로 나눠지지 않은 때에는 다만 健·順이라고 말한다. [오행과 오성으로] 나눠지는 경우에 대해 말하면, 陽은 木·火가 되고 隂은 金·水가 되며, 健은 仁·禮가 되고 順은 智·義가 된다.&lt;br /&gt;
:○問隂陽五行健順五常之性. 曰: &amp;quot;健是稟得那陽之氣; 順是稟得那隂之氣; 五常是稟得五行之理. 人物皆稟得健順五常之性.&lt;br /&gt;
:隂陽·五行·健順·五常의 性에 대해 물었다. 말씀하셨다: &amp;quot;健은 저 陽의 氣를 품수받은 것이고, 順은 저 隂의 氣를 품수받은 것이며, 五常은 五行의 理를 품수받은 것이다. 사람과 만물은 모두 健順·五常의 性을 품수받는다.&amp;quot;&lt;br /&gt;
:○天地之間有理有氣. 理也者, 形而上之道也, 生物之本也; 氣也者, 形而下之器也, 生物之具也. 故人物之生, 必稟此理, 然後有性; 必稟此氣, 然後有形. 其性其形, 雖不外乎一身, 然道器之間, 分際甚明, 不可亂也.&lt;br /&gt;
:천지 사이에 理와 氣가 있으니, 理라는 것은 형이상의 도이니 만물을 낳는 근본이고, 氣라는 것은 형이하의 기물(器)이니 만물을 낳는 도구(具)이다. 그러므로 사람과 만물이 생겨남에 반드시 理를 품수받은 이후에 性이 있게 되고, 반드시 이 氣를 품수받은 이후에 형체가 있게 된다. 이 性과 형체는 비록 한 몸을 벗어나지 않지만, 道와 器 사이에는 구분이 매우 명확하여 [서로] 어지럽힐 수 없다.&lt;br /&gt;
:○北溪陳氏曰: &amp;quot;人始於氣感則得魂為先, 既而體凝焉則魄次之. 魂主乎動, 所以行乎此身之中, 隨所貫而無不生者也; 魄主乎静, 所以實乎此身之中, 隨所注&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貫注】 1. 貫穿；貫通。▶ 《參同契》卷上“須以造化， 精氣乃舒” 宋 朱熹 考异： “此時陰陽對待， 分為二物， 莫不含情互結， 兩相貪戀， 交通貫注， 而後化生萬物， 以舒展向來自具之精氣。” &amp;lt;/ref&amp;gt;而無不定者也.&lt;br /&gt;
:북계 진씨가 말했다: &amp;quot;사람이 처음 기를 感하면 魂을 먼저 얻고, 이어서 육체가 응결되면 魄을 그 다음으로 [얻는다]. 魂은 動을 주로하기 때문에 몸 안에서 행함에 관통함(貫)에 따라 가지 않는 곳이 없고, 魄은 静을 주로하기 때문에 몸 안을 채움에 관통함(注)에 따라 안정시키기 않음이 없다.&amp;quot;&lt;br /&gt;
:○節齋蔡氏曰: &amp;quot;先有理後有氣者, 形而上為道, 形而下為器之謂也; 有則俱有者, 道即器之謂也. 盖不分先後, 則理氣不明; 不合理氣, 則判為二物, 如性之與情未發已發, 自有先後, 固不可道性情同時也. 然情之本實具於性, 非先有此性而後别生一情, 是有此性即有此情也.&lt;br /&gt;
:절제 채씨가 말했다: &amp;quot;'먼저 理가 있은 후에 氣가 있다'는 것은 형이상자가 道가 되고 형이하자가 器가 된다는 말이고, '[理가] 있으면 [氣를] 갖춘다'는 것은 '道가 器에 즉한다'는 말이다. 대개 선후를 나누지 않으면 理와 氣[의 차이가] 밝혀지지 않고, 理와 氣를 합하지 않으면 두 가지 사물로 나뉘니, 마치 性과 情은 未發과 已發의 상태로 자연히 선후가 있어서 진실로 性과 情이 동시에 있다고 말할 수 없지만, 情은 본래 性에 실로 갖추어져 있어서 性이 먼저 존재한 연후에 따로 情이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性이 있으면 곧 이 情이 있게 되는 것과 같다.&amp;quot;&lt;br /&gt;
:○東窻李氏曰: &amp;quot;天之運五行, 其實隂陽而已; 人之性五常, 其實健順而已. 仁之油然生意不可遏, 禮之粲然明盛不可亂, 健之為也; 義不拂乎可否之宜, 智不外乎是非之别, 順之為也. 若夫信, 則體是理而不易者, 健也; 循是理而不違者, 順也.&lt;br /&gt;
:동창 이씨가 말했다: &amp;quot;하늘이 五行을 운행함에 그 실질은 隂·陽일 뿐이고, 사람이 五常을 性으로 함에 그 실질은 健·順일 뿐이다. 仁의 유연한 生意를 막을 수 없고 禮의 찬연하고 성대함을 어지럽힐 수 없는 것은 健이 행한 것이고, 義가 可·否의 마땅함에서 벗어나지 않음과 智가 是·非의 구별에서 벗어나지 않음은 順이 행한 것이다. 信의 경우는, 理를 체득하여 바뀌지 않는 것이 健이고 理를 따라서 거스르지 않는 것이 順이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魂, 陽之靈; 魄, 隂之靈; 五臟, 五行之質&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4. 形體；外貌。 &amp;lt;/ref&amp;gt;; 百骸, 萬物之象也; 眞, 以理言而理不雜氣; 精, 以氣言而氣不離理. 妙者, 理氣之莫測; 合者, 理氣之無間; 凝則有是形而各一其性矣.&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魂은 陽의 영이고 魄은 隂의 영이며, 오장은 오행의 형체이고 百骸은 만물의 형체이다. 眞은 理로 말하여 理가 氣와 섞이지 않는 것이고 精은 氣로 말하여 氣가 理와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妙라는 것은 理와 氣를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다. 合이라는 것은 理·氣에 간극이 없어서, 응결되면 형체가 있고 각각 하나의 性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amp;quot;&lt;br /&gt;
:○周子之言見&amp;lt;太極圖說&amp;gt;&lt;br /&gt;
:주돈이의 말은 &amp;lt;[[태극도설]]&amp;gt;에 보인다.&lt;br /&gt;
&lt;br /&gt;
然以其理而言之, 則萬物一原, 固無人物貴賤之殊; 以其氣而言之, 則得其正且通者爲人, 得其偏且塞&amp;lt;sub&amp;gt;先則反&amp;lt;/sub&amp;gt;者爲物, 是以或貴或賤而不能齊也.&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理로 말한다면 만물은 같은 근원이니 진실로 사람과 사물·귀함과 천함의 다름이 없고, 氣로 말한다면 그 바르고 통한 것을 얻은 것이 사람이 되고 치우치고 막힌 것을 얻은 것은 사물이 되기  때문에 어떤 것은 귀하고 어떤 것은 천하여 같을 수가 없다.&lt;br /&gt;
:朱子曰: &amp;quot;以理言之, 則無不全; 以氣言之, 則不能無偏.&amp;quot;&lt;br /&gt;
:주자가 말했다. &amp;quot;理로 말한다면 온전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氣로 말한다면 치우침이 없을 수 없다.&amp;quot;&lt;br /&gt;
:○人得其氣之正, 故是理通而無所塞; 物得其氣之偏, 故是理塞而無所通. 且如人頭圓象天, 足方象地, 平正端直, 以其受天地之正氣, 所以識道理有知識; 物受天地之偏氣, 所以禽獸横生, 草木頭生向下, 尾反向上, 物之間有知者, 不過只通得一路, 如烏之知孝, 獺之知祭, 犬但能守禦, 牛但能耕而已. 人則無不知、無不能, 人所以與物異, 所争者此耳.&lt;br /&gt;
:사람은 그 氣 중에 바른 것을 얻었기 때문에 理가 통해 막힘이 없지만, 사물은 氣 중에 치우친 것을 얻었기 때문에 理가 막혀 통하는 바가 없다. 예를 들어 사람의 머리 모양이 둥근 것은 하늘은 본뜬 것이고, 발이 네모난 것은 땅을 본 뜬 것이며, 평평하고 바르고 단정하고 곧으며, 천지의 바른 기를 얻었기 때문에 도리를 인식하고 지식이 있는 것이다. 사물은 천지의 치우친 기를 받았기 때문에 금수는 横生하고, 초목은 머리가 날 때 아래를 향하고 꼬리는 도리어 위를 향한다. [또] 사물들 중에 지각이 있는 것은 다만 한 갈래만 통하는 데 불과하니, 예를 들어 까마귀는 孝를 알고 수달이 제사 지낼 줄 알며, 개는 지킬 수만 있고 소는 밭갈 수만 있을 뿐이다. 사람이라면 알지 못하는 것이 없고 할 수 없는 것이 없으니, 사람이 사물과 다른 점은 그 차이가 이것일 뿐이다.&lt;br /&gt;
:○論萬物之一原, 則理同而氣異; 觀萬物之異體, 則氣猶相近而理絶不同. 方賦與萬物之初, 天命流行只是一般, 故理同; 二五之氣有清濁純駁, 故氣異. 萬物已得之後, 雖有清濁純駁之不同, 而同此二五之氣, 故氣相近; 以其昏明開塞之甚逺, 故理絶不同. 氣相近, 如知寒暖、識飢飽、好生惡死、趨利避害, 人與物都一般; 理不同, 如蜂蟻之君臣, 只是他義上有一㸃子明; 虎狼之父子, 只是他仁上有一㸃子明, 其他更推不去.&lt;br /&gt;
:만물의 근원이 같음을 논한다면 理는 같고 氣는 다르며, 만물의 형체가 다름을 본다면 氣는 오히려 서로 가깝지만 理는 절대로 같지 않다. 만물에게 부여한 처음에는 천명의 유행은 단지 똑같기 때문에 理는 같지만, 음양오행의 氣에는 清濁純駁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氣는 다르다. 만물이 이미 얻고 난 후에는 비록 清濁純駁의 차이가 있지만 이 음양오행의 기는 같기 때문에 氣는 서로 가깝고, 그 어둡거나 밝고 열리거나 막힘의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理는 전혀 다른 것이다. '氣가 서로 가까운 것'은 마치 춥고 따뜻함을 알고 배고프고 배부름을 인지하며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며 이익을 쫓고 해악을 피하는 것과 같으니 사람과 만물이 모두 같은 것이고, '理가 같지 않은 것'은 마치 벌과 개미의 군신관계가 다만 '義'에 대해서 약간 밝은 부분이 있고, 호랑이와 이리의 부자관계가 다만 '仁'에 대해서 약간 밝은 것과 같은 것이니, 이밖으로는 더 미룰 수 없다.(벌과 개미는 義에만 밝고, 호랑이와 이리는 仁에만 밝다.)&lt;br /&gt;
:○新安倪氏曰: &amp;quot;理雖不雜乎氣, 而亦不離乎氣. 以不雜者言之, 則理同而氣異; 以不離者言之, 則得氣之正者理亦全, 得氣之偏者理亦不全矣. 朱子後一條, 與或問之說略有不同者, 而亦未嘗不互相發也.&lt;br /&gt;
:신안 예씨가 말했다: &amp;quot;理는 비록 氣와 섞이지 못하지만 氣와 떨어지지도 못한다. 섞이지 못하는 점으로 말하면 理는 동일하고 氣는 다르며, 서로 떨어지지 못하는 점으로 말하면 氣 중에 치우친 것을 얻으면 리 또한 온전하지 못하다. 주자의 이후 한 조목이 [여기] &amp;lt;혹문&amp;gt;의 설명과 약간 같지 않은 것이 있지만, 그래도 서로 발명하지 않은 적이 없다.&amp;quot;&lt;br /&gt;
&lt;br /&gt;
彼賤而爲物者, 旣梏於形氣之偏塞, 而無以充其本體之全矣. 唯人之生乃得其氣之正且通者, 而其性爲最貴, 故其方寸之間, 虛靈洞徹, 萬理咸備,&amp;lt;br/&amp;gt;&lt;br /&gt;
저 천하여 사물이 된 것은 이미 치우치고 막힌 형기에 구속되어 그 본체의 온전함을 확충할 수 없다. 오직 사람만이 태어남에 곧 바르고 통한 기를 얻어 性이 가장 귀중하게 되었으므로 마음이 허령하고 막힘없이 훤해 만리를 모두 갖추고 있다.&lt;br /&gt;
:北溪陳氏曰: &amp;quot;此八字, 只是再詳'虛靈不昧, 以具衆理'之意. 虛靈洞徹, 盖理與氣合而有此妙用耳, 非可專指氣. 如心恙底人亦有氣存, 何故昏迷顛錯, 無此虚靈洞徹耶?&amp;quot;&lt;br /&gt;
:북계 진씨가 말했다: &amp;quot;이 여덟 자(虛靈洞徹, 萬理咸備)는 다만 '虛靈不昧, 以具衆理'&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경1장 주석. 明德者，人之所得乎天，而虛靈不昧，以具眾理而應萬事者也。&amp;lt;/ref&amp;gt;의 의미를 다시 상세히 밝힌 것이다. '虛靈洞徹'은 대개 理와 氣를 합해 이러한 묘용이 있는 것이지 오직 氣만 가리킬 수는 없다. 만약 마음이 병든 사람에게도 [좋은] 氣가 보존되어 있다면, 무엇 때문에 혼미하고 전도되어 이러한 虚靈洞徹이 없겠는가?&amp;quot;&lt;br /&gt;
&lt;br /&gt;
蓋其所以異於禽獸者正在於此, 而其所以可爲堯舜而能參天地以贊化育者, 亦不外焉, 是則所謂明德者也. 然其通也或不能無淸濁之異, 其正也或不能無美惡之殊, 故其所賦之質, 淸者智而濁者愚, 美者賢而惡者不肖, 又有不能同者. &amp;lt;br/&amp;gt;&lt;br /&gt;
대개 사람이 금수와 다른 점이 바로 여기에 있고, 사람이 요순이 될 수 있고 천지에 참여하여 화육함을 도울 수 있는 까닭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이것이 바로 이른바 明德이다. 그러나 사람의 통한 [기]에도 간혹 맑고 탁한 차이가 없을 수 없고, 바른 [기에도] 간혹 아름답거나 추악한 차이가 없을 수 없기 때문에, 그 부여받은 기질이 맑은 사람은 지혜롭고 탁한 사람은 어리석으며 아름다운 사람은 어질고 나쁜사람은 불초하니, [사람과 사물 사이 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도] 다시 같을 수 없는 점이 있다.&lt;br /&gt;
:朱子曰: &amp;quot;人雖皆是天地之正氣, 但衮來衮去, 便有昏明厚薄之異. 盖氣是有形之物, 纔是有形之物, 便自有美惡也.&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사람이라면 누구나 비록 천지의 바른 기를 가지고 있지만, 다만 이리저리 뒤섞여 昏明厚薄의 차이가 있다. 대개 氣는 형체가 있는 것이니, 형체가 있는 것인 이상 절로 아름답거나 추악한 [차이가] 있다.&amp;quot;&lt;br /&gt;
:○問: &amp;quot;智愚賢不肖是所稟之氣有清濁美惡之不同, 不歸於所稟, 而歸於所賦, 何邪?&amp;quot; 曰: &amp;quot;賦如俗語云分俵均敷之意.&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智·愚·賢·不肖함은 품부받은 氣에 清濁美惡의 차이가 있기 때문인데, [그 원인을] '품수받은 것(所稟)'으로 환원하지 않고 '부여받은 것(所賦)'으로 환원하신 것은 어째서 입니까?&amp;quot; 말씀하셨다: &amp;quot;'賦'는 세간에서 ''''고르게''' 나눠준다(分俵均敷)'고 말하는 뜻과 같다.&amp;quot;&lt;br /&gt;
:○問: &amp;quot;有人聰明通曉, 是稟氣之清矣. 然却所為過差, 或流於小人之歸; 又有為人賢而不甚聰明通曉, 何也?&amp;quot; 曰: &amp;quot;&amp;lt;或問&amp;gt;中所謂知愚賢不肖之殊, 是也. 盖其所賦之質, 便有此四樣, 聰明曉了者, 智也; 而或不賢, 便是稟賦中欠了清和温恭之徳; 又有人極温和, 而不甚曉事, 便是賢而不智. 為學, 便是要克化教此等氣質, 令恰好耳.&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어떤 사람이 총명하고 훤히 다 아는 것은 품부받은 氣가 맑기 때문인데, 도리어 잘못을 저질러 혹 소인이라는 귀결지로 흘러가 버리기도 하고, 또 사람됨이 어진데 썩 총명하거나 훤히 알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 입니까?&amp;quot; 말씀하셨다: &amp;quot;&amp;lt;或問&amp;gt;에서 知·愚·賢·不肖의 차이를 말한 것이 이것이다. 대개 부여받은 자질에는 이 네 가지 양상이 있는데, 총명하고 훤히 아는 사람은 지혜롭지만(智) 간혹 어질지 못한 것(不賢)은 품부받은 것 중에 온화(清和·温恭)한 덕에 흠결이 있는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이 매우 온화한데 썩 총명하지 못한 것은 어질면서도 지혜롭지 못한 것(賢而不智)이다. 학문함이란 바로 이러한 기질을 교화시켜서 적절하게 만드려고 하는 것이다.&amp;quot;&lt;br /&gt;
:○有是理, 而後有是氣; 有是氣, 必有是理. 但稟氣之清者為聖為賢, 此如寶珠在清冷水中; 稟氣之濁者為愚不肖, 此如寶珠在濁水中. 所謂明明徳者, 是就濁水中揩拭此珠也. 物亦有是理, 又如寶珠在至汚處. 然其所稟有些明處, 就上面便自不昩, 如虎狼之父子, 蜂蟻之君臣, 是也.&amp;quot;&lt;br /&gt;
:理가 있은 이후에 氣가 있으니, 氣가 있으면 반드시 理가 있기 마련이다. 다만 품부받은 기질이 맑은 사람이 성현이 되는 것은 마치 보주가 맑은 물 안에 있는 것과 같고, 품부받은 기질이 탁한 사람이 어리석고 불초하게 되는 것은 마치 보주가 탁한 물 안에 있는 것과 같다. 이른바 '明明徳'이라는 것은 바로 탁한 물에서 이 보주를 씻는 것이다. 사물에도 理가 있지만, 또 마치 보주가 매우 더러운 곳에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품부받은 바에 조금이나마 밝은 부분이 있어서 그 위는 어둡지  없으니, 마치 호랑이나 이리의 부자관계나 벌과 개미의 군신관계 같은 것이 이것이다.&lt;br /&gt;
:○黄氏曰: &amp;quot;美惡是有生之初便分了, 非以性言, 是以氣言. 譬如玉之與石, 則美惡固分; 而玉之中, 又有美惡分焉.&amp;quot;&lt;br /&gt;
:황씨가 말했다: &amp;quot;아름답거나 추악한 차이(美惡)는 생겨난 처음에 나눠지는데, 性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氣로 말한 것이다. 비유하자면 마치 옥과 돌은 美惡이 진실로 구분되지만, 옥 가운데에서도 美惡이 나눠지는 경우와 같다.&amp;quot;&lt;br /&gt;
:○格庵趙氏曰: &amp;quot;通塞偏正, 判人物之大分而言; 其清濁美惡, 又就人中分别.&amp;quot;&lt;br /&gt;
:격암 조씨가 말했다: &amp;quot;'通塞偏正'은 사람과 사물을 나누는 큰 분류(大分)를 말한 것이고, '清濁美惡은' 사람 내에서 분별한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必其上智大賢之資乃能全其本體, 而無少不明, 其有不及乎此, 則其所謂明德者已不能無蔽而失其全矣. 况乎又以氣質有蔽之心, 接乎事物無窮之變, 則其目之欲色, 耳. 之欲聲, 口之欲味, 鼻之欲臭, 四肢之欲安佚, 所以害乎其德者, 又豈可勝&amp;lt;sub&amp;gt;平聲&amp;lt;/sub&amp;gt;言也哉! 二者相因, 反覆深固, 是以此德之明, 日益昏昧, 而此心之靈, 其所知者不過情欲利害之私而已. 是則雖曰: 有人之形, 而實何以遠於禽獸, 雖曰: 可以爲堯舜而參天地, 而亦不能有以自充矣. 然而本明之體, 得之於天, 終有不可得而昧者, 是以雖其昏蔽之極, 而介然之頃&amp;lt;sub&amp;gt;介音甲倐然之頃也&amp;lt;/sub&amp;gt;一有覺焉, 則卽此空隙之中, 而其本體已洞然矣.&amp;lt;br/&amp;gt;&lt;br /&gt;
반드시 上智·大賢의 자질이라야 그 본체를 온전히 할 수 있고 조금의 밝지 못함도 없을 수 있으니, 여기에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다면 이른바 明德이라는 것이 이미 가려지지 않을 수 없어서 그 온전함을 잃어버리게 된다. 게다가 더욱이 기질 때문에 가려진 마음이 사물의 무궁한 변화를 만난다면, 여색을 바라는 눈과 아름다운 소리를 바라는 귀와 맛있는 것을 바라는 입과  향기를 바라는 코와 편안함을 바라는 몸이 그 덕(明德)을 해침을 또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이 두 가지가 서로 말미암아서 반복되어 더욱 견고해지니, 이 때문에 밝은 덕은 날마다 더욱 어두워지고 신령한 마음은 정욕·이해와 같은 사욕만 알 것이다. 이렇다면 비록 '사람의 형체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진실로 금수와 무엇이 다르겠으며, 비록' 요순이 될 수 있고 천지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또 스스로 확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본래 밝은 것(明德)은 하늘로부터 얻은 것이라서 끝내 어두워질 수 없으니, 이 때문에 비록 지극히 가려지더라도 잠깐 사이에 하나라도 깨우친다면, 그 틈 사이로 본체가 이미 훤히 드러나 있을 것이다.&lt;br /&gt;
:問: &amp;quot;'介然之頃, 一有覺焉, 則其本體已洞然矣', 須是就這些覺處, 便致知充廣將去.&amp;quot; 朱子曰: &amp;quot;然. 如擊石之火只是些子, 纔引著, 便可以燎原. 若必欲等大覺了, 方去格物致知如, 何等得這般時節? 那箇覺是物格知至了, 大徹悟, 到恁地時, 事都了. 若是介然之覺, 一日之間, 其發也無時無數, 只要人識認得操持充養將去.&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잠깐 사이에 하나라도 깨우침이 있다면, 그 틈 사이로 본체가 이미 훤히 드러나 있을 것이다'라는 것은 반드시 조금 깨우친 곳에서 앎을 지극히 하고 확충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amp;quo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그렇다. 부싯돌로 낸 불은 미미할 뿐이지만, 끌어다 붙이자마자 들판을 태워버릴 수도 있는 것과 같다. 만약 반드시 크게 깨우치고 나서(大覺) 격물치지 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이러한(大覺) 때를 얻겠는가? 저 깨우침(大覺)은 [격물치지의 결과로] 物格知至해서 크게 깨우친 것이니, 이런 때에 이르면 일은 [이미] 다 이뤄진 것이다. 잠깐 사이의 깨우침이 드러나는 건 하루[같이 짧은 기간]에도 정해진 때나 횟수가 없으니, 다만 사람이 [이를] 인식하고 지켜서 확충해 나가야 할 뿐이다.&amp;quot;&lt;br /&gt;
&lt;br /&gt;
是以聖人施敎, 旣已養之於小學之中, 而復&amp;lt;sub&amp;gt;扶又反&amp;lt;/sub&amp;gt;開之以大學之道. 其必先之以格物致知之說者, 所以使之卽其所養之中, 而因其所發, 以啓其明之之端也; 繼之以誠意·正心·修身之目者, 則又所以使之因其已明之端, 而反之於身, 以致其明之之實也. 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旣有以啓其明之之端, 而又有以致其明之之實, 則吾之所得於天而未嘗不明者, 豈不超然無有氣質物欲之累, 而復得其本體之全哉! 是則所謂明明德者, 而非有所作爲於性分&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之外也. 然其所謂明德者, 又人人之所同得, 而非有我之得私也. 向也俱爲物欲之所蔽, 則其賢愚之分, 固無以大相遠者. 今吾旣幸有以自明矣, 則視彼衆人之同得乎此而不能自明者, 方且甘心迷惑沒溺於卑汚&amp;lt;sub&amp;gt;音烏&amp;lt;/sub&amp;gt;苟賤之中而不自知也, 豈不爲&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之惻然而思有以救之哉! 故必推吾之所自明者以及之, 始於齊家, 中於治國, 而終及於平天下, 使彼有是明德而不能自明者, 亦皆有以自明, 而去&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其舊染之汚焉, 是則所謂新民者, 而亦非有所付畀&amp;lt;sub&amp;gt;必至反&amp;lt;/sub&amp;gt;增益之也. &lt;br /&gt;
이 때문에 성인께서 베푸신 가르침이란 소학에서 그들을 기르고 다시 대학의 道로 그들을 열어주는 것이다. 성인께서 반드시 격물치지의 설명을 우선하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소학에서] 기르는 것에 나아가 [거기에서] 드러난 것을 통해 [명덕을] 밝히는 단서를 열게 하신 것이고, 誠意·正心·修身의 조목으로 격물치지를 이으신 것은 또한 그들로 하여금 이미 밝혀진 단서를 통해 자신에게 돌이켜 [명덕을] 밝히는 실질에 이루게 하신 것이다. 대저 이미 [명덕]을 밝히는 단서를 연 데다가 [명덕을] 밝히는 실질도 이뤘다면, 내가 하늘로부터 얻어 밝지 않은 적이 없던 것(명덕)이 어찌 초연히 기질과 물욕의 얽매임이 없이 다시 그 본체의 온전함을 회복하지 못하겠는가! 이렇다면 이른바 '明明德'이라는 것은 性分 밖에서 작위하는 바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른바 '명덕'이라는 것은 또한 사람마다 동일하게 얻은 것이지 내가 사사로이 얻은 것이 아니니, 이전에 모두 물욕에 의해 가려졌다면 어진 자와 어리석은 자(賢愚)의 차이가 진실로 클 수 없을 것이지만, 지금 내가 다행히 스스로 [명덕을] 밝힌 이상, 이것(명덕)을 똑같이 얻고도 스스로 밝히지 못하는 저 사람들이 막 기꺼이 미혹되어 더럽고 구차한 곳에 빠지면서도 스스로 알지 못함을 본다면, 어찌 그들을 위해 측은해 하며 그들을 구제하려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반드시 내가 스스로 밝힌 바를 미루어 다른 사람에게 미쳐, 齊家에서 시작해서 治國을 거쳐 마침내 平天下에 이르러, 이 명덕을 가지고도 스스로 밝힐 수 없는 저 사람들로 하여금 역시 모두 스스로 밝혀서 구습의 오염된 더러움을 제거하게 해야 하니, 이렇다면 이른바 '新民'이라는 것 역시 주거나 더하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非彼本無而我付畀之, 非彼本少而我増益之, 以其本體之明無不全也.&amp;quot;&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저들에게 본래부터 없기 때문에 내가 준 것도 아니고, 저들이 본래 조금만 가지고 있어서 내가 더해준 것이 아니니, 그 밝은 본체는 완전하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amp;quot;&lt;br /&gt;
&lt;br /&gt;
然德之在己而當明, 與其在民而當新者, 則又皆非人力之所爲; 而吾之所以明而新之者, 又非可以私意苟且而爲也. 是其所以得之於天而見&amp;lt;sub&amp;gt;形甸反&amp;lt;/sub&amp;gt;於日用之間者, 固已莫不各有本然一定之則, &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자신에게 있는 德을 마땅히 밝혀야 하는 것과 백성들에게 있는 덕을 마땅히 새롭게 해야 하는 것은 또한 모두 사람의 힘으로 하는 바가 아니고, 내가 밝히고 새롭게 하는 것 또한 사의로 구차하게 행하는 것이 아니니, 하늘로부터 얻어 일상생활에 드러나는 것에는 진실로 이미 각각 본연의 일정한 법칙이 있지 않음이 없다.&lt;br /&gt;
:西山眞氏曰: &amp;quot;則者, 法也. 天下之理, 皆天實為之, 莫不有一定之法, 非人力所可増損, 故曰則.&amp;quot;&lt;br /&gt;
:서산 진씨가 말했다: &amp;quot;'則'이라는 것은 법칙이다. 천하의 이치는 모두 하늘이 실로 행하는 것이니, 일정한 법칙이 아님이 없고 사람의 힘으로 더하고 뺄 수 있는 바가 아니기 때문에 '則'이라고 말한 것이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至善, 乃太極之異名而明徳之本體. 得之於天而有本然一定之則者, 至善之體, 乃吾心體統之太極; 見於日用之間而各有本然一定之則者, 至善之用, 乃事事物物各具之太極也.&amp;quot;&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至善'이란 바로 태극의 다른 이름이며 명덕의 본체이다. '하늘로부터 얻어서 본연하고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것'은 至善의 體이니 바로 내 마음의 體統이되는 태극이요, '일상생활에 드러나는 것에는 각각 본연의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것은 至善의 用이니, 이것이 바로 '사물마다 각각 태극을 갖추고 있다(事事物物各具之太極)'&amp;lt;ref&amp;gt; 『太極圖說』 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 “乾道成男, 坤道成女”, 二氣交感, 化生萬物. 萬物生生, 而變化無窮焉. &amp;lt;注&amp;gt; 蓋合而言之, 萬物統體一太極也; 分而言之, 一物各具一太極也.&amp;lt;/ref&amp;gt;는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程子所謂‘以其義理精微之極, 有不可得而名者, 故姑以至善目之',而『傳』&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所謂君之仁·臣之敬·子之孝·父之慈·與人交之信, 乃其目之大者也. 衆人之心, 固莫不有是, 而或不能知, 學者雖或知之, 而亦鮮&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能必至於是而不去, 此爲大學之敎者, 所以慮其理雖粗&amp;lt;sub&amp;gt;上聲略也&amp;lt;/sub&amp;gt;復而有不純, 已雖粗克而有不盡, 且將無以盡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修己治人之道, 故必指是而言, 以爲明德·新民之標的也. 欲明德而新民者, 誠能求必至是而不容其少有過不及之差焉, 則其所以去&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人欲而復天理者, 無毫髮之遺恨矣. &lt;br /&gt;
정자께서 '지극히 정미한 의리에는 이름할 수 없는 점이 있기 때문에 우선 至善으로 지목한다'&amp;lt;ref&amp;gt;&amp;lt;이정수언&amp;gt; 3-67. 子曰: &amp;quot;理義精微, 不可得而名言也,  姑以至善目之, 黙識, 可也.&amp;quot;&amp;lt;/ref&amp;gt; 고 하셨는데, &amp;lt;전&amp;gt;의 이른바 '君之仁·臣之敬·子之孝·父之慈·與人交之信'&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전3장. 為人君，止於仁；為人臣，止於敬；為人子，止於孝；為人父，止於慈；與國人交，止於信。&amp;lt;/ref&amp;gt;이라고 한 것이 바로 그 항목 가운데 큰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은 진실로 이렇지 않음이 없으나 간혹 알지 못하기도 하고, 배우는 자가 비록 혹 이를 알더라도 [그 가운데] 반드시 이에 이르러 떠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드무니, 이것이 &amp;lt;대학&amp;gt;의 가르침을 세운 자가 그 理가 비록 약간 회복되더라도 순수하지 않음이 있고 이미 비록 약간 극복했다하더라도 다하지 않음이 있어 장차 修己治人의 도를 다할 수 없음을 염려한 까닭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것(至善)을 가리켜서 말해 至善을 明德·新民의 표적으로 삼은 것이다. 明德·新民하고 싶은 사람이 진실로 반드시 여기(至善)에 이르기를 바라 약간의 과불급의 어긋남도 용납하지 않을 수 있다면, 인욕을 없애고 천리를 회복하는 것에 조금의 여한도 없을 것이다.&lt;br /&gt;
:朱子曰: &amp;quot;至善只是極好處, 十分端正恰好, 無一毫不是處, 無一毫不到處. 且如事君, 必當如舜之所以事堯, 而後喚做敬; 治民, 必當如堯之所以治民, 而後喚做仁. 不獨如此, 凡理皆有箇極好處.&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至善'은 그저 아주 좋은 것이니, 십분 단정하고 적절해 조금의 옳지 않음도 없고 조금의 주도하지 않음도 없는 것이다. 예를들어 군주를 섬기는 경우 반드시 舜이 군주를 섬겼던 것과 같이 한 이후에야 敬이라고 불러야 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경우 반드시 堯가 백성을 다스린 것과 같이 한 이후에야 仁이라고 불러야 한다. [지선은] 이와 같은 경우 뿐만 아니라 모든 이치에 모두 각각 지극히 좋은 것이 있는 것이다.&lt;br /&gt;
:○陳氏曰: &amp;quot;所謂'姑以至善目之'者, 所以極形容其精微爾, 非謂精微之不為善而借此以形容之也.&amp;quot;&lt;br /&gt;
:진씨가 말했다: &amp;quot;이른바 '姑以至善目之'라는 것은 그 정미함을 지극히 형용한 것일 뿐이지, 정미함이 선하지 못해 이 말(지선)을 빌려 형용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amp;quot;&lt;br /&gt;
:○又曰: &amp;quot;自其大者言之, 如仁敬慈孝即君臣父子所當止之處; 自其小者言之, 如足容重, 手容恭, 重與恭, 即手足所當止之處; 視思明, 聽思聰, 聰與明, 亦視聽所當止之處.&amp;quot;&lt;br /&gt;
:또 말했다: &amp;quot;큰 것으로부터 말하면 仁·敬·慈·孝가 곧 군신·부자관계에서 마땅히 멈춰야 할 곳임과 같고, 작은 것으로부터 말하면 마치 '발 모양은 무겁게 하고 손 모양은 공손하게 한다'&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옥조&amp;gt; 足容重，手容恭，目容端，口容止，聲容靜，頭容直，氣容肅，立容德，色容莊，坐如尸，燕居告溫溫。&amp;lt;/ref&amp;gt;에서 무겁게 하고 공경하게 함이 곧 손과 발이 마땅히 그쳐야하는 곳이며, '볼 때는 밝음을 생각하고 들을 때는 귀밝기를 생각한다'&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계씨&amp;gt; 10. 孔子曰：「君子有九思：視思明，聽思聰，色思溫，貌思恭，言思忠，事思敬，疑思問，忿思難，見得思義。」&amp;lt;/ref&amp;gt;에서 귀밝음과 밝음은 또한 보고 들음이 마땅히 그쳐야 하는 곳인 것과 같다.&amp;quot;&lt;br /&gt;
&lt;br /&gt;
大抵『大學』一篇之指, 總而言之, 不出乎八事, 而八事之要, 總而言之, 又不出乎此三者, 此愚所以斷&amp;lt;sub&amp;gt;都玩反&amp;lt;/sub&amp;gt;然以爲『大學』之綱領而無疑也. 然自孟子沒而道學不得其傳, 世之君子各以其意之所便者爲學. 於是乃有不務明其明德, 而徒以政敎法度爲足以新民者; 又有愛身獨善, 自謂足以明其明德, 而不屑乎新民者; 又有畧知二者之當務, 顧乃安於小成, 狃&amp;lt;sub&amp;gt;女九反&amp;lt;/sub&amp;gt;於近利, 而不求止於至善之所在者. 是皆不考乎此篇之過, 其能成己成物而不謬者鮮&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矣.&amp;lt;br/&amp;gt;&lt;br /&gt;
대저 『대학』 한 편의 요지를 통틀어 말한다면 이 팔조목을 벗어나지 않으며, 이 팔조목의 요체를 통틀어 말한다면 또한 이 삼강령을 벗어나지 않으니, 이것이 내가 단호하게 [삼강령과 팔조목을] 『대학』의 강령이라고 여기고 의심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러나 맹자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도학이 전해지지 못해 세상의 군자들이 각각 자기 뜻이 편한 바를 학문으로 삼았다. 이에 곧 자신의 明德을 밝히는 데 힘쓰지 않고 그저 정교와 법도가 新民하기 충분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었고, 또 자신을 아끼고 홀로 선하게 해서 스스로 '내 明德을 밝힐 수 있다'고 여기면서 '新民'하려고 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으며, 또 대략 이 두 가지(明德·新民)에 마땅히 힘써야 함을 알지만 도리어 이내 작은 성공에 안주하고 가까운 이익만 탐내서 '止於至善'의 소재를 구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이 모두는 이 편(&amp;lt;대학&amp;gt;)을 상고하지 않은 잘못이니, 자신을 이루고 사물을 이루며 잘못하지 않을 수 있는 자가 드물다.&lt;br /&gt;
:朱子曰: &amp;quot;不務明其明徳而以政教法度為足以新民, 如管仲之徒便是; 自謂能明其明徳而不屑於新民, 如佛老便是; 略知明徳新民而不求止於至善, 如王通便是. 看他於己分上亦甚脩飾, 其論為治, 本末亦有條理, 甚有志於斯世, 只是規模淺窄, 不曽就本原上着工, 便做不徹. 須是無所不用其極, 方是. 古之聖賢明明徳, 便欲無一毫私欲; 新民, 便欲人於事事物物上皆是當也.&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자신의 明徳을 밝히는데 힘쓰지 않고 정교와 법도가 新民하기 충분하다고 여기는 것'은 관중과 같은 무리가 이에 해당하고, '스스로 明徳을 할 수 있다고 여기면서 新民하려고 하지 않은 것'은 불교·도가와 같은 자들이 이에 해당하며, '대략 明徳·新民해야 함을 알지만 止於至善을 구하지 않는 것'은 왕통과 같은 자가 이에 해당한다. 그(왕통)를 보면, 자기 본분상에서 매우 잘 닦았고, 그가 다스림에 대해서 논한 것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역시 조리가 있었으며, 이 세상에 심히 뜻을 두긴 했지만, 다만 규모가 너무 작아 일찍이 본원상에서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철저하지 못하였다. 모름지기 그 지극함을 쓰지 않음이 없어야 비로소 옳다. 옛날의 성현들의 明明徳은 터럭만큼의 작은 사욕도 없고자 하셨고, 新民은 사람들이 사사물물마다 모두 옳게 하고자 하셨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成己謂明徳; 成物謂新民; 不止至善, 故'不謬者鮮.'&amp;quot;&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자신을 이루는 것을 明徳이라하고, 사물을 이뤄주는 것을 新民이라 한다. 至善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잘못하지 않는 자가 드물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8. '親民'을 '新民'으로 고친 이유&lt;br /&gt;
&lt;br /&gt;
曰: “程子之改親爲新也, 何所據? 子之從之, 又何所考而必其然耶? 且以已意輕改經文, 恐非傳疑之義, 奈何?”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정자께서 '親'을 '新'으로 고치셨는데, 어디에 근거하신 것인가? 그대가 이를 따랐는데, 또 무엇을 고찰해 그러함을 확신했나? 또 자기 생각으로 함부로 경문을 고치는 것은 傳疑&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謂將自己認為有疑義的問題如實告人。 亦謂傳授有疑義的問題。 ▶ 《穀梁傳‧莊公七年》： “《春秋》著以傳著， 疑以傳疑。” &amp;lt;/ref&amp;gt;의 원칙&amp;lt;ref&amp;gt; 義 : 4.理應。&amp;lt;/ref&amp;gt; 이 아닌 것 같은데, 어떤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新安倪氏曰: &amp;quot;&amp;lt;春秋穀梁傳&amp;gt;云: '信以傳信, 疑以傳疑.'&amp;lt;ref&amp;gt;&amp;lt;춘추곡량전&amp;gt; 환공5년. 五年春，正月甲戌、己丑，陳侯鮑卒。鮑卒，何為以二日卒之？《春秋》之義，信以傳信，疑以傳疑。陳侯以甲戌之日出，己丑之日得。不知死之日，故舉二日以包也。&amp;lt;/ref&amp;gt; 此傳疑二字所本也.&amp;quot;&lt;br /&gt;
:신안예씨가 말했다. &amp;lt;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amp;gt;에서 이르기를 '信은 傳信으로 하고, 疑는 傳疑로 한다.'고 하였으니 이 傳과 疑의 두글자는 근본하는 바이다.&lt;br /&gt;
曰: “若無所考而輒改之, 則誠若吾子之譏矣. 今親民云者, 以文義推之則無理, 新民云者以傳&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文考之則有據, 程子於此, 其所以處&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之者亦已審矣. 矧未嘗去&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其本文, 而但曰: 某當作某, 是乃漢儒釋經不得已之變例, 而亦何害於傳疑耶? 若必以不改爲是, 則世蓋有承誤踵&amp;lt;sub&amp;gt;之隴反&amp;lt;/sub&amp;gt;訛&amp;lt;sub&amp;gt;吾禾反&amp;lt;/sub&amp;gt;, 心知非是, 而故爲穿鑿附會, 以求其說之必通者矣, 其侮聖言而誤後學也益甚, 亦何足取以爲法耶?”&amp;lt;br/&amp;gt;&lt;br /&gt;
말했다. 만약 고찰할 바가 없는데도 곧장 그것을 고쳤다면 진실로 그대의 비판과 같다. 지금 親民을 말하는 사람은 글의 뜻으로 이를 미루어 본다면 이치가 없고, 新民을 말하는 사람은 (대학의) 傳文로 그것을 상고해 보면 근거가 있다. 정자께서 이에 대해 대처하신 것은 또한 매우 자세히 살피신 것이다. 하물며 일찍이 그 본문을 제거하지 않고 다만 '무엇은 마땅히 무엇으로 써야한다'고 말한 것은 바로 한나라 유자들이 경전을 해석하면서 부득이 한 變例니, 또한 어찌 傳疑에 해가 되겠는가? 만약 반드시 고치지 않는 것을 옳다고 여긴다면 세상은 아마도 잘못된 것을 답습해서 마음은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고의로 천착하고 억지로 가져다 붙이면서 그 설명이 반드시 통하는 것을 구할 것이니 성현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후학들을 그르치는 것이 더욱 심해질 것이니 또한 어떻게 본보기로 삼음을 취하기에 충분하겠는가?&lt;br /&gt;
&lt;br /&gt;
&lt;br /&gt;
9. '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에 대한 설명&lt;br /&gt;
&lt;br /&gt;
曰: “‘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 何也?”&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머무를 곳을 안 이후에 일정함이 있고 일정한 이후에 고요해질 수 있고 고요해진 이후에 안정될 수 있고 안정된 이후에 사려할 수 있고 사려한 이후에 얻을 수 있다고 하셨으니 어째서 입니까?&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此推本上文之意, 言明德新民所以止於至善之由也. 蓋明德新民, 固皆欲其止於至善, 然非先有以知夫&amp;lt;sub&amp;gt;音扶下同&amp;lt;/sub&amp;gt;至善之所在, 則不能有以得其所當止者而止之. 如射者固欲其中&amp;lt;sub&amp;gt;去聲下同&amp;lt;/sub&amp;gt;夫正鵠&amp;lt;sub&amp;gt;正音征鵠音谷&amp;lt;/sub&amp;gt;, 然不先有以知其正鵠之所在, 則不能有以得其所當中者而中之也. 知止云者, 物格知至而於天下之事, 皆有以知其至善之所在, 是則吾所當止之地也. 能知所止, 則方寸之間, 事事物物, 皆有定理矣;&amp;lt;br/&amp;gt;&lt;br /&gt;
답했다. &amp;quot;이것은 상문의 의미를 탐구한 것이니&amp;lt;ref&amp;gt;推本:探究&amp;lt;/ref&amp;gt; 明德, 新民이 止於至善하는 경로를 말한 것이다. 대개 明德, 新民은 진실로 모두 止於至善하고자 하지만 먼저 至善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면 마땅히 머물러야할 곳을 얻어서 머무를 수 없다. 이는 마치 사수가 진실로 정곡을 맞추고자 하지만 먼저 정곡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없다면 마땅히 맞춰야 할 바를 얻어서 맞출 수 없는 경우와 같다. 知止를 말한 것은 物格知至한다면 천하의 일에 대해 모두 至善이 있는 곳을 알수 있을 것이니, 거기가 곧 내가 마땅히 멈춰야 할 곳이다. 머무를 바를 알 수 있다면 마음이 모든 일에 대해 모두 일정한 이치를 가지게 된다.&amp;quot;&amp;lt;br/&amp;gt;&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amp;lt;章句&amp;gt;云: '知之則志有定向.' 此云: '事物皆有定理.' 合二說, 其義方備. 能知所止, 則此心光明, 見得事物皆有定理, 而志方有定向.&amp;quot;&lt;br /&gt;
:신안진씨가 말했다. &amp;lt;장구&amp;gt;에서는 '알고나면 뜻은 일정한 방향을 가진다(知之則志有定向)'고 하고 여기에서는 '만물에 모두 일정한 이치를 가지게 된다.(事物皆有定理)'고 하시니 이 두 설명을 합쳐야 그 의미가 비로소 (완전히) 갖추어 진다. 머무를 곳을 알 수 있으면 이 마음이 훤히 밝아져서 모든 일에 일정한 이치가 있음을 알 수 있고 뜻에도 일정한 방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理既有定, 則無以動其心而能靜矣; 心既能靜, 則無所擇於地而能安矣; 能安, 則日用之間, 從&amp;lt;sub&amp;gt;七恭反&amp;lt;/sub&amp;gt;容閒&amp;lt;sub&amp;gt;音閑&amp;lt;/sub&amp;gt;暇, 事至物來, 有以揆之而能慮矣; 能慮, 則隨事觀理, 極深研幾&amp;lt;sub&amp;gt;平聲&amp;lt;/sub&amp;gt;,&amp;lt;ref&amp;gt;&amp;lt;주역&amp;gt; &amp;lt;계사상&amp;gt; 夫易，聖人之所以極深而研幾也。&amp;lt;/ref&amp;gt;無不各得其所止之地而止之矣.&amp;lt;br/&amp;gt;&lt;br /&gt;
이치가 정해짐이 있고나면 그 마음을 동요시킬 수 없어서 고요할 수 있게 되고, 마음이 고요질 수 있고나면 어느 곳에서든 안정될 수 있고, 안정될 수 있다면 평소에 느긋하고 한가로워서 사물이 닥칠 때 그것을 헤아리고 사려할 수 있고, 사려할 수 있다면 일에 따라 이치를 관찰함에 매우 깊히 그 기미를 연구해서 각각 그 머물러야 할 곳을 얻어서 머무르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lt;br /&gt;
:問: &amp;quot;'知止'與'能慮', 先生昨以比&amp;lt;易&amp;gt;中'深'與'幾', &amp;lt;或問&amp;gt;中却兼下'極深研幾'字, 覺未穩.&amp;quot; 朱子曰: &amp;quot;極深研幾, 是更審一審. 當時下得未仔細. 要之只著得研幾字.&amp;quot;&lt;br /&gt;
:물었다. '知止'와 '能慮'를 선생님께서 이전에 &amp;lt;易&amp;gt;의'深'과 '幾'에 비교하셨는데&amp;lt;ref&amp;gt; 『주역』, 「계사상전」 &amp;quot;夫易, 聖人之所以極深而研幾也,&amp;quot; &amp;lt;本義&amp;gt; 研, 猶審也. 幾, 微也. 所以極深者, 至精也. 所以研幾者, 至變也. 연(硏)은 살핀다는 ‘심(審)’과 같고 기(幾)는 기미이다. 깊음을 다한다는 것은 지극히 정밀함이고, 기미를 살핀다는 것은 지극히 변화함이다. &amp;lt;/ref&amp;gt; &amp;lt;혹문&amp;gt;에서 도리어 '極深研幾'를 겸하여 쓰셨으니 온당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주자가 말했다. 極深研幾는 다시 한 번 살펴봐야 한다/. 당시에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으니 핵심은 '研幾'자를 써야한다.&lt;br /&gt;
:○陳氏曰: &amp;quot;物果格而無一理之不窮, 無一見之不盡, 則於天下之事, 所謂至善所當止者, 皆灼然有以知之矣.&amp;quot;&lt;br /&gt;
:진씨가 말했다. &amp;quot;사물에게 과연 格했을 때, 하나의 이치라도 궁구하지 않음이 없고 하나를 보더라도 다하지 않음이 없다면, 천하의 모든 일에 대해서 이른바 至善하여 마땅히 그쳐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을 모두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amp;quot;&lt;br /&gt;
:○理既有定, 則心之所主, 更無外慕, 凡外物皆無以動之, 而能静矣. 身既能安, 則向者知所當止之事物, 或接乎吾前, 而吾從容以應之, 自能精於慮, 而不錯亂矣.&lt;br /&gt;
:이치가 정해지고 나면 마음이 주로하는 바에 달리 밖으로 사모하는 것이 없어 무릇 외물이 (내 마음을) 동요시킬 수 없음으로 고요할 수 있다. 몸이 편안할 수 있고나면 전에 마땅히 머물러야할 사물을 알아서 혹 내 앞에 접하더라도 내가 종용히 그것에 응하여 절로 사려를 정밀하게 할 수 있고 착란하지 않을 수 있다.&lt;br /&gt;
&lt;br /&gt;
然旣眞知所止, 則其必得所止, 固已不甚相遠. 其間四節, 蓋亦推言其所以然之故, 有此四者, 非如孔子之志學以至從心,&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위정&amp;gt; 4. 子曰：「吾十有五而志于學，三十而立，四十而不惑，五十而知天命，六十而耳順，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amp;lt;/ref&amp;gt; 孟子之善信以至聖神,&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진심하&amp;gt; 25. 浩生不害問曰：「樂正子，何人也？」孟子曰：「善人也，信人也。」	「何謂善？何謂信？」 曰：「可欲之謂善，有諸己之謂信。充實之謂美，充實而有光輝之謂大，大而化之之謂聖，聖而不可知之之謂神。樂正子，二之中，四之下也。」&amp;lt;/ref&amp;gt; 實有等級之相懸, 爲終身經歷之次序也.”&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이미 진실로 그 머물 곳을 알았다면 반드시 그 머물 곳을 얻어서 이미 너무 (그 사이가) 멀지 않다. (그러나) 그 사이에 네 가지 단계는 아마도 또한 그 소이연의 이유를 미루어 말한 것이니 이 네가지 단계가 있는 것은 공자의 '학문에 뜻을 세우고 從心까지 이르는 것'과 맹자의 '善信해서 聖神에까지 이르는 것'이 진실로 단계끼리 서로 현격한 차이가 있어서 종신토록 거쳐야할 순서가 되는 것과 같지 않다.&lt;br /&gt;
:朱子曰: &amp;quot;如'志學'至'從心', 中間許多, 便是大階級, 歩却闊. '知止'至'能得'只如'志學'至'立'、'立'至'不惑'相似, '定静安'大抵皆相類, 只是就一級中間細分耳.&amp;quot;&lt;br /&gt;
:주자가 말했다. 예를들어 '志學'부터 '從心'까지 그 중간에 많은 단계들은 큰 단계이니 걸음거리를 넒게해야 하지만 '知止'부터 '能得'은 다만 '志學'부터 '立'과 '立'부터 '不惑'까지와 서로 비슷하니 '定静安'은 대체로 이러한 부류인데 다만 한 단계를 중간에 세분화했을 뿐이다. &lt;br /&gt;
:○某事當如此, 某事當如彼, 如君當仁, 此是知止; 事至物來, 對著胷中恰好底道理, 將這箇去應他, 此是得其所止.&lt;br /&gt;
:누구의 일은 마땅히 이와 같아야하고 누구의 일은 마땅히 저것과 같아야 하니 예를들어 군주가 마땅히 仁해야하는 경우가 바로 머물 곳을 아는 것이다. 사물이 다가옴이 마음에 적절한 도리에 대해 그것을 가지고 사물에 응하는 것이 바로 머물 곳을 얻은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10.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에 대한 설명&lt;br /&gt;
&lt;br /&gt;
曰: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何也?”&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사물에는 本末이 있고 사건에는 終始가 있으니 선후를 알면 바로 도와 근접하다고 하신 것은 무엇입니까?&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此結上文兩節之意也. 明德·新民, 兩物而內外相對, 故曰本末; 知止·能得, 一事而首尾相因, 故曰終始. 誠知先其本而後其末, 先其始而後其終也, 則其進爲有序而至於道也不遠矣.”&amp;lt;br/&amp;gt;&lt;br /&gt;
답했다. &amp;quot;이는 윗 글의 두 구절의 의미를 마무리한 것이다. 明德과 新民은 두 가지지만 안팍으로 서로 짝이되므로 本末이라고 말한 것이고, 知止와 能得은 한 가지 일인데 머리와 꼬리가 서로를 말미암기 때문에 終始이라고 말한 것이다. 진실로 그 근본을 먼저하고 그 말단을 나중에 하며 그 처음을 먼저하고 그 마지막을 나중에 할 줄 안다면 그 나아감에 순서가 있게 되어 도에 이르르는 것이 멀지 않다.&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知工夫先後、次第, 則進為有序, 不忽近務逺, 處下窺髙, 而其入道為不逺矣, 謂至道之近也.&amp;quot;&lt;br /&gt;
:주자가 말했다. &amp;quot;공부의 선후와 순서를 안다면 나아감에 순서가 있게 되어 가까운 것을 소홀히하고 고원한 것에는 힘쓰지 않으며 낮은 곳에 있으면서 높은 것을 헤아리지 않아서 도에 들어감이 멀지 않게 되니 도의 다다름이 가까워진다고 하였다.&amp;quot;&lt;br /&gt;
:○黄氏曰: &amp;quot;知所先後, 方是曉得為學之道, 未能遂得夫道也. 然既知其進為之序, 則有至之階矣, 故云去道不遠.&amp;quot;&lt;br /&gt;
:황씨가 말했다. &amp;quot;선후를 알아야 학문을 하는 방법을 깨달을 수 있지만 그 도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그 나아가는 순서를 알았다면 이르게 되는 단계가 있기 때문에 도까지의 거리가 멀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11.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 致知在格物’에 대한 설명&lt;br /&gt;
&lt;br /&gt;
曰: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何也?”&amp;lt;br/&amp;gt; &lt;br /&gt;
물었다. '옛날에 천하에 明德을 밝히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나라를 다스리고, 그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집안을 다스리고, 그 집안을 다스리고 싶은 사람은 먼저 그 몸을 다스리고, 그 몸을 다스리고 싶은 사람은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 싶은 사람은 먼저 그 뜻을 진실되게 하고, 그 뜻을 진실되게 하고 싶은 사람은 먼저 그 앎을 지극히하고, 앎을 지극히 하는 것은 격물에 달려있다.'고 하였는데 어째서 입니까?&amp;lt;br/&amp;gt; &lt;br /&gt;
曰: “此言大學之序, 其詳如此, 蓋綱領之條目也. 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者, 明明德之事也. 齊家·治國·平天下者, 新民之事也. 格物致知, 所以求知至善之所在; 自誠意以至於平天下, 所以求得夫至善而止之也. &amp;lt;br/&amp;gt; &lt;br /&gt;
답했다. 이는 대학의 순서가 이와 같이 상세함을 말한 것이니, 대개 3강령의 조목이다. 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이라는 것은 明明德의 일이고, 齊家·治國·平天下는 新民의 일이다. 格物致知는 至善이 있는 곳을 알기를 구하는 것이고 誠意부터 平天下에 이르기까지는 저 至善을 얻어서 그곳에 머무르기를 구하는 것이다.&lt;br /&gt;
:朱子曰: &amp;quot;格物、致知, 是求知其所止; 誠意、正心、脩身、至平天下, 是求得其所止. 物格、知至, 是知所止; 意誠、心正、身脩、家齊、國治、天下平, 是得其所止.&amp;quot;&lt;br /&gt;
:주자가 말했다. 格物과 致知는 그 머무를 바를 알기를 구한 것이고, 誠意、正心、脩身부터 平天下까지는 그 머무를 바를 얻기를 구한 것이다.  物格、知至는 그 머무를 바를 안 것이고  意誠、心正、身脩、家齊、國治、天下平는 그 머무를 바를 얻은 것이다. &lt;br /&gt;
&lt;br /&gt;
所謂明明德於天下者, 自明其明德而推以新民, 使天下之人皆有以明其明德也. 人皆有以明其明德, 則各誠其意, 各正其心, 各修其身, 各親其親, 各長&amp;lt;sub&amp;gt;上聲下同&amp;lt;/sub&amp;gt;其長, 而天下無不平矣. &amp;lt;br/&amp;gt; &lt;br /&gt;
이른바 '明明德於天下'라는 것은 스스로 明德을 밝혀서 이것을 新民으로 미루어나가 천하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明德을 밝힐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자신들의 명덕을 밝힐 수 있다면 각각 그 뜻을 진실하게 할 수 있고 각자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하며 각자 자신을 닦아서 각자 자신의 부모를 친히하고 각자 자신의 어른을 어른대접할 것이니 천하가 평안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lt;br /&gt;
:問: &amp;quot;明徳之功, 果能若是, 不亦善乎? 然以堯舜之聖, 閨門之内, 或未盡化, 况謂天下之大, 能服堯舜之化而各明其徳乎?&amp;quot; 朱子曰: &amp;quot;&amp;lt;大學&amp;gt;'明明徳於天下', 只是且說箇規模如此. 學者須有如此規模, 不如此, 便是欠了. 且如伊尹'思匹夫不被其澤, 如已推而納之溝中',&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만장상&amp;gt; 7. 萬章問曰：「人有言『伊尹以割烹要湯』有諸？」 孟子曰：「否，不然。伊尹耕於有莘之野，而樂堯舜之道焉。…… 思天下之民匹夫匹婦有不被堯舜之澤者，若己推而內之溝中。」&amp;lt;/ref&amp;gt; 伊尹也只大槩要恁地, 又如何使得無一人不被其澤! 又如説比屋可封,&amp;lt;ref&amp;gt;&amp;lt;상서대전&amp;gt; &amp;lt;略說&amp;gt; 周人可比屋而封。; &amp;lt;한어대사전&amp;gt; 【比屋可封】 1. 謂上古之世教化遍及四海， 家家都有德行， 堪受旌表。&amp;lt;/ref&amp;gt; 也須有一家半家不恁地者, 只是見得自家規模自當如此, 到做不去處, 却無可奈何. 規模自是著恁地, 工夫便却用寸寸進. 若無規模次第, 只管去細碎處走, 便入世之計功謀利處去; 若有規模而又無細密工夫, 又只是一箇空規模. 外極規模之大, 内推至於事事物物處, 莫不盡其工夫, 此所以為聖賢之學.&amp;quot;&lt;br /&gt;
:물었다. 명덕의 공효가 과연 이와 같을 수 있으니 또한 좋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요순과 같은 성인도 안방문 안에 대해서는 혹 다 교화시키지 못하셨으니 하물며 천하와 같이 큼이 능히 요순의 교화를 입어서 각각 자신의 덕을 밝힐 수 있다고 말하시는 겁니까? 주자가 말했다. &amp;lt;대학&amp;gt;의 '明明徳於天下'라는 것은 다만 그 규모가 이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학자는 모름지기 이와 같은 규모를 가져야 하니, 이와 같지 않으면 부족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이윤이 '필부라도 요순의 은택을 입지 못하는 것을 마치 자기를 미루어 시체 구덩이에 넣는 것과 같이 여겼'으니 이윤도 다만 대체적으로 이와 같이하고자 한 것이니, 또 어떻게 한 사람이라도 그 은택을 입지 못함이 없게할 수 있겠는가? 또 예를 들어 '주나라 사람들은 집집마다 봉할 만 했다(比屋可封)'로 말하더라도 틀림이나 이와 같지 않은 한 집, 반 집은 있었을 것이니 다만 자신의 규모가 응당 이와 같아야 함을 알아야 하지만 행하지 못하는 데 이르러서는 도리어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규모는 본래 이와 같이 두고 공부는 하나하나 나아가는 것이다. 만약 규모나 순서가 없고 그저 세세한 것에만 집학하면 세상의 공리를 꾀하는 수준에 들어가게 될 것이요 만약 규모는 있는데 세밀한 공부가 없다면 또 그저 헛된 규모일 뿐이다. 밖으로는 규모의 거대함을 다하고 안으로는 모든 일에 미루어 나가 그 공부를 다하지 않음이 없는 것 이것이 성현의 학문이 되는 것이다.&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不言各格物致知者, '民可使由, 不可使知'&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태백&amp;gt; 9. 子曰：「民可使由之，不可使知之。」&amp;lt;/ref&amp;gt;之意也. 親親、長長, 即齊家之大者.&amp;quot;&lt;br /&gt;
:신안진씨가 말했다. &amp;quot;각각 격물치지한다고 말하지 않은 것은 '백성들은 말미암게 할 수 있지만 알게 할 수 없다'뜻이다. 親親, 長長은 제가 가운데 중요한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然天下之本在國, 故欲平天下者, 必先有以治其國. 國之本在家, 故欲治國者, 必先有以齊其家. 家之本在身, 故欲齊家者, 必先有以修其身. 至於身之主則心也. 一有不得其本然之正, 則身無所主, 雖欲勉强&amp;lt;sub&amp;gt;上聲下同&amp;lt;/sub&amp;gt;以修之, 亦不可得而修矣, 故欲修身者, 必先有以正其心. 而心之發則意也, 一有私欲雜乎其中, 而爲善去&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惡或有未實, 則心爲所累, 雖欲勉强以正之, 亦不可得而正矣. 故欲正心者, 必先有以誠其意, 若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知則心之神明, 妙衆理而宰萬物者也. 人莫不有, 而或不能使其表裏洞然, 無所不盡, 則隱微之間, 眞妄錯雜, 雖欲勉强以誠之, 亦不可得而誠矣. 故欲誠意者, 必先有以致其知. 致者, 推致之謂, 如‘喪致乎哀’之致, 言推之而至於盡也. &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천하는 본래 나라에 달려있으니 평천하 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그 나라를 다스려야하고, 나라는 본래 집안에 달려있으니 나라를 다스리고 싶은 사람은 반드지 먼저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해야하고, 집안은 본래 자신에게 달려있으 집안을 다스리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먼저 그 몸을 닦아야 하고, 그 몸의 주인됨는 경우는 마음이니 하나라도 본래의 바름을 구할 수 없다면 몸에 주재하는 것이 없다. 비록 억지로 힘써 닦고자 하더라도 닦을 수 가 없다. 그러므로 수신하고하 하는 자는 반드시 먼저 자신의 마음을 바로해야한다. 마음이 발현된 것이 의이니 하나라도 사욕이 그 마음 속에서 뒤섞여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함에 혹시라도 충실하지 않은 것이 있으면 마음이 얽매이게 되니 비록 억지로 힘써 바로 잡고자 하더라도 바로 잡을 수 없다. 그러므로 마음을 바로잡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그 뜻을 진실되게 해야한다. 대저 지각은 마음의 신명이니 뭇 이치를 묘하게 갖추고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 사람 知가 없는자는 없지만 혹 마음의 표리를 훤하게 다 알지 못하는 바가 없게 할 수 없다면 은미한 가운데 진망이 뒤섞여서 비록 억지로 힘써 진실되게 하고자 하더라도 또한 진실되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뜻을 진실되게 하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먼저 그 앎을 지극히 해야한다. 致라는 것은 推致를 말하니 '喪致乎哀'&amp;lt;ref&amp;gt; 『논어』 &amp;lt;자장&amp;gt; 14. 子游曰：「喪致乎哀而止。&amp;lt;/ref&amp;gt; 의 致와 같으니 미루어서 지극한데 이름을 말한다.&lt;br /&gt;
:朱子曰: &amp;quot;神是恁地精彩; 明是恁地光明.&amp;quot;'&lt;br /&gt;
:주자가 말했다. &amp;quot;神은 이와 같이 빛나는 것이고 明은 이와 같은 광명이다. &amp;quot;&lt;br /&gt;
:○道理固本有, 用知方發得出來. 所以謂之妙衆理. 妙猶言能運用衆理也. '運用'字有病, 故只下得'妙'字.&amp;quot;&lt;br /&gt;
:道理는 진실로 본래 가지고 있지만 知를 써야 비로소 드러낼 수 있다. 그러므로 妙衆理라고 하였다. 妙는 運用를 운용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運用'에는 병통이 있기 때문에 다만 '妙'만 썼다.&lt;br /&gt;
:○問: &amp;quot;宰是主宰之宰, 宰制之宰?&amp;quot; 曰: &amp;quot;主便是宰, 宰便是制.&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宰라는 것은 主宰의 宰입니까 宰制의 宰입니까?&amp;quot; 말했다. &amp;quot;主宰의 主는 주관함(宰)이고, 宰制의 宰는 제어함(制)이다.&amp;quot;&lt;br /&gt;
:○問: &amp;quot;知如何宰物?&amp;quot; 曰: &amp;quot;無所知學, 則不足以宰制萬物. 要宰制他, 也須要知覺.&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지가 어떻게 사물을 제재합니까?&amp;quot; 말했다. &amp;quot;지각함이 없으면 만물을 제재할 수 없다. 만물을 제재하려면 역시 지각해야한다.&amp;quot;&lt;br /&gt;
:○心之為物, 至虛至靈, 神妙不測, 常為一身之主, 以提萬事之綱, 而不可有頃刻之不存者也. 一不自覺而馳騖飛揚, 以狥物欲於軀殻之外, 則一身無主, 萬事無綱, 雖其俯仰顧盼之間, 盖巳不自覺其身之所在.&amp;quot;&lt;br /&gt;
:마음의 사물됨은 매우 虛靈하고 신묘하고 예측하지 못하여 항상 일신의 주재가 되니 만사의 기강을 잡아서 잠시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심이) 한 번이라도 자각하지 않고서 내달려 몸뚱이 밖으로 물욕을 좇는다면 일신에 주재가 없고 만사에 기강이 없어 비록 잠깐&amp;lt;ref&amp;gt; 俯仰 : 7.比喻時間短暫。&amp;lt;/ref&amp;gt; 사이에도 대개 이미 몸이 있는 곳을 자각하지 못할 것이다.&lt;br /&gt;
:○黄氏曰: &amp;quot;理是不動底物, 不著妙字, 如何發得許多理出來?&amp;quot;&lt;br /&gt;
:황씨가 말했다. &amp;quot;理는 움직이지 않는 물건이니 '妙'를 쓰지 않으면 어떻게 허다한 理를 드러낼 수 있겠는가&amp;quot;&lt;br /&gt;
:○陳氏曰: &amp;quot;致知言表裏洞然, 以心之内外而言. 知不致, 則無以識是非善惡之眞, 將從何而趨, 從何而捨? 必有錯認人欲作天理而不自覺者.&amp;quot;&lt;br /&gt;
:진씨가 말했다. &amp;quot;致知는 안과 밖으로 훤한 것을 말하니 마음의 안팎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앎이 지극하지 않으면 참된 시비, 선악을 알지 못하니 장차 무엇을 통해 취하고 무엇을 통해 버릴 것인가? 필시 인욕을 천리라고 잘못 인식하고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amp;quot;&lt;br /&gt;
:○三山陳氏曰: &amp;quot;欲意之誠而不始於致知, 則有善否未明而誤於所向者, 多矣. '推之而至於盡', 有所用力之辭.&amp;quot;&lt;br /&gt;
:삼산진씨가 말했다. &amp;quot;뜻이 진실해지기를 바라면서 致知에서 시작하지 않는다면 선한지 아닌지에 대해 밝지 않은 점이 있게 되어 향할 바를 오인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推之而至於盡'라고 한 것은 힘쓸 바가 있다는 말이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心之神明, 即所得於天而虚靈不昩者也. 心固具衆理而應事物, 所以妙衆理而宰事物者, 非心之神明乎? 其表與裏洞然無不盡, 則心之用與體無不明矣. 神明字與虚靈字, 相為表裏: 虚主理言, 靈兼氣言, 先言虚, 後言靈, 見心之體不離用; 神兼氣言, 明主理言, 先言神, 後言明, 見心之用不離體.&amp;quot;&lt;br /&gt;
:옥계노씨가 말했다. &amp;quot;마음의 신명함은 이미 하늘에서 얻어서 허령불매한 것이다. 마음은 진실로 具衆理하고 應事物하니, 妙衆理하고 宰事物이라는 것은 마음의 신명함이 아니겠는가? 그 안과 밖이 훤하여 다하지 않음이 없다면 마음의 용과 체가 밝혀지지 않음이 없다. 신명이라는 글자와 허령이라는 글자는 서로 표리가 되니 허는 리를 주로하여 말하였고 령은 기를 겸하여 말한 것인데 먼저 허를 말하고 나중에 령이라고 말한 것은 마음의 체가 용과 떨어지지 않음을 드러낸 것이고, 신은 기를 겸하여 말한 것이고 명은 리를 주로 말한 것이니 먼저 신을 말하고 나중에 명을 말한 것은 심의 용이 체와 떨어지지 않음을 드러낸 것이다.&amp;quot;&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心本神明之物; 知又心之所以神明者. 惟神明所以妙也.&amp;quot;&lt;br /&gt;
:신안진씨가 말했는 &amp;quot;마음은 본래 신명한 물건이고 지는 또한 마음이 신명한 까닭이다. 오직 신명하기 때문에 묘한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至於天下之物, 則必各有所以然之故, 與其所當然之則, 所謂理也, 人莫不知, 而或不能使其精粗隱顯, 究極無餘, 則理所未窮, 知必有蔽, 雖欲勉强以致之, 亦不可得而致矣. &amp;lt;br/&amp;gt;&lt;br /&gt;
천하의 사물에 경우는 반드시 각각 소이연의 연고가 있고 마땅히 그러한 법칙이 있으니 이른바 리이다. 사람은 (리를) 알지 못함이 없지만 혹 그 정추은현을 궁구하여 남음이 없게 할 수 없으면 리에는 다하지 못한 바가 있고 지에는 필시 가리워진 바가 있으니 비록 억지로 힘써 그것을 다하고자 하여고 또한 다할 수 없을 것이다.&lt;br /&gt;
:朱子曰: &amp;quot;所當然之則, 如君之仁、臣之敬; 所以然之故, 如君何故用仁、臣何故用敬. 如君之所以仁, 盖君是箇主腦, 百姓人民皆屬他管, 他自是用仁愛, 非說是為君了, 不得巳以仁愛行之, 自是合如此, 若天使之然. 又如父之所以慈, 子之所以孝, 盖父子本同一氣, 只是一人之身分成兩箇, 其恩愛相屬, 自有不期然而然者. 其他大倫皆然, 皆天理使之如此, 豈容强為哉?&amp;quot;&lt;br /&gt;
:주자가 말했다. &amp;quot;當然之則이라는 것은 군주의 인함과 신하의 공경함과 같은 것이고, 所以然之故라는 것은 군자가 어째서 인고 신하는 어째서 경한지 대한 것과 같다. 예를 들어 군자가 인한 까닭은 대개 군주는 리더고 백성 인민은 모두 그의 관할에 속하기 때문이니 그가 저절로 仁愛를 행하는 것이지 군주가 되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仁愛를 행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니 절로 이와 같이 해야하는 것이 마치 하늘이 그렇게 하도록 시킨 것과 같다. 또 아버지가 자애로운 까달과 자식이 효성스러운 까닭은 대개 부자는 본래 한 기를 공유였는지라 한 사람의 몸이 나뉘어 둘을 이룬 것이니 그 은혜가 서로 이어져 절로 그렇게 하기를 기약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되는 점이 있다. 다른 큰 인륜도 모두 그러하니 모두 천리가 그와 같이 하게 한 것이니 어찌 억지로 할 수 있겠는가?&amp;quot;&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粗也顯也, 即事物當然之則也; 精也隱也, 即事物所以然之故也.&amp;quot;&lt;br /&gt;
:옥계노씨가 말했다. 粗과 顯은 바로 事物當然之則이고 精과 隱은 事物所以然之故다.&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所當然之則, 理之實處; 所以然之故, 乃其上一層理之源頭也.&amp;quot;&lt;br /&gt;
:신안진씨가 말했다. &amp;quot;所當然之則는 리의 實處이고 所以然之故 바로 한 층 위의 근원적인 의미의 리이다.&amp;quot;&lt;br /&gt;
&lt;br /&gt;
故致知之道, 在乎卽事觀理, 以格夫物. 格者, 極至之謂, 如‘格於文祖’之格,&amp;lt;sub&amp;gt;見書舜典&amp;lt;/sub&amp;gt; 言窮之而至其極也. &amp;lt;br/&amp;gt;&lt;br /&gt;
그러므로 致知하는 방법은 일에 나아가 이치를 관찰하여 저 물에 이르는 것에 달려 있으니 격이라는 것은 '이름'을 말하니 문조에 이른다는 격과 같으니 궁구하여 지극한 곳에 이른다는 말이다.&lt;br /&gt;
:括蒼葉氏曰: &amp;quot;但能隨事觀理, 盡與理㑹, 卒之天下事物之理, 不惟知得一件兩件, 若隱若顯, 盖將無所不知矣; 一事一物之間, 不唯知得一分兩分, 若精若粗, 盖將無所不知矣.&amp;quot;&lt;br /&gt;
:괄창엽씨(葉味道/賀孫)가 말했다. &amp;quot;다만 일을 따라서 이치를 관찰하여 모두 이해할 수 있기만 한다면 끝내 천하 사물의 이치에 대해 한 두가지만 알 수 있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은미한 것이든 드러난 것이든 대개 장차 알지 못하는 것이 없을 것이며, 한 사물간에 10%, 20%만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밀한 것이든 거친 것이든 간에 장차 알지 못하는 것이 없을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此『大學』之條目, 聖賢相傳, 所以敎人爲學之次第, 至爲纖悉. 然漢·魏以來, 諸儒之論, 未聞有及之者. 至唐韓子&amp;lt;sub&amp;gt;名愈字退之&amp;lt;/sub&amp;gt;乃能援&amp;lt;sub&amp;gt;音袁&amp;lt;/sub&amp;gt;以爲說, 而見&amp;lt;sub&amp;gt;形甸反&amp;lt;/sub&amp;gt;於「原道」之篇, 則庶幾其有聞矣. 然其言極於正心誠意, 而無曰致知格物云者, 則是不探&amp;lt;sub&amp;gt;音貪&amp;lt;/sub&amp;gt;其端, 而驟語其次, 亦未免於擇焉不精, 語焉不詳之病矣. 何乃以是而議荀·揚哉?”&amp;lt;br/&amp;gt;&lt;br /&gt;
이것이 『大學』의 조목이요 성현께서 서로 전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학문하게 하는 순서니 지극히 섬세하다. 그러나 漢·魏이래로 여러 유자들의 논의 가운에 이에 미친 것이 있다고는 듣지 못했다. 당나라 한유의 경우는 바로 이를 가져다가 설을 만들어「原道」라는 글에서 드러낼 수 있었으니, 거의 (미친게 있다고) 들은 바가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이 정심성의에는 미쳤으니 지지격물이라고 말한 것은 없었으니 이는 그 시작점을 탐구하지 않고 바로 그 다음 것 부터 말한 것이니 역시 택함에 정미하지 못하고 말함이 상세하지 못한 병폐를 면하지 못했다. 이것으로 순자와 양웅을 논할 수 있겠는가!&lt;br /&gt;
:&amp;lt;韓文集&amp;gt;&amp;quot;荀與揚也, 擇焉而不精, 語焉而不詳.&amp;quot;&amp;lt;ref&amp;gt;「原道」 曰：「斯道也，何道也？」曰：「斯吾所謂道也，非向所謂老與佛之道也。」堯以是傳之舜，舜以是傳之禹，禹以是傳之湯，湯以是傳之文武周公，文武周公傳之孔子，孔子傳之孟軻。軻之死，不得其傳焉。荀與揚也，擇焉而不精，語焉而不詳。&amp;lt;/ref&amp;gt;&lt;br /&gt;
:&amp;lt;韓文集&amp;gt;에서 &amp;quot;순자와 양웅은 택함이 정밀하지 못하고 말함이 상세하지 못하다&amp;quot;고 하였다.&lt;br /&gt;
:○荀子, 名况, 字卿, 戰國時趙人也. 揚子, 名雄, 字子雲, 西漢成都人也. 各有所著之書, 今傳於世.&lt;br /&gt;
:순자는 이름이 황이고 자는 경이니 전국시대 조나라 사람이고 양웅은 이름이 웅이고 자가 자운이니 서한 성도 사람이다 각각 저술한 책이 있어서 오늘날 세상에 전해진다.&lt;br /&gt;
:○朱子曰: &amp;quot;「原道」舉&amp;lt;大學&amp;gt;, 却不說'格物致知'; &amp;lt;蘇氏古史&amp;gt;舉&amp;lt;中庸&amp;gt;'不獲乎上', 却不說'明善誠身',這様都是無頭學問.&amp;quot;&lt;br /&gt;
:주자가 말했다. &amp;quot;「原道」에서 &amp;lt;大學&amp;gt;을 거론하지만 오히려 '格物致知'를 말하지 않았고 &amp;lt;蘇氏古史&amp;gt;에서는 &amp;lt;中庸&amp;gt;의 '不獲乎上'을 서론하지만 '明善誠身'&amp;lt;ref&amp;gt;&amp;lt;중용장구&amp;gt; 20장. 在下位不獲乎上，民不可得而治矣；獲乎上有道：不信乎朋友，不獲乎上矣；信乎朋友有道：不順乎親，不信乎朋友矣；順乎親有道：反諸身不誠，不順乎親矣；誠身有道：不明乎善，不誠乎身矣。&amp;lt;/ref&amp;gt; 은 말하지 않으니 이런 것들은 모두 머리가 없는 학문이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12. ‘物格而后知至, …… 國治而后天下平’에 대한 설명&lt;br /&gt;
&lt;br /&gt;
曰: “‘物格而后知至, 知至而后意誠, 意誠而后心正, 心正而后身修, 身修而后家齊, 家齊而后國治, 國治而后天下平’, 何也?”&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物格이후에 知至하고, 知至한 이후에 뜻이 진실되어지며 뜻이 진실되어진 이후에 마음이 바르게 되고, 마음이 바르게 된 이후에 몸이 닦여지며 몸이 닦여진 이후에 집안이 다스려지고, 집안이 다스려진 이후에 나라가 다스려지며 나라가 다스려진 이후에 천하가 평안해지는 것은 어째서 입니까?&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此覆說上文之意也. 物格者, 事物之理, 各有以詣其極&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而無餘之謂也. 理之在物者, 旣詣其極而無餘, 則知之在我者, 亦隨所詣而無不盡矣. 知無不盡, 則心之所發能一於理而無自欺矣. 意不自欺, 則心之本體物不能動而無不正矣. 心得其正, 則身之所處不至陷於所偏而無不修矣. 身無不修, 則推之天下國家, 亦擧而措之耳. 豈外此而求之智謀功利之末哉!”&amp;lt;br/&amp;gt;&lt;br /&gt;
이것은 윗 글의 뜻을 뒤집어서 설명한 것이다. 物格이라는 것은 사물의 이치에 각각 그 지극한 곳에 이르러서 남음이 없을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사물에 있는 理가 이미 그 지극한 곳에 이르러 남음이 없게 되었다면 나에게 있는 앎은 또한 이르른 바를 따라서 다하지 않음이 없게된다. 앎이 다하지 않음이 없다면 마음이 발현되는 바가 理에 전일하여 자신을 속이지 않을 수 있다. 意(心之所發)가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면 마음의 본체를 외물이 동요시킬 수 없어서 바르지 않음이 없다. 마음이 바르게 되었다면 몸이 대처하는 곳은 편벽된 곳에 빠지는 상황에 이르지 않아서 (몸을) 닦지 않음이 없다. 몸이 닦여지지 않음이 없다면 그것을 천하와 나라 집안에까지 미루어 또한 (똑같이) 들어서 두면 될 뿐이니, 어찌 이것 벗어나서 지모나 공리의 말단적인 것에서 이것을 구하겠는가!&amp;lt;br/&amp;gt;&lt;br /&gt;
&lt;br /&gt;
曰: “篇首之言明明德, 以新民爲對, 則固專以自明爲言矣; 後段於平天下者, 復&amp;lt;sub&amp;gt;扶又反&amp;lt;/sub&amp;gt;以明明德言之, 則似新民之事亦在其中, 何其言之不一, 而辨之不明耶?”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편 머리에서 명명덕을 말씀하셨을 때는 신민을 그 (동일하게) 대대하신 것은 진실로 오직 스스로 밝게하는 것만을 말씀하신 것인데 이후에 평천하에 대해서 다시 명명덕으로 말씀하신다면 신민의 일이 또한 그 안에 들어있는 것 같은데 어째서 그 말씀이 한결같지 않고 분변함이 명확하지 않은 것입니까?&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篇首三言者, 『大學』之綱領也. 而以其賓主對待先後次第言之, 則明明德者, 又三言之綱領也. 至此後段, 然後極其體用之全而一言以擧之, 以見&amp;lt;sub&amp;gt;形甸反&amp;lt;/sub&amp;gt;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天下雖大, 而吾心之體無不該, 事物雖多, 而吾心之用無不貫. 蓋必析之有以極其精而不亂, 然後合之有以盡其大而無餘, 此又言之序也.”&amp;lt;br/&amp;gt;&lt;br /&gt;
말했다. &amp;quot;편 머리의 세마디 말은 『대학』의 강령이다. 이것들을 손님과 주인이 (서로를) 대하는 것과 대비해서 선후와 순서로 말한다면 명명덕이 세 마디 말 중에 강령이다. (그런데) 뒷 단계에 이른 연후에 그 體用의 온전함을 지극히하고서 한 마디로 말한 것이니, 이것으로 천하가 비록 크지만 내 마 마음의 體가 풀지 못하는 것이 없고, 사물이 비록 많더라도 내 마음의 用이 관통하지 못하는게 없음을 보인 것이다. 대개 반드시 분석하여 그 정미한 것까지 지극히 하고 혼란이 없을 수 있은 연후에야 그것을 합쳐서 그 큰 것을 다하여 남음이 없을 수 있으니 이것이 또한 말함의 순서이다.&amp;quot;&amp;lt;br/&amp;gt;&lt;br /&gt;
:○陳氏曰: &amp;quot;天下事物, 無一之不格, 幽明巨細, 有以洞灼其表裏, 其知之至也. 瑩萬理於胷中, 是極其所眞是而不可移, 非極其所眞非而不容易; 善極其本之所由來而無不徹, 惡極其幾之所從起而無少遁, 物果格, 知果至, 由是而往, 則意極其誠而無一念之或欺, 心極其正而無一息之不存, 身極其脩, 而無一動之或偏矣. 此書首三言固當無所不盡, 而所謂明明徳者, 又通為一篇之統體.&amp;quot; 又曰: &amp;quot;體具於方寸之間, 萬理無所不備, 而無一物能出乎是理之外; 用發於方寸之間, 萬事無所不貫而無一理不行乎其事之中, 此心之所以為妙.&amp;quot;&amp;lt;br/&amp;gt;&lt;br /&gt;
:진씨가 말했다. &amp;quot;천하의 사물에 하나라도 이르지 못함이 없고 어둡고 밝은 것 크고 세세한 모든 것에 그 안과 밖을 밝힐 수 있으니 이것이 앎의 지극함이다. 모든 이치가 마음에 밝혀지면 옳은 것은 그 진짜 옳은 바를 지극히 하여 옮겨가지 않을 수 있고 그른 것은 그 진짜 그른 바를 지극히 하여서 바꾸지 않을 수 있고, 善은 그 뿌리가 말미암은 바를 지극히 하여 통하지 않음이 없고 惡은 그 기미가 말미암아서 일어난 것을 지극히하여 조금의 잃음도 없을 것이니 사물에 과연 이르고, 앎이 과연 지극해져 이것을 말미암아 간다면 뜻이 그 정성을 다하여 하나의 생각이라도 혹여 거짓됨이 없을 것이고 마음이 그 바름을 지극히하여 잠깐의 보존되지 않음이 없을 것이며 몸이 그 닦음을 지극히하여 한번 움직이더라도 간혹 치우치게 됨이 없을 것이다. 이 책 서두의 세마디 말은 진실로 다하지 못하는 바가 없어야 하고, 이른바 (뒤에서) 명명덕이라고 말한 것은 또한 통틀어 한 편의 統體가 되는 것이다.&amp;quot; 또 말하였다. &amp;quot;體가 마음 안에 갖추어지면 모든 이치가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어서 하나의 사물이라도 이 이치 밖으로 나갈 수 없고, 用이 마음 안에서 발현된다면 모든 일이 관통되지 않음이 없어서 하나의 이치라도 그 일의 적절함을 행하지 못함이 없으니 이것이 마음이 신묘하게 되는 까닭이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言明明徳與新民對, 則&amp;lt;大學&amp;gt;之體用猶二; 言明明徳於天下, 則&amp;lt;大學&amp;gt;之體用非二矣. 吾心之體, 即明徳之虚而具衆理者也; 吾心之用, 即明徳之靈而應萬事者也. 能析之極其精而不亂, 則知吾心之用無不貫矣; 能合之盡其大而無餘, 則知吾心之體無不該矣. 不析之而遽欲合之, 則有虚空恍惚之病; 徒析之而不能合之, 則有支離破碎之病. '必析之極其精, 然後合之盡其大', 此二句其義無窮. 眞西山嘗誦此而繼之曰: '小徳川流, 大徳敦化.' 又繼之曰: '吾道一以貫之.' 其旨深矣.&amp;quot;&lt;br /&gt;
:옥계노씨가 말했다. &amp;quot;명명덕과 신민을 대대하여 말한다면 &amp;lt;大學&amp;gt;의 體用이 두 개 같고, 明明徳於天下라고 말하면 &amp;lt;大學&amp;gt;의 體用이 두 개가 아닌 것 같다. 내 마음의 體는 곧 明徳의 虚와 具衆理고, 내 마음의 用은 곧 明徳의 靈과 應萬事다. 분석하여 그 정미한 것을 지극히하여 어지럽지 않을 수 있다면 내 마음의 用이 관통하지 못하는 것이 없음을 알 것이고, 이를 합쳐서 그 큰것을 다하고 남음이 없을 수 있다면 내 마음의 體가 풀지 못함이 없음을 알 것이다. (그런데) 분석하지도 않고서 갑자기 합지기를 바란다면 텅비고 황홀한 병폐가 있게되고, 다만 분석하기만 하고 그것을 합칠 수 없다면 지리하고 흩어져있는 병폐가 있게 된다. 必析之極其精, 然後合之盡其大' 이 두 구절의 의미가 무궁하니, 진서산이 일찍이 이것을 외며 말을 달기를, '작은 덕은 (곳곳에) 냇물처럼 흐르고, 큰 덕은 변화를 두텁게 한다.'&amp;lt;ref&amp;gt;&amp;lt;중용장구&amp;gt; 30장. 萬物並育而不相害，道並行而不相悖，小德川流，大德敦化，此天地之所以為大也。&amp;lt;/ref&amp;gt;고 하였다. 또 말을 달기를 '우리의 도는 하나로 관통한다.'&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리인&amp;gt; 15. 子曰：「參乎！吾道一以貫之。」曾子曰：「唯。」&amp;lt;/ref&amp;gt;고 하였으니 그 뜻이 깊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13. ‘自天子以至於庶人, …… ,  未之有也’에 대한 설명&lt;br /&gt;
&lt;br /&gt;
曰: “‘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爲本, 其本亂而末治者否矣; 其所厚者薄, 而其所薄者厚, 未之有也’, 何也?”&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수신을 근본으로 삼으니 그 근본이 어지러우면서 말단을 잘 다스리는 자는 없었고 그 두터운 것을 박하게 하고 박한 것을 두텁게 하는 일은 있지 않았다.'고 하신 것은 어째서 입니까?&amp;lt;br/&amp;gt;&lt;br /&gt;
曰: “此結上文兩節之意也. 以身對天下國家而言, 則身爲本而天下國家爲末. 以家對國與天下而言, 則其理雖未嘗不一, 然其厚薄之分亦不容無等差&amp;lt;sub&amp;gt;楚宜反&amp;lt;/sub&amp;gt;矣. 故不能格物致知, 以誠意正心而修其身, 則本必亂而末不可治. 不親其親, 不長&amp;lt;sub&amp;gt;上聲下同&amp;lt;/sub&amp;gt;其長, 則所厚者薄而無以及人之親長, 此皆必然之理也. 孟子所謂‘於所厚者薄, 無所不薄’, 其言蓋亦本於此云.”&amp;lt;br/&amp;gt;&lt;br /&gt;
말했다. &amp;quot;이것은 윗 글의 두 구절의 의미를 끝맺은 것이다. 자신을 천하국가와 대대하여 말한다면 자신이 근본이 되고 천하국가는 말단이 된다. 집안을 나라와 천하와 대대하여 말한다면 그 이치는 일찍이 같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후하고 박한 구분은 또한 약간의 차이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격물치지를 할 수 없으면서 성의정심하고 그 몸을 닦는다면 근본은 반드시 혼란해지고 말단도 다스려질 수 없다. 친하게 여기지 말하야할 사람을 친히 여기고 어른대접하지 말아야할 사람을 어른대접한다면 그 후한 것을 박하게 하여 다른 사람들의 부모와 어른에게까지 미칠 수 없을 것이니 이것은 모두 반드시 그러한 이치이다. 맹자께서 말씀하신 '마땅히 두텁게 해야할 것을 박하게 해서는 안 된다.'&amp;lt;ref&amp;gt;『맹자』, 「진심상」, 45. &amp;quot;孟子曰：「於不可已而已者，無所不已；於所厚者薄，無所不薄也。&amp;quot;&amp;lt;/ref&amp;gt; 는 그 말은 대개 또한 여기에 근본한다.&amp;quot;&lt;br /&gt;
:○三山陳氏曰: &amp;quot;脩身者, 自格物致知誠意正心而積也. 不如是, 則身不可脩; 身之不脩, 則其本亂矣; 本之既亂, 如國家何? 事父母而不能孝, 事兄長而不能弟, 則是'於其所厚者薄'矣. 所厚者猶薄, 奚望其親天下之親、長天下之長哉?&amp;quot;&lt;br /&gt;
:삼산진씨가 말했다. &amp;quot;脩身이라는 것은 격물치지부터 성의정심까지 쌓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지 않는다면 몸은 닦여질 수 없고, 몸이 닦여지지 않으면 그 근본이 혼란해지니 근본이 이미 혼란하다면 국가를 어떻게 하겠는가? 부모를 섬기면서 효도를 할 수 없고 형과 어른을 섬기면서 공경할 수 없다면 이것은 '그 후하게 대해야하는 사람에 박하게 하는 것'이다. 후하게 해야할 것을 오히려 박하게 하고서 어떻게 그 천하의 모든 부모를 친히 여기고 천하의 모든 어른을 어른대접하기를 바라겠는가?&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14. &amp;lt;대학&amp;gt;의 내용에 비춰봤을 때 상정된 독자가 적절한가?&lt;br /&gt;
&lt;br /&gt;
曰: “治國平天下者, 天子諸侯之事也. 卿大夫以下, 皆無與&amp;lt;sub&amp;gt;音預&amp;lt;/sub&amp;gt;焉. 今大學之敎, 乃例以明明德於天下爲言, 豈不爲思出其位, 犯非其分&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 而何以得爲&amp;lt;sub&amp;gt;如字&amp;lt;/sub&amp;gt;爲&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己之學哉?”&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하게 하는 것은 천자와 제후의 일이니 경대부 이하는 모두 여기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대학의 가르침은 바로 대개 明明德於天下를 말한 것인데 어찌 자신의 지위를 벗어나서 생각하여&amp;lt;ref&amp;gt;『논어』, 「헌문」. 28장 &amp;quot;曾子曰：「君子思不出其位。」&amp;quot;&amp;lt;/ref&amp;gt; 자신의 몫이 아닌 것을 범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자기를 위한 학문이 될 수 있겠습니까?&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天之明命, 有生之所同得, 非有我之得私也. 是以君子之心, 豁&amp;lt;sub&amp;gt;呼括反&amp;lt;/sub&amp;gt;然大公, 其視天下, 無一物而非吾心之所當愛, 無一事而非吾職之所當爲, 雖或勢在匹夫之賤, 而所以堯舜其君, 堯舜其民者, 亦未嘗不在其分&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內也. 又况大學之敎, 乃爲&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天子之元子·衆子, 公侯·卿大夫·士之適&amp;lt;sub&amp;gt;音的&amp;lt;/sub&amp;gt;子, 與國之俊選&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俊士和選士。 古代指可以教育深造的優秀人材。 &amp;lt;/ref&amp;gt;而設, 是皆將有天下國家之責而不可辭者, 則其所以素敎而預養之者, 安得不以天下國家爲己事之當然, 而預求有以正其本淸其源哉! 後世敎學不明, 爲人君父者, 慮不足以及此, 而苟徇於目前. 是以天下之治&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日常少, 亂日常多, 而敗國之君, 亡家之主, 常接迹於當世, 亦可悲矣! 論者不此之監, 而反以聖法爲疑, 亦獨何哉? 大抵以學者而視天下之事, 以爲己事之所當然而爲之, 則雖甲兵·錢穀·籩豆·有司之事, 皆爲&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己也; 以其可以求知於世而爲之, 則雖割股&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舊有自割股肉以供君親食用之說， 古人認為是大忠大孝的表現。 &amp;lt;/ref&amp;gt;廬墓、敝車羸&amp;lt;sub&amp;gt;力為反&amp;lt;/sub&amp;gt;馬&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破車瘦馬。▶ 《三國志‧吳志‧劉繇傳》“ 繇 伯父 寵 為 漢 太尉” 裴松之注引晉司馬彪 《續漢書》： “ 寵 前後歷二郡， 八居九列， 四登三事。 家不藏賄， 無重寶器， 恆菲飲食， 薄衣服， 弊車羸馬， 號為窶陋。”&amp;lt;/ref&amp;gt;, 亦爲&amp;lt;sub&amp;gt;去聲下同&amp;lt;/sub&amp;gt;人耳. 善乎張子敬夫之言曰&amp;lt;sub&amp;gt;張子名栻, 字敬夫, 號南軒, 廣漢人. 乃朱子同志之友也.&amp;lt;/sub&amp;gt;: ‘爲己者, 無所爲而然者也.’&amp;lt;ref&amp;gt;&amp;lt;남헌집&amp;gt; 권14. &amp;lt;孟子講義序&amp;gt; 學者潜心孔孟, 必得其門而入, 愚以為莫先於義利之辯. 蓋聖學無所為而然也. 無所為而然者, 命之所以不已, 性之所以不偏, 而教之所以無窮也. 凡有所為而然者, 皆人欲之私而非天理之所存, 此義利之分也.&amp;lt;/ref&amp;gt; 此其語意之深切, 蓋有前賢所未發者, 學者以是而日自省&amp;lt;sub&amp;gt;悉井反&amp;lt;/sub&amp;gt;焉, 則有以察乎善利之間&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진심상&amp;gt; 25. 欲知舜與蹠之分，無他，利與善之閒也。 &amp;lt;/ref&amp;gt;而無毫釐之差矣.”&amp;lt;br/&amp;gt;&lt;br /&gt;
답했다. 하늘의 밝은 명령은 태어날 때부터 똑같이 받은 것이 있을 뿐 자신이 사사롭게 얻은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군자의 마음은 활연하여 크게 公하고 천하를 볼 때 한 사물이라도 자신의 마음이 마땅히 아껴할 바라고 여기지 않음이 없고, 한 가지 일이라도 자신의 직분으로 마땅히 해야할 바라도 여기지 않음이 없다. 비록 혹여 처지가 필부의 천함에 있다고 하더라도 자기의 군주를 요순으로 만들고 자기 백성을 요순의 백성으로 만드는 것이 또한 일찍이 그 분수안에 있지 않음이 없다. 또한 하물며 대학의 가르침은 바로 천자의 첫째 아들과 다른 아들들, 공후·대부·사의 적장자와 나라의 뛰어난 인재들을 위하여 설치한 것이다. 이들은 모두 장차 천하와 국가의 책무가 있고 사양할 수 없는 자들로 그 평소 가르쳐서 미리 그들을 기르는 것이 어찌 천하 국가의 일을 자신이 마땅히 해야할 일로 삼아서 미리 그 뿌리를 바로잡고 그 근원을 맑게 하기를 구하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후세의 교육이 밝지 못해서 남의 임금과 부모된 자들이 여기에 이르기 부족하다고 걱정하면서도 구차하게 눈앞에 있는 것을 따르니 이 때문에 천하의 치세는 날로 항상 적어지고 난세는 날로 항상 많아지며 나라를 망치는 군주들과 집안을 망치는 주인들이 항상 세대에 연이어 일어나니 또한 슬퍼할만 하구나! 그대가 이러한 것을 보지 않고 도리어 성법을 의심하는 것은 유독 어째서 인가! 대개 학자의 신분으로 천하의 일을 볼 때 자기가 마땅히 해야할 바로 여겼기 때문에 그것을 행한다면 비록 군사일, 창고일, 제사일, 유사의 일이라도 모두 자기를 위한 것이 되고, 세상에 알려지기를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한다면 비록 허벅지 안쪽살을 베거나 무덤 옆에 여막을 지어 살고, 청렴하게 살더라도 다른사람을 위한 것일 뿐이다. 좋구나! 장경부의 말이여! '나를 위한 것은 인위적으로 하는 것 없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 말의 의미가 깊고 절근하다. 대개 이전의 성현들이 아직 드러내지 못한 바가 있어서 학자들이 이것을 날마다 스스로 성찰한다면 善과 利의 차이를 살펴서 털끝만큼의 차이가 없을 수 있다.&lt;br /&gt;
:○問為己為人一條. 朱子曰: &amp;quot;這須要自看. 如一日之間, 小事大事, 只道我合當做便如此做, 這便是'無所為', 如讀書, 只道自家合當如此讀, 合當如此理㑹身巳. 纔說要人知, 便是'有所為', 如世上人纔讀書, 便安排這箇好做時文, 此又為人之甚者.&amp;quot;&lt;br /&gt;
:&amp;quot;'나를 위한다'와 '남을 위한다' 이 한 조목에 대해 묻습니다.&amp;quot; 주자가 말했다. &amp;quot;이것은 모름지기 스스로 보려 해야한다. 평소에 모든 일을 '내가 마땅이 이렇게 해야한다'고 말하고 곧 그렇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작위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 책을 읽는 경우에 다만 '나는 이렇게 책을 읽어야해'라고 말하고 이와 같이 읽는다면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기를 바란다고 말하자마자 곧 작위함이 있게 되니 세상사람들이 책을 읽자마자 바로 時文 &amp;lt;ref&amp;gt; 時文 : 1.當代的文明。指禮樂製度等。&amp;lt;/ref&amp;gt; 잘짓기를 꾀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더욱 남을 위하는 것이 심한 것이다.&amp;quot; &lt;br /&gt;
:○如甲兵、錢榖、籩豆、有司, 到當自家理㑹便理㑹, 不是為别人了理㑹. 如割股、廬墓, 一是不忍其親之病, 一是不忍其親之死, 這都是為已者. 若因要人知了去恁地, 便是為人.&amp;quot;&lt;br /&gt;
:&amp;quot;전쟁일, 창고일, 제사일, 유사의 일 같은 경우라도 마땅히 내가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야지 다른 사람을 위하여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 割股나 廬墓의 경우는 하나는 그 부모의 지병을 차마하지 못하는 것이고 하나는 그 부모의 죽음을 차마하지 못하는 것이니 이는 모두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다른 사람이 알아주기를 바랐기 때문에 이렇게 했다면 이는 곧 남을 위한 것이 된다.&amp;quot;&lt;br /&gt;
:○問: &amp;quot;割股事, 如何?&amp;quot; 曰: &amp;quot;割股固自不是, 若誠心為之, 不求人知, 亦庶幾. 今有以此要譽者.&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割股의 일은 어떻습니까?&amp;quot; 말했다. &amp;quot;할고는 진실로 스스로에게 옳지 않으니 만약 마음을 진실하게 하여 그것을 행하고 다른 사람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는다면 거의 (도에) 가깝겠지만 오늘날에는 이것으로 명예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있다.&amp;quot;&lt;br /&gt;
:○南軒此言, 擴前聖所未發, 而同於孟子性善、養氣之功者歟!&lt;br /&gt;
:장남헌의 이 말은 전 성현들이 아직 드러내지 못한 바를 넓힌 것이니 맹자의 性善、養氣의 공적&amp;lt;ref&amp;gt;&amp;lt;이정문집&amp;gt; 9-20. &amp;lt;答楊時論西銘書&amp;gt; &amp;lt;西銘&amp;gt;之爲書, 推理以存義, 擴前聖所未發, 與孟子性善、養氣之論同功.(二者亦前聖所未發)&amp;lt;/ref&amp;gt;과 동일하구나!&lt;br /&gt;
&lt;br /&gt;
&lt;br /&gt;
15. &amp;lt;대학&amp;gt;의 저자 문제&lt;br /&gt;
&lt;br /&gt;
曰: “子謂正經蓋夫子之言, 而曾子述之, 其傳&amp;lt;sub&amp;gt;去聲, 後凡言傳文經傳之類皆同.&amp;lt;/sub&amp;gt;則曾子之意, 而門人記之. 何以知其然也.”&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그대가 正經을 말한 것은 대개 부자께서 말씀하시고 증자가 조술하였으며 그 해석은 증자의 뜻이고 문인들이 그것을 기록한 것이니 어떻게 그러하다는 것을 안 것인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正經辭約而理備, 言近而指遠, 非聖人不能及也. 然以其無他左驗, 且意其或出於古昔先民之言也, 故疑之而不敢質. 至於傳文, 或引曾子之言, 而又多與『中庸』『孟子』者合, 則知其成於曾氏門人之手, 而子思以授孟子無疑也. 蓋『中庸』之所謂明善, 卽格物致知之功; 其曰誠身, 卽誠意·正心·修身之效也. 孟子之所謂知性者, 物格也; 盡心者, 知至也; 存心·養性·修身者, 誠意·正心·修身也. &amp;lt;br/&amp;gt;&lt;br /&gt;
말했다. &amp;quot;正經은 말이 요약하지만, 이치가 갖추어져 있으며 말이 절근하지만 뜻은 고원하니 성인이 아니라면 여기에 미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증거&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證人；證據。 &amp;lt;/ref&amp;gt;가 없으니 아마도 옛날 백성들의 말에서 나온 것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의심하지만 감히 질정&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質】 15. 對質；驗證。&amp;lt;/ref&amp;gt;하지는 못했다. 傳文의 경우에 이르러서는 혹 증자의 말을 인용하고 또 『中庸』과『孟子』와 합치하는 것이 많으니 증자의 문하의 손에서 완성되었음을 알겠고, 자사가 맹자에게 전수한 뜻임을 의심할 바가 없다. 대개 『中庸』에서 말한 明善은 곧 格物致知의 공적이고, 誠身을 말한 것은 곧 誠意·正心·修身의 공효이다. 맹자가 말한 知性은 物格이고, 盡心은 知至며, 存心·養性·修身이라는 것은 誠意·正心·修身이다.&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知性者, 物格也, 物字對性字; 盡心者, 知至也, 知字對心字.&amp;quot;&lt;br /&gt;
:주자가 말했다. &amp;quot;知性이라는 것은 物格이니, 物은 性과 대대하고, 盡心이라는 것은 知至하니, 知는 心과 대대한다.&amp;quot;&lt;br /&gt;
:○'物理之極處無不到', 知性也; '吾心之所知無不盡', 盡心也.&lt;br /&gt;
:'物理의 지극한 곳에 이르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知性이고, '내 마음의 아는 바를 다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盡心이다.&lt;br /&gt;
其他如謹獨之云, 不慊&amp;lt;sub&amp;gt;口簟口劫二反&amp;lt;/sub&amp;gt;之說, 義利之分, 恒言之序,&amp;lt;br/&amp;gt;&lt;br /&gt;
이외에 謹獨을 말한 것과 不慊&amp;lt;ref&amp;gt;『맹자』, 「공손추상」, 2장. &amp;quot;是集義所生者，非義襲而取之也。行有不慊於心，則餒矣。我故曰，告子未嘗知義，以其外之也。&amp;quot; &amp;lt;注&amp;gt; (...)慊，快也，足也。言所行一有不合於義，而自反不直，則不足於心而其體有所不充矣。(...)&amp;lt;/ref&amp;gt; 의 설명과 義利의 구분은 항상된 말의 순서가&lt;br /&gt;
:○新安倪氏曰: &amp;quot;孟子云: '人有常言皆曰天下國家, 天下之本在國, 國之本在家, 家之本在身.'&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이루상&amp;gt; 5. 孟子曰：「人有恆言，皆曰『天下國家』。天下之本在國，國之本在家，家之本在身。」&amp;lt;/ref&amp;gt; 此'常言之序'也.&amp;quot;&lt;br /&gt;
:신안예씨가 말했다. &amp;quot;맹자가 '사람은 항상된 말이 있어서, 항상 天下國家를 말하니, 天下의 근본은 國에 달려있고, 國의 근본은 家에 달려있으며 家의 근본은 자신에게 달려있다'라고 말한 이것이 '常言之序'이다. &amp;quot;&lt;br /&gt;
亦無不脗&amp;lt;sub&amp;gt;武粉反又音冺&amp;lt;/sub&amp;gt;合焉者. 故程子以爲孔氏之遺書, 學者之先務, 而&amp;lt;論&amp;gt;&amp;lt;孟&amp;gt;猶處&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其次焉, 亦可見矣.&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서론. 子程子曰：「大學，孔氏之遺書，而初學入德之門也。」於今可見古人為學次第者，獨賴此篇之存，而論、孟次之。學者必由是而學焉，則庶乎其不差矣。 ; &amp;lt;이정유서&amp;gt; 2上-36. 大學乃孔氏遺書, 須從此學則不差. ; &amp;lt;이정유서&amp;gt; 22上-1. 棣初見先生, 問「初學如何?」 曰:「入德之門, 無如大學. 今之學者, 賴有此一篇書存, 其他莫如論·孟.」&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또한 여기에 맞지 않음이 없었다. 때문에 정자께서 이 책을(대학) 공자를 수학하던 사람들이 남긴 책과 학자들이 급선무로 해야할 것으로 여기셨고, 『논어』, 『맹자』는 오히려 그 다음에 두셨음을 또한 알 수 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曰: “程子之先是書而後&amp;lt;論&amp;gt;&amp;lt;孟&amp;gt;, 又且不及乎&amp;lt;中庸&amp;gt;, 何也?”&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정자께서 이 책을 먼저로 여기시고 『논어』, 『맹자』를 뒤로 여기셨는데, 또 『중용』을 언급하지 않으신 것은 어째서 입니까?&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是書垂世立敎之大典, 通爲&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天下後世而言者也. &amp;lt;論&amp;gt;&amp;lt;孟&amp;gt;應機接物之微言, 或因一時一事而發者也. 是以是書之規模雖大, 然其首尾該備, 而綱領可尋, 節目分明, 而工夫有序, 無非切於學者之日用. &amp;lt;論&amp;gt;&amp;lt;孟&amp;gt;之爲&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人雖切, 然而問者非一人, 記者非一手, 或先後淺深之無序, 或抑揚進退之不齊, 其間蓋有非初學日用之所及者. 此程子所以先是書後&amp;lt;論&amp;gt;&amp;lt;孟&amp;gt;, 蓋以其難易&amp;lt;sub&amp;gt;去聲下同&amp;lt;/sub&amp;gt;緩急言之, 而非以聖人之言爲有優劣也. 至於&amp;lt;中庸&amp;gt;, 則又聖門傳授極致之言, 尤非後學之所易得而聞者, 故程子之敎未遽及之, 豈不又以爲&amp;lt;論&amp;gt;&amp;lt;孟&amp;gt;旣通, 然後可以及此乎? 蓋不先乎&amp;lt;大學&amp;gt;, 無以提挈綱領而盡&amp;lt;論&amp;gt;&amp;lt;孟&amp;gt;之精微; 不參之&amp;lt;論&amp;gt;&amp;lt;孟&amp;gt;, 無以融貫會通而極&amp;lt;中庸&amp;gt;之歸趣; 然不會其極於&amp;lt;中庸&amp;gt;, 則又何以建立大本&amp;lt;sub&amp;gt;盡性也&amp;lt;/sub&amp;gt;, 經綸大經&amp;lt;sub&amp;gt;立教也&amp;lt;/sub&amp;gt;, 而讀天下之書, 論天下之事哉? 以是觀之, 則務講學者, 固不可不急於四書, 而讀四書者, 又不可不先於&amp;lt;大學&amp;gt;, 亦已明矣. 今之敎者, 乃或棄此不務, 而反以他說先焉, 其不溺於虛空, 流於功利, 而得罪於聖門者, 幾&amp;lt;sub&amp;gt;平聲&amp;lt;/sub&amp;gt;希矣.&amp;quot;&amp;lt;br/&amp;gt;&lt;br /&gt;
말했다. &amp;quot;이것은 세상에 드리워져 가르침을 세운 위대한 텍스트니 모두 천하의 후세를 위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논어』, 『맹자』는 주어신 상황에 따라 대응하는 (별거아닌 듯 하지만) 심호한 말이니 간혹 한 때나 한 사건을 말미암아서 일어났다. 이 때문에 이 책의 규모는 비록 크지만 그 머리와 꼬리는 모두 갖춰져 있고 강령을 살필 수 있으며 절못이 분명하고 공부에 순서가 있어서 학자의 평소에 절실하지 않음이 없으니, 『논어』, 『맹자』가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은 비록 절실하지만 물어보는 사람이 한 명이 아니고 기록하는 사람이 한 명이 아니라서 간혹 선후와 깊이가 순서가 없고 간혹 나아가고 물러남이 일정하지 않으니 이 사이에서 대개 초학자가 평소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게 된다. 이것이 정자께서 『대학』책을 먼저로 하고 『논어』, 『맹자』를 뒤로하신 까닭이다. 대개 그 어려움과 급함으로 말한 것이지, 성인의 말이 우열이 있다고 여긴 것이 아니다.『중용』에 경우는 성현의 문하에 전수한 지극한 말이고 또 후학들이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정자의 가르침은 선급하게 언급하지 않으셨으니 어찌 『논어』, 『맹자』를 이미 통달한 연후에 여기에 미칠수 있다고 여기신 것이 아니겠는가! 대개 『대학』을 우선으로 하지 않으면 강령을 항상 염두하면서『논어』, 『맹자』의 정미함을 다할 수 없고, 『논어』, 『맹자』을 참조하지 않으면 모두 관통하여 『중용』의 의미를 지극히할 수 없다. 그러나『중용』을 지극히함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또 어떻게 근본을 세우고 법도를 운용하여 천하의 책을 읽고 천하의 일을 논하겠는가! 이것으로 본다면 강학에 힘쓰는 사람들은 진실로 이 네 가지 책을 급히여기지 않아서는 안 되고, 이 네 가지 책을 읽는 사람은 또한 『대학』을 우선으로 하지 않아서는 안 됨이 이미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의 교육자들은 이내 간혹 이 네 가지 책을 버리고 우선하지 않으면서 도리어 다른 설명을 이것들보다 우선하니 공허한 것에 빠지고 공리에 흘러들어가서 성현의 문하에 죄를 얻지 않는 사람이 드물었다. &amp;quot;&lt;br /&gt;
&lt;br /&gt;
===傳一章===&lt;br /&gt;
康誥曰：「克明德。」&lt;br /&gt;
:康誥，周書。克，能也。&lt;br /&gt;
&lt;br /&gt;
大甲曰：「顧諟天之明命。」&lt;br /&gt;
:大，讀作泰。諟，古是字。大甲，商書。顧，謂常目在之也。諟，猶此也，或曰審也。天之明命，即天之所以與我，而我之所以為德者也。常目在之，則無時不明矣。&lt;br /&gt;
&lt;br /&gt;
帝典曰：「克明峻德。」&lt;br /&gt;
:峻，書作俊。帝典，堯典，虞書。峻，大也。&lt;br /&gt;
&lt;br /&gt;
皆自明也。&lt;br /&gt;
:結所引書，皆言自明己德之意。&lt;br /&gt;
&lt;br /&gt;
*右傳之首章。釋明明德。&lt;br /&gt;
::此通下三章至「止於信」，舊本誤在「沒世不忘」之下。&lt;br /&gt;
&lt;br /&gt;
&lt;br /&gt;
====『혹문』 전1장====&lt;br /&gt;
或問: &amp;quot;一章而下以至三章之半, 鄭本元在沒世不忘之下, 而程子乃以次於此謂知之至也之文, 子獨何以知其不然而遂以爲傳之首章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혹자가 물었다. &amp;quot;첫번째 장 밑으로 3장의 반까지 『예기』(鄭本)에서는 원래 '沒世不忘'밑에 있었고 정이천은 이내 이것을 여기 '知之至'라고 말한 것 다음으로 하였는데 그대는 유독 그것이 그러하지 않음을 알고서 마침내 傳의 첫 번째 장으로 삼은 것인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以經統傳, 以傳附經, 則其次第可知. 而二說之不然, 審矣.&amp;quot;&amp;lt;br/&amp;gt;&lt;br /&gt;
말했다. &amp;quot;經으로 傳을 통괄하고, 傳으로 經을 부연하면 그 순서를 알 수 있고 두 설명 모두 옳지 않음이 명백하다.&amp;quot;&amp;lt;br/&amp;gt;&lt;br /&gt;
&lt;br /&gt;
○曰: &amp;quot;然則其曰: '克明徳'者, 何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그렇다면 '克明徳'이란 무엇인가?&amp;quot;&lt;br /&gt;
曰: &amp;quot;此言文王能明其徳也. 蓋人莫不知徳之當明而欲明之, 然氣稟拘之於前, 物欲蔽之於後. 是以雖欲明之而有不克也. 文王之心, 渾&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然天理, 亦無待於克之而自明矣. 然猶云爾者, 亦見其獨能明之而他人不能. 又以見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未能明者之不可不致其克之之功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답했다. &amp;quot;이는 문왕께서 자신의 덕을 밝힐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대개 사람은 덕을 마땅히 밝혀야함을 알지도 못하고 밝히고자한다. 그러나 氣稟이 (태어나기) 전부터 잡고있고, 물욕이 (태어나고 난) 이후에 가리고 있으니, 이 때문에 비록 덕을 밝히고자 하지만 해내지 못하는 게 있는 것이다. 문왕의 마음은 혼연천리하고 또 기품이나 물욕을 이겨낼 필요가 없이 본래 밝지만 오히려 이와같이 말한 것은 또한 그만이 오직 그 덕을 밝힐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은 할 수 없음을 드러내고 또 이를 가지고 아직 밝히지 못한 사람들이 이것을 이겨내는 공부를 다하지 않아서는 안 됨을 드러낸 것이다.&amp;quot;&lt;br /&gt;
:問: &amp;quot;'克明徳', 克, 能也. 或問中却作'能致其克之之功', 又似克治之克, 如何?&amp;quot; 朱子曰: &amp;quot;此克字, 雖訓能字, 然克字重, 是他人不能而文王獨能之. 若只作'能明徳', 語意便都弱了. 凡字有文義一般而聲響頓異, 如云: '克宅心'&amp;lt;ref&amp;gt;서경, 입정. 文王惟克厥宅心，乃克立茲常事司牧人，以克俊有德。文王罔攸兼于庶言；庶獄庶慎，惟有司之牧夫是訓用違；庶獄庶慎，文王罔敢知于茲。亦越武王，率惟敉功，不敢替厥義德，率惟謀從容德，以並受此丕丕基。」&amp;lt;/ref&amp;gt;, '克明徳'之類, 可見.&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克明徳'의 克은 할 수 있다(能)는 것이다. &amp;lt;或問&amp;gt;중에 도리어 '이를 이겨내는 공부를 다할 수 있다'고 썼으니 또 克治&amp;lt;ref&amp;gt; 謂克製私欲邪念。&amp;lt;/ref&amp;gt; 의 克과 같아보이는 데 어떻습니까?&amp;quot; 주자가 말했다. &amp;quot;여기 '克'이라는 글자는 비록 '能'을 따르지만 '克'이라는 글자가 더 강하다. 이는 다른 사람들은 할 수 없고 문왕만 할 수 있다. 만약 다만 '明徳할 수 있다'고만 쓴다면 의미가 모두 약해진다. 모든 글자는 그 글자뜻은 같지만 소리가 확연히 다르니 '克宅心', '克明徳'과 같은 부류임을 알 수 있다.&lt;br /&gt;
:○人所以不能明其徳者, 何哉? 盖氣偏而失之太剛, 則有所不克; 氣偏而失之太柔, 則有所不克; 聲色之欲蔽之, 則有所不克; 貨利之欲蔽之, 則有所不克. 不獨此耳, 凡有一毫之偏蔽得以害之, 則有所不克. 唯文王無氣稟物欲之偏蔽, 故能有以勝之而無疑.&lt;br /&gt;
:사람들 중에 자신의 덕을 밝힐 수 없는 사람은 어째서 입니까? 대개 기질이 치우쳐서 너무 강직한데서 잘못한다면 이겨내지 못하는 바가 있고, 너무 유한데에서 잘못한다면 이겨내지 못하는 바가 있으며, 감각적인 욕구가 명덕을 가린다면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 있고, 기질이 편벽되서 재물과 이익의 물욕이 명덕을 가린다면 이겨내지 못하는 바가 있게 된다. 오직 이뿐만이 아니라 모든 약간의 편벽됨이 명덕을 해칠 수 있다면 이겨내지 못하는 바가 있다. 오직 문왕만이 기품과 물욕의 치우침과 가리움이 없기 때문에 이것을 이겨내고 의심이 없을 수 있다.&lt;br /&gt;
:○西山眞氏曰: &amp;quot;明徳, 人所同有, 其所以為聖愚之分者, 但以克明與不能明之異爾. 常人所以不能明者, 一則以氣稟昏弱之故; 二則以物欲蔽塞之故. 雖是蔽塞之餘, 若一旦悔悟, 欲自明其徳, 亦無不可者. 患在自暴自棄而不肯為耳.&lt;br /&gt;
:서산진씨가 말했다. &amp;quot;明徳은 사람이 똑같이 가진 것인데, 그 성인과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구분은 다만 밝힐 수 있음과 밝힐 수 없음의 차이 때문일 뿐이다. 일반 사람들이 밝힐 수 없는 까닭은 하나는 기품이 혼매하고 약하기 때문이고, 하나는 물욕이 가리고 막기 때문이다. 비록 가리고 막음이 많더라도 다만 잘못을 깨닫고 스스로 그 덕을 밝히고자 한다면 또한 할 수 없는 사람은 없다. 걱정은 자포자기 해서 행가리르 기꺼워하지 않는데 달려있을 뿐이다.&amp;quot;&lt;br /&gt;
:○格庵趙氏曰: &amp;quot;文王自誠而明者&amp;lt;ref&amp;gt;『중용』 21장. &amp;quot;自誠明，謂之性；自明誠，謂之教。誠則明矣，明則誠矣。&amp;quot;&amp;lt;注&amp;gt; 自，由也。德無不實而明無不照者，聖人之德。... &amp;lt;/ref&amp;gt; 故其心渾然天理, 表裏澄瑩, 不待克之而自明. 若大賢而下, 未能如文王, 則不可無克之之功矣.&amp;quot;&lt;br /&gt;
:격암조씨가 말했다. &amp;quot;문왕은 誠으로부터 밝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 마음이 혼연천리하고 안과 밖이 모두 밝아서 이를 이겨낼 필요 없이 본래 밝다. 만약 大賢 이외에 문왕과 같을 수 없다면 이를 이겨내는 공부가 없어서는 안 된다.&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顧諟天之明命', 何也?&amp;quot;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顧諟天之明命' 는 무엇입니까?&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人受天地之中以生. 故人之明徳, 非他也, 即天之所以命我而至善之所存也. 是其全體大用, 蓋無時而不發見&amp;lt;sub&amp;gt;形甸反&amp;lt;/sub&amp;gt;於日用之間.&amp;lt;br/&amp;gt;&lt;br /&gt;
답했다. &amp;quot;사람은 천지의 중정함을 얻어서 태어가기 때문에 사람의 明徳은 다른 것이 아니라 곧 하늘이 나에게 명한 것이고 至善이 보존된 것이다. 이것이 그 全體와 大用이니 대개 어느때고 평소에 밝혀 드러나지 않음이 없다.&amp;quot;&amp;lt;br/&amp;gt;&lt;br /&gt;
:陳氏曰: &amp;quot;於寂然不動之時, 則合萬殊為一本, 而渾然之全體常昭融於方寸之間; 及感而遂通之際, 則散一本為萬殊, 而縱横曲直莫非大用之所流行矣.&amp;quot; 又曰: &amp;quot;天理本體, 常生生而無一息之已; 而其大用, 亦無一息不流行乎日用之間.&amp;quot;&lt;br /&gt;
:진씨가 말했다. &amp;quot;寂然不動한 때에는 만물이 합해져 하나의 근본이 되어 혼연한 全體가 항상 마음에서 밝게 드러나있고, 감응하여 마침내 통하는 때에 이르서는 하나의 근본이 나누어져서 만물이 되니, 온갖 것들이 大用의 흐름이 아님이 없다.&amp;quot; 또 말했다. &amp;quot;天理의 本體는 항상 生生하여 한 번의 그침도 없고, 天理의 大用은 또한 평소에 한번의 유행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人惟不察於此. 是以汨&amp;lt;sub&amp;gt;音骨&amp;lt;/sub&amp;gt;於人欲而不知所以自明, 常目在之而眞若見其參於前、倚於衡也, 則成性存存而道義出矣.&amp;lt;br/&amp;gt;&lt;br /&gt;
사람은 오직 이것을 살피지 않았기 때문에 인욕에 골몰하고 스스로 밝힐 줄을 알지 못하였으니, 항상 눈 앞에 두고 진실로 '앞에 참여하듯하고, 멍에에 기대어 있음을 보는 것'&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위령공&amp;gt; 5. 立，則見其參於前也；在輿，則見其倚於衡也。夫然後行。&amp;lt;/ref&amp;gt;과 같이 한다면 완전한 성이 보존되어 '道義가 (거기에서 부터) 나온다.' &amp;lt;ref&amp;gt;&amp;lt;주역&amp;gt; &amp;lt;계사상&amp;gt; 7. 成性存存，道義之門。&amp;lt;/ref&amp;gt;.&amp;quot;&amp;lt;br/&amp;gt;&lt;br /&gt;
:問: &amp;quot;如何是體, 如何是用?&amp;quot; 朱子曰: &amp;quot;體與用不相離, 且如身是體, 要起行去便是用. 赤子匍匐將入井, 皆有怵惕惻隱之心, 只此一端體用便可見. 如喜怒哀樂是用, 所以喜怒哀樂是體.&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무엇이 體이고 무엇이 用입니까?&amp;quot; 주자가 말했다. &amp;quot;體와 用은 서로 떨어지지 않으니 예를 들어 몸이 體가되고 일어나서 가려고 하는 것이 用이 되는 것이고, 어린아이가 기어서 우물에 들어가려고 하면 모든 사람은 두려워 조심하는 마음이 생기니 다만 한 가지 일에서 體用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마치 喜怒哀樂(의 드러난 감정)이 用이고, 喜怒哀樂의 감정이 생기는 이유가 體인 것과 같다.&amp;quot;&lt;br /&gt;
:○若'見其參前', '倚衡', 此豈有物可見? 但凡人不知省察, 常行日用毎與是徳相忘, 亦不自知其有是也. 今所謂'顧諟'者, 只是心裏常常存著此理, 一出言, 一行事, 皆必有當然之則, 不可失也. 初豈實有一物之可見其形象耶?&lt;br /&gt;
:'見其參前', '倚衡'와 같은 것이 어찌 사물을 진짜 볼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이겠는가? 다만 보통 사람들이 성찰해야함을 알지 못해서 항상 평소에 행실에서 매번 이 徳과 함께 해야함을 잊고 또한 스스로 그에게 이와 같은 徳이 있는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 이른바 '顧諟'라는 것은 다만 마음 안에 이 理가 항상 존재하고 있어서 한 마디 말을 할 때나 한 번 행동할 때 모두 반드시 마땅한 법칙이 있게 하여 잃어버려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니) 애초에 어찌 실제로 그 형상을 볼 수 있는 물체가 있는 것이겠는가!&lt;br /&gt;
:○問: &amp;quot;'成性存存, 道義出矣', 何如?&amp;quot; 曰: &amp;quot;天之所命, 我之所得於已, 只是一箇道理. 人只要存得這些在這裏. 才存得在這裏, 則事君必㑹忠, 事親必㑹孝, 見孺子入井, 則怵惕之心便發, 見穿窬之類, 則羞惡之心便發, 合恭敬處便自然㑹恭敬, 合辭遜處便自然㑹辭遜. 須要常存得此心, 則便見得此性發出底都是道理; 若不存得這些, 待做出, 那箇㑹合道理?&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成性存存, 道義出矣'란 무엇입니까?&amp;quot; 답했다. &amp;quot;하늘이 명령한 것이 나에게 얻어진 것이니 다만 하나의 道理이다. 사람은 다만 이와 같은 것을 얻어서 이 안에 두고자 해야한다. 이 안에 두자마자 군주를 섬김에 반드시 忠할 수 있고, 부모를 섬김에 반드시 孝할 수 있으며 아이가 우물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 두려워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담넘어 도둑질하는 부류를 보면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일어나며 공경해야할 곳에서는 저절로 공경할 수 있고, 사양해야할 곳에서는 저절로 사양할 수 있게되니 모름지기 이 마음을 항상 보존하고자 해야 이 性이 발출한 것이 모두 道理임을 볼 수 있다. 만약 이것을 보존하지 않는다면 무언가 하려고 해도 무엇이 道理와 합할 수 있겠는가?&amp;quot;&lt;br /&gt;
:○西山眞氏曰: &amp;quot;'成性'者, 言天之與我者, 自有渾成之性, 如俗言'見成渾淪之物', 是也. 我但當存之又存, 不令頃刻失之, 則天下之道義皆從此出. 道義, 如事君忠, 事親孝之類.&amp;quot;&lt;br /&gt;
:서산진씨가 말했다. &amp;quot;'成性'이라는 것은 하늘이 나에게 부여해준 것을 말하니 자연히 혼연하고 완성된 性이 있는 것으로 세속에서 말하는 '見成渾淪之物'이 이것이다. 내가 다만 마땅히 보존해야할 것을 보존하고 잠깐이라고 이것을 잃어버리지 않게 한다면 천하의 道義가 모두 이것을 따라서 나올 것이다. 道義는 군주를 섬김에 忠하고, 부모를 섬김에 孝하는 부류와 같은 것이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天地之中', 太極是已, 天之命我, 此也; 我之明徳, 此也; 謂之至善, 亦此也. 道者, 體; 義者, 用; '成性存存而道義出', 則明徳之全體大用無不明矣.&amp;quot;&lt;br /&gt;
:옥계노씨가 말했다. &amp;quot;'天地之中'이란 태극일 뿐이니, 하늘이 나에게 명한 것이 이것이오, 나의 明徳이 이것이오, 至善을 말한 것 또한 이것이다. 道라는 것은 體고, 義라는 것은 用이다. '成性存存而道義出'이란 明徳의 全體와 大用이 밝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克明峻徳', 何也?&amp;quot; &amp;lt;br/&amp;gt;&lt;br /&gt;
말했다. &amp;quot;'克明峻徳'이란 무엇입니까?&amp;quot; &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言堯能明其大徳也.&amp;quot; &amp;lt;br/&amp;gt;&lt;br /&gt;
답했다. &amp;quot;요임금께서 자신의 大徳을 밝힐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人之為徳未嘗不明, 而其明之為體亦未嘗不大. 但人自有以昏之, 是以既不能明, 而又自䧟於一物之小. 唯堯為能明其大徳而無昏暗狹小之累, 是則所謂止於至善.&amp;quot;&lt;br /&gt;
:주자가 말했다. &amp;quot;사람의 徳됨은 일찍이 밝지 않음이 없고, 그 밝음의 體됨은 또한 일찍이 크지 않음이 없다. 다만 사람이 스스로 그것을 흐릴 수 있기 때문에 이미 밝힐 수 없고 또 스스로 한 사물의 작음에 빠진다. 오직 요임금께서만이 자신의 大徳을 밝히고 혼미하고 어둡고 좁고 작음의 얽매임이 없을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이른바 '止於至善'이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能明其大徳', 只是明明徳到十分盡處, 非明徳之外有峻徳也.&amp;quot;&lt;br /&gt;
:옥계노씨가 말했다. &amp;quot;'能明其大徳'이란 다만 明徳을 밝히는 것을 충분히 다하는 것이니, 明徳이외에 峻徳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是三者, 固皆自明之事也. 然其言之, 亦有序乎?&amp;quot;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이 세가지는 진실로 모두 스스러 밝히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말함이 또한 순서가 있는 것입니까?&amp;quot; &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amp;lt;康誥&amp;gt;通言明徳而已; &amp;lt;太甲&amp;gt;則明天之未始不爲人而人之未始不爲天也; &amp;lt;帝典&amp;gt;則專言成徳之事, 而極其大焉. 其言之淺深, 亦略有序矣.&amp;quot;&lt;br /&gt;
말했다. &amp;quot;&amp;lt;康誥&amp;gt;는 明徳을 통틀어말한 것일 뿐이고,  &amp;lt;太甲&amp;gt;은 하늘은 애초에 사람을 위하지 않음이 없고 사람은 애초에 하늘을 위하지 않음이 없음을 밝힌 것이고, &amp;lt;帝典&amp;gt;은 成徳의 일을 오로지 말하고서 그 큼을 지극히 한 것이다. 그 말들의 깊이는 또한 대략 순서가 있다.&amp;quot;&lt;br /&gt;
:問: &amp;quot;'天未始不為人而人未始不為天', 何也?&amp;quot; 朱子曰: &amp;quot;只是言人性本無不善, 而其日用之間莫不有當然之則, 所謂天理也. 人若毎事做得是, 則便合天理. 天人本一理, 若理㑹得此意, 則天何嘗大, 人何嘗小也?&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하늘은 애초에 사람을 위하지 않음이 없고 사람은 애초에 하늘을 위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무엇입니까?&amp;quot; 주자가 말했다. &amp;quot;다만 사람의 性은 본래 선하지 않음이 없고, 평소에 당연한 법칙이 있지 않음이 없으니 이른바 天理이다. 하늘과 사람은 본래 하나의 理이니 만약 이 뜻을 이해하였다면 하늘이 어찌 일찍이 크고, 사람이 어찌 일찍이 작겠는가?&amp;quot;&lt;br /&gt;
:○天即人, 人即天. 人之始生, 得於天也; 既生此人, 則天又在人矣. 凡語言動作視聽, 皆天也; '顧'是常要看得光明燦爛, 照在目前.&lt;br /&gt;
:하늘은 곧 사람이고 사람은 곧 하늘이니, 사람이 막 태어나면서 하늘을 얻는다, (하늘이) 이미 이러한 사람을 낳았다면 하늘은 또한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무릇 말하고 행동하고 보고 듣는 것은 모두 하늘이다. '顧'는 항상 광명 찬란하게 보아서 눈 앞에 것들을 비추고자 하는 것이다.&lt;br /&gt;
:○黄氏曰: &amp;quot;本文三引&amp;lt;書&amp;gt;, 乃斷章取義, 以明經文明明徳之意. 其言之序, 則自淺而深, 最爲有用. '克明徳'者, 泛言之; 曰'顧諟', 則言明之之功; 曰'明命', 則言明徳之故; 次之曰'峻徳', 加一峻字, 則又見明徳之極, 乃所謂'止於至善'者也.&amp;quot;&lt;br /&gt;
:황씨가 말했다. &amp;quot;본문은 &amp;lt;서경&amp;gt;을 세 번 인용하여 이내 斷章取義하여 경문의 明明徳의 뜻을 밝혔다. 그 말의 순서는 얕은 것에서부터 깊은 곳에까지 가장 쓰임이 있게 된다. '克明徳'이라는 것은 범범하게 말한 것이고, '顧諟'로 말한 것은 이것을 밝히는 공부를 말한 것이고, '明命'을 말한 것은 明徳의 이유를 말한 것이니 다음에 '峻徳'말하여 '峻'한 글자를 더하면 또한 明徳의 지극함을 볼 수 있으니 바로 이른바 '止於至善'이다.&amp;quot;&lt;br /&gt;
&lt;br /&gt;
===傳二章===&lt;br /&gt;
湯之盤銘曰：「苟日新，日日新，又日新。」&lt;br /&gt;
:盤，沐浴之盤也。銘，名其器以自警之辭也。苟，誠也。湯以人之洗濯其心以去惡，如沐浴其身以去垢。故銘其盤，言誠能一日有以滌其舊染之汙而自新，則當因其已新者，而日日新之，又日新之，不可略有間斷也。&lt;br /&gt;
&lt;br /&gt;
康誥曰：「作新民。」&lt;br /&gt;
:鼓之舞之之謂作，言振起其自新之民也。&lt;br /&gt;
&lt;br /&gt;
詩曰：「周雖舊邦，其命惟新。」&lt;br /&gt;
:詩大雅文王之篇。言周國雖舊，至於文王，能新其德以及於民，而始受天命也。&lt;br /&gt;
&lt;br /&gt;
是故君子無所不用其極。&lt;br /&gt;
:自新新民，皆欲止於至善也。&lt;br /&gt;
&lt;br /&gt;
*右傳之二章。釋新民。&lt;br /&gt;
&lt;br /&gt;
&lt;br /&gt;
====『혹문』 전2장====&lt;br /&gt;
或問: &amp;quot;盤之有銘, 何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혹자가 물었다. &amp;quot;쟁반(盤)에 새긴 것이 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盤者, 常用之器, 銘者, 自警之辭也. 古之聖賢, 兢兢業業&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 謹慎戒懼貌。▶ 《書‧皋陶謨》： “兢兢業業， 一日二日萬幾。”▶ 孔 傳： “兢兢， 戒慎；業業， 危懼。” &amp;lt;/ref&amp;gt;, 固無時而不戒謹恐懼. 然猶恐其有所怠忽而或忘之也. 是以於其常用之器, 各因其事而刻銘以致戒焉, 欲其常接乎目, 毎警乎心而不至於忽忘也.&amp;quot; &amp;lt;br/&amp;gt;&lt;br /&gt;
답했다. &amp;quot;'盤'이라는 것은 항상 쓰는 기물이고, '새긴' 것은 스스로 경계하는 말이다. 옛날의 성현들은 조심하면서 진실로 어느때고 경계하고 두려워하지 않음이 없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 태만하고 소홀히 하며 간혹 잊어버리는게 있다. 이 때문에 항상 사용하는 기물에대가 각각 그 일삼는 것을 따라서 새겨서 경계를 지극히 한 것이니 문앞에 항상 두고서 매번 마음으로 경계하고 소홀히하고 잊어버리는데 이르지 않고자 한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然則沐浴之盤而其所刻之辭如此, 何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그렇다면 세수하는 쟁반에 새긴 글이 이와같은 것은 어째서 입니까?&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人之有是徳, 猶其有是身也; 徳之本明, 猶其身之本㓗也; 徳之明而利欲昏之, 猶身之㓗而塵垢&amp;lt;sub&amp;gt;音苟&amp;lt;/sub&amp;gt;汚&amp;lt;sub&amp;gt;音烏又去聲&amp;lt;/sub&amp;gt;之也. 一旦存養省&amp;lt;sub&amp;gt;悉井反&amp;lt;/sub&amp;gt;察之功, 眞有以去&amp;lt;sub&amp;gt;上聲下同&amp;lt;/sub&amp;gt;其前日利欲之昏, 而日新焉, 則亦猶其䟽&amp;lt;sub&amp;gt;平聲&amp;lt;/sub&amp;gt;瀹&amp;lt;sub&amp;gt;音藥&amp;lt;/sub&amp;gt;&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 洗滌；沐浴。 &amp;lt;/ref&amp;gt;澡&amp;lt;sub&amp;gt;音早&amp;lt;/sub&amp;gt;雪&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 洗滌使之清潔；洗滌。 &amp;lt;/ref&amp;gt;, 而有以去其前日塵垢之汚也. 然既新矣, 而所以新之之功不繼, 則利欲之交將復&amp;lt;sub&amp;gt;扶又反下同&amp;lt;/sub&amp;gt;有如前日之昏, 猶既㓗矣而所以㓗之之功不繼, 則塵垢之集將復有如前日之汚也. 故必因其巳新而日日新之, 又日新之, 使其存養省察之功無少間斷&amp;lt;sub&amp;gt;間去聲斷徒玩反後凡二字相連者並同&amp;lt;/sub&amp;gt;, 則明徳常明而不復爲利欲之昏, 亦如人之一日沐浴而日日沐浴, 又無日而不沐浴, 使其䟽瀹澡雪之功無少間斷, 則身常㓗清而不復爲舊染之汚也. 昔成湯所以反之而至於聖者, 正惟有得於此. 故稱其徳者有曰: '不邇聲色, 不殖&amp;lt;sub&amp;gt;承職反&amp;lt;/sub&amp;gt;貨利.'&amp;lt;ref&amp;gt;&amp;lt;서경&amp;gt; &amp;lt;商書&amp;gt; &amp;lt;仲虺之誥&amp;gt; 惟王不邇聲色，不殖貨利。&amp;lt;/ref&amp;gt; 又曰: '以義制事, 以禮制心.'&amp;lt;ref&amp;gt;&amp;lt;서경&amp;gt; &amp;lt;商書&amp;gt; &amp;lt;仲虺之誥&amp;gt; 王懋昭大德，建中于民，以義制事，以禮制心，垂裕後昆。&amp;lt;/ref&amp;gt; 有曰: '從諌弗咈&amp;lt;sub&amp;gt;音佛&amp;lt;/sub&amp;gt;'&amp;lt;ref&amp;gt;&amp;lt;서경&amp;gt; &amp;lt;商書&amp;gt; &amp;lt;伊訓&amp;gt; 先王肇修人紀，從諫弗咈，先民時若。&amp;lt;/ref&amp;gt;, '改過不吝.'&amp;lt;ref&amp;gt;&amp;lt;서경&amp;gt; &amp;lt;商書&amp;gt; &amp;lt;仲虺之誥&amp;gt; 用人惟己，改過不吝。&amp;lt;/ref&amp;gt; 又曰: '與人不求備, 檢身若不及.'&amp;lt;ref&amp;gt;&amp;lt;서경&amp;gt; &amp;lt;商書&amp;gt; &amp;lt;伊訓&amp;gt; 居上克明，為下克忠，與人不求備，檢身若不及，以至于有萬邦，茲惟艱哉！&amp;lt;/ref&amp;gt; 此皆足以見其日新之實. 至於所謂聖敬日躋&amp;lt;sub&amp;gt;牋西反&amp;lt;/sub&amp;gt;&amp;lt;ref&amp;gt;&amp;lt;시경&amp;gt; &amp;lt;상송&amp;gt; &amp;lt;長發&amp;gt; 湯降不遲、聖敬日躋。&amp;lt;/ref&amp;gt;云者, 則其言愈約而意愈切矣&amp;lt;sub&amp;gt;躋, 升也. 聖人能敬其徳, 日愈升於髙明也.&amp;lt;/sub&amp;gt;然本湯之所以得此, 又其學於伊尹而有發焉. 故伊尹自謂與湯咸有一徳&amp;lt;ref&amp;gt;&amp;lt;서경&amp;gt; &amp;lt;商書&amp;gt; &amp;lt;咸有一德&amp;gt; 惟尹躬暨湯，咸有一德，克享天心，受天明命，以有九有之師，爰革夏正。&amp;lt;/ref&amp;gt;, 而於復&amp;lt;sub&amp;gt;如字&amp;lt;/sub&amp;gt;政太甲之初, 復&amp;lt;sub&amp;gt;扶又反下同&amp;lt;/sub&amp;gt;以終始惟一, 時乃日新&amp;lt;ref&amp;gt;&amp;lt;서경&amp;gt; &amp;lt;商書&amp;gt; &amp;lt;咸有一德&amp;gt; 終始惟一，時乃日新。&amp;lt;/ref&amp;gt;, 爲丁寧之戒, 蓋於是時, 太甲方且自怨自艾&amp;lt;sub&amp;gt;音乂&amp;lt;/sub&amp;gt;, 於桐處&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仁遷義而歸&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만장상&amp;gt; 6. 太甲顛覆湯之典刑，伊尹放之於桐。三年，太甲悔過，自怨自艾，於桐處仁遷義；三年，以聽伊尹之訓己也，復歸于亳。&amp;lt;/ref&amp;gt;, 是亦所謂苟日新者. 故復推其嘗以告于湯者告之, 欲其日進乎此, 無所間斷, 而有以繼其烈祖之成徳也.&amp;lt;ref&amp;gt;&amp;lt;서경&amp;gt; &amp;lt;商書&amp;gt; &amp;lt;伊訓&amp;gt; 伊尹乃明言烈祖之成德，以訓于王。&amp;lt;/ref&amp;gt; 其意亦深切矣.&amp;lt;br/&amp;gt;&lt;br /&gt;
답했다. 사람이 이러한 덕이 있는 것은 이러한 마음이 있는 것과 같고, 덕이 본래 밝은 것은 몸이 원래 깨끗한 것과 같으며, 덕은 밝은데 이욕으로 혼미해지는 것은 몸은 깨끗하지만 먼지로 더럽혀져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잠깐의 존양성찰의 공부는 진실로 이전의 이익의 사사로움을 제거하여 날로 새로워질 수 있으니 또한 (몸을) 씻어내서 전날의 더러움을 제거할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미 새로워졌더라도 새롭게 하는 공부를 잇지 않으면 이욕이 엮여서 다시 전날의 혼매함과 같은 것이 있게 될 것이니, 이미 깨끗히 씼엇지만 깨끗하게 하는 공력을 잇지 않으면 먼지가 모여서 다시 전날의 더러움과 같은 것이 있게 될 것과 같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미 새로워진 것을 따라서 매일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하여 그 존양성찰의 공부로 하여금 조금의 끊어짐도 없게 한다면 명덕이 항상 밝고 다시 이욕의 혼매함이 없게 하는 것은 사람이 매일 씻고 또 날마다 씻어서 하루라도 씻지 않음이 없어서, 그 씻는 공력으로 하여금 조금의 끊어짐도 없게 하면 몸이 항상 깨끗하고 또 다시 옛날의 더러움이 되지 않게 되는 것과 같다. 옛날 成湯이 돌이켜서 성인에 이른 것이 바로 이 점을 앎이 있었기 때문이니 그 덕을 칭송하면서 말하길 &amp;quot;소리와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고 재물을 늘리지 않는다&amp;quot;라고 하고 또 &amp;quot;義로써 일을 제어하고, 禮로써 마음을 제어한다.&amp;quot;고 하였으며, &amp;quot;간언을 따르고 거스르지 않는다&amp;quot;, &amp;quot;잘못을 고치는데 거리끼지 않는다&amp;quot;고 하고, 또 &amp;quot;사람들에게 주는 것을 다 갖추지 못한 것처럼 하고, 몸을 검속함을 마치 미치지 못한 듯 한다&amp;quot;고 하였으니, 이 모든 것이 날마다 새로워지는 실질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amp;quot;성인께서 敬하여 날로 오르신다&amp;quot;라는 말에 경우에는 그 말은 더욱 축약되어 있지만 뜻은 더욱 간절하다. 그러나 본래 탕임금이 이런 것을 깨달은 까닭은 또한 그것을 이윤에게 배워서 감발한 것이 있었기 때문에 이윤 스스로 '탕과 (다른 사람들은 ) 모두 같은 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lt;br /&gt;
&lt;br /&gt;
:朱子曰: &amp;quot;成湯工夫, 全在敬字上. 看來大叚是箇脩飭底人. 故當時人說他做工夫處, 如云以義以禮, 不邇不殖等, 可見日新之功. 或問中所以詳載, 非說道人不知, 亦欲學者經心&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 留心；着意。 &amp;lt;/ref&amp;gt;耳.&amp;quot;&lt;br /&gt;
:주자가 말했다. &amp;quot;成湯의 공부는 모두 '敬'이라는 글자에 달려 있다. 대단히 그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사람임을 보아야 하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다른 공부 방법을 설명한 것이 마치 義로써 하거나, 禮로써 한다, 가까이 하지 않고 불리지 않는다 등등의 말과 같은 것이니 (여기에서) 날로 새로워지는 공부를 볼 수 있다. &amp;lt;或問&amp;gt; 안에 상세히 기록해 놓은 것은 사람들이 알지 못함을 말한 것이 아니고, 또 배우는 사람들이 마음을 두게 하고자 한 것이다.  &lt;br /&gt;
:○格庵趙氏曰: &amp;quot;塵垢之汚, 其害淺, 利欲之昏, 其害深. 塵垢之汚, 人知求以去之, 而利欲之昏, 則不知所以去之. 唯聖人則以為徳之不可不新, 甚於身之不可不㓗也. 且人之㓗身也, 既知䟽瀹澡雪以去前日塵垢之汚矣. 然其㓗之之功不繼, 則塵垢復集, 將又如前日之汚. 故必日加䟽瀹澡雪之功, 無少間斷, 而後其身常㓗而不汚, 况欲去利欲之昏, 而復本然之明, 則存養省察之功, 其可一日而有間斷哉!&amp;quot;&lt;br /&gt;
:격암조씨가 말했다. &amp;quot;먼지와 때를 쓴 더러움은 그 해됨이 얕지만, 이욕의 혼매함은 그 해됨이 심하다. 먼지와 때의 더러움은 사람들이 이것을 제거해야함을 알지만, 이욕의 혼매함은 이것을 제거해야하는 까닭을 모른다. 오직 성인이라면 덕이 새로워지지 않을 수 없음이 몸이 깨끗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 보다 심하다고 여기신다. 또 사람들이 몸을 깨끗이 해야함은 이미 씻어내서 전날의 먼지와 때의 더러움을 제거해야할 줄을 알지만, 깨끗이 해나가야하는 공력을 잇지 않는다면 먼지와 때가 다시 모여서 또 전날의 더러움과 같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날마다 씻어내는 공력을 가함이 조금의 끊어짐도 없게 한 이후에 그 몸이 항상 깨끗하여 더럽지 않을 것이니, 하물며 이욕의 혼매함을 없애고 다시 본연의 밝음을 회복하고자 하는 경우라면 존양성찰의 공부가 어찌 하루라도 끊어짐이 있을 수 있겠는가!&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不邇聲色等八句, 是敬之目; 聖敬日躋一句, 是敬之綱. 合而言之, 即顧諟明命之事也.&amp;quot;&lt;br /&gt;
:옥계노씨가 말했다. &amp;quot;'不邇聲色'등의 여덟 구절은 敬의 조목이고, '聖敬日躋'의 한 조목 구절은 敬의 강령이다. 합하여 말한다면 '顧諟明命'의 일이다.&amp;quot;&lt;br /&gt;
&lt;br /&gt;
其後周之武王, 踐阼&amp;lt;sub&amp;gt;存故反&amp;lt;/sub&amp;gt;之初, 受師尚父&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齊太公 呂望 的尊稱。 &amp;lt;/ref&amp;gt;丹書之戒曰&amp;lt;sub&amp;gt;尚父太公望吕氏詳見孟子離婁上篇&amp;lt;/sub&amp;gt;: '敬勝怠者吉, 怠勝敬者滅, 義勝欲者從, 欲勝義者凶.'&amp;lt;br/&amp;gt;&lt;br /&gt;
이후 주나라 무왕이 즉위한 처음에 사상보가 「丹書」의 경계를 주며 말하길, '공경함이 태만함을 이기는 사람은 길하고, 태만함이 공경함을 이기는 사람은 멸한다. 의로움이 욕구를 이기는 사람은 따르고, 욕구가 의로움을 이기는 사람은 흉하다.&lt;br /&gt;
:問從字意. 朱子曰: &amp;quot;從, 順也. 敬便立起, 怠便放倒. 以理從事是義, 不以理從事便是欲. 這處敬與義, 是箇體用.&amp;quot;&lt;br /&gt;
:'從'의 의미를 물었다. 주자가 말했다. &amp;quot;從은 따른다는 것이다. 敬은 바로 세워 일으키는 것이고, 怠는 엎어지는 것이다. 이치로써 일을 따르는 것이 義이며, 이치로써 일을 따르지 않는 것이 欲이다. 敬과 義는 體用관계이다.&amp;quot;&lt;br /&gt;
:○須是將敬來做本領. 涵養得貫通時, 纔敬以直内, 便義以方外. 義便有敬, 敬便有義. 如居仁便由義, 由義便居仁. 敬者, 守於此而勿失之謂; 義者, 施於彼而合宜之謂.&lt;br /&gt;
:모름지기 敬으로 본령을 해 나가야 한다. 함양공부가 관통할 수 있을 때에 敬以直内하자마자 義以方外한다. 義가 있으면 敬이 있고, 敬이 있으면 義가 있으니 마치 仁에 거처하면 곧 義를 따르게 되고, 義를 따르면 곧 仁에 거처하게 되는 것과 같다. 敬이라는 것은 이것을 지켜서 잃어버리지 않음을 말하고, 義라는 것은 저기에서 시행하여 마땅함에 합하는 것을 말한다.&lt;br /&gt;
:○西山眞氏曰: &amp;quot;武王之始踐阼也, 訪丹書於太公, 可謂急於聞道者矣. 而太公望所告, 不出敬與義之一言. 蓋敬則萬善俱立, 怠則萬善俱廢, 義則理為之主, 欲則物為之主. 上古聖人巳致謹於此矣. 武王聞之, 若湯之戒懼而銘之器物以自警焉. 蓋恐斯須不存, 而怠與欲得乘其隙也.&amp;quot;&lt;br /&gt;
:서산진씨가 말했다. &amp;quot;&amp;quot;무왕이 처음 즉위함에 「丹書」를 태공에게 자문하였으니, 道를 듣는 것을 급히 하였다고 말할 만 하다. 태공이 알리기를 바라였지만, 敬과 義라는 한 마디 말에서 나오지 않았다. 대개 공경하면 모든 善이 함께 바로서고, 태만하면 모든 善이 함께 사라지며, 의로우면 理가 주인이 되고, 욕구하면 物이 주인이 된다. 옛날의 성인들은 이미 여기에서 삼가함을 지극히 하셨다. 무왕이 이것을 들은 것은 마치 탕왕이 경계하고 두려워하여 글자를 새긴 기술로 스스로 경계한 것과 같다. 대개 잠깐이라도 (敬과 義에) 있지 않아서 怠와 欲이 그 틈을 탈 것을 두려워해야한다.&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敬義對言, 其理甚精. 孔子於坤&amp;lt;文言&amp;gt;曰: '敬以直内, 義以方外.'&amp;lt;ref&amp;gt;&amp;lt;주역&amp;gt; &amp;lt;문언&amp;gt; 「直」其正也，「方」其義也。君子敬以直內，義以方外，敬義立而德不孤。「直、方、大、不習无不利」，則不疑其所行也。&amp;lt;/ref&amp;gt; 實自此發.&amp;quot;&lt;br /&gt;
:신안진씨가 말했다. &amp;quot;敬과 義를 대대하여 말하면 그 이치가 더욱 정밀하다. 공자께서 坤괘 &amp;lt;文言&amp;gt;에서 말씀하시길 '敬以直内, 義以方外'라 하였으니, 진실로 여기서부터 나온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退而於其几席、觴豆、刀劒、户牖, 莫不銘焉, 蓋聞湯之風而興起者. 今其遺語尚幸頗見&amp;lt;sub&amp;gt;形甸反&amp;lt;/sub&amp;gt;於禮書, 願治&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之君, 志學之士, 皆不可以莫之考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무왕이 듣고) 물러나고서 방석, 제기, 검, 창에 이것을 새기지 않음이 없었으니, 아마도 탕왕의 풍속을 듣고 흥기한 것일 것이다. 오늘 날에 남은 말이 여전히 다행히 자못 예서에 드러나 있으니 (잘)다스리고자 하는 군주와 학문에 뜻을 둔 士는 모두 상고하지 않을 수 없다.&amp;lt;br/&amp;gt;&lt;br /&gt;
:張氏存中曰: &amp;quot;&amp;lt;大戴禮&amp;gt; &amp;lt;武王踐阼&amp;gt;篇, '武王踐阼三日, 召師尚父而問焉曰: 『黄帝顓帝之道, 可得而見與?』 曰: 『在丹書, 王欲聞之, 則齊矣.』 王齊三日, 師尚父奉書而入, 道書之言曰: 『敬勝怠者吉, 怠勝敬者滅, 義勝欲者從, 欲勝義者凶. 凡事不强則枉, 弗敬則不正, 枉者滅廢, 敬者萬世.』 王聞書之言, 惕若恐懼, 而為戒書於席四端為銘焉. 銘曰: 『安樂必敬』 『無行可悔』 『一反一側, 亦不可不志&amp;lt;ref&amp;gt;&amp;lt;대대례기&amp;gt; 원문에는 志자가 忘자로 되어 있다.&amp;lt;/ref&amp;gt; 『殷監不逺, 視爾&amp;lt;ref&amp;gt;&amp;lt;대대례기&amp;gt; 원문에는 爾자가 邇자로 되어 있다.&amp;lt;/ref&amp;gt;所代』, 鑑銘曰: 『見爾前, 慮爾後』, 盤銘曰: 『與其溺於人也, 寧溺於淵. 溺於淵, 猶可游也; 溺於人, 不可捄也.』, 楹銘曰: 『毋曰胡殘, 其禍將然; 毋曰胡害, 其禍將大; 毋曰胡傷, 其禍將長』, 牖銘曰: 『隨天之時, 以地之財, 敬祀皇天, 敬以先時』, 劒銘曰: 『帶之以為服, 動必行徳行. 德則興, 倍徳則崩』.'&amp;quot;&amp;lt;sub&amp;gt;倍與背同. 銘凡十有四, 今摘其辭義之易知者于此.&amp;lt;/sub&amp;gt;&lt;br /&gt;
:장존중이 말하길 &amp;quot;&amp;lt;大戴禮&amp;gt;의 &amp;lt;武王踐阼&amp;gt;편에 무왕이 즉위한지 3일 후에 사상보를 불러서 묻기를 '황제전제의 도를 들을 수 있을까요'라고 하니, 말하길 '「丹書」에 있으니 듣고자 하신다면 목욕재개하십시오'라고 하니, 왕이 3일동안 목욕재개하여 사상보가 「丹書」를 들고 들어왔다. 책의 말을 이르길 '공경함이 태만함을 이기는 사람은 길하고, 태만함이 공경함을 이기는 사람은 멸한다. 의로움이 욕구를 이기는 사람은 따르고, 욕구가 의로움을 이기는 사람은 흉하다. 모든 일은 강하지 않으면 굽어지고 敬하지 않으면 바르지 않으니, 굽어진 것은 없어지고 敬한 것은 만세토록 유지된다'고 하였다. 왕이 책의 말을 듣고서, 두려워하고 경계하여 경계하는 책으로 삼아 방석 네 귀퉁이에 이것을 새겼다. 새긴 글귀는 '편안하고 즐거울 때 반드시 敬한다', '행동할 때 후회할 만한 것이 없게하라', '한 번 기울일 때도 잊지 않음이 없어야 한다.', '은나라라는 거울이 멀지 않으니, 저들이 대신한 것을 보라'이고, 거울에 새긴 글자는 '앞선 것을 보고 뒤에 것을 생각해라'이며, 쟁반에 새긴 글은 '사람에게 빠질 바에야 차라리 연못에 빠지겠다. 연못에 빠지면 오히려 헤엄칠 수 있지만, 사람에 빠지면 구원할 수 없다.'이고, 기둥에 새긴 글은 '잔혹함이 멀다고 말하지 말라, 그 재앙이 그러할 것이다. 해가 멀다고 말하지 말라, 그 재앙이 클것이다. 상처입음이 멀다고 말하지 말라 그 재앙이 자라날 것이다.'이며 창문에 새긴 글은 '하늘의 때를 따르고 땅의 재산을 이용하라, 황제를 공경하여 모시고, 선대를 공경하라'이고, 검에 새긴 글은 '(...) 반드시 덕을 행해야 하니, 덕을 행하면 흥기하고 덕을 배신하면 망한다.'이다.&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此言'新民', 其引此, 何也?&amp;quot;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여기 (전 2장)에서 '新民'을 말하고 이것(탕왕의 말)을 인용한 것은 어째서 입니까?&amp;quot; &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此自其本而言之, 蓋以是爲自新之至而新民之端也.&amp;quot; &amp;lt;br/&amp;gt;&lt;br /&gt;
말했다. &amp;quot;이것은 근원으로 부터 말한 것이니, 대개 이것을 自新의 지극함과 新民의 시작으로 삼는다.&amp;quo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曰: &amp;quot;&amp;lt;康誥&amp;gt;之言作'新民', 何也?&amp;quot;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amp;lt;康誥&amp;gt;에 말에서 '新民'으로 쓴 것은 왜입니까?&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武王之封康叔也, 以商之餘民, 染紂汚俗而失其本心也. 故作&amp;lt;康誥&amp;gt;之書而告之以此, 欲其有以鼓舞而作興之, 使之振奮踴躍, 以去&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其惡而遷於善, 舍&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其舊而進乎新也. 然此豈聲色號令之所及哉? 亦自新而已矣. &amp;lt;br/&amp;gt;&lt;br /&gt;
말했다. &amp;quot;무왕이 강숙을 봉했을 때, 상나라의 백성들이 주왕의 오염된 습속에 불들어서 그 본심을 잃었기 때문에 강고의 글을 지어서 이것을 그들에게 알려서 고무시키고, 흥기시킬 수 있어서 백성들로 하여금 떨쳐 일어나 그 나쁜 것을 제거하고 선한 것으로 옮겨가며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나아가게 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소리와 여색, (말로만) 호령하는 것이 미칠 바겠는가! 또한 스스로 새롭게할 뿐이다.&amp;quot;&amp;lt;br/&amp;gt;&lt;br /&gt;
&lt;br /&gt;
曰: &amp;quot;孔氏&amp;lt;小序&amp;gt;以&amp;lt;康誥&amp;gt;爲成王周公之書, 而子以武王言之, 何也?&amp;quot;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공자의 &amp;lt;小序&amp;gt;에 &amp;lt;康誥&amp;gt;를 성왕과 주공의 책이라고 여겼는데, 그대는 무왕의 말이라고 여기니 어째서입니까?&amp;quot; &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此五峯胡氏之說也. &amp;lt;br/&amp;gt;&lt;br /&gt;
말했다. &amp;quot;이것은 호오봉의 설명이다&amp;quot;&lt;br /&gt;
:胡氏, 名宏, 字仁仲, 建安人, 文定公安國之子也. 其說見&amp;lt;皇王大紀&amp;gt;&amp;lt;ref&amp;gt;&amp;lt;호굉집&amp;gt;, 중화서국, 1987, 262쪽, &amp;lt;皇王大紀論&amp;gt; &amp;lt;載書之敍&amp;gt; &amp;lt;康誥&amp;gt;序曰: &amp;quot;成王既伐管叔、蔡叔, 以殷餘民封康叔.&amp;quot; 謹按, 康叔者, 成王叔父也, 不應稱之曰: &amp;quot;朕其弟&amp;quot;. 成王者, 康叔之猶子也, 不應自稱曰: &amp;quot;乃寡兄&amp;quot;. 其曰兄曰弟者, 盖武王命康叔之辭也, 故&amp;lt;史記&amp;gt;武王封康叔於衛. 且康叔者, 文王之子, 叔虞, 成王之弟也. 周公東征叔虞, 已得封於唐, 王命歸周公於東, 豈有康叔得封反在唐叔之後乎? 故不得不捨&amp;lt;書&amp;gt;序而從經史也. &amp;lt;/ref&amp;gt;.&lt;br /&gt;
:호씨는 이름이 굉(宏)이고 字는 仁仲이며 건안 사람이고 문정 공안국의 아들이다. 그 설명은 &amp;lt;皇王大紀&amp;gt;에 보인다.&lt;br /&gt;
蓋嘗因而考之, 其曰朕弟寡兄云者, 皆爲武王之自言, 乃得事理之實, 而其他証亦多. &amp;lt;小序&amp;gt;之言, 不足深信, 於此可見. 然非此書大義所關. 故不暇於致詳, 當别爲&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讀書者言之耳.&amp;quot;&amp;lt;br/&amp;gt;&lt;br /&gt;
대개 일찍이 이것을 말미암아 상고해보면 (&amp;lt;서경&amp;gt;에서) 朕, 弟, 寡兄라고 말하는 것은 모두 문왕을 스스로 일컬은 것이 되어야 사리의 실질을 얻을 수 있지만 그 다른 증거 또한 많다. &amp;lt;小序&amp;gt;의 말은 깊히 신뢰하기 부족함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큰 뜻이 관련되어 있는 바가 아니기 때문에 지극히 상세할 겨를이 없고 마땅히 구별하여 책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말하게 했을 뿐이다.&lt;br /&gt;
&lt;br /&gt;
○曰: &amp;quot;&amp;lt;詩&amp;gt;之言'周雖舊邦, 其命維新', 何也?&amp;quot;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amp;lt;詩&amp;gt;에서 말한 '주나라는 비롯 옛 나라이지만, 그 명은 오히려 새롭다.'라고 한 것은 어째서 입니까?&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言周之有邦, 自后稷以來千有餘年, 至於文王, 聖徳日新而民亦丕變&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大變。 ▶ 《書‧盤庚上》： “罔有逸言， 民用丕變。” ▶ 孔 傳： “民用大變從化。” &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답했다. &amp;quot;주나라가 생기고 후직부터 이후로 천여년이 지나 문왕에 이르렀으니, 성인의 덕이 날마다 새로워지고 백성들 또한 변치 않았다.&amp;quot;&amp;lt;br/&amp;gt;&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此乃推本言之, &amp;lt;詩&amp;gt;無'日新丕變'意. 蓋承上文'日新', 作新說來.&amp;quot;&lt;br /&gt;
:신안진씨가 말했아. &amp;quot;이것은 바로 근본을 미루어 말한 것이니 &amp;lt;시&amp;gt;에 '날마다 새로워져 변하지 않았다'는 뜻은 없다. 아마도 윗 글의 '日新'을 이어서 새로운 설명을 쓰셨을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故天命之以有天下. 是其邦雖舊而命則新也. 蓋民之視效在君, 而天之視聽在民. 君徳既新, 則民徳必新; 民徳既新, 則天命之新, 亦不旋日&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 一日之間。 &amp;lt;/ref&amp;gt;矣.&amp;quot;&amp;lt;br/&amp;gt;&lt;br /&gt;
그러므로 하늘의 명이 이것으로 천하를 소유하였다. 이것이 나라는 비록 오래되었지만 그 명은 새롭다는 것이다. 대개 백성들의 본보기는 군주에게 달려있고, 하늘의 보고 들음은 백성에게 달려있으니 군주의 덕이 새로워졌다면 백성의 덕은 반드시 새로울 것이고, 백성의 덕이 새로워졌다면 하늘의 명이 새로워짐은 또한 하루가 걸리지 않을 것이다.&amp;lt;br/&amp;gt;&lt;br /&gt;
:問: &amp;quot;'天之視聽在民', 與'天視自我民視, 天聽自我民聽'&amp;lt;ref&amp;gt;&amp;lt;서경&amp;gt; &amp;lt;주서&amp;gt; &amp;lt;泰誓中&amp;gt; 天視自我民視，天聽自我民聽。&amp;lt;/ref&amp;gt;, 若有不同, 如何?&amp;quot; 朱子曰: &amp;quot;天豈曾有耳目以視聽? 只是自民之視聽, 便是天之視聽. 如帝命文王, 豈天諄諄然命之? 只是文王要恁地, 便是理合恁地, 便是帝命之也.&amp;quot; 又曰: &amp;quot;若一件事, 民人皆以為是, 便是天以為是; 若民人皆歸往之, 便是天命也.&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天之視聽在民'와 '하늘의 봄은 나의 백성이 보는 것을 말미암고, 하늘의 들음은 나의 백성이 듣는 것을 말미암는다.'는 같지 않은게 있는 것 같은데 어째서 입니까?&amp;quot; 주자가 말했다. &amp;quot;하늘이 어찌 일찍이 귀와 눈이 있어서 보고 듣겠는가? 다만 백성들의 보고 들음을 말미암으면 곧 하늘이 보고 듣는 것이다. 帝가 문왕에게 명한 것이 어찌 하늘이 하나하나 명한 것이 겠는가? 다만 문왕이 이와같이 하려하여 이치에 합당함이 이와같았다면 곧 帝가 명한 것이다.&amp;quot; 또 말했다. &amp;quot;만약 한 가지 일에 백성이 모두 옳다고 여긴다면 곧 하늘도 옳다고 여긴 것이고, 만약 백성들이 모두 귀의해 온다면, 하늘이 명한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所謂'君子無所不用其極'者, 何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이른바 '군자는 그 지극함을 쓰지 않은 바가 없다'는 말은 무엇입니까?&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此結上文&amp;lt;詩&amp;gt;&amp;lt;書&amp;gt;之意也. 蓋&amp;lt;盤銘&amp;gt;言自新也, &amp;lt;康誥&amp;gt;言新民也, 文王之詩自新、新民之極也. 故曰: '君子無所不用其極.' 極, 即至善之云也. 用其極者, 求其止於是而巳矣.&amp;quot;&amp;lt;br/&amp;gt;&lt;br /&gt;
답했다. &amp;quot;이것은 윗 글의 &amp;lt;詩&amp;gt;와 &amp;lt;書&amp;gt;의 뜻이다. 대개 '쟁반에 새긴 말'은 스스로를 새롭게 함을 말한 것이고 &amp;lt;康誥&amp;gt;는 백성을 새롭게 함을 말한 것이고, 문왕의 시는 스스로 새롭게하고 백성을 새롭게 함의 지극함이다. 때문에 '군자는 그 지극함을 쓰지 않은 바가 없다'고 한 것이니, 極이란 곧 至善을 말한 것이다. '그 지극함을 쓴다'는 것은 옳은 것에 머무름을 구할 뿐이다.&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觀上文三引&amp;lt;詩&amp;gt;&amp;lt;書&amp;gt;而此以無所二字總而結之, 則於自新、新民皆欲用其極, 可知矣.&amp;quot;&lt;br /&gt;
:주자가 말했다. &amp;quot;위에서 &amp;lt;詩&amp;gt;와 &amp;lt;書&amp;gt;를 세번 인용하여 '無所'두 글자로 총칭하여 끝맺은 것은 스스로 새롭게 하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에 대해 모두 그 지극함을 쓰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amp;quot;&lt;br /&gt;
&lt;br /&gt;
===傳三章===&lt;br /&gt;
詩云：「邦畿千里，惟民所止。」&lt;br /&gt;
:詩商頌玄鳥之篇。邦畿，王者之都也。止，居也，言物各有所當止之處也。&lt;br /&gt;
&lt;br /&gt;
詩云：「緡蠻黃鳥，止于丘隅。」子曰：「於止，知其所止，可以人而不如鳥乎！」&lt;br /&gt;
:緡，詩作綿。詩小雅綿蠻之篇。緡蠻，鳥聲。丘隅，岑蔚之處。子曰以下，孔子說詩之辭。言人當知所當止之處也。&lt;br /&gt;
&lt;br /&gt;
詩云：「穆穆文王，於緝熙敬止！」為人君，止於仁；為人臣，止於敬；為人子，止於孝；為人父，止於慈；與國人交，止於信。&lt;br /&gt;
:於緝之於，音烏。詩文王之篇。穆穆，深遠之意。於，歎美辭。緝，繼續也。熙，光明也。敬止，言其無不敬而安所止也。引此而言聖人之止，無非至善。五者乃其目之大者也。學者於此，究其精微之蘊，而又推類以盡其餘，則於天下之事，皆有以知其所止而無疑矣。&lt;br /&gt;
&lt;br /&gt;
詩云：「瞻彼淇澳，菉竹猗猗。有斐君子，如切如磋，如琢如磨。瑟兮僩兮，赫兮喧兮。有斐君子，終不可諠兮！」如切如磋者，道學也；如琢如磨者，自脩也；瑟兮僩兮者，恂慄也；赫兮喧兮者，威儀也；有斐君子，終不可諠兮者，道盛德至善，民之不能忘也。&lt;br /&gt;
:澳，於六反。菉，詩作綠。猗，協韻音阿。僩，下版反。喧，詩作咺，諠，詩作諼；並況晚反。恂，鄭氏讀作峻。詩衛風淇澳之篇。淇，水名。澳，隈也。猗猗，美盛貌。興也。斐，文貌。切以刀鋸，琢以椎鑿，皆裁物使成形質也。磋以鑢鐋1，磨以沙石，皆治物使其滑澤也。治骨角者，既切而復磋之。治玉石者，既琢而復磨之。皆言其治之有緒，而益致其精也。瑟，嚴密之貌。僩，武毅之貌。赫喧，宣著盛大之貌。諠，忘也。道，言也。學，謂講習討論之事，自脩者，省察克治之功。恂慄，戰懼也。威，可畏也。儀，可象也。引詩而釋之，以明明明德者之止於至善。道學自脩，言其所以得之之由。恂慄、威儀，言其德容表裏之盛。卒乃指其實而歎美之也。&lt;br /&gt;
&lt;br /&gt;
詩云：「於戲前王不忘！」君子賢其賢而親其親，小人樂其樂而利其利，此以沒世不忘也。&lt;br /&gt;
:於戲，音嗚呼。樂，音洛。詩周頌烈文之篇。於戲，歎辭。前王，謂文、武也。君子，謂其後賢後王。小人，謂後民也。此言前王所以新民者止於至善，能使天下後世無一物不得其所，所以既沒世而人思慕之，愈久而不忘也。此兩節詠歎淫泆，其味深長，當熟玩之。&lt;br /&gt;
&lt;br /&gt;
*右傳之三章。釋止於至善。&lt;br /&gt;
::此章內自引淇澳詩以下，舊本誤在誠意章下。&lt;br /&gt;
&lt;br /&gt;
====『혹문』 전3장====&lt;br /&gt;
或問: &amp;quot;此引&amp;lt;玄鳥&amp;gt;之詩, 何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문: 여기에서 ‘현조(玄鳥)’의 시를 인용하였는데 어째서입니까? &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此以民之止於邦畿而明物之各有所止也.&amp;quot; &amp;lt;br/&amp;gt;&lt;br /&gt;
답: 이는 백성들이 수도(邦畿)에 머물렀음을 통해서(以) 사물에는 각각 머무르는 곳이 있음을 밝힌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曰: &amp;quot;引&amp;lt;緜蠻&amp;gt;之詩而系以孔子之言, 孔子何以有是言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문: ‘면만(緜蠻)’의 시를 인용하고 공자의 말을 이었는데, 공자는 어째서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신 것입니까? &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此夫子說詩之辭也. 蓋曰: 鳥於其欲止之時, 猶知其當止之處, 豈可人爲萬物之靈, 而反不如鳥之能知所止而止之乎? 其所以發明人當知止之義, 亦深切矣.&amp;quot; &amp;lt;br/&amp;gt;&lt;br /&gt;
답: 이는 공자께서 시(詩)를 설명하신 말이다. 아마도 ‘새는 머무르고자 할 때에도 마땅히 머물러야 할 곳을 아는데, 어찌하여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 되어서 도리어 새가 머물러야 할 곳을 알아 머무르는 것만 못할 수 있는가?’ 라고 말한 것 같다. 사람은 마땅히 머무를 곳을 알아야 한다는 의미를 밝히신 것이니 또한 깊고 간절하시다.&lt;br /&gt;
&lt;br /&gt;
&lt;br /&gt;
○曰: &amp;quot;引&amp;lt;文王&amp;gt;之詩而繼以君臣父子與國人交之所止, 何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문: 문왕의 시를 인용하고서 군신君臣, 부자父子, 백성들과 어울림에 머물러야 할 곳이라는 말로 이으신 것은 어째서입니까? &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此因聖人之止, 以明至善之所在也. 蓋天生烝民, 有物有則.&amp;lt;ref&amp;gt;&amp;lt;시경&amp;gt; &amp;lt;대아&amp;gt; &amp;lt;증민&amp;gt; 天生烝民、有物有則。&amp;lt;/ref&amp;gt; 是以萬物庶事莫不各有當止之所. 但所居之位不同, 則所止之善不一. 故爲人君, 則其所當止者在於仁; 爲人臣, 則其所當止者在於敬; 爲人子, 則其所當止者在於孝; 爲人父, 則其所當止者在於慈; 與國人交, 則其所當止者在於信, 是皆天理人倫之極致, 發於人心之不容巳者. 而文王之所以爲法於天下, 可傳於後世者, 亦不能加毫末於是焉. 但衆人類爲氣稟物欲之所昏. 故不能常敬而失其所止. 唯聖人之心表裏洞然, 無有一毫之蔽. 故連續光明, 自無不敬, 而所止者莫非至善, 不待知所止而後得所止也. &amp;lt;br/&amp;gt;&lt;br /&gt;
답: 이는 성인이 그치신 것에 기인하여 지극한 선이 있는 곳을 밝힌 것이다. 대개 하늘이 백성들을 내리면 사물이 있고 법칙이 있으니 그래서 만사와 만물(萬物庶事)은 각각 마땅히 그쳐야 할 곳이 항상 있었다. 다만 머무르는 바의 지위가 같지 않으니 곧 그치는 바의 선(善)도 일정하지 않다. 그러므로 군주가 되어서는 곧 마땅히 머물러야 하는 바가 인(仁)에 있고, 신하가 되어서는 곧 마땅히 머물러야 하는 바가 경(敬)에 있고, 자식이 되어서는 곧 마땅히 머물러야 하는 바가 효(孝)에 있고, 부모가 되어서는 곧 마땅히 머물러야 하는 바가 자애로움(慈)에 있고, 나라의 백성들과 어울림에는 곧 마땅히 머물러야 하는 바가 신뢰(信)에 있다. 이는 모두 천리(天理)와 인륜(人倫)의 지극함이고 사람의 마음에 그침을 용납할 수 없는 것에서 나타나니, 문왕이 천하에서 법도가 되며 후세에 전할 수 있을만한 것으로 또 여기에 터럭만큼 작은 것이라도 더할 수 없다. 다만 무릇 사람들의 부류는 기품(氣稟)과 물욕(物慾)에 의해서 어두워지게 되었기 때문에 항상 공경할 수 없고 그쳐야 할 곳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오직 성인의 마음에만 표리(表裏)가 통하듯이 되고 한 터럭의 막힘도 없게 되기 때문에 광명(光明)이 계속 이어지고 스스로 공경하지 않음이 없게 되어 그치는 바에 지극한 선이 아님이 없게 되니 그쳐야 할 곳을 알 필요도 없이 이후에 [저절로] 그치는 바를 얻게 된다. 그러므로 이 시를 인용하여 그쳐야 할 바의 실질을 역력히 베풀어 천하의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법칙을 취할 수 있게 하였다. 배우는 자들은 여기에서 진실로 그침을 용납할 수 없는 본심(本心)에서 드러난 것을 보아 계속 이어나가 광명(光明)을 연속해서 밝혀내고 작은 간단(間斷)이라도 없게 한다면 공경하게 그치는 성공(功)이 또한 문왕과 같게 될 것이다. 《시경》에서 이른바 ‘하늘의 이치란 소리도 냄새도 없지만 문왕을 본받으면 모든 나라에서 믿음을 얻을 것이다.’고 한 게 바로 이러한 뜻이다. &amp;lt;br/&amp;gt;&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學者必先知所止, 而後方得所止; 聖人安於所止, 則不待先知而後得也.&amp;quot;&lt;br /&gt;
&lt;br /&gt;
故&amp;lt;傳&amp;gt;引此詩而厯陳所止之實, 使天下後世得以取法焉. 學者於此誠有以見其發於本心之不容已者而緝熈之, 使其連續光明, 無少間斷, 則其敬止之功, 是亦文王而已矣. &amp;lt;詩&amp;gt;所謂'上天之載, 無聲無臭', 儀刑文王, 萬邦作孚',&amp;lt;ref&amp;gt;&amp;lt;시경&amp;gt; &amp;lt;대아&amp;gt; &amp;lt;문왕&amp;gt; 上天之載、無聲無臭。儀刑文王、萬邦作孚。&amp;lt;/ref&amp;gt; 正此意也.&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子之說&amp;lt;詩&amp;gt;, 既以敬止之止爲語助之辭,&amp;lt;ref&amp;gt;&amp;lt;시집전&amp;gt; &amp;lt;대아&amp;gt; &amp;lt;문왕&amp;gt; 止, 語辭.&amp;lt;/ref&amp;gt; 而於此書又以爲所止之義, 何也?&amp;quot; &amp;lt;br /&amp;gt;&lt;br /&gt;
문: 선생님이 시(詩)를 설명하면서 ‘敬止’의 ‘止’를 어조사로 삼았는데 이 글에서 또 머물러야 하는 바라는 뜻으로 새긴 것은 어째서입니까? &amp;lt;br /&amp;gt;&lt;br /&gt;
曰: &amp;quot;古人引&amp;lt;詩&amp;gt;斷&amp;lt;sub&amp;gt;音短&amp;lt;/sub&amp;gt;章, 或姑借其辭以明已意, 未必皆取本文之義也. &amp;lt;br /&amp;gt;&lt;br /&gt;
답: 옛 사람들은 시를 인용하면서 장을 나누었는데 혹자가 잠깐 이 글을 빌려서 자신의 뜻을 밝혔으니 반드시 모두 본문의 뜻을 취할 필요는 없다. &amp;lt;br /&amp;gt;&lt;br /&gt;
&lt;br /&gt;
曰: &amp;quot;五者之目, 詞約而義該矣. 子之說乃復&amp;lt;sub&amp;gt;扶又反&amp;lt;/sub&amp;gt;有所謂'究其精微之藴而推類以通之'者,&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學者於此，究其精微之蘊，而又推類以盡其餘，則於天下之事，皆有以知其所止而無疑矣。&amp;lt;/ref&amp;gt; 何其言之衍而不切耶?&amp;quot; &amp;lt;br /&amp;gt;&lt;br /&gt;
문: 다섯 가지 조목은 문장은 생략하되 뜻을 구비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설명하시면서 다시 이른바 ‘정미한 게 쌓여있는 것을 궁구하고 유추하여 통달해야 한다.’고 하신 게 있는데 어째서 그 말이 장황하고(衍) 절실하지 않은 것입니까?  &amp;lt;br /&amp;gt;&lt;br /&gt;
曰: &amp;quot;舉其徳之要而總名之, 則一言足矣&amp;lt;sub&amp;gt;一言謂一字, 如仁字、敬字之類.&amp;lt;/sub&amp;gt;; 論其所以爲是一言者, 則其始終本末, 豈一言之所能盡哉? 得其名而不得其所以名, 則仁或流於姑息, 敬或墮於阿諛, 孝或陷父, 而慈或敗子, 且其爲信亦未必不爲尾生、白公之爲也.&amp;quot; &amp;lt;br /&amp;gt;&lt;br /&gt;
답: 덕의 요체를 들어서 총체적으로 이름 한다면 하나의 말로도 충분할 것이지만, 이 한마디 말이 되는 까닭을 논하자면 그 시종(始終)과 본말(本末)을 어찌 한마디 말로 다할 수 있는 것이겠느냐! 이름만 얻고 이름이 되는 까닭을 얻지 못한다면 인(仁)이 혹 사그라드는 지경에 빠지게 될 것이고, 경(敬)이 혹 아첨하는 지경으로 떨어질 것이며, 효(孝)가 혹 부모를 모함에 빠뜨릴 것이며, 자애로움이 혹 자식을 패망하게 만들 것이며, 또 신뢰를 행함 역시 반드시 미생(尾生)과 백공(白公)이 행한 것이 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또한 하물며 전문에서 말한 것이 다만 사물이 각각 그쳐야 할 범례(凡例)를 보여주고 있고, 대륜(大倫)의 조목에 대하여 또한 오히려 두 가지(부부와 장유)를 빠뜨리고 있으니 진실로 유추하여 통달하지 못한다면 또한 어떻게 천하의 이치를 다하겠는가! &amp;lt;br /&amp;gt;&lt;br /&gt;
:&amp;lt;莊子&amp;gt;尾生與女子期於梁下, 女子不來, 水至不去, 抱梁柱而死梁橋也.&amp;lt;ref&amp;gt;&amp;lt;장자&amp;gt; 잡편 &amp;lt;도척&amp;gt; 尾生與女子期於梁下，女子不來，水至不去，抱梁柱而死。&amp;lt;/ref&amp;gt;&lt;br /&gt;
:&amp;lt;장자&amp;gt;에  따르면, 미생이 여인과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여인이 오지 않았다. 미생은 물이 차올라도 떠나지 않고 다리 기둥을 껴안고 있다가 죽었다.&lt;br /&gt;
:○&amp;lt;左傳&amp;gt;哀公十六年, 鄭人殺子木&amp;lt;sub&amp;gt;楚平王太子建也, 因過讒出奔而至鄭.&amp;lt;/sub&amp;gt;, 其子曰勝在吳. 子西欲召之&amp;lt;sub&amp;gt;楚令尹子西&amp;lt;/sub&amp;gt;, 曰: &amp;quot;吾聞勝也, 信而勇, 不爲不利.&amp;quot; 葉公曰:&amp;lt;sub&amp;gt;葉音攝&amp;lt;/sub&amp;gt; :&amp;quot;周仁之謂信, 率義之謂勇. 吾聞勝也好復言&amp;lt;sub&amp;gt;言之所許, 必欲復行, 不顧道理.&amp;lt;/sub&amp;gt;而求死士, 殆有私乎! 復言, 非信也; 期死, 非勇也, 子必悔之.&amp;quot; 弗從, 使處吳竟&amp;lt;sub&amp;gt;音境&amp;lt;/sub&amp;gt;爲白公&amp;lt;sub&amp;gt;白, 楚邑也. 邑宰僣稱公&amp;lt;/sub&amp;gt;. 請伐鄭, 子西許之. 未起師, 晉人伐鄭, 楚救之, 勝怒曰: &amp;quot;鄭人在此, 讎不逺矣!&amp;quot; 勝自厲劒, 子期之子平見之曰: &amp;quot;王孫何自厲也?&amp;quot; 曰: &amp;quot;勝以直聞, 不告女&amp;lt;sub&amp;gt;音汝&amp;lt;/sub&amp;gt;, 庸為直乎? 將以殺爾父.&amp;quot; 平以告子西, 子西不悛. 吳人伐愼, 白公敗之. 請以戰備獻, 許之, 遂作亂, 殺子西子期于朝.&lt;br /&gt;
:&amp;lt;좌전&amp;gt; 애공 16년에, 정나라 사람이 子木(초 평왕의 태자 建이니, 참소를 당해 달아났다가 정나라에 왔다.)을 죽였는데, 그의 아들 勝이 오나라에 있었다. 子西(초나라 영윤 자서이다.)가 그를 부르고자 했다: &amp;quot;내가 듣기에 승은 신의와 용기가 있다고 하니, 나에게 불리한 일은 되지 않을 것이다.&amp;quot; 섭공이 말했다: &amp;quot;인한 자를 친애하는 것을 신의라 하고, 의로운 자를 이끄는 것을 용기라고 합니다. 제가 듣기에, 승은 뱉은 말을 애써 이행하려 하고(말로 허락한 것을 반드시 이행하고자 하여 도리를 살피지 않는다.) 죽음을 무릅쓰는 용사가 되고자 하니, 아마도 개인적인 원한 때문일 것입니다! 뱉은 말을 애써 이행하려고 하는 것은 신의가 아니며, 죽기를 바라는 것은 용기가 아니니, 그대는 필시 후회할 것입니다.&amp;quot; 자서는 이를 따르지 않고 승으로 하여금 오나라와의 국경에 있게 하고 白公으로 삼았다.(白은 초나라 고을이다. 읍재를 公으로 참칭했다.) 승이 정나라를 치자고 자서에게 청했는데, 자서가 허락했다. 아직 군대를 일으키기도 전에 진나라가 정나라를 공격했는데, 초나라가 정나라를 구원하니 승이 분노했다: &amp;quot;정나라 놈이 여기에 있었구나! 원수가 멀리 있지 않았구나!&amp;quot; 승이 스스로 칼을 갈고 있는데, 子期의 아들 平이 이를 보고 물었다: &amp;quot;왕손께서는 어째서 직접 칼을 갈고 계십니까?&amp;quot; 승이 대답했다: &amp;quot;나는 대쪽같기로 유명하니, 너에게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면 어찌 대쪽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장자 네 아비(자서와 자기는 친형제이므로 함께 죽이려고 한 것이다.)를 죽이려고 한다.&amp;quot; 평이 이를 자서에게 고했는데, 자서는 깨닫지 못했다. 오나라가 초나라의 愼 땅을 공격했는데, 백공이 패퇴시켰다. 이에 백공이 전리품을 바치기를 청하니, 자서가 허락했는데, 백공이 마침내 난을 일으켜 조정에서 자서와 자기를 살해했다.&lt;br /&gt;
&lt;br /&gt;
又况&amp;lt;傳&amp;gt;之所陳, 姑以見&amp;lt;sub&amp;gt;形甸反&amp;lt;/sub&amp;gt;物各有止之凡例, 其於大倫之目, 猶且闕其二焉, 苟不推類以通之, 則亦何以盡天下之理哉?&amp;lt;br/&amp;gt;&lt;br /&gt;
:節齊蔡氏曰: &amp;quot;所謂'得其名而不得其所以名', 若細推之, 如為人君止於仁, 固同一仁也, 然仁亦何止一端? 生之育之, 固仁也; 刑之威之, 亦仁也. 若執著其仁之一端, 不能隨處止其仁之所止, 安得謂止於仁之至善? 為人臣止於敬, 固同一敬也, 然敬亦何止一端? 鞠躬盡瘁, 固敬也; 陳善閉邪, 亦敬也. 若執著其敬之一端, 不能隨處止其敬之所止, 安得謂止於敬之至善? 為人子止於孝, 固同一孝也, 然孝亦何止一端? 先意承志, 固孝也; 幾諫不違亦孝也. 若執著其孝之一端, 不能隨處止其孝之所止, 安得謂止於孝之至善? 以至為人父止於慈, 與國人交止於信, 皆當如此. 而又推類以及其餘, 則凡天下之事, 無大無小, 雖千條萬緒, 皆有以知其所當止, 而無不止於至善矣.&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復&amp;lt;sub&amp;gt;扶又反&amp;lt;/sub&amp;gt;引&amp;lt;淇澳&amp;gt;之詩, 何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문: 다시 ‘기욱(淇奧)’의 시를 인용한 것은 어째서인가요? &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上言止於至善之理, 備矣. 然其所以求之之方, 與其得之之驗, 則未之及. 故又引此詩以發明之也. 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如切如磋', 言其所以講於學者已精而益求其精也; '如琢如磨', 言其所以脩於身者已宻而益求其宻也. 此其所以擇善固執&amp;lt;ref&amp;gt;&amp;lt;중용장구&amp;gt; 20장. 誠者，天之道也；誠之者，人之道也。誠者不勉而中，不思而得，從容中道，聖人也。誠之者，擇善而固執之者也。&amp;lt;/ref&amp;gt;&amp;lt;sub&amp;gt;擇善即講學之事; 固執即脩身之事.&amp;lt;/sub&amp;gt;, 日就月將, 而得止於至善之由也.&lt;br /&gt;
:朱子曰: &amp;quot;'如切如蹉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脩也', 既學而猶慮其未至, 則復講習討論以求之, 猶治骨角者既切而復磋之. 切是切得一箇璞在這裏, 似亦可矣. 又磋之使至於滑澤, 這是治骨角者之至善也. 既脩而又慮其未至, 則又省察克治以終之, 猶治玉石者既琢而復磨之. 琢是琢得一箇璞在這裏, 似亦得矣. 又磨之使至於精細, 這是治玉石者之至善也. 取此以喻君子之止於至善. 既格物以求知所止矣, 又日用力以求得其所止焉.&amp;quot; &amp;lt;br/&amp;gt;&lt;br /&gt;
답: 위의 말에 지어지선(止於至善)의 이치가 구비되어 있으나 이것을 구하는 방도와 이것을 얻은 효험에 대해서는 미치지 못하였기 때문에 다시 이 시를 인용하여 밝히셨다. 무릇 ‘여절여차(如切如磋)’는 학문에 강구해야 하는 것이 이미 정밀하여도 또한 그 정밀한 것을 구해야 함을 말한 것이고, ‘여탁여마(如琢如磨)’는 몸을 수양하는 것이 이미 긴밀하더라도 그 긴말함을 더욱 구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이는 선을 택하고 진실로 붙잡아 일취월장(日就月將) 해서 지극한 선에 머무를 수 있는 연유인 것이다. 준열(恂慄)이란 마음 안에 보존되어 있는 엄경(嚴敬)이고, 위의(威儀)란 밖으로 드러나는 광휘(輝光)이다. 이것이 얼굴에 윤택이 나고 몸에 넘쳐나 사체(四體)에 베풀어져 지극한 선에 머무르는 효험인 것이다. 덕을 성대하게 하고 선을 지극하게 하여 백성들이 잊을 수 없는 것은 대개 동일한 사람들의 마음이지만 성인은 이미 이것을 먼저 얻어서 충만하고 성대함이 또한 이와 같으니 그래서 백성들은 이를 우러러보고 읻을 수 없는 것이다. 성덕(盛德)은 몸이 얻은 바를 가지고서 말한 것이고, 지선(至善)은 이치가 극대화 된 것을 가지고서 말한 것이고, 절차탁마(切磋琢磨)는 이에 그치기를 구할 뿐이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陳氏曰: &amp;quot;切是窮究事物之理, 逐件分析, 有倫有序; 磋是講究到純熟處, 道理瑩徹, 所以如切而又磋. 琢是克去物欲之私, 使無瑕纇. 磨是磨礲至那十分純粹處, 所以如琢而又磨.&amp;quot;&lt;br /&gt;
:○學是知止於至善所在; 自脩是止於至善所在.&lt;br /&gt;
:○西山眞氏曰: &amp;quot;'如切如磋, 道學也', 主知而言; '如琢如磨, 自脩也', 主行而言, 言致知力行當並進也. 知到十分精處, 而行處有一分未宻, 亦未得為至善. 須是知極其至, 行亦極其至, 方謂之至善.&amp;quot;&lt;br /&gt;
&lt;br /&gt;
恂慄者, 嚴敬之存乎中也; 威儀者, 輝光之著乎外也. 此其所以睟&amp;lt;sub&amp;gt;雖萃反&amp;lt;/sub&amp;gt;面盎背, 施於四體&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진심상&amp;gt; 21. 君子所性，仁義禮智根於心。其生色也，睟然見於面，盎於背，施於四體，四體不言而喻。&amp;lt;/ref&amp;gt;而爲止於至善之驗也. '盛徳至善, 民不能忘', 蓋人心之所同然, 聖人既先得之而其充盛宣著又如此. 是以民皆仰之而不能忘也. '盛徳', 以身之所得而言也; '至善', 以理之所極而言也. '切磋琢磨', 求其止於是而巳矣.&amp;quot;&amp;lt;br/&amp;gt;&lt;br /&gt;
:問: &amp;quot;'切磋琢磨'是學者事, 而'盛徳至善'乃指聖人言之, 何也?&amp;quot; 朱子曰: &amp;quot;後面說得來大, 非聖人不能, 此是連上文'文王於緝熈敬止'說. 然聖人也不是挿手掉臂, 做到那處, 也須學始得, 如孔子所謂'徳之不脩,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술이&amp;gt; 3. 子曰：「德之不脩，學之不講，聞義不能徙，不善不能改，是吾憂也。」&amp;lt;/ref&amp;gt; 此有甚緊要. 聖人却憂者, 何故? 惟其憂之, 所以為聖人. 所謂生而知之者, 便只是知得此而巳. 故曰: '惟聖罔念作狂, 惟狂克念作聖.'&amp;lt;ref&amp;gt;&amp;lt;상서&amp;gt; &amp;lt;주서&amp;gt; &amp;lt;다방&amp;gt; 惟聖罔念作狂，惟狂克念作聖。&amp;lt;/ref&amp;gt;&amp;quot;&lt;br /&gt;
:○'盛徳至善', 言聖人事蓋渾然一理, 不可得而分者. 但以人言則曰徳; 以理言則曰善, 又不爲無辨矣.&lt;br /&gt;
&lt;br /&gt;
曰: &amp;quot;'切磋琢磨', 何以爲學問自脩之别&amp;lt;sub&amp;gt;後列反&amp;lt;/sub&amp;gt;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骨角脉理可尋, 而切磋之功易&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所謂'始條理'&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만장하&amp;gt; 1. 孔子之謂集大成。集大成也者，金聲而玉振之也。金聲也者，始條理也；玉振之也者，終條理也。始條理者，智之事也；終條理者，聖之事也。&amp;lt;/ref&amp;gt;之事也; 玉石渾&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全堅確&amp;lt;sub&amp;gt;克角反&amp;lt;/sub&amp;gt;, 而琢磨之功難, 所謂'終條理'之事也.&amp;quot;&lt;br /&gt;
:問: &amp;quot;'切磋是始條理, 琢磨是終條理', '終條理'較宻否?&amp;quot; 朱子曰: &amp;quot;始終條理都要宻. 講貫而益講貫, 脩飭而益脩飭.&amp;quot;&lt;br /&gt;
:○問: &amp;quot;琢磨後更有'瑟僴赫喧', 何故為'終條理'之事?&amp;quot; 曰: &amp;quot;那不是做工夫處, 是成就後氣象自如此.&amp;quot;&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此與&amp;lt;論語&amp;gt;引&amp;lt;詩&amp;gt;之意異. 此以比講學之先後難易, 又證之以&amp;lt;孟子&amp;gt;之始終條理, 以見二者之當兼盡而不可偏廢也.&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引&amp;lt;烈文&amp;gt;之詩而言'前王之沒世不忘', 何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賢其賢'者, 聞而知之, 仰其徳業之盛也; '親其親'者, 子孫保之, 思其覆&amp;lt;sub&amp;gt;敷救反&amp;lt;/sub&amp;gt;育之恩也.&lt;br /&gt;
:朱子曰: &amp;quot;如孔子仰文武之徳, 是'賢其賢'; 成康以後, 思其恩而保其基緒, 便是'親其親'.&lt;br /&gt;
&lt;br /&gt;
'樂其樂'者, 舍哺&amp;lt;sub&amp;gt;蒲故反&amp;lt;/sub&amp;gt;鼓腹而安其樂也; '利其利'者, 耕田鑿井而享其利也, 此皆先王盛徳至善之餘澤. 故雖已沒世而人猶思之, 愈久而不能忘也. 上文之引&amp;lt;淇澳&amp;gt;, 以明明徳之得所止言之, 而發新民之端也; 此引&amp;lt;烈文&amp;gt;, 以新民之得所止言之, 而著明明徳之效也.&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amp;lt;淇澳&amp;gt;言明明徳而可以新民, 以見明明徳之極功; &amp;lt;烈文&amp;gt;因言非獨一時民不能忘, 而後世之民亦不能忘, 以見新民之極功.&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lt;淇澳&amp;gt;&amp;lt;烈文&amp;gt;二節, 鄭本元在誠意章後, 而程子置之卒章之中, 子獨何以知其不然而屬&amp;lt;sub&amp;gt;音蜀下同&amp;lt;/sub&amp;gt;之此也?&amp;quot;&lt;br /&gt;
曰: &amp;quot;二家所繫, 文意不屬&amp;lt;sub&amp;gt;音燭&amp;lt;/sub&amp;gt;, 故有不得而從者. 且以所謂'道盛徳至善, 沒世不忘'者推之, 則知其當屬乎此也.&amp;quot;&lt;br /&gt;
&lt;br /&gt;
===傳四章===&lt;br /&gt;
====『혹문』 전4장====&lt;br /&gt;
&lt;br /&gt;
&lt;br /&gt;
===傳五章===&lt;br /&gt;
====『혹문』 전5장====&lt;br /&gt;
&lt;br /&gt;
&lt;br /&gt;
===傳六章===&lt;br /&gt;
&lt;br /&gt;
====『혹문』 전6장====&lt;br /&gt;
&lt;br /&gt;
&lt;br /&gt;
===傳七章===&lt;br /&gt;
&lt;br /&gt;
====『혹문』 전7장====&lt;br /&gt;
&lt;br /&gt;
&lt;br /&gt;
===傳八章===&lt;br /&gt;
&lt;br /&gt;
====『혹문』 전8장====&lt;br /&gt;
&lt;br /&gt;
&lt;br /&gt;
===傳九章===&lt;br /&gt;
&lt;br /&gt;
====『혹문』 전9장====&lt;br /&gt;
&lt;br /&gt;
&lt;br /&gt;
===傳十章===&lt;br /&gt;
&lt;br /&gt;
====『혹문』 전10장====&lt;br /&gt;
&lt;br /&gt;
=대학 판본 비교=&lt;br /&gt;
송대 유학자들이 『禮記』 「大學」을 높이 평가했지만 모두 온전한 글이라고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大學」이 순하게 읽히지 않는 것은 전래되는 과정에서 오류(착간이나 오탈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아마도) 내용을 기준으로 「大學」의 순서를 바로잡거나 글자를 수정하거나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기도 했다. (자세한 수정 사항은 차치하고) 『禮記』 「大學」의 구절을 순서에 따라 ①~⑯으로 구분했을 때, &lt;br /&gt;
*「明道先生改正大學」 : 1-6-7-8, 2-3-4-10-11-12-13, 5-9-14-15-16&lt;br /&gt;
*「伊川先生改正大學」 : 1-2-9-3, 6-7-8, 4-10-11-12-13, 5-15-14-16 &lt;br /&gt;
*『大學章句』 : 1-2-6-7-8-5-9-3, 4-10-11-12-13, 14-15-16&lt;br /&gt;
의 순서로 수정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표와 같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 cellpadding=&amp;quot;5&amp;quot; cellspacing=&amp;quot;0&amp;quot; border=&amp;quot;1&amp;quot; width=&amp;quot;100%&amp;quo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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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ign=&amp;quot;center&amp;quot; | '''『禮記』 「大學」'''&lt;br /&gt;
| align=&amp;quot;center&amp;quot; | '''「明道先生改正大學」'''&lt;br /&gt;
| align=&amp;quot;center&amp;quot; | '''「伊川先生改正大學」'''&lt;br /&gt;
| align=&amp;quot;center&amp;quot; |  '''『大學章句』'''&lt;br /&gt;
|-&lt;br /&gt;
|①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lt;br /&gt;
|①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lt;br /&gt;
|①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amp;lt;當作新&amp;gt;民, 在止於至善. 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lt;br /&gt;
|①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lt;br /&gt;
|-&lt;br /&gt;
|②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物格而後知至, 知至而後意誠, 意誠而後心正, 心正而後身修, 身修而後家齊, 家齊而後國治, 國治而後天下平. 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為本. 其本亂而末治者否矣, 其所厚者薄, 而其所薄者厚, 未之有也! &lt;br /&gt;
|⑥《康誥》曰: 「克明德.」 《大甲》曰: 「顧諟天之明命.」 《帝典》曰: 「克明峻德.」 皆自明也.&lt;br /&gt;
|②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物格而後知至, 知至而後意誠, 意誠而後心正, 心正而後身修, 身修而後家齊, 家齊而後國治, 國治而後天下平. 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為本. 其本亂而末治者否矣, 其所厚者薄, 而其所薄者厚, 未之有也! &lt;br /&gt;
|②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物格而後知至, 知至而後意誠, 意誠而後心正, 心正而後身修, 身修而後家齊, 家齊而後國治, 國治而後天下平. 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為本. 其本亂而末治者否矣, 其所厚者薄, 而其所薄者厚, 未之有也! &lt;br /&gt;
|-&lt;br /&gt;
|③此謂知本, 此謂知之至也. &lt;br /&gt;
|⑦湯之盤銘曰: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康誥》曰: 「作新民.」 《詩》曰: 「周雖舊邦, 其命維新.」 是故君子無所不用其極.&lt;br /&gt;
|⑨子曰: 「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無情者不得盡其辭, 大畏民志. 此謂知本. &lt;br /&gt;
|⑥《康誥》曰: 「克明德.」  《大甲》曰: 「顧諟天之明命.」 《帝典》曰: 「克明峻德.」 皆自明也.&lt;br /&gt;
|-&lt;br /&gt;
|④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謙, 故君子必慎其獨也! 小人閑居為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後厭然, 掩其不善, 而著其善. 人之視己, 如見其肺肝然, 則何益矣! 此謂誠於中, 形於外, 故君子必慎其獨也. 曾子曰: 「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富潤屋, 德潤身, 心廣體胖, 故君子必誠其意. &lt;br /&gt;
|⑧《詩》云: 「邦畿千里, 惟民所止.」 《詩》云: 「緡蠻黃鳥, 止于丘隅.」 子曰: 「於止, 知其所止, 可以人而不如鳥乎？」 《詩》云: 「穆穆文王, 於緝熙敬止!」 為人君, 止於仁; 為人臣, 止於敬; 為人子, 止於孝; 為人父, 止於慈; 與國人交, 止於信. &lt;br /&gt;
|③此謂知本&amp;lt;四字衍&amp;gt;, 此謂知之至也. &lt;br /&gt;
|⑦湯之盤銘曰: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康誥》曰: 「作新民.」 《詩》曰: 「周雖舊邦, 其命維新.」 是故君子無所不用其極.&lt;br /&gt;
|-&lt;br /&gt;
|⑤《詩》云: 「瞻彼淇澳, 菉竹猗猗. 有斐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瑟兮僩兮, 赫兮喧兮. 有斐君子, 終不可諠兮!」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 「瑟兮僩兮」者, 恂慄也; 「赫兮喧兮」者, 威儀也; 「有斐君子, 終不可諠兮」者, 道盛德至善, 民之不能忘也. 《詩》云: 「於戲前王不忘!」 君子賢其賢而親其親, 小人樂其樂而利其利, 此以沒世不忘也. &lt;br /&gt;
|②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物格而後知至, 知至而後意誠, 意誠而後心正, 心正而後身修, 身修而後家齊, 家齊而後國治, 國治而後天下平. 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為本. 其本亂而末治者否矣, 其所厚者薄, 而其所薄者厚, 未之有也! &lt;br /&gt;
|⑥《康誥》曰: 「克明德.」 《大甲》曰: 「顧諟天之明命.」 《帝典》曰: 「克明峻德.」 皆自明也.&lt;br /&gt;
|⑧《詩》云: 「邦畿千里, 惟民所止.」 《詩》云: 「緡蠻黃鳥, 止于丘隅.」 子曰: 「於止, 知其所止, 可以人而不如鳥乎？」 《詩》云: 「穆穆文王, 於緝熙敬止!」 為人君, 止於仁; 為人臣, 止於敬; 為人子, 止於孝; 為人父, 止於慈; 與國人交, 止於信.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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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康誥》曰: 「克明德.」 《太甲》曰: 「顧諟天之明命.」 《帝典》曰: 「克明峻德.」 皆自明也. &lt;br /&gt;
|③此謂知本, 此謂知之至也. &lt;br /&gt;
|⑦湯之盤銘曰: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康誥》曰: 「作新民.」 《詩》曰: 「周雖舊邦, 其命維新.」 是故君子無所不用其極.&lt;br /&gt;
|⑤《詩》云: 「瞻彼淇澳, 菉竹猗猗. 有斐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瑟兮僩兮, 赫兮喧兮. 有斐君子, 終不可諠兮!」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 「瑟兮僩兮」者, 恂慄也; 「赫兮喧兮」者, 威儀也; 「有斐君子, 終不可諠兮」者, 道盛德至善, 民之不能忘也. 《詩》云: 「於戲前王不忘!」 君子賢其賢而親其親, 小人樂其樂而利其利, 此以沒世不忘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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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湯之盤銘曰: 「茍日新, 日日新, 又日新.」 《康誥》曰: 「作新民.」 《詩》曰: 「周雖舊邦, 其命惟新.」 是故君子無所不用其極. &lt;br /&gt;
|④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謙, 故君子必慎其獨也! 小人閑居為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後厭然, 掩其不善, 而著其善. 人之視己, 如見其肺肝然, 則何益矣! 此謂誠於中, 形於外, 故君子必慎其獨也. 曾子曰: 「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富潤屋, 德潤身, 心廣體胖, 故君子必誠其意. &lt;br /&gt;
|⑧《詩》云: 「邦畿千里, 惟民所止.」 《詩》云: 「緡蠻黃鳥, 止于丘隅.」 子曰: 「於止, 知其所止, 可以人而不如鳥乎？」 《詩》云: 「穆穆文王, 於緝熙敬止!」 為人君, 止於仁; 為人臣, 止於敬; 為人子, 止於孝; 為人父, 止於慈; 與國人交, 止於信. &lt;br /&gt;
|⑨子曰: 「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無情者不得盡其辭, 大畏民志. 此謂知本. .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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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詩》云: 「邦畿千里, 惟民所止.」 《詩》云: 「緡蠻黃鳥, 止于丘隅.」 子曰: 「於止, 知其所止, 可以人而不如鳥乎？」 《詩》云: 「穆穆文王, 於緝熙敬止!」 為人君, 止於仁; 為人臣, 止於敬; 為人子, 止於孝; 為人父, 止於慈; 與國人交, 止於信. &lt;br /&gt;
|⑩所謂修身在正其心者: 身有所忿懥, 則不得其正; 有所恐懼, 則不得其正; 有所好樂, 則不得其正; 有所憂患, 則不得其正.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此謂修身在正其心. &lt;br /&gt;
|④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謙, 故君子必愼其獨也. 小人閒居爲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后厭然揜其不善, 而著其善. 人之視已, 如見其肺肝, 然則何益矣?  此謂誠於中, 形於外, 故君子必愼其獨也. 曾子曰: 「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富潤屋, 德潤身, 心廣體胖, 故君子必誠其意.&lt;br /&gt;
|③此謂知本&amp;lt;四字衍&amp;gt;, 此謂知之至也. (閒嘗竊取程子之意以補之曰: 「所謂致知在格物者, 言欲致吾之知, 在即物而窮其理也. 蓋人心之靈莫不有知, 而天下之物莫不有理, 惟於理有未窮, 故其知有不盡也. 是以大學始教, 必使學者即凡天下之物, 莫不因其已知之理而益窮之, 以求至乎其極. 至於用力之久, 而一旦豁然貫通焉, 則眾物之表裏精粗無不到, 而吾心之全體大用無不明矣. 此謂物格, 此謂知之至也.」)&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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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子曰: 「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無情者不得盡其辭, 大畏民志. 此謂知本. &lt;br /&gt;
|⑪所謂齊其家在修其身者: 人之其所親愛而辟焉, 之其所賤惡而辟焉, 之其所畏敬而辟焉, 之其所哀矜而辟焉, 之其所敖惰而辟焉. 故好而知其惡, 惡而知其美者, 天下鮮矣! 故諺有之曰: 「人莫知其子之惡, 莫知其苗之碩.」 此謂身不修不可以齊其家. &lt;br /&gt;
|⑩所謂修身在正其心者: 身&amp;lt;當作心&amp;gt;有所忿懥, 則不得其正; 有所恐懼, 則不得其正; 有所好樂, 則不得其正; 有所憂患, 則不得其正.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此謂修身在正其心. &lt;br /&gt;
|④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謙, 故君子必愼其獨也. 小人閒居爲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后厭然揜其不善, 而著其善. 人之視已, 如見其肺肝, 然則何益矣?  此謂誠於中, 形於外, 故君子必愼其獨也. 曾子曰: 「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富潤屋, 德潤身, 心廣體胖, 故君子必誠其意.&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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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所謂修身在正其心者: 身有所忿懥, 則不得其正; 有所恐懼, 則不得其正; 有所好樂, 則不得其正; 有所憂患, 則不得其正.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此謂修身在正其心. &lt;br /&gt;
|⑫所謂治國必先齊其家者, 其家不可教而能教人者, 無之. 故君子不出家而成教於國: 孝者, 所以事君也; 弟者, 所以事長也; 慈者, 所以使眾也. 《康誥》曰: 「如保赤子」, 心誠求之, 雖不中不遠矣. 未有學養子而後嫁者也! 一家仁, 一國興仁; 一家讓, 一國興讓; 一人貪戾, 一國作亂. 其機如此. 此謂一言僨事, 一人定國. 堯、舜率天下以仁, 而民從之; 桀、紂率天下以暴, 而民從之. 其所令反其所好, 而民不從. 是故君子有諸己而後求諸人, 無諸己而後非諸人. 所藏乎身不恕, 而能喻諸人者, 未之有也. 故治國在齊其家. 《詩》云: 「桃之夭夭, 其葉蓁蓁; 之子于歸, 宜其家人.」 宜其家人, 而後可以教國人. 《詩》云: 「宜兄宜弟.」 宜兄宜弟, 而後可以教國人. 《詩》云: 「其儀不忒, 正是四國.」 其為父子兄弟足法, 而後民法之也. 此謂治國在齊其家. &lt;br /&gt;
|⑪所謂齊其&amp;lt;其字衍&amp;gt;家在脩其身者: 人之其所親愛而辟焉, 之其所賤惡而辟焉, 之其所畏敬而辟焉, 之其所哀矜而辟焉, 之其所敖惰而辟焉; 故好而知其惡, 惡而知其美者, 天下鮮矣; . 故諺有之曰: 「人莫知其子之惡, 莫知其苗之碩.」 此謂身不脩不可以齊其家. &lt;br /&gt;
|⑩所謂修身在正其心者: 身有所忿懥, 則不得其正; 有所恐懼, 則不得其正; 有所好樂, 則不得其正; 有所憂患, 則不得其正.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此謂修身在正其心.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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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⑪所謂齊其家在修其身者: 人之其所親愛而辟焉, 之其所賤惡而辟焉, 之其所畏敬而辟焉, 之其所哀矜而辟焉, 之其所敖惰而辟焉. 故好而知其惡, 惡而知其美者, 天下鮮矣! 故諺有之曰: 「人莫知其子之惡, 莫知其苗之碩.」 此謂身不修不可以齊其家. &lt;br /&gt;
|⑬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 上老老而民興孝, 上長長而民興弟, 上恤孤而民不倍, 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 所惡於上, 毋以使下; 所惡於下, 毋以事上; 所惡於前, 毋以先後; 所惡於後, 毋以從前; 所惡於右, 毋以交於左; 所惡於左, 毋以交於右. 此之謂絜矩之道. 《詩》云: 「樂只君子, 民之父母.」 民之所好好之, 民之所惡惡之, 此之謂民之父母. 《詩》云: 「節彼南山, 維石巖巖. 赫赫師尹, 民具爾瞻.」 有國者不可以不慎, 辟則為天下戮矣.&lt;br /&gt;
|⑫所謂治國必先齊其家者, 其家不可教而能教人者, 無之. 故君子不出家而成教於國: 孝者, 所以事君也; 弟者, 所以事長也; 慈者, 所以使眾也. 《康誥》曰: 「如保赤子」, 心誠求之, 雖不中不遠矣. 未有學養子而後嫁者也! 一家仁, 一國興仁; 一家讓, 一國興讓; 一人貪戾, 一國作亂. 其機如此. 此謂一言僨事, 一人定國. 堯、舜率天下以仁, 而民從之; 桀、紂率天下以暴, 而民從之. 其所令反其所好, 而民不從. 是故君子有諸己而後求諸人, 無諸己而後非諸人. 所藏乎身不恕, 而能喻諸人者, 未之有也. 故治國在齊其家. 《詩》云: 「桃之夭夭, 其葉蓁蓁; 之子于歸, 宜其家人.」 宜其家人, 而後可以教國人. 《詩》云: 「宜兄宜弟.」 宜兄宜弟, 而後可以教國人. 《詩》云: 「其儀不忒, 正是四國.」 其為父子兄弟足法, 而後民法之也. 此謂治國在齊其家. &lt;br /&gt;
|⑪所謂齊其家在修其身者: 人之其所親愛而辟焉, 之其所賤惡而辟焉, 之其所畏敬而辟焉, 之其所哀矜而辟焉, 之其所敖惰而辟焉. 故好而知其惡, 惡而知其美者, 天下鮮矣! 故諺有之曰: 「人莫知其子之惡, 莫知其苗之碩.」 此謂身不修不可以齊其家.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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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⑫所謂治國必先齊其家者, 其家不可教而能教人者, 無之. 故君子不出家而成教於國: 孝者, 所以事君也; 弟者, 所以事長也; 慈者, 所以使眾也. 《康誥》曰: 「如保赤子」, 心誠求之, 雖不中不遠矣. 未有學養子而後嫁者也! 一家仁, 一國興仁; 一家讓, 一國興讓; 一人貪戾, 一國作亂. 其機如此. 此謂一言僨事, 一人定國. 堯、舜率天下以仁, 而民從之; 桀、紂率天下以暴, 而民從之. 其所令反其所好, 而民不從. 是故君子有諸己而後求諸人, 無諸己而後非諸人. 所藏乎身不恕, 而能喻諸人者, 未之有也. 故治國在齊其家. 《詩》云: 「桃之夭夭, 其葉蓁蓁; 之子于歸, 宜其家人.」 宜其家人, 而後可以教國人. 《詩》云: 「宜兄宜弟.」 宜兄宜弟, 而後可以教國人. 《詩》云: 「其儀不忒, 正是四國.」 其為父子兄弟足法, 而後民法之也. 此謂治國在齊其家. &lt;br /&gt;
|⑤《詩》云: 「瞻彼淇澳, 菉竹猗猗. 有斐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瑟兮僩兮, 赫兮喧兮. 有斐君子, 終不可諠兮!」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 「瑟兮僩兮」者, 恂慄也; 「赫兮喧兮」者, 威儀也; 「有斐君子, 終不可諠兮」者, 道盛德至善, 民之不能忘也. 《詩》云: 「於戲前王不忘!」 君子賢其賢而親其親, 小人樂其樂而利其利, 此以沒世不忘也. &lt;br /&gt;
|⑬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 上老老而民興孝, 上長長而民興弟, 上恤孤而民不倍, 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 所惡於上, 毋以使下; 所惡於下, 毋以事上; 所惡於前, 毋以先後; 所惡於後, 毋以從前; 所惡於右, 毋以交於左; 所惡於左, 毋以交於右. 此之謂絜矩之道. 《詩》云: 「樂只君子, 民之父母.」 民之所好好之, 民之所惡惡之, 此之謂民之父母. 《詩》云: 「節彼南山, 維石巖巖. 赫赫師尹, 民具爾瞻.」 有國者不可以不慎, 辟則為天下戮矣.&lt;br /&gt;
|⑫所謂治國必先齊其家者, 其家不可教而能教人者, 無之. 故君子不出家而成教於國: 孝者, 所以事君也; 弟者, 所以事長也; 慈者, 所以使眾也. 《康誥》曰: 「如保赤子」, 心誠求之, 雖不中不遠矣. 未有學養子而後嫁者也! 一家仁, 一國興仁; 一家讓, 一國興讓; 一人貪戾, 一國作亂. 其機如此. 此謂一言僨事, 一人定國. 堯、舜率天下以仁, 而民從之; 桀、紂率天下以暴, 而民從之. 其所令反其所好, 而民不從. 是故君子有諸己而後求諸人, 無諸己而後非諸人. 所藏乎身不恕, 而能喻諸人者, 未之有也. 故治國在齊其家. 《詩》云: 「桃之夭夭, 其葉蓁蓁; 之子于歸, 宜其家人.」 宜其家人, 而後可以教國人. 《詩》云: 「宜兄宜弟.」 宜兄宜弟, 而後可以教國人. 《詩》云: 「其儀不忒, 正是四國.」 其為父子兄弟足法, 而後民法之也. 此謂治國在齊其家.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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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⑬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 上老老而民興孝, 上長長而民興弟, 上恤孤而民不倍, 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 所惡於上, 毋以使下; 所惡於下, 毋以事上; 所惡於前, 毋以先後; 所惡於後, 毋以從前; 所惡於右, 毋以交於左; 所惡於左, 毋以交於右. 此之謂絜矩之道. 《詩》云: 「樂只君子, 民之父母.」 民之所好好之, 民之所惡惡之, 此之謂民之父母. 《詩》云: 「節彼南山, 維石巖巖. 赫赫師尹, 民具爾瞻.」 有國者不可以不慎, 辟則為天下戮矣.&lt;br /&gt;
|⑨子曰: 「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無情者不得盡其辭, 大畏民志. 此謂知本. &lt;br /&gt;
|⑤《詩》云: 「瞻彼淇澳, 菉竹猗猗. 有斐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瑟兮僩兮, 赫兮喧兮. 有斐君子, 終不可諠兮!」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 「瑟兮僩兮」者, 恂慄也; 「赫兮喧兮」者, 威儀也; 「有斐君子, 終不可諠兮」者, 道盛德至善, 民之不能忘也. 《詩》云: 「於戲前王不忘!」 君子賢其賢而親其親, 小人樂其樂而利其利, 此以沒世不忘也. &lt;br /&gt;
|⑬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 上老老而民興孝, 上長長而民興弟, 上恤孤而民不倍, 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 所惡於上, 毋以使下; 所惡於下, 毋以事上; 所惡於前, 毋以先後; 所惡於後, 毋以從前; 所惡於右, 毋以交於左; 所惡於左, 毋以交於右. 此之謂絜矩之道. 《詩》云: 「樂只君子, 民之父母.」 民之所好好之, 民之所惡惡之, 此之謂民之父母. 《詩》云: 「節彼南山, 維石巖巖. 赫赫師尹, 民具爾瞻.」 有國者不可以不慎, 辟則為天下戮矣.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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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⑭《詩》云: 「殷之未喪師, 克配上帝. 儀監于殷, 峻命不易.」 道得眾則得國, 失眾則失國. 是故君子先慎乎德. 有德此有人, 有人此有土, 有土此有財, 有財此有用. 德者本也, 財者末也, 外本內末, 爭民施奪. 是故財聚則民散, 財散則民聚. 是故言悖而出者, 亦悖而入; 貨悖而入者, 亦悖而出. &lt;br /&gt;
|⑭《詩》云: 「殷之未喪師, 克配上帝. 儀監于殷, 峻命不易.」 道得眾則得國, 失眾則失國. 是故君子先慎乎德. 有德此有人, 有人此有土, 有土此有財, 有財此有用. 德者本也, 財者末也, 外本內末, 爭民施奪. 是故財聚則民散, 財散則民聚. 是故言悖而出者, 亦悖而入; 貨悖而入者, 亦悖而出. &lt;br /&gt;
|⑮《康誥》曰: 「惟命不于常!」 道善則得之, 不善則失之矣. 《楚書》曰: 「楚國無以為寶, 惟善以為寶.」 舅犯曰: 「亡人無以為寶, 仁親以為寶.」 《秦誓》曰: 「若有一个臣, 斷斷兮無他技, 其心休休焉, 其如有容焉. 人之有技, 若己有之; 人之彥聖, 其心好之, 不啻若自其口出. 實能容之, 以能保我子孫黎民, 尚亦有利哉! 人之有技, 媢嫉以惡之; 人之彥聖, 而違之俾不通. 實不能容, 以不能保我子孫黎民, 亦曰殆哉!」 唯仁人放流之, 迸諸四夷, 不與同中國, 此謂唯仁人為能愛人, 能惡人. 見賢而不能舉, 舉而不能先, 命也&amp;lt;作怠之誤也.&amp;gt;; 見不善而不能退, 退而不能遠, 過也. 好人之所惡, 惡人之所好, 是謂拂人之性, 災必逮夫身. 是故君子有大道, 必忠信以得之, 驕泰以失之. &lt;br /&gt;
|⑭《詩》云: 「殷之未喪師, 克配上帝. 儀監于殷, 峻命不易.」 道得眾則得國, 失眾則失國. 是故君子先慎乎德. 有德此有人, 有人此有土, 有土此有財, 有財此有用. 德者本也, 財者末也, 外本內末, 爭民施奪. 是故財聚則民散, 財散則民聚. 是故言悖而出者, 亦悖而入; 貨悖而入者, 亦悖而出.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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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⑮《康誥》曰: 「惟命不于常!」 道善則得之, 不善則失之矣. 《楚書》曰: 「楚國無以為寶, 惟善以為寶.」 舅犯曰: 「亡人無以為寶, 仁親以為寶.」 《秦誓》曰: 「若有一个臣, 斷斷兮無他技, 其心休休焉, 其如有容焉. 人之有技, 若己有之; 人之彥聖, 其心好之, 不啻若自其口出. 實能容之, 以能保我子孫黎民, 尚亦有利哉! 人之有技, 媢嫉以惡之; 人之彥聖, 而違之俾不通. 實不能容, 以不能保我子孫黎民, 亦曰殆哉!」 唯仁人放流之, 迸諸四夷, 不與同中國, 此謂唯仁人為能愛人, 能惡人. 見賢而不能舉, 舉而不能先, 命也; 見不善而不能退, 退而不能遠, 過也. 好人之所惡, 惡人之所好, 是謂拂人之性, 災必逮夫身. 是故君子有大道, 必忠信以得之, 驕泰以失之. &lt;br /&gt;
|⑮《康誥》曰: 「惟命不于常!」 道善則得之, 不善則失之矣. 《楚書》曰: 「楚國無以為寶, 惟善以為寶.」 舅犯曰: 「亡人無以為寶, 仁親以為寶.」 《秦誓》曰: 「若有一个臣, 斷斷兮無他技, 其心休休焉, 其如有容焉. 人之有技, 若己有之; 人之彥聖, 其心好之, 不啻若自其口出. 實能容之, 以能保我子孫黎民, 尚亦有利哉! 人之有技, 媢嫉以惡之; 人之彥聖, 而違之俾不通. 實不能容, 以不能保我子孫黎民, 亦曰殆哉!」 唯仁人放流之, 迸諸四夷, 不與同中國, 此謂唯仁人為能愛人, 能惡人. 見賢而不能舉, 舉而不能先, 命也; 見不善而不能退, 退而不能遠, 過也. 好人之所惡, 惡人之所好, 是謂拂人之性, 災必逮夫身. 是故君子有大道, 必忠信以得之, 驕泰以失之. &lt;br /&gt;
|⑭《詩》云: 「殷之未喪師, 克配上帝. 儀監于殷, 峻命不易.」 道得眾則得國, 失眾則失國. 是故君子先慎乎德. 有德此有人, 有人此有土, 有土此有財, 有財此有用. 德者本也, 財者末也, 外本內末, 爭民施奪. 是故財聚則民散, 財散則民聚. 是故言悖而出者, 亦悖而入; 貨悖而入者, 亦悖而出. &lt;br /&gt;
|⑮《康誥》曰: 「惟命不于常!」 道善則得之, 不善則失之矣. 《楚書》曰: 「楚國無以為寶, 惟善以為寶.」 舅犯曰: 「亡人無以為寶, 仁親以為寶.」 《秦誓》曰: 「若有一个臣, 斷斷兮無他技, 其心休休焉, 其如有容焉. 人之有技, 若己有之; 人之彥聖, 其心好之, 不啻若自其口出. 實能容之, 以能保我子孫黎民, 尚亦有利哉! 人之有技, 媢嫉以惡之; 人之彥聖, 而違之俾不通. 實不能容, 以不能保我子孫黎民, 亦曰殆哉!」 唯仁人放流之, 迸諸四夷, 不與同中國, 此謂唯仁人為能愛人, 能惡人. 見賢而不能舉, 舉而不能先, 命也; 見不善而不能退, 退而不能遠, 過也. 好人之所惡, 惡人之所好, 是謂拂人之性, 災必逮夫身. 是故君子有大道, 必忠信以得之, 驕泰以失之.&lt;br /&gt;
|-&lt;br /&gt;
|⑯生財有大道. 生之者眾, 食之者寡, 為之者疾, 用之者舒, 則財恒足矣. 仁者以財發身, 不仁者以身發財. 未有上好仁而下不好義者也, 未有好義其事不終者也, 未有府庫財非其財者也. 孟獻子曰: 「畜馬乘, 不察於雞豚; 伐冰之家, 不畜牛羊; 百乘之家, 不畜聚斂之臣. 與其有聚斂之臣, 寧有盜臣.」此謂國不以利為利, 以義為利也. 長國家而務財用者, 必自小人矣. 彼為善之, 小人之使為國家, 災害并至. 雖有善者, 亦無如之何矣! 此謂國不以利為利, 以義為利也. &lt;br /&gt;
|⑯生財有大道. 生之者眾, 食之者寡, 為之者疾, 用之者舒, 則財恒足矣. 仁者以財發身, 不仁者以身發財. 未有上好仁而下不好義者也, 未有好義其事不終者也, 未有府庫財非其財者也. 孟獻子曰: 「畜馬乘, 不察於雞豚; 伐冰之家, 不畜牛羊; 百乘之家, 不畜聚斂之臣. 與其有聚斂之臣, 寧有盜臣.」此謂國不以利為利, 以義為利也. 長國家而務財用者, 必自小人矣. 彼為善之, 小人之使為國家, 災害并至. 雖有善者, 亦無如之何矣! 此謂國不以利為利, 以義為利也. &lt;br /&gt;
|⑯生財有大道. 生之者眾, 食之者寡, 為之者疾, 用之者舒, 則財恒足矣. 仁者以財發身, 不仁者以身發財. 未有上好仁而下不好義者也, 未有好義其事不終者也, 未有府庫財非其財者也. 孟獻子曰: 「畜馬乘, 不察於雞豚; 伐冰之家, 不畜牛羊; 百乘之家, 不畜聚斂之臣. 與其有聚斂之臣, 寧有盜臣.」此謂國不以利為利, 以義為利也. 長國家而務財用者, 必自小人矣. 彼為善之, 小人之使為國家, 災害并至. 雖有善者, 亦無如之何矣! 此謂國不以利為利, 以義為利也. &amp;lt;一本云彼爲不善之小人使之爲國家&amp;gt;&lt;br /&gt;
|⑯生財有大道. 生之者眾, 食之者寡, 為之者疾, 用之者舒, 則財恒足矣. 仁者以財發身, 不仁者以身發財. 未有上好仁而下不好義者也, 未有好義其事不終者也, 未有府庫財非其財者也. &lt;br /&gt;
孟獻子曰: 「畜馬乘, 不察於雞豚; 伐冰之家, 不畜牛羊; 百乘之家, 不畜聚斂之臣. 與其有聚斂之臣, 寧有盜臣.」此謂國不以利為利, 以義為利也. 長國家而務財用者, 必自小人矣. 彼為善之, 小人之使為國家, 災害并至. 雖有善者, 亦無如之何矣! 此謂國不以利為利, 以義為利也. &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Wooya0902</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B%8C%80%ED%95%99</id>
		<title>대학</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B%8C%80%ED%95%99"/>
				<updated>2020-05-13T16:13:4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Wooya0902: 전3장 혹문 번역 추가&lt;/p&gt;
&lt;hr /&gt;
&lt;div&gt;=해제=&lt;br /&gt;
[[의적단]]의 강독 작업 일환으로 개설한 페이지이다.&amp;lt;br/&amp;gt;&lt;br /&gt;
저본은 &amp;lt;사서장구집주대전&amp;gt;, &amp;lt;대학혹문&amp;gt;이다.&lt;br /&gt;
&lt;br /&gt;
=원문=&lt;br /&gt;
==讀大學法==&lt;br /&gt;
1.&amp;lt;br/&amp;gt;&lt;br /&gt;
朱子曰。語孟。隨事問答。難見要領。惟大學。是曾子述孔子說古人為學之大方。而門人又傳述&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轉述; 傳授; 傳說.&amp;lt;/ref&amp;gt;以明其旨。前後相因。體統都具。翫味此書。知得古人為學所向。却讀語孟。便易&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入。後面工夫雖多。而大體已立矣。&amp;lt;br/&amp;g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amp;lt;논어&amp;gt;와 &amp;lt;맹자&amp;gt;는 일에 따라 문답한 것이므로 핵심을 이해하기 어렵다. 오직 &amp;lt;대학&amp;gt;만은 증자가 공자께서 옛 분들이 학문한 큰 방법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조술하고 [증자의] 문인들이 다시 전술하여 그 뜻을 밝힌 것이어서, 앞뒤로 [맥락이] 서로 연결되고 체계가 모두 갖춰져 있으니, 이 책을 완미한다면 옛 분들의 학문적 지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amp;lt;논어&amp;gt;와 &amp;lt;맹자&amp;gt;를 읽는다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뒤에 공부가 비록 많지만, 큰 얼개는 이미 세워진 것이다.&amp;quot;&lt;br /&gt;
:○看這一書又自與看語孟不同。語孟中。只一項事。是一箇道理。如孟子說仁義處。只就仁義上說道理。孔子答顔淵以克己復禮。只就克己復禮上說道理。若大學。却只統說。論其功用之極。至於平天下。然天下所以平。却先須治國。國之所以治。却先須齊家。家之所以齊。却先須修身。身之所以修。却先須正心。心之所以正。却先須誠意。意之所以誠。却先須致知。知之所以至。却先須格物。&amp;lt;br/&amp;gt;&lt;br /&gt;
:이 책을 읽는 것은 &amp;lt;논어&amp;gt;나 &amp;lt;맹자&amp;gt;를 읽는 것과는 또 절로 다르다. &amp;lt;논어&amp;gt;와 &amp;lt;맹자&amp;gt;에서는 한 가지 사건이 하나의 도리일 뿐이니, 예를 들어 맹자께서 인의에 대해 말씀하신 부분은 그저 인의의 차원에서 도리를 말한 것이고, 공자께서 안연에게 '극기복례'라고 대답해주신 부분은 그저 '극기복례'의 차원에서 도리를 말씀하신 것일 뿐이다. [그러나] &amp;lt;대학&amp;gt;은 統說(한 텍스트가 하나의 체계를 설명)일 뿐이다. 최종적 공효를 말한다면 '평천하'에 이르지만, 천하가 평안하기 위해서는 먼저 '치국'해야 하고, 나라가 다스려지기 위해서는 먼저 '제가'해야 하며, 집안이 가지런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수신'해야 하고, 자신이 수양되기 위해서는 먼저 '정심'해야 하며, 마음을 바루기 위해서는 먼저 '성의'해야 하고, 뜻을 진실되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치지'해야 하며, 앎을 지극하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격물'해야 한다. &lt;br /&gt;
&lt;br /&gt;
:○大學。是為學綱目。先讀大學。立定綱領。他書皆雜說在裏許。通得大學了。去看他經。方見得此是格物致知事。此是誠意正心事。此是修身事。此是齊家治國平天下事。&amp;lt;br/&amp;gt;&lt;br /&gt;
:&amp;lt;대학&amp;gt;은 학문의 綱目(큰 줄기와 세목)이다. 먼저 &amp;lt;대학&amp;gt;을 읽어 강령을 강령(큰 줄기)를 굳게 세우고 나면, 다른 책들은 모두 그 안의 여러 설일 뿐이다. &amp;lt;대학&amp;gt;에 통달하고 나서 다른 경전을 보아야 비로소 '이건 격물치지의 일이고, 이건 성의정심의 일이며, 이건 수신의 일이고, 이건 제가치국평천하의 일'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今且熟讀大學作間架。却以他書。塡補去。&amp;lt;br/&amp;gt;&lt;br /&gt;
:지금 우선 &amp;lt;대학&amp;gt;을 숙독하여 얼개를 세우고, 다른 책으로 [세목을] 채워나가라.&lt;br /&gt;
&lt;br /&gt;
:○大學。是通言學之初終。中庸是指本原極致處。&amp;lt;br/&amp;gt;&lt;br /&gt;
:&amp;lt;대학&amp;gt;은 학문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전체적으로 말하고, &amp;lt;중용&amp;gt;은 궁극적인 본원을 가리킨다.&lt;br /&gt;
&lt;br /&gt;
:○問欲專看一書。以何為先。曰先讀大學。可見古人為學首末次第。不比他書。他書非一時所言。非一人所記。&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한 책만 집중해서 보고자 한다면, 무슨 책을 먼저 봐야합니까?&amp;quot; 말씀하셨다: &amp;quot;먼저 &amp;lt;대학&amp;gt;을 읽으면 옛 분들이 학문 하신 단계를 알 수 있으니, 다른 책이 비길 바가 아니다. 다른 책은 어느 한 시점에 말한 것도 아니고, 한 사람의 기록도 아니다.&amp;quot;&lt;br /&gt;
&lt;br /&gt;
2.&amp;lt;br/&amp;gt;&lt;br /&gt;
又曰。看大學。固是着逐句看去。也須先統讀傳文敎熟。方好&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0. 可以; 便於.&amp;lt;/ref&amp;gt;從頭仔細看。若專不識傳文大意。便看前頭亦難。&amp;lt;br/&amp;gt;&lt;br /&gt;
또 말씀하셨다: &amp;quot;&amp;lt;대학&amp;gt;을 읽을 때에는 진실로 구절마다 읽어나가야 하지만, 그래도 먼저 傳文을 통독해 익숙하게 해야 하니, 그래야 비로소 처음부터 자세하게 읽을 수 있다. 만일 傳文의 대의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면, 앞부분 읽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amp;quot; &lt;br /&gt;
&lt;br /&gt;
3.&amp;lt;br/&amp;gt;&lt;br /&gt;
又曰。嘗欲作一說。敎人只將大學一日去讀一遍。看他如何是大人之學。如何是小學。如何是明明德。如何是新民。如何是止於至善。日日如是讀。月來日去。自見所謂溫故而知新。須是知新。日日看得新。方得。却不是道理解&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8. 能够; 會.&amp;lt;/ref&amp;gt;新。但自家這箇意思。長長地新。&amp;lt;br/&amp;gt;&lt;br /&gt;
또 말씀하셨다: &amp;quot;전에 한 마디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저 &amp;lt;대학&amp;gt;을 하루에 한 번 읽게 해, &amp;lt;대학&amp;gt;에서 무엇이 '大人의 학문'이며, 무엇이 '소학'이며, 무엇이 '명명덕'이며, 무엇이 '신민'이며, 무엇이 '지어지선'인지 보게 하고자 하였다. 날마다 이처럼 읽어 시간이 흐르면 절로 이른바 '온고이지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반드시 새로운 것을 알아야 하니, 날마다 새로운 것을 읽어야 옳다. 도리가 새로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자신의 이 생각이 길이길이 새로워지는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讀大學初間也只如此讀後來也只如此讀。只是初間讀得。似不與自家相關。後來看熟。見許多說話。須著如此做。不如此做自不得。&amp;lt;br/&amp;gt;&lt;br /&gt;
:&amp;lt;대학&amp;gt;을 읽을 때 처음에도 이렇게 읽고 나중에도 이렇게 읽으라. 처음에 읽고는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 같겠지만, 나중에 읽는 것이 익숙해지고 나면 여러 말이 이렇게 해야 하거나 절로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음을(여러 말대로 해야 하거나 절로 여러 말대로 하지 않을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lt;br /&gt;
&lt;br /&gt;
:○讀書。不可貪多。當且以大學為先逐段熟讀精思。須令了了分明。方可改讀後段。看第二段。却思量前段。令文意連屬&amp;lt;sub&amp;gt;音燭。&amp;lt;/sub&amp;gt;却不妨。&amp;lt;br/&amp;gt;&lt;br /&gt;
:책을 읽을 때 많이 읽기를 탐해서는 안 된다. 마땅히 우선 &amp;lt;대학&amp;gt;을 우선으로 해서 단락마다 자세히 읽으며 정밀히 생각해보아야 한다. 명명백백하게 이해하고서야 다음 단락을 읽어야 하고, 두 번째 단락을 읽을 때 앞 단락을 생각해 문의가 연결되게 해야 문제가 없을 것이다.&lt;br /&gt;
&lt;br /&gt;
:○問大學稍通。方要讀論語。曰且未可。大學稍通。正好着&amp;lt;sub&amp;gt;陟略反。下同&amp;lt;/sub&amp;gt;心精讀。前日讀時。見得前未見得後面。見得後未見得前面。今識得大綱體統。正好熟看。讀此書。功深則用博。昔尹和靖見伊川半年。方得大學西銘看。今人半年。要讀多少書。某且要人讀此是如何。緣此書却不多。而規模周備。凡讀書。初一項。須著十分工夫了。第二項。只費得八九分工夫。第三項。便只費得六七分工夫。少間讀漸多。自通貫他書。自著不得多工夫。&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amp;lt;대학&amp;gt;은 조금 알겠으니, 이제 &amp;lt;논어&amp;gt;를 읽으려고 합니다.&amp;quot; 말씀하셨다: &amp;quot;아직 안 된다. &amp;lt;대학&amp;gt;을 조금 알게 되었다면, 이제는 집중해서 정독할 때다. 전에 읽었을 때에는 앞부분만 이해하고 뒷부분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뒷부분만 이해하고 앞부분을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지금 [&amp;lt;대학&amp;gt;을 조금 알게 되어] 큰 얼개와 체계를 이해했다면, 이제는 숙독할 때다. 이 책을 읽는 공부가 깊어진다면 공효가 넓어질 것이다. 전에 윤화정은 이천 선생을 뵌 지 반 년이 돼서야 &amp;lt;대학&amp;gt;과 &amp;lt;서명&amp;gt;을 볼 수 있었다. 요즘 사람들은 반 년만에 많은 책을 읽으려고 한다. 나는 우선 사람들로 하여금 이 책만 읽게 하는데, 어째서일까? 이 책이 분량은 많지 않지만 체계를 빠짐없이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무릇 책을 읽을 때, 처음에는 100%로 노력해야 하지만, 두 번째에는 8-90% 노력만 필요로 하고, 세 번째에는 6-70%의 노력만 필요로 하니, [그렇게 되면] 잠깐 사이에 점차 많은 것을 읽게 되고 다른 책을 절로 이해하게 되어, 절로 많은 노력을 들이지 않게 될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看大學。俟見大指。乃及他書。但看時。須是更將大段分作小段。字字句句。不可容易放過。常時暗誦黙思反覆硏究。未上口時。須敎上口。未通透時。須敎通透。已通透後。便要純熟。直待&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直要.&amp;lt;/ref&amp;gt;不思索時。此意。常在心胸之間。驅遣不去&amp;lt;ref&amp;gt;1. 접미사. 동작의 결과가 화자로부터 떨어질 수 없는 뜻을 나타냄.&amp;lt;/ref&amp;gt;。方是。此一段了。又換一段看。令如此數段之後。心安理熟。覺工夫省力時。便漸得力也。&amp;lt;br/&amp;gt;&lt;br /&gt;
:&amp;lt;대학&amp;gt;을 읽을 때 요지를 이해하고서 다른 책을 읽어야 한다. 다만 [&amp;lt;대학&amp;gt;을] 읽을 때 다시 큰 단락을 작은 단락으로 나눠야 하고, 글자마다 구절마다 쉽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 평소에 암송하기도 하고 묵묵히 생각하기도 하며 반복해서 탐구해, 입에 붙지 않았을 때에는 입에 붙게 해야 하고, 완전히 이해되지 않았을 때에는 완전히 이해되기 해야 한다. 완전히 이해된 이후에는 숙달되게 해서, 사색하지 않을 때에도 이 뜻이 늘 마음에 있어 쫓아버릴 수 없어야 옳다. 이 단락이 끝나고서 다음 단락을 읽어 이와 같이 여러 단락을 하고 나면, 마음은 안정되고 도리는 익숙해질 것이니, 공부에 힘이 덜 든다고 느낄 때 점차 힘을 얻게 될 것이다.&lt;br /&gt;
&lt;br /&gt;
4.&amp;lt;br/&amp;gt;&lt;br /&gt;
又曰。大學是一箇腔子。而今却要塡敎&amp;lt;sub&amp;gt;平聲&amp;lt;/sub&amp;gt;他實。如他說格物。自家須是去格物後塡敎他實著。誠意亦然。若只讀得空殼子。亦無益也。&amp;lt;br/&amp;gt;&lt;br /&gt;
또 말씀하셨다: &amp;quot;&amp;lt;대학&amp;gt;은 腔子이니, 지금 그것을 메워 충실하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amp;lt;대학&amp;gt;에서 '격물'을 말하면, 스스로 '격물' 뒤에서 메워 그것을 채워야 한다. '성의'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그저 빈 껍데기만 읽는다면 역시 무익할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讀大學。豈在看他言語。正欲驗之於心如何。如好好色惡惡臭。試驗之吾心。果能好善惡惡如此乎。閒居為不善。是果有此乎。一有不至。則勇猛奮躍不已。必有長&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進。今不知如此。則書自書我自我。何益之有。&amp;lt;br/&amp;gt;&lt;br /&gt;
:&amp;lt;대학&amp;gt;을 읽는 [관건이] 어찌 그 문장을 읽는 데 달려있겠는가? 다만 내 마음에 어떠한지 증험해보려는 것이다. [&amp;lt;대학&amp;gt;에서] '아름다운 여색을 좋아하듯, 악취를 싫어하듯이 한다'&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傳6章. 所謂誠其意者：毋自欺也，如惡惡臭，如好好色，此之謂自謙，故君子必慎其獨也！&amp;lt;/ref&amp;gt;고 하는데, [이것을] 한 번 자기 마음에 증험해보면 과연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기를' 이처럼 할 수 있는가? [&amp;lt;대학&amp;gt;에서 '소인은] 혼자 있을 때 불선한 짓을 한다'&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傳6章. 小人閒居為不善，無所不至。&amp;lt;/ref&amp;gt;고 하는데, 과연 [나에게] 이런 점이 있는가? 하나라도 지극하지 못한 점이 있으면 용맹하게 분발하기를 그치지 않아야 반드시 장구적인 진전이 있을 것이다. 만일 이와 같음을 알지 못한다면 책은 책이고 나는 나일 것이니, 무슨 보탬이 있겠는가?&lt;br /&gt;
&lt;br /&gt;
5.&amp;lt;br/&amp;gt;&lt;br /&gt;
又曰。某一生。只看得這文字透。見得前賢所未到&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8. 知; 覺.&amp;lt;/ref&amp;gt;處。溫公作通鑑。言平生精力。盡在此書。某於大學亦然。先須通此。方可讀他書。&amp;lt;br/&amp;gt;&lt;br /&gt;
또 말씀하셨다: &amp;quot;나는 일생토록 이 글을 철저하게 읽어 이전 현인들이 알지 못했던 바를 알게 되었다. 사마온공은 &amp;lt;자치통감&amp;gt;을 짓고서 '평생의 정력이 모두 이 책에 있다'고 말했는데, 내가 &amp;lt;대학&amp;gt;에 있어서 역시 그러하다. 먼저 이 책에 통달하고서 다른 책을 봐야 한다.&amp;quot;&lt;br /&gt;
&lt;br /&gt;
6.&amp;lt;br/&amp;gt;&lt;br /&gt;
又曰。伊川舊日。敎人先看大學。那時。未解說。而今有註解。覺大段分曉了。只在仔細看。&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4 &amp;lt;대학1&amp;gt; 伊川舊日教人先看大學，那時未有解說，想也看得鶻突。而今看注解，覺大段分曉了，只在子細去看。&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또 말씀하셨다: &amp;quot;이천 선생께서 전에 사람들로 하여금 먼저 &amp;lt;대학&amp;gt;을 읽게 하셨지만 그때에는 [&amp;lt;대학&amp;gt;을] 풀이하지 않으셨다. 지금은 [이천 후학의] 주해가 있어 [의미가] 상당히 밝혀졌다고 생각하니, 그저 자세하게 읽는 데 달렸을 뿐이다.&amp;quot;&lt;br /&gt;
&lt;br /&gt;
7.&amp;lt;br/&amp;gt;&lt;br /&gt;
又曰。看大學。且逐章理會。先將本文念得。次將章句來解本文。又將或問來參章句。須逐一令&amp;lt;sub&amp;gt;平聲。下同&amp;lt;/sub&amp;gt;記得。反覆尋究。待他浹洽。旣逐段曉得。却統看溫尋過。&amp;lt;br/&amp;gt;&lt;br /&gt;
또 말씀하셨다: &amp;quot;&amp;lt;대학&amp;gt;을 볼 때 우선 장마다 이해해야 한다. 먼저 본문을 생각해보고서 다음으로 장구로 본문을 해석해보고, 다시 &amp;lt;혹문&amp;gt;으로 장구에 참조해보라. [그리고 나서] 하나하나 기억나게 하고 반복 탐구해 그것이 [마음에] 젖어들고 나서, 단락마다 이해되면, 전체적으로 읽으며 복습해보라.&amp;quot;&lt;br /&gt;
&lt;br /&gt;
8.&amp;lt;br/&amp;gt;&lt;br /&gt;
又曰。大學一書有正經有章句有或問。看來看去。不用或問。只看章句便了。久之又只看正經便了。又久之自有一部大學在我胸中。而正經亦不用矣。然不用某許多工夫。亦看某底不出。不用聖賢許多工夫。亦看聖賢底不出。&amp;lt;br/&amp;gt;&lt;br /&gt;
또 말씀하셨다: &amp;quot;&amp;lt;대학&amp;gt; 한 텍스트에는 正經(경전 원문), &amp;lt;章句&amp;gt;, &amp;lt;或問&amp;gt;이 있다. 여러 번 읽다보면 &amp;lt;혹문&amp;gt;은 필요하지 않고 &amp;lt;장구&amp;gt;만 읽어도 될 것이며, [읽기가] 오래되면 다시 경전 원문만 읽어도 될 것이다. [읽기가] 더 오래되어 저절로 &amp;lt;대학&amp;gt; 한 부가 마음속에 있게 되면, 경전 원문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많은 공부를 하지 않으면 내 것을 알 수 없고, 성현의 많은 공부를 하지 않으면 성현의 것을 알 수 없을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9.&amp;lt;br/&amp;gt;&lt;br /&gt;
又曰。大學解本文未詳者。於或問中詳之。且從頭逐句理會。到不通處却看。或問乃註脚之註脚。&amp;lt;br/&amp;gt;&lt;br /&gt;
또 말씀하셨다: &amp;quot;&amp;lt;대학&amp;gt;에서 본문을 해석하다가 자세하지 않은 것은 &amp;lt;혹문&amp;gt; 가운데 상세히 설명하였다. 앞으로 처음부터 구절마다 이해하다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만나면 읽어보라. &amp;lt;혹문&amp;gt;은 바로 '주석의 주석'이다.&amp;quot;&lt;br /&gt;
&lt;br /&gt;
:○某解書不合太多。又先準備學者為&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他設疑說了。所以致得學者看得容易&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了。&amp;lt;br/&amp;gt;&lt;br /&gt;
:나는 책을 해설할 때 설명을 너무 많이 해서는 안 되지만, 그래도 배우는 자들이 그에 대해 의심할 것을 먼저 대비해 설명해서 배우는 자들이 쉽게 볼 수 있게 했다.&lt;br /&gt;
&lt;br /&gt;
:○人只說某說大學等不略說使人自致思。此事大不然。人之為學。只爭箇肯與不肯耳。他若不肯向&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9. 介詞. 對; 與. 表示動作的對象.&amp;lt;/ref&amp;gt;這裏。略亦不解致思。他若肯向此一邊。自然有味。愈詳愈有味。&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18 &amp;lt;주자13/훈문인4&amp;gt;又言：「大學等書，向來人只說某說得詳，如何不略說，使人自致思？此事大不然。人之為學，只是爭箇肯不肯耳。他若無得，不肯向這邊，略亦不解致思；他若肯向此一邊，自然有味，愈詳愈有意味。」&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사람들은 그저 내가 '&amp;lt;대학&amp;gt; 등에 대해 설명할 때, 간략하게 설명하지 않아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을 다하지 못하게 한다(상세하게 설명해 해석의 여지를 좁힌다)'고만 말하는데, 이는 전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학문함은 그저 긍정하냐 긍정하지 않냐를 따질 뿐이다. 그가 만약 이쪽에 대해 긍정하지 않는다면, 간략하게 설명하더라도 생각을 다하지 못하겠지만, 그가 만일 이쪽에 대해 긍정한다면 절로 재미가 있어, 설명이 상세할수록 재미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大學章句序==&lt;br /&gt;
1.&amp;lt;br/&amp;gt;&lt;br /&gt;
大學之書。古之大學所以敎人之法&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6. 標准; 模式.&amp;lt;/ref&amp;gt;也。蓋自天降生民。則旣莫不與之以仁義禮智之性矣。&amp;lt;br/&amp;gt;&lt;br /&gt;
&amp;lt;대학&amp;gt;은 옛적 태학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던 교법(표준 텍스트)이다. 대개 하늘이 백성을 내리고 나서 이미 인의예지의 성을 주지 않은 경우는 없다.&lt;br /&gt;
:朱子曰。天之生民。各與以性。性非有物。只是一箇道理之在我者耳。仁則是箇溫和慈愛底道理。義則是箇斷制裁割底道理。禮則是箇恭敬撙節底道理。智則是箇分別是非底道理。凡此四者。具於人心。乃是性之本體。&amp;lt;br/&amp;g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하늘이 백성을 낳을 때 각각 性을 부여했다. 性은 물건이 아니라 그저 나에게 있는 도리일 뿐이다. 인은 온화하고 자애로운 도리이고, 의는 판단하고 제재하는 도리이며, 예는 공경하고 절약하는 도리이고, 지는 시비를 분별하는 도리이다. 무릇 이 네 가지는 사람의 마음에 갖춰져 있으니, 바로 성의 본모습(本體)이다.&amp;quot;&lt;br /&gt;
:○雲峯胡氏曰。朱子四書。釋仁曰心之德。愛之理。義曰心之制。事之宜。禮曰天理之節文。人事之儀則。皆兼體用。獨智字未有明釋。嘗欲竊取朱子之意以補之。曰智則心之神明。所以妙衆理而宰萬物者也。番易沈氏云。智者。涵天理動靜之機。具人事是非之鑑。&amp;lt;br/&amp;gt;&lt;br /&gt;
:운봉 호씨가 말했다: &amp;quot;주자의 &amp;lt;사서&amp;gt;에서 인은 '마음의 덕이자 사랑의 이치'라고 하고, 의는 '마음의 제재이자 일의 마땅함'이라 하며, 예는 '천리의 절문이며 인사의 의칙'이라고 하니, 모두 體用을 겸한다. [그런데] 유독 智자에만 분명한 해석이 없다. 전에 주자의 생각을 삼가 취해 보충하려고 했다: '智는 마음의 신명이니, 뭇 이치를 신묘하게 [갖추고서]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 파양 심씨가 말하길: '智라는 것은 天理動靜의 기틀을 포함하고, 인사의 시비를 [비추는] 거울을 갖추고 있다.'라고 하였다.&amp;quot;&lt;br /&gt;
:○新安陳氏曰。書云。惟皇上帝。降衷于下民。若有恒性。六經言性自此始。謂天降生民而與之以性。亦本書之意而言。&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amp;lt;서경&amp;gt;에서 말하길: '위대한 상제께서 백성들에게 속마음(衷)을 내려주셔서 순히 변치 않는 性을 두셨다'&amp;lt;ref&amp;gt;&amp;lt;서경&amp;gt; 탕고&amp;lt;/ref&amp;gt;고 하니, 육경에서 性을 말하는 것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amp;lt;대학장구서&amp;gt;에서] '하늘이 백성을 내리고 나서 性을 주었다'고 말한 것 역시 &amp;lt;서경&amp;gt;의 뜻에 근거해 말한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然其氣質之稟。或不能齊。是以不能皆有以知其性之所有而全之也。&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품수받은 기질이 혹 일정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性에 있는 [인의예지를] 알고서 이를 온전히 할 수는 없다.&lt;br /&gt;
:新安陳氏曰。性之所有。卽仁義禮智是也。性無智愚賢不肖之殊。惟氣有淸濁。淸者能知。而濁者不能知。故不能皆知。質有粹駁。粹者能全。而駁者不能全。故不能皆全。知性之所有屬知。全性之所有屬行。知行二者。該盡一部大學。意已寓於此矣。&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지닌 性'은 곧 인의예지가 이것이다. 性에는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현명한 자와 못난 자의 차이가 없고, 오직 氣에 맑고 탁함의 차이가 있어서, 기가 맑은 자는 지닌 성을 알 수 있지만, 기가 탁한 자는 알 수 없다. 質에는 순수하고 잡박함의 차이가 있어, 質이 순수한 자는 [자신의 성을] 온전히 할 수 있지만, 잡박한 자는 온전히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온전히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닌 성을 아는 것은 앎(知)에 속하고, 지닌 성을 온전히 하는 것은 실천(行)에 속한다. 앎과 실천(知行) 두 가지는 &amp;lt;대학&amp;gt; 한 부에 완비되어 있으니, 그 의미가 이미 여기에 깃들여져 있다.&amp;quot;&lt;br /&gt;
&lt;br /&gt;
一有聰明睿智。能盡其性者。出於其間。則天必命之。以為億兆之君師。使之治&amp;lt;sub&amp;gt;平聲下治人同&amp;lt;/sub&amp;gt;而敎之。以復其性。&amp;lt;br/&amp;gt;&lt;br /&gt;
총명예지를 갖추고서 자신의 성을 다할 수 있는 자가 혹 한 명이라도 그 사이에서 나오면, 하늘은 반드시 그에게 명하여 뭇 백성의 임금이자 스승(君師)으로 삼아 그로 하여금 백성들을 다스리고 가르쳐 자신의 성을 회복하게(자신의 본성으로 돌아가게) 하였다.&lt;br /&gt;
:問何處見得天命處。朱子曰。此也如何知得。只是才生得一箇恁地底人。定是為億兆之君師。便是天命之也。他旣有許多氣魄才德。決不但已&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僅此而已. 謂不復深究或就此了事.&amp;lt;/ref&amp;gt;。必統御億兆之衆。人亦自是歸他。如三代已前。聖人都是如此。至孔子方不然。雖不為帝王。然也閑他不得。也做出許多事來。以敎天下後世。是亦天命也。&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어디에서 천명을 볼 수 있습니까?&amp;quo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이것을 또 어찌 알겠느냐? 그저 이런 사람을 낳자마자 반드시 뭇 백성의 임금이자 스승으로 삼는 것, 이것이 '하늘이 명한 것'이다. 그는 많은 기백과 재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반드시 뭇 백성을 통솔할 것이요, 사람들 또한 스스로 그에게 귀의할 것이니, 삼대 이전의 성인들은 모두 이와 같았다. 공자에 이르러 비로소 그러하지 못했다. 공자의 경우 비록 제왕으로 삼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를 내버려 둘 수 없었고, 그래도 수많은 일을 해내 천하 후세를 가르치게 하셨으니, 이 또한 천명이다.&amp;quot;&lt;br /&gt;
:○新安陳氏曰。聰明睿智。能盡其性者。是就淸濁粹駁不齊中。指出極淸極粹者言之。聰明睿智。生知之聖也。與知其性相應。能盡其性。安行之聖也。與全之相應。常人必先知其性。方可望以全其性。故於中下一而字。聖人合下生知安行。不待知而方全。故只平說。天必命之以為億兆君師。君以治之。師以敎之。變化其氣質。而復還其本性。以上四箇性字。須融貫看透。三代以前。聖賢之君。君師之責兼盡。三代以後。君道有略得之者。而師道則絶無矣。&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총명예지를 갖추고서 자신의 성을 다할 수 있는 자'는 기질의 청탁/수박이 고르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 지극히 맑고 지극히 순수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총명예지를 갖춘 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는(生知) 성인이니, '자신의 성을 안다'와 호응한다. '자신의 성을 다할 수 있는 자'는 편안히 여겨 행하는(安行) 성인이니, '온전히 한다'와 상응한다. 보통 사람들은 반드시 자신의 성을 알아야 비로소 자신의 성을 온전히 하기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운데에 '而'자를 두었다. 성인은 원래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편안히 여겨 행하니, 보통 사람들처럼 자신의 성을 알고서 비로소 온전히 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다만 평이하게 말했다. 하늘은 반드시 그에게 명하여 뭇 백성의 임금이자 스승이 되게 하여, 임금의 자격으로 그들을 다스리고, 스승의 자격으로 그들을 가르쳐 기질을 변화시켜 자신의 본성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이상 네 번의 性자(仁義禮智之性, 知其性之所有, 能盡其性, 復其性)를 반드시 일관하여 철저히 읽어야 한다. 삼대 이전의 성현이었던 임금들은 임금과 스승의 책임을 모두 지극히 하셨지만, 삼대 이후에는 임금의 도(君道)의 경우에는 이를 대략 얻은 자는 있었지만 스승의 도(師道)의 경우에는 [이를 대략이라도 얻은 자가] 전혀 없었다.&amp;quot;&lt;br /&gt;
&lt;br /&gt;
此伏羲神農黃帝堯舜。所以繼天立極。而司徒之職。典樂之官。所由設也。&amp;lt;br/&amp;gt;&lt;br /&gt;
이것이 복희·신농·황제·요·순이 하늘의 뜻을 잇고 법도를 세운 까닭이며, 사도의 직책과 전악의 관직이 설치된 이유이다.&lt;br /&gt;
:書舜典。帝曰。契。汝作司徒。敬敷五敎在寬。又曰。夔。命汝典樂。敎冑子。&amp;lt;br/&amp;gt;&lt;br /&gt;
:&amp;lt;서경&amp;gt; &amp;lt;순전&amp;gt;에 &amp;quot;요임금께서 말씀하셨다: '설아! 너는 사도가 되어 공경히 五敎를 펴되, 너그럽게 하라.&amp;quot;고 하였고, 또 &amp;quot;기야! 너를 전악으로 임명하니, 冑子&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 古代稱帝王或貴族的長子.&amp;lt;/ref&amp;gt;를 가르쳐라.&amp;quot;라고도 하였다.&lt;br /&gt;
:○朱子曰。天只生得許多人物。與你&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4. 代詞. 泛指任何人.&amp;lt;/ref&amp;gt;許多道理。然天却自做不得。所以必得聖人為之脩道立敎。以敎化百姓。所謂裁成天地之道。輔相天地之宜是也。&amp;lt;br/&amp;g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하늘은 그저 수많은 인물을 낳고 모든 사람에게 많은 도리를 부여한다. 그러나 하늘은 스스로 작용할 수 없으므로, 반드시 성인을 얻어 그로 하여금 도를 닦고 가르침을 세워 백성을 교화하게 했으니, 이른바 '천지의 도를 재단하고 이루며, 천지의 마땅함을 돕는다'&amp;lt;ref&amp;gt;&amp;lt;주역&amp;gt; 태괘 대상전. 天地交泰，后以財成天地之道，輔相天地之宜，以左右民。&amp;lt;/ref&amp;gt;는 것이 이것이다.&amp;quot;&lt;br /&gt;
:○古者敎法。禮樂射御書數。不可闕一。就中樂之敎尤親切。夔敎冑子。只用樂。大司徒之職。也是用樂。蓋是敎人朝夕從事於此物。束得心長在這上面。蓋為樂有節奏。學他底。急也不得。慢也不得。久之都換了他情性。&amp;lt;br/&amp;gt;&lt;br /&gt;
:과거의 교법(교과 과정)인 육예(禮樂射御書數)는 하나라도 빠뜨려서는 안 되는데, 그 가운데 음악의 가르침은 더욱 친절하다. 夔가 冑子를 가르칠 때 단지 음악을 사용했고, 대사도의 직임도 음악을 사용했으니, 대개 사람들로 하여금 하루 종일 이것에 종사하게 해서 마음을 단속해 오래토록 여기에 있게 한 것이다. 대개 음악을 연주하는 데에는 리듬(節奏)이 있으니, 그것을 배울 때에는 급해도 안 되고 느슨해서도 안 된다. [음악을 배우는 것이] 오래되면 그들의 情性을 모두 바꿀 것이다.&lt;br /&gt;
:○雲峯胡氏曰。司徒之職。統敎百姓。典樂之官。專敎冑子。&amp;lt;br/&amp;gt;&lt;br /&gt;
:운봉 호씨가 말했다: &amp;quot;사도의 직책은 백성을 통솔하고 가르치는 것이며, 전악의 관리는 오로지 冑子만 가르친다.&amp;quot;&lt;br /&gt;
:○新安陳氏曰。上文說其理。此實之以其事。天生民而賦與之。不能敎之。聖君代天立標準。以主敎於上。而設司徒及典樂之官。以掌敎於下。此時敎已立。而敎之法未備。學之名未聞也。&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앞의 글에서 이치를 말했다면, 여기서는 일로 실증한다. 하늘은 백성을 낳고 [성을] 부여하지만, [직접] 가르치지는 못한다. 성군이 하늘을 대신해 표준을 세워 위에서 가르침을 주관하고, 사도와 전악의 관직을 설치해 아래에서 가르침을 관장하게 했다. 이때에는 가르침이 이미 세워졌지만 교법(교육 제도)가 미비했고, '학교'라는 명칭이 아직 들리지 않았다.&amp;quot;&lt;br /&gt;
&lt;br /&gt;
2.&amp;lt;br/&amp;gt;&lt;br /&gt;
三代之隆。其法寖備。然後王宮國都。以及閭巷。莫不有學。人生八歲。則自王公以下。至於庶人之子弟。皆入小學。而敎之以灑&amp;lt;sub&amp;gt;上聲又去聲&amp;lt;/sub&amp;gt;掃&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應對進退之節。禮樂射御書數之文。&amp;lt;br/&amp;gt;&lt;br /&gt;
융성한 삼대에 그 법도가 차츰 갖춰진 연후에, 왕궁(천자의 도성)·국도(제후의 도성)에서 여항(그 외 지방)에 이르기까지 학교가 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사람이 태어나 8세가 되면 왕·공 이하로 서인의 자제에 이르기까지 모두 소학에 들어가게 해서 쇄소·응대·진퇴의 예절과 육예의 이름을 가르쳤다.&lt;br /&gt;
:朱子曰。古者小學。已自是聖賢坯樸&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坯墣] 亦作“坯璞”。 謂初具規模的事物；半成品。 &amp;lt;/ref&amp;gt;了。但未有聖賢許多知見。及其長也。令入大學。使之格物致知。長許多知見。&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7 &amp;lt;학1&amp;gt; 古者小學已自養得小兒子這裏定，已自是聖賢坯璞了，但未有聖賢許多知見。及其長也，令入大學，使之格物、致知，長許多知見。&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옛날에 소학을 [다니면] 이미 성현의 그릇(坯璞)이지만, 성현의 많은 지식(내용물)은 없다. 자라서 태학에 들어가게 해 격물치지하게 해 많은 지식을 기르는 것이다.&amp;quot;&lt;br /&gt;
:○番易齊氏曰。灑掃。內則所謂雞初鳴。灑掃室堂及庭。曲禮所謂。為長者糞。加帚箕上以袂拘而退。以箕自向而扱之之類是也。應對。內則所謂。在父母之所。有命之。應唯敬對。曲禮所謂。長者負劍辟咡詔之。&amp;lt;sub&amp;gt;負。置之於背。劍。挾之於旁。口耳之間曰咡。辟咡詔之。傾頭與語。&amp;lt;/sub&amp;gt;則揜口而對之類是也。進退。內則所謂。在父母之所。進退周旋愼齊。曲禮所謂。凡與客入者。每門讓於客之類是也。禮。習於度數之節文。所以敎之中也。樂。明於聲音之高下。所以敎之和也。射法。一弓挾四矢。驗其中否。以觀德行。御法。一車乘四馬。御者執轡。立於車上。欲調習不失驅馳之正也。書。書字之體。可以見心畫。數。算數之法。可以盡物變。周禮大司徒。所以敎萬民而賓興之者。始以六德。繼以六行。後及於六藝。非八歲以上者。所能盡究其事。不過使曉其名物而已。故上三者言節。有品節存焉。下六者言文。文者。名物之謂也。非其事也。&amp;lt;br/&amp;gt;&lt;br /&gt;
:파양 제씨가 말했다: &amp;quot;'쇄소'는 &amp;lt;내칙&amp;gt;의 이른바 '닭이 막 울거든 집과 뜰에 물을 뿌리고 쓴다'&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내칙&amp;gt; 凡內外，雞初鳴，咸盥漱，衣服，斂枕簟，灑掃室堂及庭，布席，各從其事。&amp;lt;/ref&amp;gt;, &amp;lt;곡례&amp;gt;의 이른바 '어른을 위해 청소하는 [예절은 반드시] 빗자루를 쓰레받기 위에 두고서 소매로 빗자루 앞을 막고 [쓸면서] 물러나 [먼지가 어른에게 이르지 않게 하며] 쓰레받기를 자신을 향하게 하여 쓸어담든다'&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곡례상&amp;gt; 凡為長者糞之禮，必加帚於箕上，以袂拘而退；其塵不及長者，以箕自鄉而扱之。&amp;lt;/ref&amp;gt;는 것 따위가 이것이다. '응대'는 &amp;lt;내칙&amp;gt;의 이른바 '부모·[시부모가 계신] 곳에서 명하시거든 길고 짧게(應·唯) 공경스럽게 대답한다'&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내칙&amp;gt; 在父母舅姑之所，有命之，應唯敬對。&amp;lt;/ref&amp;gt;, &amp;lt;곡례&amp;gt;의 이른바 '장자가 칼은 등에 진 듯, 칼을 찬 듯 입가에 대고 말씀하시거든, 입을 가리고 대답한다'&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곡례상&amp;gt; 長者與之提攜，則兩手奉長者之手。負劍辟咡詔之，則掩口而對。&amp;lt;/ref&amp;gt;&amp;lt;sub&amp;gt;'負'는 등에 지는 것이고, '劍'은 옆에 차는 것이다. 입과 귀 사이를 '咡'라고 하니, '辟咡詔之'는 머리를 숙여 그에게 말하는 것이다.&amp;lt;/sub&amp;gt;따위가 이것이다. '진퇴'는 &amp;lt;내칙&amp;gt;의 이른바 '부모·[시부모가 계신] 곳에서는 진퇴와 행동을 삼간다'&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내칙&amp;gt; 進退周旋慎齊。&amp;lt;/ref&amp;gt;, &amp;lt;곡례&amp;gt;의 이른바 '무릇 손님과 들어갈 때에는 문마다 손님에게 양보한다'&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곡례상&amp;gt; 凡與客入者，每門讓於客。&amp;lt;/ref&amp;gt;는 것 따위가 이것이다. '예'는 도수의 절차를 익히는 것이니, '中'을 가르치는 과정이고, '악'은 음악의 고하를 밝히는 것이니, '和'를 가르치는 과정이다. 활쏘는 법은 활 하나에 화살 네 개를 가지고서 적중 여부를 시험해 그의 덕행을 살피는 것이다. 수레 모는 법은 한 수레에 말 네 마리를 매고, 모는 사람이 고삐를 쥐고 수레 위에 서서 바른 운전법을 잃지 않기를 연습하려는 것이다. '서'는 글자 쓰는 체계이니, '心畫'&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指書面文字。  ▶ 漢 揚雄 《法言‧問神》： “言， 心聲也；書， 心畫也。 聲畫形， 君子小人見矣。” &amp;lt;/ref&amp;gt;를 볼 수 있고, '수'는 계산법이니, 사물의 변화를 다할 수 있다. &amp;lt;주례&amp;gt; &amp;lt;대사도&amp;gt;에 따르면, 만민을 가르치고 우대하는 것 방법은 육덕으로 시작하고 육행으로 이으며 육예에 미치는데,&amp;lt;ref&amp;gt;&amp;lt;주례&amp;gt; &amp;lt;지관사도&amp;gt; 以鄉三物教萬民而賓興之：一曰六德，知、仁、聖、義、忠、和；二曰六行，孝、友、睦、姻、任、恤；三曰六藝，禮、樂、射、御、書、數。&amp;lt;/ref&amp;gt; [육예는] 8세 이상인 [아이가] 능히 그(육예) 구체적 일을 모두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들로 하여금 그저 사물의 이름을 알게 할 뿐이다. 그러므로 앞의 세 가지(쇄소·응대·진퇴)에서는 '예절(灑掃應對進退之節)'이라고 말했으니 구체적 절차(品節)가 있는 것이요, 뒤의 여섯 가지에서는 '이름(禮樂射御書數之文)'이라고 말했으니, 文이라는 것은 사물의 이름을 말하니, 그 일이 아니다.&amp;quot;&lt;br /&gt;
:○勿軒熊氏曰。按大戴記保傅篇。古者年八歲。出就外舍。學小藝焉。履小節焉。束髮就大學。學大藝焉。履大節焉。註曰小學為庠門。一作虎闈。大學在王宮之東。束髮謂成童。尙書大傳曰。公卿之太子。元士之嫡子。年十三入小學。二十入大學。白虎通曰。八歲入小學。十五入大學。此太子之禮也。按年數互有不同。而朱子獨以白虎通為斷。&amp;lt;br/&amp;gt;&lt;br /&gt;
:물헌 웅씨가 말했다: &amp;quot;&amp;lt;대대례기&amp;gt; &amp;lt;보부&amp;gt;편에 '옛적에 8세가 되면 소학(外舍)에 가서 小藝를 배우고 小節을 실천한다. [成童이 되어] 상투를 묶으면(束髮) 태학에 가서 大藝를 배우고 大節을 실천한다'&amp;lt;ref&amp;gt;&amp;lt;대대례기&amp;gt; &amp;lt;보부&amp;gt; 古者年八歲而出就外舍，學小藝焉，履小節焉。束髮而就大學。學大藝焉，履大節焉。&amp;lt;/ref&amp;gt;고 하고, 그 주석에 '소학은 庠門&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 指學校。 &amp;lt;/ref&amp;gt;이니, 虎闈&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 古時國子學的代稱。 因其地在虎門之左， 故有是稱。 &amp;lt;/ref&amp;gt;라고도 한다. 태학은 왕궁의 동쪽에 있었다. 송발은 성동이다.'라고 하였으며, &amp;lt;상서&amp;gt; 대전에 이르길: '公卿의 태자와 元士의 적자가 13세가 되면 소학에 들어가고, 20세가 되면 태학에 들어간다'고 하고, &amp;lt;백호통&amp;gt;에 이르길: '8세에 소학에 들어가고, 15세에 태학에 들어가니, 이는 태자의 예이다'라고 했다. 살펴보건대, 입학연령이 서로 같지 않은데, 주자께서는 유독 &amp;lt;백호통&amp;gt;을 기준으로 판단하셨다.&amp;quot;&lt;br /&gt;
&lt;br /&gt;
及其十有五年。則自天子之元子衆子。以至公卿大夫元士之適&amp;lt;sub&amp;gt;音的&amp;lt;/sub&amp;gt;子。與凡民之俊秀。皆入大學。&amp;lt;br/&amp;gt;&lt;br /&gt;
15세가 되면 천자의 元子와 衆子로부터 공·경·대부·원사의 적자 및 뭇 백성 가운데 준수한 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태학에 들어가게 해서,&lt;br /&gt;
:新安陳氏曰。凡民惟賢者得入大學。不比&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3. 不可相比；不同於。 &amp;lt;/ref&amp;gt;小學。則無貴賤賢愚皆得入也。&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뭇 백성의 경우 오직 현명한 자만 태학에 들어갈 수 있었으니, 소학은 貴賤·賢愚와 관계없이 모두 들어갈 수 있었던 것과는 다르다.&amp;quot;&lt;br /&gt;
&lt;br /&gt;
而敎之以窮理正心修己治人之道。此又學校之敎。大小之節。所以分也。&amp;lt;br/&amp;gt;&lt;br /&gt;
窮理·正心·修己·治人의 도를 가르쳤다. 이것은 또한 학교의 가르침과 대학·소학의 제도가 구분되는 방식이다.&lt;br /&gt;
:新安陳氏曰。三代有小學大學之敎法。未有書也。天子元子。繼世有天下。衆子建為諸侯。公卿大夫元士適子。將有國家之責。皆在所敎。民之俊秀。他日亦將用之。以佐理天下國家者也。窮理。知之事。正心以下。行之事。&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삼대에는 소학·태학의 교법이 있었지만 이 텍스트는 없었다. 천자의 원자는 대를 이어 천하를 소유하고, 중자는 제후로 세워진다. 공·경·대부·원사의 적자는 장자 국가를 다스릴 책무를 갖게 되니, 모두 가르침을 받아야 할 대상에 속한다. 준수한 백성 역시 훗날 등용되어 천하·국가를 다스리는 데 보좌하는 자이다. 궁리는 앎의 일이고, 정심 이하는 실천의 일이다.&amp;quot;&lt;br /&gt;
&lt;br /&gt;
3.&amp;lt;br/&amp;gt;&lt;br /&gt;
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以學校之設。其廣如此。敎之之術。&amp;lt;sub&amp;gt;術卽法也。&amp;lt;/sub&amp;gt;其次第節目之詳又如此。而其所以為敎。則又皆本之人君躬行心得之餘。不待求之民生日用彝倫之外。&amp;lt;br/&amp;gt;&lt;br /&gt;
저 학교를 설치함에 그 범위가 넓음이 이와 같고, 가르치는 법제의 순서나 절목이 상세함이 또 이와 같았는데, 가르침으로 삼았던 것은 또한 모두 임금이 몸소 실천하고 마음으로 깨닫는 것들에 근본하고, 백성들이 날마다 쓰는 도리 밖에 것은 필요로 하지 않았다.&lt;br /&gt;
:新安陳氏曰。上言學校施敎之法。此言君身為立敎之本。卽所謂為億兆君師繼天立極者也。躬行心得。謂躬行仁義禮智之道。心得仁義禮智之德。卽行道而有得於心也。彛倫。常理也。&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앞에서는 학교에서 교육하는 방식에 대해 말했고, 여기서는 임금 자신이 가르침을 세우는(즉 교육제도를 만듦과 동시에 교육의 본보기가 되는) 근본이 됨을 말했으니, 곧 이른바 '뭇 백성의 임금이자 스승이 되어 하늘을 잇고 법도를 세운다'는 것이다. '躬行心得'은 몸소 인의예지의 도리를 실천하고, 인의예지라는 덕을 마음으로 터득하는 것이니, 즉 도를 실천해 마음으로 터득하는 것이다. '彛倫'은 일상적인 도리이다.&amp;quot;&lt;br /&gt;
&lt;br /&gt;
是以當世之人無不學。其學焉者。無不有以知其性分&amp;lt;sub&amp;gt;去聲下同&amp;lt;/sub&amp;gt;之所固有。職分之所當為。而各俛&amp;lt;sub&amp;gt;音免&amp;lt;/sub&amp;gt;焉以盡其力。&amp;lt;br/&amp;gt;&lt;br /&gt;
이 때문에 당시 사람들 가운데 배우지 않았던 자가 없었고, [태학에서] 배웠던 자들 가운데 자신의 성에 본래부터 있었던 것과 직분상 마땅히 해야할 것을 알아서 각자 노력해 자신의 힘을 다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lt;br /&gt;
:雲峯胡氏曰。前說上之所以為敎。此說下之所以為學。&amp;lt;br/&amp;gt;&lt;br /&gt;
:운봉 호씨가 말했다: &amp;quot;앞에서는 윗사람이 가르치는 방식을 말했고, 여기서는 아랫사람이 배우는 방식을 말한다.&amp;quot;&lt;br /&gt;
:○新安陳氏曰。性分固有。卽仁義禮智。是理是體。職分當為。如子職分當孝。臣職分當忠之類。是事是用。知性分職分。是知之事。俛焉盡力。是行之事。與前知性之所有而全之相照應。&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性分固有'는 곧 인의예지이니, 理이자 體이다. '職分當為'는 자식의 직분은 마땅히 효도해야 하고, 신하의 직분은 마땅히 충성해야 하는 것 등이니, 事이자 用이다. '知性分職分'은 앎의 일이고, '俛焉盡力'은 실천의 일이니, 앞의 '知性之所有而全之'와 호응된다.&amp;quot;&lt;br /&gt;
&lt;br /&gt;
此古昔盛時所以治&amp;lt;sub&amp;gt;去聲下同&amp;lt;/sub&amp;gt;隆於上。俗美於下。而非後世之所能及也。&amp;lt;br/&amp;gt;&lt;br /&gt;
이것이 과거 성대했던 때에 위에서는 통치가 훌륭하고 아래에서는 풍속이 아름다웠던 까닭이니, 후세가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lt;br /&gt;
&lt;br /&gt;
4.&amp;lt;br/&amp;gt;&lt;br /&gt;
及周之衰。賢聖之君不作。學校之政不修。敎化陵夷。風俗頹&amp;lt;sub&amp;gt;徒回反&amp;lt;/sub&amp;gt;敗。時則有若孔子之聖。而不得君師之位以行其政敎。於是獨取先王之法。誦而傳之。以詔後世。&amp;lt;br/&amp;gt;&lt;br /&gt;
주 왕조가 쇠퇴하자 성현다운 임금이 흥기하지 않고 교육 정책이 닦이지 않아, 교화는 쇠퇴했고 풍속은 타락했다. 이 때 공자 같은 성인이 계셨지만 임금이자 스승으로서의 지위를 얻어 정치와 가르침을 행할 수 없으셨다. 이에 공자께서는 오직 선왕의 법도를 취해 이를 외고 전달해 후세에게 알려주셨다.&lt;br /&gt;
:新安陳氏曰。皇帝生當天地氣運盛時。所以達而在上。以身為敎。而道行於當世。孔子當天地氣運衰時。不免窮而在下。以言為敎。傳諸其徒。而道明於後世而已。&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황제가 살아있을 때에는 천지의 기운이 성대한 때를 만나 현달하여 임금의 자리에 있게 되었으므로, 몸소 가르침을 행해 도가 당시에 행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공자께서는 천지의 기운이 쇠한 때를 만나 곤궁하여 아랫자리에 있음을 면하지 못했으므로,  말로 가르침을 행해 제자들에게 전했고 도가 후세에나 밝혀질 수 있었을 뿐이다.&amp;quot; &lt;br /&gt;
&lt;br /&gt;
若曲禮少&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儀內則弟子職諸篇。固小學之支流餘裔&amp;lt;sub&amp;gt;餘制反&amp;lt;/sub&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곡례&amp;gt;·&amp;lt;소의&amp;gt;·&amp;lt;내칙&amp;gt;·&amp;lt;제자직&amp;gt; 등의 여러 편은 본래 소학의 지류이자 말단이지만,&lt;br /&gt;
:○番易齊氏曰。曲禮少儀內則。見禮記。弟子職。見管子。此四篇作於春秋時。三代小學之全法。僅存其一二。故曰支流餘裔。支流。水之旁出而非正流者。餘裔。衣裾之末也。&amp;lt;br/&amp;gt;&lt;br /&gt;
:파양 제씨가 말했다: &amp;quot;&amp;lt;곡례&amp;gt;·&amp;lt;소의&amp;gt;·&amp;lt;내칙&amp;gt;은 &amp;lt;예기&amp;gt;에 보이고, &amp;lt;제자직&amp;gt;은 &amp;lt;관자&amp;gt;에 보인다. 이 네 편은 춘추 시대에 지어졌다. 삼대 소학의 전체 교법 가운데 겨우 한두 가지만 보존되었으므로 '支流·餘裔'라고 한 것이다. '지류'는 물이 옆으로 흘러나와 바른 줄기가 아닌 것이고, '餘裔'는 옷자락 끝이다.&amp;quot;&lt;br /&gt;
&lt;br /&gt;
而此篇者。則因小學之成功。以著大學之明法。外有以極其規模之大。而內有以盡其節目之詳者也。&amp;lt;br/&amp;gt;&lt;br /&gt;
이 편(&amp;lt;대학&amp;gt;)은 소학에서 이룬 공부를 기반으로 태학의 밝은 교법을 드러내는 것이니, 밖으로는 規模의 큼을 지극히 하고, 안으로는 節目의 상세함을 다한다.&amp;quot;&lt;br /&gt;
:問外有以極其規模之大。內有以盡其節目之詳。朱子曰。這箇須先識得外面一箇規模如此大了。而內做工夫以實之。凡人為學。便當以[明]&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4 &amp;lt;대학1&amp;gt; 問：「外有以極其規模之大，內有以盡其節目之詳。」曰：「這丢須先識得外面一丢規模如此大了，而內做工夫以實之。所謂規模之大，凡人為學，便當以『明明德，新民，止於至善』，及『明明德於天下』為事，不成只要獨善其身便了。須是志於天下，所謂『志伊尹之所志，學顏子之所學也』。所以大學第二句便說『在新民』。」&amp;lt;/ref&amp;gt;明德新民止於至善。及明明德於天下為事。不成只要獨善其身便了。須是志於天下。所謂志伊尹之所志。學顔子之所學也。所以大學第二句。便說在新民。&amp;lt;br/&amp;gt;&lt;br /&gt;
:&amp;quot;外有以極其規模之大。內有以盡其節目之詳。&amp;quot;에 대해 물었다.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이는 반드시 밖의 규모가 이처럼 큼을 먼저 알고서 안으로 공부를 해 채워야 한다. 무릇 사람이 학문한다면 마땅히 '明明德'·'新民'·'止於至善'해서 '明明德於天下'함을 일삼아야지, 그저 자신만 선하게 해서는 안 된다.&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진심상&amp;gt; 9. 古之人，得志，澤加於民；不得志，脩身見於世。窮則獨善其身，達則兼善天下。&amp;lt;/ref&amp;gt; 반드시 천하에 뜻을 두어야 하니, 이른바 '이윤이 지향한 것을 지향하고, 안연이 배운 것을 배우라'&amp;lt;ref&amp;gt;&amp;lt;通書&amp;gt; &amp;lt;志學第十&amp;gt; 志伊尹之所志。學顔子之所學也。&amp;lt;/ref&amp;gt;는 것이다. 그러므로 &amp;lt;대학&amp;gt;의 두 번째 구절에서 '新民'을 설하고 있는 것이다.&amp;quot; (1. 공부 과정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공부의 공효는 사회/국가/천하에 미친다. 즉 전자가 節目之詳이고 후자가 規模之大이다.)&lt;br /&gt;
:○新安陳氏曰。規模之大。指三綱領。節目之詳。指八條目。孔子時。方有大學一章之經。&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規模之大'는 삼강령을 가리키고, '節目之詳'은 팔조목을 가리킨다. 공자 때가 돼서야 비로소 &amp;lt;대학&amp;gt; 1장의 경문이 있게 되었다.&amp;quot; (2. 삼강령이 대원칙이고, 팔조목이 그에 대한 구체적 실천 방법이다.  즉 전자가 規模之大이고 후자가  節目之詳이다.)&lt;br /&gt;
:○東陽許氏曰。規模節目。以三綱八條對言。則三綱為規模。八條為節目。謂八條卽三綱中事也。獨以八條言之。則平天下為規模。上七條為節目。平天下是大學之極功。然須是有上七條。節節做工夫。行至于極。然後可以天下平。&amp;lt;br/&amp;gt;&lt;br /&gt;
:동양 허씨가 말했다: &amp;quot;'規模'와 '節目'을 삼강령과 팔조목으로 대대해서 말하면, 삼강령이 '規模'이고 팔조목이 '節目'이니, 팔조목은 곧 삼강령 안의 일이다. 오직 팔조목만 말한다면 '平天下'가 '規模'가 되고, 앞의 일곱 조목은 '節目'이 된다. '平天下'는 &amp;lt;대학&amp;gt;의 궁극적 공효지만, 앞의 일곱 조목마다 공부해서 그 실천이 지극한 경지에 이른 연후에야 천하가 평안해질 수 있다.&amp;quot;&amp;lt;ref&amp;gt;&amp;lt;주자어류&amp;gt; 권14 &amp;lt;대학1&amp;gt; 明德，新民，便是節目；止於至善，便是規模之大。(3. 止於至善이 궁극적 목표이고,  明德，新民은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두 단계의 세부 과정이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三千之徒。蓋莫不聞其說。而曾氏之傳獨得其宗。於是作為傳&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義。以發其意。&amp;lt;br/&amp;gt;&lt;br /&gt;
[공자의] 삼천 제자 가운에 이러한 설을 듣지 못한 자가 없었지만, 증자가 전수받은 것만이 그 종지를 얻었다. 이에 [&amp;lt;대학&amp;gt;의] 傳義(文義에 대한 해설)를 지어 공자의 뜻을 드러냈다.&amp;lt;ref&amp;gt;義와 意의 차이: &amp;lt;논어집주&amp;gt; &amp;lt;讀論語孟子法&amp;gt; 程子曰：「凡看文字，須先曉其文義，然後可以求其意。未有不曉文義而見意者也。」&amp;lt;/ref&amp;gt;&lt;br /&gt;
:曾子方有今大學之傳。以發明孔子之意。&amp;lt;br/&amp;gt;&lt;br /&gt;
:증자가 비로소 오늘날의 &amp;lt;대학&amp;gt;의 傳을 두어 공자의 뜻을 발명했다.&lt;br /&gt;
&lt;br /&gt;
及孟子沒而其傳泯&amp;lt;sub&amp;gt;音閔&amp;lt;/sub&amp;gt;焉。則其書雖存。而知者鮮&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矣。&amp;lt;br/&amp;gt;&lt;br /&gt;
맹자가 돌아가시고 나서 전수가 민멸되어, &amp;lt;대학&amp;gt; 텍스트는 비록 남아있었지만 [그 의미를] 아는 자는 드물었다.&lt;br /&gt;
&lt;br /&gt;
5.&amp;lt;br/&amp;gt;&lt;br /&gt;
自是以來。俗儒記誦詞章之習。其功倍於小學而無用。&amp;lt;br/&amp;gt;&lt;br /&gt;
이때부터 속유들이 記誦·詞章을 익히는 공력이 소학에 배가 되었으나 쓸모가 없었다.&lt;br /&gt;
:朱子曰。自聖學不傳。為士者不知學之有本。而所以求於書。不越乎記誦訓詁文詞之間。是以天下之書愈多而理愈昧。學者之事愈勤而心愈放。詞章愈麗。議論愈高。而其德業事功之實。愈無以逮乎古人。&amp;lt;br/&amp;g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聖學이 전해지지 않은 뒤로 선비들이 학문에 근본이 있음을 알지 못해, 책에서 찾는 것이라곤 記誦·訓詁·文詞 사이를 넘지 못했다. 그러므로 천하에 책이 더 많아질수록 이치는 더욱 어두워졌고, 배우는 자들이 더 열심히 노력할수록 그들의 마음은 더욱 방탕해졌으며, 詞章은 더욱 아름다워지고 議論은 더욱 고원해졌지만 德業·事功의 성과는 더욱 고인에 미치지 못했다.&amp;quot;&lt;br /&gt;
:○新安陳氏曰。記誦。口耳之學。詞章。枝葉之文。&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記誦'은 단순 암기의 학문(口耳之學)이요, '詞章'은 지엽적인(하찮은) 글쓰기(枝葉之文)이다.&amp;quot;&lt;br /&gt;
&lt;br /&gt;
異端虛無寂滅之敎。其高過於大學而無實。&amp;lt;br/&amp;gt;&lt;br /&gt;
이단의 虛無(도가)·寂滅(불교)한 가르침은 고원하기가 &amp;lt;대학&amp;gt;을 넘어섰으나 실질이 없었고,&lt;br /&gt;
:問異端何以高而無實。朱子曰。吾儒便著讀書。逐一就事物上理會道理。異端便都掃了。只恁地空空寂寂。便道事都了。若將些子事付之。便都沒奈何。&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이단은 어째서 고원하지만 실질이 없습니까?&amp;quo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우리 유가는 책을 읽어 하나하나 사물에서 도리를 이해하지만, 이단은 [그런 것들을] 모두 쓸어버리고는 그저 이처럼 거듭 비우고 거듭 고요하게만 하고서 '일이 모두 끝났다'고 말하는데, 만약 약간의 일이라도 맡기면 전혀 어찌하지 못한다.&amp;quot;&lt;br /&gt;
:○雲峯胡氏曰。此之虛。虛而有。彼之虛。虛而無。此之寂。寂而感。彼之寂。寂而滅。所以高而無實。&amp;lt;br/&amp;gt;&lt;br /&gt;
:운봉 호씨가 말했다: &amp;quot;여기(유가)의 '虛'는 虛하면서도 有하지만, 저기(도가)의 '虛'는 虛하면서 無이다. 여기(유가)의 '寂'는 寂하면서도 感하지만,&amp;lt;ref&amp;gt;&amp;lt;주역&amp;gt; &amp;lt;계사전상&amp;gt; 寂然不動，感而遂通天下之故。&amp;lt;/ref&amp;gt; 저기(도가)의 '寂'는 寂하면서 滅이다. 그래서 [저들은] 고원하면서도 실질이 없는 것이다.&amp;quot;&lt;br /&gt;
:○新安陳氏曰。老氏虛無。佛氏寂滅。&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老氏(도가)가 '虛無'이고, 佛氏(불교)가' 寂滅'이다.&amp;quot;&lt;br /&gt;
&lt;br /&gt;
其他權謀術數。一切以就功名之說。與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百家衆技之流。所以惑世誣民。充塞&amp;lt;sub&amp;gt;先則反下同&amp;lt;/sub&amp;gt;仁義者&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등문공하&amp;gt; 楊墨之道不息，孔子之道不著，是邪說誣民，充塞仁義也。&amp;lt;/ref&amp;gt;。又紛然雜出乎其間。&amp;lt;br/&amp;gt;&lt;br /&gt;
나머지 권모술수를 [부려] 공명을 추구하는 일체의 설과 저 각종 재주를 [부리는] 제자백가 부류들이 혹세무민하여 인의(유가)를 막는 경우가 또 어지럽게 그 사이에서 뒤섞여 나와,&lt;br /&gt;
:朱子曰。秦漢以來。隨世以就功名者。未必自其本而推之。是以天理不明而人欲熾。道學不傳而異端起。人挾其私智。以馳騖於一世。&amp;lt;br/&amp;g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秦漢이래로 시대에 따라 功名을 좇는 자들이 반드시 근본으로부터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천리는 밝혀지지 않고 인욕은 타올랐으며, 도학은 전해지지 않고 이단은 흥기해, 사람들은 자신의 꾀(私智)에 의지해 한 시대를 풍미했다.&amp;quot;&lt;br /&gt;
:○新安陳氏曰。權謀術數。謂管仲商鞅等。百家衆技。如九流等是也。&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權謀術數'는 관중·상앙 등을 말하고, '百家衆技'는 예를 들면 '九流'&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先秦的九個學術流派。▶ 《漢書‧敘傳下》： “ 劉向 司籍， 九流以別。” ▶ 顏師古 注引 應劭 曰： “儒、道、陰、陽、法、名、墨、從橫、雜、農， 凡九家。”&amp;lt;/ref&amp;gt; 등이 이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使其君子。不幸而不得聞大道之要。其小人。不幸而不得蒙至治之澤。晦盲&amp;lt;sub&amp;gt;眉庚反&amp;lt;/sub&amp;gt;否塞。&amp;lt;br/&amp;gt;&lt;br /&gt;
군자(치자)들로 하여금 불행히 위대한 도의 핵심을 듣지 못하게 하였고, 소인(피치자)들로 하여금 불행히 이상적 통치의 은택을 입지 못하게 해, [그들로 하여금] 어둡고 막히며,&lt;br /&gt;
:東陽許氏曰。如月之晦。如目之盲。如氣之否。如川之塞。晦盲。言不明。否塞。言不行。&amp;lt;br/&amp;gt;&lt;br /&gt;
:동양 허씨가 말했다: &amp;quot;달이 그믐인 것 같고, 눈이 먼 것 같으며, 기가 막힌 것 같고, 개울이 막힌 것 같은 것이다. '晦盲'은 밝지 않은 것(不明, 밝혀지지 않은 것)이고, '否塞'은 흐르지 않는 것(不行, 실천되지 않는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反覆沈&amp;lt;sub&amp;gt;俗作沉非&amp;lt;/sub&amp;gt;痼&amp;lt;sub&amp;gt;音固&amp;lt;/sub&amp;gt;。&amp;lt;br/&amp;gt;&lt;br /&gt;
엎어지고(反覆) 잠기고(沈) 병들게 되었는데(痼), &lt;br /&gt;
:○東陽許氏曰。反覆。是展轉愈深而不可去底意。沈。如物沒於水而不可浮。痼。如病著於身而不可愈。&amp;lt;br/&amp;gt;&lt;br /&gt;
:동양 허씨가 말했다: &amp;quot;'反覆'은 더욱 깊은 곳으로 굴러 떨어져 떠나지 못한다는 뜻이다. '沈'은 사물이 물에 잠겨 떠오르지 못하는 것과 같다. '痼'는 몸에 병이 나 나을 수 없는 것과 같다.&amp;quot;&lt;br /&gt;
&lt;br /&gt;
以及五季&amp;lt;sub&amp;gt;謂梁唐晉漢周。五代季世。&amp;lt;/sub&amp;gt;之衰。而壞亂極矣。&amp;lt;br/&amp;gt;&lt;br /&gt;
[당나라 이후] 五季의 쇠퇴한 시절에 이르러 혼란이 극에 달했다. &lt;br /&gt;
:雲峯胡氏曰。惑世誣民。使斯民昏而不能知。充塞仁義。使斯道壅而不能行。晦盲。全無能知者。否塞。全無能行者。所以為壞亂之極也。大道之要。是大學書中所載者。至治之澤。是自大學中流出者。上之人無能知此大學。故君子不得聞大道之要。上之人無能行此大學。故小人不得蒙至治之澤。&amp;lt;br/&amp;gt;&lt;br /&gt;
:운봉 호씨가 말했다: &amp;quot;'혹세무민'해서 이 백성들로 하여금 어리석어 알지 못하게 하고, '인의를 막아(充塞仁義)' 이 도로 하여금 막혀 행해지지 못하게 했다. '晦盲'은 전혀 알 수 없는 것이고, '否塞'은 전혀 실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혼란의 극이 된 것이다. '大道之要'는 &amp;lt;대학&amp;gt;에 기록된 것이고, '至治之澤'은 &amp;lt;대학&amp;gt;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윗사람이 이 &amp;lt;대학&amp;gt;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군자가 위대한 도의 핵심을 듣지 못했고', 윗사람이 이 &amp;lt;대학&amp;gt;을 실천하지 못했으므로 '소인이 완벽한 통치의 은택을 입지 못했다'.&amp;quot;&lt;br /&gt;
&lt;br /&gt;
6.&amp;lt;br/&amp;gt;&lt;br /&gt;
天運循環。無往不復。宋德隆盛。治敎休明。於是河南程氏兩夫子出。&amp;lt;br/&amp;gt;&lt;br /&gt;
하늘의 운수는 순환하기 때문에 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은 없으니, 송나라의 덕이 융성하여 통치와 교화가 아름답게 빛났다. 이때 하남 정씨 두 부자께서 나오셔서,&lt;br /&gt;
:伯子諱顥。字伯淳。號明道先生。叔子諱頤。字正叔。號伊川先生。&amp;lt;br/&amp;gt;&lt;br /&gt;
:첫째의 성함은 '호(顥)'이고 字는 '백순(伯淳)'이며, 號는 '명도선생(明道先生)'이다. 셋째의 성함은 '이(頤)'이고 字는 '정숙(正叔)'이며 號는 '이천선생(伊川先生)'이다.&lt;br /&gt;
&lt;br /&gt;
而有以接乎孟氏之傳。實始尊信此篇而表章之。旣又為&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之次其簡編。發其歸趣&amp;lt;sub&amp;gt;音娶&amp;lt;/sub&amp;gt;。&amp;lt;br/&amp;gt;&lt;br /&gt;
맹자의 전수를 이으셨으니, 실질적으로 처음 이 편(&amp;lt;대학&amp;gt;)을 존신하시고 표창하신 것이다. 이어서 또 &amp;lt;대학&amp;gt;에 대해서 텍스트의 차례를 손보고 그 의미를 드러내셨는데, &lt;br /&gt;
:○新安陳氏曰。孟子沒而其傳泯焉。至二程夫子出。而絶學復傳。於是始拔大學篇於戴記之中而尊信之。又整頓其錯亂之簡而發揮之。但未成書耳。&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맹자께서 돌아가시자 전수되던 것이 민멸됐었는데, 이정 선생이 나오시고 나서 끊어졌던 학문이 다시 전해졌다. 이때 [이정 선생께서] 처음 &amp;lt;소대례기&amp;gt; 안에서 &amp;lt;대학&amp;gt;편을 독립시켜 존신하셨고, 또 뒤섞인 죽간을 정돈해 [그 의미를] 드러내셨다. 그러나 책을 완성하시지는 않았다.&amp;quot;&lt;br /&gt;
&lt;br /&gt;
然後古者大學敎人之法。&amp;lt;br/&amp;gt;&lt;br /&gt;
그런 연후에야 옛 태학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던 교법과 &lt;br /&gt;
:此八字收拾序文起句。&amp;lt;br/&amp;gt;&lt;br /&gt;
:이 여덟 글자(古者大學敎人之法)는 &amp;lt;대학장구서&amp;gt; 앞쪽 구절을 모은 것이다.&lt;br /&gt;
&lt;br /&gt;
聖經賢傳&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之指。粲然復&amp;lt;sub&amp;gt;扶又反&amp;lt;/sub&amp;gt;明於世。雖以熹之不敏。亦幸私淑而與&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有聞焉。&amp;lt;br/&amp;gt;&lt;br /&gt;
聖經賢傳(성인이 지은 經에 현인이 傳을 달아 해석함)의 뜻이 찬연하게 다시 세상에 밝혀졌으니, 비록 불민한 나도 다행히 사숙해서&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이루하&amp;gt; 22. 予未得為孔子徒也，予私淑諸人也。&amp;lt;/ref&amp;gt; 그것을 들을 수 있었다&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자로&amp;gt; 14. 雖不吾以，吾其與聞之。&amp;lt;/ref&amp;gt;. &lt;br /&gt;
:新安陳氏曰。孟子云。予未得為孔子徒也。予私淑諸人也。此用其語。謂聞程子之敎於延平李先生諸公。&amp;lt;br/&amp;g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맹자께서 '나는 공자의 제자가 될 수는 없었지만, [자사의 제자에게]&amp;lt;ref&amp;gt;&amp;lt;맹자집주&amp;gt; &amp;lt;이루하&amp;gt; 22. 人，謂子思之徒也。&amp;lt;/ref&amp;gt; 사숙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을 인용한 것이다. 정자의 가르침을 연평 선생 등 여러 공께 들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amp;quot;&lt;br /&gt;
:○東陽許氏曰。私淑者。私善於人。孟子不得為孔子之徒。而私善於再傳之子思。朱子不得為程子之徒。而私善於三傳之李氏。此私淑字最切。&amp;lt;br/&amp;gt;&lt;br /&gt;
:동양 허씨가 말했다: &amp;quot;'私淑'이라는 것은 남을 통해 스스로를 선하게 하는 것이다. 맹자께서는 공자의 제자가 될 수 없어서 [공자의] 재전제자인 자사를 통해 스스로를 선하게 하셨고, 주자께서는 정자의 제자가 될 수 없어서 [정자의] 삼전제자인 연평 선생(李氏)을 통해 스스로를 선하게 하셨다. 여기의 '私淑'이라는 단어가 가장 절실하다.&amp;quot;&lt;br /&gt;
&lt;br /&gt;
顧其為書猶頗放失。是以忘其固陋。采而輯&amp;lt;sub&amp;gt;音集&amp;lt;/sub&amp;gt;之。間亦竊附己意。補其闕略。&amp;lt;br/&amp;gt;&lt;br /&gt;
그런데 &amp;lt;대학&amp;gt; 텍스트가 여전히 상당히 방실되었기 때문에, 내 고루함을 [잠시] 잊고서 [주제넘게 방실된 부분을 다른 곳에서] 찾아 모으고 그 사이에 다시 삼가 내 생각을 덧붙여 빠진 부분을 보충하고서,&lt;br /&gt;
:謂補傳之第五章。&amp;lt;br/&amp;gt;&lt;br /&gt;
:傳의 제5장을 보충한 것을 말한다.&lt;br /&gt;
&lt;br /&gt;
以俟後之君子。極知僭踰。無所逃罪。然於國家化民成俗之意。學者修己治人之方。則未必無小補云。&amp;lt;br/&amp;gt;&lt;br /&gt;
훗날의 군자를 기다린다. 주제 넘는 짓이라 죄를 피할 길이 없음을 너무나 잘 알지만, 국가가 백성을 교화시키고 풍속을 이루는 뜻과 배우는 자가 수기치인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조그만 보탬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lt;br /&gt;
:脩己治人四字。包盡大學體用綱目。&amp;lt;br/&amp;gt;&lt;br /&gt;
:'脩己治人' 네 자는 &amp;lt;대학&amp;gt;의 體用·綱目을 모두 포괄한다.&lt;br /&gt;
&lt;br /&gt;
7.&amp;lt;br/&amp;gt;&lt;br /&gt;
淳熙己酉二月甲子新安朱熹序。&amp;lt;br/&amp;gt;&lt;br /&gt;
순희 기유년(1189) 2월 갑자일에 신안 주희가 서문을 쓴다.&lt;br /&gt;
:新安陳氏曰。此序分六節。精義尤在第二節。曰知其性之所有而全之。曰敎之以復其初是也。朱子論學。必以復性初為綱領要歸。論語首註學字。曰人性皆善。曰明善而復其初。小學題辭曰。仁義禮智。人性之綱。曰德崇業廣。乃復其初。此書首釋明明德。亦曰遂明之以復其初。與此序凡四致意焉。聖人盡性。盡其本全者也。學者復其性。復而後能全也。欲知性之所有。在格物致知。欲復全其性之所有。在誠意正心脩身。以力於行而已。讀此序此書者。其以知性之所有。與復其性初為要領。以知行為工夫而融貫其旨云。&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이 &amp;lt;대학장구서&amp;gt;는 여섯 단락으로 나눠지는데,&amp;lt;ref&amp;gt;신안 진씨는 &amp;quot;大學之書，古之大學所以教人之法也。&amp;quot;을 한 단락으로, 다음 &amp;quot;蓋自天降生民，則既莫不與之以仁義禮智之性矣。然其氣質之稟或不能齊，是以不能皆有以知其性之所有而全之也。一有聰明睿智能盡其性者出於其閒，則天必命之以為億兆之君師，使之治而教之，以復其性。此伏羲、神農、黃帝、堯、舜，所以繼天立極，而司徒之職、典樂之官所由設也。&amp;quot;을 또 한 단락으로 본 듯 하다.&amp;lt;/ref&amp;gt; 핵심적 의미(精義)는 두 번째 단락에 있으니, '모든 사람이 性에 있는 [인의예지를] 알고서 이를 온전히 한다', '가르쳐 자신의 처음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것이 이것이다. 주자께서 학문을 말씀하실 때에는 반드시 '본성을 회복하는 것(復性)'을 강령·핵심으로 삼으셨다. &amp;lt;논어&amp;gt;에서 '學'자에 주석을 다시길: '사람의 본성은 모두 선하다', '선을 밝혀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amp;lt;ref&amp;gt;&amp;lt;논어집주&amp;gt; &amp;lt;학이&amp;gt; 學之為言效也。人性皆善，而覺有先後，後覺者必效先覺之所為，乃可以明善而復其初也。&amp;lt;/ref&amp;gt;고 하셨고, &amp;lt;소학제사&amp;gt;에서 말씀하시길: '인의예지는 사람 본성의 벼리이다', '덕이 높고 업이 넓어야 처음으로 돌아간다'고 하셨으며, 이 책(&amp;lt;대학장구&amp;gt;)의 처음에 '명명덕'을 풀이하시며 또한 '마침내 밝혀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故學者當因其所發而遂明之，以復其初也。&amp;lt;/ref&amp;gt;고 하셨으니, 이 &amp;lt;대학장구서&amp;gt;까지 총 네 곳에서 자신의 뜻을 드러내셨다. '聖人盡性'은 본래 온전한 것을 지극히 하는 것이요, '學者復其性'은 돌아간 이후에야 온전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성에 있는 것을 알고자 하는 것은 格物·致知에 달렸고, 성에 있는 것을 다시 온전히 하고자 하는 것은 誠意·正心·脩身해 실천에 힘을 다하는 것에 달려있을 뿐이다. 이 &amp;lt;대학장구서&amp;gt;와 이 &amp;lt;대학&amp;gt;을 읽는 자는 '성에 있는 것을 아는 것'과 '본성(性初)으로 돌아가는 것'을 핵심으로 삼고 知行을 공부 방법으로 삼아서 그 종지를 완전히 깨달을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대학 경문/전문/혹문==&lt;br /&gt;
'''大學章句大全'''&lt;br /&gt;
:大，舊音泰，今讀如字。	&lt;br /&gt;
:子程子曰：「大學，孔氏之遺書，而初學入德之門也。」於今可見古人為學次第者，獨賴此篇之存，而論、孟次之。學者必由是而學焉，則庶乎其不差矣。&lt;br /&gt;
&lt;br /&gt;
===經一章===&lt;br /&gt;
大學之道，在明明德，在親民，在止於至善。&lt;br /&gt;
:程子曰：「親，當作新。」大學者，大人之學也。明，明之也。明德者，人之所得乎天，而虛靈不昧，以具眾理而應萬事者也。但為氣稟所拘，人欲所蔽，則有時而昏；然其本體之明，則有未嘗息者。故學者當因其所發而遂明之，以復其初也。新者，革其舊之謂也，言既自明其明德，又當推以及人，使之亦有以去其舊染之污也。止者，必至於是而不遷之意。至善，則事理當然之極也。言明明德、新民，皆當至於至善之地而不遷。蓋必其有以盡夫天理之極，而無一毫人欲之私也。此三者，大學之綱領也。&lt;br /&gt;
&lt;br /&gt;
知止而后有定，定而后能靜，靜而后能安，安而后能慮，慮而后能得。&lt;br /&gt;
:后，與後同，後放此。止者，所當止之地，即至善之所在也。知之，則志有定向。靜，謂心不妄動。安，謂所處而安。慮，謂處事精詳。得，謂得其所止。&lt;br /&gt;
&lt;br /&gt;
物有本末，事有終始，知所先後，則近道矣。&lt;br /&gt;
:明德為本，新民為末。知止為始，能得為終。本始所先，末終所後。此結上文兩節之意。&lt;br /&gt;
&lt;br /&gt;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先治其國；欲治其國者，先齊其家；欲齊其家者，先脩其身；欲脩其身者，先正其心；欲正其心者，先誠其意；欲誠其意者，先致其知；致知在格物。&lt;br /&gt;
:治，平聲，後放此。明明德於天下者，使天下之人皆有以明其明德也。心者，身之所主也。誠，實也。意者，心之所發也。實其心之所發，欲其一於善而無自欺也。致，推極也。知，猶識也。推極吾之知識，欲其所知無不盡也。格，至也。物，猶事也。窮至事物之理，欲其極處無不到也。此八者，大學之條目也。&lt;br /&gt;
&lt;br /&gt;
物格而后知至，知至而后意誠，意誠而后心正，心正而后身脩，身脩而后家齊，家齊而后國治，國治而后天下平。&lt;br /&gt;
:治，去聲，後放此。物格者，物理之極處無不到也。知至者，吾心之所知無不盡也。知既盡，則意可得而實矣，意既實，則心可得而正矣。脩身以上，明明德之事也。齊家以下，新民之事也。物格知至，則知所止矣。意誠以下，則皆得所止之序也。&lt;br /&gt;
&lt;br /&gt;
自天子以至於庶人，壹是皆以脩身為本。&lt;br /&gt;
:壹是，一切也。正心以上，皆所以脩身也。齊家以下，則舉此而措之耳。&lt;br /&gt;
&lt;br /&gt;
其本亂而末治者否矣，其所厚者薄，而其所薄者厚，未之有也！&lt;br /&gt;
:本，謂身也。所厚，謂家也。此兩節結上文兩節之意。&lt;br /&gt;
&lt;br /&gt;
*右經一章，蓋孔子之言，而曾子述之。&lt;br /&gt;
::凡二百五字。&lt;br /&gt;
*其傳十章，則曾子之意而門人記之也。舊本頗有錯簡，今因程子所定，而更考經文，別為序次如左。&lt;br /&gt;
::凡千五百四十六字。凡傳文，雜引經傳，若無統紀，然文理接續，血脈貫通，深淺始終，至為精密。熟讀詳味，久當見之，今不盡釋也。&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혹문의 원전 [https://www.kanripo.org/text/KR1h0043/000#15a 링크]&lt;br /&gt;
&lt;br /&gt;
====『혹문』 경1장====&lt;br /&gt;
1. &amp;lt;대학&amp;gt;과 &amp;lt;소학&amp;gt;의 구분&lt;br /&gt;
或問: “大學之道, 吾子以爲大人之學, 何也?”&amp;lt;br/&amp;gt;&lt;br /&gt;
혹자가 물었다: &amp;quot;'大學之道'를 그대가 '대인의 학문(大人之學)'이라고 한 것은 어째서인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lt;br /&gt;
曰: “此對小子之學言之也.”&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이는 '아이의 학문(小子之學)'에 대비해 말한 것이다.&amp;quot;&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2. &amp;lt;소학&amp;gt;이란?&lt;br /&gt;
&lt;br /&gt;
曰: “敢問其爲小子之學, 何也?”&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감히 묻건대, '아이의 학문'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lt;br /&gt;
曰: “愚於序文已畧陳之. 而古法之宜於今者, 亦旣輯而爲書矣,&amp;lt;sub&amp;gt;即今之小學書&amp;lt;/sub&amp;gt; 學者不可以不之考也.”&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내가 서문(&amp;lt;대학장구서&amp;gt;)에서 이미 간략하게 말했고, 옛 법도 가운데 오늘날에 적합한 것을 역시 이미 모아 책을 만들었으니,&amp;lt;sub&amp;gt;즉 오늘날의 &amp;lt;소학&amp;gt;이다.&amp;lt;/sub&amp;gt; 배우는 자들이 이를 고찰하지 않아선 안 될 것이다.&amp;quot;&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3. &amp;lt;대학&amp;gt;과 &amp;lt;소학&amp;gt; 간의 관계&lt;br /&gt;
&lt;br /&gt;
曰: “吾聞君子務其遠者大者, 小人務其近者小者. 今子方將語&amp;lt;sub&amp;gt;音御&amp;lt;/sub&amp;gt;人以大學之道, 而又欲其考乎『小學』之書, 何也?”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내가 듣기에 군자는 고원한 것·거대한 것에 힘쓰고, 소인은 비근한 것·사소한 것에 힘쓴다고 하는데, 지금 그대는 사람들에게 '大學之道'를 말하면서 다시 그들로 하여금 &amp;lt;소학&amp;gt;을 고찰하게 하려는 것은 어째서인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朱子曰: &amp;quot;&amp;lt;小學&amp;gt;書是做人底樣子.&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amp;lt;소학&amp;gt;은 사람을 만드는 틀이다.&amp;quot;&lt;br /&gt;
:○問小學大學之别. 曰: &amp;quot;小學大學只是一箇事. 小學是學事親事長; 大學便就上面講究委曲其所以事親事長是如何.&amp;quot;&lt;br /&gt;
:小學과 大學의 차이에 대해 물었다. 대답하셨다: &amp;quot;小學과 大學은 하나의 일일 뿐이다. 소학은 부모를 섬기고 어른을 섬기는 것을 배우는 것이고, 대학은 그 위에서 부모를 섬기고 어른을 섬기는 까닭이 무엇인지 강구하고 상세히 살피는 것이다.&amp;quot;&lt;br /&gt;
:○古人由小學而進於大學, 其於洒掃應對進退之間, 持守堅定, 涵養純熟, 固已久矣. 大學之序, 特因小學已成之功.&lt;br /&gt;
:옛 분들은 소학을 거쳐 대학으로 나아가셨기 때문에, 쇄소응대·진퇴하는 때에 단속이 堅定하고 함양이 純熟했던 것이 진실로 매우 오래됐었다. [그러므로 삼강령·팔조목 같은] &amp;lt;대학&amp;gt;의 순서는 그저 소학에서 이미 이룬 결과에 기인할 뿐이다. &lt;br /&gt;
:○陳氏曰: &amp;quot;小學書綱領甚好, 最切於日用. 雖至大學之成, 亦不外是.&amp;quot;&lt;br /&gt;
:진씨가 말했다: &amp;quot;&amp;lt;소학&amp;gt;의 강령이 매우 좋으니, 일상 생활에 매우 비근하다. 비록 대학 [공부가 완성되더라도] 이를 벗어나지 않는다.&amp;quot; &lt;br /&gt;
&lt;br /&gt;
曰: “學之大小, 固有不同, 然其爲道則一而已. 是以方其幼也, 不習之於小學, 則無以收其放心, 養其德性, 而爲大學之基本.&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학문의 큰 것(대학)과 작은 것(소학)에는 진실로 차이가 있지만, 도를 추구한다는 점은 같을 뿐이다. 그러므로 어렸을 때 소학에서 익히지 않는다면 놓아버린 마음을 수습하고 덕성을 길러 대학의 기반으로 삼을 수 없고, &amp;lt;br/&amp;gt;&lt;br /&gt;
:或曰: &amp;quot;放心者, 或心起邪思妄念, 耳聽邪言, 目觀亂色, 口談不道之言, 以至手足動之不以禮, 皆是放也; 收者, 便於邪思妄念處, 截斷不續, 耳目言動皆然, 此謂之收. 既能收其放心, 徳性自然養得, 不是收放心外, 又養箇徳性也.&amp;quot; 朱子曰: &amp;quot;然.&amp;quot;&lt;br /&gt;
:혹자가 말했다. &amp;quot;방심이라는 것은 간혹 마음에 삿된 생각이나 망념이 일어나서 귀로는 거짓된 말을 듣고, 눈으로는 난색을 보며, 입으로는 도가 아닌 말을 하여 손과 발이 움직임에 예로 하지 않는데 이르게 되니, 모두 '放'인 것입니다. 거둔다는 것은 바로 삿된 생각이나 망념이 일어난 곳을 절단해서 이어지지 않게하는 것이니 귀, 눈, 말과 행동이 모두 그렇게 (잘못하지 않게) 되니 이것이 '收'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미 그 놓아버린 마음을 거둘 수 있다면 덕성은 자연히 길러질 수 있으니 놓아버린 마음을 거두는 것 이외에 또 덕성을 기르는 것이 아닙니다.&amp;quot; 주자가 말했다. &amp;quot;그렇다.&amp;quot;&lt;br /&gt;
:○西山真氏曰: &amp;quot;徳性謂得之於天者, 仁義禮智信, 是也; 徳性在心, 本皆全備, 縁放縱其心, 不知操存, 是致賊害其性. 若能收其放心, 即是養其徳性, 非二事也.&amp;quot;&lt;br /&gt;
:진덕수가 말하였다. &amp;quot;덕성이란 하늘에서 얻어진 것이니 인의예지신이 이것이요, 덕성은 마음 안에 있으니 본애 완전히 갖춰진 것이지만 그 마음을 방종하게 하면서도 잡아서 지킬 줄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 성을 해치는데 이른 것이다. 만약 그 놓아버린 마음을 거두어 들일 수 있다면 곧바로 덕성을 기르게 되는 것이지, 두 가지 일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amp;quot;&lt;br /&gt;
&lt;br /&gt;
及其長&amp;lt;sub&amp;gt;上聲下同&amp;lt;/sub&amp;gt;也, 不進之於大學, 則無以察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義理, 措諸事業, 而收小學之成功. &amp;lt;br/&amp;gt;&lt;br /&gt;
장성해서 태학에 진학하지 않으면 의리를 살피고 여러 사업을 주관해 소학에서의 성과를 거둘 수 없다. &amp;lt;br/&amp;g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察夫義理, 大學始事, 格致是也; 措諸事業, 大學終事, 齊治平是也.&amp;quot;&lt;br /&gt;
:옥계노씨가 말했다. &amp;quot;'察夫義理'란 대학의 시작이 되는 일이니 격물치지가 이것이고, '措諸事業'은 대학의 마지막이 되는 일이니, 제가·치국·평천하가 이것이다.&amp;quot;&lt;br /&gt;
是則學之大小所以不同, 特以少&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長所習之異宜, 而有高下淺深先後緩急之殊, 非若古今之辨, 義利之分, 判然如薰蕕&amp;lt;sub&amp;gt;音猶&amp;lt;/sub&amp;gt;冰炭之相反而不可以相入也.&amp;lt;sub&amp;gt;薰香草蕕臭草&amp;lt;/sub&amp;gt; 今使幼學之士, 必先有以自盡乎洒&amp;lt;sub&amp;gt;上去二聲&amp;lt;/sub&amp;gt;掃&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應對進退之間, 禮樂射御書數之習, 俟其旣長, 而後進乎明德·新民, 以止於至善, 是乃次第之當然, 又何爲而不可哉?”&amp;lt;br/&amp;gt;&lt;br /&gt;
이렇다면 학문의 큰 것과 작은 것의 차이는 그저 나이에 따라 익혀야 하는 것의 차이에 따라 高下·淺深·先後·緩急의 차이가 있는 것일 뿐이니, 고금의 차이·義利의 차이가 마치 薰蕕·冰炭이 상반되어 판연히 서로 섞일 수 없는 것과는 같지 않다. 이제 어린 선비로 하여금 반드시 우선 洒掃應對進退之間과 禮樂射御書數之習에 스스로 다하도록 하고, 그가 장성하기를 기다린 이후에 明德·新民·止於至善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야말로 당연한 순서이니, 또 무엇 때문에 불가하겠는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4. &amp;lt;소학&amp;gt;을 배우지 않고 장성한 사람의 학문 순서 문제(경공부)&lt;br /&gt;
&lt;br /&gt;
曰: “幼學之士, 以子之言而得循序漸進, 以免於躐等陵節之病, 則誠幸矣. 若其年之旣長, 而不及乎此者, 欲反從事於小學, 則恐其不免於扞格不勝、勤苦難成之患;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어린 선비가 그대의 말에 따라 순서를 얻어 점차 나아가 躐等·陵節&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超越制度規定之範圍。 &amp;lt;/ref&amp;gt;의 병폐를 면한다면 진실로 다행일 것이다. [그러나] 만일 장성했는대도 이에 미치지 못한 자가 반대로 [거슬러 올라가] 소학에 종사하고자 한다면  '[인욕에] 부딪혀 이기지 못하고 고생하더라도 이루기 힘든' 근심을 면하지 못할까 걱정스러우며, &amp;lt;br/&amp;gt;&lt;br /&gt;
:&amp;lt;記&amp;gt;&amp;lt;學記&amp;gt;&amp;quot;發然後禁, 則扞格而不勝; 時過然後學, 則勤苦而難成.&amp;quot;&amp;lt;sub&amp;gt;扞, 胡半反; 格, 胡客反. 勝, 平聲. 人欲既發而後禁之, 則扞拒堅强而不勝也.&amp;lt;/sub&amp;gt;&lt;br /&gt;
:『예기』, 「학기」편에서 &amp;quot;일어난 다음에 금지한다면 인욕에 부딪혀 이겨내지 못할 것이고, 때가 지난 다음에 배운다면 노력하고 고생하면서도 이루기가 어려울 것이다.&amp;quot; &amp;lt;sub&amp;gt;인욕이 이미 일어난 후에 금지하면 [인욕의] 저항이 견고하고 강해 이길 수 없다.&amp;lt;/sub&amp;gt;&lt;br /&gt;
&lt;br /&gt;
欲直從事於大學, 則又恐其失序無本, 而不能以自達也, 則如之何?”&amp;lt;br/&amp;gt;&lt;br /&gt;
[그렇다고] 바로 대학에 종사하고자 한다면 또한 순서를 어겨 근본이 없기에 스스로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까 걱정스러우니, 어떻게 해야 하나?&amp;quot;&amp;lt;br/&amp;gt;&lt;br /&gt;
&lt;br /&gt;
曰: “是其歲月之已逝者, 則固不可得而復&amp;lt;sub&amp;gt;扶又反下同&amp;lt;/sub&amp;gt;追矣. 若其工夫之次第條目, 則豈遂不可得而復補耶? &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이미 지나가버린 세월은 진실로 다시 나아갈 순 없지만, 공부의 순서나 조목은 어찌 끝내 다시 보완할 수 없겠는가?&amp;lt;br/&amp;gt;&lt;br /&gt;
:朱子曰: &amp;quot;古人於小學, 自能言便有教, 一嵗有一嵗工夫, 到二十來嵗, 聖賢資質已自有二三分, 大學只出治光采. 而今都蹉過了, 不能更轉去做得, 只據而今地頭, 便劄住立定脚跟&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 比喻立足點或立場。▶ 宋 朱熹 《答陳膚仲》四： “凡事從今更宜審細， 見得是， 當便立定腳根， 斷不移易。”&amp;lt;/ref&amp;gt;做去, 栽種後來根株, 塡補前日欠缺. 如二十嵗覺悟, 便從二十嵗立定脚跟做去; 如三十嵗覺悟, 亦然; 便年八九十嵗覺悟, 亦只據現定劄住硬寨&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 比喻堅定的立場與意志。&amp;lt;/ref&amp;gt;做去.&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옛날에 소학에서는 말할 수 있을 때부터 교육을 두었고, 1년에 (그에 해당하는) 1년 과정의 공부를 두었으니, 20세가 되면 성현의 자질이 이미 2-30%정도 있게 된다. &amp;lt;대학&amp;gt;은 다만 [거기에] 광채를 내는 것이다. 지금 [이미] 다 지나가버려서 다시 뒤돌아 갈 수 없다면, 다만 현위치에 의거하여 입장을 확고히 해, 훗날의 기반을 북돋고 과거의 흠결을 보완하여야 한다. 만약 스무살에 깨우쳤다면 스무살 때 부터 그 입장을 확고히 하고, 서른에 깨우쳤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8-90세에 깨우쳤더라도 역시 그저 현재에 의거해서 견고한 입장을 확고하게 세워야 한다.&amp;quot;&lt;br /&gt;
&lt;br /&gt;
蓋吾聞之, 敬之一字, 聖學之所以成始而成終者也. 爲小學者, 不由乎此, 固無以涵養本原,&amp;lt;sub&amp;gt;即前所謂收放心養徳性&amp;lt;/sub&amp;gt;而謹夫&amp;lt;sub&amp;gt;音扶下同&amp;lt;/sub&amp;gt;洒掃應對進退之節, 與夫六藝之敎. 爲大學者, 不由乎此, 亦無以開發聰明,&amp;lt;sub&amp;gt;格致之事&amp;lt;/sub&amp;gt; 進德&amp;lt;sub&amp;gt;誠正修&amp;lt;/sub&amp;gt;修業,&amp;lt;sub&amp;gt;齊治平&amp;lt;/sub&amp;gt; 而致夫明德新民之功也. 是以程子發明格物之道, 而必以是爲說焉. &amp;lt;br/&amp;gt;&lt;br /&gt;
내가 들으니, '敬' 한 자는 성인되는 학문(聖學)의 처음과 끝을 이루는 것이라고 한다. 소학이라는 것도 이를 말미암지 않으면 진실로 본원을 함양해 저 洒掃應對進退之節과 저 六藝之敎를 삼가 실천할 수 없고, 대학이라는 것도 이를 말미암지 않으면 또한 開發聰明하고 進德修業&amp;lt;ref&amp;gt;&amp;lt;주역&amp;gt; 건괘 &amp;lt;문언&amp;gt; 子曰：「君子進德脩業，忠信，所以進德也，脩辭立其誠，所以居業也。」&amp;lt;/ref&amp;gt;해 저 明德·新民의 공효를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정자께서 격물의 도를 발명하실 때 반드시 이것(敬)을 말씀하셨던 것이다.&amp;lt;br/&amp;gt;&lt;br /&gt;
:問: &amp;quot;敬字當不得小學.&amp;quot; 朱子曰: &amp;quot;看來小學却未當得敬, 敬巳自包得小學. 敬是徹上徹下工夫, 雖做到聖人田地, 也只放下這敬不得.&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敬'이라는 글자는 소학에 대적할 수 없습니다.&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내 생각에는 소학이 도리어 '敬'에 대적할 수 없으니, 敬은 이미 그 자체로 소학을 포함한다. 敬은 위 아래를 관통하는 공부이니, 비록 성인의 경지에 이르더라도 이 敬을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amp;quot;&lt;br /&gt;
:○問: &amp;quot;大學首云明徳, 却不曾說主敬, 莫是已見於小學否?&amp;quot; 曰: &amp;quot;然. 自小學不傳, 伊川却是帶補一敬字.&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대학』 첫 머리에서는 '명덕'만 말하고 도리어 '主敬'을 말한 적이 없으니, [경이] 이미 『소학』에서 드러났기 때문 아닙니까?&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그렇다 소학에서 부터 전해지지 않은 것을 이천선생께서 오히려 하나의 '敬'자를 겸하여 보완하신 것이다.&lt;br /&gt;
:○北溪陳氏曰: &amp;quot;程子只說一箇主敬工夫, 可以補小學之缺. 盖主敬工夫可以收放心而立大本; 大本既立, 然後工夫循序而進, 無往不通. 大抵主敬之功, 貫始終, 一動靜, 合内外, 小學大學皆不可無也.&amp;quot;&lt;br /&gt;
:북계 진씨가 말했다: &amp;quot;정자께서는 오직 주경공부를 말씀하셨으니, 소학의 흠결을 보완할 수 있다. 대개 주경공부를 [통해] 놓아버린 마음을 거두어들이고 큰 근본을 세울 수 있으니, 큰 근본이 세워지고 난 연후에야 공부가 순서대로 나아가 가는 곳마다 통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 대저 주경공부라고 하는 것은 시작과 끝을 관통하고  動과 靜에 동일하며 内와 外에 일치하니, 소학과 대학에 모두 없어선 안 된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敬者, 定志慮, 攝精神, 而存養本心之道, 故為聖學之始終. 百倍其功, 只在主敬. 篇首三言為大學一書之綱領; 明明徳一句為篇首三言之綱領; 朱子敬之一字, 則又明明徳之綱領也.&amp;quot;&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경이라는 것은 사려를 안정시키고 정신을 거두어들여 본심을 존양하는 방법이므로 성인의 학문의 시작과 끝이 된다. [남들보다] 백 배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amp;lt;ref&amp;gt;&amp;lt;중용&amp;gt; 人一能之己百之，人十能之己千之。【章句】 君子之學，不為則已，為則必要其成，故常百倍其功。&amp;lt;/ref&amp;gt; 다만 주경공부에 달려있을 뿐이다. [『대학』] 첫머리의 세 마디(명명덕, 신민, 지어지선)는 『대학』의 강령이 되며, '명명덕' 한 구절은 첫머리 세 마디의 강령이 되며, 주자의 '敬' 한 글자는 다시 '명명덕'의 강령이 된다.&amp;quot;&lt;br /&gt;
&lt;br /&gt;
不幸過時而後學者, 誠能用力於此, 以進乎大, 而不害兼補乎其小, 則其所以進者, 將不患於無本而不能以自達矣. 其或摧頹已甚, 而不足以有所兼, 則其所以固其肌膚之會·筋骸之束, 而養其良知良能之本者, 亦可以得之於此, 而不患其失之於前也. &amp;lt;br/&amp;gt;&lt;br /&gt;
불행이 때를 놓쳐 뒤늦게 배우는 자가 진실로 이에 힘쓸 수 있다면, 큰 것(대학)에 나아가면서도 작은 것(소학)을 아울러 보완하는 데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니, 그렇다면 그가 진전된 바가 장차 근본이 없어 스스로 [목표에] 도달하지 못함을 근심하지 않을 것이다. 혹 摧頹함이 너무 심해 [소학까지] 아우를 수 없다면, 肌膚와 筋骸의 결속을 굳게 해&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예운&amp;gt; 故禮義也者，人之大端也，所以講信修睦而固人之肌膚之會、筋骸之束也。&amp;lt;/ref&amp;gt;良知·良能의 근본을 기르는 것 또한 이것(경)에서 얻을 수 있으니 과거에 잘못했던 것을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amp;lt;br/&amp;gt;&lt;br /&gt;
:&amp;lt;記&amp;gt;&amp;lt;禮運&amp;gt;&amp;quot;故禮義也者, 人之大端也, 所以講信脩睦, 而固人之肌膚之㑹、筋骸之束也.&amp;quot; 㑹, 合也, 物合其則也, 如頭容宜合於直之類; 束, 收歛也, 如手容宜恭之類.&lt;br /&gt;
:『예기』, 「예운」편에서 &amp;quot;그러므로 예의라는 것은 사람에게 중요한 것(大端)이니, 신의를 익히고 화목함을 닦아 肌膚와 筋骸의 결속을 굳게 하는 것이다.&amp;quot;&amp;lt;ref&amp;gt;&amp;lt;예기집설&amp;gt; 肌膚之總會, 筋骨之聨束, 非不固也。 然無禮以維飭之, 則惰慢傾側之容見矣。 &amp;lt;/ref&amp;gt;라고 하였는데, '㑹'는 '맞다'로 사물이 그 법도에 맞는 것이니, 마치 머리모양이 마땅히 '直'에 맞아야 하는 부류와 같다. '束'은 '거두어들인다'로 손모양이 마땅히 공손해야 하는 부류와 같다.&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옥조&amp;gt; 足容重，手容恭，目容端，口容止，聲容靜，頭容直，氣容肅，立容德，色容莊，坐如尸，燕居告溫溫。&amp;lt;/ref&amp;gt;&lt;br /&gt;
&lt;br /&gt;
顧以七年之病, 而求三年之艾, 非百倍其功, 不足以致之. 若徒歸咎於旣往, 而所以補之於後者, 又不能以自力, 則吾見其扞格勤苦日有甚焉, 而身心顚倒, 眩瞀&amp;lt;sub&amp;gt;務茂二音&amp;lt;/sub&amp;gt;迷惑, 終無以爲致知力行之地矣. 况欲有以及乎天下國家也哉!” &amp;lt;br/&amp;gt;&lt;br /&gt;
생각건대 7년의 병치레에 3년 묵은 쑥을 구하는 경우,&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이루상&amp;gt; 9. 今之欲王者，猶七年之病求三年之艾也。苟為不畜，終身不得。&amp;lt;/ref&amp;gt; 백 배로 노력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으니, 만일 그저 과거에 허물을 돌리고 나중에 보완하려는 자도 스스로 힘쓰지 않는다면, 그가 [인욕에] 부딪히고 고생하는 것이 날로 심해져 몸과 마음이 엎어지고 어지럽고 미혹돼 끝내 致知力行의 경지가 되지 못할 것이다. 하물며 천하·국가에 미칠 수 있기를 바라는 자에 있어서랴!&amp;quot;&amp;lt;br/&amp;gt;&lt;br /&gt;
:問: &amp;quot;人於已失學後, 須如此勉强奮勵, 方得.&amp;quot; 朱子曰: &amp;quot;失時而後學, 必著如此䟎補得前許多欠缺處. '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若不如是, 悠悠度日, 一日不做得一日工夫, 只見没長進, 如何要補前面?&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사람이라면 배움을 놓치고 나서는 모름지기 이처럼 열심히 힘써야 합니다.&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때를 놓친 이후에 배우게 됐다면 반드시 많은 흠결을 서둘러 이처럼 보완해야 하니, '다른 사람이 한 번에 할 수 있으면 나는 백 번하고, 다른 사람이 열번에 할 수 있으면 나는 천 번한다.'고 하였다. 만약 이와같이 하지 않고 덧없이 시간만 보내고 하루에 하루치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발전이 없을 것이니, 어찌 과거를 보완하려고 하겠는가?&amp;quot;&lt;br /&gt;
:○今人不曽做得小學工夫, 一旦學大學, 是以無下手處. 今且當自持敬始, 使端的純一静専, 然後能致知格物. 敬字是徹頭徹尾工夫, 自格物以至平天下, 皆不外此.&lt;br /&gt;
:요즘 사람들은 일찍이 소학공부를 하지 않고 단지 대학만 배웠기 때문에 실천할 길이 없다. 지금은 우선 마땅히 持敬부터 시작해서 확실하게 순일하고 오롯하게 해야 하니, 그런 연후에야 격물치지할 수 있을 것이다. '敬'이라는 글자는 철두철미한 공부이니, 격물에서부터 평천하까지 모두 이것(경)을 벗어나지 않는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5. 경공부의 방법&lt;br /&gt;
&lt;br /&gt;
曰: “然則所謂敬者, 又若何而用力耶?”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그렇다면 이른바 '敬'이라는 것에 또 어떻게 힘쓰는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lt;br /&gt;
曰: “程子於此, 嘗以主一無適言之矣, &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정자께서는 이에 대해 '主一無適'으로 설명하시기도 했고,&lt;br /&gt;
:程子曰: &amp;quot;主一之謂敬, 無適之謂一.&amp;quot;&lt;br /&gt;
:정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主一'은 '敬'을 말하고 '無適'은 '一'을 말한다.&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主一只是心專一, 不以他念雜之; 無適只是不走作&amp;lt;ref&amp;gt;2.越規；放逸。&amp;lt;/ref&amp;gt;, 如讀書時只讀書; 著衣時只著衣. 了此一件, 又做一件, 身在這裏, 心亦在這裏.&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主一'은 다만 마음을 전일하게 하여 다른 생각이 섞이지 않게 하는 것이고, '無適'은 다만 [마음이] 방일하지 않게 하는 것이니, 독서할 때는 단지 독서만하고 옷 입을 때에는 단지 옷만 입는 것처럼 한 가지 일을 끝내고 나서 또 한 가지 일을 하고, 몸이 여기에 있으면 마음 또한 여기에 있는 것이다.&amp;quot;&lt;br /&gt;
:○今講學, 更須於主一上做工夫. 若無主一工夫, 則講底義理無安著處, 都不是自家物事. 若有主一底工夫, 則外面許多義理, 方始為我有, 都是自家物事. 工夫到時, 纔主一, 便覺意思好, 卓然精明.&lt;br /&gt;
:지금 강학함에 더욱 '主一'에 대해 공부(노력)해야 한다. 만약 '主一'공부가 없다면 강학한 의리가 안착할 곳이 없어서 모두 나의 일이 아니게 된다. 만약 '主一'공부가 있다면 외면의 많은 의리가 비로소 나에게 있게 되어 모두 나의 일이 된다. 공부가 완성된 때에는 '主一'하자마자 바로 생각이 좋고 매우 정밀하고 밝게 됨을 알게 될 것이다.&lt;br /&gt;
:○北溪陳氏曰: &amp;quot;主一, 是心只在此, 不二不三; 無適, 是心只在此, 不東不西. 主一無適, 只展轉相解, 釋要分明, 非主一外, 又别有無適之功也.&amp;quot;&lt;br /&gt;
:북계 진씨가 말했다: &amp;quot;'主一'이라는 것은 마음이 단지 여기에 있어서 두 갈래 세 갈래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이고, '無適'은 마음이 다만 여기에 있어서 동쪽으로 가거나 서쪽으로 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주일'과 '무적'은 상보적으로 풀어야 해석이 분명하게 되니, '主一' 이외에 또 따로 '無適'공부가 있는 것이 아니다.&amp;quot;&lt;br /&gt;
&lt;br /&gt;
嘗以整齊嚴肅言之矣. &amp;lt;br/&amp;gt;&lt;br /&gt;
'整齊嚴肅'으로 설명하시기도 했다. &lt;br /&gt;
:程子曰: &amp;quot;只整齊嚴肅, 則心便一; 一則無非僻之干矣.&amp;quot;&lt;br /&gt;
:정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다만 整齊嚴肅 한다면 마음이 전일해지고, [마음이] 전일해지면 사악함&amp;lt;ref&amp;gt;非僻 : 邪惡。《禮記‧玉藻》：“非辟之心，無自入也。”&amp;lt;/ref&amp;gt;의 간섭이 없을 것이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主一無適, 未易曉. 故又就事實上教人, 使只就眼前做工夫, 如正衣冠, 尊瞻視, 足容重, 手容恭之類, 皆是内外一致. 外面整齊嚴肅, 則内面便一; 内面便一, 則外面便無非僻之干.&amp;quot;&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主一無適'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다시 구체적인 일로 사람들을 가르쳐서, 그들로 하여금 단지 눈앞에서 공부하게 하셨으니, 예를 들어 '의관을 바르게 하고 보기를 높게 하며'&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요왈&amp;gt; 2. 君子正其衣冠，尊其瞻視，儼然人望而畏之，斯不亦威而不猛乎？&amp;lt;/ref&amp;gt; '발모양은 무겁게 하고 손모양은 공경스럽게 하는'&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옥조&amp;gt; 足容重，手容恭，目容端，口容止，聲容靜，頭容直，氣容肅，立容德，色容莊，坐如尸，燕居告溫溫。&amp;lt;/ref&amp;gt; 것들은 모두 내외가 일치되는 것이다. 외면을 整齊嚴肅하면 내면이 전일해지고, 내면이 전일하다면 외에 사악함의 간섭이 없을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至其門人謝氏之說, 則又有所謂常惺惺法者焉.&amp;lt;br/&amp;gt;&lt;br /&gt;
정자의 문인 사량좌의 설의 경우에는 이른바 '常惺惺法'이라는 것이 있기도 하고,&lt;br /&gt;
:上蔡謝氏曰: &amp;quot;敬是常惺惺法.&amp;quot;&lt;br /&gt;
:상채 사씨가 말했다: &amp;quot;敬은 늘 깨어있는 수양법(常惺惺法)이다.&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惺惺乃心不昏昧之謂, 只此便是敬. 整齊嚴肅固是敬, 然心若昏昧, 燭理不明, 雖强把捉, 豈得為敬?&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惺惺은 바로 마음이 혼매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니, 이렇게만 해도 敬이다. 整齊嚴肅은 진실로 경공부지만, 마음이 만약 혼매해서 이치를 밝게 밝히지 못한다면, 비록 [정제엄숙에 집착해 마음을] 애써 붙들더라도 어찌 敬이라 할 수 있겠는가?&amp;quot;&lt;br /&gt;
:○學問須是警省, 且如瑞巖和尚每日常自問: &amp;quot;主人翁惺惺否?&amp;quot; 又自答曰: &amp;quot;惺惺.&amp;quot; 今時學者却不能如此.&lt;br /&gt;
:학문할 때는 모름지기 경계하고 성찰해야하니, 예를 들어 서암화상이 매일 항상 스스로 '주인장은 깨어있는가?'하고 묻고는 다시 스스로 '깨어있네'라고 대답하는 것과 같다. 오늘날의 학자들은 이렇게도 하지 못한다.&lt;br /&gt;
:○或問: &amp;quot;佛氏亦有此語.&amp;quot; 曰: &amp;quot;其喚醒此心則同; 其為道則異. 吾儒喚醒此心, 欲他照管許多道理; 佛氏則空喚醒此心, 無所作為, 異處在此.&amp;quot;&lt;br /&gt;
:혹자가 물었다: &amp;quot;불교에도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amp;quot;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이 마음을 일깨우는 것&amp;lt;ref&amp;gt; 喚醒 : 叫醒。常用作比喻，有使之覺醒意。&amp;lt;/ref&amp;gt;은 동일하지만 도를 행하는 것은 다르다. 우리 유가는 이 마음을 일깨워 그것으로 하여금 수많은 도리를 비추고자 하지만, 불교는 헛되이 마음을 일깨우기만 하고 하는 바가 없으니,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amp;quot;&lt;br /&gt;
:○心既常惺惺, 又以規矩䋲檢之, 此内外交相養之道也.&lt;br /&gt;
:마음이 이미 항상 깨어있는 상태에서 다시 規矩로 마음을 검속하는 것, 이것이 안과 밖을 같이 기르는 방법이다.&lt;br /&gt;
:○今人心聳然在此, 尚無惰慢之氣, 况曰心常能惺惺者乎! 故心常惺惺, 自無客慮.&lt;br /&gt;
:요즘 사람들의 마음도 조심히 여기에 있으면 오히려 태만한 기운이 없는데, 하물며 '마음이 늘 깨어있을 수 있다'고 하는 경우에 있어서랴! 그러므로 마음이 늘 깨어있으면 저절로 사념이 없게 된다. &lt;br /&gt;
:○陳氏曰: &amp;quot;是就心地上做工夫處. 盖心常惺惺在這裏, 便常惺惺恁地活; 若不在, 便死了. 心纔在這裏, 則萬理便森然於其中矣.&amp;quot;&lt;br /&gt;
:진씨가 말했다: &amp;quot;이것(경)은 마음에서 공부하는 것이다. 대개 마음이 늘 깨어있어서 여기에 있으면 늘 깨어있는 것이 이처럼 활발하지만, 만약 여기에 있지 않으면 곧 바로 죽어버린다. 마음은 여기에 있자마자 만리가 마음속에 가득하다.&amp;quot;&lt;br /&gt;
&lt;br /&gt;
尹氏之說, 則又有所謂其心收斂不容一物者焉. &amp;lt;br/&amp;gt;&lt;br /&gt;
윤돈의 설의 경우에는 또 이른바 '其心收斂, 不容一物'이라는 것이 있기도 하다.&lt;br /&gt;
:祈寛問: &amp;quot;如何是主一?&amp;quot; 和靖尹氏曰: &amp;quot;只收歛身心, 便是主一. 且如人到神祠致敬時, 其心收歛, 便著不得毫髮事, 非主一而何?&amp;quot;&lt;br /&gt;
:기관이 물었다: &amp;quot;무엇이 '主一'입니까?&amp;quot; 화정 윤씨가 말했다: &amp;quot;다만 몸과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바로 '主一'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신사에 이르러 공경을 다할 때 그 마음을 거둬들여 털끝 만큼의 일도 [마음속에] 두지 못하는 것, 이것이 '主一'아니고 무엇이겠는가?&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心主這一事, 不為他事攙亂, 便是不容一物.&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마음이 이 한 가지 일을 주로하고 다른 일로 어지럽히지 않는 것이 바로 이것이 '不容一物'이다.&amp;quot;&lt;br /&gt;
:○問'心收歛, 不容一物.' 曰: &amp;quot;這心都不著一物, 便收歛. 他上文云: '今人入神祠, 當那時, 直是更著不得些子事, 只有箇恭敬.' 此最親切. 今人若能專一此心, 便收歛緊宻, 都無些子空罅; 若這事思量未了, 又走做那邊去, 心便成兩路.&amp;quot;&lt;br /&gt;
:'心收歛, 不容一物.'에 대해 물었다.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이 마음이 어떤 일에도 마음두지 않는 것이 곧 '收歛'이다. 윤돈의 윗 글에서 '사람이 신사에 들어가면 그때에는 단지 어떤 일에도 마음두지 않고 다만 공경함만 지니고 있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가장 비근하다. 사람들이 만약 이 마음을 전일하게 할 수 있다면, [마음이] 수렴되고 긴밀해져 약간의 틈도 없겠지만, 만약 이 일에 대한 생각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또 다른 것으로 가버린다면 마음이 두 갈래가 되는 것이다.&amp;quot; &lt;br /&gt;
&lt;br /&gt;
觀是數說, 足以見其用力之方矣.” &amp;lt;br/&amp;gt;&lt;br /&gt;
이 여러 설을 보면 힘쓸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이다.&amp;quot;&amp;lt;br/&amp;gt;&lt;br /&gt;
:問程子、謝氏、尹氏所說敬處. 朱子曰: &amp;quot;譬如此屋四方皆入得, 若從一方入到這裏, 則那三方入處都在這裏了.&amp;quot;&lt;br /&gt;
:정자와 사량좌와 윤돈이 敬을 설명한 것에 대해 물었다.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amp;quot;비유하자면, 이 방은 사방으로 모두 들어올 수 있는데, 만일 한 쪽으로 들어온다면 나머지 세 쪽도 모두 여기에 있는 것과 같다.&amp;quot;&lt;br /&gt;
:○問: &amp;quot;敬, 諸先生之說, 各不同. 然總而言之, 常令此心常存, 是否?&amp;quot; 曰: &amp;quot;其實只一般. 若是敬時, 自然主一無適, 自然整齊嚴肅, 自然常惺惺, 其心收歛不容一物. 但程子'整齊嚴肅', 與謝氏、尹氏之說又更分曉.&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敬에 대한 여러 선생들의 설명이 각각 같지 않는데, 총괄해 말한다면 항상 이 마음을 보존하는 것이지요?&amp;quot; 말했다. &amp;quot;그 실질은 똑같을 뿐이다. 만약 敬하는 때라면 자연히 主一無適하고 자연히 整齊嚴肅하며 자연히 常惺惺하고 그 마음이 수렴되어 어떤 외물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정자께서 말씀하신 '整齊嚴肅'이 사량좌나 윤돈의 설명과 비교했을 때 [의미가] 더욱 분명하다.&amp;quot;&lt;br /&gt;
:○問: &amp;quot;程子、謝氏之説, 謝氏尤切當&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貼切恰當。 &amp;lt;/ref&amp;gt;.&amp;quot; 曰: &amp;quot;如某所見, 程子說得切當. 整齊嚴肅, 此心便存, 便能惺惺, 未有外面整齊嚴肅而内不惺惺者. 人一時間外面整肅, 便一時惺惺; 一時放寛了, 便昏怠也.&amp;quot; 新安陳氏曰: &amp;quot;朱子深取整齊嚴肅之説者, 盖以有著實下手處耳.&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정자와 사량좌의 설명 가운데 사량좌이 설명이 더욱 적절한 것 같습니다.&amp;quo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내가 보건대, 정자의 설명이 가장 적절하다.  整齊嚴肅하면 마음이 보존되고 惺惺해질 수 있으니 외면을 整齊嚴肅하는데 내면이 惺惺하지 않은 자는 있지 않았다. 사람이 한 번 외면을 바르게 하면 일시에 惺惺해지며, 한 번 방관하게 되면 곧바로 혼매하고 나태해진다.&amp;quo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주자께서 整齊嚴肅의 설명을 깊히 취하신 것은 아마도 착실히 실천하는 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amp;quot;&lt;br /&gt;
:○勿齋程氏曰: &amp;quot;整齊嚴肅、及收歛不容一物, 皆敬之始也; 主一無適、及常惺惺者, 皆敬之成也. 主一無適者, 敬之純; 常惺惺者, 敬而明也. 然主一亦有淺深, 以初學言之, 則欲主乎一; 以成徳言之, 則所主者一.&amp;quot;&lt;br /&gt;
:물재 정씨가 말했다. &amp;quot;'整齊嚴肅'과 '收歛不容一物'은 모두 敬의 시작이고, '主一無適'과 '常惺惺'은 모두 경의 완성이다. '主一無適'은 敬 중에 순수한 것이고 '常惺惺'은 敬 중에 밝은 것이다. 그러나 '主一'함에는 깊이가 있으니, 초학자로 말한다면 한 가지를 주로 하고자 해야하고, 덕을 이룬 사람으로 말한다면 주로하는 한 가지일 것이다.&amp;quot;&lt;br /&gt;
:○黄氏曰: &amp;quot;且將自家身心去體察見得如何是主一無適, 如何是整齊嚴肅, 如何是常惺惺, 如何是其心收歛不容一物. 是四者皆以有所畏而然. 朱子晚年言敬字之義, 惟畏字近之, 其意精矣.&amp;quot;&lt;br /&gt;
:황씨가 말했다: &amp;quot;우선 나의 몸과 마음을 가지고 무엇이 主一無適이고 무엇이 整齊嚴肅이며 무엇이 常惺惺이고 무엇이 心收歛不容一物인지 살펴보라(體察見得). 이 네 가지는 모두 두려워하는 바가 있어서 그러한 것이다. 주자께서 만년에 말씀하신 敬자의 의미는 오직 畏자에 가까우니, 그 의미가 정밀하다. &amp;quot; &lt;br /&gt;
:○西山眞氏曰: &amp;quot;持敬之道, 合三先生之言而用力焉, 然後内外交相養之功始備.&amp;quot;&lt;br /&gt;
:서산 진씨가 말했다: &amp;quot;敬을 유지하는 방법은, 세 선생의 말을 합쳐서 그것에 힘쓰는 것이니, 그런 연후에야 내외를 서로 길러주는 공부가 비로소 갖추어질 것이다.&amp;quot;&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6. 경공부가 학문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되는 이유&lt;br /&gt;
&lt;br /&gt;
曰: “敬之所以爲學之始者然矣, 其所以爲學之終也, 奈何?”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敬이 학문의 시작이 되는 것은 맞지만, 학문의 끝이 되는 것은 어째서인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敬者, 一心之主宰, 而萬事之本根也. 知其所以用力之方, 則知小學之不能無賴於此以爲始; 知小學之賴此以始, 則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大學之不能無賴乎此以爲終者, 可以一以貫之而無疑矣. 蓋此心旣立, 由是格物致知以盡事物之理, 則所謂尊德性而道問學; &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敬이라는 것은 一心의 주재이자 모든 일의 근본이니, [이에] 힘쓸 방법을 안다면 소학은 이것에 의지하지 않고는 시작이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고, 소학이 이를 의지해 시작이 됨을 안다면, 저 대학이 이것에 의지하지 않고는 끝이 될 수 없다는 것도 '一以貫之'&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리인&amp;gt; 15. 子曰：「參乎！吾道一以貫之。」&amp;lt;/ref&amp;gt;해 의심이 없을 수 있을 것이다. 대개 이 마음이 확립되고서 이것(敬)을 통해 格物致知해 사물의 이치를 다하는 것이 이른바 '尊德性而道問學'&amp;lt;ref&amp;gt;&amp;lt;중용장구&amp;gt; 27장. 故君子尊德性而道問學，致廣大而盡精微，極高明而道中庸。溫故而知新，敦厚以崇禮。&amp;lt;/ref&amp;gt;이요, &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尊徳性, 持敬以涵養本原也; 道問學, 窮格以開發聰明也.&amp;quo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尊徳性은 敬의 상태를 유지해서 본원을 함양하는 것이고 道問學은 궁리·격물해서 총명함을 개발하는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由是誠意正心以修其身, 則所謂先立其大者而小者不能奪; &amp;lt;br/&amp;gt;&lt;br /&gt;
이것(敬)을 통해 誠意正心해 자신을 닦는 것이 이른바 '先立其大者而小者不能奪'&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고자상&amp;gt; 15. 先立乎其大者，則其小者弗能奪也。&amp;lt;/ref&amp;gt;이요,&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先立其大者, 持敬以誠其意、正其心也; 小者不能奪, 百體從心君所令而身脩也.&amp;quot;&lt;br /&gt;
:신안 진씨가 말했다: &amp;quot;'先立其大'라는 것은 경의 상태를 유지하여 그 뜻을 진실하게 하고 그 마음을 바로하는 것이며, '小者不能奪'이라는 것은 온 몸이 心이라는 군주가 명령한 바를 따라서 몸이 닦이는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由是齊家治國以及乎天下, 則所謂修已以安百姓, 篤恭而天下平. 是皆未始一日而離&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乎敬也. 然則敬之一字, 豈非聖學始終之要也哉!” &amp;lt;br/&amp;gt;&lt;br /&gt;
이것(敬)을 통해 齊家治國해 천하에 이르는 것이 이른바 '修已以安百姓'&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헌문&amp;gt; 45. 脩己以安百姓，堯舜其猶病諸！&amp;lt;/ref&amp;gt;, '篤恭而天下平'&amp;lt;ref&amp;gt;&amp;lt;중용장구&amp;gt; 33장. 是故君子篤恭而天下平。&amp;lt;/ref&amp;gt;이니, 이 모두는 하루도 敬에서 떨어진 적이 없다. 그렇다면 敬 한 자가 어찌 성인되는 학문(聖學)의 처음부터 끝까지 [적용되는] 키워드가 아니겠는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朱子曰: &amp;quot;敬者, 始終之要, 未知則敬以知之; 巳知則敬以守之. 若不敬則其心顛倒昏昧, 而不自知, 未知者, 非敬無以知; 巳知者, 非敬無所守.&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敬이라는 것은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핵심이니, 아직 알지 못한 것이 있다면 敬해서 그것을 알아가고, 이미 알았다면 敬해서 그것을 지켜야 한다. 만약 敬하지 않은다면 마음이 전도되고 어두워져도 스스로 알아채지 못하게 되니,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은 敬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이미 안 것은 敬하지 않으면 지킬 수 없다.&amp;quot;&lt;br /&gt;
:○陳氏曰: &amp;quot;心之為物, 虚靈知覺, 所以為一身之主宰也. 身無此以為之主宰, 則四肢百體皆無所管攝矣. 然所以為心者, 又當由我有以主宰之, 我若何而主宰之乎? 所謂敬者, 是又一心之主宰也.&amp;quot;&lt;br /&gt;
:진씨가 말했다: &amp;quot;마음이라는 것은 허령한 지각이라서 한 몸의 주재가 된다. 몸이 이것을 주재로 삼지 않으면 온몸의 기관 모두를 관장하는 것이 없게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또한 마땅히 나를 통해 주재돼야 하니, 나는 어떻게 그것을 주재하나? 이른바 敬이라는 것이 다시 마음의 주재가 된다.&amp;quot;&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7. 삼강령·팔조목&lt;br /&gt;
&lt;br /&gt;
曰: “然則此篇所謂‘在明明德, 在新民, 在止於至善’者, 亦可得而聞其說之詳乎?”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그렇다면 이 편에서 말한 '在明明德, 在新民, 在止於至善'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겠는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lt;br /&gt;
曰: “天道流行, 發育萬物, 其所以爲造化者, 陰陽五行而已.&amp;lt;br/&amp;gt;&lt;br /&gt;
대답했다: &amp;quot;천도가 유행해 만물을 발육함에 조화를 이루는 것은 음양오행일 뿐인데,&lt;br /&gt;
:黄氏曰:&amp;quot;天道是理; 隂陽五行是氣. 合而言之, 氣即是理, 一隂一陽之謂道, 是也; 分而言之, 理自為理, 氣自為氣, 形而上下, 是也. &amp;lt;br/&amp;gt;&lt;br /&gt;
:황씨가 말했다: &amp;quot;'천도'는 理이고 '음양오행'은 氣이다. 합해서 말하면 氣는 곧 理이니 '一隂一陽之謂道'&amp;lt;ref&amp;gt;&amp;lt;주역&amp;gt; &amp;lt;계사상&amp;gt; 5. 一陰一陽之謂道，繼之者善也，成之者性也。&amp;lt;/ref&amp;gt;가 이것이다. 나눠 말하면 理는 그 자체로 理이고, 氣는 그 자체로 氣이니 '形而上下'&amp;lt;ref&amp;gt;&amp;lt;주역&amp;gt; &amp;lt;계사상&amp;gt; 12. 形而上者謂之道，形而下者謂之器。&amp;lt;/ref&amp;gt;가 이것이다.&amp;quot;&lt;br /&gt;
:○未有五行, 只得喚做隂陽; 既有五行, 則隂陽在五行之中矣.&amp;lt;br/&amp;gt;&lt;br /&gt;
:아직 오행이 있지 않을 때에는 단지 음양이라고 부를 수 있을 뿐이다. 오행이 있고 나면 음양은 오행 가운데 있다.&lt;br /&gt;
&lt;br /&gt;
而所謂陰陽五行者, 又必有是理而後有是氣; 及其生物, 則又必因是氣之聚而後有是形. 故人物之生必得是理, 然後有以爲健順仁義禮智之性; 必得是氣, 然後有以爲魂魄五臟百骸之身. 周子所謂‘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者, 正謂是也.&amp;lt;br/&amp;gt;&lt;br /&gt;
이른바 '음양오행'이라는 것은 다시 반드시 理가 있은 뒤에 氣가 있고, 만물을 낳음에 이르러서는 다시 반드시 氣의 응취에 기인해 形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과 만물이 태어남에 반드시 理를 얻은 연후에 健順·仁義禮智와 같은 性이 될 수 있고, 반드시 氣를 얻은 연후에 魂魄·五臟·百骸와 같은 身이 될 수 있다. 周子께서 ‘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amp;lt;ref&amp;gt;&amp;lt;[[태극도설]]&amp;gt;&amp;lt;/ref&amp;gt;라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이것이다. &lt;br /&gt;
:問: &amp;quot;必有是理然後有是氣, 是如何?&amp;quot; 朱子曰: &amp;quot;此本無先後之可言. 然必欲推其氣之所從來, 則須說先有是理. 然理又非别為一物, 即存乎是氣之中. 無是氣, 則是理亦無掛搭&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 比喻着落、依據。&amp;lt;/ref&amp;gt;處. 氣則為金木水火, 理則為仁義禮智.&lt;br /&gt;
:물었다. &amp;quot;'반드시 이 理가 있은 이후에 氣가 있다'고 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amp;quo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이는 본래 말할 만한 선후가 없다. 그러나 굳이 氣의 유래를 추론하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理가 먼저 있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理가 다시 별도로 하나의 사물인 것이 아니니, 氣 가운데에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氣가 없다면 理 또한 안착할 곳이 없다. 氣는 金·木·水·火가 되고  理는 인·의·예·지가 된다.&amp;quot;&lt;br /&gt;
:○理未嘗離乎氣, 然豈無先後? 理無形, 氣便粗有查滓.&lt;br /&gt;
:理는 일찍이 氣와 떨어진 적이 없지만, 어찌 선후가 없겠는가? 理에는 형체가 없지만 氣는 거칠게 찌꺼기 [같은 것이] 있다. &lt;br /&gt;
:○就原頭定體上說, 則未分五行時, 只謂之隂陽; 未分五性時, 只謂之健順. 及分而言之, 則陽為木火, 隂為金水, 健為仁禮, 順為智義.&lt;br /&gt;
:근원적 상태(原頭定體)에 대해 말한다면, 아직 오행으로 나눠지지 않은 때에는 다만 隂·陽이라 말하고, 아직 오성으로 나눠지지 않은 때에는 다만 健·順이라고 말한다. [오행과 오성으로] 나눠지는 경우에 대해 말하면, 陽은 木·火가 되고 隂은 金·水가 되며, 健은 仁·禮가 되고 順은 智·義가 된다.&lt;br /&gt;
:○問隂陽五行健順五常之性. 曰: &amp;quot;健是稟得那陽之氣; 順是稟得那隂之氣; 五常是稟得五行之理. 人物皆稟得健順五常之性.&lt;br /&gt;
:隂陽·五行·健順·五常의 性에 대해 물었다. 말씀하셨다: &amp;quot;健은 저 陽의 氣를 품수받은 것이고, 順은 저 隂의 氣를 품수받은 것이며, 五常은 五行의 理를 품수받은 것이다. 사람과 만물은 모두 健順·五常의 性을 품수받는다.&amp;quot;&lt;br /&gt;
:○天地之間有理有氣. 理也者, 形而上之道也, 生物之本也; 氣也者, 形而下之器也, 生物之具也. 故人物之生, 必稟此理, 然後有性; 必稟此氣, 然後有形. 其性其形, 雖不外乎一身, 然道器之間, 分際甚明, 不可亂也.&lt;br /&gt;
:천지 사이에 理와 氣가 있으니, 理라는 것은 형이상의 도이니 만물을 낳는 근본이고, 氣라는 것은 형이하의 기물(器)이니 만물을 낳는 도구(具)이다. 그러므로 사람과 만물이 생겨남에 반드시 理를 품수받은 이후에 性이 있게 되고, 반드시 이 氣를 품수받은 이후에 형체가 있게 된다. 이 性과 형체는 비록 한 몸을 벗어나지 않지만, 道와 器 사이에는 구분이 매우 명확하여 [서로] 어지럽힐 수 없다.&lt;br /&gt;
:○北溪陳氏曰: &amp;quot;人始於氣感則得魂為先, 既而體凝焉則魄次之. 魂主乎動, 所以行乎此身之中, 隨所貫而無不生者也; 魄主乎静, 所以實乎此身之中, 隨所注&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貫注】 1. 貫穿；貫通。▶ 《參同契》卷上“須以造化， 精氣乃舒” 宋 朱熹 考异： “此時陰陽對待， 分為二物， 莫不含情互結， 兩相貪戀， 交通貫注， 而後化生萬物， 以舒展向來自具之精氣。” &amp;lt;/ref&amp;gt;而無不定者也.&lt;br /&gt;
:북계 진씨가 말했다: &amp;quot;사람이 처음 기를 感하면 魂을 먼저 얻고, 이어서 육체가 응결되면 魄을 그 다음으로 [얻는다]. 魂은 動을 주로하기 때문에 몸 안에서 행함에 관통함(貫)에 따라 가지 않는 곳이 없고, 魄은 静을 주로하기 때문에 몸 안을 채움에 관통함(注)에 따라 안정시키기 않음이 없다.&amp;quot;&lt;br /&gt;
:○節齋蔡氏曰: &amp;quot;先有理後有氣者, 形而上為道, 形而下為器之謂也; 有則俱有者, 道即器之謂也. 盖不分先後, 則理氣不明; 不合理氣, 則判為二物, 如性之與情未發已發, 自有先後, 固不可道性情同時也. 然情之本實具於性, 非先有此性而後别生一情, 是有此性即有此情也.&lt;br /&gt;
:절제 채씨가 말했다: &amp;quot;'먼저 理가 있은 후에 氣가 있다'는 것은 형이상자가 道가 되고 형이하자가 器가 된다는 말이고, '[理가] 있으면 [氣를] 갖춘다'는 것은 '道가 器에 즉한다'는 말이다. 대개 선후를 나누지 않으면 理와 氣[의 차이가] 밝혀지지 않고, 理와 氣를 합하지 않으면 두 가지 사물로 나뉘니, 마치 性과 情은 未發과 已發의 상태로 자연히 선후가 있어서 진실로 性과 情이 동시에 있다고 말할 수 없지만, 情은 본래 性에 실로 갖추어져 있어서 性이 먼저 존재한 연후에 따로 情이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性이 있으면 곧 이 情이 있게 되는 것과 같다.&amp;quot;&lt;br /&gt;
:○東窻李氏曰: &amp;quot;天之運五行, 其實隂陽而已; 人之性五常, 其實健順而已. 仁之油然生意不可遏, 禮之粲然明盛不可亂, 健之為也; 義不拂乎可否之宜, 智不外乎是非之别, 順之為也. 若夫信, 則體是理而不易者, 健也; 循是理而不違者, 順也.&lt;br /&gt;
:동창 이씨가 말했다: &amp;quot;하늘이 五行을 운행함에 그 실질은 隂·陽일 뿐이고, 사람이 五常을 性으로 함에 그 실질은 健·順일 뿐이다. 仁의 유연한 生意를 막을 수 없고 禮의 찬연하고 성대함을 어지럽힐 수 없는 것은 健이 행한 것이고, 義가 可·否의 마땅함에서 벗어나지 않음과 智가 是·非의 구별에서 벗어나지 않음은 順이 행한 것이다. 信의 경우는, 理를 체득하여 바뀌지 않는 것이 健이고 理를 따라서 거스르지 않는 것이 順이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魂, 陽之靈; 魄, 隂之靈; 五臟, 五行之質&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4. 形體；外貌。 &amp;lt;/ref&amp;gt;; 百骸, 萬物之象也; 眞, 以理言而理不雜氣; 精, 以氣言而氣不離理. 妙者, 理氣之莫測; 合者, 理氣之無間; 凝則有是形而各一其性矣.&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魂은 陽의 영이고 魄은 隂의 영이며, 오장은 오행의 형체이고 百骸은 만물의 형체이다. 眞은 理로 말하여 理가 氣와 섞이지 않는 것이고 精은 氣로 말하여 氣가 理와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妙라는 것은 理와 氣를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다. 合이라는 것은 理·氣에 간극이 없어서, 응결되면 형체가 있고 각각 하나의 性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amp;quot;&lt;br /&gt;
:○周子之言見&amp;lt;太極圖說&amp;gt;&lt;br /&gt;
:주돈이의 말은 &amp;lt;[[태극도설]]&amp;gt;에 보인다.&lt;br /&gt;
&lt;br /&gt;
然以其理而言之, 則萬物一原, 固無人物貴賤之殊; 以其氣而言之, 則得其正且通者爲人, 得其偏且塞&amp;lt;sub&amp;gt;先則反&amp;lt;/sub&amp;gt;者爲物, 是以或貴或賤而不能齊也.&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理로 말한다면 만물은 같은 근원이니 진실로 사람과 사물·귀함과 천함의 다름이 없고, 氣로 말한다면 그 바르고 통한 것을 얻은 것이 사람이 되고 치우치고 막힌 것을 얻은 것은 사물이 되기  때문에 어떤 것은 귀하고 어떤 것은 천하여 같을 수가 없다.&lt;br /&gt;
:朱子曰: &amp;quot;以理言之, 則無不全; 以氣言之, 則不能無偏.&amp;quot;&lt;br /&gt;
:주자가 말했다. &amp;quot;理로 말한다면 온전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氣로 말한다면 치우침이 없을 수 없다.&amp;quot;&lt;br /&gt;
:○人得其氣之正, 故是理通而無所塞; 物得其氣之偏, 故是理塞而無所通. 且如人頭圓象天, 足方象地, 平正端直, 以其受天地之正氣, 所以識道理有知識; 物受天地之偏氣, 所以禽獸横生, 草木頭生向下, 尾反向上, 物之間有知者, 不過只通得一路, 如烏之知孝, 獺之知祭, 犬但能守禦, 牛但能耕而已. 人則無不知、無不能, 人所以與物異, 所争者此耳.&lt;br /&gt;
:사람은 그 氣 중에 바른 것을 얻었기 때문에 理가 통해 막힘이 없지만, 사물은 氣 중에 치우친 것을 얻었기 때문에 理가 막혀 통하는 바가 없다. 예를 들어 사람의 머리 모양이 둥근 것은 하늘은 본뜬 것이고, 발이 네모난 것은 땅을 본 뜬 것이며, 평평하고 바르고 단정하고 곧으며, 천지의 바른 기를 얻었기 때문에 도리를 인식하고 지식이 있는 것이다. 사물은 천지의 치우친 기를 받았기 때문에 금수는 横生하고, 초목은 머리가 날 때 아래를 향하고 꼬리는 도리어 위를 향한다. [또] 사물들 중에 지각이 있는 것은 다만 한 갈래만 통하는 데 불과하니, 예를 들어 까마귀는 孝를 알고 수달이 제사 지낼 줄 알며, 개는 지킬 수만 있고 소는 밭갈 수만 있을 뿐이다. 사람이라면 알지 못하는 것이 없고 할 수 없는 것이 없으니, 사람이 사물과 다른 점은 그 차이가 이것일 뿐이다.&lt;br /&gt;
:○論萬物之一原, 則理同而氣異; 觀萬物之異體, 則氣猶相近而理絶不同. 方賦與萬物之初, 天命流行只是一般, 故理同; 二五之氣有清濁純駁, 故氣異. 萬物已得之後, 雖有清濁純駁之不同, 而同此二五之氣, 故氣相近; 以其昏明開塞之甚逺, 故理絶不同. 氣相近, 如知寒暖、識飢飽、好生惡死、趨利避害, 人與物都一般; 理不同, 如蜂蟻之君臣, 只是他義上有一㸃子明; 虎狼之父子, 只是他仁上有一㸃子明, 其他更推不去.&lt;br /&gt;
:만물의 근원이 같음을 논한다면 理는 같고 氣는 다르며, 만물의 형체가 다름을 본다면 氣는 오히려 서로 가깝지만 理는 절대로 같지 않다. 만물에게 부여한 처음에는 천명의 유행은 단지 똑같기 때문에 理는 같지만, 음양오행의 氣에는 清濁純駁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氣는 다르다. 만물이 이미 얻고 난 후에는 비록 清濁純駁의 차이가 있지만 이 음양오행의 기는 같기 때문에 氣는 서로 가깝고, 그 어둡거나 밝고 열리거나 막힘의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理는 전혀 다른 것이다. '氣가 서로 가까운 것'은 마치 춥고 따뜻함을 알고 배고프고 배부름을 인지하며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며 이익을 쫓고 해악을 피하는 것과 같으니 사람과 만물이 모두 같은 것이고, '理가 같지 않은 것'은 마치 벌과 개미의 군신관계가 다만 '義'에 대해서 약간 밝은 부분이 있고, 호랑이와 이리의 부자관계가 다만 '仁'에 대해서 약간 밝은 것과 같은 것이니, 이밖으로는 더 미룰 수 없다.(벌과 개미는 義에만 밝고, 호랑이와 이리는 仁에만 밝다.)&lt;br /&gt;
:○新安倪氏曰: &amp;quot;理雖不雜乎氣, 而亦不離乎氣. 以不雜者言之, 則理同而氣異; 以不離者言之, 則得氣之正者理亦全, 得氣之偏者理亦不全矣. 朱子後一條, 與或問之說略有不同者, 而亦未嘗不互相發也.&lt;br /&gt;
:신안 예씨가 말했다: &amp;quot;理는 비록 氣와 섞이지 못하지만 氣와 떨어지지도 못한다. 섞이지 못하는 점으로 말하면 理는 동일하고 氣는 다르며, 서로 떨어지지 못하는 점으로 말하면 氣 중에 치우친 것을 얻으면 리 또한 온전하지 못하다. 주자의 이후 한 조목이 [여기] &amp;lt;혹문&amp;gt;의 설명과 약간 같지 않은 것이 있지만, 그래도 서로 발명하지 않은 적이 없다.&amp;quot;&lt;br /&gt;
&lt;br /&gt;
彼賤而爲物者, 旣梏於形氣之偏塞, 而無以充其本體之全矣. 唯人之生乃得其氣之正且通者, 而其性爲最貴, 故其方寸之間, 虛靈洞徹, 萬理咸備,&amp;lt;br/&amp;gt;&lt;br /&gt;
저 천하여 사물이 된 것은 이미 치우치고 막힌 형기에 구속되어 그 본체의 온전함을 확충할 수 없다. 오직 사람만이 태어남에 곧 바르고 통한 기를 얻어 性이 가장 귀중하게 되었으므로 마음이 허령하고 막힘없이 훤해 만리를 모두 갖추고 있다.&lt;br /&gt;
:北溪陳氏曰: &amp;quot;此八字, 只是再詳'虛靈不昧, 以具衆理'之意. 虛靈洞徹, 盖理與氣合而有此妙用耳, 非可專指氣. 如心恙底人亦有氣存, 何故昏迷顛錯, 無此虚靈洞徹耶?&amp;quot;&lt;br /&gt;
:북계 진씨가 말했다: &amp;quot;이 여덟 자(虛靈洞徹, 萬理咸備)는 다만 '虛靈不昧, 以具衆理'&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경1장 주석. 明德者，人之所得乎天，而虛靈不昧，以具眾理而應萬事者也。&amp;lt;/ref&amp;gt;의 의미를 다시 상세히 밝힌 것이다. '虛靈洞徹'은 대개 理와 氣를 합해 이러한 묘용이 있는 것이지 오직 氣만 가리킬 수는 없다. 만약 마음이 병든 사람에게도 [좋은] 氣가 보존되어 있다면, 무엇 때문에 혼미하고 전도되어 이러한 虚靈洞徹이 없겠는가?&amp;quot;&lt;br /&gt;
&lt;br /&gt;
蓋其所以異於禽獸者正在於此, 而其所以可爲堯舜而能參天地以贊化育者, 亦不外焉, 是則所謂明德者也. 然其通也或不能無淸濁之異, 其正也或不能無美惡之殊, 故其所賦之質, 淸者智而濁者愚, 美者賢而惡者不肖, 又有不能同者. &amp;lt;br/&amp;gt;&lt;br /&gt;
대개 사람이 금수와 다른 점이 바로 여기에 있고, 사람이 요순이 될 수 있고 천지에 참여하여 화육함을 도울 수 있는 까닭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이것이 바로 이른바 明德이다. 그러나 사람의 통한 [기]에도 간혹 맑고 탁한 차이가 없을 수 없고, 바른 [기에도] 간혹 아름답거나 추악한 차이가 없을 수 없기 때문에, 그 부여받은 기질이 맑은 사람은 지혜롭고 탁한 사람은 어리석으며 아름다운 사람은 어질고 나쁜사람은 불초하니, [사람과 사물 사이 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도] 다시 같을 수 없는 점이 있다.&lt;br /&gt;
:朱子曰: &amp;quot;人雖皆是天地之正氣, 但衮來衮去, 便有昏明厚薄之異. 盖氣是有形之物, 纔是有形之物, 便自有美惡也.&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사람이라면 누구나 비록 천지의 바른 기를 가지고 있지만, 다만 이리저리 뒤섞여 昏明厚薄의 차이가 있다. 대개 氣는 형체가 있는 것이니, 형체가 있는 것인 이상 절로 아름답거나 추악한 [차이가] 있다.&amp;quot;&lt;br /&gt;
:○問: &amp;quot;智愚賢不肖是所稟之氣有清濁美惡之不同, 不歸於所稟, 而歸於所賦, 何邪?&amp;quot; 曰: &amp;quot;賦如俗語云分俵均敷之意.&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智·愚·賢·不肖함은 품부받은 氣에 清濁美惡의 차이가 있기 때문인데, [그 원인을] '품수받은 것(所稟)'으로 환원하지 않고 '부여받은 것(所賦)'으로 환원하신 것은 어째서 입니까?&amp;quot; 말씀하셨다: &amp;quot;'賦'는 세간에서 ''''고르게''' 나눠준다(分俵均敷)'고 말하는 뜻과 같다.&amp;quot;&lt;br /&gt;
:○問: &amp;quot;有人聰明通曉, 是稟氣之清矣. 然却所為過差, 或流於小人之歸; 又有為人賢而不甚聰明通曉, 何也?&amp;quot; 曰: &amp;quot;&amp;lt;或問&amp;gt;中所謂知愚賢不肖之殊, 是也. 盖其所賦之質, 便有此四樣, 聰明曉了者, 智也; 而或不賢, 便是稟賦中欠了清和温恭之徳; 又有人極温和, 而不甚曉事, 便是賢而不智. 為學, 便是要克化教此等氣質, 令恰好耳.&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어떤 사람이 총명하고 훤히 다 아는 것은 품부받은 氣가 맑기 때문인데, 도리어 잘못을 저질러 혹 소인이라는 귀결지로 흘러가 버리기도 하고, 또 사람됨이 어진데 썩 총명하거나 훤히 알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 입니까?&amp;quot; 말씀하셨다: &amp;quot;&amp;lt;或問&amp;gt;에서 知·愚·賢·不肖의 차이를 말한 것이 이것이다. 대개 부여받은 자질에는 이 네 가지 양상이 있는데, 총명하고 훤히 아는 사람은 지혜롭지만(智) 간혹 어질지 못한 것(不賢)은 품부받은 것 중에 온화(清和·温恭)한 덕에 흠결이 있는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이 매우 온화한데 썩 총명하지 못한 것은 어질면서도 지혜롭지 못한 것(賢而不智)이다. 학문함이란 바로 이러한 기질을 교화시켜서 적절하게 만드려고 하는 것이다.&amp;quot;&lt;br /&gt;
:○有是理, 而後有是氣; 有是氣, 必有是理. 但稟氣之清者為聖為賢, 此如寶珠在清冷水中; 稟氣之濁者為愚不肖, 此如寶珠在濁水中. 所謂明明徳者, 是就濁水中揩拭此珠也. 物亦有是理, 又如寶珠在至汚處. 然其所稟有些明處, 就上面便自不昩, 如虎狼之父子, 蜂蟻之君臣, 是也.&amp;quot;&lt;br /&gt;
:理가 있은 이후에 氣가 있으니, 氣가 있으면 반드시 理가 있기 마련이다. 다만 품부받은 기질이 맑은 사람이 성현이 되는 것은 마치 보주가 맑은 물 안에 있는 것과 같고, 품부받은 기질이 탁한 사람이 어리석고 불초하게 되는 것은 마치 보주가 탁한 물 안에 있는 것과 같다. 이른바 '明明徳'이라는 것은 바로 탁한 물에서 이 보주를 씻는 것이다. 사물에도 理가 있지만, 또 마치 보주가 매우 더러운 곳에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품부받은 바에 조금이나마 밝은 부분이 있어서 그 위는 어둡지  없으니, 마치 호랑이나 이리의 부자관계나 벌과 개미의 군신관계 같은 것이 이것이다.&lt;br /&gt;
:○黄氏曰: &amp;quot;美惡是有生之初便分了, 非以性言, 是以氣言. 譬如玉之與石, 則美惡固分; 而玉之中, 又有美惡分焉.&amp;quot;&lt;br /&gt;
:황씨가 말했다: &amp;quot;아름답거나 추악한 차이(美惡)는 생겨난 처음에 나눠지는데, 性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氣로 말한 것이다. 비유하자면 마치 옥과 돌은 美惡이 진실로 구분되지만, 옥 가운데에서도 美惡이 나눠지는 경우와 같다.&amp;quot;&lt;br /&gt;
:○格庵趙氏曰: &amp;quot;通塞偏正, 判人物之大分而言; 其清濁美惡, 又就人中分别.&amp;quot;&lt;br /&gt;
:격암 조씨가 말했다: &amp;quot;'通塞偏正'은 사람과 사물을 나누는 큰 분류(大分)를 말한 것이고, '清濁美惡은' 사람 내에서 분별한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必其上智大賢之資乃能全其本體, 而無少不明, 其有不及乎此, 則其所謂明德者已不能無蔽而失其全矣. 况乎又以氣質有蔽之心, 接乎事物無窮之變, 則其目之欲色, 耳. 之欲聲, 口之欲味, 鼻之欲臭, 四肢之欲安佚, 所以害乎其德者, 又豈可勝&amp;lt;sub&amp;gt;平聲&amp;lt;/sub&amp;gt;言也哉! 二者相因, 反覆深固, 是以此德之明, 日益昏昧, 而此心之靈, 其所知者不過情欲利害之私而已. 是則雖曰: 有人之形, 而實何以遠於禽獸, 雖曰: 可以爲堯舜而參天地, 而亦不能有以自充矣. 然而本明之體, 得之於天, 終有不可得而昧者, 是以雖其昏蔽之極, 而介然之頃&amp;lt;sub&amp;gt;介音甲倐然之頃也&amp;lt;/sub&amp;gt;一有覺焉, 則卽此空隙之中, 而其本體已洞然矣.&amp;lt;br/&amp;gt;&lt;br /&gt;
반드시 上智·大賢의 자질이라야 그 본체를 온전히 할 수 있고 조금의 밝지 못함도 없을 수 있으니, 여기에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다면 이른바 明德이라는 것이 이미 가려지지 않을 수 없어서 그 온전함을 잃어버리게 된다. 게다가 더욱이 기질 때문에 가려진 마음이 사물의 무궁한 변화를 만난다면, 여색을 바라는 눈과 아름다운 소리를 바라는 귀와 맛있는 것을 바라는 입과  향기를 바라는 코와 편안함을 바라는 몸이 그 덕(明德)을 해침을 또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이 두 가지가 서로 말미암아서 반복되어 더욱 견고해지니, 이 때문에 밝은 덕은 날마다 더욱 어두워지고 신령한 마음은 정욕·이해와 같은 사욕만 알 것이다. 이렇다면 비록 '사람의 형체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진실로 금수와 무엇이 다르겠으며, 비록' 요순이 될 수 있고 천지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또 스스로 확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본래 밝은 것(明德)은 하늘로부터 얻은 것이라서 끝내 어두워질 수 없으니, 이 때문에 비록 지극히 가려지더라도 잠깐 사이에 하나라도 깨우친다면, 그 틈 사이로 본체가 이미 훤히 드러나 있을 것이다.&lt;br /&gt;
:問: &amp;quot;'介然之頃, 一有覺焉, 則其本體已洞然矣', 須是就這些覺處, 便致知充廣將去.&amp;quot; 朱子曰: &amp;quot;然. 如擊石之火只是些子, 纔引著, 便可以燎原. 若必欲等大覺了, 方去格物致知如, 何等得這般時節? 那箇覺是物格知至了, 大徹悟, 到恁地時, 事都了. 若是介然之覺, 一日之間, 其發也無時無數, 只要人識認得操持充養將去.&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잠깐 사이에 하나라도 깨우침이 있다면, 그 틈 사이로 본체가 이미 훤히 드러나 있을 것이다'라는 것은 반드시 조금 깨우친 곳에서 앎을 지극히 하고 확충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amp;quo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그렇다. 부싯돌로 낸 불은 미미할 뿐이지만, 끌어다 붙이자마자 들판을 태워버릴 수도 있는 것과 같다. 만약 반드시 크게 깨우치고 나서(大覺) 격물치지 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이러한(大覺) 때를 얻겠는가? 저 깨우침(大覺)은 [격물치지의 결과로] 物格知至해서 크게 깨우친 것이니, 이런 때에 이르면 일은 [이미] 다 이뤄진 것이다. 잠깐 사이의 깨우침이 드러나는 건 하루[같이 짧은 기간]에도 정해진 때나 횟수가 없으니, 다만 사람이 [이를] 인식하고 지켜서 확충해 나가야 할 뿐이다.&amp;quot;&lt;br /&gt;
&lt;br /&gt;
是以聖人施敎, 旣已養之於小學之中, 而復&amp;lt;sub&amp;gt;扶又反&amp;lt;/sub&amp;gt;開之以大學之道. 其必先之以格物致知之說者, 所以使之卽其所養之中, 而因其所發, 以啓其明之之端也; 繼之以誠意·正心·修身之目者, 則又所以使之因其已明之端, 而反之於身, 以致其明之之實也. 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旣有以啓其明之之端, 而又有以致其明之之實, 則吾之所得於天而未嘗不明者, 豈不超然無有氣質物欲之累, 而復得其本體之全哉! 是則所謂明明德者, 而非有所作爲於性分&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之外也. 然其所謂明德者, 又人人之所同得, 而非有我之得私也. 向也俱爲物欲之所蔽, 則其賢愚之分, 固無以大相遠者. 今吾旣幸有以自明矣, 則視彼衆人之同得乎此而不能自明者, 方且甘心迷惑沒溺於卑汚&amp;lt;sub&amp;gt;音烏&amp;lt;/sub&amp;gt;苟賤之中而不自知也, 豈不爲&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之惻然而思有以救之哉! 故必推吾之所自明者以及之, 始於齊家, 中於治國, 而終及於平天下, 使彼有是明德而不能自明者, 亦皆有以自明, 而去&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其舊染之汚焉, 是則所謂新民者, 而亦非有所付畀&amp;lt;sub&amp;gt;必至反&amp;lt;/sub&amp;gt;增益之也. &lt;br /&gt;
이 때문에 성인께서 베푸신 가르침이란 소학에서 그들을 기르고 다시 대학의 道로 그들을 열어주는 것이다. 성인께서 반드시 격물치지의 설명을 우선하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소학에서] 기르는 것에 나아가 [거기에서] 드러난 것을 통해 [명덕을] 밝히는 단서를 열게 하신 것이고, 誠意·正心·修身의 조목으로 격물치지를 이으신 것은 또한 그들로 하여금 이미 밝혀진 단서를 통해 자신에게 돌이켜 [명덕을] 밝히는 실질에 이루게 하신 것이다. 대저 이미 [명덕]을 밝히는 단서를 연 데다가 [명덕을] 밝히는 실질도 이뤘다면, 내가 하늘로부터 얻어 밝지 않은 적이 없던 것(명덕)이 어찌 초연히 기질과 물욕의 얽매임이 없이 다시 그 본체의 온전함을 회복하지 못하겠는가! 이렇다면 이른바 '明明德'이라는 것은 性分 밖에서 작위하는 바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른바 '명덕'이라는 것은 또한 사람마다 동일하게 얻은 것이지 내가 사사로이 얻은 것이 아니니, 이전에 모두 물욕에 의해 가려졌다면 어진 자와 어리석은 자(賢愚)의 차이가 진실로 클 수 없을 것이지만, 지금 내가 다행히 스스로 [명덕을] 밝힌 이상, 이것(명덕)을 똑같이 얻고도 스스로 밝히지 못하는 저 사람들이 막 기꺼이 미혹되어 더럽고 구차한 곳에 빠지면서도 스스로 알지 못함을 본다면, 어찌 그들을 위해 측은해 하며 그들을 구제하려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반드시 내가 스스로 밝힌 바를 미루어 다른 사람에게 미쳐, 齊家에서 시작해서 治國을 거쳐 마침내 平天下에 이르러, 이 명덕을 가지고도 스스로 밝힐 수 없는 저 사람들로 하여금 역시 모두 스스로 밝혀서 구습의 오염된 더러움을 제거하게 해야 하니, 이렇다면 이른바 '新民'이라는 것 역시 주거나 더하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非彼本無而我付畀之, 非彼本少而我増益之, 以其本體之明無不全也.&amp;quot;&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저들에게 본래부터 없기 때문에 내가 준 것도 아니고, 저들이 본래 조금만 가지고 있어서 내가 더해준 것이 아니니, 그 밝은 본체는 완전하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amp;quot;&lt;br /&gt;
&lt;br /&gt;
然德之在己而當明, 與其在民而當新者, 則又皆非人力之所爲; 而吾之所以明而新之者, 又非可以私意苟且而爲也. 是其所以得之於天而見&amp;lt;sub&amp;gt;形甸反&amp;lt;/sub&amp;gt;於日用之間者, 固已莫不各有本然一定之則, &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자신에게 있는 德을 마땅히 밝혀야 하는 것과 백성들에게 있는 덕을 마땅히 새롭게 해야 하는 것은 또한 모두 사람의 힘으로 하는 바가 아니고, 내가 밝히고 새롭게 하는 것 또한 사의로 구차하게 행하는 것이 아니니, 하늘로부터 얻어 일상생활에 드러나는 것에는 진실로 이미 각각 본연의 일정한 법칙이 있지 않음이 없다.&lt;br /&gt;
:西山眞氏曰: &amp;quot;則者, 法也. 天下之理, 皆天實為之, 莫不有一定之法, 非人力所可増損, 故曰則.&amp;quot;&lt;br /&gt;
:서산 진씨가 말했다: &amp;quot;'則'이라는 것은 법칙이다. 천하의 이치는 모두 하늘이 실로 행하는 것이니, 일정한 법칙이 아님이 없고 사람의 힘으로 더하고 뺄 수 있는 바가 아니기 때문에 '則'이라고 말한 것이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至善, 乃太極之異名而明徳之本體. 得之於天而有本然一定之則者, 至善之體, 乃吾心體統之太極; 見於日用之間而各有本然一定之則者, 至善之用, 乃事事物物各具之太極也.&amp;quot;&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至善'이란 바로 태극의 다른 이름이며 명덕의 본체이다. '하늘로부터 얻어서 본연하고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것'은 至善의 體이니 바로 내 마음의 體統이되는 태극이요, '일상생활에 드러나는 것에는 각각 본연의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것은 至善의 用이니, 이것이 바로 '사물마다 각각 태극을 갖추고 있다(事事物物各具之太極)'&amp;lt;ref&amp;gt; 『太極圖說』 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 “乾道成男, 坤道成女”, 二氣交感, 化生萬物. 萬物生生, 而變化無窮焉. &amp;lt;注&amp;gt; 蓋合而言之, 萬物統體一太極也; 分而言之, 一物各具一太極也.&amp;lt;/ref&amp;gt;는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程子所謂‘以其義理精微之極, 有不可得而名者, 故姑以至善目之',而『傳』&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所謂君之仁·臣之敬·子之孝·父之慈·與人交之信, 乃其目之大者也. 衆人之心, 固莫不有是, 而或不能知, 學者雖或知之, 而亦鮮&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能必至於是而不去, 此爲大學之敎者, 所以慮其理雖粗&amp;lt;sub&amp;gt;上聲略也&amp;lt;/sub&amp;gt;復而有不純, 已雖粗克而有不盡, 且將無以盡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修己治人之道, 故必指是而言, 以爲明德·新民之標的也. 欲明德而新民者, 誠能求必至是而不容其少有過不及之差焉, 則其所以去&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人欲而復天理者, 無毫髮之遺恨矣. &lt;br /&gt;
정자께서 '지극히 정미한 의리에는 이름할 수 없는 점이 있기 때문에 우선 至善으로 지목한다'&amp;lt;ref&amp;gt;&amp;lt;이정수언&amp;gt; 3-67. 子曰: &amp;quot;理義精微, 不可得而名言也,  姑以至善目之, 黙識, 可也.&amp;quot;&amp;lt;/ref&amp;gt; 고 하셨는데, &amp;lt;전&amp;gt;의 이른바 '君之仁·臣之敬·子之孝·父之慈·與人交之信'&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전3장. 為人君，止於仁；為人臣，止於敬；為人子，止於孝；為人父，止於慈；與國人交，止於信。&amp;lt;/ref&amp;gt;이라고 한 것이 바로 그 항목 가운데 큰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은 진실로 이렇지 않음이 없으나 간혹 알지 못하기도 하고, 배우는 자가 비록 혹 이를 알더라도 [그 가운데] 반드시 이에 이르러 떠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드무니, 이것이 &amp;lt;대학&amp;gt;의 가르침을 세운 자가 그 理가 비록 약간 회복되더라도 순수하지 않음이 있고 이미 비록 약간 극복했다하더라도 다하지 않음이 있어 장차 修己治人의 도를 다할 수 없음을 염려한 까닭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것(至善)을 가리켜서 말해 至善을 明德·新民의 표적으로 삼은 것이다. 明德·新民하고 싶은 사람이 진실로 반드시 여기(至善)에 이르기를 바라 약간의 과불급의 어긋남도 용납하지 않을 수 있다면, 인욕을 없애고 천리를 회복하는 것에 조금의 여한도 없을 것이다.&lt;br /&gt;
:朱子曰: &amp;quot;至善只是極好處, 十分端正恰好, 無一毫不是處, 無一毫不到處. 且如事君, 必當如舜之所以事堯, 而後喚做敬; 治民, 必當如堯之所以治民, 而後喚做仁. 不獨如此, 凡理皆有箇極好處.&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至善'은 그저 아주 좋은 것이니, 십분 단정하고 적절해 조금의 옳지 않음도 없고 조금의 주도하지 않음도 없는 것이다. 예를들어 군주를 섬기는 경우 반드시 舜이 군주를 섬겼던 것과 같이 한 이후에야 敬이라고 불러야 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경우 반드시 堯가 백성을 다스린 것과 같이 한 이후에야 仁이라고 불러야 한다. [지선은] 이와 같은 경우 뿐만 아니라 모든 이치에 모두 각각 지극히 좋은 것이 있는 것이다.&lt;br /&gt;
:○陳氏曰: &amp;quot;所謂'姑以至善目之'者, 所以極形容其精微爾, 非謂精微之不為善而借此以形容之也.&amp;quot;&lt;br /&gt;
:진씨가 말했다: &amp;quot;이른바 '姑以至善目之'라는 것은 그 정미함을 지극히 형용한 것일 뿐이지, 정미함이 선하지 못해 이 말(지선)을 빌려 형용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amp;quot;&lt;br /&gt;
:○又曰: &amp;quot;自其大者言之, 如仁敬慈孝即君臣父子所當止之處; 自其小者言之, 如足容重, 手容恭, 重與恭, 即手足所當止之處; 視思明, 聽思聰, 聰與明, 亦視聽所當止之處.&amp;quot;&lt;br /&gt;
:또 말했다: &amp;quot;큰 것으로부터 말하면 仁·敬·慈·孝가 곧 군신·부자관계에서 마땅히 멈춰야 할 곳임과 같고, 작은 것으로부터 말하면 마치 '발 모양은 무겁게 하고 손 모양은 공손하게 한다'&amp;lt;ref&amp;gt;&amp;lt;예기&amp;gt; &amp;lt;옥조&amp;gt; 足容重，手容恭，目容端，口容止，聲容靜，頭容直，氣容肅，立容德，色容莊，坐如尸，燕居告溫溫。&amp;lt;/ref&amp;gt;에서 무겁게 하고 공경하게 함이 곧 손과 발이 마땅히 그쳐야하는 곳이며, '볼 때는 밝음을 생각하고 들을 때는 귀밝기를 생각한다'&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계씨&amp;gt; 10. 孔子曰：「君子有九思：視思明，聽思聰，色思溫，貌思恭，言思忠，事思敬，疑思問，忿思難，見得思義。」&amp;lt;/ref&amp;gt;에서 귀밝음과 밝음은 또한 보고 들음이 마땅히 그쳐야 하는 곳인 것과 같다.&amp;quot;&lt;br /&gt;
&lt;br /&gt;
大抵『大學』一篇之指, 總而言之, 不出乎八事, 而八事之要, 總而言之, 又不出乎此三者, 此愚所以斷&amp;lt;sub&amp;gt;都玩反&amp;lt;/sub&amp;gt;然以爲『大學』之綱領而無疑也. 然自孟子沒而道學不得其傳, 世之君子各以其意之所便者爲學. 於是乃有不務明其明德, 而徒以政敎法度爲足以新民者; 又有愛身獨善, 自謂足以明其明德, 而不屑乎新民者; 又有畧知二者之當務, 顧乃安於小成, 狃&amp;lt;sub&amp;gt;女九反&amp;lt;/sub&amp;gt;於近利, 而不求止於至善之所在者. 是皆不考乎此篇之過, 其能成己成物而不謬者鮮&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矣.&amp;lt;br/&amp;gt;&lt;br /&gt;
대저 『대학』 한 편의 요지를 통틀어 말한다면 이 팔조목을 벗어나지 않으며, 이 팔조목의 요체를 통틀어 말한다면 또한 이 삼강령을 벗어나지 않으니, 이것이 내가 단호하게 [삼강령과 팔조목을] 『대학』의 강령이라고 여기고 의심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러나 맹자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도학이 전해지지 못해 세상의 군자들이 각각 자기 뜻이 편한 바를 학문으로 삼았다. 이에 곧 자신의 明德을 밝히는 데 힘쓰지 않고 그저 정교와 법도가 新民하기 충분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었고, 또 자신을 아끼고 홀로 선하게 해서 스스로 '내 明德을 밝힐 수 있다'고 여기면서 '新民'하려고 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으며, 또 대략 이 두 가지(明德·新民)에 마땅히 힘써야 함을 알지만 도리어 이내 작은 성공에 안주하고 가까운 이익만 탐내서 '止於至善'의 소재를 구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이 모두는 이 편(&amp;lt;대학&amp;gt;)을 상고하지 않은 잘못이니, 자신을 이루고 사물을 이루며 잘못하지 않을 수 있는 자가 드물다.&lt;br /&gt;
:朱子曰: &amp;quot;不務明其明徳而以政教法度為足以新民, 如管仲之徒便是; 自謂能明其明徳而不屑於新民, 如佛老便是; 略知明徳新民而不求止於至善, 如王通便是. 看他於己分上亦甚脩飾, 其論為治, 本末亦有條理, 甚有志於斯世, 只是規模淺窄, 不曽就本原上着工, 便做不徹. 須是無所不用其極, 方是. 古之聖賢明明徳, 便欲無一毫私欲; 新民, 便欲人於事事物物上皆是當也.&amp;quot;&lt;br /&g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자신의 明徳을 밝히는데 힘쓰지 않고 정교와 법도가 新民하기 충분하다고 여기는 것'은 관중과 같은 무리가 이에 해당하고, '스스로 明徳을 할 수 있다고 여기면서 新民하려고 하지 않은 것'은 불교·도가와 같은 자들이 이에 해당하며, '대략 明徳·新民해야 함을 알지만 止於至善을 구하지 않는 것'은 왕통과 같은 자가 이에 해당한다. 그(왕통)를 보면, 자기 본분상에서 매우 잘 닦았고, 그가 다스림에 대해서 논한 것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역시 조리가 있었으며, 이 세상에 심히 뜻을 두긴 했지만, 다만 규모가 너무 작아 일찍이 본원상에서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철저하지 못하였다. 모름지기 그 지극함을 쓰지 않음이 없어야 비로소 옳다. 옛날의 성현들의 明明徳은 터럭만큼의 작은 사욕도 없고자 하셨고, 新民은 사람들이 사사물물마다 모두 옳게 하고자 하셨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成己謂明徳; 成物謂新民; 不止至善, 故'不謬者鮮.'&amp;quot;&lt;br /&gt;
:옥계 노씨가 말했다: &amp;quot;자신을 이루는 것을 明徳이라하고, 사물을 이뤄주는 것을 新民이라 한다. 至善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잘못하지 않는 자가 드물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8. '親民'을 '新民'으로 고친 이유&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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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 “程子之改親爲新也, 何所據? 子之從之, 又何所考而必其然耶? 且以已意輕改經文, 恐非傳疑之義, 奈何?”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정자께서 '親'을 '新'으로 고치셨는데, 어디에 근거하신 것인가? 그대가 이를 따랐는데, 또 무엇을 고찰해 그러함을 확신했나? 또 자기 생각으로 함부로 경문을 고치는 것은 傳疑&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謂將自己認為有疑義的問題如實告人。 亦謂傳授有疑義的問題。 ▶ 《穀梁傳‧莊公七年》： “《春秋》著以傳著， 疑以傳疑。” &amp;lt;/ref&amp;gt;의 원칙&amp;lt;ref&amp;gt; 義 : 4.理應。&amp;lt;/ref&amp;gt; 이 아닌 것 같은데, 어떤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新安倪氏曰: &amp;quot;&amp;lt;春秋穀梁傳&amp;gt;云: '信以傳信, 疑以傳疑.'&amp;lt;ref&amp;gt;&amp;lt;춘추곡량전&amp;gt; 환공5년. 五年春，正月甲戌、己丑，陳侯鮑卒。鮑卒，何為以二日卒之？《春秋》之義，信以傳信，疑以傳疑。陳侯以甲戌之日出，己丑之日得。不知死之日，故舉二日以包也。&amp;lt;/ref&amp;gt; 此傳疑二字所本也.&amp;quot;&lt;br /&gt;
:신안예씨가 말했다. &amp;lt;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amp;gt;에서 이르기를 '信은 傳信으로 하고, 疑는 傳疑로 한다.'고 하였으니 이 傳과 疑의 두글자는 근본하는 바이다.&lt;br /&gt;
曰: “若無所考而輒改之, 則誠若吾子之譏矣. 今親民云者, 以文義推之則無理, 新民云者以傳&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文考之則有據, 程子於此, 其所以處&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之者亦已審矣. 矧未嘗去&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其本文, 而但曰: 某當作某, 是乃漢儒釋經不得已之變例, 而亦何害於傳疑耶? 若必以不改爲是, 則世蓋有承誤踵&amp;lt;sub&amp;gt;之隴反&amp;lt;/sub&amp;gt;訛&amp;lt;sub&amp;gt;吾禾反&amp;lt;/sub&amp;gt;, 心知非是, 而故爲穿鑿附會, 以求其說之必通者矣, 其侮聖言而誤後學也益甚, 亦何足取以爲法耶?”&amp;lt;br/&amp;gt;&lt;br /&gt;
말했다. 만약 고찰할 바가 없는데도 곧장 그것을 고쳤다면 진실로 그대의 비판과 같다. 지금 親民을 말하는 사람은 글의 뜻으로 이를 미루어 본다면 이치가 없고, 新民을 말하는 사람은 (대학의) 傳文로 그것을 상고해 보면 근거가 있다. 정자께서 이에 대해 대처하신 것은 또한 매우 자세히 살피신 것이다. 하물며 일찍이 그 본문을 제거하지 않고 다만 '무엇은 마땅히 무엇으로 써야한다'고 말한 것은 바로 한나라 유자들이 경전을 해석하면서 부득이 한 變例니, 또한 어찌 傳疑에 해가 되겠는가? 만약 반드시 고치지 않는 것을 옳다고 여긴다면 세상은 아마도 잘못된 것을 답습해서 마음은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고의로 천착하고 억지로 가져다 붙이면서 그 설명이 반드시 통하는 것을 구할 것이니 성현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후학들을 그르치는 것이 더욱 심해질 것이니 또한 어떻게 본보기로 삼음을 취하기에 충분하겠는가?&lt;br /&gt;
&lt;br /&gt;
&lt;br /&gt;
9. '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에 대한 설명&lt;br /&gt;
&lt;br /&gt;
曰: “‘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 何也?”&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머무를 곳을 안 이후에 일정함이 있고 일정한 이후에 고요해질 수 있고 고요해진 이후에 안정될 수 있고 안정된 이후에 사려할 수 있고 사려한 이후에 얻을 수 있다고 하셨으니 어째서 입니까?&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此推本上文之意, 言明德新民所以止於至善之由也. 蓋明德新民, 固皆欲其止於至善, 然非先有以知夫&amp;lt;sub&amp;gt;音扶下同&amp;lt;/sub&amp;gt;至善之所在, 則不能有以得其所當止者而止之. 如射者固欲其中&amp;lt;sub&amp;gt;去聲下同&amp;lt;/sub&amp;gt;夫正鵠&amp;lt;sub&amp;gt;正音征鵠音谷&amp;lt;/sub&amp;gt;, 然不先有以知其正鵠之所在, 則不能有以得其所當中者而中之也. 知止云者, 物格知至而於天下之事, 皆有以知其至善之所在, 是則吾所當止之地也. 能知所止, 則方寸之間, 事事物物, 皆有定理矣;&amp;lt;br/&amp;gt;&lt;br /&gt;
답했다. &amp;quot;이것은 상문의 의미를 탐구한 것이니&amp;lt;ref&amp;gt;推本:探究&amp;lt;/ref&amp;gt; 明德, 新民이 止於至善하는 경로를 말한 것이다. 대개 明德, 新民은 진실로 모두 止於至善하고자 하지만 먼저 至善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면 마땅히 머물러야할 곳을 얻어서 머무를 수 없다. 이는 마치 사수가 진실로 정곡을 맞추고자 하지만 먼저 정곡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없다면 마땅히 맞춰야 할 바를 얻어서 맞출 수 없는 경우와 같다. 知止를 말한 것은 物格知至한다면 천하의 일에 대해 모두 至善이 있는 곳을 알수 있을 것이니, 거기가 곧 내가 마땅히 멈춰야 할 곳이다. 머무를 바를 알 수 있다면 마음이 모든 일에 대해 모두 일정한 이치를 가지게 된다.&amp;quot;&amp;lt;br/&amp;gt;&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amp;lt;章句&amp;gt;云: '知之則志有定向.' 此云: '事物皆有定理.' 合二說, 其義方備. 能知所止, 則此心光明, 見得事物皆有定理, 而志方有定向.&amp;quot;&lt;br /&gt;
:신안진씨가 말했다. &amp;lt;장구&amp;gt;에서는 '알고나면 뜻은 일정한 방향을 가진다(知之則志有定向)'고 하고 여기에서는 '만물에 모두 일정한 이치를 가지게 된다.(事物皆有定理)'고 하시니 이 두 설명을 합쳐야 그 의미가 비로소 (완전히) 갖추어 진다. 머무를 곳을 알 수 있으면 이 마음이 훤히 밝아져서 모든 일에 일정한 이치가 있음을 알 수 있고 뜻에도 일정한 방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理既有定, 則無以動其心而能靜矣; 心既能靜, 則無所擇於地而能安矣; 能安, 則日用之間, 從&amp;lt;sub&amp;gt;七恭反&amp;lt;/sub&amp;gt;容閒&amp;lt;sub&amp;gt;音閑&amp;lt;/sub&amp;gt;暇, 事至物來, 有以揆之而能慮矣; 能慮, 則隨事觀理, 極深研幾&amp;lt;sub&amp;gt;平聲&amp;lt;/sub&amp;gt;,&amp;lt;ref&amp;gt;&amp;lt;주역&amp;gt; &amp;lt;계사상&amp;gt; 夫易，聖人之所以極深而研幾也。&amp;lt;/ref&amp;gt;無不各得其所止之地而止之矣.&amp;lt;br/&amp;gt;&lt;br /&gt;
이치가 정해짐이 있고나면 그 마음을 동요시킬 수 없어서 고요할 수 있게 되고, 마음이 고요질 수 있고나면 어느 곳에서든 안정될 수 있고, 안정될 수 있다면 평소에 느긋하고 한가로워서 사물이 닥칠 때 그것을 헤아리고 사려할 수 있고, 사려할 수 있다면 일에 따라 이치를 관찰함에 매우 깊히 그 기미를 연구해서 각각 그 머물러야 할 곳을 얻어서 머무르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lt;br /&gt;
:問: &amp;quot;'知止'與'能慮', 先生昨以比&amp;lt;易&amp;gt;中'深'與'幾', &amp;lt;或問&amp;gt;中却兼下'極深研幾'字, 覺未穩.&amp;quot; 朱子曰: &amp;quot;極深研幾, 是更審一審. 當時下得未仔細. 要之只著得研幾字.&amp;quot;&lt;br /&gt;
:물었다. '知止'와 '能慮'를 선생님께서 이전에 &amp;lt;易&amp;gt;의'深'과 '幾'에 비교하셨는데&amp;lt;ref&amp;gt; 『주역』, 「계사상전」 &amp;quot;夫易, 聖人之所以極深而研幾也,&amp;quot; &amp;lt;本義&amp;gt; 研, 猶審也. 幾, 微也. 所以極深者, 至精也. 所以研幾者, 至變也. 연(硏)은 살핀다는 ‘심(審)’과 같고 기(幾)는 기미이다. 깊음을 다한다는 것은 지극히 정밀함이고, 기미를 살핀다는 것은 지극히 변화함이다. &amp;lt;/ref&amp;gt; &amp;lt;혹문&amp;gt;에서 도리어 '極深研幾'를 겸하여 쓰셨으니 온당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주자가 말했다. 極深研幾는 다시 한 번 살펴봐야 한다/. 당시에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으니 핵심은 '研幾'자를 써야한다.&lt;br /&gt;
:○陳氏曰: &amp;quot;物果格而無一理之不窮, 無一見之不盡, 則於天下之事, 所謂至善所當止者, 皆灼然有以知之矣.&amp;quot;&lt;br /&gt;
:진씨가 말했다. &amp;quot;사물에게 과연 格했을 때, 하나의 이치라도 궁구하지 않음이 없고 하나를 보더라도 다하지 않음이 없다면, 천하의 모든 일에 대해서 이른바 至善하여 마땅히 그쳐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을 모두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amp;quot;&lt;br /&gt;
:○理既有定, 則心之所主, 更無外慕, 凡外物皆無以動之, 而能静矣. 身既能安, 則向者知所當止之事物, 或接乎吾前, 而吾從容以應之, 自能精於慮, 而不錯亂矣.&lt;br /&gt;
:이치가 정해지고 나면 마음이 주로하는 바에 달리 밖으로 사모하는 것이 없어 무릇 외물이 (내 마음을) 동요시킬 수 없음으로 고요할 수 있다. 몸이 편안할 수 있고나면 전에 마땅히 머물러야할 사물을 알아서 혹 내 앞에 접하더라도 내가 종용히 그것에 응하여 절로 사려를 정밀하게 할 수 있고 착란하지 않을 수 있다.&lt;br /&gt;
&lt;br /&gt;
然旣眞知所止, 則其必得所止, 固已不甚相遠. 其間四節, 蓋亦推言其所以然之故, 有此四者, 非如孔子之志學以至從心,&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위정&amp;gt; 4. 子曰：「吾十有五而志于學，三十而立，四十而不惑，五十而知天命，六十而耳順，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amp;lt;/ref&amp;gt; 孟子之善信以至聖神,&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진심하&amp;gt; 25. 浩生不害問曰：「樂正子，何人也？」孟子曰：「善人也，信人也。」	「何謂善？何謂信？」 曰：「可欲之謂善，有諸己之謂信。充實之謂美，充實而有光輝之謂大，大而化之之謂聖，聖而不可知之之謂神。樂正子，二之中，四之下也。」&amp;lt;/ref&amp;gt; 實有等級之相懸, 爲終身經歷之次序也.”&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이미 진실로 그 머물 곳을 알았다면 반드시 그 머물 곳을 얻어서 이미 너무 (그 사이가) 멀지 않다. (그러나) 그 사이에 네 가지 단계는 아마도 또한 그 소이연의 이유를 미루어 말한 것이니 이 네가지 단계가 있는 것은 공자의 '학문에 뜻을 세우고 從心까지 이르는 것'과 맹자의 '善信해서 聖神에까지 이르는 것'이 진실로 단계끼리 서로 현격한 차이가 있어서 종신토록 거쳐야할 순서가 되는 것과 같지 않다.&lt;br /&gt;
:朱子曰: &amp;quot;如'志學'至'從心', 中間許多, 便是大階級, 歩却闊. '知止'至'能得'只如'志學'至'立'、'立'至'不惑'相似, '定静安'大抵皆相類, 只是就一級中間細分耳.&amp;quot;&lt;br /&gt;
:주자가 말했다. 예를들어 '志學'부터 '從心'까지 그 중간에 많은 단계들은 큰 단계이니 걸음거리를 넒게해야 하지만 '知止'부터 '能得'은 다만 '志學'부터 '立'과 '立'부터 '不惑'까지와 서로 비슷하니 '定静安'은 대체로 이러한 부류인데 다만 한 단계를 중간에 세분화했을 뿐이다. &lt;br /&gt;
:○某事當如此, 某事當如彼, 如君當仁, 此是知止; 事至物來, 對著胷中恰好底道理, 將這箇去應他, 此是得其所止.&lt;br /&gt;
:누구의 일은 마땅히 이와 같아야하고 누구의 일은 마땅히 저것과 같아야 하니 예를들어 군주가 마땅히 仁해야하는 경우가 바로 머물 곳을 아는 것이다. 사물이 다가옴이 마음에 적절한 도리에 대해 그것을 가지고 사물에 응하는 것이 바로 머물 곳을 얻은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10.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에 대한 설명&lt;br /&gt;
&lt;br /&gt;
曰: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何也?”&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사물에는 本末이 있고 사건에는 終始가 있으니 선후를 알면 바로 도와 근접하다고 하신 것은 무엇입니까?&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此結上文兩節之意也. 明德·新民, 兩物而內外相對, 故曰本末; 知止·能得, 一事而首尾相因, 故曰終始. 誠知先其本而後其末, 先其始而後其終也, 則其進爲有序而至於道也不遠矣.”&amp;lt;br/&amp;gt;&lt;br /&gt;
답했다. &amp;quot;이는 윗 글의 두 구절의 의미를 마무리한 것이다. 明德과 新民은 두 가지지만 안팍으로 서로 짝이되므로 本末이라고 말한 것이고, 知止와 能得은 한 가지 일인데 머리와 꼬리가 서로를 말미암기 때문에 終始이라고 말한 것이다. 진실로 그 근본을 먼저하고 그 말단을 나중에 하며 그 처음을 먼저하고 그 마지막을 나중에 할 줄 안다면 그 나아감에 순서가 있게 되어 도에 이르르는 것이 멀지 않다.&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知工夫先後、次第, 則進為有序, 不忽近務逺, 處下窺髙, 而其入道為不逺矣, 謂至道之近也.&amp;quot;&lt;br /&gt;
:주자가 말했다. &amp;quot;공부의 선후와 순서를 안다면 나아감에 순서가 있게 되어 가까운 것을 소홀히하고 고원한 것에는 힘쓰지 않으며 낮은 곳에 있으면서 높은 것을 헤아리지 않아서 도에 들어감이 멀지 않게 되니 도의 다다름이 가까워진다고 하였다.&amp;quot;&lt;br /&gt;
:○黄氏曰: &amp;quot;知所先後, 方是曉得為學之道, 未能遂得夫道也. 然既知其進為之序, 則有至之階矣, 故云去道不遠.&amp;quot;&lt;br /&gt;
:황씨가 말했다. &amp;quot;선후를 알아야 학문을 하는 방법을 깨달을 수 있지만 그 도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그 나아가는 순서를 알았다면 이르게 되는 단계가 있기 때문에 도까지의 거리가 멀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11.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 致知在格物’에 대한 설명&lt;br /&gt;
&lt;br /&gt;
曰: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何也?”&amp;lt;br/&amp;gt; &lt;br /&gt;
물었다. '옛날에 천하에 明德을 밝히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나라를 다스리고, 그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집안을 다스리고, 그 집안을 다스리고 싶은 사람은 먼저 그 몸을 다스리고, 그 몸을 다스리고 싶은 사람은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 싶은 사람은 먼저 그 뜻을 진실되게 하고, 그 뜻을 진실되게 하고 싶은 사람은 먼저 그 앎을 지극히하고, 앎을 지극히 하는 것은 격물에 달려있다.'고 하였는데 어째서 입니까?&amp;lt;br/&amp;gt; &lt;br /&gt;
曰: “此言大學之序, 其詳如此, 蓋綱領之條目也. 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者, 明明德之事也. 齊家·治國·平天下者, 新民之事也. 格物致知, 所以求知至善之所在; 自誠意以至於平天下, 所以求得夫至善而止之也. &amp;lt;br/&amp;gt; &lt;br /&gt;
답했다. 이는 대학의 순서가 이와 같이 상세함을 말한 것이니, 대개 3강령의 조목이다. 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이라는 것은 明明德의 일이고, 齊家·治國·平天下는 新民의 일이다. 格物致知는 至善이 있는 곳을 알기를 구하는 것이고 誠意부터 平天下에 이르기까지는 저 至善을 얻어서 그곳에 머무르기를 구하는 것이다.&lt;br /&gt;
:朱子曰: &amp;quot;格物、致知, 是求知其所止; 誠意、正心、脩身、至平天下, 是求得其所止. 物格、知至, 是知所止; 意誠、心正、身脩、家齊、國治、天下平, 是得其所止.&amp;quot;&lt;br /&gt;
:주자가 말했다. 格物과 致知는 그 머무를 바를 알기를 구한 것이고, 誠意、正心、脩身부터 平天下까지는 그 머무를 바를 얻기를 구한 것이다.  物格、知至는 그 머무를 바를 안 것이고  意誠、心正、身脩、家齊、國治、天下平는 그 머무를 바를 얻은 것이다. &lt;br /&gt;
&lt;br /&gt;
所謂明明德於天下者, 自明其明德而推以新民, 使天下之人皆有以明其明德也. 人皆有以明其明德, 則各誠其意, 各正其心, 各修其身, 各親其親, 各長&amp;lt;sub&amp;gt;上聲下同&amp;lt;/sub&amp;gt;其長, 而天下無不平矣. &amp;lt;br/&amp;gt; &lt;br /&gt;
이른바 '明明德於天下'라는 것은 스스로 明德을 밝혀서 이것을 新民으로 미루어나가 천하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明德을 밝힐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자신들의 명덕을 밝힐 수 있다면 각각 그 뜻을 진실하게 할 수 있고 각자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하며 각자 자신을 닦아서 각자 자신의 부모를 친히하고 각자 자신의 어른을 어른대접할 것이니 천하가 평안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lt;br /&gt;
:問: &amp;quot;明徳之功, 果能若是, 不亦善乎? 然以堯舜之聖, 閨門之内, 或未盡化, 况謂天下之大, 能服堯舜之化而各明其徳乎?&amp;quot; 朱子曰: &amp;quot;&amp;lt;大學&amp;gt;'明明徳於天下', 只是且說箇規模如此. 學者須有如此規模, 不如此, 便是欠了. 且如伊尹'思匹夫不被其澤, 如已推而納之溝中',&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만장상&amp;gt; 7. 萬章問曰：「人有言『伊尹以割烹要湯』有諸？」 孟子曰：「否，不然。伊尹耕於有莘之野，而樂堯舜之道焉。…… 思天下之民匹夫匹婦有不被堯舜之澤者，若己推而內之溝中。」&amp;lt;/ref&amp;gt; 伊尹也只大槩要恁地, 又如何使得無一人不被其澤! 又如説比屋可封,&amp;lt;ref&amp;gt;&amp;lt;상서대전&amp;gt; &amp;lt;略說&amp;gt; 周人可比屋而封。; &amp;lt;한어대사전&amp;gt; 【比屋可封】 1. 謂上古之世教化遍及四海， 家家都有德行， 堪受旌表。&amp;lt;/ref&amp;gt; 也須有一家半家不恁地者, 只是見得自家規模自當如此, 到做不去處, 却無可奈何. 規模自是著恁地, 工夫便却用寸寸進. 若無規模次第, 只管去細碎處走, 便入世之計功謀利處去; 若有規模而又無細密工夫, 又只是一箇空規模. 外極規模之大, 内推至於事事物物處, 莫不盡其工夫, 此所以為聖賢之學.&amp;quot;&lt;br /&gt;
:물었다. 명덕의 공효가 과연 이와 같을 수 있으니 또한 좋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요순과 같은 성인도 안방문 안에 대해서는 혹 다 교화시키지 못하셨으니 하물며 천하와 같이 큼이 능히 요순의 교화를 입어서 각각 자신의 덕을 밝힐 수 있다고 말하시는 겁니까? 주자가 말했다. &amp;lt;대학&amp;gt;의 '明明徳於天下'라는 것은 다만 그 규모가 이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학자는 모름지기 이와 같은 규모를 가져야 하니, 이와 같지 않으면 부족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이윤이 '필부라도 요순의 은택을 입지 못하는 것을 마치 자기를 미루어 시체 구덩이에 넣는 것과 같이 여겼'으니 이윤도 다만 대체적으로 이와 같이하고자 한 것이니, 또 어떻게 한 사람이라도 그 은택을 입지 못함이 없게할 수 있겠는가? 또 예를 들어 '주나라 사람들은 집집마다 봉할 만 했다(比屋可封)'로 말하더라도 틀림이나 이와 같지 않은 한 집, 반 집은 있었을 것이니 다만 자신의 규모가 응당 이와 같아야 함을 알아야 하지만 행하지 못하는 데 이르러서는 도리어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규모는 본래 이와 같이 두고 공부는 하나하나 나아가는 것이다. 만약 규모나 순서가 없고 그저 세세한 것에만 집학하면 세상의 공리를 꾀하는 수준에 들어가게 될 것이요 만약 규모는 있는데 세밀한 공부가 없다면 또 그저 헛된 규모일 뿐이다. 밖으로는 규모의 거대함을 다하고 안으로는 모든 일에 미루어 나가 그 공부를 다하지 않음이 없는 것 이것이 성현의 학문이 되는 것이다.&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不言各格物致知者, '民可使由, 不可使知'&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태백&amp;gt; 9. 子曰：「民可使由之，不可使知之。」&amp;lt;/ref&amp;gt;之意也. 親親、長長, 即齊家之大者.&amp;quot;&lt;br /&gt;
:신안진씨가 말했다. &amp;quot;각각 격물치지한다고 말하지 않은 것은 '백성들은 말미암게 할 수 있지만 알게 할 수 없다'뜻이다. 親親, 長長은 제가 가운데 중요한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然天下之本在國, 故欲平天下者, 必先有以治其國. 國之本在家, 故欲治國者, 必先有以齊其家. 家之本在身, 故欲齊家者, 必先有以修其身. 至於身之主則心也. 一有不得其本然之正, 則身無所主, 雖欲勉强&amp;lt;sub&amp;gt;上聲下同&amp;lt;/sub&amp;gt;以修之, 亦不可得而修矣, 故欲修身者, 必先有以正其心. 而心之發則意也, 一有私欲雜乎其中, 而爲善去&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惡或有未實, 則心爲所累, 雖欲勉强以正之, 亦不可得而正矣. 故欲正心者, 必先有以誠其意, 若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知則心之神明, 妙衆理而宰萬物者也. 人莫不有, 而或不能使其表裏洞然, 無所不盡, 則隱微之間, 眞妄錯雜, 雖欲勉强以誠之, 亦不可得而誠矣. 故欲誠意者, 必先有以致其知. 致者, 推致之謂, 如‘喪致乎哀’之致, 言推之而至於盡也. &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천하는 본래 나라에 달려있으니 평천하 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그 나라를 다스려야하고, 나라는 본래 집안에 달려있으니 나라를 다스리고 싶은 사람은 반드지 먼저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해야하고, 집안은 본래 자신에게 달려있으 집안을 다스리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먼저 그 몸을 닦아야 하고, 그 몸의 주인됨는 경우는 마음이니 하나라도 본래의 바름을 구할 수 없다면 몸에 주재하는 것이 없다. 비록 억지로 힘써 닦고자 하더라도 닦을 수 가 없다. 그러므로 수신하고하 하는 자는 반드시 먼저 자신의 마음을 바로해야한다. 마음이 발현된 것이 의이니 하나라도 사욕이 그 마음 속에서 뒤섞여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함에 혹시라도 충실하지 않은 것이 있으면 마음이 얽매이게 되니 비록 억지로 힘써 바로 잡고자 하더라도 바로 잡을 수 없다. 그러므로 마음을 바로잡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그 뜻을 진실되게 해야한다. 대저 지각은 마음의 신명이니 뭇 이치를 묘하게 갖추고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 사람 知가 없는자는 없지만 혹 마음의 표리를 훤하게 다 알지 못하는 바가 없게 할 수 없다면 은미한 가운데 진망이 뒤섞여서 비록 억지로 힘써 진실되게 하고자 하더라도 또한 진실되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뜻을 진실되게 하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먼저 그 앎을 지극히 해야한다. 致라는 것은 推致를 말하니 '喪致乎哀'&amp;lt;ref&amp;gt; 『논어』 &amp;lt;자장&amp;gt; 14. 子游曰：「喪致乎哀而止。&amp;lt;/ref&amp;gt; 의 致와 같으니 미루어서 지극한데 이름을 말한다.&lt;br /&gt;
:朱子曰: &amp;quot;神是恁地精彩; 明是恁地光明.&amp;quot;'&lt;br /&gt;
:주자가 말했다. &amp;quot;神은 이와 같이 빛나는 것이고 明은 이와 같은 광명이다. &amp;quot;&lt;br /&gt;
:○道理固本有, 用知方發得出來. 所以謂之妙衆理. 妙猶言能運用衆理也. '運用'字有病, 故只下得'妙'字.&amp;quot;&lt;br /&gt;
:道理는 진실로 본래 가지고 있지만 知를 써야 비로소 드러낼 수 있다. 그러므로 妙衆理라고 하였다. 妙는 運用를 운용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運用'에는 병통이 있기 때문에 다만 '妙'만 썼다.&lt;br /&gt;
:○問: &amp;quot;宰是主宰之宰, 宰制之宰?&amp;quot; 曰: &amp;quot;主便是宰, 宰便是制.&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宰라는 것은 主宰의 宰입니까 宰制의 宰입니까?&amp;quot; 말했다. &amp;quot;主宰의 主는 주관함(宰)이고, 宰制의 宰는 제어함(制)이다.&amp;quot;&lt;br /&gt;
:○問: &amp;quot;知如何宰物?&amp;quot; 曰: &amp;quot;無所知學, 則不足以宰制萬物. 要宰制他, 也須要知覺.&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지가 어떻게 사물을 제재합니까?&amp;quot; 말했다. &amp;quot;지각함이 없으면 만물을 제재할 수 없다. 만물을 제재하려면 역시 지각해야한다.&amp;quot;&lt;br /&gt;
:○心之為物, 至虛至靈, 神妙不測, 常為一身之主, 以提萬事之綱, 而不可有頃刻之不存者也. 一不自覺而馳騖飛揚, 以狥物欲於軀殻之外, 則一身無主, 萬事無綱, 雖其俯仰顧盼之間, 盖巳不自覺其身之所在.&amp;quot;&lt;br /&gt;
:마음의 사물됨은 매우 虛靈하고 신묘하고 예측하지 못하여 항상 일신의 주재가 되니 만사의 기강을 잡아서 잠시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심이) 한 번이라도 자각하지 않고서 내달려 몸뚱이 밖으로 물욕을 좇는다면 일신에 주재가 없고 만사에 기강이 없어 비록 잠깐&amp;lt;ref&amp;gt; 俯仰 : 7.比喻時間短暫。&amp;lt;/ref&amp;gt; 사이에도 대개 이미 몸이 있는 곳을 자각하지 못할 것이다.&lt;br /&gt;
:○黄氏曰: &amp;quot;理是不動底物, 不著妙字, 如何發得許多理出來?&amp;quot;&lt;br /&gt;
:황씨가 말했다. &amp;quot;理는 움직이지 않는 물건이니 '妙'를 쓰지 않으면 어떻게 허다한 理를 드러낼 수 있겠는가&amp;quot;&lt;br /&gt;
:○陳氏曰: &amp;quot;致知言表裏洞然, 以心之内外而言. 知不致, 則無以識是非善惡之眞, 將從何而趨, 從何而捨? 必有錯認人欲作天理而不自覺者.&amp;quot;&lt;br /&gt;
:진씨가 말했다. &amp;quot;致知는 안과 밖으로 훤한 것을 말하니 마음의 안팎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앎이 지극하지 않으면 참된 시비, 선악을 알지 못하니 장차 무엇을 통해 취하고 무엇을 통해 버릴 것인가? 필시 인욕을 천리라고 잘못 인식하고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amp;quot;&lt;br /&gt;
:○三山陳氏曰: &amp;quot;欲意之誠而不始於致知, 則有善否未明而誤於所向者, 多矣. '推之而至於盡', 有所用力之辭.&amp;quot;&lt;br /&gt;
:삼산진씨가 말했다. &amp;quot;뜻이 진실해지기를 바라면서 致知에서 시작하지 않는다면 선한지 아닌지에 대해 밝지 않은 점이 있게 되어 향할 바를 오인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推之而至於盡'라고 한 것은 힘쓸 바가 있다는 말이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心之神明, 即所得於天而虚靈不昩者也. 心固具衆理而應事物, 所以妙衆理而宰事物者, 非心之神明乎? 其表與裏洞然無不盡, 則心之用與體無不明矣. 神明字與虚靈字, 相為表裏: 虚主理言, 靈兼氣言, 先言虚, 後言靈, 見心之體不離用; 神兼氣言, 明主理言, 先言神, 後言明, 見心之用不離體.&amp;quot;&lt;br /&gt;
:옥계노씨가 말했다. &amp;quot;마음의 신명함은 이미 하늘에서 얻어서 허령불매한 것이다. 마음은 진실로 具衆理하고 應事物하니, 妙衆理하고 宰事物이라는 것은 마음의 신명함이 아니겠는가? 그 안과 밖이 훤하여 다하지 않음이 없다면 마음의 용과 체가 밝혀지지 않음이 없다. 신명이라는 글자와 허령이라는 글자는 서로 표리가 되니 허는 리를 주로하여 말하였고 령은 기를 겸하여 말한 것인데 먼저 허를 말하고 나중에 령이라고 말한 것은 마음의 체가 용과 떨어지지 않음을 드러낸 것이고, 신은 기를 겸하여 말한 것이고 명은 리를 주로 말한 것이니 먼저 신을 말하고 나중에 명을 말한 것은 심의 용이 체와 떨어지지 않음을 드러낸 것이다.&amp;quot;&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心本神明之物; 知又心之所以神明者. 惟神明所以妙也.&amp;quot;&lt;br /&gt;
:신안진씨가 말했는 &amp;quot;마음은 본래 신명한 물건이고 지는 또한 마음이 신명한 까닭이다. 오직 신명하기 때문에 묘한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至於天下之物, 則必各有所以然之故, 與其所當然之則, 所謂理也, 人莫不知, 而或不能使其精粗隱顯, 究極無餘, 則理所未窮, 知必有蔽, 雖欲勉强以致之, 亦不可得而致矣. &amp;lt;br/&amp;gt;&lt;br /&gt;
천하의 사물에 경우는 반드시 각각 소이연의 연고가 있고 마땅히 그러한 법칙이 있으니 이른바 리이다. 사람은 (리를) 알지 못함이 없지만 혹 그 정추은현을 궁구하여 남음이 없게 할 수 없으면 리에는 다하지 못한 바가 있고 지에는 필시 가리워진 바가 있으니 비록 억지로 힘써 그것을 다하고자 하여고 또한 다할 수 없을 것이다.&lt;br /&gt;
:朱子曰: &amp;quot;所當然之則, 如君之仁、臣之敬; 所以然之故, 如君何故用仁、臣何故用敬. 如君之所以仁, 盖君是箇主腦, 百姓人民皆屬他管, 他自是用仁愛, 非說是為君了, 不得巳以仁愛行之, 自是合如此, 若天使之然. 又如父之所以慈, 子之所以孝, 盖父子本同一氣, 只是一人之身分成兩箇, 其恩愛相屬, 自有不期然而然者. 其他大倫皆然, 皆天理使之如此, 豈容强為哉?&amp;quot;&lt;br /&gt;
:주자가 말했다. &amp;quot;當然之則이라는 것은 군주의 인함과 신하의 공경함과 같은 것이고, 所以然之故라는 것은 군자가 어째서 인고 신하는 어째서 경한지 대한 것과 같다. 예를 들어 군자가 인한 까닭은 대개 군주는 리더고 백성 인민은 모두 그의 관할에 속하기 때문이니 그가 저절로 仁愛를 행하는 것이지 군주가 되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仁愛를 행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니 절로 이와 같이 해야하는 것이 마치 하늘이 그렇게 하도록 시킨 것과 같다. 또 아버지가 자애로운 까달과 자식이 효성스러운 까닭은 대개 부자는 본래 한 기를 공유였는지라 한 사람의 몸이 나뉘어 둘을 이룬 것이니 그 은혜가 서로 이어져 절로 그렇게 하기를 기약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되는 점이 있다. 다른 큰 인륜도 모두 그러하니 모두 천리가 그와 같이 하게 한 것이니 어찌 억지로 할 수 있겠는가?&amp;quot;&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粗也顯也, 即事物當然之則也; 精也隱也, 即事物所以然之故也.&amp;quot;&lt;br /&gt;
:옥계노씨가 말했다. 粗과 顯은 바로 事物當然之則이고 精과 隱은 事物所以然之故다.&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所當然之則, 理之實處; 所以然之故, 乃其上一層理之源頭也.&amp;quot;&lt;br /&gt;
:신안진씨가 말했다. &amp;quot;所當然之則는 리의 實處이고 所以然之故 바로 한 층 위의 근원적인 의미의 리이다.&amp;quot;&lt;br /&gt;
&lt;br /&gt;
故致知之道, 在乎卽事觀理, 以格夫物. 格者, 極至之謂, 如‘格於文祖’之格,&amp;lt;sub&amp;gt;見書舜典&amp;lt;/sub&amp;gt; 言窮之而至其極也. &amp;lt;br/&amp;gt;&lt;br /&gt;
그러므로 致知하는 방법은 일에 나아가 이치를 관찰하여 저 물에 이르는 것에 달려 있으니 격이라는 것은 '이름'을 말하니 문조에 이른다는 격과 같으니 궁구하여 지극한 곳에 이른다는 말이다.&lt;br /&gt;
:括蒼葉氏曰: &amp;quot;但能隨事觀理, 盡與理㑹, 卒之天下事物之理, 不惟知得一件兩件, 若隱若顯, 盖將無所不知矣; 一事一物之間, 不唯知得一分兩分, 若精若粗, 盖將無所不知矣.&amp;quot;&lt;br /&gt;
:괄창엽씨(葉味道/賀孫)가 말했다. &amp;quot;다만 일을 따라서 이치를 관찰하여 모두 이해할 수 있기만 한다면 끝내 천하 사물의 이치에 대해 한 두가지만 알 수 있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은미한 것이든 드러난 것이든 대개 장차 알지 못하는 것이 없을 것이며, 한 사물간에 10%, 20%만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밀한 것이든 거친 것이든 간에 장차 알지 못하는 것이 없을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此『大學』之條目, 聖賢相傳, 所以敎人爲學之次第, 至爲纖悉. 然漢·魏以來, 諸儒之論, 未聞有及之者. 至唐韓子&amp;lt;sub&amp;gt;名愈字退之&amp;lt;/sub&amp;gt;乃能援&amp;lt;sub&amp;gt;音袁&amp;lt;/sub&amp;gt;以爲說, 而見&amp;lt;sub&amp;gt;形甸反&amp;lt;/sub&amp;gt;於「原道」之篇, 則庶幾其有聞矣. 然其言極於正心誠意, 而無曰致知格物云者, 則是不探&amp;lt;sub&amp;gt;音貪&amp;lt;/sub&amp;gt;其端, 而驟語其次, 亦未免於擇焉不精, 語焉不詳之病矣. 何乃以是而議荀·揚哉?”&amp;lt;br/&amp;gt;&lt;br /&gt;
이것이 『大學』의 조목이요 성현께서 서로 전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학문하게 하는 순서니 지극히 섬세하다. 그러나 漢·魏이래로 여러 유자들의 논의 가운에 이에 미친 것이 있다고는 듣지 못했다. 당나라 한유의 경우는 바로 이를 가져다가 설을 만들어「原道」라는 글에서 드러낼 수 있었으니, 거의 (미친게 있다고) 들은 바가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이 정심성의에는 미쳤으니 지지격물이라고 말한 것은 없었으니 이는 그 시작점을 탐구하지 않고 바로 그 다음 것 부터 말한 것이니 역시 택함에 정미하지 못하고 말함이 상세하지 못한 병폐를 면하지 못했다. 이것으로 순자와 양웅을 논할 수 있겠는가!&lt;br /&gt;
:&amp;lt;韓文集&amp;gt;&amp;quot;荀與揚也, 擇焉而不精, 語焉而不詳.&amp;quot;&amp;lt;ref&amp;gt;「原道」 曰：「斯道也，何道也？」曰：「斯吾所謂道也，非向所謂老與佛之道也。」堯以是傳之舜，舜以是傳之禹，禹以是傳之湯，湯以是傳之文武周公，文武周公傳之孔子，孔子傳之孟軻。軻之死，不得其傳焉。荀與揚也，擇焉而不精，語焉而不詳。&amp;lt;/ref&amp;gt;&lt;br /&gt;
:&amp;lt;韓文集&amp;gt;에서 &amp;quot;순자와 양웅은 택함이 정밀하지 못하고 말함이 상세하지 못하다&amp;quot;고 하였다.&lt;br /&gt;
:○荀子, 名况, 字卿, 戰國時趙人也. 揚子, 名雄, 字子雲, 西漢成都人也. 各有所著之書, 今傳於世.&lt;br /&gt;
:순자는 이름이 황이고 자는 경이니 전국시대 조나라 사람이고 양웅은 이름이 웅이고 자가 자운이니 서한 성도 사람이다 각각 저술한 책이 있어서 오늘날 세상에 전해진다.&lt;br /&gt;
:○朱子曰: &amp;quot;「原道」舉&amp;lt;大學&amp;gt;, 却不說'格物致知'; &amp;lt;蘇氏古史&amp;gt;舉&amp;lt;中庸&amp;gt;'不獲乎上', 却不說'明善誠身',這様都是無頭學問.&amp;quot;&lt;br /&gt;
:주자가 말했다. &amp;quot;「原道」에서 &amp;lt;大學&amp;gt;을 거론하지만 오히려 '格物致知'를 말하지 않았고 &amp;lt;蘇氏古史&amp;gt;에서는 &amp;lt;中庸&amp;gt;의 '不獲乎上'을 서론하지만 '明善誠身'&amp;lt;ref&amp;gt;&amp;lt;중용장구&amp;gt; 20장. 在下位不獲乎上，民不可得而治矣；獲乎上有道：不信乎朋友，不獲乎上矣；信乎朋友有道：不順乎親，不信乎朋友矣；順乎親有道：反諸身不誠，不順乎親矣；誠身有道：不明乎善，不誠乎身矣。&amp;lt;/ref&amp;gt; 은 말하지 않으니 이런 것들은 모두 머리가 없는 학문이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12. ‘物格而后知至, …… 國治而后天下平’에 대한 설명&lt;br /&gt;
&lt;br /&gt;
曰: “‘物格而后知至, 知至而后意誠, 意誠而后心正, 心正而后身修, 身修而后家齊, 家齊而后國治, 國治而后天下平’, 何也?”&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物格이후에 知至하고, 知至한 이후에 뜻이 진실되어지며 뜻이 진실되어진 이후에 마음이 바르게 되고, 마음이 바르게 된 이후에 몸이 닦여지며 몸이 닦여진 이후에 집안이 다스려지고, 집안이 다스려진 이후에 나라가 다스려지며 나라가 다스려진 이후에 천하가 평안해지는 것은 어째서 입니까?&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此覆說上文之意也. 物格者, 事物之理, 各有以詣其極&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而無餘之謂也. 理之在物者, 旣詣其極而無餘, 則知之在我者, 亦隨所詣而無不盡矣. 知無不盡, 則心之所發能一於理而無自欺矣. 意不自欺, 則心之本體物不能動而無不正矣. 心得其正, 則身之所處不至陷於所偏而無不修矣. 身無不修, 則推之天下國家, 亦擧而措之耳. 豈外此而求之智謀功利之末哉!”&amp;lt;br/&amp;gt;&lt;br /&gt;
이것은 윗 글의 뜻을 뒤집어서 설명한 것이다. 物格이라는 것은 사물의 이치에 각각 그 지극한 곳에 이르러서 남음이 없을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사물에 있는 理가 이미 그 지극한 곳에 이르러 남음이 없게 되었다면 나에게 있는 앎은 또한 이르른 바를 따라서 다하지 않음이 없게된다. 앎이 다하지 않음이 없다면 마음이 발현되는 바가 理에 전일하여 자신을 속이지 않을 수 있다. 意(心之所發)가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면 마음의 본체를 외물이 동요시킬 수 없어서 바르지 않음이 없다. 마음이 바르게 되었다면 몸이 대처하는 곳은 편벽된 곳에 빠지는 상황에 이르지 않아서 (몸을) 닦지 않음이 없다. 몸이 닦여지지 않음이 없다면 그것을 천하와 나라 집안에까지 미루어 또한 (똑같이) 들어서 두면 될 뿐이니, 어찌 이것 벗어나서 지모나 공리의 말단적인 것에서 이것을 구하겠는가!&amp;lt;br/&amp;gt;&lt;br /&gt;
&lt;br /&gt;
曰: “篇首之言明明德, 以新民爲對, 則固專以自明爲言矣; 後段於平天下者, 復&amp;lt;sub&amp;gt;扶又反&amp;lt;/sub&amp;gt;以明明德言之, 則似新民之事亦在其中, 何其言之不一, 而辨之不明耶?”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편 머리에서 명명덕을 말씀하셨을 때는 신민을 그 (동일하게) 대대하신 것은 진실로 오직 스스로 밝게하는 것만을 말씀하신 것인데 이후에 평천하에 대해서 다시 명명덕으로 말씀하신다면 신민의 일이 또한 그 안에 들어있는 것 같은데 어째서 그 말씀이 한결같지 않고 분변함이 명확하지 않은 것입니까?&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篇首三言者, 『大學』之綱領也. 而以其賓主對待先後次第言之, 則明明德者, 又三言之綱領也. 至此後段, 然後極其體用之全而一言以擧之, 以見&amp;lt;sub&amp;gt;形甸反&amp;lt;/sub&amp;gt;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天下雖大, 而吾心之體無不該, 事物雖多, 而吾心之用無不貫. 蓋必析之有以極其精而不亂, 然後合之有以盡其大而無餘, 此又言之序也.”&amp;lt;br/&amp;gt;&lt;br /&gt;
말했다. &amp;quot;편 머리의 세마디 말은 『대학』의 강령이다. 이것들을 손님과 주인이 (서로를) 대하는 것과 대비해서 선후와 순서로 말한다면 명명덕이 세 마디 말 중에 강령이다. (그런데) 뒷 단계에 이른 연후에 그 體用의 온전함을 지극히하고서 한 마디로 말한 것이니, 이것으로 천하가 비록 크지만 내 마 마음의 體가 풀지 못하는 것이 없고, 사물이 비록 많더라도 내 마음의 用이 관통하지 못하는게 없음을 보인 것이다. 대개 반드시 분석하여 그 정미한 것까지 지극히 하고 혼란이 없을 수 있은 연후에야 그것을 합쳐서 그 큰 것을 다하여 남음이 없을 수 있으니 이것이 또한 말함의 순서이다.&amp;quot;&amp;lt;br/&amp;gt;&lt;br /&gt;
:○陳氏曰: &amp;quot;天下事物, 無一之不格, 幽明巨細, 有以洞灼其表裏, 其知之至也. 瑩萬理於胷中, 是極其所眞是而不可移, 非極其所眞非而不容易; 善極其本之所由來而無不徹, 惡極其幾之所從起而無少遁, 物果格, 知果至, 由是而往, 則意極其誠而無一念之或欺, 心極其正而無一息之不存, 身極其脩, 而無一動之或偏矣. 此書首三言固當無所不盡, 而所謂明明徳者, 又通為一篇之統體.&amp;quot; 又曰: &amp;quot;體具於方寸之間, 萬理無所不備, 而無一物能出乎是理之外; 用發於方寸之間, 萬事無所不貫而無一理不行乎其事之中, 此心之所以為妙.&amp;quot;&amp;lt;br/&amp;gt;&lt;br /&gt;
:진씨가 말했다. &amp;quot;천하의 사물에 하나라도 이르지 못함이 없고 어둡고 밝은 것 크고 세세한 모든 것에 그 안과 밖을 밝힐 수 있으니 이것이 앎의 지극함이다. 모든 이치가 마음에 밝혀지면 옳은 것은 그 진짜 옳은 바를 지극히 하여 옮겨가지 않을 수 있고 그른 것은 그 진짜 그른 바를 지극히 하여서 바꾸지 않을 수 있고, 善은 그 뿌리가 말미암은 바를 지극히 하여 통하지 않음이 없고 惡은 그 기미가 말미암아서 일어난 것을 지극히하여 조금의 잃음도 없을 것이니 사물에 과연 이르고, 앎이 과연 지극해져 이것을 말미암아 간다면 뜻이 그 정성을 다하여 하나의 생각이라도 혹여 거짓됨이 없을 것이고 마음이 그 바름을 지극히하여 잠깐의 보존되지 않음이 없을 것이며 몸이 그 닦음을 지극히하여 한번 움직이더라도 간혹 치우치게 됨이 없을 것이다. 이 책 서두의 세마디 말은 진실로 다하지 못하는 바가 없어야 하고, 이른바 (뒤에서) 명명덕이라고 말한 것은 또한 통틀어 한 편의 統體가 되는 것이다.&amp;quot; 또 말하였다. &amp;quot;體가 마음 안에 갖추어지면 모든 이치가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어서 하나의 사물이라도 이 이치 밖으로 나갈 수 없고, 用이 마음 안에서 발현된다면 모든 일이 관통되지 않음이 없어서 하나의 이치라도 그 일의 적절함을 행하지 못함이 없으니 이것이 마음이 신묘하게 되는 까닭이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言明明徳與新民對, 則&amp;lt;大學&amp;gt;之體用猶二; 言明明徳於天下, 則&amp;lt;大學&amp;gt;之體用非二矣. 吾心之體, 即明徳之虚而具衆理者也; 吾心之用, 即明徳之靈而應萬事者也. 能析之極其精而不亂, 則知吾心之用無不貫矣; 能合之盡其大而無餘, 則知吾心之體無不該矣. 不析之而遽欲合之, 則有虚空恍惚之病; 徒析之而不能合之, 則有支離破碎之病. '必析之極其精, 然後合之盡其大', 此二句其義無窮. 眞西山嘗誦此而繼之曰: '小徳川流, 大徳敦化.' 又繼之曰: '吾道一以貫之.' 其旨深矣.&amp;quot;&lt;br /&gt;
:옥계노씨가 말했다. &amp;quot;명명덕과 신민을 대대하여 말한다면 &amp;lt;大學&amp;gt;의 體用이 두 개 같고, 明明徳於天下라고 말하면 &amp;lt;大學&amp;gt;의 體用이 두 개가 아닌 것 같다. 내 마음의 體는 곧 明徳의 虚와 具衆理고, 내 마음의 用은 곧 明徳의 靈과 應萬事다. 분석하여 그 정미한 것을 지극히하여 어지럽지 않을 수 있다면 내 마음의 用이 관통하지 못하는 것이 없음을 알 것이고, 이를 합쳐서 그 큰것을 다하고 남음이 없을 수 있다면 내 마음의 體가 풀지 못함이 없음을 알 것이다. (그런데) 분석하지도 않고서 갑자기 합지기를 바란다면 텅비고 황홀한 병폐가 있게되고, 다만 분석하기만 하고 그것을 합칠 수 없다면 지리하고 흩어져있는 병폐가 있게 된다. 必析之極其精, 然後合之盡其大' 이 두 구절의 의미가 무궁하니, 진서산이 일찍이 이것을 외며 말을 달기를, '작은 덕은 (곳곳에) 냇물처럼 흐르고, 큰 덕은 변화를 두텁게 한다.'&amp;lt;ref&amp;gt;&amp;lt;중용장구&amp;gt; 30장. 萬物並育而不相害，道並行而不相悖，小德川流，大德敦化，此天地之所以為大也。&amp;lt;/ref&amp;gt;고 하였다. 또 말을 달기를 '우리의 도는 하나로 관통한다.'&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리인&amp;gt; 15. 子曰：「參乎！吾道一以貫之。」曾子曰：「唯。」&amp;lt;/ref&amp;gt;고 하였으니 그 뜻이 깊다.&amp;quo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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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自天子以至於庶人, …… ,  未之有也’에 대한 설명&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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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 “‘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爲本, 其本亂而末治者否矣; 其所厚者薄, 而其所薄者厚, 未之有也’, 何也?”&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수신을 근본으로 삼으니 그 근본이 어지러우면서 말단을 잘 다스리는 자는 없었고 그 두터운 것을 박하게 하고 박한 것을 두텁게 하는 일은 있지 않았다.'고 하신 것은 어째서 입니까?&amp;lt;br/&amp;gt;&lt;br /&gt;
曰: “此結上文兩節之意也. 以身對天下國家而言, 則身爲本而天下國家爲末. 以家對國與天下而言, 則其理雖未嘗不一, 然其厚薄之分亦不容無等差&amp;lt;sub&amp;gt;楚宜反&amp;lt;/sub&amp;gt;矣. 故不能格物致知, 以誠意正心而修其身, 則本必亂而末不可治. 不親其親, 不長&amp;lt;sub&amp;gt;上聲下同&amp;lt;/sub&amp;gt;其長, 則所厚者薄而無以及人之親長, 此皆必然之理也. 孟子所謂‘於所厚者薄, 無所不薄’, 其言蓋亦本於此云.”&amp;lt;br/&amp;gt;&lt;br /&gt;
말했다. &amp;quot;이것은 윗 글의 두 구절의 의미를 끝맺은 것이다. 자신을 천하국가와 대대하여 말한다면 자신이 근본이 되고 천하국가는 말단이 된다. 집안을 나라와 천하와 대대하여 말한다면 그 이치는 일찍이 같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후하고 박한 구분은 또한 약간의 차이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격물치지를 할 수 없으면서 성의정심하고 그 몸을 닦는다면 근본은 반드시 혼란해지고 말단도 다스려질 수 없다. 친하게 여기지 말하야할 사람을 친히 여기고 어른대접하지 말아야할 사람을 어른대접한다면 그 후한 것을 박하게 하여 다른 사람들의 부모와 어른에게까지 미칠 수 없을 것이니 이것은 모두 반드시 그러한 이치이다. 맹자께서 말씀하신 '마땅히 두텁게 해야할 것을 박하게 해서는 안 된다.'&amp;lt;ref&amp;gt;『맹자』, 「진심상」, 45. &amp;quot;孟子曰：「於不可已而已者，無所不已；於所厚者薄，無所不薄也。&amp;quot;&amp;lt;/ref&amp;gt; 는 그 말은 대개 또한 여기에 근본한다.&amp;quot;&lt;br /&gt;
:○三山陳氏曰: &amp;quot;脩身者, 自格物致知誠意正心而積也. 不如是, 則身不可脩; 身之不脩, 則其本亂矣; 本之既亂, 如國家何? 事父母而不能孝, 事兄長而不能弟, 則是'於其所厚者薄'矣. 所厚者猶薄, 奚望其親天下之親、長天下之長哉?&amp;quot;&lt;br /&gt;
:삼산진씨가 말했다. &amp;quot;脩身이라는 것은 격물치지부터 성의정심까지 쌓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지 않는다면 몸은 닦여질 수 없고, 몸이 닦여지지 않으면 그 근본이 혼란해지니 근본이 이미 혼란하다면 국가를 어떻게 하겠는가? 부모를 섬기면서 효도를 할 수 없고 형과 어른을 섬기면서 공경할 수 없다면 이것은 '그 후하게 대해야하는 사람에 박하게 하는 것'이다. 후하게 해야할 것을 오히려 박하게 하고서 어떻게 그 천하의 모든 부모를 친히 여기고 천하의 모든 어른을 어른대접하기를 바라겠는가?&amp;quo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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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amp;lt;대학&amp;gt;의 내용에 비춰봤을 때 상정된 독자가 적절한가?&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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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 “治國平天下者, 天子諸侯之事也. 卿大夫以下, 皆無與&amp;lt;sub&amp;gt;音預&amp;lt;/sub&amp;gt;焉. 今大學之敎, 乃例以明明德於天下爲言, 豈不爲思出其位, 犯非其分&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 而何以得爲&amp;lt;sub&amp;gt;如字&amp;lt;/sub&amp;gt;爲&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己之學哉?”&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하게 하는 것은 천자와 제후의 일이니 경대부 이하는 모두 여기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대학의 가르침은 바로 대개 明明德於天下를 말한 것인데 어찌 자신의 지위를 벗어나서 생각하여&amp;lt;ref&amp;gt;『논어』, 「헌문」. 28장 &amp;quot;曾子曰：「君子思不出其位。」&amp;quot;&amp;lt;/ref&amp;gt; 자신의 몫이 아닌 것을 범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자기를 위한 학문이 될 수 있겠습니까?&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天之明命, 有生之所同得, 非有我之得私也. 是以君子之心, 豁&amp;lt;sub&amp;gt;呼括反&amp;lt;/sub&amp;gt;然大公, 其視天下, 無一物而非吾心之所當愛, 無一事而非吾職之所當爲, 雖或勢在匹夫之賤, 而所以堯舜其君, 堯舜其民者, 亦未嘗不在其分&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內也. 又况大學之敎, 乃爲&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天子之元子·衆子, 公侯·卿大夫·士之適&amp;lt;sub&amp;gt;音的&amp;lt;/sub&amp;gt;子, 與國之俊選&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俊士和選士。 古代指可以教育深造的優秀人材。 &amp;lt;/ref&amp;gt;而設, 是皆將有天下國家之責而不可辭者, 則其所以素敎而預養之者, 安得不以天下國家爲己事之當然, 而預求有以正其本淸其源哉! 後世敎學不明, 爲人君父者, 慮不足以及此, 而苟徇於目前. 是以天下之治&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日常少, 亂日常多, 而敗國之君, 亡家之主, 常接迹於當世, 亦可悲矣! 論者不此之監, 而反以聖法爲疑, 亦獨何哉? 大抵以學者而視天下之事, 以爲己事之所當然而爲之, 則雖甲兵·錢穀·籩豆·有司之事, 皆爲&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己也; 以其可以求知於世而爲之, 則雖割股&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舊有自割股肉以供君親食用之說， 古人認為是大忠大孝的表現。 &amp;lt;/ref&amp;gt;廬墓、敝車羸&amp;lt;sub&amp;gt;力為反&amp;lt;/sub&amp;gt;馬&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破車瘦馬。▶ 《三國志‧吳志‧劉繇傳》“ 繇 伯父 寵 為 漢 太尉” 裴松之注引晉司馬彪 《續漢書》： “ 寵 前後歷二郡， 八居九列， 四登三事。 家不藏賄， 無重寶器， 恆菲飲食， 薄衣服， 弊車羸馬， 號為窶陋。”&amp;lt;/ref&amp;gt;, 亦爲&amp;lt;sub&amp;gt;去聲下同&amp;lt;/sub&amp;gt;人耳. 善乎張子敬夫之言曰&amp;lt;sub&amp;gt;張子名栻, 字敬夫, 號南軒, 廣漢人. 乃朱子同志之友也.&amp;lt;/sub&amp;gt;: ‘爲己者, 無所爲而然者也.’&amp;lt;ref&amp;gt;&amp;lt;남헌집&amp;gt; 권14. &amp;lt;孟子講義序&amp;gt; 學者潜心孔孟, 必得其門而入, 愚以為莫先於義利之辯. 蓋聖學無所為而然也. 無所為而然者, 命之所以不已, 性之所以不偏, 而教之所以無窮也. 凡有所為而然者, 皆人欲之私而非天理之所存, 此義利之分也.&amp;lt;/ref&amp;gt; 此其語意之深切, 蓋有前賢所未發者, 學者以是而日自省&amp;lt;sub&amp;gt;悉井反&amp;lt;/sub&amp;gt;焉, 則有以察乎善利之間&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진심상&amp;gt; 25. 欲知舜與蹠之分，無他，利與善之閒也。 &amp;lt;/ref&amp;gt;而無毫釐之差矣.”&amp;lt;br/&amp;gt;&lt;br /&gt;
답했다. 하늘의 밝은 명령은 태어날 때부터 똑같이 받은 것이 있을 뿐 자신이 사사롭게 얻은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군자의 마음은 활연하여 크게 公하고 천하를 볼 때 한 사물이라도 자신의 마음이 마땅히 아껴할 바라고 여기지 않음이 없고, 한 가지 일이라도 자신의 직분으로 마땅히 해야할 바라도 여기지 않음이 없다. 비록 혹여 처지가 필부의 천함에 있다고 하더라도 자기의 군주를 요순으로 만들고 자기 백성을 요순의 백성으로 만드는 것이 또한 일찍이 그 분수안에 있지 않음이 없다. 또한 하물며 대학의 가르침은 바로 천자의 첫째 아들과 다른 아들들, 공후·대부·사의 적장자와 나라의 뛰어난 인재들을 위하여 설치한 것이다. 이들은 모두 장차 천하와 국가의 책무가 있고 사양할 수 없는 자들로 그 평소 가르쳐서 미리 그들을 기르는 것이 어찌 천하 국가의 일을 자신이 마땅히 해야할 일로 삼아서 미리 그 뿌리를 바로잡고 그 근원을 맑게 하기를 구하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후세의 교육이 밝지 못해서 남의 임금과 부모된 자들이 여기에 이르기 부족하다고 걱정하면서도 구차하게 눈앞에 있는 것을 따르니 이 때문에 천하의 치세는 날로 항상 적어지고 난세는 날로 항상 많아지며 나라를 망치는 군주들과 집안을 망치는 주인들이 항상 세대에 연이어 일어나니 또한 슬퍼할만 하구나! 그대가 이러한 것을 보지 않고 도리어 성법을 의심하는 것은 유독 어째서 인가! 대개 학자의 신분으로 천하의 일을 볼 때 자기가 마땅히 해야할 바로 여겼기 때문에 그것을 행한다면 비록 군사일, 창고일, 제사일, 유사의 일이라도 모두 자기를 위한 것이 되고, 세상에 알려지기를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한다면 비록 허벅지 안쪽살을 베거나 무덤 옆에 여막을 지어 살고, 청렴하게 살더라도 다른사람을 위한 것일 뿐이다. 좋구나! 장경부의 말이여! '나를 위한 것은 인위적으로 하는 것 없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 말의 의미가 깊고 절근하다. 대개 이전의 성현들이 아직 드러내지 못한 바가 있어서 학자들이 이것을 날마다 스스로 성찰한다면 善과 利의 차이를 살펴서 털끝만큼의 차이가 없을 수 있다.&lt;br /&gt;
:○問為己為人一條. 朱子曰: &amp;quot;這須要自看. 如一日之間, 小事大事, 只道我合當做便如此做, 這便是'無所為', 如讀書, 只道自家合當如此讀, 合當如此理㑹身巳. 纔說要人知, 便是'有所為', 如世上人纔讀書, 便安排這箇好做時文, 此又為人之甚者.&amp;quot;&lt;br /&gt;
:&amp;quot;'나를 위한다'와 '남을 위한다' 이 한 조목에 대해 묻습니다.&amp;quot; 주자가 말했다. &amp;quot;이것은 모름지기 스스로 보려 해야한다. 평소에 모든 일을 '내가 마땅이 이렇게 해야한다'고 말하고 곧 그렇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작위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 책을 읽는 경우에 다만 '나는 이렇게 책을 읽어야해'라고 말하고 이와 같이 읽는다면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기를 바란다고 말하자마자 곧 작위함이 있게 되니 세상사람들이 책을 읽자마자 바로 時文 &amp;lt;ref&amp;gt; 時文 : 1.當代的文明。指禮樂製度等。&amp;lt;/ref&amp;gt; 잘짓기를 꾀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더욱 남을 위하는 것이 심한 것이다.&amp;quot; &lt;br /&gt;
:○如甲兵、錢榖、籩豆、有司, 到當自家理㑹便理㑹, 不是為别人了理㑹. 如割股、廬墓, 一是不忍其親之病, 一是不忍其親之死, 這都是為已者. 若因要人知了去恁地, 便是為人.&amp;quot;&lt;br /&gt;
:&amp;quot;전쟁일, 창고일, 제사일, 유사의 일 같은 경우라도 마땅히 내가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야지 다른 사람을 위하여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 割股나 廬墓의 경우는 하나는 그 부모의 지병을 차마하지 못하는 것이고 하나는 그 부모의 죽음을 차마하지 못하는 것이니 이는 모두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다른 사람이 알아주기를 바랐기 때문에 이렇게 했다면 이는 곧 남을 위한 것이 된다.&amp;quot;&lt;br /&gt;
:○問: &amp;quot;割股事, 如何?&amp;quot; 曰: &amp;quot;割股固自不是, 若誠心為之, 不求人知, 亦庶幾. 今有以此要譽者.&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割股의 일은 어떻습니까?&amp;quot; 말했다. &amp;quot;할고는 진실로 스스로에게 옳지 않으니 만약 마음을 진실하게 하여 그것을 행하고 다른 사람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는다면 거의 (도에) 가깝겠지만 오늘날에는 이것으로 명예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있다.&amp;quot;&lt;br /&gt;
:○南軒此言, 擴前聖所未發, 而同於孟子性善、養氣之功者歟!&lt;br /&gt;
:장남헌의 이 말은 전 성현들이 아직 드러내지 못한 바를 넓힌 것이니 맹자의 性善、養氣의 공적&amp;lt;ref&amp;gt;&amp;lt;이정문집&amp;gt; 9-20. &amp;lt;答楊時論西銘書&amp;gt; &amp;lt;西銘&amp;gt;之爲書, 推理以存義, 擴前聖所未發, 與孟子性善、養氣之論同功.(二者亦前聖所未發)&amp;lt;/ref&amp;gt;과 동일하구나!&lt;br /&gt;
&lt;br /&gt;
&lt;br /&gt;
15. &amp;lt;대학&amp;gt;의 저자 문제&lt;br /&gt;
&lt;br /&gt;
曰: “子謂正經蓋夫子之言, 而曾子述之, 其傳&amp;lt;sub&amp;gt;去聲, 後凡言傳文經傳之類皆同.&amp;lt;/sub&amp;gt;則曾子之意, 而門人記之. 何以知其然也.”&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그대가 正經을 말한 것은 대개 부자께서 말씀하시고 증자가 조술하였으며 그 해석은 증자의 뜻이고 문인들이 그것을 기록한 것이니 어떻게 그러하다는 것을 안 것인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正經辭約而理備, 言近而指遠, 非聖人不能及也. 然以其無他左驗, 且意其或出於古昔先民之言也, 故疑之而不敢質. 至於傳文, 或引曾子之言, 而又多與『中庸』『孟子』者合, 則知其成於曾氏門人之手, 而子思以授孟子無疑也. 蓋『中庸』之所謂明善, 卽格物致知之功; 其曰誠身, 卽誠意·正心·修身之效也. 孟子之所謂知性者, 物格也; 盡心者, 知至也; 存心·養性·修身者, 誠意·正心·修身也. &amp;lt;br/&amp;gt;&lt;br /&gt;
말했다. &amp;quot;正經은 말이 요약하지만, 이치가 갖추어져 있으며 말이 절근하지만 뜻은 고원하니 성인이 아니라면 여기에 미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증거&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證人；證據。 &amp;lt;/ref&amp;gt;가 없으니 아마도 옛날 백성들의 말에서 나온 것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의심하지만 감히 질정&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質】 15. 對質；驗證。&amp;lt;/ref&amp;gt;하지는 못했다. 傳文의 경우에 이르러서는 혹 증자의 말을 인용하고 또 『中庸』과『孟子』와 합치하는 것이 많으니 증자의 문하의 손에서 완성되었음을 알겠고, 자사가 맹자에게 전수한 뜻임을 의심할 바가 없다. 대개 『中庸』에서 말한 明善은 곧 格物致知의 공적이고, 誠身을 말한 것은 곧 誠意·正心·修身의 공효이다. 맹자가 말한 知性은 物格이고, 盡心은 知至며, 存心·養性·修身이라는 것은 誠意·正心·修身이다.&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知性者, 物格也, 物字對性字; 盡心者, 知至也, 知字對心字.&amp;quot;&lt;br /&gt;
:주자가 말했다. &amp;quot;知性이라는 것은 物格이니, 物은 性과 대대하고, 盡心이라는 것은 知至하니, 知는 心과 대대한다.&amp;quot;&lt;br /&gt;
:○'物理之極處無不到', 知性也; '吾心之所知無不盡', 盡心也.&lt;br /&gt;
:'物理의 지극한 곳에 이르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知性이고, '내 마음의 아는 바를 다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盡心이다.&lt;br /&gt;
其他如謹獨之云, 不慊&amp;lt;sub&amp;gt;口簟口劫二反&amp;lt;/sub&amp;gt;之說, 義利之分, 恒言之序,&amp;lt;br/&amp;gt;&lt;br /&gt;
이외에 謹獨을 말한 것과 不慊&amp;lt;ref&amp;gt;『맹자』, 「공손추상」, 2장. &amp;quot;是集義所生者，非義襲而取之也。行有不慊於心，則餒矣。我故曰，告子未嘗知義，以其外之也。&amp;quot; &amp;lt;注&amp;gt; (...)慊，快也，足也。言所行一有不合於義，而自反不直，則不足於心而其體有所不充矣。(...)&amp;lt;/ref&amp;gt; 의 설명과 義利의 구분은 항상된 말의 순서가&lt;br /&gt;
:○新安倪氏曰: &amp;quot;孟子云: '人有常言皆曰天下國家, 天下之本在國, 國之本在家, 家之本在身.'&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이루상&amp;gt; 5. 孟子曰：「人有恆言，皆曰『天下國家』。天下之本在國，國之本在家，家之本在身。」&amp;lt;/ref&amp;gt; 此'常言之序'也.&amp;quot;&lt;br /&gt;
:신안예씨가 말했다. &amp;quot;맹자가 '사람은 항상된 말이 있어서, 항상 天下國家를 말하니, 天下의 근본은 國에 달려있고, 國의 근본은 家에 달려있으며 家의 근본은 자신에게 달려있다'라고 말한 이것이 '常言之序'이다. &amp;quot;&lt;br /&gt;
亦無不脗&amp;lt;sub&amp;gt;武粉反又音冺&amp;lt;/sub&amp;gt;合焉者. 故程子以爲孔氏之遺書, 學者之先務, 而&amp;lt;論&amp;gt;&amp;lt;孟&amp;gt;猶處&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其次焉, 亦可見矣.&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서론. 子程子曰：「大學，孔氏之遺書，而初學入德之門也。」於今可見古人為學次第者，獨賴此篇之存，而論、孟次之。學者必由是而學焉，則庶乎其不差矣。 ; &amp;lt;이정유서&amp;gt; 2上-36. 大學乃孔氏遺書, 須從此學則不差. ; &amp;lt;이정유서&amp;gt; 22上-1. 棣初見先生, 問「初學如何?」 曰:「入德之門, 無如大學. 今之學者, 賴有此一篇書存, 其他莫如論·孟.」&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또한 여기에 맞지 않음이 없었다. 때문에 정자께서 이 책을(대학) 공자를 수학하던 사람들이 남긴 책과 학자들이 급선무로 해야할 것으로 여기셨고, 『논어』, 『맹자』는 오히려 그 다음에 두셨음을 또한 알 수 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曰: “程子之先是書而後&amp;lt;論&amp;gt;&amp;lt;孟&amp;gt;, 又且不及乎&amp;lt;中庸&amp;gt;, 何也?”&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정자께서 이 책을 먼저로 여기시고 『논어』, 『맹자』를 뒤로 여기셨는데, 또 『중용』을 언급하지 않으신 것은 어째서 입니까?&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是書垂世立敎之大典, 通爲&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天下後世而言者也. &amp;lt;論&amp;gt;&amp;lt;孟&amp;gt;應機接物之微言, 或因一時一事而發者也. 是以是書之規模雖大, 然其首尾該備, 而綱領可尋, 節目分明, 而工夫有序, 無非切於學者之日用. &amp;lt;論&amp;gt;&amp;lt;孟&amp;gt;之爲&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人雖切, 然而問者非一人, 記者非一手, 或先後淺深之無序, 或抑揚進退之不齊, 其間蓋有非初學日用之所及者. 此程子所以先是書後&amp;lt;論&amp;gt;&amp;lt;孟&amp;gt;, 蓋以其難易&amp;lt;sub&amp;gt;去聲下同&amp;lt;/sub&amp;gt;緩急言之, 而非以聖人之言爲有優劣也. 至於&amp;lt;中庸&amp;gt;, 則又聖門傳授極致之言, 尤非後學之所易得而聞者, 故程子之敎未遽及之, 豈不又以爲&amp;lt;論&amp;gt;&amp;lt;孟&amp;gt;旣通, 然後可以及此乎? 蓋不先乎&amp;lt;大學&amp;gt;, 無以提挈綱領而盡&amp;lt;論&amp;gt;&amp;lt;孟&amp;gt;之精微; 不參之&amp;lt;論&amp;gt;&amp;lt;孟&amp;gt;, 無以融貫會通而極&amp;lt;中庸&amp;gt;之歸趣; 然不會其極於&amp;lt;中庸&amp;gt;, 則又何以建立大本&amp;lt;sub&amp;gt;盡性也&amp;lt;/sub&amp;gt;, 經綸大經&amp;lt;sub&amp;gt;立教也&amp;lt;/sub&amp;gt;, 而讀天下之書, 論天下之事哉? 以是觀之, 則務講學者, 固不可不急於四書, 而讀四書者, 又不可不先於&amp;lt;大學&amp;gt;, 亦已明矣. 今之敎者, 乃或棄此不務, 而反以他說先焉, 其不溺於虛空, 流於功利, 而得罪於聖門者, 幾&amp;lt;sub&amp;gt;平聲&amp;lt;/sub&amp;gt;希矣.&amp;quot;&amp;lt;br/&amp;gt;&lt;br /&gt;
말했다. &amp;quot;이것은 세상에 드리워져 가르침을 세운 위대한 텍스트니 모두 천하의 후세를 위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논어』, 『맹자』는 주어신 상황에 따라 대응하는 (별거아닌 듯 하지만) 심호한 말이니 간혹 한 때나 한 사건을 말미암아서 일어났다. 이 때문에 이 책의 규모는 비록 크지만 그 머리와 꼬리는 모두 갖춰져 있고 강령을 살필 수 있으며 절못이 분명하고 공부에 순서가 있어서 학자의 평소에 절실하지 않음이 없으니, 『논어』, 『맹자』가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은 비록 절실하지만 물어보는 사람이 한 명이 아니고 기록하는 사람이 한 명이 아니라서 간혹 선후와 깊이가 순서가 없고 간혹 나아가고 물러남이 일정하지 않으니 이 사이에서 대개 초학자가 평소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게 된다. 이것이 정자께서 『대학』책을 먼저로 하고 『논어』, 『맹자』를 뒤로하신 까닭이다. 대개 그 어려움과 급함으로 말한 것이지, 성인의 말이 우열이 있다고 여긴 것이 아니다.『중용』에 경우는 성현의 문하에 전수한 지극한 말이고 또 후학들이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정자의 가르침은 선급하게 언급하지 않으셨으니 어찌 『논어』, 『맹자』를 이미 통달한 연후에 여기에 미칠수 있다고 여기신 것이 아니겠는가! 대개 『대학』을 우선으로 하지 않으면 강령을 항상 염두하면서『논어』, 『맹자』의 정미함을 다할 수 없고, 『논어』, 『맹자』을 참조하지 않으면 모두 관통하여 『중용』의 의미를 지극히할 수 없다. 그러나『중용』을 지극히함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또 어떻게 근본을 세우고 법도를 운용하여 천하의 책을 읽고 천하의 일을 논하겠는가! 이것으로 본다면 강학에 힘쓰는 사람들은 진실로 이 네 가지 책을 급히여기지 않아서는 안 되고, 이 네 가지 책을 읽는 사람은 또한 『대학』을 우선으로 하지 않아서는 안 됨이 이미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의 교육자들은 이내 간혹 이 네 가지 책을 버리고 우선하지 않으면서 도리어 다른 설명을 이것들보다 우선하니 공허한 것에 빠지고 공리에 흘러들어가서 성현의 문하에 죄를 얻지 않는 사람이 드물었다. &amp;quot;&lt;br /&gt;
&lt;br /&gt;
===傳一章===&lt;br /&gt;
康誥曰：「克明德。」&lt;br /&gt;
:康誥，周書。克，能也。&lt;br /&gt;
&lt;br /&gt;
大甲曰：「顧諟天之明命。」&lt;br /&gt;
:大，讀作泰。諟，古是字。大甲，商書。顧，謂常目在之也。諟，猶此也，或曰審也。天之明命，即天之所以與我，而我之所以為德者也。常目在之，則無時不明矣。&lt;br /&gt;
&lt;br /&gt;
帝典曰：「克明峻德。」&lt;br /&gt;
:峻，書作俊。帝典，堯典，虞書。峻，大也。&lt;br /&gt;
&lt;br /&gt;
皆自明也。&lt;br /&gt;
:結所引書，皆言自明己德之意。&lt;br /&gt;
&lt;br /&gt;
*右傳之首章。釋明明德。&lt;br /&gt;
::此通下三章至「止於信」，舊本誤在「沒世不忘」之下。&lt;br /&gt;
&lt;br /&gt;
&lt;br /&gt;
====『혹문』 전1장====&lt;br /&gt;
或問: &amp;quot;一章而下以至三章之半, 鄭本元在沒世不忘之下, 而程子乃以次於此謂知之至也之文, 子獨何以知其不然而遂以爲傳之首章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혹자가 물었다. &amp;quot;첫번째 장 밑으로 3장의 반까지 『예기』(鄭本)에서는 원래 '沒世不忘'밑에 있었고 정이천은 이내 이것을 여기 '知之至'라고 말한 것 다음으로 하였는데 그대는 유독 그것이 그러하지 않음을 알고서 마침내 傳의 첫 번째 장으로 삼은 것인가?&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以經統傳, 以傳附經, 則其次第可知. 而二說之不然, 審矣.&amp;quot;&amp;lt;br/&amp;gt;&lt;br /&gt;
말했다. &amp;quot;經으로 傳을 통괄하고, 傳으로 經을 부연하면 그 순서를 알 수 있고 두 설명 모두 옳지 않음이 명백하다.&amp;quot;&amp;lt;br/&amp;gt;&lt;br /&gt;
&lt;br /&gt;
○曰: &amp;quot;然則其曰: '克明徳'者, 何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그렇다면 '克明徳'이란 무엇인가?&amp;quot;&lt;br /&gt;
曰: &amp;quot;此言文王能明其徳也. 蓋人莫不知徳之當明而欲明之, 然氣稟拘之於前, 物欲蔽之於後. 是以雖欲明之而有不克也. 文王之心, 渾&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然天理, 亦無待於克之而自明矣. 然猶云爾者, 亦見其獨能明之而他人不能. 又以見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未能明者之不可不致其克之之功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답했다. &amp;quot;이는 문왕께서 자신의 덕을 밝힐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대개 사람은 덕을 마땅히 밝혀야함을 알지도 못하고 밝히고자한다. 그러나 氣稟이 (태어나기) 전부터 잡고있고, 물욕이 (태어나고 난) 이후에 가리고 있으니, 이 때문에 비록 덕을 밝히고자 하지만 해내지 못하는 게 있는 것이다. 문왕의 마음은 혼연천리하고 또 기품이나 물욕을 이겨낼 필요가 없이 본래 밝지만 오히려 이와같이 말한 것은 또한 그만이 오직 그 덕을 밝힐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은 할 수 없음을 드러내고 또 이를 가지고 아직 밝히지 못한 사람들이 이것을 이겨내는 공부를 다하지 않아서는 안 됨을 드러낸 것이다.&amp;quot;&lt;br /&gt;
:問: &amp;quot;'克明徳', 克, 能也. 或問中却作'能致其克之之功', 又似克治之克, 如何?&amp;quot; 朱子曰: &amp;quot;此克字, 雖訓能字, 然克字重, 是他人不能而文王獨能之. 若只作'能明徳', 語意便都弱了. 凡字有文義一般而聲響頓異, 如云: '克宅心'&amp;lt;ref&amp;gt;서경, 입정. 文王惟克厥宅心，乃克立茲常事司牧人，以克俊有德。文王罔攸兼于庶言；庶獄庶慎，惟有司之牧夫是訓用違；庶獄庶慎，文王罔敢知于茲。亦越武王，率惟敉功，不敢替厥義德，率惟謀從容德，以並受此丕丕基。」&amp;lt;/ref&amp;gt;, '克明徳'之類, 可見.&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克明徳'의 克은 할 수 있다(能)는 것이다. &amp;lt;或問&amp;gt;중에 도리어 '이를 이겨내는 공부를 다할 수 있다'고 썼으니 또 克治&amp;lt;ref&amp;gt; 謂克製私欲邪念。&amp;lt;/ref&amp;gt; 의 克과 같아보이는 데 어떻습니까?&amp;quot; 주자가 말했다. &amp;quot;여기 '克'이라는 글자는 비록 '能'을 따르지만 '克'이라는 글자가 더 강하다. 이는 다른 사람들은 할 수 없고 문왕만 할 수 있다. 만약 다만 '明徳할 수 있다'고만 쓴다면 의미가 모두 약해진다. 모든 글자는 그 글자뜻은 같지만 소리가 확연히 다르니 '克宅心', '克明徳'과 같은 부류임을 알 수 있다.&lt;br /&gt;
:○人所以不能明其徳者, 何哉? 盖氣偏而失之太剛, 則有所不克; 氣偏而失之太柔, 則有所不克; 聲色之欲蔽之, 則有所不克; 貨利之欲蔽之, 則有所不克. 不獨此耳, 凡有一毫之偏蔽得以害之, 則有所不克. 唯文王無氣稟物欲之偏蔽, 故能有以勝之而無疑.&lt;br /&gt;
:사람들 중에 자신의 덕을 밝힐 수 없는 사람은 어째서 입니까? 대개 기질이 치우쳐서 너무 강직한데서 잘못한다면 이겨내지 못하는 바가 있고, 너무 유한데에서 잘못한다면 이겨내지 못하는 바가 있으며, 감각적인 욕구가 명덕을 가린다면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 있고, 기질이 편벽되서 재물과 이익의 물욕이 명덕을 가린다면 이겨내지 못하는 바가 있게 된다. 오직 이뿐만이 아니라 모든 약간의 편벽됨이 명덕을 해칠 수 있다면 이겨내지 못하는 바가 있다. 오직 문왕만이 기품과 물욕의 치우침과 가리움이 없기 때문에 이것을 이겨내고 의심이 없을 수 있다.&lt;br /&gt;
:○西山眞氏曰: &amp;quot;明徳, 人所同有, 其所以為聖愚之分者, 但以克明與不能明之異爾. 常人所以不能明者, 一則以氣稟昏弱之故; 二則以物欲蔽塞之故. 雖是蔽塞之餘, 若一旦悔悟, 欲自明其徳, 亦無不可者. 患在自暴自棄而不肯為耳.&lt;br /&gt;
:서산진씨가 말했다. &amp;quot;明徳은 사람이 똑같이 가진 것인데, 그 성인과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구분은 다만 밝힐 수 있음과 밝힐 수 없음의 차이 때문일 뿐이다. 일반 사람들이 밝힐 수 없는 까닭은 하나는 기품이 혼매하고 약하기 때문이고, 하나는 물욕이 가리고 막기 때문이다. 비록 가리고 막음이 많더라도 다만 잘못을 깨닫고 스스로 그 덕을 밝히고자 한다면 또한 할 수 없는 사람은 없다. 걱정은 자포자기 해서 행가리르 기꺼워하지 않는데 달려있을 뿐이다.&amp;quot;&lt;br /&gt;
:○格庵趙氏曰: &amp;quot;文王自誠而明者&amp;lt;ref&amp;gt;『중용』 21장. &amp;quot;自誠明，謂之性；自明誠，謂之教。誠則明矣，明則誠矣。&amp;quot;&amp;lt;注&amp;gt; 自，由也。德無不實而明無不照者，聖人之德。... &amp;lt;/ref&amp;gt; 故其心渾然天理, 表裏澄瑩, 不待克之而自明. 若大賢而下, 未能如文王, 則不可無克之之功矣.&amp;quot;&lt;br /&gt;
:격암조씨가 말했다. &amp;quot;문왕은 誠으로부터 밝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 마음이 혼연천리하고 안과 밖이 모두 밝아서 이를 이겨낼 필요 없이 본래 밝다. 만약 大賢 이외에 문왕과 같을 수 없다면 이를 이겨내는 공부가 없어서는 안 된다.&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顧諟天之明命', 何也?&amp;quot;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顧諟天之明命' 는 무엇입니까?&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人受天地之中以生. 故人之明徳, 非他也, 即天之所以命我而至善之所存也. 是其全體大用, 蓋無時而不發見&amp;lt;sub&amp;gt;形甸反&amp;lt;/sub&amp;gt;於日用之間.&amp;lt;br/&amp;gt;&lt;br /&gt;
답했다. &amp;quot;사람은 천지의 중정함을 얻어서 태어가기 때문에 사람의 明徳은 다른 것이 아니라 곧 하늘이 나에게 명한 것이고 至善이 보존된 것이다. 이것이 그 全體와 大用이니 대개 어느때고 평소에 밝혀 드러나지 않음이 없다.&amp;quot;&amp;lt;br/&amp;gt;&lt;br /&gt;
:陳氏曰: &amp;quot;於寂然不動之時, 則合萬殊為一本, 而渾然之全體常昭融於方寸之間; 及感而遂通之際, 則散一本為萬殊, 而縱横曲直莫非大用之所流行矣.&amp;quot; 又曰: &amp;quot;天理本體, 常生生而無一息之已; 而其大用, 亦無一息不流行乎日用之間.&amp;quot;&lt;br /&gt;
:진씨가 말했다. &amp;quot;寂然不動한 때에는 만물이 합해져 하나의 근본이 되어 혼연한 全體가 항상 마음에서 밝게 드러나있고, 감응하여 마침내 통하는 때에 이르서는 하나의 근본이 나누어져서 만물이 되니, 온갖 것들이 大用의 흐름이 아님이 없다.&amp;quot; 또 말했다. &amp;quot;天理의 本體는 항상 生生하여 한 번의 그침도 없고, 天理의 大用은 또한 평소에 한번의 유행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人惟不察於此. 是以汨&amp;lt;sub&amp;gt;音骨&amp;lt;/sub&amp;gt;於人欲而不知所以自明, 常目在之而眞若見其參於前、倚於衡也, 則成性存存而道義出矣.&amp;lt;br/&amp;gt;&lt;br /&gt;
사람은 오직 이것을 살피지 않았기 때문에 인욕에 골몰하고 스스로 밝힐 줄을 알지 못하였으니, 항상 눈 앞에 두고 진실로 '앞에 참여하듯하고, 멍에에 기대어 있음을 보는 것'&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위령공&amp;gt; 5. 立，則見其參於前也；在輿，則見其倚於衡也。夫然後行。&amp;lt;/ref&amp;gt;과 같이 한다면 완전한 성이 보존되어 '道義가 (거기에서 부터) 나온다.' &amp;lt;ref&amp;gt;&amp;lt;주역&amp;gt; &amp;lt;계사상&amp;gt; 7. 成性存存，道義之門。&amp;lt;/ref&amp;gt;.&amp;quot;&amp;lt;br/&amp;gt;&lt;br /&gt;
:問: &amp;quot;如何是體, 如何是用?&amp;quot; 朱子曰: &amp;quot;體與用不相離, 且如身是體, 要起行去便是用. 赤子匍匐將入井, 皆有怵惕惻隱之心, 只此一端體用便可見. 如喜怒哀樂是用, 所以喜怒哀樂是體.&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무엇이 體이고 무엇이 用입니까?&amp;quot; 주자가 말했다. &amp;quot;體와 用은 서로 떨어지지 않으니 예를 들어 몸이 體가되고 일어나서 가려고 하는 것이 用이 되는 것이고, 어린아이가 기어서 우물에 들어가려고 하면 모든 사람은 두려워 조심하는 마음이 생기니 다만 한 가지 일에서 體用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마치 喜怒哀樂(의 드러난 감정)이 用이고, 喜怒哀樂의 감정이 생기는 이유가 體인 것과 같다.&amp;quot;&lt;br /&gt;
:○若'見其參前', '倚衡', 此豈有物可見? 但凡人不知省察, 常行日用毎與是徳相忘, 亦不自知其有是也. 今所謂'顧諟'者, 只是心裏常常存著此理, 一出言, 一行事, 皆必有當然之則, 不可失也. 初豈實有一物之可見其形象耶?&lt;br /&gt;
:'見其參前', '倚衡'와 같은 것이 어찌 사물을 진짜 볼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이겠는가? 다만 보통 사람들이 성찰해야함을 알지 못해서 항상 평소에 행실에서 매번 이 徳과 함께 해야함을 잊고 또한 스스로 그에게 이와 같은 徳이 있는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 이른바 '顧諟'라는 것은 다만 마음 안에 이 理가 항상 존재하고 있어서 한 마디 말을 할 때나 한 번 행동할 때 모두 반드시 마땅한 법칙이 있게 하여 잃어버려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니) 애초에 어찌 실제로 그 형상을 볼 수 있는 물체가 있는 것이겠는가!&lt;br /&gt;
:○問: &amp;quot;'成性存存, 道義出矣', 何如?&amp;quot; 曰: &amp;quot;天之所命, 我之所得於已, 只是一箇道理. 人只要存得這些在這裏. 才存得在這裏, 則事君必㑹忠, 事親必㑹孝, 見孺子入井, 則怵惕之心便發, 見穿窬之類, 則羞惡之心便發, 合恭敬處便自然㑹恭敬, 合辭遜處便自然㑹辭遜. 須要常存得此心, 則便見得此性發出底都是道理; 若不存得這些, 待做出, 那箇㑹合道理?&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成性存存, 道義出矣'란 무엇입니까?&amp;quot; 답했다. &amp;quot;하늘이 명령한 것이 나에게 얻어진 것이니 다만 하나의 道理이다. 사람은 다만 이와 같은 것을 얻어서 이 안에 두고자 해야한다. 이 안에 두자마자 군주를 섬김에 반드시 忠할 수 있고, 부모를 섬김에 반드시 孝할 수 있으며 아이가 우물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 두려워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담넘어 도둑질하는 부류를 보면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일어나며 공경해야할 곳에서는 저절로 공경할 수 있고, 사양해야할 곳에서는 저절로 사양할 수 있게되니 모름지기 이 마음을 항상 보존하고자 해야 이 性이 발출한 것이 모두 道理임을 볼 수 있다. 만약 이것을 보존하지 않는다면 무언가 하려고 해도 무엇이 道理와 합할 수 있겠는가?&amp;quot;&lt;br /&gt;
:○西山眞氏曰: &amp;quot;'成性'者, 言天之與我者, 自有渾成之性, 如俗言'見成渾淪之物', 是也. 我但當存之又存, 不令頃刻失之, 則天下之道義皆從此出. 道義, 如事君忠, 事親孝之類.&amp;quot;&lt;br /&gt;
:서산진씨가 말했다. &amp;quot;'成性'이라는 것은 하늘이 나에게 부여해준 것을 말하니 자연히 혼연하고 완성된 性이 있는 것으로 세속에서 말하는 '見成渾淪之物'이 이것이다. 내가 다만 마땅히 보존해야할 것을 보존하고 잠깐이라고 이것을 잃어버리지 않게 한다면 천하의 道義가 모두 이것을 따라서 나올 것이다. 道義는 군주를 섬김에 忠하고, 부모를 섬김에 孝하는 부류와 같은 것이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天地之中', 太極是已, 天之命我, 此也; 我之明徳, 此也; 謂之至善, 亦此也. 道者, 體; 義者, 用; '成性存存而道義出', 則明徳之全體大用無不明矣.&amp;quot;&lt;br /&gt;
:옥계노씨가 말했다. &amp;quot;'天地之中'이란 태극일 뿐이니, 하늘이 나에게 명한 것이 이것이오, 나의 明徳이 이것이오, 至善을 말한 것 또한 이것이다. 道라는 것은 體고, 義라는 것은 用이다. '成性存存而道義出'이란 明徳의 全體와 大用이 밝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克明峻徳', 何也?&amp;quot; &amp;lt;br/&amp;gt;&lt;br /&gt;
말했다. &amp;quot;'克明峻徳'이란 무엇입니까?&amp;quot; &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言堯能明其大徳也.&amp;quot; &amp;lt;br/&amp;gt;&lt;br /&gt;
답했다. &amp;quot;요임금께서 자신의 大徳을 밝힐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人之為徳未嘗不明, 而其明之為體亦未嘗不大. 但人自有以昏之, 是以既不能明, 而又自䧟於一物之小. 唯堯為能明其大徳而無昏暗狹小之累, 是則所謂止於至善.&amp;quot;&lt;br /&gt;
:주자가 말했다. &amp;quot;사람의 徳됨은 일찍이 밝지 않음이 없고, 그 밝음의 體됨은 또한 일찍이 크지 않음이 없다. 다만 사람이 스스로 그것을 흐릴 수 있기 때문에 이미 밝힐 수 없고 또 스스로 한 사물의 작음에 빠진다. 오직 요임금께서만이 자신의 大徳을 밝히고 혼미하고 어둡고 좁고 작음의 얽매임이 없을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이른바 '止於至善'이다.&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能明其大徳', 只是明明徳到十分盡處, 非明徳之外有峻徳也.&amp;quot;&lt;br /&gt;
:옥계노씨가 말했다. &amp;quot;'能明其大徳'이란 다만 明徳을 밝히는 것을 충분히 다하는 것이니, 明徳이외에 峻徳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是三者, 固皆自明之事也. 然其言之, 亦有序乎?&amp;quot;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이 세가지는 진실로 모두 스스러 밝히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말함이 또한 순서가 있는 것입니까?&amp;quot; &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amp;lt;康誥&amp;gt;通言明徳而已; &amp;lt;太甲&amp;gt;則明天之未始不爲人而人之未始不爲天也; &amp;lt;帝典&amp;gt;則專言成徳之事, 而極其大焉. 其言之淺深, 亦略有序矣.&amp;quot;&lt;br /&gt;
말했다. &amp;quot;&amp;lt;康誥&amp;gt;는 明徳을 통틀어말한 것일 뿐이고,  &amp;lt;太甲&amp;gt;은 하늘은 애초에 사람을 위하지 않음이 없고 사람은 애초에 하늘을 위하지 않음이 없음을 밝힌 것이고, &amp;lt;帝典&amp;gt;은 成徳의 일을 오로지 말하고서 그 큼을 지극히 한 것이다. 그 말들의 깊이는 또한 대략 순서가 있다.&amp;quot;&lt;br /&gt;
:問: &amp;quot;'天未始不為人而人未始不為天', 何也?&amp;quot; 朱子曰: &amp;quot;只是言人性本無不善, 而其日用之間莫不有當然之則, 所謂天理也. 人若毎事做得是, 則便合天理. 天人本一理, 若理㑹得此意, 則天何嘗大, 人何嘗小也?&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하늘은 애초에 사람을 위하지 않음이 없고 사람은 애초에 하늘을 위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무엇입니까?&amp;quot; 주자가 말했다. &amp;quot;다만 사람의 性은 본래 선하지 않음이 없고, 평소에 당연한 법칙이 있지 않음이 없으니 이른바 天理이다. 하늘과 사람은 본래 하나의 理이니 만약 이 뜻을 이해하였다면 하늘이 어찌 일찍이 크고, 사람이 어찌 일찍이 작겠는가?&amp;quot;&lt;br /&gt;
:○天即人, 人即天. 人之始生, 得於天也; 既生此人, 則天又在人矣. 凡語言動作視聽, 皆天也; '顧'是常要看得光明燦爛, 照在目前.&lt;br /&gt;
:하늘은 곧 사람이고 사람은 곧 하늘이니, 사람이 막 태어나면서 하늘을 얻는다, (하늘이) 이미 이러한 사람을 낳았다면 하늘은 또한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무릇 말하고 행동하고 보고 듣는 것은 모두 하늘이다. '顧'는 항상 광명 찬란하게 보아서 눈 앞에 것들을 비추고자 하는 것이다.&lt;br /&gt;
:○黄氏曰: &amp;quot;本文三引&amp;lt;書&amp;gt;, 乃斷章取義, 以明經文明明徳之意. 其言之序, 則自淺而深, 最爲有用. '克明徳'者, 泛言之; 曰'顧諟', 則言明之之功; 曰'明命', 則言明徳之故; 次之曰'峻徳', 加一峻字, 則又見明徳之極, 乃所謂'止於至善'者也.&amp;quot;&lt;br /&gt;
:황씨가 말했다. &amp;quot;본문은 &amp;lt;서경&amp;gt;을 세 번 인용하여 이내 斷章取義하여 경문의 明明徳의 뜻을 밝혔다. 그 말의 순서는 얕은 것에서부터 깊은 곳에까지 가장 쓰임이 있게 된다. '克明徳'이라는 것은 범범하게 말한 것이고, '顧諟'로 말한 것은 이것을 밝히는 공부를 말한 것이고, '明命'을 말한 것은 明徳의 이유를 말한 것이니 다음에 '峻徳'말하여 '峻'한 글자를 더하면 또한 明徳의 지극함을 볼 수 있으니 바로 이른바 '止於至善'이다.&amp;quot;&lt;br /&gt;
&lt;br /&gt;
===傳二章===&lt;br /&gt;
湯之盤銘曰：「苟日新，日日新，又日新。」&lt;br /&gt;
:盤，沐浴之盤也。銘，名其器以自警之辭也。苟，誠也。湯以人之洗濯其心以去惡，如沐浴其身以去垢。故銘其盤，言誠能一日有以滌其舊染之汙而自新，則當因其已新者，而日日新之，又日新之，不可略有間斷也。&lt;br /&gt;
&lt;br /&gt;
康誥曰：「作新民。」&lt;br /&gt;
:鼓之舞之之謂作，言振起其自新之民也。&lt;br /&gt;
&lt;br /&gt;
詩曰：「周雖舊邦，其命惟新。」&lt;br /&gt;
:詩大雅文王之篇。言周國雖舊，至於文王，能新其德以及於民，而始受天命也。&lt;br /&gt;
&lt;br /&gt;
是故君子無所不用其極。&lt;br /&gt;
:自新新民，皆欲止於至善也。&lt;br /&gt;
&lt;br /&gt;
*右傳之二章。釋新民。&lt;br /&gt;
&lt;br /&gt;
&lt;br /&gt;
====『혹문』 전2장====&lt;br /&gt;
或問: &amp;quot;盤之有銘, 何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혹자가 물었다. &amp;quot;쟁반(盤)에 새긴 것이 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盤者, 常用之器, 銘者, 自警之辭也. 古之聖賢, 兢兢業業&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 謹慎戒懼貌。▶ 《書‧皋陶謨》： “兢兢業業， 一日二日萬幾。”▶ 孔 傳： “兢兢， 戒慎；業業， 危懼。” &amp;lt;/ref&amp;gt;, 固無時而不戒謹恐懼. 然猶恐其有所怠忽而或忘之也. 是以於其常用之器, 各因其事而刻銘以致戒焉, 欲其常接乎目, 毎警乎心而不至於忽忘也.&amp;quot; &amp;lt;br/&amp;gt;&lt;br /&gt;
답했다. &amp;quot;'盤'이라는 것은 항상 쓰는 기물이고, '새긴' 것은 스스로 경계하는 말이다. 옛날의 성현들은 조심하면서 진실로 어느때고 경계하고 두려워하지 않음이 없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 태만하고 소홀히 하며 간혹 잊어버리는게 있다. 이 때문에 항상 사용하는 기물에대가 각각 그 일삼는 것을 따라서 새겨서 경계를 지극히 한 것이니 문앞에 항상 두고서 매번 마음으로 경계하고 소홀히하고 잊어버리는데 이르지 않고자 한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然則沐浴之盤而其所刻之辭如此, 何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그렇다면 세수하는 쟁반에 새긴 글이 이와같은 것은 어째서 입니까?&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人之有是徳, 猶其有是身也; 徳之本明, 猶其身之本㓗也; 徳之明而利欲昏之, 猶身之㓗而塵垢&amp;lt;sub&amp;gt;音苟&amp;lt;/sub&amp;gt;汚&amp;lt;sub&amp;gt;音烏又去聲&amp;lt;/sub&amp;gt;之也. 一旦存養省&amp;lt;sub&amp;gt;悉井反&amp;lt;/sub&amp;gt;察之功, 眞有以去&amp;lt;sub&amp;gt;上聲下同&amp;lt;/sub&amp;gt;其前日利欲之昏, 而日新焉, 則亦猶其䟽&amp;lt;sub&amp;gt;平聲&amp;lt;/sub&amp;gt;瀹&amp;lt;sub&amp;gt;音藥&amp;lt;/sub&amp;gt;&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 洗滌；沐浴。 &amp;lt;/ref&amp;gt;澡&amp;lt;sub&amp;gt;音早&amp;lt;/sub&amp;gt;雪&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 洗滌使之清潔；洗滌。 &amp;lt;/ref&amp;gt;, 而有以去其前日塵垢之汚也. 然既新矣, 而所以新之之功不繼, 則利欲之交將復&amp;lt;sub&amp;gt;扶又反下同&amp;lt;/sub&amp;gt;有如前日之昏, 猶既㓗矣而所以㓗之之功不繼, 則塵垢之集將復有如前日之汚也. 故必因其巳新而日日新之, 又日新之, 使其存養省察之功無少間斷&amp;lt;sub&amp;gt;間去聲斷徒玩反後凡二字相連者並同&amp;lt;/sub&amp;gt;, 則明徳常明而不復爲利欲之昏, 亦如人之一日沐浴而日日沐浴, 又無日而不沐浴, 使其䟽瀹澡雪之功無少間斷, 則身常㓗清而不復爲舊染之汚也. 昔成湯所以反之而至於聖者, 正惟有得於此. 故稱其徳者有曰: '不邇聲色, 不殖&amp;lt;sub&amp;gt;承職反&amp;lt;/sub&amp;gt;貨利.'&amp;lt;ref&amp;gt;&amp;lt;서경&amp;gt; &amp;lt;商書&amp;gt; &amp;lt;仲虺之誥&amp;gt; 惟王不邇聲色，不殖貨利。&amp;lt;/ref&amp;gt; 又曰: '以義制事, 以禮制心.'&amp;lt;ref&amp;gt;&amp;lt;서경&amp;gt; &amp;lt;商書&amp;gt; &amp;lt;仲虺之誥&amp;gt; 王懋昭大德，建中于民，以義制事，以禮制心，垂裕後昆。&amp;lt;/ref&amp;gt; 有曰: '從諌弗咈&amp;lt;sub&amp;gt;音佛&amp;lt;/sub&amp;gt;'&amp;lt;ref&amp;gt;&amp;lt;서경&amp;gt; &amp;lt;商書&amp;gt; &amp;lt;伊訓&amp;gt; 先王肇修人紀，從諫弗咈，先民時若。&amp;lt;/ref&amp;gt;, '改過不吝.'&amp;lt;ref&amp;gt;&amp;lt;서경&amp;gt; &amp;lt;商書&amp;gt; &amp;lt;仲虺之誥&amp;gt; 用人惟己，改過不吝。&amp;lt;/ref&amp;gt; 又曰: '與人不求備, 檢身若不及.'&amp;lt;ref&amp;gt;&amp;lt;서경&amp;gt; &amp;lt;商書&amp;gt; &amp;lt;伊訓&amp;gt; 居上克明，為下克忠，與人不求備，檢身若不及，以至于有萬邦，茲惟艱哉！&amp;lt;/ref&amp;gt; 此皆足以見其日新之實. 至於所謂聖敬日躋&amp;lt;sub&amp;gt;牋西反&amp;lt;/sub&amp;gt;&amp;lt;ref&amp;gt;&amp;lt;시경&amp;gt; &amp;lt;상송&amp;gt; &amp;lt;長發&amp;gt; 湯降不遲、聖敬日躋。&amp;lt;/ref&amp;gt;云者, 則其言愈約而意愈切矣&amp;lt;sub&amp;gt;躋, 升也. 聖人能敬其徳, 日愈升於髙明也.&amp;lt;/sub&amp;gt;然本湯之所以得此, 又其學於伊尹而有發焉. 故伊尹自謂與湯咸有一徳&amp;lt;ref&amp;gt;&amp;lt;서경&amp;gt; &amp;lt;商書&amp;gt; &amp;lt;咸有一德&amp;gt; 惟尹躬暨湯，咸有一德，克享天心，受天明命，以有九有之師，爰革夏正。&amp;lt;/ref&amp;gt;, 而於復&amp;lt;sub&amp;gt;如字&amp;lt;/sub&amp;gt;政太甲之初, 復&amp;lt;sub&amp;gt;扶又反下同&amp;lt;/sub&amp;gt;以終始惟一, 時乃日新&amp;lt;ref&amp;gt;&amp;lt;서경&amp;gt; &amp;lt;商書&amp;gt; &amp;lt;咸有一德&amp;gt; 終始惟一，時乃日新。&amp;lt;/ref&amp;gt;, 爲丁寧之戒, 蓋於是時, 太甲方且自怨自艾&amp;lt;sub&amp;gt;音乂&amp;lt;/sub&amp;gt;, 於桐處&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仁遷義而歸&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만장상&amp;gt; 6. 太甲顛覆湯之典刑，伊尹放之於桐。三年，太甲悔過，自怨自艾，於桐處仁遷義；三年，以聽伊尹之訓己也，復歸于亳。&amp;lt;/ref&amp;gt;, 是亦所謂苟日新者. 故復推其嘗以告于湯者告之, 欲其日進乎此, 無所間斷, 而有以繼其烈祖之成徳也.&amp;lt;ref&amp;gt;&amp;lt;서경&amp;gt; &amp;lt;商書&amp;gt; &amp;lt;伊訓&amp;gt; 伊尹乃明言烈祖之成德，以訓于王。&amp;lt;/ref&amp;gt; 其意亦深切矣.&amp;lt;br/&amp;gt;&lt;br /&gt;
답했다. 사람이 이러한 덕이 있는 것은 이러한 마음이 있는 것과 같고, 덕이 본래 밝은 것은 몸이 원래 깨끗한 것과 같으며, 덕은 밝은데 이욕으로 혼미해지는 것은 몸은 깨끗하지만 먼지로 더럽혀져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잠깐의 존양성찰의 공부는 진실로 이전의 이익의 사사로움을 제거하여 날로 새로워질 수 있으니 또한 (몸을) 씻어내서 전날의 더러움을 제거할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미 새로워졌더라도 새롭게 하는 공부를 잇지 않으면 이욕이 엮여서 다시 전날의 혼매함과 같은 것이 있게 될 것이니, 이미 깨끗히 씼엇지만 깨끗하게 하는 공력을 잇지 않으면 먼지가 모여서 다시 전날의 더러움과 같은 것이 있게 될 것과 같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미 새로워진 것을 따라서 매일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하여 그 존양성찰의 공부로 하여금 조금의 끊어짐도 없게 한다면 명덕이 항상 밝고 다시 이욕의 혼매함이 없게 하는 것은 사람이 매일 씻고 또 날마다 씻어서 하루라도 씻지 않음이 없어서, 그 씻는 공력으로 하여금 조금의 끊어짐도 없게 하면 몸이 항상 깨끗하고 또 다시 옛날의 더러움이 되지 않게 되는 것과 같다. 옛날 成湯이 돌이켜서 성인에 이른 것이 바로 이 점을 앎이 있었기 때문이니 그 덕을 칭송하면서 말하길 &amp;quot;소리와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고 재물을 늘리지 않는다&amp;quot;라고 하고 또 &amp;quot;義로써 일을 제어하고, 禮로써 마음을 제어한다.&amp;quot;고 하였으며, &amp;quot;간언을 따르고 거스르지 않는다&amp;quot;, &amp;quot;잘못을 고치는데 거리끼지 않는다&amp;quot;고 하고, 또 &amp;quot;사람들에게 주는 것을 다 갖추지 못한 것처럼 하고, 몸을 검속함을 마치 미치지 못한 듯 한다&amp;quot;고 하였으니, 이 모든 것이 날마다 새로워지는 실질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amp;quot;성인께서 敬하여 날로 오르신다&amp;quot;라는 말에 경우에는 그 말은 더욱 축약되어 있지만 뜻은 더욱 간절하다. 그러나 본래 탕임금이 이런 것을 깨달은 까닭은 또한 그것을 이윤에게 배워서 감발한 것이 있었기 때문에 이윤 스스로 '탕과 (다른 사람들은 ) 모두 같은 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lt;br /&gt;
&lt;br /&gt;
:朱子曰: &amp;quot;成湯工夫, 全在敬字上. 看來大叚是箇脩飭底人. 故當時人說他做工夫處, 如云以義以禮, 不邇不殖等, 可見日新之功. 或問中所以詳載, 非說道人不知, 亦欲學者經心&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2. 留心；着意。 &amp;lt;/ref&amp;gt;耳.&amp;quot;&lt;br /&gt;
:주자가 말했다. &amp;quot;成湯의 공부는 모두 '敬'이라는 글자에 달려 있다. 대단히 그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사람임을 보아야 하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다른 공부 방법을 설명한 것이 마치 義로써 하거나, 禮로써 한다, 가까이 하지 않고 불리지 않는다 등등의 말과 같은 것이니 (여기에서) 날로 새로워지는 공부를 볼 수 있다. &amp;lt;或問&amp;gt; 안에 상세히 기록해 놓은 것은 사람들이 알지 못함을 말한 것이 아니고, 또 배우는 사람들이 마음을 두게 하고자 한 것이다.  &lt;br /&gt;
:○格庵趙氏曰: &amp;quot;塵垢之汚, 其害淺, 利欲之昏, 其害深. 塵垢之汚, 人知求以去之, 而利欲之昏, 則不知所以去之. 唯聖人則以為徳之不可不新, 甚於身之不可不㓗也. 且人之㓗身也, 既知䟽瀹澡雪以去前日塵垢之汚矣. 然其㓗之之功不繼, 則塵垢復集, 將又如前日之汚. 故必日加䟽瀹澡雪之功, 無少間斷, 而後其身常㓗而不汚, 况欲去利欲之昏, 而復本然之明, 則存養省察之功, 其可一日而有間斷哉!&amp;quot;&lt;br /&gt;
:격암조씨가 말했다. &amp;quot;먼지와 때를 쓴 더러움은 그 해됨이 얕지만, 이욕의 혼매함은 그 해됨이 심하다. 먼지와 때의 더러움은 사람들이 이것을 제거해야함을 알지만, 이욕의 혼매함은 이것을 제거해야하는 까닭을 모른다. 오직 성인이라면 덕이 새로워지지 않을 수 없음이 몸이 깨끗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 보다 심하다고 여기신다. 또 사람들이 몸을 깨끗이 해야함은 이미 씻어내서 전날의 먼지와 때의 더러움을 제거해야할 줄을 알지만, 깨끗이 해나가야하는 공력을 잇지 않는다면 먼지와 때가 다시 모여서 또 전날의 더러움과 같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날마다 씻어내는 공력을 가함이 조금의 끊어짐도 없게 한 이후에 그 몸이 항상 깨끗하여 더럽지 않을 것이니, 하물며 이욕의 혼매함을 없애고 다시 본연의 밝음을 회복하고자 하는 경우라면 존양성찰의 공부가 어찌 하루라도 끊어짐이 있을 수 있겠는가!&amp;quot;&lt;br /&gt;
:○玉溪盧氏曰: &amp;quot;不邇聲色等八句, 是敬之目; 聖敬日躋一句, 是敬之綱. 合而言之, 即顧諟明命之事也.&amp;quot;&lt;br /&gt;
:옥계노씨가 말했다. &amp;quot;'不邇聲色'등의 여덟 구절은 敬의 조목이고, '聖敬日躋'의 한 조목 구절은 敬의 강령이다. 합하여 말한다면 '顧諟明命'의 일이다.&amp;quot;&lt;br /&gt;
&lt;br /&gt;
其後周之武王, 踐阼&amp;lt;sub&amp;gt;存故反&amp;lt;/sub&amp;gt;之初, 受師尚父&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齊太公 呂望 的尊稱。 &amp;lt;/ref&amp;gt;丹書之戒曰&amp;lt;sub&amp;gt;尚父太公望吕氏詳見孟子離婁上篇&amp;lt;/sub&amp;gt;: '敬勝怠者吉, 怠勝敬者滅, 義勝欲者從, 欲勝義者凶.'&amp;lt;br/&amp;gt;&lt;br /&gt;
이후 주나라 무왕이 즉위한 처음에 사상보가 「丹書」의 경계를 주며 말하길, '공경함이 태만함을 이기는 사람은 길하고, 태만함이 공경함을 이기는 사람은 멸한다. 의로움이 욕구를 이기는 사람은 따르고, 욕구가 의로움을 이기는 사람은 흉하다.&lt;br /&gt;
:問從字意. 朱子曰: &amp;quot;從, 順也. 敬便立起, 怠便放倒. 以理從事是義, 不以理從事便是欲. 這處敬與義, 是箇體用.&amp;quot;&lt;br /&gt;
:'從'의 의미를 물었다. 주자가 말했다. &amp;quot;從은 따른다는 것이다. 敬은 바로 세워 일으키는 것이고, 怠는 엎어지는 것이다. 이치로써 일을 따르는 것이 義이며, 이치로써 일을 따르지 않는 것이 欲이다. 敬과 義는 體用관계이다.&amp;quot;&lt;br /&gt;
:○須是將敬來做本領. 涵養得貫通時, 纔敬以直内, 便義以方外. 義便有敬, 敬便有義. 如居仁便由義, 由義便居仁. 敬者, 守於此而勿失之謂; 義者, 施於彼而合宜之謂.&lt;br /&gt;
:모름지기 敬으로 본령을 해 나가야 한다. 함양공부가 관통할 수 있을 때에 敬以直内하자마자 義以方外한다. 義가 있으면 敬이 있고, 敬이 있으면 義가 있으니 마치 仁에 거처하면 곧 義를 따르게 되고, 義를 따르면 곧 仁에 거처하게 되는 것과 같다. 敬이라는 것은 이것을 지켜서 잃어버리지 않음을 말하고, 義라는 것은 저기에서 시행하여 마땅함에 합하는 것을 말한다.&lt;br /&gt;
:○西山眞氏曰: &amp;quot;武王之始踐阼也, 訪丹書於太公, 可謂急於聞道者矣. 而太公望所告, 不出敬與義之一言. 蓋敬則萬善俱立, 怠則萬善俱廢, 義則理為之主, 欲則物為之主. 上古聖人巳致謹於此矣. 武王聞之, 若湯之戒懼而銘之器物以自警焉. 蓋恐斯須不存, 而怠與欲得乘其隙也.&amp;quot;&lt;br /&gt;
:서산진씨가 말했다. &amp;quot;&amp;quot;무왕이 처음 즉위함에 「丹書」를 태공에게 자문하였으니, 道를 듣는 것을 급히 하였다고 말할 만 하다. 태공이 알리기를 바라였지만, 敬과 義라는 한 마디 말에서 나오지 않았다. 대개 공경하면 모든 善이 함께 바로서고, 태만하면 모든 善이 함께 사라지며, 의로우면 理가 주인이 되고, 욕구하면 物이 주인이 된다. 옛날의 성인들은 이미 여기에서 삼가함을 지극히 하셨다. 무왕이 이것을 들은 것은 마치 탕왕이 경계하고 두려워하여 글자를 새긴 기술로 스스로 경계한 것과 같다. 대개 잠깐이라도 (敬과 義에) 있지 않아서 怠와 欲이 그 틈을 탈 것을 두려워해야한다.&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敬義對言, 其理甚精. 孔子於坤&amp;lt;文言&amp;gt;曰: '敬以直内, 義以方外.'&amp;lt;ref&amp;gt;&amp;lt;주역&amp;gt; &amp;lt;문언&amp;gt; 「直」其正也，「方」其義也。君子敬以直內，義以方外，敬義立而德不孤。「直、方、大、不習无不利」，則不疑其所行也。&amp;lt;/ref&amp;gt; 實自此發.&amp;quot;&lt;br /&gt;
:신안진씨가 말했다. &amp;quot;敬과 義를 대대하여 말하면 그 이치가 더욱 정밀하다. 공자께서 坤괘 &amp;lt;文言&amp;gt;에서 말씀하시길 '敬以直内, 義以方外'라 하였으니, 진실로 여기서부터 나온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退而於其几席、觴豆、刀劒、户牖, 莫不銘焉, 蓋聞湯之風而興起者. 今其遺語尚幸頗見&amp;lt;sub&amp;gt;形甸反&amp;lt;/sub&amp;gt;於禮書, 願治&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之君, 志學之士, 皆不可以莫之考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무왕이 듣고) 물러나고서 방석, 제기, 검, 창에 이것을 새기지 않음이 없었으니, 아마도 탕왕의 풍속을 듣고 흥기한 것일 것이다. 오늘 날에 남은 말이 여전히 다행히 자못 예서에 드러나 있으니 (잘)다스리고자 하는 군주와 학문에 뜻을 둔 士는 모두 상고하지 않을 수 없다.&amp;lt;br/&amp;gt;&lt;br /&gt;
:張氏存中曰: &amp;quot;&amp;lt;大戴禮&amp;gt; &amp;lt;武王踐阼&amp;gt;篇, '武王踐阼三日, 召師尚父而問焉曰: 『黄帝顓帝之道, 可得而見與?』 曰: 『在丹書, 王欲聞之, 則齊矣.』 王齊三日, 師尚父奉書而入, 道書之言曰: 『敬勝怠者吉, 怠勝敬者滅, 義勝欲者從, 欲勝義者凶. 凡事不强則枉, 弗敬則不正, 枉者滅廢, 敬者萬世.』 王聞書之言, 惕若恐懼, 而為戒書於席四端為銘焉. 銘曰: 『安樂必敬』 『無行可悔』 『一反一側, 亦不可不志&amp;lt;ref&amp;gt;&amp;lt;대대례기&amp;gt; 원문에는 志자가 忘자로 되어 있다.&amp;lt;/ref&amp;gt; 『殷監不逺, 視爾&amp;lt;ref&amp;gt;&amp;lt;대대례기&amp;gt; 원문에는 爾자가 邇자로 되어 있다.&amp;lt;/ref&amp;gt;所代』, 鑑銘曰: 『見爾前, 慮爾後』, 盤銘曰: 『與其溺於人也, 寧溺於淵. 溺於淵, 猶可游也; 溺於人, 不可捄也.』, 楹銘曰: 『毋曰胡殘, 其禍將然; 毋曰胡害, 其禍將大; 毋曰胡傷, 其禍將長』, 牖銘曰: 『隨天之時, 以地之財, 敬祀皇天, 敬以先時』, 劒銘曰: 『帶之以為服, 動必行徳行. 德則興, 倍徳則崩』.'&amp;quot;&amp;lt;sub&amp;gt;倍與背同. 銘凡十有四, 今摘其辭義之易知者于此.&amp;lt;/sub&amp;gt;&lt;br /&gt;
:장존중이 말하길 &amp;quot;&amp;lt;大戴禮&amp;gt;의 &amp;lt;武王踐阼&amp;gt;편에 무왕이 즉위한지 3일 후에 사상보를 불러서 묻기를 '황제전제의 도를 들을 수 있을까요'라고 하니, 말하길 '「丹書」에 있으니 듣고자 하신다면 목욕재개하십시오'라고 하니, 왕이 3일동안 목욕재개하여 사상보가 「丹書」를 들고 들어왔다. 책의 말을 이르길 '공경함이 태만함을 이기는 사람은 길하고, 태만함이 공경함을 이기는 사람은 멸한다. 의로움이 욕구를 이기는 사람은 따르고, 욕구가 의로움을 이기는 사람은 흉하다. 모든 일은 강하지 않으면 굽어지고 敬하지 않으면 바르지 않으니, 굽어진 것은 없어지고 敬한 것은 만세토록 유지된다'고 하였다. 왕이 책의 말을 듣고서, 두려워하고 경계하여 경계하는 책으로 삼아 방석 네 귀퉁이에 이것을 새겼다. 새긴 글귀는 '편안하고 즐거울 때 반드시 敬한다', '행동할 때 후회할 만한 것이 없게하라', '한 번 기울일 때도 잊지 않음이 없어야 한다.', '은나라라는 거울이 멀지 않으니, 저들이 대신한 것을 보라'이고, 거울에 새긴 글자는 '앞선 것을 보고 뒤에 것을 생각해라'이며, 쟁반에 새긴 글은 '사람에게 빠질 바에야 차라리 연못에 빠지겠다. 연못에 빠지면 오히려 헤엄칠 수 있지만, 사람에 빠지면 구원할 수 없다.'이고, 기둥에 새긴 글은 '잔혹함이 멀다고 말하지 말라, 그 재앙이 그러할 것이다. 해가 멀다고 말하지 말라, 그 재앙이 클것이다. 상처입음이 멀다고 말하지 말라 그 재앙이 자라날 것이다.'이며 창문에 새긴 글은 '하늘의 때를 따르고 땅의 재산을 이용하라, 황제를 공경하여 모시고, 선대를 공경하라'이고, 검에 새긴 글은 '(...) 반드시 덕을 행해야 하니, 덕을 행하면 흥기하고 덕을 배신하면 망한다.'이다.&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此言'新民', 其引此, 何也?&amp;quot;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여기 (전 2장)에서 '新民'을 말하고 이것(탕왕의 말)을 인용한 것은 어째서 입니까?&amp;quot; &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此自其本而言之, 蓋以是爲自新之至而新民之端也.&amp;quot; &amp;lt;br/&amp;gt;&lt;br /&gt;
말했다. &amp;quot;이것은 근원으로 부터 말한 것이니, 대개 이것을 自新의 지극함과 新民의 시작으로 삼는다.&amp;quo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曰: &amp;quot;&amp;lt;康誥&amp;gt;之言作'新民', 何也?&amp;quot;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amp;lt;康誥&amp;gt;에 말에서 '新民'으로 쓴 것은 왜입니까?&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武王之封康叔也, 以商之餘民, 染紂汚俗而失其本心也. 故作&amp;lt;康誥&amp;gt;之書而告之以此, 欲其有以鼓舞而作興之, 使之振奮踴躍, 以去&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其惡而遷於善, 舍&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其舊而進乎新也. 然此豈聲色號令之所及哉? 亦自新而已矣. &amp;lt;br/&amp;gt;&lt;br /&gt;
말했다. &amp;quot;무왕이 강숙을 봉했을 때, 상나라의 백성들이 주왕의 오염된 습속에 불들어서 그 본심을 잃었기 때문에 강고의 글을 지어서 이것을 그들에게 알려서 고무시키고, 흥기시킬 수 있어서 백성들로 하여금 떨쳐 일어나 그 나쁜 것을 제거하고 선한 것으로 옮겨가며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나아가게 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소리와 여색, (말로만) 호령하는 것이 미칠 바겠는가! 또한 스스로 새롭게할 뿐이다.&amp;quot;&amp;lt;br/&amp;gt;&lt;br /&gt;
&lt;br /&gt;
曰: &amp;quot;孔氏&amp;lt;小序&amp;gt;以&amp;lt;康誥&amp;gt;爲成王周公之書, 而子以武王言之, 何也?&amp;quot;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공자의 &amp;lt;小序&amp;gt;에 &amp;lt;康誥&amp;gt;를 성왕과 주공의 책이라고 여겼는데, 그대는 무왕의 말이라고 여기니 어째서입니까?&amp;quot; &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此五峯胡氏之說也. &amp;lt;br/&amp;gt;&lt;br /&gt;
말했다. &amp;quot;이것은 호오봉의 설명이다&amp;quot;&lt;br /&gt;
:胡氏, 名宏, 字仁仲, 建安人, 文定公安國之子也. 其說見&amp;lt;皇王大紀&amp;gt;&amp;lt;ref&amp;gt;&amp;lt;호굉집&amp;gt;, 중화서국, 1987, 262쪽, &amp;lt;皇王大紀論&amp;gt; &amp;lt;載書之敍&amp;gt; &amp;lt;康誥&amp;gt;序曰: &amp;quot;成王既伐管叔、蔡叔, 以殷餘民封康叔.&amp;quot; 謹按, 康叔者, 成王叔父也, 不應稱之曰: &amp;quot;朕其弟&amp;quot;. 成王者, 康叔之猶子也, 不應自稱曰: &amp;quot;乃寡兄&amp;quot;. 其曰兄曰弟者, 盖武王命康叔之辭也, 故&amp;lt;史記&amp;gt;武王封康叔於衛. 且康叔者, 文王之子, 叔虞, 成王之弟也. 周公東征叔虞, 已得封於唐, 王命歸周公於東, 豈有康叔得封反在唐叔之後乎? 故不得不捨&amp;lt;書&amp;gt;序而從經史也. &amp;lt;/ref&amp;gt;.&lt;br /&gt;
:호씨는 이름이 굉(宏)이고 字는 仁仲이며 건안 사람이고 문정 공안국의 아들이다. 그 설명은 &amp;lt;皇王大紀&amp;gt;에 보인다.&lt;br /&gt;
蓋嘗因而考之, 其曰朕弟寡兄云者, 皆爲武王之自言, 乃得事理之實, 而其他証亦多. &amp;lt;小序&amp;gt;之言, 不足深信, 於此可見. 然非此書大義所關. 故不暇於致詳, 當别爲&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讀書者言之耳.&amp;quot;&amp;lt;br/&amp;gt;&lt;br /&gt;
대개 일찍이 이것을 말미암아 상고해보면 (&amp;lt;서경&amp;gt;에서) 朕, 弟, 寡兄라고 말하는 것은 모두 문왕을 스스로 일컬은 것이 되어야 사리의 실질을 얻을 수 있지만 그 다른 증거 또한 많다. &amp;lt;小序&amp;gt;의 말은 깊히 신뢰하기 부족함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큰 뜻이 관련되어 있는 바가 아니기 때문에 지극히 상세할 겨를이 없고 마땅히 구별하여 책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말하게 했을 뿐이다.&lt;br /&gt;
&lt;br /&gt;
○曰: &amp;quot;&amp;lt;詩&amp;gt;之言'周雖舊邦, 其命維新', 何也?&amp;quot; &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amp;lt;詩&amp;gt;에서 말한 '주나라는 비롯 옛 나라이지만, 그 명은 오히려 새롭다.'라고 한 것은 어째서 입니까?&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言周之有邦, 自后稷以來千有餘年, 至於文王, 聖徳日新而民亦丕變&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大變。 ▶ 《書‧盤庚上》： “罔有逸言， 民用丕變。” ▶ 孔 傳： “民用大變從化。” &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답했다. &amp;quot;주나라가 생기고 후직부터 이후로 천여년이 지나 문왕에 이르렀으니, 성인의 덕이 날마다 새로워지고 백성들 또한 변치 않았다.&amp;quot;&amp;lt;br/&amp;gt;&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此乃推本言之, &amp;lt;詩&amp;gt;無'日新丕變'意. 蓋承上文'日新', 作新說來.&amp;quot;&lt;br /&gt;
:신안진씨가 말했아. &amp;quot;이것은 바로 근본을 미루어 말한 것이니 &amp;lt;시&amp;gt;에 '날마다 새로워져 변하지 않았다'는 뜻은 없다. 아마도 윗 글의 '日新'을 이어서 새로운 설명을 쓰셨을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故天命之以有天下. 是其邦雖舊而命則新也. 蓋民之視效在君, 而天之視聽在民. 君徳既新, 則民徳必新; 民徳既新, 則天命之新, 亦不旋日&amp;lt;ref&amp;gt;&amp;lt;한어대사전&amp;gt; 1. 一日之間。 &amp;lt;/ref&amp;gt;矣.&amp;quot;&amp;lt;br/&amp;gt;&lt;br /&gt;
그러므로 하늘의 명이 이것으로 천하를 소유하였다. 이것이 나라는 비록 오래되었지만 그 명은 새롭다는 것이다. 대개 백성들의 본보기는 군주에게 달려있고, 하늘의 보고 들음은 백성에게 달려있으니 군주의 덕이 새로워졌다면 백성의 덕은 반드시 새로울 것이고, 백성의 덕이 새로워졌다면 하늘의 명이 새로워짐은 또한 하루가 걸리지 않을 것이다.&amp;lt;br/&amp;gt;&lt;br /&gt;
:問: &amp;quot;'天之視聽在民', 與'天視自我民視, 天聽自我民聽'&amp;lt;ref&amp;gt;&amp;lt;서경&amp;gt; &amp;lt;주서&amp;gt; &amp;lt;泰誓中&amp;gt; 天視自我民視，天聽自我民聽。&amp;lt;/ref&amp;gt;, 若有不同, 如何?&amp;quot; 朱子曰: &amp;quot;天豈曾有耳目以視聽? 只是自民之視聽, 便是天之視聽. 如帝命文王, 豈天諄諄然命之? 只是文王要恁地, 便是理合恁地, 便是帝命之也.&amp;quot; 又曰: &amp;quot;若一件事, 民人皆以為是, 便是天以為是; 若民人皆歸往之, 便是天命也.&amp;quot;&lt;br /&gt;
:물었다. &amp;quot;'天之視聽在民'와 '하늘의 봄은 나의 백성이 보는 것을 말미암고, 하늘의 들음은 나의 백성이 듣는 것을 말미암는다.'는 같지 않은게 있는 것 같은데 어째서 입니까?&amp;quot; 주자가 말했다. &amp;quot;하늘이 어찌 일찍이 귀와 눈이 있어서 보고 듣겠는가? 다만 백성들의 보고 들음을 말미암으면 곧 하늘이 보고 듣는 것이다. 帝가 문왕에게 명한 것이 어찌 하늘이 하나하나 명한 것이 겠는가? 다만 문왕이 이와같이 하려하여 이치에 합당함이 이와같았다면 곧 帝가 명한 것이다.&amp;quot; 또 말했다. &amp;quot;만약 한 가지 일에 백성이 모두 옳다고 여긴다면 곧 하늘도 옳다고 여긴 것이고, 만약 백성들이 모두 귀의해 온다면, 하늘이 명한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所謂'君子無所不用其極'者, 何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물었다. &amp;quot;이른바 '군자는 그 지극함을 쓰지 않은 바가 없다'는 말은 무엇입니까?&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此結上文&amp;lt;詩&amp;gt;&amp;lt;書&amp;gt;之意也. 蓋&amp;lt;盤銘&amp;gt;言自新也, &amp;lt;康誥&amp;gt;言新民也, 文王之詩自新、新民之極也. 故曰: '君子無所不用其極.' 極, 即至善之云也. 用其極者, 求其止於是而巳矣.&amp;quot;&amp;lt;br/&amp;gt;&lt;br /&gt;
답했다. &amp;quot;이것은 윗 글의 &amp;lt;詩&amp;gt;와 &amp;lt;書&amp;gt;의 뜻이다. 대개 '쟁반에 새긴 말'은 스스로를 새롭게 함을 말한 것이고 &amp;lt;康誥&amp;gt;는 백성을 새롭게 함을 말한 것이고, 문왕의 시는 스스로 새롭게하고 백성을 새롭게 함의 지극함이다. 때문에 '군자는 그 지극함을 쓰지 않은 바가 없다'고 한 것이니, 極이란 곧 至善을 말한 것이다. '그 지극함을 쓴다'는 것은 옳은 것에 머무름을 구할 뿐이다.&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觀上文三引&amp;lt;詩&amp;gt;&amp;lt;書&amp;gt;而此以無所二字總而結之, 則於自新、新民皆欲用其極, 可知矣.&amp;quot;&lt;br /&gt;
:주자가 말했다. &amp;quot;위에서 &amp;lt;詩&amp;gt;와 &amp;lt;書&amp;gt;를 세번 인용하여 '無所'두 글자로 총칭하여 끝맺은 것은 스스로 새롭게 하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에 대해 모두 그 지극함을 쓰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amp;quot;&lt;br /&gt;
&lt;br /&gt;
===傳三章===&lt;br /&gt;
詩云：「邦畿千里，惟民所止。」&lt;br /&gt;
:詩商頌玄鳥之篇。邦畿，王者之都也。止，居也，言物各有所當止之處也。&lt;br /&gt;
&lt;br /&gt;
詩云：「緡蠻黃鳥，止于丘隅。」子曰：「於止，知其所止，可以人而不如鳥乎！」&lt;br /&gt;
:緡，詩作綿。詩小雅綿蠻之篇。緡蠻，鳥聲。丘隅，岑蔚之處。子曰以下，孔子說詩之辭。言人當知所當止之處也。&lt;br /&gt;
&lt;br /&gt;
詩云：「穆穆文王，於緝熙敬止！」為人君，止於仁；為人臣，止於敬；為人子，止於孝；為人父，止於慈；與國人交，止於信。&lt;br /&gt;
:於緝之於，音烏。詩文王之篇。穆穆，深遠之意。於，歎美辭。緝，繼續也。熙，光明也。敬止，言其無不敬而安所止也。引此而言聖人之止，無非至善。五者乃其目之大者也。學者於此，究其精微之蘊，而又推類以盡其餘，則於天下之事，皆有以知其所止而無疑矣。&lt;br /&gt;
&lt;br /&gt;
詩云：「瞻彼淇澳，菉竹猗猗。有斐君子，如切如磋，如琢如磨。瑟兮僩兮，赫兮喧兮。有斐君子，終不可諠兮！」如切如磋者，道學也；如琢如磨者，自脩也；瑟兮僩兮者，恂慄也；赫兮喧兮者，威儀也；有斐君子，終不可諠兮者，道盛德至善，民之不能忘也。&lt;br /&gt;
:澳，於六反。菉，詩作綠。猗，協韻音阿。僩，下版反。喧，詩作咺，諠，詩作諼；並況晚反。恂，鄭氏讀作峻。詩衛風淇澳之篇。淇，水名。澳，隈也。猗猗，美盛貌。興也。斐，文貌。切以刀鋸，琢以椎鑿，皆裁物使成形質也。磋以鑢鐋1，磨以沙石，皆治物使其滑澤也。治骨角者，既切而復磋之。治玉石者，既琢而復磨之。皆言其治之有緒，而益致其精也。瑟，嚴密之貌。僩，武毅之貌。赫喧，宣著盛大之貌。諠，忘也。道，言也。學，謂講習討論之事，自脩者，省察克治之功。恂慄，戰懼也。威，可畏也。儀，可象也。引詩而釋之，以明明明德者之止於至善。道學自脩，言其所以得之之由。恂慄、威儀，言其德容表裏之盛。卒乃指其實而歎美之也。&lt;br /&gt;
&lt;br /&gt;
詩云：「於戲前王不忘！」君子賢其賢而親其親，小人樂其樂而利其利，此以沒世不忘也。&lt;br /&gt;
:於戲，音嗚呼。樂，音洛。詩周頌烈文之篇。於戲，歎辭。前王，謂文、武也。君子，謂其後賢後王。小人，謂後民也。此言前王所以新民者止於至善，能使天下後世無一物不得其所，所以既沒世而人思慕之，愈久而不忘也。此兩節詠歎淫泆，其味深長，當熟玩之。&lt;br /&gt;
&lt;br /&gt;
*右傳之三章。釋止於至善。&lt;br /&gt;
::此章內自引淇澳詩以下，舊本誤在誠意章下。&lt;br /&gt;
&lt;br /&gt;
====『혹문』 전3장====&lt;br /&gt;
或問: &amp;quot;此引&amp;lt;玄鳥&amp;gt;之詩, 何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문: 여기에서 ‘현조(玄鳥)’의 시를 인용하였는데 어째서입니까?&lt;br /&gt;
曰: &amp;quot;此以民之止於邦畿而明物之各有所止也.&amp;quot;&lt;br /&gt;
답: 이는 백성들이 수도(邦畿)에 머물렀음을 통해서(以) 사물에는 각각 머무르는 곳이 있음을 밝힌 것이다.&lt;br /&gt;
&lt;br /&gt;
○曰: &amp;quot;引&amp;lt;緜蠻&amp;gt;之詩而系以孔子之言, 孔子何以有是言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문: ‘면만(緜蠻)’의 시를 인용하고 공자의 말을 이었는데, 공자는 어째서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신 것입니까?&lt;br /&gt;
曰: &amp;quot;此夫子說詩之辭也. 蓋曰: 鳥於其欲止之時, 猶知其當止之處, 豈可人爲萬物之靈, 而反不如鳥之能知所止而止之乎? 其所以發明人當知止之義, 亦深切矣.&amp;quot;&lt;br /&gt;
답: 이는 공자께서 시(詩)를 설명하신 말이다. 아마도 ‘새는 머무르고자 할 때에도 마땅히 머물러야 할 곳을 아는데, 어찌하여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 되어서 도리어 새가 머물러야 할 곳을 알아 머무르는 것만 못할 수 있는가?’ 라고 말한 것 같다. 사람은 마땅히 머무를 곳을 알아야 한다는 의미를 밝히신 것이니 또한 깊고 간절하시다.&lt;br /&gt;
&lt;br /&gt;
○曰: &amp;quot;引&amp;lt;文王&amp;gt;之詩而繼以君臣父子與國人交之所止, 何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문: 문왕의 시를 인용하고서 군신君臣, 부자父子, 백성들과 어울림에 머물러야 할 곳이라는 말로 이으신 것은 어째서입니까?&lt;br /&gt;
曰: &amp;quot;此因聖人之止, 以明至善之所在也. 蓋天生烝民, 有物有則.&amp;lt;ref&amp;gt;&amp;lt;시경&amp;gt; &amp;lt;대아&amp;gt; &amp;lt;증민&amp;gt; 天生烝民、有物有則。&amp;lt;/ref&amp;gt; 是以萬物庶事莫不各有當止之所. 但所居之位不同, 則所止之善不一. 故爲人君, 則其所當止者在於仁; 爲人臣, 則其所當止者在於敬; 爲人子, 則其所當止者在於孝; 爲人父, 則其所當止者在於慈; 與國人交, 則其所當止者在於信, 是皆天理人倫之極致, 發於人心之不容巳者. 而文王之所以爲法於天下, 可傳於後世者, 亦不能加毫末於是焉. 但衆人類爲氣稟物欲之所昏. 故不能常敬而失其所止. 唯聖人之心表裏洞然, 無有一毫之蔽. 故連續光明, 自無不敬, 而所止者莫非至善, 不待知所止而後得所止也.&lt;br /&gt;
답: 이는 성인이 그치신 것에 기인하여 지극한 선이 있는 곳을 밝힌 것이다. 대개 하늘이 백성들을 내리면 사물이 있고 법칙이 있으니 그래서 만사와 만물(萬物庶事)은 각각 마땅히 그쳐야 할 곳이 항상 있었다. 다만 머무르는 바의 지위가 같지 않으니 곧 그치는 바의 선(善)도 일정하지 않다. 그러므로 군주가 되어서는 곧 마땅히 머물러야 하는 바가 인(仁)에 있고, 신하가 되어서는 곧 마땅히 머물러야 하는 바가 경(敬)에 있고, 자식이 되어서는 곧 마땅히 머물러야 하는 바가 효(孝)에 있고, 부모가 되어서는 곧 마땅히 머물러야 하는 바가 자애로움(慈)에 있고, 나라의 백성들과 어울림에는 곧 마땅히 머물러야 하는 바가 신뢰(信)에 있다. 이는 모두 천리(天理)와 인륜(人倫)의 지극함이고 사람의 마음에 그침을 용납할 수 없는 것에서 나타나니, 문왕이 천하에서 법도가 되며 후세에 전할 수 있을만한 것으로 또 여기에 터럭만큼 작은 것이라도 더할 수 없다. 다만 무릇 사람들의 부류는 기품(氣稟)과 물욕(物慾)에 의해서 어두워지게 되었기 때문에 항상 공경할 수 없고 그쳐야 할 곳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오직 성인의 마음에만 표리(表裏)가 통하듯이 되고 한 터럭의 막힘도 없게 되기 때문에 광명(光明)이 계속 이어지고 스스로 공경하지 않음이 없게 되어 그치는 바에 지극한 선이 아님이 없게 되니 그쳐야 할 곳을 알 필요도 없이 이후에 [저절로] 그치는 바를 얻게 된다. 그러므로 이 시를 인용하여 그쳐야 할 바의 실질을 역력히 베풀어 천하의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법칙을 취할 수 있게 하였다. 배우는 자들은 여기에서 진실로 그침을 용납할 수 없는 본심(本心)에서 드러난 것을 보아 계속 이어나가 광명(光明)을 연속해서 밝혀내고 작은 간단(間斷)이라도 없게 한다면 공경하게 그치는 성공(功)이 또한 문왕과 같게 될 것이다. 《시경》에서 이른바 ‘하늘의 이치란 소리도 냄새도 없지만 문왕을 본받으면 모든 나라에서 믿음을 얻을 것이다.’고 한 게 바로 이러한 뜻이다. &amp;lt;br/&amp;gt;&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學者必先知所止, 而後方得所止; 聖人安於所止, 則不待先知而後得也.&amp;quot;&lt;br /&gt;
&lt;br /&gt;
故&amp;lt;傳&amp;gt;引此詩而厯陳所止之實, 使天下後世得以取法焉. 學者於此誠有以見其發於本心之不容已者而緝熈之, 使其連續光明, 無少間斷, 則其敬止之功, 是亦文王而已矣. &amp;lt;詩&amp;gt;所謂'上天之載, 無聲無臭', 儀刑文王, 萬邦作孚',&amp;lt;ref&amp;gt;&amp;lt;시경&amp;gt; &amp;lt;대아&amp;gt; &amp;lt;문왕&amp;gt; 上天之載、無聲無臭。儀刑文王、萬邦作孚。&amp;lt;/ref&amp;gt; 正此意也.&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子之說&amp;lt;詩&amp;gt;, 既以敬止之止爲語助之辭,&amp;lt;ref&amp;gt;&amp;lt;시집전&amp;gt; &amp;lt;대아&amp;gt; &amp;lt;문왕&amp;gt; 止, 語辭.&amp;lt;/ref&amp;gt; 而於此書又以爲所止之義, 何也?&amp;quot; &amp;lt;br /&amp;gt;&lt;br /&gt;
문: 선생님이 시(詩)를 설명하면서 ‘敬止’의 ‘止’를 어조사로 삼았는데 이 글에서 또 머물러야 하는 바라는 뜻으로 새긴 것은 어째서입니까? &amp;lt;br /&amp;gt;&lt;br /&gt;
曰: &amp;quot;古人引&amp;lt;詩&amp;gt;斷&amp;lt;sub&amp;gt;音短&amp;lt;/sub&amp;gt;章, 或姑借其辭以明已意, 未必皆取本文之義也. &amp;lt;br /&amp;gt;&lt;br /&gt;
답: 옛 사람들은 시를 인용하면서 장을 나누었는데 혹자가 잠깐 이 글을 빌려서 자신의 뜻을 밝혔으니 반드시 모두 본문의 뜻을 취할 필요는 없다. &amp;lt;br /&amp;gt;&lt;br /&gt;
&lt;br /&gt;
曰: &amp;quot;五者之目, 詞約而義該矣. 子之說乃復&amp;lt;sub&amp;gt;扶又反&amp;lt;/sub&amp;gt;有所謂'究其精微之藴而推類以通之'者,&amp;lt;ref&amp;gt;&amp;lt;대학장구&amp;gt; 學者於此，究其精微之蘊，而又推類以盡其餘，則於天下之事，皆有以知其所止而無疑矣。&amp;lt;/ref&amp;gt; 何其言之衍而不切耶?&amp;quot; &amp;lt;br /&amp;gt;&lt;br /&gt;
문: 다섯 가지 조목은 문장은 생략하되 뜻을 구비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설명하시면서 다시 이른바 ‘정미한 게 쌓여있는 것을 궁구하고 유추하여 통달해야 한다.’고 하신 게 있는데 어째서 그 말이 장황하고(衍) 절실하지 않은 것입니까?  &amp;lt;br /&amp;gt;&lt;br /&gt;
曰: &amp;quot;舉其徳之要而總名之, 則一言足矣&amp;lt;sub&amp;gt;一言謂一字, 如仁字、敬字之類.&amp;lt;/sub&amp;gt;; 論其所以爲是一言者, 則其始終本末, 豈一言之所能盡哉? 得其名而不得其所以名, 則仁或流於姑息, 敬或墮於阿諛, 孝或陷父, 而慈或敗子, 且其爲信亦未必不爲尾生、白公之爲也.&amp;quot; &amp;lt;br /&amp;gt;&lt;br /&gt;
답: 덕의 요체를 들어서 총체적으로 이름 한다면 하나의 말로도 충분할 것이지만, 이 한마디 말이 되는 까닭을 논하자면 그 시종(始終)과 본말(本末)을 어찌 한마디 말로 다할 수 있는 것이겠느냐! 이름만 얻고 이름이 되는 까닭을 얻지 못한다면 인(仁)이 혹 사그라드는 지경에 빠지게 될 것이고, 경(敬)이 혹 아첨하는 지경으로 떨어질 것이며, 효(孝)가 혹 부모를 모함에 빠뜨릴 것이며, 자애로움이 혹 자식을 패망하게 만들 것이며, 또 신뢰를 행함 역시 반드시 미생(尾生)과 백공(白公)이 행한 것이 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또한 하물며 전문에서 말한 것이 다만 사물이 각각 그쳐야 할 범례(凡例)를 보여주고 있고, 대륜(大倫)의 조목에 대하여 또한 오히려 두 가지(부부와 장유)를 빠뜨리고 있으니 진실로 유추하여 통달하지 못한다면 또한 어떻게 천하의 이치를 다하겠는가! &amp;lt;br /&amp;gt;&lt;br /&gt;
:&amp;lt;莊子&amp;gt;尾生與女子期於梁下, 女子不來, 水至不去, 抱梁柱而死梁橋也.&amp;lt;ref&amp;gt;&amp;lt;장자&amp;gt; 잡편 &amp;lt;도척&amp;gt; 尾生與女子期於梁下，女子不來，水至不去，抱梁柱而死。&amp;lt;/ref&amp;gt;&lt;br /&gt;
:&amp;lt;장자&amp;gt;에  따르면, 미생이 여인과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여인이 오지 않았다. 미생은 물이 차올라도 떠나지 않고 다리 기둥을 껴안고 있다가 죽었다.&lt;br /&gt;
:○&amp;lt;左傳&amp;gt;哀公十六年, 鄭人殺子木&amp;lt;sub&amp;gt;楚平王太子建也, 因過讒出奔而至鄭.&amp;lt;/sub&amp;gt;, 其子曰勝在吳. 子西欲召之&amp;lt;sub&amp;gt;楚令尹子西&amp;lt;/sub&amp;gt;, 曰: &amp;quot;吾聞勝也, 信而勇, 不爲不利.&amp;quot; 葉公曰:&amp;lt;sub&amp;gt;葉音攝&amp;lt;/sub&amp;gt; :&amp;quot;周仁之謂信, 率義之謂勇. 吾聞勝也好復言&amp;lt;sub&amp;gt;言之所許, 必欲復行, 不顧道理.&amp;lt;/sub&amp;gt;而求死士, 殆有私乎! 復言, 非信也; 期死, 非勇也, 子必悔之.&amp;quot; 弗從, 使處吳竟&amp;lt;sub&amp;gt;音境&amp;lt;/sub&amp;gt;爲白公&amp;lt;sub&amp;gt;白, 楚邑也. 邑宰僣稱公&amp;lt;/sub&amp;gt;. 請伐鄭, 子西許之. 未起師, 晉人伐鄭, 楚救之, 勝怒曰: &amp;quot;鄭人在此, 讎不逺矣!&amp;quot; 勝自厲劒, 子期之子平見之曰: &amp;quot;王孫何自厲也?&amp;quot; 曰: &amp;quot;勝以直聞, 不告女&amp;lt;sub&amp;gt;音汝&amp;lt;/sub&amp;gt;, 庸為直乎? 將以殺爾父.&amp;quot; 平以告子西, 子西不悛. 吳人伐愼, 白公敗之. 請以戰備獻, 許之, 遂作亂, 殺子西子期于朝.&lt;br /&gt;
:&amp;lt;좌전&amp;gt; 애공 16년에, 정나라 사람이 子木(초 평왕의 태자 建이니, 참소를 당해 달아났다가 정나라에 왔다.)을 죽였는데, 그의 아들 勝이 오나라에 있었다. 子西(초나라 영윤 자서이다.)가 그를 부르고자 했다: &amp;quot;내가 듣기에 승은 신의와 용기가 있다고 하니, 나에게 불리한 일은 되지 않을 것이다.&amp;quot; 섭공이 말했다: &amp;quot;인한 자를 친애하는 것을 신의라 하고, 의로운 자를 이끄는 것을 용기라고 합니다. 제가 듣기에, 승은 뱉은 말을 애써 이행하려 하고(말로 허락한 것을 반드시 이행하고자 하여 도리를 살피지 않는다.) 죽음을 무릅쓰는 용사가 되고자 하니, 아마도 개인적인 원한 때문일 것입니다! 뱉은 말을 애써 이행하려고 하는 것은 신의가 아니며, 죽기를 바라는 것은 용기가 아니니, 그대는 필시 후회할 것입니다.&amp;quot; 자서는 이를 따르지 않고 승으로 하여금 오나라와의 국경에 있게 하고 白公으로 삼았다.(白은 초나라 고을이다. 읍재를 公으로 참칭했다.) 승이 정나라를 치자고 자서에게 청했는데, 자서가 허락했다. 아직 군대를 일으키기도 전에 진나라가 정나라를 공격했는데, 초나라가 정나라를 구원하니 승이 분노했다: &amp;quot;정나라 놈이 여기에 있었구나! 원수가 멀리 있지 않았구나!&amp;quot; 승이 스스로 칼을 갈고 있는데, 子期의 아들 平이 이를 보고 물었다: &amp;quot;왕손께서는 어째서 직접 칼을 갈고 계십니까?&amp;quot; 승이 대답했다: &amp;quot;나는 대쪽같기로 유명하니, 너에게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면 어찌 대쪽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장자 네 아비(자서와 자기는 친형제이므로 함께 죽이려고 한 것이다.)를 죽이려고 한다.&amp;quot; 평이 이를 자서에게 고했는데, 자서는 깨닫지 못했다. 오나라가 초나라의 愼 땅을 공격했는데, 백공이 패퇴시켰다. 이에 백공이 전리품을 바치기를 청하니, 자서가 허락했는데, 백공이 마침내 난을 일으켜 조정에서 자서와 자기를 살해했다.&lt;br /&gt;
&lt;br /&gt;
又况&amp;lt;傳&amp;gt;之所陳, 姑以見&amp;lt;sub&amp;gt;形甸反&amp;lt;/sub&amp;gt;物各有止之凡例, 其於大倫之目, 猶且闕其二焉, 苟不推類以通之, 則亦何以盡天下之理哉?&amp;lt;br/&amp;gt;&lt;br /&gt;
:節齊蔡氏曰: &amp;quot;所謂'得其名而不得其所以名', 若細推之, 如為人君止於仁, 固同一仁也, 然仁亦何止一端? 生之育之, 固仁也; 刑之威之, 亦仁也. 若執著其仁之一端, 不能隨處止其仁之所止, 安得謂止於仁之至善? 為人臣止於敬, 固同一敬也, 然敬亦何止一端? 鞠躬盡瘁, 固敬也; 陳善閉邪, 亦敬也. 若執著其敬之一端, 不能隨處止其敬之所止, 安得謂止於敬之至善? 為人子止於孝, 固同一孝也, 然孝亦何止一端? 先意承志, 固孝也; 幾諫不違亦孝也. 若執著其孝之一端, 不能隨處止其孝之所止, 安得謂止於孝之至善? 以至為人父止於慈, 與國人交止於信, 皆當如此. 而又推類以及其餘, 則凡天下之事, 無大無小, 雖千條萬緒, 皆有以知其所當止, 而無不止於至善矣.&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復&amp;lt;sub&amp;gt;扶又反&amp;lt;/sub&amp;gt;引&amp;lt;淇澳&amp;gt;之詩, 何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문: 다시 ‘기욱(淇奧)’의 시를 인용한 것은 어째서인가요? &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上言止於至善之理, 備矣. 然其所以求之之方, 與其得之之驗, 則未之及. 故又引此詩以發明之也. 夫&amp;lt;sub&amp;gt;音扶&amp;lt;/sub&amp;gt;'如切如磋', 言其所以講於學者已精而益求其精也; '如琢如磨', 言其所以脩於身者已宻而益求其宻也. 此其所以擇善固執&amp;lt;ref&amp;gt;&amp;lt;중용장구&amp;gt; 20장. 誠者，天之道也；誠之者，人之道也。誠者不勉而中，不思而得，從容中道，聖人也。誠之者，擇善而固執之者也。&amp;lt;/ref&amp;gt;&amp;lt;sub&amp;gt;擇善即講學之事; 固執即脩身之事.&amp;lt;/sub&amp;gt;, 日就月將, 而得止於至善之由也.&lt;br /&gt;
:朱子曰: &amp;quot;'如切如蹉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脩也', 既學而猶慮其未至, 則復講習討論以求之, 猶治骨角者既切而復磋之. 切是切得一箇璞在這裏, 似亦可矣. 又磋之使至於滑澤, 這是治骨角者之至善也. 既脩而又慮其未至, 則又省察克治以終之, 猶治玉石者既琢而復磨之. 琢是琢得一箇璞在這裏, 似亦得矣. 又磨之使至於精細, 這是治玉石者之至善也. 取此以喻君子之止於至善. 既格物以求知所止矣, 又日用力以求得其所止焉.&amp;quot; &amp;lt;br/&amp;gt;&lt;br /&gt;
답: 위의 말에 지어지선(止於至善)의 이치가 구비되어 있으나 이것을 구하는 방도와 이것을 얻은 효험에 대해서는 미치지 못하였기 때문에 다시 이 시를 인용하여 밝히셨다. 무릇 ‘여절여차(如切如磋)’는 학문에 강구해야 하는 것이 이미 정밀하여도 또한 그 정밀한 것을 구해야 함을 말한 것이고, ‘여탁여마(如琢如磨)’는 몸을 수양하는 것이 이미 긴밀하더라도 그 긴말함을 더욱 구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이는 선을 택하고 진실로 붙잡아 일취월장(日就月將) 해서 지극한 선에 머무를 수 있는 연유인 것이다. 준열(恂慄)이란 마음 안에 보존되어 있는 엄경(嚴敬)이고, 위의(威儀)란 밖으로 드러나는 광휘(輝光)이다. 이것이 얼굴에 윤택이 나고 몸에 넘쳐나 사체(四體)에 베풀어져 지극한 선에 머무르는 효험인 것이다. 덕을 성대하게 하고 선을 지극하게 하여 백성들이 잊을 수 없는 것은 대개 동일한 사람들의 마음이지만 성인은 이미 이것을 먼저 얻어서 충만하고 성대함이 또한 이와 같으니 그래서 백성들은 이를 우러러보고 읻을 수 없는 것이다. 성덕(盛德)은 몸이 얻은 바를 가지고서 말한 것이고, 지선(至善)은 이치가 극대화 된 것을 가지고서 말한 것이고, 절차탁마(切磋琢磨)는 이에 그치기를 구할 뿐이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陳氏曰: &amp;quot;切是窮究事物之理, 逐件分析, 有倫有序; 磋是講究到純熟處, 道理瑩徹, 所以如切而又磋. 琢是克去物欲之私, 使無瑕纇. 磨是磨礲至那十分純粹處, 所以如琢而又磨.&amp;quot;&lt;br /&gt;
:○學是知止於至善所在; 自脩是止於至善所在.&lt;br /&gt;
:○西山眞氏曰: &amp;quot;'如切如磋, 道學也', 主知而言; '如琢如磨, 自脩也', 主行而言, 言致知力行當並進也. 知到十分精處, 而行處有一分未宻, 亦未得為至善. 須是知極其至, 行亦極其至, 方謂之至善.&amp;quot;&lt;br /&gt;
&lt;br /&gt;
恂慄者, 嚴敬之存乎中也; 威儀者, 輝光之著乎外也. 此其所以睟&amp;lt;sub&amp;gt;雖萃反&amp;lt;/sub&amp;gt;面盎背, 施於四體&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진심상&amp;gt; 21. 君子所性，仁義禮智根於心。其生色也，睟然見於面，盎於背，施於四體，四體不言而喻。&amp;lt;/ref&amp;gt;而爲止於至善之驗也. '盛徳至善, 民不能忘', 蓋人心之所同然, 聖人既先得之而其充盛宣著又如此. 是以民皆仰之而不能忘也. '盛徳', 以身之所得而言也; '至善', 以理之所極而言也. '切磋琢磨', 求其止於是而巳矣.&amp;quot;&amp;lt;br/&amp;gt;&lt;br /&gt;
:問: &amp;quot;'切磋琢磨'是學者事, 而'盛徳至善'乃指聖人言之, 何也?&amp;quot; 朱子曰: &amp;quot;後面說得來大, 非聖人不能, 此是連上文'文王於緝熈敬止'說. 然聖人也不是挿手掉臂, 做到那處, 也須學始得, 如孔子所謂'徳之不脩,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amp;lt;ref&amp;gt;&amp;lt;논어&amp;gt; &amp;lt;술이&amp;gt; 3. 子曰：「德之不脩，學之不講，聞義不能徙，不善不能改，是吾憂也。」&amp;lt;/ref&amp;gt; 此有甚緊要. 聖人却憂者, 何故? 惟其憂之, 所以為聖人. 所謂生而知之者, 便只是知得此而巳. 故曰: '惟聖罔念作狂, 惟狂克念作聖.'&amp;lt;ref&amp;gt;&amp;lt;상서&amp;gt; &amp;lt;주서&amp;gt; &amp;lt;다방&amp;gt; 惟聖罔念作狂，惟狂克念作聖。&amp;lt;/ref&amp;gt;&amp;quot;&lt;br /&gt;
:○'盛徳至善', 言聖人事蓋渾然一理, 不可得而分者. 但以人言則曰徳; 以理言則曰善, 又不爲無辨矣.&lt;br /&gt;
&lt;br /&gt;
曰: &amp;quot;'切磋琢磨', 何以爲學問自脩之别&amp;lt;sub&amp;gt;後列反&amp;lt;/sub&amp;gt;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骨角脉理可尋, 而切磋之功易&amp;lt;sub&amp;gt;去聲&amp;lt;/sub&amp;gt;所謂'始條理'&amp;lt;ref&amp;gt;&amp;lt;맹자&amp;gt; &amp;lt;만장하&amp;gt; 1. 孔子之謂集大成。集大成也者，金聲而玉振之也。金聲也者，始條理也；玉振之也者，終條理也。始條理者，智之事也；終條理者，聖之事也。&amp;lt;/ref&amp;gt;之事也; 玉石渾&amp;lt;sub&amp;gt;上聲&amp;lt;/sub&amp;gt;全堅確&amp;lt;sub&amp;gt;克角反&amp;lt;/sub&amp;gt;, 而琢磨之功難, 所謂'終條理'之事也.&amp;quot;&lt;br /&gt;
:問: &amp;quot;'切磋是始條理, 琢磨是終條理', '終條理'較宻否?&amp;quot; 朱子曰: &amp;quot;始終條理都要宻. 講貫而益講貫, 脩飭而益脩飭.&amp;quot;&lt;br /&gt;
:○問: &amp;quot;琢磨後更有'瑟僴赫喧', 何故為'終條理'之事?&amp;quot; 曰: &amp;quot;那不是做工夫處, 是成就後氣象自如此.&amp;quot;&lt;br /&gt;
:○新安陳氏曰: &amp;quot;此與&amp;lt;論語&amp;gt;引&amp;lt;詩&amp;gt;之意異. 此以比講學之先後難易, 又證之以&amp;lt;孟子&amp;gt;之始終條理, 以見二者之當兼盡而不可偏廢也.&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quot;引&amp;lt;烈文&amp;gt;之詩而言'前王之沒世不忘', 何也?&amp;quot;&amp;lt;br/&amp;gt;&lt;br /&gt;
曰: &amp;quot;'賢其賢'者, 聞而知之, 仰其徳業之盛也; '親其親'者, 子孫保之, 思其覆&amp;lt;sub&amp;gt;敷救反&amp;lt;/sub&amp;gt;育之恩也.&lt;br /&gt;
:朱子曰: &amp;quot;如孔子仰文武之徳, 是'賢其賢'; 成康以後, 思其恩而保其基緒, 便是'親其親'.&lt;br /&gt;
&lt;br /&gt;
'樂其樂'者, 舍哺&amp;lt;sub&amp;gt;蒲故反&amp;lt;/sub&amp;gt;鼓腹而安其樂也; '利其利'者, 耕田鑿井而享其利也, 此皆先王盛徳至善之餘澤. 故雖已沒世而人猶思之, 愈久而不能忘也. 上文之引&amp;lt;淇澳&amp;gt;, 以明明徳之得所止言之, 而發新民之端也; 此引&amp;lt;烈文&amp;gt;, 以新民之得所止言之, 而著明明徳之效也.&amp;quot;&lt;br /&gt;
:朱子曰: &amp;quot;&amp;lt;淇澳&amp;gt;言明明徳而可以新民, 以見明明徳之極功; &amp;lt;烈文&amp;gt;因言非獨一時民不能忘, 而後世之民亦不能忘, 以見新民之極功.&amp;quot;&lt;br /&gt;
&lt;br /&gt;
○曰: &amp;lt;淇澳&amp;gt;&amp;lt;烈文&amp;gt;二節, 鄭本元在誠意章後, 而程子置之卒章之中, 子獨何以知其不然而屬&amp;lt;sub&amp;gt;音蜀下同&amp;lt;/sub&amp;gt;之此也?&amp;quot;&lt;br /&gt;
曰: &amp;quot;二家所繫, 文意不屬&amp;lt;sub&amp;gt;音燭&amp;lt;/sub&amp;gt;, 故有不得而從者. 且以所謂'道盛徳至善, 沒世不忘'者推之, 則知其當屬乎此也.&amp;quot;&lt;br /&gt;
&lt;br /&gt;
===傳四章===&lt;br /&gt;
====『혹문』 전4장====&lt;br /&gt;
&lt;br /&gt;
&lt;br /&gt;
===傳五章===&lt;br /&gt;
====『혹문』 전5장====&lt;br /&gt;
&lt;br /&gt;
&lt;br /&gt;
===傳六章===&lt;br /&gt;
&lt;br /&gt;
====『혹문』 전6장====&lt;br /&gt;
&lt;br /&gt;
&lt;br /&gt;
===傳七章===&lt;br /&gt;
&lt;br /&gt;
====『혹문』 전7장====&lt;br /&gt;
&lt;br /&gt;
&lt;br /&gt;
===傳八章===&lt;br /&gt;
&lt;br /&gt;
====『혹문』 전8장====&lt;br /&gt;
&lt;br /&gt;
&lt;br /&gt;
===傳九章===&lt;br /&gt;
&lt;br /&gt;
====『혹문』 전9장====&lt;br /&gt;
&lt;br /&gt;
&lt;br /&gt;
===傳十章===&lt;br /&gt;
&lt;br /&gt;
====『혹문』 전10장====&lt;br /&gt;
&lt;br /&gt;
=대학 판본 비교=&lt;br /&gt;
송대 유학자들이 『禮記』 「大學」을 높이 평가했지만 모두 온전한 글이라고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大學」이 순하게 읽히지 않는 것은 전래되는 과정에서 오류(착간이나 오탈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아마도) 내용을 기준으로 「大學」의 순서를 바로잡거나 글자를 수정하거나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기도 했다. (자세한 수정 사항은 차치하고) 『禮記』 「大學」의 구절을 순서에 따라 ①~⑯으로 구분했을 때, &lt;br /&gt;
*「明道先生改正大學」 : 1-6-7-8, 2-3-4-10-11-12-13, 5-9-14-15-16&lt;br /&gt;
*「伊川先生改正大學」 : 1-2-9-3, 6-7-8, 4-10-11-12-13, 5-15-14-16 &lt;br /&gt;
*『大學章句』 : 1-2-6-7-8-5-9-3, 4-10-11-12-13, 14-15-16&lt;br /&gt;
의 순서로 수정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표와 같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 cellpadding=&amp;quot;5&amp;quot; cellspacing=&amp;quot;0&amp;quot; border=&amp;quot;1&amp;quot; width=&amp;quot;100%&amp;quo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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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ign=&amp;quot;center&amp;quot; | '''『禮記』 「大學」'''&lt;br /&gt;
| align=&amp;quot;center&amp;quot; | '''「明道先生改正大學」'''&lt;br /&gt;
| align=&amp;quot;center&amp;quot; | '''「伊川先生改正大學」'''&lt;br /&gt;
| align=&amp;quot;center&amp;quot; |  '''『大學章句』'''&lt;br /&gt;
|-&lt;br /&gt;
|①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lt;br /&gt;
|①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lt;br /&gt;
|①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amp;lt;當作新&amp;gt;民, 在止於至善. 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lt;br /&gt;
|①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lt;br /&gt;
|-&lt;br /&gt;
|②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物格而後知至, 知至而後意誠, 意誠而後心正, 心正而後身修, 身修而後家齊, 家齊而後國治, 國治而後天下平. 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為本. 其本亂而末治者否矣, 其所厚者薄, 而其所薄者厚, 未之有也! &lt;br /&gt;
|⑥《康誥》曰: 「克明德.」 《大甲》曰: 「顧諟天之明命.」 《帝典》曰: 「克明峻德.」 皆自明也.&lt;br /&gt;
|②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物格而後知至, 知至而後意誠, 意誠而後心正, 心正而後身修, 身修而後家齊, 家齊而後國治, 國治而後天下平. 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為本. 其本亂而末治者否矣, 其所厚者薄, 而其所薄者厚, 未之有也! &lt;br /&gt;
|②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物格而後知至, 知至而後意誠, 意誠而後心正, 心正而後身修, 身修而後家齊, 家齊而後國治, 國治而後天下平. 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為本. 其本亂而末治者否矣, 其所厚者薄, 而其所薄者厚, 未之有也! &lt;br /&gt;
|-&lt;br /&gt;
|③此謂知本, 此謂知之至也. &lt;br /&gt;
|⑦湯之盤銘曰: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康誥》曰: 「作新民.」 《詩》曰: 「周雖舊邦, 其命維新.」 是故君子無所不用其極.&lt;br /&gt;
|⑨子曰: 「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無情者不得盡其辭, 大畏民志. 此謂知本. &lt;br /&gt;
|⑥《康誥》曰: 「克明德.」  《大甲》曰: 「顧諟天之明命.」 《帝典》曰: 「克明峻德.」 皆自明也.&lt;br /&gt;
|-&lt;br /&gt;
|④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謙, 故君子必慎其獨也! 小人閑居為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後厭然, 掩其不善, 而著其善. 人之視己, 如見其肺肝然, 則何益矣! 此謂誠於中, 形於外, 故君子必慎其獨也. 曾子曰: 「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富潤屋, 德潤身, 心廣體胖, 故君子必誠其意. &lt;br /&gt;
|⑧《詩》云: 「邦畿千里, 惟民所止.」 《詩》云: 「緡蠻黃鳥, 止于丘隅.」 子曰: 「於止, 知其所止, 可以人而不如鳥乎？」 《詩》云: 「穆穆文王, 於緝熙敬止!」 為人君, 止於仁; 為人臣, 止於敬; 為人子, 止於孝; 為人父, 止於慈; 與國人交, 止於信. &lt;br /&gt;
|③此謂知本&amp;lt;四字衍&amp;gt;, 此謂知之至也. &lt;br /&gt;
|⑦湯之盤銘曰: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康誥》曰: 「作新民.」 《詩》曰: 「周雖舊邦, 其命維新.」 是故君子無所不用其極.&lt;br /&gt;
|-&lt;br /&gt;
|⑤《詩》云: 「瞻彼淇澳, 菉竹猗猗. 有斐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瑟兮僩兮, 赫兮喧兮. 有斐君子, 終不可諠兮!」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 「瑟兮僩兮」者, 恂慄也; 「赫兮喧兮」者, 威儀也; 「有斐君子, 終不可諠兮」者, 道盛德至善, 民之不能忘也. 《詩》云: 「於戲前王不忘!」 君子賢其賢而親其親, 小人樂其樂而利其利, 此以沒世不忘也. &lt;br /&gt;
|②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物格而後知至, 知至而後意誠, 意誠而後心正, 心正而後身修, 身修而後家齊, 家齊而後國治, 國治而後天下平. 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為本. 其本亂而末治者否矣, 其所厚者薄, 而其所薄者厚, 未之有也! &lt;br /&gt;
|⑥《康誥》曰: 「克明德.」 《大甲》曰: 「顧諟天之明命.」 《帝典》曰: 「克明峻德.」 皆自明也.&lt;br /&gt;
|⑧《詩》云: 「邦畿千里, 惟民所止.」 《詩》云: 「緡蠻黃鳥, 止于丘隅.」 子曰: 「於止, 知其所止, 可以人而不如鳥乎？」 《詩》云: 「穆穆文王, 於緝熙敬止!」 為人君, 止於仁; 為人臣, 止於敬; 為人子, 止於孝; 為人父, 止於慈; 與國人交, 止於信.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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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康誥》曰: 「克明德.」 《太甲》曰: 「顧諟天之明命.」 《帝典》曰: 「克明峻德.」 皆自明也. &lt;br /&gt;
|③此謂知本, 此謂知之至也. &lt;br /&gt;
|⑦湯之盤銘曰: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康誥》曰: 「作新民.」 《詩》曰: 「周雖舊邦, 其命維新.」 是故君子無所不用其極.&lt;br /&gt;
|⑤《詩》云: 「瞻彼淇澳, 菉竹猗猗. 有斐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瑟兮僩兮, 赫兮喧兮. 有斐君子, 終不可諠兮!」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 「瑟兮僩兮」者, 恂慄也; 「赫兮喧兮」者, 威儀也; 「有斐君子, 終不可諠兮」者, 道盛德至善, 民之不能忘也. 《詩》云: 「於戲前王不忘!」 君子賢其賢而親其親, 小人樂其樂而利其利, 此以沒世不忘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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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湯之盤銘曰: 「茍日新, 日日新, 又日新.」 《康誥》曰: 「作新民.」 《詩》曰: 「周雖舊邦, 其命惟新.」 是故君子無所不用其極. &lt;br /&gt;
|④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謙, 故君子必慎其獨也! 小人閑居為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後厭然, 掩其不善, 而著其善. 人之視己, 如見其肺肝然, 則何益矣! 此謂誠於中, 形於外, 故君子必慎其獨也. 曾子曰: 「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富潤屋, 德潤身, 心廣體胖, 故君子必誠其意. &lt;br /&gt;
|⑧《詩》云: 「邦畿千里, 惟民所止.」 《詩》云: 「緡蠻黃鳥, 止于丘隅.」 子曰: 「於止, 知其所止, 可以人而不如鳥乎？」 《詩》云: 「穆穆文王, 於緝熙敬止!」 為人君, 止於仁; 為人臣, 止於敬; 為人子, 止於孝; 為人父, 止於慈; 與國人交, 止於信. &lt;br /&gt;
|⑨子曰: 「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無情者不得盡其辭, 大畏民志. 此謂知本. .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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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詩》云: 「邦畿千里, 惟民所止.」 《詩》云: 「緡蠻黃鳥, 止于丘隅.」 子曰: 「於止, 知其所止, 可以人而不如鳥乎？」 《詩》云: 「穆穆文王, 於緝熙敬止!」 為人君, 止於仁; 為人臣, 止於敬; 為人子, 止於孝; 為人父, 止於慈; 與國人交, 止於信. &lt;br /&gt;
|⑩所謂修身在正其心者: 身有所忿懥, 則不得其正; 有所恐懼, 則不得其正; 有所好樂, 則不得其正; 有所憂患, 則不得其正.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此謂修身在正其心. &lt;br /&gt;
|④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謙, 故君子必愼其獨也. 小人閒居爲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后厭然揜其不善, 而著其善. 人之視已, 如見其肺肝, 然則何益矣?  此謂誠於中, 形於外, 故君子必愼其獨也. 曾子曰: 「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富潤屋, 德潤身, 心廣體胖, 故君子必誠其意.&lt;br /&gt;
|③此謂知本&amp;lt;四字衍&amp;gt;, 此謂知之至也. (閒嘗竊取程子之意以補之曰: 「所謂致知在格物者, 言欲致吾之知, 在即物而窮其理也. 蓋人心之靈莫不有知, 而天下之物莫不有理, 惟於理有未窮, 故其知有不盡也. 是以大學始教, 必使學者即凡天下之物, 莫不因其已知之理而益窮之, 以求至乎其極. 至於用力之久, 而一旦豁然貫通焉, 則眾物之表裏精粗無不到, 而吾心之全體大用無不明矣. 此謂物格, 此謂知之至也.」)&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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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子曰: 「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無情者不得盡其辭, 大畏民志. 此謂知本. &lt;br /&gt;
|⑪所謂齊其家在修其身者: 人之其所親愛而辟焉, 之其所賤惡而辟焉, 之其所畏敬而辟焉, 之其所哀矜而辟焉, 之其所敖惰而辟焉. 故好而知其惡, 惡而知其美者, 天下鮮矣! 故諺有之曰: 「人莫知其子之惡, 莫知其苗之碩.」 此謂身不修不可以齊其家. &lt;br /&gt;
|⑩所謂修身在正其心者: 身&amp;lt;當作心&amp;gt;有所忿懥, 則不得其正; 有所恐懼, 則不得其正; 有所好樂, 則不得其正; 有所憂患, 則不得其正.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此謂修身在正其心. &lt;br /&gt;
|④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謙, 故君子必愼其獨也. 小人閒居爲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后厭然揜其不善, 而著其善. 人之視已, 如見其肺肝, 然則何益矣?  此謂誠於中, 形於外, 故君子必愼其獨也. 曾子曰: 「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富潤屋, 德潤身, 心廣體胖, 故君子必誠其意.&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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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所謂修身在正其心者: 身有所忿懥, 則不得其正; 有所恐懼, 則不得其正; 有所好樂, 則不得其正; 有所憂患, 則不得其正.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此謂修身在正其心. &lt;br /&gt;
|⑫所謂治國必先齊其家者, 其家不可教而能教人者, 無之. 故君子不出家而成教於國: 孝者, 所以事君也; 弟者, 所以事長也; 慈者, 所以使眾也. 《康誥》曰: 「如保赤子」, 心誠求之, 雖不中不遠矣. 未有學養子而後嫁者也! 一家仁, 一國興仁; 一家讓, 一國興讓; 一人貪戾, 一國作亂. 其機如此. 此謂一言僨事, 一人定國. 堯、舜率天下以仁, 而民從之; 桀、紂率天下以暴, 而民從之. 其所令反其所好, 而民不從. 是故君子有諸己而後求諸人, 無諸己而後非諸人. 所藏乎身不恕, 而能喻諸人者, 未之有也. 故治國在齊其家. 《詩》云: 「桃之夭夭, 其葉蓁蓁; 之子于歸, 宜其家人.」 宜其家人, 而後可以教國人. 《詩》云: 「宜兄宜弟.」 宜兄宜弟, 而後可以教國人. 《詩》云: 「其儀不忒, 正是四國.」 其為父子兄弟足法, 而後民法之也. 此謂治國在齊其家. &lt;br /&gt;
|⑪所謂齊其&amp;lt;其字衍&amp;gt;家在脩其身者: 人之其所親愛而辟焉, 之其所賤惡而辟焉, 之其所畏敬而辟焉, 之其所哀矜而辟焉, 之其所敖惰而辟焉; 故好而知其惡, 惡而知其美者, 天下鮮矣; . 故諺有之曰: 「人莫知其子之惡, 莫知其苗之碩.」 此謂身不脩不可以齊其家. &lt;br /&gt;
|⑩所謂修身在正其心者: 身有所忿懥, 則不得其正; 有所恐懼, 則不得其正; 有所好樂, 則不得其正; 有所憂患, 則不得其正.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此謂修身在正其心.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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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⑪所謂齊其家在修其身者: 人之其所親愛而辟焉, 之其所賤惡而辟焉, 之其所畏敬而辟焉, 之其所哀矜而辟焉, 之其所敖惰而辟焉. 故好而知其惡, 惡而知其美者, 天下鮮矣! 故諺有之曰: 「人莫知其子之惡, 莫知其苗之碩.」 此謂身不修不可以齊其家. &lt;br /&gt;
|⑬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 上老老而民興孝, 上長長而民興弟, 上恤孤而民不倍, 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 所惡於上, 毋以使下; 所惡於下, 毋以事上; 所惡於前, 毋以先後; 所惡於後, 毋以從前; 所惡於右, 毋以交於左; 所惡於左, 毋以交於右. 此之謂絜矩之道. 《詩》云: 「樂只君子, 民之父母.」 民之所好好之, 民之所惡惡之, 此之謂民之父母. 《詩》云: 「節彼南山, 維石巖巖. 赫赫師尹, 民具爾瞻.」 有國者不可以不慎, 辟則為天下戮矣.&lt;br /&gt;
|⑫所謂治國必先齊其家者, 其家不可教而能教人者, 無之. 故君子不出家而成教於國: 孝者, 所以事君也; 弟者, 所以事長也; 慈者, 所以使眾也. 《康誥》曰: 「如保赤子」, 心誠求之, 雖不中不遠矣. 未有學養子而後嫁者也! 一家仁, 一國興仁; 一家讓, 一國興讓; 一人貪戾, 一國作亂. 其機如此. 此謂一言僨事, 一人定國. 堯、舜率天下以仁, 而民從之; 桀、紂率天下以暴, 而民從之. 其所令反其所好, 而民不從. 是故君子有諸己而後求諸人, 無諸己而後非諸人. 所藏乎身不恕, 而能喻諸人者, 未之有也. 故治國在齊其家. 《詩》云: 「桃之夭夭, 其葉蓁蓁; 之子于歸, 宜其家人.」 宜其家人, 而後可以教國人. 《詩》云: 「宜兄宜弟.」 宜兄宜弟, 而後可以教國人. 《詩》云: 「其儀不忒, 正是四國.」 其為父子兄弟足法, 而後民法之也. 此謂治國在齊其家. &lt;br /&gt;
|⑪所謂齊其家在修其身者: 人之其所親愛而辟焉, 之其所賤惡而辟焉, 之其所畏敬而辟焉, 之其所哀矜而辟焉, 之其所敖惰而辟焉. 故好而知其惡, 惡而知其美者, 天下鮮矣! 故諺有之曰: 「人莫知其子之惡, 莫知其苗之碩.」 此謂身不修不可以齊其家.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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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⑫所謂治國必先齊其家者, 其家不可教而能教人者, 無之. 故君子不出家而成教於國: 孝者, 所以事君也; 弟者, 所以事長也; 慈者, 所以使眾也. 《康誥》曰: 「如保赤子」, 心誠求之, 雖不中不遠矣. 未有學養子而後嫁者也! 一家仁, 一國興仁; 一家讓, 一國興讓; 一人貪戾, 一國作亂. 其機如此. 此謂一言僨事, 一人定國. 堯、舜率天下以仁, 而民從之; 桀、紂率天下以暴, 而民從之. 其所令反其所好, 而民不從. 是故君子有諸己而後求諸人, 無諸己而後非諸人. 所藏乎身不恕, 而能喻諸人者, 未之有也. 故治國在齊其家. 《詩》云: 「桃之夭夭, 其葉蓁蓁; 之子于歸, 宜其家人.」 宜其家人, 而後可以教國人. 《詩》云: 「宜兄宜弟.」 宜兄宜弟, 而後可以教國人. 《詩》云: 「其儀不忒, 正是四國.」 其為父子兄弟足法, 而後民法之也. 此謂治國在齊其家. &lt;br /&gt;
|⑤《詩》云: 「瞻彼淇澳, 菉竹猗猗. 有斐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瑟兮僩兮, 赫兮喧兮. 有斐君子, 終不可諠兮!」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 「瑟兮僩兮」者, 恂慄也; 「赫兮喧兮」者, 威儀也; 「有斐君子, 終不可諠兮」者, 道盛德至善, 民之不能忘也. 《詩》云: 「於戲前王不忘!」 君子賢其賢而親其親, 小人樂其樂而利其利, 此以沒世不忘也. &lt;br /&gt;
|⑬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 上老老而民興孝, 上長長而民興弟, 上恤孤而民不倍, 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 所惡於上, 毋以使下; 所惡於下, 毋以事上; 所惡於前, 毋以先後; 所惡於後, 毋以從前; 所惡於右, 毋以交於左; 所惡於左, 毋以交於右. 此之謂絜矩之道. 《詩》云: 「樂只君子, 民之父母.」 民之所好好之, 民之所惡惡之, 此之謂民之父母. 《詩》云: 「節彼南山, 維石巖巖. 赫赫師尹, 民具爾瞻.」 有國者不可以不慎, 辟則為天下戮矣.&lt;br /&gt;
|⑫所謂治國必先齊其家者, 其家不可教而能教人者, 無之. 故君子不出家而成教於國: 孝者, 所以事君也; 弟者, 所以事長也; 慈者, 所以使眾也. 《康誥》曰: 「如保赤子」, 心誠求之, 雖不中不遠矣. 未有學養子而後嫁者也! 一家仁, 一國興仁; 一家讓, 一國興讓; 一人貪戾, 一國作亂. 其機如此. 此謂一言僨事, 一人定國. 堯、舜率天下以仁, 而民從之; 桀、紂率天下以暴, 而民從之. 其所令反其所好, 而民不從. 是故君子有諸己而後求諸人, 無諸己而後非諸人. 所藏乎身不恕, 而能喻諸人者, 未之有也. 故治國在齊其家. 《詩》云: 「桃之夭夭, 其葉蓁蓁; 之子于歸, 宜其家人.」 宜其家人, 而後可以教國人. 《詩》云: 「宜兄宜弟.」 宜兄宜弟, 而後可以教國人. 《詩》云: 「其儀不忒, 正是四國.」 其為父子兄弟足法, 而後民法之也. 此謂治國在齊其家.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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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⑬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 上老老而民興孝, 上長長而民興弟, 上恤孤而民不倍, 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 所惡於上, 毋以使下; 所惡於下, 毋以事上; 所惡於前, 毋以先後; 所惡於後, 毋以從前; 所惡於右, 毋以交於左; 所惡於左, 毋以交於右. 此之謂絜矩之道. 《詩》云: 「樂只君子, 民之父母.」 民之所好好之, 民之所惡惡之, 此之謂民之父母. 《詩》云: 「節彼南山, 維石巖巖. 赫赫師尹, 民具爾瞻.」 有國者不可以不慎, 辟則為天下戮矣.&lt;br /&gt;
|⑨子曰: 「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無情者不得盡其辭, 大畏民志. 此謂知本. &lt;br /&gt;
|⑤《詩》云: 「瞻彼淇澳, 菉竹猗猗. 有斐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瑟兮僩兮, 赫兮喧兮. 有斐君子, 終不可諠兮!」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 「瑟兮僩兮」者, 恂慄也; 「赫兮喧兮」者, 威儀也; 「有斐君子, 終不可諠兮」者, 道盛德至善, 民之不能忘也. 《詩》云: 「於戲前王不忘!」 君子賢其賢而親其親, 小人樂其樂而利其利, 此以沒世不忘也. &lt;br /&gt;
|⑬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 上老老而民興孝, 上長長而民興弟, 上恤孤而民不倍, 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 所惡於上, 毋以使下; 所惡於下, 毋以事上; 所惡於前, 毋以先後; 所惡於後, 毋以從前; 所惡於右, 毋以交於左; 所惡於左, 毋以交於右. 此之謂絜矩之道. 《詩》云: 「樂只君子, 民之父母.」 民之所好好之, 民之所惡惡之, 此之謂民之父母. 《詩》云: 「節彼南山, 維石巖巖. 赫赫師尹, 民具爾瞻.」 有國者不可以不慎, 辟則為天下戮矣.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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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⑭《詩》云: 「殷之未喪師, 克配上帝. 儀監于殷, 峻命不易.」 道得眾則得國, 失眾則失國. 是故君子先慎乎德. 有德此有人, 有人此有土, 有土此有財, 有財此有用. 德者本也, 財者末也, 外本內末, 爭民施奪. 是故財聚則民散, 財散則民聚. 是故言悖而出者, 亦悖而入; 貨悖而入者, 亦悖而出. &lt;br /&gt;
|⑭《詩》云: 「殷之未喪師, 克配上帝. 儀監于殷, 峻命不易.」 道得眾則得國, 失眾則失國. 是故君子先慎乎德. 有德此有人, 有人此有土, 有土此有財, 有財此有用. 德者本也, 財者末也, 外本內末, 爭民施奪. 是故財聚則民散, 財散則民聚. 是故言悖而出者, 亦悖而入; 貨悖而入者, 亦悖而出. &lt;br /&gt;
|⑮《康誥》曰: 「惟命不于常!」 道善則得之, 不善則失之矣. 《楚書》曰: 「楚國無以為寶, 惟善以為寶.」 舅犯曰: 「亡人無以為寶, 仁親以為寶.」 《秦誓》曰: 「若有一个臣, 斷斷兮無他技, 其心休休焉, 其如有容焉. 人之有技, 若己有之; 人之彥聖, 其心好之, 不啻若自其口出. 實能容之, 以能保我子孫黎民, 尚亦有利哉! 人之有技, 媢嫉以惡之; 人之彥聖, 而違之俾不通. 實不能容, 以不能保我子孫黎民, 亦曰殆哉!」 唯仁人放流之, 迸諸四夷, 不與同中國, 此謂唯仁人為能愛人, 能惡人. 見賢而不能舉, 舉而不能先, 命也&amp;lt;作怠之誤也.&amp;gt;; 見不善而不能退, 退而不能遠, 過也. 好人之所惡, 惡人之所好, 是謂拂人之性, 災必逮夫身. 是故君子有大道, 必忠信以得之, 驕泰以失之. &lt;br /&gt;
|⑭《詩》云: 「殷之未喪師, 克配上帝. 儀監于殷, 峻命不易.」 道得眾則得國, 失眾則失國. 是故君子先慎乎德. 有德此有人, 有人此有土, 有土此有財, 有財此有用. 德者本也, 財者末也, 外本內末, 爭民施奪. 是故財聚則民散, 財散則民聚. 是故言悖而出者, 亦悖而入; 貨悖而入者, 亦悖而出.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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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⑮《康誥》曰: 「惟命不于常!」 道善則得之, 不善則失之矣. 《楚書》曰: 「楚國無以為寶, 惟善以為寶.」 舅犯曰: 「亡人無以為寶, 仁親以為寶.」 《秦誓》曰: 「若有一个臣, 斷斷兮無他技, 其心休休焉, 其如有容焉. 人之有技, 若己有之; 人之彥聖, 其心好之, 不啻若自其口出. 實能容之, 以能保我子孫黎民, 尚亦有利哉! 人之有技, 媢嫉以惡之; 人之彥聖, 而違之俾不通. 實不能容, 以不能保我子孫黎民, 亦曰殆哉!」 唯仁人放流之, 迸諸四夷, 不與同中國, 此謂唯仁人為能愛人, 能惡人. 見賢而不能舉, 舉而不能先, 命也; 見不善而不能退, 退而不能遠, 過也. 好人之所惡, 惡人之所好, 是謂拂人之性, 災必逮夫身. 是故君子有大道, 必忠信以得之, 驕泰以失之. &lt;br /&gt;
|⑮《康誥》曰: 「惟命不于常!」 道善則得之, 不善則失之矣. 《楚書》曰: 「楚國無以為寶, 惟善以為寶.」 舅犯曰: 「亡人無以為寶, 仁親以為寶.」 《秦誓》曰: 「若有一个臣, 斷斷兮無他技, 其心休休焉, 其如有容焉. 人之有技, 若己有之; 人之彥聖, 其心好之, 不啻若自其口出. 實能容之, 以能保我子孫黎民, 尚亦有利哉! 人之有技, 媢嫉以惡之; 人之彥聖, 而違之俾不通. 實不能容, 以不能保我子孫黎民, 亦曰殆哉!」 唯仁人放流之, 迸諸四夷, 不與同中國, 此謂唯仁人為能愛人, 能惡人. 見賢而不能舉, 舉而不能先, 命也; 見不善而不能退, 退而不能遠, 過也. 好人之所惡, 惡人之所好, 是謂拂人之性, 災必逮夫身. 是故君子有大道, 必忠信以得之, 驕泰以失之. &lt;br /&gt;
|⑭《詩》云: 「殷之未喪師, 克配上帝. 儀監于殷, 峻命不易.」 道得眾則得國, 失眾則失國. 是故君子先慎乎德. 有德此有人, 有人此有土, 有土此有財, 有財此有用. 德者本也, 財者末也, 外本內末, 爭民施奪. 是故財聚則民散, 財散則民聚. 是故言悖而出者, 亦悖而入; 貨悖而入者, 亦悖而出. &lt;br /&gt;
|⑮《康誥》曰: 「惟命不于常!」 道善則得之, 不善則失之矣. 《楚書》曰: 「楚國無以為寶, 惟善以為寶.」 舅犯曰: 「亡人無以為寶, 仁親以為寶.」 《秦誓》曰: 「若有一个臣, 斷斷兮無他技, 其心休休焉, 其如有容焉. 人之有技, 若己有之; 人之彥聖, 其心好之, 不啻若自其口出. 實能容之, 以能保我子孫黎民, 尚亦有利哉! 人之有技, 媢嫉以惡之; 人之彥聖, 而違之俾不通. 實不能容, 以不能保我子孫黎民, 亦曰殆哉!」 唯仁人放流之, 迸諸四夷, 不與同中國, 此謂唯仁人為能愛人, 能惡人. 見賢而不能舉, 舉而不能先, 命也; 見不善而不能退, 退而不能遠, 過也. 好人之所惡, 惡人之所好, 是謂拂人之性, 災必逮夫身. 是故君子有大道, 必忠信以得之, 驕泰以失之.&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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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⑯生財有大道. 生之者眾, 食之者寡, 為之者疾, 用之者舒, 則財恒足矣. 仁者以財發身, 不仁者以身發財. 未有上好仁而下不好義者也, 未有好義其事不終者也, 未有府庫財非其財者也. 孟獻子曰: 「畜馬乘, 不察於雞豚; 伐冰之家, 不畜牛羊; 百乘之家, 不畜聚斂之臣. 與其有聚斂之臣, 寧有盜臣.」此謂國不以利為利, 以義為利也. 長國家而務財用者, 必自小人矣. 彼為善之, 小人之使為國家, 災害并至. 雖有善者, 亦無如之何矣! 此謂國不以利為利, 以義為利也. &lt;br /&gt;
|⑯生財有大道. 生之者眾, 食之者寡, 為之者疾, 用之者舒, 則財恒足矣. 仁者以財發身, 不仁者以身發財. 未有上好仁而下不好義者也, 未有好義其事不終者也, 未有府庫財非其財者也. 孟獻子曰: 「畜馬乘, 不察於雞豚; 伐冰之家, 不畜牛羊; 百乘之家, 不畜聚斂之臣. 與其有聚斂之臣, 寧有盜臣.」此謂國不以利為利, 以義為利也. 長國家而務財用者, 必自小人矣. 彼為善之, 小人之使為國家, 災害并至. 雖有善者, 亦無如之何矣! 此謂國不以利為利, 以義為利也. &lt;br /&gt;
|⑯生財有大道. 生之者眾, 食之者寡, 為之者疾, 用之者舒, 則財恒足矣. 仁者以財發身, 不仁者以身發財. 未有上好仁而下不好義者也, 未有好義其事不終者也, 未有府庫財非其財者也. 孟獻子曰: 「畜馬乘, 不察於雞豚; 伐冰之家, 不畜牛羊; 百乘之家, 不畜聚斂之臣. 與其有聚斂之臣, 寧有盜臣.」此謂國不以利為利, 以義為利也. 長國家而務財用者, 必自小人矣. 彼為善之, 小人之使為國家, 災害并至. 雖有善者, 亦無如之何矣! 此謂國不以利為利, 以義為利也. &amp;lt;一本云彼爲不善之小人使之爲國家&amp;gt;&lt;br /&gt;
|⑯生財有大道. 生之者眾, 食之者寡, 為之者疾, 用之者舒, 則財恒足矣. 仁者以財發身, 不仁者以身發財. 未有上好仁而下不好義者也, 未有好義其事不終者也, 未有府庫財非其財者也. &lt;br /&gt;
孟獻子曰: 「畜馬乘, 不察於雞豚; 伐冰之家, 不畜牛羊; 百乘之家, 不畜聚斂之臣. 與其有聚斂之臣, 寧有盜臣.」此謂國不以利為利, 以義為利也. 長國家而務財用者, 必自小人矣. 彼為善之, 小人之使為國家, 災害并至. 雖有善者, 亦無如之何矣! 此謂國不以利為利, 以義為利也. &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Wooya0902</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C%9D%B4%EC%A0%95%EC%88%98%EC%96%B8</id>
		<title>이정수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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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12-05T14:02:2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Wooya0902: /* 論道篇 */&lt;/p&gt;
&lt;hr /&gt;
&lt;div&gt;=해제=&lt;br /&gt;
이 페이지는 고려대 철학과 대학원 동양철학전공 원전 강독 세미나([[의적단]])의 일환으로 작성되었다.&lt;br /&gt;
기존에 온라인에서 『[[이정집]]』에 접근·활용하기가 쉽지 않아 위키 사이트를 활용하려고 한다.&lt;br /&gt;
&lt;br /&gt;
=원문=&lt;br /&gt;
『수언』1-1 子曰: 道外無物, 物外無道. 在父子則親, 在君臣則敬. 有適有莫於道, 已為有間, 又況夫毀髮而棄人倫者乎?&lt;br /&gt;
&lt;br /&gt;
『수언』1-2 子曰: 立言所以明道也. 言之, 而知德者厭之, 不知德者惑之, 何也? 由涉道不深, 素無涵蓄爾. &lt;br /&gt;
&lt;br /&gt;
『수언』1-3 子曰: 傳道為難, 續之亦不易. 有一字之差, 則失其本旨矣. &lt;br /&gt;
&lt;br /&gt;
『수언』1-4 或謂惟太虛為虛. 子曰: 無非理也. 惟理為實. 或曰: 莫大於太虛. 曰: 有形則有小大, 太虛何小大之可言？&lt;br /&gt;
&lt;br /&gt;
『수언』1-5 子曰: 有者不可謂之無. 猶人知識聞見, 數十年之後, 一旦念之, 昭昭然於心, 謂之無者非也, 謂之有者, 果安在哉？&lt;br /&gt;
&lt;br /&gt;
『수언』1-6或問: &amp;quot;誠者, 專意之謂乎?&amp;quot; 子曰: &amp;quot;誠者實理也, 專意何足以盡之?&amp;quot; 呂大臨曰: &amp;quot;信哉! 實有是理, 故實有是物；實有是物, 故實有是用；實有是用, 故實有是心；實有是心, 故實有是事. 故曰: 誠者, 實理也.&amp;quot;&lt;br /&gt;
&lt;br /&gt;
『수언』1-7 或問: “介甫有言, 盡人道謂之仁；盡天道謂之聖.” 子曰: “言乎一事, 必分為二, 介甫之學也. 道一也. 未有盡人而不盡天者也. 以天人為二, 非道也. 子雲謂通天地而不通人曰伎, 亦猶是也. 或曰: 乾, 天道也；坤, 地道也. 論其體則天尊地卑, 其道則無二也. 豈有通天地而不通人？如止云通天文地理, 雖不能之, 何害為儒？”&lt;br /&gt;
&lt;br /&gt;
『수언』1-8 子曰: 上天之載, 無聲無臭之可聞. 其體則謂之易, 其理則謂之道, 其命在人則謂之性, 其用無窮則謂之神. 一而已矣. &lt;br /&gt;
&lt;br /&gt;
『수언』1-9 子曰: 陰之道, 非小人也. 其害陽, 則小人也; 其助陽成物, 則君子也. 利非不善也, 其害義則不善也, 其和義則非不善也. &lt;br /&gt;
&lt;br /&gt;
『수언』1-10 子曰: 誠則無不敬. 未至於誠, 則敬然後誠. &lt;br /&gt;
&lt;br /&gt;
『수언』1-11 子曰: 誠無不動者, 修身則身正, 治事則事理, 臨人則人化, 無往而不得志之正也. &lt;br /&gt;
&lt;br /&gt;
『수언』1-12 或問: “子所定昏禮, 有婿往謝之儀, 何謂也?” 子曰: “是時也. 以今視古, 氣之淳漓不同矣. 今人之壽夭貌象, 與古亦異, 而冕服俎豆未必可稱也. 聖人之主化, 猶禹之治水耳, 順之而不逆, 宜遵之而不違. 隨時之義, 亦因有此焉.”&lt;br /&gt;
&lt;br /&gt;
『수언』1-13 子曰: “天下之害, 皆以遠本而末勝也. 峻宇雕墻, 本於宮室; 酒池肉林本於飮食; 淫酷殘忍本於刑罰; 窮兵黷武本於征伐. 先王制其本者, 天理也. 後王流於末者, 人欲也. 損人欲以復天理, 聖人之敎也.” 或曰: “然則未可盡去乎?” 曰: “本末一道也. 父子主恩, 必有嚴順之禮; 君臣主敬, 必有承接之儀. 禮遜有節, 非威儀則不行, 尊卑有序, 非物采則無別. 文之與質相須, 而不可缺也. 及夫末勝而本喪, 則寧遠浮華而質樸之為貴爾.”&lt;br /&gt;
&lt;br /&gt;
『수언』1-14 子曰: 純於敬, 則己與理一, 無可克者, 無可復者.&lt;br /&gt;
&lt;br /&gt;
『수언』1-15 子曰: 質必有文, 自然之理也. 理必有對, 生生之本也. 有上則有下; 有此則有彼; 有質則有文. 一不獨立, 二必為文. 非知道者, 孰能識之.&lt;br /&gt;
&lt;br /&gt;
『수언』1-16 子曰: 佛者之學, 若有止則有用.&lt;br /&gt;
&lt;br /&gt;
『수언』1-17 子曰: 觀生理可以知道.&lt;br /&gt;
&lt;br /&gt;
『수언』1-18 子曰: 至誠感通之道, 惟知道者識之.&lt;br /&gt;
&lt;br /&gt;
『수언』1-19 子曰: 仁道難名, 惟公近之, 非指公為仁也. &lt;br /&gt;
&lt;br /&gt;
『수언』1-20 子曰: “聖人以生死為常事, 無可懼者. 佛者之學, 本於畏死, 故言之不已. 下愚之人, 故易以其說自恐. 至於學禪, 雖異於是, 然終歸於此, 蓋皆利心也.” 或曰: “本以利心得之耶? 抑以利心求之而有失也?” 子曰: “本以利心得之, 故學者亦以利心失之也. 莊生所謂無常化者, 亦若是爾.”&lt;br /&gt;
&lt;br /&gt;
『수언』1-21 韓侍郞曰: “道無眞假.” 子曰: “既無眞則是假爾, 既無假則是眞矣. 眞假皆無, 尙何有哉? 必曰是者為眞, 非者為假, 不亦顯然而易明乎?”&lt;br /&gt;
&lt;br /&gt;
『수언』1-22 子謂門人曰於佛氏之說不必窮也苟欲窮之而未能窮則已與之俱化矣曰然則何以能不疑曰曷不以其迹考之其迹如是其心何如哉豈可取其迹而不求其心探其心而不考其迹也心迹猶形影無可判之理王仲淹之言非也助佛氏之說者必曰不當以其迹觀之吾不信也 &lt;br /&gt;
&lt;br /&gt;
『수언』1-23 子曰: 義利云者, 公與私之異也. 較計之心一萌, 斯為利矣.&lt;br /&gt;
 &lt;br /&gt;
『수언』1-24 子曰: 便儇佼厲之人, 去道遠而.&lt;br /&gt;
&lt;br /&gt;
『수언』1-25 子曰: “公者仁之理, 恕者仁之施, 愛者仁之用.” 子厚曰: “誠一物也.”&lt;br /&gt;
&lt;br /&gt;
『수언』1-26 子曰: 苟非至誠, 雖建功立業, 亦出於事為浮氣其能久乎.”&lt;br /&gt;
&lt;br /&gt;
『수언』1-27 或問: “學者多流於釋氏之說, 何也?” 子曰: “不致知也. 知之既至, 孰得而移之? 知玉之為寶, 則人不能以石亂之矣. 知醴之為甘, 則人不能以蘖亂之矣. 知聖人之為大中至正, 則釋氏不能以說惑之矣.”&lt;br /&gt;
 &lt;br /&gt;
『수언』1-28 或謂: “佛氏所謂定, 豈聖人所謂止乎?” 子曰: “定則忘物而無所為也. 止則物自付物, 各得其所, 而我無與也.”&lt;br /&gt;
 &lt;br /&gt;
『수언』1-29 子曰: 天地不相遇, 則萬物不生; 君臣不相遇, 則政治不興; 聖賢不相遇, 則道德不亨; 事物不相遇, 則功用不成. 遇之道大矣哉!&lt;br /&gt;
&lt;br /&gt;
『수언』1-30 子曰: 至公無私, 大同無我, 雖眇然一身, 在天地之間, 而與天地無以異也. 夫何疑焉? 佛者厭苦塵根, 是則自利而已.&lt;br /&gt;
&lt;br /&gt;
『수언』1-31 子曰: 能明善, 斯可謂明也; 已能守善, 斯可謂誠也已.”&lt;br /&gt;
&lt;br /&gt;
『수언』1-32 或問: “孝弟為仁之本與?” 子曰: “行仁自孝弟始, 孝弟仁之事也. 仁, 性也; 孝弟, 用也. 謂孝弟為行仁之本則可, 直曰仁之本則不可.”&lt;br /&gt;
 &lt;br /&gt;
『수언』1-33 或問: “仁與聖何以異?” 子曰: “仁可以通上下而言, 聖名其極也. 有人於此, 一言一行仁矣, 亦可謂之仁, 而不可謂之聖. 至於盡人道者, 必謂之聖, 而亦可謂之仁.”&lt;br /&gt;
&lt;br /&gt;
『수언』1-34 子曰: 仁者, 天下之正理. 失正理, 則無序而不和.&lt;br /&gt;
&lt;br /&gt;
『수언』1-35 或問敬. 子曰: “主一之謂敬.” “何謂一?” 子曰: “無適之謂一.” “何以能見一而主之?” 子曰: “齊莊整敕, 其心存焉, 涵養純熟, 其理著矣.”&lt;br /&gt;
 &lt;br /&gt;
『수언』1-36 子曰: 忠恕猶曰中庸, 不可偏舉.&lt;br /&gt;
&lt;br /&gt;
『수언』1-37 子曰: 至誠事親, 則成人子; 至誠事君, 則成人臣. 無不誠者, 故曰誠者自成也.&lt;br /&gt;
 &lt;br /&gt;
『수언』1-38 或問: “中庸可擇乎?” 子曰: “既博學之, 又審問之, 又謹思之, 又明辨之, 所以識中庸之理而不差忒, 奚為而不擇?”&lt;br /&gt;
&lt;br /&gt;
『수언』1-39 子曰: 存道者, 心無老少之異; 行道者, 身老則衰. 故孔子曰: ‘吾衰也久矣.’&lt;br /&gt;
 &lt;br /&gt;
『수언』1-40 子曰: 仁者必愛, 指愛為仁則不可. 不仁者無所知覺, 指知覺為仁則不可.&lt;br /&gt;
&lt;br /&gt;
『수언』1-41 子曰: 可欲莫如善, 以有諸巳為貴. 若存若忘焉, 而不為物所誘, 俗所移者, 吾未之見也.&lt;br /&gt;
 &lt;br /&gt;
『수언』1-42 子曰: 敬以直內, 義以方外, 仁也. 不可曰以敬直內, 以義方外. 謂之敬義者, 猶曰行仁義云耳, 何直之有? 所謂直也者, 必有事而勿正是也. 敬以直內, 義以方外, 與物同矣, 故曰敬義立而德不孤, 推而放諸四海而準.&lt;br /&gt;
&lt;br /&gt;
『수언』1-43 子曰: 守道當確然而不變. 得正則遠邪, 就非則違是, 無兩從之理.&lt;br /&gt;
&lt;br /&gt;
『수언』1-44 子謂學者曰: “夫道恢然而廣大, 淵然而深奧, 於何所用其力乎? 惟立誠然後有可居之地. 無忠信, 則無物.”&lt;br /&gt;
&lt;br /&gt;
『수언』1-45 子曰: 理素定, 則能見幾而作. 不明於理, 何幾之能見?&lt;br /&gt;
&lt;br /&gt;
『수언』1-46 或問: “四端不言信, 何也?” 子曰: “有不信, 故言有信. 譬之四方, 其位已定, 何不信之有? 若以東為西, 以南為北, 斯不信矣. 是故四端不言信.”&lt;br /&gt;
&lt;br /&gt;
『수언』1-47 劉安節問: “仁與心何異?” 子曰: “於所主曰心, 名其德曰仁.” 曰: “謂仁者心之用乎?” 子曰: “不可.” 曰: “然則猶五穀之種, 待陽氣而生乎?” 子曰: “陽氣所發, 猶之情也. 心猶種焉. 其生之德, 是為仁也.” &lt;br /&gt;
&lt;br /&gt;
『수언』1-48 子曰: 敬則無間斷, 文王之純如此.&lt;br /&gt;
&lt;br /&gt;
『수언』1-49 子曰: 禮者人之規範, 守禮所以立身也. 安禮而和樂, 斯為盛德矣.&lt;br /&gt;
 &lt;br /&gt;
『수언』1-50 子曰: 無道而得富貴, 其為可恥, 人皆知之, 而不處焉, 惟特立者能之.&lt;br /&gt;
&lt;br /&gt;
『수언』1-51 子曰: 子厚以淸虛一大名天道, 是以器言, 非形而上者.&lt;br /&gt;
&lt;br /&gt;
『수언』1-52 子曰: 今之語道者, 語高則遺卑, 語本則遺末. 孟子之書, 雖所記不主一端, 然無精麤之分, 通貫言之, 蔑不盡者.&lt;br /&gt;
&lt;br /&gt;
『수언』1-53 子曰: “凡志於求道者, 可謂誠心矣. 欲速助長而不中理, 反不誠矣. 故求道而有迫切之心, 雖得之, 必失之. 觀天地之化, 一息不留, 疑於速也, 然寒暑之變極微, 曷嘗遽哉?”&lt;br /&gt;
&lt;br /&gt;
『수언』1-54 子曰: 語黙猶晝夜爾, 死生猶古今爾.&lt;br /&gt;
&lt;br /&gt;
『수언』1-55 子曰: 仁則一, 不仁則二.&lt;br /&gt;
&lt;br /&gt;
『수언』1-56 子曰: 一德立, 而百善從之.&lt;br /&gt;
&lt;br /&gt;
『수언』1-57 子曰: 無一亦無三, 故曰: ‘三人行, 則損一人, 一人行, 則得其友.’ 是二而已.&lt;br /&gt;
&lt;br /&gt;
『수언』1-58 子曰: 天以生為道.&lt;br /&gt;
&lt;br /&gt;
『수언』1-59 或問: “理義何以異?” 子曰: “在物為理, 處物為義.”&lt;br /&gt;
&lt;br /&gt;
『수언』1-60 子曰: 形而上者, 存於洒掃應對之間, 理無小大故也.&lt;br /&gt;
&lt;br /&gt;
『수언』1-61 子曰: 理有盛衰, 有消長, 有盈益, 有虛損. 順之則吉, 逆之則凶, 君子隨時所尙, 所以事天也.&lt;br /&gt;
&lt;br /&gt;
『수언』1-62 子曰: 理善莫過於中, 中則無不正者, 而正未必得中也. &lt;br /&gt;
&lt;br /&gt;
『수언』1-63 或問仁. 子曰: 聖賢言仁多矣. 會觀而體認之, 其必有見矣. 韓文公曰: ‘博愛之謂仁.’ 愛, 情也; 仁, 性也. 仁者固博愛, 以博愛為盡仁, 則不可.&lt;br /&gt;
&lt;br /&gt;
『수언』1-64 或問: “何謂忠, 何謂恕?” 子曰: “‘維天之命, 於穆不已.’ 忠也. ‘天地變化, 草木蕃.’ 恕也.”&lt;br /&gt;
 &lt;br /&gt;
『수언』1-65 子曰: 不偏之謂中. 一物之不該, 一事之不為, 一息之不存, 非中也, 以中無偏故也. 此道也, 常而不可易, 故既曰中, 又曰庸也.&lt;br /&gt;
&lt;br /&gt;
『수언』1-66 或問: “商丘開之事, 信乎?” 子曰: “大道不明於天下, 莊·列之徒, 窺測而言之者也.”&lt;br /&gt;
 &lt;br /&gt;
『수언』1-67 或曰: “蹈水火白刃而無傷, 巫師亦或能之, 豈在誠乎?” 子曰: “彼以邪心詭道為之, 常懷欺人之意, 何誠之有?” 曰: “然則其能者, 何也?” 子曰: “西方有幻術焉, 凡其所謂變化神通以駭衆人之耳目者, 皆幻也. 巫師所能, 迺其餘緖耳.”&lt;br /&gt;
 &lt;br /&gt;
『수언』1-68 子曰: 異端之說, 雖小道, 必有可觀也, 然其流必害, 故不可以一言之中一事之善而兼取其大體也. 夫楊墨亦是堯舜而非桀紂, 其是非豈不當乎? 其所以是非之意, 蓋竊吾之似, 欲成其說耳.&lt;br /&gt;
&lt;br /&gt;
『수언』1-69 子曰: 介甫之言道, 以文焉耳矣. 言道如此, 己則不能然, 是已與道二也. 夫有道者, 不矜於文學之門, 啟口容聲, 皆至德也.&lt;br /&gt;
&lt;br /&gt;
『수언』1-70 子曰: 世之學者, 未嘗知權之義, 於理所不可, 則曰姑從權, 是以權為變詐之術而已也. 夫臨事之際, 稱輕重而處之以合於義, 是之謂權. 豈拂經之道哉!&lt;br /&gt;
 &lt;br /&gt;
『수언』1-71 或問: “信在四端, 猶土王四季乎?” 子曰: “信無在無不在, 在易則至理也, 在孟子則配道義之氣也.” &lt;br /&gt;
&lt;br /&gt;
『수언』1-72 或問: “夫子曰: 有已發之中, 有未發之中, 中有二耶?” 子曰: “非也. 發而中節亦是中也. 對中而言之, 則謂之和可也, 以其發故也.”&lt;br /&gt;
 &lt;br /&gt;
『수언』1-73 子謂子厚曰: “道者天下之公也, 而學者欲立私說, 何也?” 子厚曰: “心不廣也.” 子曰: “彼亦是美事, 好而為之, 不知迺所當為, 强私之也.” &lt;br /&gt;
&lt;br /&gt;
『수언』1-74 子曰: 因人情而節文之者, 禮也; 行之而人情宜之者, 義也.&lt;br /&gt;
&lt;br /&gt;
『수언』1-75 或問: “喜怒哀樂未發之時, 耳無所聞目無所見乎?” 曰: “雖無聞見, 而聞見之理自存. 汝於靜也, 何如?” 對曰: “謂之有物則不可, 然昭昭乎有所知覺也.” 子曰: “有是覺, 則是動矣.” 曰: “夫子於喜怒哀樂之未發也, 謂靜而已乎?” 子曰: “汝必從事於敬以直內, 則知而得之矣.” 曰: “何以未發言中?” 子曰: “敬而無失, 所以中也. 凡事事物物, 皆有自然之中, 若俟人為布置, 則不中矣.” &lt;br /&gt;
&lt;br /&gt;
『수언』1-76 子曰: 或言方有內外, 是有間矣. 道無間, 方無內外.&lt;br /&gt;
&lt;br /&gt;
『수언』1-77 或問: “何謂時中?” 子曰: “猶之過門不入, 在禹·稷之世為中也, 時而居陋巷, 則過門不入非中矣. 居於陋巷, 在顔子之時為中也, 時而當過門不入, 則居於陋巷非中矣. 盖以事言之, 有時而中; 以道言之, 何時而不中也?”&lt;br /&gt;
 &lt;br /&gt;
『수언』1-78 或問: “外物宜惡諸?” 子曰:“ 於道而無所見, 則累與惡皆不得免焉, 盖亦原其當有當無爾. 當有也, 何惡之有? 當無也, 何絶之有?”&lt;br /&gt;
&lt;br /&gt;
『수언』1-79 子曰: 禮也, 理者, 文也. 理者, 實也, 本也. 文者, 華也, 末也. 理文若二, 而道一也. 文過則奢, 實過則儉. 奢自文至, 儉自實生, 形影之類也.&lt;br /&gt;
 &lt;br /&gt;
『수언』1-80 子曰: “昔聖人謂‘立人之道曰仁與義.’ ‘仁者人也, 親親為大.’ 唯能親親, 故自吾老幼以及人之老幼. ‘義者宜也. 尊賢為大.” 唯能尊賢, 故賢者在位, 能者在職. 仁義, 盡人之道矣.&lt;br /&gt;
&lt;br /&gt;
『수언』1-81 子曰: 視聽言動一於禮, 謂之仁.&lt;br /&gt;
&lt;br /&gt;
『수언』1-82 子曰: 信不足以盡誠, 猶愛不足以盡仁也.&lt;br /&gt;
&lt;br /&gt;
『수언』1-83 子曰: 晝夜者, 死生之道也. 知生之道則知死矣; 盡人之道則能事鬼矣. 死生人鬼一而二, 二而一者也.&lt;br /&gt;
 &lt;br /&gt;
『수언』1-84 子曰: 仕止久速, 惟其可, 不執於一, 故曰: ‘君子而時中也.’ 喜怒哀樂之未發, 寂然不動, 故曰: ‘天下之大本也.’&lt;br /&gt;
 &lt;br /&gt;
『수언』1-85 子曰: 能盡飮食言語之道, 則能盡出處去就之道矣. 能盡出處去就之道, 則能盡死生之道矣. 其致一也.&lt;br /&gt;
 &lt;br /&gt;
『수언』1-86 子曰: 有形皆器也. 無形惟道.&lt;br /&gt;
&lt;br /&gt;
『수언』1-87 子曰: 凡執守不定者, 皆不仁也.&lt;br /&gt;
 &lt;br /&gt;
『수언』1-88 子曰: 釋氏言定, 異乎聖人之言止. 夫於有美惡因而美惡之, 美惡在物, 我無心焉. 苟曰吾之定, 不預於物, 然物未嘗忘也. 聖人曰止, 隨其所止而止之, 止其所也.&lt;br /&gt;
&lt;br /&gt;
『수언』1-89 子曰: 中無定方, 故不可執一. 今以四方之中為中, 則一方無中乎? 以中外之中為中, 則當外無中乎? 故自室而觀之, 有室之中, 而自堂觀之, 則室非中矣. 自堂而觀之, 有堂之中, 而自庭觀之, 則堂非中矣.&lt;br /&gt;
&lt;br /&gt;
『수언』1-90 子曰: “集義生氣. 方其未養也, 氣自氣爾. 惟集義以生, 則氣與義合, 無非道也. 合非所以言氣, 自其未養言之也.”&lt;br /&gt;
&lt;br /&gt;
『수언』1-91 或問: “集義必於行事, 非行事則無所集矣.” 子曰: “內外一事, 豈獨事欲合義也.”&lt;br /&gt;
&lt;br /&gt;
『수언』1-92 又問: “敬以直內, 其能不用意乎?” 子曰: “其始, 安得不用意也? 久而成焉, 意忘矣.” 又問: “必有事焉者, 其惟敬而已乎?” 子曰: “敬以涵養也, 集義然後為有事也. 知敬而不知集義, 不幾於兀然無所為者乎?”&lt;br /&gt;
&lt;br /&gt;
『수언』1-93 子曰: 佛氏之道, 一務上達而無下學, 本末間斷, 非道也.&lt;br /&gt;
&lt;br /&gt;
『수언』1-94 子曰: 楊墨之害, 甚於申·韓, 佛氏之害, 甚於楊墨.&lt;br /&gt;
&lt;br /&gt;
『수언』1-95 子曰: 《論語》所載, 其猶權衡尺度歟! 能以是揆事物者, 長短輕重較然自見矣.&lt;br /&gt;
&lt;br /&gt;
『수언』1-96 子曰: 敬則虛靜, 而虛靜非敬也.&lt;br /&gt;
&lt;br /&gt;
『수언』1-97 子曰: 一不敬, 則私欲萬端生焉. 害人, 此為大.&lt;br /&gt;
&lt;br /&gt;
『수언』1-98 子曰: 仁者以天地萬物為一體, 莫非我也. 知其皆我, 何所不盡! 不能有諸已, 則其與天地萬物, 豈特相去千萬而已哉?&lt;br /&gt;
&lt;br /&gt;
『수언』1-99 子曰: 仁孝之理, 備於西銘之言. 學者斯須不在是, 卽與仁孝遠矣.&lt;br /&gt;
&lt;br /&gt;
『수언』1-100 子曰: 無不敬者, 對越上帝之道也. &lt;br /&gt;
&lt;br /&gt;
『수언』1-101 子曰: 順理則無憂.&lt;br /&gt;
&lt;br /&gt;
『수언』1-102 子曰: 老子語道德而雜權詐, 本末舛矣. 申·韓·蘇·張皆其流之弊也. 申·韓原道德之意而為刑名, 後世猶或師之. 蘇·張得權詐之說而為縱橫, 其失益遠矣. 今是以無傳焉. &lt;br /&gt;
&lt;br /&gt;
『수언』1-103 或問: “釋氏有事事無礙, 譬如鏡燈, 包含萬象, 無有窮盡也. 此理有諸?” 子曰: “佛氏善侈大其說也. 今一言以蔽之曰, 萬物一理耳. 夫百氏諸子, 未有不善道德仁義者, 考其歸宿, 則異乎聖人也. 佛氏其辭皆善遁. 今卽其言而究之, 則必曰吾不為是也. 夫已出諸其口, 載之於書矣. 遁將何之?”&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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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1-104 子曰: 佛之所謂世網者, 聖人所謂秉彝也. 盡去其秉彝, 然後為道, 佛之所謂至敎也, 而秉彝終不可得而去也. 耳聞目見, 飮食男女之欲, 喜怒哀樂之變, 皆其性之自然. 今其言曰:  ‘必盡絶是, 然後得天眞.’ 吾多見其喪天眞矣. 學者戒之謹之, 至於自信, 然後彼不能亂矣.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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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1-105 或問: “愛何以非仁?” 子曰: “愛出于情, 仁則性也. 仁者無偏照, 是必愛之.”&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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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1-106 子曰: 謙者, 治益之道.&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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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1-107 子曰: 離陰陽, 則無道. 陰陽, 氣也, 形而下也. 道, 太虛也, 形而上也.&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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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1-108 子曰: 道無體, 而義有方.&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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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1-109 或問: “釋氏有言下覺, 何如?” 子曰: “何必浮屠氏, 孟子言之矣. ‘以先知覺後知, 以先覺覺後覺.’ 知者知此事也. 覺者, 覺此理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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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1-110 或問: “變與化何別? 王氏謂因形移易謂之變, 離形頓革謂之化, 疑其說之善也.” 子曰: “非也. 變, 未離其體也. 化, 則舊迹盡亡, 自然而已矣. 故曰: ‘動則變, 變則化, 惟天下至誠為能化.’”&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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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1-111 子曰: 盡已無歉為忠, 體物無違為信, 表裏之義也.&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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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1-112 子曰: 動靜無端, 陰陽無始, 非知道者, 孰能識之?&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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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1-113 子曰: 莫大於道, 莫妙於神, 至大至妙, 宜若難言也. 聖人語之, 猶常事爾, 使學者玩而索之, 故其味長. 釋氏之言, 夸張閎侈, 將以駭人耳目而動其心, 意已盡而言未已, 故其味短.&lt;br /&gt;
&lt;br /&gt;
『수언』1-114 子曰: 聖人公心. 盡天地萬物之理, 各當其分, 故其道平直而易行. 佛氏厭苦棄捨造作費力, 皆非自然, 故失之遠.&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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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1-115 子曰: 佛氏求道, 猶以管窺天. 惟務上見而不燭四旁, 是以事至則不能變.&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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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1-116 子曰: 中庸, 天理也. 不極天理之高明, 不足以道乎中庸. 中庸乃高明之極耳. 非二致也.&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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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1-117 子曰: 予奪翕張, 理所有也, 而老子之言非也. 與之之意, 乃在乎取之; 張之之意, 乃在乎翕之, 權詐之術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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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1-118 子曰: 禮樂大矣. 然於進退之間, 則已得性情之正.&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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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1-119 子曰: 一二合而為三, 三見則一二亡矣. 離三而為一二, 一二見而三亡矣. 方為一二, 而求三, 既已成三, 又求一二, 是不知理.&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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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1-120 子曰: 善惡皆天理. 謂之惡者, 或過或不及, 無非惡也. 楊墨之類, 是也.&lt;br /&gt;
&lt;br /&gt;
『수언』1-121 子曰: 以氣明道, 氣亦形而下者耳.&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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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1-122 子曰: 靜中有動, 動中有靜, 故曰動靜一源.&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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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1-123 子曰: 氣充則理正, 正則不私, 不私之至則神.&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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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1-124 或問: “何謂誠; 何謂道乎?” 子曰: “自性言之為誠, 自理言之為道, 其實一也.”&lt;br /&gt;
&lt;br /&gt;
『수언』1-125 子曰: 中無定體, 惟達權, 然後能執之.&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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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1-126 子曰: 至顯莫如理昔有人鼓琴而見螳螂捕蟬者或人聞之而曰琴胡為有殺聲也夫殺在物見在心而聽者以聲知之非至顯歟&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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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1-127 子曰: 道不遠人, 不可須臾離也, 此特為始學者言之耳. 論道之極, 無遠也無近也, 無可離不可離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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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1-128 子曰: 使萬物無一失所者斯天理中而已&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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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1-129 子曰: 人為不善於幽隱之中者謂人莫已知也而天理不可欺, 何顯如之或曰是猶楊震所謂四知者乎子曰幾矣雖然人我之知猶有分也天地則無二知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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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1-130 呂大臨曰: 中者, 道之所由出也. 子曰: 非也. 大臨曰: 所謂道也, 性也, 中也, 和也, 名雖不同, 混之則一歟？子曰: 中即道也. 汝以道出於中也, 是道之於中也, 又為一物矣. 在天曰命, 在人曰性, 循性曰道, 各有當也. 大本言其體, 達道言其用. 烏得混而一之乎？大臨曰: 中即性也. 循性而行, 無非道者. 則由中而出, 莫非道也. 豈為性中又有中哉？子曰: 性道可以合一而言, 中不可并性而一. 中也者, 狀性與道之言也. 猶稱天圓地方, 而不可謂方圓即天地. 方圓不可謂天地, 則萬物非出於方圓矣. 中不可謂之性, 則道非出於中矣. 中之為義, 自過與不及而立名, 而指中為性, 可乎？性不可容聲而論也. 率性之謂道, 則無不中也. 故稱中所以形容之也. 大臨曰: 喜怒哀樂之未發, 赤子之心, 至虛無倚, 豈非中乎？此心所發, 無往而不中. 大人不失赤子之心, 所謂允執厥中也. 子曰: 赤子之心, 已發而未遠於中者也, 而爾指為中, 是不明大本也. 大臨曰: 聖人智周萬物, 赤子未有所知, 其心固不同也. 孟子所言, 特取其純一無偽, 可與聖人同爾, 非謂無毫髮之異也. 無過不及之謂中, 何從而知之乎？求之此心而已. 此心之動, 出入無時, 何從而守之乎？求之喜怒哀樂未發之際而已. 當是時也, 至虛不倚, 純一無偽, 以應萬物之變, 何往而非禮義哉？故大臨以赤子之心為中, 而曰中者道之所由出也. 子曰: 非謂無毫髮之異, 斯異矣. 大本則無異爾. 於喜怒哀樂未發之際, 而求中之中, 去中不亦遠乎？大臨曰: 然則夫子以赤子之心為已發者, 而未發之時謂之無心可乎？子曰: 心一也. 有指體而言者, 寂然不動是也. 有指用而言者, 感而遂通天下之故是也. 在人所見何如耳. 論愈析微, 則愈易差失. 言之未瑩, 則亦擇之未精耳. 大臨曰: 此則淺陋之罪也, 敢不承教?&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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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學篇==&lt;br /&gt;
『수언』2-1 子曰: “識道以智爲先, 入道以敬爲本. 夫人測其心者, 茫茫然也, 將治心而不知其方者, 寇賊然也, 天下無一物非吾度內者故敬爲學之大要.”&lt;br /&gt;
&lt;br /&gt;
『수언』2-2 子曰: 學必先知仁知之矣. 敬以存之而已存而不失者心本無懈何事於防閑也. 義理益明何事於思索也. 斯道也. 與物無對大不足以名之天地之用卽我之用也. 萬物之體卽我之體也. &lt;br /&gt;
&lt;br /&gt;
『수언』2-3 子曰: 行失卽惡亦改之而已事失卽亂亦治之而已苟非自棄皆君子也. &lt;br /&gt;
&lt;br /&gt;
『수언』2-4 子曰: 犯而校者私巳也. 不校者樂天也. 或曰: 然則無當報者乎? 子曰: 其有報也. 亦循理而已&lt;br /&gt;
&lt;br /&gt;
『수언』2-5 子曰: 所處於貧賤雖貧賤未嘗不樂不然雖富貴亦常歉然不自得故曰: 莫大於理莫重於義&lt;br /&gt;
&lt;br /&gt;
『수언』2-6 子曰: 彈琴而心不在焉則不成聲故曰: 琴者禁邪心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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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2-7  蘇昞問修辭何以立誠. 子曰: 苟以修飾言語爲心是僞而已&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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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2-8 子曰: 視聽言動無非天也. 知其正與妄斯善學矣. &lt;br /&gt;
&lt;br /&gt;
『수언』2-9 子曰: 世俗之言多失正如吳楚失之輕趙魏失之重旣通乎衆盡正之而不得則君子去其甚者而已&lt;br /&gt;
&lt;br /&gt;
『수언』2-10 子曰: 有過必改罪已是也. 改而已矣. 常有歉悔之意則反爲心害&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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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2-11 子曰: 學者欲得正必以顔子爲準的.&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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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2-12 蘇洵曰: 平居講習殆空言也. 何益不若治經傳道爲居業之實耳. 子曰: 講習而無益蓋未嘗有得耳. 治經固學之事苟非自有所得則雖五經亦空言耳.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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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2-13 子曰: 射法具而彀不滿發不中未正內志耳. &lt;br /&gt;
&lt;br /&gt;
『수언』2-14 子曰: 今之學者有三弊溺於文章牽於訓詁惑於異端苟無是三者則將安歸必趨於聖人之道矣.” &lt;br /&gt;
&lt;br /&gt;
『수언』2-15 或問: “有反身而未誠者何.” 子曰: 是視身之與誠猶二物也. 必以已合彼非能誠矣. 夫身旣不誠則無樂矣. &lt;br /&gt;
&lt;br /&gt;
『수언』2-16 子謂劉安節曰: 善學者進德不有異於綴文者耶有德矣. 動無不利爲無不成何有不文若綴文之士不專則不工專則志局於此又安能與天地同其大乎呂大臨有言學如元凱未免成癖文似相如未免類俳今之爲文者一意於詞章藻繪之美以悅人之耳目非俳優而何&lt;br /&gt;
&lt;br /&gt;
『수언』2-17 子曰: 能守節善矣. 亦貴乎適中而已節而過中是謂苦節安能常且久耶&lt;br /&gt;
&lt;br /&gt;
『수언』2-18 子曰: 妄動由有欲妄動而得者其必妄動而失一失也. 其得之必失之二失也. 况有凶咎隨之乎是故妄得之福災亦隨焉妄得之得失亦繼焉苟或知此亦庶幾乎不由欲而動矣. &lt;br /&gt;
&lt;br /&gt;
『수언』2-19 子曰: 於上深有所望於下深有所責其處已則莫不恕也. 而可乎?&lt;br /&gt;
&lt;br /&gt;
『수언』2-20 子曰: 言行不足以動人臨事而倦且怠皆誠不至也. &lt;br /&gt;
&lt;br /&gt;
『수언』2-21 子曰: 人之智思因神以發智短思敞神不會也. 會神必有道.&lt;br /&gt;
&lt;br /&gt;
『수언』2-22 子曰: 古人謂心廣洪大無偏而不起之處得見其人亦可與語矣. &lt;br /&gt;
&lt;br /&gt;
『수언』2-23 韓公與子坐惜日之暮喟然而嘆. 子曰: 常理也. 古猶今也. 而何歎曰: 老而將去也.  子曰: 勿去可也. 曰: 奈何而勿去? 子曰: 不能則去矣. &lt;br /&gt;
&lt;br /&gt;
『수언』2-24 子曰: 斟酌古今而去取之非心有權度卓然不疑者未能無差忒&lt;br /&gt;
&lt;br /&gt;
『수언』2-25 子曰: 可觀莫如萬物之生意&lt;br /&gt;
&lt;br /&gt;
『수언』2-26 子曰: 處患難知其無可奈何遂放意而不反是安於義命者?&lt;br /&gt;
&lt;br /&gt;
『수언』2-27 子曰: 知過而能改聞善而能用克己以從義其剛明者乎&lt;br /&gt;
&lt;br /&gt;
『수언』2-28 子曰: 饑而食渴而飮冬而裘夏而葛苟有一毫私意於其間卽廢天職&lt;br /&gt;
&lt;br /&gt;
『수언』2-29 子曰: 學禮義考制度必求聖人之意得其意則可以沿革矣. &lt;br /&gt;
&lt;br /&gt;
『수언』2-30 或問入道之功. 子曰: “立志志立則有本譬之藝木由毫末拱把至於合抱而干雲者有本故也.” &lt;br /&gt;
&lt;br /&gt;
『수언』2-31 子曰: 學者有所聞而不著乎心不見乎行則其所聞固自他人之言耳. 於已何與焉&lt;br /&gt;
&lt;br /&gt;
『수언』2-32 子曰: 思索經義不能於簡策之外脫然有獨見資之何由深居之何由安非特誤巳亦且誤人也.” &lt;br /&gt;
&lt;br /&gt;
『수언』2-33 或問: “人有少而勇老而怯少而廉老而貪何爲其然也.” 子曰: “志不立爲氣所使故也. 志勝氣則一定而不可變也. 曾子易簀之際其氣微可知也. 惟其志旣堅定則雖死生之際亦不爲之動也. 况老少之異乎.” &lt;br /&gt;
&lt;br /&gt;
『수언』2-34 或問: “人有日記萬言或妙絶技藝者是可學乎?” 子曰: “不可才可勉而少進鈍者不可使利也. 惟積學明理旣久而氣質變焉則暗者必明弱者必立矣.” &lt;br /&gt;
&lt;br /&gt;
『수언』2-35 或問: “爲養而求仕不免憂得失將何以免此?” 子曰: “志勝氣義處命則無憂矣.” 曰: “在已可免也. 而親不悅奈何?” 子曰: “爲已爲親非二事也. 其如命何人苟不知命見利必趨遇難必避得喪必動其異於小人者幾希聖人曰: 命云者爲中人而設也. 上智之士惟義之安雖曰: 求而得之然安於義而無求此樂天者之事也. 至於聞有命而不能安之則每下矣.” &lt;br /&gt;
&lt;br /&gt;
『수언』2-36 或問: “爲文有害於大學之道乎?” 子曰: “是其爲業也. 不專則不工也. 專則志局於此斯害也已學以養心奚以文爲五經之言非聖人有意於文也. 至蘊所發自然而成也.” &lt;br /&gt;
&lt;br /&gt;
『수언』2-37 或曰: “游夏以文學稱, 何也?” 曰: “汝謂其執簡秉筆從事於詞章之技乎?”&lt;br /&gt;
&lt;br /&gt;
『수언』2-38 子曰: 讀書將以窮理, 將以致用也. 今或滯心於章句之末則無所用也. 此學者之大患.&lt;br /&gt;
&lt;br /&gt;
『수언』2-39 子曰: 利者衆之所同欲也. 專欲利已其害大矣. 貪之甚則昏蔽而忘理義求之極則爭奪而致怨.&lt;br /&gt;
&lt;br /&gt;
『수언』2-40 子曰: 學者自治極於剛則守道愈固勇於進則遷善愈速.&lt;br /&gt;
&lt;br /&gt;
『수언』2-41 子曰: 達理故樂天而不競內充故退遜而不矜.&lt;br /&gt;
&lt;br /&gt;
『수언』2-42 子曰: 物聚而無以養之則不能存息矣. 故君子動靜節宣所以養生也. 飮食衣服所以養形也. 威儀行動所以養德也. 推已及物所以養人也. 養道之所貴惟正而已矣. &lt;br /&gt;
&lt;br /&gt;
『수언』2-43 子曰: 言不可不謹傷於易則誕傷於煩則支已肆則物忤出悖則來違君子所以非法不道也. &lt;br /&gt;
&lt;br /&gt;
『수언』2-44 子曰: 射中鵠舞中節御中度皆誠也. &lt;br /&gt;
&lt;br /&gt;
『수언』2-45 子曰: 赴湯火蹈白刃武夫之勇可能也. 克己自勝非君子之大勇不可能也. &lt;br /&gt;
&lt;br /&gt;
『수언』2-46 子曰: 凡人之過多矣. 能改之者猶無過也. 惟識趣汙下之人, 其改之爲最難, 故其過最甚&lt;br /&gt;
&lt;br /&gt;
『수언』2-47 子曰: 始於致知智之事也. 行所知而極其至聖之事也. &lt;br /&gt;
&lt;br /&gt;
『수언』2-48 子曰: 學者好爲高論猶貧人談金辨其體色權其輕重商其貴賤其言未必非也. 然終不如富人之有金未嘗自言金之美也. &lt;br /&gt;
&lt;br /&gt;
『수언』2-49 子曰: 進學莫先乎致知養心莫大乎理義王彦霖曰: 人之於善也. 必其誠心欲爲然後有所得其不欲不可以强人也. &lt;br /&gt;
&lt;br /&gt;
『수언』2-50 子曰: 是不然任其自爲聽其不爲則中人以下自棄自暴者衆矣. 聖人所以貴於立敎也. 彦霖再問立德進德當何先&lt;br /&gt;
&lt;br /&gt;
『수언』2-51 子曰: 有旣立而益進者上也. 有勇而至於立者次也.” &lt;br /&gt;
&lt;br /&gt;
『수언』2-52 或問: “必有事焉者其敬而已乎?” 子曰: “敬所以涵養也. 集義所謂必有事也. 不知集義是爲無事也.” 曰: “義者中理之謂乎?” 子曰: “中理見乎事敬在心義以方外然後中理矣.” 曰: “義與敬何以異?” 子曰: “敬所以持守也. 有是有非順理而行者義也.” 曰: “敬猶靜歟?” 子曰: “言靜則老氏之學也.” &lt;br /&gt;
&lt;br /&gt;
『수언』2-53 子曰: 處屯難之時而有致亨之道其惟正固乎凡處難能守正而不變者鮮矣. &lt;br /&gt;
&lt;br /&gt;
『수언』2-54 子曰: 百工治器必貴於有用器而不可用工不爲也. 學而無所用學將何爲也. &lt;br /&gt;
&lt;br /&gt;
『수언』2-55 子曰: 學而未有所知者譬猶人之方醉也. 亦何所不至及其旣醒必惕然而恥矣. 醒而不以爲恥末如之何也.&lt;br /&gt;
&lt;br /&gt;
『수언』2-56 子謂周行已曰: 今之進學者如登山方於平易皆能濶步而進一遇峻險則止矣. &lt;br /&gt;
&lt;br /&gt;
『수언』2-57 子曰: 根本旣立然後可立趨向趨向旣立矣. 而所造有深淺不同者勉與不勉故也. &lt;br /&gt;
&lt;br /&gt;
『수언』2-58 子曰: 不誠則有累誠則無累&lt;br /&gt;
&lt;br /&gt;
『수언』2-59 子曰: 學之而不養養之而不存是空言也. &lt;br /&gt;
&lt;br /&gt;
『수언』2-60 子曰: 重任必强脊膂之人迺能勝&lt;br /&gt;
&lt;br /&gt;
『수언』2-61 子曰: 義有至精理有至奧能自得之可謂善學矣. &lt;br /&gt;
&lt;br /&gt;
『수언』2-62 子曰: 自得而至於無我者凡善言美行無非所過之化也. &lt;br /&gt;
&lt;br /&gt;
『수언』2-63 子曰: 學至涵養其所得而至於樂則淸明高遠矣. &lt;br /&gt;
&lt;br /&gt;
『수언』2-64 子曰: 學而不自得則至老而益衰&lt;br /&gt;
&lt;br /&gt;
『수언』2-65 子曰: 力學而得之必充廣而行之不然者局局其守耳. &lt;br /&gt;
&lt;br /&gt;
『수언』2-66 子曰: 語學者以其所未至不惟所聞不深亦易忽於理&lt;br /&gt;
&lt;br /&gt;
『수언』2-67 子曰: 見之旣明養之旣熟泰然而行之其進曷禦焉&lt;br /&gt;
&lt;br /&gt;
『수언』2-68 子曰: 識必見於行如行道塗涉暗阻非日月之光炬火之照則不可進矣. 故君子貴有識力學窮理則識益明照知不惑迺益敏矣. &lt;br /&gt;
&lt;br /&gt;
『수언』2-69 子曰: 言而不行自欺孰甚焉&lt;br /&gt;
&lt;br /&gt;
『수언』2-70 子曰: 動以人則有妄動以天則無妄&lt;br /&gt;
&lt;br /&gt;
『수언』2-71 子曰: 敎人者養其善心則惡自消治民者導以敬遜則爭自止.&lt;br /&gt;
&lt;br /&gt;
『수언』2-72 子曰: 學必激昻自進不至於成德不敢安也.” &lt;br /&gt;
&lt;br /&gt;
『수언』2-73 或問: “今有志於學而知識蒙蔽, 力不能勝其任, 則如之何?” 曰: “致知則明, 明則無不勝其任者, 在勉强而已.”&lt;br /&gt;
&lt;br /&gt;
『수언』2-74 子曰: 人之於學避其所難而姑爲其易者斯自棄也已夫學者必志於大道以聖人自期而猶有不至者焉&lt;br /&gt;
&lt;br /&gt;
『수언』2-75 子曰: 以富貴驕人者固不美矣. 以學問驕人者其害豈小哉!&lt;br /&gt;
&lt;br /&gt;
『수언』2-76 子曰: “學者當務實一有近名之心則大本已失尙何所學哉?” 或曰: “不猶賢於爲利者乎?” 子曰: “淸汚雖不齊而其利心則一也. 然則沒世而名不稱孔子何爲而疾之也.” 子曰: “非爲求名也. 爲無善之可稱耳.” &lt;br /&gt;
&lt;br /&gt;
『수언』2-77 或問: “日新者益進乎抑謂無弊而已乎?” 子曰: “有進意而求益者必日新.”&lt;br /&gt;
&lt;br /&gt;
『수언』2-78 或曰: “有因苦學失心者, 何也?” 子曰: “未之聞也. 善學者之於其心治其亂收其放明其蔽安其危曾謂爲心害乎?”&lt;br /&gt;
&lt;br /&gt;
『수언』2-79 子曰: 不知天則於人之賢否愚知有所不知雖知之有所不盡故學以知天爲本不知人則所親者或非其人所由者或非其道故學者以親賢爲急&lt;br /&gt;
&lt;br /&gt;
『수언』2-80 子曰: 學不博者不能守約志不篤者不能力行.” &lt;br /&gt;
&lt;br /&gt;
『수언』2-81 或問: “學何如而謂之有得?” 子曰: “其必黙識心通乎篤誠明理而涵養之者次也. 聞之知之億度之擧非得也.” &lt;br /&gt;
&lt;br /&gt;
『수언』2-82 或問: “學必窮理物散萬殊何由而盡窮其理?” 子曰: “誦詩書考古今察物情揆人事反覆硏究而思索之求止於至善蓋非一端而已也.” 又問: “泛然其何以會而通之.” 子曰: “求一物而通萬殊雖顔子不敢謂能也. 夫亦積習旣久則脫然自有該貫所以然者萬物一理故也.” &lt;br /&gt;
&lt;br /&gt;
『수언』2-83 子曰: 未有知之而不能行者謂知之而未能行是知之未至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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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2-84 子曰: 於所當爲者用意而爲之未免私心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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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2-85 子曰: 致知則智明智明然後能擇.”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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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2-86 或問: “夫子之敎必使學者涵養而後有所得何如其涵養也.” 子曰: “莫如敬.”&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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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2-87 子曰: 學者以屛知見息思慮爲道不失於絶聖棄智必流於坐禪入定夫鑑之至明則萬物畢照鑑之常也. 而奚爲使之不照乎不能不與萬物接則有感必應知見不可屛而思慮不可息也. 欲無外誘之患惟內有主而後可主心者主敬也. 主敬者主一也. 不一則二三矣. 苟繫心於一事則他事無自入况於主敬乎.” &lt;br /&gt;
&lt;br /&gt;
『수언』2-88 或問: “致知力行其功並進乎?” 子曰: “人謂非禮勿爲則必强勉而從之至於言穿窬不可爲不必强勉而後能也. 故知有淺深則行有遠近此進學之效也. 循理而至於樂則已與理一殆非强勉之可能也.” &lt;br /&gt;
&lt;br /&gt;
『수언』2-89 子曰: 閑邪則誠已存非取誠於外納諸中而存之也. 故役役然於不善之中求善而爲之必無入善之理&lt;br /&gt;
&lt;br /&gt;
『수언』2-90 子曰: 古之言知之非艱者吾謂知之亦未易也. 今有人欲之一地必知所出之門所由之道然後可往苟不知也. 雖有往赴之心其能進乎後世非無美質而力行者然鮮能明道蓋知之者難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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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2-91 或問: “使從俗可以從歟?” 子曰: “於義有害者胡爲而可從.”&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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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2-92 子曰: 學者苟有朝聞道夕死可矣. 之志則不肯安於所不安也. 不能然者不見實理故也.” &lt;br /&gt;
&lt;br /&gt;
『수언』2-93 或問: “何謂實理?” 子曰: “灼然見其是非可否也. 古人有視死如歸者苟不見死重於義如見火之熱水之深無復疑則其能者未矣.”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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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2-94 子曰: 獨處而靜思者非難居廣而應天下者爲難.&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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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2-95 朱光庭問爲善之要. 子曰: 孜孜而爲之者當其接物之際也. 未與物接則敬而已自敬而動所謂爲善也. &lt;br /&gt;
&lt;br /&gt;
『수언』2-96 子曰: 有志於道而學不加進者是無勇也. &lt;br /&gt;
&lt;br /&gt;
『수언』2-97 伯淳與吳師禮論王氏所學之失: “其爲我盡達之介甫理者天下之公不可私有也. 非敢必以爲是介甫有以告我則願反覆辨之辨之而明不有益於彼斯有益於我矣.” &lt;br /&gt;
&lt;br /&gt;
『수언』2-98 子曰: 學者所見所期不可不遠且大也. 及夫施於用則必有其漸.&lt;br /&gt;
&lt;br /&gt;
『수언』2-99 子曰: 責善之道必也. 貴誠而不貴言則於人有相長之益在巳無自辱之患&lt;br /&gt;
&lt;br /&gt;
『수언』2-100 子曰: 古之敎人無一物不使之誠心射與舞之類是也. &lt;br /&gt;
&lt;br /&gt;
『수언』2-101 子曰: 怒在理而無所遷動乎血氣則遷矣. 或謂擧子必精修其所業可以應有司之選今夫子每止之使勿習, 何也?” &lt;br /&gt;
&lt;br /&gt;
『수언』2-102 子曰: 設科以文詞取士苟可以應科則亦足矣. 盡心力而爲之以期乎必得是惑也. &lt;br /&gt;
&lt;br /&gt;
『수언』2-103 子曰: 古者家有塾黨有庠三老坐於里門察其長幼出入揖遜之序詠歌諷誦無非禮義之言今也. 上無所學而民風日以偸薄父子兄弟惟知以利相與耳. 今里巷之語不可以屬耳也. 以古所習如彼欲不善得乎以今所習如此欲其善得乎. &lt;br /&gt;
&lt;br /&gt;
『수언』2-104 或問: “道不明於後世其所學者爲何?” 子曰: “敎之者能知之學者之衆不患其不明也. 魯國一時賢者之衆非特天授由學致也. 聖人旣沒曠千有餘歲求一人如顔閔不可得故敎不立學不傳人材不期壞而自壞.” &lt;br /&gt;
&lt;br /&gt;
『수언』2-105 或問: “燕處倨肆心不怠慢有諸?” 子曰: “無之. 入德必自敬始, 故容貎必恭也, 言語必謹也. 雖然, 優游涵泳而養之可也. 拘迫則不能入矣.” &lt;br /&gt;
&lt;br /&gt;
『수언』2-106 子曰: 古所以成材之具今擧無矣. 惟出入於人心者猶在耳. 學者其可不勉乎&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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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2-107 子曰: 人多以子弟輕俊爲可喜而不知其爲可憂也. 有輕俊之質者必敎以通經學使近本而不以文辭之末習則所以矯其偏質而復其德性也. &lt;br /&gt;
&lt;br /&gt;
『수언』2-108 子曰: 凡人於事有少自快則其喜懌之意猶浹洽於心而發見於外况學而見理者乎雖然至於窮理而切切焉不得其所可悅者則亦何以養心也. &lt;br /&gt;
&lt;br /&gt;
『수언』2-109 子曰: 古之人十五而學四十而仕其未仕也. 優游養德無求進之心故其所學必至於有成後世之人自其爲兒童從父兄之所敎與其壯長追逐時習之所尙莫汲汲於勢利也. 善心何以不喪哉&lt;br /&gt;
&lt;br /&gt;
『수언』2-110 子曰: 學佛者於內外之道不備&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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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2-111 子曰: 博奕小技也. 不專心致志猶不可得况學聖人之道悠悠焉何能自得也. 孔子曰: 吾嘗終日不食終夜不寢以思無益不如學也. 又曰: 朝聞道夕死可矣. 夫聖人何爲而迫切至於如是其極哉善學者當求其所以然之故不當誦其文過目而已也. 學如不及猶恐失之苟曰: 姑俟來日斯自棄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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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2-112 子曰: 昏於天理者嗜慾亂之耳.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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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2-113 子曰: 子厚以禮立敎使學者有所據守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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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2-114 子曰: 學者於聖人無卓然之獨見則是聞人之言云耳. 因曰: 亦云耳而已.&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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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2-115 子曰: 學不純則不得其所止中無止則不能不外求譬夫家有藏寶者豈復假人以爲玩乎潘康仲問學者於聖人之門非願其有異也. 惟不能知之是以流於不同敢問持正之道&lt;br /&gt;
&lt;br /&gt;
『수언』2-116 子曰: 知之而後可守無所知則何所守也. 故學莫先乎致知窮理格物則知無不盡知之旣盡則守無不固&lt;br /&gt;
&lt;br /&gt;
『수언』2-117 子曰: 古之君子修德而已德成而言則不期於文而自文矣. 退之固因學爲文章力求其所未至以至於有得也. 其曰: 軻死不得其傳非卓然見其所傳者語不及此&lt;br /&gt;
&lt;br /&gt;
『수언』2-118 子曰: 蘇呂二子皆以知見聞見爲學之患吾喜其近道必欲堅叩明其辨可與終其說矣. 夫人之學非自願其有差也. 知之不至則流別於殊塗陷溺於異端亦不得免焉耳. &lt;br /&gt;
&lt;br /&gt;
『수언』2-119 子曰: 呂進伯老矣. 慮學問之不進憂年數之不足恐無所聞而遂死焉亦可謂之好學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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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2-120 子曰: 養勇之法求之太急故性氣輕軼而難御凡長育人材也. 敎之在寬待之以久然後化成而俗美.” &lt;br /&gt;
&lt;br /&gt;
『수언』2-121 或問: “夫子有言昔之惑人因其迷闇今之惑人因其高明竊有疑焉夫旣曰: 高明而可惑乎?” 子曰: “語其質云爾彼深於佛氏之學者其質開透亦必加於人數等所謂智者過之也. 非中庸所謂極高明者也. 聖人極高明而道中庸其照無偏何過之有?”&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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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2-122 子厚曰: “十詩之作將以驗天心於語黙也.” 子曰: “舍是有言亦烏得已乎?”&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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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2-123 子謂子厚曰: “關中之士語學而及政論政而及禮樂兵刑之學庶幾善學者.” 子厚曰: “如其誠然則志大不爲名亦知學貴於有用也. 學古道以待今則後世之謬不必屑屑而難之擧而措之可也.” &lt;br /&gt;
&lt;br /&gt;
『수언』2-124 或問: “學者何習老莊之衆也?” 子曰: “謹禮而不達者爲其所膠固焉放情而不莊者畏法度之拘已也. 必資其放曠之說以自適其勢則然.”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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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2-125 或問: “學者多溺於佛說, 何也?” 子曰: “學而無所得其年齒老矣. 智力屈矣. 其心欲遽止焉則又不自安一聞超騰侈大之說是以說而入之.” “然則可反乎.” 子曰: “深固者亦難反嘗譬之行人履乎坦途其進無難也. 山高乎其前水深乎其下而進之爲難也. 於是焉而有捷徑則欣然而從之其勢然也. 夫托乎逆旅者蓋不得家居之要爾未有人旣安於家而又樂舍於逆旅者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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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2-126 子曰: 林大節少戇然得一言卽躬履學者可畏莫如聞斯行之聞而不行十蓋九矣. &lt;br /&gt;
&lt;br /&gt;
『수언』2-127 子謂門人曰: 昨日之會談空寂者紛紛吾有所不能噫此風旣成其何能救也. 古者釋氏盛時尙只是崇像設敎其害小爾今之言者乃及乎性命道德謂佛爲不可不學使明智之士先受其惑嗚呼淸談盛晉室衰况有甚者乎夫明智之士中人以上之資也. 其才足以自立則反之難矣. 學者必至於自信而不惑則彼不能亂不然猶之淫言美色戒而遠之尙恐不免也. &lt;br /&gt;
&lt;br /&gt;
『수언』2-128 侯仲良曰: 夫子在講筵必廣引博喩以曉人主一日, 講旣退, 范堯夫揖曰: 美哉何記憶之富也. 子對曰: 以不記憶也. 若有心於記憶亦不能記矣. &lt;br /&gt;
&lt;br /&gt;
『수언』2-129 或人有自名導氣養生者, 問: “子亦知之乎?” 子曰: “吾夏葛而冬裘渴飮而饑食節嗜慾定心氣如此而已.”&lt;br /&gt;
&lt;br /&gt;
『수언』2-130 子曰: 學莫大於知本末終始致知格物所謂本也. 始也. 治天下國家所謂末也. 終也. 治天下國家必本諸身其身不正而能治天下國家者無之格猶窮也. 物猶理也. 若曰: 窮其理云爾窮理然後足以致知不窮則不能致也. &lt;br /&gt;
&lt;br /&gt;
『수언』2-131 子曰: 格物適道之始思所以格物而已近道矣. 是何也? 以收其心而不放也. &lt;br /&gt;
&lt;br /&gt;
『수언』2-132 子曰: 大學於誠意正心皆言其道至於格物則不言獨曰: 物格而後知至此蓋可以意得不可以言傳也. 自格物而充之, 然後可以至於聖人不知格物而欲意誠心正而後身修者未有能中於理者也. &lt;br /&gt;
&lt;br /&gt;
『수언』2-133 子曰: 學莫貴乎自得非在人也. &lt;br /&gt;
&lt;br /&gt;
『수언』2-134 子曰: 見攝生者而問長生可謂大愚見卜者而問吉凶可謂大惑&lt;br /&gt;
&lt;br /&gt;
『수언』2-135 子曰: 學貴乎成旣成矣. 將以行之也. 學而不能成其業用而不能行其學則非學矣. &lt;br /&gt;
&lt;br /&gt;
『수언』2-136 子曰: 君子莫進於學莫止於畫莫病於自足莫罪於自棄進而不止湯武所以反之而聖&lt;br /&gt;
&lt;br /&gt;
『수언』2-137 子曰: 古之學者爲巳而成物今之學者爲人而喪巳&lt;br /&gt;
&lt;br /&gt;
『수언』2-138 子曰: 無好學之志則雖聖人復出亦無益矣. 然聖人在上而民多善者習見之熟也. 習聞之久也. 涵泳其敎化深且遠也. &lt;br /&gt;
&lt;br /&gt;
『수언』2-139 子曰: 記問文章不足以爲人師以其所學者外也. 師者, 何也?” 謂理義也. 學者必求師從師不可不謹也. &lt;br /&gt;
&lt;br /&gt;
『수언』2-140 子曰: 君子之學貴一一則明明則有功&lt;br /&gt;
&lt;br /&gt;
『수언』2-141 子曰: 不思故有惑不求故無得不問故莫知&lt;br /&gt;
&lt;br /&gt;
『수언』2-142 子曰: 進學不誠則學雜處事不誠則事敗自謀不誠則欺心而棄已與人不誠則喪德而增怨今末習曲藝亦必誠而後精况欲趨衆善爲君子者乎&lt;br /&gt;
&lt;br /&gt;
『수언』2-143 子曰: “不深思則不能造其學.” 或曰: “學者亦有無思而得者乎?” 子曰: “漠然未嘗思自以爲得之者未之有也.” &lt;br /&gt;
&lt;br /&gt;
『수언』2-144 子曰: 德盛者物不能擾而形不能病臨震懼死生而色不變, 當疾痛慘戚而心不動由養之有素非一朝一夕之力也. &lt;br /&gt;
&lt;br /&gt;
『수언』2-145 子曰: 學不貴博貴於正而已正則博言不貴文貴於當而已當則文政不貴詳貴於順而已順則詳&lt;br /&gt;
&lt;br /&gt;
『수언』2-146 子曰: 學也者, 使人求於內也. 不求於內而求於外非聖人之學也. 何謂求於外以文爲主者是也. 學也者, 使人求於本也. 不求於本而求於末非聖人之學也. 何謂求於末考詳略採同異是也. 二者無益於德君子弗之學也. &lt;br /&gt;
&lt;br /&gt;
『수언』2-147 子曰: 自得者所守不變自信者所守不疑&lt;br /&gt;
&lt;br /&gt;
『수언』2-148 子曰: 隨時觀理而天下之理得矣. &lt;br /&gt;
&lt;br /&gt;
『수언』2-149 子曰: 人皆可以爲聖人而君子之學必至聖人而後已不至聖人而自己者皆自棄也. 孝者所當孝弟者所當弟自是而推之是亦聖人而已矣. &lt;br /&gt;
&lt;br /&gt;
『수언』2-150 子曰: 學以不欺闇室爲始&lt;br /&gt;
&lt;br /&gt;
『수언』2-151 子曰: 多聞識者猶廣儲藥物也. 知所用爲貴&lt;br /&gt;
&lt;br /&gt;
『수언』2-152 子曰: 講說非古也. 學者必潛心積慮涵養而自得之今一日盡講是以博爲敎非有益也. &lt;br /&gt;
&lt;br /&gt;
『수언』2-153 子曰: 學而爲名內不足也. &lt;br /&gt;
&lt;br /&gt;
『수언』2-154 子曰: 行踐其言而人不信者有矣. 未有不踐言而人信之者&lt;br /&gt;
&lt;br /&gt;
『수언』2-155 子曰: 恥不知而不問終於不知而已以爲不知而必求之終能知之矣. &lt;br /&gt;
&lt;br /&gt;
『수언』2-156 子曰: 有辨佞之才者多入於不善故學不貴&lt;br /&gt;
&lt;br /&gt;
『수언』2-157 子曰: 有慾則不剛剛者不屈於慾&lt;br /&gt;
&lt;br /&gt;
『수언』2-158 子曰: 克己之私旣盡一歸於禮此之謂得其本心&lt;br /&gt;
&lt;br /&gt;
『수언』2-159 子曰: 學貴於通執一而不通將不勝其疑矣. 通莫如理&lt;br /&gt;
&lt;br /&gt;
『수언』2-160 子曰: 難勝莫如己私學者能克之非大勇乎&lt;br /&gt;
&lt;br /&gt;
==論書篇== &lt;br /&gt;
『수언』3-1 或問: “坤者臣道也. 在君亦有用乎?” 子曰: “厚德載物豈非人君之用?”&lt;br /&gt;
&lt;br /&gt;
『수언』3-2 子曰: 堯夫厯差之法妙絶乎古人矣. 蓋於日月交感之際以陰陽盈虛求之是以不差. 陰常虧, 陽常盈, 差之所由也. 昔洛下閎之作厯也. 謂數百年之後當有一日之差乎何承天慮其差也. 則以所差之之分均於所厯之年以考每歲所差之多少謂之歲差法而差終不可定也. &lt;br /&gt;
&lt;br /&gt;
『수언』3-3 子曰: 五經之言涵蓄渾然無精麤之別&lt;br /&gt;
&lt;br /&gt;
『수언』3-4 子曰: 春秋是是非非因人之行事不過當年數人而已窮理之要也. 學者不必他求學春秋可以盡道矣. 然以通語孟爲先.” &lt;br /&gt;
&lt;br /&gt;
『수언』3-5 或問春秋發微. 子曰: 述法而不通意&lt;br /&gt;
&lt;br /&gt;
『수언』3-6 子曰: 易變易也. 隨時變易以從道也. 至微者理至著者象體用一源顯微無間故善學者求之必自近易於近非知易者也. &lt;br /&gt;
&lt;br /&gt;
『수언』3-7 子曰: 有謂六經爲六藝之文何其求之於淺也. &lt;br /&gt;
&lt;br /&gt;
『수언』3-8 劉絢問孔子何爲作春秋. 子曰: 由堯舜至於周文質損益其變極矣. 其法詳矣. 仲尼參酌其宜以爲萬世王制之所折中焉此作春秋之本意也. 觀其告顔子爲邦之道可見矣. &lt;br /&gt;
&lt;br /&gt;
『수언』3-9 子曰: 春秋事在二月則書王二月, 事在三月則書王三月, 無事則書天時, 書首月. 蓋有事則道在事無事則存天時, 正王朔. 天時備則歲功成王道存則人理立春秋之大義也. &lt;br /&gt;
&lt;br /&gt;
『수언』3-10 子曰: 春秋之法, 中國而用夷道卽夷之. 韓子謂‘春秋謹嚴’, 深得其旨矣. &lt;br /&gt;
&lt;br /&gt;
『수언』3-11 子曰: 諸侯當上奉天時下承王正故春秋曰: 春王正月明此義則知王與天同大而人道立矣.” &lt;br /&gt;
&lt;br /&gt;
『수언』3-12 或問: “易有大過, 何也?” 子曰: 聖人盡道而無過故曰: 大過亦當事之大耳. 猶堯舜禪遜湯武放伐之類也. 道無不中也. 無不常也. 以世人所不常見則謂之大過於常耳. 是故立非常之大事興不世之大功成絶俗之大德皆大過之事而實無所過也. &lt;br /&gt;
&lt;br /&gt;
『수언』3-13 子曰: “素問出於戰國之際或以爲三墳者非也. 然其言亦有可取者.” 或問: “何說也?” 子曰: “善言天者必有驗於人善言古者必有驗於今豈不當哉若運氣則不可用.”&lt;br /&gt;
&lt;br /&gt;
『수언』3-14 子曰: 陰陽運動有常而無忒凡失其度皆人爲感之也. 故春秋災異必書漢儒傳其說而不得其理是以所言多失&lt;br /&gt;
&lt;br /&gt;
『수언』3-15 子曰: 禮記之文多謬誤者儒行經觧非聖人之言也. 夏后氏郊鯀之篇皆未可據也. &lt;br /&gt;
&lt;br /&gt;
『수언』3-16 子曰: 周禮之書多訛闕然周公致太平之法亦存焉在學者審其是非而去取之爾&lt;br /&gt;
&lt;br /&gt;
『수언』3-17 子曰: 原道之作其言雖未盡善然孟子之後識道之所傳者非誠有所見不能斷然言之如是其明也. 其識大矣. &lt;br /&gt;
&lt;br /&gt;
『수언』3-18 子曰: 漢儒之談經也. 以三萬餘言明堯典二字可謂知要乎惟毛公董相有儒者氣象東京士人尙名節加之以明禮義則皆賢人之德業矣. 本朝經典比之前代爲盛然三十年以來議論尙同學者於訓傳言語之中不復致思而道不明矣. &lt;br /&gt;
&lt;br /&gt;
『수언』3-19 子曰: 魯桓公弑君而自立其無歲不及諸侯之盟會者所以結外援而自固也. 齊遠與戎盟春秋危之而書至者以謂戎也. 苟不知鄭眞陳之黨惡而同爲不義則必執之矣. 此居夷浮海之意也. &lt;br /&gt;
&lt;br /&gt;
『수언』3-20 子曰: 自古簒弑多出於公族盖其自謂曰: 先君子孫也. 可以君國而國人亦以爲然從而奉之也. 聖人明大義以示萬世故入春秋之初其弑君者皆絶屬籍盖爲大惡旣自絶於先君之世矣. 豈得復爲子孫也. 古者公侯刑死則無服况於弑君乎此義旣明矣. 而或有以屬稱者可見其寵之太過任之太重以階亂也. 春秋所書大槩事同則詞同後之學者因以謂之例然有事同而詞異者其義各不同蓋不可以例斷也. &lt;br /&gt;
&lt;br /&gt;
『수언』3-21 子厚爲二銘以啓學者其一曰: 訂頑訂頑曰: 云云楊子問西銘深發聖人之微意然言體而不及用恐其流至於兼愛後世有聖賢而推本而論未免歸過於橫渠夫子盍爲一言推明其用乎? 子曰: 橫渠立言誠有過乃在正蒙至若訂頑明理以存義擴前聖所未發與孟子性善養氣之論同功豈墨氏之比哉西銘理一而分殊墨氏則愛合而無分分殊之蔽私勝而失仁無分之罪兼愛而無義分立而推理一以止私勝之流仁之方也. 無別而迷兼愛至於無父之極義斯亡也. 子比而同之過矣. 夫彼欲使人推而行之本爲用也. 反謂不及用不亦異乎楊子曰: 時也. 昔從明道卽授以此書於是始知爲學之大方固將終身服之豈敢疑其失於墨氏比也. 然其書以民爲同胞鰥寡孤獨爲兄弟非明者黙識焉知理一無分之殊哉故恐其流至於兼愛非謂其言之發與墨氏同也. 夫惟理一而分殊故聖人稱物遠近親踈各當其分所以施之其心一焉所謂平施也. 昔意西銘有平施之心無稱物之義疑其辭有未達也. 今夫子開諭學者當無惑矣.” &lt;br /&gt;
&lt;br /&gt;
『수언』3-22 或問: “子厚立言得毋有幾於迫切者乎?” 子曰: 子厚之爲人謹且嚴是以其言似之方之孟子則寬宏舒泰有不及也. 然孟子猶有英氣存焉是以未若顔子之懿渾然無圭角之可見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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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3-23 或曰: 聖賢氣象何自而見之. 子曰: 姑以其言觀之亦可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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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3-24 子曰: 訂頑言純而意備仁之體也. 充而盡之聖人之事也. 子厚之識孟子之後一人而已耳. 子謂門弟&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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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3-25 子曰: 昔吾受易於周子使吾求仲尼顔子之所樂要哉此言二三子志之&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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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3-26 子曰: 乾坤毁無以見易聖人以此洗心退藏於密夫所謂易也. 此也. 密也. 果何物乎聖人所以示人者深且明矣. 學者深思當自得之得之則於退藏之密奚遠乎&lt;br /&gt;
&lt;br /&gt;
『수언』3-27 子曰: 讀書而不留心於文義則荒忽其本意專精於文義則必固滯而無所通達矣.”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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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3-28 或問: “王介甫有言乾之九三知九五之位可至而至之如何?” 子曰: “使人臣每懷此心大亂之道也. 且不識湯武之事矣. 然則謂何?” 子曰: “知大人之道爲可至則學而至之所謂始條理者智之事也.” &lt;br /&gt;
&lt;br /&gt;
『수언』3-29 或問: “胡先生以九四爲太子爻可乎?” 子曰: 胡爲而不可當大臣則爲大臣當儲貳則爲儲貳顧用之何如耳. 苟知其一而不知其變則三百八十四爻止於三百八十四事而已矣. &lt;br /&gt;
&lt;br /&gt;
『수언』3-30 子曰: 夫人之說無可極者惟朋友講習以相資益爲說之至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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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3-31 子曰: 大學孔子之遺言也. 學者由是而學則不迷於入德之門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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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3-32 子曰: 大學之道明德新民不分物我成德之事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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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3-33 或問: “人以能立爲能賢而易取於隨, 何也?” 子曰: “隨者順理之謂也. 人君以之聽善臣下以之奉命學者以之徙義處事以之從長豈不立哉言各有當也. 若夫隨時而動合宜適變不可以爲典要非造道之深知幾可與權者不能與也.” &lt;br /&gt;
&lt;br /&gt;
『수언』3-34 子曰: 由孟子可以觀物.”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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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3-35 或問: “窮經旨當何所先?” 子曰: “於語孟二書知其要旨所在則可以觀五經矣. 讀語孟而不知道所謂雖多亦奚以爲.”&lt;br /&gt;
&lt;br /&gt;
『수언』3-36 子曰: 凡書載事容有輕重而過其實學者當識其義而已苟信於詞則或有害於義曾不若無書之爲愈也. &lt;br /&gt;
&lt;br /&gt;
『수언』3-37 子曰: 孟子言三代學制與王制所記不同王制有漢儒之說矣. &lt;br /&gt;
&lt;br /&gt;
『수언』3-38 子曰: 孟子養氣之論學者所當潛心也. 勿忘勿助長養道當然非氣也. 雖然旣已名之曰: 氣則非漠然無形體可識也. 如其漠然無形體尙何養之有是故語其體則與道合語其用則無非義也. &lt;br /&gt;
&lt;br /&gt;
『수언』3-39 子曰: 易之有象猶人之守禮法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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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3-40 子曰: 春秋之時諸侯不禀命天王擅相侵伐聖人直書其事而常責夫被侵伐者蓋加兵於巳則引咎自責或辨諭之以禮又不得免焉則固其封疆上告之天王下告之方伯近赴於鄰國必有所直矣. 苟不勝其忿而與之戰則以與之戰者爲主責已絶亂之道也. &lt;br /&gt;
&lt;br /&gt;
『수언』3-41 劉絢問讀春秋以何道爲準? 子曰: 其中庸乎欲知中庸其惟權乎權之爲言稱輕重之義也. 權義而上不可容聲矣. 在人所見如何耳. &lt;br /&gt;
&lt;br /&gt;
『수언』3-42 張閎中曰: 易之義起於數. 子曰: 有理而後有象有象而後有數易者因象以明理由象而知數得其理而象數在其中矣. 必欲窮象之隱微盡數之毫忽迺尋流逐末術家之所尙管輅郭璞之流是也. 非聖人之道也. 閎中曰: “象數在理中, 何謂也?” 子曰: 理無形也. 故因象以明理理旣見乎辭則可以由辭而觀象故曰: 得其理則象數擧矣. &lt;br /&gt;
&lt;br /&gt;
『수언』3-43 子曰: 乾九三言聖人之學也. 坤六二言賢人之學也. 此其大致也. 若夫敬以直內義以方外則雖聖人不越乎此無異道故也. &lt;br /&gt;
&lt;br /&gt;
『수언』3-44 子爲易傳成門人再三請傳終不可問其故. 子曰: 尙不祈有少進也. 乎時年已七十餘矣. &lt;br /&gt;
&lt;br /&gt;
『수언』3-45 子曰: 卜筮有疑心則不應&lt;br /&gt;
&lt;br /&gt;
『수언』3-46 子曰: 孔子之言莫非自然孟子之言莫非實事&lt;br /&gt;
&lt;br /&gt;
『수언』3-47 子曰: 厯法之要以日爲主日正則餘皆可推矣.” &lt;br /&gt;
&lt;br /&gt;
『수언』3-48 或問: “蒙之上九不利爲寇夫寇亦可爲而聖人敎之以利乎?” 子曰: “非是之謂也. 昏蒙之極有如三苗者征而誅之若秦皇漢武窮兵暴虐則自爲寇也.” &lt;br /&gt;
&lt;br /&gt;
『수언』3-49 謝師直與明道言春秋明道或可之又言易明道不可師直無忤色他日又以問伊川伊川曰: 二君知易矣. 師直曰: 伯淳不我與而子何爲有是言也. 子曰: 忘刺史之勢而屈以下問忘主簿之卑而直言無隱, 是固易之道也. &lt;br /&gt;
&lt;br /&gt;
『수언』3-50 子讀春秋至蕭魚之會嘆曰: 至哉誠之能感人也. 晉悼公推誠以待反覆之鄭信而不疑鄭自是而不復背晉者二十有四年. 至哉誠之能感人也.&lt;br /&gt;
&lt;br /&gt;
『수언』3-51 子曰: 春秋王師於諸侯不書敗, 諸侯不能敵王也; 於夷狄不書戰, 夷狄不能抗王也. 此理也. 其敵其抗, 王道之失也.  &lt;br /&gt;
&lt;br /&gt;
『수언』3-52 子旣老門人屢請易傳敎而習之得以親質諸疑. 子曰: 書雖未出而亦未嘗不傳也. 但知之者鮮耳. 其後黨論大興門人弟子散而四歸獨張繹受其書於垂絶之日.&lt;br /&gt;
&lt;br /&gt;
『수언』3-53 子曰: 孟子之時去先王爲未遠其所學於古者比後世爲未缺也. 然而周室班爵祿之制已不聞其詳矣. 今之禮書皆掇拾秦火之餘漢儒所傅會者多矣. 而欲句爲之解字爲之訓固已不可又况一一追故迹而行之乎&lt;br /&gt;
&lt;br /&gt;
『수언』3-54 子曰: 禮儀三千非拂民之欲而强其不能也. 所以防其欲而使之入道也. 多識於鳥獸草木之名非敎人以博雜爲功也. 所以由性情而明理物也. &lt;br /&gt;
&lt;br /&gt;
『수언』3-55 子曰: 讀書者當觀聖人所以作經之意與聖人所以爲聖人而吾之所以未至者求聖人之心而吾之所以未得焉者晝誦而味之中夜而思之平其心易其氣闕其疑其必有見矣. &lt;br /&gt;
&lt;br /&gt;
『수언』3-56 子曰: 詩書之言帝皆有主宰之意者也. 言天皆有涵覆之意者也. 言王皆公共無私之意也. 上下數千年若合符節.” &lt;br /&gt;
&lt;br /&gt;
『수언』3-57 或問: “嚴父配天何以不言武王而曰: 周公其人也.” 子曰: “周家制作皆自乎周公故言禮必歸焉.” &lt;br /&gt;
&lt;br /&gt;
『수언』3-58 或問: “周公旣禱三王而藏其文於金縢之匱中豈逆知成王之信流言將以語之乎?” 子曰: “以近世觀焉祝冊旣用則或焚之或埋之豈周公之時未有焚埋之禮也. 而欲敬其事故若此乎.”&lt;br /&gt;
&lt;br /&gt;
『수언』3-59 子曰: 禁人之惡者獨治其惡而不絶其爲惡之原則終不得止易曰: 豶豕之牙吉見聖人處機會之際也. &lt;br /&gt;
&lt;br /&gt;
『수언』3-60 子曰: 先儒有言乾位西北坤位西南今以天觀之無乎不在何獨有於西北又曰: 乾位在六子而自處於無爲之地夫風雷山澤水火之六物者迺天之用猶人之身耳目口鼻各致其用而曰: 身未嘗有爲也. 則可乎?&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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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3-61 子曰: 盡天理斯謂之易&lt;br /&gt;
&lt;br /&gt;
『수언』3-62 子曰: 作易者自天地幽明至於昆蟲草木之微無一而不合&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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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3-63 子曰: 退之作羑里操曰: 臣罪當誅兮天王聖明可謂知文王之心矣. &lt;br /&gt;
&lt;br /&gt;
『수언』3-64 子曰: 作詩者未必皆聖賢孔子之取也. 取其止於禮義而已然比君以碩鼠目君爲狡童疑於禮義有害也. 不以辭害意可也. &lt;br /&gt;
&lt;br /&gt;
『수언』3-65 子曰: 先儒以考槃不復見君而告之永誓不諼吾心實若是也. 此非君子之心也. 齊梁之君陋矣. 乃若孟子則每有顧戀遲留而不忍去之意今曰: 君一不我用我則永誓而不見也. 豈君子之心哉或曰: 然則爲此詩者何謂也. 子曰: 賢者退而窮處雖去而不忘君然猶慕之深也. 君臣之義猶父子之恩安得不怨故於寤寐而不忘末陳其不得見君而告之又自陳此情之不詐也. 忠厚之至也. &lt;br /&gt;
&lt;br /&gt;
『수언』3-66 子曰: 上古世淳而人朴順事而爲治耳. 至堯始爲治道因事制法著見功迹而可爲典常也. 不惟隨時亦其憂患後世而有作也. 故作史者以典名其書或曰: 大學在止於至善敢問何謂至善&lt;br /&gt;
&lt;br /&gt;
『수언』3-67 子曰: 理義精微不可得而名言也. 姑以至善目之黙識可也.” &lt;br /&gt;
&lt;br /&gt;
『수언』3-68 或問: “中庸九經先尊賢而後親親, 何也?” 子曰: 道孰先於親親然不能尊賢則不知親親之道故堯之治必先克明峻德之人然後以親九族.&lt;br /&gt;
&lt;br /&gt;
『수언』3-69 或曰: 文中子答或人學易之問曰: 終日乾乾可也. 此盡道之言也. 文王之聖純亦不已耳. 子曰: 凡講經義等次推而上之焉有不盡者然理不若是也. 終日乾乾未足以盡易在九三可也. 苟曰: 乾乾者不巳也. 不巳者道也. 道者易也. 等次推而上之疑無不可者然理不若是也. &lt;br /&gt;
&lt;br /&gt;
『수언』3-70 子讀易至履嘆曰: 上下之分明而後民志定民志定而後可以言治也. 古之時公卿大夫而下位各稱其德終身居之得其分也. 有德而位不稱焉則在上者擧而進之士知修其身學成而君求之皆非有預於已也. 四民各勤其事而所享有限故皆有定志而天下之心可一後世自庶士至於公卿日志乎尊榮農工商賈日志乎富侈億兆之心交騖於利而天下紛然欲其不亂難矣. &lt;br /&gt;
&lt;br /&gt;
『수언』3-71 子曰: 農夫勤瘁播種五穀絲麻吾得而衣食之百工技藝作爲器械吾得而用之甲胄之士扞守疆圉吾得而安之惟有修葺聖人之遺言以待後之學者茲爲小補耳.” &lt;br /&gt;
&lt;br /&gt;
『수언』3-72 或問: “制器取諸象也. 而象器以爲卦乎?” 子曰: “象在乎卦而卦不必先器也. 聖人制器不待見卦而後知象以衆人由之而不能知之故設卦以示之耳.” &lt;br /&gt;
&lt;br /&gt;
『수언』3-73 或問: “麟鳳和氣所生太平之應也. 鳳鳥不至孔子曰: 吾已矣. 夫而麟見獲於春秋之季, 何也?” 子曰: “聖人之生乃天地交感五行之秀會也. 以仲尼元聖尙生於春秋之時而况麟乎.”&lt;br /&gt;
&lt;br /&gt;
『수언』3-74 子曰: 論語一書未易讀也. 有旣讀之而漠然如未嘗讀者有得一二而啓悅其心者有通體誠好之者有不知其手之舞之足之蹈之者&lt;br /&gt;
&lt;br /&gt;
『수언』3-75 子曰: 讀論語而不知道所謂雖多奚爲也. 於是有要約精至之言能深窮之而有所見則不難於觀五經矣. &lt;br /&gt;
&lt;br /&gt;
『수언』3-76 子曰: 艮止其所也. 萬物各止其所分無不定矣.&lt;br /&gt;
&lt;br /&gt;
==論政篇==&lt;br /&gt;
『수언』4-1 子曰: 孔子爲政先正名名實相須故也. 一事苟則無不苟者矣. &lt;br /&gt;
&lt;br /&gt;
『수언』4-2 子曰: 善言治者必以成就人才爲急務人才不足雖有良法無與行之矣. 欲成就人才者不患其禀質之不美患夫師學之不明也. 師學不明雖有美質無由成之矣. &lt;br /&gt;
&lt;br /&gt;
『수언』4-3 子曰: 八十四聲各盡其淸濁之極然後可以考中聲聲必本乎律不得乎律則中聲不可得矣. 律者自然之數也. 今世有三命之術以五行支幹納音推之蓋律之遺也. 而用之者末矣. 欲度量權衡之得其正必自律起而律必取於黃鐘以律管定尺蓋準氣乎天地非積秬黍比也. 秬黍積數在先王時惟此物適與度量合故可用也. 今則不可矣. &lt;br /&gt;
&lt;br /&gt;
『수언』4-4 子曰: 養親之心無有極也. 貴貴尊賢之義亦何有極乎?&lt;br /&gt;
&lt;br /&gt;
『수언』4-5 子曰: 古之聖王所以能化姦惡爲善良綏仇敵爲臣子者由弗之絶也. 苟無含洪之道而與己異者一皆弃絶之不幾於棄天下以讐君子乎故聖人無棄物王者重絶人.&lt;br /&gt;
&lt;br /&gt;
『수언』4-6 子與韓公范公泛舟於潁湖有屬吏求見韓公公出已見之退而不悅曰: 謂其以職事來也. 乃求薦擧耳. 子曰: 公爲州太守不能求之顧使人求君乎范公曰: 子之固每若是也. 夫今世之仕者求擧於其人蓋常事耳. 子曰: 是何言也. 不有求者則遺而不及知也. 是以使之求之歟韓公無以語愧且悔者久之子顧范公曰: 韓公可謂服義矣. &lt;br /&gt;
&lt;br /&gt;
『수언』4-7 李籲問: “臨政無所用心求於恕何如?” 子曰: 推此心行恕可也. 用心求恕非也. 恕巳所固有不待求而後得擧此加彼而已.&lt;br /&gt;
&lt;br /&gt;
『수언』4-8 子曰: 事事物物各有其所得其所則安失其所則悖聖人所以能使天下順治非能爲物作則也. 惟止之各於其所而已止之不得其所則無可止之理&lt;br /&gt;
&lt;br /&gt;
『수언』4-9 子曰: 養民者以愛其力爲本民力足則生養遂然後敎化可行風俗可美是故善爲政者必重民力&lt;br /&gt;
&lt;br /&gt;
『수언』4-10 子曰: 爲治而不法三代苟道也. 堯舜不可及已三代之治其可復必也. &lt;br /&gt;
&lt;br /&gt;
『수언』4-11 子曰: 封禪本於祭天後世行之祗以自誇美而已王仲淹曰: 非古也. 其秦漢之侈心乎斯言當矣. 或曰: 周頌告於神明非乎? 子曰: 陳先王之功德而非自誇美也. &lt;br /&gt;
&lt;br /&gt;
『수언』4-12 子曰: 聖人爲戒必於方盛之時方盛慮衰則可以防其滿極而圖其永久至於旣衰而後戒則無及矣. 自古天下之治未有久而不亂者蓋不能戒於其盛也. 狃安富則驕侈生樂舒肆則紀綱壞忘禍亂則釁蘖萌是以浸淫滋蔓而不知亂亡之相尋也. &lt;br /&gt;
&lt;br /&gt;
『수언』4-13 明道在鄠邑政聲流聞當路欲薦之朝而問其所欲對曰: 夫薦士者量才之所堪不問志之所欲.&lt;br /&gt;
&lt;br /&gt;
『수언』4-14 明道守官京兆, 南山有石佛, 放光於頂上, 遠近聚觀, 男女族集, 爲政者畏其神而不敢止. 子使戒其徒曰: “我有官守, 不能往也, 當取其首來觀之耳.” 自是光遂滅, 人亦不復疑也. &lt;br /&gt;
&lt;br /&gt;
『수언』4-15 子曰: 聖人感天下之心如寒暑雨暘無所不通無所不應者正而已矣. 正者虛中無我之謂也. 以有繫之私心膠於一隅主於一事其能廓然通應而無不徧乎&lt;br /&gt;
&lt;br /&gt;
『수언』4-16 子曰: 治蠱必求其所以然則知救之之道又慮其將然則知備之之方夫善救則前弊可革矣. 善備則後利可久矣. 此古聖人所以新天下垂後世之道&lt;br /&gt;
&lt;br /&gt;
『수언』4-17 子曰: 古之人重改作變政易法人心始以爲疑者有之矣. 久而必信乃其改作之善也. 始旣疑之終復不信而能善治者未之有也. &lt;br /&gt;
&lt;br /&gt;
『수언』4-18 子謂子厚曰: 議法旣備必有可行之道子厚曰: 非敢言也. 顧欲載之空言庶有取之者耳. 子曰: 不行於今而後世有行之者亡也. &lt;br /&gt;
&lt;br /&gt;
『수언』4-19 子曰: 聖王爲治修刑罰以齊衆明敎化以善俗刑罰立則敎化行矣. 敎化行而刑措矣. 雖曰: 尙德而不尙刑顧豈偏廢哉&lt;br /&gt;
&lt;br /&gt;
『수언』4-20 子曰: 自古聖人之救難而定亂也. 設施有未暇及焉者旣安之矣. 然後爲可久可繼之治. 自漢而下, 禍亂旣除則不復有爲姑隨時維持而已所以不能髣髴於三代歟!&lt;br /&gt;
&lt;br /&gt;
『수언』4-21 결 1212쪽&lt;br /&gt;
&lt;br /&gt;
『수언』4-22 子曰: 守國者必設險山河之固城郭溝洫之阻特其大端耳. 若夫尊卑貴賤之分明之以等威異之以物采凡所以杜絶陵僭限隔上下者皆險之大用也. &lt;br /&gt;
&lt;br /&gt;
『수언』4-23 子曰: 三代而後漢爲治唐次之漢大綱正唐萬目擧&lt;br /&gt;
&lt;br /&gt;
『수언』4-24 子曰: 戰國之際小國介乎强大之間而足以自持者先王之分界約束未亡故也. 今混一之形如萬頃之澤祖宗涵濡旣久矣. 故人心弭然柔伏雖有姦猾欲起而無端也. &lt;br /&gt;
&lt;br /&gt;
『수언』4-25 子曰: 善爲治者莫善乎靜以守之而或擾之猶風過乎澤波濤洶湧平之實難故一正則難傾一傾則難正者天下之勢也. &lt;br /&gt;
&lt;br /&gt;
『수언』4-26 子曰: 古者使以德爵以功世祿而不世官故賢才衆而庶績成及周之衰公卿大夫皆世官政由是敗矣. &lt;br /&gt;
&lt;br /&gt;
『수언』4-27 子曰: 今責罪官吏無養廉恥之道. 或曰: 何類? 子曰: 如徒流杖使以銅贖之類也. 古者責不廉曰: 簠簋不飭而已忠厚之至也. &lt;br /&gt;
&lt;br /&gt;
『수언』4-28 子曰: 賜進士第使衛士掖之以見天子不若使趍進而雍容也. 大臣孰不由此塗出立侍天子之側曾無愧乎子厚曰: 先示以第名使以次見則亦可矣. &lt;br /&gt;
&lt;br /&gt;
『수언』4-29 有少監逮繫乎越獄. 子曰: 卿監以上無逮繫爲其近於君也. 君有一時之命有司必執常法而不敢從焉君無是命而有司請加之桎梏下則叛法上則無君非之大也. 子厚曰: 獄情不得則如之何? 子曰: 寧獄情之不得而朝廷之大義不可우ᇙ也. &lt;br /&gt;
&lt;br /&gt;
『수언』4-30 子曰: 後世有治獄而無治市周公則有其政矣. 曺參之治齊以獄市爲寄其時爲近古也. &lt;br /&gt;
&lt;br /&gt;
『수언』4-31 子曰: 擧措合義則民心服&lt;br /&gt;
&lt;br /&gt;
『수언』4-32 子曰: 治則有爲治之因亂必有致亂之因在人而已矣.” &lt;br /&gt;
&lt;br /&gt;
『수언』4-33 或問: “敬者威儀儼恪之謂乎?” 子曰: 非也. 是所以成敬之具爾.&lt;br /&gt;
&lt;br /&gt;
『수언』4-34 子曰: 爲政必立善法俾可以垂久而傳遠若後世變之則末如之何矣. &lt;br /&gt;
&lt;br /&gt;
『수언』4-35 子曰: 古之仕者爲人今之仕者爲己.&lt;br /&gt;
&lt;br /&gt;
『수언』4-36 或人謀仕於子, 邑尉責重邑簿責輕. 子曰: 尉能治盜而已不能使民不爲盜簿佐令治邑宜使民不爲盜也. 而謂責輕可乎&lt;br /&gt;
&lt;br /&gt;
『수언』4-37 或曰: 治獄之官不可爲. 子曰: 苟能充其職則一郡無寃民矣. &lt;br /&gt;
&lt;br /&gt;
『수언』4-38 子曰: 立治有體施治有序酌而應之臨時之宜也. &lt;br /&gt;
&lt;br /&gt;
『수언』4-39 子曰: 游文定公之門者多知稽古而愛民誠如是亦可從政矣. &lt;br /&gt;
&lt;br /&gt;
『수언』4-40 결 1214쪽&lt;br /&gt;
&lt;br /&gt;
『수언』4-41 子曰: 今之度量權衡非古法之正也. 姑以爲準焉可耳. 凡物不出於自然必人爲之而後成惟古人能得其自然也. &lt;br /&gt;
&lt;br /&gt;
『수언』4-42 子曰: 明道臨政之邦上下響應蓋有以協和衆情則風動矣. 天地造化風動而已&lt;br /&gt;
&lt;br /&gt;
『수언』4-43 子曰: 今代之稅視什一爲輕矣. 但斂之無法而不均是以疑於重也. &lt;br /&gt;
&lt;br /&gt;
『수언』4-44 子曰: 世未嘗無美材也. 道不明於天下則無與成其材古人之爲詩猶今人之樂曲閭閻童稚皆熟聞而樂道之故通曉其義後世老師宿儒尙未能明也. 何以興於詩乎古禮旣廢人倫不明治家無法祭則不及其祖喪必僧之是用何以立於禮乎古人歌詠以養其性情舞蹈以養其血氣行步有佩玉登車有鸞和無故而不去琴瑟今也. 俱亡之矣. 何以成於樂乎噫古之成材也. 易今之成材也難.&lt;br /&gt;
&lt;br /&gt;
『수언』4-45 晉城縣有令宰書名石明道記之曰: 古者諸侯之國各有史故其善惡皆見乎後世自秦罷侯置守令則史亦從而廢其後惟有功德者或記之循吏與夫凶殘之極者以酷見傳其餘則泯然無聞矣. 如漢唐之有天下皆數百年其間郡縣之政可書宜亦多矣. 然其所書大率纔十數人使賢者之政不幸而無傳其不肖者復幸而得傳蓋其意斯與古史之意異矣. 夫圖治於長久者雖聖賢爲之且不能倉卒苟簡而就盖必本之人情而爲之法度然後可使去惡而從善則紀綱條敎必審定而後行其民之服循漸漬亦必待久而乃淳固而不變今之爲吏三歲而代者固已遲之矣. 使皆知禮義其自始至卽皇皇然圖所設施則敎令未熟民情未孚而吏書已至矣. 儻後之人所志不同復有甚者欲新已之政而盡去其舊則其迹固已無餘而况因循不職者乎夫以易息之政而又無以託其傳則宜其去皆未幾而善惡無聞焉故聞古史之善而不可得則因今有書前政之名氏以爲記者尙近古第其先後而記之俾民觀其名而不忘其政後之人得從而質其是非以爲師戒云爾&lt;br /&gt;
&lt;br /&gt;
『수언』4-46 子曰: 兵以正爲本動衆以毒天下而不以正則民不從而怨敵生亂亡之道也. 是以聖王重焉東征西怨義正故也. 子曰: 行師之道以號令節制行師無法幸而不敗耳. 勝者時有之矣. 聖人之所戒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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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4-47 靑苗之法初行明道時居言職言於上曰: 明者見於未形智者防於未亂安危之本在人情治亂之機係事始衆心暌乖則有言不信矣. 萬邦協和則所爲必成矣. 今條例司劾不行之官駁老成之奏乃擧一偏而盡廢公議因小事而先動衆心難乎其能濟矣. &lt;br /&gt;
&lt;br /&gt;
『수언』4-48 子曰: 唐朝政事付之尙書省近乎六官之制第法不具爾宇文周官名度數小有可觀者也. 隋文之法無不善者而多以臆決故不足以持久.” &lt;br /&gt;
&lt;br /&gt;
『수언』4-49 或問: “孔子何譏大閱曰: 爲國者武備不可廢則農隙而講肄焉有時有制保國守民之道也. 魯之秋八月則夏六月也. 盛夏閱兵妨農害人其失政甚矣. 有警而爲之無及也. 無事而爲之妄動也. 是以聖人不與&lt;br /&gt;
&lt;br /&gt;
『수언』4-50 子曰: 居今之世則當安今之法令治今之世則當酌古以處時制度必一切更張而後可爲也. 亦何義乎&lt;br /&gt;
&lt;br /&gt;
『수언』4-51 子曰: 後漢名節之風旣成未必皆自得也. 然一變可至於道矣. &lt;br /&gt;
&lt;br /&gt;
『수언』4-52 子謂子厚曰: 洛之俗難化於秦之俗. 子厚曰: “秦之士俗尤厚, 亦和叔啓之有力焉. 今而用禮漸成風化矣.” 子曰: “由其氣質之勁勇於行也.” 子厚曰: “亦自吾規矩不迫也.” &lt;br /&gt;
&lt;br /&gt;
『수언』4-53 子曰: 先王以仁義得天下而敎化之後世以智力取天下而糾持之古今之所以相絶者遠矣. &lt;br /&gt;
&lt;br /&gt;
『수언』4-54 子曰: 三代而後有聖王者作必四三王而立制矣. 或曰: 夫子云三重旣備人事盡矣. 而可四乎? 子曰: 三王之治以宜乎今之世則四王之道也. 若夫建亥爲正則事之悖繆者也. &lt;br /&gt;
&lt;br /&gt;
『수언』4-55 子曰: 五帝公天下故與賢三王家天下故與子論善之盡則公而與賢不易之道也. 然賢人難得而爭奪興焉故與子以定萬世是亦至公之法也. &lt;br /&gt;
&lt;br /&gt;
『수언』4-56 子曰: 王氏之敎靡然而同是莫大之患也. 以彼之才之言而行其學故其敎易以入人始也. 以利從久則心化之今而旣安矣. 天下弊事一日而可革若衆心旣定風俗已成其何可遽改也. &lt;br /&gt;
&lt;br /&gt;
『수언』4-57 子曰: 赤子未有知未能言其志意嗜慾未可求而其母知之, 何也?” 愛之至謹出於誠也. 視民如父母之於赤子何失之有&lt;br /&gt;
&lt;br /&gt;
『수언』4-58 子曰: 必井田必肉刑必封建而後天下可爲非聖人之達道也. 善治者放井田而行之而民不病放封建而臨之而民不勞放肉刑而用之而民不怨得聖人之意而不膠其迹迹者聖人因一時之利而利焉者耳. &lt;br /&gt;
&lt;br /&gt;
『수언』4-59 子曰: 治道有自本而言有就事而言自本而言莫大乎引君當道君正而國定矣. 就事而言未有不變而能有爲者也. 大變則大益小變則小補&lt;br /&gt;
&lt;br /&gt;
『수언』4-60 子曰: 苻堅養民而用之一敗不復振無本故也. &lt;br /&gt;
&lt;br /&gt;
『수언』4-61 子曰: 用兵以能聚散爲上&lt;br /&gt;
&lt;br /&gt;
『수언』4-62 子曰: 古無之而今有之者一釋老是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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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4-63 子曰: 有田則有民有民則有兵.&lt;br /&gt;
&lt;br /&gt;
『수언』4-64 侯仲良侍坐語及牛李朋黨事. 子曰: 作成人材難變化人才易元豐諸人其才皆有用繫君相變化之耳. 凡人之情豈甘心以小人自爲也. 在小人者用之於君子則其爲用未必不賢於今之人也. &lt;br /&gt;
&lt;br /&gt;
『수언』4-65 子曰: 治道之要有三曰: 立志責任求賢&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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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4-66 子曰: 賢不肖之在人治亂之在國不可歸之命&lt;br /&gt;
&lt;br /&gt;
『수언』4-67 子曰: 宗子無法則朝廷無世臣立宗子則人知重本朝廷之勢自尊矣. 古者子弟從父兄今也. 父兄從子弟由不知本也. 人之所以順從而不辭者以其有尊卑上下之分而已苟無法以聯屬之可乎?&lt;br /&gt;
&lt;br /&gt;
『수언』4-68 子曰: 漢文誅薄昭李衛公謂誅之是溫公曰: 誅之非考之於史不見所以誅之之故則未知昭有罪漢遣使治之而殺漢使乎抑將與漢使飮酒因怒而致殺也. 誅之不以罪太后憂悒不食而至於大故則如之何如治其罪而殺王朝之使者雖寐不安席食不甘味昭之死不可免必知權其輕重然後可議其誅之當否也. &lt;br /&gt;
&lt;br /&gt;
『수언』4-69 子曰: 論治者貴識體&lt;br /&gt;
&lt;br /&gt;
『수언』4-70 子曰: 治國齊家以至平天下者治之道也. 建立綱紀分正百職順天揆事創制立度以盡天下之務治之法也. 法者道之用也. &lt;br /&gt;
&lt;br /&gt;
『수언』4-71 子曰: 古之時分羲和以職天運以正四時遂司其方主其時政在堯謂之四岳周乃六卿之任統天下之治者也. 後世學其法者不復知其道故星厯爲一技之事而與政分矣. &lt;br /&gt;
&lt;br /&gt;
『수언』4-27 呂進明爲使者河東子問之曰: 爲政何先對曰: 莫要於守法. 子曰: 拘於法而不得有爲者擧世皆是也. 若某之意謂猶有可遷就不害於法而可以有爲者也. 昔明道爲邑凡及民之事多衆人所謂於法有礙焉者然明道爲之未嘗大戾於法人亦不以爲駭也. 謂之得伸其志則不可求小補焉則過之與今爲政遠矣. 人雖異之不至指爲狂也. 至謂之狂則必大駭盡誠爲之不容而後去之又何嫌乎?&lt;br /&gt;
&lt;br /&gt;
『수언』4-73 子移書河東使者呂進明曰: 王者父天母地昭事之道, 當於嚴敬漢武遠祀地ᄜᅰ於汾陰旣非禮矣. 後世之人又建祠宇其失愈甚因唐人有妖人作韋安道傳遂設以配食焉誣瀆惡有大於此者乎公爲使者此而不正尙何爲哉宜以其象投之河流不必請於朝不必詢於衆不必虞後患幸勿疑也. &lt;br /&gt;
&lt;br /&gt;
『수언』4-74 子移書河東帥曰: 公蒞鎭之初僉言交至必曰: 敵旣再犯河外不復來也. 可高枕矣. 此特常言未知奇勝之道也. 夫攻必取者攻其所不守也. 謂其不來乃其所以來也. 今日彼不徒興大衆必不利於河外旣空之地是大不然彼誠得出吾不意破蕩數壘已足以勞敝一道爲利大矣. 何必負戴而歸然後爲利也. 夫謀士悅其寬憂計司幸於緩責衆論旣一公雖未信而上下之心已懈矣. 故爲今之計寧捐力於不用毋惜功而致悔豈獨使敵人知我有備而不來當使內地人信吾可恃而願往則數年之內遂至全實疆場安矣. 此長久之策也. 自古乘塞禦敵必用驍猛招來撫養多在儒將今日之事則異於是某以荷德之深思所報也. 是以有言惟公念之.&lt;br /&gt;
&lt;br /&gt;
==論事篇==&lt;br /&gt;
『수언』5-1 子曰: 行事在審已不必恤浮議恤浮議而忘審已其心馳矣. &lt;br /&gt;
&lt;br /&gt;
『수언』5-2 子曰: 息止也. 生也. 一事息則一事生生息之際無一毫之間碩果不食卽爲復矣. &lt;br /&gt;
&lt;br /&gt;
『수언』5-3 子曰: 久閱事機則機心生方其閱時而喜入其趣則猶物之遺種未有不生者也. &lt;br /&gt;
&lt;br /&gt;
『수언』5-4 子曰: 天下之事無一定之理不進則退不退則進時極道窮理當必變惟聖人爲能通其變於未窮使其不至於極堯舜時也. &lt;br /&gt;
&lt;br /&gt;
『수언』5-5 子曰: 或謂賢者好貧賤而惡富貴是反人之情也. 所以異於人者以守義安命焉耳. &lt;br /&gt;
&lt;br /&gt;
『수언』5-6 或人惡多事. 子曰: 莫非人事也. 人而不爲俾誰爲之&lt;br /&gt;
&lt;br /&gt;
『수언』5-7 子曰: 天下之事苟善處之雖悔可以成功不善處之雖利反以爲害&lt;br /&gt;
&lt;br /&gt;
『수언』5-8 子曰: 人以料事爲明則駸駸乎逆詐而億不信.” &lt;br /&gt;
&lt;br /&gt;
『수언』5-9 或問無妄之道. 子曰: “因事之當然順理而應之.” 或曰: “聖人制作以利天下皆造端而非因也. 豈妄乎?” 子曰: “因風氣之宜未嘗先時而開人也. 如不待時則一聖人足以盡擧又何必累聖繼聖而後備時乃事之端聖人隨時而已.”&lt;br /&gt;
&lt;br /&gt;
『수언』5-10 子曰: 疾而委身於庸醫比之不慈不孝况事親乎舍藥物可也. 是非君子之言也. &lt;br /&gt;
&lt;br /&gt;
『수언』5-11 子曰: 關中學者正禮文乃一時之事爾必也. 修身立敎然後風化及乎後世&lt;br /&gt;
&lt;br /&gt;
『수언』5-12 子曰: 天地之生萬物之成合而後遂天下國家至於事爲之末所以不遂者由不合也. 所以不合者由有間也. 故間隔者天下之大害聖王之所必去也. &lt;br /&gt;
&lt;br /&gt;
『수언』5-13 子曰: 惟篤實可以當大事&lt;br /&gt;
&lt;br /&gt;
『수언』5-14 子曰: 養不全固者處事則不精歷事則不記&lt;br /&gt;
&lt;br /&gt;
『수언』5-15 子曰: 豫備也. 豫逸也. 事豫備故逸樂&lt;br /&gt;
&lt;br /&gt;
『수언』5-16 子曰: 萬變皆在人爾其實無一事&lt;br /&gt;
&lt;br /&gt;
『수언』5-17 子曰: 一世之才足以周一世之事不能大治者由用之不盡耳. &lt;br /&gt;
&lt;br /&gt;
『수언』5-18 子曰: 君子之遇事一於敬而已簡細故以自崇非敬也. 飾私智以爲奇非敬也. &lt;br /&gt;
&lt;br /&gt;
『수언』5-19 子曰: 謝良佐因論求擧於方州與就試於太學得失無以異遂不復計較明且勇矣. &lt;br /&gt;
&lt;br /&gt;
『수언』5-20 子曰: 禮院關天下之事得其人則凡擧事可以攷古而立制非其人未免隨俗而已&lt;br /&gt;
&lt;br /&gt;
『수언』5-21 子曰: 較事大小其弊必至於枉尺直尋&lt;br /&gt;
&lt;br /&gt;
『수언』5-22 子曰: 西邊用師非小故也. 未聞一人勸止其事者自古擧事不以大小必度其是非可否於衆庶而不敢專也. 今雖公卿惟其言而莫違况其下者乎逢合之習如此幾何不至于一言喪邦?&lt;br /&gt;
&lt;br /&gt;
『수언』5-23 子曰: 凡避嫌處事者皆內不足所爲誠公矣. 初何嫌之足避乎?&lt;br /&gt;
&lt;br /&gt;
『수언』5-24 新法將行明道言於上曰: 天下之理本諸簡易而行以順道則事無不成者故曰: 智者如禹之行水行其所無事也. 捨而行之於險阻則不足以言智矣. 自古興治雖有專任獨決能就一時之功者未聞輔弼之論乖臣庶之心戾而能有爲者也. 况於施置失宜沮廢公論國政異出名分不正用賤陵貴以不肖治賢者乎凡此皆理不克成而智者之所不行也. 設令由此僥倖就緖而興利之臣日近尙德之風寖衰非朝廷之福也. 今天時未順地震連年人心日益搖動此陛下所宜仰觀俯察而深念者也. &lt;br /&gt;
&lt;br /&gt;
『수언』5-25 子曰: 至顯莫如事至微莫如理而事理一致也. 微顯一源也. 古之所謂善學以其能通於此而已&lt;br /&gt;
&lt;br /&gt;
『수언』5-26 子曰: 外事之不知非患也. 人患不能自見耳. &lt;br /&gt;
&lt;br /&gt;
『수언』5-27 子曰: 古之强有力者將以行禮今之强有力者將以爲亂&lt;br /&gt;
&lt;br /&gt;
『수언』5-28 子曰: 公天下之事苟以私意爲之斯不公矣. &lt;br /&gt;
&lt;br /&gt;
『수언』5-29 子曰: 閱天下之事至於無可疑亦足樂矣. &lt;br /&gt;
&lt;br /&gt;
『수언』5-30 子曰: 世以隨俗爲和非也. 狥流而已矣. 君子之和和於義&lt;br /&gt;
&lt;br /&gt;
『수언』5-31 子曰: 官守當事不可以苟免&lt;br /&gt;
&lt;br /&gt;
『수언』5-32 子曰: 籩豆簠簋不可用於今之世風氣然也. 不席地而椅桌不手飯而匕筯使其宜於世而未有聖人亦必作之矣. &lt;br /&gt;
&lt;br /&gt;
『수언』5-33 呂申公嘗薦處士常秩秩旣起他日稍變其節申公謂知人實難以語明道且告之悔明道曰: 然不可以是而懈於好賢之心也. 申公矍然謝之. &lt;br /&gt;
&lt;br /&gt;
『수언』5-34 子曰: 事以急而敗者十常七八&lt;br /&gt;
&lt;br /&gt;
『수언』5-35 子曰: 好疑者於事未至而疑端先萌好周者於事未形而周端先著皆心之病也.&lt;br /&gt;
&lt;br /&gt;
==天地篇==&lt;br /&gt;
『수언』6-1 子曰: 霜金氣也. 露星月之氣也. 露結爲霜非也. 雷由陰陽相薄而成蓋沴氣也. &lt;br /&gt;
&lt;br /&gt;
『수언』6-2 子曰: 雨水冰上溫而下寒也. 隕霜不殺草上寒而下溫也. &lt;br /&gt;
&lt;br /&gt;
『수언』6-3 子曰: 日月之爲物陰陽發見之尤盛者也. &lt;br /&gt;
&lt;br /&gt;
『수언』6-4 劉安節問: “人有死於雷霆者, 無乃素積不善, 常歉然於其心, 忽然聞震, 則懼而死乎?” 子曰: “非也, 雷震之也.” “然則雷孰使之乎?” 子曰: “夫爲不善者, 惡氣也; 赫然而震者, 天地之怒氣也, 相感而相遇故也.” 曰: “雷電相因, 何也?” 子曰: “動極則陽形也. 是故鑽木戞竹皆可以得火. 夫二物者, 未嘗有火也, 以動而取之故也. 擊石火出亦然. 惟金不可以得火, 至陰之精也; 然軋磨旣極, 則亦能熱矣, 陽未嘗無也.” &lt;br /&gt;
&lt;br /&gt;
『수언』6-5 或問: “五德之運有諸?” 子曰: 有之大河之患少於唐多於今土火異王也. &lt;br /&gt;
&lt;br /&gt;
『수언』6-6 關子明推占吉凶必言致之之由與處之之道曰: 大哉人謀其與天地相終始乎故雖天命可以人勝也. 善養生者引將盡之年善保國者延旣衰之祚, 有定理也. &lt;br /&gt;
&lt;br /&gt;
『수언』6-7 子曰: 冬至之前天地閉塞可謂靜矣. 日月運行未嘗息也. 則謂之不動可乎故曰: 動靜不相離&lt;br /&gt;
&lt;br /&gt;
『수언』6-8 子曰: 致敬乎鬼神理也. 暱鬼神而求焉斯不知矣. &lt;br /&gt;
&lt;br /&gt;
『수언』6-9 子曰: 陰過之時必害陽小人道盛必害君子欲無害者惟過爲防耳. 弗過防之從或戕之.” &lt;br /&gt;
&lt;br /&gt;
『수언』6-10 或問天帝之異. 子曰: 以形體謂之天以主宰謂之帝以至妙謂之神以功用謂之鬼神以情性謂之乾其實一而已所自而名之者異也. 夫天專言之則道也. &lt;br /&gt;
&lt;br /&gt;
『수언』6-11 子曰: 天地所以不已有常久之道也. 人能常於可久之道則與天地合.” &lt;br /&gt;
&lt;br /&gt;
『수언』6-12 或問: “日月有定形乎抑氣散而復聚也.” 子曰: 難言也. 然究其極致則二端一而已.&lt;br /&gt;
&lt;br /&gt;
『수언』6-13 范蜀公謂鬼神之際, 曰: “佛氏謂生爲此, 死爲彼, 無是理也.” 子曰: “公無惑, 則有是言也.” 蜀公曰: “鬼神影響, 則世有之.” 子曰: “公有所見, 則無是言也.” &lt;br /&gt;
&lt;br /&gt;
『수언』6-14 子曰: 卜筮在我, 而應之者蓍龜也; 祭祀在我, 而享之者鬼神也. 夫豈有二理哉? 亦一人之心而已. 卜筮者以是心求之, 其應如響; 狥以私意及顚錯卦象而問焉; 未有能應者, 蓋無其理也. 古之言事鬼神者, 曰如有聞焉, 如有見焉, 則是鬼神答之矣, 非眞有見聞也. 然則如有見聞者, 誰歟?&lt;br /&gt;
&lt;br /&gt;
『수언』6-15 子曰: 天聰明自我民聰明言理無二也. 若夫天之所爲人之所能則各有分矣. &lt;br /&gt;
&lt;br /&gt;
『수언』6-16 子曰: 天地之心以復而見聖人未嘗復故未嘗見其心&lt;br /&gt;
&lt;br /&gt;
『수언』6-17 子曰: 天地之道至順而已矣. 大人先天不違亦順理而已矣.” &lt;br /&gt;
&lt;br /&gt;
『수언』6-18 或問鬼神之有無. 子曰: 吾爲爾言無則聖人有是言矣. 爲爾言有爾得不於吾言求之乎&lt;br /&gt;
&lt;br /&gt;
『수언』6-19 子曰: 天地之間感應而已尙復何事&lt;br /&gt;
&lt;br /&gt;
『수언』6-20 子曰: 日月之在天如人之有目目無背見日月無背照也. &lt;br /&gt;
&lt;br /&gt;
『수언』6-21 子曰: 氣化之在人與在天一也. 聖人於其間有功用而已&lt;br /&gt;
&lt;br /&gt;
『수언』6-22 子曰: 天地日月其理一致月受日光而不爲之虧月之光乃日之光也. 地氣不上騰天氣不下降天氣下降至於地中生育萬物者乃天之氣也.” &lt;br /&gt;
&lt;br /&gt;
『수언』6-23 或問: “日食有常數者也. 然治世少而亂世多豈人事乎? 子曰: 天人之理甚微非燭理明其孰能識之曰: 無迺天數人事交相勝負有多寡之應耶? 子曰: 似之未易言也. &lt;br /&gt;
&lt;br /&gt;
『수언』6-24 子曰: 君子宜獲福於天而有貧瘁夭折者氣之所鍾有不周耳. &lt;br /&gt;
&lt;br /&gt;
『수언』6-25 子曰: 天地陰陽之運, 升降盈虛, 未嘗暫息. 陽常盈, 陰常虧, 一盈一虧, 參差不齊, 而萬變生焉. 故曰: ‘物之不齊, 物之情(也).’ 莊周强齊之, 豈能齊也? &lt;br /&gt;
&lt;br /&gt;
『수언』6-26 或謂張繹曰: 吾至於閒靜之地則洒然心悅吾疑其未善也. 繹以告子. 子曰: 然社稷宗廟之中不期敬而自敬是平居未嘗敬也. 使平居無不敬則社稷宗廟之中何敬之改修乎然則以靜爲悅者必以動爲厭方其靜時所以能悅靜之心又安在哉.” &lt;br /&gt;
&lt;br /&gt;
『수언』6-27 或問: “人多惑於鬼神怪異之說, 何也?” 子曰: “不明理故也. 求之於事, 事則奚盡? 求之於理則無蔽, 故君子窮理而已.”&lt;br /&gt;
&lt;br /&gt;
『수언』6-28 子曰: 古今異宜人有所不便者風氣之異也. 日月星辰皆氣也. 亦自異於古耳. 月何食不受日光也. 何爲不受與日相當陰盛抗陽不下於日也. 古者皷以救日月之食然則月之食亦可皷者以其助陽歟&lt;br /&gt;
&lt;br /&gt;
『수언』6-29 子曰: 五祀非先王之典以爲報邪則遺其重而擧其輕者夫門之用顧大於井之功乎祭門而不祭井何說也. &lt;br /&gt;
&lt;br /&gt;
『수언』6-30 子曰: 當大震懼能自安而不失者惟誠敬而已&lt;br /&gt;
&lt;br /&gt;
『수언』6-31 子曰: 靜動者陰陽之本也. 五氣之運則參差不齊矣. &lt;br /&gt;
&lt;br /&gt;
『수언』6-32 子曰: 史遷曰: 天與善人伯夷善人非耶此以私意度天道也. 必曰: 顔何爲而夭跖何爲而壽指一人而較之非知天者也. &lt;br /&gt;
&lt;br /&gt;
『수언』6-33 子曰: 有理則有氣有氣則有數鬼神者數也. 數者氣之用也. &lt;br /&gt;
&lt;br /&gt;
『수언』6-34 或謂: “殺孝婦而旱, 豈非衆寃所感邪?” 子曰: “衆心固寃之耳, 而一人之精誠, 自足以動天地也.” “然則殺暴姑而雨, 豈婦寃旣釋邪?” 子曰: “寃氣固散矣, 而衆心之憤亦平也.” &lt;br /&gt;
&lt;br /&gt;
『수언』6-35 子曰: 天地之間善惡均於覆載未嘗有意於簡別也. 顧處之有道耳. 聖人卽天地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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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6-36 子曰: 天地之化雖蕩蕩無窮然陰陽之度寒暑晝夜之變莫不有常久之道所以爲中庸也. &lt;br /&gt;
&lt;br /&gt;
『수언』6-37 子曰: 萬物皆本乎天人本乎祖故以冬至祭天而祖配之以冬至者氣至之始也. 萬物成形於帝人成形於父故以季秋享帝而父配之以季秋者物成之時也. &lt;br /&gt;
&lt;br /&gt;
『수언』6-38 子曰: 事鬼神易, 爲尸難. 孝子有思親之心, 以至誠持之, 則可盡其道矣. 惟尸象神, 祖考所以來格者也. 後世巫覡, 蓋尸之遺意, 但流爲僞妄, 不足以通幽明矣. 致神必用尸, 後世直以尊卑, 勢遂不行, 三代之末, 亦不得已焉而廢耳. &lt;br /&gt;
&lt;br /&gt;
『수언』6-39 子曰: 物之名義與氣理通貫天之所以爲天本何爲哉蒼蒼焉耳矣. 其所以名之曰: 天蓋自然之理也. 名出於理音出於氣字書由是不可勝窮矣. &lt;br /&gt;
&lt;br /&gt;
『수언』6-40 子曰: 陰陽之氣有常存而不散者日月是也. 有消長而無窮者寒暑是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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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6-41 子曰: 天理生生相續不息無爲故也. 使竭智巧而爲之未有能不息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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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6-42 子曰: 在此而夢彼, 心感通也; 已死而夢見, 理感通也. 明乎感通, 則何遠近死生今古之別哉? 楊定鬼神之說, 其能外是乎?&lt;br /&gt;
&lt;br /&gt;
『수언』6-43 子曰: 老氏言虛能生氣非也. 陰陽之開闔相因無有先也. 無有後也. 可謂今日有陽而後明日有陰則亦可謂今日有形而後明日有影也.” &lt;br /&gt;
&lt;br /&gt;
『수언』6-44 或問: “天地何以不與聖人同憂也.” 子曰: 天地不宰而成化聖人有心而無爲.&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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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6-45 子曰: 天地生物之氣象可見而不可言善觀於此者必知道也.&lt;br /&gt;
&lt;br /&gt;
==聖賢篇== &lt;br /&gt;
『수언』7-1 或問: “聖人有過乎?” 子曰: 聖人而有過則不足以爲聖人矣. 曰: 夫子學易而後無大過者何謂也. 子曰: 非是之謂也. 猶刪詩定書正樂之意也. 自期年至於五十然後乃贊易則易道之過誤者鮮矣. 曰: 易亦有過乎曰: 如八索之類亂易者多矣. &lt;br /&gt;
&lt;br /&gt;
『수언』7-2 子曰: 聖人之道猶天然門弟子親炙而冀及之然後知其高且遠也. 使誠若不可及則趨向之心不幾於怠乎故聖人之敎常俯而就之曰: 吾無隱乎耳. 吾非生知好古敏以求之者也. 非獨使資質庸下者勉思企及而才氣高邁者亦不敢躐等而進也. &lt;br /&gt;
&lt;br /&gt;
『수언』7-3 子曰: 損益文質隨時之宜三王之法也. 孔子告顔淵爲邦者萬世不易之法也. &lt;br /&gt;
&lt;br /&gt;
『수언』7-4 子曰: 孟子論子濯孺子之事特曰: 不背師可稱也. 非言事君之道也. 事君而若此不忠之大也. &lt;br /&gt;
&lt;br /&gt;
『수언』7-5 子曰: 齊桓之正正擧其事爾非大正也. 管子之仁仁之功爾非至仁也.” &lt;br /&gt;
&lt;br /&gt;
『수언』7-6 或問泰伯之三讓. 子曰: 不立一也. 逃焉二也. 文身三也.&lt;br /&gt;
&lt;br /&gt;
『수언』7-7 或問: “趙盾越境果可免乎?” 子曰: 越境而反且不討賊猶不免也. 必曰: 越境而不反然後可免耳. &lt;br /&gt;
&lt;br /&gt;
『수언』7-8 子曰: 泰山雖高矣. 絶頂之外無預乎山也. 唐虞事業自堯舜觀之亦猶一點浮雲過於太虛耳. &lt;br /&gt;
&lt;br /&gt;
『수언』7-9 子曰: 桓魋不能害己孔子知矣. 乃微服過宋象將殺己舜知之矣. 乃同其憂喜饑溺而死有命焉而禹稷必救之國祚脩短有數焉而周公必祈之知性命並行而不相悖然後明聖人之用&lt;br /&gt;
&lt;br /&gt;
『수언』7-10 子曰: 顔回在陋巷淡然進德其聲氣若不可聞者有孔子在焉若孟子安得不以行道爲己任哉.” &lt;br /&gt;
&lt;br /&gt;
『수언』7-11 或問: “聖人亦有爲貧之仕乎?” 子曰: “爲委吏乘田是也.” 或曰: “亦爲之兆乎?” 曰: “非也. 爲魯司寇則爲之兆也.” 或人因以是勉子從仕. 子曰: “至於饑餓不能出門戶之時又徐爲之謀耳.” &lt;br /&gt;
&lt;br /&gt;
『수언』7-12 子曰: 子厚之氣似明道&lt;br /&gt;
&lt;br /&gt;
『수언』7-13 子曰: 天子之職守宗廟而堯舜以天下與人諸侯之職守社稷而大王委去之惟聖賢乃與於此學者守法可也. &lt;br /&gt;
&lt;br /&gt;
『수언』7-14 子曰: 聖賢在上天下未嘗無小人也. 能使小人不敢肆其惡而已夫小人之本心亦未嘗不知聖賢之可說也. 故四凶立堯朝必順而聽命聖人豈不察其終出於惡哉亦喜其面革畏罪而已苟誠信其假善而不知其包藏則危道也. 是以雖堯舜之盛於此未嘗無戒戒所當戒也.” &lt;br /&gt;
&lt;br /&gt;
『수언』7-15 或問: “伐國不問仁人然則古之人不伐國其伐者皆非仁人乎?” 子曰: “展禽之時諸侯以土地之故暴民逞欲不義之伐多矣. 仁人所不忍見也. 况忍言之乎昔武王伐紂則無非仁人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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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7-16 子曰: 强者易抑子路是也. 弱者難彊宰我是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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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7-17 子曰: 信一也. 而有淺深七十子聞一言於仲尼則終身守之而未必知道此信於人者也. 若夫自信孰得而移之&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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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7-18 劉安節問曰: “志篤於善而夢其事者, 正乎? 不正?” 子曰: “是亦心動也.” 曰: “孔子夢見周公, 何也?” 子曰: “聖人無非誠夢亦誠不夢亦誠夢則有矣. 夢見周公則有矣. 亦豈寢而必夢夢而必見周公歟?”&lt;br /&gt;
&lt;br /&gt;
『수언』7-19 子語楊廸曰: 近所講問設端多矣. 而不識大槩夫二三子豈皆智不足以知之由不能自立於衆說漂照之間耳. 信不篤故也. 仲尼之門人其所見非盡能與聖人同也. 惟不敢執已而惟師之信故求而後得夫信而加思乃致知之方也. 若紛然用疑終亦必亡而已矣.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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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7-20 子曰: 其亡其亡繫於苞桑漢王允唐李德裕功未及成而禍敗從之者不知苞桑之戒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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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7-21 李觀有言使管仲而未死內嬖復六人何傷桓公之伯乎? 子曰: “管仲爲國政之時齊侯之心未蠱也. 旣蠱矣. 雖兩管仲將如之何未有蠱心於女色而盡心於用賢也.” &lt;br /&gt;
&lt;br /&gt;
『수언』7-22 或問: “郭璞以鳩占何理也.” 子曰: “擧此意向此事則有此兆象矣. 非鳩可占也. 使鳩可占非獨鳩也.” &lt;br /&gt;
&lt;br /&gt;
『수언』7-23 或問: “孔子不幸而遇害於匡則顔子死之可乎不可乎?” 子曰: “今有二人相與遠行則患難有相死之道况回於夫子乎曰: 親在則可乎?” 子曰: “今有二人相與搏虎其致心悉力義所當然也. 至於危急之際顧曰: 吾有親則舍而去之是不義之大者也. 其可否當預於未行之前不當臨難而後言也. 曰: 父母存不許友以死則如此義何? 子曰: 有可者遠行搏虎之譬也. 有不可者如游俠之徒以親旣亡乃爲人報仇而殺身則亂民也. &lt;br /&gt;
&lt;br /&gt;
『수언』7-24 子曰: 知幾者君子之獨見非衆人所能及也. 穆生爲酒醴而去免於胥靡之辱姜肱爲土室之隱免於黨錮之禍薛山守箕山之節免於新室之汙其知幾矣. &lt;br /&gt;
&lt;br /&gt;
『수언』7-25 子曰: 漢世之賢良擧而後至若公孫弘猶强起之者今則求擧而自進也. 抑曰: 欲廷對天子之問言天下之事猶之可也. 苟志於科目之美爲進取之資而已得則肆失則沮肆則悅沮則悲不賢不良孰加於此&lt;br /&gt;
&lt;br /&gt;
『수언』7-26 子曰: 守節秉義而才不足以濟天下之難者李固王允周顗王導之徒是已.&lt;br /&gt;
&lt;br /&gt;
『수언』7-27 劉安節問高宗得傅說於夢何理也. 子曰: “其心求賢輔雖寤寐不忘也. 故精誠旣至則兆見乎夢文王卜獵而獲太公亦猶是也. 曰: 豈夢之者往乎抑見夢之者來乎曰: 猶之明鑑有物必鑑豈可謂與鑑物有往來哉.” &lt;br /&gt;
&lt;br /&gt;
『수언』7-28 或問: “周公欲代武王之死其有是理邪抑曰: 爲之命邪? 子曰: 其欲代其兄之死也. 發於至誠而奚命之論然則在聖人則有可移之理也. &lt;br /&gt;
&lt;br /&gt;
『수언』7-29 子曰: 聖賢於亂世雖知道之將廢不忍坐視而不救也. 必區區致力於未極之間强此之衰難彼之進圖其暫安而冀其引久苟得爲之孔孟之屑爲也. 王允之於漢謝安之於晉亦其庶矣. &lt;br /&gt;
&lt;br /&gt;
『수언』7-30 子曰: 仲尼無迹顔子之迹微顯孟子之迹著見.&lt;br /&gt;
&lt;br /&gt;
『수언』7-31 子曰: 顔子示不違如愚之學於後世和氣自然不言而化者也. 孟子則顯其才用蓋亦時焉而已矣. 學者以顔子爲師則於聖人之氣象類矣. &lt;br /&gt;
&lt;br /&gt;
『수언』7-32 子曰: 古人以兄弟之子猶子也. 而人自以私意小智觀之不見其猶也. 或謂孔子嫁其女異於兄弟之女是又以私意小智觀之不知聖人之心也. 夫孔子蓋以因其年德相配而歸之何避嫌之有避嫌之事賢者且不爲而况聖人乎&lt;br /&gt;
&lt;br /&gt;
『수언』7-33 子曰: 陳平言宰相之職近乎有學&lt;br /&gt;
&lt;br /&gt;
『수언』7-34 子曰: 顔子非樂簞瓢陋巷也. 不以貧累其心而改其所樂也. &lt;br /&gt;
&lt;br /&gt;
『수언』7-35 子曰: 伯夷不食周粟其道雖隘而又能不念舊惡其量亦宏朱光庭問周公仰而思之者其果有所合乎&lt;br /&gt;
&lt;br /&gt;
『수언』7-36 子曰: 周公固無不合者矣. 如其有之則必若是其勤勞而不敢已也. &lt;br /&gt;
&lt;br /&gt;
『수언』7-37 子曰: 游酢楊時始也. 爲佛氏之學旣而知不足安也. 則來有所請庶乎其能變&lt;br /&gt;
&lt;br /&gt;
『수언』7-38 謝良佐旣見明道退而門人問曰: 良佐何如? 子曰: 其才能廣而充之吾道有望矣. &lt;br /&gt;
&lt;br /&gt;
『수언』7-39 子曰: 顔子虛中受道子貢億度而知之&lt;br /&gt;
&lt;br /&gt;
『수언』7-40 子曰: 子厚堯夫之學善自開大者也. 堯夫細行或不謹而其卷舒運用亦熟矣. &lt;br /&gt;
&lt;br /&gt;
『수언』7-41 子曰: 邦無道而自晦以免患可以爲智矣. 而比干則非不知也. &lt;br /&gt;
&lt;br /&gt;
『수언』7-42 子曰: 顔孟知之所至則同至於淵彛溫淳則未若顔子者&lt;br /&gt;
&lt;br /&gt;
『수언』7-43 子曰: 觀武帝問賢良禹湯水旱厥咎何由公孫弘曰: 堯遭洪水不聞禹世之有洪水也. 而不對所由姦人也. &lt;br /&gt;
&lt;br /&gt;
『수언』7-44 子曰: 堯舜生而知之者也. 湯武學而至之者也. 文之德似堯舜禹之德似湯武雖然皆聖人也. &lt;br /&gt;
&lt;br /&gt;
『수언』7-45 子曰: 身之言履也. 反之言歸乎正也. &lt;br /&gt;
&lt;br /&gt;
『수언』7-46 子曰: 仲尼元氣也. 顔子猶春生也. 孟子則兼秋殺見之矣. &lt;br /&gt;
&lt;br /&gt;
『수언』7-47 子曰: 學聖人者必觀其氣象鄕黨所載善乎其形容也. 讀而味之想而存之如見乎其人&lt;br /&gt;
&lt;br /&gt;
『수언』7-48 子曰: 魯衛齊梁之君不足與有爲孔孟非不知也. 然自任以道則無不可爲者也. &lt;br /&gt;
&lt;br /&gt;
『수언』7-49 子曰: 顔子具體顧微耳. 在充之而已孟子生而大全顧未粹耳. 在養之而已&lt;br /&gt;
&lt;br /&gt;
『수언』7-50 子曰: 傳聖人之道以篤實得之者曾子是也. 易簀之際非幾於聖者不及也. 推此志也. 禹稷之功其所優爲也. &lt;br /&gt;
&lt;br /&gt;
『수언』7-51 子曰: 聖人無夢氣淸也. 愚人多夢氣昏也. 孔子夢周公誠也. 蓋誠爲夜夢之影也. 學者於此亦可驗其心志之定否操術之邪正也. &lt;br /&gt;
&lt;br /&gt;
『수언』7-52 子曰: 周勃入北軍問士卒如有右袒將何處哉已知其心爲劉氏者不必問也. 當是之時非陳平爲之謀亦不能濟矣. 迎文帝於霸橋而請問則非其時見河東守尉於其國而嚴兵則非其事, 幾於無所能者, 由不知學也. &lt;br /&gt;
&lt;br /&gt;
『수언』7-53 子曰: 仲尼渾然乃天地也. 顔子粹然猶和風慶雲也. 孟子巖巖然猶泰山北斗也. &lt;br /&gt;
&lt;br /&gt;
『수언』7-54 周茂叔曰: “荀卿不知誠.” 子曰: “旣誠矣. 尙何事於養心哉?”&lt;br /&gt;
&lt;br /&gt;
『수언』7-55 子曰: 王仲淹隱德君子也. 其書有格言非其自著也. 續之者勦入其說耳. 所謂售僞必假眞也. 通之所得粹矣. 非荀揚所及續經其僞益甚矣. 自漢以來制詔之足紀者寡矣. 晉宋以後詩之足采者微矣. &lt;br /&gt;
&lt;br /&gt;
『수언』7-56 孫覺問孔明何如人也. 子曰: 王佐曰: 然則何以區區守一隅不能大有爲於天下也. 子曰: 孔明欲定中原與先主有成說矣. 不及而死天也. 曰: 聖賢殺一不辜而得天下則不爲孔明保一國殺人多矣. 子曰: 以天下之力誅天下之賊義有大於殺也. 孔子請討陳恒使魯用之能不戮一人乎曰: 三國之興孰爲正. 子曰: 蜀之君臣志在興復漢室正矣. &lt;br /&gt;
&lt;br /&gt;
『수언』7-57 子曰: 楊墨學仁義而失之者則後之學者有不爲仁義者則其失豈特楊墨哉&lt;br /&gt;
&lt;br /&gt;
『수언』7-58 子曰: 與巽之語聞而多礙者先入也. 與與叔語宜礙而信者致誠也. &lt;br /&gt;
&lt;br /&gt;
『수언』7-59 子曰: 君子正已而無恤乎人沙隨之會晉侯怒成公後期而不見魯當是時國家有難彼曲我直君子不以爲耻也. &lt;br /&gt;
&lt;br /&gt;
『수언』7-60 子曰: 世云漢高能用子房非也. 子房用漢高耳. &lt;br /&gt;
&lt;br /&gt;
『수언』7-61 子曰: 揚子雲去就無足觀其曰: 明哲煌煌旁燭無疆則悔其蹈亂無先知之明也. 其曰: 遜于不虞以保天命則欲以苟容爲全身之道也. 使彼知聖賢見幾而作其及是乎苟至於無可奈何則區區之命亦安足保也. &lt;br /&gt;
&lt;br /&gt;
『수언』7-62 子曰: 堯夫襟懷放曠如空中樓閣四通八達也. &lt;br /&gt;
&lt;br /&gt;
『수언』7-63 子曰: 揚子雲之過非必見於美新投閣也. 夫其黽勉莽賢之間而不能去是安得爲大丈夫哉&lt;br /&gt;
&lt;br /&gt;
『수언』7-64 子曰: 韓信多多益辦分數明而已&lt;br /&gt;
&lt;br /&gt;
『수언』7-65 子曰: 君實謂其應世之具猶藥之參苓也. 可以補養和平不可以攻治沉痼自處如是必有救之之術矣.” &lt;br /&gt;
&lt;br /&gt;
『수언』7-66 或問: “舜能化瞽象於不格姦而何爲不能化商均也. 子曰: 舜以天下與人必得如己者故難於商均之惡豈聞如瞽象之甚焉&lt;br /&gt;
&lt;br /&gt;
『수언』7-67 子曰: 張良進退出處之際皆有理蓋儒者也. &lt;br /&gt;
&lt;br /&gt;
『수언』7-68 子曰: 孔門善問無若顔子而乃終日如愚無所問也. &lt;br /&gt;
&lt;br /&gt;
『수언』7-69 子曰: 司馬君實能受盡言故與之言必盡&lt;br /&gt;
&lt;br /&gt;
『수언』7-70 子曰: 顔子黙識曾子篤實得聖人之道者二子也. &lt;br /&gt;
&lt;br /&gt;
『수언』7-71 或謂: “顔子爲人殆怯乎?” 子曰: 孰勇於顔子. 顔子曰: 舜何人也. 予何人也. 有爲者亦若是有而若無實而若虛孰勇於顔子.” &lt;br /&gt;
&lt;br /&gt;
『수언』7-72 或問: “漢文多灾異漢宣多祥瑞, 何也?” 子曰: 如小人日行不善人不以爲言君子一有不善則羣起而議之一道也. 白者易汙全者易毁一道也. 以風雅考之幽王大惡爲小惡宣王小惡爲大惡一道也. &lt;br /&gt;
&lt;br /&gt;
『수언』7-73 子曰: 孟子言已志有德之言也. 論聖人之事造道之言也. &lt;br /&gt;
&lt;br /&gt;
『수언』7-74 子曰: 子貢之知亞於顔子知之而未能至之者也.” &lt;br /&gt;
&lt;br /&gt;
『수언』7-75 或問: “伊尹出處有似乎孔子而非聖之時, 何也?” 子曰: 其任也. 氣象勝.&lt;br /&gt;
&lt;br /&gt;
『수언』7-76 子曰: 人有顔子之德則有孟子之事功孟子之事功與禹稷並. &lt;br /&gt;
&lt;br /&gt;
『수언』7-77 或問: “孟子何以能知言?” 子曰: 譬之坐乎堂上則其辨堂下之聲如絲竹也. 苟雜處乎衆言之間羣音囂囂然已且不能自明尙何暇他人之知乎&lt;br /&gt;
&lt;br /&gt;
『수언』7-78 子曰: 孔子爲宰爲陪臣皆可以行大道若孟子必得賓師之位而後行也. &lt;br /&gt;
&lt;br /&gt;
『수언』7-79 子曰: 明叔明辨有才氣其於世務練習蓋美才也. 其學晩溺於佛所謂日月至焉而已者豈不可惜哉.&lt;br /&gt;
&lt;br /&gt;
『수언』7-80 游酢得西銘誦之則渙然於心曰: 此中庸之理也. 能求於語言之外也. &lt;br /&gt;
&lt;br /&gt;
『수언』7-81 子曰: 和叔任道風力甚勁而深潛鎭密則於與叔不逮.&lt;br /&gt;
&lt;br /&gt;
『수언』7-82 鮮于侁問曰: 顔子何以能不改其樂. 子曰: 知其所樂則知其不改謂其所樂者何樂也. 曰: 樂道而已. 子曰: 使顔子以道爲可樂而樂乎則非顔子矣. 他曰: 侁以語鄒浩, 浩曰: 吾雖未識夫子而知其心矣. &lt;br /&gt;
&lt;br /&gt;
『수언』7-83 或謂佛氏引人入道比之孔子爲徑直乎? 子曰: 果其徑也. 則仲尼豈固使學者迂曲其所行而難於有至哉故求徑途而之大道是猶冐險阻披荊棘以祈至於四達之衢爾&lt;br /&gt;
&lt;br /&gt;
『수언』7-84 孟子曰: 可以仕則仕可以止則止可以久則久可以速則速孔子也. 孔子聖之時者也. 知易者莫如孟子矣. 孟子曰: 王者之迹熄而詩亡詩亡然後春秋作春秋天子之事也. 知春秋者莫如孟子矣. &lt;br /&gt;
&lt;br /&gt;
『수언』7-85 子曰: 孔子之道著見於行如鄕黨之所載者自誠而明也. 由鄕黨之所載而學之以至於孔子者自明而誠也. 及其至焉一也. &lt;br /&gt;
&lt;br /&gt;
『수언』7-86 子曰: 聞善言則拜者禹之所以爲聖也. 以能問於不能者顔子之所以爲賢也. 後之學者有一善則充然而自足哀哉.” &lt;br /&gt;
&lt;br /&gt;
『수언』7-87 或問: “舜不告而娶爲無後也. 而於拂父母之心孰重? 子曰: 非直不告也. 告而不可然後堯使之娶耳. 堯以君命命瞽瞍舜雖不告堯固告之矣. 在瞽瞍不敢違而在舜爲可娶也. 君臣父子夫婦之道於是乎皆得曰: 然則象將殺舜而堯不治焉, 何也? 子曰: 象之欲殺舜無可見之迹發人隱慝而治之非堯也. &lt;br /&gt;
&lt;br /&gt;
『수언』7-88 子曰: 伊尹之耕於莘傅說之築於巖天下之事非一一而學之天下之賢才非人人而知之也. 明其在我者而已&lt;br /&gt;
&lt;br /&gt;
『수언』7-89 子曰: 董子有言仁人正其誼不謀其利明其道不計其功度越諸子遠矣. &lt;br /&gt;
&lt;br /&gt;
『수언』7-90 或問: “陋巷貧賤之人亦有以自樂何獨顔子?” 子曰: 貧賤而在陋巷俄然處富貴則失其本心者衆矣. 顔子簞瓢由是萬鍾由是&lt;br /&gt;
&lt;br /&gt;
『수언』7-91 子曰: 有學不至而言至者循其言可以入道門人曰: 何謂也. 子曰: 眞積力久則入荀ᄯᅦᆫ之言也. 優而柔之使自求之饜而飫之使自趨之若江河之浸膏澤之ᄽᅮ渙然冰釋怡然理順杜預之言也. 思之思之又重思之思而不通鬼神將通之非鬼神之力也. 精誠之積也. 管子之言也. 此三者循其言皆可以入道而三子初不能及此也. &lt;br /&gt;
&lt;br /&gt;
『수언』7-92 子曰: 孔子敎人各因其才有以文學入者有以政事入者有以言語入者有以德行入者&lt;br /&gt;
&lt;br /&gt;
『수언』7-93 子曰: 老氏之言雜權詐秦愚黔首其術蓋有所自.” &lt;br /&gt;
&lt;br /&gt;
『수언』7-94 或問: “高宗之於傅說文王之於太公知之素矣. 恐民之未信也. 故假夢卜以重其事. 子曰: 然則是僞也. 聖人無僞&lt;br /&gt;
&lt;br /&gt;
『수언』7-95 子曰: 盟可用要之則不可用要而盟與不盟同使要盟而可用則賣國背君亦可要也. 是故孔子舍蒲人之約而卒適衛&lt;br /&gt;
&lt;br /&gt;
『수언』7-96 子曰: 顔子之怒在物而不在已故不遷&lt;br /&gt;
&lt;br /&gt;
『수언』7-97 子曰: 仲尼之門不仕於大夫之家惟顔閔曾子數人而已.” &lt;br /&gt;
&lt;br /&gt;
『수언』7-98 或問: “小白子糾孰長?” 子曰: “小白長.” “何以知之?” 子曰: “漢史不云乎齊桓殺其弟蓋古之傳者云爾有如子糾兄也. 管仲輔之爲得正小白旣奪其國而又殺之則管仲之與桓公乃不與同世之仇也. 若計其後功而與其事桓聖人之言無乃甚害於義而啓後世反復不忠之患乎?”&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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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7-99 子曰: 生而知之者謂理也. 義也. 若古今之故非學不能知也. 故孔子問禮樂訪官名而不害乎生知也. 禮樂官名其文制有舊非可鑿知而苟爲者&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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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7-100 子曰: 人所不可能者聖人不爲也. 或曰: 周公能爲人臣所不能爲陋哉斯言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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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7-101 子曰: 荀子謂博聞廣見可以取道欲力行堯舜之所行其所學皆外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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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7-102 子曰: 工尹商陽追吳師旣及之而曰: 我朝不坐宴不與殺三人足以反命夫商陽惟當致力君命而乃行私情於其間慢莫甚焉孔子蓋不與也. 其曰: 殺人之中又有禮焉蓋記禮者之謬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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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7-103 子曰: 曾子易簀之際志於正而已矣. 無所慮也. 與行一不義殺一不辜而得天下不爲者同心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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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7-104 子曰: 孔子之道得其傳者曾子而已矣. 時門弟子才辯明智之士非不衆也. 而傳聖人之道者乃質魯之人也. 觀易簀之事非幾於聖者不足以臻此繼其傳者有子思則可見矣.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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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7-105 劉安節問孔子未嘗以仁許人而稱管仲曰: 如其仁, 何也?” 子曰: 闡幽之道也. 子路以管仲不死於子糾爲未仁其言仲者小矣. 是以聖人推其有仁之功或抑或揚各有攸當聖人之言類如此學者自得可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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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7-106 子曰: 在邦家而無怨聖人發明仲弓使之知仁也. 然在家而有怨者焉舜是也. 在邦而有怨者焉周公是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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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7-107 子曰: 堯舜孔子語其聖則不異語其事功則有異&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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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7-108 子曰: 象憂喜舜亦憂喜天理人情之至也. 舜之於象周公之於管叔其用心一也. 管叔初未嘗有惡使周公逆度其兄將畔而不使是誠何心哉惟管叔之畔非周公所能知也. 則其過有所不免矣.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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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7-109 子曰: 齊王欲養弟子以萬鍾使夫國人有所矜式其心善矣. 於孟子有可處之義也. 然時子以利誘孟子門人故孟子曰: 我非欲富也. 如其欲富則辭十萬而受萬乎故當知孟子非不肯爲國人矜式者特不可以利誘耳.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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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7-110 子曰: 不已則無間天之道也. 純則不二文王之德也. 文王其猶天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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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7-111 或問: “莊周何如?” 子曰: 其學無禮無本然形容道理之言則亦有善者&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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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7-112 子曰: 世之博聞强識者衆矣. 其終未有不入於禪學者特立不惑子厚堯夫而已然其說之流亦未免於有弊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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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7-113 子曰: 瞻之在前未能及也. 忽焉在後則又過也. 其差甚微其失則有過不及之異是微也. 惟顔子知之故興卓爾之歎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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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7-114 或問: “後世有作虞帝弗可及, 何也?” 子曰: 譬之於地肇開而種之其資毓於物者如何其茂也. 久則漸磨矣. 虞舜當未開之時及其聰明如此其盛宜乎後世莫能及也. 胡不觀之有天地之盛衰有一時之盛衰有一月之盛衰有一辰之盛衰一國有幾家一家有幾人其榮枯休戚未有同者陰陽消長氣之不齊理之常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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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7-115 子曰: 知之旣至其意自誠其心自正顔子有不善未嘗不知知之至也. 知之至是以未嘗復行有復行焉者知之不至耳.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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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7-116 子曰: 善惡皆天理謂之惡者或過或不及無非惡也. 楊墨之類是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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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7-117 明道十五六時周茂叔論聖道之要遂厭科擧慨然欲爲道學而未知其方也. 及泛濫於諸家出入於釋老者幾十年反求諸六經而後得之.&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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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7-118 明道志康節之墓曰: 先生少時自雄其才慷慨有大志旣學力慕高遠謂先王之事爲可必至及其學益老德益邵玩心高明觀天地運化陰陽消長以達乎萬物之變然後頹然乎順浩然乎歸德氣粹然望之可知其賢然不事表暴不設防畛正而不諒通而不汙淸明坦夷洞徹中外其與人言必依於孝弟忠信樂道人之善而未嘗及其惡故賢者樂其德不肖者服其化所以厚風俗成人材之功亦多矣. 昔七十子學於仲尼其傳可見者惟曾子所以告子思而子思所以授孟子者耳. 其餘門人各以其才之所宜爲學雖同尊聖人所因而入者門戶則衆矣. 况後此千有餘歲師道不立學者莫知所從來獨先生之學得之於李挺之挺之得之於穆伯長推其源流遠有端緖今李穆之言及其行事槩可見也. 而先生純一不雜汪洋高大乃其所自得者多矣. 然而名其學者豈所謂門戶之衆各有所因而入者與語成德者昔難其居若先生之道以其所至而論之可謂安且成矣.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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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7-119 伯淳旣沒公卿大夫議以明道先生號之子爲之言曰: 周公死聖人之道不行孟軻死聖人之學不傳道不行百世無善治學不傳千載無眞儒無善治士猶得以明夫善治之道以淑諸人以傳諸後無眞儒則天下貿貿焉莫知所之人欲肆而天理滅矣. 先生生千四百年之後, 得不傳之學於遺經, 天不憖遺哲人早世學者於道知所嚮然後見斯人之爲功知所至然後見斯名之稱情山可夷谷可堙明道之名亘萬古而長存也.&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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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臣篇==&lt;br /&gt;
『수언』8-1 子曰: 人君欲附天下當顯明其道誠意以待物, 恕己以及人發政施仁使四海蒙其惠澤可也. 若乃暴其小惠違道干譽欲致天下之親已則其道狹矣. 非特人君爲然也. 臣之於君竭其忠誠致其才力用否在君而已不可阿諛逢迎以求君之厚已也. 雖朋友亦然修身誠意以待之䟽戚在人而已不可巧言令色, 曲從苟合以求人之與己也. 雖鄕黨親戚亦然.&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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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2 子曰: 君道以人心悅服爲本&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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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3 子曰: 君臣朋友之際其合不正未有久而不離者故賢者順理而安行智者知幾而固守&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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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4 子曰: 君子有爲於天下惟義而已不可則止無苟爲亦無必爲&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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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5 子曰: 止惡當於其微至盛而後禁則勞而有傷矣. 君惡旣甚雖以聖人救之亦不免咈違也. 民惡旣甚雖以聖人治之亦不免於刑戮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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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6 子曰: 人臣以忠信善道事其君者必達其所蔽而因其所明乃能入矣. 雖有所蔽亦有所明未有ᄧᅳ然而皆蔽者也. 古之善諌者必因君心所明而後見納是故訐直强果者其說多忤溫厚明辨者其說多行愛戚姬將易嫡庶是其所蔽也. 素重四老人之賢而不能致是其所明也. 四老人之力孰與夫公卿及天下之心其言之切孰與周昌叔孫通也. 高祖不從彼而從此者留侯不攻其蔽而救其明也. 趙王太后愛其少子長安君不使爲質於齊是其蔽也. 愛之欲其富貴久長於齊是其所明也. 左師觸讋所以導之者亦因其明爾故其受命如響夫敎人者亦如此而已.&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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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7 子曰: 小人之於君能深奪其志未有由顯明以道合者&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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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8 子曰: 王者奉若天道動無非天者故稱天王命則天命也. 討則天討也. 盡天道者王道也. 後世以智力持天下者霸道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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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9 子曰: 人臣身居大位功蓋天下而民懷之則危疑之地也. 必也. 誠積於中動不違理威福不自已出人惟知有君而已然後位極而無逼上之嫌勢重而無專權之過斯可謂明哲君子矣. 周公孔明其人也. 郭子儀有再造社稷之功威震人主而上不疑之也. 亦其次歟!&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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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10 張子厚再召如京師, 過子曰: 往終無補也. 不如退而閒居講明道義以資後學猶之可也. 子曰: 何必然義當往則往義當來則來耳.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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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11 子曰: 剛健之臣事柔弱之君而不爲矯餙之行者鮮矣. 夫上下之交不誠而以僞也. 其能久相有乎.”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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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12 或問: “升卦有大臣之事乎?” 子曰: 道何所不在曰: 大臣而猶升也. 則何之矣. 子曰: 上則升君於道下則升賢於朝已則止其分耳. 分則當止德則當升也. 盡是道者文王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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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13 子曰: 士有志在朝廷而才不足者有才可以濟而誠不至者誠苟至焉正色率下則用之天下治矣.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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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14 劉安節問賜魯天子禮樂以祀周公可乎? 子曰: 不可人臣而用天子之所用周公之法亂矣. 成王之賜伯禽之受皆過也. 王氏謂人臣有不能爲之功而周公能之故賜以人臣不能用之禮樂非也. 人臣無不能爲之功周公亦盡其分耳. 人臣所當爲者而不爲則誰爲之也. 事親若曾子可也. 其孝非過乎子之分也. 亦免責而已臣之於君猶子之於父苟不盡其責之所當爲則事業何自而立而謂人臣有不能爲之功是猶曰: 人子有不能爲之孝也. 而可乎後世有恃功責報而怏怏於君者必此之言夫!&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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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15 子曰: 當爲國之時旣盡其防慮之道矣. 而猶不免則, 何也?” 苟惟致其命安其然則危塞險難無足以動其心者行吾義而已斯可謂之君子&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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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16 子曰: 君子之處高位也. 有拯而無隨焉在下位也. 則有當拯有當隨焉.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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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17 或問: “爲官僚而言事於長理直則不見從也. 則如之何?” 子曰: 亦權其輕重而已事重於去則當去事輕於去則當留事大於爭則當爭事小於爭則當已雖然今之仕於官者其有能去者必有之矣. 而吾未之見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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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18 范公爲諫官嘗諫上曰: 今欲富國强兵將何以爲子聞之曰: 野哉烏足以格其君周禮所記亦有强富之術惟孟子爲梁惠王言利之不可爲至於不奪不饜言兵之不可用至於及其所愛也. 庶乎其可矣.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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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19 子曰: 凡諫說於君論辨於人理勝則事明氣忿則招拂&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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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20 子曰: 臣賢於君則輔君以所不能伊尹之於太甲周公之於成王孔明之於劉禪是也. 臣不及君則贊助之而已&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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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21 子曰: 君子之事君也. 不得其心則盡其誠以感發其志而已誠積而動則雖昏蒙可開也. 雖柔弱可輔也. 雖不正可正也. 古之人事庸君常主而克行其道者以已誠上達而其君信之之篤耳. 管仲之相桓公孔明之輔後主是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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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22 或問: “陳平當王諸呂時何不諫曰: 王陵廷爭不從則去其位平自意復諫者未必不激呂氏之怒也. 夫漢初君臣徒以智力相勝勝者爲君其臣之者非心悅而臣事之也. 當王諸呂時而責平等以死節庸肯苟死乎&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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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23 子曰: 士方在下自進而干君未有信而用之者也. 古之君子必待上致敬盡禮而後往者非欲崇巳以爲大也. 蓋尊德樂道之誠心不如是不足與有爲耳.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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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24 或謂屯之九五曰: 屯其膏然則人君亦有屯乎? 子曰: 非謂其名位有損也. 號令有所不行德澤有所不下威權去已而不識所收如魯昭公高貴鄕公是也. 或不勝其忿起而驟正之則致凶之道其惟盤庚周宣乎修德用賢追先王之政而諸侯復朝焉蓋以道馴致不以暴爲之也. 若唐之僖宗昭宗是也. 恬然不爲至於屯極則有亡而已.&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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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25 昔有典選其子當遷官而固不之遷者其心本自以爲公而不知乃所以爲私也. 或曰: 古者直道而行於嫌有所不必避後世人僞競生是以不免耳.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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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26 子曰: 非無時也. 時者人之所爲蓋無其人耳.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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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27 子曰: 擇才而用雖在君以身許國則在已道合而後進得正則吉矣. 汲汲以求遇者終必自失非君子自重之道也. 故伊尹武侯救世之心非不切必待禮而後出者以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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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28 子曰: 事君者知人主不當自聖則不爲謟諛之言知人臣義無私交則不爲阿黨之計.”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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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29 或問: “臣子加謚於君父當極其美有諸曰: 正終大事也. 加君父以不正之謚知忠孝者不爲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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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30 子曰: 人臣之義位愈高而思所以報國者當愈勤饑則爲用飽則飛去是以鷹犬自期也. 曾是之謂愛身乎&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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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31 或謂禮局設官地淸而職閒可居也. 子曰: 朝廷擧動有一違禮則禮官當任其責安得謂之閒&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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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32 或曰: 未有大臣如介甫得君者. 子曰: 介甫自知之其求去自表於上曰: 忠不足取信事事待於自明使君臣之契果深而有是言乎&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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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33 子曰: 君貴明不貴察臣貴正不貴權&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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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34 子曰: 君子不輕天下而重其身不輕其身而重天下凡爲其所當爲不爲其所不可爲者而已.”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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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35 或問: “孔子事君盡禮而人以爲謟禮與謟異矣. 謟何疑於盡禮?” 子曰: “當時事君者於禮不能盡也. 故以譏聖人非孔子而言必曰: 小人以爲謟也. 孔子曰: 人以爲謟而已聖人道大德宏故其言如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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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36 子進講至南容三復白圭中侍謂講至南字請隱之子不聽講畢進曰: 人君居兆人之上處天下之尊只懼怕人過爲崇奉以生驕慢之心此皆進習謟媚以養之耳. 昔仁宗之世宮嬪謂正月爲初月易蒸餅曰: 炊餅皆此類, 天下至今以爲非. 嫌名舊名請勿復諱也. 翼日, 孫覺講曰‘子畏於正’, 子曰: ‘以諱之故獨無地名可稱也. 謂畏於正此何義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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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37 司馬溫公呂申公韓康公上子行義於朝遂命以官典西都之敎子辭不聽又辭曰: 上嗣位之初方圖大治首拔一人於ᅀᅣᆨ畝之中宜得英材使天下聳動知朝廷之急賢也. 今乃官使庸常之人則天下何望後世何觀朝廷之擧何爲臣之受也. 何義臣雖至愚敢貪寵祿以速戾於厥躬是以罔虞刑威而必盡其說願陛下廣知人之明以照四方充取臣之心以求眞賢求之以其方待之以其道雖聖賢亦將爲陛下出矣. 况如臣者何足道哉又不聽而召之至京師且使校讐館閣子以布衣造朝也. 則曰: 草萊之臣蒙召而至未見君先受命非禮也. 旣見於廷又命之陛對遂有講筵之除子退而上䟽曰: 知人則哲堯舜所難臣進對於頃刻之間陛下見臣何者而遽加擢任也. 今之用臣蓋非常之擧必將責其報效此天下之所觀聽也. 苟或不然則失望於今而貽笑於後可不謹哉臣請有所言焉古之人君守成業而致盛治者莫如周成王其所以成德則由乎周公周公之輔成王也. 幼而習之所見必正事所聞必正言左右前後皆正人故習與性長化與心成今陛下春秋方富輔養之道不可不至也. 所謂輔養之道非謂告詔以言過而後諫也. 尤在涵養薰陶之而已矣. 今夫一日之間接賢士大夫之時多親寺人宦官之時少則氣質自化德器自成臣欲謹選賢德之士以侍勸講講讀旣罷常留以備訪問從容燕語不獨漸摩德義至於人情物態稼穡艱難日積旣久自然通達比之深處宮闈爲益多矣. 夫傅德義者在乎防聞見之非節嗜慾之過保身體者在乎適起居之宜存畏謹之心故左右近侍宜選老成重厚小心之人服餙器用皆須朴實之物俾華巧靡麗不至於前淺俗之言不入於耳. 凡動作言語必使勸講者知之庶幾隨事箴規應時諫正調護聖躬莫過乎此矣. 人君居崇高之位持威福之柄百官畏懼而莫敢仰視萬方崇奉而所欲必得苟非知道畏義所養如此其成則中常之君無不驕肆英明之主自然滿假此古今同患治亂所由也. 所以周公告成王稱前王之德以寅畏祗懼爲首云夫儒者得以經術進說於人君言聽則志行自昔抱道之士孰不願之顧恨弗獲然自古君臣道合靡不由至誠感通信以發志臣也. 道未行於室家善未孚於鄕黨而何足以動人主之心乎苟不度其誠之未至而姑善辭說於進退之間爲一時之觀則可矣. 必欲通于神明光于四海久而無斁臣知其不可也. 是以欲進而思義喜時以愧已夫海宇至廣賢俊非一人願博謀羣臣旁加收擇期得出類之賢寘諸左右輔成聖德則爲宗社生靈之福矣. 久之意有不合上書太后曰: 臣鄙人也. 少不喜進取以讀書求道爲事于茲幾三十年昔在兩朝累爲當塗者薦揚臣於是時自顧道學之不足不願仕也. 及上嗣位陛下臨朝大臣仰體求賢願治之心搜揚巖穴首及微臣以爲召而不往子思孟軻則可蓋二人者處賓師之位不往所以規其君也. 如臣微賤食土之毛而爲王民召而不至則邦有常憲矣. 是以奔走承命甫至闕庭之外又有館職之除方且表辭遂蒙賜對臣於是時尙未有意於仕也. 進至陛咫尺天光未嘗一言及於朝政陛下視臣豈求進者哉旣而親奉玉音擢寘經筵事出望外惘然驚惕臣於斯時雖以不才而辭然許國之心已萌矣. 辭不獲命於是服勤厥職夫性朴而言拙臣之所短也. 若夫愛上之心事上之禮告上之道則不敢不盡也. 陛下心存至公躬行大道開納忠言委用耆德直欲擧太平不止於因循苟安而已苟能日謹一日天下之事誠不足慮而方今所謂至急爲長久之計則莫若輔養上德歷觀前古成就幼主莫備於周公爲萬世之法願陛下擴高世之見以聖人之言爲必可信以先王之道爲必可行勿狃滯於近規勿遷惑於衆口然後知周公誠不我欺也. 考之立政之書其言常伯常任之尊與綴衣虎賁之賤同以爲戒要在得人以爲知恤者鮮也. 終篇反覆惟此一事而已夫僕臣正厥后克聖左右侍御僕從罔匪正人旦夕承弼然後起居出入無違禮也. 發號施令無不善也. 後世不復知此以爲人主就學所以涉書史覽古今也. 夫此一端而已苟曰: 如是而足則能文宮人可以備勸講知書內侍可以充輔導又何必置官設職求賢德之士哉自古帝王才質鮮不過人然完德有道之君至少其故何哉皆輔養不得其道而勢位使之然也. 臣服職以來六侍經筵但見諸臣拱手黙坐當講說者竦立案傍觧釋數行則已肅退如此雖彌年積歲所益幾, 何也?” 亦已異於周公輔成王之道矣. 或以爲上方冲幼宜爾者不知本之論也. 古之人自能食能言而敎之是故大學之法以豫爲先蓋人之幼也. 智愚未有所主則當以格言至論日陳於前盈耳. 充腹久自安習若固有之者日復一日雖有讒說搖惑不能入也. 若爲之不豫及乎稍長私慮偏好生於內衆口辯言鑠於外欲其純全不可得已故所急在先而不憂其太早也. 或又曰: 聖上天資至美自無違道則尤非也. 莫聖於禹而益以丹朱傲游慢虐爲之戒禹豈不知是也. 以唐太宗之聰睿躬歷艱難力平禍亂年亦長矣. 其始也. 惡隋煬帝之侈麗毁其層觀未六五年乃欲治乾陽殿矣. 人心奚常之有所以聖賢處崇高之位當盛明之際不忘規戒爲慮至深遠也. 况幼冲之君而可懈於閑邪拂違之道乎夫開發之道有方而明習之益至切夫學悅而後入宜使上心泰而體舒然後有所悅懌今也. 前對大臣動虞違謬一言之出史必書之非所以遜人主之志而樂於學也. 凡侍講讀皆使兼視他職比於輔導則弗專矣. 夫告於人者非積其誠意則不能感發古人以蒲盧喩敎謂以誠化也. 今夫鐘怒而擊之則聲武悲而擊之則聲哀誠意之入也. 其於人亦猶是矣. 若使營營於職事紛紛於心思及至上前然後責功於簡冊望化於頰舌不亦淺乎道衰學廢世不得聞此言也. 久矣. 雖聞之必笑之以爲迂且誕也. 陛下高識遠見當蒙鑒采聖學不傳臣幸得之於遺經不自量度方且區區駕其說於學以示天下後世不虞幸會得備講說於人主之側誠使臣得以所學上沃帝聰則聖人之道有可行之望豈特臣之幸哉?&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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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38 神宗首召伯淳首訪致治之要子對曰: 君道稽古正學明善惡之歸辨忠邪之分曉然趨道之至正君志定而天下之治成矣. 上曰: 定志之道何如子對曰: 正心誠意擇善而固執之也. 夫義理不先定則多聽而易惑志意不先定則守善而或移必也. 以聖人之訓爲必當從以先王之治爲必可法不爲後世駁雜之政所牽滯不爲流俗因循之論所遷改信道極於篤自知極於明去邪勿疑任賢勿貳必期致治如三代之隆而後已也. 然患常生於忽微而治亦戒乎漸習故古之人君雖從容燕閒必有誦訓箴諫左右前後罔匪正人輔成德業臣願尊禮老成訪求儒學之士不必勞以官職俾日親便坐講論道義又博延俊彦陪侍法從朝夕延見講磨治體則睿治益明王猷允塞矣. 今四海靡靡日益偸薄末俗嘵嘵無復廉耻蓋亦尊德樂義之風未孚而篤誠忠厚之化尙鬱也. 惟陛下稽聖人之訓法先王之治體乾剛健而力行之則天下之幸上嘉納焉.&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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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39 明道告神宗曰: 人君當防未萌之欲上拱手前坐曰: 當爲卿戒之因論人才上曰: 朕未之見也. 曰: 陛下奈何輕天下士上聳然曰: 朕不敢明道之未爲臺諫也. 察荊公已信用矣. 明道每進見必陳君道以至誠仁愛爲本未嘗一言及功利上始疑其迂濶而禮貎不少替也. 一日極論治道上歛容謝曰: 此堯舜之事也. 朕何敢當明道愀然曰: 陛下此言非天下之福上益敬之荊公畫策寖行子意多不合令出有不便者卽論奏之其尤有益則論大臣不同心謂小臣預大計謂靑苗收二分之息謂鬻祠部度牒良民爲僧謂民情怨咨而公論壅遏謂興利之臣日進而尙德之風寖衰上不敢用子遂以罪去.&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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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8-40 明道補外官入辭上猶眷眷問政他日明道曰: 當是時吾不能感動君心顧吾學未至德未成也. 雖然河濱之人捧土塞孟津亦復可笑人力不勝以至於今豈非命哉!&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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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性篇==&lt;br /&gt;
『수언』9-1 劉安節問心有限量乎曰: 天下無性外之物以有限量之形氣用之不以其道安能廣大其心也. 心則性也. 在天爲命在人爲性所主爲心實一道也. 通乎道則何限量之有必曰: 有限量是性外有物乎?&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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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2 子曰: 耳目能視聽而不能遠者氣有限也. 心無遠近&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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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3 子曰: 占出於自然之理聲發於自然之氣聽聲者知其資之善惡善卜者知其人之姓氏是一道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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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4 子曰: 論性而不及氣則不備論氣而不及性則不明&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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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5 子曰: 冲漠無朕而萬象森然未應不爲先已應不爲後如百尋之木本根枝葉則一氣也. 若曰: 高明之極無形可見必也. 形諸軌轍之間非也. 高明之極軌轍之間皆一貫耳.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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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6 子曰: 見聞之知乃物交而知非德性所知德性所知不待於聞見.&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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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7 子曰: 告子言生之謂性通人物而言之也. 孟子道性善極本原而語之也. 生之謂性其言是也. 然人有人之性物有物之性牛有牛之性馬有馬之性而告子一之則不可也. 使孟子不深問告子不嗣說烏知告子之未知義孟子爲知言?&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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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8 子曰: 凡物旣散則盡, 未有能復歸本原之地也. 造化不窮, 蓋生氣也. 近取諸身, 於出入息氣見闔闢往來之理. 呼氣旣往, 往則不返, 非吸旣往之氣而後爲呼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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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9(신증) 子曰: 上天之載, 無聲無臭之可聞, 其體則謂之易, 其理則謂之道, 其命在人則謂之性, 其用無窮則謂之神, 一而已矣. (명도?)&lt;br /&gt;
&lt;br /&gt;
『수언』9-10 或問: “性與天道是誠不可得而聞乎?” 子曰: 可自得之而不可以言傳也. 他日謝良佐曰: 子貢卽夫子之文章而知性與天道矣. 使其不聞又安能言之夫子可謂善言子貢可謂善聽&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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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11 子曰: 人心必有所止無止則聽於物惟物之聽何所往而不妄也. 或曰: 心在我旣已入於妄矣. 將誰使之. 子曰: 心實使之.&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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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12 子曰: 視聽言動身之用也. 由中而應乎外制乎外所以養其中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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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13 子曰: 心本至虛必應物無迹也. 蔽交於前其中則遷故視聽言動必復於理制於外所以安其中也. 久則誠矣.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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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14 張子曰: “性通極於無氣其一物耳. 命同禀於性遇其適然耳. 力行不至難以語性可以言氣行同報異難以語命可以言遇也.” 或問: “命與遇異乎?” 子曰: 遇不遇卽命也. 曰: 長平死者四十萬其命齊乎? 子曰: 遇白起則命也. 有如四海九州之人同日而死也. 則亦常事爾世之人以爲是駭然耳. 所見少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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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15 或問: “韓文公揚雄言性如何?” 子曰: “其所言者才耳.”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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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16 或問: “盡心之道, 豈謂有惻隱之心而盡乎惻隱, 有羞惡之心而盡乎羞惡也哉!” 子曰: “盡則無不盡, 苟一一而盡之, 烏乎而能盡?”&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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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17 韓侍郞曰: 凡人視聽言動不免幻妄者蓋性之不善也. 子哂之曰: 謂性不善者則求一善性而易之可乎&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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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18 子曰: 君子慮及天下後世而不止乎一身者窮理而不盡性也. 小人以一朝之忿曾身之不遑恤非其性之盡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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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19 子曰: 天人無二不必以合言性無內外不可以分語&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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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20 子曰: 理與心一而人不能會爲一者有已則喜自私私則萬殊宜其難一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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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21 子曰: 氣質沉靜於受學爲易&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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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22 子曰: 志御氣則治氣役志則亂人忿慾勝志者有矣. 以義理勝氣者鮮矣.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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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23 王介甫曰: “因物之性而生之直內之敬也. 成物之形而不可易方外之義也.” 子曰: “信斯言也, 是物先有性, 然後坤因而生之, 則可乎?”&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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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24 子曰: 動以人則妄動以天則無妄&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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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25 子曰: 言愈多於道未必明故言以簡爲貴.&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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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26 子曰: 不知性善, 不可以言學知性之善而以忠信爲本是曰: 先立乎其大者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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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27 或曰: 窮理智之事也. 盡性仁之事也. 至於命聖人之事也. 子曰: 不然也. 誠窮理則性命皆在是蓋立言之勢不得不云爾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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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28 子曰: 有爲不善於我之側而我不見有言善事於我之側而我聞之者敬也. 心主於一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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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29 或曰: 惟閉目靜坐爲可以養心. 子曰: 豈其然乎有心於息慮則思慮不可息矣.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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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30 子曰: 人之知識未嘗不全其蒙者猶寐也. 呼而覺之斯不蒙矣.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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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31 子曰: 有得無得於其心氣驗之裕然而無不充悅者實有得也. 切切然心勞而氣耗謂已有得皆揣度而知之者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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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32 子曰: 所守不約則泛然而無功約莫如敬&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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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33 子曰: 守之必嚴執之必定少怠而縱之則存者亡矣.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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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34 子曰: 義理客氣相爲消長者也. 以其消長多寡而君子小人之分曰: 以相遠矣.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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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35 子曰: 公則同私則異同者天心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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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36 或問: “人有耻不能之心可乎?” 子曰: 耻不能而爲之可也. 耻不能而隱之不可也. 至於疾人之能又大不可也. 若夫小道曲藝雖不能焉君子不耻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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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37 或問: “君子存之何所存也?” 子曰: “存天理也. 天理未嘗亡而庶民則亡之者衆矣.”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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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38 或問: “志乎道而玩之不樂居之不安何也?” 子曰: “毋乃助之長歟?”&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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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39 子曰: 人莫不知命之不可遷也. 臨患難而能不懼處貧賤而能不變視富貴而能不慕者吾未見其人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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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40 或問: “敬忠孚信之別. 子曰: 一心之謂敬盡心之謂忠, 存之於中之謂孚見之於事之謂信.&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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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41 子曰: 自得而動者猶以手擧物無不從也. 慮而後動者猶以物取物有中有不中矣.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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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42 或問: “人性本明其有蔽, 何也?” 子曰: 性無不善其偏蔽者由氣禀淸濁之不齊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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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43 子曰: 德性云者言性可貴也. 性之德言性所有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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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44 張子曰: “太虛至淸, 淸則無礙, 無礙故神. 反淸則濁, 濁則有礙, 礙則形窒矣.” 子曰: “神氣相極周而無餘謂氣外有神神外有氣是兩之也. 淸者爲神濁者何獨非神乎.”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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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45 或問: “獨處夜行而多懼心, 何也?” 子曰: “燭理不明也. 明理則知所懼者皆妄又何懼矣. 知其妄而猶不免者氣不充也. 敬不足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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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46 子曰: 以私已爲心者枉道拂理謟曲邪侫無所不至不仁孰甚焉!&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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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47 子曰: 盡性至命必本於孝弟窮神知化由通於禮樂. 劉安節問曰: “孝弟之行何以能盡性至命也?” 子曰: 世之言道者以性命爲高遠孝弟爲切近而不知其一統道無本末精粗之別洒掃應對形而上者在焉世豈無孝弟之人而不能盡心至命者亦由之而弗知也. 人見禮樂壞崩則曰: 禮樂亡矣. 然未嘗亡也. 夫盜賊人之至不足道者也. 必有統屬必有聽順然後能羣起而謂禮樂一日亡可乎禮樂無所不在而未嘗亡也. 則於窮神知化乎何有?&lt;br /&gt;
&lt;br /&gt;
『수언』9-48 子曰: 未有不能體道而能無思者故坐忘則坐馳有忘之心是則思而已矣.” &lt;br /&gt;
&lt;br /&gt;
『수언』9-49 或問: “性之成形猶金之爲器歟?” 子曰: 氣比之金可也. 不可以比性&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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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50 子曰: 言不足以得意得意則言可忘矣. 非心自得之終非已物&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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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51 子曰: 泛乎其思之不如守約思則來捨則去思之弗熟也. &lt;br /&gt;
&lt;br /&gt;
『수언』9-52 子曰: 天德云者謂所受於天者未嘗不全也. 苟無汚壞則直行之耳. 或有汚壞則敬以復之耳. 其不必治而修則不治而修義也. 其必治而修則治而修亦義也. 其全天德一也.” &lt;br /&gt;
&lt;br /&gt;
『수언』9-53 或問: “性善而情不善乎?” 子曰: 情者性之動也. 要歸之正而已亦何得以不善名之.&lt;br /&gt;
&lt;br /&gt;
『수언』9-54 子曰: 受於天之謂性禀於氣之謂才才有善否由氣禀有偏正也. 性則無不善能養其氣以復其正則才亦無不善矣.” &lt;br /&gt;
&lt;br /&gt;
『수언』9-55 或問: “赤子之心與聖人之心何以異?” 子曰: 赤子之心已發發而去道未遠也. 聖人之心如明鏡如止水.” &lt;br /&gt;
&lt;br /&gt;
『수언』9-56 或問志意之別. 子曰: 志自所存主言之發則意也. 發而當理也. 發而不當私也. &lt;br /&gt;
&lt;br /&gt;
『수언』9-57 子曰: 弘而不毅則難立毅而不弘則無以居之.&lt;br /&gt;
&lt;br /&gt;
『수언』9-58 楊廸言於子曰: 心迹固夫子以爲無可判之理廸也. 疑焉. 子曰: 然則舜同象之憂喜孟子不以爲僞, 卽是宜精思以得之而何易言也. &lt;br /&gt;
&lt;br /&gt;
『수언』9-59 子曰: 與叔昔者之學雜故常以思慮紛擾爲患而今也. 求所以虛而靜之遂以養氣爲有助也. 夫養氣之道非槁形灰心之謂也. 人者生物也. 不能不動而欲槁其形不能不思而欲灰其心心灰而形槁則是死而已也. 其從事於敬以直內所患則亡矣. &lt;br /&gt;
&lt;br /&gt;
『수언』9-60 游酢曰: 能戒謹於不覩不聞之中則上天之載可循序而進矣. 子曰: 是則然矣. 雖然其序如之何循之又如, 何也?” 荀卿曰: 始乎爲士終也. 爲聖其言是也. 而曰: 性者惡也. 禮者僞也. 然則由士而聖人者彼亦不知其所循之序矣. 可不深思而謹擇乎?&lt;br /&gt;
&lt;br /&gt;
『수언』9-61 子曰: 有能全體此心學雖未盡但隨分以應事物雖不中不遠矣. &lt;br /&gt;
&lt;br /&gt;
『수언』9-62 子曰: 西北與東南人材不同氣之厚薄異也.” &lt;br /&gt;
&lt;br /&gt;
『수언』9-63 或問: “心有存亡乎?” 子曰: 以心無形體也. 自操舍言之耳. 夫心之所存一主乎事則在此矣. 子因以目視地曰: 過則無聲臭矣. 其曰: 放心者謂心本善而流於不善是放也. 心則無存亡矣. &lt;br /&gt;
&lt;br /&gt;
『수언』9-64 子曰: 佛者平居高談自謂見性得盡至其應物處事則有惘然不知者是實未盡所得也.” &lt;br /&gt;
&lt;br /&gt;
『수언』9-65 或問: “有言求中於喜怒哀樂未發之前, 何也?” 子曰: “求則是有思也. 思則是已發也.” “然則何所據依何以用功哉?” 子曰: 存養而已矣. 及其久也. 喜怒哀樂之發不期中而自中矣. &lt;br /&gt;
&lt;br /&gt;
『수언』9-66 子曰: 不欲則不惑惑者由有所欲也. 欲非必盤樂也. 心有所向無非欲也. &lt;br /&gt;
&lt;br /&gt;
『수언』9-67 或曰: 心未有所感之時何所寓也? 子曰: 莫知其鄕何爲而求所寓有寓非所以言心也. 惟敬以操之而已&lt;br /&gt;
&lt;br /&gt;
『수언』9-68 子曰: 邪說雖熾終不能勝正道以人之秉彛不可亡也. 然亦惡其善惑人心是以孟子欲正人心息邪說&lt;br /&gt;
&lt;br /&gt;
『수언』9-69 子曰: 人必有仁義之心然後仁義之氣睟然達於外&lt;br /&gt;
&lt;br /&gt;
『수언』9-70 子曰: 善惡云云者猶杞桞之論也. 善惡混云者猶湍水之說也. &lt;br /&gt;
&lt;br /&gt;
『수언』9-71 子曰: 人性果惡耶則聖人何爲能反其性以至於斯也. &lt;br /&gt;
&lt;br /&gt;
『수언』9-72 子曰: 命受於天或者服餌致壽是天命而可增益也. &lt;br /&gt;
&lt;br /&gt;
『수언』9-73 子曰: 卜筮將以決疑也. 今之人獨計其一身之窮通而已非惑夫&lt;br /&gt;
&lt;br /&gt;
『수언』9-74 子曰: 君子以識爲本行次焉今有人力能行之而識不足以知之則有異端之惑將流蕩而不知反好惡失其宜是非亂其眞雖有尾生之信曾子之孝吾弗貴也. &lt;br /&gt;
&lt;br /&gt;
『수언』9-75 子厚曰: “必有事焉而勿正心弗忘勿助長者其入神之奧乎學者欲以思慮求之旣以自累其心於不神矣. 烏得而求之哉!” 子曰: “有所事乃有思也. 無思則無事矣. 孟子於是論養氣之道而未遽及夫神也.” 子厚曰: “勿忘者亦不捨其靈明善應之耳.” 子曰: “存不捨之心安得謂之靈明?” “然則其能善乎?” 子曰: 意必固我旣亡之後必有事焉此學者所宜盡心也. &lt;br /&gt;
&lt;br /&gt;
『수언』9-76 子曰: 夜氣之所存者良知也. 良能也. 苟擴而充之化旦晝之所梏爲夜氣之所存然後有以至於聖人也. &lt;br /&gt;
&lt;br /&gt;
『수언』9-77 子曰: 甚矣. 慾之害人也. 人爲不善慾誘之也. 誘之而不知則至於滅天理而不知反故目則欲色耳. 則欲聲鼻則欲香口則欲味體則欲安此皆有以使之也. 然則何以窒其慾曰: 思而已矣. 覺莫要於思惟思爲能窒慾&lt;br /&gt;
&lt;br /&gt;
『수언』9-78 子曰: 自性得者皆善也. 而有仁義禮智之名者以其所施之不同合而言之一道也. 舍而行之是悖理而違道也. 而世言道與性者必曰: 超然ᄡᅧᆺ乎四端之外是亦不學之過也. &lt;br /&gt;
&lt;br /&gt;
『수언』9-79 子曰: 聞見之知非德性之知德性所知不假聞見&lt;br /&gt;
&lt;br /&gt;
『수언』9-80 子曰: 世之人樂其所不當樂, 不樂其所當樂; 慕其所不當慕, 不慕其所當慕; 皆由不思輕重之分, 不知求放心而求放雞犬者也. &lt;br /&gt;
&lt;br /&gt;
『수언』9-81 子曰: 有一物而相離者, 如形無影不害其成形, 水無波不害其爲水. 有兩物而必相須者, 心無目不能視, 目無心不能識也. &lt;br /&gt;
&lt;br /&gt;
『수언』9-82 子曰: 莫大於性小人云者非其性然也. 自溺於小而已是故聖人閔之&lt;br /&gt;
&lt;br /&gt;
『수언』9-83 子曰: 人之性猶器受光於日佛氏言性猶置器日下傾此於彼耳. 日固未嘗動也. &lt;br /&gt;
&lt;br /&gt;
『수언』9-84 子曰: 心具天德心有不盡則於天德不盡其於知天難矣. &lt;br /&gt;
&lt;br /&gt;
『수언』9-85 子曰: 眞元之氣, 氣所由生, 外物之氣, 不得以雜之; 然必資物之氣而後可以養元氣, 本一氣也. 人居天地一氣之中, 猶魚之在水, 飮食之眞味, 寒暑之節宣, 皆外氣涵養之道也. &lt;br /&gt;
&lt;br /&gt;
『수언』9-86 子曰: 神與氣未嘗相離, 不以生存, 不以死亡, 而佛言有一物不亡而常存, 能盜胎奪蔭, 則無是理也. &lt;br /&gt;
&lt;br /&gt;
『수언』9-87 子曰: 不誠不莊而曰: 盡性者無之性之德無僞慢不免乎僞慢者未嘗知其性也. &lt;br /&gt;
&lt;br /&gt;
『수언』9-88 子曰: 體會必以心謂體會非心於是有心小性大之說聖人之心與天爲一或者滯心於智識之間故自見其小耳.” &lt;br /&gt;
&lt;br /&gt;
『수언』9-89 或問: “克伐怨欲不行而非仁, 何也?” 子曰: 無是四者非仁而何原憲之問在於止而不行未免於有是心也. 故曰: 可以爲難而已蓋將以起原憲之問而進之而憲不能也.” &lt;br /&gt;
&lt;br /&gt;
『수언』9-90 或問: “君子存之如何其存也?” 子曰: 必有事焉而勿正心勿忘勿助長乃存之之道也. &lt;br /&gt;
&lt;br /&gt;
『수언』9-91 子曰: 無妄天性也. 萬物各得其性一毫不加損矣. &lt;br /&gt;
&lt;br /&gt;
『수언』9-92 子曰: 感而遂通感非自外也.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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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9-93 子曰: 退藏於密者用之源也. &lt;br /&gt;
&lt;br /&gt;
『수언』9-94 子曰: 人心私欲也. 危而不安道心天理也. 微而難得惟其如是所以貴於精一也. 精之一之然後能執其中中者極至之謂也. &lt;br /&gt;
&lt;br /&gt;
『수언』9-95 子曰: 鳶飛戾天魚躍於淵言其上下察也. 此子思開示學者切要之語也. 孟子曰: 必有事焉而勿正心勿忘其意亦猶是也. 有得於此者樂則生生則烏可已也. 無得於此者役役於見聞知思爲機變之巧而已&lt;br /&gt;
&lt;br /&gt;
『수언』9-96 子曰: 知命者達理也. 受命者得其應也. 天之應若影響然得其應者常理也. 致微而觀之未有不應者自淺狹之所見則謂其有差矣. 天命可易乎然有可易者惟其有德者能之.&lt;br /&gt;
&lt;br /&gt;
『수언』9-97 韓康公曰: “今有人頓然明盡者子信諸?” 子曰: 必也. 生而知之然未之見也. 凡所貴乎學者不謂生而知之者也. 孟子曰: 盡其心者知其性也. 存其心養其性所以事天也. 言其至也. 佛氏於陰陽生死古今未之識也. 而謂得夫形而上者與吾聖人無二致可乎人才智愈明其所陷溺愈深可不戒乎&lt;br /&gt;
&lt;br /&gt;
『수언』9-98 子曰: 學必知自慊之道有一毫不自慊則子厚所謂‘有外之心, 不足以合天心’也. &lt;br /&gt;
&lt;br /&gt;
『수언』9-99 子曰: 帥氣在志養氣在直內有私意則餒無不義則浩然.&lt;br /&gt;
&lt;br /&gt;
『수언』9-100 子曰: 心活則周流無窮而不滯於一隅.&lt;br /&gt;
&lt;br /&gt;
『수언』9-101 子曰: 質之美者一明卽盡濁滓渾化斯與天地同體矣. 莊敬持養抑其次也. 及其至則一也.” &lt;br /&gt;
&lt;br /&gt;
『수언』9-102 或問: “多怒多驚, 何也?” 子曰: 主心不定也. &lt;br /&gt;
&lt;br /&gt;
『수언』9-103 子曰: 心盡乎智周萬物而不盡乎如死灰形盡乎動容周旋而不盡乎如槁木以寂滅湛靜爲道者其分遠矣. &lt;br /&gt;
&lt;br /&gt;
『수언』9-104 張子厚問伯淳曰: 定性未能不動猶累於外物, 何也?” 子曰: 所謂定者靜亦定動亦定無將迎無內外苟以物爲外牽已而從之是以性爲有內外也. 性爲隨於外則當其在外時何者在內也. 是有意於絶外誘而不知性之無內外也. 旣以內外爲二本則又烏可語定哉夫天地之常以其心普萬物而無心聖人之常以其情順萬事而無情故君子之學莫若廓然而大公物來而順應苟規規於外誘之除將見滅於東生於西也. 非其日之不足顧其端無窮不可得而除也. 人之情各有所蔽故不能適道其害在於是內而自私也. 用智也. 自私則不能以有爲爲應迹用智則不能以明覺爲自然今以惡外物之心而求照無物之地是反鑑而索照也. 與其非外而是內不若內外之兩忘也. 兩忘則澄然無事矣. 無事則定定則明明則何物之爲累哉聖人之喜以物之當喜聖人之怒以物之當怒喜怒不繫於心而繫於物聖人未嘗絶物而不應也. 人之情易發而難制者惟怒爲甚能以方怒之時遽忘怒心而觀理之是非亦可見外誘之不足惡而於道亦思過半矣.&lt;br /&gt;
&lt;br /&gt;
==人物篇==&lt;br /&gt;
『수언』10-1 子曰: 萬物之始氣化而已旣形氣相禪則形化長而氣化消.&lt;br /&gt;
&lt;br /&gt;
『수언』10-2 子曰: 人以累物爲患必以忘物爲賢其失一也. &lt;br /&gt;
&lt;br /&gt;
『수언』10-3 子曰: 物固有是理因而充長之不俟乎造爲故曰: 益長裕而不設設則僞矣. &lt;br /&gt;
&lt;br /&gt;
『수언』10-4 子曰: 觀物理以察已之理明則無往而不識矣. &lt;br /&gt;
&lt;br /&gt;
『수언』10-5 子曰: 君子循理故常泰小人役於物故多憂戚&lt;br /&gt;
&lt;br /&gt;
『수언』10-6 子曰: 時者聖人之所不能爲也. 而人之智愚世之治亂聖人必示以可易之道者豈徒爲敎哉蓋有其理也. &lt;br /&gt;
&lt;br /&gt;
『수언』10-7 子曰: 物形有小大精粗之不同神則一而已&lt;br /&gt;
&lt;br /&gt;
『수언』10-8 子曰: 物相入則相說說則相入說以正爲貴君子之道致說於民如天地之施焉&lt;br /&gt;
&lt;br /&gt;
『수언』10-9 子曰: 君子之自尙蓋非一致有抱道不偶而高潔自守者焉有知止足之戒退而保身者焉有量能度分安於不求者焉有淸介遠引不屑世故者焉孔子所謂志則可者進退合道者也. &lt;br /&gt;
&lt;br /&gt;
『수언』10-10 子曰: 二氣五行剛柔萬殊聖人由一理復其初也. &lt;br /&gt;
&lt;br /&gt;
『수언』10-11 子曰: 非仁無以見天地&lt;br /&gt;
&lt;br /&gt;
『수언』10-12 子曰: 感慨殺身常人之所易處死生之際雍容就義君子之所難&lt;br /&gt;
&lt;br /&gt;
『수언』10-13 子曰: 觀物於靜中皆有春意&lt;br /&gt;
&lt;br /&gt;
『수언』10-14 子曰: 聖賢之處世莫不如大同之中有不同焉不能大同者是亂常拂理而已不能不同者是隨俗習汚而已&lt;br /&gt;
&lt;br /&gt;
『수언』10-15 子曰: 一行非所以名聖人&lt;br /&gt;
&lt;br /&gt;
『수언』10-16 子曰: 有志之士不以天下萬物撓己巳立矣. 則運天下濟萬物必有餘裕&lt;br /&gt;
&lt;br /&gt;
『수언』10-17 或曰: 凡人辨論自直其說求勝人而無含容之氣, 何也?” 子曰: 識量狹也. 聖人之有量天資也. 君子之有量學識也. 聖人與日月並明故天地同量下此者猶之江海也. 鐘鼎也. 釜斛也. 斗筲也. 其涯雖異其受也. 不齊而未有不滿者也. 惟道無限量知道者量必宏學而充之則亦隨其知之所至而已人有受一薦而滿者有得一官而滿者推而上之至於爲公輔而滿者方其未滿猶可蔽也. 旣不能承則必盈溢不可掩也. 鄧艾位登三公年七十矣. 其自處亦善及破蜀有功則心動矣. 謝安聞苻堅之敗不形喜色及折屐齒則心動矣. 有飮酒旣醉而執禮愈恭者雖賢於顚沛而爲酒所動一也. 富貴公子折身過於謙抑視驕傲者亦賢矣. 亦爲富貴所動也.” &lt;br /&gt;
&lt;br /&gt;
『수언』10-18 或問: “視朋友之過不告則不忠善告之不聽則當何如? 子曰: 誠意交孚於未言之前雖不言而人信之矣. 不信者誠不至也. &lt;br /&gt;
&lt;br /&gt;
『수언』10-19 子曰: 匹夫悍卒見難而能死者多矣. 惟妻孥之牽情慾之愛能斷而不惑者鮮矣哉!&lt;br /&gt;
&lt;br /&gt;
『수언』10-20 子曰: 勇一也. 而用不同勇於氣者小人也. 勇於義者君子也. 劉安節問人有少而勇老而怯少而廉老而貪何爲其然也. &lt;br /&gt;
&lt;br /&gt;
『수언』10-21 子曰: 志不立爲氣所使故也. 志勝氣則一定而不可變也. 曾子易簀之際其氣微可知也. 惟其志旣堅則雖死生之際亦不爲之動况老少之異乎&lt;br /&gt;
&lt;br /&gt;
『수언』10-22 子曰: 以已及物仁也. 推已及物恕也. &lt;br /&gt;
&lt;br /&gt;
『수언』10-23 子曰: 天下之聚貴以正聚不以正於人則爲苟合於財則爲悖入&lt;br /&gt;
&lt;br /&gt;
『수언』10-24 子曰: 學者必識聖賢之體聖人猶化工也. 賢人猶巧工也. 剪綵以爲花設色以畫之非不宛然肖之而欲觀生意之自然則無之也. &lt;br /&gt;
&lt;br /&gt;
『수언』10-25 子曰: 不以已待物而以物待物是謂無我&lt;br /&gt;
&lt;br /&gt;
『수언』10-26 子曰: 聖人之明猶日月不可過也. 過則不明矣. &lt;br /&gt;
&lt;br /&gt;
『수언』10-27 子曰: 一介之士苟存心於愛物亦必有所濟&lt;br /&gt;
&lt;br /&gt;
『수언』10-28 子曰: 氣之所鍾有偏正故有人物之殊有淸濁故有智愚之等&lt;br /&gt;
&lt;br /&gt;
『수언』10-29 劉安節問: “太古之時, 人物同生.” 子曰: “然.” “純氣爲人, 繁氣爲物乎?” 子曰: “然.” “其所生也. 無所從受則氣之所化乎?” 子曰: “然.”&lt;br /&gt;
&lt;br /&gt;
『수언』10-30 子曰: 物窮而不變則無不易之理易者變而不窮也. &lt;br /&gt;
&lt;br /&gt;
『수언』10-31 子曰: 萬物始生也. 鬱結未通則實塞于天地之間至於暢茂則塞意亡矣. &lt;br /&gt;
&lt;br /&gt;
『수언』10-32 子曰: 哲人知幾誠之於思乎志士力行守之於爲乎順理則裕而從欲則危乎&lt;br /&gt;
&lt;br /&gt;
『수언』10-33 子曰: 君子之敎人或引之或拒之或各因所虧者成之而已.&lt;br /&gt;
&lt;br /&gt;
『수언』10-34 張子曰: 洪鐘未嘗有聲由叩乃有聲聖人未嘗有知由問乃有知. 子曰: “謂聖人無知則當不問之時其猶木石乎?” 張子曰: 有不知則有知無不知則無知故曰: 聖人未嘗有知由問乃有知也.” &lt;br /&gt;
&lt;br /&gt;
『수언』10-35 或問: “天民與大人之道何以異?” 子曰: 順天而行道者天民也. 順天而爲政者天吏也. 大人則進乎此矣. &lt;br /&gt;
&lt;br /&gt;
『수언』10-36 子曰: 君子處難貴守正而不知其他也. 守正而難不觧則命也. 遇難而不固其守以自放於邪濫雖使苟免斯亦惡德也. 知義命不爲也. &lt;br /&gt;
&lt;br /&gt;
『수언』10-37 子曰: 先儒母弟之說非也. 禮云立嫡子母弟者謂嫡也. 非以同母爲加親也. 以同母爲加親是知母而不知父非人道也. &lt;br /&gt;
&lt;br /&gt;
『수언』10-38 子曰: 聖人之德無所不盛古之稱聖人者自其尤盛而言之尤盛者見于所遇也. 而或以爲聖人有能有不能非知聖人者也. &lt;br /&gt;
&lt;br /&gt;
『수언』10-39 子曰: 厚責於吾所感薄責於吾所應惟君子能之&lt;br /&gt;
&lt;br /&gt;
『수언』10-40 子曰: 聖人責人緩而不迫事正則已矣.” &lt;br /&gt;
&lt;br /&gt;
『수언』10-41 或問: “君子之與小人處也. 必有侵陵困辱之患則如之何曰: 於是而能反已兢謹以遠其禍則德益進矣. 詩不曰: 他山之石可以攻玉&lt;br /&gt;
&lt;br /&gt;
『수언』10-42 子曰: 人各親其親然後能不獨親其親&lt;br /&gt;
&lt;br /&gt;
『수언』10-43 子曰: 君子常過於厚小人常過於薄君子常過於愛小人常過於忍&lt;br /&gt;
&lt;br /&gt;
『수언』10-44 子曰: 欲利已者必損人欲利財者必歛怨&lt;br /&gt;
&lt;br /&gt;
『수언』10-45 子曰: 今之世稱曰: 善人者豈如無惡可欲也. 哉殆亦昏棄無立之異名&lt;br /&gt;
&lt;br /&gt;
『수언』10-46 子曰: 聖人之心未嘗有在亦無不在蓋其道合內外體萬物&lt;br /&gt;
&lt;br /&gt;
『수언』10-47 子曰: 聖人之心雖當憂勞未嘗不安靜其在安靜亦有至憂而未嘗勞也. &lt;br /&gt;
&lt;br /&gt;
『수언』10-48 子曰: 萬物之理皆至足而人於君臣父子之間不能盡其分者多矣. &lt;br /&gt;
&lt;br /&gt;
『수언』10-49 子曰: 無物無理惟格物可以盡理.” &lt;br /&gt;
&lt;br /&gt;
『수언』10-50 或問: “聖人之道其難知也.” 子曰: 聖人未嘗言易以驕人之志亦未嘗言難以阻人之進蓋曰: 未之思也. 夫何遠之有是言也. 涵蓄無窮之旨學者宜深思也. &lt;br /&gt;
&lt;br /&gt;
『수언』10-51 子曰: 覊靮以御馬而不以制牛人皆知覊靮之制在人而不知覊靮之用本於馬也. 聖人之化亦如之&lt;br /&gt;
&lt;br /&gt;
『수언』10-52 子曰: 君子之道貴乎有成有濟物之用而未及乎物猶無有也. &lt;br /&gt;
&lt;br /&gt;
『수언』10-53 子曰: 天地萬物之理無獨必有對&lt;br /&gt;
&lt;br /&gt;
『수언』10-54 子曰: 聖人天地之用也. &lt;br /&gt;
&lt;br /&gt;
『수언』10-55 子曰: 聖人盡道以其身之所行者敎人是欲天下之人皆至於聖人之域也. 佛氏逃父棄家毁絶倫類獨處山林之下乃以所輕所賤者施諸人豈聖人君子之心哉?&lt;br /&gt;
&lt;br /&gt;
『수언』10-56 子曰: 凡物有形則聲色臭味具焉四者之虛實均而實勝也. 意言數象亦然&lt;br /&gt;
&lt;br /&gt;
『수언』10-57 子曰: 夢之所接無形聲而心所感通則有形聲之理物生者氣聚也. 物死者氣散也. &lt;br /&gt;
&lt;br /&gt;
『수언』10-58 子曰: 君子在蹇則有以處蹇在困則有以處困道無時而不可行也. 不以蹇而蹇困而困也. &lt;br /&gt;
&lt;br /&gt;
『수언』10-59 子曰: 元者物之先也. 物之先未有不善者成而後有敗興而後有衰得而後有失事無不然者故孔子贊之曰: 元者善之長也. &lt;br /&gt;
&lt;br /&gt;
『수언』10-60 子曰: 凡人有已必用才聖人忘已何才之足言.” &lt;br /&gt;
&lt;br /&gt;
『수언』10-61 或問: “符瑞之事有諸?” 子曰: 有之聖人不道焉, 何也?” 曰: 因災異而修德則無損因禎祥而自恃則有害是以不道也. &lt;br /&gt;
&lt;br /&gt;
『수언』10-62 子曰: 堯夫云能物物則我爲物之人也. 不能物物則我爲物之物也. 夫人自人物自物其理昭矣. &lt;br /&gt;
&lt;br /&gt;
『수언』10-63 子曰: 合而生非來也. 盡而死非往也. 然而精氣歸於天形魄歸於地謂之往亦可矣. &lt;br /&gt;
&lt;br /&gt;
『수언』10-64 子曰: 與昧者語如持掖醉人左扶之則右仆右扶之則左仆欲其卓立中途不可得也. &lt;br /&gt;
&lt;br /&gt;
『수언』10-65 子曰: 莊周言神人者非也. 聖而不可知則不可得而名故以神稱之非謂神人加於聖人一等也. &lt;br /&gt;
&lt;br /&gt;
『수언』10-66 子嘗言昔游乎雍華之間關西學者六七人從予行一曰: 亡千錢僕者曰: 非晨裝遺必涉水沉之矣. 子曰: “惜哉!” 有謂子曰: 是誠可惜也. 又有曰: 微哉千錢亦何足惜也. 又有曰: 水中囊中人亡人得可以一視何歎何惜也. 子曰: 人苟得之則非亡矣. 今迺墜諸水則無用吾是以歎之及語呂與叔曰: 人之器識乃如是之不同也. 與叔曰: 夫三子之言何如? 子曰: 最後者善與叔曰: 善則善矣. 觀夫子之言則見其有體而無用也. 予因善誌之旣十有五年閱故編見之思與叔不幸而早死爲之隕涕&lt;br /&gt;
&lt;br /&gt;
『수언』10-67 子曰: 君子之學必日進則日新不日進者必日退未有不進而不退者惟聖人之道無進退以其所造者極也. &lt;br /&gt;
&lt;br /&gt;
『수언』10-68 子曰: 聖人之言其遠如天若不可階而升也. 其近若地則亦可以履而行也. &lt;br /&gt;
&lt;br /&gt;
『수언』10-69 子曰: 有求爲聖人之志然後可以共學學而善思然後可以適道&lt;br /&gt;
&lt;br /&gt;
『수언』10-70 子曰: 多權者害誠好功者害義取名者賊心&lt;br /&gt;
&lt;br /&gt;
『수언』10-71 子曰: 君子好成物故吉小人好敗物故凶&lt;br /&gt;
&lt;br /&gt;
『수언』10-72 子曰: 萬物皆備于我心與事遇則內之所重者更互而見此一事重則此一事出惟能物各付物則無不可矣. &lt;br /&gt;
&lt;br /&gt;
『수언』10-73 子曰: 爲有爲而以無爲爲之是乃有爲耳. 聖人無爲異於是&lt;br /&gt;
&lt;br /&gt;
『수언』10-74 子曰: 元氣會則生聖賢&lt;br /&gt;
&lt;br /&gt;
『수언』10-75 子曰: 凡物叅合交感則生離散不和則死&lt;br /&gt;
&lt;br /&gt;
『수언』10-76 子曰: 君子之於義猶小人之於利也. 唯其深喩是以篤好&lt;br /&gt;
&lt;br /&gt;
『수언』10-77 子曰: 聖人濟物之心無窮而力或有所不及&lt;br /&gt;
&lt;br /&gt;
『수언』10-78 子曰: 聚爲精氣, 散爲游魂; 聚則爲物, 散則爲變. 觀聚散, 則鬼神之情狀著矣. 萬物之始終, 不越聚散而已. 鬼神者, 造化之功也. &lt;br /&gt;
&lt;br /&gt;
『수언』10-79 子曰: 才高者多過過則一出焉一入焉才卑者多不及不及者殆且弛矣. &lt;br /&gt;
&lt;br /&gt;
『수언』10-80 或曰: 凡物之出各自其氣之所勝而化焉. 子曰: 何以見之曰: 如木之生新根旣大則舊根化矣. 子曰: 是克也. 或曰: 克則木化爲土而何? 子曰: 非化也. 克也. 物無一定盛衰相因古之人以迭王言五行盡之矣. 或曰: “五行一氣也. 其本一物耳.” 子曰: 五物也. 五物備然後生猶五常一道也. 無五則亦無道然而旣曰: 五矣. 則不可渾而爲一也. &lt;br /&gt;
&lt;br /&gt;
『수언』10-81 子曰: 物有本末而本末非二道也. &lt;br /&gt;
&lt;br /&gt;
『수언』10-82 子曰: 致中和天地位焉萬物育焉曰: 致曰: 位非聖人不能言子思蓋得之云爾&lt;br /&gt;
&lt;br /&gt;
『수언』10-83 子曰: 聖人無私無我故功高天下而無一介累其心蓋有一介存焉未免乎私已也. &lt;br /&gt;
&lt;br /&gt;
『수언』10-84 子曰: 聖人之心如天地之造生養萬物而不尸其功應物而見於彼復何存於此乎&lt;br /&gt;
&lt;br /&gt;
『수언』10-85 子曰: 輕浮巧利之人去仁遠矣. &lt;br /&gt;
&lt;br /&gt;
『수언』10-86 子曰: 天理無私一入於私雖欲善其言行皆非禮&lt;br /&gt;
&lt;br /&gt;
『수언』10-87 子曰: 不履聖賢之行則亦不能入其閫奧&lt;br /&gt;
&lt;br /&gt;
『수언』10-88 子曰: 不可爲而爲之聖人無忘天下之心也. &lt;br /&gt;
&lt;br /&gt;
『수언』10-89 子曰: 隘與不恭君子不由拔本塞源之敎也. &lt;br /&gt;
&lt;br /&gt;
『수언』10-90 子曰: 因是人有可喜則喜之聖人之心本無喜也. 因是人有可怒則怒之聖人之心本無怒也. 譬諸明鏡誠懸美物至則美醜物至則醜鏡何有美醜哉君子役物小人役於物今人見可喜可怒之事必容心其間若不啻在已者亦勞矣. &lt;br /&gt;
&lt;br /&gt;
『수언』10-91 子曰: 上下一於敬則天地自位萬物自育氣無不和四靈何所不至此聖人修已以安百姓之道也. &lt;br /&gt;
&lt;br /&gt;
『수언』10-92 子曰: 爲惡之人原於不知思有思則心悟&lt;br /&gt;
&lt;br /&gt;
『수언』10-93 子曰: 物未嘗不齊也. 强欲齊之者非物不齊也. 汝自不齊耳. &lt;br /&gt;
&lt;br /&gt;
『수언』10-94 子曰: 上竿而戲者自數尺至於百尺習化其高也. 况聖人至誠妙物之功乎&lt;br /&gt;
&lt;br /&gt;
『수언』10-95 子曰: 聖人一言卽全體用不期然而然也. &lt;br /&gt;
&lt;br /&gt;
『수언』10-96 子曰: 人之所以爲人者以有天理也. 天理之不存則與禽獸何異矣.” &lt;br /&gt;
&lt;br /&gt;
『수언』10-97 或問: “於傳有言太古之時人有牛頭蛇身者信乎?” 子曰: 謂之人則無是矣. 或言其賦形之有肖焉則可謂云爾已矣. &lt;br /&gt;
&lt;br /&gt;
『수언』10-98 子曰: 物我一理明此則盡彼盡則通此合內外之道也. 語其大至天地之所以高厚語其小至於一草木所以始終皆窮理之功也. &lt;br /&gt;
&lt;br /&gt;
『수언』10-99 子曰: 窮物理者窮其所以然也. 天之高地之厚鬼神之微顯必有所以然者苟曰: 天惟高耳. 地惟厚耳. 鬼神惟微顯耳. 是則辭而已尙何有哉!&lt;br /&gt;
&lt;br /&gt;
『수언』10-100 子曰: 惟聖人凝然不動.&lt;br /&gt;
&lt;br /&gt;
『수언』10-101 子曰: 惟聖人善通變.&lt;br /&gt;
&lt;br /&gt;
『수언』10-102 子曰: 五行在天地之間有則俱有無生出先後之次也. 或水火金木土之五者爲有序不可也. 然則精神魂魄意之五者爲序亦不可也.&lt;/div&gt;</summary>
		<author><name>Wooya0902</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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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주돈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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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4-28T16:21:3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Wooya0902: &lt;/p&gt;
&lt;hr /&gt;
&lt;div&gt;=주돈이(周敦頤)=&lt;br /&gt;
주돈이(1017~1073)의 字는 茂叔, 號는 濂溪이다. 원 이름은 敦實이었지만 송나라 英宗(재위 1063~1067)의 초명인 宗實을 피휘하여 敦頤로 이름을 바꾸었다. 대표 저작으로 [[태극도설]]과 [[통서]]가 있다.&lt;br /&gt;
기타 정보는 추가하거나 다음의 링크를 참고할 것. [https://baike.baidu.com/item/%E5%91%A8%E6%95%A6%E9%A2%90/327717?fr=aladdin]&lt;br /&gt;
&lt;br /&gt;
==송사 주돈이전==&lt;br /&gt;
&lt;br /&gt;
周敦頤，字茂叔，道州營道人。元名敦實，避英宗舊諱改焉。以舅龍圖閣學士鄭向任，為分寧主簿。有獄久不決，敦頤至，一訊立辨。邑人驚曰：「老吏不如也。」部使者薦之，調南安軍司理參軍。有囚法不當死，轉運使王逵欲深治之。逵，酷悍吏也，眾莫敢爭，敦頤獨與之辨，不聽，乃委手版歸，將棄官去，曰：「如此尚可仕乎！殺人以媚人，吾不為也。」逵悟，囚得免。&amp;lt;br/&amp;gt; 주돈이(周敦頤)는 자가 무숙(茂叔)이고 도주(道州) 영도현(營道) 사람이다. 원래 이름은 돈실(敦實)이었는데 송나라 영종의 옛 이름을 피휘하여 고쳤다. 외삼촌인 용도각학사 정향(鄭向)의 추천으로 분녕의 주부로 임용되었다.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송사가 있었는데 주돈이가 오자 단번에 조사하여 판결을 내렸다. 마을 사람들이 놀라면서 “노련한 관리도 [주돈이만] 못하구나.”라고 말했다. 부사가 그를 천거하였고 남안군사리참군(南安軍司理參軍)으로 임명되었다. 죄수 중에서 법으로 볼 때 죽여선 안 되는 사람이 있었는데 전운사(轉運使) 왕규(王逵)는 그를 심하게 치죄하였다. 왕규는 독하고 사나운 관리인지라 무리 중에서 아무도 감히 다투려고 하지 않았는데 주돈이만이 홀로 그와 논변하였다. 그러나 왕규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고 곧 수판(手版)을 버리고 돌아가 관직을 버리고 떠나려고 하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관리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을 죽여서 남에게 아첨하는 짓을 난 도저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왕규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고, 죄수는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amp;lt;br/&amp;gt; &amp;lt;br/&amp;gt;  移郴之桂陽令，治績尤著。郡守李初平賢之，語之曰：「吾欲讀書，何如？」敦頤曰：「公老無及矣，請為公言之。」二年果有得。徙知南昌，南昌人皆曰：「是能辨分寧獄者，吾屬得所訴矣。」富家大姓、黠吏惡少，惴惴焉不獨以得罪於令為憂，而又以污穢善政為恥。曆合州判官，事不經手，吏不敢決。雖下之，民不肯從。部使者趙抃惑於譖口，臨之甚威，敦頤處之超然。通判虔州，抃守虔，熟視其所為，乃大悟，執其手曰：「吾幾失君矣，今而後乃知周茂叔也。」&amp;lt;br/&amp;gt; 침군(郴郡) 계양(桂陽)의 현령으로 자리를 옮기자 치적이 더욱 현저해졌다. 침군의 군수 이초평(李初平)은 그가 현명하다고 생각해서 “나는 독서를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며 물었다. 주돈이는 “공은 나이가 많아 시간이 급박하니 공을 위하여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고 말했다. 이년 뒤에 과연 소득이 있었다. 자리를 옮겨서 남창의 지현이 되었는데, 남창의 사람들은 모두 “이는 분녕의 옥사를 능히 판결한 사람이니 우리들이 하소연할 곳을 얻었다.”고 말했다. 부자들과 지방의 유력자들과 교활한 관리들과 악행을 저지르는 젊은이들은 모두 두려워하며 현령으로부터 죄를 얻는 건 아닐까 두려워하였을 뿐 아니라 선정을 더럽히는 것을 부끄러운 일로 여겼다. 합주(合州)의 판관을 역임할 때, 일이 그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관리들이 감히 처결하지 못하였고, 비록 명령을 내리더라도 백성들은 청종하려고 하지 않았다. 부사 조변(趙抃)이 참소하는 말에 현혹되어 [주돈이를] 대하는 태도가 매우 위엄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돈이는 초연히 대처하였다. 건주(虔州) 통판을 맡았을 때에는 조변이 건주의 현령이 되어 면밀하게 그의 행실을 보고선 곧 크게 깨닫더니 그의 손을 잡으며 “나는 그대를 거의 잃어버렸지만. 지금 이후로 주무숙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amp;lt;br/&amp;gt; &amp;lt;br/&amp;gt;  熙寧初，知郴州。用抃及呂公著薦，為廣東轉運判官，提點刑獄，以洗冤澤物為己任。行部不憚勞苦，雖瘴癘險遠，亦緩視徐按。以疾求知南康軍，因家廬山蓮花峰下。前有溪，合于溢江，取營道所居濂溪以名之。抃再鎮蜀，將奏用之，未及而卒，年五十七。 &amp;lt;br/&amp;gt;  희령(熙寧, 1068년~1077) 초년에 침주(郴州)의 지주가 되었다. 조변과 여공저(呂公著)로부터 천거를 받아 광동(廣東)의 전운판관(東轉運判官)이 되자 죄를 지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억울하게 죄를 지은 사람들의 누명을 벗겨주며,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여겼다. 부(部)를 순행하였지만 노고(勞苦)를 꺼려하지 않아서 비록 풍토병과 창병이 일고 길이 험하고 멀더라도 시찰하고 위무하였다. 나중에 주돈이는 병으로 지남강군(知南康軍)으로 자리를 옮기길 구하였고, 이로 인해 여산의 연화봉(蓮花峯) 아래에 집을 지었다. 앞에 시내가 있었는데 분강(湓江)으로 합하였고, 영도(營道)에 머물렀던 염계(溓溪)를 취하여 이름으로 삼았다. 조변이 재차 촉(蜀)에 진수하였을 때 장차 [주돈이를] 등용하라 상주하려고 하였지만 그 일이 이루기도 전에 주돈이는 죽고 말았으니 당시의 나이가 57세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  黃庭堅稱其「人品甚高，胸懷灑落，如光風霽月。廉于取名而銳於求志，薄於徼福而厚於得民，菲於奉身而燕及煢嫠，陋於希世而尚友千古。」 &amp;lt;br/&amp;gt;  황정견(黃庭堅)은 “인품이 매우 높고 가슴에 품고 있는 것은 시원하여 마치 광풍제월(光風霽月)과 같다. 명성을 취하는 것을 뒷전으로 하였으나 뜻을 구하는 것에는 왕성하였고, 복을 구함에는 박하였지만 백성의 마음을 얻는 데에는 두터웠으며, 몸을 받듦에는 둔하였지만 즐거워함이 과부와 홀아비를 보살피는 일에 주의를 기울였고, 세상에 영합함을 누추하게 여겼지만 위로는 천고(千古)와 벗하였다.”고 그를 칭송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 博學行力，著《太極圖》，明天理之根源，究萬物之終始。其說曰： &amp;lt;br/&amp;gt; 널리 배우고 힘써 실천하였는데, 《태극도》를 지어 천리의 근원을 밝히고 만물의 시작과 끝을 궁구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  無極而太極。太極動而生陽，動極而靜，靜而生陰，靜極複動，一動一靜，互為其根，分陰分陽，兩儀立焉。陽變陰合，而生水、火、木、金、土，五氣順布，四時行焉。五行一陰陽也，陰陽一太極也。太極本無極也。五行之生也，各一其性。無極之真，二五之精，妙合而凝，乾道成男，坤道成女。二氣交感，化生萬物，萬物生生，而變化無窮焉。惟人也得其秀而最靈，形既生矣，神發知矣，五性感動而善惡分，萬事出矣。聖人定之以中正仁義而主靜，立人極焉。故聖人與天地合其德，日月合其明，四時合其序，鬼神合其吉凶。君子修之吉，小人悖之凶。故曰：「立天之道，曰陰與陽。立地之道，曰柔與剛。立人之道，曰仁與義。」又曰：「原始反終，故知死生之說。」大哉《易》也，斯其至矣。 &amp;lt;br/&amp;gt; “무극(無極)이면서 태극(太極)이다. 태극이 움직여서 양(陽)이 생기고 움직임이 극한에 달하여 고요해지는데 고요해지면 음(陰)이 생긴다. 그리고 고요함이 극한에 다다르면 다시 움직인다. 한번 움직이고 한번 고요해져서 서로 각각의 근거가 되니, 음으로 나뉘고 양으로 나뉘어 양의(兩儀)가 세워진다. 음양이 변화하거나 결합해서 수(水)·화(火)·목(木)·금(金)·토(土)라는 오행이 생겨난다. 다섯 종류의 기(五氣)는 순서에 따라 펴져서 춘(春)·하(夏)·추(秋)·동(冬)이라는 사시(四時)가 운행된다. 오행은 하나의 음양이고, 음양은 하나의 태극이다. 태극은 본래 무극이다. 오행의 생성에 각각 본성을 동일하게 갖고 있다. 무극의 신실함과 음양·오행의 순정함은 신묘하게 결합해서 응결된다. ‘건(乾)의 도리는 남자를 이루고, 곤(坤)의 도리는 여자를 이룬다.’고 하니 음양이라는 두 기가 교감하여 만물을 화생시킨다. 만물이 발생하는 과정을 반복하니 변화는 끝이 없다. 오직 사람만이 빼어난 것을 얻어서 가장 영명하다. 형체가 이미 생겨나면 정신이 지각을 발현시키니 [인(仁)·의(義)·예(禮)·지(知)·신(信)이라는] 다섯 가지 본성(五性)이 외물에 감응해 움직이다 선악(善惡)이 나뉘고 온갖 사태들이 출현한다. 성인은 중(中)·정(正)·인(仁)·의(義)로써 이를 안정시키되 정(靜)을 위주로 사람의 표준을 세우셨다. 그러므로 성인은 천지와 그 덕이 합치되고, 일월과 그 밝음이 합치되고, 사시와 그 순서가 합치되며, 귀신과 그 길흉이 합치된다. 군자는 수양하니 길하며, 소인은 어긋나니 흉하다. 그러므로 ‘천도(天道)를 세우며 음(陰)과 양(陽)을 말하였고, 지도(地道)를 세우며 유(柔)와 강(剛)을 말하였고, 인도(人道)를 세우며 인(仁)과 의(義)를 말하였다.’고 하였으며, 또 ‘시작을 궁구하고 끝으로 돌아가니 그러므로 죽음과 삶의 설을 알겠다.’고 한 것이다. 위대하다 역(易)이여! 이렇게도 지극하도다.”&amp;lt;br/&amp;gt; &amp;lt;br/&amp;gt;  又著《通書》四十篇，發明太極之蘊。序者謂「其言約而道大，文質而義精，得孔、孟之本源，大有功于學者也。」 &amp;lt;br/&amp;gt; 또한 《통서》 40편을 저술하여 태극의 품은 뜻을 드러내서 밝혔다. 서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말은 간략하지만 [담고 있는] 도는 크고, 형식과 내용이 갖추어져있고(文質) 의미가 정밀하여 공자와 맹자의 본원(本源)을 얻었으니 배우는 자들에게 큰 공이 있다.” &amp;lt;br/&amp;gt; &amp;lt;br/&amp;gt; 掾南安時，程珦通判軍事，視其氣貌非常人，與語，知其為學知道，因與為友，使二子顥、頤往受業焉。敦頤每令尋孔、顏樂處，所樂何事，二程之學源流乎此矣。故顥之言曰：「自再見周茂叔後，吟風弄月以歸，有'吾與點也'之意。」侯師聖學于程頤，未悟，訪敦頤，敦頤曰：「吾老矣，說不可不詳。」留對榻夜談，越三日乃還。頤驚異之，曰：「非從周茂叔來耶？」其善開發人類此。  &amp;lt;br/&amp;gt; 안정에 머무르고 있을 때에 통판군사(通判軍事) 정향(程珦)이 풍모가 비상한 사람임을 보고는 그와 함께 이야기를 했더니 과연 그의 학문 됨됨이와 도(道)를 알고 있음을 알고는 그와 교유를 맺어 두 아들 정호(程顥)와 정이(程頤)로 하여금 가서 수업하도록 하였다. 주돈이는 매번 공자와 안회가 즐거워하는 것, 즉 그들이 즐기던 바가 무슨 일이었는지를 살피도록 하였으니, 이정의 학문이 이로부터 연원하였다. 그래서 정호는 이렇게 말했다. “다시 주무숙을 본 후로부터 음풍농월(吟風弄月) 중에 ‘나는 증점과 함께하겠노라.’라고 말씀하신 공자의 뜻이 있게 되었다.” 후사성(侯師聖)이 정이로부터 학문을 하였지만 깨닫지 못하고 주돈이를 방문하였다.  주돈이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늙어서 말을 상세하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그와 책상을 마주하며 밤새도록 머물며 담론하다 3일이 지나 되돌아갔더니 정이가 남달라진 것을 탄복하며 이렇게 말했다. “주무숙으로부터 온 것이 아닌가!” 그는 사람들을 이렇게 잘 개발시켜주었다.  &amp;lt;br/&amp;gt; &amp;lt;br/&amp;gt;  嘉定十三年，賜諡曰元公，淳祐元年，封汝南伯，從祀孔子廟庭。  &amp;lt;br/&amp;gt;  가정(嘉定) 13년(1220년)에 시호를 하사하여 ‘원공(元公)’이라 하였고, 순우(淳祐) 원년(1241년)에 여남백(汝南伯)에 봉하고 공자의 묘정에 종사(從祀)하게 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  二子壽、燾，燾官至寶文閣待制。 &amp;lt;br/&amp;gt; 두 아들은 주수(周壽)와 주도(周燾)이다. 주도는 관직이 보문각대제(寶文閣待制)에 이르렀다.&lt;br /&gt;
&lt;br /&gt;
==주정수수설(周程授受說)==&lt;br /&gt;
&lt;br /&gt;
===발단===&lt;br /&gt;
[[주자]]의 북송오자 선양 및 이를 계승한 『송사』 「도학전」. &amp;lt;br/&amp;gt;&lt;br /&gt;
쓰치다 겐지로(土田健次郎)의 『북송도학사』(성현창 역, 예문서원, 2006) 제2장 제2절 &amp;quot;주정수수설 재고&amp;quot;(164~199쪽) 파트에 잘 정리되어 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이정의 태도===&lt;br /&gt;
이정이 어렸을 때 주돈이에게 배운 것은 분명하지만, 사제관계가 성립한다고 해서 이정보다 앞선 도학의 종주로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단 『이정집』에서의 주돈이에 대한 평가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lt;br /&gt;
:*'''昔受學於周茂叔, 每令尋顏子･仲尼樂處, 所樂何事.''' (전에 주무숙에게 배울 때, 주무숙은 매번 안자와 공자께서 즐기신 경지와 즐기신 바가 어떤 일인지 찾아보게 하였다.)&lt;br /&gt;
:*'''詩可以興. 某自再見茂叔後, 吟風弄月以歸, 有吾與點也之意.''' (시는 사람을 흥기시킬 수 있다. 내가 주무숙을 두 번 본 뒤에 음풍농월하며 돌아가면서 공자께서 '나는 증점을 허여하노라'라고 말씀하셨던 뜻을 갖게 되었다.)&lt;br /&gt;
:*'''周茂叔窗前草不除去. 問之, 云: &amp;quot;與自家意思一般.&amp;quot;''' (주무숙은 창 앞의 풀을 뽑지 못하게 하였다.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였다: &amp;quot;내 마음과 똑같기 때문이네.&amp;quot;)&lt;br /&gt;
:*'''周茂叔窮禪客.''' (주무숙은 허접한(?) 선객이었다.) [혹은 '주무숙은 선객을 곤란하게 만들었다.']&lt;br /&gt;
:*'''獵, 自謂今無此好. 周茂叔曰: &amp;quot;何言之易也? 但此心潛隱未發. 一日萌動, 復如前矣.&amp;quot; 後十二年, 因見, 果知未.''' (내가 전에 사냥에 대해서 '요즘엔 이런 취미가 없습니다.'하고 스스로 말했는데, 주무숙이 말하길: &amp;quot;어찌 말을 쉽게 하는가? 그저 이 마음이 가라앉아 숨어 드러나지 않을 뿐이네. 어느 날 이 마음이 싹터 움직이게 되면 다시 전과 같아질걸세.&amp;quot;라고 하였다. 12년 뒤에 이 말에 입각해 살펴보니, 과연 내 말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lt;br /&gt;
:*'''先生爲學, 自十五六時, 聞汝南周茂叔論道, 遂厭科舉之業, 慨然有求道之志. 未知其要, 泛濫於諸家, 出入於老釋者幾十年, 返求諸六經而後得之.''' (선생의 학문의 경우, 15-6세에 여남의 주무숙이 도를 논한다는 소문을 듣고 마침내 과거 공부에 염증내고 개연히 도를 추구하려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 핵심을 알지 못해 제자백가를 떠돌고 도불에 출입하기를 십여 년간 하시고서, 돌아와 육경에서 도를 구한 이후에야 터득하셨다.)&lt;br /&gt;
:*'''異時, 伊川同朱公掞訪先君. 先君留之飮酒, 因以論道. 伊川指面前食卓曰: &amp;quot;此卓安在地上? 不知天地安在甚處?&amp;quot; 先君爲之極論天地萬物之理、以及六合之外. 伊川歎曰: &amp;quot;平生唯見周茂叔論至此. 然不及先生之有條理也.&amp;quot;''' (어느날 이천 선생께서 주공섬과 함께 先君을 방문하셨다. 先君께서 함께 자리하시고 술을 드셨는데, 인하여 도에 대해 논하였다. 이천 선생께서 앞의 식탁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amp;quot;이 식탁은 어떻게 땅 위에 서있는 것인가? 잘 모르겠지만, 천지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것인가?&amp;quot; 先君께서 답하기 위해 천지만물의 이치와 六合 바깥에 대해 지극히 논하셨다. 이천 선생께서 찬탄하시며 말씀하셨다: &amp;quot;평생 오직 주무숙의 논의만이 이정도의 수준에 이른 것을 보았네. 그러나 주무숙의 논의는 그대의 설에 조리가 있는 것만 못했네.&amp;quo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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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제기된 의문===&lt;br /&gt;
역사적으로 주정수수를 의심한 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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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1. 남송 왕응신(汪應辰) 『文定集』 권15 「與朱元晦」 9, 10.&lt;br /&gt;
:*伊川于濓溪, 若止云少年嘗從學, 則無害矣. (이천 선생이 염계 선생에 대해 그저 '소년기에 일찍이 따라 배웠다'고만 말했다면 문제는 없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lt;br /&gt;
:*濓溪先生髙明純正. 然謂二程受學, 恐未能盡. 范文正公一見横渠竒之, 授以『中庸』, 謂横渠學文正, 則不可也. (염계 선생께서는 髙明하고 純正하셨지만, 만약 '이정이 염계 선생께 수학했다'고 한다면 아마 실정을 온전히 표현한 것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범문정공[범중엄]이 횡거 선생을 한 번 보고 기특하게 여겨 『중용』을 주긴 했지만, '횡거 선생이 범문정공에게 배웠다'고 하면 안 됩니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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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남송 육구연(陸九淵) 『象山集』 권12 「與朱元晦」 1.&lt;br /&gt;
:*梭山兄謂: &amp;quot;『太極圖説』與『通書』不類, 疑非周子所為. 不然則或是其學未成時所作; 不然則或傳他人之文, 後人不辨也. 葢『通書』「理性命」章言: &amp;quot;中焉止矣&amp;quot;, &amp;quot;二氣五行, 化生萬物, 五殊二實, 二本則一.&amp;quot; 曰一曰中, 即太極也, 未甞於其上加無極字; 「動静」章言: &amp;quot;五行隂陽, 隂陽太極&amp;quot;, 亦無無極之文. 假令『太極圖説』是其所傳, 或其少時所作, 則作『通書』時不言無極, 葢已知其説之非矣.&amp;quot; 此言殆未可忽也. (梭山형[육구소]이 말씀하시길: &amp;quot;『태극도설』 과 『통서』가 비슷하지 않으니, 아마 周子가 지은 게 아닌 듯하다. 그렇지 않다면 혹 그의 학문이 아직 성숙하지 않았을 때 지은 것이거나, 아니면 혹 다른 사람의 글을 옮긴 건데 후인이 변별하지 못한 것일 것이다. 대개 『통서』의 「리성명」장에서 '中焉止矣', '二氣五行, 化生萬物, 五殊二實, 二本則一.'라고 하는데,  一·中이라고 한 것은 곧 태극이니 그 위에 '무극'을 덧붙인 적이 없고, 「動静」장에서는 '五行隂陽, 隂陽太極'이라고 하는데 역시 '무극'이라는 말이 없다. 가령 『태극도설』이 남의 말을 옮긴 것이거나 혹 그가 어렸을 때 지은 것이라면, 『通書』를 쓸 때 '무극'을 말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태극도설』이 틀렸음을 이미 알고서 그렇게 한 것이다.&amp;quot;라고 하셨는데, 이 말을 결코 소홀히해서는 안 됩니다.)&lt;br /&gt;
:*無極二字, 出於『老子』 「知此雄」章, 吾聖人之書所無有也. 『老子』首章言: &amp;quot;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amp;quot;而卒同之, 此老氏之宗㫖也, &amp;quot;無極而太極&amp;quot;即是此㫖. 老氏學之不正, 見理不明, 所蔽在此. 兄於此學用力之深, 為日之乆, 曽此之不能辨, 何也? 『通書』&amp;quot;中焉止矣&amp;quot;之言, 與此之昭然不類, 而兄曾不之察, 何也? 『太極圖説』以無極二字冠首, 而『通書』終篇未甞一及無極字. 二程言論文字至多, 亦未甞一及無極字. 假令其初實有是圖, 觀其後來未甞一及無極字, 可見其道之進而不自以為是也. ('무극' 두 글자는 『노자』 「知其雄」 장에서 나오지 우리 유가 성인의 책에 있는 말이 아닙니다. 『노자』 수장에서 &amp;quot;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amp;quot;라 하고 끝내 같게 여기는데, 이것이 노자의 종지이고 &amp;quot;무극이태극&amp;quot;이 곧 이 뜻입니다. 노자는 배운 것이 바르지 않고 이치를 보는 것이 분명하지 않으니, 그의 병폐가 여기에 있는데, 존형께서는 이 학문에 대해 깊이 힘쓰시고 오래 시간을 보내셨으면서 일찍이 이를 변별해내지 못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 『통서』 「리성명」장의 &amp;quot;中焉止矣&amp;quot;라는 말은 이것이 분명한 것과 같지 않은데, 존형께서 일찍이 이를 살피지 못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 『태극도설』은 '무극' 두 글자를 첫머리에 두고 있지만 『통서』는 마지막 편까지 한 번도 '무극'을 언급하지 않고, 이정이 논의한 글이 지극히 많은데도 '무극'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가령 주돈이가 처음에 실제로 『태극도설』을 썼다 하더라도, 그가 나중에 한 번도 '무극'을 언급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의 학문이 발전하여 스스로 이를 옳게 여기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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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남송 장식(張栻) 『朱子全書』 권13 「太極圖說解」 《後記》&lt;br /&gt;
:*某既爲此說, 嘗錄以寄廣漢張敬夫. 敬夫以書來曰: “二先生所與門人講論問答之言, 見於書者詳矣. 其於《西銘》, 蓋屢言之; 至此圖則未嘗一言及也. 謂其必有微意, 是則固然. 然所謂微意者, 果何謂耶?” (내[주희]가 이 해설을 쓰고서 일찍이 이를 적어 광한 장경부에게 보냈는데, 경부가 편지를 보내왔다: “[명도·이천] 두 선생께서 문인들과 강론하고 문답을 주고받으신 말씀들은 책에 보이는 것이 상세합니다. 두 선생께서 《서명》에 대해서는 누차 말씀하셨는데, 이 《태극도》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대는] ‘거기에 필시 숨겨진 의도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진실로 그렇겠지만, 이른바 ‘숨겨진 의도’라는 게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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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 주이존(朱彝尊) 『曝書亭集』 권58 「太極圖授受考」 &lt;br /&gt;
:*自漢以來, 諸儒言『易』, 莫有及《太極圖》者. 惟道家者流有上方大洞真元妙經, 著太極三五之說. (한나라 이후로 여러 유자가 『주역』에 대해 말했는데 《태극도》를 언급한 경우는 없다. 오직 도가에  『上方大洞真元妙經』이 太極·三五의 설을 말한 것이 전해 온다.)&lt;br /&gt;
:*山陽度正作元公年表, 書: “慶厯六年, 知䖍州興國縣程公珦假倅南安, 因與先生為友, 令二子師之. 時明道年十五, 伊川年十四爾. 其後先生作《太極圖》, 獨手授之, 他莫得而聞焉&amp;quot;. 攷是年, 元公以轉運使王逵薦移知郴縣, 自是而後二程子未聞與元公覿面. 然則從何地手授乎? (산양 도정이 원공[주돈이]의 연표를 지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amp;quot;경력6년 知䖍州興國縣 정향이 남안 부지사도 겸임하고 있었는데, 인하여 선생과 벗이 되어 두 아들로 하여금 스승으로 모시게 하였다. 당시 명도 선생은 15살이었고 이천 선생은 14살이었다. 그 후에 선생이 《太極圖》를 지어 유독 직접 전해주셨는데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amp;quot; 이 해를 헤아려보면, 원공은 전운사 왕규의 추천으로 침현으로 이직하셨으니, 이 이후에는 이정 선생이 원공을 면대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직접 전수하했겠는가?)&lt;br /&gt;
:*伊川撰《明道行状》云: “先生為學自十五六時, 聞汝南周茂叔論道, 遂厭科舉之業, 慨然有求道之志. 未知其要, 泛濫于諸家, 出入于老釋者幾十年. 反求諸六經而後得之.” 繹其文, 若似乎未受業于元公者. 不然, 何以求道未知其要, 復出入于老釋也邪? (이천 선생이 《명도행장》을 지어 말씀하셨다: &amp;quot;선생의 학문의 경우, 15살 때 여남 주무숙이 도를 논함을 듣고 마침내 과거 공부에 염증내고 개연히 도를 추구할 뜻을 갖게 되셨다. 그러나 그 핵심을 알지 못하여 제자백가를 떠돌고 도불에 출입하기를 거의 십여 년 하시고서, 돌아와 육경에서 도를 찾은 이후에야 터득하셨다.&amp;quot; 이 글을 풀어보면, 원공에게 학업을 전수받지 않은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도를 추구함에 그 핵심을  알지 못해 다시 도불에 출입하셨겠는가?)&lt;br /&gt;
:*潘興嗣志元公墓亦不及二程子從游事. (반흥사가 원공의 묘에 쓴 묘지명에도 이정 선생이 종유한 일을 언급하지 않았다.)&lt;br /&gt;
:*明道之卒, 其弟子朋友, 若范淳夫、朱公掞、邢和叔、游定夫, 叙其行事, 皆不言其以元公為師. 惟劉斯立為: “從周茂叔問學, 斯猶孔子問禮于老子, 問樂于萇弘, 問官于郯子云然.” 盖與受業有間矣. (명도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그의 제자와 벗, 예를 들면 범순부·주공섬·형화숙·유정부가 명도 선생의 행적을 서술할 때 모두 원공이 스승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오직 유사립만이 &amp;quot;명도 선생께서 주무숙을 종유하여 학문을 물으신 것은 공자께서 노자에게 예를 물으시고, 장홍에게 음악을 물으시며, 담자에게 관제를 물은 것과 같다.&amp;quot;고 하였는데, 대개 학업을 전수받은 것과는 차이가 있다.)&lt;br /&gt;
:*呂與叔『東見錄』, 則有昔受學于周茂叔之語. 然弟子稱師, 無直呼其字者, 而『遺書』凡司馬君實、張子厚、邵堯夫, 皆目之曰先生, 惟元公直呼其字. 至以窮禪客目元公, 尤非弟子義所當出. (여여숙의 『동견록』에 '전에 주무숙에게 수학했다'라는 말이 있긴 하다. 그런데 제자가 스승을 일컬을 때 직접 그의 자를 부르지 않는데, 『유서』에서 사마광· 장재· 소옹에 대해서는 모두 '선생'이라고 부르면서 오직 원공만은 그의 자를 직접 부른다. '허접한 선객'으로 원공을 지목한 것은 더욱 제자가 의리상 꺼낼 말이 아니다.)&lt;br /&gt;
:*且元公初名惇實, 後避英宗藩邸嫌名, 改惇頤. 夫既以學傳伊川矣, 不應下同其名, 而伊川亦不引避. 昔朱子表程正思墓稱: &amp;quot;其名下字同周程, 亟請其父而更焉.&amp;quot; 孰謂二程子而智反出正思下哉? 此皆事之可疑者也. (또 원공의 첫 이름은 '돈실'이었는데 나중에 영종이 藩邸 생활할 때의 비슷한 이름[宗實]을 피휘하여 '돈이'로 고쳤다. 이미 이천 선생에게 학문을 전수했을 때에는 스승의 이름과 같게 하면 안 될 텐데, 이천은 그래도 피휘하지 않았다. 전에 주자가 정정사의 묘에 표창하며 &amp;quot;[정정사는] 그의 이름의 끝 글자가 周程과 같아 자주 부친에게 고쳐줄 것을 청하였다.&amp;quot;고 하였다. 누가 '이정 선생의 앎이 정정사보다 못하다'고 하겠는가? 이것들이 모두 의심할 만한 일들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그 외 명나라의 풍방(豊坊)이나 청나라의 전조망(全祖望), 대진(戴震)은 역시 주정수수설을 부정하였다. 주정수수설을 부정하거나 『태극도설』과 『통서』을 별개의 텍스트로 간주하는 주장은 서로 연관을 맺고 있다. 왜냐하면 주정수수설을 부정하는 학자들이 대체로 『태극도설』과 『통서』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주희의 옹호===&lt;br /&gt;
주희는 “선생의 학문은 그 오묘함이 『태극도설』 한 권에 구비되어 있으며, 통서는 모두 이 태극도설에 온축되어 있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통서』의 서문에서는 “유독 하남의 정부자(程夫子)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을 대략 알 수 있다.”고 하여 태극도설과 통서가 모두 주돈이의 저작이라고 간주하였으며, 주돈이와 이정의 사승관계를 인정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현대 학자 견해===&lt;br /&gt;
등광명(邓广铭)이 「關於周敦頤的師承和傳授」라는 논문에서 “이정은 결코 理學을 주돈이로부터 배우지 않았다. 특히 그의 『태극도설』과 『통서』를 이정은 모두 접촉한 적도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반하여 주정수수의 가능성을 다른 방식으로 찾아보려는 학자도 있다. 예를 들어 정종모는 「정명도의 주역해석과 그 경학사적 의의」에서 “그(정명도)의 경학의 출발점은 『통서』에 드러난 주렴계의 관점과 유사하며, 이런 차원에서 우리는 주정수수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고 하였다.&lt;/div&gt;</summary>
		<author><name>Wooya0902</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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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주돈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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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4-28T16:20:4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Wooya0902: &lt;/p&gt;
&lt;hr /&gt;
&lt;div&gt;=주돈이(周敦頤)=&lt;br /&gt;
주돈이(1017~1073)의 字는 茂叔, 號는 濂溪이다. 원 이름은 敦實이었지만 송나라 英宗(재위 1063~1067)의 초명인 宗實을 피휘하여 敦頤로 이름을 바꾸었다. 대표 저작으로 [[태극도설]]과 [[통서]]가 있다.&lt;br /&gt;
기타 정보는 추가하거나 다음의 링크를 참고할 것. [https://baike.baidu.com/item/%E5%91%A8%E6%95%A6%E9%A2%90/327717?fr=aladdin]&lt;br /&gt;
&lt;br /&gt;
==송사 주돈이전==&lt;br /&gt;
&lt;br /&gt;
周敦頤，字茂叔，道州營道人。元名敦實，避英宗舊諱改焉。以舅龍圖閣學士鄭向任，為分寧主簿。有獄久不決，敦頤至，一訊立辨。邑人驚曰：「老吏不如也。」部使者薦之，調南安軍司理參軍。有囚法不當死，轉運使王逵欲深治之。逵，酷悍吏也，眾莫敢爭，敦頤獨與之辨，不聽，乃委手版歸，將棄官去，曰：「如此尚可仕乎！殺人以媚人，吾不為也。」逵悟，囚得免。&amp;lt;br/&amp;gt; 주돈이(周敦頤)는 자가 무숙(茂叔)이고 도주(道州) 영도현(營道) 사람이다. 원래 이름은 돈실(敦實)이었는데 송나라 영종의 옛 이름을 피휘하여 고쳤다. 외삼촌인 용도각학사 정향(鄭向)의 추천으로 분녕의 주부로 임용되었다.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송사가 있었는데 주돈이가 오자 단번에 조사하여 판결을 내렸다. 마을 사람들이 놀라면서 “노련한 관리도 [주돈이만] 못하구나.”라고 말했다. 부사가 그를 천거하였고 남안군사리참군(南安軍司理參軍)으로 임명되었다. 죄수 중에서 법으로 볼 때 죽여선 안 되는 사람이 있었는데 전운사(轉運使) 왕규(王逵)는 그를 심하게 치죄하였다. 왕규는 독하고 사나운 관리인지라 무리 중에서 아무도 감히 다투려고 하지 않았는데 주돈이만이 홀로 그와 논변하였다. 그러나 왕규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고 곧 수판(手版)을 버리고 돌아가 관직을 버리고 떠나려고 하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관리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을 죽여서 남에게 아첨하는 짓을 난 도저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왕규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고, 죄수는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amp;lt;br/&amp;gt; &amp;lt;br/&amp;gt;  移郴之桂陽令，治績尤著。郡守李初平賢之，語之曰：「吾欲讀書，何如？」敦頤曰：「公老無及矣，請為公言之。」二年果有得。徙知南昌，南昌人皆曰：「是能辨分寧獄者，吾屬得所訴矣。」富家大姓、黠吏惡少，惴惴焉不獨以得罪於令為憂，而又以污穢善政為恥。曆合州判官，事不經手，吏不敢決。雖下之，民不肯從。部使者趙抃惑於譖口，臨之甚威，敦頤處之超然。通判虔州，抃守虔，熟視其所為，乃大悟，執其手曰：「吾幾失君矣，今而後乃知周茂叔也。」&amp;lt;br/&amp;gt; 침군(郴郡) 계양(桂陽)의 현령으로 자리를 옮기자 치적이 더욱 현저해졌다. 침군의 군수 이초평(李初平)은 그가 현명하다고 생각해서 “나는 독서를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며 물었다. 주돈이는 “공은 나이가 많아 시간이 급박하니 공을 위하여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고 말했다. 이년 뒤에 과연 소득이 있었다. 자리를 옮겨서 남창의 지현이 되었는데, 남창의 사람들은 모두 “이는 분녕의 옥사를 능히 판결한 사람이니 우리들이 하소연할 곳을 얻었다.”고 말했다. 부자들과 지방의 유력자들과 교활한 관리들과 악행을 저지르는 젊은이들은 모두 두려워하며 현령으로부터 죄를 얻는 건 아닐까 두려워하였을 뿐 아니라 선정을 더럽히는 것을 부끄러운 일로 여겼다. 합주(合州)의 판관을 역임할 때, 일이 그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관리들이 감히 처결하지 못하였고, 비록 명령을 내리더라도 백성들은 청종하려고 하지 않았다. 부사 조변(趙抃)이 참소하는 말에 현혹되어 [주돈이를] 대하는 태도가 매우 위엄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돈이는 초연히 대처하였다. 건주(虔州) 통판을 맡았을 때에는 조변이 건주의 현령이 되어 면밀하게 그의 행실을 보고선 곧 크게 깨닫더니 그의 손을 잡으며 “나는 그대를 거의 잃어버렸지만. 지금 이후로 주무숙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amp;lt;br/&amp;gt; &amp;lt;br/&amp;gt;  熙寧初，知郴州。用抃及呂公著薦，為廣東轉運判官，提點刑獄，以洗冤澤物為己任。行部不憚勞苦，雖瘴癘險遠，亦緩視徐按。以疾求知南康軍，因家廬山蓮花峰下。前有溪，合于溢江，取營道所居濂溪以名之。抃再鎮蜀，將奏用之，未及而卒，年五十七。 &amp;lt;br/&amp;gt;  희령(熙寧, 1068년~1077) 초년에 침주(郴州)의 지주가 되었다. 조변과 여공저(呂公著)로부터 천거를 받아 광동(廣東)의 전운판관(東轉運判官)이 되자 죄를 지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억울하게 죄를 지은 사람들의 누명을 벗겨주며,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여겼다. 부(部)를 순행하였지만 노고(勞苦)를 꺼려하지 않아서 비록 풍토병과 창병이 일고 길이 험하고 멀더라도 시찰하고 위무하였다. 나중에 주돈이는 병으로 지남강군(知南康軍)으로 자리를 옮기길 구하였고, 이로 인해 여산의 연화봉(蓮花峯) 아래에 집을 지었다. 앞에 시내가 있었는데 분강(湓江)으로 합하였고, 영도(營道)에 머물렀던 염계(溓溪)를 취하여 이름으로 삼았다. 조변이 재차 촉(蜀)에 진수하였을 때 장차 [주돈이를] 등용하라 상주하려고 하였지만 그 일이 이루기도 전에 주돈이는 죽고 말았으니 당시의 나이가 57세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  黃庭堅稱其「人品甚高，胸懷灑落，如光風霽月。廉于取名而銳於求志，薄於徼福而厚於得民，菲於奉身而燕及煢嫠，陋於希世而尚友千古。」 &amp;lt;br/&amp;gt;  황정견(黃庭堅)은 “인품이 매우 높고 가슴에 품고 있는 것은 시원하여 마치 광풍제월(光風霽月)과 같다. 명성을 취하는 것을 뒷전으로 하였으나 뜻을 구하는 것에는 왕성하였고, 복을 구함에는 박하였지만 백성의 마음을 얻는 데에는 두터웠으며, 몸을 받듦에는 둔하였지만 즐거워함이 과부와 홀아비를 보살피는 일에 주의를 기울였고, 세상에 영합함을 누추하게 여겼지만 위로는 천고(千古)와 벗하였다.”고 그를 칭송하였다. &amp;lt;br/&amp;gt; 博學行力，著《太極圖》，明天理之根源，究萬物之終始。其說曰： &amp;lt;br/&amp;gt; 널리 배우고 힘써 실천하였는데, 《태극도》를 지어 천리의 근원을 밝히고 만물의 시작과 끝을 궁구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  無極而太極。太極動而生陽，動極而靜，靜而生陰，靜極複動，一動一靜，互為其根，分陰分陽，兩儀立焉。陽變陰合，而生水、火、木、金、土，五氣順布，四時行焉。五行一陰陽也，陰陽一太極也。太極本無極也。五行之生也，各一其性。無極之真，二五之精，妙合而凝，乾道成男，坤道成女。二氣交感，化生萬物，萬物生生，而變化無窮焉。惟人也得其秀而最靈，形既生矣，神發知矣，五性感動而善惡分，萬事出矣。聖人定之以中正仁義而主靜，立人極焉。故聖人與天地合其德，日月合其明，四時合其序，鬼神合其吉凶。君子修之吉，小人悖之凶。故曰：「立天之道，曰陰與陽。立地之道，曰柔與剛。立人之道，曰仁與義。」又曰：「原始反終，故知死生之說。」大哉《易》也，斯其至矣。 &amp;lt;br/&amp;gt; “무극(無極)이면서 태극(太極)이다. 태극이 움직여서 양(陽)이 생기고 움직임이 극한에 달하여 고요해지는데 고요해지면 음(陰)이 생긴다. 그리고 고요함이 극한에 다다르면 다시 움직인다. 한번 움직이고 한번 고요해져서 서로 각각의 근거가 되니, 음으로 나뉘고 양으로 나뉘어 양의(兩儀)가 세워진다. 음양이 변화하거나 결합해서 수(水)·화(火)·목(木)·금(金)·토(土)라는 오행이 생겨난다. 다섯 종류의 기(五氣)는 순서에 따라 펴져서 춘(春)·하(夏)·추(秋)·동(冬)이라는 사시(四時)가 운행된다. 오행은 하나의 음양이고, 음양은 하나의 태극이다. 태극은 본래 무극이다. 오행의 생성에 각각 본성을 동일하게 갖고 있다. 무극의 신실함과 음양·오행의 순정함은 신묘하게 결합해서 응결된다. ‘건(乾)의 도리는 남자를 이루고, 곤(坤)의 도리는 여자를 이룬다.’고 하니 음양이라는 두 기가 교감하여 만물을 화생시킨다. 만물이 발생하는 과정을 반복하니 변화는 끝이 없다. 오직 사람만이 빼어난 것을 얻어서 가장 영명하다. 형체가 이미 생겨나면 정신이 지각을 발현시키니 [인(仁)·의(義)·예(禮)·지(知)·신(信)이라는] 다섯 가지 본성(五性)이 외물에 감응해 움직이다 선악(善惡)이 나뉘고 온갖 사태들이 출현한다. 성인은 중(中)·정(正)·인(仁)·의(義)로써 이를 안정시키되 정(靜)을 위주로 사람의 표준을 세우셨다. 그러므로 성인은 천지와 그 덕이 합치되고, 일월과 그 밝음이 합치되고, 사시와 그 순서가 합치되며, 귀신과 그 길흉이 합치된다. 군자는 수양하니 길하며, 소인은 어긋나니 흉하다. 그러므로 ‘천도(天道)를 세우며 음(陰)과 양(陽)을 말하였고, 지도(地道)를 세우며 유(柔)와 강(剛)을 말하였고, 인도(人道)를 세우며 인(仁)과 의(義)를 말하였다.’고 하였으며, 또 ‘시작을 궁구하고 끝으로 돌아가니 그러므로 죽음과 삶의 설을 알겠다.’고 한 것이다. 위대하다 역(易)이여! 이렇게도 지극하도다.”&amp;lt;br/&amp;gt; &amp;lt;br/&amp;gt;  又著《通書》四十篇，發明太極之蘊。序者謂「其言約而道大，文質而義精，得孔、孟之本源，大有功于學者也。」 &amp;lt;br/&amp;gt; 또한 《통서》 40편을 저술하여 태극의 품은 뜻을 드러내서 밝혔다. 서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말은 간략하지만 [담고 있는] 도는 크고, 형식과 내용이 갖추어져있고(文質) 의미가 정밀하여 공자와 맹자의 본원(本源)을 얻었으니 배우는 자들에게 큰 공이 있다.” &amp;lt;br/&amp;gt; &amp;lt;br/&amp;gt; 掾南安時，程珦通判軍事，視其氣貌非常人，與語，知其為學知道，因與為友，使二子顥、頤往受業焉。敦頤每令尋孔、顏樂處，所樂何事，二程之學源流乎此矣。故顥之言曰：「自再見周茂叔後，吟風弄月以歸，有'吾與點也'之意。」侯師聖學于程頤，未悟，訪敦頤，敦頤曰：「吾老矣，說不可不詳。」留對榻夜談，越三日乃還。頤驚異之，曰：「非從周茂叔來耶？」其善開發人類此。  &amp;lt;br/&amp;gt; 안정에 머무르고 있을 때에 통판군사(通判軍事) 정향(程珦)이 풍모가 비상한 사람임을 보고는 그와 함께 이야기를 했더니 과연 그의 학문 됨됨이와 도(道)를 알고 있음을 알고는 그와 교유를 맺어 두 아들 정호(程顥)와 정이(程頤)로 하여금 가서 수업하도록 하였다. 주돈이는 매번 공자와 안회가 즐거워하는 것, 즉 그들이 즐기던 바가 무슨 일이었는지를 살피도록 하였으니, 이정의 학문이 이로부터 연원하였다. 그래서 정호는 이렇게 말했다. “다시 주무숙을 본 후로부터 음풍농월(吟風弄月) 중에 ‘나는 증점과 함께하겠노라.’라고 말씀하신 공자의 뜻이 있게 되었다.” 후사성(侯師聖)이 정이로부터 학문을 하였지만 깨닫지 못하고 주돈이를 방문하였다.  주돈이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늙어서 말을 상세하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그와 책상을 마주하며 밤새도록 머물며 담론하다 3일이 지나 되돌아갔더니 정이가 남달라진 것을 탄복하며 이렇게 말했다. “주무숙으로부터 온 것이 아닌가!” 그는 사람들을 이렇게 잘 개발시켜주었다.  &amp;lt;br/&amp;gt; &amp;lt;br/&amp;gt;  嘉定十三年，賜諡曰元公，淳祐元年，封汝南伯，從祀孔子廟庭。  &amp;lt;br/&amp;gt;  가정(嘉定) 13년(1220년)에 시호를 하사하여 ‘원공(元公)’이라 하였고, 순우(淳祐) 원년(1241년)에 여남백(汝南伯)에 봉하고 공자의 묘정에 종사(從祀)하게 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  二子壽、燾，燾官至寶文閣待制。 &amp;lt;br/&amp;gt; 두 아들은 주수(周壽)와 주도(周燾)이다. 주도는 관직이 보문각대제(寶文閣待制)에 이르렀다.&lt;br /&gt;
&lt;br /&gt;
==주정수수설(周程授受說)==&lt;br /&gt;
&lt;br /&gt;
===발단===&lt;br /&gt;
[[주자]]의 북송오자 선양 및 이를 계승한 『송사』 「도학전」. &amp;lt;br/&amp;gt;&lt;br /&gt;
쓰치다 겐지로(土田健次郎)의 『북송도학사』(성현창 역, 예문서원, 2006) 제2장 제2절 &amp;quot;주정수수설 재고&amp;quot;(164~199쪽) 파트에 잘 정리되어 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이정의 태도===&lt;br /&gt;
이정이 어렸을 때 주돈이에게 배운 것은 분명하지만, 사제관계가 성립한다고 해서 이정보다 앞선 도학의 종주로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단 『이정집』에서의 주돈이에 대한 평가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lt;br /&gt;
:*'''昔受學於周茂叔, 每令尋顏子･仲尼樂處, 所樂何事.''' (전에 주무숙에게 배울 때, 주무숙은 매번 안자와 공자께서 즐기신 경지와 즐기신 바가 어떤 일인지 찾아보게 하였다.)&lt;br /&gt;
:*'''詩可以興. 某自再見茂叔後, 吟風弄月以歸, 有吾與點也之意.''' (시는 사람을 흥기시킬 수 있다. 내가 주무숙을 두 번 본 뒤에 음풍농월하며 돌아가면서 공자께서 '나는 증점을 허여하노라'라고 말씀하셨던 뜻을 갖게 되었다.)&lt;br /&gt;
:*'''周茂叔窗前草不除去. 問之, 云: &amp;quot;與自家意思一般.&amp;quot;''' (주무숙은 창 앞의 풀을 뽑지 못하게 하였다.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였다: &amp;quot;내 마음과 똑같기 때문이네.&amp;quot;)&lt;br /&gt;
:*'''周茂叔窮禪客.''' (주무숙은 허접한(?) 선객이었다.) [혹은 '주무숙은 선객을 곤란하게 만들었다.']&lt;br /&gt;
:*'''獵, 自謂今無此好. 周茂叔曰: &amp;quot;何言之易也? 但此心潛隱未發. 一日萌動, 復如前矣.&amp;quot; 後十二年, 因見, 果知未.''' (내가 전에 사냥에 대해서 '요즘엔 이런 취미가 없습니다.'하고 스스로 말했는데, 주무숙이 말하길: &amp;quot;어찌 말을 쉽게 하는가? 그저 이 마음이 가라앉아 숨어 드러나지 않을 뿐이네. 어느 날 이 마음이 싹터 움직이게 되면 다시 전과 같아질걸세.&amp;quot;라고 하였다. 12년 뒤에 이 말에 입각해 살펴보니, 과연 내 말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lt;br /&gt;
:*'''先生爲學, 自十五六時, 聞汝南周茂叔論道, 遂厭科舉之業, 慨然有求道之志. 未知其要, 泛濫於諸家, 出入於老釋者幾十年, 返求諸六經而後得之.''' (선생의 학문의 경우, 15-6세에 여남의 주무숙이 도를 논한다는 소문을 듣고 마침내 과거 공부에 염증내고 개연히 도를 추구하려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 핵심을 알지 못해 제자백가를 떠돌고 도불에 출입하기를 십여 년간 하시고서, 돌아와 육경에서 도를 구한 이후에야 터득하셨다.)&lt;br /&gt;
:*'''異時, 伊川同朱公掞訪先君. 先君留之飮酒, 因以論道. 伊川指面前食卓曰: &amp;quot;此卓安在地上? 不知天地安在甚處?&amp;quot; 先君爲之極論天地萬物之理、以及六合之外. 伊川歎曰: &amp;quot;平生唯見周茂叔論至此. 然不及先生之有條理也.&amp;quot;''' (어느날 이천 선생께서 주공섬과 함께 先君을 방문하셨다. 先君께서 함께 자리하시고 술을 드셨는데, 인하여 도에 대해 논하였다. 이천 선생께서 앞의 식탁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amp;quot;이 식탁은 어떻게 땅 위에 서있는 것인가? 잘 모르겠지만, 천지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것인가?&amp;quot; 先君께서 답하기 위해 천지만물의 이치와 六合 바깥에 대해 지극히 논하셨다. 이천 선생께서 찬탄하시며 말씀하셨다: &amp;quot;평생 오직 주무숙의 논의만이 이정도의 수준에 이른 것을 보았네. 그러나 주무숙의 논의는 그대의 설에 조리가 있는 것만 못했네.&amp;quot;)&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제기된 의문===&lt;br /&gt;
역사적으로 주정수수를 의심한 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1. 남송 왕응신(汪應辰) 『文定集』 권15 「與朱元晦」 9, 10.&lt;br /&gt;
:*伊川于濓溪, 若止云少年嘗從學, 則無害矣. (이천 선생이 염계 선생에 대해 그저 '소년기에 일찍이 따라 배웠다'고만 말했다면 문제는 없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lt;br /&gt;
:*濓溪先生髙明純正. 然謂二程受學, 恐未能盡. 范文正公一見横渠竒之, 授以『中庸』, 謂横渠學文正, 則不可也. (염계 선생께서는 髙明하고 純正하셨지만, 만약 '이정이 염계 선생께 수학했다'고 한다면 아마 실정을 온전히 표현한 것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범문정공[범중엄]이 횡거 선생을 한 번 보고 기특하게 여겨 『중용』을 주긴 했지만, '횡거 선생이 범문정공에게 배웠다'고 하면 안 됩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2. 남송 육구연(陸九淵) 『象山集』 권12 「與朱元晦」 1.&lt;br /&gt;
:*梭山兄謂: &amp;quot;『太極圖説』與『通書』不類, 疑非周子所為. 不然則或是其學未成時所作; 不然則或傳他人之文, 後人不辨也. 葢『通書』「理性命」章言: &amp;quot;中焉止矣&amp;quot;, &amp;quot;二氣五行, 化生萬物, 五殊二實, 二本則一.&amp;quot; 曰一曰中, 即太極也, 未甞於其上加無極字; 「動静」章言: &amp;quot;五行隂陽, 隂陽太極&amp;quot;, 亦無無極之文. 假令『太極圖説』是其所傳, 或其少時所作, 則作『通書』時不言無極, 葢已知其説之非矣.&amp;quot; 此言殆未可忽也. (梭山형[육구소]이 말씀하시길: &amp;quot;『태극도설』 과 『통서』가 비슷하지 않으니, 아마 周子가 지은 게 아닌 듯하다. 그렇지 않다면 혹 그의 학문이 아직 성숙하지 않았을 때 지은 것이거나, 아니면 혹 다른 사람의 글을 옮긴 건데 후인이 변별하지 못한 것일 것이다. 대개 『통서』의 「리성명」장에서 '中焉止矣', '二氣五行, 化生萬物, 五殊二實, 二本則一.'라고 하는데,  一·中이라고 한 것은 곧 태극이니 그 위에 '무극'을 덧붙인 적이 없고, 「動静」장에서는 '五行隂陽, 隂陽太極'이라고 하는데 역시 '무극'이라는 말이 없다. 가령 『태극도설』이 남의 말을 옮긴 것이거나 혹 그가 어렸을 때 지은 것이라면, 『通書』를 쓸 때 '무극'을 말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태극도설』이 틀렸음을 이미 알고서 그렇게 한 것이다.&amp;quot;라고 하셨는데, 이 말을 결코 소홀히해서는 안 됩니다.)&lt;br /&gt;
:*無極二字, 出於『老子』 「知此雄」章, 吾聖人之書所無有也. 『老子』首章言: &amp;quot;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amp;quot;而卒同之, 此老氏之宗㫖也, &amp;quot;無極而太極&amp;quot;即是此㫖. 老氏學之不正, 見理不明, 所蔽在此. 兄於此學用力之深, 為日之乆, 曽此之不能辨, 何也? 『通書』&amp;quot;中焉止矣&amp;quot;之言, 與此之昭然不類, 而兄曾不之察, 何也? 『太極圖説』以無極二字冠首, 而『通書』終篇未甞一及無極字. 二程言論文字至多, 亦未甞一及無極字. 假令其初實有是圖, 觀其後來未甞一及無極字, 可見其道之進而不自以為是也. ('무극' 두 글자는 『노자』 「知其雄」 장에서 나오지 우리 유가 성인의 책에 있는 말이 아닙니다. 『노자』 수장에서 &amp;quot;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amp;quot;라 하고 끝내 같게 여기는데, 이것이 노자의 종지이고 &amp;quot;무극이태극&amp;quot;이 곧 이 뜻입니다. 노자는 배운 것이 바르지 않고 이치를 보는 것이 분명하지 않으니, 그의 병폐가 여기에 있는데, 존형께서는 이 학문에 대해 깊이 힘쓰시고 오래 시간을 보내셨으면서 일찍이 이를 변별해내지 못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 『통서』 「리성명」장의 &amp;quot;中焉止矣&amp;quot;라는 말은 이것이 분명한 것과 같지 않은데, 존형께서 일찍이 이를 살피지 못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 『태극도설』은 '무극' 두 글자를 첫머리에 두고 있지만 『통서』는 마지막 편까지 한 번도 '무극'을 언급하지 않고, 이정이 논의한 글이 지극히 많은데도 '무극'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가령 주돈이가 처음에 실제로 『태극도설』을 썼다 하더라도, 그가 나중에 한 번도 '무극'을 언급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의 학문이 발전하여 스스로 이를 옳게 여기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3. 남송 장식(張栻) 『朱子全書』 권13 「太極圖說解」 《後記》&lt;br /&gt;
:*某既爲此說, 嘗錄以寄廣漢張敬夫. 敬夫以書來曰: “二先生所與門人講論問答之言, 見於書者詳矣. 其於《西銘》, 蓋屢言之; 至此圖則未嘗一言及也. 謂其必有微意, 是則固然. 然所謂微意者, 果何謂耶?” (내[주희]가 이 해설을 쓰고서 일찍이 이를 적어 광한 장경부에게 보냈는데, 경부가 편지를 보내왔다: “[명도·이천] 두 선생께서 문인들과 강론하고 문답을 주고받으신 말씀들은 책에 보이는 것이 상세합니다. 두 선생께서 《서명》에 대해서는 누차 말씀하셨는데, 이 《태극도》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대는] ‘거기에 필시 숨겨진 의도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진실로 그렇겠지만, 이른바 ‘숨겨진 의도’라는 게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4. 청 주이존(朱彝尊) 『曝書亭集』 권58 「太極圖授受考」 &lt;br /&gt;
:*自漢以來, 諸儒言『易』, 莫有及《太極圖》者. 惟道家者流有上方大洞真元妙經, 著太極三五之說. (한나라 이후로 여러 유자가 『주역』에 대해 말했는데 《태극도》를 언급한 경우는 없다. 오직 도가에  『上方大洞真元妙經』이 太極·三五의 설을 말한 것이 전해 온다.)&lt;br /&gt;
:*山陽度正作元公年表, 書: “慶厯六年, 知䖍州興國縣程公珦假倅南安, 因與先生為友, 令二子師之. 時明道年十五, 伊川年十四爾. 其後先生作《太極圖》, 獨手授之, 他莫得而聞焉&amp;quot;. 攷是年, 元公以轉運使王逵薦移知郴縣, 自是而後二程子未聞與元公覿面. 然則從何地手授乎? (산양 도정이 원공[주돈이]의 연표를 지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amp;quot;경력6년 知䖍州興國縣 정향이 남안 부지사도 겸임하고 있었는데, 인하여 선생과 벗이 되어 두 아들로 하여금 스승으로 모시게 하였다. 당시 명도 선생은 15살이었고 이천 선생은 14살이었다. 그 후에 선생이 《太極圖》를 지어 유독 직접 전해주셨는데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amp;quot; 이 해를 헤아려보면, 원공은 전운사 왕규의 추천으로 침현으로 이직하셨으니, 이 이후에는 이정 선생이 원공을 면대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직접 전수하했겠는가?)&lt;br /&gt;
:*伊川撰《明道行状》云: “先生為學自十五六時, 聞汝南周茂叔論道, 遂厭科舉之業, 慨然有求道之志. 未知其要, 泛濫于諸家, 出入于老釋者幾十年. 反求諸六經而後得之.” 繹其文, 若似乎未受業于元公者. 不然, 何以求道未知其要, 復出入于老釋也邪? (이천 선생이 《명도행장》을 지어 말씀하셨다: &amp;quot;선생의 학문의 경우, 15살 때 여남 주무숙이 도를 논함을 듣고 마침내 과거 공부에 염증내고 개연히 도를 추구할 뜻을 갖게 되셨다. 그러나 그 핵심을 알지 못하여 제자백가를 떠돌고 도불에 출입하기를 거의 십여 년 하시고서, 돌아와 육경에서 도를 찾은 이후에야 터득하셨다.&amp;quot; 이 글을 풀어보면, 원공에게 학업을 전수받지 않은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도를 추구함에 그 핵심을  알지 못해 다시 도불에 출입하셨겠는가?)&lt;br /&gt;
:*潘興嗣志元公墓亦不及二程子從游事. (반흥사가 원공의 묘에 쓴 묘지명에도 이정 선생이 종유한 일을 언급하지 않았다.)&lt;br /&gt;
:*明道之卒, 其弟子朋友, 若范淳夫、朱公掞、邢和叔、游定夫, 叙其行事, 皆不言其以元公為師. 惟劉斯立為: “從周茂叔問學, 斯猶孔子問禮于老子, 問樂于萇弘, 問官于郯子云然.” 盖與受業有間矣. (명도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그의 제자와 벗, 예를 들면 범순부·주공섬·형화숙·유정부가 명도 선생의 행적을 서술할 때 모두 원공이 스승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오직 유사립만이 &amp;quot;명도 선생께서 주무숙을 종유하여 학문을 물으신 것은 공자께서 노자에게 예를 물으시고, 장홍에게 음악을 물으시며, 담자에게 관제를 물은 것과 같다.&amp;quot;고 하였는데, 대개 학업을 전수받은 것과는 차이가 있다.)&lt;br /&gt;
:*呂與叔『東見錄』, 則有昔受學于周茂叔之語. 然弟子稱師, 無直呼其字者, 而『遺書』凡司馬君實、張子厚、邵堯夫, 皆目之曰先生, 惟元公直呼其字. 至以窮禪客目元公, 尤非弟子義所當出. (여여숙의 『동견록』에 '전에 주무숙에게 수학했다'라는 말이 있긴 하다. 그런데 제자가 스승을 일컬을 때 직접 그의 자를 부르지 않는데, 『유서』에서 사마광· 장재· 소옹에 대해서는 모두 '선생'이라고 부르면서 오직 원공만은 그의 자를 직접 부른다. '허접한 선객'으로 원공을 지목한 것은 더욱 제자가 의리상 꺼낼 말이 아니다.)&lt;br /&gt;
:*且元公初名惇實, 後避英宗藩邸嫌名, 改惇頤. 夫既以學傳伊川矣, 不應下同其名, 而伊川亦不引避. 昔朱子表程正思墓稱: &amp;quot;其名下字同周程, 亟請其父而更焉.&amp;quot; 孰謂二程子而智反出正思下哉? 此皆事之可疑者也. (또 원공의 첫 이름은 '돈실'이었는데 나중에 영종이 藩邸 생활할 때의 비슷한 이름[宗實]을 피휘하여 '돈이'로 고쳤다. 이미 이천 선생에게 학문을 전수했을 때에는 스승의 이름과 같게 하면 안 될 텐데, 이천은 그래도 피휘하지 않았다. 전에 주자가 정정사의 묘에 표창하며 &amp;quot;[정정사는] 그의 이름의 끝 글자가 周程과 같아 자주 부친에게 고쳐줄 것을 청하였다.&amp;quot;고 하였다. 누가 '이정 선생의 앎이 정정사보다 못하다'고 하겠는가? 이것들이 모두 의심할 만한 일들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그 외 명나라의 풍방(豊坊)이나 청나라의 전조망(全祖望), 대진(戴震)은 역시 주정수수설을 부정하였다. 주정수수설을 부정하거나 『태극도설』과 『통서』을 별개의 텍스트로 간주하는 주장은 서로 연관을 맺고 있다. 왜냐하면 주정수수설을 부정하는 학자들이 대체로 『태극도설』과 『통서』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주희의 옹호===&lt;br /&gt;
주희는 “선생의 학문은 그 오묘함이 『태극도설』 한 권에 구비되어 있으며, 통서는 모두 이 태극도설에 온축되어 있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통서』의 서문에서는 “유독 하남의 정부자(程夫子)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을 대략 알 수 있다.”고 하여 태극도설과 통서가 모두 주돈이의 저작이라고 간주하였으며, 주돈이와 이정의 사승관계를 인정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현대 학자 견해===&lt;br /&gt;
등광명(邓广铭)이 「關於周敦頤的師承和傳授」라는 논문에서 “이정은 결코 理學을 주돈이로부터 배우지 않았다. 특히 그의 『태극도설』과 『통서』를 이정은 모두 접촉한 적도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반하여 주정수수의 가능성을 다른 방식으로 찾아보려는 학자도 있다. 예를 들어 정종모는 「정명도의 주역해석과 그 경학사적 의의」에서 “그(정명도)의 경학의 출발점은 『통서』에 드러난 주렴계의 관점과 유사하며, 이런 차원에서 우리는 주정수수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고 하였다.&lt;/div&gt;</summary>
		<author><name>Wooya0902</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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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C%A3%BC%EB%8F%88%EC%9D%B4</id>
		<title>주돈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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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4-28T16:19:2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Wooya0902: &lt;/p&gt;
&lt;hr /&gt;
&lt;div&gt;=주돈이(周敦頤)=&lt;br /&gt;
주돈이(1017~1073)의 字는 茂叔, 號는 濂溪이다. 원 이름은 敦實이었지만 송나라 英宗(재위 1063~1067)의 초명인 宗實을 피휘하여 敦頤로 이름을 바꾸었다. 대표 저작으로 [[태극도설]]과 [[통서]]가 있다.&lt;br /&gt;
기타 정보는 추가하거나 다음의 링크를 참고할 것. [https://baike.baidu.com/item/%E5%91%A8%E6%95%A6%E9%A2%90/327717?fr=aladdin]&lt;br /&gt;
&lt;br /&gt;
==송사 주돈이전==&lt;br /&gt;
&lt;br /&gt;
周敦頤，字茂叔，道州營道人。元名敦實，避英宗舊諱改焉。以舅龍圖閣學士鄭向任，為分寧主簿。有獄久不決，敦頤至，一訊立辨。邑人驚曰：「老吏不如也。」部使者薦之，調南安軍司理參軍。有囚法不當死，轉運使王逵欲深治之。逵，酷悍吏也，眾莫敢爭，敦頤獨與之辨，不聽，乃委手版歸，將棄官去，曰：「如此尚可仕乎！殺人以媚人，吾不為也。」逵悟，囚得免。&amp;lt;br/&amp;gt; 주돈이(周敦頤)는 자가 무숙(茂叔)이고 도주(道州) 영도현(營道) 사람이다. 원래 이름은 돈실(敦實)이었는데 송나라 영종의 옛 이름을 피휘하여 고쳤다. 외삼촌인 용도각학사 정향(鄭向)의 추천으로 분녕의 주부로 임용되었다.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송사가 있었는데 주돈이가 오자 단번에 조사하여 판결을 내렸다. 마을 사람들이 놀라면서 “노련한 관리도 [주돈이만] 못하구나.”라고 말했다. 부사가 그를 천거하였고 남안군사리참군(南安軍司理參軍)으로 임명되었다. 죄수 중에서 법으로 볼 때 죽여선 안 되는 사람이 있었는데 전운사(轉運使) 왕규(王逵)는 그를 심하게 치죄하였다. 왕규는 독하고 사나운 관리인지라 무리 중에서 아무도 감히 다투려고 하지 않았는데 주돈이만이 홀로 그와 논변하였다. 그러나 왕규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고 곧 수판(手版)을 버리고 돌아가 관직을 버리고 떠나려고 하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관리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을 죽여서 남에게 아첨하는 짓을 난 도저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왕규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고, 죄수는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amp;lt;br/&amp;gt; 移郴之桂陽令，治績尤著。郡守李初平賢之，語之曰：「吾欲讀書，何如？」敦頤曰：「公老無及矣，請為公言之。」二年果有得。徙知南昌，南昌人皆曰：「是能辨分寧獄者，吾屬得所訴矣。」富家大姓、黠吏惡少，惴惴焉不獨以得罪於令為憂，而又以污穢善政為恥。曆合州判官，事不經手，吏不敢決。雖下之，民不肯從。部使者趙抃惑於譖口，臨之甚威，敦頤處之超然。通判虔州，抃守虔，熟視其所為，乃大悟，執其手曰：「吾幾失君矣，今而後乃知周茂叔也。」&amp;lt;br/&amp;gt; 침군(郴郡) 계양(桂陽)의 현령으로 자리를 옮기자 치적이 더욱 현저해졌다. 침군의 군수 이초평(李初平)은 그가 현명하다고 생각해서 “나는 독서를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며 물었다. 주돈이는 “공은 나이가 많아 시간이 급박하니 공을 위하여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고 말했다. 이년 뒤에 과연 소득이 있었다. 자리를 옮겨서 남창의 지현이 되었는데, 남창의 사람들은 모두 “이는 분녕의 옥사를 능히 판결한 사람이니 우리들이 하소연할 곳을 얻었다.”고 말했다. 부자들과 지방의 유력자들과 교활한 관리들과 악행을 저지르는 젊은이들은 모두 두려워하며 현령으로부터 죄를 얻는 건 아닐까 두려워하였을 뿐 아니라 선정을 더럽히는 것을 부끄러운 일로 여겼다. 합주(合州)의 판관을 역임할 때, 일이 그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관리들이 감히 처결하지 못하였고, 비록 명령을 내리더라도 백성들은 청종하려고 하지 않았다. 부사 조변(趙抃)이 참소하는 말에 현혹되어 [주돈이를] 대하는 태도가 매우 위엄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돈이는 초연히 대처하였다. 건주(虔州) 통판을 맡았을 때에는 조변이 건주의 현령이 되어 면밀하게 그의 행실을 보고선 곧 크게 깨닫더니 그의 손을 잡으며 “나는 그대를 거의 잃어버렸지만. 지금 이후로 주무숙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amp;lt;br/&amp;gt; 熙寧初，知郴州。用抃及呂公著薦，為廣東轉運判官，提點刑獄，以洗冤澤物為己任。行部不憚勞苦，雖瘴癘險遠，亦緩視徐按。以疾求知南康軍，因家廬山蓮花峰下。前有溪，合于溢江，取營道所居濂溪以名之。抃再鎮蜀，將奏用之，未及而卒，年五十七。 &amp;lt;br/&amp;gt;  희령(熙寧, 1068년~1077) 초년에 침주(郴州)의 지주가 되었다. 조변과 여공저(呂公著)로부터 천거를 받아 광동(廣東)의 전운판관(東轉運判官)이 되자 죄를 지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억울하게 죄를 지은 사람들의 누명을 벗겨주며,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여겼다. 부(部)를 순행하였지만 노고(勞苦)를 꺼려하지 않아서 비록 풍토병과 창병이 일고 길이 험하고 멀더라도 시찰하고 위무하였다. 나중에 주돈이는 병으로 지남강군(知南康軍)으로 자리를 옮기길 구하였고, 이로 인해 여산의 연화봉(蓮花峯) 아래에 집을 지었다. 앞에 시내가 있었는데 분강(湓江)으로 합하였고, 영도(營道)에 머물렀던 염계(溓溪)를 취하여 이름으로 삼았다. 조변이 재차 촉(蜀)에 진수하였을 때 장차 [주돈이를] 등용하라 상주하려고 하였지만 그 일이 이루기도 전에 주돈이는 죽고 말았으니 당시의 나이가 57세였다.  &amp;lt;br/&amp;gt; 黃庭堅稱其「人品甚高，胸懷灑落，如光風霽月。廉于取名而銳於求志，薄於徼福而厚於得民，菲於奉身而燕及煢嫠，陋於希世而尚友千古。」 &amp;lt;br/&amp;gt;  황정견(黃庭堅)은 “인품이 매우 높고 가슴에 품고 있는 것은 시원하여 마치 광풍제월(光風霽月)과 같다. 명성을 취하는 것을 뒷전으로 하였으나 뜻을 구하는 것에는 왕성하였고, 복을 구함에는 박하였지만 백성의 마음을 얻는 데에는 두터웠으며, 몸을 받듦에는 둔하였지만 즐거워함이 과부와 홀아비를 보살피는 일에 주의를 기울였고, 세상에 영합함을 누추하게 여겼지만 위로는 천고(千古)와 벗하였다.”고 그를 칭송하였다. &amp;lt;br/&amp;gt; 博學行力，著《太極圖》，明天理之根源，究萬物之終始。其說曰： &amp;lt;br/&amp;gt; 널리 배우고 힘써 실천하였는데, 《태극도》를 지어 천리의 근원을 밝히고 만물의 시작과 끝을 궁구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amp;lt;br/&amp;gt; 無極而太極。太極動而生陽，動極而靜，靜而生陰，靜極複動，一動一靜，互為其根，分陰分陽，兩儀立焉。陽變陰合，而生水、火、木、金、土，五氣順布，四時行焉。五行一陰陽也，陰陽一太極也。太極本無極也。五行之生也，各一其性。無極之真，二五之精，妙合而凝，乾道成男，坤道成女。二氣交感，化生萬物，萬物生生，而變化無窮焉。惟人也得其秀而最靈，形既生矣，神發知矣，五性感動而善惡分，萬事出矣。聖人定之以中正仁義而主靜，立人極焉。故聖人與天地合其德，日月合其明，四時合其序，鬼神合其吉凶。君子修之吉，小人悖之凶。故曰：「立天之道，曰陰與陽。立地之道，曰柔與剛。立人之道，曰仁與義。」又曰：「原始反終，故知死生之說。」大哉《易》也，斯其至矣。 &amp;lt;br/&amp;gt; “무극(無極)이면서 태극(太極)이다. 태극이 움직여서 양(陽)이 생기고 움직임이 극한에 달하여 고요해지는데 고요해지면 음(陰)이 생긴다. 그리고 고요함이 극한에 다다르면 다시 움직인다. 한번 움직이고 한번 고요해져서 서로 각각의 근거가 되니, 음으로 나뉘고 양으로 나뉘어 양의(兩儀)가 세워진다. 음양이 변화하거나 결합해서 수(水)·화(火)·목(木)·금(金)·토(土)라는 오행이 생겨난다. 다섯 종류의 기(五氣)는 순서에 따라 펴져서 춘(春)·하(夏)·추(秋)·동(冬)이라는 사시(四時)가 운행된다. 오행은 하나의 음양이고, 음양은 하나의 태극이다. 태극은 본래 무극이다. 오행의 생성에 각각 본성을 동일하게 갖고 있다. 무극의 신실함과 음양·오행의 순정함은 신묘하게 결합해서 응결된다. ‘건(乾)의 도리는 남자를 이루고, 곤(坤)의 도리는 여자를 이룬다.’고 하니 음양이라는 두 기가 교감하여 만물을 화생시킨다. 만물이 발생하는 과정을 반복하니 변화는 끝이 없다. 오직 사람만이 빼어난 것을 얻어서 가장 영명하다. 형체가 이미 생겨나면 정신이 지각을 발현시키니 [인(仁)·의(義)·예(禮)·지(知)·신(信)이라는] 다섯 가지 본성(五性)이 외물에 감응해 움직이다 선악(善惡)이 나뉘고 온갖 사태들이 출현한다. 성인은 중(中)·정(正)·인(仁)·의(義)로써 이를 안정시키되 정(靜)을 위주로 사람의 표준을 세우셨다. 그러므로 성인은 천지와 그 덕이 합치되고, 일월과 그 밝음이 합치되고, 사시와 그 순서가 합치되며, 귀신과 그 길흉이 합치된다. 군자는 수양하니 길하며, 소인은 어긋나니 흉하다. 그러므로 ‘천도(天道)를 세우며 음(陰)과 양(陽)을 말하였고, 지도(地道)를 세우며 유(柔)와 강(剛)을 말하였고, 인도(人道)를 세우며 인(仁)과 의(義)를 말하였다.’고 하였으며, 또 ‘시작을 궁구하고 끝으로 돌아가니 그러므로 죽음과 삶의 설을 알겠다.’고 한 것이다. 위대하다 역(易)이여! 이렇게도 지극하도다.”&amp;lt;br/&amp;gt; 又著《通書》四十篇，發明太極之蘊。序者謂「其言約而道大，文質而義精，得孔、孟之本源，大有功于學者也。」 &amp;lt;br/&amp;gt; 또한 《통서》 40편을 저술하여 태극의 품은 뜻을 드러내서 밝혔다. 서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말은 간략하지만 [담고 있는] 도는 크고, 형식과 내용이 갖추어져있고(文質) 의미가 정밀하여 공자와 맹자의 본원(本源)을 얻었으니 배우는 자들에게 큰 공이 있다.” &amp;lt;br/&amp;gt; 掾南安時，程珦通判軍事，視其氣貌非常人，與語，知其為學知道，因與為友，使二子顥、頤往受業焉。敦頤每令尋孔、顏樂處，所樂何事，二程之學源流乎此矣。故顥之言曰：「自再見周茂叔後，吟風弄月以歸，有'吾與點也'之意。」侯師聖學于程頤，未悟，訪敦頤，敦頤曰：「吾老矣，說不可不詳。」留對榻夜談，越三日乃還。頤驚異之，曰：「非從周茂叔來耶？」其善開發人類此。  &amp;lt;br/&amp;gt; 안정에 머무르고 있을 때에 통판군사(通判軍事) 정향(程珦)이 풍모가 비상한 사람임을 보고는 그와 함께 이야기를 했더니 과연 그의 학문 됨됨이와 도(道)를 알고 있음을 알고는 그와 교유를 맺어 두 아들 정호(程顥)와 정이(程頤)로 하여금 가서 수업하도록 하였다. 주돈이는 매번 공자와 안회가 즐거워하는 것, 즉 그들이 즐기던 바가 무슨 일이었는지를 살피도록 하였으니, 이정의 학문이 이로부터 연원하였다. 그래서 정호는 이렇게 말했다. “다시 주무숙을 본 후로부터 음풍농월(吟風弄月) 중에 ‘나는 증점과 함께하겠노라.’라고 말씀하신 공자의 뜻이 있게 되었다.” 후사성(侯師聖)이 정이로부터 학문을 하였지만 깨닫지 못하고 주돈이를 방문하였다.  주돈이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늙어서 말을 상세하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그와 책상을 마주하며 밤새도록 머물며 담론하다 3일이 지나 되돌아갔더니 정이가 남달라진 것을 탄복하며 이렇게 말했다. “주무숙으로부터 온 것이 아닌가!” 그는 사람들을 이렇게 잘 개발시켜주었다.  &amp;lt;br/&amp;gt; 嘉定十三年，賜諡曰元公，淳祐元年，封汝南伯，從祀孔子廟庭。  &amp;lt;br/&amp;gt;  가정(嘉定) 13년(1220년)에 시호를 하사하여 ‘원공(元公)’이라 하였고, 순우(淳祐) 원년(1241년)에 여남백(汝南伯)에 봉하고 공자의 묘정에 종사(從祀)하게 하였다. &amp;lt;br/&amp;gt;  二子壽、燾，燾官至寶文閣待制。 &amp;lt;br/&amp;gt; 두 아들은 주수(周壽)와 주도(周燾)이다. 주도는 관직이 보문각대제(寶文閣待制)에 이르렀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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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수수설(周程授受說)==&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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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lt;br /&gt;
[[주자]]의 북송오자 선양 및 이를 계승한 『송사』 「도학전」. &amp;lt;br/&amp;gt;&lt;br /&gt;
쓰치다 겐지로(土田健次郎)의 『북송도학사』(성현창 역, 예문서원, 2006) 제2장 제2절 &amp;quot;주정수수설 재고&amp;quot;(164~199쪽) 파트에 잘 정리되어 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이정의 태도===&lt;br /&gt;
이정이 어렸을 때 주돈이에게 배운 것은 분명하지만, 사제관계가 성립한다고 해서 이정보다 앞선 도학의 종주로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단 『이정집』에서의 주돈이에 대한 평가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lt;br /&gt;
:*'''昔受學於周茂叔, 每令尋顏子･仲尼樂處, 所樂何事.''' (전에 주무숙에게 배울 때, 주무숙은 매번 안자와 공자께서 즐기신 경지와 즐기신 바가 어떤 일인지 찾아보게 하였다.)&lt;br /&gt;
:*'''詩可以興. 某自再見茂叔後, 吟風弄月以歸, 有吾與點也之意.''' (시는 사람을 흥기시킬 수 있다. 내가 주무숙을 두 번 본 뒤에 음풍농월하며 돌아가면서 공자께서 '나는 증점을 허여하노라'라고 말씀하셨던 뜻을 갖게 되었다.)&lt;br /&gt;
:*'''周茂叔窗前草不除去. 問之, 云: &amp;quot;與自家意思一般.&amp;quot;''' (주무숙은 창 앞의 풀을 뽑지 못하게 하였다.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였다: &amp;quot;내 마음과 똑같기 때문이네.&amp;quot;)&lt;br /&gt;
:*'''周茂叔窮禪客.''' (주무숙은 허접한(?) 선객이었다.) [혹은 '주무숙은 선객을 곤란하게 만들었다.']&lt;br /&gt;
:*'''獵, 自謂今無此好. 周茂叔曰: &amp;quot;何言之易也? 但此心潛隱未發. 一日萌動, 復如前矣.&amp;quot; 後十二年, 因見, 果知未.''' (내가 전에 사냥에 대해서 '요즘엔 이런 취미가 없습니다.'하고 스스로 말했는데, 주무숙이 말하길: &amp;quot;어찌 말을 쉽게 하는가? 그저 이 마음이 가라앉아 숨어 드러나지 않을 뿐이네. 어느 날 이 마음이 싹터 움직이게 되면 다시 전과 같아질걸세.&amp;quot;라고 하였다. 12년 뒤에 이 말에 입각해 살펴보니, 과연 내 말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lt;br /&gt;
:*'''先生爲學, 自十五六時, 聞汝南周茂叔論道, 遂厭科舉之業, 慨然有求道之志. 未知其要, 泛濫於諸家, 出入於老釋者幾十年, 返求諸六經而後得之.''' (선생의 학문의 경우, 15-6세에 여남의 주무숙이 도를 논한다는 소문을 듣고 마침내 과거 공부에 염증내고 개연히 도를 추구하려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 핵심을 알지 못해 제자백가를 떠돌고 도불에 출입하기를 십여 년간 하시고서, 돌아와 육경에서 도를 구한 이후에야 터득하셨다.)&lt;br /&gt;
:*'''異時, 伊川同朱公掞訪先君. 先君留之飮酒, 因以論道. 伊川指面前食卓曰: &amp;quot;此卓安在地上? 不知天地安在甚處?&amp;quot; 先君爲之極論天地萬物之理、以及六合之外. 伊川歎曰: &amp;quot;平生唯見周茂叔論至此. 然不及先生之有條理也.&amp;quot;''' (어느날 이천 선생께서 주공섬과 함께 先君을 방문하셨다. 先君께서 함께 자리하시고 술을 드셨는데, 인하여 도에 대해 논하였다. 이천 선생께서 앞의 식탁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amp;quot;이 식탁은 어떻게 땅 위에 서있는 것인가? 잘 모르겠지만, 천지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것인가?&amp;quot; 先君께서 답하기 위해 천지만물의 이치와 六合 바깥에 대해 지극히 논하셨다. 이천 선생께서 찬탄하시며 말씀하셨다: &amp;quot;평생 오직 주무숙의 논의만이 이정도의 수준에 이른 것을 보았네. 그러나 주무숙의 논의는 그대의 설에 조리가 있는 것만 못했네.&amp;quo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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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된 의문===&lt;br /&gt;
역사적으로 주정수수를 의심한 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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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송 왕응신(汪應辰) 『文定集』 권15 「與朱元晦」 9, 10.&lt;br /&gt;
:*伊川于濓溪, 若止云少年嘗從學, 則無害矣. (이천 선생이 염계 선생에 대해 그저 '소년기에 일찍이 따라 배웠다'고만 말했다면 문제는 없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lt;br /&gt;
:*濓溪先生髙明純正. 然謂二程受學, 恐未能盡. 范文正公一見横渠竒之, 授以『中庸』, 謂横渠學文正, 則不可也. (염계 선생께서는 髙明하고 純正하셨지만, 만약 '이정이 염계 선생께 수학했다'고 한다면 아마 실정을 온전히 표현한 것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범문정공[범중엄]이 횡거 선생을 한 번 보고 기특하게 여겨 『중용』을 주긴 했지만, '횡거 선생이 범문정공에게 배웠다'고 하면 안 됩니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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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남송 육구연(陸九淵) 『象山集』 권12 「與朱元晦」 1.&lt;br /&gt;
:*梭山兄謂: &amp;quot;『太極圖説』與『通書』不類, 疑非周子所為. 不然則或是其學未成時所作; 不然則或傳他人之文, 後人不辨也. 葢『通書』「理性命」章言: &amp;quot;中焉止矣&amp;quot;, &amp;quot;二氣五行, 化生萬物, 五殊二實, 二本則一.&amp;quot; 曰一曰中, 即太極也, 未甞於其上加無極字; 「動静」章言: &amp;quot;五行隂陽, 隂陽太極&amp;quot;, 亦無無極之文. 假令『太極圖説』是其所傳, 或其少時所作, 則作『通書』時不言無極, 葢已知其説之非矣.&amp;quot; 此言殆未可忽也. (梭山형[육구소]이 말씀하시길: &amp;quot;『태극도설』 과 『통서』가 비슷하지 않으니, 아마 周子가 지은 게 아닌 듯하다. 그렇지 않다면 혹 그의 학문이 아직 성숙하지 않았을 때 지은 것이거나, 아니면 혹 다른 사람의 글을 옮긴 건데 후인이 변별하지 못한 것일 것이다. 대개 『통서』의 「리성명」장에서 '中焉止矣', '二氣五行, 化生萬物, 五殊二實, 二本則一.'라고 하는데,  一·中이라고 한 것은 곧 태극이니 그 위에 '무극'을 덧붙인 적이 없고, 「動静」장에서는 '五行隂陽, 隂陽太極'이라고 하는데 역시 '무극'이라는 말이 없다. 가령 『태극도설』이 남의 말을 옮긴 것이거나 혹 그가 어렸을 때 지은 것이라면, 『通書』를 쓸 때 '무극'을 말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태극도설』이 틀렸음을 이미 알고서 그렇게 한 것이다.&amp;quot;라고 하셨는데, 이 말을 결코 소홀히해서는 안 됩니다.)&lt;br /&gt;
:*無極二字, 出於『老子』 「知此雄」章, 吾聖人之書所無有也. 『老子』首章言: &amp;quot;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amp;quot;而卒同之, 此老氏之宗㫖也, &amp;quot;無極而太極&amp;quot;即是此㫖. 老氏學之不正, 見理不明, 所蔽在此. 兄於此學用力之深, 為日之乆, 曽此之不能辨, 何也? 『通書』&amp;quot;中焉止矣&amp;quot;之言, 與此之昭然不類, 而兄曾不之察, 何也? 『太極圖説』以無極二字冠首, 而『通書』終篇未甞一及無極字. 二程言論文字至多, 亦未甞一及無極字. 假令其初實有是圖, 觀其後來未甞一及無極字, 可見其道之進而不自以為是也. ('무극' 두 글자는 『노자』 「知其雄」 장에서 나오지 우리 유가 성인의 책에 있는 말이 아닙니다. 『노자』 수장에서 &amp;quot;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amp;quot;라 하고 끝내 같게 여기는데, 이것이 노자의 종지이고 &amp;quot;무극이태극&amp;quot;이 곧 이 뜻입니다. 노자는 배운 것이 바르지 않고 이치를 보는 것이 분명하지 않으니, 그의 병폐가 여기에 있는데, 존형께서는 이 학문에 대해 깊이 힘쓰시고 오래 시간을 보내셨으면서 일찍이 이를 변별해내지 못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 『통서』 「리성명」장의 &amp;quot;中焉止矣&amp;quot;라는 말은 이것이 분명한 것과 같지 않은데, 존형께서 일찍이 이를 살피지 못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 『태극도설』은 '무극' 두 글자를 첫머리에 두고 있지만 『통서』는 마지막 편까지 한 번도 '무극'을 언급하지 않고, 이정이 논의한 글이 지극히 많은데도 '무극'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가령 주돈이가 처음에 실제로 『태극도설』을 썼다 하더라도, 그가 나중에 한 번도 '무극'을 언급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의 학문이 발전하여 스스로 이를 옳게 여기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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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남송 장식(張栻) 『朱子全書』 권13 「太極圖說解」 《後記》&lt;br /&gt;
:*某既爲此說, 嘗錄以寄廣漢張敬夫. 敬夫以書來曰: “二先生所與門人講論問答之言, 見於書者詳矣. 其於《西銘》, 蓋屢言之; 至此圖則未嘗一言及也. 謂其必有微意, 是則固然. 然所謂微意者, 果何謂耶?” (내[주희]가 이 해설을 쓰고서 일찍이 이를 적어 광한 장경부에게 보냈는데, 경부가 편지를 보내왔다: “[명도·이천] 두 선생께서 문인들과 강론하고 문답을 주고받으신 말씀들은 책에 보이는 것이 상세합니다. 두 선생께서 《서명》에 대해서는 누차 말씀하셨는데, 이 《태극도》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대는] ‘거기에 필시 숨겨진 의도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진실로 그렇겠지만, 이른바 ‘숨겨진 의도’라는 게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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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 주이존(朱彝尊) 『曝書亭集』 권58 「太極圖授受考」 &lt;br /&gt;
:*自漢以來, 諸儒言『易』, 莫有及《太極圖》者. 惟道家者流有上方大洞真元妙經, 著太極三五之說. (한나라 이후로 여러 유자가 『주역』에 대해 말했는데 《태극도》를 언급한 경우는 없다. 오직 도가에  『上方大洞真元妙經』이 太極·三五의 설을 말한 것이 전해 온다.)&lt;br /&gt;
:*山陽度正作元公年表, 書: “慶厯六年, 知䖍州興國縣程公珦假倅南安, 因與先生為友, 令二子師之. 時明道年十五, 伊川年十四爾. 其後先生作《太極圖》, 獨手授之, 他莫得而聞焉&amp;quot;. 攷是年, 元公以轉運使王逵薦移知郴縣, 自是而後二程子未聞與元公覿面. 然則從何地手授乎? (산양 도정이 원공[주돈이]의 연표를 지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amp;quot;경력6년 知䖍州興國縣 정향이 남안 부지사도 겸임하고 있었는데, 인하여 선생과 벗이 되어 두 아들로 하여금 스승으로 모시게 하였다. 당시 명도 선생은 15살이었고 이천 선생은 14살이었다. 그 후에 선생이 《太極圖》를 지어 유독 직접 전해주셨는데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amp;quot; 이 해를 헤아려보면, 원공은 전운사 왕규의 추천으로 침현으로 이직하셨으니, 이 이후에는 이정 선생이 원공을 면대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직접 전수하했겠는가?)&lt;br /&gt;
:*伊川撰《明道行状》云: “先生為學自十五六時, 聞汝南周茂叔論道, 遂厭科舉之業, 慨然有求道之志. 未知其要, 泛濫于諸家, 出入于老釋者幾十年. 反求諸六經而後得之.” 繹其文, 若似乎未受業于元公者. 不然, 何以求道未知其要, 復出入于老釋也邪? (이천 선생이 《명도행장》을 지어 말씀하셨다: &amp;quot;선생의 학문의 경우, 15살 때 여남 주무숙이 도를 논함을 듣고 마침내 과거 공부에 염증내고 개연히 도를 추구할 뜻을 갖게 되셨다. 그러나 그 핵심을 알지 못하여 제자백가를 떠돌고 도불에 출입하기를 거의 십여 년 하시고서, 돌아와 육경에서 도를 찾은 이후에야 터득하셨다.&amp;quot; 이 글을 풀어보면, 원공에게 학업을 전수받지 않은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도를 추구함에 그 핵심을  알지 못해 다시 도불에 출입하셨겠는가?)&lt;br /&gt;
:*潘興嗣志元公墓亦不及二程子從游事. (반흥사가 원공의 묘에 쓴 묘지명에도 이정 선생이 종유한 일을 언급하지 않았다.)&lt;br /&gt;
:*明道之卒, 其弟子朋友, 若范淳夫、朱公掞、邢和叔、游定夫, 叙其行事, 皆不言其以元公為師. 惟劉斯立為: “從周茂叔問學, 斯猶孔子問禮于老子, 問樂于萇弘, 問官于郯子云然.” 盖與受業有間矣. (명도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그의 제자와 벗, 예를 들면 범순부·주공섬·형화숙·유정부가 명도 선생의 행적을 서술할 때 모두 원공이 스승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오직 유사립만이 &amp;quot;명도 선생께서 주무숙을 종유하여 학문을 물으신 것은 공자께서 노자에게 예를 물으시고, 장홍에게 음악을 물으시며, 담자에게 관제를 물은 것과 같다.&amp;quot;고 하였는데, 대개 학업을 전수받은 것과는 차이가 있다.)&lt;br /&gt;
:*呂與叔『東見錄』, 則有昔受學于周茂叔之語. 然弟子稱師, 無直呼其字者, 而『遺書』凡司馬君實、張子厚、邵堯夫, 皆目之曰先生, 惟元公直呼其字. 至以窮禪客目元公, 尤非弟子義所當出. (여여숙의 『동견록』에 '전에 주무숙에게 수학했다'라는 말이 있긴 하다. 그런데 제자가 스승을 일컬을 때 직접 그의 자를 부르지 않는데, 『유서』에서 사마광· 장재· 소옹에 대해서는 모두 '선생'이라고 부르면서 오직 원공만은 그의 자를 직접 부른다. '허접한 선객'으로 원공을 지목한 것은 더욱 제자가 의리상 꺼낼 말이 아니다.)&lt;br /&gt;
:*且元公初名惇實, 後避英宗藩邸嫌名, 改惇頤. 夫既以學傳伊川矣, 不應下同其名, 而伊川亦不引避. 昔朱子表程正思墓稱: &amp;quot;其名下字同周程, 亟請其父而更焉.&amp;quot; 孰謂二程子而智反出正思下哉? 此皆事之可疑者也. (또 원공의 첫 이름은 '돈실'이었는데 나중에 영종이 藩邸 생활할 때의 비슷한 이름[宗實]을 피휘하여 '돈이'로 고쳤다. 이미 이천 선생에게 학문을 전수했을 때에는 스승의 이름과 같게 하면 안 될 텐데, 이천은 그래도 피휘하지 않았다. 전에 주자가 정정사의 묘에 표창하며 &amp;quot;[정정사는] 그의 이름의 끝 글자가 周程과 같아 자주 부친에게 고쳐줄 것을 청하였다.&amp;quot;고 하였다. 누가 '이정 선생의 앎이 정정사보다 못하다'고 하겠는가? 이것들이 모두 의심할 만한 일들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그 외 명나라의 풍방(豊坊)이나 청나라의 전조망(全祖望), 대진(戴震)은 역시 주정수수설을 부정하였다. 주정수수설을 부정하거나 『태극도설』과 『통서』을 별개의 텍스트로 간주하는 주장은 서로 연관을 맺고 있다. 왜냐하면 주정수수설을 부정하는 학자들이 대체로 『태극도설』과 『통서』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주희의 옹호===&lt;br /&gt;
주희는 “선생의 학문은 그 오묘함이 『태극도설』 한 권에 구비되어 있으며, 통서는 모두 이 태극도설에 온축되어 있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통서』의 서문에서는 “유독 하남의 정부자(程夫子)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을 대략 알 수 있다.”고 하여 태극도설과 통서가 모두 주돈이의 저작이라고 간주하였으며, 주돈이와 이정의 사승관계를 인정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현대 학자 견해===&lt;br /&gt;
등광명(邓广铭)이 「關於周敦頤的師承和傳授」라는 논문에서 “이정은 결코 理學을 주돈이로부터 배우지 않았다. 특히 그의 『태극도설』과 『통서』를 이정은 모두 접촉한 적도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반하여 주정수수의 가능성을 다른 방식으로 찾아보려는 학자도 있다. 예를 들어 정종모는 「정명도의 주역해석과 그 경학사적 의의」에서 “그(정명도)의 경학의 출발점은 『통서』에 드러난 주렴계의 관점과 유사하며, 이런 차원에서 우리는 주정수수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고 하였다.&lt;/div&gt;</summary>
		<author><name>Wooya0902</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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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C%A3%BC%EB%8F%88%EC%9D%B4</id>
		<title>주돈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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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4-28T16:17:1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Wooya0902: 송사 주돈이전 추가&lt;/p&gt;
&lt;hr /&gt;
&lt;div&gt;=주돈이(周敦頤)=&lt;br /&gt;
주돈이(1017~1073)의 字는 茂叔, 號는 濂溪이다. 원 이름은 敦實이었지만 송나라 英宗(재위 1063~1067)의 초명인 宗實을 피휘하여 敦頤로 이름을 바꾸었다. 대표 저작으로 [[태극도설]]과 [[통서]]가 있다.&lt;br /&gt;
기타 정보는 추가하거나 다음의 링크를 참고할 것. [https://baike.baidu.com/item/%E5%91%A8%E6%95%A6%E9%A2%90/327717?fr=aladdin]&lt;br /&gt;
&lt;br /&gt;
==송사 주돈이전==&lt;br /&gt;
&lt;br /&gt;
&lt;br /&gt;
周敦頤，字茂叔，道州營道人。元名敦實，避英宗舊諱改焉。以舅龍圖閣學士鄭向任，為分寧主簿。有獄久不決，敦頤至，一訊立辨。邑人驚曰：「老吏不如也。」部使者薦之，調南安軍司理參軍。有囚法不當死，轉運使王逵欲深治之。逵，酷悍吏也，眾莫敢爭，敦頤獨與之辨，不聽，乃委手版歸，將棄官去，曰：「如此尚可仕乎！殺人以媚人，吾不為也。」逵悟，囚得免。&lt;br /&gt;
주돈이(周敦頤)는 자가 무숙(茂叔)이고 도주(道州) 영도현(營道) 사람이다. 원래 이름은 돈실(敦實)이었는데 송나라 영종의 옛 이름을 피휘하여 고쳤다. 외삼촌인 용도각학사 정향(鄭向)의 추천으로 분녕의 주부로 임용되었다.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송사가 있었는데 주돈이가 오자 단번에 조사하여 판결을 내렸다. 마을 사람들이 놀라면서 “노련한 관리도 [주돈이만] 못하구나.”라고 말했다. 부사가 그를 천거하였고 남안군사리참군(南安軍司理參軍)으로 임명되었다. 죄수 중에서 법으로 볼 때 죽여선 안 되는 사람이 있었는데 전운사(轉運使) 왕규(王逵)는 그를 심하게 치죄하였다. 왕규는 독하고 사나운 관리인지라 무리 중에서 아무도 감히 다투려고 하지 않았는데 주돈이만이 홀로 그와 논변하였다. 그러나 왕규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고 곧 수판(手版)을 버리고 돌아가 관직을 버리고 떠나려고 하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관리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을 죽여서 남에게 아첨하는 짓을 난 도저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왕규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고, 죄수는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lt;br /&gt;
&lt;br /&gt;
移郴之桂陽令，治績尤著。郡守李初平賢之，語之曰：「吾欲讀書，何如？」敦頤曰：「公老無及矣，請為公言之。」二年果有得。徙知南昌，南昌人皆曰：「是能辨分寧獄者，吾屬得所訴矣。」富家大姓、黠吏惡少，惴惴焉不獨以得罪於令為憂，而又以污穢善政為恥。曆合州判官，事不經手，吏不敢決。雖下之，民不肯從。部使者趙抃惑於譖口，臨之甚威，敦頤處之超然。通判虔州，抃守虔，熟視其所為，乃大悟，執其手曰：「吾幾失君矣，今而後乃知周茂叔也。」&lt;br /&gt;
침군(郴郡) 계양(桂陽)의 현령으로 자리를 옮기자 치적이 더욱 현저해졌다. 침군의 군수 이초평(李初平)은 그가 현명하다고 생각해서 “나는 독서를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며 물었다. 주돈이는 “공은 나이가 많아 시간이 급박하니 공을 위하여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고 말했다. 이년 뒤에 과연 소득이 있었다. 자리를 옮겨서 남창의 지현이 되었는데, 남창의 사람들은 모두 “이는 분녕의 옥사를 능히 판결한 사람이니 우리들이 하소연할 곳을 얻었다.”고 말했다. 부자들과 지방의 유력자들과 교활한 관리들과 악행을 저지르는 젊은이들은 모두 두려워하며 현령으로부터 죄를 얻는 건 아닐까 두려워하였을 뿐 아니라 선정을 더럽히는 것을 부끄러운 일로 여겼다. 합주(合州)의 판관을 역임할 때, 일이 그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관리들이 감히 처결하지 못하였고, 비록 명령을 내리더라도 백성들은 청종하려고 하지 않았다. 부사 조변(趙抃)이 참소하는 말에 현혹되어 [주돈이를] 대하는 태도가 매우 위엄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돈이는 초연히 대처하였다. 건주(虔州) 통판을 맡았을 때에는 조변이 건주의 현령이 되어 면밀하게 그의 행실을 보고선 곧 크게 깨닫더니 그의 손을 잡으며 “나는 그대를 거의 잃어버렸지만. 지금 이후로 주무숙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lt;br /&gt;
&lt;br /&gt;
熙寧初，知郴州。用抃及呂公著薦，為廣東轉運判官，提點刑獄，以洗冤澤物為己任。行部不憚勞苦，雖瘴癘險遠，亦緩視徐按。以疾求知南康軍，因家廬山蓮花峰下。前有溪，合于溢江，取營道所居濂溪以名之。抃再鎮蜀，將奏用之，未及而卒，年五十七。&lt;br /&gt;
희령(熙寧, 1068년~1077) 초년에 침주(郴州)의 지주가 되었다. 조변과 여공저(呂公著)로부터 천거를 받아 광동(廣東)의 전운판관(東轉運判官)이 되자 죄를 지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억울하게 죄를 지은 사람들의 누명을 벗겨주며,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여겼다. 부(部)를 순행하였지만 노고(勞苦)를 꺼려하지 않아서 비록 풍토병과 창병이 일고 길이 험하고 멀더라도 시찰하고 위무하였다. 나중에 주돈이는 병으로 지남강군(知南康軍)으로 자리를 옮기길 구하였고, 이로 인해 여산의 연화봉(蓮花峯) 아래에 집을 지었다. 앞에 시내가 있었는데 분강(湓江)으로 합하였고, 영도(營道)에 머물렀던 염계(溓溪)를 취하여 이름으로 삼았다. 조변이 재차 촉(蜀)에 진수하였을 때 장차 [주돈이를] 등용하라 상주하려고 하였지만 그 일이 이루기도 전에 주돈이는 죽고 말았으니 당시의 나이가 57세였다. &lt;br /&gt;
&lt;br /&gt;
黃庭堅稱其「人品甚高，胸懷灑落，如光風霽月。廉于取名而銳於求志，薄於徼福而厚於得民，菲於奉身而燕及煢嫠，陋於希世而尚友千古。」&lt;br /&gt;
황정견(黃庭堅)은 “인품이 매우 높고 가슴에 품고 있는 것은 시원하여 마치 광풍제월(光風霽月)과 같다. 명성을 취하는 것을 뒷전으로 하였으나 뜻을 구하는 것에는 왕성하였고, 복을 구함에는 박하였지만 백성의 마음을 얻는 데에는 두터웠으며, 몸을 받듦에는 둔하였지만 즐거워함이 과부와 홀아비를 보살피는 일에 주의를 기울였고, 세상에 영합함을 누추하게 여겼지만 위로는 천고(千古)와 벗하였다.”고 그를 칭송하였다.&lt;br /&gt;
&lt;br /&gt;
博學行力，著《太極圖》，明天理之根源，究萬物之終始。其說曰： &lt;br /&gt;
널리 배우고 힘써 실천하였는데, 《태극도》를 지어 천리의 근원을 밝히고 만물의 시작과 끝을 궁구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lt;br /&gt;
&lt;br /&gt;
無極而太極。太極動而生陽，動極而靜，靜而生陰，靜極複動，一動一靜，互為其根，分陰分陽，兩儀立焉。陽變陰合，而生水、火、木、金、土，五氣順布，四時行焉。五行一陰陽也，陰陽一太極也。太極本無極也。五行之生也，各一其性。無極之真，二五之精，妙合而凝，乾道成男，坤道成女。二氣交感，化生萬物，萬物生生，而變化無窮焉。惟人也得其秀而最靈，形既生矣，神發知矣，五性感動而善惡分，萬事出矣。聖人定之以中正仁義而主靜，立人極焉。故聖人與天地合其德，日月合其明，四時合其序，鬼神合其吉凶。君子修之吉，小人悖之凶。故曰：「立天之道，曰陰與陽。立地之道，曰柔與剛。立人之道，曰仁與義。」又曰：「原始反終，故知死生之說。」大哉《易》也，斯其至矣。 &lt;br /&gt;
“무극(無極)이면서 태극(太極)이다. 태극이 움직여서 양(陽)이 생기고 움직임이 극한에 달하여 고요해지는데 고요해지면 음(陰)이 생긴다. 그리고 고요함이 극한에 다다르면 다시 움직인다. 한번 움직이고 한번 고요해져서 서로 각각의 근거가 되니, 음으로 나뉘고 양으로 나뉘어 양의(兩儀)가 세워진다. 음양이 변화하거나 결합해서 수(水)·화(火)·목(木)·금(金)·토(土)라는 오행이 생겨난다. 다섯 종류의 기(五氣)는 순서에 따라 펴져서 춘(春)·하(夏)·추(秋)·동(冬)이라는 사시(四時)가 운행된다. 오행은 하나의 음양이고, 음양은 하나의 태극이다. 태극은 본래 무극이다. 오행의 생성에 각각 본성을 동일하게 갖고 있다. 무극의 신실함과 음양·오행의 순정함은 신묘하게 결합해서 응결된다. ‘건(乾)의 도리는 남자를 이루고, 곤(坤)의 도리는 여자를 이룬다.’고 하니 음양이라는 두 기가 교감하여 만물을 화생시킨다. 만물이 발생하는 과정을 반복하니 변화는 끝이 없다. 오직 사람만이 빼어난 것을 얻어서 가장 영명하다. 형체가 이미 생겨나면 정신이 지각을 발현시키니 [인(仁)·의(義)·예(禮)·지(知)·신(信)이라는] 다섯 가지 본성(五性)이 외물에 감응해 움직이다 선악(善惡)이 나뉘고 온갖 사태들이 출현한다. 성인은 중(中)·정(正)·인(仁)·의(義)로써 이를 안정시키되 정(靜)을 위주로 사람의 표준을 세우셨다. 그러므로 성인은 천지와 그 덕이 합치되고, 일월과 그 밝음이 합치되고, 사시와 그 순서가 합치되며, 귀신과 그 길흉이 합치된다. 군자는 수양하니 길하며, 소인은 어긋나니 흉하다. 그러므로 ‘천도(天道)를 세우며 음(陰)과 양(陽)을 말하였고, 지도(地道)를 세우며 유(柔)와 강(剛)을 말하였고, 인도(人道)를 세우며 인(仁)과 의(義)를 말하였다.’고 하였으며, 또 ‘시작을 궁구하고 끝으로 돌아가니 그러므로 죽음과 삶의 설을 알겠다.’고 한 것이다. 위대하다 역(易)이여! 이렇게도 지극하도다.”&lt;br /&gt;
&lt;br /&gt;
又著《通書》四十篇，發明太極之蘊。序者謂「其言約而道大，文質而義精，得孔、孟之本源，大有功于學者也。」 &lt;br /&gt;
또한 《통서》 40편을 저술하여 태극의 품은 뜻을 드러내서 밝혔다. 서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말은 간략하지만 [담고 있는] 도는 크고, 형식과 내용이 갖추어져있고(文質) 의미가 정밀하여 공자와 맹자의 본원(本源)을 얻었으니 배우는 자들에게 큰 공이 있다.”&lt;br /&gt;
&lt;br /&gt;
掾南安時，程珦通判軍事，視其氣貌非常人，與語，知其為學知道，因與為友，使二子顥、頤往受業焉。敦頤每令尋孔、顏樂處，所樂何事，二程之學源流乎此矣。故顥之言曰：「自再見周茂叔後，吟風弄月以歸，有'吾與點也'之意。」侯師聖學于程頤，未悟，訪敦頤，敦頤曰：「吾老矣，說不可不詳。」留對榻夜談，越三日乃還。頤驚異之，曰：「非從周茂叔來耶？」其善開發人類此。 &lt;br /&gt;
안정에 머무르고 있을 때에 통판군사(通判軍事) 정향(程珦)이 풍모가 비상한 사람임을 보고는 그와 함께 이야기를 했더니 과연 그의 학문 됨됨이와 도(道)를 알고 있음을 알고는 그와 교유를 맺어 두 아들 정호(程顥)와 정이(程頤)로 하여금 가서 수업하도록 하였다. 주돈이는 매번 공자와 안회가 즐거워하는 것, 즉 그들이 즐기던 바가 무슨 일이었는지를 살피도록 하였으니, 이정의 학문이 이로부터 연원하였다. 그래서 정호는 이렇게 말했다. “다시 주무숙을 본 후로부터 음풍농월(吟風弄月) 중에 ‘나는 증점과 함께하겠노라.’라고 말씀하신 공자의 뜻이 있게 되었다.” 후사성(侯師聖)이 정이로부터 학문을 하였지만 깨닫지 못하고 주돈이를 방문하였다.  주돈이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늙어서 말을 상세하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그와 책상을 마주하며 밤새도록 머물며 담론하다 3일이 지나 되돌아갔더니 정이가 남달라진 것을 탄복하며 이렇게 말했다. “주무숙으로부터 온 것이 아닌가!” 그는 사람들을 이렇게 잘 개발시켜주었다. &lt;br /&gt;
&lt;br /&gt;
嘉定十三年，賜諡曰元公，淳祐元年，封汝南伯，從祀孔子廟庭。 &lt;br /&gt;
가정(嘉定) 13년(1220년)에 시호를 하사하여 ‘원공(元公)’이라 하였고, 순우(淳祐) 원년(1241년)에 여남백(汝南伯)에 봉하고 공자의 묘정에 종사(從祀)하게 하였다.&lt;br /&gt;
&lt;br /&gt;
二子壽、燾，燾官至寶文閣待制。 &lt;br /&gt;
두 아들은 주수(周壽)와 주도(周燾)이다. 주도는 관직이 보문각대제(寶文閣待制)에 이르렀다.&lt;br /&gt;
&lt;br /&gt;
&lt;br /&gt;
==주정수수설(周程授受說)==&lt;br /&gt;
&lt;br /&gt;
===발단===&lt;br /&gt;
[[주자]]의 북송오자 선양 및 이를 계승한 『송사』 「도학전」. &amp;lt;br/&amp;gt;&lt;br /&gt;
쓰치다 겐지로(土田健次郎)의 『북송도학사』(성현창 역, 예문서원, 2006) 제2장 제2절 &amp;quot;주정수수설 재고&amp;quot;(164~199쪽) 파트에 잘 정리되어 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이정의 태도===&lt;br /&gt;
이정이 어렸을 때 주돈이에게 배운 것은 분명하지만, 사제관계가 성립한다고 해서 이정보다 앞선 도학의 종주로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단 『이정집』에서의 주돈이에 대한 평가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lt;br /&gt;
:*'''昔受學於周茂叔, 每令尋顏子･仲尼樂處, 所樂何事.''' (전에 주무숙에게 배울 때, 주무숙은 매번 안자와 공자께서 즐기신 경지와 즐기신 바가 어떤 일인지 찾아보게 하였다.)&lt;br /&gt;
:*'''詩可以興. 某自再見茂叔後, 吟風弄月以歸, 有吾與點也之意.''' (시는 사람을 흥기시킬 수 있다. 내가 주무숙을 두 번 본 뒤에 음풍농월하며 돌아가면서 공자께서 '나는 증점을 허여하노라'라고 말씀하셨던 뜻을 갖게 되었다.)&lt;br /&gt;
:*'''周茂叔窗前草不除去. 問之, 云: &amp;quot;與自家意思一般.&amp;quot;''' (주무숙은 창 앞의 풀을 뽑지 못하게 하였다.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였다: &amp;quot;내 마음과 똑같기 때문이네.&amp;quot;)&lt;br /&gt;
:*'''周茂叔窮禪客.''' (주무숙은 허접한(?) 선객이었다.) [혹은 '주무숙은 선객을 곤란하게 만들었다.']&lt;br /&gt;
:*'''獵, 自謂今無此好. 周茂叔曰: &amp;quot;何言之易也? 但此心潛隱未發. 一日萌動, 復如前矣.&amp;quot; 後十二年, 因見, 果知未.''' (내가 전에 사냥에 대해서 '요즘엔 이런 취미가 없습니다.'하고 스스로 말했는데, 주무숙이 말하길: &amp;quot;어찌 말을 쉽게 하는가? 그저 이 마음이 가라앉아 숨어 드러나지 않을 뿐이네. 어느 날 이 마음이 싹터 움직이게 되면 다시 전과 같아질걸세.&amp;quot;라고 하였다. 12년 뒤에 이 말에 입각해 살펴보니, 과연 내 말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lt;br /&gt;
:*'''先生爲學, 自十五六時, 聞汝南周茂叔論道, 遂厭科舉之業, 慨然有求道之志. 未知其要, 泛濫於諸家, 出入於老釋者幾十年, 返求諸六經而後得之.''' (선생의 학문의 경우, 15-6세에 여남의 주무숙이 도를 논한다는 소문을 듣고 마침내 과거 공부에 염증내고 개연히 도를 추구하려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 핵심을 알지 못해 제자백가를 떠돌고 도불에 출입하기를 십여 년간 하시고서, 돌아와 육경에서 도를 구한 이후에야 터득하셨다.)&lt;br /&gt;
:*'''異時, 伊川同朱公掞訪先君. 先君留之飮酒, 因以論道. 伊川指面前食卓曰: &amp;quot;此卓安在地上? 不知天地安在甚處?&amp;quot; 先君爲之極論天地萬物之理、以及六合之外. 伊川歎曰: &amp;quot;平生唯見周茂叔論至此. 然不及先生之有條理也.&amp;quot;''' (어느날 이천 선생께서 주공섬과 함께 先君을 방문하셨다. 先君께서 함께 자리하시고 술을 드셨는데, 인하여 도에 대해 논하였다. 이천 선생께서 앞의 식탁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amp;quot;이 식탁은 어떻게 땅 위에 서있는 것인가? 잘 모르겠지만, 천지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것인가?&amp;quot; 先君께서 답하기 위해 천지만물의 이치와 六合 바깥에 대해 지극히 논하셨다. 이천 선생께서 찬탄하시며 말씀하셨다: &amp;quot;평생 오직 주무숙의 논의만이 이정도의 수준에 이른 것을 보았네. 그러나 주무숙의 논의는 그대의 설에 조리가 있는 것만 못했네.&amp;quot;)&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제기된 의문===&lt;br /&gt;
역사적으로 주정수수를 의심한 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1. 남송 왕응신(汪應辰) 『文定集』 권15 「與朱元晦」 9, 10.&lt;br /&gt;
:*伊川于濓溪, 若止云少年嘗從學, 則無害矣. (이천 선생이 염계 선생에 대해 그저 '소년기에 일찍이 따라 배웠다'고만 말했다면 문제는 없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lt;br /&gt;
:*濓溪先生髙明純正. 然謂二程受學, 恐未能盡. 范文正公一見横渠竒之, 授以『中庸』, 謂横渠學文正, 則不可也. (염계 선생께서는 髙明하고 純正하셨지만, 만약 '이정이 염계 선생께 수학했다'고 한다면 아마 실정을 온전히 표현한 것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범문정공[범중엄]이 횡거 선생을 한 번 보고 기특하게 여겨 『중용』을 주긴 했지만, '횡거 선생이 범문정공에게 배웠다'고 하면 안 됩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2. 남송 육구연(陸九淵) 『象山集』 권12 「與朱元晦」 1.&lt;br /&gt;
:*梭山兄謂: &amp;quot;『太極圖説』與『通書』不類, 疑非周子所為. 不然則或是其學未成時所作; 不然則或傳他人之文, 後人不辨也. 葢『通書』「理性命」章言: &amp;quot;中焉止矣&amp;quot;, &amp;quot;二氣五行, 化生萬物, 五殊二實, 二本則一.&amp;quot; 曰一曰中, 即太極也, 未甞於其上加無極字; 「動静」章言: &amp;quot;五行隂陽, 隂陽太極&amp;quot;, 亦無無極之文. 假令『太極圖説』是其所傳, 或其少時所作, 則作『通書』時不言無極, 葢已知其説之非矣.&amp;quot; 此言殆未可忽也. (梭山형[육구소]이 말씀하시길: &amp;quot;『태극도설』 과 『통서』가 비슷하지 않으니, 아마 周子가 지은 게 아닌 듯하다. 그렇지 않다면 혹 그의 학문이 아직 성숙하지 않았을 때 지은 것이거나, 아니면 혹 다른 사람의 글을 옮긴 건데 후인이 변별하지 못한 것일 것이다. 대개 『통서』의 「리성명」장에서 '中焉止矣', '二氣五行, 化生萬物, 五殊二實, 二本則一.'라고 하는데,  一·中이라고 한 것은 곧 태극이니 그 위에 '무극'을 덧붙인 적이 없고, 「動静」장에서는 '五行隂陽, 隂陽太極'이라고 하는데 역시 '무극'이라는 말이 없다. 가령 『태극도설』이 남의 말을 옮긴 것이거나 혹 그가 어렸을 때 지은 것이라면, 『通書』를 쓸 때 '무극'을 말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태극도설』이 틀렸음을 이미 알고서 그렇게 한 것이다.&amp;quot;라고 하셨는데, 이 말을 결코 소홀히해서는 안 됩니다.)&lt;br /&gt;
:*無極二字, 出於『老子』 「知此雄」章, 吾聖人之書所無有也. 『老子』首章言: &amp;quot;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amp;quot;而卒同之, 此老氏之宗㫖也, &amp;quot;無極而太極&amp;quot;即是此㫖. 老氏學之不正, 見理不明, 所蔽在此. 兄於此學用力之深, 為日之乆, 曽此之不能辨, 何也? 『通書』&amp;quot;中焉止矣&amp;quot;之言, 與此之昭然不類, 而兄曾不之察, 何也? 『太極圖説』以無極二字冠首, 而『通書』終篇未甞一及無極字. 二程言論文字至多, 亦未甞一及無極字. 假令其初實有是圖, 觀其後來未甞一及無極字, 可見其道之進而不自以為是也. ('무극' 두 글자는 『노자』 「知其雄」 장에서 나오지 우리 유가 성인의 책에 있는 말이 아닙니다. 『노자』 수장에서 &amp;quot;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amp;quot;라 하고 끝내 같게 여기는데, 이것이 노자의 종지이고 &amp;quot;무극이태극&amp;quot;이 곧 이 뜻입니다. 노자는 배운 것이 바르지 않고 이치를 보는 것이 분명하지 않으니, 그의 병폐가 여기에 있는데, 존형께서는 이 학문에 대해 깊이 힘쓰시고 오래 시간을 보내셨으면서 일찍이 이를 변별해내지 못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 『통서』 「리성명」장의 &amp;quot;中焉止矣&amp;quot;라는 말은 이것이 분명한 것과 같지 않은데, 존형께서 일찍이 이를 살피지 못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 『태극도설』은 '무극' 두 글자를 첫머리에 두고 있지만 『통서』는 마지막 편까지 한 번도 '무극'을 언급하지 않고, 이정이 논의한 글이 지극히 많은데도 '무극'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가령 주돈이가 처음에 실제로 『태극도설』을 썼다 하더라도, 그가 나중에 한 번도 '무극'을 언급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의 학문이 발전하여 스스로 이를 옳게 여기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3. 남송 장식(張栻) 『朱子全書』 권13 「太極圖說解」 《後記》&lt;br /&gt;
:*某既爲此說, 嘗錄以寄廣漢張敬夫. 敬夫以書來曰: “二先生所與門人講論問答之言, 見於書者詳矣. 其於《西銘》, 蓋屢言之; 至此圖則未嘗一言及也. 謂其必有微意, 是則固然. 然所謂微意者, 果何謂耶?” (내[주희]가 이 해설을 쓰고서 일찍이 이를 적어 광한 장경부에게 보냈는데, 경부가 편지를 보내왔다: “[명도·이천] 두 선생께서 문인들과 강론하고 문답을 주고받으신 말씀들은 책에 보이는 것이 상세합니다. 두 선생께서 《서명》에 대해서는 누차 말씀하셨는데, 이 《태극도》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대는] ‘거기에 필시 숨겨진 의도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진실로 그렇겠지만, 이른바 ‘숨겨진 의도’라는 게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4. 청 주이존(朱彝尊) 『曝書亭集』 권58 「太極圖授受考」 &lt;br /&gt;
:*自漢以來, 諸儒言『易』, 莫有及《太極圖》者. 惟道家者流有上方大洞真元妙經, 著太極三五之說. (한나라 이후로 여러 유자가 『주역』에 대해 말했는데 《태극도》를 언급한 경우는 없다. 오직 도가에  『上方大洞真元妙經』이 太極·三五의 설을 말한 것이 전해 온다.)&lt;br /&gt;
:*山陽度正作元公年表, 書: “慶厯六年, 知䖍州興國縣程公珦假倅南安, 因與先生為友, 令二子師之. 時明道年十五, 伊川年十四爾. 其後先生作《太極圖》, 獨手授之, 他莫得而聞焉&amp;quot;. 攷是年, 元公以轉運使王逵薦移知郴縣, 自是而後二程子未聞與元公覿面. 然則從何地手授乎? (산양 도정이 원공[주돈이]의 연표를 지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amp;quot;경력6년 知䖍州興國縣 정향이 남안 부지사도 겸임하고 있었는데, 인하여 선생과 벗이 되어 두 아들로 하여금 스승으로 모시게 하였다. 당시 명도 선생은 15살이었고 이천 선생은 14살이었다. 그 후에 선생이 《太極圖》를 지어 유독 직접 전해주셨는데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amp;quot; 이 해를 헤아려보면, 원공은 전운사 왕규의 추천으로 침현으로 이직하셨으니, 이 이후에는 이정 선생이 원공을 면대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직접 전수하했겠는가?)&lt;br /&gt;
:*伊川撰《明道行状》云: “先生為學自十五六時, 聞汝南周茂叔論道, 遂厭科舉之業, 慨然有求道之志. 未知其要, 泛濫于諸家, 出入于老釋者幾十年. 反求諸六經而後得之.” 繹其文, 若似乎未受業于元公者. 不然, 何以求道未知其要, 復出入于老釋也邪? (이천 선생이 《명도행장》을 지어 말씀하셨다: &amp;quot;선생의 학문의 경우, 15살 때 여남 주무숙이 도를 논함을 듣고 마침내 과거 공부에 염증내고 개연히 도를 추구할 뜻을 갖게 되셨다. 그러나 그 핵심을 알지 못하여 제자백가를 떠돌고 도불에 출입하기를 거의 십여 년 하시고서, 돌아와 육경에서 도를 찾은 이후에야 터득하셨다.&amp;quot; 이 글을 풀어보면, 원공에게 학업을 전수받지 않은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도를 추구함에 그 핵심을  알지 못해 다시 도불에 출입하셨겠는가?)&lt;br /&gt;
:*潘興嗣志元公墓亦不及二程子從游事. (반흥사가 원공의 묘에 쓴 묘지명에도 이정 선생이 종유한 일을 언급하지 않았다.)&lt;br /&gt;
:*明道之卒, 其弟子朋友, 若范淳夫、朱公掞、邢和叔、游定夫, 叙其行事, 皆不言其以元公為師. 惟劉斯立為: “從周茂叔問學, 斯猶孔子問禮于老子, 問樂于萇弘, 問官于郯子云然.” 盖與受業有間矣. (명도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그의 제자와 벗, 예를 들면 범순부·주공섬·형화숙·유정부가 명도 선생의 행적을 서술할 때 모두 원공이 스승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오직 유사립만이 &amp;quot;명도 선생께서 주무숙을 종유하여 학문을 물으신 것은 공자께서 노자에게 예를 물으시고, 장홍에게 음악을 물으시며, 담자에게 관제를 물은 것과 같다.&amp;quot;고 하였는데, 대개 학업을 전수받은 것과는 차이가 있다.)&lt;br /&gt;
:*呂與叔『東見錄』, 則有昔受學于周茂叔之語. 然弟子稱師, 無直呼其字者, 而『遺書』凡司馬君實、張子厚、邵堯夫, 皆目之曰先生, 惟元公直呼其字. 至以窮禪客目元公, 尤非弟子義所當出. (여여숙의 『동견록』에 '전에 주무숙에게 수학했다'라는 말이 있긴 하다. 그런데 제자가 스승을 일컬을 때 직접 그의 자를 부르지 않는데, 『유서』에서 사마광· 장재· 소옹에 대해서는 모두 '선생'이라고 부르면서 오직 원공만은 그의 자를 직접 부른다. '허접한 선객'으로 원공을 지목한 것은 더욱 제자가 의리상 꺼낼 말이 아니다.)&lt;br /&gt;
:*且元公初名惇實, 後避英宗藩邸嫌名, 改惇頤. 夫既以學傳伊川矣, 不應下同其名, 而伊川亦不引避. 昔朱子表程正思墓稱: &amp;quot;其名下字同周程, 亟請其父而更焉.&amp;quot; 孰謂二程子而智反出正思下哉? 此皆事之可疑者也. (또 원공의 첫 이름은 '돈실'이었는데 나중에 영종이 藩邸 생활할 때의 비슷한 이름[宗實]을 피휘하여 '돈이'로 고쳤다. 이미 이천 선생에게 학문을 전수했을 때에는 스승의 이름과 같게 하면 안 될 텐데, 이천은 그래도 피휘하지 않았다. 전에 주자가 정정사의 묘에 표창하며 &amp;quot;[정정사는] 그의 이름의 끝 글자가 周程과 같아 자주 부친에게 고쳐줄 것을 청하였다.&amp;quot;고 하였다. 누가 '이정 선생의 앎이 정정사보다 못하다'고 하겠는가? 이것들이 모두 의심할 만한 일들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그 외 명나라의 풍방(豊坊)이나 청나라의 전조망(全祖望), 대진(戴震)은 역시 주정수수설을 부정하였다. 주정수수설을 부정하거나 『태극도설』과 『통서』을 별개의 텍스트로 간주하는 주장은 서로 연관을 맺고 있다. 왜냐하면 주정수수설을 부정하는 학자들이 대체로 『태극도설』과 『통서』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주희의 옹호===&lt;br /&gt;
주희는 “선생의 학문은 그 오묘함이 『태극도설』 한 권에 구비되어 있으며, 통서는 모두 이 태극도설에 온축되어 있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통서』의 서문에서는 “유독 하남의 정부자(程夫子)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을 대략 알 수 있다.”고 하여 태극도설과 통서가 모두 주돈이의 저작이라고 간주하였으며, 주돈이와 이정의 사승관계를 인정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현대 학자 견해===&lt;br /&gt;
등광명(邓广铭)이 「關於周敦頤的師承和傳授」라는 논문에서 “이정은 결코 理學을 주돈이로부터 배우지 않았다. 특히 그의 『태극도설』과 『통서』를 이정은 모두 접촉한 적도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반하여 주정수수의 가능성을 다른 방식으로 찾아보려는 학자도 있다. 예를 들어 정종모는 「정명도의 주역해석과 그 경학사적 의의」에서 “그(정명도)의 경학의 출발점은 『통서』에 드러난 주렴계의 관점과 유사하며, 이런 차원에서 우리는 주정수수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고 하였다.&lt;/div&gt;</summary>
		<author><name>Wooya0902</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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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통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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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4-16T21:24:0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Wooya0902: &lt;/p&gt;
&lt;hr /&gt;
&lt;div&gt;=해제=&lt;br /&gt;
이 페이지는 고려대 철학과 대학원 동양철학전공 원전 강독 세미나([[의적단]])의 일환으로 작성되었다.&amp;lt;br/&amp;gt;&lt;br /&gt;
『통서(通書)』1권은 송대 신유학자인 [[주돈이]]의 저서이다. 글이 매우 짧고 단순하여 해석하기 어렵고 해석하더라도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데, 주자마저도 주석을 단순하게 달아 후학을 고통스럽게 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이러한 해석의 모호함 때문에 많은 학자들은 이견을 제기하였다. 다양한 이견들이 존재하지만 종합해보면 결국 '『통서』와 『태극도설』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그리고 '정명도, 정이천과 주돈이의 관계는 어떠했는가?'로 집약시킬 수 있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전통적으론 이 두 문제 모두 긍정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주희(朱熹)라는 대학자가 이 두 문제에 대하여 긍정하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생겨났다. 주희는 “선생의 학문은 그 오묘함이 『태극도설』 한 권에 구비되어 있으며, 통서는 모두 이 태극도설에 온축되어 있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통서』의 서문에서는 “유독 하남의 정부자(程夫子)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을 대략 알 수 있다.”고 하여 태극도설과 통서가 모두 주돈이의 저작이라고 간주하였으며, 주돈이와 이정의 사승관계를 인정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하지만 주희 당시에도 이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예를 들어 왕응신(汪應辰)은 “염계선생께서는 고명하시고 순정하시지만 二程이 수학했다고 말한 것은 아마도 완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고 하였고, 육구연(陸九淵)은 형인 육구소(陸九韶)의 말을 인용하며 “형은 『태극도설』과 『통서』가 유사하지 않다고 하였는데 아무래도 주돈이가 지은 것이 아닌 듯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혹 그 학문이 성숙하지 않았을 때의 저작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사람의 문장을 전한 것인데 후대 사람들이 변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고 하였다. 명나라의 풍방(豊坊)이나 청나라의 전조망(全祖望), 대진(戴震)은 역시 주정수수설을 부정하였다. 주정수수설을 부정하거나 『태극도설』과 『통서』을 별개의 텍스트로 간주하는 주장은 서로 연관을 맺고 있다. 왜냐하면 주정수수설을 부정하는 학자들이 대체로 『태극도설』과 『통서』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현대의 학자 중에선 등광명(邓广铭)이 「關於周敦頤的師承和傳授」라는 논문에서 “이정은 결코 理學을 주돈이로부터 배우지 않았다. 특히 그의 『태극도설』과 『통서』를 이정은 모두 접촉한 적도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반하여 주정수수의 가능성을 다른 방식으로 찾아보려는 학자도 있다. 예를 들어 정종모는 「정명도의 주역해석과 그 경학사적 의의」에서 “그(정명도)의 경학의 출발점은 『통서』에 드러난 주렴계의 관점과 유사하며, 이런 차원에서 우리는 주정수수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고 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통서』는 주돈이가 직접 쓴 본문과 주희의 주해 사이에 몇몇 간극이 존재한다. 하지만 본문만 가지고는 주돈이의 사상을 재구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주희의 이해방식을 참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주희의 이해방식에 근거하면 『통서』의 내용은 크게 셋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통서』는 만물·운동·변화의 근거로서 ‘태극(太極)’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우리 눈  앞에 펼쳐져 있는 현상과 태극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誠上第一’, ‘誠下第二’, ‘動靜第十六’, ‘理性命第二十二’ 등에서 보인다. 둘째, 『통서』는 유학자가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志學第十’, ‘顔子第二十三’ 등에서 보인다. 셋째, 『통서』는 세상을 경영하는 수단으로서의 ‘예(禮)’와 ‘악(樂)’의 활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樂上第十七’, ‘樂中第十八’, ‘樂下第十九’에서 보인다.&lt;br /&gt;
&lt;br /&gt;
=원문 및 朱注=&lt;br /&gt;
번역 없이 원문만 필요할 경우 다음의 링크를 활용하고,[https://zh.wikisource.org/wiki/通書] &amp;lt;br/&amp;gt;&lt;br /&gt;
각 장의 번역이 필요한 경우에는 아래의 링크를 확인할 것. (발제자가 달라 형식/표점 등이 일정하지 않는데, 추후 교정 필요)&lt;br /&gt;
==[[誠上第一]]==&lt;br /&gt;
==[[誠下第二]]==&lt;br /&gt;
==[[誠幾德第三]]==&lt;br /&gt;
==[[聖第四]]==&lt;br /&gt;
==[[愼動第五]]==&lt;br /&gt;
==[[道第六]]==&lt;br /&gt;
==[[師第七]]==&lt;br /&gt;
==[[幸第八]]==&lt;br /&gt;
==[[思第九]]==&lt;br /&gt;
==[[志學第十]]==&lt;br /&gt;
==[[順化第十一]]==&lt;br /&gt;
==[[治第十二]]==&lt;br /&gt;
==[[禮樂第十三]]==&lt;br /&gt;
==[[務實第十四]]==&lt;br /&gt;
==[[愛敬第十五]]==&lt;br /&gt;
==[[動靜第十六]]==&lt;br /&gt;
==[[樂上第十七]]==&lt;br /&gt;
==[[樂中第十八]]==&lt;br /&gt;
==[[樂下第十九]]==&lt;br /&gt;
==[[聖學第二十]]==&lt;br /&gt;
&lt;br /&gt;
==[[公明第二十一]]==&lt;br /&gt;
==[[理性命第二十二]]==&lt;br /&gt;
==[[顔子第二十三]]==&lt;br /&gt;
==[[師友上第二十四]]==&lt;br /&gt;
==[[師友下第二十五]]==&lt;br /&gt;
==[[過第二十六]]==&lt;br /&gt;
==[[勢第二十七]]==&lt;br /&gt;
==[[文辭第二十八]]==&lt;br /&gt;
==[[聖蘊第二十九]]==&lt;br /&gt;
==[[精蘊第三十]]==&lt;br /&gt;
==[[乾損益動第三十一]]==&lt;br /&gt;
==[[家人睽無妄第三十二]]==&lt;br /&gt;
==[[富貴第三十三]]==&lt;br /&gt;
==[[陋第三十四]]==&lt;br /&gt;
==[[擬議第三十五]]==&lt;br /&gt;
==[[刑第三十六]]==&lt;br /&gt;
==[[公第三十七]]==&lt;br /&gt;
==[[孔子上第三十八]]==&lt;br /&gt;
==[[孔子下第三十九]]==&lt;br /&gt;
==[[蒙艮第四十]]==&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통서해 서문=&lt;br /&gt;
&amp;lt;br/&amp;gt;&lt;br /&gt;
:'''《通書解》序''' - 宋 朱熹&lt;br /&gt;
&amp;lt;br/&amp;gt;&lt;br /&gt;
:通書者, 濂溪夫子之所作也.(夫子性周氏, 名敦頤, 字茂叔). 夫子自少卽以學行有聞於世, 而莫或知其師傳之所自. 獨以河南兩程夫子嘗受學焉, 而得孔孟不傳之正統, 則其淵源因可槪見. 然所以指夫仲尼, 顔子之樂, 而發其吟風弄月之趣者, 亦不可得而悉聞矣. 所著之書, 又多放失. 獨此一篇, 本號易通, 與太極圖說並出, 程氏以傳於世, 而其爲說, 實相表裏. 大抵推一理、二氣、五行之分合, 以紀綱道體之精微; 決道義、文辭、祿利之取舍, 以振起俗學之卑陋. 至論所以入德之方、經世之具, 又皆親切簡要, 不爲空言. 顧其宏綱大用, 旣非秦漢以來諸儒所及; 而其條理之密、意味之深, 又非今世學者所能驟而窺也. 是以程氏旣沒, 而傳者鮮焉, 其知之者, 不過以爲用意高遠而已. 熹自蚤歲旣幸得其遺編而伏讀之, 初蓋茫然不知其所謂, 而甚或不能以句. 壯歲獲遊延平先生之門, 然後始得聞其說之一二, 比年以來, 潛玩旣久, 乃若粗有得焉. 雖其宏綱大用所不敢知, 然於其章句文字之間, 則有以實見其條理之愈密、意味之愈深, 而不我欺也. 顧自始讀以至於今, 歲月幾何! 倏焉三紀. 慨前哲之益遠, 懼妙旨之無傳, 竊不自量, 輒爲注釋. 雖知凡近不足以發夫子之精蘊, 然創通大義, 以俟後之君子, 則萬一其庶幾焉. 淳熙丁未九月甲辰, 後學朱熹謹記.&lt;br /&gt;
:『통서通書』는 염계 선생의 저작이다. (선생의 성은 周씨이고, 이름은 '돈이敦頤'이며, 자는 '무숙茂叔'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학문과 행실로 세상에 명성이 있었지만 그 사승관계의 연원은 아무도 모른다. 유독 하남의 정부자 &amp;lt;ref&amp;gt; 정명도程明道와 정이천程伊川형제를 지칭한다. &amp;lt;/ref&amp;gt; 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을 대략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그러나 공자와 안자의 즐거움을 가리켜주고 &amp;lt;ref&amp;gt;『論語』「雍也」 子曰: &amp;quot;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飲,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 回也!&amp;quot;&amp;lt;/ref&amp;gt; 음풍농월의 흥취를 일으키게 했던 것 &amp;lt;ref&amp;gt;『二程遺書』 卷三. “詩可以興. 某自再見茂叔後, 吟風弄月以歸, 有‘吾與點也’之意.”&amp;lt;/ref&amp;gt; 을 또한 모두 들을 수 없는데다가 저술한 책도 흩어지고 잃어버린 것이 많다. 오직 이 한 편만은 본래 ‘역통易通’으로 불렸는데 『태극도설太極圖說』과 함께 나와서 程氏가 이를 세상에 전하셨으니 그 학설은 실로 『태극도설太極圖說』과 서로 표리를 이룬다. 대체로 [그 내용은] 一理와 二氣，五行의 나누어짐과 합해짐을 추론하여 道體의 정밀하고 미묘함을 紀綱으로 삼았고, 道義와 文辭, 祿利 중에 취하고 버릴 것인지 결정해서 세속적 학문의 비루함을 떨치고 일어났으며, 덕德에 들어가는 방도와 세상을 경영하는 도구를 논하는 데 이르러서도 모두 친절하고 간단명료하니, 공허한 말이 아니다. 그 학설의 넓은 대강과 큰 쓰임을 돌아보니 이미 진나라와 한나라 이래 여러 유학자들이 미칠 바가 아니고, 그 조리의 엄밀함과 의미의 심오함 역시 오늘날의 학자들이 갑작스럽게 엿볼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이 때문에 程氏가 세상을 떠나자 전한 사람이 드물었고, [이 책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그 생각이 고원하다고 여길 뿐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미 다행히 그 남겨진 책을 얻어 읽었으나, 처음에는 아득하여 이것이 말하는 것이 뭔지 알 수 없었으며,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구두도 뗄 수 없었다. 나이가 들어 연평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한 뒤에야 비로소 그 학설의 일부를 알 수 있었고, 근년 이래 오랫동안 깊이 완미해보고 나서야 조잡하게나마 뭔가 깨닫는 것이 있게 되었다. 비록 핵심적인 요지와 광대한 쓰임은 감히 알 순 없지만, 장구와 문자의 사이에 조리가 더욱 치밀하고 의미는 더욱 깊어서 진실로 나를 속이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회고해 보건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가! 어느새 홀연히 36년이 되었다. 앞선 철인들이 점점 더 멀어짐을 개탄하고 미묘한 뜻이 멀어지고 있음을 두려워하여 삼가 나의 역량을 헤아리지도 않고 주해를 달았다. 비록 자질이 용렬하고 식견이 천박해서 선생님의 정밀한 뜻을 드러내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처음 대강의 의미를 통하게 함으로써 훗날의 군자를 기다리니 만의 하나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순희 정미년(1187년) 9월 갑진일, 후학 주희朱熹는 삼가 서문을 쓰다&lt;br /&gt;
&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Wooya0902</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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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통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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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Wooya0902: &lt;/p&gt;
&lt;hr /&gt;
&lt;div&gt;=해제=&lt;br /&gt;
이 페이지는 고려대 철학과 대학원 동양철학전공 원전 강독 세미나([[의적단]])의 일환으로 작성되었다.&amp;lt;br/&amp;gt;&lt;br /&gt;
『통서(通書)』1권은 송대 신유학자인 [[주돈이]]의 저서이다. 글이 매우 짧고 단순하여 해석하기 어렵고 해석하더라도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데, 주자마저도 주석을 단순하게 달아 후학을 고통스럽게 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이러한 해석의 모호함 때문에 많은 학자들은 이견을 제기하였다. 다양한 이견들이 존재하지만 종합해보면 결국 '『통서』와 『태극도설』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그리고 '정명도, 정이천과 주돈이의 관계는 어떠했는가?'로 집약시킬 수 있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전통적으론 이 두 문제 모두 긍정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주희(朱熹)라는 대학자가 이 두 문제에 대하여 긍정하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생겨났다. 주희는 “선생의 학문은 그 오묘함이 『태극도설』 한 권에 구비되어 있으며, 통서는 모두 이 태극도설에 온축되어 있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통서』의 서문에서는 “유독 하남의 정부자(程夫子)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을 대략 알 수 있다.”고 하여 태극도설과 통서가 모두 주돈이의 저작이라고 간주하였으며, 주돈이와 이정의 사승관계를 인정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하지만 주희 당시에도 이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예를 들어 왕응신(汪應辰)은 “염계선생께서는 고명하시고 순정하시지만 二程이 수학했다고 말한 것은 아마도 완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고 하였고, 육구연(陸九淵)은 형인 육구소(陸九韶)의 말을 인용하며 “형은 『태극도설』과 『통서』가 유사하지 않다고 하였는데 아무래도 주돈이가 지은 것이 아닌 듯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혹 그 학문이 성숙하지 않았을 때의 저작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사람의 문장을 전한 것인데 후대 사람들이 변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고 하였다. 명나라의 풍방(豊坊)이나 청나라의 전조망(全祖望), 대진(戴震)은 역시 주정수수설을 부정하였다. 주정수수설을 부정하거나 『태극도설』과 『통서』을 별개의 텍스트로 간주하는 주장은 서로 연관을 맺고 있다. 왜냐하면 주정수수설을 부정하는 학자들이 대체로 『태극도설』과 『통서』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현대의 학자 중에선 등광명(邓广铭)이 「關於周敦頤的師承和傳授」라는 논문에서 “이정은 결코 理學을 주돈이로부터 배우지 않았다. 특히 그의 『태극도설』과 『통서』를 이정은 모두 접촉한 적도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반하여 주정수수의 가능성을 다른 방식으로 찾아보려는 학자도 있다. 예를 들어 정종모는 「정명도의 주역해석과 그 경학사적 의의」에서 “그(정명도)의 경학의 출발점은 『통서』에 드러난 주렴계의 관점과 유사하며, 이런 차원에서 우리는 주정수수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고 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통서』는 주돈이가 직접 쓴 본문과 주희의 주해 사이에 몇몇 간극이 존재한다. 하지만 본문만 가지고는 주돈이의 사상을 재구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주희의 이해방식을 참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주희의 이해방식에 근거하면 『통서』의 내용은 크게 셋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통서』는 만물·운동·변화의 근거로서 ‘태극(太極)’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우리 눈  앞에 펼쳐져 있는 현상과 태극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誠上第一’, ‘誠下第二’, ‘動靜第十六’, ‘理性命第二十二’ 등에서 보인다. 둘째, 『통서』는 유학자가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志學第十’, ‘顔子第二十三’ 등에서 보인다. 셋째, 『통서』는 세상을 경영하는 수단으로서의 ‘예(禮)’와 ‘악(樂)’의 활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樂上第十七’, ‘樂中第十八’, ‘樂下第十九’에서 보인다.&lt;br /&gt;
&lt;br /&gt;
=원문 및 朱注=&lt;br /&gt;
번역 없이 원문만 필요할 경우 다음의 링크를 활용하고,[https://zh.wikisource.org/wiki/通書] &amp;lt;br/&amp;gt;&lt;br /&gt;
각 장의 번역이 필요한 경우에는 아래의 링크를 확인할 것. (발제자가 달라 형식/표점 등이 일정하지 않는데, 추후 교정 필요)&lt;br /&gt;
==[[誠上第一]]==&lt;br /&gt;
==[[誠下第二]]==&lt;br /&gt;
==[[誠幾德第三]]==&lt;br /&gt;
==[[聖第四]]==&lt;br /&gt;
==[[愼動第五]]==&lt;br /&gt;
==[[道第六]]==&lt;br /&gt;
==[[師第七]]==&lt;br /&gt;
==[[幸第八]]==&lt;br /&gt;
==[[思第九]]==&lt;br /&gt;
==[[志學第十]]==&lt;br /&gt;
==[[順化第十一]]==&lt;br /&gt;
==[[治第十二]]==&lt;br /&gt;
==[[禮樂第十三]]==&lt;br /&gt;
==[[務實第十四]]==&lt;br /&gt;
==[[愛敬第十五]]==&lt;br /&gt;
==[[動靜第十六]]==&lt;br /&gt;
==[[樂上第十七]]==&lt;br /&gt;
==[[樂中第十八]]==&lt;br /&gt;
==[[樂下第十九]]==&lt;br /&gt;
==[[聖學第二十]]==&lt;br /&gt;
&lt;br /&gt;
==[[公明第二十一]]==&lt;br /&gt;
==[[理性命第二十二]]==&lt;br /&gt;
==[[顔子第二十三]]==&lt;br /&gt;
==[[師友上第二十四]]==&lt;br /&gt;
==[[師友下第二十五]]==&lt;br /&gt;
==[[過第二十六]]==&lt;br /&gt;
==[[勢第二十七]]==&lt;br /&gt;
==[[文辭第二十八]]==&lt;br /&gt;
==[[聖蘊第二十九]]==&lt;br /&gt;
==[[精蘊第三十]]==&lt;br /&gt;
==[[乾損益動第三十一]]==&lt;br /&gt;
==[[家人睽無妄第三十二]]==&lt;br /&gt;
==[[富貴第三十三]]==&lt;br /&gt;
==[[陋第三十四]]==&lt;br /&gt;
==[[擬議第三十五]]==&lt;br /&gt;
==[[刑第三十六]]==&lt;br /&gt;
==[[公第三十七]]==&lt;br /&gt;
==[[孔子上第三十八]]==&lt;br /&gt;
==[[孔子下第三十九]]==&lt;br /&gt;
==[[蒙艮第四十]]==&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통서해 서문=&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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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書解》序''' - 宋 朱熹&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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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書者, 濂溪夫子之所作也.(夫子性周氏, 名敦頤, 字茂叔). 夫子自少卽以學行有聞於世, 而莫或知其師傳之所自. 獨以河南兩程夫子嘗受學焉, 而得孔孟不傳之正統, 則其淵源因可槪見. 然所以指夫仲尼, 顔子之樂, 而發其吟風弄月之趣者, 亦不可得而悉聞矣. 所著之書, 又多放失. 獨此一篇, 本號易通, 與太極圖說並出, 程氏以傳於世, 而其爲說, 實相表裏. 大抵推一理、二氣、五行之分合, 以紀綱道體之精微; 決道義、文辭、祿利之取舍, 以振起俗學之卑陋. 至論所以入德之方、經世之具, 又皆親切簡要, 不爲空言. 顧其宏綱大用, 旣非秦漢以來諸儒所及; 而其條理之密、意味之深, 又非今世學者所能驟而窺也. 是以程氏旣沒, 而傳者鮮焉, 其知之者, 不過以爲用意高遠而已. 熹自蚤歲旣幸得其遺編而伏讀之, 初蓋茫然不知其所謂, 而甚或不能以句. 壯歲獲遊延平先生之門, 然後始得聞其說之一二, 比年以來, 潛玩旣久, 乃若粗有得焉. 雖其宏綱大用所不敢知, 然於其章句文字之間, 則有以實見其條理之愈密、意味之愈深, 而不我欺也. 顧自始讀以至於今, 歲月幾何! 倏焉三紀. 慨前哲之益遠, 懼妙旨之無傳, 竊不自量, 輒爲注釋. 雖知凡近不足以發夫子之精蘊, 然創通大義, 以俟後之君子, 則萬一其庶幾焉. 淳熙丁未九月甲辰, 後學朱熹謹記.&lt;br /&gt;
:『통서通書』는 염계 선생의 저작이다. (선생의 성은 周씨이고, 이름은 '돈이敦頤'이며, 자는 '무숙茂叔'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학문과 행실로 세상에 명성이 있었지만 그 사승관계의 연원은 아무도 모른다. 유독 하남의 정부자 &amp;lt;ref&amp;gt; 정명도程明道와 정이천程伊川형제를 지칭한다. &amp;lt;/ref&amp;gt; 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기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을 대략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그러나 공자와 안자의 즐거움을 가리켜주고 &amp;lt;ref&amp;gt;『論語』「雍也」 子曰: &amp;quot;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飲,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 回也!&amp;quot;&amp;lt;/ref&amp;gt; 음풍농월의 흥취를 일으키게 했던 것 &amp;lt;ref&amp;gt;『二程遺書』 卷三. “詩可以興. 某自再見茂叔後, 吟風弄月以歸, 有‘吾與點也’之意.”&amp;lt;/ref&amp;gt; 을 또한 모두 들을 수 없는데다가 저술한 책도 흩어지고 잃어버린 것이 많다. 오직 이 한 편만은 본래 ‘역통易通’으로 불렸는데 『태극도설太極圖說』과 함께 나와서 程氏가 이를 세상에 전하셨으니 그 학설은 실로 『태극도설太極圖說』과 서로 표리를 이룬다. 대체로 [그 내용은] 一理와 二氣，五行의 나누어짐과 합해짐을 추론하여 道體의 정밀하고 미묘함을 紀綱으로 삼았고, 道義와 文辭, 祿利 중에 취하고 버릴 것인지 결정해서 세속적 학문의 비루함을 떨치고 일어났으며, 덕德에 들어가는 방도와 세상을 경영하는 도구를 논하는 데 이르러서도 모두 친절하고 간단명료하니, 공허한 말이 아니다. 그 학설의 넓은 대강과 큰 쓰임을 돌아보니 이미 진나라와 한나라 이래 여러 유학자들이 미칠 바가 아니고, 그 조리의 엄밀함과 의미의 심오함 역시 오늘날의 학자들이 갑작스럽게 엿볼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이 때문에 程氏가 세상을 떠나자 전한 사람이 드물었고, [이 책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그 생각이 고원하다고 여길 뿐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미 다행히 그 남겨진 책을 얻어 읽었으나, 처음에는 아득하여 이것이 말하는 것이 뭔지 알 수 없었으며,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구두도 뗄 수 없었다. 나이가 들어 연평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한 뒤에야 비로소 그 학설의 일부를 알 수 있었고, 근년 이래 오랫동안 깊이 완미해보고 나서야 조잡하게나마 뭔가 깨닫는 것이 있게 되었다. 비록 핵심적인 요지와 광대한 쓰임은 감히 알 순 없지만, 장구와 문자의 사이에 조리가 더욱 치밀하고 의미는 더욱 깊어서 진실로 나를 속이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회고해 보건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가! 어느새 홀연히 36년이 되었다. 앞선 철인들이 점점 더 멀어짐을 개탄하고 미묘한 뜻이 멀어지고 있음을 두려워하여 삼가 나의 역량을 헤아리지도 않고 주해를 달았다. 비록 자질이 용렬하고 식견이 천박해서 선생님의 정밀한 뜻을 드러내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처음 대강의 의미를 통하게 함으로써 훗날의 군자를 기다리니 만의 하나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순희 정미년(1187년) 9월 갑진일, 후학 주희朱熹는 삼가 서문을 쓰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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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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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Wooya0902</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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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통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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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페이지는 고려대 철학과 대학원 동양철학전공 원전 강독 세미나([[의적단]])의 일환으로 작성되었다.&amp;lt;br/&amp;gt;&lt;br /&gt;
『통서(通書)』1권은 송대 신유학자인 [[주돈이]]의 저서이다. 글이 매우 짧고 단순하여 해석하기 어렵고 해석하더라도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데, 주자마저도 주석을 단순하게 달아 후학을 고통스럽게 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이러한 해석의 모호함 때문에 많은 학자들은 이견을 제기하였다. 다양한 이견들이 존재하지만 종합해보면 결국 '『통서』와 『태극도설』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그리고 '정명도, 정이천과 주돈이의 관계는 어떠했는가?'로 집약시킬 수 있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전통적으론 이 두 문제 모두 긍정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주희(朱熹)라는 대학자가 이 두 문제에 대하여 긍정하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생겨났다. 주희는 “선생의 학문은 그 오묘함이 『태극도설』 한 권에 구비되어 있으며, 통서는 모두 이 태극도설에 온축되어 있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통서』의 서문에서는 “유독 하남의 정부자(程夫子)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기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을 대략 알 수 있다.”고 하여 태극도설과 통서가 모두 주돈이의 저작이라고 간주하였으며, 주돈이와 이정의 사승관계를 인정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하지만 주희 당시에도 이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예를 들어 왕응진(汪應辰)은 “염계선생께서는 고명하시고 순정하시지만 二程이 수학했다고 말한 것은 아마도 완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고 하였고, 육구연(陸九淵)은 형인 육구소(陸九韶)의 말을 인용하며 “형은 『태극도설』과 『통서』가 유사하지 않다고 하였는데 아무래도 주돈이가 지은 것이 아닌 듯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혹 그 학문이 성숙하지 않았을 때의 저작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사람의 문장을 전한 것인데 후대 사람들이 변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고 하였다. 명나라의 풍방(豊坊)이나 청나라의 전조망(全祖望), 대진(戴震)은 역시 주정수수설을 부정하였다. 주정수수설을 부정하거나 『태극도설』과 『통서』을 별개의 텍스트로 간주하는 주장은 서로 연관을 맺고 있다. 왜냐하면 주정수수설을 부정하는 학자들이 대체로 『태극도설』과 『통서』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현대의 학자 중에선 등광명(邓广铭)이 「關於周敦頤的師承和傳授」라는 논문에서 “이정은 결코 理學을 주돈이로부터 배우지 않았다. 특히 그의 『태극도설』과 『통서』를 이정은 모두 접촉한 적도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반하여 주정수수의 가능성을 다른 방식으로 찾아보려는 학자도 있다. 예를 들어 정종모는 「정명도의 주역해석과 그 경학사적 의의」에서 “그(정명도)의 경학의 출발점은 『통서』에 드러난 주렴계의 관점과 유사하며, 이런 차원에서 우리는 주정수수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고 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통서』는 주돈이가 직접 쓴 본문과 주희의 주해 사이에 몇몇 간극이 존재한다. 하지만 본문만 가지고는 주돈이의 사상을 재구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주희의 이해방식을 참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주희의 이해방식에 근거하면 『통서』의 내용은 크게 셋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통서』는 만물·운동·변화의 근거로서 ‘태극(太極)’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우리 눈  앞에 펼쳐져 있는 현상과 태극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誠上第一’, ‘誠下第二’, ‘動靜第十六’, ‘理性命第二十二’ 등에서 보인다. 둘째, 『통서』는 유학자가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志學第十’, ‘顔子第二十三’ 등에서 보인다. 셋째, 『통서』는 세상을 경영하는 수단으로서의 ‘예(禮)’와 ‘악(樂)’의 활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樂上第十七’, ‘樂中第十八’, ‘樂下第十九’에서 보인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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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및 朱注=&lt;br /&gt;
번역 없이 원문만 필요할 경우 다음의 링크를 활용하고,[https://zh.wikisource.org/wiki/通書] &amp;lt;br/&amp;gt;&lt;br /&gt;
각 장의 번역이 필요한 경우에는 아래의 링크를 확인할 것. (발제자가 달라 형식/표점 등이 일정하지 않는데, 추후 교정 필요)&lt;br /&gt;
==[[誠上第一]]==&lt;br /&gt;
==[[誠下第二]]==&lt;br /&gt;
==[[誠幾德第三]]==&lt;br /&gt;
==[[聖第四]]==&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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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愛敬第十五]]==&lt;br /&gt;
==[[動靜第十六]]==&lt;br /&gt;
==[[樂上第十七]]==&lt;br /&gt;
==[[樂中第十八]]==&lt;br /&gt;
==[[樂下第十九]]==&lt;br /&gt;
==[[聖學第二十]]==&lt;br /&gt;
&lt;br /&gt;
==[[公明第二十一]]==&lt;br /&gt;
==[[理性命第二十二]]==&lt;br /&gt;
==[[顔子第二十三]]==&lt;br /&gt;
==[[師友上第二十四]]==&lt;br /&gt;
==[[師友下第二十五]]==&lt;br /&gt;
==[[過第二十六]]==&lt;br /&gt;
==[[勢第二十七]]==&lt;br /&gt;
==[[文辭第二十八]]==&lt;br /&gt;
==[[聖蘊第二十九]]==&lt;br /&gt;
==[[精蘊第三十]]==&lt;br /&gt;
==[[乾損益動第三十一]]==&lt;br /&gt;
==[[家人睽無妄第三十二]]==&lt;br /&gt;
==[[富貴第三十三]]==&lt;br /&gt;
==[[陋第三十四]]==&lt;br /&gt;
==[[擬議第三十五]]==&lt;br /&gt;
==[[刑第三十六]]==&lt;br /&gt;
==[[公第三十七]]==&lt;br /&gt;
==[[孔子上第三十八]]==&lt;br /&gt;
==[[孔子下第三十九]]==&lt;br /&gt;
==[[蒙艮第四十]]==&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통서해 서문=&lt;br /&gt;
&amp;lt;br/&amp;gt;&lt;br /&gt;
:'''《通書解》序''' - 宋 朱熹&lt;br /&gt;
&amp;lt;br/&amp;gt;&lt;br /&gt;
:通書者, 濂溪夫子之所作也.(夫子性周氏, 名敦頤, 字茂叔). 夫子自少卽以學行有聞於世, 而莫或知其師傳之所自. 獨以河南兩程夫子嘗受學焉, 而得孔孟不傳之正統, 則其淵源因可槪見. 然所以指夫仲尼, 顔子之樂, 而發其吟風弄月之趣者, 亦不可得而悉聞矣. 所著之書, 又多放失. 獨此一篇, 本號易通, 與太極圖說並出, 程氏以傳於世, 而其爲說, 實相表裏. 大抵推一理、二氣、五行之分合, 以紀綱道體之精微; 決道義、文辭、祿利之取舍, 以振起俗學之卑陋. 至論所以入德之方、經世之具, 又皆親切簡要, 不爲空言. 顧其宏綱大用, 旣非秦漢以來諸儒所及; 而其條理之密、意味之深, 又非今世學者所能驟而窺也. 是以程氏旣沒, 而傳者鮮焉, 其知之者, 不過以爲用意高遠而已. 熹自蚤歲旣幸得其遺編而伏讀之, 初蓋茫然不知其所謂, 而甚或不能以句. 壯歲獲遊延平先生之門, 然後始得聞其說之一二, 比年以來, 潛玩旣久, 乃若粗有得焉. 雖其宏綱大用所不敢知, 然於其章句文字之間, 則有以實見其條理之愈密、意味之愈深, 而不我欺也. 顧自始讀以至於今, 歲月幾何! 倏焉三紀. 慨前哲之益遠, 懼妙旨之無傳, 竊不自量, 輒爲注釋. 雖知凡近不足以發夫子之精蘊, 然創通大義, 以俟後之君子, 則萬一其庶幾焉. 淳熙丁未九月甲辰, 後學朱熹謹記.&lt;br /&gt;
:『통서通書』는 염계 선생의 저작이다. (선생의 성은 周씨이고, 이름은 '돈이敦頤'이며, 자는 '무숙茂叔'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학문과 행실로 세상에 명성이 있었지만 그 사승관계의 연원은 아무도 모른다. 유독 하남의 정부자 &amp;lt;ref&amp;gt; 정명도程明道와 정이천程伊川형제를 지칭한다. &amp;lt;/ref&amp;gt; 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기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을 대략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그러나 공자와 안자의 즐거움을 가리켜주고 &amp;lt;ref&amp;gt;『論語』「雍也」 子曰: &amp;quot;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飲,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 回也!&amp;quot;&amp;lt;/ref&amp;gt; 음풍농월의 흥취를 일으키게 했던 것 &amp;lt;ref&amp;gt;『二程遺書』 卷三. “詩可以興. 某自再見茂叔後, 吟風弄月以歸, 有‘吾與點也’之意.”&amp;lt;/ref&amp;gt; 을 또한 모두 들을 수 없는데다가 저술한 책도 흩어지고 잃어버린 것이 많다. 오직 이 한 편만은 본래 ‘역통易通’으로 불렸는데 『태극도설太極圖說』과 함께 나와서 程氏가 이를 세상에 전하셨으니 그 학설은 실로 『태극도설太極圖說』과 서로 표리를 이룬다. 대체로 [그 내용은] 一理와 二氣，五行의 나누어짐과 합해짐을 추론하여 道體의 정밀하고 미묘함을 紀綱으로 삼았고, 道義와 文辭, 祿利 중에 취하고 버릴 것인지 결정해서 세속적 학문의 비루함을 떨치고 일어났으며, 덕德에 들어가는 방도와 세상을 경영하는 도구를 논하는 데 이르러서도 모두 친절하고 간단명료하니, 공허한 말이 아니다. 그 학설의 넓은 대강과 큰 쓰임을 돌아보니 이미 진나라와 한나라 이래 여러 유학자들이 미칠 바가 아니고, 그 조리의 엄밀함과 의미의 심오함 역시 오늘날의 학자들이 갑작스럽게 엿볼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이 때문에 程氏가 세상을 떠나자 전한 사람이 드물었고, [이 책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그 생각이 고원하다고 여길 뿐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미 다행히 그 남겨진 책을 얻어 읽었으나, 처음에는 아득하여 이것이 말하는 것이 뭔지 알 수 없었으며,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구두도 뗄 수 없었다. 나이가 들어 연평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한 뒤에야 비로소 그 학설의 일부를 알 수 있었고, 근년 이래 오랫동안 깊이 완미해보고 나서야 조잡하게나마 뭔가 깨닫는 것이 있게 되었다. 비록 핵심적인 요지와 광대한 쓰임은 감히 알 순 없지만, 장구와 문자의 사이에 조리가 더욱 치밀하고 의미는 더욱 깊어서 진실로 나를 속이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회고해 보건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가! 어느새 홀연히 36년이 되었다. 앞선 철인들이 점점 더 멀어짐을 개탄하고 미묘한 뜻이 멀어지고 있음을 두려워하여 삼가 나의 역량을 헤아리지도 않고 주해를 달았다. 비록 자질이 용렬하고 식견이 천박해서 선생님의 정밀한 뜻을 드러내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처음 대강의 의미를 통하게 함으로써 훗날의 군자를 기다리니 만의 하나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순희 정미년(1187년) 9월 갑진일, 후학 주희朱熹는 삼가 서문을 쓰다&lt;br /&gt;
&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Wooya0902</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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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통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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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4-16T17:11:3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Wooya0902: &lt;/p&gt;
&lt;hr /&gt;
&lt;div&gt;=해제=&lt;br /&gt;
이 페이지는 고려대 철학과 대학원 동양철학전공 원전 강독 세미나([[의적단]])의 일환으로 작성되었다.&amp;lt;br/&amp;gt;&lt;br /&gt;
『통서(通書)』1권은 송대 신유학자인 [[주돈이]]의 저서이다. 글이 매우 짧고 단순하여 해석하기 어렵고 해석하더라도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데, 주자마저도 주석을 단순하게 달아 후학을 고통스럽게 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이러한 해석의 모호함 때문에 많은 학자들은 이견을 제기하였다. 다양한 이견들이 존재하지만 종합해보면 결국 '『통서』와 『태극도설』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그리고 '정명도, 정이천과 주돈이의 관계는 어떠했는가?'로 집약시킬 수 있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전통적으론 이 두 문제 모두 긍정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주희(朱熹)라는 대학자가 이 두 문제에 대하여 긍정하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생겨났다. 주희는 “선생의 학문은 그 오묘함이 『태극도설』 한 권에 구비되어 있으며, 통서는 모두 이 태극도설에 온축되어 있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통서』의 서문에서는 “유독 하남의 정부자(程夫子)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기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을 대략 알 수 있다.”고 하여 태극도설과 통서가 모두 주돈이의 저작이라고 간주하였으며, 주돈이와 이정의 사승관계를 인정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하지만 주희 당시에도 이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예를 들어 왕응진(汪應辰)은 “염계선생께서는 고명하시고 순정하시지만 二程이 수학했다고 말한 것은 아마도 완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고 하였고, 육구연(陸九淵)은 형인 육구소(陸九韶)의 말을 인용하며 “형은 『태극도설』과 『통서』가 유사하지 않다고 하였는데 아무래도 주돈이가 지은 것이 아닌 듯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혹 그 학문이 성숙하지 않았을 때의 저작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사람의 문장을 전한 것인데 후대 사람들이 변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고 하였다. 명나라의 풍방(豊坊)이나 청나라의 전조망(全祖望), 대진(戴震)은 역시 주정수수설을 부정하였다. 주정수수설을 부정하거나 『태극도설』과 『통서』을 별개의 텍스트로 간주하는 주장은 서로 연관을 맺고 있다. 왜냐하면 주정수수설을 부정하는 학자들이 대체로 『태극도설』과 『통서』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현대의 학자 중에선 등광명(邓广铭)이 「關於周敦頤的師承和傳授」라는 논문에서 “이정은 결코 理學을 주돈이로부터 배우지 않았다. 특히 그의 『태극도설』과 『통서』를 이정은 모두 접촉한 적도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반하여 주정수수의 가능성을 다른 방식으로 찾아보려는 학자도 있다. 예를 들어 정종모는 「정명도의 주역해석과 그 경학사적 의의」에서 “그(정명도)의 경학의 출발점은 『통서』에 드러난 주렴계의 관점과 유사하며, 이런 차원에서 우리는 주정수수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고 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통서』는 주돈이가 직접 쓴 본문과 주희의 주해 사이에 몇몇 간극이 존재한다. 하지만 본문만 가지고는 주돈이의 사상을 재구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주희의 이해방식을 참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주희의 이해방식에 근거하면 『통서』의 내용은 크게 셋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통서』는 만물·운동·변화의 근거로서 ‘태극(太極)’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우리 눈  앞에 펼쳐져 있는 현상과 태극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誠上第一’, ‘誠下第二’, ‘動靜第十六’, ‘理性命第二十二’ 등에서 보인다. 둘째, 『통서』는 유학자가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志學第十’, ‘顔子第二十三’ 등에서 보인다. 셋째, 『통서』는 세상을 경영하는 수단으로서의 ‘예(禮)’와 ‘악(樂)’의 활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樂上第十七’, ‘樂中第十八’, ‘樂下第十九’에서 보인다.&lt;br /&gt;
&lt;br /&gt;
=원문 및 朱注=&lt;br /&gt;
번역 없이 원문만 필요할 경우 다음의 링크를 활용하고,[https://zh.wikisource.org/wiki/通書] &amp;lt;br/&amp;gt;&lt;br /&gt;
각 장의 번역이 필요한 경우에는 아래의 링크를 확인할 것. (발제자가 달라 형식/표점 등이 일정하지 않는데, 추후 교정 필요)&lt;br /&gt;
==[[誠上第一]]==&lt;br /&gt;
==[[誠下第二]]==&lt;br /&gt;
==[[誠幾德第三]]==&lt;br /&gt;
==[[聖第四]]==&lt;br /&gt;
==[[愼動第五]]==&lt;br /&gt;
==[[道第六]]==&lt;br /&gt;
==[[師第七]]==&lt;br /&gt;
==[[幸第八]]==&lt;br /&gt;
==[[思第九]]==&lt;br /&gt;
==[[志學第十]]==&lt;br /&gt;
==[[順化第十一]]==&lt;br /&gt;
==[[治第十二]]==&lt;br /&gt;
==[[禮樂第十三]]==&lt;br /&gt;
==[[務實第十四]]==&lt;br /&gt;
==[[愛敬第十五]]==&lt;br /&gt;
==[[動靜第十六]]==&lt;br /&gt;
==[[樂上第十七]]==&lt;br /&gt;
==[[樂中第十八]]==&lt;br /&gt;
==[[樂下第十九]]==&lt;br /&gt;
==[[聖學第二十]]==&lt;br /&gt;
&lt;br /&gt;
==[[公明第二十一]]==&lt;br /&gt;
==[[理性命第二十二]]==&lt;br /&gt;
==[[顔子第二十三]]==&lt;br /&gt;
==[[師友上第二十四]]==&lt;br /&gt;
==[[師友下第二十五]]==&lt;br /&gt;
==[[過第二十六]]==&lt;br /&gt;
==[[勢第二十七]]==&lt;br /&gt;
==[[文辭第二十八]]==&lt;br /&gt;
==[[聖蘊第二十九]]==&lt;br /&gt;
==[[精蘊第三十]]==&lt;br /&gt;
==[[乾損益動第三十一]]==&lt;br /&gt;
==[[家人睽無妄第三十二]]==&lt;br /&gt;
==[[富貴第三十三]]==&lt;br /&gt;
==[[陋第三十四]]==&lt;br /&gt;
==[[擬議第三十五]]==&lt;br /&gt;
==[[刑第三十六]]==&lt;br /&gt;
==[[公第三十七]]==&lt;br /&gt;
==[[孔子上第三十八]]==&lt;br /&gt;
==[[孔子下第三十九]]==&lt;br /&gt;
==[[蒙艮第四十]]==&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통서해 서문=&lt;br /&gt;
&amp;lt;br/&amp;gt;&lt;br /&gt;
:'''《通書解》序''' - 宋 朱熹&lt;br /&gt;
&amp;lt;br/&amp;gt;&lt;br /&gt;
:通書者, 濂溪夫子之所作也.(夫子性周氏, 名敦頤, 字茂叔). 夫子自少卽以學行有聞於世, 而莫或知其師傳之所自. 獨以河南兩程夫子嘗受學焉, 而得孔孟不傳之正統, 則其淵源因可槪見. 然所以指夫仲尼, 顔子之樂, 而發其吟風弄月之趣者, 亦不可得而悉聞矣. 所著之書, 又多放失. 獨此一篇, 本號易通, 與太極圖說並出, 程氏以傳於世, 而其爲說, 實相表裏. 大抵推一理、二氣、五行之分合, 以紀綱道體之精微; 決道義、文辭、祿利之取舍, 以振起俗學之卑陋. 至論所以入德之方、經世之具, 又皆親切簡要, 不爲空言. 顧其宏綱大用, 旣非秦漢以來諸儒所及; 而其條理之密、意味之深, 又非今世學者所能驟而窺也. 是以程氏旣沒, 而傳者鮮焉, 其知之者, 不過以爲用意高遠而已. 熹自蚤歲旣幸得其遺編而伏讀之, 初蓋茫然不知其所謂, 而甚或不能以句. 壯歲獲遊延平先生之門, 然後始得聞其說之一二, 比年以來, 潛玩旣久, 乃若粗有得焉. 雖其宏綱大用所不敢知, 然於其章句文字之間, 則有以實見其條理之愈密、意味之愈深, 而不我欺也. 顧自始讀以至於今, 歲月幾何! 倏焉三紀. 慨前哲之益遠, 懼妙旨之無傳, 竊不自量, 輒爲注釋. 雖知凡近不足以發夫子之精蘊, 然創通大義, 以俟後之君子, 則萬一其庶幾焉. 淳熙丁未九月甲辰, 後學朱熹謹記.&lt;br /&gt;
:『통서通書』는 염계 선생의 저작이다. (선생의 성은 周씨이고, 이름은 '돈이敦頤'이며, 자는 '무숙茂叔'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학문과 행실로 세상에 명성이 있었지만 그 사승관계의 연원은 아무도 모른다. 유독 하남의 정부자 &amp;lt;ref&amp;gt; 정명도程明道와 정이천程伊川형제를 지칭한다. &amp;lt;/ref&amp;gt; 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기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을 대략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그러나 공자와 안자의 즐거움을 가리켜주고 &amp;lt;ref&amp;gt;『論語』「雍也」 子曰: &amp;quot;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飲,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 回也!&amp;quot;&amp;lt;/ref&amp;gt; 음풍농월의 흥취를 일으키게 했던 것 &amp;lt;ref&amp;gt;『二程遺書』 卷三. “詩可以興. 某自再見茂叔後, 吟風弄月以歸, 有‘吾與點也’之意.”&amp;lt;/ref&amp;gt; 을 또한 모두 들을 수 없는데다가 저술한 책도 흩어지고 잃어버린 것이 많다. 오직 이 한 편만은 본래 ‘역통易通’으로 불렸는데 『태극도설太極圖說』과 함께 나와서 程氏가 이를 세상에 전하셨으니 그 학설은 실로 『태극도설太極圖說』과 서로 표리를 이룬다. 대체로 [그 내용은] 一理와 二氣，五行의 나누어짐과 합해짐을 추론하여 道體의 정밀하고 미묘함을 紀綱으로 삼았고, 道義와 文辭, 祿利 중에 취하고 버릴 것인지 결정해서 세속적 학문의 비루함을 떨치고 일어났으며, 덕德에 들어가는 방도와 세상을 경영하는 도구를 논하는 데 이르러서도 모두 친절하고 간단명료하니, 공허한 말이 아니다. 그 학설의 넓은 대강과 큰 쓰임을 돌아보니 이미 진나라와 한나라 이래 여러 유학자들이 미칠 바가 아니고, 그 조리의 엄밀함과 의미의 심오함 역시 오늘날의 학자들이 갑작스럽게 엿볼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이 때문에 程氏가 세상을 떠나자 전한 사람이 드물었고, [이 책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그 생각이 고원하다고 여길 뿐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미 다행히 그 남겨진 책을 얻어 읽었으나, 처음에는 아득하여 이것이 말하는 것이 뭔지 알 수 없었으며,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구두도 뗄 수 없었다. 나이가 들어 연평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한 뒤에야 비로소 그 학설의 일부를 알 수 있었고, 근년 이래 오랫동안 깊이 완미해보고 나서야 조잡하게나마 뭔가 깨닫는 것이 있게 되었다. 비록 핵심적인 요지와 광대한 쓰임은 감히 알 순 없지만, 장구와 문자의 사이에 조리가 더욱 치밀하고 의미는 더욱 깊어서 진실로 나를 속이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회고해 보건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가! 어느새 홀연히 36년이 되었다. 앞선 철인들이 점점 더 멀어짐이 개탄스럽고 미묘한 뜻이 멀어지고 있음이 두려워 삼가 나의 역량을 헤아리지도 않고 주해를 달았다. 비록 자질이 용렬하고 식견이 천박해서 선생님의 정밀한 뜻을 드러내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처음 대강의 의미를 통하게 함으로써 훗날의 군자를 기다리니 만의 하나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순희 정미년(1187년) 9월 갑진일, 후학 주희朱熹는 삼가 서문을 쓰다&lt;br /&gt;
&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Wooya0902</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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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통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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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Wooya0902: &lt;/p&gt;
&lt;hr /&gt;
&lt;div&gt;=해제=&lt;br /&gt;
이 페이지는 고려대 철학과 대학원 동양철학전공 원전 강독 세미나([[의적단]])의 일환으로 작성되었다.&amp;lt;br/&amp;gt;&lt;br /&gt;
『통서(通書)』1권은 송대 신유학자인 [[주돈이]]의 저서이다. 글이 매우 짧고 단순하여 해석하기 어렵고 해석하더라도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데, 주자마저도 주석을 단순하게 달아 후학을 고통스럽게 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이러한 해석의 모호함 때문에 많은 학자들은 이견을 제기하였다. 다양한 이견들이 존재하지만 종합해보면 결국 '『통서』와 『태극도설』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그리고 '정명도, 정이천과 주돈이의 관계는 어떠했는가?'로 집약시킬 수 있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전통적으론 이 두 문제 모두 긍정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주희(朱熹)라는 대학자가 이 두 문제에 대하여 긍정하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생겨났다. 주희는 “선생의 학문은 그 오묘함이 『태극도설』 한 권에 구비되어 있으며, 통서는 모두 이 태극도설에 온축되어 있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통서』의 서문에서는 “유독 하남의 정부자(程夫子)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기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을 대략 알 수 있다.”고 하여 태극도설과 통서가 모두 주돈이의 저작이라고 간주하였으며, 주돈이와 이정의 사승관계를 인정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하지만 주희 당시에도 이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예를 들어 왕응진(汪應辰)은 “염계선생께서는 고명하시고 순정하시지만 二程이 수학했다고 말한 것은 아마도 완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고 하였고, 육구연(陸九淵)은 형인 육구소(陸九韶)의 말을 인용하며 “형은 『태극도설』과 『통서』가 유사하지 않다고 하였는데 아무래도 주돈이가 지은 것이 아닌 듯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혹 그 학문이 성숙하지 않았을 때의 저작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사람의 문장을 전한 것인데 후대 사람들이 변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고 하였다. 명나라의 풍방(豊坊)이나 청나라의 전조망(全祖望), 대진(戴震)은 역시 주정수수설을 부정하였다. 주정수수설을 부정하거나 『태극도설』과 『통서』을 별개의 텍스트로 간주하는 주장은 서로 연관을 맺고 있다. 왜냐하면 주정수수설을 부정하는 학자들이 대체로 『태극도설』과 『통서』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현대의 학자 중에선 등광명(邓广铭)이 「關於周敦頤的師承和傳授」라는 논문에서 “이정은 결코 理學을 주돈이로부터 배우지 않았다. 특히 그의 『태극도설』과 『통서』를 이정은 모두 접촉한 적도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반하여 주정수수의 가능성을 다른 방식으로 찾아보려는 학자도 있다. 예를 들어 정종모는 「정명도의 주역해석과 그 경학사적 의의」에서 “그(정명도)의 경학의 출발점은 『통서』에 드러난 주렴계의 관점과 유사하며, 이런 차원에서 우리는 주정수수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고 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통서』는 주돈이가 직접 쓴 본문과 주희의 주해 사이에 몇몇 간극이 존재한다. 하지만 본문만 가지고는 주돈이의 사상을 재구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주희의 이해방식을 참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주희의 이해방식에 근거하면 『통서』의 내용은 크게 셋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통서』는 만물·운동·변화의 근거로서 ‘태극(太極)’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우리 눈  앞에 펼쳐져 있는 현상과 태극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誠上第一’, ‘誠下第二’, ‘動靜第十六’, ‘理性命第二十二’ 등에서 보인다. 둘째, 『통서』는 유학자가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志學第十’, ‘顔子第二十三’ 등에서 보인다. 셋째, 『통서』는 세상을 경영하는 수단으로서의 ‘예(禮)’와 ‘악(樂)’의 활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樂上第十七’, ‘樂中第十八’, ‘樂下第十九’에서 보인다.&lt;br /&gt;
&lt;br /&gt;
=원문 및 朱注=&lt;br /&gt;
번역 없이 원문만 필요할 경우 다음의 링크를 활용하고,[https://zh.wikisource.org/wiki/通書] &amp;lt;br/&amp;gt;&lt;br /&gt;
각 장의 번역이 필요한 경우에는 아래의 링크를 확인할 것. (발제자가 달라 형식/표점 등이 일정하지 않는데, 추후 교정 필요)&lt;br /&gt;
==[[誠上第一]]==&lt;br /&gt;
==[[誠下第二]]==&lt;br /&gt;
==[[誠幾德第三]]==&lt;br /&gt;
==[[聖第四]]==&lt;br /&gt;
==[[愼動第五]]==&lt;br /&gt;
==[[道第六]]==&lt;br /&gt;
==[[師第七]]==&lt;br /&gt;
==[[幸第八]]==&lt;br /&gt;
==[[思第九]]==&lt;br /&gt;
==[[志學第十]]==&lt;br /&gt;
==[[順化第十一]]==&lt;br /&gt;
==[[治第十二]]==&lt;br /&gt;
==[[禮樂第十三]]==&lt;br /&gt;
==[[務實第十四]]==&lt;br /&gt;
==[[愛敬第十五]]==&lt;br /&gt;
==[[動靜第十六]]==&lt;br /&gt;
==[[樂上第十七]]==&lt;br /&gt;
==[[樂中第十八]]==&lt;br /&gt;
==[[樂下第十九]]==&lt;br /&gt;
==[[聖學第二十]]==&lt;br /&gt;
&lt;br /&gt;
==[[公明第二十一]]==&lt;br /&gt;
==[[理性命第二十二]]==&lt;br /&gt;
==[[顔子第二十三]]==&lt;br /&gt;
==[[師友上第二十四]]==&lt;br /&gt;
==[[師友下第二十五]]==&lt;br /&gt;
==[[過第二十六]]==&lt;br /&gt;
==[[勢第二十七]]==&lt;br /&gt;
==[[文辭第二十八]]==&lt;br /&gt;
==[[聖蘊第二十九]]==&lt;br /&gt;
==[[精蘊第三十]]==&lt;br /&gt;
==[[乾損益動第三十一]]==&lt;br /&gt;
==[[家人睽無妄第三十二]]==&lt;br /&gt;
==[[富貴第三十三]]==&lt;br /&gt;
==[[陋第三十四]]==&lt;br /&gt;
==[[擬議第三十五]]==&lt;br /&gt;
==[[刑第三十六]]==&lt;br /&gt;
==[[公第三十七]]==&lt;br /&gt;
==[[孔子上第三十八]]==&lt;br /&gt;
==[[孔子下第三十九]]==&lt;br /&gt;
==[[蒙艮第四十]]==&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통서해 서문=&lt;br /&gt;
&amp;lt;br/&amp;gt;&lt;br /&gt;
:'''《通書解》序''' - 宋 朱熹&lt;br /&gt;
&amp;lt;br/&amp;gt;&lt;br /&gt;
:通書者, 濂溪夫子之所作也.(夫子性周氏, 名敦頤, 字茂叔). 夫子自少卽以學行有聞於世, 而莫或知其師傳之所自. 獨以河南兩程夫子嘗受學焉, 而得孔孟不傳之正統, 則其淵源因可槪見. 然所以指夫仲尼, 顔子之樂, 而發其吟風弄月之趣者, 亦不可得而悉聞矣. 所著之書, 又多放失. 獨此一篇, 本號易通, 與太極圖說並出, 程氏以傳於世, 而其爲說, 實相表裏. 大抵推一理、二氣、五行之分合, 以紀綱道體之精微; 決道義、文辭、祿利之取舍, 以振起俗學之卑陋. 至論所以入德之方、經世之具, 又皆親切簡要, 不爲空言. 顧其宏綱大用, 旣非秦漢以來諸儒所及; 而其條理之密、意味之深, 又非今世學者所能驟而窺也. 是以程氏旣沒, 而傳者鮮焉, 其知之者, 不過以爲用意高遠而已. 熹自蚤歲旣幸得其遺編而伏讀之, 初蓋茫然不知其所謂, 而甚或不能以句. 壯歲獲遊延平先生之門, 然後始得聞其說之一二, 比年以來, 潛玩旣久, 乃若粗有得焉. 雖其宏綱大用所不敢知, 然於其章句文字之間, 則有以實見其條理之愈密、意味之愈深, 而不我欺也. 顧自始讀以至於今, 歲月幾何! 倏焉三紀. 慨前哲之益遠, 懼妙旨之無傳, 竊不自量, 輒爲注釋. 雖知凡近不足以發夫子之精蘊, 然創通大義, 以俟後之君子, 則萬一其庶幾焉. 淳熙丁未九月甲辰, 後學朱熹謹記.&lt;br /&gt;
:『통서通書』는 염계 선생의 저작이다. (선생의 성은 周씨이고, 이름은 '돈이敦頤'이며, 자는 '무숙茂叔'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학문과 행실로 세상에 명성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 사승관계의 연원을 알지 못했다. 유독 하남의 정부자 &amp;lt;ref&amp;gt; 정명도程明道와 정이천程伊川형제를 지칭한다. &amp;lt;/ref&amp;gt; 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기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은 대략 알 수 있다. 그러나 공자와 안자의 즐거움을 가리켜주고 &amp;lt;ref&amp;gt;『論語』「雍也」 子曰: &amp;quot;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飲,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 回也!&amp;quot;&amp;lt;/ref&amp;gt; 음풍농월의 흥취를 일으키게 했던 것 &amp;lt;ref&amp;gt;『二程遺書』 卷三. “詩可以興. 某自再見茂叔後, 吟風弄月以歸, 有‘吾與點也’之意.”&amp;lt;/ref&amp;gt; 을 또한 모두 들을 수 없는데다가 저술한 책도 흩어지고 잃어버린 것이 많다. 오직 이 한 편만은 본래 ‘역통易通’으로 불렸는데 『태극도설太極圖說』과 함께 나와서 程氏가 이를 세상에 전하셨으니 그 학설은 실로 『태극도설太極圖說』과 서로 표리를 이룬다. 대체로 [그 내용은] 一理와 二氣，五行의 나누어짐과 합해짐을 추론하여 道體의 정밀하고 미묘함을 紀綱으로 삼았고, 道義와 文辭, 祿利 중에 취하고 버릴 것인지 결정해서 세속적 학문의 비루함을 떨치고 일어났으며, 덕德에 들어가는 방도와 세상을 경영하는 도구를 논하는 데 이르러서도 모두 친절하고 간단명료하니, 공허한 말이 아니다. 그 학설의 넓은 대강과 큰 쓰임을 돌아보니 이미 진나라와 한나라 이래 여러 유학자들이 미칠 바가 아니고, 그 조리의 엄밀함과 의미의 심오함 역시 오늘날의 학자들이 갑작스럽게 엿볼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이 때문에 程氏가 세상을 떠나자 전한 사람이 드물었고, [이 책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그 생각이 고원하다고 여길 뿐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미 다행히 그 남겨진 책을 얻어 읽었으나, 처음에는 아득하여 이것이 말하는 것이 뭔지 알 수 없었으며,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구두도 뗄 수 없었다. 나이가 들어 연평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한 뒤에야 비로소 그 학설의 일부를 알 수 있었고, 근년 이래 오랫동안 깊이 완미해보고 나서야 조잡하게나마 뭔가 깨닫는 것이 있게 되었다. 비록 핵심적인 요지와 광대한 쓰임은 감히 알 순 없지만, 장구와 문자의 사이에 조리가 더욱 치밀하고 의미는 더욱 깊어서 진실로 나를 속이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회고해 보건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가! 어느새 홀연히 36년이 되었다. 앞선 철인들이 점점 더 멀어짐이 개탄스럽고 미묘한 뜻이 멀어지고 있음이 두려워 삼가 나의 역량을 헤아리지도 않고 주해를 달았다. 비록 자질이 용렬하고 식견이 천박해서 선생님의 정밀한 뜻을 드러내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처음 대강의 의미를 통하게 함으로써 훗날의 군자를 기다리니 만의 하나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순희 정미년(1187년) 9월 갑진일, 후학 주희朱熹는 삼가 서문을 쓰다&lt;br /&gt;
&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Wooya0902</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D%86%B5%EC%84%9C</id>
		<title>통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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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4-16T16:42:2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Wooya0902: &lt;/p&gt;
&lt;hr /&gt;
&lt;div&gt;=해제=&lt;br /&gt;
이 페이지는 고려대 철학과 대학원 동양철학전공 원전 강독 세미나([[의적단]])의 일환으로 작성되었다.&amp;lt;br/&amp;gt;&lt;br /&gt;
『통서(通書)』1권은 송대 신유학자인 [[주돈이]]의 저서이다. 글이 매우 짧고 단순하여 해석하기 어렵고 해석하더라도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데, 주자마저도 주석을 단순하게 달아 후학을 고통스럽게 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이러한 해석의 모호함 때문에 많은 학자들은 이견을 제기하였다. 다양한 이견들이 존재하지만 종합해보면 결국 '『통서』와 『태극도설』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그리고 '정명도, 정이천과 주돈이의 관계는 어떠했는가?'로 집약시킬 수 있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전통적으론 이 두 문제 모두 긍정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주희(朱熹)라는 대학자가 이 두 문제에 대하여 긍정하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생겨났다. 주희는 “선생의 학문은 그 오묘함이 『태극도설』 한 권에 구비되어 있으며, 통서는 모두 이 태극도설에 온축되어 있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통서』의 서문에서는 “유독 하남의 정부자(程夫子)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기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을 대략 알 수 있다.”고 하여 태극도설과 통서가 모두 주돈이의 저작이라고 간주하였으며, 주돈이와 이정의 사승관계를 인정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하지만 주희 당시에도 이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예를 들어 왕응진(汪應辰)은 “염계선생께서는 고명하시고 순정하시지만 二程이 수학했다고 말한 것은 아마도 완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고 하였고, 육구연(陸九淵)은 형인 육구소(陸九韶)의 말을 인용하며 “형은 『태극도설』과 『통서』가 유사하지 않다고 하였는데 아무래도 주돈이가 지은 것이 아닌 듯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혹 그 학문이 성숙하지 않았을 때의 저작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사람의 문장을 전한 것인데 후대 사람들이 변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고 하였다. 명나라의 풍방(豊坊)이나 청나라의 전조망(全祖望), 대진(戴震)은 역시 주정수수설을 부정하였다. 주정수수설을 부정하거나 『태극도설』과 『통서』을 별개의 텍스트로 간주하는 주장은 서로 연관을 맺고 있다. 왜냐하면 주정수수설을 부정하는 학자들이 대체로 『태극도설』과 『통서』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현대의 학자 중에선 등광명(邓广铭)이 「關於周敦頤的師承和傳授」라는 논문에서 “이정은 결코 理學을 주돈이로부터 배우지 않았다. 특히 그의 『태극도설』과 『통서』를 이정은 모두 접촉한 적도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반하여 주정수수의 가능성을 새롭게 접근을 시도하는 학자도 있다. 예를 들어 정종모는 「정명도의 주역해석과 그 경학사적 의의」에서 “그(정명도)의 경학의 출발점은 『통서』에 드러난 주렴계의 관점과 유사하며, 이런 차원에서 우리는 주정수수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고 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통서』는 주돈이가 직접 쓴 본문과 주희의 주해 사이에 몇몇 간극이 존재한다. 하지만 본문만 가지고는 주돈이의 사상을 재구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주희의 이해방식을 참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주희의 이해방식에 근거하면 『통서』의 내용은 크게 셋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통서』는 만물·운동·변화의 근거로서 ‘태극(太極)’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우리 눈  앞에 펼쳐져 있는 현상과 태극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誠上第一’, ‘誠下第二’, ‘動靜第十六’, ‘理性命第二十二’ 등에서 보인다. 둘째, 『통서』는 유학자가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志學第十’, ‘顔子第二十三’ 등에서 보인다. 셋째, 『통서』는 세상을 경영하는 수단으로서의 ‘예(禮)’와 ‘악(樂)’의 활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樂上第十七’, ‘樂中第十八’, ‘樂下第十九’에서 보인다.&lt;br /&gt;
&lt;br /&gt;
=원문 및 朱注=&lt;br /&gt;
번역 없이 원문만 필요할 경우 다음의 링크를 활용하고,[https://zh.wikisource.org/wiki/通書] &amp;lt;br/&amp;gt;&lt;br /&gt;
각 장의 번역이 필요한 경우에는 아래의 링크를 확인할 것. (발제자가 달라 형식/표점 등이 일정하지 않는데, 추후 교정 필요)&lt;br /&gt;
==[[誠上第一]]==&lt;br /&gt;
==[[誠下第二]]==&lt;br /&gt;
==[[誠幾德第三]]==&lt;br /&gt;
==[[聖第四]]==&lt;br /&gt;
==[[愼動第五]]==&lt;br /&gt;
==[[道第六]]==&lt;br /&gt;
==[[師第七]]==&lt;br /&gt;
==[[幸第八]]==&lt;br /&gt;
==[[思第九]]==&lt;br /&gt;
==[[志學第十]]==&lt;br /&gt;
==[[順化第十一]]==&lt;br /&gt;
==[[治第十二]]==&lt;br /&gt;
==[[禮樂第十三]]==&lt;br /&gt;
==[[務實第十四]]==&lt;br /&gt;
==[[愛敬第十五]]==&lt;br /&gt;
==[[動靜第十六]]==&lt;br /&gt;
==[[樂上第十七]]==&lt;br /&gt;
==[[樂中第十八]]==&lt;br /&gt;
==[[樂下第十九]]==&lt;br /&gt;
==[[聖學第二十]]==&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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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明第二十一]]==&lt;br /&gt;
==[[理性命第二十二]]==&lt;br /&gt;
==[[顔子第二十三]]==&lt;br /&gt;
==[[師友上第二十四]]==&lt;br /&gt;
==[[師友下第二十五]]==&lt;br /&gt;
==[[過第二十六]]==&lt;br /&gt;
==[[勢第二十七]]==&lt;br /&gt;
==[[文辭第二十八]]==&lt;br /&gt;
==[[聖蘊第二十九]]==&lt;br /&gt;
==[[精蘊第三十]]==&lt;br /&gt;
==[[乾損益動第三十一]]==&lt;br /&gt;
==[[家人睽無妄第三十二]]==&lt;br /&gt;
==[[富貴第三十三]]==&lt;br /&gt;
==[[陋第三十四]]==&lt;br /&gt;
==[[擬議第三十五]]==&lt;br /&gt;
==[[刑第三十六]]==&lt;br /&gt;
==[[公第三十七]]==&lt;br /&gt;
==[[孔子上第三十八]]==&lt;br /&gt;
==[[孔子下第三十九]]==&lt;br /&gt;
==[[蒙艮第四十]]==&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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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서해 서문=&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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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書解》序''' - 宋 朱熹&lt;br /&gt;
&amp;lt;br/&amp;gt;&lt;br /&gt;
:通書者, 濂溪夫子之所作也.(夫子性周氏, 名敦頤, 字茂叔). 夫子自少卽以學行有聞於世, 而莫或知其師傳之所自. 獨以河南兩程夫子嘗受學焉, 而得孔孟不傳之正統, 則其淵源因可槪見. 然所以指夫仲尼, 顔子之樂, 而發其吟風弄月之趣者, 亦不可得而悉聞矣. 所著之書, 又多放失. 獨此一篇, 本號易通, 與太極圖說並出, 程氏以傳於世, 而其爲說, 實相表裏. 大抵推一理、二氣、五行之分合, 以紀綱道體之精微; 決道義、文辭、祿利之取舍, 以振起俗學之卑陋. 至論所以入德之方、經世之具, 又皆親切簡要, 不爲空言. 顧其宏綱大用, 旣非秦漢以來諸儒所及; 而其條理之密、意味之深, 又非今世學者所能驟而窺也. 是以程氏旣沒, 而傳者鮮焉, 其知之者, 不過以爲用意高遠而已. 熹自蚤歲旣幸得其遺編而伏讀之, 初蓋茫然不知其所謂, 而甚或不能以句. 壯歲獲遊延平先生之門, 然後始得聞其說之一二, 比年以來, 潛玩旣久, 乃若粗有得焉. 雖其宏綱大用所不敢知, 然於其章句文字之間, 則有以實見其條理之愈密、意味之愈深, 而不我欺也. 顧自始讀以至於今, 歲月幾何! 倏焉三紀. 慨前哲之益遠, 懼妙旨之無傳, 竊不自量, 輒爲注釋. 雖知凡近不足以發夫子之精蘊, 然創通大義, 以俟後之君子, 則萬一其庶幾焉. 淳熙丁未九月甲辰, 後學朱熹謹記.&lt;br /&gt;
:『통서通書』는 염계 선생의 저작이다. (선생의 성은 周씨이고, 이름은 '돈이敦頤'이며, 자는 '무숙茂叔'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학문과 행실로 세상에 명성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 사승관계의 연원을 알지 못했다. 유독 하남의 정부자 &amp;lt;ref&amp;gt; 정명도程明道와 정이천程伊川형제를 지칭한다. &amp;lt;/ref&amp;gt; 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기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은 대략 알 수 있다. 그러나 공자와 안자의 즐거움을 가리켜주고 &amp;lt;ref&amp;gt;『論語』「雍也」 子曰: &amp;quot;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飲,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 回也!&amp;quot;&amp;lt;/ref&amp;gt; 음풍농월의 흥취를 일으키게 했던 것 &amp;lt;ref&amp;gt;『二程遺書』 卷三. “詩可以興. 某自再見茂叔後, 吟風弄月以歸, 有‘吾與點也’之意.”&amp;lt;/ref&amp;gt; 을 또한 모두 들을 수 없는데다가 저술한 책도 흩어지고 잃어버린 것이 많다. 오직 이 한 편만은 본래 ‘역통易通’으로 불렸는데 『태극도설太極圖說』과 함께 나와서 程氏가 이를 세상에 전하셨으니 그 학설은 실로 『태극도설太極圖說』과 서로 표리를 이룬다. 대체로 [그 내용은] 一理와 二氣，五行의 나누어짐과 합해짐을 추론하여 道體의 정밀하고 미묘함을 紀綱으로 삼았고, 道義와 文辭, 祿利 중에 취하고 버릴 것인지 결정해서 세속적 학문의 비루함을 떨치고 일어났으며, 덕德에 들어가는 방도와 세상을 경영하는 도구를 논하는 데 이르러서도 모두 친절하고 간단명료하니, 공허한 말이 아니다. 그 학설의 넓은 대강과 큰 쓰임을 돌아보니 이미 진나라와 한나라 이래 여러 유학자들이 미칠 바가 아니고, 그 조리의 엄밀함과 의미의 심오함 역시 오늘날의 학자들이 갑작스럽게 엿볼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이 때문에 程氏가 세상을 떠나자 전한 사람이 드물었고, [이 책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그 생각이 고원하다고 여길 뿐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미 다행히 그 남겨진 책을 얻어 읽었으나, 처음에는 아득하여 이것이 말하는 것이 뭔지 알 수 없었으며,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구두도 뗄 수 없었다. 나이가 들어 연평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한 뒤에야 비로소 그 학설의 일부를 알 수 있었고, 근년 이래 오랫동안 깊이 완미해보고 나서야 조잡하게나마 뭔가 깨닫는 것이 있게 되었다. 비록 핵심적인 요지와 광대한 쓰임은 감히 알 순 없지만, 장구와 문자의 사이에 조리가 더욱 치밀하고 의미는 더욱 깊어서 진실로 나를 속이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회고해 보건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가! 어느새 홀연히 36년이 되었다. 앞선 철인들이 점점 더 멀어짐이 개탄스럽고 미묘한 뜻이 멀어지고 있음이 두려워 삼가 나의 역량을 헤아리지도 않고 주해를 달았다. 비록 자질이 용렬하고 식견이 천박해서 선생님의 정밀한 뜻을 드러내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처음 대강의 의미를 통하게 함으로써 훗날의 군자를 기다리니 만의 하나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순희 정미년(1187년) 9월 갑진일, 후학 주희朱熹는 삼가 서문을 쓰다&lt;br /&gt;
&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Wooya0902</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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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통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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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해제=&lt;br /&gt;
이 페이지는 고려대 철학과 대학원 동양철학전공 원전 강독 세미나([[의적단]])의 일환으로 작성되었다.&amp;lt;br/&amp;gt;&lt;br /&gt;
『통서(通書)』1권은 송대 신유학자인 [[주돈이]]의 저서이다. 글이 매우 짧고 단순하여 해석하기 어렵고 해석하더라도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데, 주자마저도 주석을 단순하게 달아 후학을 고통스럽게 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이러한 해석의 모호함 때문에 많은 학자들은 이견을 제기하였다. 다양한 이견들이 존재하지만 종합해보면 결국 '『통서』와 『태극도설』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그리고 '정명도, 정이천과 주돈이의 관계는 어떠했는가?'로 집약시킬 수 있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전통적으론 이 두 문제 모두 긍정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주희(朱熹)라는 대학자가 이 두 문제에 대하여 긍정하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생겨났다. 주희는 “선생의 학문은 그 오묘함이 『태극도설』 한 권에 구비되어 있으며, 통서는 모두 이 태극도설에 온축되어 있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통서』의 서문에서는 “유독 하남의 정부자(程夫子)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기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을 대략 알 수 있다.”고 하여 태극도설과 통서가 모두 주돈이의 저작이라고 간주하였으며, 주돈이와 이정의 사승관계를 인정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하지만 주희 당시에도 이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예를 들어 왕응진(汪應辰)은 “염계선생께서는 고명하시고 순정하시지만 二程이 수학했다고 말한 것은 아마도 완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고 하였고, 육구연(陸九淵)은 형인 육구령(陸九齡)의 말을 인용하며 “형은 『태극도설』과 『통서』가 유사하지 않다고 하였는데 아무래도 주돈이가 지은 것이 아닌 듯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혹 그 학문이 성숙하지 않았을 때의 저작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사람의 문장을 전한 것인데 후대 사람들이 변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고 하였다. 명나라의 풍방(豊坊)이나 청나라의 전조망(全祖望), 대진(戴震)은 역시 주정수수설을 부정하였다. 주정수수설을 부정하거나 『태극도설』과 『통서』을 별개의 텍스트로 간주하는 주장은 서로 연관을 맺고 있다. 왜냐하면 주정수수설을 부정하는 학자들이 대체로 『태극도설』과 『통서』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현대의 학자 중에선 등광명(邓广铭)이 「關於周敦頤的師承和傳授」라는 논문에서 “이정은 결코 理學을 주돈이로부터 배우지 않았다. 특히 그의 『태극도설』과 『통서』를 이정은 모두 접촉한 적도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반하여 주정수수의 가능성을 새롭게 접근을 시도하는 학자도 있다. 예를 들어 정종모는 「정명도의 주역해석과 그 경학사적 의의」에서 “그(정명도)의 경학의 출발점은 『통서』에 드러난 주렴계의 관점과 유사하며, 이런 차원에서 우리는 주정수수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고 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통서』는 주돈이가 직접 쓴 본문과 주희의 주해 사이에 몇몇 간극이 존재한다. 하지만 본문만 가지고는 주돈이의 사상을 재구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주희의 이해방식을 참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주희의 이해방식에 근거하면 『통서』의 내용은 크게 셋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통서』는 만물·운동·변화의 근거로서 ‘태극(太極)’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우리 눈  앞에 펼쳐져 있는 현상과 태극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誠上第一’, ‘誠下第二’, ‘動靜第十六’, ‘理性命第二十二’ 등에서 보인다. 둘째, 『통서』는 유학자가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志學第十’, ‘顔子第二十三’ 등에서 보인다. 셋째, 『통서』는 세상을 경영하는 수단으로서의 ‘예(禮)’와 ‘악(樂)’의 활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樂上第十七’, ‘樂中第十八’, ‘樂下第十九’에서 보인다.&lt;br /&gt;
&lt;br /&gt;
=원문 및 朱注=&lt;br /&gt;
번역 없이 원문만 필요할 경우 다음의 링크를 활용하고,[https://zh.wikisource.org/wiki/通書] &amp;lt;br/&amp;gt;&lt;br /&gt;
각 장의 번역이 필요한 경우에는 아래의 링크를 확인할 것. (발제자가 달라 형식/표점 등이 일정하지 않는데, 추후 교정 필요)&lt;br /&gt;
==[[誠上第一]]==&lt;br /&gt;
==[[誠下第二]]==&lt;br /&gt;
==[[誠幾德第三]]==&lt;br /&gt;
==[[聖第四]]==&lt;br /&gt;
==[[愼動第五]]==&lt;br /&gt;
==[[道第六]]==&lt;br /&gt;
==[[師第七]]==&lt;br /&gt;
==[[幸第八]]==&lt;br /&gt;
==[[思第九]]==&lt;br /&gt;
==[[志學第十]]==&lt;br /&gt;
==[[順化第十一]]==&lt;br /&gt;
==[[治第十二]]==&lt;br /&gt;
==[[禮樂第十三]]==&lt;br /&gt;
==[[務實第十四]]==&lt;br /&gt;
==[[愛敬第十五]]==&lt;br /&gt;
==[[動靜第十六]]==&lt;br /&gt;
==[[樂上第十七]]==&lt;br /&gt;
==[[樂中第十八]]==&lt;br /&gt;
==[[樂下第十九]]==&lt;br /&gt;
==[[聖學第二十]]==&lt;br /&gt;
&lt;br /&gt;
==[[公明第二十一]]==&lt;br /&gt;
==[[理性命第二十二]]==&lt;br /&gt;
==[[顔子第二十三]]==&lt;br /&gt;
==[[師友上第二十四]]==&lt;br /&gt;
==[[師友下第二十五]]==&lt;br /&gt;
==[[過第二十六]]==&lt;br /&gt;
==[[勢第二十七]]==&lt;br /&gt;
==[[文辭第二十八]]==&lt;br /&gt;
==[[聖蘊第二十九]]==&lt;br /&gt;
==[[精蘊第三十]]==&lt;br /&gt;
==[[乾損益動第三十一]]==&lt;br /&gt;
==[[家人睽無妄第三十二]]==&lt;br /&gt;
==[[富貴第三十三]]==&lt;br /&gt;
==[[陋第三十四]]==&lt;br /&gt;
==[[擬議第三十五]]==&lt;br /&gt;
==[[刑第三十六]]==&lt;br /&gt;
==[[公第三十七]]==&lt;br /&gt;
==[[孔子上第三十八]]==&lt;br /&gt;
==[[孔子下第三十九]]==&lt;br /&gt;
==[[蒙艮第四十]]==&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통서해 서문=&lt;br /&gt;
&amp;lt;br/&amp;gt;&lt;br /&gt;
:'''《通書解》序''' - 宋 朱熹&lt;br /&gt;
&amp;lt;br/&amp;gt;&lt;br /&gt;
:通書者, 濂溪夫子之所作也.(夫子性周氏, 名敦頤, 字茂叔). 夫子自少卽以學行有聞於世, 而莫或知其師傳之所自. 獨以河南兩程夫子嘗受學焉, 而得孔孟不傳之正統, 則其淵源因可槪見. 然所以指夫仲尼, 顔子之樂, 而發其吟風弄月之趣者, 亦不可得而悉聞矣. 所著之書, 又多放失. 獨此一篇, 本號易通, 與太極圖說並出, 程氏以傳於世, 而其爲說, 實相表裏. 大抵推一理、二氣、五行之分合, 以紀綱道體之精微; 決道義、文辭、祿利之取舍, 以振起俗學之卑陋. 至論所以入德之方、經世之具, 又皆親切簡要, 不爲空言. 顧其宏綱大用, 旣非秦漢以來諸儒所及; 而其條理之密、意味之深, 又非今世學者所能驟而窺也. 是以程氏旣沒, 而傳者鮮焉, 其知之者, 不過以爲用意高遠而已. 熹自蚤歲旣幸得其遺編而伏讀之, 初蓋茫然不知其所謂, 而甚或不能以句. 壯歲獲遊延平先生之門, 然後始得聞其說之一二, 比年以來, 潛玩旣久, 乃若粗有得焉. 雖其宏綱大用所不敢知, 然於其章句文字之間, 則有以實見其條理之愈密、意味之愈深, 而不我欺也. 顧自始讀以至於今, 歲月幾何! 倏焉三紀. 慨前哲之益遠, 懼妙旨之無傳, 竊不自量, 輒爲注釋. 雖知凡近不足以發夫子之精蘊, 然創通大義, 以俟後之君子, 則萬一其庶幾焉. 淳熙丁未九月甲辰, 後學朱熹謹記.&lt;br /&gt;
:『통서通書』는 염계 선생의 저작이다. (선생의 성은 周씨이고, 이름은 '돈이敦頤'이며, 자는 '무숙茂叔'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학문과 행실로 세상에 명성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 사승관계의 연원을 알지 못했다. 유독 하남의 정부자 &amp;lt;ref&amp;gt; 정명도程明道와 정이천程伊川형제를 지칭한다. &amp;lt;/ref&amp;gt; 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기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은 대략 알 수 있다. 그러나 공자와 안자의 즐거움을 가리켜주고 &amp;lt;ref&amp;gt;『論語』「雍也」 子曰: &amp;quot;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飲,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 回也!&amp;quot;&amp;lt;/ref&amp;gt; 음풍농월의 흥취를 일으키게 했던 것 &amp;lt;ref&amp;gt;『二程遺書』 卷三. “詩可以興. 某自再見茂叔後, 吟風弄月以歸, 有‘吾與點也’之意.”&amp;lt;/ref&amp;gt; 을 또한 모두 들을 수 없는데다가 저술한 책도 흩어지고 잃어버린 것이 많다. 오직 이 한 편만은 본래 ‘역통易通’으로 불렸는데 『태극도설太極圖說』과 함께 나와서 程氏가 이를 세상에 전하셨으니 그 학설은 실로 『태극도설太極圖說』과 서로 표리를 이룬다. 대체로 [그 내용은] 一理와 二氣，五行의 나누어짐과 합해짐을 추론하여 道體의 정밀하고 미묘함을 紀綱으로 삼았고, 道義와 文辭, 祿利 중에 취하고 버릴 것인지 결정해서 세속적 학문의 비루함을 떨치고 일어났으며, 덕德에 들어가는 방도와 세상을 경영하는 도구를 논하는 데 이르러서도 모두 친절하고 간단명료하니, 공허한 말이 아니다. 그 학설의 넓은 대강과 큰 쓰임을 돌아보니 이미 진나라와 한나라 이래 여러 유학자들이 미칠 바가 아니고, 그 조리의 엄밀함과 의미의 심오함 역시 오늘날의 학자들이 갑작스럽게 엿볼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이 때문에 程氏가 세상을 떠나자 전한 사람이 드물었고, [이 책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그 생각이 고원하다고 여길 뿐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미 다행히 그 남겨진 책을 얻어 읽었으나, 처음에는 아득하여 이것이 말하는 것이 뭔지 알 수 없었으며,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구두도 뗄 수 없었다. 나이가 들어 연평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한 뒤에야 비로소 그 학설의 일부를 알 수 있었고, 근년 이래 오랫동안 깊이 완미해보고 나서야 조잡하게나마 뭔가 깨닫는 것이 있게 되었다. 비록 핵심적인 요지와 광대한 쓰임은 감히 알 순 없지만, 장구와 문자의 사이에 조리가 더욱 치밀하고 의미는 더욱 깊어서 진실로 나를 속이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회고해 보건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가! 어느새 홀연히 36년이 되었다. 앞선 철인들이 점점 더 멀어짐이 개탄스럽고 미묘한 뜻이 멀어지고 있음이 두려워 삼가 나의 역량을 헤아리지도 않고 주해를 달았다. 비록 자질이 용렬하고 식견이 천박해서 선생님의 정밀한 뜻을 드러내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처음 대강의 의미를 통하게 함으로써 훗날의 군자를 기다리니 만의 하나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순희 정미년(1187년) 9월 갑진일, 후학 주희朱熹는 삼가 서문을 쓰다&lt;br /&gt;
&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Wooya0902</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D%86%B5%EC%84%9C</id>
		<title>통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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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4-16T16:37:2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Wooya0902: &lt;/p&gt;
&lt;hr /&gt;
&lt;div&gt;=해제=&lt;br /&gt;
이 페이지는 고려대 철학과 대학원 동양철학전공 원전 강독 세미나([[의적단]])의 일환으로 작성되었다.&amp;lt;br/&amp;gt;&lt;br /&gt;
『통서(通書)』1권은 송대 신유학자인 [[주돈이]]의 저서이다. 글이 매우 짧고 단순하여 해석하기 어렵고 해석하더라도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데, 주자마저도 주석을 단순하게 달아 후학을 고통스럽게 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이러한 해석의 모호함 때문에 많은 학자들은 이견을 제기하였다. 다양한 이견들이 존재하지만 종합해보면 결국 '『통서』와 『태극도설』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그리고 '정명도, 정이천과 주돈이의 관계는 어떠했는가?'로 집약시킬 수 있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전통적으론 이 두 문제 모두 긍정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주희(朱熹)라는 대학자가 이 두 문제에 대하여 긍정하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생겨났다. 주희는 “선생의 학문은 그 오묘함이 『태극도설』 한 권에 구비되어 있으며, 통서는 모두 이 태극도설에 온축되어 있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통서』의 서문에서는 “유독 하남의 정부자(程夫子)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기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을 대략 알 수 있다.”고 하여 태극도설과 통서가 모두 주돈이의 저작이라고 간주하였으며, 주돈이와 이정의 사승관계를 인정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하지만 주희 당시에도 이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예를 들어 왕응진(汪應辰)은 “염계선생께서는 고명하시고 순정하시지만 二程이 수학했다고 말한 것은 아마도 완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고 하였고, 육구연(陸九淵)은 형인 육구령(陸九齡)의 말을 인용하며 “형은 『태극도설』과 『통서』가 유사하지 않다고 하였는데 아무래도 주돈이가 지은 것이 아닌 듯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혹 그 학문이 성숙하지 않았을 때의 저작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사람의 문장을 전한 것인데 후대 사람들이 변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고 하였다. 명대에도 명나라의 풍방(豊坊)이나 청나라의 전조망(全祖望), 대진(戴震)은 모두 주정수수설을 부정하였다. 주정수수설을 부정하거나 『태극도설』과 『통서』을 별개의 텍스트로 간주하는 주장은 서로 연관을 맺고 있다. 왜냐하면 주정수수설을 부정하는 학자들이 대체로 『태극도설』과 『통서』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현대의 학자 중에선 등광명(邓广铭)이 「關於周敦頤的師承和傳授」라는 논문에서 “이정은 결코 理學을 주돈이로부터 배우지 않았다. 특히 그의 『태극도설』과 『통서』를 이정은 모두 접촉한 적도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반하여 주정수수의 가능성을 새롭게 접근을 시도하는 학자도 있다. 예를 들어 정종모는 「정명도의 주역해석과 그 경학사적 의의」에서 “그(정명도)의 경학의 출발점은 『통서』에 드러난 주렴계의 관점과 유사하며, 이런 차원에서 우리는 주정수수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고 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통서』는 주돈이가 직접 쓴 본문과 주희의 주해 사이에 몇몇 간극이 존재한다. 하지만 본문만 가지고는 주돈이의 사상을 재구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주희의 이해방식을 참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주희의 이해방식에 근거하면 『통서』의 내용은 크게 셋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통서』는 만물·운동·변화의 근거로서 ‘태극(太極)’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우리 눈  앞에 펼쳐져 있는 현상과 태극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誠上第一’, ‘誠下第二’, ‘動靜第十六’, ‘理性命第二十二’ 등에서 보인다. 둘째, 『통서』는 유학자가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志學第十’, ‘顔子第二十三’ 등에서 보인다. 셋째, 『통서』는 세상을 경영하는 수단으로서의 ‘예(禮)’와 ‘악(樂)’의 활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樂上第十七’, ‘樂中第十八’, ‘樂下第十九’에서 보인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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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및 朱注=&lt;br /&gt;
번역 없이 원문만 필요할 경우 다음의 링크를 활용하고,[https://zh.wikisource.org/wiki/通書] &amp;lt;br/&amp;gt;&lt;br /&gt;
각 장의 번역이 필요한 경우에는 아래의 링크를 확인할 것. (발제자가 달라 형식/표점 등이 일정하지 않는데, 추후 교정 필요)&lt;br /&gt;
==[[誠上第一]]==&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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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愼動第五]]==&lt;br /&gt;
==[[道第六]]==&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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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第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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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辭第二十八]]==&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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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刑第三十六]]==&lt;br /&gt;
==[[公第三十七]]==&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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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下第三十九]]==&lt;br /&gt;
==[[蒙艮第四十]]==&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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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서해 서문=&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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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書解》序''' - 宋 朱熹&lt;br /&gt;
&amp;lt;br/&amp;gt;&lt;br /&gt;
:通書者, 濂溪夫子之所作也.(夫子性周氏, 名敦頤, 字茂叔). 夫子自少卽以學行有聞於世, 而莫或知其師傳之所自. 獨以河南兩程夫子嘗受學焉, 而得孔孟不傳之正統, 則其淵源因可槪見. 然所以指夫仲尼, 顔子之樂, 而發其吟風弄月之趣者, 亦不可得而悉聞矣. 所著之書, 又多放失. 獨此一篇, 本號易通, 與太極圖說並出, 程氏以傳於世, 而其爲說, 實相表裏. 大抵推一理、二氣、五行之分合, 以紀綱道體之精微; 決道義、文辭、祿利之取舍, 以振起俗學之卑陋. 至論所以入德之方、經世之具, 又皆親切簡要, 不爲空言. 顧其宏綱大用, 旣非秦漢以來諸儒所及; 而其條理之密、意味之深, 又非今世學者所能驟而窺也. 是以程氏旣沒, 而傳者鮮焉, 其知之者, 不過以爲用意高遠而已. 熹自蚤歲旣幸得其遺編而伏讀之, 初蓋茫然不知其所謂, 而甚或不能以句. 壯歲獲遊延平先生之門, 然後始得聞其說之一二, 比年以來, 潛玩旣久, 乃若粗有得焉. 雖其宏綱大用所不敢知, 然於其章句文字之間, 則有以實見其條理之愈密、意味之愈深, 而不我欺也. 顧自始讀以至於今, 歲月幾何! 倏焉三紀. 慨前哲之益遠, 懼妙旨之無傳, 竊不自量, 輒爲注釋. 雖知凡近不足以發夫子之精蘊, 然創通大義, 以俟後之君子, 則萬一其庶幾焉. 淳熙丁未九月甲辰, 後學朱熹謹記.&lt;br /&gt;
:『통서通書』는 염계 선생의 저작이다. (선생의 성은 周씨이고, 이름은 '돈이敦頤'이며, 자는 '무숙茂叔'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학문과 행실로 세상에 명성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 사승관계의 연원을 알지 못했다. 유독 하남의 정부자 &amp;lt;ref&amp;gt; 정명도程明道와 정이천程伊川형제를 지칭한다. &amp;lt;/ref&amp;gt; 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기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은 대략 알 수 있다. 그러나 공자와 안자의 즐거움을 가리켜주고 &amp;lt;ref&amp;gt;『論語』「雍也」 子曰: &amp;quot;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飲,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 回也!&amp;quot;&amp;lt;/ref&amp;gt; 음풍농월의 흥취를 일으키게 했던 것 &amp;lt;ref&amp;gt;『二程遺書』 卷三. “詩可以興. 某自再見茂叔後, 吟風弄月以歸, 有‘吾與點也’之意.”&amp;lt;/ref&amp;gt; 을 또한 모두 들을 수 없는데다가 저술한 책도 흩어지고 잃어버린 것이 많다. 오직 이 한 편만은 본래 ‘역통易通’으로 불렸는데 『태극도설太極圖說』과 함께 나와서 程氏가 이를 세상에 전하셨으니 그 학설은 실로 『태극도설太極圖說』과 서로 표리를 이룬다. 대체로 [그 내용은] 一理와 二氣，五行의 나누어짐과 합해짐을 추론하여 道體의 정밀하고 미묘함을 紀綱으로 삼았고, 道義와 文辭, 祿利 중에 취하고 버릴 것인지 결정해서 세속적 학문의 비루함을 떨치고 일어났으며, 덕德에 들어가는 방도와 세상을 경영하는 도구를 논하는 데 이르러서도 모두 친절하고 간단명료하니, 공허한 말이 아니다. 그 학설의 넓은 대강과 큰 쓰임을 돌아보니 이미 진나라와 한나라 이래 여러 유학자들이 미칠 바가 아니고, 그 조리의 엄밀함과 의미의 심오함 역시 오늘날의 학자들이 갑작스럽게 엿볼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이 때문에 程氏가 세상을 떠나자 전한 사람이 드물었고, [이 책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그 생각이 고원하다고 여길 뿐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미 다행히 그 남겨진 책을 얻어 읽었으나, 처음에는 아득하여 이것이 말하는 것이 뭔지 알 수 없었으며,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구두도 뗄 수 없었다. 나이가 들어 연평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한 뒤에야 비로소 그 학설의 일부를 알 수 있었고, 근년 이래 오랫동안 깊이 완미해보고 나서야 조잡하게나마 뭔가 깨닫는 것이 있게 되었다. 비록 핵심적인 요지와 광대한 쓰임은 감히 알 순 없지만, 장구와 문자의 사이에 조리가 더욱 치밀하고 의미는 더욱 깊어서 진실로 나를 속이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회고해 보건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가! 어느새 홀연히 36년이 되었다. 앞선 철인들이 점점 더 멀어짐이 개탄스럽고 미묘한 뜻이 멀어지고 있음이 두려워 삼가 나의 역량을 헤아리지도 않고 주해를 달았다. 비록 자질이 용렬하고 식견이 천박해서 선생님의 정밀한 뜻을 드러내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처음 대강의 의미를 통하게 함으로써 훗날의 군자를 기다리니 만의 하나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순희 정미년(1187년) 9월 갑진일, 후학 주희朱熹는 삼가 서문을 쓰다&lt;br /&gt;
&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Wooya0902</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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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통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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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4-16T16:12:1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Wooya0902: &lt;/p&gt;
&lt;hr /&gt;
&lt;div&gt;=해제=&lt;br /&gt;
이 페이지는 고려대 철학과 대학원 동양철학전공 원전 강독 세미나([[의적단]])의 일환으로 작성되었다.&amp;lt;br/&amp;gt;&lt;br /&gt;
『통서(通書)』1권은 송대 신유학자인 [[주돈이]]의 저서이다. 글이 매우 짧고 단순하여 해석하기 어렵고 해석하더라도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데, 주자마저도 주석을 단순하게 달아 후학을 고통스럽게 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이러한 해석의 모호함 때문에 많은 학자들은 이견을 제기하였다. 다양한 이견들이 존재하지만 종합해보면 결국 '『통서』와 『태극도설』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그리고 '정명도, 정이천과 주돈이의 관계는 어떠했는가?'로 집약시킬 수 있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전통적으론 이 두 문제 모두 긍정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주희(朱熹)라는 대학자가 이 두 문제에 대하여 긍정하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생겨난다. 주희는 “선생의 학문은 그 오묘함이 『태극도설』 한 권에 구비되어 있으며, 통서는 모두 이 태극도설에 온축되어 있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통서』의 서문에서는 “유독 하남의 정부자(程夫子)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기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을 대략 알 수 있다.”고 하여 태극도설과 통서가 모두 주돈이의 저작이라고 간주하였으며, 주돈이와 이정의 사승관계를 인정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하지만 주희 당시에도 이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예를 들어 왕응진(汪應辰)은 “염계선생께서는 고명하시고 순정하시지만 二程이 수학했다고 말한 것은 아마도 완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고 하였고, 육구연(陸九淵)은 형인 육구령(陸九齡)의 말을 인용하며 “형은 『태극도설』과 『통서』가 유사하지 않다고 하였는데 아무래도 주돈이가 지은 것이 아닌 듯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혹 그 학문이 성숙하지 않았을 때의 저작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사람의 문장을 전한 것인데 후대 사람들이 변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고 하였다. 명대에도 명나라의 풍방(豊坊)이나 청나라의 전조망(全祖望), 대진(戴震)은 모두 주정수수설을 부정하였다. 주정수수설을 부정하거나 『태극도설』과 『통서』을 별개의 텍스트로 간주하는 주장은 서로 연관을 맺고 있다. 왜냐하면 주정수수설을 부정하는 학자들이 대체로 『태극도설』과 『통서』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현대의 학자 중에선 등광명(邓广铭)이 「關於周敦頤的師承和傳授」라는 논문에서 “이정은 결코 理學을 주돈이로부터 배우지 않았다. 특히 그의 『태극도설』과 『통서』를 이정은 모두 접촉한 적도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반하여 주정수수의 가능성을 새롭게 접근을 시도하는 학자도 있다. 예를 들어 정종모는 「정명도의 주역해석과 그 경학사적 의의」에서 “그(정명도)의 경학의 출발점은 『통서』에 드러난 주렴계의 관점과 유사하며, 이런 차원에서 우리는 주정수수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고 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통서』는 주돈이가 직접 쓴 본문과 주희의 주해 사이에 몇몇 간극이 존재한다. 하지만 본문만 가지고는 주돈이의 사상을 재구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주희의 이해방식을 참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주희의 이해방식에 근거하면 『통서』의 내용은 크게 셋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통서』는 만물·운동·변화의 근거로서 ‘태극(太極)’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우리 눈  앞에 펼쳐져 있는 현상과 태극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誠上第一’, ‘誠下第二’, ‘動靜第十六’, ‘理性命第二十二’ 등에서 보인다. 둘째, 『통서』는 유학자가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志學第十’, ‘顔子第二十三’ 등에서 보인다. 셋째, 『통서』는 세상을 경영하는 수단으로서의 ‘예(禮)’와 ‘악(樂)’의 활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樂上第十七’, ‘樂中第十八’, ‘樂下第十九’에서 보인다.&lt;br /&gt;
&lt;br /&gt;
=원문 및 朱注=&lt;br /&gt;
번역 없이 원문만 필요할 경우 다음의 링크를 활용하고,[https://zh.wikisource.org/wiki/通書] &amp;lt;br/&amp;gt;&lt;br /&gt;
각 장의 번역이 필요한 경우에는 아래의 링크를 확인할 것. (발제자가 달라 형식/표점 등이 일정하지 않는데, 추후 교정 필요)&lt;br /&gt;
==[[誠上第一]]==&lt;br /&gt;
==[[誠下第二]]==&lt;br /&gt;
==[[誠幾德第三]]==&lt;br /&gt;
==[[聖第四]]==&lt;br /&gt;
==[[愼動第五]]==&lt;br /&gt;
==[[道第六]]==&lt;br /&gt;
==[[師第七]]==&lt;br /&gt;
==[[幸第八]]==&lt;br /&gt;
==[[思第九]]==&lt;br /&gt;
==[[志學第十]]==&lt;br /&gt;
==[[順化第十一]]==&lt;br /&gt;
==[[治第十二]]==&lt;br /&gt;
==[[禮樂第十三]]==&lt;br /&gt;
==[[務實第十四]]==&lt;br /&gt;
==[[愛敬第十五]]==&lt;br /&gt;
==[[動靜第十六]]==&lt;br /&gt;
==[[樂上第十七]]==&lt;br /&gt;
==[[樂中第十八]]==&lt;br /&gt;
==[[樂下第十九]]==&lt;br /&gt;
==[[聖學第二十]]==&lt;br /&gt;
&lt;br /&gt;
==[[公明第二十一]]==&lt;br /&gt;
==[[理性命第二十二]]==&lt;br /&gt;
==[[顔子第二十三]]==&lt;br /&gt;
==[[師友上第二十四]]==&lt;br /&gt;
==[[師友下第二十五]]==&lt;br /&gt;
==[[過第二十六]]==&lt;br /&gt;
==[[勢第二十七]]==&lt;br /&gt;
==[[文辭第二十八]]==&lt;br /&gt;
==[[聖蘊第二十九]]==&lt;br /&gt;
==[[精蘊第三十]]==&lt;br /&gt;
==[[乾損益動第三十一]]==&lt;br /&gt;
==[[家人睽無妄第三十二]]==&lt;br /&gt;
==[[富貴第三十三]]==&lt;br /&gt;
==[[陋第三十四]]==&lt;br /&gt;
==[[擬議第三十五]]==&lt;br /&gt;
==[[刑第三十六]]==&lt;br /&gt;
==[[公第三十七]]==&lt;br /&gt;
==[[孔子上第三十八]]==&lt;br /&gt;
==[[孔子下第三十九]]==&lt;br /&gt;
==[[蒙艮第四十]]==&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통서해 서문=&lt;br /&gt;
&amp;lt;br/&amp;gt;&lt;br /&gt;
:'''《通書解》序''' - 宋 朱熹&lt;br /&gt;
&amp;lt;br/&amp;gt;&lt;br /&gt;
:通書者, 濂溪夫子之所作也.(夫子性周氏, 名敦頤, 字茂叔). 夫子自少卽以學行有聞於世, 而莫或知其師傳之所自. 獨以河南兩程夫子嘗受學焉, 而得孔孟不傳之正統, 則其淵源因可槪見. 然所以指夫仲尼, 顔子之樂, 而發其吟風弄月之趣者, 亦不可得而悉聞矣. 所著之書, 又多放失. 獨此一篇, 本號易通, 與太極圖說並出, 程氏以傳於世, 而其爲說, 實相表裏. 大抵推一理、二氣、五行之分合, 以紀綱道體之精微; 決道義、文辭、祿利之取舍, 以振起俗學之卑陋. 至論所以入德之方、經世之具, 又皆親切簡要, 不爲空言. 顧其宏綱大用, 旣非秦漢以來諸儒所及; 而其條理之密、意味之深, 又非今世學者所能驟而窺也. 是以程氏旣沒, 而傳者鮮焉, 其知之者, 不過以爲用意高遠而已. 熹自蚤歲旣幸得其遺編而伏讀之, 初蓋茫然不知其所謂, 而甚或不能以句. 壯歲獲遊延平先生之門, 然後始得聞其說之一二, 比年以來, 潛玩旣久, 乃若粗有得焉. 雖其宏綱大用所不敢知, 然於其章句文字之間, 則有以實見其條理之愈密、意味之愈深, 而不我欺也. 顧自始讀以至於今, 歲月幾何! 倏焉三紀. 慨前哲之益遠, 懼妙旨之無傳, 竊不自量, 輒爲注釋. 雖知凡近不足以發夫子之精蘊, 然創通大義, 以俟後之君子, 則萬一其庶幾焉. 淳熙丁未九月甲辰, 後學朱熹謹記.&lt;br /&gt;
:『통서通書』는 염계 선생의 저작이다. (선생의 성은 周씨이고, 이름은 '돈이敦頤'이며, 자는 '무숙茂叔'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학문과 행실로 세상에 명성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 사승관계의 연원을 알지 못했다. 유독 하남의 정부자 &amp;lt;ref&amp;gt; 정명도程明道와 정이천程伊川형제를 지칭한다. &amp;lt;/ref&amp;gt; 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기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은 대략 알 수 있다. 그러나 공자와 안자의 즐거움을 가리켜주고 &amp;lt;ref&amp;gt;『論語』「雍也」 子曰: &amp;quot;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飲,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 回也!&amp;quot;&amp;lt;/ref&amp;gt; 음풍농월의 흥취를 일으키게 했던 것 &amp;lt;ref&amp;gt;『二程遺書』 卷三. “詩可以興. 某自再見茂叔後, 吟風弄月以歸, 有‘吾與點也’之意.”&amp;lt;/ref&amp;gt; 을 또한 모두 들을 수 없는데다가 저술한 책도 흩어지고 잃어버린 것이 많다. 오직 이 한 편만은 본래 ‘역통易通’으로 불렸는데 『태극도설太極圖說』과 함께 나와서 程氏가 이를 세상에 전하셨으니 그 학설은 실로 『태극도설太極圖說』과 서로 표리를 이룬다. 대체로 [그 내용은] 一理와 二氣，五行의 나누어짐과 합해짐을 추론하여 道體의 정밀하고 미묘함을 紀綱으로 삼았고, 道義와 文辭, 祿利 중에 취하고 버릴 것인지 결정해서 세속적 학문의 비루함을 떨치고 일어났으며, 덕德에 들어가는 방도와 세상을 경영하는 도구를 논하는 데 이르러서도 모두 친절하고 간단명료하니, 공허한 말이 아니다. 그 학설의 넓은 대강과 큰 쓰임을 돌아보니 이미 진나라와 한나라 이래 여러 유학자들이 미칠 바가 아니고, 그 조리의 엄밀함과 의미의 심오함 역시 오늘날의 학자들이 갑작스럽게 엿볼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이 때문에 程氏가 세상을 떠나자 전한 사람이 드물었고, [이 책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그 생각이 고원하다고 여길 뿐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미 다행히 그 남겨진 책을 얻어 읽었으나, 처음에는 아득하여 이것이 말하는 것이 뭔지 알 수 없었으며,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구두도 뗄 수 없었다. 나이가 들어 연평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한 뒤에야 비로소 그 학설의 일부를 알 수 있었고, 근년 이래 오랫동안 깊이 완미해보고 나서야 조잡하게나마 뭔가 깨닫는 것이 있게 되었다. 비록 핵심적인 요지와 광대한 쓰임은 감히 알 순 없지만, 장구와 문자의 사이에 조리가 더욱 치밀하고 의미는 더욱 깊어서 진실로 나를 속이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회고해 보건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가! 어느새 홀연히 36년이 되었다. 앞선 철인들이 점점 더 멀어짐이 개탄스럽고 미묘한 뜻이 멀어지고 있음이 두려워 삼가 나의 역량을 헤아리지도 않고 주해를 달았다. 비록 자질이 용렬하고 식견이 천박해서 선생님의 정밀한 뜻을 드러내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처음 대강의 의미를 통하게 함으로써 훗날의 군자를 기다리니 만의 하나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순희 정미년(1187년) 9월 갑진일, 후학 주희朱熹는 삼가 서문을 쓰다&lt;br /&gt;
&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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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Wooya0902</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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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통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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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페이지는 고려대 철학과 대학원 동양철학전공 원전 강독 세미나([[의적단]])의 일환으로 작성되었다.&amp;lt;br/&amp;gt;&lt;br /&gt;
『통서(通書)』1권은 송대 신유학자인 [[주돈이]]의 저서이다. 글이 매우 짧고 단순하여 해석하기 어렵고 해석하더라도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데, 주자마저도 주석을 단순하게 달아 후학을 고통스럽게 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이러한 해석의 모호함 때문에 많은 학자들은 이견을 제기하였다. 다양한 이견들이 존재하지만 종합해보면 결국 '『통서』와 『태극도설』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그리고 '정명도, 정이천과 주돈이의 관계는 어떠했는가?'로 집약시킬 수 있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전통적으론 이 두 문제 모두 긍정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주희(朱熹)라는 대학자가 이 두 문제에 대하여 긍정하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생겨난다. 주희는 “선생의 학문은 그 오묘함이 『태극도설』 한 권에 구비되어 있으며, 통서는 모두 이 태극도설에 온축되어 있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통서』의 서문에서는 “유독 하남의 정부자(程夫子)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기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을 대략 알 수 있다.”고 하여 태극도설과 통서가 모두 주돈이의 저작이라고 간주하였으며, 주돈이와 이정의 사승관계를 인정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하지만 주희 당시에도 이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예를 들어 왕응진(汪應辰)은 “염계선생께서는 고명하시고 순정하시지만 二程이 수학했다고 말한 것은 아마도 온당치 않은 듯합니다.”고 하였고, 육구연(陸九淵)은 형인 육구령(陸九齡)의 말을 인용하며 “형은 『태극도설』과 『통서』가 유사하지 않다고 하였는데 아무래도 주돈이가 지은 것이 아닌 듯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혹 그 학문이 성숙하지 않았을 때의 저작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사람의 문장을 전한 것인데 후대 사람들이 변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고 하였다. 명대에도 명나라의 풍방(豊坊)이나 청나라의 전조망(全祖望), 대진(戴震)은 모두 주정수수설을 부정하였다. 주정수수설을 부정하거나 『태극도설』과 『통서』을 별개의 텍스트로 간주하는 주장은 서로 연관을 맺고 있다. 왜냐하면 주정수수설을 부정하는 학자들이 대체로 『태극도설』과 『통서』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현대의 학자 중에선 등광명(邓广铭)이 「關於周敦頤的師承和傳授」라는 논문에서 “이정은 결코 理學을 주돈이로부터 배우지 않았다. 특히 그의 『태극도설』과 『통서』를 이정은 모두 접촉한 적도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반하여 주정수수의 가능성을 새롭게 접근을 시도하는 학자도 있다. 예를 들어 정종모는 「정명도의 주역해석과 그 경학사적 의의」에서 “그(정명도)의 경학의 출발점은 『통서』에 드러난 주렴계의 관점과 유사하며, 이런 차원에서 우리는 주정수수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고 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통서』는 주돈이가 직접 쓴 본문과 주희의 주해 사이에 몇몇 간극이 존재한다. 하지만 본문만 가지고는 주돈이의 사상을 재구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주희의 이해방식을 참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주희의 이해방식에 근거하면 『통서』의 내용은 크게 셋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통서』는 만물·운동·변화의 근거로서 ‘태극(太極)’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우리 눈  앞에 펼쳐져 있는 현상과 태극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誠上第一’, ‘誠下第二’, ‘動靜第十六’, ‘理性命第二十二’ 등에서 보인다. 둘째, 『통서』는 유학자가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志學第十’, ‘顔子第二十三’ 등에서 보인다. 셋째, 『통서』는 세상을 경영하는 수단으로서의 ‘예(禮)’와 ‘악(樂)’의 활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樂上第十七’, ‘樂中第十八’, ‘樂下第十九’에서 보인다.&lt;br /&gt;
&lt;br /&gt;
=원문 및 朱注=&lt;br /&gt;
번역 없이 원문만 필요할 경우 다음의 링크를 활용하고,[https://zh.wikisource.org/wiki/通書] &amp;lt;br/&amp;gt;&lt;br /&gt;
각 장의 번역이 필요한 경우에는 아래의 링크를 확인할 것. (발제자가 달라 형식/표점 등이 일정하지 않는데, 추후 교정 필요)&lt;br /&gt;
==[[誠上第一]]==&lt;br /&gt;
==[[誠下第二]]==&lt;br /&gt;
==[[誠幾德第三]]==&lt;br /&gt;
==[[聖第四]]==&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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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動靜第十六]]==&lt;br /&gt;
==[[樂上第十七]]==&lt;br /&gt;
==[[樂中第十八]]==&lt;br /&gt;
==[[樂下第十九]]==&lt;br /&gt;
==[[聖學第二十]]==&lt;br /&gt;
&lt;br /&gt;
==[[公明第二十一]]==&lt;br /&gt;
==[[理性命第二十二]]==&lt;br /&gt;
==[[顔子第二十三]]==&lt;br /&gt;
==[[師友上第二十四]]==&lt;br /&gt;
==[[師友下第二十五]]==&lt;br /&gt;
==[[過第二十六]]==&lt;br /&gt;
==[[勢第二十七]]==&lt;br /&gt;
==[[文辭第二十八]]==&lt;br /&gt;
==[[聖蘊第二十九]]==&lt;br /&gt;
==[[精蘊第三十]]==&lt;br /&gt;
==[[乾損益動第三十一]]==&lt;br /&gt;
==[[家人睽無妄第三十二]]==&lt;br /&gt;
==[[富貴第三十三]]==&lt;br /&gt;
==[[陋第三十四]]==&lt;br /&gt;
==[[擬議第三十五]]==&lt;br /&gt;
==[[刑第三十六]]==&lt;br /&gt;
==[[公第三十七]]==&lt;br /&gt;
==[[孔子上第三十八]]==&lt;br /&gt;
==[[孔子下第三十九]]==&lt;br /&gt;
==[[蒙艮第四十]]==&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통서해 서문=&lt;br /&gt;
&amp;lt;br/&amp;gt;&lt;br /&gt;
:'''《通書解》序''' - 宋 朱熹&lt;br /&gt;
&amp;lt;br/&amp;gt;&lt;br /&gt;
:通書者, 濂溪夫子之所作也.(夫子性周氏, 名敦頤, 字茂叔). 夫子自少卽以學行有聞於世, 而莫或知其師傳之所自. 獨以河南兩程夫子嘗受學焉, 而得孔孟不傳之正統, 則其淵源因可槪見. 然所以指夫仲尼, 顔子之樂, 而發其吟風弄月之趣者, 亦不可得而悉聞矣. 所著之書, 又多放失. 獨此一篇, 本號易通, 與太極圖說並出, 程氏以傳於世, 而其爲說, 實相表裏. 大抵推一理、二氣、五行之分合, 以紀綱道體之精微; 決道義、文辭、祿利之取舍, 以振起俗學之卑陋. 至論所以入德之方、經世之具, 又皆親切簡要, 不爲空言. 顧其宏綱大用, 旣非秦漢以來諸儒所及; 而其條理之密、意味之深, 又非今世學者所能驟而窺也. 是以程氏旣沒, 而傳者鮮焉, 其知之者, 不過以爲用意高遠而已. 熹自蚤歲旣幸得其遺編而伏讀之, 初蓋茫然不知其所謂, 而甚或不能以句. 壯歲獲遊延平先生之門, 然後始得聞其說之一二, 比年以來, 潛玩旣久, 乃若粗有得焉. 雖其宏綱大用所不敢知, 然於其章句文字之間, 則有以實見其條理之愈密、意味之愈深, 而不我欺也. 顧自始讀以至於今, 歲月幾何! 倏焉三紀. 慨前哲之益遠, 懼妙旨之無傳, 竊不自量, 輒爲注釋. 雖知凡近不足以發夫子之精蘊, 然創通大義, 以俟後之君子, 則萬一其庶幾焉. 淳熙丁未九月甲辰, 後學朱熹謹記.&lt;br /&gt;
:『통서通書』는 염계 선생의 저작이다. (선생의 성은 周씨이고, 이름은 '돈이敦頤'이며, 자는 '무숙茂叔'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학문과 행실로 세상에 명성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 사승관계의 연원을 알지 못했다. 유독 하남의 정부자 &amp;lt;ref&amp;gt; 정명도程明道와 정이천程伊川형제를 지칭한다. &amp;lt;/ref&amp;gt; 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기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은 대략 알 수 있다. 그러나 공자와 안자의 즐거움을 가리켜주고 &amp;lt;ref&amp;gt;『論語』「雍也」 子曰: &amp;quot;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飲,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 回也!&amp;quot;&amp;lt;/ref&amp;gt; 음풍농월의 흥취를 일으키게 했던 것 &amp;lt;ref&amp;gt;『二程遺書』 卷三. “詩可以興. 某自再見茂叔後, 吟風弄月以歸, 有‘吾與點也’之意.”&amp;lt;/ref&amp;gt; 을 또한 모두 들을 수 없는데다가 저술한 책도 흩어지고 잃어버린 것이 많다. 오직 이 한 편만은 본래 ‘역통易通’으로 불렸는데 『태극도설太極圖說』과 함께 나와서 程氏가 이를 세상에 전하셨으니 그 학설은 실로 『태극도설太極圖說』과 서로 표리를 이룬다. 대체로 [그 내용은] 一理와 二氣，五行의 나누어짐과 합해짐을 추론하여 道體의 정밀하고 미묘함을 紀綱으로 삼았고, 道義와 文辭, 祿利 중에 취하고 버릴 것인지 결정해서 세속적 학문의 비루함을 떨치고 일어났으며, 덕德에 들어가는 방도와 세상을 경영하는 도구를 논하는 데 이르러서도 모두 친절하고 간단명료하니, 공허한 말이 아니다. 그 학설의 넓은 대강과 큰 쓰임을 돌아보니 이미 진나라와 한나라 이래 여러 유학자들이 미칠 바가 아니고, 그 조리의 엄밀함과 의미의 심오함 역시 오늘날의 학자들이 갑작스럽게 엿볼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이 때문에 程氏가 세상을 떠나자 전한 사람이 드물었고, [이 책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그 생각이 고원하다고 여길 뿐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미 다행히 그 남겨진 책을 얻어 읽었으나, 처음에는 아득하여 이것이 말하는 것이 뭔지 알 수 없었으며,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구두도 뗄 수 없었다. 나이가 들어 연평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한 뒤에야 비로소 그 학설의 일부를 알 수 있었고, 근년 이래 오랫동안 깊이 완미해보고 나서야 조잡하게나마 뭔가 깨닫는 것이 있게 되었다. 비록 핵심적인 요지와 광대한 쓰임은 감히 알 순 없지만, 장구와 문자의 사이에 조리가 더욱 치밀하고 의미는 더욱 깊어서 진실로 나를 속이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회고해 보건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가! 어느새 홀연히 36년이 되었다. 앞선 철인들이 점점 더 멀어짐이 개탄스럽고 미묘한 뜻이 멀어지고 있음이 두려워 삼가 나의 역량을 헤아리지도 않고 주해를 달았다. 비록 자질이 용렬하고 식견이 천박해서 선생님의 정밀한 뜻을 드러내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처음 대강의 의미를 통하게 함으로써 훗날의 군자를 기다리니 만의 하나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순희 정미년(1187년) 9월 갑진일, 후학 주희朱熹는 삼가 서문을 쓰다&lt;br /&gt;
&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Wooya0902</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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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통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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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4-16T16:08:0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Wooya0902: 문법 수정&lt;/p&gt;
&lt;hr /&gt;
&lt;div&gt;=해제=&lt;br /&gt;
이 페이지는 고려대 철학과 대학원 동양철학전공 원전 강독 세미나([[의적단]])의 일환으로 작성되었다.&amp;lt;br/&amp;gt;&lt;br /&gt;
『통서(通書)』1권은 송대 신유학자인 [[주돈이]]의 저서이다. 글이 매우 짧고 단순하여 해석하기 어렵고 해석하더라도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데, 주자마저도 주석을 단순하게 달아 후학을 고통스럽게 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이러한 해석의 모호함 때문에 많은 학자들은 이견을 제기하였다. 다양한 이견들이 존재하지만 종합해보면 결국 '『통서』와 『태극도설』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그리고 '정명도, 정이천과 주돈이의 관계는 어떠했는가?'로 집약시킬 수 있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우선 가장 전통적인 설명방식으로는 이 두 문제에 대해선 긍정하는 입장이다. 대표적으로 주희(朱熹)는 “선생의 학문은 그 오묘함이 『태극도설』 한 권에 구비되어 있으며, 통서는 모두 이 태극도설에 온축되어 있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통서』의 서문에서는 “유독 하남의 정부자(程夫子)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기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을 대략 알 수 있다.”고 하여 태극도설과 통서가 모두 주돈이의 저작이라고 간주하였으며, 주돈이와 이정의 사승관계를 인정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하지만 주희 당시에도 이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예를 들어 왕응진(汪應辰)은 “염계선생께서는 고명하시고 순정하시지만 二程이 수학했다고 말한 것은 아마도 온당치 않은 듯합니다.”고 하였고, 육구연(陸九淵)은 형인 육구령(陸九齡)의 말을 인용하며 “형은 『태극도설』과 『통서』가 유사하지 않다고 하였는데 아무래도 주돈이가 지은 것이 아닌 듯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혹 그 학문이 성숙하지 않았을 때의 저작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사람의 문장을 전한 것인데 후대 사람들이 변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고 하였다. 명대에도 명나라의 풍방(豊坊)이나 청나라의 전조망(全祖望), 대진(戴震)은 모두 주정수수설을 부정하였다. 주정수수설을 부정하거나 『태극도설』과 『통서』을 별개의 텍스트로 간주하는 주장은 서로 연관을 맺고 있다. 왜냐하면 주정수수설을 부정하는 학자들이 대체로 『태극도설』과 『통서』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현대의 학자 중에선 등광명(邓广铭)이 「關於周敦頤的師承和傳授」라는 논문에서 “이정은 결코 理學을 주돈이로부터 배우지 않았다. 특히 그의 『태극도설』과 『통서』를 이정은 모두 접촉한 적도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반하여 주정수수의 가능성을 새롭게 접근을 시도하는 학자도 있다. 예를 들어 정종모는 「정명도의 주역해석과 그 경학사적 의의」에서 “그(정명도)의 경학의 출발점은 『통서』에 드러난 주렴계의 관점과 유사하며, 이런 차원에서 우리는 주정수수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고 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통서』는 주돈이가 직접 쓴 본문과 주희의 주해 사이에 몇몇 간극이 존재한다. 하지만 본문만 가지고는 주돈이의 사상을 재구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주희의 이해방식을 참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주희의 이해방식에 근거하면 『통서』의 내용은 크게 셋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통서』는 만물·운동·변화의 근거로서 ‘태극(太極)’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우리 눈  앞에 펼쳐져 있는 현상과 태극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誠上第一’, ‘誠下第二’, ‘動靜第十六’, ‘理性命第二十二’ 등에서 보인다. 둘째, 『통서』는 유학자가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志學第十’, ‘顔子第二十三’ 등에서 보인다. 셋째, 『통서』는 세상을 경영하는 수단으로서의 ‘예(禮)’와 ‘악(樂)’의 활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樂上第十七’, ‘樂中第十八’, ‘樂下第十九’에서 보인다.&lt;br /&gt;
&lt;br /&gt;
=원문 및 朱注=&lt;br /&gt;
번역 없이 원문만 필요할 경우 다음의 링크를 활용하고,[https://zh.wikisource.org/wiki/通書] &amp;lt;br/&amp;gt;&lt;br /&gt;
각 장의 번역이 필요한 경우에는 아래의 링크를 확인할 것. (발제자가 달라 형식/표점 등이 일정하지 않는데, 추후 교정 필요)&lt;br /&gt;
==[[誠上第一]]==&lt;br /&gt;
==[[誠下第二]]==&lt;br /&gt;
==[[誠幾德第三]]==&lt;br /&gt;
==[[聖第四]]==&lt;br /&gt;
==[[愼動第五]]==&lt;br /&gt;
==[[道第六]]==&lt;br /&gt;
==[[師第七]]==&lt;br /&gt;
==[[幸第八]]==&lt;br /&gt;
==[[思第九]]==&lt;br /&gt;
==[[志學第十]]==&lt;br /&gt;
==[[順化第十一]]==&lt;br /&gt;
==[[治第十二]]==&lt;br /&gt;
==[[禮樂第十三]]==&lt;br /&gt;
==[[務實第十四]]==&lt;br /&gt;
==[[愛敬第十五]]==&lt;br /&gt;
==[[動靜第十六]]==&lt;br /&gt;
==[[樂上第十七]]==&lt;br /&gt;
==[[樂中第十八]]==&lt;br /&gt;
==[[樂下第十九]]==&lt;br /&gt;
==[[聖學第二十]]==&lt;br /&gt;
&lt;br /&gt;
==[[公明第二十一]]==&lt;br /&gt;
==[[理性命第二十二]]==&lt;br /&gt;
==[[顔子第二十三]]==&lt;br /&gt;
==[[師友上第二十四]]==&lt;br /&gt;
==[[師友下第二十五]]==&lt;br /&gt;
==[[過第二十六]]==&lt;br /&gt;
==[[勢第二十七]]==&lt;br /&gt;
==[[文辭第二十八]]==&lt;br /&gt;
==[[聖蘊第二十九]]==&lt;br /&gt;
==[[精蘊第三十]]==&lt;br /&gt;
==[[乾損益動第三十一]]==&lt;br /&gt;
==[[家人睽無妄第三十二]]==&lt;br /&gt;
==[[富貴第三十三]]==&lt;br /&gt;
==[[陋第三十四]]==&lt;br /&gt;
==[[擬議第三十五]]==&lt;br /&gt;
==[[刑第三十六]]==&lt;br /&gt;
==[[公第三十七]]==&lt;br /&gt;
==[[孔子上第三十八]]==&lt;br /&gt;
==[[孔子下第三十九]]==&lt;br /&gt;
==[[蒙艮第四十]]==&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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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통서해 서문=&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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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書解》序''' - 宋 朱熹&lt;br /&gt;
&amp;lt;br/&amp;gt;&lt;br /&gt;
:通書者, 濂溪夫子之所作也.(夫子性周氏, 名敦頤, 字茂叔). 夫子自少卽以學行有聞於世, 而莫或知其師傳之所自. 獨以河南兩程夫子嘗受學焉, 而得孔孟不傳之正統, 則其淵源因可槪見. 然所以指夫仲尼, 顔子之樂, 而發其吟風弄月之趣者, 亦不可得而悉聞矣. 所著之書, 又多放失. 獨此一篇, 本號易通, 與太極圖說並出, 程氏以傳於世, 而其爲說, 實相表裏. 大抵推一理、二氣、五行之分合, 以紀綱道體之精微; 決道義、文辭、祿利之取舍, 以振起俗學之卑陋. 至論所以入德之方、經世之具, 又皆親切簡要, 不爲空言. 顧其宏綱大用, 旣非秦漢以來諸儒所及; 而其條理之密、意味之深, 又非今世學者所能驟而窺也. 是以程氏旣沒, 而傳者鮮焉, 其知之者, 不過以爲用意高遠而已. 熹自蚤歲旣幸得其遺編而伏讀之, 初蓋茫然不知其所謂, 而甚或不能以句. 壯歲獲遊延平先生之門, 然後始得聞其說之一二, 比年以來, 潛玩旣久, 乃若粗有得焉. 雖其宏綱大用所不敢知, 然於其章句文字之間, 則有以實見其條理之愈密、意味之愈深, 而不我欺也. 顧自始讀以至於今, 歲月幾何! 倏焉三紀. 慨前哲之益遠, 懼妙旨之無傳, 竊不自量, 輒爲注釋. 雖知凡近不足以發夫子之精蘊, 然創通大義, 以俟後之君子, 則萬一其庶幾焉. 淳熙丁未九月甲辰, 後學朱熹謹記.&lt;br /&gt;
:『통서通書』는 염계 선생의 저작이다. (선생의 성은 周씨이고, 이름은 '돈이敦頤'이며, 자는 '무숙茂叔'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학문과 행실로 세상에 명성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 사승관계의 연원을 알지 못했다. 유독 하남의 정부자 &amp;lt;ref&amp;gt; 정명도程明道와 정이천程伊川형제를 지칭한다. &amp;lt;/ref&amp;gt; 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기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은 대략 알 수 있다. 그러나 공자와 안자의 즐거움을 가리켜주고 &amp;lt;ref&amp;gt;『論語』「雍也」 子曰: &amp;quot;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飲,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 回也!&amp;quot;&amp;lt;/ref&amp;gt; 음풍농월의 흥취를 일으키게 했던 것 &amp;lt;ref&amp;gt;『二程遺書』 卷三. “詩可以興. 某自再見茂叔後, 吟風弄月以歸, 有‘吾與點也’之意.”&amp;lt;/ref&amp;gt; 을 또한 모두 들을 수 없는데다가 저술한 책도 흩어지고 잃어버린 것이 많다. 오직 이 한 편만은 본래 ‘역통易通’으로 불렸는데 『태극도설太極圖說』과 함께 나와서 程氏가 이를 세상에 전하셨으니 그 학설은 실로 『태극도설太極圖說』과 서로 표리를 이룬다. 대체로 [그 내용은] 一理와 二氣，五行의 나누어짐과 합해짐을 추론하여 道體의 정밀하고 미묘함을 紀綱으로 삼았고, 道義와 文辭, 祿利 중에 취하고 버릴 것인지 결정해서 세속적 학문의 비루함을 떨치고 일어났으며, 덕德에 들어가는 방도와 세상을 경영하는 도구를 논하는 데 이르러서도 모두 친절하고 간단명료하니, 공허한 말이 아니다. 그 학설의 넓은 대강과 큰 쓰임을 돌아보니 이미 진나라와 한나라 이래 여러 유학자들이 미칠 바가 아니고, 그 조리의 엄밀함과 의미의 심오함 역시 오늘날의 학자들이 갑작스럽게 엿볼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이 때문에 程氏가 세상을 떠나자 전한 사람이 드물었고, [이 책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그 생각이 고원하다고 여길 뿐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미 다행히 그 남겨진 책을 얻어 읽었으나, 처음에는 아득하여 이것이 말하는 것이 뭔지 알 수 없었으며,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구두도 뗄 수 없었다. 나이가 들어 연평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한 뒤에야 비로소 그 학설의 일부를 알 수 있었고, 근년 이래 오랫동안 깊이 완미해보고 나서야 조잡하게나마 뭔가 깨닫는 것이 있게 되었다. 비록 핵심적인 요지와 광대한 쓰임은 감히 알 순 없지만, 장구와 문자의 사이에 조리가 더욱 치밀하고 의미는 더욱 깊어서 진실로 나를 속이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회고해 보건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가! 어느새 홀연히 36년이 되었다. 앞선 철인들이 점점 더 멀어짐이 개탄스럽고 미묘한 뜻이 멀어지고 있음이 두려워 삼가 나의 역량을 헤아리지도 않고 주해를 달았다. 비록 자질이 용렬하고 식견이 천박해서 선생님의 정밀한 뜻을 드러내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처음 대강의 의미를 통하게 함으로써 훗날의 군자를 기다리니 만의 하나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순희 정미년(1187년) 9월 갑진일, 후학 주희朱熹는 삼가 서문을 쓰다&lt;br /&gt;
&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Wooya0902</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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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통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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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해제=&lt;br /&gt;
이 페이지는 고려대 철학과 대학원 동양철학전공 원전 강독 세미나([[의적단]])의 일환으로 작성되었다.&amp;lt;br/&amp;gt;&lt;br /&gt;
『통서(通書)』1권은 송대 신유학자인 [[주돈이]]의 저서이다. 글이 매우 짧고 단순하여 해석하기 어렵고 해석하더라도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데, 주자마저도 주석을 단순하게 달아 후학을 고통스럽게 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이러한 해석의 모호함 때문에 이에 대해선 여러가지 논란이 있어왔다. 이는 '『통서』와 『태극도설』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그리고 '정명도, 정이천과 주돈이의 관계는 어떠한 것인가?' 라는 문제로 집약될 수 있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우선 가장 전통적인 설명방식으로는 이 두 문제에 대해선 긍정하는 입장이다. 대표적으로 주희(朱熹)는 “선생의 학문은 그 오묘함이 『태극도설』 한 권에 구비되어 있으며, 통서는 모두 이 태극도설에 온축되어 있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통서』의 서문에서는 “유독 하남의 정부자(程夫子)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기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은 대략 알 수 있다.”고 하여 태극도설과 통서가 모두 주돈이의 저작이라고 간주하였으며, 주돈이와 이정의 사승관계를 인정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하지만 주희 당시에도 이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예를 들어 왕응신(汪應辰)은 “염계선생께서는 고명하시고 순정하시지만 二程이 수학했다고 말한 것은 아마도 온당치 않은 듯합니다.”고 하였고, 육구연(陸九淵)은 형인 육구령(陸九齡)의 말을 인용하며 “형은 『태극도설』과 『통서』가 유사하지 않다고 하였는데 아무래도 주돈이가 지은 것이 아닌 듯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혹 그 학문이 성숙하지 않았을 때의 저작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사람의 문장을 전한 것인데 후대 사람들이 변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고 하였다. 명대에도 명나라의 풍방(豊坊)이나 청나라의 전조망(全祖望), 대진(戴震)은 모두 주정수수설을 부정하였다. 주정수수설과 『태극도설』과 『통서』의 관계에 대한 이견은 상호적인데, 주정수수설을 부정하는 학자들이 대체로 『태극도설』과 『통서』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삼기 때문이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현대의 학자 중에선 등광명(邓广铭)이 「關於周敦頤的師承和傳授」라는 논문에서 “이정은 결코 理學을 주돈이로부터 배우지 않았다. 특히 그의 『태극도설』과 『통서』를 이정은 모두 접촉한 적도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반하여 주정수수의 가능성을 새롭게 접근을 시도하는 학자도 있다. 예를 들어 정종모는 「정명도의 주역해석과 그 경학사적 의의」에서 “그(정명도)의 경학의 출발점은 『통서』에 드러난 주렴계의 관점과 유사하며, 이런 차원에서 우리는 주정수수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고 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통서』는 주돈이가 직접 쓴 본문과 주희의 주해 사이에 몇몇 간극이 존재한다. 하지만 본문만 가지고는 주돈이의 사상을 재구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주희의 이해방식을 참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주희의 이해방식에 근거하면 『통서』의 내용은 크게 셋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통서』는 만물·운동·변화의 근거로서 ‘태극(太極)’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우리 눈  앞에 펼쳐져 있는 현상과 태극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誠上第一’, ‘誠下第二’, ‘動靜第十六’, ‘理性命第二十二’ 등에서 보인다. 둘째, 『통서』는 유학자가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志學第十’, ‘顔子第二十三’ 등에서 보인다. 셋째, 『통서』는 세상을 경영하는 수단으로서의 ‘예(禮)’와 ‘악(樂)’의 활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樂上第十七’, ‘樂中第十八’, ‘樂下第十九’에서 보인다.&lt;br /&gt;
&lt;br /&gt;
=원문 및 朱注=&lt;br /&gt;
번역 없이 원문만 필요할 경우 다음의 링크를 활용하고,[https://zh.wikisource.org/wiki/通書] &amp;lt;br/&amp;gt;&lt;br /&gt;
각 장의 번역이 필요한 경우에는 아래의 링크를 확인할 것. (발제자가 달라 형식/표점 등이 일정하지 않는데, 추후 교정 필요)&lt;br /&gt;
==[[誠上第一]]==&lt;br /&gt;
==[[誠下第二]]==&lt;br /&gt;
==[[誠幾德第三]]==&lt;br /&gt;
==[[聖第四]]==&lt;br /&gt;
==[[愼動第五]]==&lt;br /&gt;
==[[道第六]]==&lt;br /&gt;
==[[師第七]]==&lt;br /&gt;
==[[幸第八]]==&lt;br /&gt;
==[[思第九]]==&lt;br /&gt;
==[[志學第十]]==&lt;br /&gt;
==[[順化第十一]]==&lt;br /&gt;
==[[治第十二]]==&lt;br /&gt;
==[[禮樂第十三]]==&lt;br /&gt;
==[[務實第十四]]==&lt;br /&gt;
==[[愛敬第十五]]==&lt;br /&gt;
==[[動靜第十六]]==&lt;br /&gt;
==[[樂上第十七]]==&lt;br /&gt;
==[[樂中第十八]]==&lt;br /&gt;
==[[樂下第十九]]==&lt;br /&gt;
==[[聖學第二十]]==&lt;br /&gt;
&lt;br /&gt;
==[[公明第二十一]]==&lt;br /&gt;
==[[理性命第二十二]]==&lt;br /&gt;
==[[顔子第二十三]]==&lt;br /&gt;
==[[師友上第二十四]]==&lt;br /&gt;
==[[師友下第二十五]]==&lt;br /&gt;
==[[過第二十六]]==&lt;br /&gt;
==[[勢第二十七]]==&lt;br /&gt;
==[[文辭第二十八]]==&lt;br /&gt;
==[[聖蘊第二十九]]==&lt;br /&gt;
==[[精蘊第三十]]==&lt;br /&gt;
==[[乾損益動第三十一]]==&lt;br /&gt;
==[[家人睽無妄第三十二]]==&lt;br /&gt;
==[[富貴第三十三]]==&lt;br /&gt;
==[[陋第三十四]]==&lt;br /&gt;
==[[擬議第三十五]]==&lt;br /&gt;
==[[刑第三十六]]==&lt;br /&gt;
==[[公第三十七]]==&lt;br /&gt;
==[[孔子上第三十八]]==&lt;br /&gt;
==[[孔子下第三十九]]==&lt;br /&gt;
==[[蒙艮第四十]]==&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통서해 서문=&lt;br /&gt;
&amp;lt;br/&amp;gt;&lt;br /&gt;
:'''《通書解》序''' - 宋 朱熹&lt;br /&gt;
&amp;lt;br/&amp;gt;&lt;br /&gt;
:通書者, 濂溪夫子之所作也.(夫子性周氏, 名敦頤, 字茂叔). 夫子自少卽以學行有聞於世, 而莫或知其師傳之所自. 獨以河南兩程夫子嘗受學焉, 而得孔孟不傳之正統, 則其淵源因可槪見. 然所以指夫仲尼, 顔子之樂, 而發其吟風弄月之趣者, 亦不可得而悉聞矣. 所著之書, 又多放失. 獨此一篇, 本號易通, 與太極圖說並出, 程氏以傳於世, 而其爲說, 實相表裏. 大抵推一理、二氣、五行之分合, 以紀綱道體之精微; 決道義、文辭、祿利之取舍, 以振起俗學之卑陋. 至論所以入德之方、經世之具, 又皆親切簡要, 不爲空言. 顧其宏綱大用, 旣非秦漢以來諸儒所及; 而其條理之密、意味之深, 又非今世學者所能驟而窺也. 是以程氏旣沒, 而傳者鮮焉, 其知之者, 不過以爲用意高遠而已. 熹自蚤歲旣幸得其遺編而伏讀之, 初蓋茫然不知其所謂, 而甚或不能以句. 壯歲獲遊延平先生之門, 然後始得聞其說之一二, 比年以來, 潛玩旣久, 乃若粗有得焉. 雖其宏綱大用所不敢知, 然於其章句文字之間, 則有以實見其條理之愈密、意味之愈深, 而不我欺也. 顧自始讀以至於今, 歲月幾何! 倏焉三紀. 慨前哲之益遠, 懼妙旨之無傳, 竊不自量, 輒爲注釋. 雖知凡近不足以發夫子之精蘊, 然創通大義, 以俟後之君子, 則萬一其庶幾焉. 淳熙丁未九月甲辰, 後學朱熹謹記.&lt;br /&gt;
:『통서通書』는 염계 선생의 저작이다. (선생의 성은 周씨이고, 이름은 '돈이敦頤'이며, 자는 '무숙茂叔'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학문과 행실로 세상에 명성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 사승관계의 연원을 알지 못했다. 유독 하남의 정부자 &amp;lt;ref&amp;gt; 정명도程明道와 정이천程伊川형제를 지칭한다. &amp;lt;/ref&amp;gt; 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기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은 대략 알 수 있다. 그러나 공자와 안자의 즐거움을 가리켜주고 &amp;lt;ref&amp;gt;『論語』「雍也」 子曰: &amp;quot;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飲,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 回也!&amp;quot;&amp;lt;/ref&amp;gt; 음풍농월의 흥취를 일으키게 했던 것 &amp;lt;ref&amp;gt;『二程遺書』 卷三. “詩可以興. 某自再見茂叔後, 吟風弄月以歸, 有‘吾與點也’之意.”&amp;lt;/ref&amp;gt; 을 또한 모두 들을 수 없는데다가 저술한 책도 흩어지고 잃어버린 것이 많다. 오직 이 한 편만은 본래 ‘역통易通’으로 불렸는데 『태극도설太極圖說』과 함께 나와서 程氏가 이를 세상에 전하셨으니 그 학설은 실로 『태극도설太極圖說』과 서로 표리를 이룬다. 대체로 [그 내용은] 一理와 二氣，五行의 나누어짐과 합해짐을 추론하여 道體의 정밀하고 미묘함을 紀綱으로 삼았고, 道義와 文辭, 祿利 중에 취하고 버릴 것인지 결정해서 세속적 학문의 비루함을 떨치고 일어났으며, 덕德에 들어가는 방도와 세상을 경영하는 도구를 논하는 데 이르러서도 모두 친절하고 간단명료하니, 공허한 말이 아니다. 그 학설의 넓은 대강과 큰 쓰임을 돌아보니 이미 진나라와 한나라 이래 여러 유학자들이 미칠 바가 아니고, 그 조리의 엄밀함과 의미의 심오함 역시 오늘날의 학자들이 갑작스럽게 엿볼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이 때문에 程氏가 세상을 떠나자 전한 사람이 드물었고, [이 책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그 생각이 고원하다고 여길 뿐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미 다행히 그 남겨진 책을 얻어 읽었으나, 처음에는 아득하여 이것이 말하는 것이 뭔지 알 수 없었으며,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구두도 뗄 수 없었다. 나이가 들어 연평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한 뒤에야 비로소 그 학설의 일부를 알 수 있었고, 근년 이래 오랫동안 깊이 완미해보고 나서야 조잡하게나마 뭔가 깨닫는 것이 있게 되었다. 비록 핵심적인 요지와 광대한 쓰임은 감히 알 순 없지만, 장구와 문자의 사이에 조리가 더욱 치밀하고 의미는 더욱 깊어서 진실로 나를 속이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회고해 보건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가! 어느새 홀연히 36년이 되었다. 앞선 철인들이 점점 더 멀어짐이 개탄스럽고 미묘한 뜻이 멀어지고 있음이 두려워 삼가 나의 역량을 헤아리지도 않고 주해를 달았다. 비록 자질이 용렬하고 식견이 천박해서 선생님의 정밀한 뜻을 드러내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처음 대강의 의미를 통하게 함으로써 훗날의 군자를 기다리니 만의 하나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순희 정미년(1187년) 9월 갑진일, 후학 주희朱熹는 삼가 서문을 쓰다&lt;br /&gt;
&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Wooya0902</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D%86%B5%EC%84%9C</id>
		<title>통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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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4-16T15:57:0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Wooya0902: &lt;/p&gt;
&lt;hr /&gt;
&lt;div&gt;=해제=&lt;br /&gt;
이 페이지는 고려대 철학과 대학원 동양철학전공 원전 강독 세미나([[의적단]])의 일환으로 작성되었다.&amp;lt;br/&amp;gt;&lt;br /&gt;
『통서(通書)』1권은 송대 신유학자인 [[주돈이]]의 저서이다. 글이 매우 짧고 단순하여 해석하기 어렵고 해석하더라도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데, 주자마저도 주석을 단순하게 달아 후학을 고통스럽게 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이러한 해석의 모호함 때문에 이에 대해선 여러가지 논란이 있어왔다. 이는 '『통서』와 『태극도설』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그리고 '정명도, 정이천과 주돈이의 관계는 어떠한 것인가?' 라는 문제로 집약될 수 있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우선 가장 전통적인 설명방식으로는 이 두 문제에 대해선 긍정하는 입장이다. 대표적으로 주희(朱熹)는 “선생의 학문은 그 오묘함이 『태극도설』 한 권에 구비되어 있으며, 통서는 모두 이 태극도설에 온축되어 있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통서』의 서문에서는 “유독 하남의 정부자(程夫子)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기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은 대략 알 수 있다.”고 하여 태극도설과 통서가 모두 주돈이의 저작이라고 간주하였으며, 주돈이와 이정의 사승관계를 인정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하지만 주희 당시에도 이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예를 들어 왕응신(汪應辰)은 “염계선생께서는 고명하시고 순정하시지만 二程이 수학했다고 말한 것은 아마도 온당치 않은 듯합니다.”고 하였고, 육구연(陸九淵)은 형인 육구령(陸九齡)의 말을 인용하며 “형은 『태극도설』과 『통서』가 유사하지 않다고 하였는데 아무래도 주돈이가 지은 것이 아닌 듯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혹 그 학문이 성숙하지 않았을 때의 저작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사람의 문장을 전한 것인데 후대 사람들이 변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고 하였다. 명대에도 명나라의 풍방(豊坊)이나 청나라의 전조망(全祖望), 대진(戴震)은 모두 주정수수설을 부정하였다. 주정수수설과 『태극도설』과 『통서』의 관계에 대한 이견은 상호적인데, 주정수수설을 부정하는 학자들이 대체로 『태극도설』과 『통서』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삼기 때문이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현대의 학자 중에선 등광명(邓广铭)이 「關於周敦頤的師承和傳授」라는 논문에서 “이정은 결코 理學을 주돈이로부터 배우지 않았다. 특히 그의 『태극도설』과 『통서』를 이정은 모두 접촉한 적도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대하여 주정수수의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는 경향도 있다. 예를 들어 정종모는 「정명도의 주역해석과 그 경학사적 의의」에서 “그(정명도)의 경학의 출발점은 『통서』에 드러난 주렴계의 관점과 유사하며, 이런 차원에서 우리는 주정수수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고 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통서』는 주돈이가 직접 쓴 본문과 주희의 주해 사이에 몇몇 간극이 존재한다. 하지만 본문만 가지고는 주돈이의 사상을 재구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주희의 이해방식을 참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주희의 이해방식에 근거하면 『통서』의 내용은 크게 셋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통서』는 만물·운동·변화의 근거로서 ‘태극(太極)’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우리 눈  앞에 펼쳐져 있는 현상과 태극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誠上第一’, ‘誠下第二’, ‘動靜第十六’, ‘理性命第二十二’ 등에서 보인다. 둘째, 『통서』는 유학자가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志學第十’, ‘顔子第二十三’ 등에서 보인다. 셋째, 『통서』는 세상을 경영하는 수단으로서의 ‘예(禮)’와 ‘악(樂)’의 활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樂上第十七’, ‘樂中第十八’, ‘樂下第十九’에서 보인다.&lt;br /&gt;
&lt;br /&gt;
=원문 및 朱注=&lt;br /&gt;
번역 없이 원문만 필요할 경우 다음의 링크를 활용하고,[https://zh.wikisource.org/wiki/通書] &amp;lt;br/&amp;gt;&lt;br /&gt;
각 장의 번역이 필요한 경우에는 아래의 링크를 확인할 것. (발제자가 달라 형식/표점 등이 일정하지 않는데, 추후 교정 필요)&lt;br /&gt;
==[[誠上第一]]==&lt;br /&gt;
==[[誠下第二]]==&lt;br /&gt;
==[[誠幾德第三]]==&lt;br /&gt;
==[[聖第四]]==&lt;br /&gt;
==[[愼動第五]]==&lt;br /&gt;
==[[道第六]]==&lt;br /&gt;
==[[師第七]]==&lt;br /&gt;
==[[幸第八]]==&lt;br /&gt;
==[[思第九]]==&lt;br /&gt;
==[[志學第十]]==&lt;br /&gt;
==[[順化第十一]]==&lt;br /&gt;
==[[治第十二]]==&lt;br /&gt;
==[[禮樂第十三]]==&lt;br /&gt;
==[[務實第十四]]==&lt;br /&gt;
==[[愛敬第十五]]==&lt;br /&gt;
==[[動靜第十六]]==&lt;br /&gt;
==[[樂上第十七]]==&lt;br /&gt;
==[[樂中第十八]]==&lt;br /&gt;
==[[樂下第十九]]==&lt;br /&gt;
==[[聖學第二十]]==&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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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明第二十一]]==&lt;br /&gt;
==[[理性命第二十二]]==&lt;br /&gt;
==[[顔子第二十三]]==&lt;br /&gt;
==[[師友上第二十四]]==&lt;br /&gt;
==[[師友下第二十五]]==&lt;br /&gt;
==[[過第二十六]]==&lt;br /&gt;
==[[勢第二十七]]==&lt;br /&gt;
==[[文辭第二十八]]==&lt;br /&gt;
==[[聖蘊第二十九]]==&lt;br /&gt;
==[[精蘊第三十]]==&lt;br /&gt;
==[[乾損益動第三十一]]==&lt;br /&gt;
==[[家人睽無妄第三十二]]==&lt;br /&gt;
==[[富貴第三十三]]==&lt;br /&gt;
==[[陋第三十四]]==&lt;br /&gt;
==[[擬議第三十五]]==&lt;br /&gt;
==[[刑第三十六]]==&lt;br /&gt;
==[[公第三十七]]==&lt;br /&gt;
==[[孔子上第三十八]]==&lt;br /&gt;
==[[孔子下第三十九]]==&lt;br /&gt;
==[[蒙艮第四十]]==&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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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서해 서문=&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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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書解》序''' - 宋 朱熹&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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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書者, 濂溪夫子之所作也.(夫子性周氏, 名敦頤, 字茂叔). 夫子自少卽以學行有聞於世, 而莫或知其師傳之所自. 獨以河南兩程夫子嘗受學焉, 而得孔孟不傳之正統, 則其淵源因可槪見. 然所以指夫仲尼, 顔子之樂, 而發其吟風弄月之趣者, 亦不可得而悉聞矣. 所著之書, 又多放失. 獨此一篇, 本號易通, 與太極圖說並出, 程氏以傳於世, 而其爲說, 實相表裏. 大抵推一理、二氣、五行之分合, 以紀綱道體之精微; 決道義、文辭、祿利之取舍, 以振起俗學之卑陋. 至論所以入德之方、經世之具, 又皆親切簡要, 不爲空言. 顧其宏綱大用, 旣非秦漢以來諸儒所及; 而其條理之密、意味之深, 又非今世學者所能驟而窺也. 是以程氏旣沒, 而傳者鮮焉, 其知之者, 不過以爲用意高遠而已. 熹自蚤歲旣幸得其遺編而伏讀之, 初蓋茫然不知其所謂, 而甚或不能以句. 壯歲獲遊延平先生之門, 然後始得聞其說之一二, 比年以來, 潛玩旣久, 乃若粗有得焉. 雖其宏綱大用所不敢知, 然於其章句文字之間, 則有以實見其條理之愈密、意味之愈深, 而不我欺也. 顧自始讀以至於今, 歲月幾何! 倏焉三紀. 慨前哲之益遠, 懼妙旨之無傳, 竊不自量, 輒爲注釋. 雖知凡近不足以發夫子之精蘊, 然創通大義, 以俟後之君子, 則萬一其庶幾焉. 淳熙丁未九月甲辰, 後學朱熹謹記.&lt;br /&gt;
:『통서通書』는 염계 선생의 저작이다. (선생의 성은 周씨이고, 이름은 '돈이敦頤'이며, 자는 '무숙茂叔'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학문과 행실로 세상에 명성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 사승관계의 연원을 알지 못했다. 유독 하남의 정부자 &amp;lt;ref&amp;gt; 정명도程明道와 정이천程伊川형제를 지칭한다. &amp;lt;/ref&amp;gt; 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기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은 대략 알 수 있다. 그러나 공자와 안자의 즐거움을 가리켜주고 &amp;lt;ref&amp;gt;『論語』「雍也」 子曰: &amp;quot;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飲,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 回也!&amp;quot;&amp;lt;/ref&amp;gt; 음풍농월의 흥취를 일으키게 했던 것 &amp;lt;ref&amp;gt;『二程遺書』 卷三. “詩可以興. 某自再見茂叔後, 吟風弄月以歸, 有‘吾與點也’之意.”&amp;lt;/ref&amp;gt; 을 또한 모두 들을 수 없는데다가 저술한 책도 흩어지고 잃어버린 것이 많다. 오직 이 한 편만은 본래 ‘역통易通’으로 불렸는데 『태극도설太極圖說』과 함께 나와서 程氏가 이를 세상에 전하셨으니 그 학설은 실로 『태극도설太極圖說』과 서로 표리를 이룬다. 대체로 [그 내용은] 一理와 二氣，五行의 나누어짐과 합해짐을 추론하여 道體의 정밀하고 미묘함을 紀綱으로 삼았고, 道義와 文辭, 祿利 중에 취하고 버릴 것인지 결정해서 세속적 학문의 비루함을 떨치고 일어났으며, 덕德에 들어가는 방도와 세상을 경영하는 도구를 논하는 데 이르러서도 모두 친절하고 간단명료하니, 공허한 말이 아니다. 그 학설의 넓은 대강과 큰 쓰임을 돌아보니 이미 진나라와 한나라 이래 여러 유학자들이 미칠 바가 아니고, 그 조리의 엄밀함과 의미의 심오함 역시 오늘날의 학자들이 갑작스럽게 엿볼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이 때문에 程氏가 세상을 떠나자 전한 사람이 드물었고, [이 책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그 생각이 고원하다고 여길 뿐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미 다행히 그 남겨진 책을 얻어 읽었으나, 처음에는 아득하여 이것이 말하는 것이 뭔지 알 수 없었으며,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구두도 뗄 수 없었다. 나이가 들어 연평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한 뒤에야 비로소 그 학설의 일부를 알 수 있었고, 근년 이래 오랫동안 깊이 완미해보고 나서야 조잡하게나마 뭔가 깨닫는 것이 있게 되었다. 비록 핵심적인 요지와 광대한 쓰임은 감히 알 순 없지만, 장구와 문자의 사이에 조리가 더욱 치밀하고 의미는 더욱 깊어서 진실로 나를 속이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회고해 보건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가! 어느새 홀연히 36년이 되었다. 앞선 철인들이 점점 더 멀어짐이 개탄스럽고 미묘한 뜻이 멀어지고 있음이 두려워 삼가 나의 역량을 헤아리지도 않고 주해를 달았다. 비록 자질이 용렬하고 식견이 천박해서 선생님의 정밀한 뜻을 드러내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처음 대강의 의미를 통하게 함으로써 훗날의 군자를 기다리니 만의 하나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순희 정미년(1187년) 9월 갑진일, 후학 주희朱熹는 삼가 서문을 쓰다&lt;br /&gt;
&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Wooya0902</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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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통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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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Wooya0902: &lt;/p&gt;
&lt;hr /&gt;
&lt;div&gt;=해제=&lt;br /&gt;
이 페이지는 고려대 철학과 대학원 동양철학전공 원전 강독 세미나([[의적단]])의 일환으로 작성되었다.&amp;lt;br/&amp;gt;&lt;br /&gt;
『통서(通書)』1권은 송대 신유학자인 [[주돈이]]의 저서이다. 글이 매우 짧고 단순하여 해석하기 어렵고 해석하더라도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데, 주자마저도 주석을 단순하게 달아 후학을 고통스럽게 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이러한 해석의 모호함 때문에 이에 대해선 여러가지 논란이 있어왔다. 이는 '『통서』와 『태극도설』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그리고 '정명도, 정이천과 주돈이의 관계는 어떠한 것인가?' 라는 문제로 집약될 수 있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우선 가장 전통적인 설명방식으로는 이 두 문제에 대해선 긍정하는 입장이다. 대표적으로 주희(朱熹)는 “선생의 학문은 그 오묘함이 『태극도설』 한 권에 구비되어 있으며, 통서는 모두 이 태극도설에 온축되어 있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통서』의 서문에서는 “유독 하남의 정부자(程夫子)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기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은 대략 알 수 있다.”고 하여 태극도설과 통서가 모두 주돈이의 저작이라고 간주하였으며, 주돈이와 이정의 사승관계를 인정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하지만 주희 당시에도 이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예를 들어 왕응신(汪應辰)은 “염계선생께서는 고명하시고 순정하시지만 二程이 수학했다고 말한 것은 아마도 온당치 않은 듯합니다.”고 하였고, 육구연(陸九淵)은 형인 육구령(陸九齡)의 말을 인용하며 “형은 『태극도설』과 『통서』가 유사하지 않다고 하였는데 아무래도 주돈이가 지은 것이 아닌 듯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혹 그 학문이 성숙하지 않았을 때의 저작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사람의 문장을 전한 것인데 후대 사람들이 변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고 하였다. 명대에도 명나라의 풍방(豊坊)이나 청나라의 전조망(全祖望), 대진(戴震)은 모두 주정수수설을 부정하였다. 주정수수설과 『태극도설』과 『통서』의 관계에 대한 이견은 상호적인데, 주정수수설을 부정하는 학자들이 대체로 『태극도설』과 『통서』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삼기 때문이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현대의 학자 중에선 등광명(邓广铭)이 「關於周敦頤的師承和傳授」라는 논문에서 “이정은 결코 理學을 주돈이로부터 배우지 않았다. 특히 그의 『태극도설』과 『통서』를 이정은 모두 접촉한 적도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대하여 주정수수의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는 경향도 있다. 예를 들어 정종모는 「정명도의 주역해석과 그 경학사적 의의」에서 “그(정명도)의 경학의 출발점은 『통서』에 드러난 주렴계의 관점과 유사하며, 이런 차원에서 우리는 주정수수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고 하였다. &amp;lt;br/&amp;gt;&lt;br /&gt;
『통서』는 주돈이가 직접 쓴 본문과 주희의 주해 사이에 몇몇 간극이 존재한다. 하지만 본문만 가지고는 주돈이의 사상을 재구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주희의 이해방식을 참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주희의 이해방식에 근거하면 『통서』의 내용은 크게 셋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통서』는 만물·운동·변화의 근거로서 ‘태극(太極)’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우리 눈  앞에 펼쳐져 있는 현상과 태극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誠上第一’, ‘誠下第二’, ‘動靜第十六’, ‘理性命第二十二’ 등에서 보인다. 둘째, 『통서』는 유학자가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志學第十’, ‘顔子第二十三’ 등에서 보인다. 셋째, 『통서』는 세상을 경영하는 수단으로서의 ‘예(禮)’와 ‘악(樂)’의 활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樂上第十七’, ‘樂中第十八’, ‘樂下第十九’에서 보인다.&lt;br /&gt;
&lt;br /&gt;
=원문 및 朱注=&lt;br /&gt;
번역 없이 원문만 필요할 경우 다음의 링크를 활용하고,[https://zh.wikisource.org/wiki/通書] &amp;lt;br/&amp;gt;&lt;br /&gt;
각 장의 번역이 필요한 경우에는 아래의 링크를 확인할 것. (발제자가 달라 형식/표점 등이 일정하지 않는데, 추후 교정 필요)&lt;br /&gt;
==[[誠上第一]]==&lt;br /&gt;
==[[誠下第二]]==&lt;br /&gt;
==[[誠幾德第三]]==&lt;br /&gt;
==[[聖第四]]==&lt;br /&gt;
==[[愼動第五]]==&lt;br /&gt;
==[[道第六]]==&lt;br /&gt;
==[[師第七]]==&lt;br /&gt;
==[[幸第八]]==&lt;br /&gt;
==[[思第九]]==&lt;br /&gt;
==[[志學第十]]==&lt;br /&gt;
==[[順化第十一]]==&lt;br /&gt;
==[[治第十二]]==&lt;br /&gt;
==[[禮樂第十三]]==&lt;br /&gt;
==[[務實第十四]]==&lt;br /&gt;
==[[愛敬第十五]]==&lt;br /&gt;
==[[動靜第十六]]==&lt;br /&gt;
==[[樂上第十七]]==&lt;br /&gt;
==[[樂中第十八]]==&lt;br /&gt;
==[[樂下第十九]]==&lt;br /&gt;
==[[聖學第二十]]==&lt;br /&gt;
&lt;br /&gt;
==[[公明第二十一]]==&lt;br /&gt;
==[[理性命第二十二]]==&lt;br /&gt;
==[[顔子第二十三]]==&lt;br /&gt;
==[[師友上第二十四]]==&lt;br /&gt;
==[[師友下第二十五]]==&lt;br /&gt;
==[[過第二十六]]==&lt;br /&gt;
==[[勢第二十七]]==&lt;br /&gt;
==[[文辭第二十八]]==&lt;br /&gt;
==[[聖蘊第二十九]]==&lt;br /&gt;
==[[精蘊第三十]]==&lt;br /&gt;
==[[乾損益動第三十一]]==&lt;br /&gt;
==[[家人睽無妄第三十二]]==&lt;br /&gt;
==[[富貴第三十三]]==&lt;br /&gt;
==[[陋第三十四]]==&lt;br /&gt;
==[[擬議第三十五]]==&lt;br /&gt;
==[[刑第三十六]]==&lt;br /&gt;
==[[公第三十七]]==&lt;br /&gt;
==[[孔子上第三十八]]==&lt;br /&gt;
==[[孔子下第三十九]]==&lt;br /&gt;
==[[蒙艮第四十]]==&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통서해 서문=&lt;br /&gt;
&amp;lt;br/&amp;gt;&lt;br /&gt;
:'''《通書解》序''' - 宋 朱熹&lt;br /&gt;
&amp;lt;br/&amp;gt;&lt;br /&gt;
:通書者, 濂溪夫子之所作也.(夫子性周氏, 名敦頤, 字茂叔). 夫子自少卽以學行有聞於世, 而莫或知其師傳之所自. 獨以河南兩程夫子嘗受學焉, 而得孔孟不傳之正統, 則其淵源因可槪見. 然所以指夫仲尼, 顔子之樂, 而發其吟風弄月之趣者, 亦不可得而悉聞矣. 所著之書, 又多放失. 獨此一篇, 本號易通, 與太極圖說並出, 程氏以傳於世, 而其爲說, 實相表裏. 大抵推一理、二氣、五行之分合, 以紀綱道體之精微; 決道義、文辭、祿利之取舍, 以振起俗學之卑陋. 至論所以入德之方、經世之具, 又皆親切簡要, 不爲空言. 顧其宏綱大用, 旣非秦漢以來諸儒所及; 而其條理之密、意味之深, 又非今世學者所能驟而窺也. 是以程氏旣沒, 而傳者鮮焉, 其知之者, 不過以爲用意高遠而已. 熹自蚤歲旣幸得其遺編而伏讀之, 初蓋茫然不知其所謂, 而甚或不能以句. 壯歲獲遊延平先生之門, 然後始得聞其說之一二, 比年以來, 潛玩旣久, 乃若粗有得焉. 雖其宏綱大用所不敢知, 然於其章句文字之間, 則有以實見其條理之愈密、意味之愈深, 而不我欺也. 顧自始讀以至於今, 歲月幾何! 倏焉三紀. 慨前哲之益遠, 懼妙旨之無傳, 竊不自量, 輒爲注釋. 雖知凡近不足以發夫子之精蘊, 然創通大義, 以俟後之君子, 則萬一其庶幾焉. 淳熙丁未九月甲辰, 後學朱熹謹記.&lt;br /&gt;
:『통서通書』는 염계 선생의 저작이다. (선생의 성은 周씨이고, 이름은 '돈이敦頤'이며, 자는 '무숙茂叔'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학문과 행실로 세상에 명성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 사승관계의 연원을 알지 못했다. 유독 하남의 정부자 &amp;lt;ref&amp;gt; 정명도程明道와 정이천程伊川형제를 지칭한다. &amp;lt;/ref&amp;gt; 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기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은 대략 알 수 있다. 그러나 공자와 안자의 즐거움을 가리켜주고 &amp;lt;ref&amp;gt;『論語』「雍也」 子曰: &amp;quot;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飲,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 回也!&amp;quot;&amp;lt;/ref&amp;gt; 음풍농월의 흥취를 일으키게 했던 것 &amp;lt;ref&amp;gt;『二程遺書』 卷三. “詩可以興. 某自再見茂叔後, 吟風弄月以歸, 有‘吾與點也’之意.”&amp;lt;/ref&amp;gt; 을 또한 모두 들을 수 없는데다가 저술한 책도 흩어지고 잃어버린 것이 많다. 오직 이 한 편만은 본래 ‘역통易通’으로 불렸는데 『태극도설太極圖說』과 함께 나와서 程氏가 이를 세상에 전하셨으니 그 학설은 실로 『태극도설太極圖說』과 서로 표리를 이룬다. 대체로 [그 내용은] 一理와 二氣，五行의 나누어짐과 합해짐을 추론하여 道體의 정밀하고 미묘함을 紀綱으로 삼았고, 道義와 文辭, 祿利 중에 취하고 버릴 것인지 결정해서 세속적 학문의 비루함을 떨치고 일어났으며, 덕德에 들어가는 방도와 세상을 경영하는 도구를 논하는 데 이르러서도 모두 친절하고 간단명료하니, 공허한 말이 아니다. 그 학설의 넓은 대강과 큰 쓰임을 돌아보니 이미 진나라와 한나라 이래 여러 유학자들이 미칠 바가 아니고, 그 조리의 엄밀함과 의미의 심오함 역시 오늘날의 학자들이 갑작스럽게 엿볼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이 때문에 程氏가 세상을 떠나자 전한 사람이 드물었고, [이 책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그 생각이 고원하다고 여길 뿐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미 다행히 그 남겨진 책을 얻어 읽었으나, 처음에는 아득하여 이것이 말하는 것이 뭔지 알 수 없었으며,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구두도 뗄 수 없었다. 나이가 들어 연평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한 뒤에야 비로소 그 학설의 일부를 알 수 있었고, 근년 이래 오랫동안 깊이 완미해보고 나서야 조잡하게나마 뭔가 깨닫는 것이 있게 되었다. 비록 핵심적인 요지와 광대한 쓰임은 감히 알 순 없지만, 장구와 문자의 사이에 조리가 더욱 치밀하고 의미는 더욱 깊어서 진실로 나를 속이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회고해 보건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가! 어느새 홀연히 36년이 되었다. 앞선 철인들이 점점 더 멀어짐이 개탄스럽고 미묘한 뜻이 멀어지고 있음이 두려워 삼가 나의 역량을 헤아리지도 않고 주해를 달았다. 비록 자질이 용렬하고 식견이 천박해서 선생님의 정밀한 뜻을 드러내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처음 대강의 의미를 통하게 함으로써 훗날의 군자를 기다리니 만의 하나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순희 정미년(1187년) 9월 갑진일, 후학 주희朱熹는 삼가 서문을 쓰다&lt;br /&gt;
&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Wooya0902</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D%86%B5%EC%84%9C</id>
		<title>통서</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D%86%B5%EC%84%9C"/>
				<updated>2019-04-16T15:55:0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Wooya0902: 통서에 대한 해제를 단편적으로 서술함&lt;/p&gt;
&lt;hr /&gt;
&lt;div&gt;=해제=&lt;br /&gt;
이 페이지는 고려대 철학과 대학원 동양철학전공 원전 강독 세미나([[의적단]])의 일환으로 작성되었다.&amp;lt;br/&amp;gt;&lt;br /&gt;
『통서(通書)』1권은 송대 신유학자인 [[주돈이]]의 저서이다. 글이 매우 짧고 단순하여 해석하기 어렵고 해석하더라도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데, 주자마저도 주석을 단순하게 달아 후학을 고통스럽게 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이러한 해석의 모호함 때문에 이에 대해선 여러가지 논란이 있어왔다. 이는 '『통서』와 『태극도설』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그리고 '정명도, 정이천과 주돈이의 관계는 어떠한 것인가?' 라는 문제로 집약될 수 있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우선 가장 전통적인 설명방식으로는 이 두 문제에 대해선 긍정하는 입장이다. 대표적으로 주희(朱熹)는 “선생의 학문은 그 오묘함이 『태극도설』 한 권에 구비되어 있으며, 통서는 모두 이 태극도설에 온축되어 있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통서』의 서문에서는 “유독 하남의 정부자(程夫子)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기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은 대략 알 수 있다.”고 하여 태극도설과 통서가 모두 주돈이의 저작이라고 간주하였으며, 주돈이와 이정의 사승관계를 인정하였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하지만 주희 당시에도 이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예를 들어 왕응진(汪應辰)은 “염계선생께서는 고명하시고 순정하시지만 二程이 수학했다고 말한 것은 아마도 온당치 않은 듯합니다.”고 하였고, 육구연(陸九淵)은 형인 육구령(陸九齡)의 말을 인용하며 “형은 『태극도설』과 『통서』가 유사하지 않다고 하였는데 아무래도 주돈이가 지은 것이 아닌 듯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혹 그 학문이 성숙하지 않았을 때의 저작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사람의 문장을 전한 것인데 후대 사람들이 변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고 하였다. 명대에도 명나라의 풍방(豊坊)이나 청나라의 전조망(全祖望), 대진(戴震)은 모두 주정수수설을 부정하였다. 주정수수설과 『태극도설』과 『통서』의 관계에 대한 이견은 상호적인데, 주정수수설을 부정하는 학자들이 대체로 『태극도설』과 『통서』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삼기 때문이다. &amp;lt;br/&amp;gt; &amp;lt;br/&amp;gt;&lt;br /&gt;
현대의 학자 중에선 등광명(邓广铭)이 「關於周敦頤的師承和傳授」라는 논문에서 “이정은 결코 理學을 주돈이로부터 배우지 않았다. 특히 그의 『태극도설』과 『통서』를 이정은 모두 접촉한 적도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대하여 주정수수의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는 경향도 있다. 예를 들어 정종모는 「정명도의 주역해석과 그 경학사적 의의」에서 “그(정명도)의 경학의 출발점은 『통서』에 드러난 주렴계의 관점과 유사하며, 이런 차원에서 우리는 주정수수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고 하였다. &amp;lt;br/&amp;gt;&lt;br /&gt;
『통서』는 주돈이가 직접 쓴 본문과 주희의 주해 사이에 몇몇 간극이 존재한다. 하지만 본문만 가지고는 주돈이의 사상을 재구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주희의 이해방식을 참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주희의 이해방식에 근거하면 『통서』의 내용은 크게 셋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통서』는 만물·운동·변화의 근거로서 ‘태극(太極)’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우리 눈  앞에 펼쳐져 있는 현상과 태극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誠上第一’, ‘誠下第二’, ‘動靜第十六’, ‘理性命第二十二’ 등에서 보인다. 둘째, 『통서』는 유학자가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志學第十’, ‘顔子第二十三’ 등에서 보인다. 셋째, 『통서』는 세상을 경영하는 수단으로서의 ‘예(禮)’와 ‘악(樂)’의 활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樂上第十七’, ‘樂中第十八’, ‘樂下第十九’에서 보인다.&lt;br /&gt;
&lt;br /&gt;
=원문 및 朱注=&lt;br /&gt;
번역 없이 원문만 필요할 경우 다음의 링크를 활용하고,[https://zh.wikisource.org/wiki/通書] &amp;lt;br/&amp;gt;&lt;br /&gt;
각 장의 번역이 필요한 경우에는 아래의 링크를 확인할 것. (발제자가 달라 형식/표점 등이 일정하지 않는데, 추후 교정 필요)&lt;br /&gt;
==[[誠上第一]]==&lt;br /&gt;
==[[誠下第二]]==&lt;br /&gt;
==[[誠幾德第三]]==&lt;br /&gt;
==[[聖第四]]==&lt;br /&gt;
==[[愼動第五]]==&lt;br /&gt;
==[[道第六]]==&lt;br /&gt;
==[[師第七]]==&lt;br /&gt;
==[[幸第八]]==&lt;br /&gt;
==[[思第九]]==&lt;br /&gt;
==[[志學第十]]==&lt;br /&gt;
==[[順化第十一]]==&lt;br /&gt;
==[[治第十二]]==&lt;br /&gt;
==[[禮樂第十三]]==&lt;br /&gt;
==[[務實第十四]]==&lt;br /&gt;
==[[愛敬第十五]]==&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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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子第二十三]]==&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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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友下第二十五]]==&lt;br /&gt;
==[[過第二十六]]==&lt;br /&gt;
==[[勢第二十七]]==&lt;br /&gt;
==[[文辭第二十八]]==&lt;br /&gt;
==[[聖蘊第二十九]]==&lt;br /&gt;
==[[精蘊第三十]]==&lt;br /&gt;
==[[乾損益動第三十一]]==&lt;br /&gt;
==[[家人睽無妄第三十二]]==&lt;br /&gt;
==[[富貴第三十三]]==&lt;br /&gt;
==[[陋第三十四]]==&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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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第三十七]]==&lt;br /&gt;
==[[孔子上第三十八]]==&lt;br /&gt;
==[[孔子下第三十九]]==&lt;br /&gt;
==[[蒙艮第四十]]==&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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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서해 서문=&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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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書解》序''' - 宋 朱熹&lt;br /&gt;
&amp;lt;br/&amp;gt;&lt;br /&gt;
:通書者, 濂溪夫子之所作也.(夫子性周氏, 名敦頤, 字茂叔). 夫子自少卽以學行有聞於世, 而莫或知其師傳之所自. 獨以河南兩程夫子嘗受學焉, 而得孔孟不傳之正統, 則其淵源因可槪見. 然所以指夫仲尼, 顔子之樂, 而發其吟風弄月之趣者, 亦不可得而悉聞矣. 所著之書, 又多放失. 獨此一篇, 本號易通, 與太極圖說並出, 程氏以傳於世, 而其爲說, 實相表裏. 大抵推一理、二氣、五行之分合, 以紀綱道體之精微; 決道義、文辭、祿利之取舍, 以振起俗學之卑陋. 至論所以入德之方、經世之具, 又皆親切簡要, 不爲空言. 顧其宏綱大用, 旣非秦漢以來諸儒所及; 而其條理之密、意味之深, 又非今世學者所能驟而窺也. 是以程氏旣沒, 而傳者鮮焉, 其知之者, 不過以爲用意高遠而已. 熹自蚤歲旣幸得其遺編而伏讀之, 初蓋茫然不知其所謂, 而甚或不能以句. 壯歲獲遊延平先生之門, 然後始得聞其說之一二, 比年以來, 潛玩旣久, 乃若粗有得焉. 雖其宏綱大用所不敢知, 然於其章句文字之間, 則有以實見其條理之愈密、意味之愈深, 而不我欺也. 顧自始讀以至於今, 歲月幾何! 倏焉三紀. 慨前哲之益遠, 懼妙旨之無傳, 竊不自量, 輒爲注釋. 雖知凡近不足以發夫子之精蘊, 然創通大義, 以俟後之君子, 則萬一其庶幾焉. 淳熙丁未九月甲辰, 後學朱熹謹記.&lt;br /&gt;
:『통서通書』는 염계 선생의 저작이다. (선생의 성은 周씨이고, 이름은 '돈이敦頤'이며, 자는 '무숙茂叔'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학문과 행실로 세상에 명성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 사승관계의 연원을 알지 못했다. 유독 하남의 정부자 &amp;lt;ref&amp;gt; 정명도程明道와 정이천程伊川형제를 지칭한다. &amp;lt;/ref&amp;gt; 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기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은 대략 알 수 있다. 그러나 공자와 안자의 즐거움을 가리켜주고 &amp;lt;ref&amp;gt;『論語』「雍也」 子曰: &amp;quot;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飲,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 回也!&amp;quot;&amp;lt;/ref&amp;gt; 음풍농월의 흥취를 일으키게 했던 것 &amp;lt;ref&amp;gt;『二程遺書』 卷三. “詩可以興. 某自再見茂叔後, 吟風弄月以歸, 有‘吾與點也’之意.”&amp;lt;/ref&amp;gt; 을 또한 모두 들을 수 없는데다가 저술한 책도 흩어지고 잃어버린 것이 많다. 오직 이 한 편만은 본래 ‘역통易通’으로 불렸는데 『태극도설太極圖說』과 함께 나와서 程氏가 이를 세상에 전하셨으니 그 학설은 실로 『태극도설太極圖說』과 서로 표리를 이룬다. 대체로 [그 내용은] 一理와 二氣，五行의 나누어짐과 합해짐을 추론하여 道體의 정밀하고 미묘함을 紀綱으로 삼았고, 道義와 文辭, 祿利 중에 취하고 버릴 것인지 결정해서 세속적 학문의 비루함을 떨치고 일어났으며, 덕德에 들어가는 방도와 세상을 경영하는 도구를 논하는 데 이르러서도 모두 친절하고 간단명료하니, 공허한 말이 아니다. 그 학설의 넓은 대강과 큰 쓰임을 돌아보니 이미 진나라와 한나라 이래 여러 유학자들이 미칠 바가 아니고, 그 조리의 엄밀함과 의미의 심오함 역시 오늘날의 학자들이 갑작스럽게 엿볼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이 때문에 程氏가 세상을 떠나자 전한 사람이 드물었고, [이 책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그 생각이 고원하다고 여길 뿐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미 다행히 그 남겨진 책을 얻어 읽었으나, 처음에는 아득하여 이것이 말하는 것이 뭔지 알 수 없었으며,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구두도 뗄 수 없었다. 나이가 들어 연평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한 뒤에야 비로소 그 학설의 일부를 알 수 있었고, 근년 이래 오랫동안 깊이 완미해보고 나서야 조잡하게나마 뭔가 깨닫는 것이 있게 되었다. 비록 핵심적인 요지와 광대한 쓰임은 감히 알 순 없지만, 장구와 문자의 사이에 조리가 더욱 치밀하고 의미는 더욱 깊어서 진실로 나를 속이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회고해 보건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가! 어느새 홀연히 36년이 되었다. 앞선 철인들이 점점 더 멀어짐이 개탄스럽고 미묘한 뜻이 멀어지고 있음이 두려워 삼가 나의 역량을 헤아리지도 않고 주해를 달았다. 비록 자질이 용렬하고 식견이 천박해서 선생님의 정밀한 뜻을 드러내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처음 대강의 의미를 통하게 함으로써 훗날의 군자를 기다리니 만의 하나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순희 정미년(1187년) 9월 갑진일, 후학 주희朱熹는 삼가 서문을 쓰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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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Wooya0902</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8%81%96%E5%AD%B8%E7%AC%AC%E4%BA%8C%E5%8D%81</id>
		<title>聖學第二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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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4-16T15:01:4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Wooya0902: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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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聖學第二十=&lt;br /&gt;
주돈이의 [[통서]] 제 20장의 원문 및 朱注이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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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聖可學乎？」 曰：「可。」 曰：「有要乎？」 曰：「有。」 「請聞焉。」 曰：「一為要。一者，無欲也，無欲則靜虛、動直，靜虛則明，明則通；動直則公，公則溥。明通公溥，庶矣乎！」'''&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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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은 배워서 될 수 있습니까?” 답했다. “가능하다.” 물었다. “요체가 있습니까?” 말했다. “있다.” “청컨대 듣고자 합니다.” “마음을 전일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마음을 전일하게 하는 것은 사욕이 없는 것(無欲)이니, &amp;lt;ref&amp;gt;『周敦頤集』 “孟子曰, 養心莫善於寡欲。予謂養心不止於寡而存耳, 蓋寡焉以至於無, 無則誠立明通。誠立, 賢也。明通, 聖也。” “맹자는 ‘마음을 기르는 것에 있어서 사욕을 적게 하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다음과 마음을 기르는 것은 (사욕을) 적게 하여 보존해 나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단지 (사욕을) 적게 하여서 없는 것에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없으면 誠이 확립되고 明이 통하게 된다. 誠이 확립한 것은 賢이며 밝게 통하면 聖이다.”:『朱子語類』 卷94, 「周子之書」 “直卿曰：「通者明之極，溥者公之極。」曰：「亦是。如後所謂『誠立明通』，意又別。彼處以『明』字為重。立，如『三十而立』。通，則『不惑，知天命，耳順』也。」” 이후 이른바 ‘誠이 확립되고 明이 통하게 된다’는 말과 같은 경우에는 의미가 또한 다르다. 저 곳에서는 ‘明’이라는 글자를 (더욱) 중시하여 주어로 보았다. 立은 ‘삼십 세에 확립된다’는 것과 같다. 通은 ‘유혹되지 않고, 천명을 알며, 듣는 것에 거슬림이 없다’는 것이다.&amp;lt;/ref&amp;gt; &amp;lt;ref&amp;gt;『朱子語類』 卷 94, 「周子之書」  問：「伊川云：『為士必志於聖人。』周子乃云：『一為要，一者，無欲也。』何如？」曰：「若注釋古聖賢之書，恐認當時聖賢之意不親切，或有誤處。此書乃周子自著，不應有差。『一者，無欲』，一便是無欲。今試看無欲之時，心豈不一？」又問：「比主一之敬如何？」曰：「無欲之與敬，二字分明。要之，持敬頗似費力，不如無欲撇脫。人只為有欲，此心便千頭萬緒。此章之言，甚為緊切，學者不可不知。」 물었다. “이천께서 ‘선비가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성인이 되는 것에 뜻을 두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으며, 염계선생께서는 ‘하나가 핵심이니, 그 하나는 사욕을 없애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말씀하셨다. “옛 성현의 책을 주석하는 경우에 아마도 당시 성현의 뜻이 불친절하여 혹 잘못된 곳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주렴계가 스스로 쓰신 책이라 마땅히 어긋남이 있지 않은 것이다. ‘그 하나는 無欲이다’라고 하신 것에서 그 하나는 바로 사욕을 없애는 것이라는 뜻이다. 지금 사욕이 없는 때를 시험 삼아 살펴보면, 마음이 어찌 하나가 되지 아니겠는가?” 또한 물었다. “한 곳에 집중한다는[主一] 뜻의 敬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말씀하셨다. “無欲은 敬과 비교해 볼 때, 그 두 글자가 매우 분명하다. 요컨대, 敬을 유지하는 것은 자못 힘이 많이 드는 것 같지만, 무욕하여 맑고 간결해지는 것만 못하다. 사람이 다만 사욕을 갖게 되면, 이 마음은 반드시 천 가지 만 가지로 번잡할 것이다. 이 장의 말은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이니, 배우는 자들은 알지 못해서는 안 된다.”&amp;lt;/ref&amp;gt; &amp;lt;ref&amp;gt; 『朱子語類』 卷 12 「學六·持守」 “今說此話，卻似險，難說。故周先生只說「一者，無欲也」。然這話頭高，卒急難湊泊。尋常人如何便得無欲！故伊川只說箇「敬」字，教人只就這「敬」字上捱去，庶幾執捉得定，有箇下手處。縱不得，亦不至失。要之，皆只要人於此心上見得分明，自然有得爾。” 지금 이 말을 하는 것이 도리어 위험한 것과 같으니, 말하기 어렵다. 따라서 염계선생이 다만 ‘하나는 사욕을 없애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이 고원하여 촉박하게 이루기에는 어렵다. 보통 사람이 어떻게 사욕을 없앨 수 있겠는가! 따라서 이천선생이 다만 ‘경’이라는 글자를 말하셔서 사람들로 하여금 다만 이 ‘경’을 취하여 나아가서 거의 안정적으로 붙잡아두며 착수처가 있게 하였다. 설령 얻지 못하더라도 잘못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 요컨대, (두 분) 모두 사람이 이러한 마음 상에서 분명히 깨달아서 저절로 얻는 바가 있음을 바라셨던 것이다.  &amp;lt;/ref&amp;gt; 욕이 없어지면 [마음이] 고요할 땐 텅 비게 되고 [마음이] 움직일 땐 올곧게 된다. &amp;lt;ref&amp;gt;『近思錄集校集注集評』, 上海古籍出版社, 452-453쪽,  “張解: 靜而未發之時, 渾然在中, 邪不能入而虛內, 一故也. 動而將發之傾, 惟理是循, 物不能撓而直外, 一故也.” 마음이 아직 움직이지 않아서 발하지 않았을 때에는 [천리와] 혼연히 하나가 되어 중(中)의 상태에 있어서 사특함이 마음 안으로 들어올 수 없어서 텅 비어 있으니 마음이 전일한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움직여서 장차 움직이게 될 때엔 오직 이치만을 따를 뿐 외물이 동요시킬 수 없어서 외면이 올곧으니 이 역시 마음이 전일한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amp;lt;/ref&amp;gt; 고요할 때 텅 비워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통하게 되며, 움직일 때 올곧으면 고르게 되고 고르게 되면 넓어진다. 밝고 통하며 고르고 넓어지면 [성인에] 가까워질 것이다!”&amp;lt;ref&amp;gt;『朱子語類』 卷 94 問：「『聖學』章，一者，是表裏俱一，純徹無二。少有纖毫私欲，便二矣。內一則靜虛，外一則動直，而明通公溥，則又無時不一也。一者，此心渾然太極之體；無欲者，心體粹然無極之真；靜虛者，體之未發，豁然絕無一物之累，陰之性也；動直者，用之流行，坦然由中道而出，陽之情也。明屬火，通屬木，公屬金，溥屬水。明通則靜極而動，陰生陽也；公溥則動極而靜，陽生陰也。而無欲者，又所以貫動靜明通公溥而統於一，則終始表裏一太極也。不審是否？」曰：「只四象分得未是。此界兩邊說，明屬靜邊，通屬動邊，公屬動邊，溥屬靜邊。明是貞，屬水；通是元，屬木；公是亨，屬火；溥是利，屬金。只恁地循環去。明是萬物收斂醒定在這裏，通是萬物初發達，公是萬物齊盛，溥是秋來萬物溥遍成遂，各自分去，所謂『各正性命』。」曰：「在人言之，則如何？」曰：「明是曉得事物，通是透徹無窒礙，公是正無偏陂，溥是溥遍萬事，便各有箇理去。」直卿曰：「通者明之極，溥者公之極。」曰：「亦是(…후략…)」 물었다. “‘성학’장의 하나는 표리가 모두 하나여서 순일하여 둘이 없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털끝의 사욕이 있게 되면 곧 바로 둘이 됩니다. 안이 하나가 되면 고요함에 텅 비게 되고, 바깥이 하나가 되면 움직임에 올곧게 되며, 밝고 통하며 고르고 넓으면 또한 어느 때건 하나가 되지 않음이 없습니다. ‘하나’(一)라는 것은 이 마음이 혼연하여 태극의 본체가 되고, 사욕이 없다는 것(無欲)은 心體가 순수하여 무극의 진실함이 되고, ‘고요할 때 텅 빈 것’은 본체가 아직 드러나지 않아서 활연히 한 사물의 얽매임조차도 절대 없는 상태이자 陰의 性이며, ‘움직일 때 올곧은 것’은 작용의 유행으로 평탄히 中道로부터 나오니, 陽의 情입니다. ‘밝음’은 불에 속하고, ‘통함’은 나무에 속하며 ‘고름’은 금에 속하고 ‘넓음’은 물에 속합니다. 밝고 통하면 고요함이 극에 달하여 움직이게 되니, 음에서 양이 생겨나는 것이며, 고르고 넓으면 움직임이 극에 달하여 고요하게 되니, 양이 음을 생겨나게 하는 것입니다. ‘무욕’이라는 것이 또한 움직임과 고요함, 밝고 통함, 고르고 넓음을 꿰뚫어 하나로 모이게 하는 것이라면 시작과 끝 그리고 안과 밖이 하나의 태극일 것입니다. 자세히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맞을까요?”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다만 사상을 나누는 것은 옳지 않다. 이 경계를 두 부분으로 말하면 ‘밝음’은 고요함 쪽에 속하고 ‘통함’은 움직임 쪽에 속하며, ‘고름’은 움직임에 속하고 ‘넓음’은 고요함에 속한다. ‘밝음’은 貞이니 물에 속하고, ‘통함’은 元이니 나무에 속하며, ‘고름’은 亨이니 불에 속하며, ‘넓음’은 利이니 금에 속한다. 단지 이와 같이 순환해 나간다. ‘밝음’은 만물이 여기에서 수렴되어 맑게 안정되며, ‘통함’은 만물이 처음으로 왕성하게 되는 것이고 ‘고름’은 만물이 가지런하게 이루어진 것이고, ‘넓음’은 가을이 와서 만물이 두루 결실을 이룬 것으로 각각 저절로 나누어지니, 이른바 ‘각각 성명을 바르게 한다’는 것이다.” 물었다. “사람을 가지고 말하면 어떻습니까?”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밝음’은 사물을 분명히 깨달은 것이고, ‘통함’은 투철하여 막힘이 없는 것이며, ‘고름’은 올바르기에 치우침이 없는 것이고, 넓음은 만사에 넓게 미치는 것이니, 즉 각각 이치가 있게 된다.&amp;quot; 황직경이 말했다. &amp;quot;‘통함’이란 ‘밝음’의 지극함이고 ‘넓음’이란 ‘고른 것’의 지극함입니다.&amp;quo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이 또한 맞는 말이다.&amp;quot;&amp;lt;/ref&amp;gt; &amp;lt;ref&amp;gt;『朱子語類』 卷 94 問：「一是純一靜虛，是此心如明鑑止水，無一毫私欲填於其中。故其動也，無非從天理流出，無一毫私欲撓之。靜虛是體，動直是用。」曰：「也是如此。靜虛易看，動直難看。靜虛，只是伊川云：『中有主則虛，虛則邪不能入』，是也。若物來奪之，則實；實則暗，暗則塞。動直，只是其動也更無所礙。若少有私欲，便礙便曲。要恁地做，又不要恁地做，便自有窒礙，便不是直。曲則私，私則狹。」물었다. “(「성학장」에서) 하나라는 것은 純一하고 虛靜한 것이며, 이 마음 마치 맑은 거울이나 고요한 물과 같아서 아주 조금의 사욕도 심중을 메우지 않은 상태입니다. 따라서 그것이 움직일 때에 天理로부터 흘러나오지 않음이 없어서 털끝만큼도 사욕이 마음을 분요롭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고요할 때 텅 비워진 것은 體이고 움직일 때 곧은 것은 用입니다.”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또한 이와 같다. 고요할 때 텅 비워진 것은 알기 쉽고 움직일 때 곧은 것은 알기 어렵다. ‘靜虛’는 정이천이 ‘마음속에 주재함이 있으면 텅 비워지고 텅 비워지면 사특한 것이 들어올 수 없다.’고 한 말이 이것이다. 만약 사물이 와서 침탈하면 마음이 꽉 차고, (마음속이) 꽉 차면 어두워지고, 어두워지면 막힌다. ‘動直’은 다만 움직일 때 별 다른 막힘이 없는 것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사욕이 있으면 바로 막히고 굽게 된다. 이처럼 해야 하는데 또한 이처럼 하지 않으려고 하니, 곧 저절로 막히는 바가 있게 되고 곧지 않게 된다. 굽으면 사사롭게 되고, 사사로우면 편협해진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此章之指，最為要切。然其辭義明白，不煩訓解。學者能深玩而力行之，則有以知無極之真，兩儀四象之本，皆不外乎此心，而日用間自無別用力處矣。'''&lt;br /&gt;
&lt;br /&gt;
::이 장의 요지가 가장 핵심이 된다. 그러나 그 문장의 뜻이 명백하므로 번잡하게 주해를 달지 않았다. 배우는 자들이 깊이 완미하고 탐구해서 능히 힘써 실천한다면 무극의 진실됨과 양의와 사상의 근본이 모두 이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아 일상 안에서 자연스레 별도로 힘쓰지 않아도 됨을 알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references/&amp;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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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Wooya0902</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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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통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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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4-16T15:00:1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Wooya0902: &lt;/p&gt;
&lt;hr /&gt;
&lt;div&gt;=해제=&lt;br /&gt;
이 페이지는 고려대 철학과 대학원 동양철학전공 원전 강독 세미나([[의적단]])의 일환으로 작성되었다.&amp;lt;br/&amp;gt;&lt;br /&gt;
『통서(通書)』는 송대 신유학자인 [[주돈이]]의 저서이다. 글이 매우 짧고 단순하여 해석하기 어렵고 해석하더라도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데, 주자마저도 주석을 단순하게 달아 후학을 고통스럽게 하였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원문 및 朱注=&lt;br /&gt;
번역 없이 원문만 필요할 경우 다음의 링크를 활용하고,[https://zh.wikisource.org/wiki/通書] &amp;lt;br/&amp;gt;&lt;br /&gt;
각 장의 번역이 필요한 경우에는 아래의 링크를 확인할 것. (발제자가 달라 형식/표점 등이 일정하지 않는데, 추후 교정 필요)&lt;br /&gt;
==[[誠上第一]]==&lt;br /&gt;
==[[誠下第二]]==&lt;br /&gt;
==[[誠幾德第三]]==&lt;br /&gt;
==[[聖第四]]==&lt;br /&gt;
==[[愼動第五]]==&lt;br /&gt;
==[[道第六]]==&lt;br /&gt;
==[[師第七]]==&lt;br /&gt;
==[[幸第八]]==&lt;br /&gt;
==[[思第九]]==&lt;br /&gt;
==[[志學第十]]==&lt;br /&gt;
==[[順化第十一]]==&lt;br /&gt;
==[[治第十二]]==&lt;br /&gt;
==[[禮樂第十三]]==&lt;br /&gt;
==[[務實第十四]]==&lt;br /&gt;
==[[愛敬第十五]]==&lt;br /&gt;
==[[動靜第十六]]==&lt;br /&gt;
==[[樂上第十七]]==&lt;br /&gt;
==[[樂中第十八]]==&lt;br /&gt;
==[[樂下第十九]]==&lt;br /&gt;
==[[聖學第二十]]==&lt;br /&gt;
&lt;br /&gt;
==[[公明第二十一]]==&lt;br /&gt;
==[[理性命第二十二]]==&lt;br /&gt;
==[[顔子第二十三]]==&lt;br /&gt;
==[[師友上第二十四]]==&lt;br /&gt;
==[[師友下第二十五]]==&lt;br /&gt;
==[[過第二十六]]==&lt;br /&gt;
==[[勢第二十七]]==&lt;br /&gt;
==[[文辭第二十八]]==&lt;br /&gt;
==[[聖蘊第二十九]]==&lt;br /&gt;
==[[精蘊第三十]]==&lt;br /&gt;
==[[乾損益動第三十一]]==&lt;br /&gt;
==[[家人睽無妄第三十二]]==&lt;br /&gt;
==[[富貴第三十三]]==&lt;br /&gt;
==[[陋第三十四]]==&lt;br /&gt;
==[[擬議第三十五]]==&lt;br /&gt;
==[[刑第三十六]]==&lt;br /&gt;
==[[公第三十七]]==&lt;br /&gt;
==[[孔子上第三十八]]==&lt;br /&gt;
==[[孔子下第三十九]]==&lt;br /&gt;
==[[蒙艮第四十]]==&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통서해 서문=&lt;br /&gt;
&amp;lt;br/&amp;gt;&lt;br /&gt;
:'''《通書解》序''' - 宋 朱熹&lt;br /&gt;
&amp;lt;br/&amp;gt;&lt;br /&gt;
:通書者, 濂溪夫子之所作也.(夫子性周氏, 名敦頤, 字茂叔). 夫子自少卽以學行有聞於世, 而莫或知其師傳之所自. 獨以河南兩程夫子嘗受學焉, 而得孔孟不傳之正統, 則其淵源因可槪見. 然所以指夫仲尼, 顔子之樂, 而發其吟風弄月之趣者, 亦不可得而悉聞矣. 所著之書, 又多放失. 獨此一篇, 本號易通, 與太極圖說並出, 程氏以傳於世, 而其爲說, 實相表裏. 大抵推一理、二氣、五行之分合, 以紀綱道體之精微; 決道義、文辭、祿利之取舍, 以振起俗學之卑陋. 至論所以入德之方、經世之具, 又皆親切簡要, 不爲空言. 顧其宏綱大用, 旣非秦漢以來諸儒所及; 而其條理之密、意味之深, 又非今世學者所能驟而窺也. 是以程氏旣沒, 而傳者鮮焉, 其知之者, 不過以爲用意高遠而已. 熹自蚤歲旣幸得其遺編而伏讀之, 初蓋茫然不知其所謂, 而甚或不能以句. 壯歲獲遊延平先生之門, 然後始得聞其說之一二, 比年以來, 潛玩旣久, 乃若粗有得焉. 雖其宏綱大用所不敢知, 然於其章句文字之間, 則有以實見其條理之愈密、意味之愈深, 而不我欺也. 顧自始讀以至於今, 歲月幾何! 倏焉三紀. 慨前哲之益遠, 懼妙旨之無傳, 竊不自量, 輒爲注釋. 雖知凡近不足以發夫子之精蘊, 然創通大義, 以俟後之君子, 則萬一其庶幾焉. 淳熙丁未九月甲辰, 後學朱熹謹記.&lt;br /&gt;
:『통서通書』는 염계 선생의 저작이다. (선생의 성은 周씨이고, 이름은 '돈이敦頤'이며, 자는 '무숙茂叔'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학문과 행실로 세상에 명성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 사승관계의 연원을 알지 못했다. 유독 하남의 정부자 &amp;lt;ref&amp;gt; 정명도程明道와 정이천程伊川형제를 지칭한다. &amp;lt;/ref&amp;gt; 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기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은 대략 알 수 있다. 그러나 공자와 안자의 즐거움을 가리켜주고 &amp;lt;ref&amp;gt;『論語』「雍也」 子曰: &amp;quot;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飲,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 回也!&amp;quot;&amp;lt;/ref&amp;gt; 음풍농월의 흥취를 일으키게 했던 것 &amp;lt;ref&amp;gt;『二程遺書』 卷三. “詩可以興. 某自再見茂叔後, 吟風弄月以歸, 有‘吾與點也’之意.”&amp;lt;/ref&amp;gt; 을 또한 모두 들을 수 없는데다가 저술한 책도 흩어지고 잃어버린 것이 많다. 오직 이 한 편만은 본래 ‘역통易通’으로 불렸는데 『태극도설太極圖說』과 함께 나와서 程氏가 이를 세상에 전하셨으니 그 학설은 실로 『태극도설太極圖說』과 서로 표리를 이룬다. 대체로 [그 내용은] 一理와 二氣，五行의 나누어짐과 합해짐을 추론하여 道體의 정밀하고 미묘함을 紀綱으로 삼았고, 道義와 文辭, 祿利 중에 취하고 버릴 것인지 결정해서 세속적 학문의 비루함을 떨치고 일어났으며, 덕德에 들어가는 방도와 세상을 경영하는 도구를 논하는 데 이르러서도 모두 친절하고 간단명료하니, 공허한 말이 아니다. 그 학설의 넓은 대강과 큰 쓰임을 돌아보니 이미 진나라와 한나라 이래 여러 유학자들이 미칠 바가 아니고, 그 조리의 엄밀함과 의미의 심오함 역시 오늘날의 학자들이 갑작스럽게 엿볼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이 때문에 程氏가 세상을 떠나자 전한 사람이 드물었고, [이 책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그 생각이 고원하다고 여길 뿐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미 다행히 그 남겨진 책을 얻어 읽었으나, 처음에는 아득하여 이것이 말하는 것이 뭔지 알 수 없었으며,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구두도 뗄 수 없었다. 나이가 들어 연평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한 뒤에야 비로소 그 학설의 일부를 알 수 있었고, 근년 이래 오랫동안 깊이 완미해보고 나서야 조잡하게나마 뭔가 깨닫는 것이 있게 되었다. 비록 핵심적인 요지와 광대한 쓰임은 감히 알 순 없지만, 장구와 문자의 사이에 조리가 더욱 치밀하고 의미는 더욱 깊어서 진실로 나를 속이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회고해 보건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가! 어느새 홀연히 36년이 되었다. 앞선 철인들이 점점 더 멀어짐이 개탄스럽고 미묘한 뜻이 멀어지고 있음이 두려워 삼가 나의 역량을 헤아리지도 않고 주해를 달았다. 비록 자질이 용렬하고 식견이 천박해서 선생님의 정밀한 뜻을 드러내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처음 대강의 의미를 통하게 함으로써 훗날의 군자를 기다리니 만의 하나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순희 정미년(1187년) 9월 갑진일, 후학 주희朱熹는 삼가 서문을 쓰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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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주석==&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Wooya0902</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8%81%96%E5%AD%B8%E7%AC%AC%E4%BA%8C%E5%8D%81</id>
		<title>聖學第二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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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4-16T14:57:4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Wooya0902: 본문 번역 수정&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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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聖學第二十=&lt;br /&gt;
주돈이의 [[통서]] 제 20장의 원문 및 朱注이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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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聖可學乎？」 曰：「可。」 曰：「有要乎？」 曰：「有。」 「請聞焉。」 曰：「一為要。一者，無欲也，無欲則靜虛、動直，靜虛則明，明則通；動直則公，公則溥。明通公溥，庶矣乎！」'''&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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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은 배워서 될 수 있습니까?” 답했다. “가능하다.” 물었다. “요체가 있습니까?” 말했다. “있다.” “청컨대 듣고자 합니다.” “마음을 전일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마음을 전일하게 하는 것은 사욕이 없는 것(無欲)이니, &amp;lt;ref&amp;gt;『周敦頤集』 “孟子曰, 養心莫善於寡欲。予謂養心不止於寡而存耳, 蓋寡焉以至於無, 無則誠立明通。誠立, 賢也。明通, 聖也。” “맹자는 ‘마음을 기르는 것에 있어서 사욕을 적게 하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다음과 마음을 기르는 것은 (사욕을) 적게 하여 보존해 나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단지 (사욕을) 적게 하여서 없는 것에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없으면 誠이 확립되고 明이 통하게 된다. 誠이 확립한 것은 賢이며 밝게 통하면 聖이다.”:『朱子語類』 卷94, 「周子之書」 “直卿曰：「通者明之極，溥者公之極。」曰：「亦是。如後所謂『誠立明通』，意又別。彼處以『明』字為重。立，如『三十而立』。通，則『不惑，知天命，耳順』也。」” 이후 이른바 ‘誠이 확립되고 明이 통하게 된다’는 말과 같은 경우에는 의미가 또한 다르다. 저 곳에서는 ‘明’이라는 글자를 (더욱) 중시하여 주어로 보았다. 立은 ‘삼십 세에 확립된다’는 것과 같다. 通은 ‘유혹되지 않고, 천명을 알며, 듣는 것에 거슬림이 없다’는 것이다.&amp;lt;/ref&amp;gt; &amp;lt;ref&amp;gt;『朱子語類』 卷 94, 「周子之書」  問：「伊川云：『為士必志於聖人。』周子乃云：『一為要，一者，無欲也。』何如？」曰：「若注釋古聖賢之書，恐認當時聖賢之意不親切，或有誤處。此書乃周子自著，不應有差。『一者，無欲』，一便是無欲。今試看無欲之時，心豈不一？」又問：「比主一之敬如何？」曰：「無欲之與敬，二字分明。要之，持敬頗似費力，不如無欲撇脫。人只為有欲，此心便千頭萬緒。此章之言，甚為緊切，學者不可不知。」 물었다. “이천께서 ‘선비가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성인이 되는 것에 뜻을 두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으며, 염계선생께서는 ‘하나가 핵심이니, 그 하나는 사욕을 없애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말씀하셨다. “옛 성현의 책을 주석하는 경우에 아마도 당시 성현의 뜻이 불친절하여 혹 잘못된 곳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주렴계가 스스로 쓰신 책이라 마땅히 어긋남이 있지 않은 것이다. ‘그 하나는 無欲이다’라고 하신 것에서 그 하나는 바로 사욕을 없애는 것이라는 뜻이다. 지금 사욕이 없는 때를 시험 삼아 살펴보면, 마음이 어찌 하나가 되지 아니겠는가?” 또한 물었다. “한 곳에 집중한다는[主一] 뜻의 敬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말씀하셨다. “無欲은 敬과 비교해 볼 때, 그 두 글자가 매우 분명하다. 요컨대, 敬을 유지하는 것은 자못 힘이 많이 드는 것 같지만, 무욕하여 맑고 간결해지는 것만 못하다. 사람이 다만 사욕을 갖게 되면, 이 마음은 반드시 천 가지 만 가지로 번잡할 것이다. 이 장의 말은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이니, 배우는 자들은 알지 못해서는 안 된다.”&amp;lt;/ref&amp;gt; &amp;lt;ref&amp;gt; 『朱子語類』 卷 12 「學六·持守」 “今說此話，卻似險，難說。故周先生只說「一者，無欲也」。然這話頭高，卒急難湊泊。尋常人如何便得無欲！故伊川只說箇「敬」字，教人只就這「敬」字上捱去，庶幾執捉得定，有箇下手處。縱不得，亦不至失。要之，皆只要人於此心上見得分明，自然有得爾。” 지금 이 말을 하는 것이 도리어 위험한 것과 같으니, 말하기 어렵다. 따라서 염계선생이 다만 ‘하나는 사욕을 없애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이 고원하여 촉박하게 이루기에는 어렵다. 보통 사람이 어떻게 사욕을 없앨 수 있겠는가! 따라서 이천선생이 다만 ‘경’이라는 글자를 말하셔서 사람들로 하여금 다만 이 ‘경’을 취하여 나아가서 거의 안정적으로 붙잡아두며 착수처가 있게 하였다. 설령 얻지 못하더라도 잘못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 요컨대, (두 분) 모두 사람이 이러한 마음 상에서 분명히 깨달아서 저절로 얻는 바가 있음을 바라셨던 것이다.  &amp;lt;/ref&amp;gt; 욕이 없어지면 [마음이] 고요할 땐 텅 비게 되고 [마음이] 움직일 땐 올곧게 된다. &amp;lt;ref&amp;gt;『近思錄集校集注集評』, 上海古籍出版社, 452-453쪽,  “張解: 靜而未發之時, 渾然在中, 邪不能入而虛內, 一故也. 動而將發之傾, 惟理是循, 物不能撓而直外, 一故也.” 마음이 아직 움직이지 않아서 발하지 않았을 때에는 [천리와] 혼연히 하나가 되어 중(中)의 상태에 있어서 사특함이 마음 안으로 들어올 수 없어서 텅 비어 있으니 마음이 전일한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움직여서 장차 움직이게 될 때엔 오직 이치만을 따를 뿐 외물이 동요시킬 수 없어서 외면이 올곧으니 이 역시 마음이 전일한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amp;lt;/ref&amp;gt; 고요할 때 텅 비워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통하게 되며, 움직일 때 올곧으면 고르게 되고 고르게 되면 넓어진다. 밝고 통하며 고르고 넓어지면 [성인에] 가까워질 것이다!”&amp;lt;ref&amp;gt;『朱子語類』 卷 94 問：「『聖學』章，一者，是表裏俱一，純徹無二。少有纖毫私欲，便二矣。內一則靜虛，外一則動直，而明通公溥，則又無時不一也。一者，此心渾然太極之體；無欲者，心體粹然無極之真；靜虛者，體之未發，豁然絕無一物之累，陰之性也；動直者，用之流行，坦然由中道而出，陽之情也。明屬火，通屬木，公屬金，溥屬水。明通則靜極而動，陰生陽也；公溥則動極而靜，陽生陰也。而無欲者，又所以貫動靜明通公溥而統於一，則終始表裏一太極也。不審是否？」曰：「只四象分得未是。此界兩邊說，明屬靜邊，通屬動邊，公屬動邊，溥屬靜邊。明是貞，屬水；通是元，屬木；公是亨，屬火；溥是利，屬金。只恁地循環去。明是萬物收斂醒定在這裏，通是萬物初發達，公是萬物齊盛，溥是秋來萬物溥遍成遂，各自分去，所謂『各正性命』。」曰：「在人言之，則如何？」曰：「明是曉得事物，通是透徹無窒礙，公是正無偏陂，溥是溥遍萬事，便各有箇理去。」直卿曰：「通者明之極，溥者公之極。」曰：「亦是(…후략…)」 물었다. “‘성학’장의 하나는 표리가 모두 하나여서 순일하여 둘이 없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털끝의 사욕이 있게 되면 곧 바로 둘이 됩니다. 안이 하나가 되면 고요함에 텅 비게 되고, 바깥이 하나가 되면 움직임에 올곧게 되며, 밝고 통하며 고르고 넓으면 또한 어느 때건 하나가 되지 않음이 없습니다. ‘하나’(一)라는 것은 이 마음이 혼연하여 태극의 본체가 되고, 사욕이 없다는 것(無欲)은 心體가 순수하여 무극의 진실함이 되고, ‘고요할 때 텅 빈 것’은 본체가 아직 드러나지 않아서 활연히 한 사물의 얽매임조차도 절대 없는 상태이자 陰의 性이며, ‘움직일 때 올곧은 것’은 작용의 유행으로 평탄히 中道로부터 나오니, 陽의 情입니다. ‘밝음’은 불에 속하고, ‘통함’은 나무에 속하며 ‘고름’은 금에 속하고 ‘넓음’은 물에 속합니다. 밝고 통하면 고요함이 극에 달하여 움직이게 되니, 음에서 양이 생겨나는 것이며, 고르고 넓으면 움직임이 극에 달하여 고요하게 되니, 양이 음을 생겨나게 하는 것입니다. ‘무욕’이라는 것이 또한 움직임과 고요함, 밝고 통함, 고르고 넓음을 꿰뚫어 하나로 모이게 하는 것이라면 시작과 끝 그리고 안과 밖이 하나의 태극일 것입니다. 자세히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맞을까요?”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다만 사상을 나누는 것은 옳지 않다. 이 경계를 두 부분으로 말하면 ‘밝음’은 고요함 쪽에 속하고 ‘통함’은 움직임 쪽에 속하며, ‘고름’은 움직임에 속하고 ‘넓음’은 고요함에 속한다. ‘밝음’은 貞이니 물에 속하고, ‘통함’은 元이니 나무에 속하며, ‘고름’은 亨이니 불에 속하며, ‘넓음’은 利이니 금에 속한다. 단지 이와 같이 순환해 나간다. ‘밝음’은 만물이 여기에서 수렴되어 맑게 안정되며, ‘통함’은 만물이 처음으로 왕성하게 되는 것이고 ‘고름’은 만물이 가지런하게 이루어진 것이고, ‘넓음’은 가을이 와서 만물이 두루 결실을 이룬 것으로 각각 저절로 나누어지니, 이른바 ‘각각 성명을 바르게 한다’는 것이다.” 물었다. “사람을 가지고 말하면 어떻습니까?”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밝음’은 사물을 분명히 깨달은 것이고, ‘통함’은 투철하여 막힘이 없는 것이며, ‘고름’은 올바르기에 치우침이 없는 것이고, 넓음은 만사에 넓게 미치는 것이니, 즉 각각 이치가 있게 된다.&amp;quot; 황직경이 말했다. &amp;quot;‘통함’이란 ‘밝음’의 지극함이고 ‘넓음’이란 ‘고른 것’의 지극함입니다.&amp;quo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이 또한 맞는 말이다.&amp;quot;&amp;lt;/ref&amp;gt; &amp;lt;ref&amp;gt;『朱子語類』 卷 94 問：「一是純一靜虛，是此心如明鑑止水，無一毫私欲填於其中。故其動也，無非從天理流出，無一毫私欲撓之。靜虛是體，動直是用。」曰：「也是如此。靜虛易看，動直難看。靜虛，只是伊川云：『中有主則虛，虛則邪不能入』，是也。若物來奪之，則實；實則暗，暗則塞。動直，只是其動也更無所礙。若少有私欲，便礙便曲。要恁地做，又不要恁地做，便自有窒礙，便不是直。曲則私，私則狹。」물었다. “(「성학장」에서) 하나라는 것은 純一하고 虛靜한 것이며, 이 마음 마치 맑은 거울이나 고요한 물과 같아서 아주 조금의 사욕도 심중을 메우지 않은 상태입니다. 따라서 그것이 움직일 때에 天理로부터 흘러나오지 않음이 없어서 털끝만큼도 사욕이 마음을 분요롭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고요할 때 텅 비워진 것은 體이고 움직일 때 곧은 것은 用입니다.”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또한 이와 같다. 고요할 때 텅 비워진 것은 알기 쉽고 움직일 때 곧은 것은 알기 어렵다. ‘靜虛’는 정이천이 ‘마음속에 주재함이 있으면 텅 비워지고 텅 비워지면 사특한 것이 들어올 수 없다.’고 한 말이 이것이다. 만약 사물이 와서 침탈하면 마음이 꽉 차고, (마음속이) 꽉 차면 어두워지고, 어두워지면 막힌다. ‘動直’은 다만 움직일 때 별 다른 막힘이 없는 것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사욕이 있으면 바로 막히고 굽게 된다. 이처럼 해야 하는데 또한 이처럼 하지 않으려고 하니, 곧 저절로 막히는 바가 있게 되고 곧지 않게 된다. 굽으면 사사롭게 되고, 사사로우면 편협해진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此章之指，最為要切。然其辭義明白，不煩訓解。學者能深玩而力行之，則有以知無極之真，兩儀四象之本，皆不外乎此心，而日用間自無別用力處矣。'''&lt;br /&gt;
&lt;br /&gt;
::이 장의 요지가 가장 핵심적이다. 그러나 그 문장의 뜻이 명백하므로 번잡하게 주해를 달지 않았다. 배우는 자들이 깊이 완미하고 탐구해서 능히 힘써 실천한다면 무극의 진실됨과 양의와 사상의 근본이 모두 이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아 일상 안에서 자연스레 별도로 힘쓰지 않아도 됨을 알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references/&amp;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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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Wooya0902</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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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통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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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4-16T14:39:0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Wooya0902: 번역 수정&lt;/p&gt;
&lt;hr /&gt;
&lt;div&gt;=해제=&lt;br /&gt;
이 페이지는 고려대 철학과 대학원 동양철학전공 원전 강독 세미나([[의적단]])의 일환으로 작성되었다.&amp;lt;br/&amp;gt;&lt;br /&gt;
『통서(通書)』는 송대 신유학자인 [[주돈이]]의 저서이다. 글이 매우 짧고 단순하여 해석하기 어렵고 해석하더라도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데, 주자마저도 주석을 단순하게 달아 후학을 고통스럽게 하였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원문 및 朱注=&lt;br /&gt;
번역 없이 원문만 필요할 경우 다음의 링크를 활용하고,[https://zh.wikisource.org/wiki/通書] &amp;lt;br/&amp;gt;&lt;br /&gt;
각 장의 번역이 필요한 경우에는 아래의 링크를 확인할 것. (발제자가 달라 형식/표점 등이 일정하지 않는데, 추후 교정 필요)&lt;br /&gt;
==[[誠上第一]]==&lt;br /&gt;
==[[誠下第二]]==&lt;br /&gt;
==[[誠幾德第三]]==&lt;br /&gt;
==[[聖第四]]==&lt;br /&gt;
==[[愼動第五]]==&lt;br /&gt;
==[[道第六]]==&lt;br /&gt;
==[[師第七]]==&lt;br /&gt;
==[[幸第八]]==&lt;br /&gt;
==[[思第九]]==&lt;br /&gt;
==[[志學第十]]==&lt;br /&gt;
==[[順化第十一]]==&lt;br /&gt;
==[[治第十二]]==&lt;br /&gt;
==[[禮樂第十三]]==&lt;br /&gt;
==[[務實第十四]]==&lt;br /&gt;
==[[愛敬第十五]]==&lt;br /&gt;
==[[動靜第十六]]==&lt;br /&gt;
==[[樂上第十七]]==&lt;br /&gt;
==[[樂中第十八]]==&lt;br /&gt;
==[[樂下第十九]]==&lt;br /&gt;
==[[聖學第二十]]==&lt;br /&gt;
&lt;br /&gt;
==[[公明第二十一]]==&lt;br /&gt;
==[[理性命第二十二]]==&lt;br /&gt;
==[[顔子第二十三]]==&lt;br /&gt;
==[[師友上第二十四]]==&lt;br /&gt;
==[[師友下第二十五]]==&lt;br /&gt;
==[[過第二十六]]==&lt;br /&gt;
==[[勢第二十七]]==&lt;br /&gt;
==[[文辭第二十八]]==&lt;br /&gt;
==[[聖蘊第二十九]]==&lt;br /&gt;
==[[精蘊第三十]]==&lt;br /&gt;
==[[乾損益動第三十一]]==&lt;br /&gt;
==[[家人睽無妄第三十二]]==&lt;br /&gt;
==[[富貴第三十三]]==&lt;br /&gt;
==[[陋第三十四]]==&lt;br /&gt;
==[[擬議第三十五]]==&lt;br /&gt;
==[[刑第三十六]]==&lt;br /&gt;
==[[公第三十七]]==&lt;br /&gt;
==[[孔子上第三十八]]==&lt;br /&gt;
==[[孔子下第三十九]]==&lt;br /&gt;
==[[蒙艮第四十]]==&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통서해 서문=&lt;br /&gt;
&amp;lt;br/&amp;gt;&lt;br /&gt;
:'''《通書解》序''' - 宋 朱熹&lt;br /&gt;
&amp;lt;br/&amp;gt;&lt;br /&gt;
:通書者, 濂溪夫子之所作也.(夫子性周氏, 名敦頤, 字茂叔). 夫子自少卽以學行有聞於世, 而莫或知其師傳之所自. 獨以河南兩程夫子嘗受學焉, 而得孔孟不傳之正統, 則其淵源因可槪見. 然所以指夫仲尼, 顔子之樂, 而發其吟風弄月之趣者, 亦不可得而悉聞矣. 所著之書, 又多放失. 獨此一篇, 本號易通, 與太極圖說並出, 程氏以傳於世, 而其爲說, 實相表裏. 大抵推一理、二氣、五行之分合, 以紀綱道體之精微; 決道義、文辭、祿利之取舍, 以振起俗學之卑陋. 至論所以入德之方、經世之具, 又皆親切簡要, 不爲空言. 顧其宏綱大用, 旣非秦漢以來諸儒所及; 而其條理之密、意味之深, 又非今世學者所能驟而窺也. 是以程氏旣沒, 而傳者鮮焉, 其知之者, 不過以爲用意高遠而已. 熹自蚤歲旣幸得其遺編而伏讀之, 初蓋茫然不知其所謂, 而甚或不能以句. 壯歲獲遊延平先生之門, 然後始得聞其說之一二, 比年以來, 潛玩旣久, 乃若粗有得焉. 雖其宏綱大用所不敢知, 然於其章句文字之間, 則有以實見其條理之愈密、意味之愈深, 而不我欺也. 顧自始讀以至於今, 歲月幾何! 倏焉三紀. 慨前哲之益遠, 懼妙旨之無傳, 竊不自量, 輒爲注釋. 雖知凡近不足以發夫子之精蘊, 然創通大義, 以俟後之君子, 則萬一其庶幾焉. 淳熙丁未九月甲辰, 後學朱熹謹記.&lt;br /&gt;
&amp;lt;br/&amp;gt;&lt;br /&gt;
:『통서通書』는 염계 선생의 저작이다. (선생의 성은 周씨이고, 이름은 '돈이敦頤'이며, 자는 '무숙茂叔'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학문과 행실로 세상에 명성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 사승관계의 연원을 알지 못했다. 유독 하남의 정부자 &amp;lt;ref&amp;gt; 정명도程明道와 정이천程伊川형제를 지칭한다. &amp;lt;/ref&amp;gt; 께서 일찍이 수학해서 공자와 맹자이래로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기 얻었으니 이로써 그 연원은 대략 알 수 있다. 그러나 공자와 안자의 즐거움을 가리켜주고 &amp;lt;ref&amp;gt;『論語』「雍也」 子曰: &amp;quot;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飲,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 回也!&amp;quot;&amp;lt;/ref&amp;gt; 음풍농월의 흥취를 일으키게 했던 것 &amp;lt;ref&amp;gt;『二程遺書』 卷三. “詩可以興. 某自再見茂叔後, 吟風弄月以歸, 有‘吾與點也’之意.”&amp;lt;/ref&amp;gt; 을 또한 모두 들을 수 없는데다가 저술한 책도 흩어지고 잃어버린 것이 많다. 오직 이 한 편만은 본래 ‘역통易通’으로 불렸는데 『태극도설太極圖說』과 함께 나와서 程氏가 이를 세상에 전하셨으니 그 학설은 실로 『태극도설太極圖說』과 서로 표리를 이룬다. 대체로 [그 내용은] 一理와 二氣，五行의 나누어짐과 합해짐을 추론하여 道體의 정밀하고 미묘함을 紀綱으로 삼았고, 道義와 文辭, 祿利 중에 취하고 버릴 것인지 결정해서 세속적 학문의 비루함을 떨치고 일어났으며, 덕德에 들어가는 방도와 세상을 경영하는 도구를 논하는 데 이르러서도 모두 친절하고 간단명료하니, 공허한 말이 아니다. 그 학설의 넓은 대강과 큰 쓰임을 돌아보니 이미 진나라와 한나라 이래 여러 유학자들이 미칠 바가 아니고, 그 조리의 엄밀함과 의미의 심오함 역시 오늘날의 학자들이 갑작스럽게 엿볼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이 때문에 程氏가 세상을 떠나자 전한 사람이 드물었고, [이 책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그 생각이 고원하다고 여길 뿐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미 다행히 그 남겨진 책을 얻어 읽었으나, 처음에는 아득하여 이것이 말하는 것이 뭔지 알 수 없었으며,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구두도 뗄 수 없었다. 나이가 들어 연평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한 뒤에야 비로소 그 학설의 일부를 알 수 있었고, 근년 이래 오랫동안 깊이 완미해보고 나서야 조잡하게나마 뭔가 깨닫는 것이 있게 되었다. 비록 핵심적인 요지와 광대한 쓰임은 감히 알 순 없지만, 장구와 문자의 사이에 조리가 더욱 치밀하고 의미는 더욱 깊어서 진실로 나를 속이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회고해 보건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가! 어느새 홀연히 36년이 되었다. 앞선 철인들이 점점 더 멀어짐이 개탄스럽고 미묘한 뜻이 멀어지고 있음이 두려워 삼가 나의 역량을 헤아리지도 않고 주해를 달았다. 비록 자질이 용렬하고 식견이 천박해서 선생님의 정밀한 뜻을 드러내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처음 대강의 의미를 통하게 함으로써 훗날의 군자를 기다리니 만의 하나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순희 정미년(1187년) 9월 갑진일, 후학 주희朱熹는 삼가 서문을 쓰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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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Wooya0902</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8%81%96%E5%AD%B8%E7%AC%AC%E4%BA%8C%E5%8D%81</id>
		<title>聖學第二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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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4-16T14:05:3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Wooya0902: 각주 4번 출처 표시 및 번역 수정.&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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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聖學第二十=&lt;br /&gt;
주돈이의 [[통서]] 제 20장의 원문 및 朱注이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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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可學乎？」 曰：「可。」 曰：「有要乎？」 曰：「有。」 「請聞焉。」 曰：「一為要。一者，無欲也，無欲則靜虛、動直，靜虛則明，明則通；動直則公，公則溥。明通公溥，庶矣乎！」'''&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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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은 배워서 될 수 있습니까?” 말했다. “가능하다.” 물었다. “(그렇게 되는 데에) 핵심이 있습니까?” 말했다. “있다.” “청컨대 듣고자 합니다.” “마음을 전일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마음을 한결같이 하는 것은 無欲이니,&amp;lt;ref&amp;gt;『周敦頤集』 “孟子曰, 養心莫善於寡欲。予謂養心不止於寡而存耳, 蓋寡焉以至於無, 無則誠立明通。誠立, 賢也。明通, 聖也。” “맹자는 ‘마음을 기르는 것에 있어서 사욕을 적게 하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다음과 마음을 기르는 것은 (사욕을) 적게 하여 보존해 나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단지 (사욕을) 적게 하여서 없는 것에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없으면 誠이 확립되고 明이 통하게 된다. 誠이 확립한 것은 賢이며 밝게 통하면 聖이다.”:『朱子語類』 卷94, 「周子之書」 “直卿曰：「通者明之極，溥者公之極。」曰：「亦是。如後所謂『誠立明通』，意又別。彼處以『明』字為重。立，如『三十而立』。通，則『不惑，知天命，耳順』也。」” 이후 이른바 ‘誠이 확립되고 明이 통하게 된다’는 말과 같은 경우에는 의미가 또한 다르다. 저 곳에서는 ‘明’이라는 글자를 (더욱) 중시하여 주어로 보았다. 立은 ‘삼십 세에 확립된다’는 것과 같다. 通은 ‘유혹되지 않고, 천명을 알며, 듣는 것에 거슬림이 없다’는 것이다.&amp;lt;/ref&amp;gt; &amp;lt;ref&amp;gt;『朱子語類』 卷 94, 「周子之書」  問：「伊川云：『為士必志於聖人。』周子乃云：『一為要，一者，無欲也。』何如？」曰：「若注釋古聖賢之書，恐認當時聖賢之意不親切，或有誤處。此書乃周子自著，不應有差。『一者，無欲』，一便是無欲。今試看無欲之時，心豈不一？」又問：「比主一之敬如何？」曰：「無欲之與敬，二字分明。要之，持敬頗似費力，不如無欲撇脫。人只為有欲，此心便千頭萬緒。此章之言，甚為緊切，學者不可不知。」 물었다. “이천께서 ‘선비가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성인이 되는 것에 뜻을 두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으며, 염계선생께서는 ‘하나가 핵심이니, 그 하나는 사욕을 없애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말씀하셨다. “옛 성현의 책을 주석하는 경우에 아마도 당시 성현의 뜻이 불친절하여 혹 잘못된 곳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주렴계가 스스로 쓰신 책이라 마땅히 어긋남이 있지 않은 것이다. ‘그 하나는 無欲이다’라고 하신 것에서 그 하나는 바로 사욕을 없애는 것이라는 뜻이다. 지금 사욕이 없는 때를 시험 삼아 살펴보면, 마음이 어찌 하나가 되지 아니겠는가?” 또한 물었다. “한 곳에 집중한다는[主一] 뜻의 敬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말씀하셨다. “無欲은 敬과 비교해 볼 때, 그 두 글자가 매우 분명하다. 요컨대, 敬을 유지하는 것은 자못 힘이 많이 드는 것 같지만, 무욕하여 맑고 간결해지는 것만 못하다. 사람이 다만 사욕을 갖게 되면, 이 마음은 반드시 천 가지 만 가지로 번잡할 것이다. 이 장의 말은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이니, 배우는 자들은 알지 못해서는 안 된다.”&amp;lt;/ref&amp;gt; &amp;lt;ref&amp;gt; 『朱子語類』 卷 12 「學六·持守」 “今說此話，卻似險，難說。故周先生只說「一者，無欲也」。然這話頭高，卒急難湊泊。尋常人如何便得無欲！故伊川只說箇「敬」字，教人只就這「敬」字上捱去，庶幾執捉得定，有箇下手處。縱不得，亦不至失。要之，皆只要人於此心上見得分明，自然有得爾。” 지금 이 말을 하는 것이 도리어 위험한 것과 같으니, 말하기 어렵다. 따라서 염계선생이 다만 ‘하나는 사욕을 없애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이 고원하여 촉박하게 이루기에는 어렵다. 보통 사람이 어떻게 사욕을 없앨 수 있겠는가! 따라서 이천선생이 다만 ‘경’이라는 글자를 말하셔서 사람들로 하여금 다만 이 ‘경’을 취하여 나아가서 거의 안정적으로 붙잡아두며 착수처가 있게 하였다. 설령 얻지 못하더라도 잘못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 요컨대, (두 분) 모두 사람이 이러한 마음 상에서 분명히 깨달아서 저절로 얻는 바가 있음을 바라셨던 것이다.  &amp;lt;/ref&amp;gt; 욕심을 없애고자 하면 (마음이) 고요할 때는 텅 비게 되고 (마음이) 움직일 때 올곧게 될 것이다. &amp;lt;ref&amp;gt;『近思錄集校集注集評』, 上海古籍出版社, 452-453쪽,  “張解: 靜而未發之時, 渾然在中, 邪不能入而虛內, 一故也. 動而將發之傾, 惟理是循, 物不能撓而直外, 一故也.” 마음이 아직 움직이지 않아서 발하지 않았을 때에는 [천리와] 혼연히 하나가 되어 중(中)의 상태에 있어서 사특함이 마음 안으로 들어올 수 없어서 텅 비어 있으니 마음이 전일한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움직여서 장차 움직이게 될 때엔 오직 이치만을 따를 뿐 외물이 동요시킬 수 없어서 외면이 올곧으니 이 역시 마음이 전일한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amp;lt;/ref&amp;gt; 고요할 때 텅 비워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통하게 되며, 움직일 때 올곧으면 고르게 되고, 고르게 되면 넓어진다. 밝고 통하며 고르고 넓어지면 (성인에) 가까워지게 된다!”&amp;lt;ref&amp;gt;『朱子語類』 卷 94 問：「『聖學』章，一者，是表裏俱一，純徹無二。少有纖毫私欲，便二矣。內一則靜虛，外一則動直，而明通公溥，則又無時不一也。一者，此心渾然太極之體；無欲者，心體粹然無極之真；靜虛者，體之未發，豁然絕無一物之累，陰之性也；動直者，用之流行，坦然由中道而出，陽之情也。明屬火，通屬木，公屬金，溥屬水。明通則靜極而動，陰生陽也；公溥則動極而靜，陽生陰也。而無欲者，又所以貫動靜明通公溥而統於一，則終始表裏一太極也。不審是否？」曰：「只四象分得未是。此界兩邊說，明屬靜邊，通屬動邊，公屬動邊，溥屬靜邊。明是貞，屬水；通是元，屬木；公是亨，屬火；溥是利，屬金。只恁地循環去。明是萬物收斂醒定在這裏，通是萬物初發達，公是萬物齊盛，溥是秋來萬物溥遍成遂，各自分去，所謂『各正性命』。」曰：「在人言之，則如何？」曰：「明是曉得事物，通是透徹無窒礙，公是正無偏陂，溥是溥遍萬事，便各有箇理去。」直卿曰：「通者明之極，溥者公之極。」曰：「亦是(…후략…)」 물었다. “‘성학’장의 하나는 표리가 모두 하나여서 순일하여 둘이 없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털끝의 사욕이 있게 되면 곧 바로 둘이 됩니다. 안이 하나가 되면 고요함에 텅 비게 되고, 바깥이 하나가 되면 움직임에 올곧게 되며, 밝고 통하며 고르고 넓으면 또한 어느 때건 하나가 되지 않음이 없습니다. ‘하나’(一)라는 것은 이 마음이 혼연하여 태극의 본체가 되고, 사욕이 없다는 것(無欲)은 心體가 순수하여 무극의 진실함이 되고, ‘고요할 때 텅 빈 것’은 본체가 아직 드러나지 않아서 활연히 한 사물의 얽매임조차도 절대 없는 상태이자 陰의 性이며, ‘움직일 때 올곧은 것’은 작용의 유행으로 평탄히 中道로부터 나오니, 陽의 情입니다. ‘밝음’은 불에 속하고, ‘통함’은 나무에 속하며 ‘고름’은 금에 속하고 ‘넓음’은 물에 속합니다. 밝고 통하면 고요함이 극에 달하여 움직이게 되니, 음에서 양이 생겨나는 것이며, 고르고 넓으면 움직임이 극에 달하여 고요하게 되니, 양이 음을 생겨나게 하는 것입니다. ‘무욕’이라는 것이 또한 움직임과 고요함, 밝고 통함, 고르고 넓음을 꿰뚫어 하나로 모이게 하는 것이라면 시작과 끝 그리고 안과 밖이 하나의 태극일 것입니다. 자세히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맞을까요?”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다만 사상을 나누는 것은 옳지 않다. 이 경계를 두 부분으로 말하면 ‘밝음’은 고요함 쪽에 속하고 ‘통함’은 움직임 쪽에 속하며, ‘고름’은 움직임에 속하고 ‘넓음’은 고요함에 속한다. ‘밝음’은 貞이니 물에 속하고, ‘통함’은 元이니 나무에 속하며, ‘고름’은 亨이니 불에 속하며, ‘넓음’은 利이니 금에 속한다. 단지 이와 같이 순환해 나간다. ‘밝음’은 만물이 여기에서 수렴되어 맑게 안정되며, ‘통함’은 만물이 처음으로 왕성하게 되는 것이고 ‘고름’은 만물이 가지런하게 이루어진 것이고, ‘넓음’은 가을이 와서 만물이 두루 결실을 이룬 것으로 각각 저절로 나누어지니, 이른바 ‘각각 성명을 바르게 한다’는 것이다.” 물었다. “사람을 가지고 말하면 어떻습니까?”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밝음’은 사물을 분명히 깨달은 것이고, ‘통함’은 투철하여 막힘이 없는 것이며, ‘고름’은 올바르기에 치우침이 없는 것이고, 넓음은 만사에 넓게 미치는 것이니, 즉 각각 이치가 있게 된다.&amp;quot; 황직경이 말했다. &amp;quot;‘통함’이란 ‘밝음’의 지극함이고 ‘넓음’이란 ‘고른 것’의 지극함입니다.&amp;quot;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amp;quot;이 또한 맞는 말이다.&amp;quot;&amp;lt;/ref&amp;gt; &amp;lt;ref&amp;gt;『朱子語類』 卷 94 問：「一是純一靜虛，是此心如明鑑止水，無一毫私欲填於其中。故其動也，無非從天理流出，無一毫私欲撓之。靜虛是體，動直是用。」曰：「也是如此。靜虛易看，動直難看。靜虛，只是伊川云：『中有主則虛，虛則邪不能入』，是也。若物來奪之，則實；實則暗，暗則塞。動直，只是其動也更無所礙。若少有私欲，便礙便曲。要恁地做，又不要恁地做，便自有窒礙，便不是直。曲則私，私則狹。」물었다. “(「성학장」에서) 하나라는 것은 純一하고 虛靜한 것이며, 이 마음 마치 맑은 거울이나 고요한 물과 같아서 아주 조금의 사욕도 심중을 메우지 않은 상태입니다. 따라서 그것이 움직일 때에 天理로부터 흘러나오지 않음이 없어서 털끝만큼도 사욕이 마음을 분요롭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고요할 때 텅 비워진 것은 體이고 움직일 때 곧은 것은 用입니다.”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또한 이와 같다. 고요할 때 텅 비워진 것은 알기 쉽고 움직일 때 곧은 것은 알기 어렵다. ‘靜虛’는 정이천이 ‘마음속에 주재함이 있으면 텅 비워지고 텅 비워지면 사특한 것이 들어올 수 없다.’고 한 말이 이것이다. 만약 사물이 와서 침탈하면 마음이 꽉 차고, (마음속이) 꽉 차면 어두워지고, 어두워지면 막힌다. ‘動直’은 다만 움직일 때 별 다른 막힘이 없는 것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사욕이 있으면 바로 막히고 굽게 된다. 이처럼 해야 하는데 또한 이처럼 하지 않으려고 하니, 곧 저절로 막히는 바가 있게 되고 곧지 않게 된다. 굽으면 사사롭게 되고, 사사로우면 편협해진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此章之指，最為要切。然其辭義明白，不煩訓解。學者能深玩而力行之，則有以知無極之真，兩儀四象之本，皆不外乎此心，而日用間自無別用力處矣。'''&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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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의 뜻이 가장 핵심적이다. 그러면서도 그 문장의 뜻이 명백하여서 번잡하게 주해되지 않는다. 배우는 자들이 깊이 완색하고 힘써 행할 수 있다면 무극의 진실됨과 양의와 사상의 본체가 모두 이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아 일용 간에 저절로 별도의 힘쓸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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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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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Wooya0902</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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