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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Memoir 2018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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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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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My9univ: 새 문서: {{clickable button| Home}}  ==2018/2/15 목요일==  보스톤은 매년 2 월이 가장 혹독한 날씨라 두렵기도 했는데 금년은 어렵지 않게 지나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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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05-02T11:38:1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새 문서: {{clickable button|&lt;a href=&quot;/~tutor/wiki/index.php/Memoir&quot; title=&quot;Memoir&quot;&gt; Home&lt;/a&gt;}}  ==2018/2/15 목요일==  보스톤은 매년 2 월이 가장 혹독한 날씨라 두렵기도 했는데 금년은 어렵지 않게 지나는...&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clickable button|[[Memoir | Home]]}}&lt;br /&gt;
&lt;br /&gt;
==2018/2/15 목요일==&lt;br /&gt;
&lt;br /&gt;
보스톤은 매년 2 월이 가장 혹독한 날씨라 두렵기도 했는데 금년은 어렵지 않게 지나는 거 같다. 작년만해도 학교에 가는 날들 폭설이 내리면 새벽부터 눈 치우고 단단히 벼루고 긴장속에 살았었다. 봄학기 끝나고 은퇴후 백수 생활은 손주들 뒷바라지에 올인해서 매일아침 7 시에 가서 학교에 데려다 주고 오후에 픽업해서 학원에 데리고 간다. 운전기사 전업주부 역활로 백수가 더 바빠졌다. 요리 솜씨가 늘어 가끔은 가족 저녁 식사도 맡는다. &lt;br /&gt;
&lt;br /&gt;
==2018/6/16 토요일==&lt;br /&gt;
&lt;br /&gt;
토요일 아침 바이올린 김지혜 선생이 집에 와서 렛슨 해준다. 멕시코에서 자랐고 보스톤에 있는 버클리 음대 졸업했는데 지난 몇 년 동안 집에 와서 도와주는 고마운 선생님이다. &lt;br /&gt;
작년 가을 산후에도 쉬지 않고 올 정도로 책임감이 강하고 잘 가르쳐준다. &lt;br /&gt;
&lt;br /&gt;
[[파일:2018-06-16.png]]&lt;br /&gt;
[[파일:2018-06-16-02.png]]&lt;br /&gt;
&lt;br /&gt;
&lt;br /&gt;
==2018/6/19 화요일==&lt;br /&gt;
&lt;br /&gt;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 최선을 다 하려면 우선 나부터 &lt;br /&gt;
건강해야 한다. 정신적인 번뇌와 과거의 미련에서 벗어나 마음의 동요를 억제하고 평안을 얻도록 노력하며 얻을 수 없는 욕망은 아예 잊어야 한다&lt;br /&gt;
손주들 돌보면서도 그저 해달라는대로 해줄 뿐 간섭하거나 &lt;br /&gt;
참견하지 않는다 전에는 내 의견과 주장때문에 갈등의 여지가 많았지만 마음을 내려놓으니 나도 편하고 이제 우리만을 돌보며 마음준비를 한다.&lt;br /&gt;
&lt;br /&gt;
==2018/7/19 목요일==&lt;br /&gt;
&lt;br /&gt;
다시는 멀고 먼 고향에 찾아가 형제들 친지들을 만날 수 있는 희망과 기력을 아예 포기한채 무의미한 날들을 보내며 살고 있는데 우리 나이 77 을 기념하며 선물로 한국행 비지니스 클라스 티켓을 마련해준 자식의 선물을 효심으로 받아드리고 황혼여행을 결심하게 되었다.&lt;br /&gt;
그래도 와이프는 장시간 비행 자신이 없다며 안 간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비행기타고 가다가 같이 죽을 수 있는 기회라고 설득시켜 와이프는 10 년만에 폭염속의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비지니스 클라스라 좌석도 편하고 누울 수도 있고 좋은 음식도 제공되어 견딜만한지 도착할 때쯤엔 내 손을 잡으며 고맙다고 한다.&lt;br /&gt;
&lt;br /&gt;
==2018/7/22 일요일==&lt;br /&gt;
&lt;br /&gt;
조카 승순이 반갑게 공항에 마중나와 처제가 마련해준 섬머셋호텔까지 데려다 주었다. 다음 날엔 처가 집 식구들 작은오빠 언니 올케들 처제 조카 모두 호텔로 와서 오랜만에 감격의 상봉을 하며 돌아가신 두 오빠들 이야기를 나누며 그리워했다. 84 세 작은오빠도 심장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고 언니 형부 모두 고령이신데 잘 견디고 사시고 또 올케들도 반가워했다. 지난 6 년간 뇌경색에 시달려 고립된 일상이 망각의 세계로 이끌었지만 서로 감회에 젖어 기쁨을 나누는 모습들이 황혼의 인생을 아름답게 물들여 주었다. &lt;br /&gt;
&lt;br /&gt;
다음 날엔 승순이 매형모시고 동생들 모두 데리고 와서 매형 좋아하시는 일식집에 가서 점심 대접했다. 매형도 구순이 넘으셨는데 건강하셨다. 조카들이 씰라 웨슬리 보고 싶다며 내년에 꼭 데리고 오라고 부탁한다.&lt;br /&gt;
&lt;br /&gt;
일요일 저녁엔 김현교수 내외 조세린 조인숙 이정숙 교수들과 만찬을 즐기며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lt;br /&gt;
제주도에서 김재형이 보고 싶다며 귤 한 상자를 들고 찾아와 고마웠다.&lt;br /&gt;
&lt;br /&gt;
낮엔 폭염이 계속되었지만 오전엔 시원해서 처제가 빌려다 준 휠체어에 태우고 매일 아침 밖에 나가 산책했다. 마침 근처에 있는 조계사에서는 연꽃축제가 진행되어 대법정안의 부처를 보며 기도도 하고 연꽃 감상을 할 수 있었다. 하루는 세종로를 달려 동아일보를 지나 청계천에 가서 돌아보고 오면서 인사동에도 들렸다. 또 하루는 경복궁 돌담을 따라 올라가 북촌까지 올라갔는데 경사가 가파르고 위험해 넘어지기도 했다. 한 시간넘게 휠체어를 밀고 다니다 호텔에 돌아오면 양손이 마비상태였다. 호텔 옥상에 올라가면 북한산 청와대 경복궁 다 볼 수 있고 서을시내 전망이 좋았다.&lt;br /&gt;
&lt;br /&gt;
일 주일동안 황혼인생을 재충전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들이었다. 언제나 편안한 가족 울타리속에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과 살아있는 행복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 더 이상 단절하고 포기하지 말고 황혼의 삶이 더 아름답게 물들여지도록 최선을 다 하고 노력해서 내년엔 손주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lt;br /&gt;
&lt;br /&gt;
[[파일:2018-07-22-01.png]]&lt;br /&gt;
[[파일:2018-07-22-02.png]]&lt;br /&gt;
&lt;br /&gt;
==2018/9/8 토요일==&lt;br /&gt;
&lt;br /&gt;
한국에 다녀와서 Yuanmei Xing한테 몇 차례 문자메시지를 보내도 답이 없고 셀폰도 안 받아 오늘 다시 집전화 번호로 하니 남자친구 스티븐이 전화를 받았고 슬픈 소식을 전해주었다.&lt;br /&gt;
&lt;br /&gt;
유안메이 싱이 지난 8 월 10일 세상을 떠났다. 2 년전부터 폐암으로 치료받으며 고생하다가 드디어 눈을 감았다. 아직 예순도 안 되었는데 구십 넘은 중국에 계신 어머니께 알리지도 않고 떠나버렸다고 같이 살던 스티븐이 아쉬어했다. 여러 번 내가 쓰지 않는 Hotmail 주소로 연락했었다고 한다. 지난 6 월 14 일 아침에 좋아하는 장어김밥과 불고기를 만들어 병문안 갔더니 밖에서 기다리며 반가워했었다. 우리를무란식당에 점심을 초대하여 치료받느라고 머리가 다 빠져서 모자를 쓴다며 와이프 모자랑 비교하며 환하게 웃었던 게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리고 한국에 잘 다녀오라며 더위에 각별히 주의하라고 긴 메시지를 보냈었다.&lt;br /&gt;
&lt;br /&gt;
내가 유엔메이를 처음 만난 게 20 년전이었다. 캠브리지에 있는 음악학교 Longy School 에서 성인교육을 위한 오픈하우스에 갔었는데 늦은 나이에 조금 할 줄 아는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었다. 친절하게 자기를 소개하며 성인도 여러 명 가르치고 있다며 렛슨을 권장했다. 중국 청두에서 태어나 음악인 부모밑에서 자라면서 어려서부터 바이올린을 배웠고 상해 북경 음악원을 거쳐 40 년전에 보스톤에 와서 공부하고 Longy 에서 가르치고 있었다. 바이올린 배운다는 것이 쉽지않았지만 몇 년 꾸준히 연습하고 매주 렛슨을 받았다. 클라리넷 연주가인 스티븐과 같이 살며 결혼은 하지 않았다. 중국에서 성악가인 어머니가 방문하면 우리집에 초대도 하고&lt;br /&gt;
점점 친해져 영호 결혼식 때는 4중주 연주도 해주었고 2005 년 내 하바드 퇴임파티에서도 독주를 해주었다. 내가 한국에 가 있는 동안에도 집에 찾아오고 와이프랑 쇼핑을 즐겼다.&lt;br /&gt;
&lt;br /&gt;
내가 미국에 돌아와서도 계속 바이올린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오케스트라도 소개해주었다. 지금 사용하는 바이올린도 중국 다녀오면서 사다줬는데 소리도 좋고 마음에 든다.&lt;br /&gt;
너무 어려운 곡들 도전하며 실망하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열심히 연습해보라는 충고가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lt;br /&gt;
음악을 하며 음악을 위해 일 평생을 살다가 떠나버렸지만 저 세상에서도 영원한 평안속에 음악을 계속하며 행복하도록 고인의 명복을 빈다. 캠브리지 Mt.Auburn cemetry에 plague가 있다.&lt;br /&gt;
&lt;br /&gt;
[[파일:2018-09-08-01.png]]&lt;br /&gt;
[[파일:2018-09-08-02.png]]&lt;br /&gt;
[[파일:2018-09-08-03.png]]&lt;br /&gt;
&lt;br /&gt;
==2018/9/1 토요일==&lt;br /&gt;
&lt;br /&gt;
작년부터 전승희 교수가 BC 한국어 책임자가 되어 가르치고 있는데 학생수가 너무 많아 파트타임 선생을 물색중이라며 혹시 내가 한 과목 가르칠 수 있느냐고 학과장한테 편지가 왔다. 마침 간병인도 구했고 염형곤 부인 이경진이 가르치고 싶은데 경험이 없어 자격이 안된다고 해서 전승희 교수와 상의 끝에 내가 한 과목 맡고 경진이를 조교로 쓰기로 했다. 이경진도 문리대 후배고 보스톤대학에서 미술사로 석사를 했는데 이런 기회가 와서 열심히 배우겠다며 고마워했다. 수업있는 월 수 금요일 오후 2 시간씩 간병인이 와서 돌봐주는데 젊은 한국 분이고 친절하다. &lt;br /&gt;
완전 은퇴를 결정하고 새로운 도전속에 사는데 또 다시 가르치게되니 시간은 강물처럼 흐르고 어린 학생들과 즐겁게 보낼 수 있어 에너지 충전도 된다. &lt;br /&gt;
&lt;br /&gt;
==2018/9/23 일요일==&lt;br /&gt;
&lt;br /&gt;
====Letter from 최석범====&lt;br /&gt;
&amp;lt;pre&amp;gt;&lt;br /&gt;
Air Canada 를 타고 Boston 을 꿈속에 다녀온 것 같네요..&lt;br /&gt;
형의 근황을 옆에서 보고 감탄했고, 전의 모습을 찾아볼수없는 형수의 모습을 보고 인생말년이 너무 일찍 찾아온 것같아 안타까움과 애처로움을 느꼈습니다. &lt;br /&gt;
형의 정성스런 보살핌으로 좀더 자유로울 수있는 상태가 되었음 좋겠군요... &lt;br /&gt;
무엇보다 놀라울 정도인 형 건강은 모든 식구를 지켜주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힘이 됨으로 계속해서 Gym 운동하시고 맛있는 것 많이 자시고 연주도 하면서 어려운 가운데도 즐거운 생활 찾아 하시면 되겠습니다. &lt;br /&gt;
Boston College 방문은 참 인상적 이었습니다. 형의 한국어 가르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잘 남겨두었다고 생각합니다. &lt;br /&gt;
추석을 맞이하여 송편드시면서 명절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lt;br /&gt;
해피 추석 ! (밴쿠버 최석범) &lt;br /&gt;
&amp;lt;/pre&amp;gt;&lt;br /&gt;
&lt;br /&gt;
[[파일:2018-09-23.png]]&lt;br /&gt;
&lt;br /&gt;
==2018/12/26 수요일==&lt;br /&gt;
&lt;br /&gt;
결혼 50 주년 기념일&lt;br /&gt;
&lt;br /&gt;
특별한 느낌도 없이 흐르는 세월속에 잠길 뿐이다&lt;br /&gt;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종일 누워만 있으려고 하니 아무런 계획도 세울 수가 없다&lt;br /&gt;
어제도 새로 나온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해도 안 가겠다고 한다. 겨우 저녁먹으로 나갔다 왔다. &lt;br /&gt;
우리는 50 년전 와이프가 웨딩 드레스를 가지고 미국에 도착한 다음 날 친구 스피디 부모가 도와줘 Cuero 에서 간략한 결혼식을 했다. 같이 University of Texas in Austin 에서 대학원에 다니며 대학 도서관에서 알바이트 하다가 도서관학 석사도 끝낼 수 있었다. 나는 1971 년 시카고대학 박사과정에 입학되었고 와이프는 전문직 사서 직장을 얻을 수 있게 되어 시카고에서 1989까지 살았다. &lt;br /&gt;
&lt;br /&gt;
[[파일:2018-12-26-01.png]]&lt;br /&gt;
[[파일:2018-12-26-02.png]]&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 Yoon's Memoir]]&lt;/div&gt;</summary>
		<author><name>My9univ</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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