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2 Text2Xml

Digerati
Tutor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9월 22일 (일) 23:14 판 (새 문서: ==수원 화성== * 대표명칭 수원 화성 * 영문명칭 Hwaseong Fortress, Suwon * 한자 水原 華城 * 주소 경기 수원시 팔달구 장안동 1-2번지 * 지정번호...)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동: 둘러보기, 검색

수원 화성

  • 대표명칭 수원 화성
  • 영문명칭 Hwaseong Fortress, Suwon
  • 한자 水原 華城
  • 주소 경기 수원시 팔달구 장안동 1-2번지
  • 지정번호 사적 제3호
  • 지정일 1963.01.21
  • 분류 건조물
  • 관리자 수원시
  • 시대 조선시대
  • 수량/면적 384,666㎡

수원 화성은 옛 수원부의 도시 외곽을 둘러싼 성곽으로, 조선 정조의 명에 따라 1794년부터 1796년까지 2년 반에 걸쳐 지어졌다.

화성은 정조의 치밀한 계획에 의해 만들어졌다. 수원 지역은 오랫동안 조선 최고의 명당 중 하나로 여겨졌으며, 정조는 1789년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를 양주에서 수원으로 이장하였다.

사도세자의 묘를 옮기면서 지역 주민들이 옮겨갈 신도시를 지어야했다. 정조는 당대 최고의 학자들과 기술자들로 하여금 신도시를 안전하고 편리하며 풍요로운 곳으로 건설하도록 하였다.

신도시 화성의 성곽은 경사진 지형의 특성을 살리는 전통적인 성곽 건축 양식을 따랐다. 성벽을 강화하기 위해 벽돌이 사용되었으며, 중국과 서양의 다양한 선진 기술과 방어시설이 도입되었다. 또한 화성은 서울 남쪽 교통의 요지에 자리잡아 경제적 이점이 많은 곳이기도 하였다.

화성은 조선 건축의 백미로 꼽히고 있으며, 그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 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수원 팔달문

  • 대표명칭 수원 팔달문
  • 영문명칭 Paldalmun Gate, Suwon
  • 한자 水原 八達門
  • 주소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팔달로2가 정조로 780
  • 지정번호 보물 제402호
  • 지정일 1964년 9월 3일
  • 분류 건조물
  • 시대 선시대
  • 수량/면적 1동

팔달문은 화성의 남쪽 출입문이다. 팔달(八達)은 '모든 방향으로 통한다'는 뜻이며, 화성 서쪽에 있는 팔달산에서 이름을 따왔다.

화성의 4대문 중 하나인 팔달문은 1794년에 세워졌으며, 석조 홍예문, 중층 목조 누각, 벽돌 옹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문의 건축에 참여하였던 사람들의 이름이 벽에 새겨져 있다.

문을 나서면 한반도의 남쪽 지방으로 갈 수 있는 길로 이어졌고, 충청도와 전라도의 다양한 물자들이 이 문을 통해 성안에 들어왔다가 북쪽 서울로 갔다. 따라서 문 주변에는 시장이 발달했고 늘 사람들의 통행이 많았다. 정조와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이 팔달문에서 남쪽으로 약 1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팔달문은 원래의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으며, 1964년 보물 제402호로 지정되었다. 안전상의 이유로 2013년 해체수리 되었다.


수원 화성행궁

  • 대표명칭 수원 화성행궁
  • 영문명칭 Temporary Palace at Hwaseong Fortress, Suwon
  • 한자 水原 華城行宮
  • 주소 경기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25
  • 지정번호 사적 제478호
  • 지정일 2007년 6월 8일
  • 분류 유적건조물
  • 시대 조선시대
  • 수량/면적 37,268㎡

행궁은 임금이 궁궐을 떠나 멀리 행차할 때 임시로 머무르는 별궁을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왕이 피난을 갔던 남한산성과 온천 여행을 갔던 온양을 비롯하여 전국 여러 곳에 행궁이 지어졌다. 화성행궁은 정조가 부친인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을 행차할 때 머물기 위한 처소로 마련되었으며, 평상시에는 수원부의 관청으로 사용되었다. 화성행궁은 전국의 행궁 가운데 규모나 기능 면에서 가장 돋보이는 조선시대 최대의 행궁이다.

화성행궁의 축조는 정조가 사도세자의 묘소를 양주에서 수원으로 옮기던 1789년에 시작되어 1790년에 완료되었다. 이후 1794년부터 1796년까지 화성의 건설과 함께 행궁도 크게 증축되었다. 1795년에는 정조가 어머니의 60세 생일을 맞이하여 큰 잔치를 행궁에서 열기도 하였다.

행궁의 앞쪽에는 관아 건물들이 배치되었고, 뒤편에는 왕이 업무를 보던 편전과 침전 등이 있다. 화성행궁은 다른 행궁들과는 달리 정궁의 구조를 따르고 있는데, 이는 정조가 왕위를 물려준 후 화성으로 내려와 살고자 했기 때문이다.

화성행궁은 20세기 초 도립병원이 들어서면서, 낙남헌을 제외한 행궁의 건물 대부분이 철거되었다. 1996년부터 복원이 시작되어 2002년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으며, 2009년에는 행궁 앞에 광장이 마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