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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4일 (수) 08:54 판
Our 70th Year, 2011
손녀 돌보는 것도 우리가 건강해서 가능했다. 그런데 와이프가 작년부터 치과에 다니며 치료를 받아왔는데 결국 이빨들을 발치하고 임프랜트를 여러개 해야 한다고 한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고생을 많이 해야 한다고 걱정했다. 생각 끝에 와이프는 계속 학교에 나가 가르치는 일도 어려워지고 Sela를 정성껏 돌보려면 은퇴를 해야겠다고 결정하니 모두 반가워 했다.
우린 같이 보스톤 칼리지 Slavic and Eastern Languages Dept. 학과장 마이클 코널리(Michael Connolly)교수를 찾아가 상의했다. 코널리 교수는 내가 돌아 온 줄 알고 내가 다음 학기부터 가르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며 와이프를 일년간 medical leave로 해주겠다고 했다. 나 역시 뭔지 해야 할 일이 있고 대학에 연관되는 게 좋을 것 같아 결국 내가 다음 학기에 한 과목 가르치기로 결정했다.
거의 20년 살던 시카고를 떠나 1989년 보스톤에 와서 하바드 옌칭도서관에서 16년 근무하고 2005년 은퇴 후 한국에 가서 한성대학에서 2년, 배재대학에서 3년 동안 가르치고 이제 보스톤 칼리지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새로운 인생의 도전이 시작되었다. 내 인생에 은퇴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뭔지 내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속에 보람을 느끼고 감사한 마음이다.
와이프가 지난 18년동안 보스톤 칼리지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느라 교과 과정이나 내용을 잘 정리해 두어 쉽게 이용할 수 있지만 그래도 배우고 연구할 일들이 많았다. 내가 일평생 제일 자신 있게 구사해온 언어인데 막상 가르칠 준비를 하려니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